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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다시, 김구 선생과 만날 시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1876~19 49) 선생이 서거한 장소인 경교장(京橋莊)이 복원돼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는 28일 3·1절을 앞두고 3년여에 걸친 경교장(사적 465호)의 원형 복원을 마치고 2일부터 무료 개방한다고 밝혔다.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 경교장은 1945년 11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4년여간 거주하며 국무위원회를 주관하고 통일운동을 하다가 1949년 6월 2층 집무실 복도 책상에서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장소다. 경교장은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이 지은 일본식 건물로 광복 후 김구 선생에게 거처로 제공됐다. 원래 죽첨장(竹添莊)이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 김구 선생이 근처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꿨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뒤 미군 주둔지와 주한 타이완 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됐다. 서울시는 삼성병원과 협의, 소유는 그대로 두고 복원하는 데 합의해 2010년 6월 30일 병원시설을 이전한 뒤 복원을 시작했다. 복원에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가 참여해 1938년 ‘조선과 건축’ 잡지에 수록된 경교장 도면과 미국 라이프(LIFE)지 사진을 근거로 당시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경교장은 총 면적 945㎡ 건물 1동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다. 지상 1층에는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과 대외 홍보관계를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귀빈식당으로 구성됐다. 2층에는 김구 선생 집무실과 침실, 임정요인 숙소, 욕실, 서재 등을 볼 수 있다. 집무실 복도에는 창문에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지하는 원래 보일러실과 부엌으로 썼으나 임시정부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전시실에는 ‘임시정부 국내 환국’을 보도한 서울신문 호외(1945년 11월 23일자)와 속옷에 빼곡히 쓴 밀서, 김구 선생 유품, 백범일지 초간본 등이 전시된다. 개방은 매주 화∼일요일(월요일 휴관) 오전 9시∼오후 6시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여학생들 적극 가담·임시정부 자발적 성금 인상적”

    “여학생들 적극 가담·임시정부 자발적 성금 인상적”

    영국 정보국(SIS)이 한국의 3·1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해 젊은 여학생들의 적극적인 가담과 자발적인 자금 마련 등이 인상적이었고,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까지 이어진 독립운동의 도화선이었다고 평가한 문서가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영국 정보국 극동지부가 1923년 7월 27일 본국 외무성에 보낸 ‘한국 독립운동 초기 전개과정’ 보고서 등 영국 국가기록원과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이 수집한 3·1운동 관련 일제강점기 기록물 3건을 28일 공개했다. 이들 기록물은 최근 비밀이 해제됐다. 1912년 창설된 영국 정보국은 당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소련 KGB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한국 독립운동 초기 전개과정’ 보고서에는 “독립선언 발표 후 모든 주요 도시와 읍내의 독립투사들이 시위를 조직했고, 수많은 젊은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해 열렬한 반일운동을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1919년 10월 23일 작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보고서에는 “상하이 임시정부가 본국과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받았는데 한국인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고 적었다. ‘회원은 2000여명으로 구성됐고, 일본인 관리를 암살하려는 목적’ 등의 내용도 기록하고 있어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의열단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국가기록관리청 기록물은 1945년 일제에 의해 태평양 중부 타라와 섬으로 끌려간 한국인 노동자의 비참한 모습을 담은 사진 등 8점이다. 타라와 섬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로 군사시설을 세우기 위해 일본이 한국인 800여명을 징용해간 곳이다. 70여명만이 살아서 돌아온 생지옥이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 주일 美대사 후임 유력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 주일 美대사 후임 유력

    존 루스 일본 주재 미국 대사의 후임으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55)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 1963년 암살된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녀 케네디가 주일 미 대사로 지명될 것이라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케네디의 주일 대사 기용을 승인하고, 정식 지명을 위한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케네디는 지난 2008년 미 대통령 선거 때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재선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 공동의장을 맡아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법조인으로 활동한 케네디는 한때 부통령 후보로 언급됐으며, 2008년 연방 상원의원 출마 의향을 밝혔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CNN “북한·부친 2개의 그림자 속 취임”… 中 관영매체들 취임식 생중계 관심집중

    해외 주요 언론들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소식을 실시간으로 타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첫 여성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북핵 문제와 세계 경제 위기 등 국내외의 산적한 문제가 새 정권 초기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AP통신은 “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한반도에 흘렀던 적대감을 완화하는 대화 정책을 추구할지, 아니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강경 노선을 유지할지 평양과 워싱턴, 베이징, 도쿄가 지켜보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의 결단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접근 방식의 큰 잣대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NN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망령과 부친 박정희의 유산이라는 ‘2개의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취임한다”고 소개한 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신뢰하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인물로서 신뢰 외교의 기조 아래 ‘당근과 채찍’을 섞은 대북정책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BBC는 “아시아 외환 위기를 극복했던 한국이 지금은 성장에 필요한 연료가 바닥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하면서 미국의 경기 침체, 유로존 위기, 일본의 엔저라는 3대 악재가 새 정부의 난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블룸버그통신은 “34년 전 암살당한 아버지의 피 묻은 셔츠를 씻으며 청와대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던 박근혜가 오늘은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로 돌아왔다”고 다소 감상적으로 보도했다. 중국의 주요 관영 매체들도 박 대통령의 취임식을 생중계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중국중앙(CC)TV는 박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북한 스스로가 핵실험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북에 핵 포기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 청사진에 북핵 위협 해소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지는 못했다는 일부 한국 언론의 지적이 있지만 정권이 막 첫발을 떼는 단계여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일본의 요미우리, 아사히신문 등은 박 대통령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영유권 같은 역사 및 영토 문제에 대해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이 대일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산케이신문은 오는 3월 일본 교과서 검정에 이어 외교청서, 방위백서 발표, 헌법 개정 등이 예고돼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uol.co.kr
  • 파라과이 野 대선후보 헬기 추락사

    파라과이 野 대선후보 헬기 추락사

    오는 4월 파라과이 대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인 리노 오비에도(69) 전국시민연합(UNACE) 대표가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 정치적 암살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라과이 정계에 혼란이 예상된다. 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파라과이 공항 당국의 조니 비얄바 대변인은 오비에도 대표가 전날 수도 아순시온에서 북쪽으로 500㎞ 떨어진 콘셉시온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 참석했다가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고 밝혔다. 비얄바 대변인은 이번 사고로 오비에도 대표를 포함해 조종사, 경호원 등 세 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파라과이 정부는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파라과이 공항 당국은 사고의 원인을 기상 악화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오비에도 지지자들과 UNACE 측은 암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UNACE 대변인은 “오비에도 대표가 24년 전 이맘때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정권을 붕괴시켰다”면서 “이번 사건은 범죄조직의 소행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육군 사령관을 지낸 퇴역 장성인 오비에도는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겪었다. 1989년 파라과이를 35년간 군부 독재한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유명해진 오비에도는 1996년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 정권을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1999년 파라과이를 떠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망명을 시도한 오비에도는 2004년 파라과이에 귀국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됐다. 파라과이 대법원이 이후 그의 여러 가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석방돼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오비에도는 파라과이 토착 인디언 언어인 과라니어에 능숙한 것을 바탕으로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어 2008년 대선에 도전해 3위를 차지했고 오는 4월 21일 치러질 대선에서도 제3야당인 UNACE 후보로 출마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8개월만에 또… 이집트 3곳 비상사태

    이집트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따른 유혈사태 확산을 막기위해 3개 도시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에도 28일(현지시간)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무르시 대통령은 전날 국영TV 연설을 통해 포트사이드, 수에즈, 이스마일리아 등 3곳에 3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이집트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31년 동안 비상사태가 내려졌다가 지난해 5월에야 해제됐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인근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시민 혁명 발발 2주년인 25일 하루 전날부터 이집트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시작한 이래 수도 카이로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닷새째 이어진 유혈사태의 사망자는 최소 56명으로 늘었다. 앞서 포트사이드에서는 지난해 74명의 사망자를 낳은 축구장 폭력사태에 대한 재판 결과에 분노한 시위대들이 지난 26일부터 이틀째 경찰과 충돌하면서 사망자가 44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충돌로 숨진 37명의 합동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조문객이 경찰과 충돌해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초 사형 판결에 대한 반발 성격으로 시작된 시위는 현 정권의 권력 횡포를 비난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무르시 대통령은 국영TV 연설에서 내무장관에게 이번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되 국가 기관을 공격하는 등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어 야권 지도자들에게 28일 대통령궁에서 국가적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야당연합체인 구국전선 측은 무르시 대통령이 이번 폭력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혁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집트 정부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무르시 대통령에게 질서 유지를 위해 군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유족 “통합의 단초 되길… 타살 밝혀질 땐 끝까지 단죄”

    유족 “통합의 단초 되길… 타살 밝혀질 땐 끝까지 단죄”

    “장준하 선생에게 유죄를 선고한 뼈아픈 과거사를 바탕으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드립니다.”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 재판장의 무죄 선고에 방청석에는 승리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이를 보는 장 선생의 아들 호권(64)씨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유죄 판결이 난 지 39년,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된 지 38년 만의 무죄 판결이었다. 이날 형사합의26부는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974년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은 장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인 유상재 부장판사는 “재심 대상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위헌·무효임이 확인됐기 때문에 장 선생에게도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장 선생에 대한 존경과 유족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했다. 유 부장판사는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매우 엄숙한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면서 “국민주권과 헌법정신이 유린당한 인권의 암흑기에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말했다. 장 선생은 1974년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했다가 억울한 옥고를 치렀다. 아들 장씨는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세상이 너무나도 많이 변했고 정의가 살아났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통합을 외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그런 시대로 가는 중요한 단초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불신에 쌓여 있던 사법부가 역사를 직시하고 인물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죄 판결을 계기로 장씨는 부친의 의문사 규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장 선생은 복역 중 협심증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이듬해인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암살’ 논란이 일었으며, 암살 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의문사 의혹 규명에 나선 상태다. 국민대책위는 사인 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 경기 파주 탄현면에 안장돼 있던 유골을 수습해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 장씨는 부친 사망 이후 외국으로 도피해 오랫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싱가포르 18년, 말레이시아 3년 등 27년간 해외생활을 하다 2003년 귀국했다. “1976년 4월 19일, 그러니까 4·19 16주년인 날이었어요. 백기완 선생이 운영하는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 달라는 성명서를 만들고 나서 괴한 4명에게 테러를 당했지요. 턱뼈가 8조각으로 부서졌더군요. 그때 제 나이 27세. 3개월 동안 병원에 있다 퇴원했는데 도저히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 싶더군요.” 장씨는 “아버지가 타살을 당한 것으로 밝혀지면 누가 왜 그랬는지 과정을 따져 묻고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국가의 힘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폭력을 자행했던 사람들에 대한 단죄는 시간이 흘렀어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인도 총리 셋 배출한 정치 명가 4대손 라훌, 네 번째 총리 될까

    인도 총리 셋 배출한 정치 명가 4대손 라훌, 네 번째 총리 될까

    인도의 정치 명문 ‘네루-간디’ 가문의 4대 자손인 라훌 간디(42)가 집권당인 국민회의당(INC)의 2인자 자리에 오르면서 차기 총리직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훌은 2014년 예정된 총선에서 총리 후보로 나설 전망이다. 자나르단 뒤베디 INC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라훌이 전날 부총재직에 임명돼 어머니이자 총재인 소냐 간디에 이어 당을 이끌게 됐다고 밝혔다. 라훌은 1947년 인도 독립 후 초대 총리를 지낸 증조 할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와 할머니 인디라 간디 전 총리, 아버지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네루-간디 가문의 4번째 총리감으로 거론돼왔다. 인디라의 성이 네루에서 간디로 바뀐 것은 남편 페로즈 간디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페로즈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와 성만 같을 뿐 혈연관계는 없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총리 재임 중 암살당한 경험 때문에 어릴 때부터 테러위협을 피해 미국에서 숨어지낸 라훌은 대학 졸업 후 런던과 뭄바이 등에서 회사를 경영하다 2004년 어머니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국회의원으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다.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소냐 간디는 정치인 대신 관료 출신인 만모한 싱 현 총리를 발탁, 아들 라훌이 총리직을 맡을 때까지 섭정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훌은 2009년 총선에서 당의 승리를 이끌어내며 정치적 자질을 인정받았으나 내각 경험이 전혀 없어 야당 등에서는 총리감으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DB를 열다] 1968년 1·21 사태로 파괴당한 버스 운전자

    [DB를 열다] 1968년 1·21 사태로 파괴당한 버스 운전자

    21일은 1968년 1월 21일, 이른바 1·21 사태가 발생한 지 45년 되는 날이다. 북한의 특수부대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부대 소속 31명은 1월 16일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한국군 복장에 수류탄과 기관단총으로 무장, 황해도 연산을 출발했다. 1월 17일 군사분계선을 넘은 이들은 경기도 연천군 모래동을 거쳐 남하했다. 이들은 경기도 파주 법원리 야산에서 나무꾼 우씨 형제와 마주쳐 너덧 시간 데리고 있다가 신고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나서 풀어주었다. 공비들은 노고산을 거쳐 1월 21일 새벽 북한산 사모바위 아래 동굴에서 머물다 밤 9시쯤 자하문고개의 창의문을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에 정체가 발각됐고 이들은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최규식 종로경찰서장도 현장에서 순직했다. 사진은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당한 원효여객 버스의 운전사 이성건씨가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이다. 공비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비봉과 인왕산, 의정부 쪽으로 도주했다. 10여 일간의 소탕작전 결과 28명은 사살되었고 김신조는 생포됐으며 나머지 2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우리 측도 전사 43명, 부상 62명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봤다. 이 사건으로 예비군이 창설되었고 우리도 특수부대인 684부대(실미도 부대)를 비밀리에 조직해 북한에 대한 보복성 공격을 계획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오바마 “부채한도 안 늘리면 국가부도 사태 올 것”

    4년 전 금융 위기로 도탄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겠다며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1기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의 주제는 ‘거덜 난 나라 살림’이었다. 그만큼 지금 미국의 형편이 암울함을 시사한다. 당초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2시간 전에 갑자기 잡힌 것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생략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치권이 연방 정부의 채무 상한선 상향 조정 합의에 실패하면 미국은 국가 부도(디폴트) 사태에 빠지고 주식시장과 세계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며 “시간이 없는 만큼 의회가 빨리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는 21일 2기 임기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그는 공화당이 채무 한도 증액을 거부하는 데 대해 “경제에 대한 자해 행위이고 경제를 볼모로 몸값을 타내려는 것이며 정부의 문을 닫도록 위협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미 연방정부의 채무 상한은 16조 4000억 달러인데 지난달 말 이미 한도를 넘겨 재무부가 특별조치를 통해 2000억 달러를 임시방편으로 조달했다. 이 한도마저 넘기면 이르면 다음 달 중순 동날 것으로 전망돼 그 전에 정치권이 채무 한도 인상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공’에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우리는 채무 한도를 올리는 대신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응수, 격전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15일 미 의회가 부채 상한을 올리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마련하고 있는 총기 규제 대책이 합리적 방안이라고 평가하면서 의회(공화당)가 반대하면 행정 명령을 발동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규제안에는 총기 구매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고성능 탄창 통제, 공격용 무기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곧 총기 폭력과 관련한 종합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 강경파와 전미총기협회(NRA) 등 총기 옹호론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스티브 스톡맨 하원 의원은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발동해 총기 규제안을 처리할 경우 위헌에 해당하는 만큼 대통령 탄핵도 불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총기 옹호론자들은 오는 19일을 ‘총기 감사(感謝)의 날’로 지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이에 총기 규제 찬성론자들은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날(1월 21일)을 앞두고 그런 행사를 여는 것은 미국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발하는 등 총기 규제 여부를 놓고 미국 여론이 극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쿠르드 여성활동가 3명 ‘처형’ 방식으로 피살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쿠르드 여성 3명의 암살 사건으로 터키와 쿠르드 반군 간 평화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됐다. 10일 새벽 2시(현지시간) 파리 북역 인근 쿠르드연구소에서 쿠르드 분리주의 활동가인 여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내무장관은 희생자 모두 머리에 총격을 받은 것으로 보아 ‘처형’ 방식으로 살해됐다고 밝혔다. 희생자 가운데는 쿠르드연구소에서 근무해 온 20대 여성 2명 외에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창립 멤버인 사키네 칸시즈도 포함돼 있어 파문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 남동부에서 전개한 무장 독립운동으로 4만 5000명의 희생자를 낳았으며, 터키 등 국제사회에서 테러단체로 분류돼 있다. 50대로 알려진 칸시즈는 반군 전사였다가 유럽에서 PKK의 민사 업무를 맡아 온 인물이다. 1995년에 찍힌 사진에서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옆에 서 있을 정도로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 내 핵심 인사다. 오잘란은 1999년부터 터키 이스탄불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쿠르드족들은 터키 정부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반면, 터키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이 반군 간의 내분으로 인한 결과이거나 터키 정부와 PKK 간 평화협상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타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도 범죄 현장인 건물 안에 진입하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쿠르드 반군 간 갈등으로 인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사건이 터키 정부가 오잘란과 평화협상 로드맵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다음 날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에 반발한 PKK 내 강경파의 소행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휴전 조건과 요구사항 등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고조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렘지 카르탈 쿠르드국민회의(KNC) 지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정치적 범죄다. 오잘란과 터키 정부가 착수한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비난했다. 과거에 쿠르드 활동가들을 살해한 터키 국수주의 세력의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 이날 파리·스트라스부르 등에서는 수백명의 쿠르드인들이 “더러운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성토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편견을 부수는 이름 D [detroit]

    편견을 부수는 이름 D [detroit]

    편견을 부수는 이름 D[detroit]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소위 미국 자동차의 빅3라 불리는 자동차 메이커가 한데 모인 곳. 덕분에 굳어진 공업도시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디트로이트는 미국만의 문화, 음악, 스포츠, 음식까지 결합된 ‘스위트 아메리카’ 그 자체였다. ●City Scope 흐르는 낭만을 느끼다 처음에는 워낙 자동차가 유명하다 보니 디트로이트의 어디를 가도 공장 굴뚝의 연기가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기분 좋게 망가졌다. 세련된 도시의 멋, 야구의 열기, 공연의 절정, 인기 뮤지션의 추억, 쇼핑의 흥분까지 담고 있어 심드렁했던 기분이 한껏 들떴으니. 분야별로 디트로이트의 자랑거리를 살펴봤다. baseball 펄떡이는 미국 야구의 진수 코메리카 파크 디트로이트에도 호랑이가 산다. 이 호랑이에게 지난 가을 전세계가 열광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명문구단 뉴욕 양키스를 맞아 4승 전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올 시즌 28년 만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강호들을 상대로 포효하던 위엄은 여전하다. 코메리카 파크Comerica Park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홈구장이다. 한 발을 들고 덮칠 듯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상이 인상적인 코메리카 파크는 야구 외에도 미식축구, 콘서트 등의 여러 이벤트가 열리며, 경기가 있을 때면 주변 술집은 열성적인 야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좋아한다면, 아니 야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꼭 한 번 들러 보길 추천한다. 주소 2100 Woodward Avenue, Detroit, Michigan 4820 문의 313-471-2283 theater 10달러로 즐기는 공연 폭스 씨어터 폭스 씨어터Fox Theatre는 디트로이트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다. 내부로 들어가면 찬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화려한 부조, 금빛색채의 인테리어와 넓은 실내는 밖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 1928년 폭스 씨어터 체인 중에서도 최고의 시설로 완성된 이곳은 당시 영화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처음으로 유성영화를 위한 사운드시스템을 구비했다. 무대 주인공마저 압도할 듯한 내부 디자인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 등 동양적인 색깔을 가미해 신비롭고 오묘한 분위기를 담았다. 모두 5,132개의 객석에 1년에 상영되는 공연만 250여 개에 달한다. 입장료는 공연과 좌석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 10달러부터 시작한다니 저렴한 비용으로도 고품격 문화생활을 맛볼 수 있는 셈. 특이한 점은 결혼식, 리셉션 등 개인적인 이벤트도 열 수 있다는 것. 당신이 폭스 씨어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소 2211 Woodward Avenue, Detroit, MI 48201 문의 313-471-6611 홈페이지 www.olympiaentertainment.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studio 세계적인 뮤지션의 산실 모타운뮤지엄 마이클 잭슨,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음악은 모두 모타운Motown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된다. 모타운뮤지엄Motown Museum은 앞서 열거한 뮤지션들을 길러낸 모타운 레코드사가 만든 박물관으로 창립 초기의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그대로 사용했다. 1968년 12월28일 주에는 빌보드 Top10 중 1~3위를 포함해 5곡이 모타운레코드의 곡이었을 정도다. 이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뮤지션들이 직접 녹음했던 녹음실, 옛날 앨범 커버, 사진, 레코드 등의 전시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도 기쁘지만 곳곳에 담긴 옛 이야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레코드에 찍힌 라벨은 모타운 외에도 고디, 타믈라, 소울 등의 이름이 사용됐는데 모타운의 인기를 시샘하는 다른 제작자의 견제를 피하고자 뮤지션별로 각기 다른 라벨을 사용했을 정도라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0대 시절의 스티비 원더가 자주 이용하던 녹음실 앞의 자판기나, 마이클 잭슨이 기증한 검은색 모자와 보석이 박힌 장갑 등을 보노라면 아련한 기억의 흑백사진을 다시 꺼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주소 2648 W. Grand Boulevard, Detroit, Michigan 48208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일요일 휴관, 7~8월에는 일요일만 휴관) 홈페이지 www.motownmuseum.com outlet 고민없이 지른다 그레이트레이크스 크로싱아웃렛 미국에서 쇼핑할 것이 있을까? 환율이나 A/S 등을 고려하면 큰 장점이 없어 보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레이트레이크스 크로싱아웃렛Great Lakes Crossing Outlets에 도착한 순간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매장 크기에 놀라고 너무나 다양한 브랜드가 갖춰진 것에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미시간주에서도 가장 큰 아웃렛 쇼핑몰이며 185개의 각종 브랜드 제품은 물론 식당, 1,000석 규모의 푸드코트, 25개 스크린의 극장 등이 들어서 있다. 코치, 폴로, 랄프 로렌, DKNY, 게스 등의 직영 매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격 또한 국내에 비해 저렴한 것도 많다. 실제로 A브랜드의 경우 한국에서는 1개 구입할 금액으로 후드티와 스웨터 등 3가지 옷을 살 수 있었다. 평소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제품을 마음껏 비교하고 입어 볼 수 있는 쇼핑의 천국이 바로 여기다. 홈페이지 www.greatlakescrossingoutlets.com 구름에 가까운 레스토랑 코치 인시그니아┃GM 글로벌 르네상스 센터의 72층에 자리한 코치 인시그니아Coach Insignia는 디트로이트와 강 건너 캐나다가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눈이 시원한 곳에서 세계적인 와인을 즐기며 맛보는 요리는 최고의 궁합을 선사하며, 개인 맞춤 서비스로 불편함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은 <디트로이트뉴스> 등의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전망을 가진 식당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평가도 매우 우수한 편. 주소 Renaissance Center 72nd Floor Detroit, MI 48243 가격대 스프 6달러, 샐러드 8달러부터, 스테이크 28달러부터, 와인 9달러부터(글래스) ●Classic Cars 디트로이트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가 모인 곳답게 흥미로운 자동차 박물관도 필수적인 방문코스다. 지금도 통할 것 같은 매력적인 디자인의 클래식 카부터 시대마다 혁신의 종을 울린 성능을 갖춘 제품까지 가득하다. 거대한 자동차 박물관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모델들을 모아 봤다. 시대별로 눈에 띄는 자동차를 만나 보자! 1986 헨리 포드의 첫 작품 Runabout 미국 자동차 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자동차. 헨리 포드가 만든 첫 번째 자동차이며 단 13대만이 제작됐다. 시속 20km의 속도와 4마력의 힘을 가진 이 차의 변속기는 가죽벨트와 체인 드라이브의 조합. 원래 공기 냉각 방식이었지만 너무 뜨거운 관계로 실린더에 물 재킷을 추가하기도 했다. 1909 꼬마자동차가 아닙니다 Hudson Roadster 1909년 설립된 허드슨 모터카에서 제작한 차. 고전 레이싱카를 보는 듯한 이 자동차의 판매가격은 900달러였으며, 발매 첫해에만 4,000대가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제작사인 허드슨 모터는 1954년에 내시Nash사와 아메리칸모터스로 합병했으며, 이 회사는 1987년에 크라이슬러에 인수됐다. 1915 영화 속 차가 그대로 Dodge Touring Car 최대의 자동차 부품 공급 업체였던 닷지 브라더스사는 1914년 11월 최초로 자신들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는 1915년에만 4만5,000대가 판매됐고 그해에 3번째 자동차 제조사로 자리잡았다. 정품 가죽 시트 장착, 전기 조명, 전기시동, 접이지붕, 속도계 등이 장착됐고 당시 판매가격은 785달러였다. 1924 크라이슬러 최초 자동차 Chrysler B70 Phaeton 1924년 뉴욕 자동차 쇼에서 공개된 이 차는 중급 수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6기통 엔진과 록히드사의 휠 유압 브레이크를 장착해 전례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판매가격은 1,350달러. 저렴하다고? 당시 미국 가정의 평균 연수입이 1,244달러 수준이었다. 1928 가난한 자의 벤틀리 Chrysler Model 72 Le Mans 1928년 실시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던 크라이슬러 자동차 중 하나. 크라이슬러는 당시 자사 자동차 4대를 시합에 내보냈는데 이 차는 3위를 기록했고 곧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대량생산에 의한 합리적인 가격까지 더해지면서 영국에서는 ‘가난한 자의 벤틀리’라 불리기도 했다. 기본 판매가격은 1,500달러였다. 1934 이렇게나 스타일리시한 트럭이라니 Dodge Series KC 닷지 브라더사가 만든 트럭은 두 개의 시리즈로 분리돼 있었다. 표준 모델은 4기통이나 6기통 엔진을, 대형 모델은 6기통 엔진만 사용했다. 앞만 봐서는 도저히 트럭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인 이 차의 스타일링은 닷지의 승용차 라인에서 차용했으며, 일명 글래머러스 시리즈라고 명명됐다. 판매가격은 480달러. 1939 핫도그를 팔 것 같은 차 Dodge Airflow Tank Truck 언뜻 보기에 소방차나 놀이공원에 있는 핫도그 판매 트럭처럼 생긴 이 차는 사실 일종의 급유 탱크 역할을 했다. 1940년대 중후반에 등장했으며 미국 정유회사 TEXACO가 정제한 제품을 각 주유소에 공급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941 자동차에 나무를 더했다? Chrysler Town & Country Station Wagon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차체에서 목조로 구성된 부분에는 이제는 벌목이 금지된 고급목 온두라스 마호가니 등이 쓰였는데, 비에 따른 뒤틀림을 방지하고자 니스를 발라 방수처리를 해 변형을 막았다. 웨건과 세단의 크로스오버 차량 중 하나. 판매가격은 1,500달러. 1953 이탈리아의 감성이 녹다 Chrysler Special 1940년대 후반에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사의 초청을 받아 제조기술에 대한 조언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의 주문제작형 기술과 기타 여러 유용한 팁을 배웠고, 몇년 후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의 감성이 듬뿍 서린 이 자동차를 생산했다. 1955 오직 여성을 위해! La Femme 핑크빛과 크림색이 어우러진 차로 여성을 위해 설계됐다. 달콤한 외관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이 차는 1차 대전 이후 여성 운전자의 급증에 따라 마케팅 측면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적 성 역할의 약화와 이혼률 상승 등의 변화에 따라 여성들이 직접 운전할 차가 필요해졌다는 것도 주요 등장 배경. 여성을 고려한 만큼 금장로고에 더해 내부도 핑크빛으로 칠했고 조수석 뒤에 특별한 칸을 만들어 가방을 넣을 수 있게 했다. 또한 핑크색 어깨 가방과 함께 우산, 라이터, 립스틱, 콤팩트, 담뱃갑 등을 함께 구매자에게 제공했다. 기본 판매가격은 2,600달러. 1961 슬픈 역사를 담은 차 Lincoln(Kennedy Car)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던 1963년 11월22일 당시 타고 있던 리무진. 헨리 포드 뮤지엄에는 아이젠하워, 루즈벨트, 레이건 등 다른 대통령이 탔던 차가 전시돼 있으나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케네디의 비극이 담긴 바로 이 리무진이다. 사람이 아닌 역사를 싣고 박제처럼 멈춘 그의 리무진은 그 시간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Motor Museum 앞서 소개한 독특한 디자인의 차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헨리 포드 뮤지엄과 크라이슬러 뮤지엄은 디트로이트의 대표적인 자동차 박물관으로 초기 모델부터 현재의 콘셉트카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포드의 열정을 한자리에 헨리 포드 뮤지엄 헨리 포드는 20세기의 자동차 시대를 이끈 혁신적인 인물 중 하나다. 1908년 헨리 포드는 새로 개발한 모델T를 선보였는데 저렴하고 효율적인 이 자동차는 50만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 모델의 성공으로 그는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갖게 됐고 이후 역사, 독창성, 지혜, 혁신을 보여 주는 제품들을 수집했다. 헨리 포드 뮤지엄Henry Ford Museum은 이러한 포드의 열정으로 모은 수만점의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옛날 자동차 외에 농기구, 발전기, 기관차, 비행기 등이 원형 그대로 전시돼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실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이용해 주위의 그린필드빌리지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역사 테마파크라 할 만하다. 입장시간 매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 입장료 성인 17달러, 어린이 12.5달러(5~12세) 홈페이지 www.thehenryford.org 자동차 마니아라면 크라이슬러 뮤지엄 이름 그대로 자동차 메이커 크라이슬러가 만든 자동차 박물관. 헨리 포드 뮤지엄과 달리 자동차에만 집중해 전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1920년대 최초의 크라이슬러 자동차부터 미래지향적 콘셉트카까지 어느 하나 놓치기 힘든 모델들로 가득하고, 자동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혹할 만한 멋진 디자인의 차가 곳곳에 놓여 있다. 부작용이라면 신차를 구매하려던 이라도 방문 이후 옛날 클래식 카를 찾아 헤맬 수도 있다는 점. 입장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일요일 오후 12시~오후 5시(월요일은 휴무) 입장료 성인 8달러, 어린이 4달러(6~12세) 홈페이지 www.wpchryslermuseum.org 글·사진 김명상 기자 취재협조 디트로이트 메트로컨벤션www.detroit3point0.com 델타항공 www.delta.com ★포드의 최신 자동차는 어떨까? 올-뉴 이스케이프All-New 2013 Ford Escape 북미 베스트셀링 SUV 이스케이프가 새로운 기능들과 최고의 연비로 새롭게 탄생했다. 날렵한 외관, 동작 인식으로 열리는 핸즈프리 리프트게이트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올-뉴 이스케이프는 에코부스트 엔진(1.6L/2.0L)을 탑재해 연료 효율성도 보완했다. 2012년 9월 출시. ●Travel to Detroit ▶항공 디트로이트 하늘길, 델타항공으로 간다 델타항공이 매일 인천에서 출발하는 디트로이트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약 13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행길에서 델타항공이 제공하는 좌석은 비즈니스엘리트, 이코노미컴포트, 일반석(이코노미) 등 3개로 나뉜다. 보다 럭셔리하게 간다 비즈니스 엘리트Business Elite 비즈니스엘리트는 180도 완전 침대형 좌석이다. 모든 좌석은 통로와 바로 연결돼 다른 승객을 방해할 필요가 없고, 110볼트 범용 전기 콘센트, USB 포트, 개인용 LED 독서조명을 장착했다. 각 좌석에는 15.4인치 와이드 스크린 모니터가 설치됐고 1,0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제공으로 타 항공사들과 차별화했다. 긴 비행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는 말씀. 부담은 줄이고 편안함은 더하고 이코노미컴포트Economy Comfort 이코노미컴포트 좌석의 경우, 좌석간 거리가 기존 35인치에 최대 4인치가 추가되며 등받이는 50% 더 눕힐 수 있다. 비즈니스엘리트는 부담스럽고, 장시간 여행에서 일반 이코노미석은 다소 불편한 여행객이라면 적극 검토해 볼 만한 옵션인 셈이다. 아울러 이코노미컴포트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먼저 탑승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비행하는 동안 기본 서비스에 더해 다양한 주류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이용을 원한다면 먼저 일반석 항공권을 구매하고 델타항공 홈페이지나 공항의 셀프 체크인 기기에서 추가 비용을 지불 후 업그레이드를 하면 된다. 델타의 실버회원 이상은 할인이나 무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니 혜택을 확인해 볼 것! 나는야 합리적인 여행객 일반석Economy Class 현재 델타항공은 일반석 승객들에게 최대 2인치의 여유 공간을 추가 제공하는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완료시 넓고 편안한 비행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각 좌석에는 날개, 높이, 기울기가 조절되는 머리받침대, USB 파워, 9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장착, 비즈니스엘리트에서 제공되는 것과 같은 개인 주문형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1 완전 침대형 좌석인 비즈니스엘리트석 2 비즈니스엘리트의 기내식 3 일반석에 비해 좌석 거리가 최대 4인치 긴 이코노미 컴포트 ▶날씨 디트로이트의 여름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덥다. 하지만 한국처럼 습한 더위가 아니라, 건조한 편이다. 10월부터 쌀쌀해지기 시작하는데 일교차가 심하다. 12월 최고 평균기온은 영상 1도, 최저는 영하 4도 정도이며 4월부터는 최고 12도, 최저 3도 정도로 온화해진다. ▶교통 미국은 자동차 없이 여행하기 힘든 나라다. 디트로이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내 주요 지점은 경전철로 이동이 가능하다. 완전무인운전으로 움직이는 이 열차는 총 13개 정거장을 순환하며 최대 새벽 2시까지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단, 평일은 오전 6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된다. 단, 헨리 포드 뮤지엄 등은 경전철이 닿지 않는 교외에 자리하고 있으니 유의할 것. www.thepeoplemove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비운의 ‘흉탄 고아’… 22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

    박근혜 당선자의 당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녀(父女)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록도 만들었다. 청와대에서 영애(令愛)로 유년기를 보낸 퍼스트레이디 대리는 34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다. 박 당선자의 삶과 정치 여정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박 당선자도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부모님을 꼽는다. 그는 1990년 일기에서 “비범하셨던 부모님을 모셨던 것부터가 험난한 내 인생 길을 예고해 주었던 것”이라고 기록했다. 20대에 부모님을 모두 흉탄에 잃은 비운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전차 타고 등교한 대통령의 딸 박 당선자는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이었고 육 여사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보통학교, 대구 사범학교(현 경북대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해 재직 중이었다. 육 여사는 충북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 옥천여중)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일했다. 박 당선자의 외조부인 육종관은 육 여사가 과거 혼인 경력이 있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 전 대통령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육 여사는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했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딱딱한 군인 이미지와 달리 가족에게 더할 수 없이 다정한 분”, “젊은 시절 아버지는 로맨티스트”라고 회상했다. 육 여사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내 안에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어머니가 자리 잡았다.”고 할 만큼 신뢰와 애정을 가졌다. 특히 육 여사에 대해서는 단아한 외모와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을 떠올린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의 어린시절 의장 또는 대통령의 자녀라고 해서 특권의식을 갖지 않도록 평범한 생활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대통령의 자식이기 때문에 혜택을 누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내게 청와대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와대 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 빼곡한 날이었다.”고 적었다. 박 당선자는 서울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해 1964년 졸업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어 성심여자중학교와 성심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학점은 4.0 만점에 3.82였다. 육 여사는 박 당선자가 사학을 전공하길 바랐으나 박 당선자는 산업 역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전자공학을 택했다. 졸업 직후에는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친 뒤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지만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었다. ●육 여사 장례 6일 만에 퍼스트레이디역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육 여사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해 서거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박 당선자는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영문도 모른 채 귀국길에 올랐다가 가판대에 놓여진 신문 1면에 육 여사의 사진과 ‘암살’이라는 글자를 보고 “온 몸에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쇼크를 받았다.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 왔다.”고 회상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의 장례식을 치른 지 엿새 만에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에 참석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온 민원을 점검하고 영세 기업, 소외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국토시찰이나 산업현장을 수행했고 아침마다 신문을 읽어 주며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주고받기도 했다. 1974년부터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퍼스트레이디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박 당선자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은 누에고치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어 가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외국 귀빈들을 접대하며 외교적 식견도 넓어졌다. 1979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당시 주한 미군 철수 문제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박 당선자가 로절린 여사와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원활하게 풀어가 ‘근혜·카터 회담’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육 여사를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맏딸인 박 당선자에게 많은 의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려고 너를 두었는가 봐.”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당선자는 1974년 11월 일기에서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는 아버지로 하여금, 그리고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마저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또다시 비극을 맞았다. 27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접한 박 당선자는 가장 먼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날 밤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기록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직접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박 당선자는 장례를 치른 뒤 청와대를 떠나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공개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매진했다. 박 당선자는 이 기간을 “외롭고 긴 항해”라고 표현했다. 박 당선자는 육 여사가 청와대 시절 자신들에게 겸손을 강조한 이유도 신당동에 돌아와서야 절실하게 느꼈다고 회고했다. “권력의 중심부인 청와대라는 공간에서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것이다. 당시 박 당선자가 적은 일기들에는 특히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많다.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들이다. 신뢰를 가장 중시하고 배신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반감을 갖게 된 것도 그 당시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1981년 8월),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도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1989년 1월 17일) 등 박 당선자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느끼게 된 기간도 오래 지속됐다. 박 당선자는 1980년대 후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를 바로잡는 등 기념사업회 활동에 주력했다. 특히 1989년 박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맞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추도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청와대를 떠난 18년의 세월이 은둔, 칩거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박 당선자는 “쓴웃음이 나온다.”면서 “그때도 나는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살고 있었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평범함’을 갈구했다.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1980~1990년 사이 일기를 묶어서 책으로 냈다. 박 당선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결국 평범함 속에 있다고 느껴진다.”면서 “마음의 평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배로 여기는 것이며 가장 누리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계기로 박 당선자는 1997년 정치에 입문한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뿌리 깊은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한 박 전 대통령을 따라 경제 안정에 주력했고 가까스로 일으켰는데 무너져 내렸다는 허탈함과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야당 대표를 지내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 당선자의 정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첫 여성대통령 시대] CNN“문제는 경제였다” AFP“독재자의 딸 선택”

    19일 한국 대선을 주요 머리기사로 올린 세계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우세한 출구조사 결과를 비롯해 개표 상황을 실시간 긴급 타전하며 “한국에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 당선자가 내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경기 침체,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 일자리 확대, 소득불균형 등 갖가지 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은 박 당선자의 승리는 아직도 남성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의 탄생일 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혈연이 당선된 첫 사례라고 전했다. AFP통신도 한국이 잔혹한 야권 탄압과 빈곤 타개 사이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독재자의 딸을 첫 여성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긴급 타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집권했던 독재자의 딸이자 미혼인 박 당선자가 세계에서 가장 성별 격차가 확고한 나라를 이끌게 됐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박 당선자가 육영수 여사 암살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청와대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적대적인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과 지난 50년간 연평균 5.5%에서 2%대로 떨어진 경제성장률 등의 험난한 과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서방 언론들은 지난 12일 로켓 발사로 불거졌던 북한 변수는 대선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경제·일자리·교육 문제 등이 판세를 갈랐다고 지적했다. 홈페이지에 한국 대선을 메인 기사로 띄운 CNN은 지난 11월 미 대선과 마찬가지로 한국 대선에서도 ‘경제’가 유권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현안이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도 경제와 복지, 일자리 창출 이슈가 한국 대선의 주요 ‘키워드’가 됐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새 정권과 미국·북한의 관계 변화에 특히 주목했다. 박 당선자는 국가 안보와 신뢰를 바탕에 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조건 없는 북한 원조 재개 등을 공약으로 내건 문 후보보다 대북 정책에서 더욱 신중한 입장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외신들은 박 당선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강력한 지지자라는 점을 부각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도 하루 종일 한국의 대선 투개표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여야 후보 간의 대접전으로 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한국이 보수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 박 당선자가 경제 성장도 고려하면서 온건한 재벌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으로 보수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 박 당선자의 일대기, 정책, 한·일 외교관계 전망 등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박 당선자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지통신은 ‘비극의 딸’인 박 당선자가 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운동 탄압이라는 공과 과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부친이 못 이룬 국민 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이날 매 시간 뉴스를 통해 투개표 상황을 전하면서 ‘복지’가 선거전의 화두가 됐다고 보도했다. 고용 정책,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들이 이번 선거전에 쟁점이 됐다고 전했다. 중국의 주요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한국의 대선 결과를 예측·분석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신화통신은 오후 9시쯤 박 당선자의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의 뉴스 채널은 투표가 종료된 오후 6시부터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 대선 동향을 상세히 보도했다. CCTV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당사에 파견한 특파원들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대선 뉴스를 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서울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제3세계 출신들이 미국에 산다는 건…

    제3세계 출신들이 미국에 산다는 건…

    파키스탄 출신으로 미 프린스턴 대학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과 유명작가인 조이스 캐럴 오츠라는 두 거장이 가르치는 창작수업을 듣고,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기업법을 공부한 뒤 뉴욕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했던 모신 하미드(41)가 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The Reluctant Fundamentalist·민음사 펴냄)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연예소설로 또는 정치소설로 다르게 읽히는 소설이다. 하미드와 거의 비슷한 이력을 가진 22살의 파키스탄 출신 찬게즈와 역시 프린스턴대 출신의 ‘가십걸’들이 사는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 출신 에리카의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찬게즈는 프린스턴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뉴욕 맨해튼의 언더우드 샘슨이라는 기업컨설팅회사에 취직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국가의 일원이 돼 거액의 학자금 대출도 모두 갚고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뉴욕에서 찬게즈가 만난 에리카는 상냥하고 너그럽고 아름답다. 찬게즈는 에리카와 어떤 육체적 접촉도 유예하며 달콤한 나날을 기다린다. ●정치소설도 되고 연애소설도 될 수 있어 찬게즈의 연적은 크리스. 20대가 되기도 전에 폐암으로 크리스가 죽자 에리카는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해 가까스로 정신을 추슬러 중편소설까지 썼지만, 찬게즈의 등장으로 에리카는 다시 정신이 붕괴되고 육체마저 황폐해진다. 찬게즈는 깨닫는다. “(그녀가) 강력한 노스탤지어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은 크리스의 대역까지 자처했던 찬게즈는 “그녀는 크리스의 암 때문에 자신이 삶의 덧없음과 죽음에 대해 알게 되기 이전의 사춘기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같이 보낸 시간은 그녀가 나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경이로웠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찬게즈는 칭기즈칸의 앞 이름에서 따 온 알레고리적 이름으로 대전사를 뜻하고, 에리카도 미국에서 따 온 이름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흔히들 미국은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1, 2차 세계대전의 대량인명 살상을 피한 강대국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죽음은 늙어서 죽는 자연사나 병사, 사고사 정도였다. 그러나 9·11 이후 외부의 공격으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개방보다 안으로 움츠러들고 외국인에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팽배한다. 찬게즈는 “미국도 위험한 노스탤지어에 점점 더 빠져드는 것 같았다. (중략) 의무와 명예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 신문 기사 제목에는 확실히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이 있었어요. 나는 늘 미국이 앞을 바라보는 국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보려고 하는 미국의 의지를 보았던 거죠. 뉴욕에 사는 것이 갑자기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 속에서 사는 것 같았아요. (중략) 의문의 여지가 없는 우위? 안전? 도덕적 확신?”이라고 말한다. 찬게즈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당신네들은 파키스탄인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상상하면 안 돼요. 우리가 당신네 미국인들 모두를 변장한 암살자라고 상상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9·11이후 미국의 현실을 문학적으로 승화 소설은 파키스탄 라호르 지방, 어둠이 내리기 직전 옛 시가지이자 왕자를 사랑한 고급 창부의 이름을 딴 아나르칼리 지역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다. 파키스탄에서 교수로 지내는 25살의 찬게즈는 수상쩍은 미국인과 독백 같은 대화를 진행한다. 한국 등 제3세계 출신들이 미국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미국에 동화돼 자신의 출신을 잊어버리는 근본이 낮은 태도와 열등감을 되새겨보게 한다. 과연 당신은 오스만제국이 기독교 국가 출신 소년으로 키운 전사 ‘예니체니’가 아닌가 돌아봐야 할 수도 있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하고는 이슬람과의 전쟁에 빠져든 병약한 미국의 현실이 문학적으로 승화돼 있다. 역시 문학은 학술을 이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삼합회 두목, 14년만에 출소한 뒤 첫마디는?

    삼합회 두목, 14년만에 출소한 뒤 첫마디는?

    마피아 등과 함께 세계적인 범죄조직으로 손꼽히는 ‘삼합회’(三合會·트라이어드)의 두목이 14년 만에 출소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삼합회의 주요세력 중 하나인 ‘14K’의 두목 완콕코이는 지난 1일 14년 6개월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1998년 5월 마카오 당국이 중국 반환을 1년 여 앞두고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체포된 그는 ‘부러진 이빨’(崩牙駒)이란 별칭으로 활동하는 삼합회 조직의 두목이었다. 체포 당시 완콕코이는 돈세탁, 전화도청, 고리대금업 등 범죄조직과 관련한 범법행위 뿐 아니라 마카오 경찰청장의 차량을 폭파해 암살을 시도한 혐의 등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직후 “나의 시대는 갔다.”면서 “마카오의 사회 안정을 위해 조용히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조직’은 여전히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출소 당일 조직원 수 백 명이 모여 축하연을 연 것이 확인됐으며, 이에 따라 당국은 그의 출소를 계기로 마카오의 범죄조직들이 다시 활기를 띠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카오 당국은 완콕코이에게 출소 뒤 불필요한 행보를 자제할 것을 직접 경고했다. 한편 홍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삼합회는 흑사회와 함께 중화권의 대표적인 범죄조직이며, 기원은 불분명하나 청나라 말 반청복명(反淸復明)조직인 천지회(天地會)에서 변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 영화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면서 국내에서도 익숙해졌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유명 여배우인 장백지(장바이즈)의 아버지가 삼합회의 조직원인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사진=영화 ‘무간도2’ 중 한 장면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라파트 시신발굴 독살설 규명될까

    2004년 타계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시신이 오는 27일 발굴된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측이 제기한 ‘이스라엘의 아라파트 독살설’이 규명될지 관심이 쏠린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수사 당국 관계자는 아라파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시신 발굴 작업이 지난 13일부터 시작돼 27일 발굴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스위스와 프랑스, 러시아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라파트 사인 규명 수사팀’은 아라파트의 뼈에서 표본을 채취해 각자 나라로 가져가 조사할 계획이다. 발굴된 아라파트의 시신은 당일 군장(軍葬)으로 다시 묻히게 된다. 사인 규명 수사팀을 이끄는 타우피크 티아위 팀장은 “조사 결과의 발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샘플 조사에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라파트는 2004년 11월 프랑스 파리의 군 병원에 입원한 뒤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당시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이 아라파트를 독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고인의 옷에서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 흔적이 발견돼 재수사가 이뤄졌으며 전문가들은 사인 규명을 위해 시신에서 표본을 떼어내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라파트의 죽음은 심장마비가 직접적 원인이지만 사망하기 전 앓았던 병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암을 앓았다거나 에이즈 보균자라거나 이스라엘에 의한 독살·암살설 등 음모론이 난무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자동차(영화 ‘백 투 더 퓨처’)나 파란 전화박스(영화 ‘닥터 후’)를 타고 떠나는 요란한 시간 여행을 상상했다면 실망할 게 뻔하다. 드라마 ‘닥터 진’의 주인공처럼 급작스럽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전 세계 3억명의 독자를 지닌 이야기꾼 ‘스티븐 킹’(65)이 촘촘하게 엮어 놓은 서사의 그물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바꾼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라는 작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소설 ‘11/22/63’(황금가지 펴냄)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불황과 냉전, 전쟁의 공포로 치닫던 시기에 희망을 제시한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면 어떻게 역사가 달라질 것인가 하는 그럴듯한 가정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풀어 간다. 소설의 주인공인 35세의 영어교사 ‘제이크 에핑’은 사실 작가의 분신이다. 미 메인주 출신으로, 세탁공장 인부와 건물 경비원을 전전하다 작은 공립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했던 작가는 역시 메인주 출신의 궁핍한 영어교사 에핑을 내세워 자전적 얘기인 양 소설을 서술한다. 어느 날 에핑에게 동네 음식점 주인이자 친구인 앨이 비밀스럽게 시간 여행을 제안한다. 앨의 음식점 창고에 1958년 9월 9일 오전 11시 58분으로 고정된 시간대의 한 곳으로만 여행이 가능한 통로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던 에핑은 몇 시간 동안 과거를 돌아보고, 그날 밤 앨로부터 1963년 11월 22일 벌어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막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폐암 말기인 앨은 암살을 막기위해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무려 5년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케네디가 죽지 않았다면? 작가는 후임 대통령인 존슨과 닉슨에 의해 베트남전이 확전되지 않았을 것이고 6만명의 미군과 수백만명의 베트남인이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러시아인 아내를 수시로 폭행하는 떠돌이 건달에 불과했던 암살범 오스왈드를 사전에 제지하거나 배후 세력을 알아내는 대안이 제시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작은 일이라도 바꾸려 들면 의문의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이를 방해한다. 외줄을 타듯 위태로운 상황과 기나긴 시간의 기다림을 뚫고 주인공은 마침내 역사의 진실에 한발 다가서는데…. ‘미저리’ ‘미스트’ 등 스티븐 킹의 다른 작품들처럼 마치 영화 속 스릴러를 보는 듯한 흡인력이 돋보인다. 2권은 새달 초에 나온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이·팔 휴전 중재… 이집트 ‘피스메이커’

    이·팔 휴전 중재… 이집트 ‘피스메이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교전 8일 만인 21일(현지시간) 국제사회의 중재로 가까스로 휴전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은 휴전 발표 직후 각각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서는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축포를 쏘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앞서 휴전 협상을 중재한 이집트의 무함마드 카멜 아무르 외무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오후 카이로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휴전 합의는 오후 9시(한국시간 22일 오전 4시)를 기해 발효된다.”며 휴전 합의 사실을 발표했다. 휴전 합의서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각각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고 돼 있다. 특히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모든 팔레스타인 분파들이 로켓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교전에서 최후의 승자는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아닌 이들의 휴전을 이뤄낸 이집트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르시 대통령은 그동안 중동 내 최대 이슬람단체인 무슬림형제단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서방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려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정전 협상에서 ‘균형 있는 리더십’으로 중동의 안정을 이끌어내며 ‘피스메이커’(분쟁 중재자)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중동에 직접 날아가 협상 타결의 촉매제가 됐지만 “무르시 대통령이 하마스와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한 미국 정부가 절대 도출해 낼 수 없는 성과”라고 타임 등 외신들은 평가했다. 미국이 선호해 온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제 역할을 못 하자 미 정부는 결국 이집트에 매달렸다. 무슬림형제단이 하마스와 이어 온 정치적 유대와 이집트 정보국이 이스라엘 정보국과 장기간 구축해 온 협력 관계, 다시 말해 하마스, 이스라엘 양쪽 모두와 연결된 이집트의 ‘강점’을 정전 협상에 활용해 주길 원했던 것이다. 실제로 하마스와의 연대 과시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신뢰까지 얻는 성과를 이뤘다. 이스라엘 집권 리쿠드당의 요하난 플레즈너 의원은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이집트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이집트 지도부는 책임감 있게 행동했고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CNN은 이번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이미 중동 내 정치적 동맹을 재편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번 협상 중재로 중동과 미국 양쪽에서 모두 중요 인물로 부상했다. 이스라엘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제한적인 승리’를 거뒀다. 내년 1월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최고 사령관을 암살하는 공(?)을 세운 데 이어 미사일 요격 시스템 ‘아이언 돔’을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양측을 오가며 휴전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함으로써 지도력을 과시하게 됐다. 하마스도 이번 교전을 통해 이스라엘에 더 공격적으로 대응하면서 가자지구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하고 합법성을 더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승자로 꼽힌다. 반면 이번 교전에서 입지가 대폭 약화된 아바스 팔레스타인 수반과 그가 이끄는 파타당은 이번 사태의 최대 패자로 분류될 만하다. 이란도 하마스에 제공한 자국산 미사일이 아이언돔에 무력화되면서 ‘약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번 교전이 중동 지역에 복잡한 셈법을 남긴 가운데 국제사회는 일단 양측의 휴전을 환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서로가 휴전 합의를 어긴다면 더욱 강력하게 응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 ‘중동의 화약고’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화 ‘26년’ 마침내 베일 벗다

    영화 ‘26년’ 마침내 베일 벗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족들의 복수극을 그린 문제작 ‘26년’이 22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 작품은 현대사를 바탕으로 전직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데다 수차례 제작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빛을 본 터라 안팎으로 관심을 모았다. 대선이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개봉한 ‘남영동 1985’와 함께 어떤 영향력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26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에 대한 시대정신과 치밀한 복수 액션극이라는 오락적 요소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계엄군에게 학살된 희생자 2세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은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에 대해 공분을 느끼고 역사적인 단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극을 이끌어간다. ●과감한 상상력 더한 ‘그 사람’ 향한 복수극… 29일 개봉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면서 시작된다. 이 장면을 통해 당시 가족을 잃은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는 효과를 일으킨다. 미술감독 출신으로 처음 연출에 도전한 조근현 감독은 “기존에 1980년 광주를 다룬 영화가 많은데 도입부에 애니메이션을 넣어 차별화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2세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조직 폭력배 곽진배(진구),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 현직 경찰 권정혁(임슬옹) 등이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이경영)와 그의 비서 김주안(배수빈)에게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장광)을 타깃으로 한 극비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전직 대통령이 예우를 받으며 철통 경호를 받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연희동 저택의 침투 과정과 겹겹이 쌓여 있는 완벽한 경호를 뚫기 위한 주인공들의 다층적인 암살 계획이 탄탄한 스토리와 함께 전개된다. 여기에 뚜렷하고 개성적인 인물 캐릭터들도 눈길을 끈다. 거칠지만 정감 있는 성격의 행동대장 진배, 마음의 상처 때문에 한없이 차가워진 저격수 미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혁 등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극초반 다소 이음매가 헐거운 부분이 있지만 주인공들이 결국 ‘그 사람’과 대면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확실한 긴장감을 준다. 특히 연희동의 집단 결투 장면과 크레인에 오른 미진의 원거리 저격 장면 등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전 감독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사과를 스스로 하면 좋겠지만, 안 되면 단죄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서 상식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의미로 작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5년간 수차례 제작시도 번번이 무산 이 영화가 처음 제작 시도를 한 것은 지난 2008년. ‘29년’이라는 제목으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촬영 준비를 마쳤지만 촬영 열흘 전 갑자기 투자가 취소되면서 끊임없는 외압설에 시달렸다.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당시 소문으로만 떠돌던 청와대 외압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개봉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교롭게 대선과 시기가 겹치게 됐다.”면서 “대중들이 역사적 실체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26년’은 순제작비 46억원이 대기업이 아닌 개인 투자자로 이뤄졌고 그 가운데 7억원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으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배급 역시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소 배급사 인벤트 디를 통해 진행한다. 제작 과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최 대표는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촬영을 하고자 유족 측의 동의를 얻었지만 관계 당국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배우가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출연 배우들은 정치적인 선입견보다는 영화 자체의 본질에 관심을 더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4년 전 ‘29년’에 이어 ‘26년’에도 출연을 확정한 진구는 “이 영화는 선동용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자는 내용으로 교육용 영화에 가깝다.”면서 “정치색보다는 오히려 슈퍼 히어로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혜진은 “이 작품이 운명으로 다가왔고, 유가족들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더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2AM’의 임슬옹은 “가장 현실적이고 색깔 있는 캐릭터로 그동안 갈고닦은 연기력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였고 또래인 10~20대 관객에게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사람’ 역의 장광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자료화면을 보면서 흡사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면서 “5·18과 8·15를 헷갈린다는 요즘 세대가 잊혀진 과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최근 관객층의 주류로 떠오른 3040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할 만한 소재로 당시 복수극으로서 카타르시스 효과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정치 의식을 심어주기는 힘들겠지만 30~40대에게는 잊혀진 과거에 대한 기억과 시대 의식을 충분히 일깨워 주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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