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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비 목소리가 기계음이라고?… 모두 전문 성우가 녹음했어요!

    내비 목소리가 기계음이라고?… 모두 전문 성우가 녹음했어요!

    “알았어, 그만 재촉해!” “내가 그 길 아니라고 했잖아.” “길 찾느라 고생했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와 대화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막히는 길을 우회해 빠른 경로를 알려주기도 하고, 간혹 잘못된 길을 알려줘 이동 시간이 더 걸리게도 만드는 내비게이션은 이제 운전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최근에는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는 기술이 적용돼 아는 길마저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처럼 어느덧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온 내비게이션이지만 정작 우리가 내비게이션에 대해 아는 건 알려주는 길대로 따라가는 것밖에 없다.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일까, 기계의 목소리일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최단 경로가 정말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구간일까? 평소 우리가 궁금해했던 ‘내비게이션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봤다. ●궁금증 1-내비게이션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를 할 때 나오는 음성은 모두 전문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다. 기계음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전부 직접 녹음된 음성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로 녹음하지만 최근에는 남성 안내 음성도 많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업체별로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어린이용 뽀로로, 연예인, 사투리 음성 등도 있다. ●궁금증 2-어떤 내비게이션이 가장 정확할까? 아쉽지만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정답은 “없다”이다. 각 내비게이션 업체마다 보유하고 있는 지도 데이터가 다르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경로를 산출해 내는 ‘알고리즘’, 즉 경로 계산 방법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에 업체별로 보유한 지도 내에서 최단거리를 설정한 뒤 현재의 교통 상황 등 추가 정보를 반영해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안내하는 원리는 같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지도가 업체마다 다르고 현재의 교통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또 얼마만큼 가중치를 부여해 반영하는지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업체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업체들마다 자신들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결론은 운전자들이 직접 사용해 본 뒤 스스로 결정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한 내비게이션 업체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에서 길 안내의 정확도는 대동소이해 시간 차이가 나 봐야 1~2분 내외”라면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내비게이션이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 편이 속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궁금증 3-내비게이션에도 ‘인공지능’이 있다? 일상적으로 사용해 왔던 내비게이션에도 ‘인공지능’(AI)이 존재한다. 물론 구글의 ‘알파고’처럼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단순히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사용자에게 똑같은 경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맵피’, 현대·기아자동차 순정 내비게이션 등을 만드는 현대엠엔소프트의 경우 과거 빅데이터와 실시간 시설 장비 정보, 기존 이용자 정보 등을 모두 종합해 일정한 패턴을 생성한 뒤 교통 정보를 제공한다. 현대엠엔소프트 관계자는 “교통 정보 품질평가지표(Q-STA)와 상습 정체 구간 분석이 가능한 교통혼잡도 분석 시스템(C-STA)을 기반으로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한다”면서 “가까운 거리일수록 실시간 교통 정보를 많이 반영하고 원거리로 갈수록 과거 빅데이터나 기존 이용자 정보 등의 반영률을 높게 한다”고 설명했다. ‘티맵’의 SK텔레콤 관계자는 “‘티맵’의 경우 ‘데이크스트라 알고리즘’이라는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국내 실정에 맞게 다양한 예외 처리를 하는 등 많은 ‘현지화’를 진행했다”면서 “그만큼 운영 노하우가 경로에 많이 반영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아이나비’의 팅크웨어는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이용해 기존에 쌓아 왔던 25만개의 도로 링크 정보를 활용해 실시간 길 안내를 제공한다. 이들 업체는 추가로 더 정확하고 빠른 길 안내를 위한 기술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대엠엔소프트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이나 공휴일, 명절 등 일정한 패턴을 벗어난 교통 흐름 발생 시 정확한 속도를 산출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증 4-어떤 내비게이션이 많이 사용될까? 최근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대부분의 차량에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당시엔 기존 차량에 추가로 설치하는 ‘애프터마켓’이 주도했다. 하지만 현재는 차량에 기본으로 장착되는 순정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내비게이션이 합세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기존에 애프터마켓 시장에서 1위를 해 오던 팅크웨어(아이나비)는 최근 KT, LG유플러스와 함께 손잡고 ‘올레 아이나비’와 ‘U네비’를 선보였다. 모바일 내비게이션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는 SK텔레콤의 티맵을 추격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김기사를 인수한 카카오가 ‘카카오택시’를 무기로 세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아울러 네이버도 현대엠엔소프트의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브랜드 맵피와 손잡고 내비게이션 시장에 진출했다. 다만 정확한 집계는 어려운 상황이다. 애프터마켓, 순정 내비게이션, 모바일 내비게이션 등 시장이 나뉘어 있고, 이들 내비게이션을 동시에 쓰는 사용자도 많기 때문이다. 현재 애프터마켓 시장에서는 팅크웨어, 모바일 내비게이션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각각 가장 많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시론] 허사비스가 ‘판교’에서 창업한다면/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

    [시론] 허사비스가 ‘판교’에서 창업한다면/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

    영국 국립과학예술재단(NESTA)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유럽 디지털 도시 인덱스’에 따르면 런던이 가장 창업하기 좋은 도시로 나타났다. 런던에는 27만 5000개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이 150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 17개 기술 기반 유니콘 기업 가운데 13개가 자리잡고 있다. 핀테크와 빅데이터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벤처 캐피털에 대한 접근성도 가장 우수하다. 이러한 환경으로 런던이 탈바꿈한 데에는 2010년 11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런던을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의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발표한 ‘이스트 런던 테크시티 계획’을 꾸준히 추진해 온 결과다. 2010년 런던에서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설립한 데미스 허사비스는 차세대 성장 동력을 찾던 구글에 2014년 딥마인드를 4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서울에서 이세돌 9단을 4대1로 이겨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인공지능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알파고의 성공에는 런던이 우수한 대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창의 인재들이 모이는 도시라는 점과 스타트업을 위한 최고의 정책환경을 제공하는 여건이 큰 역할을 했다.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허사비스는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테크시티 성장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질랜드인인 셰인 레그는 스위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UCL 게츠비 계산신경과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허사비스와 만났다.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옥스퍼드대학을 중퇴하고 비영리기관인 ‘무슬림 청소년 헬프라인’을 설립한 인물이다. 알파고의 대리기사 역할을 한 아자 황은 대만인으로 대만국립사범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바둑 프로그램인 에리카를 개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물론 알파고는 딥마인드만의 작품은 아니다.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한 뒤 옥스퍼드대학의 인공지능 스핀오프 기업인 다크블루랩스와 비전팩토리도 인수해 두 기업의 인재들을 딥마인드에서 함께 일하도록 했다. 알파고의 성공은 혁신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구글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구글은 스타트업에 대한 과감한 인수·합병(M&A)과 구글 캠퍼스, 크라우드 플랫폼 등을 통한 창업지원, 구글 벤처스와 구글 캐피털을 통한 창업기업 투자 등 스타트업과의 상생협력을 통해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며 혁신을 지속하는 글로벌 기업의 모범이 되고 있다. 알파고는 국내외 창의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하는 환경, 창업을 촉진하고 기업의 지속 성장을 돕는 일관된 정책,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상생을 도모하며 혁신을 멈추지 않는 구글의 역할이 결합된 걸작이다. 우리나라도 지역 창업의 거점인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기존 판교테크노밸리를 확장한 창업 허브로 판교창조경제밸리를 육성하고 있다. 이미 입주 기업이 1000개를 넘었고, 판교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69조원으로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은 수준이다. 수도권 대학들과 300여개의 대중소 기업 연구소가 밀집해 있는 양재, 우면지구도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해 상호 연계 효과가 기대되는 등 새로운 벤처의 요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개소한 스타트업 캠퍼스는 세계의 인재들이 모이고 기업들의 개방형 혁신이 일어나 판교창조경제밸리의 창업 생태계를 런던과 실리콘밸리 수준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전진기지다. 앞으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영국 정부와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 민관이 보다 협력해 나간다면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알파고와 같이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기술로 무장한 우리나라 글로벌 스타트업의 배출도 머지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 [사설] 신산업 육성하겠다는 ‘산업 개혁’ 기대 크다

    정부가 ‘산업 개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공공·금융·노동·교육 등 기존의 4대 개혁에 산업 분야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제 “산업 개혁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신(新)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구조조정이 과잉 투자가 이루어진 분야의 부실 기업을 정리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산업 개혁이란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산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춘 것이 엊그제다. 정부 또한 3.1%를 고수하던 성장률 전망치를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총선 이후 입법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구도가 형성된 데 따른 고육지책의 성격이 없지 않다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정책 방향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알파고가 보여 준 인공지능(AI)의 발전 수준에 충격을 느끼며 새로운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20세기적 산업 구조를 21세기적 산업 구조로 바꾸어 가겠다는 정부의 개혁 천명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기존의 제조업 중심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 가야 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유 부총리는 “신산업은 ‘고위험 고수익’인 만큼 세제 지원이나 투자 분담이 필요하며 정책 지원도 백화점식으로 모두 다 할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으로는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바이오신약, 헬스케어 산업 분야가 일단 물망에 올라 있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을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총선을 앞두고 대량 실업이 우려되는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먼저 구조조정을 언급하고 나선 분위기 변화는 산업 개혁의 호기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는 협조하겠다”면서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확실한 실업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에 따른 최선의 실업 대책을 세워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야당의 요구와 관계없는 정부의 책무다. 누구보다 정부가 잘 알고 있겠지만, 산업 개혁은 재경부의 일방 독주만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는 복잡다단한 과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신산업 관장 부처는 물론 창의력 있는 인재를 공급할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가 협력해 정교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 개혁은 특성상 기존 4대 개혁과 달리 각 부처의 정책 팀워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심만 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유 부총리는 산업 개혁을 제대로 진두지휘해 부총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 바란다.
  • [In&Out] 감정평가 3법, 평가업계 역량 강화에 방점 찍어야/이용훈 감정평가기준위원회 위원·대화감정평가법인 이사

    [In&Out] 감정평가 3법, 평가업계 역량 강화에 방점 찍어야/이용훈 감정평가기준위원회 위원·대화감정평가법인 이사

    2016년 9월 1일은 감정평가 업계에 큰 변화를 불러올 디데이일 수 있다. 다름 아닌 지난해 말 통과된 감정평가 3법의 시행일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작업에 한창이고, 이해 당사자인 한국감정평가협회와 한국감정원은 이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거나 제출하려고 준비 중이다. 하위 법령은 모법을 구체화한다. 위임 한계 내에서 제정되겠지만 이해 당사자의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이 이곳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기에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감정평가 업계는 요 몇 년 큰 부침을 겪었다. 일단 업무 영역에 대한 다툼이 지속됐다. 감정평가 업계의 관리감독권에 대한 문제가 업무조정과 맞물려 상당한 내홍을 빚은 것이다. 업태 간 갈등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출된 적이 없었다. 타 전문직과 달리 특정한 개인이나 회사로 의뢰되지 않은, 협회로 의뢰된 공통물건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협회로 의뢰된 물건은 자체적으로 배분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공평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업계 내 상존하는 업태 간 진입 장벽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떻게 보면 업계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외연 확장이 더디면서 언젠가는 불거질 일이긴 했다. 감정평가 업계의 신뢰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언론에도 노출된 크고 작은 ‘감정평가 사고들’은 내부 경쟁 격화에 따른 결과물일 수도 있으나 침소봉대된 측면도 강하다. 특정 이해 당사자를 일방적으로 대변했거나 전문자격자의 비윤리적 행태가 결합된 ‘도덕적 해이’라면 곪은 부분을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 상반된 입장의 이해 당사자가 개입된 경우 어느 누군가의 재산을 평가한 결과물에는 ‘환영’과 ‘비난’이 동시에 쏟아진다. 이럴 때 제기되는 불공정한 평가에 대한 불만은 ‘사심’이 가득 담긴 항의에 불과하다. 평가 과정에서 문제를 찾을 수 없다면 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한 상시 민원이라고 봐야 한다. 언론에 기사화됐지만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정상적인 감정평가로 드러날 때가 태반이다. 감정평가 업계는 25세를 넘어 30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간의 전유물이었던 바둑계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의 파괴력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감정평가사도 이런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과연 10년, 20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감정평가 업무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공공에서 쏟아내는 무수한 ‘빅데이터’는 부동산 가격 정보를 지도에 입히고 있다. 통계 전문가는 수작업으로 수행되는 감정평가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이런 분위기에 극히 일부 평가업자의 ‘부도덕함’ 또는 ‘비전문성’이 끼어들어가 감정평가 무용론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개략적’인 가치인지, 아니면 ‘정확한’ 가치인지에 따라 감정평가 업무의 생산성과 효용성을 두둔할 수 있다. ‘자산’을 놓고 이해 당사자 간 중재가 필요한 경우 알고리즘과 로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작업에 의한 미세 조정만이 외길이다. 부동산의 가치 또는 무형자산의 가치는 정량적인 분석만으로 도출할 수 없다. 정성적인 분석만큼은 사람의 손을 타야 한다. 투자의 타당성을 대할 때 비용과 수익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상식이다. 왜 선진국에서 감정평가제도를 운용하고 이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자격자를 양산하고 있겠는가. 그들에게 지급하는 보수를 그들로 인해 사회가 누리는 편익으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평가 업계의 활성화는 곧 이 나라 경제활동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시행 예정인 감정평가 3법에는 업계를 선진화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관리감독 조항이 들어가 있다. 반면 업무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활로 개척 부분은 미미하다. 후속 입법이 업계 활성화, 더 나아가 감정평가 업계의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 본격 인공지능 진료 대비 10월까지 안전기준 마련

    정부가 구글의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의료서비스의 본격적인 등장에 대비해 오는 10월까지 안전관리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1일 산업계, 학계, 의료기관 전문가들로 협의체를 구성해 관리할 의료기기의 범위와 품목 분류기준을 정하고서 어떤 방식으로 안전성을 평가할지, 어느 정도 수준을 안전하다고 판단할지 등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인공지능 의료서비스는 환자의 혈당, 혈압, 심박수 등 생체정보를 분석해 병을 진단하는 IBM의 인공지능시스템 ‘왓슨’ 정도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의료용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인터넷으로 연결된 여러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와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더 많은 인공지능 의료서비스가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진료기록, 생체 측정정보, 의료영상, 유전정보, 생활습관 정보 등 의료용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분석해 질병을 예측·진단하거나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시간으로 수술 데이터를 연동해 상황에 맞는 수술 기법을 제공할 수도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이용한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생활습관에 대한 설문결과와 개인의 건강검진 정보를 연계해 10년 내 질병 예측 위험도, 처방 메시지 등 맞춤형 건강정보를 제공한다. 식약처는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현재 인공지능 의료서비스를 개발 중인 업체가 그 기준에 맞춰 제품을 개발할 수 있어 기본방안을 서둘러 마련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서울대·석학 오셔 교수, 딥러닝 연구

    서울대·석학 오셔 교수, 딥러닝 연구

    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스탠리 오셔(74) 미국 UCLA 교수가 서울대와 ‘딥러닝’ 연구를 진행한다. 딥러닝은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학습 기술로, 인공지능의 핵심 원리다.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친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딥러닝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서울대는 오셔 교수가 수리과학부 강명주 교수팀 10명과 함께 지난 3월부터 연구를 시작했다고 20일 밝혔다. 오셔 교수는 2014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응용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가우스상’을 수상했던 인물이다. 서울대의 ‘노벨상수상자급 해외석학 초빙 프로그램’ 차원에서 지난해 5월부터 임기 2년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알파고처럼” 허창수 GS회장, 학습 통해 성장하는 ‘교학상장’ 정신 강조

    “알파고처럼” 허창수 GS회장, 학습 통해 성장하는 ‘교학상장’ 정신 강조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인공지능 알파고의 작동 방식으로부터 기업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학상장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뜻으로 ‘예기’ 학기편에 등장하는 문구다. 허 회장은 20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열린 2분기 임원 모임에서 “알파고는 슈퍼컴퓨터 간의 정보 교류로 자기 학습을 하고 수많은 가상 대국을 통해 스스로 실력을 급성장시켰다. 이는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근래의 기업 환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교학상장을 언급했다. 이어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벌인 이세돌 9단의 끈기와 도전정신, 창의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미래 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리더들이 각자 조직의 목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해 설정된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GS그룹이 후원하는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와 입주 벤처기업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당부했다. 허 회장은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벤처기업 ‘마린테크노’의 사례를 소개했다. 마린테크노는 수산물에서 추출한 콜라겐 성분을 이용해 화장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남미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해 56만 달러 수출 계약을 하는 데 성공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6만여 체납자 한눈에… ‘강남판 알파고’ 떴다

    서울 강남구가 지역 6만여 상습 법인세 체납자의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화제다. 그동안 법인 체납자에 대한 전산망이 따로 없어 수작업으로 건별 법인등기부와 사업자등록증을 일일이 열람하고 대조하면서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됐다. 강남구는 법인 체납자 6만 4000건에 대한 폐업 여부와 주소 이전 등의 정보를 한번에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6만여건의 체납정보를 자동 전산 조사할 수 있는 체납법인 자료조사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법인 사업장 변경에 관한 사항을 세무서에 의무적으로 신고한다는 점에 착안해 세무서의 사업장 최신정보를 받아 체납법인의 법인번호와 사업자번호, 관할 세무서별, 주소별, 변동일자별로 비교 가능한 형태로 가공했다. 발췌 자료는 비교 값별 우선순위를 설정해 정확성을 높이고 주소지 이전자료와 폐업된 법인자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구는 체납 자료를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로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법인 체납자에 대한 효과적 관리와 정확한 고지서 배달 등 불필요한 징세비용과 행정소모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광수 세무2과 과장은 “그동안 직원이 일일이 대조작업으로 체납징수하던 것이 간편해지고 정확해졌다”면서 “지방세 혁신사례의 꾸준한 발굴과 개발 등으로 지방세 체납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뢰받는 지방세정 구현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알파고 나와라”?일본 바둑계 사상 첫 7관왕 탄생

    “알파고 나와라”?일본 바둑계 사상 첫 7관왕 탄생

     일본 바둑계에서 7대 타이틀을 모두 거머 쥔 사상 첫 ‘전관왕’이 탄생했다.  이야마 유타(26)는 20일 일본 바둑 7대 타이틀 가운데 하나인 십단전(十段戰)을 차지하며 사상 첫 7관왕에 올랐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야마는 이날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기원에서 열린 제54기 십단전 도전 4국에서 타이틀 보유자인 이다 아쓰시(22)에게 163수만에 승리, 대국 전적 3승 1패로 십단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로써 이야마는 기성(棋聖), 본인방(本因坊), 천원(天元), 왕좌(王座), 기성(碁聖), 명인(名人)과 함께 십단 타이틀마저 차지하며 사상 첫 7대 타이틀 동시 보유자가 됐다.  오사카(大阪) 출신의 이야마는 1997,1998년 전국소년소녀바둑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뒤 2002년 프로에 입문했다. 2009년 20세 4개월 나이에 최연소로 명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4) 인공지능, 세번째 봄이 왔다

    [직장인을 위한 서바이벌 IT]](34) 인공지능, 세번째 봄이 왔다

     딥러닝, 인공지능 부활의 신호탄  2012년, 인공지능의 부활을 알리는 두발의 신호탄이 터졌다. 그해 국제 영상 인식 대회(ILSVRC)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대회의 목표는 이미지넷에 있는 십오만 장의 사진 중 자동차, 강아지 등 1000가지 종류의 물체를 컴퓨터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보행자를 인식하거나 구글 포토에서 사진을 자동으로 분류할 때도 사용되는 이 기술은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2011년까지는 75%의 정확도가 최고 기록이었는데 일 년에 1~2%의 성능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기업들도 오랫동안 투자를 하며 기다렸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자 연구팀을 해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토론토 대학의 슈퍼비전팀이 경쟁자와 격차를 10% 이상 벌리며 85%의 정확도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참여한 멤버는 제프리 힌튼 교수와 학생 2명이 전부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3명 모두 영상 인식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학계와 IT 업계가 술렁거렸다. 기계가 학습을 한다는 “딥러닝(Deep Learning)”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구글은 사람의 도움 없이 컴퓨터가 1000만 장의 사진 중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계가 스스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여기에도 딥러닝이 사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IT 업계에는 딥러닝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관련 스타트업의 인수가 이어지고 인재 확보와 기술 경쟁에 불이 붙었다. 2년 뒤 구글은 이미지넷의 영상 인식률을 93%까지 올렸다. 2015년 1월 중국의 바이두는 인식률을 94%로 향상시켰고 2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95%를 기록하면서 사람의 수준에 다다랐다. 딥러닝은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 인식과 자동 번역의 성능도 한순간에 끌어올렸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공신경망은 인공지능의 한 축으로 알파고가 기보를 통해 바둑을 익히듯이 기계에게 학습을 시키는 한 방법이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기업들은 다시 팀을 재정비하고 대가들을 찾아 나서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자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간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미래부 내에는 인공지능을 총괄할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인공지능 불모지에 정부의 지원 소식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그러나 R&D는 거창한 시작보다 거품이 꺼진 뒤 성공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외수 선생이 주창하는 ‘존버 정신’이야말로 R&D의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60년 인공지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딥러닝의 탄생 뒤에도 길고 긴 겨울(AI winter)을 힘겹게 살아온 노 교수의 공로가 숨어 있다.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딥러닝을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힌튼 교수는 뇌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신경망 분야를 선택해 박사 과정을 시작하였다. 당시는 인공지능의 거품이 꺼지고 한물간 분야로 취급받을 때였다. 1956년 존 매카시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은 다트머스대학에 모여 최초로 인공지능을 제안하고, 그 후 20년 동안 황금기를 누렸다. 학자들은 “20년 안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기계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평가받으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하였다. 모든 연구 지원이 끊어지고 인공지능은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하필 그때 인공지능을 연구하겠다고 나섰으니 고생길이 시작된 셈이다. 1980년대 인공지능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번에는 사람과 같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한가지 일이라도 잘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하였다. 법률이나 의료와 같이 특정 분야의 지식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인기를 모았다. 그러자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새로운 분야로 떠나버렸다. 1990년에 접어들면서 전문가 시스템도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새로 쏟아지는 지식을 매번 다시 학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성과를 내기 위해 문제를 더 잘게 나누어 해결했지만 결국은 애초의 인공지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였다. 2000년 초까지 살아남은 인공신경망 연구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몬트리올 대학의 요수아 벤지오, 뉴욕대의 얀 레쿤 교수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4년 그들은 캐나다 고등연구원(CIFAR)의 지원으로 50만 달러의 소규모 펀딩을 받아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힌튼 교수는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인공신경망의 문제를 해결하며 연구에 매달렸다. 2006년 마침내 인공지능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딥러닝(Deep Learning)’ 논문을 완성하게 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이 3명은 국제 영상 인식 대회(ILSVRC)에서 슈퍼비전이라는 팀으로 출전하여 딥러닝을 실제로 구현해 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다음해 힌튼 교수는 ‘DNN리서치’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여 딥러닝 확산에 나섰다.  IT 최후의 격전지, 인공지능  딥러닝이 불을 댕긴 인공지능은 세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먼저 학계에서 연구하던 분야에 기업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물인터넷, 스마트카, 지능 로봇과 같은 스마트 제품의 등장으로 기업들도 인공지능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빅데이터의 등장이다. SNS, 핀테크, 스마트 센서 등을 통해 생활 속에서 생성되는 빅데이터가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의 확보다. 하드웨어의 혁신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클라우드의 발전으로 컴퓨터가 거의 제한이 없는 계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는 인공지능 시장이 매년 50% 이상 증가하여 2019년에는 31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였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2025년 인공지능을 통한 지식노동 자동화의 파급 효과가 5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최근 이 분야에 대한 투자도 급격히 늘어났다. CB 인사이츠의 조사 결과, 2015년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3억 달러로 2010년 1500만 달러의 20배에 이른다. 2012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 생겨난 인공지능 업체만 해도 170개가 넘는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자 글로벌 IT 기업들은 AI 관련 기업과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2013년 구글은 제프리 힌튼 교수를 모셔가기 위해 아예 DNN리서치를 인수하면서 모든 연구자를 함께 영입하였다. 다음해에는 영국의 인공지능 업체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4억 달러에 인수하였다. 이 회사의 CEO는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구글의 장기적 목표는 인공지능 회사가 되는 것이다”라는 보도를 할 정도이다. 페이스북은 뉴욕대의 얀 레쿤 교수를 영입하여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여기에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딥페이스’를 개발한 페이스(Face.com)와 음성인식 스타트업 윗에이아이(Wit.ai)를 인수하여 전력을 강화하였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영화 ‘아이언 맨’에 등장하는 ‘자비스’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중국의 IT 대표기업인 바이두는 2014년 스탠퍼드 대학의 앤드류 응 교수를 영입하였다. 그는 구글의 ‘브레인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자동으로 고양이 이미지를 찾아낸 젊은 인공지능 대가이다. 바이두는 상하이와 실리콘 밸리에 AI 연구소를 설립해 무인 자동차, 음성인식, 영상인식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 진영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퀴즈쇼를 넘어 이미 의료와 금융 분야의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IBM은 교육, 에너지, 건설,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왓슨 생태계’ 만들기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IT 최후의 승부처로 여기고 있다. 인공지능은 영화 속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일초에 수십만 번씩 주식을 사고파는 로봇 트레이더가 증권가를 장악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는 고객의 자산까지도 인공지능 로보 어드바이저가 관리한다. 컴퓨터가 신문 기사를 쓰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고 법원의 판례를 분석하는 일은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소셜 로봇, 드론과 같은 스마트 기기도 모두 인공지능의 판단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골든타임이다. 정부, 기업, 학계가 한데 뭉쳐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김지연 R&D경영연구소 소장 jyk9088@gmail.com  <지난 칼럼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kimjy_it
  • [사설] 경제 외치며 대승한 거야, 경제 외면하는가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다섯 번 대국에서 1승4패로 완패한 이세돌 9단은 매 대국 후 복기(復棋)를 거르지 않았다. 이미 끝난 승부, 무슨 후회가 저리도 클까 싶었지만 이 9단은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어김없이 바둑돌을 들고 다음번 반상(盤上)의 전략을 구상했다. 처음부터 두었던 대로 다시 두면서 그날 바둑의 판세를 평가하고 다음 전략을 구상하는 복기는 비단 바둑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도 복기는 필요하다. 총선을 정치의 중요한 대국이라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총선 과정을 복기하면서 승자는 자만을 다스리고, 패자는 반성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두 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 줬고, 정당투표에서는 국민의당에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안겨 줬다. 국정 실패 원인을 야당 탓으로만 돌린 새누리당에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두 야당이 승리한 연유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선거운동 과정을 복기해 보면 두 야당이 정부·여당의 경제 실정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자신들은 잘할 수 있다고 약속한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특히 더민주는 ‘문제는 경제다’를 캐치프레이즈 삼아 민생과 경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제1당에 오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두 야당의 총선 후 행태는 자못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두 야당이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민생이나 경제살리기가 아니라 세월호특별법 개정, 국정교과서 폐기, 테러방지법 수정 등 민감한 정치 이슈들이다.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의 적폐를 타파해야 한다”며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공격으로 20대 국회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농후해 보인다. 두 야당이 대선 때까지 선명성 경쟁하듯 이처럼 정치 이슈에 매달린다면 민생과 경제는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지금 거제와 포항 등 우리의 최일선 산업 현장은 사실상 붕괴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수만 명의 근로자들이 불황으로 해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제성장 전망은 계속 하향 곡선이다. 그런데도 두 야당이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대여(對與) 정치공세에만 매달린다면 총선 때의 약속을 어기는 것일뿐더러 두 야당에 표를 몰아 준 민의마저 저버리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어제 “민생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두 야당은 총선 때의 약속처럼 민생과 경제 이슈부터 챙겨야만 한다.
  • [기고] 민주공화국 지킨 알파고 총선/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기고] 민주공화국 지킨 알파고 총선/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총선이 치러진 4월 13일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었다. 97년 전에 이미 임시정부는 헌법에 새롭게 수립될 나라의 국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정했다. 20대 총선은 주권자 국민이 민주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궐기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언론과 정치비평가들이 사후약방문 식으로 총선 결과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총선의 대반전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수도권 선거 결과가 그러하다. 서울, 인천, 경기를 아우르는 수도권은 지역 의석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22석이 걸린 대마였다. 이번 총선에서 이 의석의 약 70%에 해당하는 82석을 더민주가 쓸어 담았다. 그것도 단지 26%의 정당 득표로 말이다. 반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33%의 정당 득표로 의석의 29%에 해당하는 35석을 차지했을 뿐이다. 사실 이런 결과는 유권자들의 집단적 결단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그 근저에는 현 정부의 실정과 일방주의를 심판하자는 공감대가 깔렸다. 국민은 새누리당이 야당과의 원만한 합의와 정당한 법적 절차에 의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을 대통령이 거부한 사태에서 권위주의 그림자를 보았다. 국회의장에게 국회선진화법을 무시하고 직권 상정하라고 종용하는 대통령의 집요한 시도에 국민은 기가 막혔다. 마치 ‘짐이 국가’라고 선언하는 듯한 앙시앵레짐의 환청을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 피플’이 국가임을 보여 주기로. 일여다야 구도라는 낯선 대진표를 받아 든 주권자 국민은 국민을 모욕하는 정권을 심판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야당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질 수 없는 오직 한 수를 찾고자 알파고로 빙의한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다가온 4월 13일 심판의 날 후보와 정당을 달리해 투표하는 ‘신의 한 수’로 새누리당에 원내 제1당 지위마저 박탈하는 굴욕을 안겼다. 총선 결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헌법 제1조가 정한 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주권자 국민을 통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현 정권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주권 선언이다. 자고 나 보니 제1당으로 부상한 더민주에도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발송했다. 호남의 선거 결과가 그러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90% 이상 투표하고 19대 총선에서 여덟 석 가운데 일곱 석을 더민주당에 안겼던 광주는 이번 총선에선 여덟 명 당선자의 당명을 국민의당으로 갈아치웠다. 20대 총선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다시 민주주의’다. 주권자들의 현명한 선택 덕분에 민주주의를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매 선거에서 국민이 알파고가 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파적 이익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청년 실업 해소 등 민생경제를 활성화하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을 달성하라는 주권자의 준엄한 요청에 이제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정책으로 승부하고 소통하는 민주적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라는 시대적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당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더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20대 총선의 진정한 교훈이다.
  • 도서관 320곳 다함께 인문학 축제 펼칩니다

    전국 17개 시·도 320개 도서관에서 인문교양 프로그램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축제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는 올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하는 도서관 320곳을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철학에 길을 묻다’(강남대치도서관), ‘토닥토닥 시네마 인문학’(강동강일도서관), ‘알파고 & 이세돌: 인공지능 시대 어떻게 준비할까?’(개포도서관) 등 320개 도서관에서 주제 도서와 연계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올해 인문학 프로그램 횟수는 총 2800회에 이른다. 2013년부터 시행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그동안 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중점을 뒀지만 올해부터는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 있는 변화를 대주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문(文)·사(史)·철(哲) 외에도 사회적 약자 배려 프로그램, 과학·예술과 인문의 통섭 프로그램 등 인문 강연과 체험활동으로 꾸며진다. 참가 희망자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이트(http://www.libraryonroad.kr/)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살맛 나는 노후 누리세요… 어르신에 희망 건네는 ‘행복 도시’

    [자치단체장 25시] 살맛 나는 노후 누리세요… 어르신에 희망 건네는 ‘행복 도시’

    1959년 광주에서 태어난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이 정치인이 된 것은 말 그대로 운명이었다. 재야 정치인들이 제5공화국 정권에 대항하고자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활동한 그는 29세에 강북구에 터를 잡았고, 2010년 구청장에 당선되면서 강북구를 역사문화도시로 키웠다. 구는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이 15.7%로 가장 높다. 2033년에는 구의 노령인구 비율이 30.2%로 늘어난다고 서울시는 전망한다. 늙어가는 서울에서 가장 빨리 늙는, 서울의 목 주름과 같은 강북구를 ‘어르신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 박 구청장의 목표다. ●서울 자치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 가장 높아 지난달 15일 끝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박 구청장은 관심 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때 그의 아들이 중학교 학업을 1년 중단하고 프로 입단을 꿈꾸었던 탓이다. 프로기사를 목표로 매일 허장회 바둑도장에 가서 하루 12시간씩 바둑만 두던 아들은 어느 순간 스타크래프트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었다. 스타크래프트는 구글이 바둑에 이어 알파고가 인간과 대결할 종목으로 꼽은 인기 게임이다.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가출한 아들을 찾으러 동네와 이웃동네 PC방을 샅샅이 훑었던 그는 아버지로서도 답답한 세월을 겪었다. 사회민주화 운동가로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는 중이라 애가 더 탔었다. 게임 실력 또한 바둑 못지않게 대단해서 그의 아들이 가출했을 때 강원도의 한 여대생이 ‘아드님이 대신 키워 주던 스타크래프트 아이템이 죽게 생겼다’며 찾아 나설 정도였다. 장래희망을 프로 바둑기사에서 프로게이머로 바꿨던 아들은 그러나 ‘프로게이머는 수명이 너무 짧다’며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진학 공부를 시작했다. 머리를 빡빡 깎고 공부에 몰두한 아들은 서울대에 합격해 현재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박 구청장은 “바둑에는 복기가 있지 않은가. 경기가 끝나고서 바둑돌을 하나씩 다시 두며 복기를 하면 바둑판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온다. 바둑을 두면 선생님의 칠판 글씨나 책 내용이 바둑판을 한 방에 기억하듯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는다”며 아들의 명문대 입학 비결을 설명했다. 프로 바둑기사와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방황하다가 학업으로 방향을 튼 아들의 방황을 지켜본 박 구청장이 만든 것이 바로 ‘꿈나무키움장학재단’이다. 꿈나무키움장학재단은 음악, 미술, 공부, 무용 등 어떤 재능이든 꽃을 피울 때까지 지원한다. 꿈나무 장학생은 2013년 처음 선발해 올해 4기를 뽑았다. 1년간 300만원 내에서 학원수강료, 대회참가비, 물품 구입비 등을 지원하며 재심사를 받으면 계속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장학생들은 재능 분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합격해 강북의 미래를 책임질 꿈나무로 컸다. ●‘중2병’ 사춘기 위해 엄홍길 산악대장과 등산 강북구만의 또 다른 교육사업으로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청소년 희망원정대’가 있다. ‘중2병’으로 불리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2학년 학생 60명과 함께 엄 대장이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간 산을 탄다. 여름과 겨울에는 캠프에 참여하고, 캠프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은 엄 대장과 히말라야에도 함께 간다. 박 구청장은 엄홍길 휴먼재단과 함께 지난 3월 초 세 번째로 히말라야에 다녀왔다. 그에게 엄 대장은 ‘정말 고마운 분’이다. 한 학부모로부터 우연히 엄 대장이 강북구민이란 이야기를 들은 그는 삼고초려 끝에 엄 대장을 강북구 홍보대사로 임명할 수 있었다. 서울시 25개 구의 구청장 가운데 최고의 ‘술 대장’으로 알려진 박 구청장은 소주잔을 밤새도록 기울인 끝에 엄 대장을 설득했다. 엄 대장은 이번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박 구청장 얼굴이 아른거려 포기했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 히말라야 등반길에 4000m 고지까지 오른 박 구청장은 의료봉사와 휴먼재단의 학교 건립에도 참여했다. 네팔의 포카라시와 강북구는 결연을 맺은 자매도시이기도 하다. “네팔에서는 한 번도 병원에 못 가 보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거기서 대자연의 웅대함을 맛보고 네팔의 교육 환경과 삶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자연스레 깨우치게 되지요.”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거름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그는 군대에 있었다. 박 구청장의 많은 친구가 전남도청으로 달려가 시청을 계엄군으로부터 사수하려다가 사망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덕분에 매일 시국 토론을 하던 그의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넘어서 발전하려면 민주화가 필연적이란 생각에 그는 서울로 왔다. 최루탄 냄새가 매캐한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민추협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언제나 담당 경찰이 한 명씩 붙어 다녔다. 1987년 평화민주당 당직자로 정치에 입문한 그의 가장 큰 정치 스승은 다산 정약용이다. 국내 최고의 다산 연구로 인정받는 박석무 전 국회의원과 함께 학원비리 해결에 앞장서면서 자연스럽게 다산의 사상에 젖어들었다. 올해는 다산 180주기다. 그는 구청장이 되자마자 강북구에 ‘다산 아카데미’를 만들어 매년 100여명의 시민들에게 다산 정신을 심고 있다. ‘다산 아카데미’는 벌써 6년째 운영 중으로 올해 11기 교육생을 배출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주민교육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산이 공직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공렴(공정+청렴)이었다. 박 구청장은 지난 3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최초로 시민도 익명으로 공직자 비리를 신고할 수 있는 ‘레드 휘슬’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무원으로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데 둔감할 수 있어요. 깨끗한 공직사회에서 국민은 희망을 찾게 됩니다.” ●구 계약업체 대표와 직접 통화하는 ‘옴부즈맨’ 박 구청장은 구와 계약을 맺은 업체 대표와 직접 통화해서 계약 관계를 확인하는 ‘구청장 옴부즈맨’으로도 활약할 예정이다. 공무원들이 친절했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행정서비스는 잘 받았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을 구청장이 나서서 전화통화로 일일이 조사한다. 구청의 일을 맡아 주어 감사하다는 표시를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선점을 찾아낼 생각이다. 대화 내용 말고도 목소리를 통해 느끼는 감도 중요하기 때문에 꼭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북한산 덕분에 강북구가 노인들의 천국이에요. 어르신들이 인간적으로 살 수 있고,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강북구입니다.” 쓰레기 분리 배출을 강조하는 청결강북운동에 앞장서서 봉사하는 이들도 노인들이다. 강북구 노인지회는 두부공장을 차려서 ‘어르신 두부’를 판매한다. 박 구청장은 전날 고주망태가 되어도 다음날 새벽에는 북한산 자락을 타면서 주민들과 인사한다. 구청장이 이동식 민원창구다. 인근의 도봉구와 성북구도 북한산과 이어지다 보니 도봉구청장과 성북구청장은 그의 덕을 자주 본다. ‘구청장입니다’라고 등산 인사를 건네면 도봉구나 성북구 주민들도 ‘우리(도봉·성북) 구청장이 정말 부지런하구나’라고 오해를 한다. 역사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다. 근현대사기념관 설립과 4·19혁명 국민문화제 개최로 이어졌다. 지난 3월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워크숍을 가진 구청장협의회에서 박 구청장은 ‘환구단 복원운동’을 제안했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환구단은 제후가 아닌 황제만의 특권으로 중국과의 단절과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만큼 살려야 한단다.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앞에 남아 있는 3층짜리 팔각 건물은 실은 환구단이 아니라 부속 건물인 황궁우로, 일제가 1913년 조선호텔을 지으면서 환구단을 허물었다. 환구단 복원은 자주독립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란 꽃을 정성스레 키우면 대한민국은 243개(기초 226+광역 17)의 꽃이 만발한 국가가 되지 않겠습니까.” 박 구청장의 지방자치 철학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글로벌 시대] 캐나다의 연구수준이 높은 이유/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글로벌 시대] 캐나다의 연구수준이 높은 이유/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정보·기술영역에서 최근 5년 동안 한국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분야는 무엇일까. 대부분이 예측하듯 인터넷(124만건)과 스마트폰(46만건)이다. 세 번째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계기로 알려진 인공지능(11만 2000건)이다. 한때 큰 관심을 끈 빅데이터·소셜미디어·사물인터넷은 인공지능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정보검색사이트에서 비교해 본 결과다. 인공지능과 관련, 국내 매체들의 보도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캐나다를 인공지능 연구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지목하고, 캐나다의 연구 관행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이다. ‘한국도 캐나다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도 보았다. 캐나다 고등교육원(CIFAR)이 인공지능 분야 최고 대가로 성장한 제프리 힌튼 토론토 대학 교수 등에게 2004년부터 10년 동안 1000만 달러를 지원한 것이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먼 장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투자해 알파고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인공지능 분야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캐나다대학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 학자와 언론인으로부터 캐나다의 연구지원과 운영은 구체적으로 한국과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면 한국과 캐나다연구재단을 통해 연구비를 수주해 본 경험을 토대로 캐나다의 특징을 말해주곤 한다. 무엇보다도 캐나다는 한국의 연구재단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1년짜리 단기 연구보다는 최소한 3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년짜리 과제를 통해 논문 한 편을 완성해서 학술저널에 출간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수행할 기회가 많지 않다. 1년 만에 연구를 마치고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연구계획서 제출 당시에 어느 정도 진행된 프로젝트를 신규 과제로 신청하고는 한다. 이에 반해 캐나다에서는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여러 해가 지나면서 논문을 내거나 책을 낼 수 있는 알찬 연구가 가능하다. 캐나다는 또 연구 자체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예를 들어 6개월 만에 제출하는 중간 보고서 자체가 양도 많고 이미 학회 등에서 발표를 마쳐야 할 정도의 성과가 표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캐나다는 연구가 종료되면 온라인상에서 간단하게 보고서를 내면 끝이다. 해당 결과물을 제출하지도 않는다. 물론 연구자들이 한국과 비교해 매우 느슨해 보이는 보고절차 때문에 연구를 등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음번 연구비 수주를 위한 계획서를 제출할 때, 이전 연구비로 진행된 결과물을 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연구 영역도 있다. 결코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연구비를 둘러싼 사회적인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서울대 연구 국제화 현황 및 지원방안 기획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4년간 국제공동논문을 가장 많이 낸 대학이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3만 2508건)이다. 서울대의 3배에 이른다. 당연한 귀결이다. 중장기 연구이다 보니 연구계획서 작성 당시부터 외국 학자들과 공동으로 작업을 추진할 수 있다. 1~2년짜리 단기 과제로는 외국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단기적인 결과물에 집중하는 국내연구 풍토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제로 한국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연구비 지원체제로 전환하고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김대식 지음, 동아시아 펴냄) 인공지능에 초점을 맞춰 한국 필자가 쉽고 대중적으로 펴낸 책이다. 카이스트에서 전기 및 전자과 교수로 근무하는 저자는 알파고 충격 이후 청와대에 초청돼 강의를 했을 정도로 인공지능과 뇌과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저자는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구분해 인공지능에 대한 논란에 답한다.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인지하는 인공지능은 알파고와 같이 현실화됐고 독립성, 자유의지 등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은 아직은 만들지 못한다. 저자는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을 인류 멸망으로 해석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강한 인공지능이 어느 한순간 인간을 놓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지구에 왜 있어야 되나?’” 352쪽. 1만 8000원. 세상을 바꾼 전략 36계(김재한 지음, 아마존의 나비 펴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전략적 키워드로 융합한 책이다. 동서고금의 세상사를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인간만의 알고리즘으로 엮어 해석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전략들은 선거와 같은 정치 게임의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전략적 정치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당선 가능성을 보고 차선의 대안에 투표하는 이른바 ‘전략적 투표’를 다룬 장에서는 어떻게 투표 선택으로 정치 결과를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1997년 DJP연합을 사례로 들며 산토끼 공략의 성공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청계천 복원 등을 통해 토목건축의 정치적 효과를 살펴본다. 316쪽. 1만 7000원. 환자가 된 의사들(로버트 클리츠먼 지음, 강명신 옮김, 동녘 펴냄)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삶의 마지막 종착지에 이른 환자가 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고백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 문제에 관한 진중한 성찰인 동시에 자신들이 행해 온 의료체계에 대한 반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환자가 된 의사 70여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그들의 직무적 고충과 생존의 어려움으로 번민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한다. 저자 자신도 지독한 우울증을 경험하며 의사와 환자 양자를 체험했다. 그리고 의료계 내부의 시각에서 환자를 다루고, 환자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의료시스템의 철옹성을 깨닫게 되면서 현대 의료 철학과 병원의 물리적, 제도적 한계를 환기시킨다. 488쪽. 1만 9000원. 모던 씨크 명랑(김명환 지음, 문학동네 펴냄) 1920년부터 1940년까지 20여년간 발행된 신문 6000여 부의 광고면들을 탐험하며 신문 광고에 담긴 근대 조선인의 삶과 사회상을 흥미롭게 짚어 냈다. 책은 의식주에서 성생활까지 우리가 누리는 현대적 생활양식들이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의 세상 풍경을 다채롭게 펼쳐 낸다. 껌은 흔히 6·25 때 미군에 의해 전해졌다고 알려졌지만 저자는 1925년 ‘리글리 췌잉껌’ 광고를 찾아내 껌의 역사를 바로잡는다. 샴푸로 머리를 감기 시작한 것도 1934년부터였고, 토마토케첩도 이미 80여년 전 경성의 상점가에 판매됐다. 오늘날 성형외과 광고에 등장하는 수술 전후 비교 사진이 당시 병원 광고에 사용됐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당대 광고 원본 이미지를 통해 경성시대의 디테일들을 엿볼 수 있다. 360쪽. 1만 6500원. 나를 위한 사찰여행 55(유철상 지음, 상상출판 펴냄) 느림의 미학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국내의 대표적 사찰을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1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만난 사찰 가운데 55곳을 골라 지리와 역사, 종교적 가치와 문화재로서의 의미를 상세하게 풀어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저자는 여름에 추천할 만한 산사로 충남 공주의 마곡사, 전남 해남의 미황사, 경남 합천 해인사를 꼽는다. 산길을 맨발로 걸으며 마음을 달래고 자연을 즐기는 ‘맨발 산행’이 가능한 마곡사, 다도해를 바라보며 무한한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땅끝마을의 미황사, 팔만대장경 인경 체험과 암자 순례가 인상적인 해인사의 템플스테이 등 산사의 매력을 소개한다. 432쪽. 1만 6500원.
  • [4·13 총선을 마감하며] 국민은 ‘알파고’ 수준, 정치는 네안데르탈인 시대

    [4·13 총선을 마감하며] 국민은 ‘알파고’ 수준, 정치는 네안데르탈인 시대

    지지부진한 선거구 획정과 볼썽사나운 공천 다툼으로 시작해 충격적인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귀결된 4·13 총선.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기자들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몇 달간 각 당의 심야 공천 회의를 밀착 취재하느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전국의 선거구 표밭을 누비느라 탈진했던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들이 15일 이번 총선을 되돌아보는 소회를 털어놨다. 김상연 기자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4·13 총선을 관통하면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알파고’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드라마틱한 대결을 보면서 나의 전두엽은 ‘사이보그’니 ‘포스트 휴먼’이니를 상상하며 마구 미래로 내달렸지만, 정작 내가 데스크에서 다뤄야 하는 기사는 네안데르탈인급의 원시적이고 퇴행적인 공천 드잡이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둘 다 21세기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었으나 둘 사이의 간격이 비현실적으로 컸기에 차라리 몽유(夢遊)의 충동을 느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강산이 세 번 변한 뒤 치러진 이번 총선은 정치라는 것이 이제 비즈니스이자 게임처럼 변모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도 예전 선거는 가식적일지언정 최소한의 거창한 명분을 들먹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공천 과정에서 여야는 저마다 ‘에이, 다 알면서 새삼스럽게 뭘~’ 하는 식으로 국민 앞에 안면몰수하고 승리와 세력 챙기기에만 혈안이 됐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지역감정의 벽을 깨겠다며 상대 당 아성에 도전했던 역사는 이제 ‘험지 출마’라는 해괴한 용어와 함께 게임처럼 변질됐다. 도대체 그 지역에 그 사람을 공천한 명분이 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여론조사 계산기를 두드리고 이런저런 계파별 친소관계를 따진 뒤 출마자를 점지하기 바빴다. 후보자의 가족들도 ‘가족 비즈니스’처럼 총동원돼 “우리 아빠, 우리 남편(아내) 찍어 주세요”라고 읍소했는데, 왜 찍어 줘야 한다는 건지 제대로 된 명분은 들어보지 못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과 세금의 사용을 위임받는 정치가 숭고함과 명분을 도외시하고 비즈니스화, 게임화할 때 그것처럼 추악한 것도 없다. 정치가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동물처럼 게걸스러워지면 인간의 정체성을 가진 유권자들은 모멸감을 느낀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것이 한 조각의 옷이라고 본다면, 명분을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역대 어느 때보다 네안데르탈인 시대에 근접해 있다. carlos@seoul.co.kr 장세훈 기자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 4·13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 얘기다. ‘상향식 공천’을 내세웠으나 ‘마스터플랜’만 있고 ‘액션 플랜’은 없었다. 출마 채비를 갖춘 예비후보들은 지역구 민심보다 여론조사 숫자에 집착했다. 전체 253개 선거구 중 절반이 넘는 141곳에서 여론조사로 공천자가 결정됐다. 총선 과정에서는 또다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야권에 앞서고 있다는 우세론이 득세했다. 개표 직전까지도 말이다.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지지층을 갈라 세웠고, 총선 국면에서 여론조사는 민심 흐름을 살피는 데 장애물이 됐다. 지난해 2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에 대한 국회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제안에 대해 새누리당이 코웃음쳤던 상황이 총선 정국 내내 기자의 머리를 맴돌았다. ‘정치는 하수구여야 한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요구다. 물론 정치 문화 자체는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 행위는 지지층의 기대 심리가 아닌 정치 부정층이나 무당층의 반발 심리부터 오롯이 챙겨야 한다. 새누리당 핵심 인사는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둔 사석에서 “선거는 ‘구도’가 8할(80%)”이라고 했다. 야권 분열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었다. 국정 운영에서 드러낸 집권 여당의 오만함, 공천 과정에서 표출된 계파 갈등, 정책 실패 또는 부재로 인한 국민들의 아우성 등을 외면하는 ‘외눈박이 정치’는 국민 앞에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곰배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남는 의문이다. 여권에서는 총선 결과를 놓고 제각각의 ‘곰배팔(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패배의 원인에 대해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차기 당권과 대권을 겨냥한 권력 투쟁 조짐도 벌써 고개를 든다. 안으로 굽기 마련인 팔만 휘둘러서는 시쳇말로 ‘노답’(No Answer)이다. 작은 정치는 세력만 구축하면 될지 몰라도 큰 정치는 국민의 마음부터 얻어야 하지 않을까. shjang@seoul.co.kr 이재연 기자 “국민만 바라보고 앞으로 가겠습니다.”(2012년 1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였던 이 말이 언제부턴가 정치권의 유행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진영도, 소속 지역·세대도 상관없이 어디서나 보증수표처럼 통하게 됐으니까요. 야권 지도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 구호를 차용한 지 오래입니다. “더이상 지역주의도, 진영 논리도 거부하겠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겠다.”(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4·13 총선 개표 직후). 38석이라는 대승을 거둔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승리 일성으로 “국민들만 쳐다보고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신기루 같습니다. ‘국민’을 앞세우는 순간 당리당략, 계파 투쟁, 정치인의 사심(私心) 따윈 사라지고 선공후사·민생 같은 절대선만 남습니다. 신기루 같기에 손에 쥐기도 힘들지만, 쥐었다 싶은 사이 손가락 새로 빠져나가는 건 더욱 순식간인가 봅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4년 전 했던 약속을 중히 여겼더라면 20대 총선 ‘122석’이라는 참패 성적표가 바뀌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뚜껑이 열리고 나서야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만 ‘민심이 절묘하게 심판했다’고 뒷북을 쳤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속마음을, 정작 정치권과 피부를 맞댔던 저희들만 체감하지 못했나 봅니다. 교훈은 언제나 충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14년 지방선거 때도 민심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여:야, 8:9’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더랬습니다. 2012년 대선 때도 야당의 우위가 점쳐졌지만, 유권자들의 방점은 ‘정권 교체’보다 ‘국민 행복’에 꽂혔습니다. 이제 남은 박근혜 정부 임기는 1년 10개월. 새누리당 참패의 총선 결과 앞에 김무성 대표가 “정치는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퇴 일성이 귓가에 두고두고 울립니다. 국민의 따끔한 질책을 잊는다면 4년 뒤에도, 당장 내년 대선에서도 정치인들이 꿈을 꿀 자격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장면 1. “아직 후보는 누굴 찍을지 모르겠어. 애국심들이 부족해. 맨날 싸움만 하고. 근데 당은 국민의당을 찍으려고. 새롭게 기대를 해 봐야지.”(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신당 중앙시장 앞 80대 노인) #장면 2. “30년 동안 새누리당 말고는 찍은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겠지만, 당은 국민의당을 찍으려고요.”(지난 4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의 한 아파트 상가 내 50대 중반 남성) 4·13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순간 “헉!” 하는 낮은 한숨소리가 절로 나왔던 것은 대부분의 기자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부터 반성해야겠습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수없이 수도권 위주로 현장 르포를 다니면서도 유권자들의 미묘한 심경 변화를 잡아 내지 못했다는 반성입니다. <장면 1>에 등장한 80대 노인이 불쑥 “당은 국민의당을 지지하겠다”고 했을 때 흠칫 놀랐습니다. 당연히 새누리당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면 2>에 나온 50대 중반의 남성은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지만,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을 찍겠다”고 선언하듯 말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바뀌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새누리당의 참패를 예상한 언론, 여론조사기관, 정치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를 포함한 기자들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현장 취재를 나간 수도권 격전지의 새누리당 후보들은 하나같이 “분위기에서 내가 압도하고 있다. 내가 따라잡고 있다”고 자신하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여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지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메르스 늑장 대응, 국민 합의 없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공천 파동 등 정부와 새누리당이 보여 준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민심의 심판은 매서웠습니다.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유권자와 정치인들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기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더이상 ‘우매한 국민’이 아닙니다. ‘우매한 기자’인 제가 먼저 반성합니다.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잘생겨서 뽑아줄 거예요.” “젊잖아요.” “아무래도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낫지 않겠어요.” “무조건 1번입니다.” “잘 모르겠어. 정치에 관심 없어. 아무나 뽑을 거야.” 20대 총선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에게 ‘투표의 기준’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의 8할은 이랬다. 표심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머지 2할은 어느 정도 정치적 식견이 있었지만 대부분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보단 진영 논리에 따른 투표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또 ‘정치 무관심’을 얘기했다. ‘생업’을 핑계로 들었다. 후보자들의 ‘표 호객 행위’ 현장에서는 귀를 막고, 또 악수를 피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민이 여당을 심판했다”, “새누리당 참패”. 개표 결과가 나오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치에 관심 없다던 국민들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내 놓았다는 건 뒤통수를 칠 만한 대반전이었다. 미술 기법 중 ‘사진 모자이크’라는 게 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완성된 사물을 그리고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수백, 수천 가지의 다른 사진들로 채워져 있는 작품이다. 국민들의 표심도 이런 사진 모자이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1표에 담긴 투표의 기준은 천차만별이지만, 그것이 모이고 모여 ‘심판’이라는 거대한 의미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국민들 개개인의 다소 비합리적일 수 있는 기준에 따른 선택들의 총합이 고도의 ‘합리성’을 띤 결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던 국민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모르는 척하면서도 정치권에서 누가 싸우는지,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는지, 그것이 진정성 있는 호소인지, 누가 더 나은 인물인지 정도는 가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여당의 ‘사람 보는 눈’은 국민의 ‘사람 보는 눈’을 따라가지 못했다. 국민들은 올바른 선택을 했고, 당선자도 될 사람이 됐다. apple@seoul.co.kr 김민석 기자 지난 13일 선거 결과에 새누리당도 놀랐지만 솔직히 기자도 놀랐다. 특히 수도권 격전지에서 직접 만난 후보들이 전부 낙선했다. ‘기자의 저주’라는 소문이 날까 두려울 정도였다. 기자가 만난 후보 중 정말 이길 것 같았는데 진 후보가 네 명 있었다. 서울 A 후보는 상대 쪽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캠프에선 피로감이 느껴졌고 후보 가족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A 후보는 지역에 넓게 뿌리내린 특정 직군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캠프는 잘 돌아가는 공장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서울 B 후보는 가는 곳마다 박수를 받았다. 길 건너편에서도 손을 흔들어 줬다. 경기 C 후보의 캠프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19대에 단일화를 하고도 간신히 당선됐던 상대 후보가 이번엔 단일화에 실패했다. 경기 D 후보 측도 승리를 확신했다. 여당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에 공천된 전문성 있는 인물로,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뒤처지지 않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A, B 후보는 그 지역에서 3선을 한 강적들과 맞붙었지만 최후까지 접전을 벌였고 C, D 후보는 전통적으로 여당의 텃밭인 지역에서 커다란 표차로 졌다는 것. 바꿔 말하면 적지라 생각하고 뛴 후보들은 그나마 접전을 벌였고, ‘집토끼’의 결집을 노렸던 후보들은 완패했다는 것이다. 사실 집토끼 챙기기는 중앙당 차원의 전략이었다. ‘읍소’ 전략은 지지층 투표율이 더 중요한 재·보선에서 쓰던 것이다. “운동권 정당에 표를 주시겠냐”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지원 유세 발언들도 대부분 흔들리는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공천 과정을 보고 화가 난 것은 새누리당 지지자뿐만이 아니다. 기자가 본 후보들도 주요 지지층인 중·노년 유권자를 겨냥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빠져나간 낮 시간에 집중 거리 유세에 나서거나, 종일 노인 무료급식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한 후보의 명함을 받은 남성이 웃으며 손을 잡아 줬다. 그때 저만치서 배낭을 맨 젊은 여성이 발길을 돌려 다른 길로 걸어갔다. shiho@seoul.co.kr
  • IoT 워킹맘·AI 교수님·나노 과학자… 비례 1번은 이공계 여성

    IoT 워킹맘·AI 교수님·나노 과학자… 비례 1번은 이공계 여성

    살신성인 군인 이종명 국회로… 김종인은 비례로만 5선 눈길 4·13 총선 정당투표 결과에 따라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17명,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 13명, 정의당은 4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하게 됐다. 새누리당에서는 비교적 취약 분야로 꼽히는 여성계와 노동계 인사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게 됐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각각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공동대표 측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여야 3당 모두 비례대표 1번에 이공계 출신 전문가를 내세운 점은 ‘공통분모’로 꼽힌다. ●새누리 임이자·문진국 노동개혁 첨병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1번 당선자인 송희경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장은 최근 각광받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기술의 전문가다. 두 자녀를 둔 28년차 ‘워킹맘’이기도 하다. 군인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게 된 이종명 예비역 육군대령은 2000년 비무장지대(DMZ) 수색 중 부상한 후임병을 구하려다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살신성인’의 표상이다. 김규환 국가품질명장은 어려운 가정 환경을 딛고 명장 칭호를 받은 ‘인간 승리’의 상징이다. 임이자 한국노총 중앙여성위원장과 한노총 산하 문진국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위원장도 나란히 금배지를 달았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후반기 역점 과제로 내세운 노동개혁의 첨병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 논란 당시 전면에 나섰던 전희경 전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을 비롯해 강효상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프로 바둑기사인 조훈현 9단,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김종석 원장,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등도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당초 당선 가능권으로 예상됐던 조명희 경북대 항공위성시스템 교수와 김본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 등은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이 예상을 밑돌면서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됐다. ●더민주 문미옥·이철희 등 親文 가장 눈에 띄는 당선자는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지난 11·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17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각각 전국구 혹은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데 이어 비례대표로만 5번째 국회 진출이다. 비례대표 1번인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최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관심이 높아진 인공지능(AI)의 기초학문인 수학 전문가로 유명하다. 김 대표는 “지금 시대가 옛날이랑 다르다. 앞으로 세계 경제 상황이 인공지능 이런 쪽으로 간다. 컴퓨터나 수학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서 그분(박 교수)한테 사정해서 모셔 온 것”이라며 1번으로 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운열(4번) 서강대 석좌교수 역시 김 대표의 권한으로 비례대표에 배정됐다. 문미옥 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 이철희 당 전략기획본부장, 권미혁 당 뉴파티위원장 등은 모두 문재인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 시절 영입한 인사들이다. 이 외에 제윤경 주빌리은행 대표, 이용득 전 최고위원 등도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 김현권(6번) 전 의성군한우협회장은 서울대 천문학과 운동권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2년가량 옥살이를 했다. 당 기여도를 인정받아 비교적 상위 순번에 이름을 올렸던 당의 김성수 대변인과 송옥주 홍보국장도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김 대표와 가까운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15번)는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민의당 채이배·이상돈 등 安측근 과학기술인을 최우선으로 두는 동시에 안 대표 측 인사들이 대거 국회에 발을 들여놨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30여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한 나노·융합기술 분야 여성 과학자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1998년 한국과학상을 수상하는 등 고체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김수민 브랜드호텔 대표는 여성이자 청년 벤처창업가로 ‘깜짝 발탁’됐다. 김 대표는 ‘허니버터칩’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벌개혁 전문가로서 20대 국회에서 안 대표의 공정성장론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 연구위원과 함께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 박선숙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 김삼화 변호사 등은 안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는 천정배 공동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국면 초기에만 해도 당선권에 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11~13번도 당 지지율이 막판 가파른 상승세를 탄 덕분에 금배지를 달게 됐다. 장정숙 전 서울시의원, 이동섭 서울시태권도연합회장, 최도자 전국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장 등이 대상이다. ●정의당 시민단체 활동 주도 윤소하 당초 비례대표 5석 이상을 목표로 했던 정의당은 4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1번 이정미 당선자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정의당은 물론 민주노동당과 전보정의당 시절에도 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김종대 전 디펜스21 편집장은 군사·국방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언론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온 추혜선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무상급식을 비롯한 시민단체 활동을 주도해 온 윤소하 전남도당위원장 등이 비례대표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구본영 칼럼]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시대정신 뭔가

    [구본영 칼럼]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시대정신 뭔가

    “픽미, 픽미”, “더더더”, “로보트 태권브이”…. 출근길 전철역에서 귓전을 때리던 각 당의 로고송이 잦아들면서 4·13 총선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마음은 왠지 스산할 것 같다. 관객은 사라지고 쓰레기 더미만 남은 축제장을 보듯이. 사실 이번 총선처럼 정책 대결이 실종된 선거판도 드물었다. 근래 선거전마다 유행했던 ‘무상 시리즈’ 복지 공약 경쟁조차 이번에는 시들했다. 그러니 표밭의 국민들은 심드렁하고 정당과 출마자들만 악다구니를 쓰는 것처럼 비칠 만큼. 유권자들도 망국법이라고 할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어느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들 어차피 국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간파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각 당 지도부는 미래 비전을 내보이긴커녕 유권자들에게 사죄하느라 바빴다. 친박 대 비박, 그리고 친노와 비노 간 용렬하기 짝이 없는 공천 갈등과 패권 다툼이 원죄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유세장마다 후보들을 등에 업는 ‘어부바 퍼포먼스’를 했다. 하지만 ‘옥새 파동’ 이후 여권 표밭 분열이 켕기는 듯 “공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선 후 사퇴하겠다”며 시종 머리를 숙여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김홍걸씨와 함께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지를 거두면 정치에서 물러나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며 외려 호남 동정표를 바라는 듯이. 호남 표밭에 기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광주 광산을의 자당 권은희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을 총으로 저격하는 선거 포스터로 물의를 빚자 ‘대리’ 사과해야 했다. 특히 김 대표는 선거 기간 중 관훈토론에서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묻지도 않았는데도 반 총장을 거명해 “새누리당은 환영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권 경선에) 도전해야 한다”고. 문, 안 전·현 대표도 야권의 대선 발판인 호남표를 놓고 선거전 내내 신경전을 폈다. 문 전 대표가 “구시대적, 분열적 정치인”이라고 국민의당과 안철수 심판론을 제기하면 안 대표가 “(문 전 대표가 통합 야당 오너였던) 19대 총선에서 왜 새누리당 과반을 만들었느냐”고 치받는 식이다. 이를 지켜본 국민은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경제 이슈로는 새누리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과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대리 논쟁이라도 했다. 한국적 양적완화론과 경제민주화의 실효성을 놓고. 한데 안보 이슈는 줄곧 뒷전으로 밀려났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심지어 김정은 참관하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엔진의 지상 분출 실험까지 하는데도 대권 주자들은 표밭에 머리를 묻기만 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북풍이 불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남의 나라 미국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한·일 안보 무임승차론과 핵무장 용인론으로 대선 레이스를 달군 데 비춰 보면 기이한 현상이다. 선거전에서 네거티브나 선심 공세에 흔들린 개별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총합으로서 국민의 선택은 이번에도 현명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대권 주자들에 대한 판단만은 유보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표 구걸식 선거전을 펴느라 검증 무대에 설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마침 대한민국은 경제와 안보에서 동시에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예고한 4차 산업혁명은 성장과 분배의 융합이란 고난도의 과제를 던진다. 북한 외화벌이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은 ‘김씨 조선’의 불길한 운명을 암시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통일 방정식을 요구한다. 애초에 국민의 간절한 바람도 상대 당이나 대권 라이벌에 대한 ‘디스’가 아니라 집권 청사진을 스스로 펼쳐 보이라는 것이었을 듯싶다. 까닭에 김 대표든, 문, 안 전·현 대표든 뉴욕양키스의 레전드 요기 베라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한. 이는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을지 모를 반기문·박원순·손학규 등 잠룡들도 마찬가지다. 언감생심 대권을 꿈꾼다면 총선 성적표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함께 이제부터 국민이 바라는 시대정신에 제대로 응답하란 뜻이다.
  • [열린세상] 합리적 중도가 뭉쳐서 극단을 물리쳐야/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사장

    [열린세상] 합리적 중도가 뭉쳐서 극단을 물리쳐야/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사장

    ‘2차 대전 후 140여개 신생 독립국 중 근대화를 완벽하게 성취한 유일한 성공 국가, 그 근대화의 도착성으로 파국적 전환기에 이른 나라.’ 3월 19일 거버넌스리더스 조찬 포럼에서 거버넌스센터 고문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이 압축 설명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근대화를 넘어 글로벌화·선진화·인간화를 목표로 성숙한 다원적 문명 국가로의 새로운 도약을 꾀해야 하건만 거대한 걸림돌들에 가로막혀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깊습니다. 그 걸림돌 중의 걸림돌은 파당 중심의 권력 정치가 비전과 정책 중심의 시민생활 정치를 압도하는 현실입니다. 이 걸림돌을 받치는 굄돌 중의 굄돌이 이념 대결과 진영 논리를 빙자해 패거리 이익을 추구하는 사악한 극단들이 날뛰는 반합리한 행동들입니다. 그로 인해 21세기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 갈 비전과 그를 구현하기 위한 현실 정책을 둘러싼 합리적인 대화·토론·논쟁이 실종되고 질서 있는 선택과 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고 미래가 안 보이는 현실이 이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적대적 공존 관계에 터 잡은 죽임의 정치를 질타합니다. 이 즈음에 합리적인 진보·보수를 자임하는 그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두 가지 관점을 제안합니다. 첫째, 사회 세력 혁신을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합리적 중간의 경쟁 동맹 전략, 전략적 경쟁 동맹으로 극단을 주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인식을 내포합니다. 우선 이념이건 가치이건 좌파와 우파 간에 하나 되는 통합은 가능하지도 않고, 국민 입장에서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선택의 권리, 최선을 고르는 즐거움이 보장돼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경쟁, 더 치열해 더 생산적인 경쟁입니다. 경쟁을 하되 반합리한 극단의 저열한 야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의 관점과 입장, 나아가 행동을 확고히 하는 것, 즉 전략적 경쟁 동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민주사회에서 아무리 형편없는 이념 주장과 세력이라 하더라도 그 배제 또는 척결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입니다. 미국 대선판의 트럼프가 산 증거입니다. 둘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손가락질과 욕질, 냉소질이 아니라 실제 압도적 역량으로 극단을 주변화해야 합니다. 주장이라는 점에서만 본다면 현실에서 극단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낡은 패러다임, 배제의 패러다임입니다. 극단을 극복하는 기본은 극단적 주장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고, 그 불구(不具)의 주장을 무력화하는, 나아가 그들 스스로 민망해할 만큼 무의미하게 만드는, 한 차원 상승한 진보·보수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이념, 새로운 가치, 비전, 정책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창안하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20세기를 훌쩍 지나 21세기입니다. 진영 대결이 최고, 최선의 고려 사항이던 냉전시대가 가고 너나없이 포스트 자본주의의 절절한 도전, 한 예에 불과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충격을 넘어 머지않은 후인류 시대를 예견하는 새로운 지구촌과 새로운 문명을 향한 치열한 모색을 피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1970년대, 1980년대 반독재 무용담과 관성으로 버티고 심지어 한때 운동해서 평생 먹고사는 사람들이 조자룡 헌 칼 쓰듯 진보를 움켜쥐고 있다는 냉소가 흘러서야 되겠습니까. 1960년대, 1970년대 참전의 기억, 안보 궐기대회 때 받은 분기로 평생 탱천하는 ‘어버이’급들이 녹슨 훈장 닦고 또 닦듯이 보수를 쥐고 흔든다는 장탄식이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스스로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라 한다면 이익에 예민하고 싸움에 관한 한 몇 배 고수인 정치 사회의 반합리한 극단에 능동적으로 맞서 한편 목적 의식적인 전략적 동맹과 한편 치열한 생산적 경쟁을 통해 합리적 그룹 전체의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더딜 것 같지만 그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속이 타고 마음 둘 데 없는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아 마침내 온전한 민주적 상식이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극단을 주변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마저도 향상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 민주사회에서 진실로 국민을 위한 정치, 민중을 위한 사회운동의 기본자세와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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