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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2) 통영 미륵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2) 통영 미륵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경남 통영은 시인 백석의 시구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가고 싶은’ 곳이다. 시장 골목 사이로, 좌판을 벌인 상인들 뒤로 바다가 정겨운 이웃처럼 앉아 있다. 통영에서 흔한 것이 바다 풍경이지만, 한려해상의 진수를 보여 주는 곳이 미륵산이다. 미륵산은 아름다운 통영의 명성을 드높이고, 이 고장 출신 예술가들에게 눈부신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통영 150여개 섬 중의 보물섬 미륵도 통영 남쪽으로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데, 그것이 미륵도다. 육지와 섬이 워낙 가까워 섬 같지도 않지만, 다리를 건너야 들어설 수 있다. 이 미륵도야말로 하늘이 통영에 준 선물이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에 통영항은 사시사철 호수처럼 잔잔하다. 461m 높이의 미륵산 정상 일대는 사방으로 시야가 넓게 터져 한려해상의 최고 전망대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미륵산 케이블카가 완공되어 십여분이면 정상까지 갈 수 있지만, 호젓하게 걸어가는 것이 제맛이다. 산길은 용화사를 들머리로 정상에 올랐다가 관음사를 거쳐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가 좋다. 거리는 약 4㎞, 2시간30분쯤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용화사 광장. 널찍한 광장 뒤로 미륵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제법 우람한 정상의 산불감시초소가 성냥갑만 하게 보인다. 미륵산과 눈을 맞췄으면 광장을 중심으로 왼쪽 용화사 방향을 따른다. 오른쪽은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할 때 내려오는 길이다. 급경사 시멘트 도로를 오르면 널찍한 저수지를 지난다. 계곡물을 모은 곳으로 예전에는 통영시에 식수를 공급했다고 한다. 용화사에서 약수 한 바가지 들이켜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용화사 일대는 임도와 절 중창 등 공사로 다소 번잡하다.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한 굽이 돌면 화장실과 공원이 보이고, 그 뒤 오른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없어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길섶의 동백꽃 향기를 좇아 15분쯤 오르면 편백나무 사이를 지나 띠밭등에 닿는다. 미륵산 산길은 띠밭등에서 정상까지 500m가 고비다. 이곳만 지나면 힘든 곳이 없다. 20분쯤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면 나무 데크가 길게 놓인 정상 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포해전 전망대.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륵도 삼덕리가 옛 당포다. 이순신 장군이 거느리는 조선 수군이 겁도 없이 당포에 정박해 분탕질하던 왜선 21척을 단박에 박살 냈다고 한다. 전망대 옆에는 박경리 선생 묘소 전망 쉼터가 있다. 현대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꼽히는 ‘토지’의 저자인 박경리 선생의 기념관과 묘소가 아스라이 보인다.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이다. 당포해전 전망대에서 왼쪽 케이블카 정류장 쪽으로 100m쯤 가면 신선대 전망대가 나오는데, 여기에 정지용 시비가 놓여 있다. 이곳 전망대는 미륵산을 통틀어 가장 조망이 좋은 자리로 북쪽 통영항, 동쪽 한산도와 거제도 일대, 남쪽 소매물도 등 한려해상의 아름다움이 멋지게 드러나는 명당이다. 이곳을 선선히 정지용에게 내준 통영 사람들의 예술적 안목과 인심도 넉넉하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정지용 산문 ‘통영5’ 중) 정지용의 고백처럼 통영항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은 특별하다. 정지용은 담담하고 겸손하게 글을 썼지만, 내심 통영을 고향으로 둔 문인들이 무척 부러웠을 것이다. ●“미륵산서 본 통영 시내 야경 좋아요” 신선대에서 암봉이 우뚝한 봉수대를 지나면 곧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조망 안내판을 참고해 보석처럼 뿌려진 섬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으로 유명한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것이 거제도의 노자산~가라산 능선이다. 그 오른쪽으로 추봉도, 매물도와 소매물도, 비진도, 소지도 등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배 터지게 섬 구경을 했으면 하산이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서쪽으로 계속 능선을 타야 한다. 그동안 시야가 가렸던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완만한 능선을 내려오면 여우치(미륵치)다. 여우치에서 길이 여러 갈래로 퍼져 헷갈리는데, 관음사를 거쳐 내려오려면 용화사 방향을 따라야 한다. 길은 산비탈을 부드럽게 타고 돌면서 도솔암과 관음사를 술술 내놓는다. 여우치에서 만나 동행한 아저씨는 놀랍게도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는 미륵산 건너편 산양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내 미륵산을 넘어 출퇴근한다고. “미륵산은 일출도 좋지만, 통영 야경이 참 멋있어요. 언제 다시 오셔서 꼭 보세요.” 글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가는 길 &맛집 (지역번호 055)자가용은 대전통영고속도로 북통영 나들목으로 나와 시내로 들어간다. 서울고속터미널과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통영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통영터미널에서 용화사 가는 버스는 05:10~23:00까지 수시로 다닌다. 통영은 미식가와 술꾼에게 축복의 도시다.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나오는 ‘통영사랑 다찌집’(644-7548)이 유명하다. 서호시장의 다복식당(645-8202)과 수정식당(644-0396)은 해장으로 좋은 졸복국을 잘한다.
  • 김해성·박종일·장병호씨 ‘포스코 청암상’

    김해성·박종일·장병호씨 ‘포스코 청암상’

    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3일 오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김해성 ‘지구촌 사랑나눔’ 대표와 박종일 서울대 교수, 장병호 제천청암학교 교장 등 3명에게 ‘포스코 청암상’을 수여했다. 수상자들은 상패와 상금 2억원씩을 받았다. 청암봉사상을 받은 김해성 대표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데 20년간 헌신해 온 인도주의 운동가이다. 박 교수는 수학계의 난제였던 새로운 4차원 공간을 발견한 공으로 청암과학상을 수상했다. 청암교육상을 받은 장 교장은 1992년 사재로 제천청암학교를 세워 장애학생 교육에 힘썼다. 시상식에는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을 비롯해 김영학 지식경제부 차관,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장무 서울대 총장,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백성기 포스텍 총장 등이 참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1) 거제 노자산~가라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1) 거제 노자산~가라산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는 60여개의 새끼 섬과 900리 해안 절경을 품고 있다. 거제 하면 쪽빛 바다와 해금강이 유명하지만, 좋은 산이 많은 땅이다. 내륙으로 500m가 넘는 산들이 웅장한 산세를 이루고, 그 기운은 해안까지 뻗어나간다. 봄맞이 산행으로 빠지지 않는 곳이 노자산(子山·565m))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기화요초 향기 맡으며 해안 절경을 굽어보면 산 이름처럼 누구나 신선이 된다. ●한려해상 밟고 오는 봄의 발걸음 봄철 인기 있는 섬 산행 코스 중에서 거제 노자산은 독보적이다. 대개 섬 산은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홑산이 대부분이지만, 노자산은 거제 최고봉 가라산(585m)까지 제법 긴 능선을 밟을 수 있다. 여러 봉우리를 타고 넘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한려해상의 풍광을 바라보는 맛은 아주 특별하다. 노자산 산길은 거제자연휴양림을 들머리로 가라산까지 시원하게 종주하고, 저구고개로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거리는 약 8㎞, 5시간쯤 걸린다. 거제자연휴양림 입구에 내리니 훅~ 맑고 서늘한 공기가 밀려온다. 매표소 앞에 서자 노자산 능선이 활짝 품을 벌리고 맞는다. 능선 가운데 봉긋 솟은 마늘바위 아래로 잔뜩 물오른 고로쇠나무들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톡! 건드리면 겨울산의 한가운데를 뚫고 봄기운이 콸콸 뿜어져 나올 태세다. 휴양림에서 산길은 두 가지. 제1등산로는 마늘바위 옆의 전망대, 제2등산로는 노자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봄기운 담뿍 머금은 고로쇠나무 제2등산로를 따르면 길 양편으로 소사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두 팔을 벌리고 맞아준다. 40분쯤 오르면 노자산 정상이다. 서둘렀지만 동쪽 외도 방향에서 이미 해가 둥실 떠올랐다. 북쪽 내륙으로 북병산, 계룡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제법 웅장하다. 거제도를 흐르는 산줄기를 거제지맥이라 하는데, 능선이 순하고 조망이 좋아 인기가 있다. 서쪽 암반 뒤로는 율포만과 거제만,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메운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저 섬들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건너편 통영으로 건너가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능선을 타고 안부로 내려갔다가 올라서면 2층으로 지은 노자산 전망대. 이어 마늘바위를 옆으로 우회하면 길이 순해지고, 길섶에는 얼레지 잎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간혹 꽃봉오리를 단 녀석들도 보인다. 3월 말쯤 만개하면 능선은 꽃길이 된다. 노자산~가라산 일대는 봄철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해 식물 애호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진마이재의 원추리 군락 뫼바위 입구는 삼거리다. 여기서 조밭골을 따라 내려서면 학동해안에 닿는다. 제법 가파른 언덕에 올라서면 뫼바위다. 뫼바위는 거대한 암봉이라 사방 전망이 좋다. 동쪽으로 반원을 그린 학동해안에 눈길이 쏠린다. 이곳에 팔색조가 산다고 알려진, 천연기념물 제233호인 동백림 야생군락지가 있다. 뫼바위를 내려오면 만나는 진마이재는 원추리 군락지다. 연초록색 원추리 새순들이 파릇파릇 돋아났다. 새순을 살짝 데쳐 곁들이는 소주 한 잔 생각이 굴뚝같다. 쩝~ 입맛 다시며 20분쯤 오르면 드넓은 공터인 가라산 정상. 가라산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고려시대 산성과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북쪽으로 그동안 걸어온 능선과 마늘바위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대밭에서 쭈그리고 봄볕을 해바라기하다 다시 능선을 따르면 전망대가 선 망등이 등장한다. 전망대 앞에서 거제도의 최남단인 망산 일대가 다대해안과 저구리만과 함께 장쾌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전망대 뒤로는 길이 없고, 전망대 직전 다대마을 이정표 방향을 따라야 저구고개로 내려올 수 있다. 급경사를 내려오면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가 없는 왼쪽 방향이 다대마을, ‘저구고개’ 이정표를 따르면 곧 다대산성이다. 신라시대 쌓은 것으로 추정하는 다대산성은 태뫼식으로 돌을 쌓았고, 둘레가 약 400m에 이른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난대림이 울창하다. 특히 아름드리 참식나무들과 상록 덩굴식물이 많아 울창한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성 밖으로는 원형 해안을 품은 다대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그 뒤로 해금강이 아련하다. 산성에서 마지막으로 조망과 봄기운을 만끽하고 두어 개 봉우리를 더 넘으면 산행 종착지 저구고개다. 고개에 내려서자 도로 너머 에메랄드빛 저구해안이 바투 다가온다. 글 사진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가는 길&맛집 서울남부터미널에서 거제 고현행 버스가 06:20~24:00까지 약 40분 간격으로 있다. 고현에서 거제자연휴양림(055-63 9-8115)으로 가는 학동행 버스는 05:55, 07:55, 08:20, 10:15, 13:15, 16:15, 18:15, 일곱 차례 있다. 세일교통 055-635-5100. 산행이 끝나는 저구고개에서 15분쯤 가면 명사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 고현 가는 버스는 12:55, 16:00, 19:35에 있다. 거제시청 근처 맥반석(055-637-6660)의 멍게비빔밥이 별미다. 멍게젓갈에 김과 참기름을 곁들여 비벼 먹는 맛이 독특하고 국으로 나오는 물메기탕도 시원하다.
  •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59) 한북정맥 광덕고개~국망봉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59) 한북정맥 광덕고개~국망봉

    올겨울은 유별나게 춥고 눈이 많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설산에서 황홀한 한철을 보냈을 것이다. 어느덧 2월의 끝자락, 남도에서는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슬슬 겨울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가 된 것이다. 설경 좋기로 유명한 한북정맥 국망봉(1168m)에 올라 겨울 산하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겨울 정취를 만끽해 보자. ●한북정맥의 보석 구간 백두대간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산줄기가 한강 북쪽을 흐르는 한북정맥이다. ‘서울의 수호신’ 북한산과 도봉산이 뿌리를 둔 데다, 수도권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한북정맥 남한 구간 약 175㎞ 중 걷기 좋으면서 풍광이 빼어난 곳이 광덕고개(664m)에서 국망봉에 이르는 구간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적설량과 빼어난 설경을 자랑한다. 광덕고개에서 출발해 백운산, 도마봉, 신로봉 등을 넘어 대망의 국망봉을 찍고 국망봉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은 약 16㎞, 8시간쯤 걸린다. 다소 길지만 목표를 국망봉으로 잡고, 시간 여유가 없거나 힘들면 중간에 하산해도 괜찮다. 포천(抱川)은 한탄강을 품고 있어 붙은 이름이지만, 한북정맥의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북정맥 산줄기 중에서 광덕산(1046m), 국망봉, 청계산(849m), 운악산(936m) 등의 경기 명산들이 모두 이곳에 솟아 있다. 산행 들머리는 포천 이동과 화천 사내면을 이어주는 광덕고개다. 일명 ‘캬라멜고개’로 불리는데,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사단장이 급경사로 굽이도는 광덕고개를 오를 때면 차량 운전병들에게 졸지 말라고 캐러멜을 주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고갯마루에 반달곰 형상이 서 있고, 휴게소 사이를 지나면 산길을 만난다. 길섶에 제법 쌓인 눈이 반갑다. 유독 물푸레나무와 다릅나무가 많은 부드러운 능선을 1시간쯤 걷자 백운산 정상 비석이 반긴다. 궂은 날씨에 내처 발길을 옮겨 삼각봉에 이르자 날이 갠다. 구름에 푹 잠겼다 드러난 산하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상고대와 눈이 핀 나뭇가지는 마치 심해의 산호초를 떠올리게 한다. ‘ ●화악산, 국망봉, 명지산이 한눈에 도마봉 삼각봉에서 내려와 펑퍼짐한 봉우리에 올라서면 도마치봉이다. 정상 비석 뒤로 멀리 국망봉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상의 제법 넓은 공터는 순백의 눈이 깔려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에 첫 발자국을 찍는 기분이란! 이곳에서 하산하려면 흥륭봉 이정표를 따라 백운계곡으로 내려오면 된다. 다시 길을 나서면 얼어붙은 도마치샘을 지나 도마봉에 올라선다. 도마봉 역시 널찍한 공터인데, 전망이 끝내준다. 왼쪽으로 웅장한 화악산이 솟구쳤고, 오른쪽으로 국망봉이 버티고 있다. 그 가운데 멀리 우뚝한 봉우리는 명지산이다. 경기도의 내로라 하는 명산들이 한눈에 잡히는 순간이다. 도마봉은 한북정맥에서 화악지맥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석룡산을 거쳐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산줄기는 한북정맥을 압도한다. 그래서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군침을 흘리다가 나중에 화악지맥을 찾곤 한다. 도마봉부터 길은 방화선(防火線)을 따라 이어진다. 방화선은 능선에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폭 10m~20m쯤 나무를 벤 공간이다. 산불 방지에 효과가 있다 없다 말이 많지만, 여름철에는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고 겨울철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걷기에 아주 좋다. ●국망봉 눈부신 풍경 속에 스민 궁예의 한 발목까지 빠지는 방화선 눈길은 옆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허리까지 들어간다. 힘들고 좀 지루하다 싶어 푹신해 보이는 둔덕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눈밭에서 본 하늘은 유독 시퍼렇고 한가롭게 구름이 흘러간다. 겨울산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런 낭만을 누릴까. 암봉인 신로봉에 오르자 그동안 걸어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 쌓인 방화선 능선은 하얀 비단을 깔아놓은 듯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에 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신로봉을 내려오면 신로령. 여기서 국망봉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다시 가파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돌풍봉으로, 국망봉의 전위봉 격이다. 돌풍봉 앞쪽으로 하늘을 향해 예리하게 솟구친 국망봉의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다. 가파른 된비알에 젖먹던 힘을 쏟으니 세상이 발 아래 놓인 국망봉 정상이다. 과연 국망봉은 한북정맥 최고 전망대라 할 만하다. 북쪽으로 복주산과 광덕산을 거쳐 그동안 넘어온 봉우리들이 물결치고, 반대쪽으로는 명지산과 운악산으로 휘돌아 나간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궁예의 비통함이 스며 있다. 국망봉은 궁예가 불타는 철원 도읍지를 바라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 자신의 국토가 불바다가 되는 걸 바라보며 그 땅을 떠나는 궁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산은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진다. 입이 쩍 벌어지는 급경사 길이다. 로프와 스틱을 이용하며 관절의 하중을 잘 분산해 1시간30분쯤 내려오면 국망봉자연휴양림에 닿는다. 눈길에 요긴했던 아이젠을 푸는데, 피로와 뿌듯함이 기분좋게 밀려온다. 글 여행전문작가 mtswamp@naver.com ■ 가는 길&맛집 자가용은 47번 국도를 타고 이동을 거쳐 광덕고개에 이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광덕산행 버스가 06:50~20:30 약 40분 간격으로 있다. 하산 지점인 이동은 ‘일동갈비’와 ‘이동막걸리’의 고장이다. 이동갈비의 특징은 푸짐한 양과 감칠맛 나는 양념에 있다. 너도나도 ‘원조’라는 간판을 붙였는데, 김미자할머니집(031-531-4459)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은 소갈비보다는 저렴한 돼지갈비를 추천한다. 원주이동갈비(031-531-4733)는 국내산 고기와 직접 재배한 야채를 내놓는다.
  • ‘포스코 청암상’ 김해성·박종일·장병호씨

    ‘포스코 청암상’ 김해성·박종일·장병호씨

    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4일 올해 ‘포스코 청암상’ 수상자로 김해성(50) 지구촌 사랑나눔대표, 박종일(47) 서울대 교수, 장병호(57) 제천청암학교 교장 등 3명을 선정했다. 청암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 대표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20년간 헌신해 온 인도주의 운동가다. 2000년 지구촌 사랑나눔을 설립한 데 이어 2004년부터 외국인노동자 무료 전용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청암과학상 부문 수상자 박 교수는 수학계의 난제였던 새로운 4차원 공간을 발견, 세계 수학계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청암교육상 부문의 장 교장은 1992년 사재로 제천청암학교를 설립,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에 힘써왔고 세하직업훈련원을 통해 장애인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 국내 특수교육 발전에 공헌이 있다고 청암재단은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달 23일 오후 6시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1층에서 열린다. 상패와 상금 2억원씩이 수여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54) 제천 신선봉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54) 제천 신선봉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정선, 영월, 단양의 골짜기를 우당탕 굴러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 충주호다. 제천, 충주, 단양에 걸쳐 있어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가 아름다운 이유는 월악산, 금수산, 제비봉, 옥순봉 등의 명봉들이 호반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알려지지 않은 곳이 신선봉(845m)이다. 수려한 암릉이 숨어 있고, 충주호 조망은 어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제천의 산꾼들이 쉬쉬하며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다 제천시에서 주최하는 산악마라톤 코스에 신선봉 일부가 들어가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솔향 가득한 충주호 전망대 충주호 주변의 산 중에서 우두머리는 ‘중원의 맹주’로 불리는 월악산이다. 충주호 남쪽에 자리한 월악산은 최고봉인 영봉의 웅혼한 기상과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톱날 능선이 주변을 단숨에 제압한다. 충주호의 2인자는 동쪽에 자리 잡은 금수산이다. 예전 단양군수를 지냈던 퇴계 선생이 이 산에 올라 그 빼어남에 취해 금수산으로 불렀다는 지명 유래가 내려온다. 신선봉은 금수산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900m봉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향으로 약 7㎞ 뻗어 내려간 능선의 최고봉이다. 신선봉 능선에는 조가리봉, 학봉, 미인봉, 신선봉 등 총 4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산행 코스는 하학현 마을 금수산 가든 앞의 미인봉 등산로 입구에서 미인봉, 학봉, 신선봉을 차례로 오른 뒤에 사태골로 하산해 상학현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길이다. 거리는 약 7㎞, 5시간쯤 걸린다. 금수산 가든 앞쪽의 미인봉 등산 안내판 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컨테이너 뒤로 빨간 이정표가 붙어 있어 길 찾기가 쉽다. 이 길은 저승골 왼쪽의 날등을 타고 오르게 된다. 본래 미인봉은 저승봉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다. 천길 바위 벼랑으로 둘러싸인 저승골은 골이 깊고 으슥해 예로부터 골짜기에 들어선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어 저승골이란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10분쯤 오르면 오른쪽 조가리봉에서 뻗어 내린 암봉들의 수려함에 살짝 마음이 설렌다. 이후 제법 가파른 된비알을 30분쯤 오르면 쉼바위에 도착한다. 쉼바위 암반에는 분재한 것 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소나무 옆에 앉아 바라보는 조가리봉과 충주호 조망이 무척 아름답다. ●학봉에서 수려한 암릉 펼쳐져 쉼바위에서 다시 발길을 재촉하면 로프를 잡고 오르는 코스가 나온다. 두 손에 힘을 주고 등줄기에 땀이 좀 날 무렵이면 미인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여인의 젖가슴처럼 생긴 두 개의 바위가 있고, 잘생긴 소나무에 ‘미인봉 596m’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미인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거대한 암반이 나타나고 시야가 툭 터진다. 왼쪽 동산 능선과 학현 고개, 오른쪽으로 가야 할 학봉이 잘 보인다. 암반에서 학봉까지는 1시간쯤 걸리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학봉에 서면 손바닥바위가 서 있는데, 그 생김새가 기이해 킹콩바위라고도 부른다. 손바닥바위 뒤로 충주호가 아스라하고, 걸어온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학봉에서 본격적인 암릉 코스가 1㎞쯤 이어진다.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와 암릉이 어울려 선경을 빚어낸다. 조망 또한 빼어나 보는 각도에 따라 충주호, 금수산, 월악산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동금대삼거리에서 임도 따라 하산 학봉에서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나온다. 단단하게 묶인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바위를 올라야 한다. 아기자기한 암릉 구간에는 아찔한 코스가 연달아 나타나지만 곳곳에 튼튼한 로프가 있어 큰 위험은 없다. 이 길의 고비는 암릉이 끝나는 마지막 봉우리로 대략 20m 직벽이다. 로프가 잘 묶여 있어 팔 힘이 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팔 힘이 약한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없으면 그냥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직벽을 오르면 암릉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어지는 평탄한 능선을 40분쯤 가면 돌로 쌓은 케른(돌무더기)이 있는 신선봉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이어진 하산 길은 아주 순하다. 완만한 능선은 동금대삼거리로 이어지고, 여기서 길은 왼쪽으로 꺾여 임도로 변한다. 동금대삼거리는 봄, 여름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다. 완만한 임도를 따라 사태골을 40분쯤 내려오면 하산지점인 상학현 마을에 닿는다. 상학현에서 출발지점인 금수산 가든까지는 30분 걸어 내려오거나 지나가는 차를 잡아야 한다. 하학현리에서 16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오면 왼쪽으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신선봉 능선이 보인다. 그 속에 수려한 암릉이 숨어 있을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글 사진 mtswamp@naver.com ■ 가는 길&맛집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자가용을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온다. 청풍으로 이어지는 82번 지방도를 타고 금성면을 지나 청풍대교를 건너기 전에 16번 지방도 신선봉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영아치를 넘으면 학현리다. ES리조트 근처 얼음골매운탕(041-651-6075)은 주인이 직접 고깃배를 타고 나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주는 맛집이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51) 충북 영동 갈기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51) 충북 영동 갈기산

    갈기산(585m)은 충북의 숨은 보석이다. 인근 천태산에 가려 찾는 이 뜸해 호젓하고, 짧지만 옹골찬 암릉을 품어 풍광이 수려하다. 금강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덕에 시종일관 금강의 유장한 흐름을 볼 수 있고, 멀리 내다보면 천태산, 운장산, 덕유산 등의 산그리메가 펼쳐져 마치 강원도 깊은 산에 들어온 느낌이다. 산행 중 예상하지 못한 빼어남에 수시로 놀라고, 산행 후 이곳 별미인 어죽을 맛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전북 장수의 신무산(898m)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과 무주를 지나면서 자유분방한 곡선을 유감없이 그린다. 이를 감입곡류(嵌入曲流)라 부르는데, 하천이 산지나 고원지대를 흐를 때 침식을 받아 깊은 골짜기를 이루면서 뱀처럼 휘어도는 것을 말한다. 감입곡류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지나며 수려한 발자국을 남기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양산팔경이라 부른다. 양산팔경은 영국사, 비봉산(482m), 강선대, 용암 등의 8곳의 명소를 일컫는다. ●역사의 아픔 서린 ‘양산 덜게기’ 양산팔경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비봉산 옆으로 웅장한 산세와 정상부의 수려한 암봉이 눈길을 끄는 갈기산이 보인다. 갈기산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한 지도에도 이름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산 정상 부근의 암봉이 마치 말의 갈기처럼 수려하다 해서 갈기산이라 부른다. 갈기산의 산세는 이웃한 월영산(529m)과 함께 반원을 그리고 있다. 산행은 월영산까지 종주할 수 있지만, 능선을 타고 갈기산에 올랐다가 소골 계곡으로 내려와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좋다. 이 길은 약 4㎞, 3시간쯤 걸린다. 68번 지방도에 있는 가선리 바깥모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갈기산 등산 안내도와 등산로가 보인다. 능선으로 난 길을 따르며 산행이 시작되는데, 초장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15분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눈을 뒤집어쓴 월영산이 제법 웅장하고, 뒤를 돌아보면 얼어붙은 옥빛 금강이 슬쩍 보인다. 고도를 높일수록 금강은 유장한 곡선을 그리고, 곧이어 설악산 흔들바위 같은 둥근 바위와 나무 한 그루가 잘 어울린 전망대와 만난다. 이곳이 이번 산행을 통틀어 금강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이다. 금산에서 흘러와 갈기산 발목을 적시고, 양산팔경이 있는 송호리 방향으로 흘러가는 금강의 곡선은 참으로 아름답다. 강물처럼 아름다운 곡선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도시에서 수시로 접하는 직선에 몸과 마음이 베인 탓이다. 갈기산에서 금강으로 이어진 산비탈은 까마득한 벼랑인데, 이곳을 양산 사람들은 ‘양산 덜게기’라 부른다. ‘덜게기’는 바위나 절벽을 일컫는 이 지역 사투리다. 이곳에는 1593년 임진왜란 때에 있었던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갈기산 아래 금강 줄기는 영남과 호남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왜군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했다. 따라서 왜군의 금산 진입을 막으려는 조헌의 의병들에게 이곳은 천혜의 요새였고, 왜군에게는 죽음의 길목이었다. 당시 조헌의 의병과 합류했던 승병대장 영규대사는 양산 덜게기 바위벼랑 위에 돌을 쌓아 놓고 기다리다 적이 이곳을 지날 때 돌을 허물어뜨리면 능히 적을 무찌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헌은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며 영규대사의 계책을 쓰지 않고 이곳을 지나는 왜군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왜군은 이곳을 무사하게 지나자 너무나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말갈기 능선 타는 재미 쏠쏠 전망대에서 비탈을 15분쯤 가면 거대한 바위봉 갈기산 정상에 올라붙는다. 사방이 시원하게 뚫리는데, 북쪽으로 강 건너 천태산과 마니산이 어깨동무하고 있다. 그 서쪽 멀리 충청도 최고봉 서대산(903.7m)이 도도하게 솟았고, 남쪽으로는 산국(山國) 무주의 높고 낮은 산이 첩첩 산그리메를 이룬다. 600m가 안 되는 산에서 나올 수 있는 풍경이라고 도저히 상상이 안 될 정도다. 날이 좋으면 덕유산과 민주지산, 운장산도 잘 보인다. 갈기산에서 차갑재까지 이어진 암릉을 말갈기능선이라 부른다. 능선 타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주변 풍광도 빼어나고 겨울철에도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작은 봉우리를 넘다 뒤를 돌아보니, 갈기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어내린 암릉이 이름처럼 말갈기를 연상시킨다. 이어 제법 큰 봉우리를 넘으면 차갑재다. 갈기산과 월영산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여기서 북쪽 소골로 내려서게 된다. 수량이 적은 것이 흠이지만 아담하고 깨끗한 소골에 내려서면 주차장에 닿는다. 산행은 끝났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좋은 산을 만났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은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나들목으로 나온다. 68번 지방도를 타고 양산 방향으로 15분쯤 가면 어죽 식당이 많은 가선리를 지나 바깥모리 주차장에 이른다. 충북 영동은 금강의 싱싱한 민물고기를 이용한 어죽이 별미다. 가선리 선희식당(043-745-9450)은 커다란 냄비에 쌀·국수·수제비를 넣고 푸짐하게 끊여준다. 바다새우보다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나는 민물새우튀김도 별미다.
  • [도시와 산] (37) 경주 남산

    [도시와 산] (37) 경주 남산

    천년 고도 경북 경주에서 남산을 올라보지 않았다면 경주를 봤다고 할 수 없다. 남산이 신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곳이 남산 서쪽 기슭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 있는 나정이다. 진한의 6부촌장이 신라를 건국하기 위해회의를 한 곳도 나정이다.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포석정도 남산에 깃들어 있다. 신라 55대 경애왕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즐기다 불시에 쳐들어온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하고 천년 신라는 막을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포석정이 유흥 장소로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있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57) 소장은 “포석정은 제례의식을 행한 곳이다. 경애왕이 술 마시고 놀다가 죽은 게 아니라 신라의 장래를 위해 하늘에 기도를 드리다 변을 당했다. 화랑세기에도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산 연구를 위해 1999년 공직을 박차고 나왔다. ●신라의 시작·끝 역사 산기슭에 고스란히 남산만큼 자연과 문화유산이 조화를 이룬 곳은 드물다. 신라 화랑들의 훈련장이기도 했다. 신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혼이 깃들었다고 이곳에 불국토를 세우려 했다. 이를 증명하듯 골짜기마다 석불과 석탑이, 봉우리마다 절터가 있다. 절터 150곳과 석불·마애불 129기, 탑 99기, 석등 22기, 왕릉 13기, 고분 37기 등 모두 694개에 이른다. 산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다. 2005년 바위절벽 불상이 발견되는 등 지금도 계속 문화유적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흔적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남산을 일컬어 ‘산속의 노천박물관’이라 한다. 이 때문에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1985년에는 산 전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됐다.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경주시가 2052년까지 54년 계획으로 1200억원을 들여 남산을 살리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이 산이 품은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커서다. ●불상 대부분 8세기 중반 이후 세워져 남산에 왜 문화유적이 많은 걸까. 왕족과 귀족들이 불국사, 천황사, 황룡사 등 큰 절집에서 예불을 올릴 때 민초들은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이름 없는 석공들이 무딘 정을 들고 마음을 새겼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석굴암처럼 완벽하고 잘생긴 석불은 그리 많지 않다. 미완의 작품이 많다. 불상의 뒷모습 처리도 깔끔하지 않다.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부처상이나 옆집 아줌마 같은 넉넉한 보살상, 깊이 새기지 못하고 절벽에 윤곽만 새겨놓은 선각불 등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그래서 정일근 시인은 경주 남산이란 시에서 남산을 ‘신라인의 마음을 싣고 흘러가는 한척의 배’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는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은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소장은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8세기 중반 이후 새겨졌다. 이전에는 왕권이 안정돼 백성들이 남산에서 불상을 새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후 국가통제가 약화되면서 남산의 불상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산 불상을 백성들만 새겼다고 볼 수 없다. 먹고사는 데 여유가 있어야 불상 새길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귀족들도 남산을 찾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망산의 남산 향한 절개 고속도로가 끊어 남산은 돌산이다. 동서로 4㎞, 남북으로 8㎞로 뻗은 이 산에는 2개 봉우리가 오롯이 마주 보고 있다. 금오봉(해발 468m)과 고위봉(494m)이다. ‘고위’는 주변 봉우리보다 높다고, ‘금오’는 황금빛 거북 모양의 봉우리라고 해 붙여졌다. 남산은 어느 동네에나 다 있다. 경주 남산도 임금이 있는 반월성의 남쪽에 있다고 붙여졌다. 남산은 재미난 탄생 비화가 있다. 옛날 부부신이 경주에 내려왔다. 이들은 경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사랑을 속삭였다. 이때 빨래를 하던 동네 아낙네들이 거대한 부부신을 보고 “산봐라.”라고 외쳤다. 깜짝 놀란 부부신은 그 자리에 굳어서 남신은 남산이, 여신은 망산이 됐다고 한다. 망산은 주변 많은 산의 유혹에도 끄떡없이 남산만 바라보는 지조를 지켰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망산의 상당 부분이 잘려나가 남산에 대한 일편단심은 지킬 수 없게 됐다. ●남산의 주봉은 금오봉 남산의 등산로는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많이 오르는 코스가 삼릉에서 냉골계곡으로 오르는 코스다. 삼릉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을 지칭한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여름에도 찬바람이 분다는 냉골계곡을 따라 오르면, 상선암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제법 경사지지만 길지는 않다. 상선암 위에는 몸통뿐인 마가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능선을 따라가면 고위봉보다 높이는 낮지만 주봉인 금오봉에 도착한다.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오른쪽 용장골로 내려서는 길. 벼랑 끄트머리엔 산 전체를 기단 삼아 세워진 용장사지 3층석탑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쪽 등성이에는 황남빵을 쌓아놓은 듯 삼륜대석불좌상이 있고, 옆쪽 바위벽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용장사지는 옛 영화를 상징하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적막하다. 산대나무 터널을 지나 용장계곡을 통해 하산한다. 가족들과 함께 남산을 찾은 정모(47·대구 수성구 지산동)씨는 “남산에 10번째 왔는데 알면 알수록 풍성한 느낌이 드는 명산”이라고 말했다. 연간 남산 탐방객은 60만명에 이른다. 법정탐방로는 7개이지만 샛길이 100여개라 탐방객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원 경주사무소는 지난달 30일 동남산과 삼릉 등 2개 지점에 뒤늦게 전자계측기를 비치했으나 어림도 없다. 법정탐방로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남산에 드리운 조선 그림자 경북 경주 남산이 신라의 문화유적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조선의 그림자도 드리워 있다. 남산에서 가장 큰 절집 용장사다. 지금은 안내판만 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책을 다 불사른 뒤 평생을 유랑했던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생육신인 김시습은 이 절에서 30세 때부터 7년간 머물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창작했다. 금오신화는 설화를 소설형식으로 이끌어 올린 것인데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은 ‘만복사의 저포 놀이’, ‘이생이 담너머를 엿보다’,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남염부주 이야기’, ‘용궁잔치에 초대받은 이야기’ 등이다. 이 소설은 귀신과의 사랑, 염라왕과의 토론, 용궁에서의 생활 등을 다뤘다. 김시습은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자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중이 돼 방랑의 길을 떠났다. 10년간 떠돌아다니다가 세조 10년(1465) 경주에 도착, 용장사에 정착한다. 매월당도 용장사 앞에 매화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세조가 김시습의 거처를 알고 데리고 오도록 했으나 응하지 않으려고 용장사 건너편 골짜기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은적골이라고 한다. 37세 때에 경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뒤 성종 12년(1481) 47세 때 환속해 안씨와 결혼했다. 성종 24년(1493) 충남 홍산에 있는 무량사에서 일생을 마치니 59세였다. 용장사 위쪽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군데군데 깨진 삼층석탑은 자체로야 별다를 게 없지만, 바위에 올라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탑의 모습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며 위엄을 갖추고 있다. 삼층석탑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란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 “모든 석탑은 하층 기단이 있는데 이 삼층석탑만은 암봉에다 바로 앉혀 놓았다. 따라서 암봉이 하층 기단인 셈이다. 암봉이 해발 350m는 되니 세계 최고의 석탑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경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남 합천 가야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남 합천 가야산

    가야산(1430m)은 숨어 있다. 늘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사찰 해인사의 자자한 명성 뒤를 따른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진 웅장한 백두대간 능선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했던 가야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야산의 수려한 자태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 사진작가들이 덕유산에서 찍은 일출 사진 속의 태양은 소머리 같은 가야산 상왕봉(우두봉)에서 떠올랐고, 해인사가 아무리 넓다 해도 그 뒤로 수려한 암봉들이 바늘처럼 돋아났다. 가야산은 화려하다. 1000m를 훌쩍 넘는 높이에서 무수한 바위가 꽃처럼 피어나고 불꽃처럼 일어난다. 칠불봉에서 상왕봉(가운데)을 바라보는 산꾼. 가야산 정상 일대는 멀리서 보면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으로도 불린다. 옛사람들은 숨어 있는 가야산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산형은 천하의 으뜸이고, 지덕은 해동 제일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바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감록’에서는 도읍지의 기운이 한양을 거쳐 계룡산으로 옮겨가고, 종국에는 가야산으로 들어온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가야산 산길은 해인사를 들머리로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주군 백운동을 들머리로 암릉 구간을 오르며 만물상의 바위미를 즐긴 뒤, 칠불봉과 상왕봉을 비교 감상하고 해인사로 내려오는 것이 최상의 코스다. 거리는 약 9㎞, 4시간30분쯤 걸린다. 가야산 동쪽의 백운동 지구는 가야산성, 옛 금당사(金塘寺)의 여러 암자터 등 문화유산과 만물상을 비롯한 수려한 암봉들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지역이다. 백운동 버스정류장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바위 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구간이다. 안내소를 지나면 야영장이 나오고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형은 천하 으뜸, 지덕은 해동 제일 햇볕 잘 드는 호젓한 계곡을 20분쯤 가면 백운암지이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쯤 더 오르면 서성재에 도착한다.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아덤(서장대)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출입통제 구역이다. 상아덤은 가야국의 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아득한 옛날, 가야산에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正見母主)’란 여신이 살고 있었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르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응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오고 있다. ●가야국 신화와 기상으로 솟구치다 서성재에서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야산의 핵심 구간이다. 급경사 바위지대가 많지만 위험 구간에는 철계단이 잘 놓여 있다. 험난함에 비례해 만물상의 멋진 조망이 드러난다. 마지막 철계단과 가파른 로프 구간을 돌파하면 대망의 칠불봉 삼거리에 올라붙는다. 여기서는 먼저 칠불봉에 들렀다가 상왕봉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성주군에 속한 칠불봉의 높이는 1433m로 합천군의 상왕봉보다 3m가량 더 높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은 가야산 정상을 칠불봉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칠불봉은 상왕봉과 불과 200m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상왕봉과 동성재 암릉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 상왕봉과 칠불봉을 비교 감상하며 어느 곳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산꾼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됐다. 칠불봉에서 암봉들을 우회해 안부에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상왕봉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상왕봉 정상이다. 상왕봉의 조망은 가야산의 축복이다. 왼쪽 멀리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서 있고, 엉덩이 같은 반야봉의 펑퍼짐한 모습도 선명하다. 산줄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웅장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그곳이 덕유산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히는 것이다. 하산코스를 해인사 방향으로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투박한 돌부처가 길을 막는다. 얼굴이 닳아 거의 없어졌지만 잔잔한 미소는 입가에 남아 있다. 좋은 구경 잘했다고 감사의 절을 올리고 1시간쯤 계곡을 내려오면 해인사에 닿는다.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으로 나오면 백운동 지역이 지척이다. 대중교통은 대구를 거친다. 대구서부정류장→해인사, 1일 21회(06:40~20:00) 40분 간격으로 운행. 요금 4200원. 1시간20분가량 걸린다. 백운동으로 가려면 해인사 행 버스를 타고 가야면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요금 1만5000원. 해인사 아랫마을인 치인리의 삼일식당(055-932-7254)은 담백한 사찰 음식을 내오고, 40년 전통의 백운장식당(055-932-7393)은 산채정식과 더덕구이가 별미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6) 전북 완주 대둔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6) 전북 완주 대둔산

    산 좋아하는 사람치고 ‘산그리메’란 말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산그리메는 주로 아침 햇빛 속에 산이 중첩되어 아스라이 펼쳐지는 모습을 말한다. 마치 수묵화처럼 능선의 오묘한 선과 농담, 때론 안개와 구름 등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이른다. 그런데 이 단어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란 시의 ‘누이야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하는 구절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리메는 그림자의 옛말. 그러나 산꾼들은 산이 첩첩 펼쳐지는 모습으로 상상한 듯하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산그리메는 지리산과 덕유산처럼 큰 산이 아니면 보기 어렵지만, 늦가을에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대둔산(878.9m)이다. 전북 완주, 충남 논산과 금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렸다. 신라의 원효대사는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고도 했다. 기암단애가 절경을 이루는 대둔산의 강건한 기상은 권율장군이 1000명의 군사로 왜군 1만명을 격퇴시킨 이치(지금의 배티재)전투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둔산 제1경은 암봉들과 어울린 오색 단풍이 꼽히지만, 그보다 더 멋진 장면은 구름바다 위에 떠오른 산그리메다. 대둔산 일대에는 지형적으로 안개와 구름이 끼기 쉽고 특히 늦가을 기온차가 클 때 자주 일어난다. 대둔산의 핵심적 아름다움을 두루 꿰는 산행의 ‘고전’은 완주 산북리에서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칠성봉 전망대를 거쳐 용문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대둔산 길은 거칠지만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가 놓여져 있어 남녀노소 쉽게 찾을 수 있다. 거리는 약 2.5㎞로 천천히 둘러보면 2시간30분쯤 걸린다. ●케이블카 이용하면 정상까지 40분 대전에서 탄 버스가 안갯속을 헤엄쳐 배티재를 넘자 스멀스멀 연기가 풀리면서 대둔산이 나타났다. 영락 없이 신기루 속에 솟아난 마법의 성이다. 주차장에서 식당 거리를 지나면 케이블카 정류장. 안개가 낀 날이면 되도록 아침 일찍 출발하는 케이블카를 타는 게 좋다. 아래 세상은 안개에 잠겨 깨어날 줄 모르지만, 산 위에서 보면 구름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는 정상인 마천대를 바라보며 올라가는데, 시나브로 고도를 올리는 것이 마치 나무들을 부드럽게 밟고 올라가는 느낌이다. 무심코 반대편을 돌아보다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래 세상은 온통 구름바다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정류장 2층의 정자에 올라가 조망을 굽어본다. 빽빽한 구름바다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역광 속에서 산그리메가 물결친다. 정자에서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면 구름다리라 불리는 금강현수교. 1985년 길이 50m, 높이 80m로 세워졌다. 이전에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출렁다리였다고 한다. ●구름다리 금강현수교에 서면 아찔 암봉과 암봉 사이에 걸려 중간쯤에서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다리를 건너면 수직의 철계단인 삼선계단이 이어진다. 이 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으로 암벽등반의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중간에 멈춰 뒤돌아보면 지나온 구름다리와 산북리가 수직으로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온통 구름바다다. 마치 신선의 세계에서 인간 세상을 굽어보는 느낌. 푹신푹신한 구름 침대에 드러누워 긴 잠을 자고 싶다. “뭐해요. 빨리 정상에 가봐요. 반대편까지 훤히 잘 보여.” 풍경에 넋이 나가 굼뜬 필자에게 중년 남자가 내려오며 핀잔을 준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이 들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15분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 능선 삼거리에 올라붙고 이어 마천대 정상에 다다른다. 비로소 반대편을 비롯해 시원한 조망이 드러난다. 북쪽으로 계룡산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동쪽으로 서대산이 풍경의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남쪽으로 산그리메의 전형적인 풍경이 나타나는데, 구름바다 위로 크고 작은 능선들이 물결치고 멀리 웅장한 덕유산 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아~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 감동의 물결!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摩天臺)는 원효 대사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지었다. 높이는 900m가 안 되지만 체감 높이는 이름만큼 하늘에 닿아 있다. 마천대 한 켠에 무려 높이 10m의 개척탑이 우뚝 서 있다. 주변과 영 어울리지 않는 풍경. 다른 산처럼 작은 정상 비석을 세웠으면 좋았을 것을. 정상에서 용문골 삼거리까지는 순한 능선길이다. 제아무리 험한 바위들이 직립했더라도 부드러운 능선이 있는 법이다. 용문골 하산로는 험한 돌길이다. 중간 중간 쉬며 서두르지 않는 것이 안전산행의 지름길이다. 400m쯤 내려와 삼거리에서 용문굴을 지나면 칠성봉전망대다. 웅장한 일곱 개의 석봉이 이어진 칠성봉의 모습은 설악산 울산바위를 떠오르게 한다. 다시 삼거리에서 장군봉을 우회하는 길을 따르면 케이블카 정류장에 닿고, 산행도 마무리된다. ●가는 길과 맛집 대전과 금산에서 대둔산행 버스가 다닌다. 대전 서부터미널에서 대둔산행 버스는 07:45 13:20 17:30,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10:35. 금산터미널에서는 08:30 11:10 12:30 13:10 15:40 16:40에 있다. 대둔산 버스터미널 (063)262-1260. 금산의 별미는 어죽과 추어탕, 인삼튀김이다. 저곡리의 저곡식당(041-752-7350)은 인삼어죽으로 유명한 곳. 비린내가 전혀 없고 인삼을 넣어 뒷맛이 쌉쌀하다. 인삼어죽 5000원. 금산터미널 근처의 한양식당(041-754-6464)은 추어탕을 잘한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정읍 내장산 단풍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정읍 내장산 단풍길

    내장산은 몰려든 인파에 휩쓸려 허둥지둥 단풍 구경하고 돌아서기에 아까운 산이다. 내장(內藏)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간직한다.’는 뜻이고, 내장사의 옛 이름이 ‘신령을 숨기고 있다.’는 영은사(靈隱寺)이니 예나 지금이나 ‘숨기고 감추어 간직하는’ 뜻만은 변함없다. 산세는 내장 9봉이라 일컫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말발굽형으로 안을 둘러싸고 있다. 이처럼 안으로 감춘 산세는 임진왜란 때에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을 지켜낸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정읍의 안의와 손홍록 두 선비가 ‘조선왕조실록 825권 830책과 고려사 등의 기타 전적 538책’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낸 것이다. 당시 다른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원적계곡~벽련암길 백미 내장산 산행은 추령에서 시작해 내장 9봉을 종주하는 산길을 으뜸으로 꼽지만, 단풍구경을 하기에는 내장사에서 원적계곡을 거쳐 벽련암까지 작은 원을 그리는 코스가 아주 좋다. 거리는 3.6㎞로 넉넉히 잡아 2시간쯤 걸린다. 산길은 그 유명한 108그루 단풍터널 입구인 내장사 일주문에서 시작한다. 하늘도 땅도 사람들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길에 서면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연두색, 초록색, 붉은색, 흰색으로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했을까. 어쩌면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을 구경한 단풍나무들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 단풍나무는 100여년 전 내장사 스님들이 깊은 골에 자라는 단풍나무를 캐다가 백팔번뇌를 모두 벗어나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108그루를 심은 것이라고 한다. 느리게 걸어 다다른 내장사. 절 마당에 서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방을 둘러보니 내장 9봉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다. 이 자리에 내장산 아홉 봉우리의 정기가 모인다고 한다. 정혜루 앞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원적계곡으로 들어서면 호젓한 숲길이 이어진다. 북적거리던 내장사와 달리 사람들이 뜸해서 좋다. 원적암 입구에서 돌계단을 오르면서 왼쪽에 자리한 모과나무를 유심히 봐야 한다. 300살이 넘은 우락부락한 풍치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무줄기에 손가락만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자랐고, 기특하게도 붉은 단풍잎을 매달았다. 원적암을 지나면 600년 묵은 우람한 비자나무가 앞을 막는다. 내장산은 단풍 말고도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들이 어우러지기에 생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는 더 이상 북쪽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이곳에 떼 지어 모여 사는 북방한계 군락지를 형성한다. 이제 길은 평지처럼 순한 산비탈을 타고 돌다가 너덜지대를 만나는데, 이곳을 ‘사랑의 다리’라고 부른다. 연인을 업고 소리 내지 않고 지나면 아들을 얻는다는 속설이 얽힌 곳이다. ●벽년수 약수에 목을 축이고 너덜겅을 가만히 밟아보지만 덜컥! 돌 사이에 틈이 있어 소리가 안 날 수 없다. 이곳을 지나면 옛 내장사 자리였다는 벽련암. 암자 뒤로 힘차게 솟은 서래봉 암봉의 기상이 웅혼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내장산의 최고봉은 신선봉(763m)이지만, 그 형세나 기상으로 보아 서래봉(624m)이 주봉 역할을 한다. 암자 마당에서 스님이 건네주는 녹차를 ‘벽련선원’ 현판이 적힌 누각에 올라 조망을 즐기며 마신다. 건너편으로 장군봉에서 연자봉으로 이어진 주릉과 연자봉에서 내려와 전망대가 세워진 문필봉으로 흘러내리는 지릉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산세를 풍수지리에서는 제비가 모이를 먹이는 형국이라 한다. 문필봉이 제비 머리, 양 날개가 장군봉과 신선봉에 해당한다. 연소(燕巢), 즉 제비둥지에서 새끼가 모이를 받아 먹는 자리가 바로 벽련암이다. 벽련암을 나와 백년수 약수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내려오면 내장사 일주문이다. 여기서 다시 단풍터널을 한동안 서성거린다. 내장산을 한 바퀴 돌아보니 화두처럼 질문 하나가 자라나고 있다. 내장산처럼 내 안에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15분쯤 간다. 대중교통은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정읍행 버스가 오전 6시30분∼오후 11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정읍에서 내장산행 시내버스 171번은 정읍역과 터미널 앞에서 30분 간격. 내장산은 30가지 반찬이 나오는 산채정식이 유명한데, 30년 전통의 한일관(063-538-8981)의 맛이 정평이 나 있다. 정읍 시내의 한정식집 ‘정촌’(063-537-7900)은 1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남도 밥상을 만끽할 수 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내장산에서 절정을 맞는다. 우리 땅의 단풍 기상도는 늘 그렇다. 단풍의 남하 속도는 하루 25㎞, 시속 1㎞의 거북이걸음으로 울긋불긋 떼 지어 내려간다. 날이 쌀쌀해지면 단풍의 발걸음은 토끼걸음으로 바뀐다. 그래서 가을은 문득 왔다가 쏜살같이 사라진다. 내장산 단풍 소식이 들릴 무렵 사람들은 불현듯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서둘러 단풍 구경에 나서면서 내장산은 몰려든 사람들로 홍역을 치른다. 내장산이 없었다면 단풍 구경 제대로 못하고 겨울을 맞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2) 청송 주왕산 주방계곡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2) 청송 주왕산 주방계곡

    경북 내륙의 오지인 청송이 시끌벅적할 때가 있다. 차가 뜸한 시내에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청송에서 방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워진다. 주왕산이 단풍 절정기인 10월25일쯤이다. 이때는 우리나라 단풍의 흐름으로 보아 설악산은 절정이 지났고 내장산은 좀 이른 시기로 주왕산이 그 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주왕산은 예전 석병산이란 이름처럼 걸출한 암봉들과 어울린 단풍의 자태가 빼어나고 산길이 순해 인기가 좋다. ●주왕의 전설 서린 기암 천국 주왕산은 구석구석 좋은 곳이 많다.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주방계곡과 절골, 전망 좋은 장군봉과 가메봉, 그리고 100년 묵은 왕버들이 잠겨 있는 주산지 등. 볼거리가 많다 보니 하루 산행으로 주왕산을 둘러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주방계곡이다. 대전사에서 내원동까지 이어진 계곡은 수려한 암봉 사이를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단풍과 어울린 절경을 선사한다. 거리는 약 4㎞쯤 되지만 길이 순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대전사로 가는 길은 난전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인근 농가의 아낙들이 자리를 잡고 사과, 대추, 고추, 산수유 등을 내놓고 식당들은 길가에서 빈대떡을 요란하게 뒤집는다. “이따가 와요. 맛있게 해줄게.” 호객하는 아주머니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가노라면 어느덧 대전사. 보광전 뒤로 우뚝 솟은 기암은 주왕산의 상징으로 산행 초입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는다. 생김새는 메 산(山) 자의 모양에 45m 높이의 봉우리가 살며시 홍조를 머금고 있다. 기암은 기이한 바위가 아니라 깃발을 꽂은 봉우리(旗岩)란 뜻이다. 주왕산은 특이하게도 중국에서 왔다는 주왕의 전설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진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던 주도로 알려졌다. 거사를 실패한 주도는 신라 땅까지 쫓겨 왔고,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의 마장군 형제들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다. 토벌에 성공한 마장군은 주왕산에서 가장 잘 보이는 암봉에 깃발을 꽂았다고 한다. 그래서 기암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최근에 주왕이란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나왔다. 청송의 향토사학자 김규봉씨는 주왕이 신라 헌덕왕 때 왕권의 잦은 교체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와중에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과 그의 아들 김범문이라고 주장한다). ●3개의 폭포와 단풍이 어우러진 주방계곡 대전사를 지나면 갈림길, 왼쪽으로 좀 가면 백련암 앞에 화사한 국화밭이 있어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기암을 올려다보는 맛이 기막히다. 백련암을 구경하고 다시 주방계곡을 따르면 본격적으로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들바위를 지나 제1팔각정에서 주왕굴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올라갈 때는 계곡을 따르고 내려올 때 주왕굴을 들르는 것이 좋다. 여기서부터는 거인의 얼굴 모양의 기암(奇巖)들의 영접을 받는다. 먼저 급수대가 오른쪽에서 고개를 쳐들고, 다음은 시루봉과 학소대가 차례로 얼굴을 내민다. 급수대가 험상궂다면 시루봉은 인자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학소대 앞의 다리를 건너면 길은 거대한 협곡 사이로 들어가는데, 꼭 비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같다. 쿵쿵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협곡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싼 암봉을 물들이고 그 아래 1폭포가 걸려 있다. 어느 무릉도원이 이보다 화려할까. 폭포를 지나 500m쯤 가면 2폭포 갈림길. 여기서 100m쯤 떨어진 2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계곡을 따르면 3폭포에 이른다. 3폭포는 3단 폭포로 주방계곡의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가을 가뭄 때문에 물줄기가 좀 약한 것이 흠이다. ●내원동 오지마을에는 쓸쓸한 억새의 물결이 3폭포를 지나면 협곡이 끝나면서 길은 평지로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하게 넓어진다. 세 그루 서어나무가 기품 있게 서 있는 곳에 ‘내원동’이란 팻말이 보인다. 걸음을 재촉하니 돌무더기 가득한 서낭당이 보인다. 내원동은 몇 년 전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로 유명해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한 집만 남았다. 국립공원에서 생태보전을 위해 내원동 주민들을 아랫마을로 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성황당을 지나면 예전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던 자리에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길은 계곡과 억새밭 사이를 구불구불 이어지다 산수유농장을 만난다. 내원동에 마지막 남은 집으로 등산객들에게 산수유차를 팔고 있다. 마침 할머니와 손자가 산수유를 고르고 있다. “이젠 우리 집도 내려가야 해요. 참 좋은 곳인데….” 주방계곡 산행은 여기까지다. 할머니의 쓸쓸한 말처럼 하산의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안동과 청송을 거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는 06:20, 08:40, 10:20, 11:40, 15:00, 16:30에 있으며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주왕산에서 동서울행은 08:20, 10:30, 13:00, 14:08, 15:48, 17:05에 있다. 맛집은 명일여관식당(054-873-5259)의 산채정식이 유명하고, 내원동에서 오랫동안 내원산장을 운영했던 부부가 문을 연 내원산장식당(054-873-3798)의 약수한방백숙도 괜찮다. 또한 월외리 달기약수 근처에는 백숙을 하는 집들이 몰려 있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0) 인제 내설악 만경대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0) 인제 내설악 만경대

    이미 대청봉에는 불이 당겨졌다. 대청에 부는 바람 속에서 겨울을 감지한 나무들은 서둘러 잎에 저장된 양분을 줄기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잎에 남아 있던 색소가 붉게 혹은 노랗게 드러나는데, 이것이 단풍이다. 식물에게 단풍은 생존 방식이지만, 인간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자연의 축복이다. 설악산에서 부담없이 단풍 구경하기에 내설악 만경대만한 곳이 없다. 백담사에서 만경대로 가는 길은 만해 한용운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의 시구절이 떠오르는 그윽한 단풍 숲길이다. ●6.4㎞ 오세암 가는 길에 숨은 비경 설악산에는 만경대가 셋이다. 오세암 직전의 내설악 만경대, 양폭산장 위쪽의 외설악 만경대, 오색 근처의 남설악 만경대. 만 가지 경치를 두루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니, 단풍 풍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옛 문헌에는 내설악 만경대만 기록되어 있지만, 점차 외설악과 남설악이 하나씩 생겼다. 내설악 만경대가 깊은 맛이 있다면, 외설악 만경대는 눈이 멀도록 화려하다. 그리고 남설악 만경대는 가장 늦게 생긴 탓에 아는 이가 드물다. 세 개의 만경대 중에서 가장 찾기 쉬우면서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내설악 만경대다.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설악의 단풍을 즐기려면 서둘러야 한다. 내설악의 단풍절정기는 10∼13일쯤이다. 일기예보에서 단풍절정기(10월 20일쯤)란 말을 듣고 떠났다가는 찬바람만 두들겨 맞기 십상이다. 산행 코스는 오세암 가는 길과 같다. 내설악의 산문 격인 백담사에서 시작해 영신암을 거쳐 만경대에 올랐다가 오세암을 찍고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는 6.4㎞, 3시간30분쯤 걸린다. 길은 험준한 설악산답지 않게 순하고 부드러워 아이들도 잘 올라간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이어진 백담계곡은 예전에는 걸어 다녔지만, 요즘은 셔틀버스를 타고 절 앞까지 오른다. 버스에서 내려 백담사로 이어진 백담교를 건너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지만, 계곡을 물들인 화려한 단풍빛에 온몸이 벌렁거린다. 절에 들러 만해 한용운 동상 앞에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붉게 물든 계곡으로 달려간다. 물가에 있는 나무들의 단풍이 더욱 곱고 진하다. 백담사를 지나면 수렴동계곡을 따라 평지처럼 순한 길이 이어진다. 계곡물은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띠고, 길섶에는 붉고 노란색의 단풍들이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 찬란한 풍경 속을 걷다보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올챙이처럼 두 눈을 뜨고 감탄을 연발한다. 어쩌면 한용운 역시 이 길을 산책하다가 ‘님의 침묵’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1시간쯤 지나면 암자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중창불사를 한 영심암에 이른다.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10분쯤 더 가면 갈림길, 여기서 오세암과 봉정암이 갈린다. 오세암 방향으로 들어서면 슬그머니 길은 오르막으로 변한다. 작은 고개를 넘어 두 번째 고갯마루에서 만경대로 올라가는 것이 이번 산행의 포인트다. 만경대란 이정표가 없기에 오세암 직전의 고개를 기억하면 되겠다. ●다섯 살 동자와 관음보살의 순수한 교감 고갯마루에서 가파른 산길을 10분쯤 올라가면 소나무와 암반이 어우러진 정상부가 나온다. 이곳이 내설악 만경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북동쪽으로 훤히 보이는 오세암. 공룡능선을 병풍처럼 두른 모습이 한눈에도 기막힌 명당자리다. 단풍과 전나무의 초록, 그리고 천수관음보전의 청기와 지붕이 어우러진 모습은 그대로 동화 속의 한 장면이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공룡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설악산의 제왕인 대청봉의 육중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 앞으로 대청을 지키는 수호신 용아장성릉의 암봉들이 육식 공룡 이빨처럼 드러나 으르렁거린다. 용아장성릉 뒤로 보이는 높은 능선 마루금은 귀때기청봉(1577m)에서 대청으로 이어진 서북능선이다. 과연! 이곳 만경대처럼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내설악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 또 있을까. 만경대를 내려와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오세암. 다섯 살 아이가 홀로 폭설 속에 고립되었으나 관음보살과 순수한 교감을 나누며 성불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오는 소박한 암자다. 이 전설은 동화작가 정채봉의 손에 의해 오누이의 이야기로 변주되면서 우리의 심금을 더욱 울리기도 했다. 오세암에서 되돌아오는 길은 그동안 달아올랐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한다. 설악의 깊은 아름다움이 시나브로 슬픔의 감정까지 불러오는 것은 왜일까. 내설악을 찬란하게 비추던 빛이 점점이 사라지며 땅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땅거미가 가야 할 길을 집어삼킨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버스가 오전 6시15분부터 오후 6시40분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길이 좋아져 2시간30분 밖에 안 걸린다. 백담사 일대에는 황태요리와 순두부가 유명하다. 할머니황태구이(구 할머니순두부·033-462-3990)집은 30년간 산꾼들에게 뜨끈한 순두부와 황태요리를 선사했다. 단풍철이면 속초 동명항에 양미리가 제철이다. 항구 노천에서 연탄불을 피워 양미리를 구워준다. 1만원이면 두 사람이 배 부르게 먹는다.
  •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를 누가 수리산 자락에 조성했을까. 매우 공평한 결정이라고 여길 만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5곳 가운데 하나인 산본은 분당, 평촌 등 다른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떨어져 주민들의 실망감이 적지 않다. 대신 이곳 주민들은 울창한 숲과 신선한 공기를 뿜어주는 진산을 선물 받았다. 산본신도시를 병풍처럼 감싸 안고 안양과 안산에 걸쳐 있는 수리산은 3개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녹색섬’이다. 인근 도시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연평균 140만명이 찾는다.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은 한남정맥의 한줄기로,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듯한 산세를 지녔다. 사시사철 숲이 울창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무수한 굴곡을 이루면서 뻗어 있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산림욕장이 조성돼 있으며 약수터와 명상의 숲, 개나리 숲, 한마음 놀이터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수리산이란 이름은 우선 산본이나 군포시에서 보면 독수리를 닮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를 보면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신라 시대의 거찰인 수리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한다. ●연평균 140만명 찾는 수도권 남부 진산 수리산에는 군포시와 안양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8경 가운데 4곳이 있을 정도로 두 지역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최고봉인 태을봉(489m)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산신제가 행해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오고 있다. 태을봉을 중심으로 슬기봉(451.5m), 관모봉(426.2m), 수암봉(395m)이 연결돼 있다. 맑은 날 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 인천 송도신도시와 수원시가지까지 볼 수 있다. 일출시 산 그림자가 태을(太乙) 형상을 연출해 군포의 제1경으로 꼽힌다. ‘태을’은 도교의 천제(天帝)를 지칭하지만 십간의 하나로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군포시의 제2경인 수리사는 수리산 거룡봉 해발 225m 지점인 속달동에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으며 전성기에는 대웅전 외에도 36동의 건물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있는 거찰이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전소됐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다. 군포시 속달동 ‘구렁터 당숲’은 음력 10월1일이면 이틀간 동제(洞祭)가 치러지는 전형적인 마을 숲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정래륜이 조성했으며 100~300년가량 된 고목들이 우거져 2003년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리산 안양 9동 ‘담배촌’에 조성된 최경환 성지(안양 제5경)는 2000년 순례지로 지정됐다. 최경환(1805~1839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1821~1861년)의 아버지로 담배촌에 정착해 천주 신앙을 전파하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했다. 전국 각지에서 연간 3만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찾는다. 병목안 석탑(안양 제7경)은 병목처럼 마을 초입이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목안 삼거리 부근 채석장 자리에 대규모 절개지 사면을 이용해 길이 65m, 넓이 95m의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다. 수리산은 편리한 교통망 때문에 군포·안양·안산뿐 아니라 인근 수원·과천·의왕 등 수도권 주민들로부터 각광 받고 있다. 전철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 금정역, 명학역 등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 정도면 등산로에 닿는다. 3개 시에 걸쳐 있는 만큼 코스도 다양하다. ▲안양소방서~충혼탑~팔각정~능선삼거리~관모봉~태을봉~슬기봉~용진사~한양8단지 ▲안양 병목안삼거리~능선삼거리~관모동~태을봉 ▲성결대정류장~상록수약수~관모봉~태을봉 ▲안산 수암파출소~수암봉약수~수암봉~335봉~창박골재~병목안삼거리 등으로 크게 나뉜다. 코스별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전철 산본·금정역에서 걸어서 20분 수원 세류초등학교 32회 산악회장 이필현(49·회사원)씨는 “산악회원들과 수리산을 자주 찾는데, 늘어선 봉우리들의 자태가 빼어나고 곳곳에 바위길을 가진 능선이 변화 있게 이어져 도심에 있는 산 가운데 몇 안 되는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고 소개했다. 특히 울창한 수림으로 조망이 좋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의 산세가 험하지 않아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나 여성들에게 큰 부담이 없다. 산행 초입부터 송림이 울창해 상쾌한 느낌을 준다. 자외선 노출이 우려돼 야외활동을 꺼리는 여성들에게 수리산은 건강도 챙기고 취미생활도 살려주는 건강코스이다. 얼마전 수리산을 처음 다녀온 주부 최경민(48·수원시 영통동)씨는 “모처럼의 산행이어서 힘들지 않을까 겁부터 났으나 관모봉까지 30여분간을 빼곤 별 어려움 없이 산을 탈 수 있었다.”며 “명상의 숲 등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여성들에겐 안성맞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수리산 셀프카메라 군포 수리산이 지난 7월16일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71년 지정된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 일대, 2005년 가평군 연인산 일대에 이어 3번째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 면적 6.97㎢ 가운데 군포시가 4.3㎢(속달동)로 가장 넓고 안양시 안양동 관내 2.55㎢,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관내 0.12㎢ 등이다. 수리산은 전체 면적 가운데 75%가 도유지, 4%가 국유지, 16%가 사유지로 이뤄져 있다. 경기도는 2006년 10월부터 제3도립공원 대상지를 물색했다. 공모를 통해 신청된 도내 각 지역의 산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수리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소요산, 청계산, 명성산, 철마산 등 쟁쟁한 경쟁지를 물리친 것은 수리산이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지역 주민들의 열기도 한몫했다. 수리산은 자연 생태계 측면에서도 한국 특산종인 변산바람꽃, 맹꽁이, 왕은점표범나비, 고려집게벌레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다. 박쥐능선(태을봉~슬기봉)과 수리사, 속달동 바람고개 주변은 자연 경관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는 이달부터 도립공원 조성을 위한 설계에 들어간 뒤 내년 상반기부터 2011년 말까지 116억원을 들여 이곳에 주차장과 화장실, 방문자 센터, 등산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노재영 군포시장은“수리산은 수도권 남부주민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도심 녹색공간”이라며 “도비를 지원받아 ‘자연을 지키며 숲을 배우는 공원’이라는 컨셉트에 맞는 도립공원으로 꾸며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산(870m)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봉우리(육육봉)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산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경북 내륙의 오지 중의 오지였던 봉화가 요즘 뜨고 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서 5∼6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청정한 오지의 자연이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매년 열리는 은어축제와 송어축제, 그리고 올해 초에 상영해 큰 인기를 누린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 또한 5월에 개통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량산 하늘다리를 찾는 인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840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찍고 청량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거리는 약 5㎞, 4시간쯤 걸린다. 청량산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배 안에 올라 갓끈을 풀어 땀을 닦던 퇴계는 강물에 흔들리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널찍한 다리를 몇 초 만에 건너 버린다. 참으로 분위기 없는 입산이다. 다리 건너 2㎞쯤 떨어진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 초반엔 급경사… 10분쯤 지나면 순해져 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10분쯤 오르면 순해지면서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들어선 응진전이 눈에 들어온다. 응진전 뒤로 보이는 큰 암봉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한다.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의 바위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스님이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그 바위가 도로 올려져 있어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응진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16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공민왕과 함께 홍건적의 침입 때 피란 온 노국공주가 손수 16나한을 깎아 응진전에 모시고 홍건적 퇴치와 국가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응진전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어풍대는 천 길 벼랑으로 철 난간 쪽으로 가까이 가면 청량산 육육봉이 연꽃처럼 펼쳐지고 그 안 꽃술자리에 청량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과연 청량사의 자리는 청량산의 기운이 모이는 기막힌 명당이다. 어풍대를 지나면 신라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 명필로 유명한 김생이 은거하며 글씨를 썼다는 김생굴을 차례로 지난다. 이어 길은 어풍대에서 보았던 암봉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휘돌아가며 자소봉에 이르는데, 그 오묘한 조화에 힘든 줄 모른다.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정상이다. ●북쪽 멀리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스님들은 보살봉, 주민들은 탕건봉으로 부르는 자소봉은 청량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보다 40m쯤 낮지만 육육봉의 중심축을 이루며 그 생김새가 수려하기 때문이다. 북쪽 멀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자소봉을 내려오면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탁필봉과 연적봉을 우회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면 뒷실고개 삼거리.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웅장한 하늘다리가 버티고 있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의 고도는 약 800m, 길이 90m, 지상높이 70m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현수교다. 다리로 들어서니 워낙 튼튼하게 지어 흔들림이 거의 없다. 가운데 멈춰서니 왼쪽 병풍바위 뒤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장관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뒷실고개에서 급경사 계단 800m를 쉬엄쉬엄 내려오면 청량사다. 주지인 지현스님과 신도들은 험한 산비탈에 옹색하게 들어앉은 청량사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 놓았다. 길에는 시멘트 대신 침목을 깔았고, 정갈한 장독대, 기왓장으로 만든 수로, 아담한 찻집 등의 모습이 정겹다. 공민왕의 친필이라 알려진 유리보전 건물 앞 의자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가을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의 풍경을 건드린다. 저물어 가는 산사에서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를 거쳐 봉화에 이른다. 서울에서 3시간쯤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행 버스가 07:40, 09:40, 11:50, 13:50, 16:10, 18:10에 있다. 소요시간 2시간40분.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06:20, 09:20, 13:30, 17:40. 안동에서도 청량산행 버스가 05:50 08:50 11:50 14:50 17:50에 다닌다. 봉화는 질 좋은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가 유명하다. 한약우프라자(054-674-3400)는 1++ 등심 200g이 1만 4000원으로 저렴하다.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54)673-6194.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33) 동해 댓재~두타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33) 동해 댓재~두타산

    여름이 끝물이지만 맹위를 떨치는 늦더위에 시원한 계곡이 간절해진다. 여름 산의 보물은 계곡 말고도 높은 능선에 있다. 1000m가 넘는 산은 서늘한 공기를 내뿜고, 길섶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두타산(1353m)에 올라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그 유명한 무릉계곡에 발을 담가 보자. ●백두대간 종주로 알려진 댓재 길 강원도 동해시의 두타산은 바다 가까이 백두대간 능선이 흐르는 구간이다. 두타산 하면 무릉계곡을 품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1300∼1400m급 웅장한 능선과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그득한 곳이다. 그래서 여름철 능선과 계곡을 모두 즐기는 산행지로 그만이다. 산행 코스는 댓재에서 출발해 두타산까지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고, 하산 길에 무릉계곡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산행 들머리인 댓재(810m)는 백두대간 산꾼들만 찾는 곳이었는데, 두타산 등산객들이 몰리면서 제법 사람들이 늘어났다. 댓재 산신각 옆을 지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서 두타산까지는 6㎞ 남짓, 시간은 2시간30분쯤 걸린다. 원시숲이 내뿜는 달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30분쯤 가면 작은 봉우리 햇댓등에 올라붙는다. 햇댓등 부근에는 유독 밑동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득하다. 춘양에서 보았던 금강소나무처럼 미끈하지는 않지만 굵고 단단해 보인다. 사람이 관리하는 소나무에서 볼 수 없는 야성이 흘러넘친다. 햇댓등에서 두타산까지는 고도를 약 450m 끌어올리는 길. 부침이 심하진 않지만 뚝뚝 땀을 흘리며 묵묵히 걸어야 한다. 두타산의 두타(頭陀)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라 그런지,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진다. 산행이 수행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 땀을 흘리면 정상을 만난다는 점이다. 통골목이(통골재)는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댓재, 햇댓등, 명주목이, 통골목이… 그러고 보니 지나온 곳마다 이름이 예쁘다. 통골목이에서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고비다. 1243봉부터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그야말로 천상화원. 말나리, 동자꽃, 모시대, 풀솜대, 눈개승마 등이 길섶에서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실컷 꽃구경을 하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잡목들이 한순간 사라지고 널찍한 두타산 정상이 나타난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북쪽으로 청옥산(1403m)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백두대간 능선이 감싼 깊은 계곡이 바로 무릉계곡이다.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니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가 두타산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두타산의 숨은 보물, 두타산성 하산은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르지 않고,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란 팻말이 붙은 북쪽 능선을 따른다. 그 이유는 두타산성을 보기 위해서다. 20분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놀랍게도 청옥산으로 이어진 능선 조망이 두타산 정상보다 빼어나다. 과연 명불허전, 두타산이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세를 가진 곳 중의 하나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다. 이어지는 쉰움산 갈림길에서 무릉계곡 방향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고풍스러운 소나무들과 빼어난 암봉이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한다. 이곳이 두타산이 꼭꼭 숨긴 보물인 두타산성이다. 산성은 1414년 조선 태종 때 축성했다고 전해지나 102년 신라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도 한다. 이처럼 빼어난 장소를 우리의 선인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1224~1300)가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라 불렀다고 한다.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임을 처음으로 밝힌 역사서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이곳에서 탄생하게 된다. 두타산성을 내려와 산성십이폭을 지나면 드디어 무릉계곡으로 떨어진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쌍폭과 용추폭포를 감상해야 한다. 쌍폭은 바른골에서 용추폭포를 거친 물과 박달골에서 내려온 물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이루어낸 자연의 걸작품으로 쌍갈래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2분 거리의 용추폭포는 상담, 중담, 하담으로 나누어진다. 상담과 중담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하담은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선경을 보여준다. 이제 계곡에 탁족하는 시간만 남았다. 신발끈을 풀고 첨벙! 발을 담그면 이것이 우화등선(羽化登仙) 아닌가. 글 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동해시내에서 무릉계곡까지 버스가 수시로(06:30~21:00) 다니며 30분 걸린다. 댓재는 삼척시외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운행하는 광동행 버스를 이용한다. 무릉계곡 입구에는 민박을 겸하는 맛있는 식당이 많다. 김원기 전 백두대간 보존회장이 운영하는 반석상회(033-534-8382)의 산채비빔밥과 더덕구이가 산꾼들에게 인기다.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문경새재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문경새재

    바야흐로 걷기의 전성기다. 걷기여행, 등산, 트레킹 등 걷기를 기본으로 하는 여가 생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국적으로 걷기 좋은 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 옛길의 대표격인 문경새재는 그야말로 길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가지듯, 문경새재 역시 오래된 길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다. 문경새재가 특별한 것은 다른 옛길과 달리 길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험준한 백두대간 사이로 뻗은 흙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활기가 넘친다. 우리나라처럼 도로 닦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라에서 문경새재가 흙길로 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70년대 국토개발을 진두지휘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이 고갯길만큼은 포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천만다행으로 남은 흙길이다. 새재는 문경 쪽 주흘관(제1관문)에서 고갯마루의 조령관(제3관문)까지 6.5㎞가 비포장이고 반대편 충주 쪽은 포장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문경 쪽에서 시작해 조령관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곤 한다. 하지만 새재의 전모를 살펴보려면 고갯마루를 넘어 고사리 수옥폭포에서 마무리하는 코스가 정석이다. 문경새재 주차장을 지나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란 간판을 만나면서 마음이 설렌다. 그 길을 따르면 왠지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다. 옛길박물관을 지나면 돌로 쌓은 성문인 주흘관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주흘관은 그 뒤로 암봉이 두드러진 조령산(1025m),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1075m)과 어울려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물씬 풍긴다. 성문 앞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정겹다. 나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라는 뜻인 새재는 조선 태종 때에 새로 뚫린 길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새재 외에도 죽령과 추풍령, 계립령(하늘재) 등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선호했다. 죽령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은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비들조차 멀고 먼 이 길을 휘휘 돌아갔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이란 믿음이 조선 팔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주흘관을 지나면 왼쪽으로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했던 KBS 세트장이 나온다. 마치 민속촌처럼 기와와 초가가 적당히 섞여 있는데, 입장료 2000원을 받는다. 다시 호젓한 길을 따르면 조령원터와 교구정이 차례로 나타난다. 조령원은 옛 관리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고 교구정은 경상도 감찰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곳인데, 그 앞의 구부러진 소나무가 일품이다. 교구정 앞에서는 잠시 계곡 구경을 하는 것이 좋다. 숨어 있는 용추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좀 오르면 용추폭포에 닿는다. 팔왕폭포라고도 부르는 이 폭포는 암반이 발달해 계곡미가 수려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다시 길을 나서 500m쯤 가면 훈민정음으로 쓴 ‘산불됴심’ 표석이 눈에 들어오고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조곡폭포가 나타난다. 이곳은 문경시에서 만든 인공폭포지만 여름철에는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폭포를 지나면 두번째 관문인 조곡관을 만나게 된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미끈한 금강소나무들이 반기고 드문드문 물박달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큰애기 손질에 놀아난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은 새재아리랑 비석 앞. 아리랑 가락에 발걸음을 맞추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 동화원휴게소를 지나 ‘장원급제길’이라는 소로로 접어들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나온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은 책바위는 선비들이 하나 둘 찾아와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오늘날에도 해마다 입시철이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합격을 기원한다고 한다. 책바위를 지나면 조령관이 서 있는 새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이곳은 제법 널찍한 공터로 조령산과 주흘산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관문을 지나면 이제 충주 땅인데, 제일 먼저 포장도로가 나타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팍팍한 도로를 좀 내려가면 조령산자연휴양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휴양림을 지나면 수려한 신선봉(967m)이 올려다보이는 고사리 마을에 이른다. 주차장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수옥폭포다. 계곡에 발을 담그며 약 20m 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새재 걷기를 마무리한다. 주흘관∼고갯마루∼수옥폭포까지는 약 10㎞, 4시간쯤 걸린다. ●가는 길과 맛집 동서울터미널에서 문경 가는 버스는 오전 6시30분∼오후 8시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쯤 걸린다. 문경새재 관문 앞의 ‘소문난집’(054-572-2255)은 청포묵조밥과 도토리묵조밥을 잘하고, 고사리에서 가까운 수안보의 투가리식당(043-846-0575)은 올갱이국밥이 소문난 집이다. 문경새재 관리사무소 (054)571-0809. <여행전문작가>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23) 도봉산 원도봉 계곡~망월사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23) 도봉산 원도봉 계곡~망월사

    서울 도봉구,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에 걸쳐 있는 도봉산(739.5m)은 운명적으로 북한산과 얽혀 있는 산이다. 한북정맥이라는 뿌리가 같고, 우이령을 통해 서로 이웃해 있다. 북한산이 좀 더 크고 높아 도봉산이 손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를 묶어 북한산국립공원이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도봉산은 성내거나 섭섭해하지 않는다. ‘푸른 하늘에 깎아 세운 만 길 봉우리’라는 선인의 시구처럼 도봉산은 예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왔다. 도봉산 최고 절경인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빚어내는 조화는 가히 금강산이 부럽지 않다. ●자운봉·만장봉·선인봉의 조화 도봉산의 여러 등산로 중에서 험하지 않아 가족 나들이로 좋은 곳이 원도봉계곡을 따라 망월사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의정부시에 속하고 도봉산 주등산로와 떨어져 있어 비교적 호젓하다. 또한 빼어난 계곡에서는 신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조화를 이룬 건강한 숲을 만날 수 있고, 도봉산 최고의 명당자리를 꿰찬 망월사가 버티고 있어 느릿한 산행으로 제격이다. 전철 1호선 망월사역을 나오면 엄홍길 기념관을 만난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국내 최초로 완등한 엄홍길 대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원도봉계곡이다. 그의 부모님이 원도봉유원지에서 식당을 했기에 엄홍길 대장은 자연스럽게 산과 산꾼들의 품에서 자랐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신흥대학 입구를 지나 도로를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앞쪽 멀리 거대한 도봉산의 모습이 아스라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세 개의 암봉이 악마의 뿔처럼 치솟는데, 그것이 선인봉, 자운봉, 만장봉이다. 원도봉 탐방안내소를 지나 계곡을 만나면서 길이 갈린다. 망월사는 왼쪽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커다란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 아래쪽으로 청둥오리 한 쌍이 다정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올해 6월에 북한산 정릉계곡에서 청둥오리 가족이 북한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이곳에도 용케 살고 있었다. 계곡을 따르는 길섶에서 운 좋게 꽃 핀 함박꽃나무를 발견했다. 까치발을 하고 꽃에 코를 가까이하니 은은한 향기가 밀려온다. 이 꽃은 목련 향기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향기를 맡으면 식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좀 더 올라가니 ‘참나무의 종류’를 알리는 숲해설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줄기를 갈아치우는 갈참나무, 짚신 바닥에 깔았던 신갈나무, 떡을 싸기도 하였던 떡갈나무, 도토리 열매가 가장 많이 열려 도토리묵을 쑤어 임금님 수라상의 맨 위쪽에 올렸다 하여 상수리나무’ 등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그 나무들의 잎과 열매 그림이 잘 나와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안내판을 보면서 참나무들을 구별해보면 재미있고 유익하겠다. 수도권에서 원도봉계곡만큼 숲이 건강하고 풍성한 곳도 드물다. ●한국 선불교 전통이 배어 있는 망월사 ‘망월사 0.9㎞’ 이정표 앞에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이곳을 올라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원도봉계곡의 명물인 두꺼비바위가 나타난다. 이어 덕제샘에서 목을 축이고 그윽한 숲길을 지나면 망월사 입구다. 망월사 구경은 오른쪽 담장을 따라 이어진 돌계단을 올라 금강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 영산전까지 구경하고 나오는 것이 좋다. 오른쪽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금강문 앞인데, 이곳이 망월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망월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영산전 뒤로 자운봉·만장봉·선인봉이 병풍처럼 두른 모습이 장관인데, 구름이 살짝 끼면 더욱 신비스럽게 보인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낙가보전을 지나 영산전으로 가는 길은 산동네 골목길을 돌아가는 기분이다. 종무소 앞의 거대한 바위에는 고사리가 군락으로 자라고 있다. 이어 천봉선사 탑비에서 작은 문을 통과하면 천중선원(天中禪院)이다. 선원은 망월사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나고 너른 터에 자리 잡았다. 그만큼 망월사의 핵심 지역이라는 뜻이다. 일제시대 용성 스님은 당시 몰락한 우리나라 선불교 전통을 이곳에서 일으켜 세웠고, 만공·한암·전강·성월·춘성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선승들이 모두 천중선원을 거쳐 갔다. 그래서 선원에는 지금까지 엄격한 선 전통이 내려오고 많은 스님이 그 가르침을 따라 용맹정진하고 있다. 천중선원 앞에서 철계단을 오르면 영산전인데, 그 앞에서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영산전 안의 부처님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속세를 지그시 내려보고 있다. 하산은 올라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 내려온다. 망월사역에서 망월사까지는 약 2㎞, 1시간20분쯤 걸린다. 엄홍길 기념관에서 우회전해 신흥대학 입구를 지나 15분쯤 올라가면 원도봉 탐방안내소를 만난다. 원도봉계곡의 진고개(031-873-4100)는 깔끔한 한정식집으로 자연 조미료를 고집하는 맛집이다. 한정식 1인분에 1만원. <여행전문작가>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전남 여수에서 경남 거제까지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 중 남해와 통영 사이에 자리 잡은 사량도는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높이가 398m에 불과하지만 설악산 용아장성을 축소해놓은 듯한 옹골찬 암릉을 품고 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능선을 걷다 보면 물뱀의 등을 타고 한려해상을 유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본래의 산 이름은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었는데 ‘망’자가 떨어져 지금은 그냥 지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 사량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 해금강권’에 속하고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사량면에 해당하지만, 사천(삼천포)에서 더 가깝다. 사량도는 크게 윗섬과 아랫섬이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동강(桐江)이 흐르고 있다. 동강은 두 섬 사이의 해협으로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윗섬에는 지리산과 옥녀봉(261m) 등이 불끈 솟아 있고, 아랫섬에는 칠현산이 일곱 봉우리를 펼치고 있다. 주변에는 대섬(죽도), 노아도, 누에섬, 나비섬(잠도), 수우도 등의 빼어난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사량도란 이름은 섬 자체가 뱀 모양으로 생겼고 뱀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산행 코스는 돈지에서 출발해 지리산, 불모산 달바위, 옥녀봉을 거쳐 진촌으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달바위∼옥녀봉 구간은 워낙 가팔라 위험구간도 있지만, 안전시설이 잘 설치돼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산행 들머리는 아담한 포구를 끼고 있는 돈지 마을이다. 돈지분교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을 20분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시원하게 뚫리면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쪽빛 바다 위에 뜬 수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삼천포가 아른거린다. 주능선에 올라붙은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돈지항이 물 위의 연꽃처럼 아름답다. 그 옆으로 작은 왕관처럼 보이는 섬은 이순신 장군이 대나무 화살을 얻었다는 대섬(죽도)이다. 평탄한 능선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와 섬을 구경하며 1시간쯤 가면 지리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사량도의 지리산과 옥녀봉은 1979년 삼천포산악회가 개척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개척의 주역인 김봉호씨에 의하면 섬에는 석란, 풍란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멧돼지들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멧돼지들은 바다 건너 고성 땅에서 건너온 것인데, 언젠가 해초를 쓰고 건너오는 멧돼지를 마을 어부들이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윗섬에는 멧돼지가 없지만 아랫섬 대곡산 부근에 30여마리가 살고 있다. 정상에서 30분쯤 내려오면 사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은 사량도 윗섬에서 유일한 절인 성자암과 옥동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내지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옥녀봉까지는 아직 2.54㎞가 남아 있다. 호젓한 숲길을 지나면 가파른 칼날 능선이 이어진다. 이 길은 위험하므로 안전한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 슬픈 전설이 서린 옥녀봉 불모산 정상인 달바위(400m)는 거대한 암봉으로 사량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이곳에서 가마봉(303m), 연지봉, 옥녀봉을 넘는 구간이 사량도에서 가장 빼어난 능선이다. 낙타의 등 같은 세 개의 봉우리를 연속적으로 타고 넘으며 펼쳐지는 한려해상의 풍광은 사량도가 아니면 보기 힘든 절경이다. 가마봉에서 급경사 철다리를 내려와 암릉을 기어오르면 너른 암반이 펼쳐진 연지봉이다. 아랫섬 칠현봉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동강 해협에는 꽃잎처럼 배가 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이곳에 주저앉아 “참말로 호수 같네!”하며 동강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연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로프로 엮은 나무사다리 길이다. 흔들리지 않으므로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에 이른다. 이 봉우리는 욕정에 눈먼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딸이 옥녀봉에 올라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 전설은 사실 여부보다는 외딴 작은 섬에서 가정 및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강력한 터부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대항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옥녀봉을 내려오면 해송 숲을 지나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는 진촌마을에 닿는다. 돈지 마을에서 시작해 지리산, 옥녀봉을 종주하고 진촌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약 8㎞, 5시간쯤 걸린다. 등산로가 잘 정돈돼 있지만, 곳곳에 위험 구간이 있으므로 초보자들은 꼭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사천, 통영에서 사량도 가는 배가 다닌다. 삼천포→사량도는 삼천포항에서 06:30 08:00 11:00 13:30 16:30에 출발하는 일신해운(055-832-5033)을 이용한다. 40분쯤 걸리고 요금 왕복 8,000원. 통영→사량도는 가오치항에서 오전 7시∼오후 5시10분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사량호(055-642-6016)를 탄다. 사량도 내에서는 금평∼돈지 마을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요금 1000원. 배가 출항하는 삼천포항과 통영의 활어시장에는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난다.
  •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15) 청계산 국사봉~옛골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15) 청계산 국사봉~옛골

    청계산(618m)은 서울시, 경기도 성남시·과천시·의왕시에 걸쳐 있는 수도권 남부의 명산이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이지만 정상인 망경대와 석기봉 일대는 우람한 암봉이 솟아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근처 관악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몇 년 전부터 웰빙 열풍을 타고 등산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이효리와 전지현 등의 인기 연예인들이 청계산을 즐겨 찾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계산의 대표적인 등산로는 서초구 원지동 원터골을 들머리로 옥녀봉과 정상에 올랐다가 옛골로 내려오는 길이다. 이 코스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옥녀봉 오르는 길에 2500여 개의 계단이 있어 만만치 않다. 호젓하고 부드러운 산길을 원한다면 성남시 금토동의 ‘정일당 강씨 사당’을 들머리로 국사봉과 정상을 거쳐 옛골로 내려오는 길을 추천하고 싶다. 이 길에는 우리 역사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에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청계산 남쪽에 숨어 있는 ‘정일당 강씨 사당’ 옛골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쯤 가면 성남시 금토동이 나온다. 청계산의 오지에 해당하는 이 곳은 국사봉과 이수봉에 부드럽게 안겨 있어 포근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정일당 강씨 사당’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길을 따르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계곡으로 들어서게 된다. 작은 계곡에는 진달래가 하나 둘 피었고, 밤나무와 상수리 등이 우거져 운치있다. 인적이 뜸한 이 길을 20분쯤 걸으면 강씨 사당에 닿는다. 조선후기 여류 문인인 정일당 강씨(1772~1832)는 강희맹의 후손으로 경서에 통달하고 해서를 잘 썼다고 전해진다. 사당 앞 벤치에 앉으니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내밀고 있다. 아직 산은 회색빛이지만, 그 안 조금씩 생기 있는 봄빛을 머금고 있다. 사당 옆 약수터에서 물 한 잔 들이켜고 완만한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면 강씨 무덤이다. 무덤은 볕이 잘 들고 건너편 조망이 좋다. 무덤 위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능선을 만나고 이어 ‘루도비꼬 성지’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화살표 방향으로 50m쯤 내려가니 바위굴이 보인다. 루도비꼬 볼리외(1840~1866) 신부가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은거했던 동굴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1865년 충남 내포로 들어와 포교 활동을 하다 병인년 천주교 박해(1866년) 때 순교했다고 알려졌다. 두세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다시 능선 마루금을 따르니 국사봉 정상이다. 국사봉은 청계산의 가장 남쪽 봉우리로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분개한 조윤, 이색, 변계량 등이 고려의 국권회복을 도모하고 나라를 걱정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사봉에서 북쪽으로 이수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전형적인 육산이라 걷는 맛이 좋다. 이수봉은 조선 전기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1450~1504)이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청계산에서 은거하며 생명(壽)의 위기를 두(貳)번 넘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소나무가 우거지고 주변에 벤치가 많아 한숨 돌리기에 좋다. 이수봉부터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평지처럼 순한 길은 석기봉 입구 공터까지 이어진다. ●정여창의 죽음을 예감한 금정수 공터에서 능선을 5분쯤 따르면 갑자기 전망이 시원하게 뚫리면서 석기봉이 나온다. 암봉인 석기봉은 풍광이 뛰어나고 전망이 장쾌하다. 정상인 망경대가 군부대가 들어선 관계로 출입이 통제되었기에 석기봉이 청계산 정상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쪽으로 과천시내와 경마장이 잘 보이고 그 뒤로 관악산이 우뚝하다. 석기봉에서 망경대 방향으로 3m쯤 내려오면 벼랑 쪽으로 밧줄이 묶여 있다. 줄을 잡고 급경사를 50m쯤 내려오면 금정수를 만나게 된다. ‘과천현신읍지’에 ‘청계산 정상에 금정수가 있는데, 깎아지른 백 척 바위 절벽 사이로 맑은 물이 솟아나며 물빛은 황금색을 이룬다.’는 기록이 있다. 무오사화를 피해 청계산으로 들어온 정여창은 이곳 금정수에 은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여창이 다시 사화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자 금정수의 샘물이 핏빛으로 변했고, 훗날 정여창을 비롯하여 억울한 학자들의 정치적 복권이 결정되자 샘물이 다시 황금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정수를 구경하고 망경대를 왼쪽으로 우회하면 혈읍재가 나온다. 이곳에서 동쪽 계곡길을 따라 40분쯤 내려오면 옛골에 닿으며 산행이 마무리된다. 성남시 금토동을 들머리로 국사봉, 이수봉, 석기봉을 거쳐 옛골로 내려오는 길은 약 8㎞, 4시간쯤 걸린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지하철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 4432번 버스를 타면 원터골과 옛골로 갈 수 있다. 성남시 금토동은 옛골에서 11-1번 마을버스를 탄다. 옛골의 할머니집(010-7120-9201)은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조그만 막걸리집이다. 안주는 여름철이면 직접 재배한 쌈 야채들이 올라오고, 그밖의 계절에는 직접 만든 묵사발을 내놓는다. 묵사발 3000원, 묵쌈 8000원, 막걸리 작은 주전자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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