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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재도약 벼르는 중국 공청단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재도약 벼르는 중국 공청단

    지난 20일 오전 9시 45분쯤,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서쪽의 인민대회당은 가마솥더위가 무색할 만큼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7차 전국대표대회가 폐막을 앞두고 공청단 최고 권력인 제1서기를 포함해 7명의 중앙서기처 서기로 구성된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면서 회의장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공청단 전국 대표 1506명은 이날 회의에서 친이즈(秦宜智·48)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상무부주석을 단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허쥔커(賀軍科·44) 전 전국청년연합 상무부주석을 상무서기로 선출했다. 이어 뤄메이(梅·43·여) 전 국무원 부녀어린이공작위원회 위원, 왕훙옌(汪鴻雁·43·여) 전 후베이(湖北)성 스옌(十堰)시 시장, 저우창쿠이(周長奎·44) 전 단중앙 선전부장, 쉬샤오(徐曉·41) 전 단중앙 청년공작부장, 푸전방(傅振邦·38) 전 후베이성 쑤이저우(隨州) 시장 등 5명을 서기로 뽑았다. 10년 뒤를 내다보고 중국 미래 권력의 새로운 판 짜기가 본격 시작된 셈이다. 단중앙 제1서기로 선출된 친이즈는 칭화(淸華)대 공정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국영 철강기업 판강(攀鋼)그룹에서 13년 동안 일한 기업인 출신이다. 2001년 쓰촨(四川)성 판즈화(攀枝花)시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쓰촨성 네이장(內江)시 당서기를 거쳐 2005년부터 8년간 시짱자치구에서 근무했다. 공청단 근무 경험이 전무한 만큼 칭화대와 시짱자치구 등에서 ‘관시’(關係)를 맺은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직접 그를 발탁했다는 게 베이징 정가의 분석이다. 단중앙 서기들 가운데 이른바 ‘치링허우’(七十後·1970년대 출생자)는 푸전방(1975년)을 포함해 왕훙옌(1970년), 쉬샤오(1972년) 등 3명이다. 특히 칭화대 수리수전(水利水電)공정학과를 졸업한 뒤 중국 싼샤(三峽)총공사 판공실, 싼샤총공사건설부 등 15년 이상 수리계통에서 일한 수리 전문가 푸전방이 가장 어린 나이로 서기직에 올라 ‘블루칩’(유망주)으로 떠올랐다. 중국을 이끌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28세, 장바오순(張寶順) 안후이(安徽)성 당서기와 류치바오(劉奇?) 당중앙선전부장이 32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과 양웨(楊嶽)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당서기가 33세,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기와 쑨진룽(孫龍) 후난(湖南)성 부서기가 34세에 서기직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단중앙 제1서기는 ‘중국 대륙 최고 지도자의 요람’으로 통한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를 비롯해 후진타오 전 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수많은 국가 동량을 배출한 덕분이다. 리 총리에 이어 저우창(周强) 최고인민법원장, 후춘화 광둥성 서기, 루하오(陸昊)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 친이즈 순으로 제1서기 자리를 물려받았다. 공청단파는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5세대 지도부 인선 과정에서 태자당(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 자제 그룹)과 상하이방(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 기반 정치 파벌) 연합 세력에 패퇴했다.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는 서열 2위의 총리직에 오른 리커창 한 명밖에 진입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만큼 이날 회의에서 제6세대 최고 지도자는 “공청단에서 배출해야 한다”는 데 암묵적인 동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6세대 최고 지도자 후보로 나설 공청단 대표주자에게 관심이 쏠린다. 현 상황에서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 루하오 헤이룽장성 성장, 저우창 최고인민법원장, 친이즈 단중앙 제1서기 등 공청단 4인방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후 당서기가 가장 앞서가고 루 성장이 그 뒤를 따르며 저우 최고법원장과 친 제1서기는 조금 처진 형국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 광둥성을 책임지고 있는 후춘화 당서기는 ‘샤오후’(小胡·젊은 후진타오)로 통한다. 공청단 제1서기, 시짱자치구 근무 등 정치 행로가 후 전 주석을 빼닮은 까닭이다. 1983년 베이징대 졸업생 대표로 선발된 그는 그해 졸업생 대회에서 차오스(喬石), 야오이린(姚依林), 후치리(胡啓立) 등 당시 공산당 실력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험난한 오지’ 시짱자치구 근무를 자청해 이들에게 ‘될성부른 나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후 전 주석이 시짱자치구 당서기로 있을 때 라싸(薩)에서 대규모 유혈 폭동 사건이 일어나자 공청단 시짱자치구 부서기를 맡고 있던 후 당서기가 폭동 진압에 힘을 보태 후 전 주석의 ‘환심’을 샀다. 후 전 주석이 집권한 2006년 14년간의 시짱자치구 근무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 당서기는 단중앙 제1서기로 발탁돼 승승장구했다. 2008년에는 허베이(河北)성 성장으로 영전해 전국 최연소 성장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2009년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당서기를 거쳐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서열 25위 안에 드는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면서 ‘포스트 시진핑’ 자리에 바짝 다가섰다. ‘리틀 리커창’으로 불리는 루하오 헤이룽장성 성장은 1985년 베이징대에 입학해 학생회장과 단중앙 제1서기를 지내는 등 리 총리와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태어난 루 성장은 가오중(高中·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 졸업을 몇 달 앞두고 고교생 공산당원이 돼 주목받았다. 베이징대에서 경제관리학(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문화혁명 이후 첫 번째 직선 베이징대 학생회장 자리에 올랐다.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MBA과정) 명예원장으로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 리이닝(?以寧) 교수 밑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루 성장은 대학 졸업 후 배치된 대형 모직공장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공장장을 거쳐 1998년 베이징시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을 조성한 공로로 2003년 33살의 나이로 베이징시 부시장에 전격 발탁됐으며 2008년 단중앙 제1서기로 선출됐다. 지난 3월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배려로 부족한 지방 경험을 쌓기 위해 헤이룽장성 성장으로 내려가 공청단 대표주자 자리를 놓고 후 당서기를 맹추격하고 있다. 저우창 최고법원장은 지난해 정치국 위원 진입에 실패함에 따라 후 당서기 및 ‘비공청단’파인 쑨정차이(孫政才·50) 충칭직할시 당서기와의 6세대 최고 지도자 경쟁에서 일단 밀려난 형세이고, 친이즈 제1서기는 대표주자로 나서기에는 중앙, 지방 등의 수장 경험 등이 일천하다는 게 베이징 정가의 지적이다. khkim@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한반도 지형변화(하)

    지난 60년간 전쟁 억제 역할을 해온 정전협정은 북한의 무효화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적대 행위의 사실상 정지’라는 본래 의미를 잃고 사문화된 지 오래됐다. 정전협정이라는 안전장치가 전면전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달라진 국제 역학관계 등 외교 환경과 ‘최악의 무장 충돌만은 피하자’는 남북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안전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정전은 휴전보다 좁은 의미로 ‘서로의 합의에 의해 전쟁 당사국들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다’는 뜻이다. 휴전은 전쟁 중 얼마 동안 전투를 멈춘다는 의미로 정전보다는 더 나아간 준 평화상태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 한글판에는 ‘한반도 정전협정’으로, 영문판에는 ‘휴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란 표현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전투를 일시 중단할 뿐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는 1000명 이내의 비무장 인원이 들어가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한반도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제로는 양측의 무장병력과 지뢰, 방벽 등 군사 시설물로 중무장됐다. 군사 인원 및 장비의 반입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 산하 중립국 시찰 소조의 활동은 북한의 소련 무기 반입 논란 끝에 1956년 5월 활동이 중지됐고, 시찰 소조의 활동을 규정한 정전협정 조항도 폐기됐다. 정전 감시의무를 수행하는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의 기능도 1990년대 들어 공산 측 대표단이 철수하면서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북한은 1993년 체코,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 철수시켰는데, 폴란드의 경우 철수를 거부하자 겨울철 막사의 전기와 수도까지 단절했다. 1994년 12월에는 군사정전위 중국 대표단을 철수시켰고, 1996년에는 군사정전위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거부한 표면상의 이유는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군은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석대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서명 당사자에 한국대표가 빠진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가 결국 협정문을 형식상의 문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정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 등 3명만이 서명했다. 중국군만 제어할 수 있다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정전협상에 반대하며 한국군 대표를 휴전회담에서 철수시켰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은 6·25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는 집행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협상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정치·외교적 공세를 펴왔다. 정전협정을 적용하면 한국은 북한이 도발을 해 와도 직접 책임을 따지지 못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책임 추궁을 의뢰해야 한다. 군사정전위가 나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전위가 조사 활동을 마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유엔군 사령관은 이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데, 이후의 대응 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북측의 책임을 추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에도 유엔사 특별조사팀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꼭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더라도 정전협정은 60년간 달라진 남북 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도 1996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잠정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정전 상태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잠정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었지만, 주체를 북·미로 한정한 게 문제다. 정전협정이 그렇듯, 한국이 배제된 협정은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정에 제도상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국가 간 ‘신사협정’ 파기한 셈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함에 따라 남북 관계는 물론 향후 다른 국가와의 외교 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국가 간에 암묵적으로 지켜온 ‘신사협정’을 파기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어렵게 되거나 그동안 외교 무대에서 어렵게 쌓아온 한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선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낱낱이 공개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남북 대화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의가 깨진 이상 향후 대화 국면에서 서로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른 국가와의 외교 관계에서 두고두고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정치적 요구에 따라 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어떤 나라가 한국을 믿으려 하겠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은 “다른 국가들도 남북 간 특수성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부 ‘서울 남북 장관급회담’ 제의] ‘박정희 유산’ 앞세워 박대통령에 구애

    [정부 ‘서울 남북 장관급회담’ 제의] ‘박정희 유산’ 앞세워 박대통령에 구애

    북한이 6일 우리 측에 포괄적 남북회담을 제의하며 7·4 공동성명을 언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매개로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7·4 공동성명은 1972년 박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공동으로 이뤄 낸 남북 간 첫 합의이자 그 후손들인 박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함께 풀어 가야 할 공동 유산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7·4 공동성명 발표 41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하면서 선친이 만든 7·4 공동성명의 의미를 박 대통령이 이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의원 시절인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면서 7·4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확인했었다. 북한이 끊은 남북관계를 연결할 고리로 7·4 공동성명을 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시를 상기시키면서 그 초심을 다시 살리려는 북한의 진정성도 알아 달라는 복합적 의미”라고 해석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남북관계만 강조해 왔던 북한이 박근혜 정부 출범을 맞아 2000년 이전의 남북관계까지 폭넓게 보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7·4 공동성명은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항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이 명시돼 있고, 2항에는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중상 비방 중지, 무장도발 중지, 군사충돌 사건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추진한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정, 개성공단 정상화의 근본 문제로 내걸었던 ‘한반도 전쟁연습 중단’ 등이 여기에 모두 포함돼 있다. 당시의 합의 내용에 대해 우리 정부의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는 듯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꽃제비’ 강제 북송, 정보전과 외교의 실패다

    사선(死線)을 넘어 탈북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우리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 속에 그제 라오스에서 북으로 다시 끌려갔다. 길게는 3년을 중국에서 떠돌다 가까스로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해 자유의 품에 안길 날을 학수고대하던 이들이었건만 끝내 강제 북송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고 만 것이다. 지난 10일 이들이 라오스에 도착한 뒤 그제 다시 북으로 끌려가기까지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이 한 일이라곤 이들에게 “그냥 기다리라”고 한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이 북한 요원들에 의해 중국을 거쳐 다시 평양으로 끌려갈 때까지도 우리 외교당국은 이들의 북송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말문이 막힌다. 중국 공안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된 뒤로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지난 수년간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기 위한 주요 탈북 루트가 돼 왔다. 라오스만 해도 지난 3년간 탈북자 약 400명의 한국행이 성사됐을 정도로 주요 탈북 거점이 돼 왔고, 라오스 정부의 암묵적 협조 아래 비교적 순조롭게 한국행이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탈북자 9명의 경우는 그간의 사례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탈북자 1명에게 북한 요원 1명이 달라붙어 북송했을 만큼 북한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가장해 탈북자들을 면담,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고는 이들을 북한의 단체여행객으로 둔갑시켜 항공편으로 중국을 경유해 평양으로 직행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구걸 행위로 연명하던 꽃제비들을 북한 당국이 왜 그리 공을 들여 빼돌린 것인지, 그 배경은 베일에 가려 있다. 탈북자 가운데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여성의 아들이 포함돼 있었고, 이에 북한 당국이 일본인 납치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우려해 기획 북송에 나섰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배경과 경위가 무엇이든 우리 외교당국의 무사안일주의가 라오스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격인 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허술한 정보력과 외교 부재의 총합이 아닐 수 없다. 극심한 굶주림 끝에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꽃제비들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외교력으로 북한 인권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교부는 이들의 강제 북송과 우리 라오스 대사관의 대응 과정을 가감 없이 공개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 “교육목적 이용 허락의 대가” vs “저작권자조차 불분명”

    “교육목적 이용 허락의 대가” vs “저작권자조차 불분명”

    ‘수업 목적 보상금’을 둘러싼 정부와 대학 간의 힘겨루기가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학 교재 등의 무분별한 복제를 막기 위해 2011년 4월 ‘저작물 보상금’ 고시안을 마련하자 이에 반발한 대학들은 지난 1월 고시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최종판단이 다음 달 11일로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대학들은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 대학들은 꼼짝없이 매년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국 410여곳의 대학에서 내놓아야 할 보상금은 매년 수십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2011년 문체부는 고시를 통해 대학이 수업을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대학가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던 저작물 침해행위에 제동을 걸었던 셈. 고시안에 따르면 대학은 교재·논문 등을 복사해 배포하거나 강의시간에 음악이나 동영상을 재생할 경우 ‘저작물의 분량’(종량제) 또는 ‘학생수’(포괄제)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건별로 복제를 일일이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포괄제가 현실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문체부가 위탁한 보상금 수령단체인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KORRA)는 애초 학생 1인당 연간 보상금을 4474원 수준(포괄제)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액수가 너무 높다”는 대학들의 반발에 따라 1879원까지 낮췄다. 그럼에도 보상금 약정을 한 대학은 경찰대, 육사, 한예종 등 일부에 불과하자 협회는 지난해 7월부터 저작물 복제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라며 서울·성균관·한양·경북·명지전문·서울디지털대 등 6개 대학에 선별적 소송을 차례로 제기했다. 이들의 저작물 이용 빈도가 다른 대학에 비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 가운데 경북대를 제외한 5개 대학은 문체부의 시행령이 원천적으로 무효이기에 보상금을 낼 수 없다며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보상금을 지불해야 할 저작권자가 불분명하고, 교육목적의 공유를 허용하는 추세와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갈등은 얼핏 저작권료를 놓고 벌이는 감정싸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내 저작권 체계가 허술한 탓에 쉽게 매듭이 지어질 수 없는 복잡한 구조적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높다. 안효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KORRA가 보상금만 내면 대학이 마음놓고 저작물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면서 “KORRA는 모든 저작권자의 권리를 신탁하고 있지 않고, 복사·전송 외의 복제·배포·방송 등의 권리에 대해선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초·중·고교 교과서 게재 저작물의 보상금을 징수하는 KORRA가 2005~2009년 징수한 108억원의 보상금 중 67억원(62%)에 대해선 저작권자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분배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반면 김동현 KORRA 사무국장은 “보상금은 교육목적 사용에 대한 이용 허락의 대가로, 저작권 신탁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또 미분배 보상금은 법률상 3년이 경과한 후 KORRA가 문화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향후 미분배 보상금을 활용해 대학 원서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전문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아울러 KORRA는 소송과 별개로 추후 대학가의 모든 복사기에 복사 내용을 파악해 저작권료를 매기는 시스템 구축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의 저작물 복제에 대한 보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체계화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미국의 경우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사전 허락 없이 저작물의 복제는 불가능하다. 교재 등 복사 사용료는 건당 2달러 안팎이다. 호주는 학생 1인당 연간 38호주달러(약 4만 1500원)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포괄제를 채택하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130년 만의 조선책략 개정판/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130년 만의 조선책략 개정판/민병원 이화여대 정치학 교수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와 고종에게 보고한 것이 일본 주재 청나라 공서참찬(公署參贊) 황준센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었다. ‘조선책략’으로 잘 알려진 이 책에 대한 당시 조선의 반응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발견된다. 중국의 일개 외교관이 쓴 조선정세 분석이었음에도 고종과 대신들은 상당히 공감했고, 수신사를 접대한 일본의 후의와 외교정책 방안을 한 수 가르쳐준 중국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었다. 반면 무조건적으로 외세를 배격하려는 국내의 척화 여론에 대해서는 불신했다.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되살려 보려는 조선 말기 지도층의 시세 인식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책략’의 내용은 자못 논리적이었다. 강대국 러시아가 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하려 하니, 가장 위기에 처해 있는 조선의 살 길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하는 것이라는 것이 책략의 핵심이다. 추운 지방에 위치한 러시아는 항상 따뜻한 남쪽으로 팽창해 왔는데, 유럽에서는 터키를 노렸으나 열강들의 공동대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연해주로 야욕의 대상을 넓혀 왔다는 점이 강조됐다. 사할린과 만주를 취한 러시아의 다음 먹잇감은 조선반도임에 틀림없으므로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주변 국가들과 힘을 합해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본을 평가한 부분도 독특하다. 조선과 일본은 늘 운명을 함께하는 지정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보완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한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도 무사할 수 없다는 순망치한의 논리였다. 또한 과거 진(秦)의 확장을 주변 국가들이 힘을 합해 막아냈던 것처럼, 중국과 일본·조선이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한 세력균형 연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럽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약소한 자를 돕고 공의를 유지하려는 미국 역시 조선이 받아들여야 할 훌륭한 외교 파트너로 간주됐다. 그런데 이런 핵심적인 제안과는 별도로 글 속에 숨어 있는 중국의 조선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황준센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중국의 힘뿐만 아니라 중국이 주변 국가를 침략하지 않는 평화지향적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온화한 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베트남·미얀마와 같이 중국과의 관계를 등한시해 환란에 빠지지 말고 ‘한집안’이라는 인식으로 중국을 섬기면 외세의 야욕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과시가 깔려 있다. 당시 서양의 침탈로 청나라가 기울어져 가던 와중에도 조선을 여전히 속국으로 간주하던 중화질서관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중국 인민일보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둘러싸고 관련 국가들에 대하여 엄중한 훈계를 던졌다. 한반도 정세가 북한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하지 말라는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을 일방적으로 제재만 해서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고, 일본이 한반도 위기를 기회 삼아 군사적 팽창을 노려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도 덧붙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최대의 피해자가 될 터인즉, 대화로써 중재를 취하라는 점잖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러시아 팽창의 위협에 직면했던 130여년 전 위기상황에 비해 환란의 원인은 달라졌지만, 중화질서관을 바탕으로 한 정세 인식은 그리 바뀌지 않은 ‘조선책략’ 개정판이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21세기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의 조언과 인식은 중요하다. 이웃 강대국이 한반도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책략’의 의미가 그 방략의 정확함보다는 주변정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음을 감안할 때, 오늘날의 ‘조선책략’ 개정판 이면에 깔려 있는 은근한 메시지도 필히 주목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조선책략’이 기울어져 가는 중국의 맥없는 자문이었다면, 지금의 ‘조선책략’은 커가는 중국의 힘이 잔뜩 실린 경고인 듯하여 자못 찜찜하다.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커버스토리] 삼성·애플 특허소송 2년 ‘빛과 그림자’

    [커버스토리] 삼성·애플 특허소송 2년 ‘빛과 그림자’

    2011년 4월 15일(현지시간)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에 “삼성이 자사 제품 디자인을 모방했다”며 특허 소송을 제기한 지 2년이 지났다. 미국에서 시작된 두 회사의 재판은 곧바로 한국과 독일, 일본 등으로 번지며 9개국으로 늘었고, 수많은 이슈를 만들며 어느덧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결인 만큼 두 회사는 소송 비용부터 일반인의 상상을 압도했다. 삼성과 애플 모두 돈이 아깝지 않은 ‘거물’이다 보니 최고의 특허 변호사들로 ‘드림팀’을 꾸렸고, 전 세계에서 50여건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했다. 두 회사 모두 소송 비용을 함구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지금의 소송을 마무리 짓는 데만도 각각 3억 달러 가까이를 써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기준 국내 유제품 업체인 매일유업의 시가총액은 5896억원. 알짜 강소기업을 통째로 살 수 있는 5000억원 넘는 돈이 생산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특허전문 변호사들의 손에 넘어갔다. 원래 삼성과 애플은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83년 28세의 어린 스티브 잡스를 만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그를 ‘IBM에 대적할 인물’로 높이 평가했고, 애플 역시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만들 때부터 삼성을 파트너로 정해 주요 부품을 공급받아 왔다. 이 때문에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세상을 떠나고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찾아가 조문하면서 양사가 합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두 회사는 미국 법원에서 1심 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양사의 주가와 실적을 보면 알 수 있을 듯하다. 2011년 4월 15일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88만 8000원(종가 기준)이었지만, 미국에서 1심 배심평결이 나온 2012년 8월 24일 주가는 127만 5000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2011년 4월 15일 327.46달러였던 애플 주가는 지난해 700달러를 넘어서며 용솟음쳤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애플)과 갤럭시(삼성)로 양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은 소송을 통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 세계 매체를 통해 아이폰을 홍보했고, 삼성 역시 같은 혜택을 누렸다. 전 세계가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삼성과 애플은 험난한 특허분쟁을 치르며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양사가 암묵적으로 소송을 유지하며 인지도를 높이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서로를 죽이려 하지만 이런 구도가 되레 자신들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소송을 최대한 오래 끌고 가려 한다는 것이다. 한편 두 회사의 소송은 국내 기업들의 체질까지도 바꿔 놓았다. 양사의 특허전쟁을 지켜보며 ‘자칫하면 소송 하나로 기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대기업 채용란에서 ‘특허 인력 상시 모집’이라는 게시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시진핑 외동딸 밍쩌, 재벌 2세와 열애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외동딸인 시밍쩌(習明澤·21)가 중국 재벌가 아들과 교재 중이라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매체 둬웨이(多維)가 8일 보도했다. 시밍쩌의 교재 상대로 알려진 주인공은 중국 최대 민영기업인 싼이(三一)중공업 량원건(梁穩根·57) 회장의 외아들 량즈중(梁治中·29)이다. 두 사람은 이미 시 주석의 암묵적인 승인까지 받았으며 량 회장이 지난 연말 갑자기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의 본사를 베이징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도 시밍쩌와 량즈중의 연애와 관련 있다고 둬웨이는 전했다. 건설 중장비업체인 싼이중공업의 량 회장은 중국의 대표적 민영기업가다. 중국 부호 순위를 집계하는 후룬(胡潤)의 2011년 부호 순위에서 700억 위안(약 12조원)의 재산을 가진 중국 최고 부호로 꼽혔다. 아들 량즈중은 2002~2006년 영국 워릭대 컴퓨터학과에서 유학했고 지금은 싼이중공업의 부회장 겸 재무 총괄 이사를 맡고 있다. 시 주석의 외동딸인 시밍쩌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하다가 지난해 11월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기 직전 귀국해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새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 청빈과 겸손의 삶… 버스타고 다니고 단칸방 아파트서 생활

    [새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 청빈과 겸손의 삶… 버스타고 다니고 단칸방 아파트서 생활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의 환영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알듯이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는 로마에 주교를 앉히는 것입니다. 동료 추기경들이 나를 찾기 위해 세상 끝까지 간 것처럼 보입니다(웃음).” 13일(현지시간)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잇는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76) 추기경은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와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가벼운 농담이 섞인 첫인사를 건넸다. 그가 즉위명으로 택한 ‘프란치스코’처럼 소박하면서 인간미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프란치스코 신임 교황은 ‘청빈과 겸손의 대명사’로 불리며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현대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이다. 2005년 콘클라베에서 유력한 교황 후보로 꼽혔으나 베네딕토 16세에게 자리를 내줬던 그는 8년 만에 소집된 회의에서 추기경단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교황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번 콘클라베에서 고령 등의 이유로 유력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예상보다 빨리 끝난 회의에서 교황으로 선출되는 이변을 낳았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화학 기술자가 되려고 했으나 1958년 예수회에 입문, 수도사의 길을 걸었으며 신학생들을 가르쳤다. 30대 시절 수도사로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지방을 돌며 사목활동을 했으며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장으로 발탁됐다. 칠레와 독일에서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8년 대주교에 오른 뒤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대주교가 된 뒤에도 운전기사 없이 항상 버스를 타고 다니고, 대주교 관저가 아닌 단칸방 아파트에 살며 음식을 직접 만드는 등 청빈한 생활로 유명하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소박한 성격으로, “나를 추기경이 아니라 신부나 몬시뇰(고위 성직자)로 불러 달라”며 자신을 낮췄다고 한다. 그가 즉위명으로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택한 것도 이 같은 소박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의 의미를 “소박하고 박애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PA통신은 “새 교황이 청빈과 박애의 상징인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택함으로써 가톨릭이 가진 부유함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가실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바티칸 공식 뉴스 사이트 영문판이 새 교황 즉위명을 프란치스코 1세라고 표기했다가 대변인이 1세를 붙이지 않은 프란치스코라고 발표하는 혼선을 빚기도 했다.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2세가 나온 뒤에야 프란치스코 1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일간지 클라린은 새 교황이 과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처럼 “교리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적 이슈에서는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 BBC방송은 새 교황에 대해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라면서 낙태, 동성결혼, 피임 등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에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고 전했다. 그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가톨릭계는 2010년 중남미 지역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공식 인정한 아르헨티나 정부와 잦은 마찰을 빚었으며, 그는 이 때문에 대선과 총선에서 야권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탄생은 또 가톨릭 교회 2000년 역사상 첫 중남미 신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점에서 선출 배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향후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탈리아 등 전통적 유럽권 출신을 누르고 아르헨티나 출신이 교황으로 처음 선출된 것은 유럽 중심의 가톨릭 교회로는 개혁 요구와 현대화의 흐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의 암묵적 동의로 이어져 회의 이틀 만에 비유럽권 출신인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 청빈과 봉사의 기운을 불어넣어 새 교황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인 교황청 내부의 부패 척결과 관료주의 타파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새 교황이 비교적 고령인 76세라는 점에서 교단의 권위를 강화하기보다는 기존 조직의 관리를 강화하고 소통을 중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가 첫 연설에서 신도들에게 “각자의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한 점 역시 평신도와 성직자, 그리고 교황청 내부와 외부 간의 소통 강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뉴욕의 티머시 돌런 추기경은 새 교황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건배를 제안할 때 “하느님이 당신들을 용서하길”이라고 농담을 해 웃음바다가 됐다며, “우리 보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날 전임 교황의 트위터 계정을 이어받아 라틴어로 “새 교황이 나왔다”는 글을 처음 보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아드’ 전성시대

    ‘아드’ 전성시대

    지상파 방송 3사의 일일 아침드라마가 나란히 전성기를 맞고 있다. 걸출한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아도 기존 시청층인 주부를 넘어서 직장인과 학생까지 타깃을 넓히며 연일 시청률 10%를 웃도는 고공비행 중이다. 평일 밤에 방영되는 일일연속극 중 3분의 2가 시청률 10%를 밑도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현재 방영되는 지상파 아침드라마는 채널 별로 1개씩. 오전 7시 50분 방송되는 ‘사랑했나봐’(MBC)에 이어 8시 30분 ‘너라서 좋아’(SBS), 9시 ‘사랑아 사랑아’(KBS2)가 뒤를 잇는다. 흥행 이유는 간단하다. 주부들의 입맛에 맞는 기존 소재들을 적절히 섞어 부담 없이 시청하도록 했다. 불륜, 이혼, 복수 등 불건전한 소재는 욕을 먹기도 하지만 중독성도 상당하다. 아울러 그동안 주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아침드라마가 방학을 맞은 대학생과 중고생까지 시청자로 끌어들이면서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 시청률에 포함되진 않지만 지상파 DMB를 이용해 출근하며 시청한다는 직장인도 상당수다. 여기에 겹치지 않는 방송시간도 한몫한다. 시간차 방송으로 주부들을 지속적으로 TV 앞으로 끌어모은다. 덕분에 고정 시청층을 활용해 안정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일 시청률(AGB닐슨 기준)에선 3개 작품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사랑아 사랑아’가 15.0%, ‘너라서 좋아’ 12.1%, ‘사랑했나봐’ 10.9% 순이다. 과거 일부 아침드라마가 20%를 웃도는 시청률로 주목받긴 했어도 이처럼 고르게 인기를 끈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효자 프로그램의 줄거리는 역시 남녀 간 사랑이다. ‘사랑아 사랑아’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부모 세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탓에 역시 결혼하지 못한 홍승희(황선희 분)와 박노경(오창석 분)의 ‘러브라인’이 기본 축이다. 여기에 승희의 이복자매이자 여배우인 홍승아(송민정 분)가 노경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얽히고설킨 성공과 사랑이 드라마에 담겼다. 지난 5월 처음 방송된 뒤 150회 방영을 즈음해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방영 초기 훈훈한 분위기로 예전 향수를 자극해 일종의 ‘착한 드라마’로 불렸다. 하지만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막장 드라마’란 오해도 받고 있다. 친모의 아들인 노경과 얽힌 승희의 사랑이 승희에게 남편인 강태범(김산호 분)을 배신하도록 만들 것이란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부터다. ‘사랑했나봐’는 억울하게 이혼당한 윤진(박시은 분)이 주부들의 심금을 울린다. 시어머니 수미(박정수 분)의 시집살이와 점점 무관심해진 남편 현도(황동주 분) 때문에 고생하던 윤진은 급기야 딸 예나까지 뺏긴 채 이혼당한다. 현도의 여자 친구인 선정(김보경 분)이 남편과 딸까지 앗아 가며 고난의 세월이 이어진다. ‘너라서 좋아’는 팽팽한 선을 놓고 대립하는 두 여자 주인공 강진주(윤해영 분)와 양수빈(윤지민 분)이 한 남자를 놓고 뺏고 지키려고 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아침드라마라고 불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내용을 다루려고 노력한다.”면서 “방송사 간에 아침극의 인기를 이어 가기 위해 방송 시간대를 겹치지 않도록 편성하는 ‘암묵적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어리다고 안봐줘”… 美는 10대 성폭행범에 종신형

    미국 법원이 집단 성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가 10대라는 이유로 대부분 풀어준 국내 법원의 판결과 크게 대조된다. 성폭행 사범에 대한 양국 법원의 인식차를 인정한다 해도 10대 성폭행 가해자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2년 전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텍사스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에게 미 법원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수감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법원은 이 사건의 ‘심각성’과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주목했다. 사건은 2010년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했다. 11살 소녀가 석 달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수사 결과 이웃에 살며 서로 알고 지내던 10대 6명을 포함한 20명의 남성이 집단 성폭행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소녀를 빈집으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했으며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특히 가해자 대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소녀의 유혹에 넘어가 합의하에 관계를 맺었다.”며 무죄를 주장해 미국인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데는 짐승 같은 범죄행위에 어린 나이가 예외일 수 없다는 검사와 판사, 배심원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휴스턴크로니클에 따르면 전날 텍사스주 리버티카운티 법원에서 진행된 대배심에서 가해자 제러드 크루스(20)의 선고를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가해자를 소년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집 나온 개 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서 배심원들에게 종신형을 내려 달라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거미가 파리를 유혹하듯이 오히려 소녀가 (가해자를) 끌어들였다.”며 소녀가 ‘원인 제공자’라고 반박했다. 변론 직후 배심원들은 머리를 맞댄 지 10분 만에 전원합의로 종신형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제러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신 눈물을 닦아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 된 상황이었다. 마크 모어필드 판사는 배심원단 의견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하면서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범죄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이번 사건의 주요 공범 가운데 한 명인 에릭 맥고웬(20)은 이미 지난 9월 징역 99년형을 선고받았고, 성인 가해자 6명은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조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中, 여권 지도에 남중국해 자국 영토로 표기

    중국 당국이 남중국해의 80% 이상을 자국 영토로 표시한 지도가 인쇄된 여권을 발급 중인 것으로 드러나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주변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5개월 전부터 전자칩이 내장된 새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여권에는 남·동중국해 대부분과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연안까지를 자국 영토로 포함한 지도가 인쇄돼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베이징 주재 베트남 대사관은 베트남 정부가 중국 측에 공식 항의했으며, 양국 간에 관련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도 “우리가 중국의 이번 조치를 허용할 경우 남중국해 전역을 대상으로 한 그들의 영유권 주장을 묵인하는 셈”이라며 양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도는 중국이 1948년 일방적으로 설정한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을 근거로 작성된 것인데 이에 따르면 중국이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 중인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와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 그리고 필리핀과 분쟁 중인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 등이 모두 중국의 영토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FT에 보낸 성명에서 “새 여권은 어떤 특정한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중국은 관련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FT는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지도가 인쇄된 중국의 새 여권 발급은 중국이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할 용의가 있는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필리핀은 자국 출입국 관리들이 중국인의 여권을 제시받고 출입국 도장을 찍을 때마다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도록 강요받는 셈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의 경우 지도가 워낙 작아 중국과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보이지 않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인훙(時殷弘)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새 여권에 영토 주장을 포함시킨 것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영유권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국 여권은 국제민항 조직의 관련 표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며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Weekend inside-애니팡 신드롬] 국민 2000만 팡팡… 단순한 게임법칙, 세상의 시름 뻥뻥

    [Weekend inside-애니팡 신드롬] 국민 2000만 팡팡… 단순한 게임법칙, 세상의 시름 뻥뻥

    ‘팡팡…타임 오버.’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한 번 이상은 들을 수 있는 애니팡 게임 음악이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의 모임에서는 애니팡 최고 점수를 묻거나 ‘하트’를 보내 달라는 당부를 듣곤 한다. 연예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애니팡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거나 TV에서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이 애니팡을 하거나 이를 언급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애니팡을 소재로 한 시 구절이 전자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6300만여명의 카카오톡 가입자를 기반으로 단숨에 10대에서 40~50대까지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 게임’으로 등극한 애니팡. 애니팡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1000만여명으로 이들은 하루에 1회 이상 애니팡을 즐긴다. 프로그램을 내려받은 이용자 수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5명 중 1명은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애니팡을 하는 셈이다. ●성공 예측 못 했던 ‘60초 퍼즐’ 마법 2일 카카오에 따르면 게임 출시 전까지 어느 누구도 애니팡의 인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성공 여부를 놓고 내부에서도 시각이 엇갈렸다. 애니팡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과 연계한 소셜 게임으로 1분 안에 동물 모양 블록을 3개씩 맞춰 없애는 단순한 퍼즐 게임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하트가 필요한데, 하트를 다 사용하면 하트가 생성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친구 등에게 얻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구매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과 점수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높은 점수를 받도록 경쟁을 유도한다. 최고 점수가 일주일 단위로 갱신되는 시스템을 도입해 친구나 동료 간 경쟁심을 자극한 점이 애니팡의 인기 비결로 꼽힌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톡 게임 플랫폼을 오픈하는 올해 말까지 10개의 게임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애니팡의 인기로 30~50개로 늘려 잡았다.”고 설명했다. 게임업체들도 자사의 게임을 카카오톡 게임하기에 탑재해 달라고 러브콜을 보낸다. 카카오가 게임 플랫폼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게임업체를 찾아가 게임 탑재를 제안하면 거절하는 곳이 많았다. 아무도 애니팡이 이렇게 뜰 줄 몰랐던 것이다. 애니팡의 열풍을 타고 카카오톡과 연계된 캔디팡, 아이러브커피, 드래곤플라이트 등의 게임도 인기다. 이들 게임은 애플리케이션 매출 랭킹 5위 안에 진입해 있다. 애니팡의 월매출액은 100억원 이상, 드래곤플라이트는 이미 애니팡의 매출을 뛰어넘은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애니팡과 유사한 게임인 캔디팡·보석팡 등이 덩달아 인기 상한가를 달리는가 하면 모바일 게임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너도나도 모바일 게임 플랫폼 사업에 나서거나 모바일 게임 사업을 강화하고 나섰다. 특히 애니팡 열풍이 벤처 창업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애니팡의 대박 행진을 보면서 스타트업(신생벤처) 창업을 꿈꾸는 지원자들이 벤처 투자사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투자 지원을 원하는 스타트업 아이템 역시 모바일 게임 등의 애플리케이션이 주를 이루고 있다. 스타트업 초기 기업 전문 투자사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관계자는 “제2의 애니팡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최근 월평균 100~200개의 투자 요청이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0여건 안팎)에 비하면 최대 4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자꾸 생각나… ” 업무·학업 집중 못 해 올해 4월 설립한 초기 기업 전문 투자사 케이큐브벤처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운영은 임지훈 대표가 하고 있지만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했다는 사실 때문에 최근 들어 스타트업 창업 지원자가 늘었다. 케이큐브벤처스는 모바일, 게임 등의 관련 분야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케이큐브벤처스 관계자는 “지원 요청 건수가 늘어 일주일에 수십건 이상에 달한다.”면서 “지원 요청 증가는 카카오톡, 애니팡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애니팡으로 번진 모바일 게임 열풍은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업무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목, 어깨, 허리, 손목, 손가락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회사원 박모(38·여)씨는 업무 중 애니팡 때문에 두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상사에게 적발돼 “애니팡 하러 회사에 나왔느냐.”는 질책을 받았다. 이후 부서에서는 암묵적으로 ‘애니팡 금지령’이 내려졌다. 애니팡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 이모(35·여)씨는 ‘하트’ 스트레스 때문에 하트 받기를 차단했다. 카카오톡에 등록하지 않은 과거 남자 친구가 하트를 보내 오는가 하면 친분도 없는 거래처 직원이 늦은 밤에 하트를 보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남편에게 괜한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애니팡을 하려면 하트가 필요한데 하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동료나 친구들 간 새로운 갈등이 생기거나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 하트를 구걸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초·중·고교생 사이에는 동급생이나 후배들에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트를 발송하라고 요구하는 ‘하트 셔틀’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해외 언론에까지 부작용 관련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인들이 애니팡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니팡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한국인 대다수가 사용하는 소셜 메신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카카오톡이 소셜네트워크가 아니라 게임네트워크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혜정기자 jukebox@seoul.co.kr
  • [경제민주화 정책 대해부] (2) 고속성장의 그림자-재벌 문제점은

    [경제민주화 정책 대해부] (2) 고속성장의 그림자-재벌 문제점은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집단(그룹)이 경영 세습과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시가총액 290조원에 달하는 초거대·우량 기업의 후계자로 올라서는 데 들인 돈은 고작 16억원대였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서 받은 60억원에 대한 증여세 명목이다. ●적은 돈으로 경영권 세습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사장의 ‘후계대로’는 탄탄대로였다. 이 사장은 이 종잣돈으로 매입한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주식은 그가 사자마자 상장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550억원)을 안겨주었다. 여기서 나온 돈으로 1996년 삼성에버랜드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주당 7700원에 인수한 뒤 주식으로 전환, 에버랜드 지분 25.1%를 획득하면서 사실상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달랑 에버랜드 지분만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른바 재벌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그 비결이다. 순환출자는 A, B, C 등 세 기업이 있을 때 A가 B에, B는 C에, C는 다시 A에 출자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A는 적은 지분으로 B와 C를 장악할 수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 순환출자 고리의 정점에 있는 기업. 이 때문에 에버랜드 대주주인 이 사장이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를 휘하에 두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재벌그룹이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를 해온 배경에는 부와 경영권을 보다 쉽게 대물림하겠다는 편의주의가 작용했다. 삼성은 현재 15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롯데가 가장 많은 19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차 2개, 한진그룹 6개 등이다. ●“땅짚고 헤엄치기식 사업” 비난 이렇게 자리를 잡은 후계자들에게는 또 다른 지원이 기다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감 몰아주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로 벌어들인 수익은 ‘기네스감’이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소유한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은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01년 1985억원에서 2011년 5조 8340억원으로 10년 새 29배나 뛰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2001년과 2002년 총 30억원을 출자한 게 전부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2004년에 지분 일부를 매각해서 850억원을 벌었고, 10년 동안 389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가치는 2조원에 달한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이른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촉발시킨 ‘사건’으로 이 두 가지를 꼽는다. 1~2세 경영인들은 경제발전과 궤를 함께해 왔다는 측면에서 어지간한 편법 행위는 국가와 국민의 암묵적 용인을 받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최근 삼성 사장단 강연에서 “역사적으로 재벌이 이만큼 커 온 데는 국가 차원의 보호와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재벌가의 자녀들 중 일부는 가족의 돈과 네트워크를 등에 업고 사업체를 하나씩 꿰차면서 최근 몇 년 새 대기업 계열사가 급격히 늘었고, 손대는 업종 또한 증가했다. 10대 그룹의 계열사 수는 2005년 4월 347개에서 올해 4월 583개로 늘었다. 7년 새 236개, 한 해 평균 33.7개씩 급증했다. 진출한 업종 또한 2001년 39개에서 2011년 말 56개로 10년 만에 43.5%가 늘었다. ●“미국이라면 기업분할 명령 내려져” 박승록 착한자본주의연구원 대표는 “2~3세 세습이 계속되는 동안 범삼성·현대·롯데·LG 등 4대 재벌 가문이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50%를 넘어섰을 정도로 경제력 집중도가 심화됐다.”며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오래전에 기업분할명령제(계열분리청구제)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적 연관성이 없는 무차별 ‘문어발’ 확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삼성, 롯데, 현대, LG, SK 등 웬만한 대기업은 커피·빵집, 떡볶이, 순대 등을 파는 외식업에 진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낳았다. 또 명품과 자동차 등 소비재 수입에만 열을 올려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사업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워런 버핏이 가문의 부를 이어받은 이들을 ‘운 좋은 정자클럽의 멤버들’(lucky sperm club)이라고 폄하하면서 미국은 능력 위주의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 더 들어맞는 얘기다. 재벌의 시장 지배력이 커 가는 사이 기회를 박탈당한 서민들의 삶은 쪼그라들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결과 자영업자의 절반은 창업한 지 3년도 안 돼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 후 소득은 창업 전보다 평균 16.2% 줄어들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공정 경쟁이다. 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로 일자리 창출 등의 낙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3~4세들이 한참 앞선 출발선에 있다는 사실은 반감을 낳기에 충분하다. 박 대표는 “3~4세 경영세습 이후 재벌그룹의 성과들이 계열사 내에서만 돌고 다른 하청기업으로 이전되거나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며 “재벌개혁을 통해 낙수 효과를 회복하고 다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종교플러스]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학술포럼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제7차 학술포럼이 오는 2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다.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포럼의 큰 주제는 ‘성철의 중도론’. 동국대 김성철 교수의 기조강연(‘중도의 실천-거꾸로 살기’)에 이어 한국외대 조준호 교수(‘초기불교의 중도와 퇴옹성철의 중도’), 동국대 김호귀 교수(‘선종의 선문답과 중도’)와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문무왕(‘퇴옹성철의 법어에 나타난 중도 표현’)씨가 논문을 발표한다. 교단선거법 개정안 교단에 전달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징계규정 강화를 골자로 하는 교단선거법 개정안을 확정, 최근 각 교단에 전달했다. 개정안은 부정선거 의혹제기에 관계당국의 즉시 기소와 60일 내 판결을 의무조항으로 정해 암묵적으로 부정선거를 용인하거나 판결을 지연하지 못하도록 했다. 부정선거 당사자에 대한 피선거권 및 총회·노회 대의원권 박탈, 금품수수자에 대한 최대 20배 벌금부과 조항도 신설했다.
  • ‘에버랜드 CB소송 상고 포기’ 이건희, 제일모직에 130억 배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됐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에버랜드 CB 인수 과정에 개입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는 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 130억원을 배상하게 됐다. 이 회장은 지난달 22일 대구고법 재판부가 제일모직 130억원을 배상하도록 한 판결에 대해 상고기한인 12일까지 상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피고 이건희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이 회장은 1심 재판부가 배임에 해당된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항소했다. 이 회장이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2006년부터 경제개혁연대가 소액주주들을 모집해 진행해 온 소송은 원고 측의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하남시, 열병합 발전소 건립 암묵적 동의?

    경기 하남시가 미사보금자리지구 내 열병합발전소 건립 추진에 앞서 지식경제부가 요청한 두 차례의 주민의견 수렴과정에서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교범 시장이 뒤늦게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주민의 강력 반발에 따른 표를 의식한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6일 하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하남직할사업단에 따르면 사업시행자인 코원에너지서비스는 미사지구 남쪽 풍산동 4만 4973㎡ 부지에 열병합발전소를 올 상반기에 착공해 2014년 6월 완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민의 반대로 사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초 발전소는 미사지구 북쪽 선동 부지 2만㎥에 들어설 예정이었으며,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기존 시설의 보조시설로 설계됐었다. 그러나 강동구 주민들이 “강동구에서 생산한 열을 미사지구에 공급해야 하느냐.”며 반대하자 코원은 3㎞ 정도 떨어진 미사지구 남쪽 풍산동에 별도의 발전소를 건립키로 하고, 지난해 7월 지식경제부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지경부는 하남시에 여론수렴을 요청했고, 시는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만 했을 뿐 위치 변경이나 열병합발전소 건립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업자 코원은 열원시설 이전배치 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국토해양부도 지난해 11월 미사지구 개발계획 변경 승인을 추진하면서 하남시에 여론수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는 의견수렴 기간인 12월 11일까지 반대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열병합발전소는 지금의 풍산동에 설립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런 사실을 안 주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하자 하남시는 1월 26일 “아파트 가격 하락 등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하고 있어 민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계획된 입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추가 의견서만 국토부에 전달하고, 위치 변경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현재 LH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사업을 이제 와서 변경할 수 없다.”며 사업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사업부지조차 매입하지 못하는 등 사업에 난항을 겪고있다. 시는 주민들이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자 당초 입장과 달리 반대 입장에 편승했다. 시 관계자는 “여론수렴 과정에서 에너지에 대한 부분만 검토하다 보니 위치와 관련된 사안은 간과했었다.”고 해명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한·일 독도 갈등 해법 없나] “의원 외교 등 비공식 채널 복원 시급 차기 정권 이후에나 관계 개선될 듯”

    독도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외교 갈등이 3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왕 사과 발언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서한 반송 문제, 경제 보복 조치 언급 등이 외교적 관례를 벗어나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한·일 관계의 향후 전망과 해법에 관심이 쏠린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넌셈” 전문가들은 역사 갈등이나 영토 마찰이 비정치적 부문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리와 조절을 하되, 한·일 간 의원 외교 등 비공식 채널의 실질적 복원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양국은 영토 문제나 역사 갈등이 문화·경제적 측면으로 격화되지 않고 정경 분리라는 암묵적 합의를 지키도록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이 계속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김종필씨나 박태준씨 같이 한·일 간에 정책 파이프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없는 것도 오해와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민간 교류를 담당하는 ‘한·일 포럼’ 개최가 취소됐듯이 비공식적 채널이 무너진 것은 문제”라면서 “한·일 의원연맹 등이 제 역할을 못 하는 등 정치권에서 중재할 수 있는 원로도 없다.”고 말해 네트워크 복원이 시급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양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최소 4개월에서 6개월간의 냉각기를 거쳐 새 정부 출범 이후에나 관계 복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송석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일 양국은 현재 양쪽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 버린 국면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라며 “이 대통령 임기 내에서는 해결 전망이 없고 일본도 10~11월쯤에 총선을 치르게 된다면 독도 등은 영토 문제로서 선거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기에 어느 정당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문정인 교수도 “한·일 양국에서 각각 새로운 지도자들이 집권해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며 “현재 우리 정부는 일본이 공세적으로 나오는 데 대해 방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마땅한 해결책이 없음을 지적했다. ●“자민당 1당 되면 더 강경” 진창수 센터장은 “일본은 그동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약간 배려하는 특수 관계를 인정했으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다 정권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것 같다.”면서 “한국의 국력이 예전보다 커져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지 못하고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대립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다음 총선에서 자민당이 제1당이 되면 노다 정부보다 더 강경하게 나갈 것이기 때문에 관계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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