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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 가고싶어 자폭테러 결심” 팔 ‘폭탄소년’ 충격 진술

    “엄마 생각이 났어요.엄마는 화나면 몸이 아픈데….지금 몹시 화났을 거예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의 암살 직후인 지난 24일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 남부의 이스라엘군 초소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려다 검문에 붙잡힌 16세 팔레스타인 소년 후삼 압도.폭탄띠를 두르고 길 한가운데 겁먹은 눈으로 서 있던 압도의 모습은 TV를 통해 전세계로 방영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특히 10대나 여성이 자폭테러를 감행한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이의 증언은 드물어 관심이 집중됐다. 왜소한 체격 때문에 체포 당시 10세 정도로 알려졌던 압도는 ‘죽으러 가면서 무슨 생각이 났느냐.’는 이스라엘 병사의 질문에 “엄마”라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26일 보도했다. 신문은 소년이 이스라엘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천국에 가고 싶어서 자폭 테러를 결심했다.”고 말했으며 길을 떠나기 전날인 “23일 밤 친구들이 폭탄을 설치해줬다.”고 밝혔다고 전했다.압도는 24일 아침 어머니 타만(50)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단정하게 이발을 한 뒤 “엄마가 원하는 일은 뭐든지 할 거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폭탄을 두르고 검문소로 걸어갈 땐 죽으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코란을 떠올리니까 두려움이 사라졌다가 군인들 제지를 받고난 뒤 마음이 바뀌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압도의 얘기는 10대들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테러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압도의 아버지 무하마드는 “어린아이를 자살공격에 나서도록 한 사람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며 “압도를 유혹한 성인인 자신들이 스스로 자살공격에 나서야 한다.”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의 온건파 지식인들도 비폭력 저항을 호소하고 나섰다.자폭 테러를 순교(殉敎)로 일컫는 팔레스타인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한편에선 이스라엘 군과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와 예디오트 아하로놋은 각각 “(자폭 테러를 하면) 천국에 가서 72명의 처녀들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해줘 자살을 결심했다.”고 보도했다.키가 작아 “못생긴 난쟁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진술도 자폭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로 소개됐다.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은 25일 몇주 전 압도처럼 나블루스 출신 한 소년이 자폭테러를 시도하려다 붙잡혔을 때도 같은 식으로 보도됐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이를 부인했다며 왜곡 가능성을 제기했다.압도가 붙잡히기 2시간 전부터 TV카메라와 취재진이 초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점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알카에다 “무샤라프 정부 전복”

    파키스탄의 대대적 소탕작전에 쫓기고 있는 테러단체 알 카에다의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사랴프 정부 전복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25일 공개됐다. 알 자지라 방송이 이날 공개한 테이프에서 자와히리로 추정되는 인물은 “무샤라프가 등 뒤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저항운동에 칼을 꽂으려 하고 있다.”며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들이 파키스탄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는 반역자들의 정부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무샤라프에 의해 비참한 상태에 빠진” 파키스탄 군부에 대해 “파키스탄이 또다시 분할될 때까지 침묵하고 있을 것이냐.”며 “악의 편에 선” 자들에게 맞설 것을 촉구했다. 이 테이프의 녹음시점은 알려지지 않아 자와히리가 파키스탄의 추적을 피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파키스탄 정보당국은 지난 18일 반군의 저항정도로 봐서 자와히리로 추정되는 인물을 포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일부 외신들은 자와히리가 지하터널을 통해 이 지역을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이에 앞서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면한 2번의 암살기도가 알 카에다 소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도 알 카에다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파이잘 살레 하야트 파키스탄 내무장관은 이날 지난 18일 이후 7500명이 동원된 작전에서 외국인 테러범 20명을 포함,55명의 반군이 숨졌다고 밝혔다.이와 동시에 미군은 아프간 국경 산악지대에 대한 봉쇄작전을 강화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이-팔 ‘일촉즉발’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피살된 이후 아랍권과 이스라엘간 정면충돌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세력 하마스는 상대측 지도자 암살을 공언하면서 군사적 준비태세를 정비중이다.팔레스타인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을 분리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양측간 외교전·선전전도 가속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국토에 있는 적들만 공격 팔레스타인의 무장 저항세력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크하리드 메스할은 25일 아랍신문 알 하야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 과거 팔레스타인 국토에 있는 적들에게만 한정해 공격할 것”이라며 “미국 등 다른 국가를 공격할 이유도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야신의 사망 배후에 미국이 있다던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미국과 이스라엘간의 틈새를 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또 국제사회가 테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초점을 이스라엘에 맞추기로 한 것 같다. 22일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을 암살한 이후 중동에서는 3일째 항의 시위가 계속됐으며,일부 서방국 대사관에는 테러위협이 이어졌다.레바논 베이루트에서는 24일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 난민 5000명이 모여 이스라엘과 미국 국기를 불태웠다.이집트 카이로에서는 1만여명이 야신 추모 집회를 열었다.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발생한 시위에선 부시 대통령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모형이 불에 탔다.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 체결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3일 이집트 의회에서 연설한 샤론 총리는 “이웃 국가들과 평화를 향한 행진을 계속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연설에는 120명의 의원 중 20명만이 참석했다. ●이, 카타르·모리타니아 외교대표부 폐쇄 이스라엘은 야신 암살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보복공격에 대비,카타르와 모리타니 주재 외교 대표부를 잠정 폐쇄했다고 발표했다.이스라엘은 또 아랍권 내 여러 공관 직원들에게 출근을 자제하고 자택에 머물도록 지시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는 전했다. 이스라엘의 실반 샬롬 외무장관은 24일 테러문제를 다루는 유엔 특별회의 개최를 요청했다.그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새 지도자 란티시도 암살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느 누구도 (암살공격에서) 면제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팔레스타인측은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알제리를 통해 야신의 암살을 주도한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리 비난 결의안 채택 시도를 계속했다. 미국 국무부는 다음주 이스라엘에 특사를 보내 가자지구 철수 계획 논의를 재개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미국도 중동지역의 공관에서 테러 위협이 감지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주재 대사관과 영사관을 잠정 폐쇄했다.또 미국인들에게 가자지구에서 떠나도록 권고하고,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여행 자제령을 내렸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하마스 새 지도자 강경파 란티시 선출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세력 하마스가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군에 암살된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의 후임으로 강경론자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56)를 선출하고 이스라엘도 초강경 대응방침을 밝혀 중동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혈사태로 번질 것으로 우려된다. 하마스는 이날 가자시티의 축구장에서 수만명의 회원이 참가한 비밀투표를 통해 란티시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란티시는 수락연설을 통해 “우리는 저항의 우산 아래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스라엘의 테러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란티시는 야신 암살 직후 미국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시사한 하마스 명의의 성명과는 달리 미국을 공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테러 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샤울 모파즈 국방장관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주적”이라면서 “하마스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하마스 지도자들을 (전원)제거하겠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정세가 악화되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등에 과격 이슬람 세력들로부터 폭발 위협이 잇따르는 등 지구촌 전체가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도운기자 외신 dawn@
  • 하마스 새 지도자 란티시 ‘무차별 보복’ 선언

    팔레스타인 무장저항단체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23일 뽑힌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피격된 셰이크 야신의 오른팔로 그보다 강경한 인물로 알려졌다. 야신이 팔레스타인 지역 외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반대한 반면 란티시는 ‘모든 곳’에서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하마스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됐던 이스라엘과의 잠정 휴전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타협도 반대한다. 강경한 어조로 연설,하마스 요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팔레스타인 대중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야신 다음의 2인자로 인식돼 왔다. 반면 야신이 가졌던 정신적 구심점과 카리스마는 없다.야신은 사지마비로 정상적 활동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었지만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그리고 해외에 이르기까지 하마스의 다양한 조직과 파벌을 통합해 왔다.란티시는 가자지구만 관할하며 통합 지도자는 시리아로 망명한 칼리드 마샬이다. 란티시의 사상적 배경은 이집트의 이슬람급진운동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다.카이로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 영향을 받았다.그가 야신 등 7명과 함께 만든 하마스의 뿌리도 무슬림형제단이다. 란티시는 1947년 텔아비브 남부 예브나에서 태어났다.48년 이스라엘이 세워지면서 예브나가 이스라엘에 편입돼 그의 가족은 가자지구로 떠났다.18살에 이집트로 건너간 그는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에서 소아과 의사 학위를 받았다.76년 가자지구로 돌아와서는 대학과 병원에서 일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발생한 87년부터 이스라엘 당국에 여러번 체포됐다.92년에는 416명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요원과 함께 레바논으로 추방됐다.이 과정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떠올랐다. 93년 오슬로협정 체결 후 가자지구로 돌아왔으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비난으로 종종 팔레스타인 당국에 의해 구금됐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은 자폭테러를 부추기고 지시한다며 란티시 암살을 시도했으나 그를 부상시키는 데 그쳤다. 전경하기자 lark3@˝
  • ‘중동 화약고’ 터지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암살하면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더 나아가 지구촌 전체가 유혈충돌과 테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하마스는 강경파 란티시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면서 피의 보복을 다짐했고,이슬람 세력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테러를 경고하고 있다.이에 대해 이스라엘도 하마스 지도자 제거를 공언함에 따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중재노력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피의 보복’ 대 ‘선제공격’ 23일(현지시간)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선출된 란티시는 무장조직인 에제딘 알 카삼 여단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들에게 점령의 대가를 가르치라.”고 지시했다.그는 “셰이크 야신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며 그가 세운 목표를 이룰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강경투쟁을 다짐했다. 피살된 야신의 여자 친척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여성 추종자들은 야신의 집에 모여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을 다짐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선제공격으로 맞섰다.23일밤 로켓포로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폭격한 데 이어 24일에는 탱크를 동원 가자지구의 칸 유니스 난민캠프에 진입했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 아비 파즈너는 “란티시는 가장 극단적인 하마스 요원들 가운데 하나”라며 그를 새 지도자로 선출한 하마스 지도부 결정을 비난했다. ●유엔 중재노력 실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3일 이스라엘의 야신 암살 문제에 대한 결의안 채택 문제를 논의했지만 미국과 팔레스타인이 타협을 거부함에 따라 극한 대립만 거듭하다 산회했다. 제네바의 유엔인권위원회는 이스라엘에 야신을 암살한 데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유엔 인권위는 또 이슬람 국가 회의체인 이슬람회의기구(OIC)가 제출한 이스라엘 비난 결의안을 승인했다. 유엔 인권위의 53개 회원국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34개국이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그러나 미국,호주,에리트레아는 반대했으며 대부분 유럽국가인 14개국은 기권했다. ●이슬람 국가의 반발과 투쟁 아랍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23일 대규모 이스라엘 규탄시위를 주도하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전범재판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다. 살레 대통령은 수도 사나 한복판 알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한 100만 군중을 향해 샤론 총리를 국제법정에 전범으로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에서는 시위대 2000여명이 수도 앙카라 중심가에서 ‘살인자 샤론,살인자 부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팔 분쟁해결 불투명 이에 따라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 체제 인정을 통한 분쟁 해결방안도 이행여부가 극히 불투명해졌다.팔레스타인이 미국을 중재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배후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행동이 가지고 올 결과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23일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2국 체제를 통한 분쟁해결 방안이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에도 좋다.”고 강조하면서 “상황이 허용한다면 다음주 대표단을 중동에 파견,중동평화 실현방안을 논의토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LAT “샤론 정치입지 강화 노림수”

    “테러에 면죄부란 없다.”이스라엘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살해한 것은 이스라엘의 장기적 손익 계산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우선 야신을 계승할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현 상황이 야신 제거에 최적의 시기였다는 주장이다.독일 DPA통신은 “야신과 같은 카리스마와 권위를 가진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그의 제거가 하마스의 장기적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이스라엘은 판단하고 있다.”고 이스라엘 평론가들의 말을 인용,22일 보도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도 조직의 구심점인 야신의 죽음으로 하마스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고 공격 의지가 약화될 것으로 평가했다. 이·팔 분쟁 해결 차원에서 가자지구내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철수시킬 뜻을 밝힌 뒤 내부 비판에 시달려온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정치적 입지 강화 등을 노리고 벌인 ‘도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LAT는 “샤론은 이번 피격을 통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가자지구 철수 계획을 (이스라엘의)유약함으로 보지 않도록 쐐기를 박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자지구 철수 이후 이 지역에 대한 하마스의 장악력이 강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적 입지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이번 암살은 하마스 등에 의한 거센 보복테러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장기적으론 암살 위협에 따라 하마스 지도자들의 운신의 폭이 좁혀져 하마스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하지만 이스라엘의 대테러 전문가 루에벤 파즈 박사는 “지난 3년6개월 동안 우리는 하마스 지도자들을 제거해 왔지만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편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스라엘의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22일 이같은 관측을 부인했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
  • 국제사회 ‘이스라엘 비난’ 고조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의 죽음에 팔레스타인은 22일(현지시간) ‘피의 보복’을 다짐했고,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뿐 아니라 아랍권 전체로 번졌다.유엔과 유럽 각국도 이스라엘의 행위를 범죄로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랍권 정서와 다르게 이스라엘을 비난하지 않았다.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을 공격할 것을 촉구했고 알카에다도 미국과 그 동맹들을 공격할 것을 요구,중동평화 구상은 뒷전에 밀리고 당분간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질 전망이다. ●야신 암살은 범죄 행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행동은 국제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중동에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순번 의장국인 아일랜드의 버티 아헌 총리와 가진 공동회견에서 “프랑스는 유럽연합 국가들과 함께 모든 폭력 행위를 전적으로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중동 평화 중재에 적극 나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평화과정이냐.”고 개탄했다.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인 캠프 데이비드 협정체결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표단의 이스라엘 방문을 취소했다. ●난처해진 미국,그래도 이스라엘 두둔 미국은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같은 공격은 양측의 긴장만 고조시키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어렵게 만든다.”고 논평했을 뿐 이스라엘을 직접 비난하진 않았다.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하마스는 테러조직이며 야신은 개인적으로 테러 모의에 연루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NBC 방송에 말했다. 대테러 전쟁 차원에서 야신을 암살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옹호함으로써 백악관은 아랍권의 거센 반발을 샀다.아랍권은 미국의 동의 없이 이스라엘의 암살이 가능했겠느냐는 시각이다.하마스에 동조하지 않던 무장단체들이 연대를 다짐함으로써 야신 암살의 ‘역풍’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 본토나 이라크 주둔 미군에까지 미칠 것으로 보인다.23일 바그다드 인근 라마디에선 반(反)이스라엘 시위대가 경찰차를 불태우고 정부청사에 수류탄을 던져 최소한 경찰 2명과 시위 참가자 3명이 다쳤다.팔루자 등 곳곳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잇따르자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는 야신 암살이 이라크에 격렬한 폭력 사태를 불러올 것을 우려했다. ●눈에는 눈으로… 규탄시위 확산 하마스 본거지 가자시티에서 열린 야신의 장례식에는 20만여명이 몰려 ‘복수’를 외쳤다.10년 전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이 가자지구로 돌아온 이래 최대 규모 시위다.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와 제닌 등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하마스는 3일의 추도기간이 끝나면 현 지도부 중에서 야신의 후계자를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카이로와 레바논 베이루트,요르단 암만,시리아 다마스쿠스,예멘 사나 등지에서도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분노가 들끓었다.레바논 헤즈볼라 게릴라는 5개월만에 이스라엘 진지에 포격을 가했고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보내 응사하는 등 교전이 벌어졌다.이스라엘은 기회만 포착되면 곧바로 공격에 나서 하마스 지도부를 모두 사살할 계획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한 보안관리가 23일 밝혔다. mip@seoul.co.kr˝
  • 야신은 누구-아랍·팔레스타인의 ‘영적 존재’

    이스라엘 공습으로 22일 사망한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8)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구심점이면서 팔레스타인 및 아랍 사회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12세 때 운동 중 머리를 다쳐 사지마비가 된 야신은 카이로에 있는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 신학을 공부했고,가자지구로 돌아와 반이스라엘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1983년 이스라엘당국에 체포돼 복역하다 2년 만에 인질교환으로 석방됐다. 야신은 1987년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 기간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온건노선에 반대해 아랍어로 ‘열정’을 뜻하는 하마스를 창설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그는 1989년 이스라엘의 대대적 소탕작전으로 200여명의 하마스 대원들과 함께 체포된 뒤 암살교사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그 뒤 복역 중 이스라엘 첩보요원 2명과의 교환 조건으로 1997년 9월 석방됐다. 그러나 석방 뒤에도 크고작은 반이스라엘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이스라엘은 지난 해 9월 전투기와 헬기까지 동원해 가자시티에서 하마스 지도자들과 회합중인 야신을 공습했으나 그를 살해하는 데 실패했다.이스라엘은 이후에도 그를 표적살해 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이춘규기자 taein@˝
  • 이스라엘 ‘표적살해’

    |카이로 연합|팔레스타인 최대 저항운동 단체 하마스의 창설자이며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22일 새벽(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하마스측이 발표했다. 야신은 3년 넘게 지속돼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충돌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표적공격으로 살해된 최고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지도자다.야신의 사망으로 양측간 폭력이 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중동 평화 로드맵의 이행 전망도 극히 불투명해졌다. ●미사일에 피격 사망 야신은 이날 가자시티 사브라 지구의 알 무자마아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떠나려다 이스라엘 헬리콥터가 쏜 미사일에 피격돼 현장에서 숨졌다고 하마스는 밝혔다.이스라엘군 헬기의 공습으로 야신을 부축하던 경호원 2명과 행인 1명 등 5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했다고 하마스는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는 야신의 아들 2명도 들어 있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하마스 “샤론 죽이겠다” 하마스 지도부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이 지옥의 문을 열었다.”며 “그의 목을 치겠다.”고 경고했다.하마스 산하의 무장조직 에제딘 알 카삼 여단은 “시온주의자들의 존재를 파괴하기 위해 도처에서 지진과 같은 보복공격을 즉각 단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라디오는 샤론 총리가 야신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측은 그가 수 백 명의 이스라엘인들을 희생시킨 자살 폭탄테러를 선동해 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 야신 피살 파장-하마스 “무차별 피의 보복”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을 표적살해하고 하마스가 즉각 무차별적인 보복 공격을 다짐하고 나서 중동의 화약고가 드디어 폭발하게 됐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이스라엘을 겨냥한 하마스의 보복 공격이 잇따를 게 뻔한 상황에서 피의 보복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염려된다. 가자지구 철수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야신 암살을 통해 이스라엘에 최대의 위협을 가해온 하마스의 약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야신의 죽음으로 하마스가 당장 타격을 받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복수심을 자극해 오히려 이스라엘에 더 큰 타격을 가하는 역작용을 부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당장 전세계가 야신 암살과 관련,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연이은 보복 공격과 이스라엘이 이에 강경 대응해 양측간 대립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즉각 이스라엘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선언했다.이스라엘이 먼저 ‘지옥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이스라엘은 야신이 죽은 것을 확인한 즉시 가자지구 봉쇄에 나서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에 대비하고 나섰다.지이브 보임 이스라엘 국방부 부장관은 “하마스가 자행한 모든 테러공격에 야신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그는 “단 한명의 테러 지도자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지도자들에 대한 표적살해 공격이 계속될 것임을 경고했다.이번 기회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기반을 철저히 파괴해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뿌리뽑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야신 암살에는 또 가자지구 철수가 팔레스타인의 승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팔 양측간 무력충돌이 격화되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양측에서 대화를 주장했던 협상파들의 입지는 위축되고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높아질 수밖에 없다.이럴 경우 미국이 주도해온 중동평화 로드맵 등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해 힘겹게 노력해온 대화 분위기는 전면 중단되고 사생결단식 정면충돌만 남게 된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아프간 파벌간 무력충돌

    |카불 외신|아프가니스탄 대통령선거 및 총선이 안전 등의 이유로 당초 6월에서 8월까지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서부 헤라트시에서 파벌간 무력충돌이 발생,100여명이 사망하는 등 아프간 정정이 매우 불안해지고 있다. 아프간의 미르와이스 사디크 항공장관이 21일 암살당한 직후 아프간 서부 도시 헤라트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최대 100여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관리들이 밝혔다. 현지 관리들은 사디크 장관이 암살당한 후 사디크 장관의 부친인 헤라트주 주지사 아스마일 칸에게 충성하는 병사들과 현지 군 사령관인 자헤르 나이브 자다의 병사들이 무력충돌했다고 전했다.익명을 요구한 헤라트주의 한 고위관리는 “약 100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디크 장관의 암살은 그의 아버지인 칸 헤라트주지사에 대한 암살기도가 실패한 뒤 발생한 것으로 헤라트 지역의 군사 통수권을 놓고 파벌간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디크 장관의 암살에 이은 파벌간 전투가 재발하면서 미국 지원하에 인종 및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려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가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한편 칸 헤라트 주지사측은 도시를 완전 장악했으며 모든 것이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했다.현지 경찰서장도 AP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칸 헤라트 주지사에 충성하는 군대가 사디크 장관의 암살 배후라고 주장한 자다 군 사령관측을 공격,군기지를 점령했으며 병사 2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자다 사령관은 도피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사디크 항공장관은 승용차에서 암살범의 로켓추진수류탄(RPG) 공격을 받고 숨졌다고 대통령궁 대변인이 밝혔다.이번 암살은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에서 세번째,항공장관으로서는 두번째 희생이다.˝
  • 아프가니스탄 항공장관 암살

    |카불 AFP 연합|아프가니스탄의 미르와이스 칸 항공장관이 21일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 암살당했다.칸 장관은 서부 헤라트주(州)의 주도인 헤라트에서 승용차에 탑승한 상태에서 암살범의 총탄에 숨졌다고 대통령궁 대변인인 칼리크 아메드가 전했다.칸 장관은 아스마일 칸 헤라트 주지사의 아들이다.
  • [토요영화]

    ●체인리액션(MBC 오후 11시10분) 키아누 리브스,모건 프리먼 주연.시카고의 대학실험실에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획기적인 실험에 성공한다.고갈될 염려가 없고 공해가 없는 무색무취의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것.실험이 성공하던 날,대학생 에디와 릴리는 암살 협박을 받는다. 연구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직전,실험실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연구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살해되거나 실종된다.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에디와 릴리.FBI 요원들의 추격을 받으며 거대한 음모의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초콜릿(KBS2 오후 11시10분) ‘길버트 그레이프’‘개 같은 내 인생’의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작품.보수적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등장한 초콜릿 가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줄리엣 비노시와 조니 뎁,주디 덴치 등 유명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비안은 어린 딸과 프랑스의 한 마을에 들어와 초콜릿 가게를 연다.그녀는 활기찬 성품과 초콜릿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려 하지만 쉽지 않고,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마을에서 몰아내려 한다.그러던 중 비안은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남자 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마을 사람들에겐 그들의 사랑도 눈엣가시다. ●맘마 로마(EBS 오후 11시10분) 이탈리아의 거장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1962년 만든 두 번째 작품.베니스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파졸리니는 폭력에 대한 과격한 묘사,파시즘과 반파시즘의 기묘한 줄타기로 항상 논쟁거리를 제공해왔다.동성애자였던 그는 마지막 영화 ‘살롬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후 17세의 동성애자 청년에 의해 살해 당했다고 전해진다. 매춘부 맘마 로마는 16세 된 아들 에토레를 위해 야채가게를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하지만 포주 카르미네는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며 놓아주지 않는다.할 수 없이 맘마 로마는 낮에는 과일을 팔고 밤에는 거리에서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한다.그러나 애지중지하던 아들마저 바람과 달리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라디오를 훔치던 아들은 결국 총을 맞아 사망하고 그녀는 큰 충격에 빠진다.하층민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신분의 벽이 높은 이탈리아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 ˝
  • [이라크戰 1년] (上)끝나지 않은 전쟁-내전·테러 위협 증폭

    오는 20일로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과 함께 시작했던 이라크 전쟁이 발발 1주년이 된다.지난해 5월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종전 선언으로부터도 11개월째이지만 지금 이라크에선 ‘끝나지 않은 전쟁’이란 인식이 어색하지 않다. ●미군 사망자 560여명으로 늘어 종전 선언 이후에 치안상황이 오히려 악화되면서 미군과 외국군대 및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가 계속돼 개전 이후 현재까지 미군 560여명,이라크 민간인이 1만명 안팎이나 숨졌다.보도진의 정상적 취재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다. 특히 한국군 파병 예정지인 북부 키르쿠크 주변에서도 아랍·쿠르드·투르크멘 등 종족 및 종파간 내전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이라크 외에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등 이라크 파병국에 대한 유혈테러 공포도 잦아들기는커녕 증폭되는 분위기다. ●“치안불안 확산,증오 심화 중” 수도 바그다드는 물론 남부와 북부,도시·농촌을 가리지 않고 이라크 전역에선 치안불안이 확산 중이다.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아랍인과 쿠르드족 등 종파와 민족·부족간 증오는 시간이 흐르며 깊어지고 있다.거대한 콘크리트 장벽들이 오늘 바그다드시내의 치안불안을 대변해준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미군에 대한 공격이 테러의 주종을 이루었으나 최근 들어선 종족간,종파간 테러가 끊이지 않아 내전 우려마저 고조되고 있다.인도적 성격의 구호활동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는 서방인들조차 경고성 테러공격의 표적으로 희생되고 있다. 15일에만 해도 이런 무차별 유혈 사태가 각 지역에서 발생했다.한국의 자이툰부대가 파병될 키르쿠크에서는 이날 키르쿠크를 북부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통합하려는 쿠르드족의 계획에 반대하는 강경파 아랍계 시의원 1명이 살해되고,그의 경호원 1명도 사망했다.소수계 ‘투르크멘 프런트’ 지도자인 파로크 아불라 아드델 라만도 암살기도를 겨우 모면했다. 여성 2명이 포함된 4명의 미국시민도 이날 저녁 북부 모술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다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사망했고,2명은 부상당했다.미국 병사 2명도 바그다드 서쪽 라마디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부상했다. 미군이 종전을 선언했지만,이라크 전역에서는 저항과 증오의 총성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인 과반,미군 점령 반대 이에 따라 이라크인 절반 이상은 미군 주도의 ‘점령군’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라크전 1주년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다.일본 NHK와 미국 ABC,영국 BBC,독일 ARD 등 4개국 방송들이 지난달 옥스퍼드리서치 인터내셔널에 의뢰,실시한 이라크인 2652명에 대한 면접조사결과 응답자의 51%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점령군에 반대했고 39%만이 점령군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이 정당했다고 답한 사람은 48%였으며,잘못됐다는 응답은 39%였다.특히 아랍계 이라크인 응답자는 40%만이 이라크전이 정당했다고 답했으나,쿠르드족들은 87%가 전쟁이 옳았다고 답해 큰 대조를 보였다. 이라크인의 56%는 전쟁 이전에 비해 지금 생활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북부는 70%,시아파 거주지역인 남부에서는 54%가 살기 좋아졌다고 말해 지역간 편차가 심했다.현재 이라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치안불안(22%),실업난(12%),물가상승(10%) 등이 꼽혔고 따라서 치안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각됐다. 이춘규기자 taein@˝
  • [시론] 노무현과 正祖/이덕일 역사평론가·명예논설위원

    나는 ‘월간중앙’ 2003년 1월호에 ‘당선자에게 주는 역사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그글에서 “노당선자가 처한 현실은 (조선조 임금) 정조와 비슷합니다.”라며 정조시대를 참고할 것을 권유했다. 비단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정조가 성공한 국왕이었던 것처럼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정조 즉위 초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은 사도세자를 죽인 정당으로서 정조를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노무현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한나라당이 국회다수당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실제로 노론은 정조가 이가환 정약용 등의 남인들을 등용하려 하면 극력 저지하는 등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고 즉위 초에는 암살까지 기도했다.거대야당 역시 대통령 노무현의 거의 모든 정치행위에 대해서 발목을 잡았다. 이처럼 처한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나 정조와 노무현의 대응방식은 판이했다.정조는 노론이 장악한 정치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그들을 정치 파트너로 삼았다. 그러면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국정을 개혁해 나갔다.그것은 초인적인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정조는 ‘두통이 심할 때 등쪽에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 때문’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부친을 죽인 적당(賊黨) 노론과 마주 앉아 정치를 하는 데서 생긴 화병이었다. 그러나 200여년 후의 대통령 노무현은 달랐다.1년2개월 전에 쓴 그 글에서 나는 “국회의 권한이 강한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의회 소수당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김대중 대통령이 의원 빼가기를 시도한 것도 그것이 비난받을 행위인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국회의 동의 없이는 개혁을 완결지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라고 국회현실을 직시하라고 권유했다. 노대통령이 이런 정치 지형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국회와 대립할 경우 우리 사회가 겪게 될 고통과 혼란,그리고 개혁의 실종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정치현실을 부인했고,나아가 소수 여당이던 민주당까지 나누어지면서 야당은 대통령 탄핵 의결정족수를 넘겨버렸다.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갖고 있는 양자는 양보없이 충돌했고,그 결과는 모든 국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탄핵정국이었다. 보다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점이다.회복되어 가는 세계경제에 맞춰 국내경제 회복에 전념해도 시간이 부족한 이 시점에 우리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결말이 어떻든 극심한 분열을 야기하게 되었다.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는 날 만세를 부르는 세력과 통곡하는 세력이 함께 뒤섞일 것이니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정조가 성공한 국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미래지향적 개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신의 정당성을 노론의 전횡에서 찾지 않고,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국정 수행에서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 싫지만 수구세력 횡포 더 싫다’(서울신문 3월15일자 10면)’는 기사 제목처럼 현 상황에서 헌재 기각판결이 내려지면 우리 사회는 과연 4년 후 성공한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노대통령과 함께 우리가 오늘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주제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명예논설위원˝
  • “무샤라프 암살음모 알카에다 연루”

    |페샤와르(파키스탄) 연합|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15일 지난해 12월 발생한 자신에 대한 두 차례의 암살 음모에 리비아 출신의 알카에다 무장요원 한 명이 연루돼 있다고 말했다.무샤라프 대통령은 북서부의 페샤와르 지방을 방문,부족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에 대한 자살공격을 시도한 사람은 리비아 출신의 알카에다 요원”이라고 말했다.그는 “이 리비아인이 150만∼200만루피(2만 6100∼3만 4700달러)를 한 파키스탄인에게 제공해 이슬람 무장단체 요원들을 고용토록 했다.”고 덧붙였다.˝
  • [이런책 어때요] 세계를 뒤흔든 1968/크리스 하먼 지음

    베트남 전쟁,프라하의 봄,파리의 5월,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무하마드 알리의 징병 거부….1968년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해였다.이 책은 1968년 유럽과 북미 대륙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변혁의 배경과 과정을 분석한다.영국의 진보적 사회운동가인 저자는 ‘저항과 희망,상상,가능성의 해’로 불리는 1968년 당시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런던경제대학에서 학생 운동가로 활약했던 인물.저자는 학생,흑인,여성,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운동 및 저항을 중심으로 1968년의 과거·현재·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핀다.1만 6000원.˝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한반도 분단’ 피할 수 없었나

    민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한반도 분단과 좌·우 대립.그 기원은 무엇이며,왜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분단의 기원’은 14일 밤 11시30분 미국과 소련의 기밀문서와 증언을 통해 해방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15일 한반도는 해방되지만,허리에 38선이 그어지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된다.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잠정적 군사분할선이었던 38선을 사이에 두고 미·소,좌·우익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제작진은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소련의 참전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하여 펼쳤던 ‘화평공작’의 전모,해방 당시 소련군이 서울까지 들어와 일부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사실 등을 방송 최초로 공개한다.김일성과 함께 소련군 88여단 소속이었던 바실리 이바노프의 증언을 통해 스탈린이 1946년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직접 지명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공개한다. 또 미 군정의 실상과 실책을 비판한 ‘미국의 배반’의 저자 리처드 로빈슨과도 독점 인터뷰했다.로빈슨은 미 군정이 친일파와 우익에 의존하는 바람에 점령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편다.그는 “당시 미국의 최고 목표는 한국의 민주적 통일정부 수립이 아닌,소련의 세력과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었다고 말한다.이 때문에 미국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계획을 세우고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1947년 9월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키로 결정한 가운데 통일된 한반도를 주장하던 민족주의자들은 하나둘 암살되고,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분단 상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제작진은 설명한다. 이영표기자 tomcat@˝
  • 송두율 15년刑 구형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헌)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부장 이대경)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논고를 통해 “피고인은 73년 노동당 입당 이후 30년간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남 공작활동을 벌여왔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기소된 최고위급 인사인 데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국보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반통일적 장애물”이라면서 “학문적 양심에 따른 학술활동을 시대착오적 법률로 재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검찰은 “피고인은 91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뒤 ‘경계인’이란 가면을 쓰고 주체사상을 남한사회에 전파하는 대남공작활동을 펼쳐왔다.”면서 저서·기고문 작성과 남북학술대회를 사례로 들었다.이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들어 검찰은 “피고인은 남파공작원으로 남한 주요인사를 암살하진 않았지만,선전·선동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해악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 변호인단은 이날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비서도 ‘외국인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될 순 없다.’고 진술한 데다 국정원 자료에서도 북한은 ‘김철수’란 이름을 외부인사를 부를 때 흔히 사용했다.”며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증거 또한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송두율교수 최후진술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재판에 많은 노고를 기울여주신 재판부에 우선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드려 여러 재판 과정을 거쳐 지금에까지 이른 저의 심정은 여러 가지로 착잡합니다. 한편으로는 악몽 같기만 했던 지난 일이 일단 끝난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시대를 뒤로하고 이제 바야흐로 통일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기뻐하며 가슴 가득 희망에 부푼 많은 분들에게 이번 재판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던질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 보안법의 실체 외국 땅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저로서는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하면 겨우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과 같은 단어정도를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넉 달 넘게 ‘국정원’ 조사로부터 시작해서 검찰의 심문조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이어져온 수 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을 통하여, 저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국가보안법’을 저에게 적용하려는 검찰의 시도가 얼마나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저의 변호인단 측에서 법적으로 충분히 지적했기 때문에 그것을 재차 여기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짧은 언급이나마 절실한 듯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우선 두 문제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베를린 시의 중심에 있는 쇠네베르거 우퍼(Schoeneberger Ufer) 거리에는 재독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부터 자동차로 겨우 10분 정도 떨어진 글린카 거리(Glinkastrasse)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외국인이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대사관을 방문하여, 입국사증의 신청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은 제가 이 대사관을 방문한 것이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들어가 ‘반국가단체’의 성원과 ‘회합-통신’한 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지금 평양에 상주하는 독일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의 위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울에 있는 괴테 문화원(Goethe-Institut) 원장은 평양에 있는 괴테 문화원의 ‘독서실’을 함께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평양을 방문해야 합니다. 검찰의 논리를 따른다면 이러한 행위 역시 당연히 ‘잠입-탈출’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제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한국이 드디어는 ‘국가보안법’을 독일에까지 수출하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뿐만 아니라 16년 전에 제가 독일말로 쓴 책의 내용을 문제삼아 역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양 검찰이 논리를 세우는 것을 보고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매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 도서박람회(Buchmesse)’가 열립니다. 이 행사기간 1871년 독일제국헌법을 제정 통과시킨 제국의회가 열렸던 파울교회(Paulskirche)에서는 인류문화의 지적보고인 책을 통해서 평화에 기여한 인사에게 유명한 평화상(Friedenspreis)도 수여됩니다. 내년 2005년에는 한국이 이 박람회 측에서 특별 선정한 ‘손님나라’(Gastland)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고금상정례문’이나 ‘직지심경’등을 인쇄해서 인류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문화 국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임에도 아직도 사상 관련 저술에 중세 때나 가능한 마녀 사냥 식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반문화적인 현실을 이 세계는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오늘의 세계는 문화를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공안 검찰은 이러한 반문화적인 작태를 태연히 자행함으로써 한국의 국위를 너무나도 심각하게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검찰은 ‘실정법’이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상유일의 ‘분단국가’가 통일된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반통일적 장애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세계화의 기치아래 ‘세계 시민사회(Weltbuergergesellschaft)’를 지향하는 오늘의 국제적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대학이 있는 뮌스터 시에는 ‘30년전쟁(1618~48)’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Westfaelischer Friedensvertrag)’이 체결된 회의실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세 국제법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와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이 평화조약의 정신은 칸트의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을 거쳐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에 망명, 법을 통한 평화를 설파해서 초국가적인 평화기구인 UN의 설립정신에 기여한 한스 켈젠(Hans Kelsen)의 법철학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민족국가를 기초로 해서 국성 이러한 평화개념은 이제 민족 국가의 국경개념을 희미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국가대신에 ‘시민사회’에 근거한 보다 보편적이고 사해동포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탈현대적(postmodern)인 법 이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이미 밝히고 있는 원칙, 즉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도 인정치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에 말한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이 전제하고 잇는 국민 , 국토, 그리고 주권이라는 기본요건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17세기 중반의 법 이해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법 아닌 법입니다. 나의 ‘통일철학’ 그러나 저는 이 기회에 -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심정으로 - 이러한 ‘국가보안법’이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저의 통일 철학의 핵심을 간략히 밝히고자 합니다. 통일 문제를 말할 때, 언제나 저는 제일 먼저 ‘상생(相生)’의 원칙을 강조해 왔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이해되고 있는 ‘상생’은 ‘연기(緣起)’라는 개념을 전제합니다.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이 가르침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민족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는 ‘남이냐, 북이냐’라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이 공유하는 관계를 중시하는 논리로서, 저는 큰 대나무와 저 작은 대나무가 실은 땅속에서 뿌리를 통하여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비유를 들어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1989년 봄, 비엔나에 있는 유명한 ‘문학의 집(Literaturhaus)’에서 행한 ‘탈현대의 고고학(Zur Archaelogie der Postmoderne)’이라는 강연에서 저는 대나무와 도토리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대의 인식론적인 문제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미 대나무(母竹)로부터 뿌리가 옆으로 퍼지면서 일정한 거리에 죽순이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번식하면서 무성한 대나무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는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떡잎이 나오고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어미 도토리나무의 무성한 잎의 그늘 때문에 이 어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대나무는 ‘관계철학’, 도토리나무는’주관철학’을 각각 상징합니다. 또 ‘관계철학’은 ‘상생’을, ‘주관철학’은 나만이 옳다는 ‘아만(我慢)’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생’의 원칙에 입각할 때, 비로소 남과 북은 서로를 ‘자기 속의 타자(他者)’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게 됩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이미 통일이 이룩된 상태일 것이고, 남과 북이 완전히 다르다면 통일이야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남북은 긴장 속에서도 계속 줄기찬 여유를 지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태도는 통일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전개되는 ‘과정’으로서 바라보는 훈련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반세기 이상 서로 이질적으로 형성되어온 남북의 체험공간은 서로의 기대 지평을 달리 만들어 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라는 ‘과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관점을 바꾸어 보는 ‘합리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해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러한 원칙을 우리의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체제의 수립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 정도만이라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상생’, ‘자기 속의 타자’, ‘과정’, ‘합리적인 대화’ 그리고 ‘평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 스스로의 ‘통일철학’의 실현을 위해 ‘배제하고 동시에 통합하는 제3의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 ‘경계인’의 삶을 “기회주의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제 뇌리 속에는 초기 불교의 성전 ‘쌍윳따 니까야’의 함축적인 비유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즉, 흰 소와 검은 소가 서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대개는 검은 소가 흰 소에, 또는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이 두 소를 서로 묶고 있는 것은 단지 ‘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유는 남이 북에게, 또는 북이 남에게 묶여 있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 남북의 ‘사이’를 생각해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제3의 공간’이 전 한반도로 확장된다면, 위에서 지적했습니다만, 전쟁이 없다는 뜻에서의 소극적인 평화 정도는 가능하다는 발상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경계인’의 의미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제 조국 땅을 밟으면서, 저는 ‘조직 사회학’에서 종종 거론되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먹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곧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걸려있는 바나나를 보고 나무에 오르려고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 원숭이가 다 나서서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이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우화는 지식의 역할이 사회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즉 ‘지식은 조직을 멍청하게 만든다(Intelligenzmacht Organisation dumm)’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지식은 기존의 선입견을 파괴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이른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Andersdenkender)’을 요구합니다.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시켜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그 시끄러운 굿판(Affentheater)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를 건강하고 새롭게 만드는 지식체계의 구성은 사실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특히 사회의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이를 예방하는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복잡해질수록 더욱 어려운 과제로서 등장합니다. 또한 ‘위험사회’니 ‘보험사회’니 하는 말처럼, 위험이 항시적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둔화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태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점차적으로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이 개구리는 끊는 물 속에서 그만 죽습니다. 그러나 만약 끊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이 개구리는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합니다. 이 비유는 분단 시대를 오래 살아온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진전에 따라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입국을 전후해서 생긴 소용돌이는 분명히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민족분단을 확대 재생산해온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서 제 문제가 충격적이라면, 저는 차라리 이 충격이 지속적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든 사건도 곧 잊혀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번의 가능한 충격을 곧 있을 재판의 결과에서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번의 충격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적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일종의 ‘정신 생태학(Oekologie des Geistes)’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러한 ‘정신생태학’은 자연환경을 문제시하는 ‘생태학’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문제를 계기로 해서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나라로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최후진술을 마치면서 저는 부모가 난 땅을 난생처음 밟았다가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뀐 엄청난 충격을 경험했던 저의 자식들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거는 기대도 같은 맥락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가 깨어있고 또 건강해서 바로 그 때문에 사랑할만하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판결을 저의 가족들이 기다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족과 세계를 함께 생각하면서 걸어온 지난 40년 가까운 학자생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아 또 한번 비상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그러한 재판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온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재판부의 미래지향적인 판결에 희망을 걸면서 저의 최후진술을 경청해주신 재판부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3월 9일 송두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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