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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알제리 망명설? 끝까지 싸운다”

    알제리 망명설이 나돌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1일 반군에 항복할 뜻이 없으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카다피는 이날 시리아의 알라이TV에서 방송된 음성 녹음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반군에 대한 저항을 유지하도록 촉구했다. 앞서 알제리 현지 신문 엘 와탄은 카다피가 알제리의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리비아 서쪽 끝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가다메스에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무라드 메델치 알제리 외무장관은 프랑스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알제리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도 트리폴리 등 리비아 국토의 대부분을 장악한 반군 지도부는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의 항복 시한을 3일에서 10일로 일주일 연장했다. 반군은 카다피가 남부 사막도시 바니 왈리드에 은거 중일 것으로 지목하고 추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의 아들들 사이에서 ‘결사항전’과 ‘막후협상’의 상반된 메시지가 나오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다피의 차남이자 독재정권의 2인자인 사이프 이슬람은 지난달 31일 알라이TV에서 방송된 음성 녹음에서 “우리는 저항을 계속할 것이며 승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수도 트리폴리 교외에 있다면서 시르테에서 2만명의 카다피군이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3남인 알사디는 전날 압델 하킴 벨하지 반군 사령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반군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한편 1일 파리에서 열린 일명 ‘리비아의 친구들’ 회의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리비아 사태에 미온적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대표도 참석했다.국제사회는 리비아가 민주국가 수립 과정에서 피의 보복을 일으킨 이라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효율적인 지원 방안 등을 협의했다. 유럽연합(EU)은 은행과 항만을 포함한 28개 리비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카다피 일가, 흩어져야 산다?

    카다피 일가, 흩어져야 산다?

    리비아 반정부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가족 일부가 29일(현지시간) 이웃 국가인 알제리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다피와 다른 자녀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황상 이들은 리비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반군은 30일 카다피 측에 나흘 안으로 항복하라고 최후 통첩을 전달했다. 알제리 외교부는 카다피의 부인 사피야와 장남 무함마드, 5남 한니발, 딸 아이샤, 그리고 손주들이 알제리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알제리 대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카다피 가족의 입국을 허용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알제리행 가능성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마흐무드 샤만 과도국가위원회(NTC) 대변인은 “우리는 카다피 가족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적대행위”라며 알제리 측에 송환을 요구했다. 알제리는 리비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반정부 시위 초기부터 카다피 측에 용병을 보내는 등 친(親)카다피 국가로 알려져 트리폴리 함락 이후 카다피 가족의 유력한 도피처로 거론돼 왔다. 알제리가 카다피와 그 가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에 관한 로마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이들의 도피는 카다피가 완전히 힘을 잃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보도했다.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 이슬람, 3남 사디는 리비아를 빠져나가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났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리비아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들이 트리폴리와 시르테 사이에 있는 바니 왈리드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반군 측은 그동안 몇 차례 사망설이 제기됐던 막내 아들 카미스가 지난 27일 트리폴리 근처 타르후나에서 반군의 공격을 받아 숨졌다고 밝혔으나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반군의 심리전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ICC가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에 이어 카미스 역시 1급 수배자 명단에 올려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카다피 진영의 마지막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반군은 시르테의 부족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 부족들은 항복할 기미 없이 삼엄하게 무장한 채 결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29일 시르테로 진입하는 길목과 남서부 도시 세바, 바니 왈리드 등지에서는 심각한 교전이 벌어졌다. 카다피 측은 시르테 진입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정예 부대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의 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의사회’(PHR)는 카다피 친위부대가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에서 어린이를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살인과 고문 등 각종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를 30일 발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호텔 같네”…리비아 카다피 전용 비행기 공개

    “하늘을 나는 별 다섯개 호텔같네.”  리비아 트리폴리 남부의 국제공항을 장악한 반카다피군이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전용비행기를 공개했다. 이 전용기는 에어버스 A340기종으로 카다피측 주문에 따라 특별 개조됐다. 전용기의 내부는 화려하다. 퀸사이즈의 가죽 침대와 응접실, 샤워장, 바 등이 갖춰져 있으며 응접실에는 큰 소파에서 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기기가 마련돼 있다. 이 전용기의 정비사는 “카다피 원수와 친족 및 가족이 주로 이 전용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반카다피군 측이 이처럼 전용기를 공개한 것은 42년 동안 리비아를 지배해 온 카다피 독재의 흔적을 낱낱히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반카다피군 측은 카다피의 화려한 관저를 공개한 바 있다. 한편 카다피의 가족은 알제리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제리 외무부는 29일 “카다피의 아내 사피아 파르카시와 딸 아이샤, 두 아들인 무하마드와 한니발이 알제리-리비아 국경을 통해 알제리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카다피의 행방은 리비아에 체류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방탄차 6대 알제리로”… 카다피 일가 망명?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한 리비아 반군이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카다피가 인근 알제리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진격을 눈앞에 둔 반군은 수도 트리폴리에서 물과 식량, 연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비아와 서쪽으로 맞댄 알제리 국경의 반군들은 26일(현지시간) “방탄 메르세데스 차량 6대가 행렬을 이루며 리비아에서 알제리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고 이집트 국영통신 메나가 보도했다. 고급 차량들은 친(親)카다피 성향 유목민 부대의 호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군 소식통은 “이 차량에 리비아 고위 관리들, 아마 카다피나 그의 아들들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반군은 무기와 장비가 부족해 차량을 추적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전문가들은 카다피의 유력한 망명지로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과 함께 알제리를 꼽았다. 알제리 외교부는 카다피의 자국 도주설에 대해 “근거 없는 정보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짐바브웨에서도 카다피를 목격했다는 야권 정치인들의 주장이 나오는 등 망명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카다피의 대변인인 무사 이브라힘은 “카다피가 여전히 리비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카다피 측은 반군에 협상을 하자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반군이 거절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반군이 입성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트리폴리의 주민들은 연료와 물, 식량 부족에 더해 곳곳에서 시체가 썩어 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특히 전투와 학살로 숨진 이들의 시체가 무더위 속에 치워지지 않은 채 부패하면서 전염병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크리스천 올슨 유니세프 리비아 사무소장은 “물 부족 등이 트리폴리에서 전례 없는 (전염병) 대유행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카다피 측 저격수들이 트리폴리 건물 옥상 곳곳에 여전히 숨어 있어 환자와 의료 인력의 병원 접근이 어렵다는 증언도 나온다. 반군을 돕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카다피의 마지막 버팀목인 시르테 지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 26~27일 차량 15대 등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반군 측도 시르테 서쪽 30㎞까지 진격에 성공했으며 동쪽으로는 100㎞ 떨어진 빈 자와드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L)은 28일 회의를 열고 유엔 등에 “리비아 자산 동결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가스관/임태순 논설위원

    러시아는 천연가스 대국이다. 세계 매장량의 4분의1가량인 47조㎥가 러시아에 묻혀 있다. 연 생산량은 4900억~5000억㎥로 세계 생산량의 20%가량을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북극해의 미탐사 지역이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베리아 지역 가스전까지 합산하면 매장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가 지난 2008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에 버금가는 가스수출국포럼(GECF)을 만들어 가스생산국의 맹주 노릇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석유는 고갈속도가 빠르지만 천연가스는 여유가 있어 향후 100년 정도를 감당할 수 있다. 또 화석연료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은 데다 가격도 석유의 10분의1을 밑돌아 미래 청정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24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러 가스관 설치위원회를 만들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은 지난 2008년 한국 가스공사와 러시아 국영회사 가즈프롬이 연 최소 100억㎥를 공급하기로 양해각서를 교환한 뒤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 천연가스를 해상이 아닌 배관망을 통해 공급하면 물류비가 70% 정도 덜 들어 한·러에 이익이 되고, 북한은 연 1억 달러의 가스통행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3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배관망 건설. 러시아~유럽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자국 내 배관망은 그 나라에서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제난이 심각한 북한이 막대한 사업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페인은 알제리의 가스를 들여오면서 통과국인 모로코의 배관망을 건설해주고 일정기간 사용하고 난 뒤 기부채납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우리도 참고할 만한 방식이다. 가스 공급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담보하느냐도 중요하다. 유럽국가들은 지난 2009년 러시아의 가스 중단 조치로 큰 불편을 겪었다. 러시아는 당시 중간경유지인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공급가 및 통행비 협상이 결렬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으로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남북관계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란 어렵다. 가스 공급 중단이 비일비재하면 사업의 의미는 반감되고 만다. 어떠한 경우든 우리나라, 북한,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인 부분이다. 가스관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남북관계 해빙의 파랑새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카다피 어디있나

    카다피 어디있나

    리비아 반군이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트리폴리 관저 주변까지 진격한 가운데 카다피의 행방에 전 세계와 언론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반군은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알사디를 생포했지만 카다피의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과 튀니지로 망명할 것” 카다피는 전날 밤 국영TV가 방송한 녹음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트리폴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거듭 밝혔으나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날 아프리카 연합이 카다피에게 앙골라나 짐바브웨 망명을 권유했으며, 트리폴리 공항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행기 2대가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마이테 은코아나 마샤바네 남아공 외무장관은 카다피가 아닌 자국 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아공 외교부는 카다피가 리비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비아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 대변인 마흐무드 샴만은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행방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있지만, 나는 그가 알제리 국경 부근에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AFP통신은 최근 2주일간 카다피를 만났다는 한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아직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42년 철권통치 권력의 강제 퇴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카다피 최후의 선택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반군의 손에 잡히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려면 해외 망명과 국내 은신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은신땐 고향 시르테 유력 현재로서 유력한 망명국가는 튀니지다. 튀니지는 리비아 서쪽과 국경을 접한 나라로 내전이 격화되던 지난 5월 카다피의 부인과 딸이 도피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해외 망명이 어렵다면 국내에서 은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카다피가 이미 고향인 시르테나 남부 사막기지에 은신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카다피가 최후의 순간까지 트리폴리에서 은신하며 기약 없는 후일을 도모하는 방법도 있다. 막판 궁지에 몰리면 자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빛고을서 월드뮤직 향연

    빛고을서 월드뮤직 향연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명기(名器)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연주한 최초의 재즈 아티스트 레지나 카터,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 3차례나 오른 라틴 밴드 티엠포 리브레(쿠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각 나라의 민속음악에 뿌리를 두되 대중과 접목하는 음악을 월드뮤직이라고 일컫는다면, 하나의 범주에 묶을 만한 거물들이다. 오는 26일부터 사흘간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2011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는 이들을 비롯해 월드뮤직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 사흘 내내 뿌리는 빗속에서도 2만여명을 불러모았던 지난해보다 출연진 면면이 훨씬 풍성해졌다. 우선 눈에 띄는 이는 미국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카터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로린 힐, 빌리 조엘과의 콜래버레이션(협업)으로 경력을 쌓았다. 특히 2001년 12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애지중지했던 과르네리를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2003년에는 ‘파가니니: 애프터 어 드림’이란 앨범을 내놓았다. 쿠바 최고의 음악학교인 라 에나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7명의 사내가 뭉친 티엠포 리브레 역시 놓치면 후회할 법하다. 2009년 ‘바흐 인 아바나’ 앨범에 바흐의 고전음악과 아프로 쿠반 리듬의 융합을 시도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을 꿈꾸는 쿠바 음악의 계승자들이다. ‘미궁’ 같은 전위적인 곡들로 가야금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인 황병기 교수는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터. 국내 뮤지션 중에는 민요와 판소리, 굿소리 등 전통음악을 새롭게 풀어낸 국악보컬 그룹 아나야를 주목할 만하다. 2006년 결성 이후 숱한 실전을 통해 내공을 끌어올린 이들은 지난 3월 미국에서 공식 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퍼포먼스 그룹 바투카다 사운드 머신과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뮤지션 아마지그 카텝, 사하라 지역을 포괄한 북아프리카에서 인기몰이 중인 니제르 출신 오마라 목타 봄비노 등의 공연도 볼 만하다. 일정은 홈페이지(http://gjwmf.com/index1/) 참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회담중 파리 날아와도 눈 깜짝 않는 ‘냉혈한’

    회담중 파리 날아와도 눈 깜짝 않는 ‘냉혈한’

    ‘부드러운 카리스마…선비형 외교관’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 대한 한국 외교가의 주된 평가다. 그는 전임 강석주 외무상(현 부총리)에 비해 유연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6자회담에서 그를 지켜봐 온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시골아저씨처럼 부드러운 편”이라고 말했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김 부상을 만난 적이 있는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유가 있으면서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6자회담에 속도 좀 내보시오’라고 했더니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잘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한마디 했다. 점잖으면서도 자신감이 느껴져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강석주 밑에서 트레이닝을 잘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대미·북핵 외교를 담당해 왔지만 이렇다 할 만한 에피소드는 없는 편이다. 그만큼 무난하고 특징적인 성격이 없다는 얘기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강석주는 굉장히 성질이 뜨거워서 흥분하면 언성을 높이거나 책상을 치는 일이 빈번했던 반면, 김계관은 그런 기억이 없다.”면서 “기본적으로 말수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드러움 속에서도 차가운 일면이 숨어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회담 도중 파리가 날아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냉철한 사람”이라면서 “언동이 부드럽다는 것이지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에는 명확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70㎝의 비교적 단신인 그는 영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외교무대에서는 항상 통역을 대동해 실제 영어 실력이 어떤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종류를 불문하고 술을 잘 마시는 애주가로도 알려져 있다. 천영우 전 6자회담 수석대표와 폭탄주를 즐기기도 했다.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9년 알제리 주재 대사관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외교가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그가 해외주재 근무를 한 것은 이때뿐으로 줄곧 본부에 근무했다. 그가 북·미 외교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것은 1993년 강석주 당시 제1부부장과 함께 북·미 고위급회담 차석대표로 참석하면서부터다. 이후 고비 때마다 북·미 관계의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6자회담에서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과 함께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 냈고,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사건으로 6자회담이 삐걱거리자 2007년 1월 힐 당시 차관보와 베를린 회동을 전격 성사시켜, 같은 해 6자회담에서 2·13 합의와 10·3 합의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외무성 제1부상에 임명되면서 1세대 강석주를 잇는 2세대 핵심 외교관으로 자리 잡았다. 리용호 부상이 6자회담 수석대표로 임명됨에 따라 김계관은 실무선에서 한발 물러나 그동안 강석주가 해 왔던 총괄기획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계관의 역할을 ‘강석주의 앵무새’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이렇다 할 출신배경도 없고 전임 강석주처럼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보를 할 정도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계관이 제1부상에 임명된 뒤 처음으로 이뤄진 단독 방미가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다. 이번 방미에서 그의 ‘활약’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대북 정책은 더 많은 짐을 지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글로벌기업의 신성장 미래전략] 대우건설

    [글로벌기업의 신성장 미래전략] 대우건설

    대우건설이 통합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건설사로 변신한다. 올해 목표를 신규 수주 14조원, 매출 7조 2000억원, 영업이익 3740억원으로 정하고 중동뿐 아니라 중남미까지 사업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은 “산업은행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해외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미래 신성장동력사업을 선점해 나갈 방침”이라면서 “특히 올해는 해외비중을 45%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해외수주 목표를 지난해(34억 달러)보다 56% 늘어난 53억 달러로 정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우건설은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LNG 및 발전소 분야와 나이지리아, 알제리, UAE 등 주요 거점국가에서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오일 및 가스분야의 수주도 늘리기도 했다. 또 산업은행과의 시너지를 통해 국제적인 개발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동유럽, 남미 등 신규시장 개척을 통해 시장 다변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대우건설은 액화천연가스(LNG)플랜트, 복합화력발전소 등 플랜트 분야와 터널, 해저침매터널, 장대교량 등 토목기술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전문인력 충원 및 인수합병(M&A)을 통한 플랜트 EPC(설계·구매·조달·시공 일괄 수행 방식) 역량 강화에도 나선다. 또 프로젝트 관리 강화 및 정보기술(IT) 시스템의 강화로 사업의 효율성을 높인다. 미래를 대비한 신성장동력 사업 개발을 통해 신시장 선점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서 사장은 “해외사업 확대와 차별화된 국내시장 공략 강화를 통해 사업포트폴리오를 합리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이를 통해 대우건설을 세계 최고의 글로벌 건설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방 출구모색 다각화 속 지지부진 중동사태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아랍권의 교착 사태를 풀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은 돈줄을 틀어막으며 파키스탄 등 사이가 틀어진 대테러전 파트너를 압박하고 있고 리비아 공습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는 카다피 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정정 불안 속에 반정부 시위와 강경 진압이 되풀이되고 있다. 내전 양상으로 번진 북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의 무력 충돌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협상 카드’를 빼들기 시작했다. 리비아 군사작전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는 100일 넘는 공습에 지친 듯 협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고 미국도 6개월째로 접어든 예멘 사태를 끝내려고 ‘독재자 설득 작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알제리 신문인 ‘엘 카바르’의 11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면서 “프랑스 측은 우리 리비아 정부가 자신들과 (휴전을) 합의한다면 반군 측에 ‘전쟁을 중단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알이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카다피 축출’을 목표로 줄곧 공습에만 매달려 온 프랑스 측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 측은 카다피 정부와의 직접 대화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향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라르 롱게 국방장관도 10일(현지시간) 현지 TV에 출연해 “카다피군과 리비아 반군이 서로 대화하고 (전쟁 중인 리비아)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포격을 중단할 것”이라면서 “(카다피군과 반군) 양측이 정치적 타협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1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회동했다. 브레넌 일행은 국민적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살레 대통령에게 “걸프 국가들이 마련한 권력 이양 중재 방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 정부는 대테러 작전의 동맹국인 예멘이 6개월째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OPEC 증산 불발… 세계경제 먹구름

    OPEC 증산 불발… 세계경제 먹구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증산 합의에 실패, 상당기간 고유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악재가 생긴 셈이다. OPEC 12개 회원국은 8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정례회의를 갖고 석유 증산을 논의했지만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로 증산이 무산됐다. 증산을 추진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번 회의는 사상 최악의 회의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번 회의에서 하루 석유 생산량 쿼터를 150만 배럴 추가한 3030만 배럴로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사우디와 함께 이 같은 방안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란과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알제리, 앙골라, 이라크, 리비아 등 7개국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나이지리아는 “OPEC의 결정을 따르겠다.”면서 한발 물러났다.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안정된 친미 성향의 4개국과 분쟁과 테러, 시위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회원국들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셈이다. 합의 무산의 가장 큰 이유는 중동 지역의 정치적 긴장 때문이다. 가령, 카타르는 리비아 반군을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는 시아파 반정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수니파 바레인 정권을 지지, 시아파 국가의 맹주인 이란과 악감정이 생겼다. 이들 국가들이 일관된 합의를 도출하기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져 버렸다. 로이터는 “과거 중동 지역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 OPEC에서 사우디의 영향력이 약화된 선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유가다. 지난 1년간 배럴당 30~40달러 가까이 치솟은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OPEC을 중심으로 한 석유 생산국들의 증산이 불가피했다. 국제사회의 요구도 거셌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고유가 행진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감소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 증산이 협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합의 실패로 우려는 더 커졌다. 당장 이날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1.65달러(1.6%) 오른 배럴당 100.74 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달 31일 이후 최고치다. 5월 이후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겨우 안정세에 접어든 유가가 다시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OPEC의 다음 정례회가 12월로 예상돼 있어 올해 안에 유가가 하락될 것이란 기대감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JP 모건 체이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압둘라 알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이번 회의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다음 회의가 3개월 뒤에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사우디는 이번 합의와 별도로 석유 생산량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6월에도 산유량을 하루 최소 50만배럴씩 추가, 매일 950만∼970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합의를 등지고 사우디가 증산을 하겠다는 것은 OPEC 생산량 쿼터제의 종식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한화건설, 이라크에 8조 규모 한국형 신도시 수출

    한화건설, 이라크에 8조 규모 한국형 신도시 수출

    한화건설이 이라크에서 단독기업 프로젝트로 국내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한화건설은 25일(현지시간) 이라크 총리 관저에서 누리 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사미 알아라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의장과 72억 5000만 달러(7조 9000여억원)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26일 밝혔다. ●바그다드 동쪽 25㎞에 조성 한화건설은 규모면에서는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이 수주액이 186억 달러(20조여원)로 최대지만 국내 4개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단독 프로젝트로는 이번 건설공사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한화건설이 단독 수주한 이 프로젝트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1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신도시(1830만㎡)를 조성하고 55억 달러 규모의 국민주택 10만 가구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다. 설계·조달·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EPC방식으로 진행된다. 공사기간은 설계 등 준비기간을 포함해 7년이다. 이번 계약 조건은 선수금 10%, 중도금 5%씩 3회 지급, 잔금은 블록별(약 4000가구) 준공 시점마다 순차적으로 받기로 했다. 인허가 비용 등도 발주처인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가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 신도시 노하우 수출 1호 신완철 한화건설 상무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인 ‘인천 에코메트로’의 성공적인 수행과 최근 12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해외플랜트 수주 등 해외사업 EPC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이번 공사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면서 “특히 대한민국 신도시 노하우를 수출하는 1호 프로젝트로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의 신도시 개발 역량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화건설은 현재 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 마라픽 얀부Ⅰ 발전 플랜트, 알제리 아르주 정유 플랜트, 쿠웨이트 LPG 충전 플랜트 등 5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요르단 삼라 발전 플랜트, 사우디 마덴 발전·담수 플랜트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또 올해 12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얀부Ⅱ 발전·담수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는 등 해외 사업 분야에서 순항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올 초 2015년까지 ‘글로벌 100대 건설사 진입’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해외사업 지역 확대, 해외공사 공종 다각화, 태양광 발전 및 신재생 에너지 사업 추진 등의 전략을 수립해 매년 20% 이상의 해외성장을 실현할 방침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박대원 KOICA 총재 연임

    정부는 21일로 3년 임기가 끝나는 박대원(64)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총재를 연임시키기로 했다고 외교통상부가 20일 밝혔다. 외무고시 8회 출신인 박 총재는 주토론토 총영사, 주알제리 대사, 서울시 국제관계자문대사 등을 지냈다.
  • 세계 녹색시장 2020년 1조弗… 국가경쟁력 핵심으로

    세계 녹색시장 2020년 1조弗… 국가경쟁력 핵심으로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지구촌 이슈로 대두되면서 환경산업이 국제시장 질서를 재편하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과 친환경적 개발이 지구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와 연관된 녹색 환경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전문가들은 세계 녹색 환경산업 시장 규모가 2008년 7800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1조 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의 녹색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환경산업의 현주소를 긴급 진단한다. ●2009년 환경수출 2조 5000억원 우리나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국가 정책의 각 분야를 이끌어갈 주요 과제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언급했다. 녹색성장은 환경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환경 오염방지와 지속가능한 환경개선을 기반으로 탄소시장, 녹색산업, 에너지 산업이 주요 동력이다. 녹색성장의 출발점은 결국 환경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환경기술의 개발과 산업의 육성은 녹색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국내 환경산업 시장 규모(2009년 기준)는 44조원으로 2005년 대비 1.8배 증가했고, 매년 15% 이상 성장을 계속해 왔다. 환경산업 해외 수출 규모도 2003년 5000억원에서 2009년엔 2조 5000억원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26.2%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펀드 조성 유망기업 발굴 나서 정부도 환경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009년 4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발족시켰다. 또한 환경 산업체의 창업과 경영지원, 전문인력 양성, 수출 지원 등 성장 단계별 지원 정책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해외시장 선점을 위해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올해 환경 연구개발(R&D)에 1조 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차세대 핵심 환경기술 개발사업’을 통해 2조 5400억원, 지식재산권 3508건, 논문 3963건, 기술료 601억원 등의 연구 성과와 444건의 특허기술을 발굴해냈다. 올해에는 선진국 대비 환경기술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년간 해외진출 희망 기업에 총 173억원을 지원했다. 그 결과 총 2100억원의 신규 수출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부터는 신기술에 대한 시제품 제작과 실증화 검증, 시장개발을 위해 기업별로 최대 5억원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또한 환경산업 지원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미래형 환경기술 개발부터 시제품 생산, 해외 마케팅까지를 총괄하는 ‘녹색환경산업 복합단지’ 조성을 위해 1560억원의 국고를 투입했다. 녹색환경산업 복합단지는 10대 핵심 녹색환경기술 업체를 유치해 기술개발과 실증 테스트 시설, 대기업과의 상호협업을 위한 매칭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남과 영남지역에는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특화된 기술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환경산업 종합기술 지원센터’도 건립 중이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연 100억원의 환경산업 육성 융자금을 조성, 지난해까지 44개 기업을 지원했다. 또한 담보력이 부족한 영세 환경산업체에 대해서는 기술보증지원과 민간금융 녹색 패밀리론 자금도 연간 500억원을 추가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녹색 환경산업체 투자 촉진을 위해 지난해부터 1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해 유망기업 발굴에 나서는 한편 환경 전문인력도 2013년까지 9000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술검증·현장 위주 지원을”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중소 환경 산업체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자금을 지원받기 어려운 데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경기 시흥에서 산업체를 운영하는 정해문(53) 사장은 “환경부가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특정 업체에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면서 “지원 규모와 대상을 확대하고 지원 절차도 간소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체 이승덕(48) 사장은 “환경부의 신재생 에너지 분류에 대한 정의부터 애매모호하다.”면서 “실적 위주의 정책보다는 철저한 기술검증과 현장 위주의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김상일 원장은 “환경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신흥 해외 환경시장 개척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 “좋은 기술을 가진 환경 산업체 발굴과 지원책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녹색기술 해외진출은 2007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 2009년에는 캄보디아와 아제르바이잔, 중국에 이어 2010년에는 우즈베키스탄과 탄자니아 시장에 진입했다. 올해는 알제리, 모잠비크, 몽골 진출을 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대비 60% 향상된 2800억원의 환경산업 수출 목표를 세웠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이국적 정취 물씬 서래마을 아프리카 ‘홍보의 장’으로

    이국적 정취 물씬 서래마을 아프리카 ‘홍보의 장’으로

    주한 아프리카 대사 대표단이 서초구에 뜬다. 이들이 추진하는 아프리카 전통 문화행사의 세부 사항 등을 협의하기 위해서다. 관련 협의는 12일에 진행된다. 이날 참석하는 대표단은 장피에르 솔레 에마네 주한 가봉대사를 비롯해 무함마드 엘조르카니 이집트 대사, 힐튼 앤서니 데니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호신 사흐라우이 알제리 대사, 유진 세고르 카이후라 르완다 대사 등이다. 이들 대표단이 구와 문화 행사 관련 협약을 맺으려는 이유는 반포 4동 서래마을 때문이다. 프랑스인 거주 지역인 서래마을엔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60%가 모여 있다.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기 때문에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들르는 곳이다. 아프리카 대표단은 이런 이점이 아프리카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특히 가봉과 알제리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프랑스와 문화 교류가 활발한 나라다. 르완다는 프랑스어권인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프랑스인에겐 친숙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한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외국인 특화 지역인 서래마을에서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구도 이런 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지난 2월 프랑스문화원과 문화예술교류협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반포동 심산기념문화센터에서 ‘2011 프랑코포니 축제’를 열었다.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국가의 모임을 뜻한다. 지난해 서래마을 일대에서 성공리에 개최됐던 ‘한·불 음악 축제’도 다음 달 19일 다시 열린다. 진익철 구청장은 11일 “서초구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국인이 많아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가 절실하다.”면서 “서래마을을 통해 세계적 도시의 모습을 구현하고, 특히 이번 협의에 따라 우리에게 생소한 아프리카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오월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희태 의장 “지금은 전방위 외교시대, 의회도 국익외교 직접 나서야”

    박희태 의장 “지금은 전방위 외교시대, 의회도 국익외교 직접 나서야”

    해마다 정치가 전투가 되는 현장 국회 중앙홀(로텐더홀). 오는 18일이면 그곳이 세계 25개국 의회 대표들이 머리를 맞대는 논의의 장(場)이 된다. ‘주요 20개국(G20) 의장회의’의 서울 개최를 성사시킨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이번 회의를 통한 의회 외교의 의미와 우리나라 국회의 선진화를 위한 방안 등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G20 의장회의의 정례화를 이뤄 냈다. 한국 주도로 이러한 협의체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나. -지금 국제사회는 각국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나 발전 단계 등에 따라서 몇 개씩 나라를 모아 블록화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처음 시작된 게 ‘주요7개국’(G7)이다. 선진국끼리 모여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려는, 자국 이기주의가 포함된 블록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의 블록을 만들어서 그 일원으로 활약해야 한다. 그래야 활동의 영역도 넓어지고 힘도 세질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G20을 강력하게 주창했고, 그것이 지금 초기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 의회 차원에서도 G20 간에 역내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공동 모색하며, 세계 여러 가지 문제점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체계를 형성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G20 회의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여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국회에서 싸움의 상징으로 굳어진 로텐더홀이다. -호텔에서 할까 했는데 결국은 여기서 하기로 했다. 비용도 10분의1이다. 상징성도 고려했다. →사실 의회 외교의 중요성은 잘 실감되지 않는다. -지금은 외교 전담 부서에서만 하는 게 아니고 전 국가기관이 전방위로 나서서 하는 ‘전방위 외교’ 시대다. 그야말로 총력 외교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국회도 당연히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써 내치뿐 아니라 외치에도 직접 나서서 총력적인 외교를 펼쳐야 할 시기다. →의회 외교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 -외교라는 게 하나씩 주고받고 협정문 서명하는 그런 외교도 있지만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구체적인 합의가 가능한 것도 있다. 의원들이 가서 일종의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외교 문제를 풀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그런 일이 많다. 지난 1월 알제리를 방문했을 때 공사 수주 후 13개월째 진전이 없는 ‘젠젠항’ 착공을 이끌어 냈다. 당시 알제리 대통령이 “왜 지금 오셨느냐. 더 일찍 오셨으면 더 일찍 허가를 내줬을 텐데.”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크로아티아에서도 한국대사관 건설에 대해 긍정적인 약속을 받았다. 분위기를 이렇게 잡는 데는 의원 외교가 좋은 것 같다. 우리 중진 의원들 가운데에서도 남미나 아프리카, 리비아 등에 가서 성과를 내는 분들이 많지 않나. 말하자면 국익 외교다. 공무원이나 관리들끼리 만나면 딱딱한 얘기만 주로 하겠지만 국회의원들끼리 만나면 서로 말이 달라도 부드럽게 잘할 수 있고 서로 이해도 한다. 그 나라 국회의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부에 요구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외교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가 외교의 실(實)을 거둘 수 있도록 엄청난 바탕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일전에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체감했고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역할을 많이 기대한다고 느꼈다고 했는데 어떤 상황이었나. -제가 최근에 간 나라들은 선진국들은 아니다. 후발국가, 개발도상국들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고 선진국 대우하는 것은 사실이다. 선진국은 이미 발전이 많이 돼 있어서 별로 배울 것이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자기들과 같은 개발도상국이었다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노하우가 많다고 얘기하더라. 자기들과 실정이 맞기 때문에 한국에서 많은 기술을 이전해 주면 좋겠고 개발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의회가 가장 후진적이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다. -우리 국회가 상당히 선진화돼 있다고 생각한다. 자꾸 후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다가 보기 사나운 장면들이 1년에 한두 번씩 일어나서 그렇다. 그것 말고는 우리 의회가 참 선진 의회다. 우선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구성된다. 정당한 국민의 대표가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뽑힌 게 선진 의회의 바탕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우리가 의회를 운영하는 데도 상당히 국민적인 요구를 많이 반영하는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서는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활발해졌다. 현재 제출된 법안 가운데 70% 정도가 의원 발의다. 대정부 비판, 감시 기능도 충분히 하고 있다. 다만 연말 예산국회 때 한번씩 싸움을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 때문에 전체가 흐려져서 문제지 의회 본래의 기능은 국민을 대변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의정활동 강화 방안을 위한 가장 중점적인 구상은. -상설 국회화하는 것이다. 무대가 상설적으로 열려야지 한 달 하고 닫아 버리면 안 된다. 1년 내내 본회의를 열어 놓자는 게 아니고 상임위원회, 특히 소위원회를 상설화하자는 것이다. 지금 소위만 전체 50개 가까이 된다. 소위는 아주 간편한 절차에 의해 소집되고 의사 일정이 진행된다. 정부 측에서 꼭 장관이 나올 필요도 없고 차관이나 실무자도 나와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상설 소위 활동이 강화될 때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일 많이 하는 국회, 일 잘하는 국회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국회의 예산권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심의하는데 관례상 국정감사가 끝난 뒤 11월이 돼야 예산국회가 처음 열린다. 정부 예산안을 한두 달 사이에 넘겨 버린다. 1년 예산이 얼마나 큰데, 그런 식으로 심사해서 되겠나. 연초부터 예결위가 움직여서 국회의 심의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면 올 연말에는 지난해와 같은 몸싸움은 없을 것이라는 건가. -그렇다. 예산 심의를 편성단계에부터 개입해 활발하게 진행해야 한다. 다만 지금의 예결위 분위기로는 안 된다. (국무위원들을) 불러서 예산 편성에 국한된 질문을 해야지 예산 심사는 안 하고 정치 사안만 묻다가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국회가 법상으로는 예산 편성권이 없더라도 차츰차츰 권능을 가져야 한다. →지난 연말 ‘형님예산’ 논란이 있었다. 그동안은 관행처럼 돼 있었는데 힘 있는 의원이 예산을 많이 챙겨 간다는 것에 부정적 인상이 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는 당연한 활동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 혼자 결정한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들이 같이 심의해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통계가 나온 것은 정부에서 예산 편성한 것을 변경해서 가져간 것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진짜 힘 있는 의원은 편성 단계부터 관여해 정부 안으로 (지역) 예산이 들어가면 그것이 통과돼도 10원도 안 가져간 걸로 나온다. →4·27 재·보선을 거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시대 정신에 맞는 정치에 대해 말해 달라. -정치는 외곬으로는 할 수 없고 타협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넣고 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꽃필 수 있는 바탕은 결국 타협 정신이다. ‘올 오어 낫싱’이 제일 나쁜 것이고 지나친 명분주의는 버려야 한다. 나는 항상 ‘염소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날 염소 두 마리가 시냇물을 건너다 징검다리 위에서 마주쳤다.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면 둘 다 떨어지거나 한 마리는 떨어져야 건널 수 있다. 그런데 염소가 지혜를 발휘해 한 마리는 엎드리고 다른 한 마리가 넘어서 건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인데 이러한 지혜를 정치에서 발휘해야 한다. 타협이라는 게 결코 패배도 아니고 비굴한 것도 아니다. 이지운·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주요 20개국 의장회의는…

    주요 20개국(G20) 의장회의는 지난해 9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게 처음이다. 첫 회의만 해도 G20 국가 의장들의 단순한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의장들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의회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정례화를 제안했고, 2차 회의를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점도 감안돼 2차 회의 개최는 만장일치로 성사됐다. 2박 3일 동안 의장들은 ‘공동번영을 위한 개발과 성장’이라는 의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다. ▲세계평화·반(反)테러를 위한 의회 간 공조 전략 ▲선진국의 개발경험 공유를 통한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 ▲금융위기 이후 동반성장을 위한 국제공조와 의회의 역할 등에 대해 토론한다. 의장회의는 ‘안전한 세계, 더 나은 미래’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지구촌 안전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 마련과 개발,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자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박 의장은 “차기 개최국이 결정되는 등 정례화에 대해 합의하고 공동선언과 같은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면 이번 회의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회의에는 G20 정회원인 20개국과 비회원국인 알제리, 에티오피아, 적도기니, 싱가포르, 스페인 의회 의장 또는 부의장들이 참석한다. 국제의원연맹(IPU) 사무총장도 함께한다. 국회는 지난 1차회의에서는 상원 의장들이 주축이 된 반면 이번에는 양원을 모두 초청했다는 데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의 회교 근본주의자로 스스로 ‘미국의 적’임을 자칭했다. 1998년 발생한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사건부터 미국의 추적을 받아 왔으나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키면서 전 세계 테러의 대명사로 일컬어져왔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4명의 아내를 둔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그의 재산은 3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1957년 리야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빈 라덴은 제다에서 수학하던 16세 때부터 몇몇 회교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학교를 마친 후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종교적 신념에 이끌려 몇년 후 사우디를 떠나야 했다.  1979년 빈 라덴이 처음 간 곳은 구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아랍 의용군을 조직하여 소련군에 맞섰다. 특히 아랍 의용군 무장에 자신이 갖고 있던 상당한 돈을 쓰면서 영웅으로 부각됐다.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사우디로 돌아왔으나 사업가로서 정착하지 못했고 1994년에는 이집트와 알제리의 과격 회교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여권까지 압수당했다.  빈 라덴은 여권을 되돌려받자마자 수단으로 옮겨 건설업을 재개했으나 이번에는 미 정보 당국으로부터 테러단체에 자금 및 훈련캠프 설치를 지원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에는 미국과 유엔의 압력에 굴복한 수단으로부터 추방당했다.  그는 1996년과 1998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다짐하는 3차례의 회교교령을 발표,회교도들에게 언제든 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군인과 민간인들을 살해하라고 촉구했고 미국인에게 사우디를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1999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지내면서 계속 대미 테러 활동을 벌여왔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맨해튼의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펜타곤)에 대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 사건을 일으켰다.  빈 라덴은 미국의 집요한 추적에도 종종 영상 메시지와 성명 등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는 2003년 9월 아랍어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방송한 육성 테이프에서 “적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며 재작년 발생한 9·11테러를 격찬했고 2004년 12월에도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걸프 지역 일대 산유국을 공격하라고 이슬람 전사들을 독려하고,사우디 지도자들에게 대중 봉기의 위험을 경고했다.  2007년 2월 딕 체니 미 부통령이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를 노렸던 자살 폭탄테러를 빈 라덴이 직접 기획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폭탄테러로 한국은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27) 병장을 잃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알카에다의 배신·공모에 놀아난 서방”

    위키리크스가 관타나모 폭로전에 나선 가운데, 서방국가와 관타나모 교도소에 수감됐던 알카에다 대원들이 공모와 배신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지속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알카에다 대원인 아딜 하디 알자자이리 빈 함릴리가 대표적이다. 관타나모 교도소에서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함릴리는 ‘알카에다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납치범이자 암살범’으로 활약했다고 가디언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파키스탄에서 두 차례 폭탄테러를 감행했을 당시 영국 정보기관 M16과 캐나다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는 ‘이중생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알제리 시민권자인 그는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졌다. ‘배신의 달인’도 있었다. 예멘 국적의 무함마드 바라르다흐는 미군에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 ‘중요한 소식통’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다른 관타나모 구금자 123명의 범죄사실을 넘겨주는 대가로 자유를 획득해 다른 구금자들의 변호인은 물론 미군 조사관에게도 ‘신뢰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결국 미국의 요청으로 석방돼 스페인으로 넘겨졌다. 영국은 이번 폭로전의 최대 희생자가 됐다. 세계의 금융도시인 수도 런던과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인 BBC 모두 알카에다에 놀아났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미군에 체포된 알카에다 요원 다수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에서 BBC 직원의 번호가 발견돼 영국 BBC는 알카에다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됐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현재 이 번호는 결번이지만 BBC 월드와이드의 본사인 부시하우스에 근무하는 직원의 자리에 있던 전화번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미국 측은 알카에다 요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동정적인 입장이거나 반동맹 군사조직(ACM) 활동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방송인과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은 한 모스크가 이슬람 무장단체의 주요 은신처이자 테러 작전의 잉태지였던 것으로 밝혀져 ‘런더니스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지난 20년간 이슬람 무장단체 대원 수십명이 런던 북부의 핀스베리파크 모스크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테러 계획을 짜고 무장대원들을 육성, 파견해 왔다는 것이다. 이 문서를 작성한 미국 관타나모 기지의 고위급 지휘관들은 핀스베리파크 모스크를 ‘테러 계획과 프로파간다 생산 기지’라고 일컬었다. 이 모스크의 설교자인 아부 콰타다와 아부 함자는 전 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이슬람 극단주의자 수십명을 런던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보내는 핵심 모집책으로 활약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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