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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축재·수뢰 의혹 점철/반한 총리 사임발표 배경

    ◎석사논문 표절… 생일도 클린턴과 같게 고쳐 「태국판 전·노 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반한 실라파 아차 태국총리(64)의 전격적인 사임발표는 총리 퇴임 후에도 연립정부를 유지함으로써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연정 지도부간 타협의 산물로 보인다. 반한 총리 개인으로서도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6개 정당 가운데 제2여당인 신희망당(NAP) 등 4개당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바람에 다른 선택수단이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연정붕괴라는 결정적 파국을 막는데 기여한 대신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됐다.수일전까지만 해도 의회해산을 논의하기 위해 푸미폰 국왕을 알현하려 했던 그가 사임하지 않으면 불신임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연정내 반대파에 굴복,미리 사임의사를 밝힘으로써 투표에서 2백7대 1백80으로 강제축출은 모면했기 때문이다. 반한 총리의 계산된 의도는 21일 의회에서 불신임투표 직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그는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정부는 아직 6개 정당으로 구성돼 있다.우리는 이제 다음 총리선출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자신에게 반기를 든 연정 지도부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집권 14개월만에 반한 총리가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핵심은 부정축재.지금까지 밝혀진 그의 부정축재 사례는 금년초 1백90억바트(약 5천7백억원)짜리 대형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자신의 소유인 「시상 칸요타」사에 임의로 넘겼고 지난해 7월 총선때 비리를 빌미로 방콕상업은행을 협박,10억바트의 정치자금을 뜯어낸 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그는 또 최근 들어서도 3개 시중은행 설립허가를 둘러싸고 22억5천만바트의 뇌물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밖에도 야당은 그가 다른 사람의 논문을 표절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아버지의 국적을 중국인에서 태국인으로 바꿨으며 자신의 생일을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같은 날로 바꾸는 등 정치적으로 장수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비난해왔다.
  • 중동의 미 국방 푸대접/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지난 주말을 이용한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의 3박4일간 중동방문에서 동맹국들이 보여준 푸대접은 최근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중동의 세력판도에서 미국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계속 논란거리가 될것으로 보인다. 페리 장관의 이번 중동방문 주요 목적은 이라크의 도발에 대비,증강배치키로한 미전투기 및 지상군의 기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16일 하오 그가 중동방문을 마치고 터키의 에젠보가 공항을 떠날때까지 손에 쥔것은 바레인으로부터 23대의 F­16기를 위한 기지사용 확답뿐 전통적인 우방인 사우디 터키 쿠웨이트 등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5천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동 최대 동맹국인 사우디는 이달초 이라크 도발에 대한 미국 반격이 시작될때부터 일찌감치 기지사용 불가를 표명했고 페리 장관의 거듭 부탁에도 정중히 거절했다.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수혜국인 쿠웨이트는 자국정부의 최종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미국 마음대로 5천명 증파병력의 자국행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확답을미뤄 페리 장관의 애를 태웠다.그는 일요일인 15일 셰이크 자베르 사바 쿠웨이트왕을 알현,기지제공을 요청했으나 왕은 안보보좌관과의 협의를 이유로 확답을 피했으며 오히려 미국측의 사전발표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쿠웨이트는 결국 16일 하오 공보장관을 통해 기지 허가를 발표했으나 미국방부는 병력규모를 3천명으로 축소시켜야 했다. 또한 지난 5년간 북부 이라크 비행금지구역 순찰을 위해 인치르리크 기지를 제공해온 터키 역시 추가 기지제공을 거부해왔다.최초의 이슬람정부 수반인 넥메틴 에르바칸 총리는 주말이라는 이유로 면담조차 거절,페리장관은 대신 외무·국방장관을 만났으며 기지제공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고 탄수 칠러 외무장관이 후에 전했다.이날 외신들은 페리 장관의 비행기가 에젠보가 공항을 이륙한지 불과 5분후에 총리전용기가 도착했다며 페리장관은 에르바칸 총리의 기피인물 이었다고 꼬집었다. 중동 동맹국들이 한결같이 미국의 출현을 달가와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이라크 국내문제에 과잉반응을 보임으로써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있으며 가급적이면 그 불필요한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계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페리 장관이 받은 푸대접은 미국의 자존심 손상으로 미정가를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로마/광장과 분수들(아랍서 지중해까지:17)

    ◎빼어난 조각 트레비분주 “압권”/저마다 소원빌며 샘에다 동전 던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로마의 아침을 보려고 5시쯤에다 시간을 맞춘다. 바로크풍의 둔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간밤의 불빛들이 아직 명멸하고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들던 그 거창한 명소나 유물들은 채 잠이 깨지 않았는지 희뿌연 모습들인 채 산책을 방해하는 것같지가 않다. 숙소근처를 두어블록 걷자 골목에서 새벽장이 서고 있다.인근 농장에서 직접 왔는지 캡을 쓰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웃고 있는 주인들 곁의 열어젖뜨려진 소형트럭과 좌판위에 늘어놓인 갖가지 야채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싱싱하다.여기 오렌지는 쪼개면 핏빛으로 넘치는 즙과 함께 톡 쏘는 단맛이 유난스럽다.정말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풍경이어서 지리멸렬한 여독이 어느새 가시고 있다. ○하찮은 것도 소중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럴듯한 이름을 거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같다.구멍가게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기념품,펜대 하나의 모양새가 그렇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놓은 거리들이 그렇다.별 두개짜리 속소인 「셀렉트」호텔만 해도 우리식으로는 장급여관수준밖에는 안돼 보였으나 주위공간을 하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좁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정갈한 욕조,앙증맞은 비누곽,출입문과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간결한 탁자와 꽃들로 장식해 아늑한 공동정원으로 꾸며놓고 있다.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보노라니 서울 필동의 어느 후진 곳을 연상시키는 그 뒤쪽의 낡은 건물이 오히려 고소를 자아낸다. 좁아터졌으나 역시 아늑하기 짝이 없는 지하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시내나 한바퀴 둘러보자고 나선 길에 운좋게도 산 피에트로광장에서 교황을 만난다.운좋게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신자가 아니므로 그저 먼빛으로 구경이나 한 셈이 되어버린 이 수요일 오전의 알현은 필자에게는 사실 뜻밖이었다. 바티칸시국은 64번 버스종점으로 테르미니역과는 반대편끝이다.산 피에트로사원은 카톨릭미술의 보고인 바티칸박물관,라파엘로관,기타 미술관들과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장식된 시스티나예배당으로 바로 이어진다.높이 25m가 넘는 장대한 오벨리스크와 분수와 1백40인의 성인상이 주위의 열주지붕위에 버티고 선 더 넓은 광장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듯한 수천명의 신자들이 웅성거리고,사원정면 계단 아래쪽에 차양을 치고 마련된 대좌 위의 요한 바오로2세는 시종 웃음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각 나라말로 한마디씩 은총을 내리는 모양으로 그때마다 해당되는 나라의 신자들이 환호하며 몸들을 일으켰다. 뭐라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물론 우리말의 은총도 환호도 있었다.조말의 병인사옥이라든가 서강쪽의 절두산 같은 것이 제풀에 생각나 감개가 없을 수 없다. ○광장서 교황 만나 테베레강을 건너 베네치아광장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버스를 버리고 걷는다.로마는 웬만한 길들이 그대로 모두 쇼핑타운이 되어 있어 은근한 디자인과 태깔의 그런 길가 가게들 모습은 유별나다.무드를 연출하고 집중적인 포인트로 상품을 진열해놓는 품새부터가 그렇고,묘하게 접혀서 제자리에 걸려 있는 그저 그런 옷가지 하나가 무슨 첨단디자인의 최고제품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까지 그 지경이라면 입성에다 목을 매다는 여성들의 눈에는 오죽하겠는가.사심없는 눈요기야말로 하나의 풍경의 중심에 도달하는 첩경이고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는데,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간 일행 두사람이 좀처럼 나올 염을 않고 있다. 천사가 모는 사두마차의 지붕 좌우끝머리 조각과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에마누엘레2세기념관의 베네치아광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주위의 한다 하는 로마명소나 유명한 분수들의 그 중앙통쯤 되는 지점이 된다.트레비분수는 그 바로 다음인 콜로나광장에 있다.로마근교의 미남 홀아비 로사노 브리지가 관광온 미국처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얘기인 왕년의 영화 「애천」이 생각나서도 그렇지만,이 분수는 그 웅장한 규모로나,바로크양식의 걸출한 조각으로나,사철 거기 몰려 와글대는 사람들로나 역시 이곳 볼거리의한 압권이랄 수밖에 없다. 샘 주위는 그대로 온갖 피부색 인종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그런 격의없는 꿈의 무슨 도피처로도 보인다.사뭇 진지하게 소원을 빌면서 저마다 한번씩 샘에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보고 있대서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치기어린 제스처가 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빨리 통일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지고한 소망보다는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게 해줍시사 하는 현실적인 소원이,그래서 여기서는 더 비현실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제대로 먹혀들 것도 같다.권태와 욕구불만에 고주망태가 된 글래머 스타 애니타 에그버그가 심야에 이 분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 예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이 떠오른다.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60년대를 배경으로 소위 로마 상류층의 무위와 타락한 일상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고발하고 있는 이 필름은 스페인광장 저쪽의 베네토거리가 로케이션의 주무대였던 걸로 알고 있으나 트래비분수를 슬쩍 삽입한 예의 장면의 효과는일탈한 것이었다. 펠리니는 이 관광명소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끌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배는 불러도 삶의 공허를 어쩔 도리가 없어 카페에서 남녀가 말타기놀음까지 벌이는 유한계급의 그런 지리멸렬한 속성이나 같은 이유로 그들의 스캔들이나 고작 뒤쫓고 팔아먹으면서 파행을 자초하는 어떤 잡지사 기자의 행각이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펠리니도,「길」에서 젤소미나역을 절묘하게 해내던 그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도,단발머리로 이이스크림을 빨면서 계단을 깡충거리고 내려오던 왕녀 오드리 헵번도 얼마전에 모두 타계했다.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지고 지금도 여일하게 그대로인 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그래서 새삼 감회를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스크린속의 선남선녀들이 벌이던 그런 운명의 무상감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서는 그렇게도 정답고 낯이 익던 공간이 실제로는 도무지 현실감으로 오지 않는 그 생뚱함 때문일 것이다. 이 스페인광장의 끝에서부터는 구치니,발렌티노니,페라가모니 하는 소위 유명상표의 가게들과 부티크타운의 콘도티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만 별볼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지나친다.동행과도 헤어져 어디를 어떻게 해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상한 청년들 배회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로마의 건축물인 만신전 「판테온」앞을 어설렁거리다 나보나광장으로 다시 빠져나와서야 맥이 쭉 빠졌다.뭘 보려고 헤맨다는 것이 사실은 한 뼘의 쉴 장소를 찾으려고 여태 긴장해온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마실 것을 갖다놓은 야외카페 탁자위로 겁도 없이 비둘기 서너마리가 날아 앉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광장에는 「사대강」 「무어인」 「넵튠」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세개의 분수가 있다.도리없이 또 필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그런 축조물 주위에 앉거나 아무렇게 드러누워버린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들이다.로마건 어디에서건 가장 흔하게 보아오던 비슷비슷한 무리들인데,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베낭족들도 있고 어설픈 인디언 목걸이니 열쇠고리니 하는 것을 팔면서 움직이는 젊은이들도 있다.60년대의 히피즘이 다시 도래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여겨봤으나 행색만 비슷할뿐 그것도 아닌 것같다.기타를 끼고 있는 녀석도,헝겊으로 이마를 묵은 녀석도,민대머리도 있다. 왜 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가고 새삼 생각한다.우선 그들은 이념적인 색채가 전혀 없어 보인다.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는 보이지만 돈의 위력쯤 똥으로도 안 여기는 눈치들 같기도 하다.집도 절도 냉장고도 지니고 있지 않아 거칠어는 보여도 그만큼 어딘가가 탁 틔어 있다. 21세기는 아마 그들의 몫일 것이다.
  • 이민 간 「직지심체요절」/신재인(서울광장)

    청주는 아직도 그 고운 자태가 때묻지 않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이다.너무 화려하게 개발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벽촌처럼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내가 있는 대전에서 엑스포 덕을 본 신작로를 따라가면 반시간이면 금방 목에 와 닿게 된다.그래서 가끔 고향의 냄새가 나는,그리고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에는 소리없이 이 소박한 마을을 찾아 들어간다.그리고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나기정 청주시장을 만나 뵙게 된다. 그분은 인심좋은 동네 아저씨와 같은 표정을 하고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마음을 크게 열고 악수를 청한다.그리고 조금 딱딱하다 싶은 명함을 꺼내어 준다.명함에 있는 직함은 대한민국 청주시장이다.주소에도 어김없이 대한민국이 들어가 있다.아마도 청주시가 중국의 연길시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어서 외국사람들을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분명하게 쓰고 있는 것 같다.그런데 그 명함 뒷면에는 마치 사진우편엽서처럼 초가집 모양을 본뜬 현대식 건물사진을 인쇄해 놓고 청주 고인쇄 박물관(직지심체요절)이라적고 있다.아마 흥덕사라는 절이 옆에 있는지 둥그런 부채살 무늬의 흥덕사 입구도 사진의 오른쪽 끝에 수줍게 앉아 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사진을 명함의 뒷면에 자리잡게 한 그 연유를 묻게 되었다. 센강을 옆에 끼고서 파리는 성당,박물관,궁전,개선문,오페라하우스,에펠탑등 자랑스런 문화와 예술의 유산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다.그중에서도 국립도서관은 빼어난 외모는 없지만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귀중한 책들의 원전이 있어서 프랑스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시설중 하나가 된다.뷔용,라블레,파스칼이 지은 원전들도 여기에 있고 구텐베르크의 성서 두권도 그곳에 있다.그리고 이 도서관 안에는 동양문헌실이 있고 그 오른쪽 조그마한 방은 보통 잠겨 있어서 일반인의 관람이 허락되어 있지 않고 있다.그 방안에는 조선말기에 프랑스 대리공사로 우리나라에 나와 있던 콜랭드 플랑시가 수집해서 가져간 그리고 후에 소유권이 프랑스 정부로 귀속된 한국의 고전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하권이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다.이 책은 그 말미에 1377년 청주목의 흥덕사 주지가 인쇄한 것으로 적혀있고 인쇄방법은 금속활자를 사용하였다.이것은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시기보다 무려 70년이나 앞선 것이어서 1972년 세계 도서의 해에 프랑스 정부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유네스코로부터 공인을 받게 되었다.그래서 아주까리 기름 냄새가 베어나는 한지로 만든 우리나라의 고전 원본인 이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의 한가운데서 밀폐되어 꼭 필요한 사람만이 알현하는 보물이 되어 버렸다. 1985년 청주시는 주택난을 덜기 위해서 운천동에 택지개발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흙속에서 「서원부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과 「황룡십년 흥덕사」라고 새겨진 큰 그릇 뚜껑을 찾게 되었다.그리고 이 문화유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찾고 있었던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던 장소 「흥덕사」가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을 감격적으로 입증해주었다.그러나 사실 그곳의 세계 기술사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높게인정받지를 못하였다.그래서 프랑스를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유산에 대한 칭찬 특히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 분께서 한국에 돌아와 흥덕사터를 찾고 그곳에 조그마한 박물관을 짓도록 할 때까지 그자리는 그저 동네 아이들이 즐겨 찾는 빈터에 불과했었다.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에 아담한 박물관이 서 있다.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나라 옛날 훌륭한 책들의 원본과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그렇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그 자리에서 세계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없고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그것이 안타까워 청주시장은 자기의 명함 뒷면에 박물관의 사진을 넣어 못다한 말을 하려고 한다.8월5일에는 북한 핵문제가 중심이 된 북미 회담이 열리고 8월6일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며 8월15일은 광복절이다.기술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데 우리 기술이 앉아 있는 집은 빈집뿐이어서 가슴이 허전하다.
  • 카리모프대통령 안내로 한인농장 시찰(김대통령 북방여로)

    ◎중앙아의 「한국농업」 개척자가족 격려/사마르칸트선 실크로드 유적들 관람 ○…우즈베키스탄 방문 이틀째를 맞은 김영삼대통령내외는 5일 상오(한국시간 5일 하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가 손수 안내하는 가운데 유서깊은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를 항공편으로 방문,중앙아시아 최대의 유적들을 돌아봤다.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로 돌아와 근교의 한인농장을 돌아보고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하는등 때마침 일요일인데도 바쁜 여정을 보냈다 ▷김병화농장방문◁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타슈켄트 교외에 있는 김병화농장을 방문,농장일대를 시찰. 김대통령은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농장에 도착,아크라모프 타슈켄트주지사와 김병화씨 미망인등의 영접을 받고 아디야로프조합장으로부터 농장현황을 청취. 김대통령은 농정자료전시관과 이곳에서 이름을 떨쳤던 고려인 김병화동상등을 돌아보고 대형벽시계를 농장에 선물. ▷타슈켄트 주지사 만찬◁ ○…김대통령내외는 곧 이어 아크라모프주지사가 고려인들을 위해 마련한 리셉션에 참석,2백여명의 동포및 우즈베키스탄인들을 격려. 김대통령내외는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나란히 입장해 서건이주우즈베키스탄대사의 안내로 헤드테이블로 가면서 주변 참석자들과 악수로 인사를 교환. 아크라모프지사의 농장방문 환영사에 이어 카리모프대통령도 『김병화농장의 기적이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두나라의 친선을 상징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사.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동포선조들이 보여준 인내와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중앙아시아에 새롭게 우뚝서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 이어 농장대표가 김대통령내외에게 선물을 전달했으며 실내악이 흐르는 가운데 김대통령내외는 약10분동안 참석자들과 환담. 약 45분동안에 걸친 리셉션이 끝난뒤 두나라 대통령과 대통령부인들은 각각 차량에 동승해 타슈켄트로 귀환. ▷사마르칸트관광◁ ○…김대통령 내외는 김병화농장 방문에 앞서 이날 상오 카리모프대통령내외와 함께 카리모프대통령의 특별기편으로 실크로드 교역의 십자로 역할을 했던사마르칸트를 방문,유서깊은 유적들을 시찰. 사마르칸트는 수도 타슈켄트에서 비행기로 50여분 거리에 있는 인구 40만명의 우즈베키스탄 제2도시.약 2천5백년전 소그트인들의 손으로 건설된 뒤 기원전 4세기쯤 알렉산더대왕이 이곳까지 내습하는등으로 아시아·페르시아 문화와 그리스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문화를 탄생시켰던 중앙아시아의 역사 깊은 도시. ○…김대통령은 사마르칸트공항에 도착,흐마노프주지사와 나시로프시장의 영접을 받고 전통의상을 입은 우즈베크 여성으로부터 화환을 증정받은 뒤 8세기 이슬람교도들의 묘역인 샤히진다(살아있는 왕)로 출발. 김대통령은 묘역입구에서 사마르칸트 이슬람지도자의 영접을 받았고 11개의 묘역중 압바스묘역을 돌아보는 동안 푸른색 모자이크 타일과 돔으로 장식한 묘역의 건축술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굉장한 문화유적』이라고 감동. ○…김대통령은 이어 레기스탄(모래의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차안에서 중앙아시아 최대의 회교사원인 「비비하님 모스크」등 시가유적들을 시찰. 15∼17세기 회교식 건축물들이 들어선 레기스탄은 왕에 대한 알현식등 공공집회가 열린 사마르칸트의 중심지로 광장 안에는 3개의 회교학교가 위치. 김대통령은 레기스탄에 도착,시르도르(용맹한 사자)회교학교 앞 광장에서 민속공연과 전통자수 시범을 잠시 관람하고 공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 김대통령은 이어 회교학교 안으로 들어가 아기사슴을 쫓는 사자의 모습과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내부를 관람한 뒤 15세기 티무르왕과 가족의 묘역인 구르 에미르(지배자의 묘)를 관람. 카리모프대통령이 이날 김대통령의 사마르칸트 방문에 동행한 것은 사마르칸트가 자신의 고향이자 김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배려의 의미라는 풀이. 사마르칸트 관광을 끝낸 김대통령은 이어 카리모프대통령과 함께 흐마노프 사마르칸트주지사가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 뒤 타슈켄트로 귀환. ◎“북의 핵투명성 입증기회 남아있다”/김 대통령 수행 고위당국자 문답 김영삼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5일 북한핵 문제와 관련,『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단순히 상징적인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데 미국등 우방국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단계적인 제재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과거 핵활동의 투명성을 입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아직까지도 북한의 과거 핵활동을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다.교체연료봉에 대한 계측말고 특별사찰이나 또다른 사찰방법으로도 알 수 있다.제재가 처음부터 투명성 입증 기회를 봉쇄하는게 아니다. ­북한의 동향은. ▲특이한 게 없다.24시간 구석구석을 감시할 수 있는 최첨단 정보능력이 총동원됐다.한미간에 긴밀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있고 필요하면 더 강화해 나갈 것이다.북의 도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중국 외교부의 당가선부부장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한국을 방문,한중 외무차관회담을 가졌을 때 북한 핵문제도 논의됐다.중국도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한 데 대해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강석주 외교부부부장의 최근 발언은 연료봉 교체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미·북 3단계 회담이 이루어지면 특별및 임시사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으로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 ­안보리 밖에서 한·미·일등 우방국들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도 검토되고 있나. ▲지금으로서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제재를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본다.물론 여러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의 확고한 지지 약속을 받았으므로 안보리 결의를 추진할 것이다.
  • 아르헨 공무원 폭동/54명 사상… 정부 임금체불 항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이터 연합】 아르헨티나의 긴축정책 4년만에 16일 최대 폭동과 약탈이 발생,최소한 4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 이날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한 직후 이 보고를 듣고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고 아르헨티나 관리들이 밝혔다. 가장 빈곤한 지역의 하나인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주의 공무원 수백명은 주정부가 이날 밀린 봉급을 지급할 수 없다고 발표하자 메넴대통령과 페르난도 로보 주지사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주정부 청사로 몰려가 경찰과 유혈충돌을 빚었으며 이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TV 방송이 보도했다.
  • 교황 바오르2세/곧 예루살렘 방문

    【바티칸시티 로이터 AP 연합】 로마교황청과 이스라엘은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성도 예루살렘방문을 추진하고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전단계 조치로 대표부를 상호 교환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교황청을 방문중인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외무장관은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교황이 원하는 시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도록 초청했으며 교황은 예루살렘 방문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면서 기꺼이 수락했다고 전했다.
  • 고르바초프 이 방문 취소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은 14일 이탈리아 방문계획을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당초 14일 하오(현지시간) 이탈리아를 방문,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하고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 이탈리아대통령과도 면담할 계획이었다.
  • 태 「피플파워」에 밀려나는 「정치군부」/수친다퇴진 이후의 정국

    ◎권력독점 종식… 정계 지각변동 예고/잠롱 중심 새민선정부 들어설 가능성 군부를 등에 업고 집권한 수친다총리 망명이후의 태국정국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 것인가. 유혈시위를 주도한 민주시민들의 염원대로 민선정권이 탄생되느냐,아니면 얼굴만 바꾼 군출신이 또다시 권력을 장악할 것인지의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태국 헌정사에 대규모 유혈사태라는 오점을 남긴 수친다의 사임및 국외망명으로 파국직전의 정국이 수습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어떤 모습으로 가닥이 잡혀나갈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권력장악에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온 수친다의 몰락은 외견상으론 주변여건의 세불리와 푸미폰국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형태를 갖췄지만 실제로는 시민항쟁에 군부실세가 밀려난 것이다. 이같은 대세의 흐름은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등장한 신흥중산층이 정치세력화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며 군부엘리트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태국정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여기에다 너무 많은 살상자가 발생,일사불란하던 군에서 역쿠데타의 가능성을 보이는등 균열 조짐을 보인 것도 그가 밀려나게 된 원인이다. 그러면 신정부구성과 관련,누가 수친다의 뒤를 이어 새총리로 등장할 것인가. 우선 최근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이 주목되고 있다.수친다의 사임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킨 잠롱은 최근 국왕알현을 계기로 향후 정계 재편과정에서 그의 입지와 발언권이 크게 강화될 것만은 분명하다. 잠롱은 이번 사태를 맞아 일개 야당지도자에서 「국민의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그의 인기는 반수친다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하지만 그는 군의 정치개입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데,이는 자신의 한계이자 태국의 민주화세력이 당면한 고민이다. 또 유혈사태의 종식을 위해 푸미폰국왕과 함께 중재역을 맡았던 프렘 틴술라논다 전총리(81∼85년 재임)가 다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프렘 전총리는 수친다가 총리사퇴서를 제출하기 직전인 22일 밤 자신의 집에서 수친다를포함한 군부실력자들과 만나 수친다퇴진 결정등 사태수습을 위한 마지막 협상을 주도했다.프렘 역시 군출신이지만 현재의 군수뇌부들과는 달리 국민적 반감의 대상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평화적 정권교체와는 정반대 현상으로 새로운 군부실력자가 쿠데타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특히 수친다와 함께 이번 유혈사태의 책임자라는 원성을 사고있는 카세트 총사령관 및 이사라퐁 육군사령관의 거취문제가 군부향배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있다. 한편 많은 현지분석가들은 헌법개정이 완료되더라도 친군부 5개 정당에 의한 집권구도만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태국의 정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유혈사태의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상당기간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공포사격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발포한 군의 과잉진압에 대한 책임소재 규명등은 앞으로의 정국향방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 국왕중재에도 기대반·실망반/수습국면 접어든 태 이모저모

    ◎“개원전 수친다 사임” 권유설도/ADB선 58만불어치 기술원조 승인 ○…TV방송에 비친 수친다 총리와 잠롱 당수의 국왕 알현 모습은 싸움질을 하다 들킨 학생이 선생님앞에 꿇어 앉아 호된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방불. 국왕 앞에 꿇어 앉은 수친다 총리는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입헌군주제하의 상징적인 군주이지만 국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는 푸미폰국왕이 올해로 46년째를 맞는 재위기간중 시위사태 해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지난 73년의 민주화 시위 이후 이번이 두번째. 국왕은 20분간의 교시를 통해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을 뿐이다』고 개탄하면서 두 지도자의 합심협력을 신신당부. 한편 주태 한국대사관과 교민회는 이번 방콕의 소요사태에서 피해를 입은 교민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이날 상오 확인됐다고 밝혔다. ○…야간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방콕 시내 람캄행 대학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은 국왕 알현 장면을 방영하는 TV방송을 지켜보다 수친다 총리가 화면에 비치자 일제히 야유와 비난 구호를 퍼부었다. 이들은 푸미폰 국왕의 사태 개입에 기대감을 표시했으나 수친다 총리의 즉각 사임이 이뤄지지 않은데 실망한 듯 환호와 박수의 강도는 미온적인 편이었다. ○…수친다 총리의 사임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푸미폰 국왕이 20일밤 수친다총리에게 국회에서 개헌을 하기 전이라도 이번 사태의 원만한 수습을 위해 물러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유혈사태로 10억달러이상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태국에 58만달러어치의 기술원조를 승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원조는 ADB가 관리하는 일본특별기금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1백24개 마을에 거주하는 약1백만명의 주민들에게 안전한 물공급을 하기위한 1억달러 상당의 프로젝트준비를 위한 것이다. 현재 42%의 마을만이 상수도 이용이 가능한 상태다. ○…2천여명의 재소자석방등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나,거리를 지나가던 군용트럭을 향해 시민들이 돌을 던지기도 하고 군용헬리콥터가 상공을 비행하는등 아직까지 시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또한 25일 있을 예정이던 헌법개정안에 대한 토론은 수친다총리의 요청으로 29일까지 연기됐다고 우크릿 몽골나민 하원의장이 발표했다. 한편 사망자 숫자가 1만2천명이라는 전단들이 거리에 뿌려진 가운데 야당지도자들은 정확한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푸미폰 태국 국왕의 사태 개입이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리처드 솔로몬 미국무부 부장관이 20일 밝혔다.
  • 규장각 자료서 드러난 일제의 날조 파장/긴급좌담

    ◎“을사조약등 무효” 대일 공식통보를/5년간의 의병희생등 추가배상 마땅/두나라 교과서등 역사기술 새로해야/학계도 일자료 의존 탈피,원전연구 나설때 ▷참석자◁ 윤병석 인하대교수·역사학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학 백충현 서울대교수·법학 일본은 일제의 한국 침략이 이른바 「을사보호조약」 「정미7조약」등 두 나라사이의 국제조약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해 왔다.우리 국민역시 일제의 역사왜곡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력하게 국권을 내어 준것으로 잘못 알아왔다.그러나 서울대 규장각 소장자료 정리·분석과정에서 을사조약을 비롯,대한제국말기의 각종 조약과 칙령 등이 황제의 승인없이 일제에 의해 날조된 것(서울신문 12일자 보도)으로 밝혀짐에 따라 원인무효의 조약에 의한 일제36년의 청산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역사적 사실의 재정립 및 대일피해보상 등 한·일간의 새로운 현안들을 짚어보는 전문가 좌담과 조약체결과정에대한 박성수교수의 글을 싣는다. ○“체결”로 거짓 발표 ▲신용하교수=일제가 지난 1905년 조선에 강요한 을사조약과 1907년의 정미7조약등 각종 조약과 식민지법령이 당시 조선황제인 고종의 인준을 받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일제에 의해 황제의 서명이 위조된 것이라는 서울대 규장각의 발표는 국민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겁니다.먼저 제가 1905년 을사조약체결과정과 이를 둘러싼 조선조정의 대응등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오늘 대담을 시작하겠습니다.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뒤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 위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일제는 을사조약을 만들어 일본 헌병대를 동원해 대신들을 위협하고 강제로 체결하려다 고종의 완강한 거부로 고종의 인허·수결·옥새·날인 어느 것도 받지 못해 조약체결에는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제는 조약이 체결된 것처럼 거짓으로 발표해버렸습니다.당시 대한제국은 전제군주국가로서 모든 외국과의 조약과 칙령에는 황제의 친필서명과 옥새의 압인이 필수요건이었으므로 을사조약은 무효인 것이지요.이 과정에서 당시 참정대신 한규설은 조약체결에 반대해 헌병들에게 멱살이 잡힌채 밖으로 끌려나갔고 민영기 이하영등도 이를 막아보려 했습니다.이밖의 국내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윤병석교수=당시에는 국내의 친일파들 말고도 미국·영국·독일등 제국열강들 조차도 일제의 불법을 자국의 이익에 따라 묵인한 상태여서 일제의 조선침략은 계획대로 진행됐죠.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인데 지금도 달라진 것은 크게 없습니다.물론 일부에서는 1세기전에 국가간 조약을 체결하면서 지금처럼 철저하게 법적절차를 거치고 그에 대한 인식이 있었겠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예를들어 「양국간의 통상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은 1876년의 강화도조약만해도 조약체결 당사자들의 서명은 물론 이들의 도장 왼쪽에 양국통치권자의 서명·날인이 돼있습니다.하물며 한나라의 국권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조약에 통치권자의 서명·날인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이들 조약들이 법적효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는데 그럼 무엇이 달라지고 지금 우리가 취할수 있는 대응책은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백충현교수=을사조약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공표됐다는 것은 학계내부에서는 알려져있었지만 우리의 원본으로 공식확인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입니다.그리고 정미7조약과 같은해 12월에 반포된 48개의 칙령등에 순종의 수결이 위조됐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것이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합니다.외교권박탈과 통감부설치에 의한 조선지배등을 규정한 을사조약이 무효이므로 이후 일본이 외국과 체결한 간도협약(1909년)이나 내치를 위해 반포했던 일체의 식민지법도 모두 무효가 됩니다.여기에서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협정에서 일본측이 취했던 입장을 짚고넘어가야 합니다.일본측은 1910년 한일합방을 합의했던 것자체가 무효가 아니라 당시 조선황제의 동의를 얻어 제정·반포된 법에 근거해 합법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전세계에 알려야 그러나 을사조약자체가 무효라는 것이 판명된 이상 물적배상의 차원을 떠나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되어야하며 이는 역사의 잘못된 반복을 막으며 장래한일양국관계의 정상화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신=저도 백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저는 이밖에도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지는 몰라도 을사조약이 체결도 안된 것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또 이사실을 사후에라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공식문서로 작성해 일본정부에 전달해야 합니다.한일교과서의 내용도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였다」는 서술을 「일제는 1905년 소위「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려다가 실패하자 체결되지도 않은 조약을 체결된 것처럼 제멋대로 거짓 반포하였다」로 고쳐써야 할 것입니다.또한 지난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때 1910∼1945년에 대한 배상만을 논의했는데 1905∼1910년사이 일제침략에 무참하게 학살된 수만명의 의병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추가로 배상을 요구해야 합니다. ▲윤=저는 신선생님의 제안에 몇가지를 덧붙이고자 합니다.이번 기회에 일제침략의 악랄함과 간교함,기만적인 부분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일부에서는현재의 한일관계가 수교이후 가장 불편하다는 점을 들어 감정적인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어느 한시점에 근거한 단견입니다.국제관계란 때로는 소원해질수도 있고 가까워질수도 있는거니까요.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며 아직까지도 계속 거론되는 친일잔재 역시 하루빨리 완전청산돼야합니다. ○주권지켜낼 정도 ▲백=규장각 자료분석작업에 직접 관여하면서 저를 포함해 학계가 반성해야한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우리는 여러이유로 자료들이 제대로 보관돼있지 않아 일본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풍토가 만연돼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굴절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번경우도 규장각에 소장돼있던 자료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굴된 겁니다.우리 학계는 이제 간접자료가 아닌 원본에 근거한,원칙에 충실한 연구자세를 지향해야하며 우리의 문헌을 창고에 방치하지 말고 근본적인 자료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마지막으로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역사사실이 우리사회에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 잘못 알려져온 역사는 바로잡고 이로인해 손상당한 우리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며 또한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최근 일본에 치우쳐있는 국민들의 무비판적인 관심을 한번 거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또 우리민족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도록 역사사실을 알려 최근 물밀듯 상륙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문화침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을 지니도록 해야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의 주권과 문화적인 자주성을 지켜나가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종,“순할지언정 인허 못한다”/을사조약 이등협박에 끝까지 불응/박성수 정문연교수·역사학(특별기고)/이완용등 오적변절… 대신회의서 “가” 결정/황제,“적자 모두 일어나라” 국민항쟁 촉구 1905년의 을사조약이 조약당사국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한제국 광무황제(고종은 일제의 명명)의 비준없이 체결되고 1907년의 정미조약도 융희황제(순종)의 위조된 수결로 체결된 사실이밝혀져서 이 시기의 모든 법령은 물론 1910년의 소위 합병조약(경술조약)까지도 무효임이 밝혀져 이 시기에 관한 기존의 역사 기술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1905년 11월17일 광무황제의 재가 없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국권탈취의 원흉 이등박문이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1905년 11월9일 하오.이튿날 낮12시 덕수궁의 황제를 알현,소위 일본천황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1차로 협박하고 2차 알현을 요구하였으나 황제가 거절,15일에 가서야 2차 협박에 성공했다. 그러나 얻어낸 결과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인허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등=만약 폐하가 이 조약을 거절하면 중대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황제=이 조약은 국가중대사이므로 짐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국민의 의사를 물어 봐야 한다. ▲이등=국민의 의사 운운하심은 국민을 선동하여 일본에 반항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황제=이 조약을 인허하는 것은 망국이나 같은 것이니 짐이 종사에 순할지언정 절대로 인허할 수 없다. 죽으면 죽었지 이 조약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황제의 태도는 그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5월17일 이등박문이 불법으로 소집,주재한 대신회의에서 이완용등 오적이 변절하여 「가」라고 대답했을 때 황제는 그들의 배신행위를 「천재의 유한」이라 개탄하면서 『짐의 적자는 모두 일어나 이 슬픔을 함께 하라』고 말했으며 피를 토하여 통곡하였다.황제의 뜻이 이러하였으므로 을사조약에 수결했을 리 만무하다.따라서 이 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일 뿐 아니라 일제는 이 조약 자체를 위배하고 있다.즉 한국의 외교권만을 침탈하기로 되어 있는 조문을 무시하고 한국의 모든 내정권을 유린하고 있다.이것도 명백한 불법이다. 광무황제는 이보다 먼저 1904년 러 일전쟁 발발 직전에 국외중립을 선언한 바 있으나 이것도 일제가 불법적으로 묵살하였다.1907년 해아특사를 파견하여 만국평화회의에 친서를 전달하게 되는데 그 요지가 을사조약의 무효선언이었다. 『짐은 최근 한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은 무력협박과 감금속에서 강요된 것이므로 무효를 선언한다.짐은 이조약을 절대 승인한 바 없으며 장차도 그럴 의사가 없다』 헐버트에게 보낸 전신에서 황제는 이렇게 명언하고 있다.이 사건으로 황제는 강제 퇴위 당하나 그 때도 퇴위아닌 황제대리를 선언하였다.그러나 일제는 또다시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양위를 발표하였다.그리고 한국군 해산을 골자로 하는 정미조약을 체결했다.이것마저도 융희황제의 재가없이 강행하였다면 당연히 무효이다. 이등의 주구였던 이완용의 매국내각을 인정할 수 없듯이 1904년 러일전쟁 발발이후 1910년 경술조약까지의 모든 법령,안중근의사에 대한 사형판결까지도 모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그런 전제하에서 한일 두나라 교과서는 물론 모든 역사기술을 재검토하여 새로이 집필되어야 할 것이다.특히 일본은 1931년 이후 소위 15년간의 침략통치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그 이전의 한국침략을 합법적이었다고 보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관을 버리고 솔직하고 겸허하게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영 총선 새달 실시/의회해산을 요청/메이저 총리

    【런던 AP 연합 특약】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는 총선거를 예정보다 3개월 앞당겨 오는 4월9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전날 세금감면 법안을 공표했던 보수당정부의 메이저총리는 이날 엘리자베스여왕을 알현,의회해산을 요청했다.보수당은 지난79년 총선이후 4번째 연속집권을 노리고 있으나 어느때 보다도 강력한 야당인 노동당의 도전을 받고 있다.
  • 노 대통령 태국 공식방문 초청/태국왕,박 체육 통해

    【방콕 연합】 푸미폰 태국왕은 28일 가까운 장래에 노태우대통령이 태국을 공식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태국을 방문중인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은 이날 하오6시반(한국시각) 칫라다 왕궁에서 푸미폰 국왕을 알현,국왕으로부터 노대통령의 태국방문 초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 춘하반 태 총리 사임/새 내각 곧 출범할듯

    【방콕 AFP 연합 특약】 차티차이 춘하반 태국 총리가 사임했다고 수비트 요드마니 태국 정부대변인이 8일 발표했다. 그는 춘하반 총리의 사임은 『정치 경제 상황은 물론 정부를 다시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임발표에 앞서 춘하반 총리는 푸미폰 국왕을 알현,사임문제를 의논했는데 관측통들은 이 자리에서 총리가 자신의 주도하에 새 내각을 출범시킬 수 있도록 재임명해주도록 요청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요드마니 대변인도 『총리가 대폭적인 내각개편에 길을 틔어주기 위해 사임했다』고 말해 춘하반 총리가 주도하는 새 내각이 출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정국은 최근 수주간 한 각료의 반군부 발언을 둘러싸고 정부와 군부가 심한 갈등을 빚어왔었다.
  • 대처 영 총리 사임/공식발표/보수당수 결선 앞서 후보 사퇴

    ◎27일 헤슬타인 전 국방·허드외무·메이저 재무 경합 【런던 AP AFP 로이터 연합】 11년반 동안 장기 재임해온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65)가 22일 총리직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대처 총리의 사임발표 직후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과 존 메이저 재무장관이 오는 27일의 보수당 2차 당수경선대회에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27일 열리는 영국 보수당 당수경선대회에는 헤슬타인 전 국방장관 등 3명이 경합을 벌이게 됐다. 대처 총리는 이날 다우닝가 총리실에서 발표한 사임성명을 통해 『나는 동료들과 광범한 협의를 거친 결과 사임을 통해 당내 동료각료들이 보수당지도부 선출투표에 나설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의 단합과 다가오는 총선 승리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처 총리는 이 성명을 통해 『보수당 당수선출을 위한 2차투표에 나서지 않을 것과 새로 당수가 선출되는 대로 총리직에서도 사임할 것임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통보했다』고 밝히고 『곧 이같은 결정을 여왕에게 직접 전달키 위해 여왕을 알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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