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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랑 캔맥주 하나 위해 클럽에서 알몸 댄스배틀

    달랑 캔맥주 하나 위해 클럽에서 알몸 댄스배틀

    공짜 캔맥주 때문에 클럽에서 속옷까지 벗은 채 춤을 추는 여자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지방 추붓에 있는 한 클럽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영상을 보면 '디베르시온 디스코'라는 이름의 문제의 클럽에선 최근 여자들을 상대로 댄스배틀대회를 열었다. 클럽이 1등에게 약속한 경품은 달랑 캔맥주 1개. 클럽은 그저 재미로 연 대회였겠지만 한 여자가 돌발행동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동영상을 보면 문제의 여자는 댄스배틀에 참가한 여자들과 함께 클럽 무대에 올라 춤을 추다가 갑자기 하의를 벗기 시작했다. 바지를 벗자 여기저기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속옷까지 벗어내리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누군가 "안돼, 그만해..."라고 소리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옷을 벗어던졌다. 하반신이 알몸이 된 여자는 무대에서 한동안 춤을 추다 내려왔다. 사회자 등 클럽 관계자는 여자의 알몸댄스를 저지하지 않았다. 상황은 현장에 있던 누군가 핸드폰으로 문제의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영상은 24시간 만에 조회수 15만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끌면서 결국은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알고 보니 문제의 클럽에선 그간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다. 지난해에는 클럽 화장실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경비원이 핸드폰으로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사건이 있었다. 파타고니코 등 현지 언론은 "화장실 섹스에서부터 알몸댄스까지 문제의 클럽에서 난잡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문제의 클럽이 있는 지방도시의 관계자는 "클럽에 대한 단속 등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영상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동물병원에 인간환자…도대체 무슨 일이?

    동물병원에 인간환자…도대체 무슨 일이?

    동물과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다면? 프랑스의 몰래카메라 대가로 알려진 코미디언 레미 겔라드(remi gaillard)는 26일 ‘동물 행성’(ANIMAL PLANET)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다. 영상을 보면, 한 늙은 여성이 동물병원에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선다. 그러나 웬일인지 동물병원의 벽면에는 인간의 신체구조가 그려진 그림들이 잔뜩 걸려있다. 노인은 접수대의 안내에 따라 잠시 자리에 앉아 있는다. 그동안 개와 고양이 옷을 입은 누군가가 병원 복도를 서성대고 노인은 의아해한다. 궁금증을 뒤로 하고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이동하던 노인은 더욱 경악할 상황을 마주한다. 철장 안에는 알몸을 한 사람들이 갇혀 있고 동물들은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진료실의 문을 열자 진료대 위에는 동물 대신 사람이 누워 있고, 동물들이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노인은 병원 문밖을 나선다. 영상은 ‘나는 누군가의 무언가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명이라는 가치 앞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3일만에 148만 건에 이르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영상=Rémi GAILLARD/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탈리아, 거액을 푼 이란 대통령 위해 박물관 알몸 조각상 가려 논란

     이탈리아 정부가 로마의 박물관을 찾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위해 상자로 알몸 조각상들을 가려 논란을 빚고 있다.  27일(현지시간) AP와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슬람 시아파 국가의 행정 수장인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25일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을 찾아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총리실이 상대방인 로하니 대통령을 배려한다며 회담장 인근에 배치된 알몸 조각상들을 가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상이 된 조각상 가운데는 비너스상 등 이탈리아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포함됐다. 이는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고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을 우상 숭배로 간주하는 이슬람 문화권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우파 정당과 시민 단체들은 즉각 “정부가 나서 스스로 문화를 검열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를 일종의 굴복으로 치부하면서 부끄러운 일로 규정했다. 이슬람의 서구 문화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한 것이란 해석도 등장했다. 이탈리아 누리꾼들은 트위터에 ‘#statuenude’(누드상)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자국의 유명 누드 조각상 사진들을 잇따라 올리며 정부에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당사자인 로하니 대통령은 이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웃음을 지으면서 “누드상을 가려달라고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고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란 대통령의 유럽 방문은 17년 만의 일로, 최근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리자 유럽 순방에 나섰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 기간 이탈리아 기업들과 170억 유로(약 22조 2139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청사에서 알몸으로 사랑 나눈 공무원…CCTV 포착

    청사에서 알몸으로 사랑 나눈 공무원…CCTV 포착

    남미 볼리비아가 남녀 공무원의 섹스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는 CCTV 화면을 캡처한 사진 몇 장이 올랐다. 사진에는 사무실에서 포옹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듯 거리낌없이 스킨십을 나눈다. 여자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도 그대로 CCTV에 포착됐다. 급기야 두 사람은 알몸으로 격렬한 오피스사랑을 나눴다. 남녀는 사무실에 단 둘이었지만 CCTV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인터넷에 사진이 오르자 볼리비아 누리꾼들은 바로 신상털기에 나섰다. 누군가 "남녀가 사랑을 나눈 곳은 오루로 주정부 청사의 한 사무실"이라고 하자 분명하다는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두 사람이 공무원일 수 있다는 설이 나오면서 급기야 현지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엘데레르 등 현지 언론은 "오루로 주정부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사랑을 나눈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사진을 실었다. 인터넷에는 "사진 속 남자는 주정부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XXX, 여자는 최근에 사직한 공무원 OOO"라는 확인글이 돌면서 사실상 남녀의 신상이 공개됐다. 오루로 민심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공무원이 주민을 위해 일할 생각은 않고 사무실에서 섹스나 하는 게 말이 되나?" "출근해서 섹스하고 월급 받는구나"라는 등 비판이 빗발쳤다. 일각에선 주지사 소환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등 파문은 정치스캔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파문이 커지면서 곤혹스러워진 건 오로루의 빅토르 우고 바스케스 주지사다. 현지 언론은 바스케스 주지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파문이 확산되면서 공무원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페이스북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서울 마포구 ‘가방 속 시신’ 사건 유력 용의자 숨진 채 발견

     서울 마포구에서 가방에 담겨진 채 시신으로 발견된 2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유력한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17일 오후 9시10분쯤 경기 평택시의 한 원룸에서 정모(31)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원룸에는 B5 크기 노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시신으로 발견된 김모(23·여)씨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숨진 정씨가 김씨의 동거남이었다가 헤어진 관계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의 주변인 조사 과정에서 정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살펴본 결과 마포구에 인접한 은평구 쪽과 통화량이 많았고 실제로 과거 그가 은평구에 살았다는 점에서 이 지역을 잘 아는 인물로 보고 용의선상에 올렸다.  김씨의 시신 얼굴과 목 부위에 감긴 수건에 은평구에 있는 한 사무실 주소가 찍혀 있었다는 점도 경찰이 그를 유력 용의자로 본 이유 중 하나였다.  경찰은 전날 정씨가 사는 원룸을 압수수색하려고 찾아갔다가 문이 잠겨 있자 소방당국의 협조로 문을 열었고 원룸안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타살 정황이 없어 정씨의 시신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17일 오후 5시10분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터널 위쪽 유턴 차로변에 놓인 가방 안에서 김씨가 알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일 개연성 등을 염두에 두고 김씨와 주변인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 중이었다. 부검 결과, 김씨는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이 나왔다.  김씨는 가족과 떨어져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이 이달 1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상태였다. 경찰은 정씨와 김씨의 행적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시체강간’ 실제 사건 다룬 ‘그녀가 죽은 밤’ 19금 예고편

    ‘시체강간’ 실제 사건 다룬 ‘그녀가 죽은 밤’ 19금 예고편

    여배우를 향한 금지된 장난을 그린 충격 실화 스릴러 ‘그녀가 죽은 밤’ 19금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화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젊은 여배우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그녀에게 관심이 쏟아지는지는 가운데, 그녀의 시체가 어느 병원에 안치됐는지 비밀에 부쳐진다. 한편, 영안실에서 일하는 ‘파우’는 죽은 여배우의 시체를 담당하게 되고, 사람들이 안 보는 사이 몰래 그녀의 알몸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한다. 이후 그의 친구 ‘이반’과 ‘자비’가 그녀를 보고자 병원을 찾는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여배우를 보자,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다. 그러던 중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갑작스레 깨어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처럼 영화 ‘그녀가 죽은 밤’은 아름다운 여배우가 죽은 밤, 그녀를 보고자 찾아온 이들의 금지된 장난을 담았다.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은 ‘인간이 가져선 안 될 것만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없다’는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의 명언을 시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아름다운 여배우를 두고 선정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세 남자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병원 영안실로 들어가는 이들이 사망한 여배우를 눈앞에 마주하며 점차 변태적 욕망에 잠식되는 모습은 섬뜩함을 자아낸다. 특히 스페인에서 실제로 벌어진 ‘시체 강간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더욱 긴장감을 높인다. ‘그녀가 죽은 밤’의 배급을 맡은 영화사 빅 측은 “환상 속에만 존재했던 아름다운 여배우에 대한 비틀어진 동경,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스타의 운명을 잘 짜인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으로 첫 연출을 맡은 헥터 헤르난데즈 비센스 감독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영화’, ‘기막히게 촬영한 밀실 스릴러’라는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1월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사진·영상=영화사 빅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바닷가 알몸 조깅…SNS 스타 된’해변의 광인 청년’

    바닷가 알몸 조깅…SNS 스타 된’해변의 광인 청년’

    찜통 더위를 참지 못한 것일까 주체할 수 없는 노출증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을까? 아침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바닷가에서 조깅을 하는 청년이 카메라에 잡혔다. 엽기적인 조깅사건은 여름이 한창인 아르헨티나의 최대 해변도시인 마르델플라타에서 최근 벌어졌다. 20대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끼고 늘어진 산책로에서 누드 조깅을 즐겼다. 마르델플라타에는 매년 여름이면 피서인파 수백 만이 몰린다. 클럽에선 밤샘을 하는 청년이 넘친다. 남자가 누드로 조깅을 즐긴 시간은 공교롭게도 클럽에서 밤을 지샌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대와 겹쳤다. 부끄러운 부위를 노출한 채 힘차게 달리는 남자는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남자들은 낄낄거리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사진과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줄지어 오르자 현지 언론도 전례 없는 알몸 조깅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현지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름도 확인되지 않은 남자에게 붙인 애칭(?)은 '알몸으로 해변을 달리는 미치광이'.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서 긴 애칭은 '해변가의 미치광이'로 줄었지만 사건에 대한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터넷엔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진짜로 미친 사람인 게 분명한데...", "미친사람 같진 않음. 무언가 소신을 갖고 달리는 사람처럼 보임"이라는 등 의견이 무성했지만 남자가 알몸으로 달린 이유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남자가 주변에 있는 누드해변을 가던 중이었던 것 같다는 이색적인 해석도 나왔다. 실제로 마르델플라타 남쪽에는 알몸으로만 입장이 허용되는 누드해변이 있다. 누드해변은 잡상인 출입금지,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금지, 성적 행위 금지 등 엄격한 규정에 따라 운영된다. 수영복 사용은 물론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경찰은 "동영상과 사진을 봤지만 아직 누군가 신고를 하진 않았다"면서 "지금으로선 남자를 수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진=노티시아스아르헨티나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애인 셀카 알몸 사진 공개 성범죄 아니다”

    자영업자 서모(53)씨는 석 달 정도 만난 내연녀 A씨가 2013년 11월 결별을 요구하자 앙심을 품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해코지에 나섰다. 우선 A씨 스스로 촬영해 보내 줬던 A씨의 알몸 사진을 멋대로 인터넷에 올렸다. A씨의 알몸 사진을 자신의 구글 계정 캐릭터 사진으로 저장한 뒤 A씨 딸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보게 만들었다. 댓글을 달면 캐릭터 사진이 해당 글 앞에 자동으로 뜨는 것을 이용했다. A씨 남편에게 ‘재미있는 파일 하나 보내 드리죠’라며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씨에게는 “가족을 파멸시키겠다”고 협박해 1000만원을 뜯어내려고 시도했다. A씨 명의의 차용증을 위조해 법원에 대여금 지급명령을 신청하기도 했다. A씨는 서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검찰은 서씨를 촬영 당시에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어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해 전시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을 적용해 기소했다. 1·2심 재판부는 사문서 위조, 공갈 미수,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 등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1일 알몸 사진 공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촬영물’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명백한 만큼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찍은 촬영물까지 포함하는 것은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 해석”이라면서 “유튜브 댓글에 게시된 사진은 서씨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찍은 촬영물이 아니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렇다고 서씨가 알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행위 자체에 대해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 관계자는 “자신이 찍은 것이든, 남이 찍은 것이든 음란물 유통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독일 집단 성폭행’ 항의, 성당 앞 나체 시위 벌인 여성

    ‘독일 집단 성폭행’ 항의, 성당 앞 나체 시위 벌인 여성

    독일 서부 도시 쾰른에서 새해맞이 행사 중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에 항의하고자 스위스의 한 예술가가 나체 시위에 나섰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 등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출신 행위 예술가 ‘밀로 모이레’(Milo Moire)는 최근 독일 쾰른 대성당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피켓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우리를 존중해달라. 우리는 벗었어도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새해 전야인 지난해 12월 31일, 쾰른 대성당과 쾰른역 인근 광장 등에서 중동·북아프리카계로 추정되는 남성 1000여 명이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성 수백 명을 상대로 집단 성추행과 노상강도를 자행한 사건에 항의하려고 나선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밀로 모이레는 약 20분간 시위를 벌였고, 경찰 또한 밀로 모이레의 시위를 막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쾰른 대성당과 쾰른역 인근에 있는 몇몇 남성들을 상대로 검문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밀로 모이레는 다양한 알몸 퍼포먼스로 이미 유명한 스위스 출신 행위 예술가다. 그녀는 지난해 독일 뮌스터 LWL 박물관에서 나체 상태로 아기를 안은 채 활보하는 행위 예술을 선보이는 한편 에펠탑에서도 알몸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사진=Milo Moire, 영상=RT/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소개팅女 알몸사진 유포’ 前대학병원 인턴 ‘집행유예’

    ‘소개팅女 알몸사진 유포’ 前대학병원 인턴 ‘집행유예’

    소개팅한 여성의 알몸 사진을 유포한 대학병원 인턴 출신 남성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수원지법 제6형사부(부장 임재훈)는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의 나체사진을 몰래 찍어 친구들에게 유포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대학병원 전 인턴 류모(27)씨에게 징역 1년의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이와 함께 보호관찰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에게 1억원을 지급해 피해가 상당부분 변성된 점, 피고인이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1회를 받은 것 외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류씨는 지난해 2월 16일 자정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호텔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 A(26)씨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A씨의 나체를 촬영해 자신의 친구 5명에게 전송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류씨의 변호인 측은 “왜곡된 성 의식 내지 이성관을 치료받을 계획을 갖고 있고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한다”면서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경기 지역 대학병원의 인턴이었던 류씨는 1심 선고를 앞두고 병원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중생 협박해 알몸사진 받고 성매매 요구…잇딴 유사범죄 왜?

    여중생 협박해 알몸사진 받고 성매매 요구…잇딴 유사범죄 왜?

    스마트폰 채팅에서 알게 된 소녀들을 꼬드기거나 협박해 알몸사진을 전송받은 ‘못난 어른들’이 잇따라 법의 심판을 받았다.중학생 A(14)양은 2014년 6월 악몽과 같은 나날을 보냈다.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회사원 B(41)씨와 장난삼아 성매매에 대해 이야기하다 B씨가 돌변했기 때문이다.그는 “대화 내용을 캡처해 교육청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알몸사진을 요구했다.겁먹은 A양은 나체사진을 전송했고 성관계까지 강요당했다. 계속된 협박을 못 이긴 A양의 신고로 B씨는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전주지법 형사2단독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조사 결과는 B씨는 아동·청소년 성매수 죄로 3차례나 처벌받은 성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드러났다.한편 또 다른 여중생 C양도 지난해 초 우연히 스마트폰 채팅으로 알게된 D(45)씨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등 대화를 나누었다. C양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거나 성적 호기심에 알몸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D씨가 만남을 요구했지만 C양이 끝내 거절하자 “당장 안 만나주면 지금까지 보낸 나체사진 등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D씨는 이런 식으로 지난해 5월 중순부터 한 달간 28차례에 걸쳐 C양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문자메시지와 동영상, 사진을 전송했고 급기야 성매매를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D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10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받았다. 지난해 11월에도 대학생(26)이 여중생을 협박해 나체사진과 동영상을 전송받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 등 이같은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소녀들 사이에 자신의 나체사진을 찍는 ‘몸캠’이 유행하면서 이를 노리는 범죄자들이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6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의 질주: -김지윤

    1. 속도에의 욕망과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던 근대적 속도가 낯설고 경이로웠던 시절에, 속도는 삶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듯했고, 그 가능성의 마력에 매혹된 도시의 길들은 질주하는 기계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매혹이 그렇듯, 익숙해진 후에는 무뎌짐과 권태가 찾아든다. 이제 빠른 것들은 도처에 흔하게 넘쳐나고 현대가 ‘속도의 시대’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더 빠른 것’을 계속 갈구해 왔다. 급기야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빛보다 빠른 통신망을 이루어내는 데에 이르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빨라진 것일까? 사실 ‘속도’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간과해 온 진실이 숨겨져 있다. 속도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대인들은 줄곧 커다란 대가를 치러왔다. ‘움직임’을 상실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는 대신, 인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안에 부동자세로 앉은 채, 혹은 컴퓨터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옮겨질’ 뿐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귀청이 먹먹하게 울부짖는 바람의 저항에 맞서 속력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아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속도를 내는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속도가 주는 고통과 환희의 감각을 날카롭게 느끼고 견디며, 거센 바람 소리로 현재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이동하는 ‘탈것’ 안에 안전하게 앉아서 닫힌 창문 밖으로 내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그 일그러짐이 심하면 심할수록, 지나쳐가는 대상들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 풍경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속도의 체험으로부터 사실상 단절된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풍경들은 개별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속도에 안전하게 ‘탑승’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착해야 하는 지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수많은 길목들은 소거된다. 이원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 2007)는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서 시인은 속도와 질주에 대한 끈질기고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서는 가장 큰 모티프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얼핏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속도 제조기’로 느껴지는 오토바이에는 과연 다른 교통수단들과 무언가 차이를 만드는 점이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를 타는 행위 자체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사실 매우 모순적인 존재다. 기계의 속도를 빌려 질주하면서도 강렬한 신체적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올리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기울어져야 하는데 그때마다 탑승자는 온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는 다른 ‘탈것’들과 달리 길이 아닌 데서도 달릴 수 있다. 자유롭게 길을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수많은 길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 시 속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1968년생인 이원 시인은 청년기에 사이버 문화를 접한 소위 ‘모니터킨트’ 1세대에 속한다. 80년대 도입되어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길을 열어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유년기와 디지털 청년기의 간극을 몸소 느낀 최초의 세대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은 어떤 내면적 딜레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형성해 준 유년기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청년기 사이의 간극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시적 언어에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까. 오토바이의 모순성은 바로 그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겹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겹침의 힘으로 인해 모든 장소를 사실상 ‘무장소’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의 무감각성과 획일화에 대항하여 느낌과 의미, 그리고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이 시대의 문학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 할 수 있을 ‘시’가 어떤 응전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광속도의 디지털문명 속에 살면서 느리게 곱씹어 읽어야 하는 빈 여백투성이인 시를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지. 이 글은 바로 그런 기대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 ‘길 없음’과 찾을 수 없는 ‘나’ 일단 이 시집 제목의 ‘오토바이’ 앞에 붙어 있는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눈길이 간다. 그냥 가벼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가 ‘가볍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튼튼하고 무겁고 길에 잘 붙어 있을수록 안전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볍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이 시집의 오토바이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바람결에 떠다니는 가랑잎만큼이나 위태롭다. 오토바이는 금방이라도 길을 벗어날 듯 불안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위기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이원의 시세계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바로 전 시집인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문학과 지성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에서 ‘길’에 대한 인식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길’에 사막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모래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길이 만들어질 수 없다. 사막에서 끝없이 부는 바람은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모래로 인해 사막은 끊임없이 다른 지형으로 변모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하는 행위로 많은 것들을 클릭하고, ‘세계를 연속 클릭’하기까지 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그리고 수많은 클릭의 맨 끝에, 화자는 결국 ‘나를 클릭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꼭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클릭’을 한다.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 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분 검색하는 과정이 무한한 하이퍼링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하이퍼텍스트를 참조해야만 한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는 착각처럼 나를 찾으려는 욕망은 곧 실현될 것만 같지만, 점점 더 퍼져나가 무수한 파편이 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색어와 연관어를 따라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처음의 검색어와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한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계속 생명체처럼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없다는 것, 또한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을 아무런 방법도, 지도도 없고 어떤 검색 엔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처럼 클릭함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클릭할수록 나는 ‘편재’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원 시인의 코기토가 디지털문명의 사유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로 변주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결론이 결국 ‘부재’에서 끝났다면 이 시는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 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모든 부재는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 사람의 존재감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백이 필요해진다. 주체의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워져야 한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 그러므로 매 순간 다시 삼켜야 할 제 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의 몸이 바로 나이며”라는 시 구절은 이런 과정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가 ‘없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적 불안을 동반하는 것처럼 이원 시에서의 ‘길’은 대부분 갑자기 끊기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 ‘길 없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이 존재를 찾으려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것처럼, 계속해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길은 건너가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길을 건너가려면 길에 매달리고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앞까지 온 길은 거울 앞에서 접촉 불량 회로처럼 끊어졌다.” “내가 일어서자 거울 밖으로 나갈 노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녹슬고 구겨진 길들” 방금 나열한 구절들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의 수록시 ‘모니터, 캔산소, 거울’에 언급된 ‘길’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원 시에서 길들은 대개 이렇게 위태위태하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길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된다. 이 시집 속에 나오는 길들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지뢰밭과 같고,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사막과 같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3. 휘발되는 불빛들 사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 시집의 많은 주인공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그들은 폭주족, 오토바이 배달부, 퀵서비스맨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는 데서도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토바이는 다른 모든 탈것들과 차별화된다. 폭주족들이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뒤따라 달려오던 한 무리의 폭주족들은 끊어진 길 속으로 빠진다/ 끈적끈적한 괴성과 경적이 함께 묻힌다/ 봄밤이 눈물처럼 반짝이다 마른다 매몰의 시간을 잘 아는/ 길은 금방 아문다/ 시간의 만다라로 타오르며 폭주족들은/ 길을 꿀꺽꿀꺽 삼키며 달린다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이 히드라처럼 꿈틀거린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 ‘폭주족들’ 부분 그 다음 시의 제목이 ‘영웅’이고 역시 폭주족을 다루고 있듯, 폭주하는 이 오토바이족들은 ‘영웅’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운 길에서 불안을 딛고 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라는 소재는 빛을 발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대부분의 교통수단들에게는 도로, 철로나 항로와 같이 정해지고 계산된 길 안에서 안전하게 달릴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오프로드를 달림으로써 규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지지만, 수동적으로 길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것이 폭주족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이 도약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전력을 다해 내질렀던 ‘괴성’ 같은 그의 시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매몰의 시간’이다. 하지만 ‘길은 금방 아문다’. 폭주족들은 길 안에 매몰되어서 그 길을 삼켜버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낳는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도가 절망스럽다는 것을 표현한다. 끝없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계속 갈라지고 갈림길들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로가 된다.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미로화되면서 결국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텅 빈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이 지점에서 폭주족은 ‘왜 질주하는가?’란 질문에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시집의 다른 시 ‘주유소의 밤’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차들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라는 이 시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휘발되는 것이 ‘불빛’임을 보여 준다. 불빛은 길을 길답게 만드는 존재다. 길이 길일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도착’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전진하려면 길이 그쪽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의 물질성이 사라진 곳에서 물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이들은 별빛에 의지했다. 길이 사라진 데서도 별빛은 오롯이 빛나며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별빛이 만드는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길이 된 것이다. 소위 ‘전자사막’인 도시의 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불빛’이다. 신호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라이트 등이 만드는 불빛은 도시의 밤길을 길답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시인은 이 불빛이 항구한 것이 아니라 ‘잠깐만 빛나는’, 즉 ‘휘발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 역시 휘발되는 것이다. 언젠가 깨고 마는 꿈처럼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질주의 이유가 있다. 휘발되어버릴 꿈, 비전을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하므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길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모든 ‘탈것’들은 그 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상당수의 폭주족들은 질주하다 ‘벽’을 만나고 결국은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폭주족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고. 시체가 불타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몸을 씻으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강이다. 숭고한 구도의 마음으로 이 성스럽고 절망스러운, 찰나의 불빛을 따라 길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인간은 ‘영웅’이 된다. 시 ‘영웅’에서 낡은 오토바이 위의 시적화자는 ‘무서운 속도로’ ‘철가방을 싣고’ 달린다. 이 철가방은 그의 순수한 염원과 욕망을 표상한다. 그의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이 은색’이고,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으로 상징되는 거짓되지 않은 절실한 욕망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불에 오그라든 자국’을 숨김없이 노출한다. ‘배달’은 곧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에 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시간 안에 달려가려고 애쓴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라는 구절은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짜장면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현실원칙’인 셈이지만 중력을 이탈해버리면 아예 자유로워진다.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이 중심이 된다면 짜장면이 어느 쪽으로 쏠리든 상관없다. 그래서 ‘영웅’은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라고 내뱉는다. 오토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현장성이다.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토바이는 반드시 맨몸으로 타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온몸, 전 생을 지금 이 순간에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게 되는 것이다. 지제크의 책 제목과 같이 ‘삐딱하게 보기’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제크는 이 책에서 ‘비스듬한 왜상적 응시’로만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응시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세상이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와야 한다.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라고 시적화자는 말한다. 비정상의 영역, 삐딱한 시선의 세상은 진지한 현실원칙들을 위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 ‘삐딱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허용하는 가치들에서 비껴나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아야 볼 수 있는 저 ‘불빛’은 견고한 어둠에 가끔 생기는 균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현실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실재계’에서 오는 것이다. ‘영웅’ 폭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반짝이는 찰나의 불빛이 가리키는 희미한 저곳을 향해 폭주하여 달려가며, 자신을 땅에 붙들어 놓았던 현실원칙인 ‘중력’을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비장해진다.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 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 지점에 이르면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의미가 없다. 도착할 수 없음이 너무 명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질주이며 도약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진행”이다. ‘한 남자가 간다’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만 텅 빈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짐을 욕망하므로 끝없는 현재로서 질주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텅 비어야 한다. 4.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원 시에서 없음, 허공의 이미지는 매우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없음’이 절실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은 그 욕망에 자신을 전부 맡김으로써 폭주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높이다 보면, 공중의 허공으로 몸을 날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벼워진다. 속도가 줄 수 있는 쾌감은 마치 탈중력의 상태와 같은 지극한 가벼움이다. 노자는 유와 무의 관계를 통해 생명성을 강조했다. 특히 ‘무’와 ‘허’(虛)는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자는 바퀴의 가운데를 가리켜 ‘무의 쓰임’이라고 하고 바퀴는 바퀴살이 꽂혀 있는 ‘가운데의 없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한쪽 눈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내 몸속의 신이 깔고 누워 있던/ 죽음을 엿본 죄다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은 내게서 파내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모르므로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낯선 얼굴을 매달고 라면을 먹는다/ 낯선 얼굴도 입을 오물거린다 그 입에서도 고소한 스프 냄새가 난다/ 햇빛들이 창 속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부딪쳐 멈출 곳이 없는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얼굴이 달라붙는다’ 부분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어야 끊임없는 추구가 가능하고, 영원히 지연되는 미완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채워짐’은 욕망의 끝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엿본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의 눈이 파내진 것은, 삶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끝나버렸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는다. 도려낸 눈구멍의 빈자리를 드러낸 채 그는 광야에서 계속 걸어간다. 이 시에서도 시적화자는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결핍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빈 곳’은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요인이다. 그는 계속 살아가려고 라면을 먹는다. 삶이란 무한한 진행이므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장소인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또한 상징적 의미에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줄지 않아야만 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을 난다 울음 속에서 살을/ 쏙쏙 빼먹으며 난다 활짝 열어놓은 안이 불룩하다/ 보여주지 않는 안이 팽팽하다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위태로워 반짝인다 공기들이 비닐봉지의 천수관음으로 붙어간다/ 비닐봉지가 잉잉거린다 바람의 안쪽이 맥박처럼 터진다 천수관음이 된 비닐봉지에/ 시간의 모서리가 닳는다 사라지는 자리가 쌉싸름하다/ 그렁그렁하다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 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 둥근 것은 뜨겁다 비닐봉지가 허공을/ 오므린다 허공이 주렁주렁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비닐봉지가 난다’ 전문 비닐봉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가벼울 수 있고, ‘살을 쏙쏙 빼먹으며’ ‘맥박처럼 터진’ 등의 표현에서 보듯 생명력을 충전하며, 터질 듯 생동감 있게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시 ‘비닐봉지가 난다’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두 편 모두에서 비닐봉지가 등장한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에 나오는 것은 ‘검은’ 비닐봉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색이라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그런데 이 시는 바로 이어서 ‘위태로워 반짝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는 분명 위태롭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다. 그럼에도 이 비닐봉지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짝 열어’ 놓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림, 이 균열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불빛이 있기 때문에 이 비닐봉지에는 빛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이다. 이원 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어둠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눈앞을 가리는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 시 ‘길’에서 ‘어둠이 길들을 천천히 멍석처럼 말아갑니다’라고 노래했듯 길을 없애고 ‘세계를 닫는’ 어둠,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는 ‘밤’으로 묘사된 그런 어둠-이기도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회귀하기를 꿈꾸는 자궁의 어둠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궁에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 필연적으로 분열을 겪어야 한다. 일체의 분열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나, 자궁 속의 어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은 회귀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원의 다른 시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 ‘어둠’에 관한 어떤 처연한 광경을 보여 준다. 아기는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 안에서 아기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여기에서 ‘검어지는’ 것은 자궁의 어둠과는 다르다. 절망적이고 견고한 어둠 속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검은색’이다. 이에 반해 자궁의 어둠은 어둠이되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서 어둡지만 환한 곳이다. 그런데 어둠이 환하다면 과연 완전한 어둠이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라는 시 구절처럼 환함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자궁의 어둠은 불완전해진다. 어둠이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어둠인 것이다. 자궁에는 항상 산도(産道)라는 입구가 있고 ‘열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언젠가 열릴 것이거나 언젠가 열렸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회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시간에 머물러 있기에 절망적이다. 자궁은 여전히 열린 틈새로 ‘환한 집’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돌아가거나 닿을 수는 없다. 다시 시 ‘비닐봉지가 난다’로 돌아가 보자. 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이 비닐봉지는, 어쩌면 아기를 밀어낸 후 텅 비어 있는 자궁과 같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는 비닐봉지의 안은 ‘저 너머의’ 세상이기에 그 안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인은 비닐봉지가 ‘천수관음’이 된다고 말한다. 천수관음의 천수천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을 천개의 눈으로 보고, 천개의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수관음의 세상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유토피아 그 자체이며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저 너머’이므로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서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수관음의 ‘천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는 표현은 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연상시킨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이 ‘一圓’은 가운데가 빈 허공이기도 하다. 허공을 나는 비닐봉지는 그 자체가 공(空)인 것이다. 반면에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의 비닐봉지는 비어 있지 않고 오렌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겁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여자가 순간 봉지를 놓치고 만다. 아마도 꼭꼭 묶여져 있었을 비닐봉지는 여자가 손에서 놓지 않는 현실원칙이며 생명체를 살게 하는 음식은 그 현실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오렌지 하나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다. 묶여져 있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가 나오려면, 비닐봉지는 분명 터져 버렸을 것이다. 터진 틈새로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집요하게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렌지의 그림자는 나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오렌지는 필사적으로 굴러가지만, 그림자는 오렌지를 붙들고 여자는 터진 비닐봉지의 틈새를 알아차린다. 이 균열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봉합할 것인가. 균열을 감수한다면, ‘위태로운 반짝’임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 반짝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그녀를 현실로부터 일탈하게 하여, 어쩌면 미치게 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도 위태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멈추어 있기를 선택한다.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 시인이 직접 주석을 달아 놓은 바와 같이 매트릭스는 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결국 매트리스로 회귀하려는 오렌지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오렌지는 땅바닥을 굴러 매트리스까지 가지 못하고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의 시의 결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날아가는, 중심을 이탈한, 가벼워진 것들에는 그림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철망 같은 제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광화문에서’) 있으면 결코 가벼움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림자를 떼어내어 버리고, 온전한 ‘텅 빔’이 되어서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이 되어 질주하는 것이 주체의 소망이다. 이 시집에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시적 화자들의 질주는 영웅적이라고 간주되며, 한계를 넘어가는 위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는 것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없음’은 에너지의 새로운 분출로 다시 시작하려는 근본적인 의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함으로써 탄생한 ‘공백’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5. 흔들리면서 ‘저 너머를 향해’ 가기 자아의 안락과 현실에의 순응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이 맹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그 너머의 금지된 희열을 향한 충동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된다. 충동은 현실적인 삶이 부과한 경계 너머의 실재를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캉은 모든 충동을 ‘죽음충동’이라 보기도 했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죽음, ‘무’의 상태로 되돌려 공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창조의 의지인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은 어떤 세기말적 징후로 가득해 있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느낌, 어떤 ‘파국’이 도래하였다는 감각은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고지향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나타났다. 거대담론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일종의 자폐성을 띤 2000년대 시는 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 가득 찼다. 2007년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혼잣말 같은 메모장과 일기장 밖 현실 세상으로 나온 존재가 새로운 시작을 꾀하려 하는 모색의 지점을 보여준다. 방향이 없는 곳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저 너머로 넘어가려는 이 시집의 역동성은, 끊긴 길 앞에서 멈추어 정체되어 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속되는 디지털화, 인문학의 위기와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문학의 종언’이 이야기되는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더 처절하게 고민하려는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원의 2000년대 시집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원의 시편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했던 시인의 ‘모니터킨트 1세대’라는 특징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위 한국형 ‘X세대’의 맏형 격인 세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시점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출생한 문학인들이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던 것은 탈냉전에 접어들며 가치의 혼란과 부재, 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90년대 한국문단에 새 흐름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장정일, 유하의 경우와 같이 60년대 이후 출생 시인들은 소비사회, 매스컴과 테크놀로지 등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새롭고 첨예한 감각을 보여 주었다. 1968년생이며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고 96년에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출간한 이원 시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년기를 보내며 정체성을 형성해 갔던 시기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과 소비사회에 대한 매우 예민한 반응 역시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난 최근의 젊은 세대처럼 태생적인 디지털문화에서 자라나지 않은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 ‘초기 X세대’들은 디지털을 ‘학습한’ 세대이면서도, 처음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기본을 만들었던 세대라는 약간 이중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은 이원 시에도 일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이 전자제품과 사이버문화를 광범위하게 시의 직접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찰하는 방식은 비교적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자아의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디지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신의 몸처럼 편안히 여기는 최근 세대들에 비해 때때로 불편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디지털 문명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인식은 전망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시를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 역시 ‘길 없음’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이원의 비유를 빌리자면 ‘가벼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다. 의미에 도달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서 간신히 앞으로, 점점 전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2010년대에 도달하여 출간한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시인의 말은 뼈저리다.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시인은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시를 마치는 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시집에 등장하는 무수한 ‘오토바이를 탄 이들’은 바로 이 결핍 때문에 달린다. 그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어차피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은 달리는 것, 그 자체이고 현재를 사는 지금 이 순간, 질주와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인 것이다. 불가능성 때문에 추구는 더 집요해지고, 시 ‘영웅’의 화자처럼 ‘온몸이 데는’ 것도 불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서커스에서 불타오르는 원형의 가운데를 뛰어넘는 오토바이 묘기와 같다. 이 불타는 허공으로 뛰어드는 묘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단지 통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삶은 지속되어야만 하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질주한다. 온몸을 걸고, 온 생이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정해진 길로 달리며 획일화된 ‘무장소’에서 체험을 상실하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달리,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그 속성들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결핍 속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속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해지는 삶, 그 강도 높은 삶의 기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 도착하리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너머’에 닿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또 오토바이 위에서 속력을 높이는 이원 시 속 화자들처럼, 끝없이 의미에 ‘미끄러지는’ 언어들로 계속 행간에 발을 헛디디면서도 이 미끄럽고 위태위태한 길을 속도로 넘어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맴돌기만 할 뿐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달려간다면 길은 끊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터이다. 어차피 삶은 여정 위에 있다.
  • 2015 서울TV 화제영상 베스트 TOP 10

    2015 서울TV 화제영상 베스트 TOP 10

    2015년 한 해 동안 서울TV에서 가장 인기를 받은 영상은 무엇일까요? 1년 동안 서울TV 시청자분들이 가장 많이 본 화제영상을 정리해봤습니다. 1위 예술의 역설?…박물관 알몸女에 관람객 ‘깜짝’(조회수 913,663) 2위 길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10대女, 급기야...(352,282) 3위 거대 지네에게 뱀 먹이로 줬더니…(331192) 4위 악어 떼 가득한 늪에 고양이 던진 남성들 ‘경악’(327,391) 5위 [한줄영상] 물놀이 중 발생한 ‘민망한 실수 모음’(322,877) 6위 계단 난간 미끄럼 장난치던 10대女 추락 순간(302,701) 7위 병 고친다며 여신도 성추행한 사이비 교주 체포(298,185) 8위 버팔로 사냥하던 사자의 끔찍한 최후 포착(292,657) 9위 암소 삼켰다 토해내는 거대 아나콘다 포착(238,996) 10위 경찰관이 독방 수감녀 허리띠 강제로...끝내 해고(224,820)
  • 마트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독특한 노출증 멕시코女

    마트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독특한 노출증 멕시코女

    대형 마트를 돌아다니며 옷을 벗고 자위행위를 하는 멕시코 여자가 언론에 보도됐다. 인터넷에 동영상이 오르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된 문제의 여자는 20대로 추정될 뿐 아직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여성의 동영상은 모두 2편. 촬영장소와 분량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인터넷에 오른 첫 영상을 보면 여자는 한 대형 마트 안을 돌아다니다가 한적한 곳에서 과감히 옷을 벗기 시작한다. 알몸이 된 여자는 자위를 하다가 때마침 그곳을 지나는 마트 직원에게 적발된다. 마트 직원이 정중하게 행위를 중단하고 나갈 것을 부탁하자 여자는 약간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자리를 뜬다. 문제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뜬 뒤 얼마 되지 않아 또 공개된 2탄 동영상은 여자가 다른 마트의 진열장을 따라 걷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여자는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한다. 뒤로 손님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카메라를 향하곤 행위에 집중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하는 마트는 캄페체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영상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는 말도 돌고 있다. 일부 언론은 "여자가 영상을 유출한 장본인으로 지금은 헤어진 옛 남자친구를 지목했다"며 사법당국에 고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졌던 동영상은 멕시코 당국의 발빠른 조치로 대부분 삭제됐다. 사진=영상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차에서 성관계후 잠든 커플, 30m 벼랑으로 추락

    차에서 성관계후 잠든 커플, 30m 벼랑으로 추락

    대낮 자동차에서 잠에 빠진 커플이 브레이크사고로 댐에 빠진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여자는 목숨을 잃었다. 아르헨티나 지방 후후이에서 4일(현지시간) 벌어진 사고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사고커플은 이날 점심시간을 살짝 넘겨 승용차를 몰고 인적이 드문 댐을 찾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커플은 알몸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점심 직후 격렬한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나른함을 느꼈는지 나란히 잠이 들었다. 승용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한 건 커플이 깊은 잠에 빠진 뒤였다. 저수지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세웠던 자동차는 슬슬 구르더니 30m 아래로 추락, 저수지에 풍덩 빠졌다. 아찔한 사고를 목격한 건 저수지에서 한가하게 오후낚시를 즐기던 강태공들. 벼랑에서 자동차가 추락한 걸 본 강태공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저수지에 뛰어들었다. 자동차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 문을 연 강태공들은 남자를 구조했지만 여자는 자동차와 함께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가 잠수부를 투입해 구조에 나섰지만 여자는 이미 숨진 뒤였다. 소방대가 수습한 여자는 알몸이었다. 두 사람이 사고 전 카섹스를 나눈 사실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남자의 진술로 확인됐다. 애인을 잃은 남자는 "오전에 만나 점심을 함께한 후 카섹스를 나누기 위해 저수지 외진 곳을 찾았다."면서 "사랑을 나눈 후 잠이 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혼자 구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자는 "경찰이 사고원인을 조사한다고 했다."면서 "핸드브레이크가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IV7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이란 여배우, 얼굴 사진 SNS에 올렸다가 곤욕

    이란의 한 여배우가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은 사진을 SNS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지 등 외신은 이란의 여배우 사다프 타헤리안이 사진 공개를 이유로 당국과 대중들의 큰 비난을 받고있다고 전했다. 우리 상황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 사건은 얼마전 사다프가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장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드러낸 그녀의 사진이 SNS 계정에 올라오자 큰 비난이 일기 시작한 것.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법으로 여성의 의상과 행동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의 경우 히잡과 차도르 등을 이용해 몸을 감추고 얼굴의 일부만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온라인상에서 어긴 사다프의 행동이 이슬람 남성들의 심기를 자극한 셈이다. 대중적인 비난과 더불어 나라에서 추방하자는 주장까지 나오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이란 문화부는 그녀에게 '부도덕' 하다는 딱지와 함께 연기 활동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공개된 그녀 사진을 포토샵해 히잡까지 씌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사다프는 "내 사진에 대해 이란과 이슬람 문화권에서 좋은 반응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면서 "온라인 상에서 수많은 욕을 먹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진을 올린 내 행동에 대해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으며 나라를 떠나지도 않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월 이란 정부는 자국 출신의 여배우 골시프테 파라하니(31)를 추방한 바 있다. 이유는 과거 프랑스 잡지에 촬영한 알몸 화보가 뒤늦게 알려져 큰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4] 고려로 이어진 날란다사원의 법통(法統)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4] 고려로 이어진 날란다사원의 법통(法統)

     양주 회암사터는 1997년 이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 발굴 현장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262칸에 이르렀다는 전성기 절터의 규모에 놀라고, 석축이 만들어 놓은 절터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전망대를 거쳐 천보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회암사 새절이 나타나는데, 그 오른쪽 능선에 지공과 나옹, 무학의 부도가 있다.  맨 윗자리의 지공(持空·1300∼1363)은 고려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도 출신의 고승이다. 그의 본명은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제납박타)로 갠지스강 유역에 자리잡은 그의 고향 마가다국(摩竭提國)은 바로 석가모니가 왕자로 태어난 나라다. 지공도 마가다국왕의 셋째아들로 석가왕실의 후손이라고 한다. 지공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는 이색(1328~1396)이 지은 ‘서천 제납박타존자부도명 병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지공은 8살 무렵 날란다사로 율현 스님에게 출가했다. 날란다사는 5세기에 출범한 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으로 유명하다. 날란다사는 이슬람의 침입으로 12세기 폐허가 됐다고 알려졌지만, 14세기 초까지는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공은 율현의 권유에 따라 스리랑카로 보명을 찾아가는데, 이 시절에 동방으로 가서 교화해야 할 필요성이 각인된 듯 하다  지공은 처음엔 바닷길로 중국으로 가고자 했다. 미얀마와 말레이반도의 초입까지 진출했다가 돌아선다. 다시 내륙으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운남,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 고려에 들어온다. 티베트에서는 주술사가 독약을 타놓은 차를 마셨고,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다. 양자강 상류의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당나라 현장의‘대당서역기’나 신라 혜초의‘왕오천축국전’이 동방에서 인도를 찾아가는 기록이라면, 지공의 이야기는 반대로 인도에서 동방을 여행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공이 3년 남짓 고려에 머무르는동안 나옹과 무학 등이 다투어 제자가 된다. 지공은 회암사의 지세가 날란다사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후 원나라로 자신을 찾아와 10년 남짓 수학한 수제자 나옹에게 “회암사를 중창하면 불법(佛法)이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가르침을 내린다. 쇠락해 가는 날란다사의 법통(法統)을 회암사에서 이어가고 싶다는 뜻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옹은 고려 우왕(재위 1374~1388) 시대 회암사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킨다. 지금 드러난 회암사터에는 날란다사를 재현하겠다는 지공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침 ‘회암사지를 사랑하는 모임’이 오는 10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 있는 나옹의 또 다른 부도인 영전사 보제존자탑 앞에서 출범한다. 관련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지공의 부도탑에 나타난 기록을 연구해 나가고 회암사터의 중요성도 부각시켜 나가자는 취지라고 한다. 지공이 흔적을 남겨놓은 나라의 학자들과 국제적 협력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사진설명  1. 경기 양주 회암사터 전경  2. 회암사 뒷산에 자리잡은 지공의 부도와 부도비.  3. 통도사 소장 삼화상 진영. 왼쪽부터 무학, 지공, 나옹이다. 조선 순조 7년(1807) 조성.
  • 장롱 시신 사건, 장롱속 알몸 시신…범인 알고보니 남자친구 “다른남자 만나는 줄 알았다”

    장롱 시신 사건, 장롱속 알몸 시신…범인 알고보니 남자친구 “다른남자 만나는 줄 알았다”

    장롱 시신 사건, 범인 알고보니 남자친구 “다른 남자 만나는 줄 알았다” 외도 의심해 살해 ‘장롱 시신 사건’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장롱 속에서 두 손이 묶여 알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던 40대 여성이 외도를 의심한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살해 용의자 강모(46)씨가 여자친구인 피해자 A(46)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3일 저녁 7시쯤 A씨 집에 몰래 침입해 숨어있었다. 강씨는 귀가한 A씨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강씨는 A씨의 옷을 벗겨 피를 닦은 뒤 장롱 속에 시신을 넣었다. A씨의 손이 옷장 밖으로 빠져나오자 플라스틱 끈으로 A씨의 두 손을 묶고서는 오후 11시께 현장을 떠났다. 또 범행 직후 강 씨는 A 씨의 신용카드를 훔쳐 천100만 원을 인출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강씨는 경찰 추적을 우려해 A씨 집으로 가기 전 자신의 집 인근 지하철역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CCTV를 피해 고개를 숙인 채 다녔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씨와 A씨는 중학교 동창 사이로 1년 전 동창회에서 만나 교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나 모르게 술을 마시고 다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줄 알았다”며 “기절하고 깨어나면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 추궁하려 했는데 소리를 질러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이혼 전력이 두 번 있었고, 이전 결혼생활에도 의처증과 도박벽, 폭력 등으로 가정불화를 빚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 전과도 한 차례 있었다. 강씨는 범행 후 사우나와 게임장 등을 전전하다 5일만인 8일 집 근처인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의 한 공원에서 잠복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강씨에게 살인·절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여부는 이날 오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사진=MBN 뉴스 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장롱 시신 사건, 장롱속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살해” 대체 왜?

    장롱 시신 사건, 장롱속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살해” 대체 왜?

    장롱 시신 사건, 장롱속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살해” 대체 왜? ‘장롱 시신 사건’ 일명 ‘장롱 시신 사건’의 범인이 중학교 동창 남자친구로 밝혀졌다.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장롱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던 40대 여성 살인 사건은 남자 친구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용의자 강모(46)씨는 여자친구인 학원강사 A(46)씨 집에 숨어있다가 피해자가 귀가하자 둔기로 뒤통수를 내려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이달 3일 대형마트에서 범행에 쓸 둔기와 플라스틱 끈, 가방 등을 사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A씨 집으로 향했다. 오후 7시께 강씨는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안방 문 뒤에 숨어 있다가 50여분뒤 들어서는 A씨의 뒤통수를 둔기로 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강씨는 A씨의 옷을 벗겨 피를 닦은 뒤 장롱 속에 시신을 넣었다. A씨의 손이 옷장 밖으로 빠져나오자 플라스틱 끈으로 A씨의 두 손을 묶고서는 오후 11시쯤 현장을 떠났다. 강씨는 범행 후 A씨의 핸드백에서 신용카드를 훔쳐 인근 은행에서 100만원을 인출했고, 500만원씩 두 번 총 1천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후 강씨는 지인과 관악구 등에서 도박을 해 훔친 돈 중 600만원 가량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경찰 추적을 우려해 A씨 집으로 가기 전 자신의 집 인근 지하철역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폐쇄회로(CC)TV를 피해 고개를 숙인 채 다녔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씨는 A씨와 1년 전 동창회에서 만나 교제를 이어왔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나 모르게 술을 마시고 다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줄 알았다”면서 “기절하고 깨어나면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 추궁하려 했는데 소리를 질러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이혼 전력이 두 번 있었고,이전 결혼생활에도 의처증과 도박벽, 폭력 등으로 가정불화를 빚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 전과도 한 차례 있었다. 강씨는 범행 후 사우나와 게임장 등을 전전하다 5일만인 8일 집 근처인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의 한 공원에서 잠복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장롱 시신 사건 피의자 강씨에 대해 살인 및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진=MBN 뉴스캡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장롱 시신 사건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둔기로 쓰러뜨리고 목 졸라 살해” 충격

    장롱 시신 사건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둔기로 쓰러뜨리고 목 졸라 살해” 충격

    장롱 시신 사건 장롱 시신 사건 “외도 의심한 남자친구가 살해” 용의자, 이혼 전력만 두 번…도대체 어떤 사람? 장롱 속에서 두 손이 묶인 채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이 외도를 의심한 중학교 동창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용의자 강모(46)씨는 여자친구인 학원강사 A(46)씨 집에 숨어있다가 피해자가 귀가하자 둔기로 뒤통수를 내려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강씨는 이달 3일 대형마트에서 범행에 쓸 둔기와 플라스틱 끈, 가방 등을 사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A씨 집으로 향했다. 오후 7시쯤 강씨는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안방 문 뒤에 숨어 있다가 50여분뒤 들어서는 A씨의 뒤통수를 둔기로 치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강씨는 피가 흐르자 A씨의 옷을 벗겨 닦은 뒤 장롱 속에 시신을 넣었다. A씨의 손이 옷장 밖으로 빠져나오자 플라스틱 끈으로 A씨의 두 손을 묶고서는 오후 11시쯤 현장을 떠났다. 강씨는 범행 후 A씨의 핸드백에서 신용카드를 훔쳐 인근 은행에서 100만원을 인출했고, 500만원씩 두 번 총 1천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이후 강씨는 지인과 관악구 등에서 도박을 해 훔친 돈 중 600만원 가량을 썼다고 경찰은 전했다. 강씨는 경찰 추적을 우려해 A씨 집으로 가기 전 자신의 집 인근 지하철역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폐쇄회로(CC)TV를 피해 고개를 숙인 채 다녔다고 경찰은 전했다. 두 사람은 1년 전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나 계속 교제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나 모르게 술을 마시고 다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줄 알았다”면서 “기절하고 깨어나면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 추궁하려 했는데 소리를 질러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이혼 전력이 두 번 있었고, 이전 결혼생활에도 의처증과 도박벽, 폭력 등으로 가정불화를 빚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 전과도 한 차례 있었다. 강씨는 범행 후 사우나와 게임장 등을 전전하다 5일만인 8일 집 근처인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의 한 공원에서 잠복한 경찰에 붙잡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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