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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급 발암물질 ‘석면’, 석면질환 진단 위한 기준 필요

    석면 피해판정 확대를 위해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석면질환 진단기준 마련 나서 석면은 ‘조용한 암살자’로 불리는 광물이다. ‘소멸시킬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쉽게 타거나 마모되지 않으며, 폐에 들어가면 20~40년의 잠복기를 거쳐 인체를 유린한다. 석면 공장과 공장 인근, 대규모 재건축 주변의 주민은 여전히 악성중피종, 폐암과 석면폐증 같은 석면 질환에 시달린다.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여전히 석면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철도공사의 ‘연도별 철도역사 석면 실태조사 현황’ 자료 분석에 따르면 전국 철도 역사 542개 중 387개 역사에서 석면이 검출되고 있으며, 경기도교육청이 경기도의회에 제출한 행정사무감사 자료로는 지난 9월 경기도 학교 교실의 75%가 석면이 함유된 천장으로 마감돼 있다고 밝혔다. 1급 발암물질이 벽 너머, 천장 너머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살벌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경부는 석면 피해 주민을 구제하고자 2011년부터 석면 피해구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2012년 12월까지 피해구제를 신청한 주민은 1,231명에 달하는데, 이 중 915명(74.3%)이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 앞으로 석면으로 인한 피해 주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 40년에 달하는 석면의 잠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석면 사용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정점을 찍었다. 이를 고려하면 석면 피해 환자는 32년 후인 2045년쯤 정점을 찍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석면 관련 임상과의 전문의와 변호사로 구성된 석면판정위원회에서 석면 피해 여부를 판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진단과 더 많은 석면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석면 질환 진단 기준이 필요한 상태이다. 특히 피해 사례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악성중피종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기준의 표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정순희 교수 연구팀은 2012년부터 환경부(생활공감 환경보건기술개발사업,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을 받아 석면 관련 질환 진단의 표준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석면 피해구제법에서 악성중피종 환자나 유가족은 조직 병리진단이 있는 경우 피해 인정을 받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게 돼, 연구팀은 우리나라 악성중피종 환자의 조직학적, 면역조직학적, 전자현미경적 진단기준과 영상의학적 진단기준을 지침서로 개발했다. 악성중피종에 대한 표준화된 진단 기준을 마련한 연구팀은 내년 해외 각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엄과 공청회를 거쳐 검증을 거칠 예정이다. 연구가 마무리되면 진단의 어려움이 있었던 악성중피종 진단을 더 많은 병원에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된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석면 피해 환자 구제를 위한 의학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추후 석면폐증과 폐암에 대해서도 진단기준을 표준화해 석면으로 인한 질환 발생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캐럴라인 케네디 대사/최광숙 논설위원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서로 케네디가(家)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신경전을 펼쳤다. 결과는 오바마 후보의 승리였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장녀 캐럴라인 케네디의 오바마 지지 연설이 큰 힘이 된 것이다. 케네디가의 지원 속에 무명 정치인이나 다름없던 오바마는 결국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캐럴라인은 2009년 뇌종양으로 죽은 삼촌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다. 검은 털로 뒤덮인 애완견 ‘보(Bo)’도 그가 선물한 것이다. 캐럴라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 공동의장을 맡으며 재선운동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동생 존과 폴짝거리며 뛰놀던 어린 캐럴라인을 기억한다. 1963년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한 가여운 소녀의 이미지도 간직하고 있다. ‘검은 케네디’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외교전문가가 아닌 캐럴라인(55)을 주일 미 대사에 임명해 기대와 우려를 낳고 있다. 그의 부임으로 일본 열도는 지금 다시 ‘케네디 신드롬’에 빠졌다. 그는 부임한 지 나흘 만에 왕실 예절에 따라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가 아키히토 일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대사 신임장 제정이 통상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부임 인사차 방문한 대사를 위해 이례적으로 총리 오찬도 베풀었다. 그야말로 칙사대접을 받은 것이다. 적극적인 친미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을 단 두 번 만났다. 미국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일본 정부로서는 캐럴라인 대사에게 양국 정상 간의 파이프 라인이 돼 주기를 기대할 만도 하다. 하지만 미국 내에는 케네디 대사에 대해 “공직 경험은커녕 기업에서조차 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아시아 영토분쟁이나 북핵위협 같은 현안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캐럴라인은 2009년 뉴욕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자질 논란에 휩싸여 중도 포기한 전력도 있다. 오늘(22일)은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케네디 가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사 갈등에 최근 집단자위권 문제까지 한·일 관계가 편편하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케네디 대사의 행보에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신혼여행을 일본으로 왔을 정도로 일본에 애정이 많다는 케네디 대사다. ‘일본 편향’의 길만큼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열도 ‘케네디 앓이’

    열도 ‘케네디 앓이’

    일본이 ‘케네디 열풍’에 휩싸여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50주년을 맞은 올해 공교롭게도 장녀인 캐럴라인 케네디(55) 신임 주일 미국대사가 부임하자마자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사는 19일 오후 도쿄 아키히토 일왕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하고 나서 도쿄 마루노우치 일대에서 궁내청이 보낸 마차로 퍼레이드를 했다. NHK가 이 장면을 생중계하는 가운데 일본 국민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로 나와 손을 흔들거나 사진을 찍었다. 일본에 부임한 외국 대사가 본국의 원수로부터 신임장을 일왕에게 전달하는 ‘신임장 봉정식’은 헌법에 명시된 일왕의 국사 행위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지만, 이렇게 열띤 분위기는 전례에 비춰 봐도 많지 않다는 평가다. 케네디 신임 대사가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가 아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장면이다. 유명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일본의 특성상 ‘JFK의 딸’로서 유명 연예인 수준의 지명도를 지닌 케네디 대사를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것에 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지난 7월 지명 직후 케네디 대사에 대해 “유력 정치가들을 배출한 ‘케네디 왕조’의 직계로 항상 미국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명사 중의 명사”라고 평가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18일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 현지 르포 기사를 통해 사그라지지 않는 케네디 열풍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케네디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신이자 측근이라는 점, 또 정치 명문가 출신다운 화려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긴밀한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케네디 대사가 미·일 간 원활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셈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케네디 대사는) 일본의 입장을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케네디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가 가능한 관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최초의 여성 대사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케네디 대사는 18일 외무성에서 사이키 아키타카 사무차관과 회담하며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일본을 중요시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영웅에서 풋내기·바람둥이로… 케네디 신화 지워져도 향수 남아

    영웅에서 풋내기·바람둥이로… 케네디 신화 지워져도 향수 남아

    ‘조지 워싱턴(GW) 파크웨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을 따라 나 있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도로다. 이 도로에는 워싱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설’이 얽혀 있다. 50여년 전 당시 백악관 주인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부인 재클린이 울분을 풀기 위해 밤중에 이 도로를 홀로 드라이브했다는 얘기다. 암살 당시만 해도 ‘완벽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았던 케네디이지만 갈수록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쏟아지면서 부정적 측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케네디의 못 말리는 바람기와 숱한 염문설은 이제 정설이 되다시피 했다. 지난달 발간된 영국 작가 세라 브래드퍼드의 책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에 따르면 케네디는 재클린에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비서이던 보비 베이커에게는 “매일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두통이 온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케네디에 대한 재평가는 이제 여성 편력 등 사생활을 넘어 그의 정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살펴본 미국의 24개 교과서에서 케네디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부분이 줄고 냉정한 평가가 늘었다. 1968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케네디를 비극의 영웅이자 자신감과 희망으로 미국의 미래를 바꾸려 했던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1987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가 미화된 부분이 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이룬 입법적 성과는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케네디의 업적으로 꼽혔던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과 관련, 1968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의 강인함과 자제력, 힘의 사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의 결과로 기술했다. 하지만 1983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의 승리가 아니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 내 강경세력에 의해 축출된 데 따른 어부지리였다는 점에서 케네디의 업적이 공허하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전과 관련해서도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이길 가망이 없자 케네디가 미군 철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해제된 기밀문서에서는 케네디가 베트남전 확전 의지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케네디가 흑인 시민권을 보장한 연방 민권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듯 케네디는 암살 40주년이었던 2003년 CNN 여론조사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가장 위대한 대통령’ 공동 1위에 꼽혔으나 최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링컨, 빌 클린턴에 이어 4위로 밀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케네디에 관한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 100만건 중 상당수가 2017년 10월 26일 이후 해제된다”며 ‘케네디 신화 벗기기’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케네디에 대한 재평가와는 별개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케네디가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미스터리다. WP의 한 칼럼니스트는 “케네디의 진보적 이상과 프런티어 정신이 갑작스러운 암살로 인해 미완으로 끝난 데 따른 아쉬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이 충격적인 암살로 갑자기 곁을 떠난 데 따른 비극적 상실감과 연민 때문”이라는 보통 미국사람들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영웅에서 풋내기·바람둥이로… 케네디 신화 지워져도 향수 남아

    영웅에서 풋내기·바람둥이로… 케네디 신화 지워져도 향수 남아

    ‘조지 워싱턴(GW) 파크웨이’는 미국 수도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을 따라 나 있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도로다. 이 도로에는 워싱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설’이 얽혀 있다. 50여년 전 당시 백악관 주인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부인 재클린이 울분을 풀기 위해 밤중에 이 도로를 홀로 드라이브했다는 얘기다. 암살 당시만 해도 ‘완벽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았던 케네디이지만 갈수록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쏟아지면서 부정적 측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케네디의 못 말리는 바람기와 숱한 염문설은 이제 정설이 되다시피 했다. 지난달 발간된 영국 작가 세라 브래드퍼드의 책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에 따르면 케네디는 재클린에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비서이던 보비 베이커에게는 “매일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두통이 온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케네디에 대한 재평가는 이제 여성 편력 등 사생활을 넘어 그의 정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살펴본 미국의 24개 교과서에서 케네디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부분이 줄고 냉정한 평가가 늘었다. 1968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케네디를 비극의 영웅이자 자신감과 희망으로 미국의 미래를 바꾸려 했던 대통령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1987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가 미화된 부분이 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이룬 입법적 성과는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케네디의 업적으로 꼽혔던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과 관련, 1968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의 강인함과 자제력, 힘의 사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의 결과로 기술했다. 하지만 1983년 교과서에서는 케네디의 승리가 아니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 내 강경세력에 의해 축출된 데 따른 어부지리였다는 점에서 케네디의 업적이 공허하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전과 관련해서도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이길 가망이 없자 케네디가 미군 철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해제된 기밀문서에서는 케네디가 베트남전 확전 의지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케네디가 흑인 시민권을 보장한 연방 민권법 제정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듯 케네디는 암살 40주년이었던 2003년 CNN 여론조사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가장 위대한 대통령’ 공동 1위에 꼽혔으나 최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링컨, 빌 클린턴에 이어 4위로 밀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케네디에 관한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 100만건 중 상당수가 2017년 10월 26일 이후 해제된다”며 ‘케네디 신화 벗기기’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케네디에 대한 재평가와는 별개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케네디가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미스터리다. WP의 한 칼럼니스트는 “케네디의 진보적 이상과 프런티어 정신이 갑작스러운 암살로 인해 미완으로 끝난 데 따른 아쉬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이 충격적인 암살로 갑자기 곁을 떠난 데 따른 비극적 상실감과 연민 때문”이라는 보통 미국사람들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청담동 111(tvN 밤 12시 10분) FNC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로 FT 아일랜드, 씨엔블루, 송은이, 이동건, 박광현, 주니엘, AOA 등 아티스트들이 찾아든다. 대표, 매니저, 비서, 각 부서 담당자 등 FNC엔터테인먼트에 몸담고 있는 모든 직원은 물론이고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까지 포함됐다. 늘 화려하게 보이는 스타들과 대한민국의 연예계를 움직이는 이들의 숨은 고민을 엿본다.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올리브 밤 7시 40분) 가공식품에 남다른 안목을 지닌 ‘가공식품 요리 돌’ 광희와 ‘마셰코1’ 준우승에 빛나는 박준우가 주방이 아닌 실험실에서 가공식품을 직접 조리하고 맛본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즐겨 구입하는 대표 가공식품들을 꼼꼼히 살펴본다. 또한 두 MC가 개발한 매운 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레시피도 공개한다. ■존 F 케네디 암살 50주기 스페셜:케네디를 전설로 만든 7일의 기록(내셔널지오그래픽 밤 11시) 열여섯 살 때 의문의 질병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야기부터 2차 세계 대전 당시 10명의 전우를 구한 무용담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할리우드 배우와의 불미스러운 만남 등 존 F 케네디의 모든 것을 조명한다. 또한 그의 운명을 영원히 바꿔놓은 특별한 사건들도 재조명한다. ■오펀 블랙(AXN 밤 10시 50분) 코지마와 앨리슨에게 자신이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 세라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부정한다. 한편 묻어버렸던 카티야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세라는 카티야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자신과 카티야의 연결고리가 들킬까 계속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중 사건의 범인과 마주하게 된 세라는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파이어위드파이어(캐치온 밤 1시 5분) 소방관으로 일하는 제러미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청년이다. 대형 화재를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제러미는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에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경찰에 신고한다. 한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인 범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제러미를 집요하게 제거하려 한다. ■몬스터 대 에일리언:캠핑의 참맛(니켈로디언 밤 9시) 버럭 장군은 비밀 기지에 살면서 지구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출동하는 착한 몬스터 수잔, 밥, 핑키를 데리고 캠핑을 떠난다. 그런데 구닥다리 방식으로 캠핑을 고수하는 버럭 장군과는 달리 최첨단 기술을 쓰는 핑키에게 밥과 수잔은 푹 빠져버린다. 이에 기분이 상한 버럭 장군은 혼자서 캠핑을 하기로 한다.
  • 박정희는 지지 얻고, 반기문은 꿈 키웠다

    박정희는 지지 얻고, 반기문은 꿈 키웠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한국의 인연도 상당하다. 3년이 채 안 되는 짧은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지만 케네디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과 만나는 등 한국에도 친근한 추억을 남겼다. 케네디는 1961년 11월 14~15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미국 워싱턴으로 초청해 회담을 했다. 당시 44세로 동갑이었던 케네디와 박 의장은 백악관에서 열린 오찬과 두 차례 회담에서 동맹으로서의 책임을 재확인하고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경제 원조도 약속했다(사진 위). 박 의장은 방미 선물로 케네디에게 족자 2개를, 부인과 자녀들에게는 한복 1벌씩을 선물했다. 박 의장은 이 같은 인연을 계기로 1963년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했다. 반 총장이 학창 시절 케네디를 만난 일화는 그가 외교통상부 장관에 이어 유엔 수장 자리에 오르면서 유명해졌다. 반 총장은 1962년 고교 3학년 때 미 적십자사 비스타(VISTA) 프로그램에 지원, 한국 대표 4명 중 1명으로 선발됐다. 이어 한 달 동안 워싱턴에서 연수를 하던 중 격려차 학생들을 찾은 케네디를 만났다(아래). 케네디는 한국에서 온 청년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고, 반 총장은 망설이지 않고 “최고의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케네디를 만났던 경험이 훗날 외교관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JFK 딸, 명사 중의 명사가 美대사로 왔다” 열도 ‘케네디 앓이’

    “JFK 딸, 명사 중의 명사가 美대사로 왔다” 열도 ‘케네디 앓이’

    일본이 ‘케네디 열풍’에 휩싸여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 50주년을 맞은 올해 공교롭게도 장녀인 캐럴라인 케네디(55) 신임 주일 미국대사가 부임하자마자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사는 19일 오후 도쿄 아키히토 일왕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한 뒤 도쿄 마루노우치 일대에서 궁내청이 보낸 마차로 퍼레이드를 했다. NHK가 이 장면을 생중계하는 가운데 일본 국민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로 나와 손을 흔들거나 사진을 찍었다. 일본에 부임한 외국 대사가 본국 원수의 신임장을 일왕에게 전달하는 ‘신임장 봉정식’은 헌법에 명시된 일왕의 국사 행위 중 하나이지만, 이렇게 열띤 분위기는 전례에 비춰 많지 않다는 평가다. 케네디 신임 대사가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가 아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장면이다. 유명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일본의 특성상 ‘JFK의 딸’로서 유명 연예인 수준의 지명도를 지닌 케네디 대사를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것에 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지난 7월 지명 직후 케네디 대사에 대해 “유력 정치가들을 배출한 ‘케네디 왕조’의 직계로 항상 미국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명사 중의 명사”라고 평가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18일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 현지 르포 기사를 통해 사그라지지 않는 케네디 열풍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케네디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신이자 측근이라는 점, 또 정치 명문가 출신다운 화려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긴밀한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케네디 대사가 미·일 간 원활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셈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케네디 대사는) 일본의 입장을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케네디 대사가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가 가능한 관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최초의 여성 대사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케네디 대사는 18일 외무성에서 사이키 아키타카 사무차관과 회담하며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은 일본을 중요시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JFK 사후 50년 지나도 說說 끓는 음모론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다수 미국인들은 케네디 암살에 거대한 음모가 개입돼 있다고 믿고 있다. 케네디 암살 직후 조사위원회는 리 하비 오즈월드에 의한 단독 암살사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총상의 각도와 탄도, 총상을 입을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움직임 등을 따져 보면 한 명의 저격범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갤럽이 최근 미국 성인 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이 오즈월드의 단순 범행이라고 믿는 사람은 30%에 불과하다. 케네디 음모론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암살의 배후에 당시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1929~1994) 전 대통령이 개입돼 있다는 설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1991)가 주장한 내용이기도 하다.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주 출신인 존슨은 민주당 소속답지 않게 군수업계의 이해 관계를 잘 반영했다. 그러다 보니 부통령 시절에도 진보 성향의 케네디 대통령과 대립하곤 했다. 특히 케네디의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케네디 뒤치다꺼리만 하다 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 여사는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와의 비공개 대담에서 존슨 전 대통령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거부(巨富)로 유명한 유대계 로스차일드가(家)가 배후라는 설도 있다.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부추겨 지속적으로 위기 상황을 만들어 내 부를 쌓으려 했지만, 이때마다 케네디가 과거 자신들과 한 약속을 깨고 평화 무드를 조성해 암살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케네디의 CIA 개혁 또는 해체 구상을 막기 위해 제거했다는 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패배한 것을 복수하기 위해 암살을 모의했다는 설 ▲케네디 대통령 당시 논의되던 마피아 소탕령을 막기 위해 마피아가 나섰다는 설 ▲베트남에서의 철수로 타격을 입을 군산복합체들이 제거했다는 설 ▲케네디의 외도행각에 신물이 난 재클린 여사가 남편을 죽였다는 설 등 음모론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정치학연구소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케네디 반세기: 대통령직, 암살, 그리고 지속되는 JFK의 유산’에서 상당수 음모론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추론이라고 반박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때가 美 정치 황금기였지”… ‘불멸의 불꽃’ 찾는 추모의 물결

    “그때가 美 정치 황금기였지”… ‘불멸의 불꽃’ 찾는 추모의 물결

    “세상에, 그때 나는 살아 있었다니까요.” 19일 오후 3시쯤(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묘지에서 만난 시민 로라 애너스(70)는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맞아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자신은 케네디 사망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역사의 증인이라는 뜻이다. 버지니아주 비에나에 사는 일곱 살, 아홉 살짜리 손주들의 손을 잡고 이날 케네디 묘역을 찾은 그녀는 “내 아들만 해도 케네디 사후에 태어난 세대”라면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세대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케네디는 이제 역사 속으로 묻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전에도 몇 차례 이곳을 찾았지만 최근 언론에서 암살 50주년 뉴스를 보고 손주들에게 케네디가 어떤 대통령이었는지를 가르쳐 줄 겸 다시 찾았다”고 했다.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들었을 때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대학 2학년생이었다는 그녀는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어서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면서 “너무 슬펐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암살 이듬해 스페인에 여행을 갔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네 대통령이 서거해 너무 유감’이라는 인사말을 건넸다”고 기억했다. 기자는 옆에 서 있던 아홉 살 손자에게 ‘케네디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었다. 손자는 “몇 대 대통령인지는 까먹었지만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총에 맞아 숨졌다”고 답했다. 애너스는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는 것으로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도 주저없이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면서 “경찰 조사 결과를 의심할 만한 구석이 없으며, 배후설은 호사가들의 추측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평일이었음에도 이날 오후 케네디 묘역에 한 시간 정도 서 있는 동안 참배객의 발길은 한 번도 끊이지 않았다. 묘지를 지키고 선 경비요원은 “최근 암살 50주년이 다가오면서 참배객 수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고 했다. 콜로라도주에서 버지니아의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이곳에 들렀다는 데이브 브래들리(38)는 “케네디 암살 당시 나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케네디가 민권 신장에 기여한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알고 있다”면서 “그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케네디 암살 배후설을 믿느냐’는 질문에 “잘 판단이 안 선다”고 답했다. 영국 군인으로서 업무 협의 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이곳에 잠깐 들렀다는 한 중년 남성은 “암살 50년이 지났지만 케네디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케네디 재임 기간은 미국 정치의 황금기였다”고 나름대로 평가했다. 워싱턴 시내 백악관 인근 대형서점 ‘반스앤드노블’에서도 케네디 암살 50주년 기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케네디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들만 따로 모아 놓은 코너가 보였다. 서점 관계자는 “케네디는 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배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CNN 등 방송에서는 케네디 암살 관련 특집방송을 앞다퉈 내보내고 있고 신문들은 연일 케네디 관련 칼럼을 쏟아내고 있다. 워싱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암살… 사고사… 자살… 케네디家 울린 14번의 저주

    암살… 사고사… 자살… 케네디家 울린 14번의 저주

    미국의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은 두 번의 암살과 다섯 번의 사고사, 병사,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비극으로도 유명하다. 외교관 출신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피를 이어받아 대통령, 장관, 상·하원의원 등 수많은 정치인을 배출했지만 ‘케네디가의 저주’로 불리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남겨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불행의 시작은 장남 조지프(1944)이 2차 세계대전 중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다 습격을 당해 영국 근해에 추락해 전사하면서 시작된다. 첫째 딸이자 형제·자매 중 셋째인 로즈메리(2005)는 가벼운 정신지체로 태어났으나 뇌수술 실패로 평생을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다. 넷째인 딸 캐슬린(1948) 역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40대로 미국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차남 존 F 케네디(1963)는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도중 암살당했다. 이후 부인 재클린 케네디(1994)는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 미 언론에 유명세를 치렀으나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케네디 형제 가운데 일곱째인 로버트(1968)는 법무장관과 뉴욕주 상원의원을 거쳐 대선 경선까지 뛰어들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유세 도중 암살당해 미 언론으로부터 ‘케네디가의 저주’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막내인 에드워드(2009)는 형에 이어 20대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40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자동차에 동승한 여비서의 사망 사건으로 한동안 추문에 시달렸고 이후 대권 도전의 꿈을 접은 뒤 뇌종양을 앓다 별세했다. 케네디 가문의 비극은 3세에서도 계속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 존 2세(1999)는 30대에 경비행기를 조종하다 추락해 아내 캐럴린 베셋과 함께 사망했다. 둘째 아들 패트릭은 출생 직후 사망했고, 둘째딸 아라벨라는 임신 도중 사산되는 비극을 맞았다. 로버트의 자녀 중 넷째인 데이비드(1984)와 여섯째 마이클(1997)은 각각 약물 과다 복용과 스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또 로버트의 첫째 며느리인 메리(2012)는 자살로 의심되는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드의 딸 캐리(2011)는 아버지에 이어 심장마비로 병사했고, 장남인 에드워드 2세는 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암살… 사고사… 자살… 케네디家 울린 14번의 저주

    암살… 사고사… 자살… 케네디家 울린 14번의 저주

    미국의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은 두 번의 암살과 다섯 번의 사고사, 병사,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비극으로도 유명하다. 외교관 출신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피를 이어받아 대통령, 장관, 상·하원의원 등 수많은 정치인을 배출했지만 ‘케네디가의 저주’로 불리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남겨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불행의 시작은 장남 조지프 2세(1944)가 2차 세계대전 중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다 습격을 당해 영국 근해에 추락해 전사하면서 시작된다. 첫째 딸이자 형제·자매 중 셋째인 로즈메리(2005)는 가벼운 정신지체로 태어났으나 뇌수술 실패로 평생을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다. 넷째인 딸 캐슬린(1948) 역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40대로 미국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차남 존 F 케네디(1963)는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도중 암살당했다. 이후 부인 재클린 케네디(1994)는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 유명세를 치렀으나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케네디 형제 가운데 일곱째인 로버트(1968)는 법무장관과 뉴욕주 상원의원을 거쳐 대선 경선까지 뛰어들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유세 도중 암살당해 미 언론으로부터 ‘케네디가의 저주’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막내인 에드워드(2009)는 형에 이어 20대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40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자동차에 동승한 여비서의 사망 사건으로 한동안 추문에 시달렸고 이후 대권 도전의 꿈을 접은 뒤 뇌종양을 앓다 별세했다. 케네디 가문의 비극은 3세에서도 계속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 존 2세(1999)는 30대에 경비행기를 조종하다 추락해 아내 캐럴린 베셋과 함께 사망했다. 둘째 아들 패트릭은 출생 직후 사망했고, 둘째딸 아라벨라는 임신 도중 사산하는 비극을 맞았다. 로버트의 자녀 중 넷째인 데이비드(1984)와 여섯째 마이클(1997)은 각각 약물 과다 복용과 스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또 로버트의 첫째 며느리인 메리(2012)는 자살로 의심되는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드의 딸 캐리(2011)는 아버지에 이어 심장마비로 병사했고, 장남인 에드워드 2세는 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케네디 암살에 거대 배후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50주년(11월 22일)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성인 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은 범인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암살에 배후가 있다는 시각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암살 10년 뒤인 1973년에는 배후설 지지 응답이 81%에 달했고 이후 계속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배후설은 70%대를 유지해 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가 케네디 암살 50주년 추모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16일 백악관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오는 20일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전 대통령 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일 당일인 22일 저녁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 등 역대 자유훈장 수상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케네디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모행사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손자이자 캐럴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대사의 외아들인 존 슐로스버그 등 케네디가(家) 인사들도 다수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케네디 전 대통령이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1961년 창설한 ‘평화봉사단’의 지도부 및 자원봉사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건강보험개혁 정책(오바마케어)의 난맥상으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권위 회복을 위해 케네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케네디 암살 50주년…미국인 60% “거대한 배후 있을 것”

    케네디 암살 50주년…미국인 60% “거대한 배후 있을 것”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50주년(11월 22일)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성인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은 범인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암살에 배후가 있다는 시각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암살 10년 뒤인 1973년에는 배후설 지지 응답이 81%에 달했고 이후 계속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배후설은 70%대를 유지해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가 케네디 암살 50주년 추모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16일 백악관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오는 20일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전 대통령 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일 당일인 22일 저녁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 등 역대 자유훈장 수상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케네디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모행사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손자이자 캐롤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대사의 외아들인 존 슐로스버그 등 케네디가(家) 인사들도 다수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케네디 전 대통령이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1961년 창설한 ‘평화봉사단’의 지도부 및 자원봉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건강보험개혁 정책(오바마케어)의 난맥상으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권위 회복을 위해 케네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려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내 아버지는 김구… 나는 늘 죽음과 함께 있었다

    내 아버지는 김구… 나는 늘 죽음과 함께 있었다

    조국의 하늘을 날다/김신 지음/돌베개/340쪽/2만 2000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는 이승만 정권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다. 혹여 폭동이 일어날까, 상여를 호위하는 경찰에게 권총이 지급됐다. 서울역을 비롯해 주요 길목마다 기관총이 장착된 장갑차도 배치됐다. 계염령 선포나 다름없었다. 백범의 둘째 아들인 김신(91) 전 공군참모총장은 “(정권을 등에 업은) 친일세력은 아버지를 제거하고 한국독립당 사람들을 탄압했다”고 회고했다. 한독당이 친공세력으로 몰린 것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을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총장은 아버지의 사후 경교장 지하에 있던 한독당 조직표와 명단을 가장 먼저 불태웠다. 많은 사람이 혹독한 탄압에 시달릴 것을 우려한 탓이다. 김 전 총장은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서 백범과 한독당의 명을 끊은 배후 세력으로 김창룡 전 육군 특무대장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목한다. 백범 사후 서른살 안팎의 청년이 저자를 찾아와 권총 한 자루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보국 요원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때였다. 저자는 “청년은 ‘김일성이 보내 이승만을 암살하러 왔다’고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내 신변보호를 요청했는데, 알고보니 김창룡이 꾸민 공작(올가미)이었다”고 전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김 전 총장에게 망명과 다름없는 영국 유학을 권하기도 했다. 1922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백범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론 크나큰 자랑이자 자부심이지만 늘 나와 가족의 어깨 위에 무겁게 드리워진 버거운 숙명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젖먹이 때 어머니(최준례 여사)가 돌아가시고 수차례 중국의 고아원에 맡겨졌지만 이때마다 그를 데리러 온 사람은 할머니 곽낙원 여사였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없고, 잠깐 뵐 수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별로 없다. 형과 할머니는 중국 땅에서 횡사했다. 그는 숱한 고난 끝에 중국 군관학교에서 공군비행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권유로 해방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공군 훈련을 마쳤다. 1947년 귀국해 육군 항공대에서 일하며 6·25전쟁 때는 조국의 산하에 폭탄을 투하해야 했다. 책에는 현대사의 비화가 수두룩하다. 6·25전쟁 중 미그 15기를 탈취하기 위해 만주로 급파될 뻔했으나 1953년 북한 공군 장교가 미그 15기를 몰고 귀순하면서 작전은 취소됐다. 공군참모총장 시절 맞은 5·16쿠데타 때 저자는 육군본부에서 박정희 장군을 처음 대면했다. 박 장군은 다짜고짜 “‘백범일지’를 여러 번 정독하고 깊이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주한미군 등 진압군에게 서울 시내가 전쟁터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주타이완 대사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한·중 수교 당시 막후 비선 라인으로 활동하고 1960년 북한의 핵개발 정보를 입수했던 일화도 전한다. 그는 “늘 죽음이 가까웠지만 아버지와 선열에 대한 자부심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누가 민주주의 질서를 해치고 있나?/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누가 민주주의 질서를 해치고 있나?/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이 쾌거를 정부수립 반세기 만에 달성했다. 경제성장도 기적이었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 중 하나다. 그런 기적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경제성장 과정에서처럼 민주화의 과정에서도 4·19와 5·18 등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이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질서를 흔드는 사례가 있어 걱정스럽다. 역대 대통령들의 인사 행태가 그중 하나다. 100년 전의 미국식 엽관주의가 지금 한국에서 되살아난 느낌이 들 정도다.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기 시작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현재 박근혜 대통령까지 인사 행태를 보면 엽관주의의 문제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미국은 1850년대를 전후해 엽관주의 폐해로 몸살을 앓았다. 대통령이 바뀌면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공직을 차지했다. 급기야 대통령이 암살되는 사건이 터졌다. 외교관 자리를 기대했지만 얻지 못한 찰스 귀토는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을 저격했다. 그때가 1881년이었고, 2년 뒤에는 펜들턴법을 제정해 실적제 중심의 인사 제도가 도입됐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출범했고, 전문가 중심의 인사제도가 정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도 중앙인사위원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당시 행정안전부(현재의 안전행정부)와 통합돼 자취를 감췄다. 박근혜 정부도 인사행정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를 답습하고 있다. 정부는 청와대에서 인사위원회를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작동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앙인사위원회가 있어서 척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안전행정부에 흡수 통합돼 인사의 독립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장차관급 인사뿐 아니라 600개가 넘는 준정부기관 및 공기업의 장과 감사 임명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공모제란 이름으로 몇 단계 과정을 거치지만 대부분 내정이고 공모는 형식적 절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인사의 독립성을 바로잡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공정성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행태도 민주적 질서를 해치고 있다. 국회는 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여당 국회의 행태는 그렇지 않다. 시녀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이라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에 문제가 있으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에도 말이 없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기초연금 문제를 지적해도 여당은 대통령의 뜻만 살피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공직후보자를 감싸려고만 든다. 정부를 견제하지 못한다면 입법부는 존재 가치를 잃는다. 민주주의의 근간 또한 흔들리기 마련이다. 야당 국회는 더 무겁게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의 독주, 여당의 밀어붙이기, 나아가 정부까지 견제해야 한다. 입법기관이라는 권한으로 이들을 견제하고 국민의 뜻을 의정활동에 반영하기보다는 국회의 문고리를 잡고 상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공직후보자가 잘못 사용한 법인카드도 문제지만 사법부의 일원이 감사원장으로 직행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는지에 대해 짚어야 했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엄중한 원리이고, 무너지는 전례가 생기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불법이다. 국가기관이 은밀한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면 또한 불법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것을 밝히면 되는 일을 여당은 대선불복이라고 하고, 야당은 헌법불복이라고 맞선다. 민주주의의 단맛을 가장 많이 본 집단이 교묘하게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해치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 케네디 대통령 쏙 빼닮은 ‘훈남’ 외손자 화제

    케네디 대통령 쏙 빼닮은 ‘훈남’ 외손자 화제

    50년 전 암살당한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외손자가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는 케네디 대통령의 피를 이어받은 유일한 손자로 외모 또한 할아버지를 쏙 빼닮아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캐롤라인 케네디(55) 신임 주일대사가 취임 선서를 마쳤다. 케네디 대사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녀이자 유일하게 생존한 자녀로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외모를 빼닮아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다. 케네디 대사는 지난 1986년 에드윈 슐로스버그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2명의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케네디 가문의 본격적인 정치 재개 신호탄을 쏜 이날 행사에서 언론의 관심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쏠렸다. 바로 이날 함께 참석한 케네디 대사의 아들 존 슐로스버그(20). 현재 예일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낮에는 학업을, 밤에는 지역 봉사를 위한 응급 구조 자격(EMT)을 훈련 중이다. 명문 케네디 가문의 후광과 재산, 여기에 할아버지를 빼닮은 수려한 외모는 그야말로 덤인 셈. 또한 존은 지난 1999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삼촌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케네디 이후 잠잠해진 케네디가의 차기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이같은 이유로 현지언론들은 케네디 대통령의 젊은 모습 사진과 비교하며 존이 차후 정치가로 나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진설명=위는 미 국무부 선서모습, 아래 왼쪽은 존 슐로스버그, 오른쪽은 23살의 존 F 케네디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니키타 3(OCN 밤 11시) 홍콩에서 사진작가로 위장한 킬러 마틴을 죽여야 한다. 니키타의 활약으로 디비전은 무너지고, 니키타는 소환 명령에 불응한 30명의 전직 요원들을 찾아 나선다. 한편 디비전에서 요원들을 가르쳤던 암살자가 디비전에서 쫓겨나자 혼자 12살 소녀를 납치해 살인 병기로 키워 낸다. 그는 과거에 실패했던 임무 완수를 위해 소녀를 시켜 테러를 계획하는데…. ■네버엔딩 스토리(스크린 밤 11시) 동생 부부에게 얹혀살며 로또 1등 당첨만을 기다리는 서른셋의 반백수 동주와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모든 걸 철저한 계획하에 사는 스물여덟의 은행원 송경.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한날한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들의 로맨스가 시작되는데…. ■만두명가(올리브 밤 8시) 우리나라의 만두 피는 당시 귀했던 밀가루를 대신하기 위해 더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메밀, 감자, 심지어 귀리로 만두피를 대신했고 식재료가 풍부했던 남도에서는 육고기, 죽순 등이 화려한 피로 변신했다. 우리나라 만두피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지역적 스토리부터 새로운 트렌드로 사랑받는 만두피에 대해 알아본다. ■20세기 미소년(QTV 밤 11시) ‘핫젝갓알지’의 드라마 프로젝트에 여주인공으로 엄현경이 출연한다. 엄현경은 드라마를 촬영하던 중 학창시절 god의 팬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를 들은 데니안은 아주 좋아했고, 두 남녀 사이에는 묘한 핑크빛 기류가 흘렀다. 한편 토니 안은 감독의 갑작스런 제안에 키스 장면이 생겼고, 촬영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제7회 렉서스 골프 아카데미 최강전(J 골프 밤 11시) 고수 중의 고수들만 모인 4강 첫 경기로 ‘홀인원 골프클럽’과 ‘포항 ABC 골프’가 맞붙는다. 이날 경기는 결승으로 가는 관문이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와 갤러리들의 응원은 사뭇 긴장감이 돌았다. 한편 8강전에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포항 ABC 골프’는 4강전만큼은 진지하게 경기에 임한다. ■명탐정 코난(애니맥스 오후 6시) 코난은 세계적인 마술사 공원표의 죽음을 조사하다가 그가 재다이얼을 이용해 남긴 숫자 암호를 풀어낸다. 그 암호에는 범인이 누구인지와 함께 또 살인이 일어날 것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범인이 공원표의 딸 마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미란이는 코난의 날카로운 추리 실력에 의심을 품는다.
  • “북한군 조종사들 시리아 내전 참전”

    북한군 조종사들이 시리아 내전에 참가해 정부군의 일원으로 반군 공습에 가담했다고 아랍어판 일간지 알쿠드스가 보도했다. 이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관할하는 전쟁 범죄를 적용받을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 신문은 지난달 28일자에서 부르한 갈리운 시리아국민위원회(SNC) 초대 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시리아 정권이 북한군 조종사를 고용해 반군 공습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갈리운 의장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정부군 조종사들을 믿지 못해 북한 공군 조종사를 고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리아에 파병된 북한 공군 조종사의 규모와 파병 시기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시리아 국민들 대부분은 수니파(이슬람 최대 종파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며 온건)다. 공군 조종사들 역시 수니파가 다수여서 시아파(이슬람에서 두 번째 큰 종파로 보수적이며 원칙 중시) 세력인 알아사드 정권이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군인들의 망명이 잇따라 남아 있는 조종사의 수도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북한이 시리아 정부군을 도왔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하지만 북한 공군 조종사가 시리아 내전에 직접 참전해 공습에 가담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군사 협력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으로 민간인도 다수 희생된 만큼 북한군 조종사의 공습 가담은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미국의 비영리 정책연구센터인 랜드연구소는 “미확인 정보이기는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고 최근에 경호 인력이 대폭 늘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랜드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340쪽 분량의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산케이에 따르면 보고서는 정권의 불법성과 경제 실태, 국민 탄압 등을 토대로 산정하는 ‘파탄국가지수’가 매우 높은 점을 근거로 북한 정권 붕괴를 시간문제로 규정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前간호사 “케네디 대통령 ‘미스터리 총알’에 맞았다”

    前간호사 “케네디 대통령 ‘미스터리 총알’에 맞았다”

    지금까지도 숱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사건 당시 병원에서 저격당한 케네디 대통령의 수술을 도왔던 간호사 필리스 홀(78)이 ‘미스터리 총알’ 에 대한 존재를 증언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세기의 암살사건은 지금으로 부터 50년 전인 지난 1963년 11월 2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서 발생했다.      당시 무개차를 타고 영부인과 함께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던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날아든 총알을 맞고 암살된다. 용의자로 체포된 인물은 리 하비 오스왈드. 그러나 오스왈드는 댈러스 경찰서 지하실에서 나오던 순간 나이트클럽 운영자 잭 루비에 의해 사살되며 사건은 영원한 미궁으로 빠졌다. 홀 간호사의 새 주장은 케네디 대통령이 맞은 미스터리 총알의 존재다. 홀은 “수술 중 대통령의 귀와 어깨 사이에 총알이 박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면서 “이 총알은 신체에서 발견된 다른 총알과 달라 보였다”고 증언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많은 총상 치료 경험이 있는데 이 총알은 1.5인치(약 3.8cm) 길이로 처음보는 종류였다”고 덧붙였다. 홀 간호사의 주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홀은 “이 총알은 수술 후 사라졌으며 다시는 보지 못했다” 면서 대통령 죽음에 음모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케네디 대통령 서거 50주기를 맞아 각종 의혹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역시 이에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 8일 케리 국무장관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오스왈드의 행적을 끝까지 추적했어야 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장관은 “대통령을 암살한 다른 저격수는 없었으며 중앙정보국 CIA도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 면서 음모론을 일축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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