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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출 청소년 살해 후 시신 암매장… ‘오산 백골사건’ 주범 30년형 확정

    가출 청소년 살해 후 시신 암매장… ‘오산 백골사건’ 주범 30년형 확정

    가출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가출팸’에서 만난 10대를 마구 때려 살해한 뒤 야산에 암매장한 ‘오산 백골 사건’의 주범들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3)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함께 기소된 공범 B(23)씨도 원심대로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이들은 2018년 9월 8일 경기 오산시의 한 공장 인근에서 함께 생활했던 D(당시 17세)군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이들은 모두 가출 청소년으로 함께 생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D군이 과거 미성년자 유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과 관련한 진술을 털어놓은 사실에 불만을 품고 살해를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9개월이 지난 뒤 D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들의 범행은 ‘오산 백골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A·B씨는 모두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시신 사진까지” 검은 반지의 비밀…징역 30년 확정(종합)

    “시신 사진까지” 검은 반지의 비밀…징역 30년 확정(종합)

    가출청소년 모아 절도 등 범죄행위 동원도망친 청소년 유인해 살해 후 사체은닉1·2심, 징역 30년·25년 선고…대법 확정법원 “죄질 매우 나빠” 중형 선고 숙식을 해결해주겠다며 가출청소년들을 모아 범법 행위에 동원하던 중 달아난 미성년자를 유인해 살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 대해 중형이 확정됐다. 2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살인등) 및 피유인자살해, 사체은닉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23)에게 징역 30년, 살인과 사체은닉을 도운 공범 변모씨(23)에게는 징역 25년이 확정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가출한 미성년자를 상대로 숙식을 해결해주고 이를 빌미로 범법행위를 시킬 목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쉽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가출청소년들을 유인했다. 김씨는 ‘가출팸’의 일원으로 들어온 청소년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감시해 감금하면서 타인의 체크카드를 배송받아 전달하는 일 등을 시켰다. 김씨는 ‘가출팸’을 탈퇴한 A군(당시 16세)이 자신의 범행을 경찰에 진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지인을 통해 피해자를 유인해 측근인 변씨 등과 함께 살해하고 오산시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김씨 등은 A군을 살해한 뒤 시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숨진 A군은 지난해 6월 한 시민에 의해 발견됐다. 산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된 건데 당시엔 그 누구도 시신이 A군이란 걸 몰랐다. 부검으로 시신이 남성이란 점과 15세~17세의 청소년인 점, 심한 충치가 있다는 점이 나왔지만 그 외에 특별한 신체적 특징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검은색 반지와 귀걸이가 단서였다. 경찰은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그 일대에 사는 비슷한 연령대의 장기결석자·주민등록증 미 발급자 등 3만8000여명을 추렸다.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던 중 연락이 닿지 않는 4명의 SNS를 살피던 경찰은 그중 1명의 SNS에서 검은색 반지를 발견하게 된다. A군의 SNS였다. 그는 백골 시신에서 나온 반지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경찰은 A군의 가족과 시신 DNA 결과를 대조해 A군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이후 주변 행적을 뒤져 김씨 등을 지난해 8월 붙잡았다. 범행 11개월 만의 일이었다.“범행도구를 준비하는 등 계획적·조직적 살해” 1심은 “살인 및 사체은닉 등 범행은 가출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김씨가 변씨 등과 공모해 사전에 범행방법을 모의하고 범행도구를 준비하는 등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살해 방법 역시 매우 잔혹하다”며 “게다가 김씨는 범행을 주도하고도 구체적 경위에 관해 변씨 등에게 그 책임을 일부 전가하고 있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20년 부착을 명했다. 변씨에게는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전자장치를 부착하도록 했다. 2심도 “양측이 각각 양형부당을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했으나, 미성년인 피해자의 생명을 일순간 앗아간 범행에 이르게 된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등에 비춰볼 때 죄질과 범정이 매우 나쁘다”며 “김씨 등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가족 중 일부와 합의한 점 등 여러가지 유리한 정상참작을 살펴봐도 원심이 선고한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김씨 등은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피고인들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김씨에게 징역 30년, 변씨에게 징역 25년을 각 선고한 것이 부당하지 않다”며 판결을 확정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5·18’ 그날, 광주 가해자가 털어놨다

    ‘5·18’ 그날, 광주 가해자가 털어놨다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 허장환의 증언록1988년 12월에 5·18 가해자로서 첫 양심선언나치 유대인 학살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 폭로‘피해자가 엄연하고 아픔도 여전하지만 가해자는 없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드리워진 분노의 모순이다. ‘5·18 내란수괴 전두환’은 그 공전의 역사인 ‘광주항쟁’ 당시 가해자 편에 있었던 인물의 증언록으로 눈길을 끈다. 5·18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이 저자다.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과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반장을 담당했고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5·18 가해자로서 가장 처음 양심선언을 했던 인물. 당시 폭탄선언은 이랬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2차 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나치 독일 아우슈비츠 유대인 도살장을 능가하는 잔혹한 참상이었음을 폭로합니다.”저자는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을 만큼 국가와 조직에 충성을 다짐하고 실행하던 보안대 요원이었다. 그런 그가 양심고백을 하고 책까지 펴낸 데는 숱한 곡절이 숨어 있다. 인권변호사인 홍남순 변호사가 김대중과 엮이며 내란수괴자로 몰려 505보안대에 끌려온 게 시작이다. 허장환은 직속상관인 서의남 505보안대 대공과장에게 홍 변호사의 무고함을 주장하면서 맞섰다가 항명죄로 불명예 강제전역을 당했다. 이후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당시의 일들을 정리했으나 안기부에 압수당했다고 한다. 거듭되는 신변 위협과 협박에 수십년을 숨어 살았다. 책의 의미는 역시 ‘가해자가 털어놓는 사실’의 증언이다. 우선 국보위 실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5월 17일 24시를 기해 단행한 계엄확대는 치밀하게 사전계획된 것이었음을 폭로한다. 계엄확대가 ‘광주에 특정된 것’이라는 발언이 공공연했다. 시가지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비공식 은거지’인 호텔 객실 5층에서 시위와 진압 방식을 보고 군인들이 시위대를 자극했고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됐음을 알았다고 쓰고 있다.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광주 방문 사실을 거듭 확인시킨 저자는 공수부대가 교도소에 주둔한 것도 시민들의 교도소 습격을 저지하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시민들이 시 외곽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고립 봉쇄임무 수행이었다고 밝힌다. 도청에서 발생한 ‘독침사건’은 흥분된 군중들을 자극하기 위한 작품이라고도 증언한다. 계엄군 간 쌍방교전 사실과 조선대 총장 체포사건의 전말도 털어놓는다. 책 곳곳에 광주시민들이 겪었던 참상이 생생하다. ‘시체 암매장’ 소문이 나돌아 직접 방문한 광주교도소에선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26일 새벽 시민군 지휘본부인 도청 진압작전이 막 끝난 뒤 가장 먼저 뛰어들어 갔다가 창문에 처참하게 걸린 시신들을 목격한다.책 뒤쪽에 붙인 부록들은 증언 못지않게 귀한 자료들로 눈길을 끈다. 5·18 당시의 횡행했던 유언비어들이 “전두환과 그 세력들이 운용한 편의대(편의공작대)의 공작”이란 점 말고도 당시 군부지휘 체계도, 계엄군 사령관 지시사항 등 진상규명에 중요한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그 시절 나에 대한 합리화나 한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에 대한 배신으로 각인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저자는 “역사는 개인의 아픔이나 과거보다 훨씬 크고 깊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민족의 비극사를 초래하면서까지 광주사태를 유발한 정치적 배경과 목적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일성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죽음까지 차별… 인간의 권리 평등한가요, 33년 만에 ‘형제복지원 재판’ 눈물바다

    죽음까지 차별… 인간의 권리 평등한가요, 33년 만에 ‘형제복지원 재판’ 눈물바다

    기록상 12년간 513명 사망 일부 암매장故 박인근 원장, 1989년에 무죄 확정 檢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 요청대법 “신중하게 재판” 새달 선고할 듯“1987년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피해자의 호소는 한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15일 오전 대법원 1호 법정(소법정).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 재판이 열렸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지 무려 33년 만에 그것도 이미 죽은 이의 잘못을 묻는 이례적인 재판이다.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으로 출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해자들 아픔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화면에 띄운 진정서를 읽기 시작했다. 33년 전 피해자가 작성한 진정서다. 진정서에는 “사람을 이렇게 파리 목숨같이 생각하는 이곳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국민, 모든 시민이 다 알고 공감을 갖게 할 수 있도록 이 사실을 보도해 줬으면 한다”는 절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당시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에 밀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서러움도 묻어나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부랑인 수용시설로 운영됐다. 하지만 부랑인이 아닌 시민을 본인 의사에 반해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과 구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복지원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원장 박씨는 긴 재판 끝에 1989년 무죄가 확정됐고 생존 피해자들의 고통은 30여년간 지속됐다.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생긴 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11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하면서다. 비상상고는 법원의 심판이 법을 어겼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에 법령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원 판결을 파기할 수 있다. 죄가 있다고 한들 죽은 박씨에겐 효력이 미치지 않지만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날 검찰 측에서는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출석해 재판부에 “특수감금 무죄 부분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무부 훈령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부장은 “사건을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법정에 나온 40여명의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위로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참회”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 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다음달 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인간의 권리, 평등합니까”…형제복지원의 눈물은 뜨거웠다

    “인간의 권리, 평등합니까”…형제복지원의 눈물은 뜨거웠다

    박종철 사건에 밀려 잊혀진 서러움 표출노역·구타로 513명 사망·일부 암매장故 박인근 원장, 1989년에 무죄 확정 檢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 요청대법 “신중하게 재판” 새달 선고할 듯“형제복지원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던 해는 1987년입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호소는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15일 오전 대법원 1호 법정.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 재판이 열렸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지 무려 33년 만에, 그것도 이미 죽은 이의 잘못을 묻는 이례적인 재판이다.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으로 출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해자들 아픔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화면에 띄운 진정서를 읽기 시작했다. 33년 전 피해자가 작성한 진정서다. 진정서에는 “사람을 이렇게 파리 목숨같이 생각하는 이곳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국민, 모든 시민이 다 알고 공감을 갖게 할 수 있도록 이 사실을 보도해 줬으면 한다”는 절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당시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에 밀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서러움도 묻어나 있었다.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약 3만 8000명의 부랑인들이 수용됐던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수용자 대부분은 본인 의사에 반해 불법 감금된 시민들로 강제 노역과 구타 끝에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일부는 암매장됐다. 그러나 원장 박씨는 1989년 무죄가 확정됐고 생존 피해자들의 고통은 30여년간 지속됐다.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생긴 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11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하면서다. 비상상고는 법원의 심판이 법을 어겼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에 법령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원 판결을 파기할 수 있다. 죄가 있다고 한들 죽은 박씨에겐 효력이 미치지 않지만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날 검찰 측에서는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출석해 재판부에 “특수감금 무죄 부분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무부 훈령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부장은 “사건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법정에 나온 40여명의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위로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참회”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 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다음달 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5·18조사위, 암매장 49건 등 총 224건 제보 접수 곧 조사 착수

    5·18조사위, 암매장 49건 등 총 224건 제보 접수 곧 조사 착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가 지난해 12월 출범 이후 암매장·성폭력 관련 등 모두 244건의 제보가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5·18진상조사위는 또 국방부와 5·18기념재단,경찰, 육·해·공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광주시의사회 등으로부터 총 1976종의 자료를 확보했다. 조사위는 14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0 상반기 조사활동보고서’를 최근 책자로 펴내 국회와 청와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제보내용별로는 암매장 49건, 헬기사격 및 발포 37건, 행방불명 14건, 과격진압 10건, 성폭력 7건, 기타 107건 등이다. 이 가운데 ‘서OO 남자 체포작전 규명’ ‘도청앞 발포 피해자 박OO 사건’ ‘사망자 김OO 사건’ ‘피해자 진OO’ 등 실명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제보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18진상조사위는 앞서 지난 5월11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7개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조사가 시작된 사건은 ▲최초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 ▲사망사건 ▲집단학살사건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탈북자의 북한특수군 광주 일원 침투 주장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사건 조사 등이다. 조사위가 확보한 자료별로는 5·18기념재단 등 5·18 단체 153종, 국가기록원·서울중앙지검 등 공공기관 1017종, 육·해·공군 226종, 국방부 및 직할 517종, 언론기관 9종, 의료기관 5종, 합참 23종, 기타 26종 등이다. 이들 자료 가운데 주한일본대사관의 ‘일본외무성-주한일본대사관간 전문 자료’ ‘1980년 부상자실태조사표’ ‘경찰 김정길의 업무일지(1980년)’ ‘언론사 미공개 사진’ 등이 눈길을 끌었다. 5·18진상규명위는 보고서 말미에 코로나19로 인한 활동 제한, 조사인력 및 조사기간 부족, 조사권한의 제약 등을 애로 사항으로 적시했다. 송선태 위원장은 “암매장 관련 새로운 제보 장소인 전남대 교정 일대를 비롯 신빙성이 높은 제보 위주로 조사계획서를 작성한 뒤 올 안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조사위 ‘행불자 암매장 유력 장소’ 전남대 본격 조사

    5·18조사위 ‘행불자 암매장 유력 장소’ 전남대 본격 조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력한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전남대를 지목,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송선태 5·18 조사위원장은 12일 “ 3공수 여단 부대원 진술 확보 과정에서 전남대 암매장 정황을 파악했다”며 “이를 토대로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뒤 올 안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18 조사위는 ▲전남대 이학부 뒷산 ▲전남대 공대 뒷산 ▲전남대 교정 등 3곳을 대상으로 암매장 여부를 면밀히 조사할 방침이다. 조사위는 지난 1995년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관련 검찰조서와 2007년 국방부과거사 진상조사 당시 3공수여단 군의관과 의무병 등의 진술을 토대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살 가량된 어린이가 전남대 교내에 암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3공수는 1980년 당시 주둔지인 전남대로 부상자와 사망자를 데려왔다가 옛 광주교도소로 옮겼다는 점을 들어 이미 사망한 시신들을 전남대 내에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위 추정이다. 조사위는 특히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발포로 인한 시신 5구, 21일 전남대 정문 앞 발포로 숨진 시신 2구, 당시 광주시청 인근 18구 시신 등이 전남대로 옮겨져 묻혔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들 25구의 시신에 대한 검시 자료 분석도 진행 중이다. 5·18조사위 관계자는 “현재 피해자와 목격자, 3공수 장병들의 진술 등을 확인하고 사실관계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남친 살해한 뒤 친아버지와 결혼한 美 여성…징역 40년형 선고

    남친 살해한 뒤 친아버지와 결혼한 美 여성…징역 40년형 선고

    남자친구를 살해한 뒤 친아버지와 결혼한 미국 여성에게 징역 40년이 선고됐다. 뉴욕데일리뉴스 등 현지 언론의 4일 보도에 따르면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던 31세 여성 아만다는 지난해 9월 남자친구였던 존 토마스 맥과이어(38)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만다는 지난해 2월 당시 남자친구의 몸을 묶은 뒤 머리를 가격하는 등 가혹행위를 3일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이자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을 주사한 뒤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끔찍한 범죄 과정에 아만다의 친아버지인 래리 폴 맥클루어(55)와 아만다의 여동생도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가 숨지자 집 근처에 시신을 암매장한 세 사람은 모두 마약 투약 경험이 있지만 당시에도 투약 상태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만다가 남자친구를 살해한 지 불과 4주가 흐른 후, 생물학적 친아버지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양부모에게서 자란 아만다가 언제부터 친아버지와 가까운 관계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열린 영상 재판에서 아만다는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해 2급 살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남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이 여성에게 징역 40년 형을 선고했다. 아만다는 재판장에서 “(숨진 남자친구인) 맥과이어가 아버지에게 날 사랑한다며 결혼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내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는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친아버지를 탓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구형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인 징역 40년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미성년자 성범죄 전과가 있던 아만다의 친아버지는 이미 지난 8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역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아만다의 여동생의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중국판 ‘살인의 추억’…30년 만에 찾은 시신 옆에는 아내 시계가

    중국판 ‘살인의 추억’…30년 만에 찾은 시신 옆에는 아내 시계가

    남편을 살해한 뒤 도주했던 아내가 30년 도주 끝에 공안에 붙잡혔다. 무참히 살해 당한 뒤 야산에 암매장됐던 시신 옆에는 사건 당시 살인자의 시계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가오핑시(高平市) 공안국은 지난 1990년 4월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 용의자로 피해자의 아내 진 모씨(66)와 내연남 장 모씨(68) 등 두 사람을 체포했다고 8일 밝혔다. 무려 30년 동안 도주 중이었던 용의자 두 사람은 이 기간 동안 줄곧 내연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같은 마을에 거주했던 피해자 시 모 씨(사망 당시 33세)는 아내 진 씨의 불륜 사실확인 후 내연남 장 씨와 다툼을 벌이던 중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일 피해자 시 씨는 아내의 내연남 장 씨와 몸싸움 중 아내 진 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건 직후 아내 진 씨와 내연남 장 씨는 도주, 시신은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당시 피해 유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할 파출소 측은 인근 지역을 이틀 동안 수색했으나 사라진 시 씨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해당 사건은 30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최초로 보고받았던 관할 공안국 수사팀의 추격 끝에 30년 만에 용의자 진 씨와 장 씨 두 사람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사건 수사를 위해 관할 공안국은 용의자의 도주로를 추격, 허난성, 산시성, 쓰촨성, 산둥성 등을 지속적으로 수사했으나 검거하는데 번번히 실패했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최근 생전 피해자가 거주했던 가옥 인근 야산에서 다수의 핏자국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국은 무려 30년 만에 이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끝에 시 씨의 시신 일부를 찾았다.이미 백골로 변한 피해자 시 씨의 시신을 찾는 과정 중 시신 옆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계를 발견했다. 또, 수사 경과 지난 30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 등도 발견했다. 조사 결과 해당 발자국과 시계는 피해자의 아내 진 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공안국은 피해자 사망과 아내 진 씨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지속적으로 추격한 끝에 산시성 가욍시 동부의 베이스전(北诗镇) 소재의 은신처에 숨어 있던 용의자 진 씨와 장 씨 두 사람을 검거했다. 공안에 붙잡힌 용의자 두 사람은 공안 심문 중 사건 일체를 자백했다. 아내 진 씨는 남편 살해 경위에 대해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던 시 씨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사건 이후 마음이 줄곧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붙잡혀서 오히려 다행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관할 공안국은 지난달 22일 용의자 진 씨와 장 씨 두 사람을 사건 현장에 동원, 피해자 시 씨의 시신 중 발굴하지 못했던 추가 시신 일부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 진 씨는 “(시신을 향해)그만 숨고 빨리 나와 달라”면서 “그 동안 많이 후회했다. 많이 미안하다”고 울부짖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한편, 사망한 시 씨의 유가족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30년 동안 시신도, 사람도 찾지못해서 아들이 가족들을 피해서 외지로 도망갔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면서 “공안의 끈질긴 추격 끝에 이제야 가족들 모두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됐다”고 했다. 현재 사건 용의자 진 씨와 장 씨 두 사람은 살인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페임’의 앨런 파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페임’의 앨런 파커

    1978년 범죄 스릴러 영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많을 것이다. 1977년 빌리 헤이스의 넌픽션을 올리버 스톤이 각색한 이 미국 영화는 터키에 머무르던 미국 청년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탈출하는 과정을 긴박감 넘치게 연출해 국내에서도 제법 흥행했다. 조르조 모르더가 만든 음악들도 기억에 선명하다. 이 영화를 비롯해 ‘페임’과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음악영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영국 영화감독 앨런 파커 경(卿)이 3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 유족들은 파커 감독이 오랜 질환과의 싸움 끝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44년 런던에서 태어난 파커 감독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 뒤 광고 연출 등을 거쳐 1974년 TV 영화 ‘피난민들’(The Evacuees)로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영국 아카데미상을 일곱 개나 받았으며, 2013년에는 평생 공로를 인정받아 협회상(The Academy Fellowship)을 수상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로 아카데미상 두 부문을 수상하는 등 10차례나 수상했고 골든글로브도 10 차례나 수상했지만 정작 감독상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1995년 대영제국 3등급 사령관(CBE) 훈장을, 2002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페임’과 에비타 페론의 극적인 삶을 그린 ‘에비타’,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등 음악영화들로 유명하다. 1964년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큐클럭스클랜(KKK)이 흑인 인권운동가 3명을 구타·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다룬 ‘미시시피 버닝’ 등 묵직한 주제들도 놓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 할리우드를 오간 경력도 돋보인다. 2003년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이 공연한 ‘데이비드 게일’이 마지막 연출작이며 유족 대변인에 따르면 은퇴 후 실크 스크린 그림과 그림 활동에 열심이었다고 전했다. 2005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신랄하게 돌아본 회고록 ‘윌 라이트 앤 디렉트 포 푸드(Will Write and Direct for Food)’를 출간했다. 2018년에는 영국 영화 연구소의 아카이브에 생전에 모아둔 방대한 각본과 작업 노트 등을 기증했다. ‘에비타’ 음악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 경은 트위터에 고인이 “뮤지컬이란 장르를 스크린에 옮기는 방법을 진정으로 이해한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고 추모했다.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를 앨런 마샬과 함께 제작했던 데이비드 푸트넘은 “가장 오래 된 절친이었다”며 “난 늘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돌아봤다. 대영제국 감독 조합 창립 멤버였으며 영국 영화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영국 아카데미 위원회(Bafta)와 영국 영화 연구소, 미국 아카데미 위원회 등도 일제히 조의를 표했다. 1994년 코미디 영화 ‘웰빌 가는 길’에서 고인과 함께 작업했던 배우 존 쿠삭은 “위대한 영화감독”이었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리사 모란과 다섯 자녀, 일곱 손주를 남겼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9살 가방서 학대사망에 文 “위기아동 확인제 작동 살펴보라”

    9살 가방서 학대사망에 文 “위기아동 확인제 작동 살펴보라”

    문재인 대통령이 친부의 동거녀에 의해 가방에서 7시간 넘게 갇혔다가 끝내 숨진 9살 어린이 학대사망 사건과 관련, “위기 아동을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가 잘 작동하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 참모진과의 회의에서 “위기의 아동을 파악하는 제도가 작동하지 않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살펴봐야 한다”며 이렇게 지시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는 2018년 3월 아동학대 방지 보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아동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아동학대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적극적으로 위기 아동을 찾아내라는 것이 대통령의 지시”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친부와 친부의 동거녀로부터 학대를 받아 사망한 뒤 암매장된 고준희 양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기존 아동학대 대책을 점검하고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하라고 했었다.父동거녀, 9살 아이 가방에 7시간 가둬다장기부전증으로 숨져…7개월간 학대 문 대통령 지시의 직접적 계기가 된 숨진 A군은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쯤 천안 서북구 자신의 집에 있던 가로 44㎝·세로 60㎝ 여행용 가방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 이송 후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던 A군은 사흘간 사경을 헤매다 3일 오후 6시 30분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가방에서 오랜시간 몸을 구부린 채 갇혀 생긴 다장기부전증으로 인한 심폐정지다. 경찰 조사 결과 친부의 동거녀 B(43)씨는 A군을 당초 큰 가방(50×71㎝)에 가뒀다 소변을 보자 더 작은 가방(44×60㎝)으로 옮기는 수법으로 7시간 넘게 가방을 가뒀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샀다. 가방 속 A군을 두고 3시간가량 외출하기도 했다. B씨는 A군이 숨진 3일 구속됐다. A군은 지난해 10월부터 친부와 B씨로부터 수차례 맞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머리를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A군 몸에서 학대 정황을 발견한 의료진이 이틀 뒤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A군을 구하지 못했다. 당시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같은 달 13일 A군 집을 방문해 사실관계를 파악해 경찰에 결과를 통보했지만 A군이 친부 등과 떨어져 지내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9살 고준희양 암매장 사건’ 때 文, 아동학대감지시스템 도입 지시 학대 정황 2014년 1.1명→2018년 2.98명 앞서 2018년 1월 고준희양 암매장 사건 당시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준희양 보도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이었다”면서 “근래 아동학대 신고 건수와 학대 판단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아동학대 발견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하면 까마득히 낮은 실정”이라고 지적했었다. 그러면서 “영유아 등의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학대가 장기간 지속되고 중대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기존의 아동학대 대책을 점검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보고해 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는 2018년 3월 ‘아동학대 방지 보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언급한 시스템은 사회보장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조기에 발견해서 지원하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아동 학대 정황이 발견되거나 아동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가정이라고 판단되면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해 확인하는 방식 등으로 아동학대 예방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아동 1000명당 학대로 판단된 아동수가 2014년 1.1명에서 2018년 2.98명으로 상승했다고 강 대변인은 설명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역사는 기억과 투쟁과정, 교육은 매개체… 교육 살아야 나라가 산다

    역사는 기억과 투쟁과정, 교육은 매개체… 교육 살아야 나라가 산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의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노랫말 일부다. 그리스 독립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연인을 생각하는 이 노래는 그리스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로서 그리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데오도라키스의 작품인데 아그네스 발차가 불러 그리스 국민가요가 됐다. 광주항쟁이 벌써 40년을 넘겼다. 그에 앞서 4월혁명이 60년을 넘겼고 제주4·3항쟁은 70년을 넘겼다. 모두가 우리의 역사가 됐다. 광주항쟁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됐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제자리를 잡았다. 초기에는 실패한 항쟁으로 간주됐지만 7년 후 6월항쟁의 씨앗이 되고 원동력이 됨으로써 성공한 항쟁으로 역사 속에서 부활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항쟁에 크게 빚져 1970년대 이후 우리의 민주화 과정은 유신군사독재에 대한 반대로 시작돼 부마항쟁, 10·26사태, ‘서울의 봄’으로 전개되다가 광주항쟁의 실패로 좌절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그 실패를 딛고 6월항쟁으로 되살아나 드디어 민주화를 이루는 고단한 과정을 거쳤다. 이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항쟁에 크게 빚지고 있으며 우리 모두 광주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광주항쟁을 대규모 학살로 물들인 신군부의 발포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미흡하다. 발포자는 있는데 명령자가 없다. 무고한 다수의 비무장 시민을 대상으로 발포를 명령한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한다. 금남로의 발포와 헬기 사격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 대한 유혈진압작전은 국민을 살육한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다시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다니 다행인데 40년이 지나도록 감추어져 있는 진상이 조속히 밝혀지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광주항쟁의 정신을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능멸하고 유가족들을 아프게 하는 일체의 망언과 망동을 중단해야 한다. 회고록에서 거짓말로 일관하는 전두환은 광주학살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인데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했고 이순자는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했다. 지만원은 시민들의 저항을 북한군의 개입이라고 주장하면서 수많은 ‘광수’를 양산하고 있다. 광주항쟁 유공자를 괴물집단에 비유한 의원이나 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주장한 의원이 소속돼 있는 미래통합당은 무책임한 정당이다. 이러한 거짓과 망언이 활개치지 않도록 역사왜곡처벌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항쟁의 피해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민이 죽고 다쳤는지 정확하지 않다. 그 시기에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고 행방불명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망자가 어딘가에 암매장돼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거두기 어렵다. 이 모든 상황을 조사 활동만으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당시 가해자의 편에 섰던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4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용기 있는 고백’을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많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일본의 경제적 우위가 흔들린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본 젊은이들의 무기력증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근대 이후 치열한 체제 논쟁이 드물었지만 우리는 동학혁명 이후 1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변동을 거쳤고, 특히 해방 이후 험난했던 민주화의 격동 과정은 역사 발전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해방 후 민주화 과정은 역사발전의 동력 이런 점에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제 발전, 산업 발전, 기업 발전, 기술 발전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역사가 잘 정리되고 그것이 교육으로 뒷받침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요건임을 알 수 있다. 역사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역사가 바로 서지 않고서는 사회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없거니와 그 동력을 발견할 수도 없다. 교육이 바로 서야 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교육 없이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갓갓’과 ‘박사’가 대학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교육의 관점에서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일전에 원로 학자 도정일 선생이 교양교육과 전인교육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사람이 되는 교육,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자 반성이다. 기술을 가르치려고 해도 사람이 된 다음에 가르쳐야 한다. 아무에게나 무술과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면 흉악범이 된다. 칼이 의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지만 강도에게는 흉기가 된다는 사실과 같은 이치다. 특히 교육은 그 본령에 충실해야 하는데 불법과 비리가 만연된 학교에서 오로지 지식과 기술만 강조하는 풍조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풍조 아래서 수많은 ‘갓갓’과 ‘박사’가 양산되는 것이다. 적어도 교육자라면 갓갓과 박사가 한국 근대화의 산물이자 경쟁주의적 근대교육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사립학교법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립학교육성법의 모양을 띠고 있는 이 법이 기실 사립학교방치법이자 사학비리은폐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사립학교건전육성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깨달음이 없으니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지 않는 것이다. 학교 현장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연 학생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공부하면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환경인지, 교수와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환경인지 판단해야 한다. 학교가 학원과 구별되는 교육기관인 것은 철학과 근본이 있기 때문이다.●文정부 사학비리·대학 서열화 개혁 사라져 정부가 출범 초기에 사학비리, 대학 서열화, 사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식이 많이 희미해진 모양이다. 대학 문제의 본질은 실종되고 프로젝트만 강조되고 사학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공영형 사립대학’ 이야기는 어딘가에 묻혀서 사라져버렸다. 도탄에 빠진 사학을 살리자는데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는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인가?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돈으로 환산된다는 말인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하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리스에 발차의 노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다.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에 김종률이 곡을 붙여 광주항쟁에서 산화한 영원한 대변인 윤상원과 먼저 간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다. 이 노래가 광주항쟁의 중심 무대였던 옛 전남도청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을 포함해서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광경을 보면서 역사가 기억과의 투쟁 과정이고 교육이 그 매개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상지대 총장
  • 그날, 그 광장서 울린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 정신은 모두의 것”

    그날, 그 광장서 울린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 정신은 모두의 것”

    文대통령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호·세대 이어 거듭 태어나야” 유족 편지 낭독 끝나자 손잡으며 위로 작년 숨진 희생자 묘역 찾아 헌화·참배“5·18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아직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한 청년의 말(계간지 ‘문학들’ 2020년 봄호 중 박은현의 ‘지금-여기-이곳을 위한 5·18’ 중)을 인용해 오월 정신과 핵심인 연대의 힘이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정치·사회 민주주의를 넘어 가정·직장·경제에서의 민주주의’로 재해석되고 미래 세대에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그것이 그날, 도청을 사수하며 죽은 자들의 부름에 산 자들이 진정으로 응답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기념식 주제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와도 맞물려 있다. 5·18에 대한 이념적 논쟁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항거한 5·18 정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입술이 부르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단호하게 “‘오월 정신’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더 널리 공감되어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또한 1980년 당시를 언급하며 “광주는 철저히 고립됐지만 한 건의 약탈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격려하는 마음이 계엄군에 맞서는 힘이었다”고 떠올린 뒤 “그 정신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있고 코로나 극복에서 세계 모범이 되는 저력이 됐다”고 말했다.기념식이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가 아닌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것은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이 항쟁 당시 본부였고, 광장 분수대를 연단 삼아 항쟁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행사는 경과 보고, 유족 편지 낭독, 대통령 기념사, 헌정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항쟁 당시 희생된 고 임은택(당시 36세)씨의 아내 최정희(73)씨는 눈물을 참으며 사부곡을 낭독했다. 최씨가 “밥이 식을 때까지 오지 않은 당신을 열흘 만에 교도소에서 시신으로 만났지요. 이 억울한 마음을 세상천지에 누가 또 알까요”라고 한 대목에서 소복 차림의 ‘오월 어머니’들은 눈물을 훔쳤다. 담양에 살던 최씨는 5월 21일 수금하러 광주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남편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귀갓길에 계엄군의 사격을 받아 숨진 임씨는 같은 달 31일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눈물을 쏟은 최씨를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참석자 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어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탑 및 새로 조성된 2묘역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2묘역에서 전남대 학생 신분으로 계엄군에 체포돼 고문당하고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지난해 숨진 시민 이연씨 묘에 헌화·참배했다. 이씨의 부인은 “트라우마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면서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씨 딸의 손을 잡고 “아빠의 트라우마는 어쩔 수 없어도 따님은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달라”며 위로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옛 전남도청 앞에서 첫 5·18 40주년 기념식 열려

    5·18민주화운동 제40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10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렸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를 주제로 한 이날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유족·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기념식을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었다.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 이후 처음이다. 기념식은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국민의례·경과 보고·편지 낭독·기념사·기념 공연·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1시간 남짓 진행됐다.사회는 방송인 김제동이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며 “5월 정신의 확산을 위해 정부가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완벽한 진상 규명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세우는 것”이라며 “그래야 용서·화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식전 행사에 상영되는 도입 영상은 ‘26년’ ‘화려한 휴� � ‘택시운전사’ 등 5·18을 다룬 영화를 재구성했다. 국민의례 중 김용택 시인이 기념식을 위해 집필한 묵념사 ‘바람이 일었던 곳’을 문흥식 5·18구속부상자회장이 낭독했다. 경과 보고는 예년과 달리, 청년 세대가 항쟁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남녀 대학생 차경태·김륜이씨(5·18 유족과 유공자 자녀)가 맡았다. 기존에는 5·18단체장과 광주보훈청장이 경과를 보고해왔다. 5·18 때 계엄군의 만행으로 숨진 임은택씨의 부인 최정희(73)씨의 원통한 사연도 편지로 소개됐다.임씨는 1980년 5월21일 광주에서 전남 담양으로 이동하던 중 옛 광주교도소 인근 도로에서 3공수여단의 총격으로 숨졌고, 열흘 만에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기념공연에서는 작곡가 정재일, 영화 감독 장민승이 만든 환상곡 ‘내 정은 청산이오’가 처음 공개됐다. ‘내 정은 청산이오’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브로 남도음악·전통문화·오케스트라·랩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한 곡으로, 5·18희생자와 광주에 헌정됐다. 참석자들은 기념식 이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5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기념식은 민주·인권·평화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 국민 통합 계기를 마련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40년 전 진실 찾는 5·18 조사위… “처벌 아닌 화해가 목적”

    40년 전 진실 찾는 5·18 조사위… “처벌 아닌 화해가 목적”

    본격적인 조사 활동을 개시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5·18 진상조사위)의 송선태 위원장이 “최초 발포 명령자와 헬기사격 및 각종 인권침해 사건 등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한 40년 전 5월의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전력투구하겠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12일 서울 중구 5·18 진상조사위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5·18 특별법’(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명시된 진상 규명 범위 중 우선 조사 과제를 공개했다. 먼저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경위와 발포 지휘체계, 발포 책임자 확인 등 계엄군의 발포 행위와 관련한 진상을 규명한다. 송 위원장은 “지금까지 총 9차례 조사가 있었지만 상급 지휘관 중심의 조사에 그쳐 발포 책임자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며 “1980년 5월 18~27일 2만명이 넘는 병력이 광주에 투입됐는데 이 중 1만 4000여명이 병사와 하사 등 초급 간부였다. 이번에는 ‘아래로부터의 조사’를 통해 발포 현장의 생생한 증언과 자료를 수집·분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한군 개입설’도 조사 대상이다. 송 위원장은 “‘북한 특수군이 침투해 광주시민을 살상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진실을 추적하고, 주장이 허위 사실일 경우 유포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암매장 사건 ▲행방불명자 조사 ▲군에 의한 성폭력 사건 등이 우선 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송 위원장은 “과거 5·18 조사기록과 수사·재판기록, 군 관련 기록 등 60만쪽이 넘는 기록이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된 상태”라면서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에게 군이 집단 발포한 일에 대해 적은 군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벌이 아닌 진실·화해가 위원회의 활동 목적”이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공정하게 조사해 국가폭력의 실상을 확인한 후 책임을 물을 사항이 발견되면 주저 없이 조처하겠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5·18관련 시민제보 210건, 진상규명조사위에 이관 이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5·18 핵심 쟁점과 관련한 제보 내용을 이관받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송선태 위원장은 8일 “5·18 참여자 등 시민들이 제보한 내용 210건을 넘겨 받아 조만간 본격적인 조사와 확인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확보한 제보 내용은 2017년부터 최근까지 5·18기념재단이 접수해 정리한 155건(녹취 포함)과 광주시 진상규명신고센터가 제보 받은 55건 등 모두 210건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 찬탈용 무력 진압에 따른 피해 사례가 주를 이루고, 가해 사례도 40여 건가량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형별로 보면 ▲행방불명 13건 ▲암매장 48건 ▲헬기 사격 및 발포 37건 ▲과잉 진압 8건 ▲성폭력 6건 ▲기타 98건 등이다. 조사위 전원위원회는 오는 11일 조사 착수 명령을 한다. 조사1·2·3과에 소속된 조사관들이 제보 내용을 분석할 방침이다. 조사1과는 최초·집단발포 경위와 책임자 규명, 사격 피해 현황, 민간인 학살, 암매장, 헬기 사격, 각종 인권 침해 사건 등을 조사해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필요할 경우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청문회 관련 업무도 맡는다. 조사 2과는 군 비밀 조직이 자행한 역사 왜곡·은폐·조작 경위, 집단 학살지·암매장지 유해 발굴과 조사에 주력한다. 조사 3과는 북한군 개입설 등을 규명한다. 조사위는 5·18 전후 일자별 상황 재구성을 마쳤고, 각 과별 조사 대상에 따른 계엄군 진압 경위를 구체적로 들여다 보고 있다. 특히 항쟁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모든 부대를 특정한 뒤 광주에 투입된 장병 명단을 확보키 위해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선태 위원장은 “진실을 고백하는 양심적 증언들은 5·18 진실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마지막 기회인 만큼 당시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조사활동을 펴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과거사법 20대 처리 합의… 피해자 국회 고공농성 중단

    과거사법 20대 처리 합의… 피해자 국회 고공농성 중단

    “차라리 내 방서 농성하라… 각서 써 주겠다” 여야 의원들에 전화 걸어 통과 약속 받아 지난 5일부터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가 7일 이틀 만에 땅을 밟았다. 여야가 최씨에게 형제복지원 문제 해결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52분부터 현관 지붕(캐노피)에 가까이 있는 이상민 의원실의 창문을 통해 최씨와 면담했다. 김 의원은 최씨와 대화를 나눈 후 통합당 이채익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행안위 간사, 여상규 법사위원장,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 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형제복지원 문제가 달린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를 약속받았다. 김 의원은 최씨에게 이날과 8일은 각 당의 원내대표 선출 건으로 본회의를 열기 어렵고, 회기는 오는 15일까지이지만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처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최씨는 법안이 완전히 처리되는 걸 보고 내려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김 의원은 “차라리 내 방에서 농성을 하라, 각서를 써 주겠다”며 최씨를 설득했다. 자신을 믿고 내려오라는 김 의원의 말에 최씨는 결국 이날 오후 5시쯤 지상으로 내려왔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일어난 인권 유린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각종 학대로 사망한 사람들을 암매장하기도 했다. 확인된 사망자만 500명이 넘는다. 최씨는 의원회관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는 911일간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형제복지원 피해자 900여일 농성의 기적…여야 ‘과거사법’ 극적 타결

    형제복지원 피해자 900여일 농성의 기적…여야 ‘과거사법’ 극적 타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야 간사들이 7일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근거법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 통과에 극적 합의했다. 관련법이 국회에 올라온 지 8년 만이다. 이에 지난 5일 어린이날부터 국회 의원회관 지붕에서 고공 농성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는 농성을 중단했다. 국회 행안위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홍익표·미래통합당 이채익 의원은 이날 20대 국회 임기 종료 전 과거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3월 민주당이 제시한 합의문을 바탕으로 한 수정안을 이후 열리는 본회의에서 의결키로 약속했다. 민주당 홍 의원은 이날 합의 후 기자들을 만나 “내용적인 면은 이미 지난 3월달에 합의됐었으나 당시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해 처리가 안 됐는데 이번엔 김무성 대표가 역할을 해 줬다”고 전했다. 통합당 이 의원은 “통합당도 과거사 기본관련법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지만 단지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며 “꼭 이른 시일 내 본회의 통과돼서 가슴 아픈 여러 과거사 상처가 아무는 계기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이날로 911일째 국회 정문앞 등지에서 농성을 진행해 왔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여당이 당시 자유한국당과의 합의 없이 표결로 처리해 법사위로 넘겨졌다가, 추가 협의를 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에 따라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로 돌아왔다. 여야는 20대 임기가 끝나는 이달 30일 전 이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과거사법 처리되면 지난 2010년 소임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해산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10년 만에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날 합의는 통합당 김무성 의원의 적극 중재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여야 합의를 마친 뒤 고공농성 중인 최씨와 맞닿을 수 있는 이상민의원실을 찾아 창문으로 최씨에 이 사실을 알렸다. 김 의원은 “참 잘된 일인 것 같다”고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최씨는 이날 통화에서 “여야가 처리키로 했다는 말을 믿고 내려간다”고 전했다. 이날 고공농성을 마친 최씨는 녹색병원으로 이송돼 건강 이상 여부를 점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12년간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부산 사상구 주례동 형제복지원에서 누적 인원 3만 7000명 이상을 수용,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살인·암매장이 자행됐던 사건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 다음달 본격 조사 착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조사관 채용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다음달부터는 본격적으로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위는 10일 최근까지 전체 조사관 34명 가운데 33명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1·2차에 걸쳐 채용된 이들 조사관은 최근 기초적인 교육을 마치면서 조만간 현장 투입이 가능해졌다. 1차 채용 당시 경력 누락으로 채용이 취소된 조사관 1명 자리는 3차 채용을 통해 공모할 방침이며, 사실상 진상조사위 조사관 채용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월15일부터 조사 실무를 맡은 조사 3개 과와 대외협력 부서 등 34명(4급 4명, 5급 11명, 6급11명, 7급 8명)을 공모했다. 5·18 진상조사위는 내주부터 조사 계획서를 작성해 전원위원회에 보고한다. 조사 1과는 광주역 앞 최초 발포 및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헬기 사격에 대한 경위와 책임자를 규명하고 이 과정에서 사망·부상·암매장을 포함한 5·18 과정 전반에 걸친 시민 피해 현황을 조사한다. 조사 2과는 군 보안사와 국방부가 1988년 국회 청문회를 대비해 구성한 비밀 조직 5·11연구위원회 조직 경위 및 왜곡·조작 경위와 집단학살지·암매장지 소재 및 유해 발굴과 수습, 행방불명자 규모 및 소재 조사에 주력한다. 3과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과 조사위가 목적 달성을 위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을 맡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떨림’ 그리움에 사무치다…‘울림’ 속세에서 피안으로

    ‘떨림’ 그리움에 사무치다…‘울림’ 속세에서 피안으로

    피안앵(彼岸櫻). 절집에서 자라는 벚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고단한 현실의 강 너머 피안의 세계로 이끄는 나무란 뜻이다. 벚꽃 흩날리는 이맘때라면 대개는 벚나무 무리지은 명소를 찾기 마련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올해는 방향을 달리해 보자. 벚꽃 몇 그루 핀 적요한 절집을 찾아 한나절 어슬렁대는 건 어떨까. 그렇게 피안앵이 아름다운 절집을 찾아 나선 길이다. 하필 벚꽃이 절정일 때 사회적 거리두기도 절정의 순간을 맞았다. 대한민국의 ‘벚꽃 성지’인 경남 창원 여좌천, 경화역 등이 폐쇄됐고, 서울 여의도 윤중로 등 내로라하는 전국의 벚꽃 명소들도 줄줄이 문을 닫아걸고 있다. 유명 벚꽃 관광지는 피하고 덜 이름났으면서도 나름의 빼어난 풍경을 가진 숨은 여행지를 찾아 전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은 셈이다.●배배 꼬인 둥치 위에 연분홍 꽃잎의 봄마중 봄이 오면 꼭 찾아보리라 별렀던 곳이 있다. 경남 양산의 극락암이다. 대가람 통도사에 딸린 열아홉개 산내 암자 중 하나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 상황에서 산문을 닫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직 문은 열려 있다. 극락암은 통도사에서 4㎞ 정도 떨어져 있다. 걷자면 한참이지만 자동차로는 금방이다. 예전 같으면 걸어 보시라 권했겠지만 요즘 같은 때엔 ‘드라이브 스루’가 당연해 보인다. 암자 초입엔 솔숲이 펼쳐져 있다. 늙은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늘어서 있다. 통도사 초입의 ‘무풍한송로’에 견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이다. 솔숲을 나서면 곧 극락암이다. 어서 오라는 듯 늙은 벚나무 몇 그루가 활짝 가지 벌려 객을 맞고 있다. 산중 암자라 덜 여물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벚꽃은 거의 만개한 상태다. 이 늙은 고목에서 꽃잎이 분분히 날릴 때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가장 인상적인 건 작은 연못 옆에 있는 벚나무다. 실타래처럼 배배 꼬인 굵은 둥치가 살아낸 세월을 웅변하는 듯하다. 거무튀튀한 수피 위로 연분홍의 가녀린 꽃잎들이 겹겹이 매달려 있다.●무지개 다리 ‘홍교’ 건너 욕심도 노여움도 버리고 연못의 이름은 극락영지(極樂影池)다. 이름 그대로 연못엔 극락암을 둘러싼 영축산 풍경이 그대로 잠겨 있다. 연못 위로는 어여쁜 무지개다리, 홍교(虹橋)가 가로놓여 있다. 홍교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경봉(1892~1982) 스님이 1962년 조성했다. 다리의 크기는 작아도 담긴 뜻은 크다. 세속의 세 가지 독, 이른바 탐진치(貪瞋癡, 욕심·노여움·어리석음)를 버리고 극락에 이른다는 다리다. 연못, 벚꽃 등과 어우러진 자태가 속된 곳을 넘어 성스러운 세상으로 오르는 다리처럼 보인다. 홍교 너머로는 극락암 중심 전각인 무량수각(극락전), 설법전인 영월루 등이 주르륵 이어져 있다. 부속 암자라고는 해도 어지간한 사찰보다 큰 규모다. 경내 가장 오른쪽에 삼소굴(三笑窟)이 있다. 경봉 스님이 통도사 방장으로 30여년간 주석하며 기거했던 곳이다. 대가람의 방장이 머물던 집치고는 여염의 사랑채처럼 작고 아늑하다.무량수각 뒤는 단하각이다.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이다. 나반존자는 홀로 이치를 깨닫고 도를 이뤘다는 성자다. 단하각 가는 소로 주변엔 겹동백이 무시로 피었고, 늙은 산수유도 한껏 흐드러졌다. 찾는 이 드문 절집 뒤란에도 이처럼 봄이 무르익고 있다. 통도사 경내에도 벚나무가 몇 그루 있다. 절집의 오래된 당우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선사하고 있다. 일주문 옆 벚나무의 자태가 멋지다. 저물녘 범종 소리 울릴 때 꽃잎이 비처럼 흩날린다면 그야말로 선경이겠다.●말로만 들었던 쌍계사 십리벚꽃길 직관 하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말로만 들었던 십리벚꽃길을 ‘직관’하러 가는 길이다. 쌍계사가 목적지다. 사실 쌍계사는 피안앵이라 할 만한 벚나무가 없다. 대신 절집까지 가는 길이 빼어나다. 그 길이 바로 ‘십리벚꽃길’이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섬진강대로(19번 국도). 총연장이 얼추 60㎞ 가까이 되는 이 도로의 가로수 대부분은 벚나무다. 봄의 이 길을 백리벚꽃길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 길은 아주 당연히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십리벚꽃길은 이 백리벚꽃길에서 떨어져 나온 1023번 지방도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5㎞ 구간을 이르지만, 벚꽃길은 위로 칠불사 갈림길까지 한참을 더 이어진다. ●환장할 이 풍경 올해는 ‘드라이브 스루’로 화개천 양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졌다. 수령 40~50년을 헤아리는 늙은 벚나무들이 도로 양쪽으로 빼곡하다. 화개(花開)라는 지명처럼 길가의 크고작은 벚꽃들이 일제히 꽃술을 열었다. 객들에게 꽃을 뿌려 산화공덕이라도 하려는 건지. 이 풍경 보고 환장하지 않는다면 정말 사람도 아니다. 이제 꽃 피어 꽃 터널이 됐으니 조만간 꽃이 지면 꽃길이 될 터다. 이런 환장할 풍경이 십리나 이어진다. 그러니 벚꽃 필 무렵에 이 도로를 찾았다면 차량 정체는 각오해야 한다. 아쉽지만 이곳 역시 ‘드라이브 스루’로 즐기는 게 좋겠다. 워낙 풍경이 빼어나다 보니 운전을 하며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는 이들도 종종 본다. 촬영일랑 부디 블랙박스에 맡기고 운전에만 집중하시길.십리벚꽃길 끝자락에는 벚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절집이 들어앉아 있다. 두 계곡의 물길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절집, 쌍계사다. ‘벚꽃길 엔딩’에 딱 어울릴 단아한 자태가 일품이다. ●쌍계사 문 하나씩 넘다보면 깨달음의 세계로 쌍계사는 개창 연대가 신라 성덕왕 21년(722)까지 거슬러 오르는 고찰이다. 나라 안 대부분의 절집이 그렇듯, 쌍계사 역시 임진왜란 등의 여러 전란을 거치며 무너지고 중건돼 오늘에 이른다. 쌍계사는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덕에 가람 배치가 조밀하고 단아하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절집 초입에 서면 비쩍 마른 벚나무 너머로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이 나란히 서 있다. 문 사이를 돌아 흐르는 작은 계곡 위엔 아담한 구름다리를 놓고 대숲도 조성했다. 문을 하나씩 넘다 보면 현실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쌍계사엔 신라시대 명필로 꼽히는 고운 최치원(857~?)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매표소 근처의 두 바위에 각각 새겨진 ‘쌍계’, ‘석문’ 글씨, 대웅전(보물 500호) 앞 계단의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의 비문 등이 그의 작품이다. 1200년을 헤아린다는 화개 차의 역사도 이 탑비가 근거가 됐다.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에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 씨앗을 쌍계사 근처에 심었다는 기록이 이 탑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섬진강 ‘백리벚꽃길’ 화양연화 속으로 이들 외에도 하동 일대에 최치원의 고사가 전하는 곳이 많다. 범왕리 푸조나무는 최치원이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움이 터 자랐다는 노거수다. 둥치가 어른 여럿이 팔을 뻗어야 닿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푸조나무 건너편에는 세이암이 있다. 최치원이 벼슬아치들의 비루한 말을 듣고 귀(耳)를 씻었다(洗)는 너럭바위다. 하동의 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화개천변의 야생차밭이다. 이제 겨우 신록이 돋는 나무들 사이에서 야생차밭은 유난히 짙푸른 봄의 색을 펼쳐낸다. 벚꽃처럼 화사하지는 않아도 가지런한 조형미만큼은 일품이다. 쌍계사에서 칠불사에 이르는 구간에 야생차밭이 많다. 이제 섬진강의 화양연화를 즐길 차례다. 하동에서 구례까지 이어지는 길은 흔히 백리벚꽃길이라 불린다. 이 길 위에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 악양 들판, 최참판댁, 하동송림(천연기념물 445호), 운조루 등의 명소가 매달려 있다. 요즘 하동 들녘의 주인은 배꽃이다. 매화가 진 자리마다 희디흰 배꽃들이 빼곡하다. 하동 쪽엔 섬진강을 따라 걷기길이 조성돼 있다. 이른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다. 하동송림부터 섬진교까지 50㎞ 정도 이어져 있다. 허리춤에 섬진강을 매달고 벚꽃, 배꽃 만개한 길을 걷는 맛이 아주 각별하다. ●수양벚꽃 흐드러진 ‘화훼사찰’ 순천 선암사 순천 쪽에서는 선암사를 빼놓을 수 없다. 봄이면 ‘화훼사찰’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진다. 선암사가 사람들로 북적일 때는 선암매(천연기념물 488호) 등 늙은 매화들이 꽃을 피울 때다. 요즘은 굳이 사회적 거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만큼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이맘때 선암사 무량수각 앞에는 수양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벚나무들이 가지 끝에 연분홍 꽃등불을 매달았다. 볕 받아 반짝이는 꽃술들이 꼭 별을 닮았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와 마주한 송광사도 ‘꽃절집’이다. 진입로의 벚꽃터널이 볼만하다. 늙은 벚나무마다 거무튀튀한 가지 끝에 싱싱한 연분홍 꽃술을 매달았다. 송광사에서 주암호를 건너면 보성 땅이다. 호수를 따라 펼쳐진 해토머리 풍경이 그윽하다. 호수 중간쯤에 대원사로 드는 진입로가 있다. 이 길 역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진입로 초입에서 대원사까지 5㎞ 남짓한 구간에 왕벚나무가 빼곡하다. 절정이라 하기엔 이르고 이제 막 꽃술을 여는 참이다. 벚꽃길 끝자락에 대원사가 있다. 송광사의 말사로, 머리로 치는 왕목탁 등 해학 넘치는 볼거리들이 많다. 절집 초입의 티베트 박물관은 티베트 불교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티베트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내년에도 경북 사찰에 꽃은 피리니 피안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절집들은 사실 경북 지역에도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라 차마 찾아가시라 권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경주 쪽에선 기림사가 꼽힌다. 오래전엔 불국사를 말사로 뒀을 만큼 규모가 컸던 절집이다. 뜨락의 키 낮은 벚나무와 대적광전 등의 소박한 가람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다. 기림사 벚나무들은 꽃을 늦게 틔우는 편이다. 경주 시내 벚꽃들은 거의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기림사의 벚나무들은 이제 겨우 꽃잎 몇 장 내민 정도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반께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 창궐의 진원지 중 한 곳이었던 청도의 운문사도 절집 주변의 벚꽃 풍경이 빼어나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다운 정갈한 경내 풍경과 벚꽃이 어우러져 특별한 봄을 선사한다. 김천 직지사는 대항면사무소에서 직지사 공영주차장까지 사찰 진입로에 줄지어 흩날리는 벚꽃이 절경이다. 직지사 인근의 연화지는 밤 벚꽃놀이로 이름이 높다. 충청권에서는 서산 개심사 왕벚꽃이 많이 알려졌다. 대부분 지역의 벚꽃이 한풀 꺾인 뒤에야 꽃을 피우기 때문에 4월 중하순 무렵이 절정이다. 공주 신원사도 대웅전과 석탑 앞을 외호하는 듯 선 늙은 벚나무 세 그루가 특별한 정취를 전한다. 글 사진 양산·하동·순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십리벚꽃길 주변에 독특한 음식점들이 많이 생겼다. ‘찻잎마술’은 녹차를 활용한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녹차 소스로 쪄낸 삼겹살찜 등이 별미다. 찻집도 많이 생겼다. ‘비주제다’, ‘윤슬당’, ‘쌍계명차’, 쌍계사 앞 ‘단야찻집’ 등이 알려졌다. 통도사 쪽에선 메밀국수를 맛봐야 한다. ‘삼정메밀소바’, ‘금호정’ 등이 유명하다. 선암사 정문 아래 ‘초원식당’은 보리밥이 맛있다. 2시간 정도 산행을 해야 맛볼 수 있는 저 유명한 굴목이재 ‘보리밥집’에 견줄 만큼 맛깔스런 보리밥을 낸다. -아자방(亞字房)으로 유명한 칠불사는 코로나19로 산문을 폐쇄했다. 이 일대의 봄 풍경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아자방은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이나 갔다는 신비의 온돌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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