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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9·11 테러 20주년/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9·11 테러 20주년/김상연 논설위원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 시청자들은 믿기 어려운 장면을 TV 생중계로 목격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잠시 후 또 다른 비행기 한 대가 남쪽 건물에 충돌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건물들은 화재 발생 1시간 42분 만에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미국 북동부에서 캘리포니아주로 향하는 여객기 4대를 비행 중 납치해 벌인 ‘자살 테러’였다. 나머지 2대 중 1 대는 버지니아주 미 국방부 본부(펜타곤)의 서쪽 면을 들이받았고, 다른 1대는 워싱턴DC로 향하다 승객들의 저항으로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인근 들판에 추락했다. 이 끔찍한 테러로 2977명이 사망하고 2만 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역사상 본토, 그것도 심장부가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어서 미국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고 전 세계가 경악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바로 한 달 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보복에 나섰다. 알카에다의 온상으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탈레반 정부를 축출했고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락시켰다. 이어 10년에 걸친 추적 끝에 2011년 5월 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찾아내 사살하는 등 주요 인물들을 제거했다. 그 충격적인 테러 2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지난 주말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도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은 여전히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재집권한 것도 불안감을 키운다. 그럼에도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단 한 번도 심각한 테러를 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관련 법과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테러 예방에 전력을 기울였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미국 국민이지만 테러 예방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테러 수사와 관련해서는 광범위한 도청과 함정 수사가 허용됐다. 실제로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은 미국 내 이슬람 사원에 다니는 청년에게 신분을 숨기고 접근해 테러를 모의하자고 제의한 뒤 호응하면 검거하는 기법까지 사용한다. 2001년 이전에 미국이 이처럼 깨어 있었다면 비극적인 테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리고 국가는 꼭 참사를 겪고 난 뒤에야 교훈을 얻는다. 실패에서 배운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보다 어리석은 것은 실패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 “사우디 정보원, 9·11 테러범 도와…집 임대·계좌 계설 등 깊숙이 관여”

    “사우디 정보원, 9·11 테러범 도와…집 임대·계좌 계설 등 깊숙이 관여”

    17쪽 문건… 사우디 국적 대학생 지목사우디 정부 직접 지원 여부 알 수 없어9·11테러 희생자 유족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테러 지원을 증명할 근거라며 공개를 요구했던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기밀문서가 11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사우디 정부의 직접적인 테러자금 지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사우디 정보 요원으로 의심되는 인사가 당시 테러범을 돕는 등 깊숙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FBI가 관련자 인터뷰로 작성한 17쪽의 문건에는 사우디 국적의 오마르 알 바유미가 항공기를 납치해 워싱턴DC 인근 미 국방부에 추락시킨 테러범 2명을 지원한 것으로 기술됐다. 2명의 테러범은 2001년 1월 미국으로 왔는데, 알 바유미가 은행계좌 개설, 아파트 임대, 이동 등을 도왔다. 알 바유미는 표면적으로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대학생이었지만 FBI는 실제 사우디 정보 요원이나 사우디 영사관 관료일 것으로 의심했다. 다만 이번 문건에서 FBI는 검은색으로 여러 부분을 가린 채 공개했기 때문에 사우디 정부의 직접 개입 여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간 유족들은 19명의 테러범 중 15명이 사우디인이었다며 사우디 정부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사우디 측은 어떤 연관성도 부인해 왔다. 2004년 미 의회의 9·11테러 조사단은 알카에다가 사우디 사회에서 돈을 모금한 것은 보고서에 명시했지만 “탈레반 외에 어떤 정부도 알카에다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번 문건 공개는 지난달에 약 1800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해당 문건의 기밀해제 없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9·11 추모식 참석을 반대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이뤄졌다. 바이든은 기밀해제 검토를 법무부 등에 지시했다. 사우디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샀다. 트럼프는 2018년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하는 작전을 승인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서도 외교·경제 관계가 먼저라며 진실규명이나 제재를 하지 않았다. 대선 경선 때부터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사우디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된 76명의 사우디 시민권자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지하면서도 무함마드 왕세자는 제외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 “‘메모리얼 풀’은 공동묘지… 역사의 전환점 절대 잊지 않겠다”

    “‘메모리얼 풀’은 공동묘지… 역사의 전환점 절대 잊지 않겠다”

    첫 충돌 시간에 맞춰 종소리 울리며 묵념유족들은 번갈아가며 희생자 이름 불러바이든 생크스빌 등 테러 현장 3곳 방문트럼프 영상 메시지서 아프간 철군 비난“이곳은 우리에겐 공동묘지다. 미국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9·11테러 20주년 추모식이 열린 1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조성된 ‘메모리얼 풀’에서 만난 폴 레드먼드(46)는 “삼촌이 내 나이에 희생됐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렇게 말했다. 테러범에 납치된 아메리칸항공 11편이 WTC 북측 건물에 첫 충돌한 시간인 오전 8시 46분에 맞춰 조종이 울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등을 비롯해 하늘색 리본을 가슴에 단 모든 참석자들은 일제히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했다. 이어 유족들이 번갈아 가며 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의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20년간 끌고 왔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중국 견제 등 새로운 도전을 향해 눈을 돌리겠다고 했지만 추모식 현장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바이든의 아프간 철군을 비판하는, ‘바이든+탈레반=9·11 망각’이란 팻말을 든 이들이 꽤 있었고, 한 유족은 “아프간 철군은 잘못이다. 여전히 미국은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있다. 어머니의 친구를 추모하러 왔다는 그레그 사피엔자(28)는 “20년간 이런 일을 막을 정도로 분명히 안전해졌다”고 주장했다. 아프간 철군을 둘러싸고 입장 차가 극명한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서 설전(?)도 벌어졌다. 전날 영상 메시지에서 “단결은 우리의 최강점”이라고 강조한 바이든은 이날 메모리얼 풀,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등 9·11테러 현장 3곳을 모두 방문했지만, 따로 연설은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추모식 대신 참사 지역인 맨해튼의 경찰서와 소방서를 깜짝 방문해 바이든 비난에 열을 올렸다. 앞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서는 “바이든과 그의 서툰 정부는 패배 속에 항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바이든은 생크스빌에서 기자들에게 “알카에다가 있는 모든 곳을 침공해서 군대를 주둔시키는 거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생크스빌 연설에서 “해외 극단주의자와 미국 내 극단주의자들은 다원주의를 경멸하고 인간의 삶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라며 “그들과 맞서는 것은 우리의 지속적인 의무”라고 했다. 테러와 이어진 전쟁에 대한 견해는 달라도 비극을 잊지 말자는 데에 미국은 하나가 됐다. 남동생을 추모한 바버라 넬슨 골드만(74)은 “9·11은 미국의 취약함을 알게 해 준 역사적 전환점이지만 ‘함께’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기도 하다”고 했다. 아메리칸항공의 조종사 조지프 앤더슨은 “20년 전 당시 나도 몇 시간 후 뉴욕 하늘을 비행할 차례였었다”며 적극적이고 사적인 차원의 공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항공기 조종사들이 메모리얼 풀에 가져다 놓은 화환에는 ‘우리는 절대 잊지 않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FBI의 9·11 기밀문건 “사우디 요원 의심인물, 테러 지원 깊숙이 관여”

    FBI의 9·11 기밀문건 “사우디 요원 의심인물, 테러 지원 깊숙이 관여”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1일(현지시간) 기밀해제한 2001년 9·11 테러 조사와 관련된 문건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한 인물이 테러범 지원에 깊숙이 관여한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6년에 작성된 이 FBI 문건은 일부 내용이 가려진 상태로 9·11테러 20주기를 맞아 공개됐다. 이 보고서엔 사우디 국적의 미국 거주자 2명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9·11 항공기 납치 테러범과 맺고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2명 중 오마르 알-바유미는 영사관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다고 FBI는 기재했다. 이 문건에는 알-바유미가 적어도 2명의 9·11 항공기 납치 테러범을 돕기 위해 여행과 숙박, 자금 지원을 제공하는 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또 알-바유미를 둘러싼 여러 인맥과 목격자 증언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FBI는 로스앤젤레스 지역 대학생인 알-바유미를 사우디 정보요원 또는 사우디 영사관 관료로 의심했다. 과거 미 의회의 9·11 테러 조사단은 알-바유미가 사우디 정보요원이거나 아니면 납치범을 지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납치범 2명과 로스앤젤레스의 한 이슬람 사원의 보수적인 이맘(종교 지도자)인 파하드 알-투마리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AP통신에 따르면 알-바유미와 알-투마리는 9·11테러가 발생하기 몇 주 전 미국을 떠났다. 이번 문건 공개 조치는 9·11 피해자 및 유족이 그 동안 사우디 정부의 9·11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관련 문건 공개를 요구한 데 따라 이뤄졌다. 지난달 미 법무부는 FBI가 비행기 탈취범과 공모 의심자 간 조사를 최근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 9·11 테러 조사와 관련한 문건의 기밀해제 검토를 법무부 등에 지시했다. 앞서 지난달 약 1800명의 유족 등이 관련 문건을 기밀해제하지 않을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올해 9·11 추모식 참석을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과거 조사 결과 일부 사우디 국적자와 비행기 탈취범 간 관계를 개략적으로는 설명했지만, 사우디 정부가 직접 연루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사우디 정부는 9·11 테러 지원 의혹에 대해 그 어떠한 연관성도 부인해왔다.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관은 지난 8일 “왕국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모든 기록의 완전한 기밀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9·11테러에 사우디 정부가 가담했다는 주장에 대해 “완전한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서도 9·11테러 공모에 사우디 정부가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20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테러조직 알 카에다는 비행기 4대를 탈취해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DC 인근의 국방부 청사 등을 공격하는 등 사상 초유의 미국 본토 내 주요 시설에 대한 대규모 테러를 벌였다. 백악관 또는 국회의사당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 1대는 승객들의 저항으로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광산에 추락했고, 탑승자 전원 사망했다. 9·11 테러로 3000명가량의 사망자와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알카에다를 보호해온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산악지대로 퇴각한 탈레반과 전쟁을 이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년 만인 지난달 31일 미군 철수를 완료하며 미국의 해외 최장 전쟁을 끝냈다.
  • 문대통령 “9·11 테러 20주년 깊은 위로…테러척결 적극 동참”

    문대통령 “9·11 테러 20주년 깊은 위로…테러척결 적극 동참”

    문재인 대통령은 9·11 테러참사 20주년을 맞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미국의 굳건한 동맹으로서 국제사회의 테러 척결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1일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통해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목적도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보다 값지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우리는 어떠한 폭력도 평화와 포용을 넘어설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충격과 기억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며 “바이든 대통령님과 미국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한편 앞서 2001년 9월11일,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여객기 3대를 납치해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충돌시켰다.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면서 2763명이 사망했고, 국방부 청사 충돌로 184명이 숨졌다. 이중 125명은 여객기 탑승객들이었다. 테러범들이 납치를 시도한 또 다른 항공기 1대에서 승객들과 테러범들이 사투를 벌였으며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벌판에 추락했다.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승객과 승무원 40명이 숨졌다.
  • 찾지 못한 1106명, 아프간 철군에도… 끝나지 않은 9·11 비극

    찾지 못한 1106명, 아프간 철군에도… 끝나지 않은 9·11 비극

    9·11 테러 20주년 추모일을 사흘 앞둔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의 추모식이 추모 행사, 테러 용의자 재판, 유해 신원 확인 등에 이목이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겨서다. 바이든 자신이 말한 대로 아프간에서 떠나 중국에 역량을 집중할 여건이 조성될지가 관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바이든이 오는 11일 뉴욕 그라운드제로, 워싱턴 인근 국방부,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등 9·11테러와 관련된 장소 세 곳을 모두 방문한다”며 “바이든이 아프간 철군을 한 번 더 옹호할 수 있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바이든은 지난달 31일 대국민연설에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아프간에서 거둬들인 시선이 중국을 향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자국민을 아프간에 남겨 둔 채 철군을 강행한 것은 걸림돌이다. 오는 14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첫 공청회를 열 예정이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이미 6만 5000명이 입국했고 내년에 3만명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아프간 난민의 대규모 유입도 바이든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인의 미국 정착을 위해 이날 의회에 64억 달러(약 7조 4600억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요청했다고 USA투데이가 전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날 BBC에 “(아프간이 극단 무장단체의 은신처가 되는) 위협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아프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현지는 추모 열기가 고조되는 한편, 끝나지 않은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욕시 검시관실은 최근 1646번째와 1647번째 유해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1106명의 신원을 찾지 못했다고 폭스뉴스가 이날 전했다. 이에 지난주에 한국전쟁 및 2차 세계대전 등의 유해 감식을 위해 국방부가 사용하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사용을 승인했다고도 했다. 이날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의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서 약 18개월 만에 재개된 9·11 테러 용의자 5명에 대한 심리는 여전히 공전했다. 법정에는 희생자의 유가족들도 있었지만, 테러 설계자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다. 휴식 시간엔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이들은 2002~2003년 체포돼 2006년 관타나모 수용소에 이송됐고, 지금까지 정식 재판을 열지 못한 채 40차례 이상의 공판 전 심리만 반복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9·11 테러는 물론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발사건 등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의 고문에 따른 자백이라고 주장하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 “9·11테러 설계자는 법정서 웃었다”…사형 못 내리는 이유는?

    “9·11테러 설계자는 법정서 웃었다”…사형 못 내리는 이유는?

    9·11테러 테러범들이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8일 외신에 따르면 이날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캠프 저스티스’ 법정에 9·11테러의 설계자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한 용의자 5명이 출석했다. 그와 함께 공모자로 지목된 왈리드 빈 아타시, 람지 빈 알시브, 무스타파 알 아우사위, 아마르 알 발루치 등 4명도 함께 법정에 섰다. 미 공군 대령 매슈 맥콜 재판장을 앞에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통역도 자리를 함께했다. 두꺼운 유리막 뒤 참관석에는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앉았다. 18개월만에 관타나모 법정서 심리 재개 지난해 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된 9·11 사건에 대한 공판 전 심리가 18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미국이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낸 직후 처음 열린 것이기도 하다. 이날 심리는 재판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점과 함께 테러범들의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모하메드는 심리 내내 웃는 모습을 보였고 중간 휴정 시간에 법정을 빠져나올 때는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고 폭스뉴스 등은 전했다. 모하메드는 2003년 파키스탄에 있는 자택에서 붙잡힌 이후 2006년 관타나모 수용소에 옮겨진 지 15년이 지났다. 그러나 재판은 정식 공판이 시작되지도 못한 채 심리만 무려 9년째 이어가는 등 지지부진한 상황이다.고문 문제 발목 잡혀 9년째 공판전 심리만 피고인 5명은 2002∼2003년 체포된 뒤 재판을 둘러싼 논란 속에 2012년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하기로 했지만, 지금껏 40차례가 넘는 공판 전 심리만 이뤄졌다. 모하메드는 9·11 테러를 포함해 대니얼 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참수 사건, 1993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발사건 등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 중앙정보국(CIA)이 심문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를 재판에 활용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었다.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증거 사용 불허를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2976명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데,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이날 역시 변호인단은 2002∼2006년 CIA 고문으로 인한 증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고 직전 마지막 재판 시점에서의 심리 재개를 요청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지금 상태라면 심리 절차에만 또 다른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관타나모 문제와 관련해 미 국방부 군사위원회에 자문했었던 케빈 파워스 보스턴대 국가 안보전문가는 재판 지연 이유로 검찰이나 변호인, 판사가 아닌 온전히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심리를 진행한 맥콜 재판장은 이 사건을 맡은 8번째 재판장이다. 한편 공판 전 심리 절차는 이날부터 17일까지, 11월 1일부터 19일까지 예정돼있다.
  • 9·11 뉴스화면 보며 “아! 내가 놓쳤던 그녀석이” 직감은 적중했다

    9·11 뉴스화면 보며 “아! 내가 놓쳤던 그녀석이” 직감은 적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KSM 쫓았던 FBI 요원 “카타르에서 체포했더라면 참극 막았을텐데” CIA 주도로 관타나모에서 끔찍한 고문 자행 증거 오염시켜 테러 주범들 단죄 오히려 지체 “은퇴 3년이나 미루며 단죄를 도우려 했지만 세상은 늘 이런 식, KSM의 관종 짓에 놀아나” “내가 쫓던 그놈이잖아. 세상에나,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가 틀림없어.” 20년 전 9·11 테러 날, 말레이시아의 한 호텔에서 공중납치된 여객기들이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프랭크 펠레그리노는 퍼뜩 그를 떠올렸다고 영국 BBC에 7일(이하 현지시간) 털어놓았다. 공격 목표가 그의 야심과 맞아 떨어졌다.마침 이날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국 군사법정에 그가 다시 섰다. 당시 ‘KSM’으로 통하던 무함마드는 여전히 재판 전 심리 과정에 있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중단됐다가 18개월 만에 재개됐는데 그는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법정에 들어섰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년이 흐르도록 테러의 모든 것을 세세히 설계한 용의자에 대한 재판은 거의 시작도 못한 셈이다. 2008년부터 모하메드를 변호한 데이비드 네빈은 방송에 말했단다. 재판 결론이 내려지려면 2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미 연방수사국(FBI) 특수요원이었던 펠레그리노는 30년 가까이 무함마드를 추적해 온 인물인데 자신 때문에 9·11 참극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에 내내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멀리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은거하며 모든 것을 지휘했지만 현장에서 테러 공격의 모든 것을 세세히 설계하고 지휘했던 인물은 무함마드였다. 쿠웨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소련에 맞선 아프간의 봉기에 합류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공부했다. 미국이 그를 쫓기 시작한 것은 9·11이 일어나기 8년 전 세계무역센터(WTC)가 폭탄 공격을 받은 뒤였다. 6명이 죽고 1000명 이상 다쳤다. 테러 자금을 송금하는 과정에 무함마드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2년 뒤 FBI 요원은 그가 태평양 위에서 여러 대의 국제선 여객기를 동시에 폭발시키는 음모를 꾸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990년대 중반 펠레그리노에게 그의 행적을 쫓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카타르에서 그를 체포하는 작전을 기획했다. 오만에서 국경을 넘어 카타르로 들어가 체포할 작정이었다. 이미 비행기 한 대를 수배해 용의자를 미국에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국 외교관들이 반대했고, 펠레그리노가 직접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와 관리들을 만나 무함마드가 여객기 테러를 모의했기 때문에 체포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외교관들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했다. 대사는 카타르 관리들이 몹시 화가 나 있다며 관두라고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무함마드는 그렇게 꼭 잡아야 하는 타깃이 아니었다고 펠레그리노도 인정했다. 펠레그리노 역시 그의 이름을 미국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현상수배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테러리스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무함마드는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귀띔을 받고 카타르를 떠나 아프간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뒤 몇년 동안 KSM이란 이름은 전 세계 테러 용의자들의 전화번호 수첩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는 모든 용의자들과 잘 연결돼 있었다. 이 시기에 빈 라덴을 만나 조종사들을 훈련시켜 미국의 건물을 들이받게 한다는 발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펠레그리노가 KSM의 짓이라고 믿은 것은 구금 중인 알카에다 주요 인물의 입을 통해 맞는 것으로 증명됐다. “프랭크가 쫓던 녀석이 그 짓을 벌였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됐다. 그가 그 놈이란 것을 알았을 때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었다.” 2003년에 무함마드는 파키스탄에서 체포됐다. 펠레그리노는 자신이 만든 기소장에 근거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중앙정보국(CIA)은 “강화된 심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블랙 사이트(black site)”로 끌고 가 구금했다. 해군 함정이나 달리는 차 안에서 커튼을 내리고 심문하는 일도 있었다. CIA의 한 간부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그것도 가능한 빨리”라고 말했다. 무함마드는 적어도 183번 물고문을 당했는데 “거의 익사할 뻔” 했다고 묘사하곤 했다. 직장(直腸) 탈수, 스트레스를 받게 오랫동안 한 자세를 취하게 하거나, 잠을 못 이루게 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게 해 수치심을 주는 등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자녀들을 모두 죽일 것이라고 위협도 했다. 그가 수많은 음모를 자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상원 보고서는 그가 건넨 많은 정보들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CIA는 2006년에야 무함마드처럼 “가치 있는 구금자들”은 관타나모로 옮겨졌다고 밝히고 FBI도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7년 1월에야 펠레그리노는 그렇게 오랫동안 쫓았던 무함마드와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90년대 자신을 기소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이란 걸 그가 알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9·11에 관한 정보를 빼내오는 말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펠레그리노는 그 대화에 대해 많은 것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지만 “믿거나 말거나 겠지만 그는 유머 감각도 있고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녀석이더라”고 말했다. 관타나모에서의 재판 전 심리에 “관종(grandstanding)”처럼 굴어 펠레그리노는 가장 악명 높은 테러 용의자를 “카다시안류”라고 했다. 주의를 끌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뉘우치는 빛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자백을 해서 재판에서 최고의 장면을 만들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분명 그는 해낸 일을 좋아하며 이 쇼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함마드와 엿새를 보낸 그는 충분히 알 수 있었으며 더 이상 그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고 돌아봤다.한때 800명에 이르렀던 관타나모 수감자는 이제 39명만 남아 있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이는 28명, 7일 재판 전 신문에는 무함마드 등 5명이 임했다. 네빈 변호사는 20년이 흘렀는데 용의자들에 대한 사법절차가 여전히 진행 중이란 점을 보여주기 위해 열흘의 신문 일정이 나흘 전에야 부랴부랴 준비됐다고 말했다. 관타나모에서 추악한 고문이 자행됐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뉴욕으로 수감자들을 모두 이감해 재판받게 하려 했으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펠레그리노 역시 뉴요커 인터뷰를 통해 “우리집 뒷마당에 데려오지 말고 관타나모에 그냥 내버려두라고 모두 비명을 질러댔다”고 돌아봤다. 그 동안 재판장은 계속 바뀌어 이번이 여덟 번째인가 아홉 번째인가 헷갈릴 정도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내용이 수두룩한 3만 5000쪽의 신문 기록, 수천가지의 움직임을 제대로 검토하기란 힘든 일이다. 더욱이 끔찍한 고문을 통해 취득한 자백과 진술의 옥석을 가려 오염된 정보를 걸러내는 일은 엄청 벅찬 일이다. 여기에 먼 거리를 날아와 참관하는 9·11 희생자 유족들의 민감한 정서를 다독이기까지 해야 한다. 너희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거냐는 의심스러운 눈치까지 받는다. 펠레그리노는 무함마드의 법정에서 진술하려면 현역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은퇴를 3년 미뤘다고 했다. 그런데 재판은 도무지 끝낼 조짐을 보이지 않아 결국 얼마 전 정든 조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이 매일 내 머리에 떠오르는데 달갑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치유할 일이지만 늘 이런 식이다.”
  • 9·11 테러 용의자 18년째 사전 심리… 올해도 정식재판 못할 듯

    무함마드 등 5명 18개월 만에 심리 재개고문 자백 공방·코로나 등 재판 개시 발목수감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도 걸림돌변호인 “재판 마무리 20년 정도 걸릴 것” 2001년 9·11 테러 20주년 추모일을 나흘 앞두고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주모 용의자에 대한 심리 절차가 7일(현지시간) 재개된다. 체포 후 약 18년간 40차례 이상의 사전 심리만 반복했을 뿐 정식재판 개시는 올해를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데다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며 심리가 장기화됐다. CNN은 6일(현지시간) 일명 ‘KSM’으로 불리는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를 비롯해 9·11 테러 용의자 5명에 대한 공판 전 심리 절차가 7일부터 열흘간 열린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심리는 코로나19로 지난해 2월 이후로 보류됐다가 18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일부 테러 희생자 가족들도 청문회를 참관할 예정이다. 이들은 2002~2003년 체포됐고, 2006년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 내 수용소로 이송됐다. 미 당국은 당시 ‘강화된 심문 기술’이라며 부인했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들을 고문해 테러에 가담했다는 진술을 받아 냈다. BBC는 무함마드가 ‘익사 직전’까지 가는 물고문을 최소 183회 당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받아낸 ‘자백’에 대한 신빙성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다. 이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약속한 뒤 2012년 뉴욕연방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테러범을 미국 본토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논란이 일었고 결국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키로 했다. 이들 5명의 혐의는 ‘테러, 항공기 납치, 살인’ 등으로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을 받게 된다. 본래 올해 정식재판을 개시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등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부터 무함마드의 변호를 맡아 온 데이비드 네빈은 BBC에 미 당국이 9·11 테러 20주년 추모일에 진전이 있음을 보여 주려 나흘전에 심리 일정을 잡았다며 “완전히 해결되려면 2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재판 일정에 따라 관타나모 수용소의 운명도 결정될 전망이다. 약 800명에 달했던 재소자는 현재 39명만 남아 있다. 11명은 범죄 혐의로 기소됐고, 나머지 28명은 기소도 안 된 상태로 이 중 10명은 본국 송환 권고 결정을 받았다.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수용소 운영 비용은 5억 달러(약 5789억원)로 재소자 1인당 1282만 달러(약 148억원)꼴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내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할 방침이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 20년 흘렀는데 관타나모 28명 기소도 안돼, 5명 재판 18개월 만에 재개

    20년 흘렀는데 관타나모 28명 기소도 안돼, 5명 재판 18개월 만에 재개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테러 용의자 5명에 대한 재판이 7일(이하 현지시간) 재개된다. 쿠바 영토지만 미국이 해군기지를 설치해 관리하는 관타나모에 위치한 이 수용소는 9·11 테러 후 용의자 등을 수용하기 위해 연 시설로, 고문과 인권 침해로 숱한 논란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영화 ‘모리타니안’이 끔찍한 고문과 어이없는 인권 유린 실태 등을 폭로했다. 한때 이곳 수감자는 약 800명에 달했지만 오바마 행정부 때 197명이 석방되는 등 점점 줄어 현재는 39명이 남아 있다. 이 중 11명은 범죄 혐의로 기소됐지만, 나머지 28명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수용돼 있다. 기소 안 된 28명 중 10명은 본국 송환 권고 결정을 받은 상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내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뉴욕 무역센터 등을 노린 테러의 주모자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한 용의자 5명에 대한 공판 전 심리 절차가 이날부터 17일까지 예정돼 있다고 CNN 방송 등이 6일 보도했다. 이들의 심리는 지난해 2월 마지막으로 열린 뒤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탓에 보류됐다가 18개월여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20주년을 나흘 앞둔 시점인 데다 지난달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해 미국의 해외 최장 전쟁을 끝낸 직후 열리는 것이라 각별한 관심을 끈다. 이들 5명의 용의자는 2002~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됐지만 정식 재판은 계속 지연됐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약속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뉴욕연방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본토에 테러범을 데려올 순 없다는 이유 등으로 거센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12년 5월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40차례가 넘는 공판 전 심리만 이뤄졌을 뿐, 정식 재판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피고인이 어떤 증거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검사가 허용할 것인지, 연방수사국(FBI)의 심문을 통해 확보된 정보를 재판에서 인정할 것인지 등의 쟁점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피고인들은 고문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심문 자료를 증거로 허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피고인 5명이 모두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고문이 아니라 ‘강화된 심문 기술’이라고 반박했다.
  • 바이든 유족압력 밀려 “9·11 테러 문서 기밀해제 검토” 사우디 봉인 열릴까

    바이든 유족압력 밀려 “9·11 테러 문서 기밀해제 검토” 사우디 봉인 열릴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11 테러 관련 문서의 기밀해제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3일(이하 현지시간) 내려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자들의 묵인 및 방조 의혹과 관련한 민감한 내용이 공개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 연방수사국(FBI)의 9·11 테러 조사와 관련한 문건에 대한 기밀해제 검토를 법무부 등에 지시했다며 향후 6개월에 걸쳐 기밀해제된 문서가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역사상 미국인에 대한 최악의 테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2977명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계속된 고통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며 “행정부는 정중하게 이들 공동체 구성원과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뉴욕 무역센터와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 등을 공격하는 바람에 3000명 가까운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20년 만인 지난달 30일 미군 철수를 완료하며 미국의 최장기 해외 전쟁을 끝냈다. 9·11 피해자와 유족은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9·11에 개입한 의혹을 제기하며 관련 문건 공개를 요구했다. 이들은 뉴욕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뒤 미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두 명의 비행기 탈취범이 공격에 앞서 사우디 외교관의 환대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사우디 당국이 중요한 지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FBI가 탈취범과 사우디를 연결하는 증거에 관해 거짓말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잃어버렸거나 없애버렸다고 주장하며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과거 미국 정부의 조사는 일부 사우디 국적자와 비행기 탈취범의 관계를 개략적으로 설명했지만 사우디가 직접 연루됐는지는 분명히 하지 않았다. 물론 사우디 정부는 어떤 연관성도 부인해 왔다. 그랬는데 지난달 법무부는 FBI가 비행기 탈취범과 공모 의심자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최근 끝냈다며 이전에 공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약 1800명의 유족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관련 문건의 기밀해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올해 9·11 추모식에 참석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P통신은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사우디 정부의 연루 기록을 오랫동안 찾아온 희생자 가족을 지지하는 몸짓이라면서도 기밀해제가 가져올 실질적 영향이 얼마나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 미군 2400명 희생·2조 달러 부었지만… 테러로 시작한 전쟁, 테러로 끝났다

    미군 2400명 희생·2조 달러 부었지만… 테러로 시작한 전쟁, 테러로 끝났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미국 본토 공격인 ‘9·11 테러’로 인해 발발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30일(현지시간) 미군 철수를 기점으로 종료됐다. 20년간 이어지며 미국 역사상 최장 전쟁이 된 아프간전에선 군경 7만 8310명, 민간인 7만 5970명, 탈레반 등 반군 8만 4190명이 사망했다. 2400명이 넘는 미군 사망자도 포함된 수치다. 또 미국 브라운대 전쟁비용프로젝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미국이 들인 아프간전 비용은 2조 2610억 달러(약 2653조원)에 달한다. 당초 미국의 표적은 탈레반이 아니었다. 1996년 이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정부가 9·11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넘기라는 미국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아프간 공습이 단행됐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다음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한 달이 채 못 돼 미영 연합군이 ‘항구적 자유’란 작전명으로 아프간을 공습할 때까지 이 전쟁의 20년 장기화를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마치 걸프전 때의 속도전을 방불케 하듯 미군은 공습 한 달여 만인 2001년 11월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했고, 12월엔 아프간 과도정부 수립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탈레반이 축출됐을 뿐 표적인 빈라덴은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아프간전 최초 목표였던 빈라덴 사살은 부시의 후임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완수됐다. 2011년 5월 1일 미군 특수부대가 빈라덴을 사살, 수장시키는 작전을 전개했는데 작전지는 아프간이 아닌 파키스탄이었다. 전쟁 발발 10년 만에 빈라덴 제거 목표를 완수했지만, 이미 이 전쟁의 목표는 ‘탈레반 소멸’ 및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한 아프간 정부 수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에 빈라덴 사살 뒤 3년 만에 아프간전쟁 종료 계획을 세워 발표했던 오바마는 아프간 정부의 지리멸렬함 때문에 임기 막바지 종전 계획을 철회했다. 미군의 해외 주둔 자체를 싫어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가 되며 종전 협상은 궤도에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미군을 안전하게 철수시킬 방법을 논의했다. 지난해 초 트럼프는 올해 5월을 아프간 철군 시점으로 못박았다.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8월 말로 시기를 바꿔 철군 결정을 계승했다. 이후 미군 철수가 본격화된 뒤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이 빠르게 이뤄졌다. 빈라덴 사살 전까지 전쟁의 첫 10년 동안 미군은 아프간전쟁의 성과로 탈레반 정권 축출을 내세웠지만, 결국 종전 시점이 되자 탈레반은 아프간을 재장악했다. 애초의 전쟁 목표였던 빈라덴 사살은 개별 작전을 통해 완수됐다. 아프간전쟁을 두고 ‘미국의 목표가 불명확했던 전쟁’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20년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축하는 없었다’

    20년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축하는 없었다’

    30일 밤 11시 59분에 마지막 미군 수송기 철수16일간 미국인 6000명 포함 12만 3000명 대피미국인 100명 정도 귀국 못해 향후 큰 논란 될듯 카불공항에서 170여명 사망한 자폭테러 큰 오점 ‘테러와의 전쟁’ 끝날지 여부 등은 아직 알수 없어미국이 2001년 9·11 테러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30일(현지시간) 끝냈다. 30일 밤 11시 59분 미군의 C-17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어떤 축하행사도 없었다. 미국의 각종 오판으로 철수 중 큰 인명피해가 났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IS-K)의 지난 26일 카불 공항 자폭테러에 대해 미국은 지속적인 보복을 선언한 상태여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지도 아직 미지수다. AP통신, USA투데이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지는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이날 국무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밝혔다. 그는 예고됐던 철수 시점인 31일을 불과 1분 앞두고 미군 수송기가 카불에서 이륙하면서 철수를 완료했다며, 지난 14일 이후 아프간 대피작전으로 총 12만 3000여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이중 미국인은 6000명이었고, 시간 내에 카불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대피하지 못한 미국인은 100명 수준이라고 했다. 이날 미군의 철수 완료로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을 통제하는 한편 완전 독립을 이루게 됐다. 20년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한 것이다. 여성인권 하락 등의 우려가 나온다. 2001년 아프간을 장악했던 탈레반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아프간전이 시작됐다.당시 아프간전 개시 법안은 상원에서 ‘98대 0’, 하원에서 ‘420대 1’로 압도적이고 초당적으로 통과됐고, 미군은 불과 한 달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군이 빈 라덴을 사살한 건 무려 10년 뒤인 2011년이었고, 아프간전은 14년간 치른 베트남전의 기록을 넘어서 20년간 계속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에 탈레반과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맺었고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시점을 8월말로 연기했다. 이 와중에 바이든은 2014년 종전선언을 한 뒤 테러조직의 공격 재개로 아프간에 회군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를 감안한 듯 ‘무조건 철수’를 못박았다. ‘테러세력 약화’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했으니, 아프간 내전을 위해 더 이상 청년들의 희생과 돈을 소모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각종 지원에도 민주주의, 치안안정, 투명성, 여권신장 등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각종 오판은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트럼프와 다를 것이라던 바이든의 미국 역시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바이든은 “미국이 20년간 30만명의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켰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프간 정부가 월급을 더 타내려 장부를 눈속임한 것에 불과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지난 22일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의 점령까지 수개월에서 2년은 걸릴 것으로 봤지만 “약 11일 동안 일어났다”며 오판을 시인했다.특히 미국은 민간인보다 미군을 먼저 철수시키는 실수를 했다. 지난 7월 1일 12만명이 상주하는 소도시급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하면서 정보자산 및 요충지도 잃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군기지가 아니라 테러 대응이 힘든 카불 공항으로 철수 루트를 일원화하면서 IS의 자살폭탄테러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결과 전세계는 1975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 주재 미 대사관 옥상에서 미국인들이 쫓기듯 헬기로 대피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아프간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됐고, ‘사이공 패배의 재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프간전은 끝났지만 미국의 퇴장으로 알카에다, IS 등이 아프간이라는 은신처를 얻었다는 점에서 향후 테러리즘의 득세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의 총 희생자는 약 17만명이고, 미군 사망자는 2400명을 넘는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약 1165조원)에 이른다.
  •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종합)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종합)

    미국의 최장기 해외전쟁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의 전쟁이 30일(현지시간) 20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무장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서 촉발된 아프간전은 이날 미국이 미군 철수와 민간인 대피 완료를 선언함에 따라 공식 종료했다. 철수시한 31일 1분 앞두고 마지막 수송기 이륙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 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맥킨지 미 중부사령관은 국무부 브리핑에서 미군의 마지막 비행기인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이륙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철수 시한으로 정한 31일을 불과 1분 앞두고 철수를 완료한 것이다. 맥킨지 사령관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미국인 6천명 아프간 탈출…“100명 미만 탈출 못해”대피 작전이 본격화한 지난 14일 이후 12만 3000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지금까지 6000명의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밝힌 가운데 맥킨지 사령관은 100명에 못 미치는 미국인이 탈출을 희망했지만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이를 축하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9·11테러 배후 빈라덴 인도 거부하며 전쟁 시작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집권 중이던 탈레반이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개시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웠고, 이후 2011년 5월 당초 전쟁의 직접 계기였던 빈 라덴까지 직접 사살했지만, 아프간 전쟁의 수렁은 깊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산악 지대와 인접국을 오가며 테러와 저항을 이어나갔고, 새 아프간 정권의 통치는 불안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철군 결정을 뒤집지 않고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탈레반 빠르게 카불 장악…철군 일정 어그러져그러나 미국이 최소 연말까지는 친미 성향의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의 공격을 버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수도 카불을 향해 진격하는 가운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수뇌부가 저항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피하면서 정부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결국 탈레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수도 카불을 장악했고 지난 15일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이에 미국의 철군 일정은 물론 민간인 대피에도 큰 혼선이 빚어졌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전쟁 비용 1조 달러 미국-아프간 탈레반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다. 아프간전은 미국과 아프간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 6000명), 탈레반 반군(5만 1000명), 아프간 민간인(4만 7000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군 역시 2448명이 숨졌고,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요원 3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144명 등 미국과 동맹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특히 미국이 20년간 쏟아부은 전쟁 비용이 1조 달러(1165조원)에 달한다.
  •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

    미국 최장기 해외전쟁이 끝났다…아프간 철군 완료

    미국 국방부는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에 따라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9·11 테러에서 촉발된 미국과 아프간 탈레반과의 20년 전쟁이 이날부로 공식 종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 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맥킨지 미 중부사령관은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을 이륙했다고 밝혔다. 맥킨지 사령관은 이날 국방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밝혔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이를 축하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집권 중이던 탈레반이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개시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웠고, 이후 2011년 5월 당초 전쟁의 직접 계기였던 빈 라덴까지 직접 사살했지만, 아프간 전쟁의 수렁은 깊었다. 탈레반은 아프간 산악 지대와 인접국을 오가며 테러와 저항을 이어나갔고, 새 아프간 정권의 통치는 불안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철군 결정을 뒤집지 않고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 동맹외교 흔들·테러집단 득세… 커지는 美의 아프간 철군 비용

    동맹외교 흔들·테러집단 득세… 커지는 美의 아프간 철군 비용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과 올해 5월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에 합의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1조 달러(약 1170조원)를 쏟아부었고 2400명의 미군도 희생됐지만, 자립 의지도 없던 아프간 정부는 국가 재건은커녕 부정부패로 몰락했다. 올해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시점을 8월 말로 연기했다. 2001년 9·11 테러 20주년 추모일 즈음에 ‘테러와의 전쟁’을 끝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였다. 바이든은 ‘언제까지 미국이 희생해야 하냐’고 외쳤지만 현 상황을 보면 미국이 지불해야 할 유무형의 철군 비용이 주둔 비용보다 적을지 의심스럽다.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은 쫓기듯 헬기에 올랐고, 피란민이 몰려들던 카불 공항은 이슬람국가(IS)의 자폭 테러로 170여명이 사망하는 생지옥이 됐다.미국의 ‘슈퍼 파워’는 실추됐고 미 동맹들은 아프간의 민주주의를 포기한 바이든에게 ‘미국이 돌아왔다’는 기치가 진짜였는지 묻고 있다. ‘이길 수도, 멈출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아프간 전쟁’을 20년 만에 끝내겠다며 ‘조건 없는 철군’을 선언한 바이든은 정말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4명의 미국 대통령이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 앞에 바이든 역시 서 있다.바이든은 2014년 종전선언을 한 뒤 테러 조직의 공격 재개로 아프간에서 회군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를 고려한 듯 ‘무조건 철수’를 못박았다. ‘테러세력 약화’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했으니 아프간 내전을 위해 더이상 청년들의 희생과 막대한 비용 지출을 감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각종 지원에도 민주주의, 치안안정, 투명성, 여권신장 등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9·11 테러 이후 20년이 흐르면서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던 이유는 희미해졌고 미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늘어만 갔다. 지난 7월 폴리티코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의 59%가 아프간 철군에 ‘찬성’해 ‘반대’(25%) 응답의 2배가 넘었다. 아프간 철군 자체는 미 국민들의 대체적인 요구였다. ●9·11 보복 및 추가 테러 막을 수단이었던 전쟁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프간 전쟁의 개전 이유를 잊은 것을 바이든 행정부의 근본적 오판으로 본다. 2001년 당시 아프간전 개시 법안은 상원에서 ‘98대0’, 하원에서 ‘420대1’로 압도적이고 초당적으로 통과됐으나 당시에도 미군이 ‘테러 근절’에 성공할 거라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이 불가피했고, 무엇보다 전쟁은 추가 테러를 방지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칼럼에서 “미국을 아프간전으로 밀어넣은 건 (테러와의 전쟁에서 쉽게 이길 거라는) 미국의 자만심이 아니라 (테러가 계속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고 회고했다. 미국은 전쟁 개시 불과 한 달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내고 새 정권을 세웠지만, 미국인들의 승전에 대한 기대는 외려 떨어졌다. 퓨리서치센터가 2002년 9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65%로 2001년 10월(83%)보다 크게 낮았다. 결과적으로 미군이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건 무려 10년 뒤인 2011년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은 14년간 치른 베트남전의 기록을 넘어 20년간 계속됐다. ●빈라덴 10년 만에 사살… “전쟁 안 끝나” 바이든은 아프간에서 ‘테러세력 약화’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전쟁을 시작한 2001년부터 5년간 국방장관을 지낸 폴 울포위츠는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미국이 그만뒀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했으니 IS나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이 은신처를 얻게 됐고, 전쟁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프간전의 명분이었던 소위 ‘체제 전환’(테러 근절을 위한 타국의 민주화) 구상 역시 실패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인터넷매체 복스의 창립자인 에즈라 클레인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졌던 아프간, 이라크, 예멘, 소말리아, 리비아 등의 상황은 오늘날 더 안 좋아졌다”며 미군 개입이 상황을 개선시킨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주둔 비용에 크게 민감해진 미국 내 상황에만 천착한 것인지 바이든 행정부는 철군 비용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했다. 바이든의 신념으로 인한 오판은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트럼프와 다를 것이라던 바이든의 미국 역시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 있다’는 신호를 줬다. 바이든은 “미국이 20년간 30만명의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켰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프간 정부가 월급을 더 타내려고 장부를 눈속임한 것에 불과했다. 미군 철수 후 탈레반의 점령까지 최대 2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불과 11일 걸렸다”며 뼈아프게 오판을 시인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실책은 민간인보다 미군을 먼저 철수시킨 것이다. 지난 7월 1일 12만명이 상주하는 소도시급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하면서 정보자산 및 요충지도 잃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군기지가 아니라 테러 대응이 힘든 카불 공항으로 철수 루트를 일원화하면서 IS의 자살폭탄테러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탈레반이 여름에는 아프간에서, 겨울에는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것을 알면서도 철군 시점을 8월로 잡았고, 트럼프는 아프간 정부를 아예 배제한 채 탈레반과 철군 협상에 합의해 아프간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렸다. 그 결과 전 세계는 1975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 주재 미 대사관 옥상에서 미국인들이 쫓기듯 헬기로 대피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아프간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됐고, ‘사이공 패배의 재연’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동맹’ 외교도 흔들릴 수 있다. 2005년부터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는 최근 WP 기고에서 ‘북한 위협 억지 차원에서 70년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며 아프간 철수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많은 아프간인이 미군을 도와 탈레반과 싸우다 희생됐다며 “아프간은 탈레반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계 경찰의 퇴장으로 인한 테러리즘의 득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군 철군 와중에 170여명이 희생된 카불 공항의 자폭 테러는 어쩌면 예고편일지 모른다. 테러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막아야 하는 힘든 싸움이다. 미국은 이번 테러 직전에 위급한 보안상 위협이 있다며 공항 인근에 접근하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테러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WP 칼럼니스트인 마크 시센은 지난 27일자 칼럼에서 “31일 철수는 테러집단이 더 많은 공격을 감행할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다. 베이루트 참사의 교훈은 나약함이 (테러집단의) 도발을 자극한다는 것”이라며 철군 시한을 연장하라고 촉구했다. 베이루트 참사는 1983년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자폭 테러로 베이루트에 있던 미 해병대 막사를 폭파시켜 241명의 군인이 사망한 것을 말한다. 이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선택은 전쟁이 아니라 이듬해 진행한 해병대 철수였다. ‘강한 미국’이 무너지기 시작한 상징적인 순간이자 알카에다가 9·11 테러를 계획하도록 미국이 여지를 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이번에도 아프간 철수로 끝을 맺을 경우 더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복수의 칼날’에 IS-K 고위급 2명 사망… 바이든 “마지막 아냐”

    ‘복수의 칼날’에 IS-K 고위급 2명 사망… 바이든 “마지막 아냐”

    페르시아만서 날아온 무인기 리퍼에 실려화약 대신 6개 대형 칼날 펼쳐 초정밀 타격2017년 알카에다 2인자 제거 때 첫 사용IS-K, 이슬람 극단주의자… 탈레반도 공격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대해 미국이 보복 공격을 위해 꺼낸 건 칼날로 초정밀 타격하는 변형 헬파이어 미사일이었다. 미측은 추가 보복을 예고했지만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테러집단인 호라산이 맞대응 격으로 또 다른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의 보복성 공습으로 “2명의 호라산 고위급이 사망했고 한 명이 다쳤다.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다”며 “페르시아만에서 날아온 무인기 리퍼가 변형 헬파이어 미사일을 사용해 공격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호라산의 기획자 및 협력자 등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이날 설명했다. ‘닌자 미사일’로 불리는 변형 헬파이어는 화약 폭발 대신 6개의 대형 칼날이 펼쳐진다. 첨단추적장치로 운전사를 피해 뒷좌석 탑승자를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무기로, 공습 시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려 개발됐다.2017년 미 중앙정보부(CIA)가 시리아에서 드론을 사용해 알카에다의 2인자를 살해했을 때 첫선을 보였고 이후 아프간,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에서 테러단체 수장을 제거할 때 사용됐다.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공격용 무인기 리퍼는 헬파이어 미사일 14발을 탑재할 수 있다. 완전무장한 상태에서 14시간을 비행할 수 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482㎞다. 미국은 리퍼와 헬파이어의 조합으로 누구라도 조용히 살해할 수 있는 셈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극악무도한 공격에 연루된 누구든 계속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호라산에 대한 추가 공습을 예고하는 한편 호라산의 반격성 테러를 우려했다. 호라산은 지난 26일 카불 공항의 자살폭탄테러 때 미군뿐 아니라 아프간 민간인과 탈레반 등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사망자만 2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탈레반보다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며, 엄격한 이슬람 방식을 고수하지 않으면 이슬람단체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본래 2015년 파키스탄 및 아프간의 탈레반 내 불만세력이 만든 IS의 지부로 아프간 북동부 지역 등에서 1500~2200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더힐이 전했다. 호라산이라는 이름도 ‘태양의 땅’이라는 의미로 아프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일부 지역을 아우르던 역사적 지명이다. 유엔에 따르면 호라산의 테러 공격은 지난해 21건이었는데 올해 4월까지 77건으로 급증했다. 여성교육에 반대하는 호라산은 지난 5월 카불의 한 여고에 폭탄테러를 자행했고 이로 인해 90명의 여학생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 ‘복수의 칼날’에 IS-K 고위급 2명 사망… 바이든 “마지막 아냐”

    ‘복수의 칼날’에 IS-K 고위급 2명 사망… 바이든 “마지막 아냐”

    페르시아만서 날아온 무인기 리퍼에 실려화약 대신 6개 대형 칼날 펼쳐 초정밀 타격2017년 알카에다 2인자 제거 때 첫 사용IS-K, 이슬람 극단주의자… 탈레반도 공격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대해 미국이 보복 공격을 위해 꺼낸 건 칼날로 초정밀 타격하는 변형 헬파이어 미사일이었다. 미측은 추가 보복을 예고했지만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테러집단인 호라산이 맞대응 격으로 또 다른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미국의 보복성 공습으로 “2명의 호라산 고위급이 사망했고 한 명이 다쳤다.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다”며 “페르시아만에서 날아온 무인기 리퍼가 변형 헬파이어 미사일을 사용해 공격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호라산의 기획자 및 협력자 등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이날 설명했다. ‘닌자 미사일’로 불리는 변형 헬파이어는 화약 폭발 대신 6개의 대형 칼날이 펼쳐진다. 첨단추적장치로 운전사를 피해 뒷좌석 탑승자를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무기로, 공습 시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려 개발됐다. 2017년 미 중앙정보부(CIA)가 시리아에서 드론을 사용해 알카에다의 2인자를 살해했을 때 첫선을 보였고 이후 아프간,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에서 테러단체 수장을 제거할 때 사용됐다. ‘하늘의 암살자’로 불리는 공격용 무인기 리퍼는 헬파이어 미사일 14발을 탑재할 수 있다. 완전무장한 상태에서 14시간을 비행할 수 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482㎞다. 미국은 리퍼와 헬파이어의 조합으로 누구라도 조용히 살해할 수 있는 셈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극악무도한 공격에 연루된 누구든 계속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호라산에 대한 추가 공습을 예고하는 한편 호라산의 반격성 테러를 우려했다. 호라산은 지난 26일 카불 공항의 자살폭탄테러 때 미군뿐 아니라 아프간 민간인과 탈레반 등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사망자만 200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탈레반보다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며, 엄격한 이슬람 방식을 고수하지 않으면 이슬람단체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본래 2015년 파키스탄 및 아프간의 탈레반 내 불만세력이 만든 IS의 지부로 아프간 북동부 지역 등에서 1500~2200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더힐이 전했다. 호라산이라는 이름도 ‘태양의 땅’이라는 의미로 아프간, 파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일부 지역을 아우르던 역사적 지명이다. 유엔에 따르면 호라산의 테러 공격은 지난해 21건이었는데 올해 4월까지 77건으로 급증했다. 여성교육에 반대하는 호라산은 지난 5월 카불의 한 여고에 폭탄테러를 자행했고 이로 인해 90명의 여학생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 “바그람 기지만 있었어도”… 폭탄테러에 美 ‘때늦은 탄식’

    “바그람 기지만 있었어도”… 폭탄테러에 美 ‘때늦은 탄식’

    7월 전략요충지 바그람 공군기지부터 철군탈레반 정찰자산 제한에 아프간군 사기 저하바그람에 갇혀있던 알카에다, IS 등 석방돼공화 “최대 실수”… 바이든 “군의 결정” 해명지난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의 피해자가 200명에 육박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테러 대응이 힘든 민간공항을 이용해 피란을 시켜야 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 7월 1일 포기한 아프간 내 ‘바그람 공군기지’만 있었으면 피해를 크게 줄이면서 대피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뉴스위크는 2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한데 대한 비판은 물론 재탈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공화당 소속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이번 대참사의 가장 큰 실수는 바그람 기지를 포기한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카불 공항의 대안으로 바그람에 다시 주둔할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최근 한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이란, 중국에 모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그람 기지를 지켰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이 이어지자 바이든은 최근 “(바그람 기지 포기는) 군의 결정이었다. 그들은 바그람 기지가 별 가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며 “카불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 권고를 따랐다”고 해명했다. 앞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바그람 확보에 상당한 군사적 노력이 필요한데,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사관이 제 기능을 하도록 대사관을 지키는 것이었다”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이 지난 7월 1일 가장 큰 전략자산으로 평가되던 바그람 기지를 포기한 것은 아프간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역할도 했다. 이번 철군에서 가장 큰 규모가 아프간을 떠난 바그람 철수는 한밤에 조용히 이뤄졌다. 또 바그람 기지 포기로 탈레반에 대한 공습 및 정찰 능력은 제한됐다. 탈레반은 이곳을 점령한 뒤 수용됐던 5000여명의 재소자들을 석방했고, 그중에는 알카에다 및 이슬람 국가(IS) 조직원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기 100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바그람 기지는 무려 12만명이 거주해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미군이 남긴 수백대의 장갑차, 병사이동용 버스 등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아프간에 지원했던 총 100조원 상당의 군 자산이 탈레반 손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 카불 치안 책임자 칼릴 하카니, IS 죄수들 풀어줘 위험 불러들여

    카불 치안 책임자 칼릴 하카니, IS 죄수들 풀어줘 위험 불러들여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자국민과 미군 등을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 희생자가 170명 안팎으로 늘어난 가운데 현재 카불의 치안을 책임지는 인물이 누구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탈레반 내 이른바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끄는 칼릴 우르라흐만 하카니이며, 그는 카불에 입성하기 전 감옥을 습격해 수천명의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을 풀어준 일에 간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탈레반 지도자라고 미국 NBC 뉴스가 27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하카니는 10년 전 미국 정부가 체포할 수 있는 실마리를 건네주는 이에게 500만 달러 현상금을 내걸었던 테러 용의자다. 그랬던 그가 지난 22일 알자지라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우리가 초강대국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아프간 사람들에게 안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6시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테러 참극은 그의 확신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 정부 관리들은 이번 테러를 IS 이라크시리아(IS)-호라산(Khorasan)이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은 탈레반과 경쟁 관계인 IS가 그럭저럭 탈레반과 잘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했다. 따라서 이번 공격은 탈레반이 수도의 안전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탈레반 간부들은 미국 N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카불로 진격하는 과정에 치안을 어지럽힐 목적으로 교도소들을 습격해 죄수들을 풀어놓았다고 털어놓았다. 그 와중에 바그람 공군기지 안에 구금돼 있던 강성 IS 전사들이 풀려났다. 두 탈레반 지도자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가장 큰 실수가 “수천명의 죄수를 석방한 일인데 그 중에는 강경 IS 지휘관들, 훈련 교관들, 폭탄제조자들이 있다. 아주 훈련된 인물들로 스스로 잘하는 이들”이라고 털어놓았다. 굉장히 끔찍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 같다.탈레반 자체는 한 번도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목된 적이 없지만 알카에다는 물론 파키스탄 정보기관들과 밀접한 하카니 네트워크는 오랫동안 달랐다. 미국 관리들은 하카니 네트워크가 잘 조직된 범죄가문처럼 움직인다고 봤다. 미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해 뜯어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벌여왔다. 2018년 은퇴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대테러 작전에 참여했던 더그 런던은 칼릴 하카니가 이 그룹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며 미군과 아프간 민간인들을 겨냥한 자폭테러를 승인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과거 소련 침공에 탈레반이 맞서 싸울 때 CIA와 협력해 무기를 얻어내고 훈련 교범을 받는 등 협력자이기도 했다. 그가 미국 정부에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것은 2011년에 이르러서였다. 미 국무부가 현상금을 건 이유로 든 것이 “알카에다를 대신해 움직이며 알카에다 테러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것이었다. 새 책 ‘리크루터(모집책)’를 쓴 런던은 “그는 알카에다 지도부가 (탈레반에 심어놓은) 고위 간첩이었으며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거간꾼(go-between)이었다”면서 “그는 하카니 네트워크를 위해 수많은 세세한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CIA 협력자였으나 지금 CIA는 하카니 전사들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의 조카 시라주딘 하카니 역시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삼촌과 같은 현상금이 걸려 있다. CIA의 무인 항공기는 파키스탄을 공습해 하카니 조직원들을 노리곤 했다. 2011년 마이크 물렌 장군은 의회에 출석해 하카니 네트워크는 파키스탄 정보기관 ISI의 “진짜 팔(veritable arm)”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물이 카불 치안을 책임지고 있으니 카불 참사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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