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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국교생가방 색깔 다양해져

    ◎신세대 학부모들,남 흑색·여 적색 1백년 불문율 깨 한세기 가까이 변치 않던 일본 국민학생들의 책가방 색깔이 조심스럽게 바뀌어가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 국민학생용 가방색의 변화는 가히 혁명이라 할만하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일본 국민학생들은 소화시대 이래 남자아이는 검은색,여자아이는 붉은색 가방을 메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이같은 전통은 종종 일본인들의 집단주의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사례로 비판돼 왔다.일본사회가 암묵적으로 혼자서 두드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때문이다. 최근 도쿄 근교 야마가타현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일본인들의 유별난 집단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있다.사건은 한 학생의 사투리에서 비롯됐다.심한 사투리를 쓴다는 한가지 이유로 이 13세 소년은 같은반 친구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죽고 말았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학부모들은 옷차림등에서조차 자신의 자녀가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이런 점이 종종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요인이되기때문이다. 색상에 대한 다양한 욕구의 실현은 아직도 모험으로 간주되고 있기는 하다.특히 어른들의 집단엔 여전히 획일화된 색상이 판을 치고 있다.일례로 일본의 화이트칼라들은 여지 없이 충충한 갈색 근무복에 어두운 색상의 넥타이를 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전통은 신세대 부모의 등장으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고 또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국민학생용 가방색의 변화도 결국은 신세대 부모들의 의지의 반영이다.
  • “재벌의 소유분산 법제화”/KDI제시/「분할·투자회수 명령제」도입

    ◎계열사 지분율·상호지보 축소/대기업 언론사 신규진출 억제/공기업 불공정거래도 규제 강화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고 시장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분할 명령제도와 투자회수 명령제도 등의 도입방안을 과감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새로운 정책방향이 제시됐다. 또 재벌들의 언론사 보유에 따른 부수적 이득을 억제하기 위해 신문과 방송에 대한 신규 진출을 제한하고 이미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재벌에 대해서는 기존의 출자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재벌의 소유분산을 촉진하기 위해 먼저 부실화 가능성이 큰 은행부채에 대해 부채의 주식화를 허용하고 은행의 책임경영 체제가 정착되면 은행과 기업의 합의 아래 부채의 주식전환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제시됐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 (KDI)은 29일 공정거래위원회 주최로 학계·연구기관·경제계·언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신경제 5개년 계획 시안마련을 위한 정책협의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정책의 발전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KDI는 이 보고서에서 그동안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정에서 제외된 금융·보험업과 철도청 등의 정부기관,정부투자기관 및 이들의 자회사에 의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출자규제·상호채무보증규제 등의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지정은 현재 자산총액 기준으로 돼있으나 여기에 계열회사수,소유분산정도 등을 감안하여 일부 재벌을 제외하는 대신 다른 재벌을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포철등과 같은 공공 법인에 대한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외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자총액제한은 30대 재벌의 계열회사지분율이 평균 33·5%인 점을 감안,현행순자산액의 40%를 25∼30% 수준으로 내려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벌의 계열사간 채무보증을 96년까지 2백%로 축소한 뒤 채무보증제한의 성과와 금융관행의 개선을 고려,채무보증한도액을 자기자본의 1백% 이내로 내려 조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자율화과정에서 나타날수 있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규제강화의 차원에서 금융기관의 공동행위를 포함한 모든 업종의 공동행위에 대한 제도적용을 확대하고 특히 정부의 암묵적 행정지도에 의한 공동행위를 배제해야 할 것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정부투자기관등 공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국가행정기관이 사업수행 과정에서 민간사업자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이들 기관을 법 적용대상 사업자로 규정,제도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계는 이에 대해 『소유분산등 기업경영체제 개혁은 기업내부의 문제인 만큼 인위적·정치적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전경련은 『대기업 경제력집중 완화부문은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규제정책』이라고 지적,『경제력 집중완화정책은 재벌총수등 기업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주장했다.
  • KDI의 「공정거래정책과제」 내용

    ◎불공정광고 대행사까지 규제필요/자기자본 비율 높이게 유증 자율화 한국개발연구원 (KDI)이 발표한 「공정거래 정책의 발전과제」(유승민연구위원)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정경쟁질서 정착을 위한 발전과제=금융 등 서비스업,공기업에 의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대해 제도적용을 확대하고 대형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의 수요 독과점적 지위에 대해서도 직권 실태조사를 토대로 남용행위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금융자율화에 따른 금융기관의 공동행위를 포함,경제의 자율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유형과 업종의 공동행위에 대한 제도적용을 확대해야 하며 정부의 암묵적 행정지도에 의한 공동행위도 가급적 배제해야 한다. 금융과 보험업 등의 서비스산업에서 관행화된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극 감시,시정하고 무점포판매,방문판매 등 새로운 유통형태와 판매기법의 출현에 대응하여 불공정거래 행위의 규제방안을 마련해야한다.불공정한 표시·광고에 대해서는 광고주 뿐 아니라 광고 대행업체도 규제대상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 및 건설업의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를 적발하기 위한 직권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반복적 법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수단을 차등화해야 한다. ◇기업경영 혁신을 위한 발전과제=소유분산의 촉진을 위해 상속·증여세정을 엄정하게 집행하고 비공개 계열기업의 공개를 촉진해야 한다.대주주 지분율이 낮을 경우 출자총액 제한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무의결권 주식 발행을 억제하며 금융기관의 주식보유 허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기업의 자기자본형 자금조달 방식을 촉진하기 위해 제조업의 유상증자를 자율화하고 기업공개 자금의 일부는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자비용의 손비인정을 제한하고 내부유보에 대해서는 손비인정을 허용하는 방안을 각각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토지등 비상각 자산에 대한 자산재평가 제도를 일정한 유예기간후 폐지하고 지배 및 경영 구조의 선진화를 위해 대기업 집단의 연결 재무제표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대여금과 가지급금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업종다변화 규제방식의 개선을 위해 여신관리 제도는 여신한도 관리와 재무구조 개선시책 중심으로 단순화하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여신관리 제도상의 기업투자 규제 및 진입규제 등 다양한 다변화 규제를 최소한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으나 금융과 언론 등 정치경제적 혹은 국민경제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대한 규제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공정거래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위한 발전과제=공정거래 정책을 담당한 행정기구의 위상과 권한이 대폭 강화되고 내부조직의 충실화와 전문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공정거래위는 경쟁정책과 기업집단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그 위상과 권한이 강화되고 종합행정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기업집단 정책의 종합대책 기구로서 공정거래위의 기능을 확충하기 위해 각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 규제기능을 점검하고 기업집단 정책을 총괄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공정거래위에 부여해야 한다.
  • 최 이사장 부정관여 안했을까/91년 재단인수후 행적에 초점

    ◎「92년 5명」 묵시적승인 배제못해/학교간부들 일방범행 가능성도 경원전문대의 입시부정은 최원영이사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계속돼 최이사장의 직접 관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경원학원이 지난91년과 92년 전문대입시에서 각각 88명과 5명등 모두 93명을 부정입학시킨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또 이미 구속된 조종구전교학처장(55)등으로부터 91년 전문대입시때 당시 김용진재단이사장이 재단운영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전문대의 부정입학을 지시 또는 묵인했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경찰은 그러나 지난90년 사망한 김동석전총장의 미망인 김용진씨가 91년 10월 예음그룹(회장 최원영·39)에 학교를 넘긴뒤인 92년 전문대입시때도 부정입학에 대한 재단의 암묵적인 승인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일단 두가지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우선 수뇌부가 바뀐 92년 입시때는 입시부정의 타성에 젖은 조전교학처장,김화진전기획실장등 실무자들이 이미 얼굴을 익힌 입시브로커들을 끼고 재단의 개입없이 은밀하게 입시부정을 주도했을 가능성이다. 입시부정의 실무를 주도한 조전교학처장은 경찰에서 『재단이 바뀐 뒤인 92년 전문대입시때는 입시부정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그 수는 10명내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경찰의 OMR카드확인작업에서 드러난 부정입학생의 수도 91년의 88명에 비해 92년 입시때는 5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이가운데 15일 구속된 이양구씨(62·여)의 진술에서도 종로구 옥인동의 한 점쟁이 이모씨(31·여)의 소개로 알게된 조전교학처장에게 아들의 부정입학대가로 4천만원을 건네주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현 재단측과의 연결고리를 아직 찾지 못했다. 당초 92·93년 입시때도 부정입학생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OMR카드의 정밀확인작업등을 벌인 경찰은 지금까지 최이사장등 현재단이 부정을 자행했다는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그러나 최이사장이 지난91년 김전이사장으로부터 학원을 인수할때 경찰수사에서 밝혀진 대규모입시부정의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등을 들어 현재단의 개입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또 당초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경원학원 입시부정에 대한 제보의 내용이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되고 있고 이 제보에서 현재단의 개입사실이 적시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조전교학처장의 경찰에서의 진술도 일관성이 없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이에따라 92년 이후의 OMR카드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미 적발된 학부모들과 현재단의 예금계좌를 계속 추적,「현재단 개입」의 흔적을 뒤쫓고 있다.
  • 환자권리장전 선포 연대의대 의료원장 김일순씨(인터뷰)

    ◎“병원 환자중심전환 계기로”/의사·간호사 등 적극적 협조 절실/보수적 의료계에 변혁의 바람 신호 『이번에 선포된 「환자의 권리장전」은 환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한 인간으로서 이미 갖고 있는 기본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그럼에도 이같은 선언이 아직껏 우리나라에서 이뤄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내의료계의 보수성및 관료주의적 색채때문이었지요』 8일 국내의료기관가운데 처음으로 「환자의 권리장전」을 선포한 연세대의대 김일순의료원장(예방의학)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선언은 이제 우리 의료계에도 「변혁의 바람」이 일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홀가분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85년부터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주축이 돼 「환자권리선언」을 추진해 왔으나 그동안 의료계에선 열악한 의료환경및 사회적 인식부족을 내세워 반대,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번 선언은 우선 의료인들 자신이 환자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그동안 암묵적으로형성돼온 의사와 환자간의 우열적인 관계를 청산,의사편의위주의 병원운영을 환자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의료원장은 『이번 권리장전이 의료원차원의 선언일 뿐이어서 임상의사·간호사·일반직원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환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떳떳히 주장하기위해서는 이에 걸맞게 의무를 다하는 성숙한 의식무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 지점장­인천투금 관계규명이 핵심/드러난 자금행방과 검찰수사

    ◎CD거래규모 1천억대 추정/확인절차 없이 거액거래 특수관계 반증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이희도씨 자살사건은 이씨가 자살하기 하루전인 14일 공CD를 발행해 매각한 1백억원 가운데 79억원을 인천투금에 입금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이씨와 인천투금 양자의 관계규명이 이번 사건을 푸는 핵심으로 등장했다. 이씨는 13일에도 21억원을 인천투금에 입금시켰는데 이는 이씨가 지난 8월14일과 17일 개인적으로 빌린 돈을 갚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이외에 지난 5일에도 수기통장을 써주고 발행한 CD의 지급결제용으로 1백30억원을 입금시켰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이씨와 인천투금은 CD거래를 둘러싸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나 CD유통을 둘러싼 「비밀거래」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씨와 인천투금간의 CD거래는 수치상으로 나타난 7백30억원을 넘는 1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향이 인천인 이씨와 인천지역을 기반으로 설립된 인천투금은 지역적인 연고성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금융계의 생리상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암묵적인 뒷거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천투금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난 8∼9월 시중의 유통수익률보다 1∼2%가량 비싸게 5백억원의 CD를 상업은행 명동지점에서 산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 인천투금이 총수신금액의 4분의1가량인 7백30억원을 CD매입에 쏟아부은 것은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 금융계의 관행에 비추어 볼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인천투금은 CD를 매입하면서 사후에 아무런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 발행당일의 CD외에도 기일이 지난 CD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양자간에는 상당한 「믿음의 끈」이 형성돼 있었고 나아가 이에 상응하는 「검은 구석」이 있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이에따라 사채시장에 정통한 금융계 관계자들은 인천투금이 이씨와의 지역적 연고성으로 그동안 「전주」역할을 해왔거나 이씨가 인천투금을 사채중개인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인천투금측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사채업자 김씨는 이씨와 인천투금 사이의 연락책이나 거간역할을 했다고도 보여진다. 아무튼 인천투금이 이씨 자살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것이 분명하지만 인천투금 역시 이씨의 수신고 제고의욕의 희생물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한준수씨 구인 파문과 여야 움직임

    ◎“구인 난기류”… 정국 장기냉각 우려/관련자 문책인사 등 조기치유 전력/행정조직 지원없는 대선준비 추진/민자/민주선 「대여압박카드화」… 표몰이 가속화 예상 검찰의 한준수 전연기군수 강제구인을 계기로 이번 「관권선거주장」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작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야권이 대여공세의 수위를 한단개 높임으로써 정국이 급속 냉각되고 있다. 민자당은 이번 사태가 정기국회 개원등 정국정상화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관련자 인책,선거제도 개선등 다각적인 조기 치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등 야권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대여압박카드로 장기활용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민자당◁ 민자당은 한씨의 구인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를 서둘러 매듭짓고 빠른 시일내에 연루자에 대한 인책과 후속인사를 단행한다는 입장이다.이같은 정면대응 방침은 가급적 이번 사태를 조기수습하기 위한 포석임은 물론이다. 민자당으로서는 성역없는 엄정한 수사로 관권부정 연루자를 가려내 형사적·정치적 책임을 지우고 아울러 제도개선등 수습카드를 제시하는 정공법적 대응만이 파문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대선을 3개월 가량 앞둔 김영삼총재와 민자당에게 상당한 부담인 것도 사실이다.특히 김총재로서는 이동통신문제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결단과 개혁의지로 대권후보로서의 이미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에서 돌출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총재측은 따라서 이번 사건을 김총재의 개혁의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위해 장단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자당은 우선 단기적으로는 검찰수사결과 연루자가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한 인책」을 당국에 거듭 촉구하는 한편 적절한 시점을 선택해 김총재의 기자형식을 통해 공무원 중립보장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천명한다는 계획이다. 이에따라 민자당은 연기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한전군수는 물론,혐의가 드러날 경우 이종국충남지사와 임재길 민자당연기지구당위원장의 인책은 불가피하다고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는 시점에서 김총재가 직접 「공무원 중립보장」을 선언해 공무원의 선거개입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것도 검토중이다.민자당은 ▲공정한 대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법의 획기적 개선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개선등 제도개선으로 김총재의 의지를 뒷받침,예상되는 야당측의 단체장선거 연내실시등 대여공세를 무력화한다는 전략이다. 민자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이같은 단기적 처방과는 별도로 장기적으로는 연말 대선을 당조직및 김후보 개인 이미지에 의존해 치러야한다는 과제를 안게됐다.즉 행정조직의 암묵적 지원이라는 「여권프리미엄」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된데다 근거없는 대여폭로와 실현가능성없는 정책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야당프리미엄」이 판을 치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당세보강과 후보개인에 대한 홍보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김총재측이 최근 금전적 청렴성 측면에서 김대중·정주영 두 야권후보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부쩍 강조하는 한편 그동안 일체 맞대응을 자제해온 정국민대표의 「시비」에 대한 반격강도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민주당◁ 한전군수가 강제구인되고 경찰력이 마포중앙당사에 진입한데 대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규정짓고 강경대응할 태세이다. 김대중대표가 러시아를 방문중이어서 아직 구체적인 대응방안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한씨 구인이전부터 촉구해온 총선당시 내무부장관과 이종국 충남지사및 당사 진입의 책임을 물어 내무부장관·경찰책임자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는등 대여 정치공세수위를 한단계 높이고 있다. 또 김원기최고위원을 단장으로 정원식국무총리에게 항의단을 보내고 귀성객을 대상으로 긴급 당보호외 50만부를 배포하는가 하면 장외집회도 계획하는등 대국민 홍보에 부심하고 있다.그러나 추석연휴로 이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희석될수 있다는 점이 민주당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정치공세·홍보이외에 민주당의 향후 대응방안은 3당대표회담과 정기국회운영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느 것 하나 선뜻 결론을 내릴수 없는 입장이다. 한씨 구인 집행직후 열린 긴급 심야 당무위원및 의원 합동회의에서 『즉각 3당대표회담을 거부하자』(김령배최고위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재고 가능성」이라는 유연한 표현으로 결론이 났고 김대표는 이기택대표와의 국제전화를 통해 『3당대표회담문제는 결정내리지 말고 남겨달라』고 당부해 분리처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체장선거·정기국회운영방안을 협의하고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의 협상 결과를 논의할 대표회담을 공권력의 당사진입등으로 거부하기에는 득실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당◁ 한준수 전군수강제구인과 관련,정주영대표가 위로전화를 하고 김효영사무총장이 민주당사를 방문하는 등 「공분」을 표시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별 관심이 없다는 눈치이다. 김정남총무등 당직자들은 9일 이번 사태와 관련,▲관련자 사법소추 ▲노태우대통령 및 김영삼총재에 대한 정치적 책임추궁 ▲대선법개정 등 재발방지책 강구를촉구하면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다짐했지만 정작 이날 아침 당직자회의에선 한전군수 연행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뿐만 아니라 이날 정대표가 이기택민주당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 야권공조투쟁을 제의한것처럼 민주당측이 발표한데 대해서도 국민당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는 등 「소리는 크되 행동은 없는」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 “폭동 조기종식” 대국민메시지/「연방군투입」 부시의 강경선회 안팎

    ◎정의실현차원 「무죄경관」 사법처리/클린턴의 대선전략 이용 차단 겨냥 부시 미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사태 3일만에 연방정부군을 투입한 것은 두가지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사태확산을 더 이상 방치않고 국가공권력의 최강수단인 연방정규군을 동원함으로써 폭동을 완전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1일 밤9시 TV생중계 연설을 통해 이날 LA시 외곽에 대기시켰던 4천명의 연방군 병력을 LA시내에 출동토록 명령을 내렸다고 밝히면서 『대통령으로서 국민여러분께 폭력은 분명히 종식될 것임을 보증한다』고 말해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68년 마틴 루터 킹목사 암살사건 이후 24년만에 처음으로 국내 폭동에 군병력을 동원한 부시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질서회복을 바라는 대다수 미국 국민의 여망에 부응한 것이긴 하지만 「법과 질서」를 확고하게 지켜나가겠다는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대국민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이번 사태가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부시행정부는 이번 폭동의 발단이 된 로드니 킹사건을 가급적 미시적으로 접근,「양식에 어긋난 평결」을 국민정서에 맞게 사법처리해나가는 수순을 밟으면서 폭동은 폭동대로 대응해나간다는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빌 클린턴 진영은 이번 폭동사태를 핵심적인 선거쟁점으로 부각시켜 부시행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클린턴은 이번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은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가 흑백갈등의 인종문제와 경제적인 격차문제를 등한히 해온데 기인하며 나아가 부시행정부가 국내 문제 해결능력을 결핍하고 있음을 이번 사태가 입증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부시는 이같은 민주당의 「선거쟁점화」 작전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군 병력투입이라는 고단위처방을 써서라도 폭동사태의 조기진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이 클린턴의 부시공격을 두고 「폭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교활한 사람」이라고 반격하는 데서도 부시대통령이 이번 사태가 선거전의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부심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TV연설에서 「화급한 질서회복」과 함께 「정의의 보장」을 약속,이번 사건의 관련경찰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밝혔다. 이는 부시대통령이 이날 낮 일단의 흑인 및 히스패닉(중남미계) 지도자들을 면담,그들이 요구한 연방차원의 즉각적인 사법조사와 미국의 인종간 갈등을 조사,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전문가위원회 구성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미 법무부가 이번 사건이 연방민권법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연방대 배심법정을 LA에 개설,이미 웨인 버드 법무차관의 지휘아래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바로 부시 대통령의 법정의 실현이 실천이라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10여분간의 연설을 하는 가운데 『브래들리 시장이 바로 몇분전에 한인사회의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면서 『이번 사태로 고통을 받는 이들과 마음을 함께한다』고 언급,이번 폭동사태로 가장 희생이 컸던 LA 한인사회에 대해 각별한관심을 피력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미국사회에 오랫동안 내재해왔던 흑백갈등의 희생양이 엉뚱하게도 한국교포들이 되고있다는 사실에 암묵적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폭동이 로드니 킹사건의 평결로 촉발됐긴 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의 침체로 실업 등의 고통을 더 많이 받고있는 흑인들의 좌절과 백인과의 진정한 평등을 현실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흑인들의 분노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폭발했다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파장은 매우 길 것으로 보인다.
  • 지역감정 해소의 「밀알들」/부산=이건영기자(선거현장)

    「YS바람」이 불고있는 부산·경남지역에서 만난 대학생·근로자·회사원·주부들은 대부분 뚜렷하고 소신있는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다. 일부에선 무조건 누구를 찍어야 한다는 「편가르기식」의 지역감정이 여전했지만 각 후보의 면면을 두루 파악,누구를 찍는게 나라와 지역을 위해 유익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이 지역에서 불었던 「YS바람」과 이번의 「YS바람」은 성격이 달라 이 지역 유권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전통적 야도에서 「내 지역 출신은 대통령」이라는 공감대아래 일어왔던 야성바람이 지금까지의 「YS바람」이었다면 이번의 경우는 엄밀히 따지면 여권내의 「반TK(대구·경북)바람」이라는 비판때문이다. 『정서적으로는 YS를 밀어주는게 당연하겠지만 자칫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대권투쟁적 지역감정이 생겨나 정치발전을 저해 할까 두렵다』21일 부산동구 합동연설회장으로 가던중 한 택시기사가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이 지역 유권자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유세장에 모인유권자들은 나라의 내일이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역감정의 희생물이 될수 없다는 듯 차분하게 「YS바람의 실체」를 반추하는 모습이었다. 젊은 유권자들 가운데서 이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과야 어쨌든 「YS바람」에 따른 반작용도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정치와 정치개혁을 염원하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더이상 어떤 형태의 지역감정도 용납될 수도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된다는 분위기는 작지만 형성되어 있었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지역감정」은 또한번 총선후유증으로 지적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최소한 지역감정해소를 위한 씨를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암묵적인 소망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개표결과가 나오는 25일 아침 이에대한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찾게 된다면 일단 성공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이 고질적인 지역감정에 함몰되어 버린다면 이 땅에는 모두 패배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 정부,일에 대북정책 신중대처 요청

    ◎북한 유엔 가입후 국가승인 통보에 우려/“남북대화·북한 핵 사찰 수용등 고려해야” 정부는 최근 일본 정부로부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후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통보받고 이문제를 신중히 처리해줄 것을 일본측에 요청했다. 외무부 당국자는 11일 『일본정부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면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유도해 개혁과 개방을 촉진시킨다는 의미에서 북한을 묵시적인 형태로 승인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알려왔다』고 말했다. 일본측은 그러나 북한에 대한 국가승인과 수교는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와관련,오재희주일대사는 이날하오 일본 외무성으로 오와다 히사시(소화전항)사무차관을 방문,북한에 대한 국가승인문제는 남북대화및 핵사찰등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고려해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전했다. 김석우외무부아주국장도 이날 가와시마준(천도순)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외무부로 불러 같은 뜻을 전달했다. 외무부 당국자는 『일본이 말하는 묵시적 승인이란 국제법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거나 조약을 체결하는 수준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일본의 대북한국가승인 방침에도 불구하고 국제여론등을 감안하면 일본이 빠른 시일안에 북한을 승인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대북한 수교협상 부담 제거 속셈(해설) 남북한유엔가입후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정부가 「신중대처」를 촉구한 것은 수교협상을 비롯,일­북한관계개선 과정에서의 일본측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수 있다. 일본은 일­북한수교협상의 전제조건인 남북대화가 사실상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4차례의 수교협상을 통해 청구권등 수교의 기본적인 문제에 진입,협상을 상당히 진척시켰다.일본은 오는 17일 유엔가입직후 국회의 질의·답변과정에서 이같은 대북한 국가인정방침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암묵적으로 북한을 승인할수 있음에도 불구,굳이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는 것은 북한과의 수교협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이은혜문제등으로 인한 부담을 덜겠다는 속셈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유엔가입후도 남북한극적화해 비관적”/쿠나제 러시아공외무차관 전망

    ◎북한의 가입결정은 불가피한 조치/경제난에 내부폭발 위험성 상존/한국은 인내심 갖고 꾸준히 대화 노력을 소련의 러시아공화국 외무차관인 G F 쿠나제 박사가 8일 한양대에서 「남북한 유엔가입 이후의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러시아공화국 외무차관에 임명되기 전 소련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연구부장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외교정책 입안자 중 하나였던 쿠나제 차관(경제학 박사)은 이날 강연에서 『북한의 유엔가입이 그들의 대남정책이나 한반도정세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고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쿠나제 박사의 강연요지는 다음과 같다. 1989년 가을 IMEMO대표단이 최초로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본인은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회원국 가입을 신청하고 소련이 이 신청에 거부권 행사를 삼가는 방안이 갖는 효과에 대하여 개인적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그 이후에 사실로 나타난 것은 이것이 소련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며,이는 예기될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최종적인 해결을 궁극적으로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이 해결은 이제 남북한 양자의 유엔가입이 임박해 있다는 것이다. 이후의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정책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지금까지의 소련입장의 원칙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껏 소련입장의 기본적 원칙은 모든 주권국가는 유엔의 정회원이 되는 권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소련이 대한민국을 한 주권국가로 승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온 이래 유엔회원국 가입을 신청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도를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한국문제의 경우에 있어서 항상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대한 우리의 정책이 갖는 함축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소련의 관점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대한민국의 가입을 지지하는 한편 DPRK를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적으로 이는 분명히 우리가 DPRK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유엔에 가입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또한 한국으로 하여금 너무 빠르게,너무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게 인내하도록 하는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소련 한반도정책의 또 하나의 필요조건은 중국의 입장이었다. 만약 중국이 대한민국의 가입에 거부권 행사를 할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소련을 곤혹케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 가지 관점 모두에서 성공하였다. 본인은 이 세 목적 모두가 성취되어온 정확한 순서에 대하여 밝히고 싶지는 않다. 이는 단지 외교적 기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은 DPRK가 남북한의 독립적 가입을 거부하였다고 가정할 때 중국이 취했을지도 모를 입장에 대하여서는 추측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충분히 현명하고 인내하였다는 것이며,반면에 DPRK정부가 전반적 상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자가 유엔에 가입한 이후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해 본인은 한반도의 전반적 상황의 개선을 가져올 극적인 긍정적 효과의 가능성에 대하여 차라리 비관적이다. 본인이 상황을 아는 바에 의하면 DPRK가 유엔가입을 결정하게 된 것은 단지 필요에 의해서이다. 모든 관계당사자들의 도움과 더불어 DPRK는 그럭저럭 체면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실제적 목적에서 보건대 북측에서는 그것이 통상적인 일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하여 사소한 조정이 실시되고 있으며 쓸모없게 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DPRK의 경제적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태이다. 분명히 DPRK는 그의 구정책에 계속 집착할 것이며 이런 식으로 마지못해 하나하나 양보해 가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행하는 모든 조정은 의심할 여지없이 공산주의 체제를 구하기에는 너무나도 적고 지나치게 늦은 것이 될 것이다. 환언하면 북에 있어서는 폭발의 위험성은 어느 시점에 가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소련은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반면에 DPRK로부터 나오는 수락할 수 없는 요구들을 수락함이 없이 인내심을 갖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소련의 정책을 계속해 갈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유엔에 가입한 이후에 이성있고 참을성 있는,그리고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게 되지 않기를 진실로 희망하는 바이다. 좀더 구체적 방식으로 말하여 본인은 대한민국이 유엔에서 DPRK와 어떤 형태의 영구적 협의기구를 창설할 것을 시도하도록 희망하는 바이다. 말하지 않아도 남북한은 유엔에 가입한 이후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두 국가는 서로 상이한 표결을 해야할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양자가 임하게 될 표결에 있어서 또는 일반적 의도에 있어서 대한민국으로부터의 사전통보는 DPRK로 하여금 이 국제기구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어 보이지 않게끔 그의 체면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협의의 상징적 의미는 이의 실제적 효과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DPRK와 그와 같은 상태의 의견교환을 제의한다면 소련은 주저없이 이를 환영하고 지지할 태세를 갖출 것이다.
  • 국산오디오에 반덤핑관세/EC,어제부터 최고 9.2% 부과

    【브뤼셀 AFP 연합】 유럽공동체(EC)는 한국 및 일본산 오디오 카셋에 대해 14일부터 항구적인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고 EC집행위원회가 밝혔다. EC관리들은 일본이 이들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특히 EC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암묵적인 위협을 가해 왔었다고 밝혔다. EC집행위의 한 대변인은 이같은 반덤핑관세 부과가 이달 중 도쿄에서 일본산 자동차의 수입을 규제하려는 EC계획안을 놓고 벌어질 일본과 EC관리들간의 협상을 어렵게 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 부과될 반덤핑 관세는 6개월 만에 소멸된 현행관세를 대치하게되며 EC외무장관들은 13일 이들 관세를 항구적으로 부과하도록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오디오 카셋에는 9.2%의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나 선경마그네틱 제품의 경우에는 2.6%만 부과된다. 새한미디어와 성남·금산전자제픔 등에 대해서는 반덤핑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일본산 제품의 경우 소니(23.4%)와 맥스웰(21.8%),데논콜롬비아(18.7%) 제품을 제외하고는 25.5%의 고율이 적용된다.
  • 「이스라엘 암초」에 걸려 표류/중동평화회담

    ◎유엔의 역할등 싸고 미와 시각차/시리아선 “지역급 회의” 주장… 조기개최 난망 중동평화회담을 둘러싼 미­이스라엘간의 갈등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미국은 2일 방미중인 이스라엘 강경파 아리엘 샤론 주택장관과 잭 켐프 미 주택장관이 미 주택부 청사에서 공식회담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회담은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비공식회담으로 열릴 수밖에 없었는데,이러한 미국의 의도적 냉대는 미국의 중동평화노력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상징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일개 주택장관을 홀대한 것이지만 이는 1회성 감정싸움이 아니라 샤론 장관이 팔레스타인 점령지대 정착촌 건설을 계속하는 등 베이커 장관의 중동평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데 대한 보복이자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의미가 작지 않음을 잘 아는 이스라엘도 즉각 미국에 대해 공식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은 베이커 국무장관을3차례나 중동지역에 보내 중동에 안정된 질서를 구축코자 노력해 왔다. 여기에 제일 장애가 되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시리아였다. 시리아는 유엔 주도하의 국제회의를 열 것과 이스라엘이 점령지로부터 철수하는 것이 중동평화의 요체라고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유엔의 어떤 역할도 거부하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직접 대화를 통한 중동문제 해결을 주장해 왔다. 또 아랍측 대표로는 PLO를 제외할 것과,점령지이지만 이스라엘 영토라고 주장하는 동예루살렘의 아랍주민 대표는 참석시킬 수 없다는 강고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여기에는 물론 아랍과의 직접 대화가 이스라엘 국가인정을 가져 오리라는 기대와 유엔의 역할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걸프전으로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으며 이번 참에 뭔가를 이뤄야 하는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양측의 입장을 조정,가시적 성과를 거두고자 동분서주했다. 미국은 우선 이집트 사우디 등으로부터 PLO의 배제,이스라엘과의 협상 등과 관련,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시리아는 유엔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으며,국제회의는 고집하지 않지만 지역회의급은 돼야 하고,이스라엘이 회담에 앞서 적어도 점령지 철수를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스라엘은 회담이 한 차례만 열려야지 여러 차례 열리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또 점령지 철수는 논외로 하며 미국 소련 EC가 회담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 못해 받아들이지만 유엔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거나 회담에 PLO나 동예루살렘 대표가 참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촌보의 양보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게다가 베이커 장관이 한창 일을 성사시키려는 때 샤론 장관 등 매파들이 점령지에 유태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미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로써 미국의 중동평화 정착노력은 어려운 고비를 맞게 됐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뭔가 이스라엘에 대해 불만과 경고의 뜻을 표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한해 30억달러의대이스라엘 원조를 행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소련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정착민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수십억달러의 자금유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에 제재를 가할 수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껏 샤론 장관을 홀대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했을 뿐이다. 미국내 유태인의 정치적 힘이 막강해 미국이 이스라엘을 반강제적으로 평화회담에 나서도록 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궁극적인 중동평화의 보장이 지금 현재로서는 다소 비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 OECD 가입의 전제조건/유장희 대외경제정책연 부원장

    ◎창립 30돌 런던세미나에 다녀와서/기고/개방·국제화시대에 적응능력 키워야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박사는 한국경제가 빠른 시일내에 제2의 도약을 기하기 위해서 OECD의 조기가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미국 경제계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지닌 인사가 이렇듯 한국의 OECD 가입을 하나의 처방전으로 내놓은 것을 보면 분명 이는 어느 국제기관에 단순히 가입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로 우리 경제발전에 직결될 수 있는 혜택도 기대할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는 선진공업국 중심으로 2차대전 후 새로운 경제협력체 구축의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국가간 성장·고용·복지의 달성을 위해 정책을 협조하려고 조직한 기구다. 또한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경제교류의 다각적·무차별적 진행을 돕고 또한 개발도상국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도 목적의 하나로 하고 있다. 원래유럽 18개국과 미국·캐나다를 합해 61년 9월에 발족되었으나 그후 일본(64년)·핀랜드(69년)·호주(71년) 그리고 뉴질랜드(73년)가 추가로 가입해서 현재 24개국의 회원국이 있다. 어떤 나라들이 과연 OECD회원국인가. 자격요건은 무엇인가. 흔히들 선진국이 되면 자연적으로 이 기구의 회원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선진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딱부러진 정의가 없으므로 이 또한 애매한 기준일 수밖에 없다. 1인당 GNP도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 현재 회원국인 포르투갈·터키·그리스 등은 1인당 GNP에 있어 회원국이 아닌 한국이나 사우디보다 못하다. 따라서 가입에 필요한 명백한 자격요건은 없고,있다면 OECD의 의무사항을 준수할 수 있는 기본자질이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의무사항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는 ▲회원국간의 상호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적 협력 ▲개도국에의 원조 ▲자유무역의 확대 등이다. 특히 자유무역의 확대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자유화 규약을 철저히 이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하나는 「경상무역외거래자유화규약」이고 또 하나는 「자본이동자유화규약」이다. 이 양대 규약은 회원국의 거주자가 다른 회원국의 거주와 영업·자금이전·외환거래 등에서 완전히 동등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다. 어느 한 나라가 이 기구에 가입하고 싶다면 먼저 가입원서를 내야 하고 이 기구의 이사회는 가입신청국에 대표단을 파견,신청국의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심층 검토 및 위의 두 가지 규약의 수용가능성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다. 그 분석 결과를 이사회에 제출해서 만장일치의 승인이 있어야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OECD의 목적과 원칙에 합당한 나라로 평가가 나느냐 하는 데에는 양론이 있다. 미국·영국·프랑스 일본 등은 한국의 빠른 성장과 공산품·서비스분야에 있어서의 지속적인 개방노력을 감안할 때 당장에는 곤란하더라도 몇 년내에 가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고 이를 위해 금년 또는 내년쯤 가입신청을 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에 몇몇 나라는 한국의 산업보호적인 분위기와 일반국민의 폐쇄성을 들어 가입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나라도 있다. 필자는 지난 4월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OECD 30주년기념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여러 가지 세미나 주제 중 한국의 가입여부가 참석자들의 관심의 초점이었다.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지만 이를 종합해서 필자가 피력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즉 우리나라도 경제가 선진화됨에 따라 OECD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이에 대한 한국내의 여건성숙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소득수준은 선진권에 들어서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앞에서 거론한 양대규약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자유무역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즉 물량적 성장뿐만 아니라 의식구조와 경제성장의 질이 「선진국형」이 되었을 때에만 가입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어 양대규약의 이행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의무사항인 개도국 원조 등도 흔쾌히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제경제의 환경변화도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변수이다. 따라서 국내외적 분위기와 여건이 성숙된 시점에서 이 기구에 가입신청을 내는 것이 옳은 접근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상 우리 정부는 이를 위해 착실히 준비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우선 정부내 실무자급으로 구성된 「OECD조사단」을 이 기구의 본부가 있는 파리에 보내 그 기능·조직·운영방법·회원국의 의무이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이미 착수했다. 또한 한국은 정회원이 아니면서도 각종 OECD 관련활동에 참여해왔다. 이미 OECD안에 있는 조선작업반(일종의 실무위원회)에 반원으로 가입해있고 기타 실무차원 기구에 참관인격으로 참석하고 있는 중이다. 선진국이 되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고 가파르다. 우리가 경제성장만 달성하면 되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가 않다. 세계가 점점 좁아가고 상호의존성이 높아가는 지구촌시대에서 성숙한 경제일수록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차원높은 규범이 까다로운 상류사회에 스스로의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인가,아니면 그 규범이 부담스럽고 또 지킬 자신이 없어 영영 비인노릇이나 하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결단내리기에 달려 있다. 이 결단에 앞서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혹시라도 돈은 벌었으면서 스스로가 졸부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지내는 우리가 아닌지를 성찰해 보는 일이다. 국제화와 개방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가치관의 대세라면 새 가치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비추어 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19일 「특별분양」 결정의 전말

    ◎“「수서분양」 회의에 외부 3인 참석”/장 비서관·민자의원·건설부국장 참석/시 간부 설득·질책하며 “허가” 결론 유도 수서지구 택지를 조합측에 특별분양키로 결정한 지난 1월19일의 박세직 서울시장 주재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시 간부외에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 담당비서관·이태섭의원(민자)·이동성 건설부 주택국장 등 외부인사 3인이 참석,시측에 압력을 넣어 특별분양을 최종결정토록 회의 결과를 유도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시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3명의 「외부인」이 시 간부들을 설득하고 질책하는 형식의 회의가 진행되면서 시 관계자의 분양불가방침 배경과 부작용 설명에도 이를 무시한 채 이들이 분양결정을 주도해 나갔다는 것이다. 이같은 증언으로 미루어 『청와대 비서실이 민원처리 차원에서 서울시에 공문을 보냈으며 지난해 10월 시로부터 「분양불가」 방침을 받고 종결처리했다』는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는 사실과 거리가 있으며관련부처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분양결정이 난 것으로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 이날 회의는 상오9시부터 시장실에서 각 국장 실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상적인 간부회의가 진행되다 9시40분쯤 업무보고가 끝난 국장들은 자연스럽게 나가고 박시장이 수서분양과 관련된 실무라인과 측근참모 몇명을 남으라고 지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시장실에 남게된 시 간부는 윤백영 부시장과 김인동 기획관리실장·이동 종합건설 본부장·강덕기 내무국장·김학재 도시계획국장 외에 뒤늦게 합류한 강창구 도시개발과장 등 모두 7명. 이 때부터 예정에 없던 수서문제 처리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면서 전화를 받은 이의원과 장비서관·이건설부주택국장 등이 상오10시쯤 거의 동시에 달려왔고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인 얘기가 오갔다. 박시장은 『수서지구민원 처리를 위해 국회청원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모두 얘기해보라』며 회의를 주재하며 시종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기만 했다. 가장 먼저 의견을 개진한 이의원은 『이번 사건처리는 전임 고건 시장에게 수차례 얘기해 서울시가 잘 알고 있는 일 아니냐. 국회 건설위 청원심사에서 의결된 일인데 또 필요한 얘기가 있느냐』며 분양결정을 다그치는 조로 말했다. 이때 참석한 시 관계자중 한 사람이 『안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민원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오갈 얘기는 충분히 해야하니 오해하지 말라』고 무마한뒤 김국장과 강과장이 시의 「불가방침」 배경과 민원을 수용할 경우에 예상되는 부작용과 여론의 반응 등을 몇가지 대안으로 요약 설명했다. 실무자들의 의견은 국회청원이란 「제2의 민원」을 받아들이더라도 분양면적을 줄이고 조합원도 무자격자를 배제할 수 있는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제13조의2 5항을 고집하는 쪽이었다. 이에 가장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이건설부국장이었다. 이국장은 『청원의 일부를 수용하는 것은 법의 근거가 다르다』며 『택촉법 시행령 13조의 2·3항을 적용해야 한다』며 『본 청원결론은 법해석상 3항의 「특별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몰아붙이고 『시가 5항을 적용해 멋대로 요리한다면큰일난다. 보통문제가 아니다』며 심각하게 얘기했다. 장비서관은 『수서민원은 3천3백명이 넘는 집단민원』이라고 전제,『건설부의 유권해석은 된다는데 시는 왜 안된다는 거냐』며 분양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비서관의 얘기를 들은 시 관계자는 『저사람이 알긴 많이 아는구나. 저정도면 상당히 이 문제에 정통해있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그뒤 실토했다. 이에 이의원도 『내 지역구 민원을 대변하지 않을수 없어 국회청원 소개를 하게됐다』며 분양주장을 일관되게 고집했다. 이날 회의는 참석자중 「외부인」과 박시장 등이 시장실에서 점심을 먹은뒤 하오2시반쯤까지 계속됐다. 상오 회의에서 지루한 설전이 계속돼 지친데다 회의분위기를 파악한 시 간부들마저 『법 집행부서인 서울시가 유권해석 기관이며 승인기관인 건설부측의 답변을 뒤집을 반대논리가 부족하다』 『유사민원의 발생에 대비,제소전 화해 등 변칙적 투기수법을 막을 수 있도록 국토이용관리법의 보완이 이뤄졌다』는 등의 청원 「수용론」쪽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반전돼 특별공급키로 결정하고 회의를 마쳤다. 회의분위기를 전한 한 관계자는 참석자들 일부는 『택지공급을 허용한다해도 걸프전쟁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만큼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 문제를 크게 취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19일 있은 회의결과에 따라 일요일인 20일 간부진과 발표문안 검토를 마친 박시장은 이 사실을 21일 기자들에게 발표토록 하고 법해석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건설부 이국장이 직접 답변을 하도록 했다. 이국장은 19일 열린 서울시 대책회의에서 『우리 건설부 출입기자들은 「유권해석」에 수긍을 하는데 시청기자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으냐』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는 것. 21일 이국장은 윤부시장·김국장과 함께 시청기자실 주변에 나타났다가 기자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청와대 장병조비서관/올림픽조직위 거치며 실세로 부상/스포츠 통해 한보 정 회장과 인연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의 청와대 개입설을 몰고온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담당비서관(1급·53)은 노태우 대통령이 체육부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SLOOC)에 재직할 당시 측근 참모로 활동하며 뛰어난 기획능력을 인정 받은 체육실무통. 경북 성주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경북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62년 주사보 공개채용시험을 통해 관계에 입문한 뒤 82년 체육부 발족시 초대 장관을 맡은 노대통령에 의해 체육부 총무과장으로 발탁되기까지 경제기획원에서만 근무,경협 2·3과장을 지냈다. 기획원시절 정부 각 부처 및 산하기관의 예산요청액과 승인액을 기억할 만큼 계수에 밝아 「인간컴퓨터」로 불리기도 했다. 장비서관은 83년 SLOOC 조정국장으로 파견돼 모든 계획과 자금지원을 총괄했으며 4년후 복귀해 국제국장을 역임하다가 89년 4월부터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해왔다. 그는 특히 노대통령이 83년7월 제2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SLOOC의 완전실세로 부상,막강한 힘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비서관은 박세직 서울시장·한보그룹 정태수 회장과도 업무관계로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지난86년 1월체육부 장관으로 부임,같은해 5월부터 SLOOC 위원장을 겸임한 박시장 및 84년에 대한하키협회장을 맡은 정회장과도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업무 추진능력으로 인해 체육계 일부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LOOC 근무시절 경기장 등 올림픽시설물 공사와 관련,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서울아시안게임 선수촌 분양을 둘러싸고 막후에서 조정을 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는 투박한 외모에 성격은 단순하고 직선적이나 소탈한 면이 많아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으며 체육관계 행사 등에는 거의 얼굴을 내미는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표류하는 조어대의 영유권/영토분쟁 왜 흐지부지 돼가나

    ◎페만파병 맞물려 파문 커지자 처리 보류 일/“53억불 대일 차관 교섭에 장애” 소극적 중/국력열세 한탄하며 뾰죽한 수 없어 관망 대만 대만 북쪽 해상에 위치한 조어대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대만 및 중국이 첨예하게 맞섰던 영유권분쟁은 열기가 식은채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지난 9월29일 일본이 『우익단체 일본청년사가 78년 이 열도에 세운 등대를 공식항해표지로 정한다』며 조어대가 그들 영토임을 주장한 뒤 지난달 21일 무력행사위협으로 대만 어선들을 몰아냄으로써 날카롭게 표면화 됐던 영유권분쟁은 중ㆍ일간의 암묵적인 합의로 「유보상태」를 견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어대분쟁이 발생하자 대만에선 조야가 떠들석하게 거센 반발을 보였고 홍콩과 다른 지역의 화교들도 모두 들고 일어나 자위대 해외파병과 관련,일본의 군국주의적 행동을 비난했다. 중국은 외신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대해 『조어대는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밝혔을 뿐 별다른 외교적 행동을 보이지 않다가 해외여론을 의식했음인지 지난달 27일 외교부 부부장(차관) 제회원이 북경주재 일본대사 히로시 하시모토(교본)를 불러 항의했다. 그러나 이 항의는 다분히 한계를 설정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으로 『일본은 앞으로 중국 및 대만어선에 대해 무력시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그쳤다. 제 부부장은 또 조어대 영규권문제는뒷날 다시 논의키로 하고 그대신 이 열도의 석유 및 수산자원에 대한 공동개발을 제의했다. 일측은 구체적인 확답을 하지 않았으나 『열도의 등대를 공식 항해표지로 정하려는 방침을 유보하며 영규권문제는 후대들이 처리토록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정도로 중국의 연성항의에 화답하듯 성의를 갖춘 반응을 나타냈다. 중국이 예상밖의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산업부장 호평이 지난 31일 도쿄를 방문,일본으로부터 53억달러의 차관을 들여오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천안문 사태이후 일본이 서방세계의 대중 경제제재 해제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한편 대만은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1895년 청일전쟁으로 이홍장이 대만과 조어대를 일측에 넘겨줬던 외교방식과 다를게 없다며 『조어대는 대만영토인데 중ㆍ일 공동자원 개발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대만으로선 추이를 관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일 뿐이다. 관측통들은 중국이 대만과의 통일시기를 기다린뒤 다시 일본과 조어대 영유권을 놓고 본격적인 한판 승부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해보더라도 대만에게만 유리해질 가능성이 많고 또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쓸데없이 분쟁을 가열시키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나라때 일본에 강점됐던 이 열도를 2차대전후 오키나와와 함께 관할하다 다시 일본에 넘겨줘 분쟁의 씨앗을 뿌렸던 미국은 공식성명을 통해 『당사국끼리 해결할 문제』라고 발뺌하고 있다.
  • 평양의 변화 이렇게 본다:5ㆍ끝

    ◎북한,「한ㆍ소 수교 충격」 최소화에 전력/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조기경협 포석/「2개 조선」ㆍ「교차승인」 분리해석 시도 9월초 서울에서 제1차 남북한 총리회담이 개최되었다. 몇가지 사소한 문제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으나 기본적인 입장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받은 첫 인상은 평양에서의 제2차 총리회담에서 쌍방입장의 기본적인 대립이 표면화되어 결국은 결렬되고말 공산이 적지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생각은 그와는 조금 달라졌으며 남북한대화는 평양회담의 고개를 넘어 연내에 제3차 남북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서방제국 특히 일본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북한은 그것을 좌절내지는 정체시킬 남북대화의 결렬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러한 생각의 근거다. 그러면 북한의 대일 접근의 진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통일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대화가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소 국교수립의움직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북한에 대단히 불리해지고 있으며 경제적인 곤란도 점점더 심각해지고 있어 서방제국 특히 일본에의 접근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데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진전시키고 싶은 것이 분명하며 북한은 앞으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거기에는 몇가지 해결곤란한 조건들이 방해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본측은 도의적인 관점에서도 교섭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관계가 개선되려면 거기에는 「경제협력」이라는 이름의 「배상」문제가 따르고 「재13 후지산마루」라는 외교적인 문제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북한의 대일 관계개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교를 수립하면 소련에 이어 일본도 「2개의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되어 곧 미국이라든가 중국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교차승인」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주석이 주장하는 「1국가 2체제」의 연방제통일 제안의 논리가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어느 정도의 중간적 단계에 묶어두면서 전면적인 국교정상화에는 이르지 않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경제협력만 얻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해서 북한은 중요한 단계에 이른 남북대화를 위해 보다 견고한 발판을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까지의 필자의 견해였다. 그러나 가네마루(금환) 사절단의 평양방문의 과정에서 북한의 외교당국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을 제의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2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 첫째는 북한이 「2개의 한국」이라든가 「교차승인」에 반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며 그보다는 일ㆍ북한 정부간 교섭의 개시와 동시에 도쿄­평양­서울간에 격렬한 외교적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권투에 비유한다면 일ㆍ북한 교섭은 여전히 「잽의 응수」,즉 정치적인 「줄다리기」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내걸지 않으면 일본으로부터의 대규모적일 뿐 아니라 신속한 조기 경제협력을 받아내는 것이 곤란하다는 판단을 기초로 한 정치적인 「책략」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무난할지 모른다. 일 외무성은 「국교정상화 이전의 경제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제2의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한소 관계의 급속한 전개에 대항하고 또 국교정상화 없이는 일본으로부터의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일 관계의 급격하고도 다이내믹한 개선에 나섰다는 것이다. 만약 이 견해가 옳다면 일본ㆍ북한 관계는 한소 국교수립을 뒤쫓는 형태로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이 견해에 따른다면 북한은 「2개의 조선」 반대와 「교차승인」 반대의 원칙을 포기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개의 조선」 반대 원칙을 종래 이상으로 확고히 견지하면서 그것과 「교차승인」 반대의 원칙을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만약 이러한 견해가 옳다면 일본ㆍ북한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은 북한당국에 의한 「교차승인」의 암묵적이고도 단계적인 수락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암묵적이고도 단계적인」이라고 하는 것은 2개 원칙의 분리를 비공개적이고도 단계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이며 장차는 한중 및 미ㆍ북한간의 국교수립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통일은 균형잡힌 국제환경하에서 2개의 대등한 국가간의 통일로서 실현시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가령 제2의 견해가 옳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에게는 대단히 환영해야할 일이며 한국 국민의 여유있는 대응을 기대하고 싶다.
  • “통독후 바기구 탈퇴”/동독 에펠만 국방

    【본 UPI 연합 특약】 동독은 통일되는 즉시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탈퇴할 것이라고 라이너 에펠만 동독 국방장관이 9일 말했다. 그는 서베를린의 모르겐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이 문제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바르샤바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동독이 통일후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에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 “새질서 모색”…당내역학 큰변화예상/내분수습 이후 민자당 기류분석

    ◎차기대비,3계파 공개경쟁 불가피/민정ㆍ공화계,민주계 견제위해 제휴 가능성/민주계,여세몰아 당권장악 장기작전 펼듯 민자당내분이 수습의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 놓음에 따라 내분수습이후의 민자당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주일에 걸친 민자당내분은 외형상 박철언정무1장관의 사퇴로 매듭이 진 셈이다. 그러나 이번 내분의 확대와 수습과정에서 발생한 몇가지 현상들로 인해 내분의 파장은 당운영과 진로는 물론 당내역학구조에까지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선은 민정계의 노태우대통령대리인이었던 박장관의 사퇴로 민정계내부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김영삼최고위원은 어떤 의미에서는 내분의 승자가 됨으로써 당내에서의 입지와 체면을 유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3자의 입장으로 내분에 간여했던 김종필최고위원 역시 양 계파간의 내분중재에 성공해 보임으로써 당내 3인자에서 공동 2인자로 위상을 높이는 소득을 얻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은 내분승리의 여세를 몰아 당정분리와 함께 당권장악을 위한 파상공세를 민정ㆍ공화계 모두를 향해 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장관의 사퇴를 통한 내분수습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김영삼최고위원이 14일 김종필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공작정치근절」을 계속 거론한 점은 민주계가 박장관의 사퇴를 당권장악으로 가는 디딤돌로 역이용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내분의 확대와 수습과정에서 민정계는 김영삼최고위원 보다는 김종필최고위원측에 심정적 동질성을 확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점은 계파내부의 신질서정착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민정계가 김영삼최고위원의 급부상을 막기 위해 김종필최고위원과 보이지 않는 연대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민정ㆍ민주계를 넘나드는 막후절충 과정에서 민주계에는 박장관의 처리를 노대통령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논지로 설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민정계와의 막후절충에서는 박장관의 모양새 있는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해 민정계로부터 「친근한 중재자」라는 평가를 얻었다. 민정계는 김영삼최고위원이 내분과정을 통해 당권장악과 다음대권주자에 대한 계산을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3당통합과 관련한 민정계의 정국운용구상은 내각제개헌을 목표로 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당내과반수가 넘는 지분을 활용,다음대권주자를 자신들이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영삼최고위원이 민정계를 잠식하는 방법으로 여론을 업어 당권을 장악하거나 일찌감치 자신을 유일한 대권주자로 부각시키는 것은 민정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로 해석된다. 공화계역시 정국구상을 따지자면 내각제개헌이 첫째고 두번째가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는 민정계의 도움을 얻어 대권주자를 겨냥하는 것이다. 김영삼최고위원의 급격한 부상은 그가 영남권의 대표주자라는 지역기반을 고려할때 내각제개헌보다는 대통령직선제 고수를 고집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공화계와의 이익과도 배치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민정계와 공화계의 민주계 부상조짐에 대한 이해일치는 두 계파간의 암묵적인 제휴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때문에 민주계가 당권장악노력을 계속해 나갈 경우 민자당내분은 김종필최고위원이 민정계의 한시적 대리인으로서 김영삼최고위원의 상대역을 맡는 형태로 양상이 바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민정계는 노대통령의 대리인이 새로 임명되는 것을 계기로 계파관리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정계의 고민은 두김씨에 필적할 만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가진 인물이 없다는 데 있다. 이같은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중간 보스들이 참여하는 회의체로 계파를 관리해갈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어떤 인물이 노대통령의 대리인이 되든 민정계가 두김중 어느 한 사람을 결정적 시기에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의 유지를 위한 중간 보스들간의 화합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무1장관은 사퇴후에도 노대통령의 측근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하리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정치일선에 특정의 무게를 갖고 컴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고 민정계운영 역시 박장관의 컴백이나 영향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민자당은 이번 내분의 수습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 이후를 대비한 계파간 공개경쟁이 불가피할 것 같다. 이에따라 노대통령의 당무간여는 민정계를 통한 영향력행사외에 두 최고위원을 「분리지배」하는 방식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장기정국운영구상과 관련,대야막후 접촉을 활성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영삼­김종필위원 회동 2시간30분/“당개혁에 의견접근”시사/지도체제도 깊숙이 논의 ○…민자당의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은 14일 상오 상도동 김영삼최고위원 자택에서 2차회동을 갖고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회동결과를 설명해 「김영삼­박철언대결」로 야기된 당내분 사태가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음을 천명. 이날 상오9시부터 2시간30분간에 걸친 회동이 끝난 뒤 김종필최고위원이 먼저 결과를 발표,『그동안 김영삼최고위원께서 괴로운 심사로 지내온 것 같다』고 운을 뗀후 『그러나 당이나 국사를 들여다 보며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시간만보낼 수는 없었다』고 이날의 회동배경을 설명. 김종필최고위원은 이어 『당을 이끌고 국민들의 신뢰를 하루속히 얻어내기 위해 김영삼최고위원이 또 새로운 결심을 하셨다』고 김영삼최고위원을 치켜세운 뒤 『앞으로 당에서 고쳐나가야 할 일에 대해 소상히 의견을 나눴으며 내주 대통령을 뵙고 흐트러진 우리당이 굳건하고 전진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며 결과를 압축. 김최고위원은 『김영삼최고위원이 괴로운 심사를 씻고 또 당의 선두에 서 주시겠다고 했다』며 민자당 지도체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도 있었음을 시사. ○…김영삼최고위원은 『요즘 신문에는 민자당의 내분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나는 내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민자당이 집권당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당풍쇄신과 기강을 확립해야 하며 나는 한번도 특정인을 거론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해 민자당의 내분이 「김­박철언대결」로 비춰진 데 대해 못마땅한 모습. 김영삼최고위원은 『김종필최고위원과 회담결과 우리나라가 이대로는 안되며 정말 개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이 똑 같았다』면서 『대담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생각을 같이 했다』고 소개. 김영삼최고위원은 「대담한 일」이 공작정치와 관련된 언급이냐는 질문에 『선거부정이나 공작정치하는 정권은 존립하지 못한다』며 『김종필최고위원과 이 문제에 대해 장시간 얘기했으며 공작정치는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 한편 김영삼최고위원은 월요일부터 당사에 출근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답변했으나 측근들은 『민주계의원들에 대한 설명의 시간도 필요한 만큼 청와대회동 후에나 출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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