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알루미늄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95
  • 스탈린 별장 102억에 팔려

    |모스크바 연합|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별장이 1000만달러(약 102억원)에 팔렸다고 28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들이 그루지야 TV방송을 인용해 보도했다. 흑해에 접한 그루지야내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의 휴양도시 가그르시에 위치한 이 별장은 집권 시절 스탈린과 소련 공산당 간부들이 휴식을 위해 즐겨찾던 곳이다. 별장 건물은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전방 500m에 바다가 펼쳐지는 천혜의 지역에 있다.2층 건물의 별장은 방이 12개. 스탈린 사후 오랫동안 방치돼 대규모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알렉산드르 안크바브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총리는 이날 스탈린 별장의 매각 사실을 시인했지만 누가 구입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 알루미늄 재벌인 올레그 데리파스카 ‘루스키 알루미니’ 회장이 매입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데리파스카는 지난 3월 미국 포브스지 발표에 따르면 55억달러 재산 규모로 전세계 부호 84위에 올라 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상반기 결산-취재 뒷이야기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상반기 결산-취재 뒷이야기

    서울신문이 올해 연중기획으로 1월10일 시작한 ‘2005 재계인맥·혼맥 대탐구’가 연재 5개월을 넘기며 ‘4대 그룹’을 소화했습니다.23회 동안 소개된 원고지는 12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동안 해당 기업은 물론 구청으로, 오너일가 주변으로 뛰어다니며 취재에 열을 올렸던 기자들이 방담을 통해 중간 점검을 했습니다. ●수십년만의 ‘진실´ 재벌들의 인맥과 혼맥은 그동안 신문 시리즈 기사나 책으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만, 의외로 잘못 알려졌던 ‘팩트’가 적지 않았습니다. 재계 총수를 3명이나 배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에 대한 오해가 대표적입니다. 지금까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지수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알려졌지만 조 회장은 이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1907년생인 구 회장 역시 서당을 다니다 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에 둘은 같은 학년이었던 셈입니다. 구 회장은 실제 이 회장과 한때 같은 반에서 책상을 나란히 맞대고 공부하던 사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구 회장도 1924년 상경, 중앙고보를 다녔기 때문에 같이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닙니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1922년 상경, 중동학교를 다녔습니다. 조 회장은 이듬해 협성실업학교로 옮기는 바람에 1923년 중동학교로 옮긴 이 회장과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 회장의 자서전에도 조 회장과 축구로 교우를 쌓았지만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 회장과 이병철 회장,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기동창으로 소개됐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서 “처음에 어떤 신문사의 기자가 잘못 쓰는 바람에 계속 세 사람이 동문이라고 나와 그 때마다 기사를 고쳐달라고 요구했지만 요즘은 아예 포기한 상태”라고 털어놨습니다. 세 사람이 같은 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사돈관계(이 회장·구 회장)와 동업(이 회장·조 회장)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 남다른 교분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출신학교는 물론 이름까지 잘못돼 현대그룹의 경우, 대학 재학 시절 빼어난 미모로 캠퍼스가 떠들썩했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며느리 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굳혀져 있었지만 확인 결과 숙명여대 졸업생이었습니다. 이화여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던 맏며느리 고 이양자(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씨도 수도여대를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4남인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의 부인도 그동안 조향아씨로 알려졌지만 사실 조경아씨였습니다. 누군가 한자를 잘못 읽어 빚어진 오기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인을 두고 말이 엇갈렸던 정몽우 회장의 ‘우울증’에 대해서도 현대가측으로부터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등학교때 머리를 다친 후유증이 우울증으로 번졌다는 관측이 파다했지만 사실 무근이었습니다.‘교통사고다.’ ‘지병이다.’ 등으로 설이 분분했던 정 명예회장의 다섯째 동생 신영씨의 사인도 독일유학중에 얻었던 ‘병’이 악화됐던 것으로 유가족으로부터 직접 확인했습니다.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순간적인 결심’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혈압에 좋다며 집에 와서 순두부를 즐겨 찾았는가 하면 세상을 등진 바로 다음날에 중요한 약속을 잡아놓았던 사실이 드러났으니까요. 모 그룹 오너의 경우, 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학 중 결혼한 탓에 학교 규칙상 더 이상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오너 일가의 딸이나 며느리 가운데는 이화여대 재학중에 결혼한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이대의 과거 학칙때문에 대부분 졸업을 못했더군요. 또 아들과 며느리들이 어머니를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어머니라 하지 않고, 회사 직함으로 불렀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낸 사실입니다. 현대중공업 정몽준 대주주의 차남 예선군의 이름 유래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정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친 의미가 더 크다고 밝혀왔습니다. 본지가 이번에 ‘정설처럼 굳어진 오보’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재벌 총수나 2·3세와 직접 인터뷰를 했고 자서전 등 방대한 과거자료를 일일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몇십년전에 모 기자가 잘못 쓴 내용을 후배기자들이 그대로 인용하면서 오보가 사실로 굳어졌다.”며 인터뷰를 자청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룹 홍보실도 비상 민감한 가족사를 다루다 보니 취재는 물론 사진을 구하는 일이 보통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울신문의 기획 의도와 배경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오너가의 답변은 ‘내가 싫다는데 너희가 왜 쓰느냐.’는 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지만 사생활을 들춰내자는 것도 아니고, 망신을 주자는 것도 아닌 한국 재벌가의 혼맥과 인맥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서울신문의 의도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모 그룹의 홍보임원은 ‘오너’로부터 “내 사진이 실리면 목내놓을 각오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요. 실제 이 오너의 사진은 언론에 공개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사진을 구해 내보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홍보임원을 서울신문이 ‘책임’질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모 그룹은 기사 게재 3일전까지 “무조건 빼라.”는 오너의 지시로 홍보실뿐 아니라 회장실에도 비상이 걸렸었습니다. 그룹 회장이 미국에 있는 모친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시로 전화 설득에 나섰지만 돌아온 답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홍보실 임원은 “내 목은 서울신문에 달려 있다.”며 통사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그룹은 비서실이나 홍보실에서 오너 일가의 사진을 확보해 두지 않아 회장의 자택을 ‘습격’해야 했습니다. 회장 집무실부터 자료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사진이 나오지 않자 운전기사에게 부탁, 자택에 걸려 있는 액자사진을 다시 찍는 ‘작전’을 감행한 것이지요. 모 그룹을 취재할 때는 오너가 직접 본사 임원에게 전화해 “우리는 빠지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파헤쳐 문제가 될 만한 것도 없는데 오너가 무조건 버티기로 나오니 아래 직원들은 당연히 누구 하나 취재에 협조해주지 않더군요. 가족 사진은 그만두고라도 얼굴 사진을 내주는 것조차 꺼리다가 경영에서 물러난 1세 경영인의 허락을 받아 겨우 가족 사진을 싣기도 했습니다. 모 그룹은 가족사진이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진설명에서 누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말아달라고 ‘읍소’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지, 주간지 등에서 결혼 소식을 집중 추적하고 있는 회장의 ‘고명딸’ 얼굴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밖에 서울신문에 소개된 사진중에는 오너일가나 그룹을 통하지 않고 본지 기자가 과거 취재과정에서 찍어뒀던 사진도 있었고 각사 ‘사사(社史)’를 일일이 뒤져 찾아낸 것도 있습니다. ●“아가, 니 사진은 왜 빠졌냐?” 가족사가 속속들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던 오너들도 일단 기사가 나가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현대가(家) 첫 회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 일가’편이 나간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자필로 직접 ‘사후 교정’을 본 3월14일자 서울신문을 편집국으로 보내주는 특유의 세심함을 보여줬습니다. 예컨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녀 성이(남편은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씨의 맏딸 이름이 ‘선가령’이 아닌 ‘선아영’, 정 회장의 둘째딸 명이(남편은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씨의 자녀 명단에 정유진양과 정준군이 누락된 점 등입니다. 또 가계도에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손자인 창덕군이 빠진 점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고 몽필씨의 맏딸 은희씨가 미국에 머물지 않고 귀국한 지 오래됐다는 점 등도 바로잡아줬습니다. 이는 일가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지요. 가문에 대한 현 회장의 관심과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줬습니다.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은 지난 2월27일 ‘한솔그룹편’의 서울신문 대장(신문 발행전의 인쇄용지)이 나오자 직원을 보내 ‘사전 교정’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날이 일요일인데도 직원을 통해 장충동 자택으로 대장을 가져오도록 해서 여조카의 이름을 바로잡기도 했지요. 그 조카는 얼마전에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조 회장이 교정을 본 대장에는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은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본지 시리즈의 첫 회를 장식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을 통해 본지를 통째로 한남동 자택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도 구조본 팀장회의 석상에서 본인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부분이 잘못 소개됐다고 언급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LS그룹 구자홍 회장은 LG그룹 첫 회에서 자신의 ‘연애결혼’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소개되자 ‘반대’까지는 아니라며 미국 유학시절 부인과의 ‘러브스토리’를 직접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구 회장의 아버지인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은 ‘LS그룹편’에 막내 며느리 사진만 빠져 있자 “왜 막내만 빠졌냐.”며 경위를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모 그룹 홍보실은 신문 가판이 나온 뒤 미국에 있는 오너에 바로 전달하기 위해 서울신문을 항공 특급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도 착각한 사실 독자가 알려줘 독자들의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중간에 이번 시리즈를 접한 독자들이 첫 회는 언제 나갔는지,1회부터 연재분을 모두 구할 수 없는지 집요하게 물어오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언제 책으로 출판되는지 물어오는 ‘성급한’ 독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들도 이미 소개된 그룹만이라도 모아서 책을 내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오너 일가들도 착각한 사진 속의 장소를 독자들이 바로잡아준 일도 있었습니다. 현대그룹편을 소개하면서 현정은 회장이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과 아들과 딸들, 이렇게 온 가족이 호주 시드니로 휴가를 떠난 사진을 실었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사진속의 배경이 ‘캐나다 밴쿠버 같다.’는 독자들의 의견이 잇따랐습니다. 현 회장측에 확인한 결과 호주가 맞다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밴쿠버라는 독자들의 의견이 이후로도 끊이지 않아 재차 확인한 결과 사진 속의 장소는 밴쿠버가 맞았습니다. 현 회장측은 “고 정몽헌 회장이 사진찍기를 워낙 싫어해 몇년전 휴가가 가장 최근의 가족사진이다 보니 착각한 것 같다.”고 해명해왔습니다. ●제발 이것만은…. 오너일가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내용은 가족들의 ‘이혼·재혼’이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탤런트 고현정씨처럼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사실만이라도 막으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아예 “이 부문만 빼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쓰도록 하겠다.”는 협상(?)도 들어왔습니다. 모 그룹 회장은 아내가 사고사를 당해 재혼했는데 그 사실을 막무가내로 빼 달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독자들이 볼 때 나이 차이가 워낙 커 ‘세컨드’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 밝혀줘야 한다.”고 설득하자 아무 말을 못하더군요. 또 다른 그룹 회장 동생도 부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뒤 재혼을 했는데 그룹측에서는 한사코 부인의 나이를 빼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오너 부인이 사망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전 부인 사진이 그대로 나갈 뻔했습니다. 재혼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면 현재 부인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지요. 모 그룹 회장의 할머니를 둘러싸고도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이 그룹 회장의 친 할머니는 오래전에 사망했는데 워낙 옛날 분이라 이름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가계도’에는 재혼한 할머니 이름으로 나가야 했는데 그룹측에서는 아예 할머니쪽은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그룹 회장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친어머니’가 아닌지라 불편했던 것이지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딸 가운데 한명은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취재과정에서 전 남편과 다시 결합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끼리끼리’는 있어도 정략은 없었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는 재벌과 권력층의 혼사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실제 40대 이상 오너 일가들은 청와대, 국회의원, 장관 등 ‘권문세가’를 시가나 처가로 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세로 내려올수록 ‘정략결혼’의 흔적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재벌들이 더 이상 권력에 기대어 ‘혜택’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2·3세들은 유학시절에 만나 연애결혼한 사례도 적지 않았고 유력한 집안이라고 해도 주로 재계쪽에 집중됐습니다. 또 사돈이라고 해서 사업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삼성과 LG,LG와 두산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직접 만나본 2·3세들의 공통된 느낌은 1세들과 달리 어려움없이 자란 때문인지 무척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못다 쓴 얘기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얘기할 날이 오겠지요. 물론 오너일가의 작은 부분이 소개된다고 해서 그룹 임원의 ‘목’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오너들이 ‘황제’처럼 군림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때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목을 내놓고’ 취재에 협조해 준 각 그룹 홍보팀 임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쌍용자동차 ‘카이런’

    ‘카이런´은 SUV의 힘, 세단의 승차감, 스포츠쿠페의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SUV다. 자체 개발한 2700cc 커먼레일 DI엔진이 176마력을 자랑한다. 수동 12.1㎞/ℓ, 자동 10.6㎞/ℓ로 모두 공인연비 1등급 인증을 받았다. 운전·보조석, 측면 등에 에어백이 있다. ▲운전자 습관과 주행상태를 기억·분석해주는 수동겸용 5단 자동변속기 ▲전자식 속도감응형 파워스티어링휠 ▲후륜 독립현가식 멀티링크 서스펜션 ▲18인치 알루미늄 휠 ▲5.1채널 10스피커 카시어터 AV시스템 ▲8매 DVD 체인저 및 내비게이션 시스템 ▲후방장애물 감지시스템 등을 장착했다.
  • 하늘에 날리고 바다에 띄우고

    하늘에 날리고 바다에 띄우고

    하늘을 나는 차, 커피잔 위로 올라간 차, 바다로 간 차…. 자동차업계에 불황 탈출을 위한 묘안이 속출하고 있다. 영업사원들은 “고객들이 차를 봐줘야 팔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느냐.”며 모 자동차회사의 광고문구를 뒤집어 “제발 좀 함부로 쳐다봐 달라.”고 하소연이다. 그래서인지 업계는 기발한 볼거리 연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1일 서울 잠실대교에서 미사리 쪽으로 넘어가는 한강 둔치.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 하며 일제히 하늘을 쳐다봤다. 이내 이어지는 웃음.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차는 아니다. 쌍용차가 최근 출시한 새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카이런’을 홍보하기 위해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한 비행선이다.‘풍선 자동차’인 셈이다. 다음달 19일까지 한 달간 하늘에 떠 있는다. 쌍용차는 이에 앞서 전국 주요 도시 번화가에서 영화나 드라마속의 자동차 촬영장면을 연출하는 ‘레디 액션’ 퍼포먼스를 갖기도 했다. 관계자는 “아이디어를 짜내 마련한 이색행사가 침체된 내수시장에 청량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맞서 기아는 ‘바다로 간 차’를 준비중이다. 다음달 출시 예정인 카니발 후속모델(프로젝트명 VQ)을 전국 유명 해수욕장 등 해변에 전시하기로 한 것. 해변 전시회는 차량 관리 때문에 업계가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일이다. 기아차측은 “레저용 차량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과감한 전시회를 기획했다.”면서 “피서철 인파가 많아 홍보효과도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커피잔 위에 올라간 자동차도 재미있다. 지난 18일 서울 롯데백화점에서는 육중한 자동차가 커피잔 4개 위에 올라갔다. 물론 커피잔은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재규어코리아가 이 회사의 ‘뉴XJ’가 얼마나 가벼운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마련한 행사였다. 뉴XJ는 100% 알루미늄 보디로 제작돼 사람이 안 탄 상태에서의 무게가 1615㎏에 불과하다. 강철 차량보다 무려 40%나 가볍다. 그런가 하면 4390만원 상당의 BMW가 5000원대에 팔리는 일도 생겼다. 롯데닷컴이 창립 9주년 행사로 마련한 BMW 최저가 경매 이벤트에서 회사원 양모(31·경기 분당)씨가 5393원을 써내 낙찰받은 것이다. KCC모터스(혼다차 판매법인)가 이달 말까지 서울 용산의 전시장에서 펼치는 미니 모터쇼,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성자동차(메르세데스 벤츠 판매법인)가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여는 패션쇼 및 레이저쇼도 눈에 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골프소식] 비전 스트립 취향따라 탈·부착

    ●한국캘러웨이골프가 신형 퍼터인 I-Trax를 출시했다. 밀링 가공된 알루미늄 합금 헤드에 3개의 청동 합금 스크루를 장착,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고 깊게 했다. 두 종류의 비전 스트립을 취향에 따라 탈·부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비자가 35만원.(02)3218-1980.
  • [신상품]

    ●애경 홈크닉은 습기제거 제품인 ‘녹차와 참숯’을 출시했다. 참숯의 제습 효과에 천연 녹차 성분을 더해 퀴퀴한 냄새까지 없앤다고 회사측은 설명.505㎖에 1800원선. ●타파웨어는 뜨거운 오븐에서도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실리콘 재질의 제빵용기 ‘실리콘하트’를 내놓았다. 기존 베이킹 도구들이 딱딱한 재질로 돼 다루기가 불편했던 점을 보안했다. 세트에 4만 8000원. ●동화약품공업은 관절과 연골의 건강을 위한 ‘동화 글루코사민’을 선보였다. 오래 서 있거나 무릎 관절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제품이라고 회사측은 소개.120캡슐×2개 6만원. ●프리미에쥬르는 흑백에서 컬러모빌로 변신하고 딸랑이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다기능 ‘목장모빌’을 출시했다. 동물 모양의 봉제인형들이 들어 있어 모빌 하나로 신생아부터 첫돌까지 사용할 수 있다.5만 7000원. ●쟈뎅은 원두커피 맛과 향, 휴대성을 높인 패션 캔커피 프레도(FREDDO)를 선보였다. 용기를 100% 알루미늄 캔으로 제작,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325㎖ 1700원. ●한국암웨이는 산녹차·둥글레차·루이보스차 3종류를 내놓았다. 보성산 찻잎을 사용한 산녹차(1.2g×20티백) 4400원, 지리산 둥글레를 원료로 만든 둥글레차(1.2g×70티백) 6710원, 루이보스차(1.0g×35티백) 6160원. ●한국야쿠르트는 과일 속살이 씹히는 저과즙 주스 ‘과일정원’을 출시했다. 신선한 과일을 그대로 담아 과육이 많다. 복숭아·망고·살구·오렌지 4종이 각 170㎖에 800원. ●자바커피는 블루베리를 이용한 ‘블루베리스무디’를 선보였다. 블루베리와 요구르트, 시럽, 얼음 등을 혼합한 제품.4800원
  •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일본을 다시본다] (2)부활의 날갯짓하는 굴뚝산업

    |특별취재팀|도쿄 남단에 자리한 오타구 공단은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울의 구로공단쯤에 해당된다는 이 중소공단 지역을 찾은 때는 지난달 18일 오후였다.5000개가 넘는 공장들의 육중한 몸매는 높다란 담에 가려져 있었고, 행인과 차량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거리 풍경만으로 경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란 욕심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급한 김에 택시기사에게 ‘청진기’를 들이댔다. “요즘 이곳 경기가 좋아졌다는데….” “5∼6년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거리를 오가는 트럭이 전보다 늘었다.”스야마 아키히로(順山明彦)라는 이름의 이 기사는 다만 “큰 공장만 좀 살아나는 것 같고 작은 공장은 아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현황이 간단치는 않은 것 같았다. 택시가 회색빛의 무표정한 공장 숲을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목적지인 오타구 산업진흥협회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최첨단 건물이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30대가 나왔다. 명함에는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담당 코디네이터’라고 돼 있었다. 마치 첨단 벤처기업에 온 기분이 들었다. ●업종, 규모따라 회복 체감도 차이 데자와는 “1990년대 후반 이곳 공장들이 1년에 100개씩 도산했다고 치면, 지금은 절반 수준인 50개 정도로 떨어졌다.”면서 제조업 경기가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완전히 부활했다고 하기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했다가 비용 문제가 안 맞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공장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대기업 얘기일 뿐 중소 공장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케이스”라고 말해 얼핏 택시기사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중소공장은 여전히 규모와 비용 경쟁에서 대기업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대기업 사정을 직접 듣기 위해 일본전기(NEC) 본사를 찾아갔다.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인 이 회사의 홍보부장 아라이 도시노리(荒井俊則)는 “중국에 진출했던 대기업 공장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맞느냐.”란 질문에 “신문에서만 봤다.”면서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대세는 역시 일본에 모(母)공장을 두고 해외에 설치한 자(子)공장과 연계하는 시스템일 것”이라고 했다.NEC의 경우 일본내 공장은 핵심 노하우 개발과 첨단부품 생산에 치중하고, 중국과 동남아 등의 해외공장은 저임금을 토대로 한 대량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분담 체계가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밑바닥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부야의 대형 카메라 전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에 진열된 카메라의 가격은 공장의 소재지에 따라 천양지차였다.‘메이드 인 재팬’이 부착된 소니 카메라는 7만 5800엔에 달하는 반면,‘메이드 인 필리핀’의 펜탁스 카메라는 2만 7300엔 하는 식이다. 이 상점의 점원은 “손님들이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산의 값싼 제품만 찾는다.”고 귀띔했다. 아라이 NEC 홍보부장은 “일본의 공장들이 생산혁신을 통해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1980년대식의 부흥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학계나 정부쪽 시각은 좀 더 긍정적이다. 일본종합연구소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년전만 해도 이러다가 일본이 다 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제조업이 부활하면서 일본경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면서 “중국의 싼 제품에 밀려 고전하던 일본 제조업체들이 소니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서서히 체력을 회복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쓰오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은 “영업비밀이 새나갈 우려가 있는 중국보다는 인건비가 비싸더라도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일본 안에서 공장을 운영토록 정부가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NEC 공정 단축… 2년간 8조원 절감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무뚝뚝한 스모 선수의 겉으로 드러난 몸집이 아니라, 유니폼 속에 숨겨진 기초체력이다.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풍상을 겪으면서 공장들의 체질은 엄청나게 강인해졌다. 이 스모 선수의 회복 징후는 대증적인 영양주사에 의한 게 아니라, 운동과 식이요법 등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NEC만 하더라도 5년 전에 비해 체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2000년부터 시작한 ‘생산혁신활동’이 수훈갑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공정을 잘라내 전체 생산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부품 재고율을 낮추는 개혁방안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2003년 3월 ‘43일’이던 부품 회전일수가 지난해 3월엔 ‘40일’로 줄었다.NEC는 이 제도를 국내외 공장에 두루 적용한 덕택에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무려 8000억엔(8조원) 가량의 생산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아라이 부장은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은, 일본은 더 이상 싼 노동력으로 대항할 수 없으며 구조혁신을 이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데자와 코디네이터도 “중요한 것은 90년대의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저력과 노하우가 강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산·학연계나 기술특화, 디지털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면서 “오타구 공단내 공장의 70% 이상이 1개 업종만 특화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carlos@seoul.co.kr ■ 견학 명소 기타지마 제작소 |특별취재팀|오타구 공단 안에 있는 (주)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은 일단 ‘실망’할 각오부터 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비롯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공장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첫 인상은 그저 시골의 허름한 대장간 같다고나 할까.20명도 채 안 되는 직원들이 작은 공장 안에서 뚝딱뚝딱 쇳덩어리 비슷한 것을 두드리거나 간단한 기계를 작동하는 광경은 영락없는 ‘아날로그식’이다. 겉모양은 이래도 1947년 세워진 이 곳은 주로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장이다. 항공기나 로켓 부품에서부터 화분이나 파라솔 부품까지 만들어 팔아 한달 평균 4000만엔(4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올해 67세인 기타지마 가즈토시(北嶋一甫) 사장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실망은 ‘경탄’으로 변한다.“왜 자동화시설이 안돼 있느냐.”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으로 하는 게 기계보다 더 정확도가 높다.”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기타지마 사장이 알루미늄 재료로 직접 화분을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회전틀에 재료를 끼워 형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도자기를 굽는 장면과 기막히게 흡사하다. 단단한 알루미늄 재료가 틀에 끼워져 돌아가기 시작하면 진흙처럼 이렇게 저렇게 형체가 변하면서 어느새 도자기처럼 말쑥한 완제품으로 탈바꿈한다. 기타지마 사장은 “우리는 남들이 어렵다는 90년대에 오히려 경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은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낸다.”는 기타지마 사장의 말 속에 있다.“고객이 아무리 까다로운 주문을 해도 절대 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피해가지 않았고 그래서 기술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이곳엔 영업부가 따로 없고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는다.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기타지마 사장의 권유에 못 이겨 기자는 알루미늄 화분 제작에 도전했다. 재료를 틀에 끼운 뒤 쇠막대로 형체를 빚어내는 작업은 보기보다 훨씬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대충 사진만 찍고 그만두려는데, 사장은 “제대로 만들 때까지.”를 외치면서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3전4기 끝에 그럴듯한 작품을 만든 뒤에야 땀이 흥건해진 작업복을 벗을 수 있었다. carlos@seoul.co.kr ■ 도움을 주신 분들 <2> ▲데자와 마사토(手澤雅人) 오타구산업진흥협회 기획홍보 코디네이터 ▲히키다 와타루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 박사과정(우주물리학 전공) ▲사카이 마사요시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정보정책과 과장보좌 ▲이소 가오루 도쿄전력 노무인사부 노무그룹 매니저 ▲시게미 사토시 혼다자동차 아시모 수석 엔지니어 ▲후쿠오카 다카오 2005 아이치박람회 도요타관 부관장 ▲히라쓰카 다이스케 아시아경제연구소 지역통합연구그룹장 ▲후쿠다 노리오(福田紀夫) 인사원 기획법제과장 ▲와카바야시 시게요시(若林成嘉) 내각관방 우정민영화준비실 기획관 ▲니타 유키오(新田行男) 일본우정공사 우편국 부국장 ▲나카지마 히사하루(中島久治) 일본우정공사 IR담당 부장 ▲다니가키 구니오(谷坦邦夫) 일본우정공사 경영기획부 전략담당부장 ▲가와타 다카시(川田隆) 도쿄전력 노동조합 중앙서기장 ▲마스다 기사부로(增田喜三郞) 일본우정공사 노동조합 국제부장 ▲신도 무네유키(新藤宗幸) 지바대학 법경제부 교수 ▲히구치 도루(口徹) 문부과학성 고등교육국 국립대학법인지원과 사무관 ▲야시로 나오히로(八代尙宏)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요시타케 히로미치(吉武博通) 국립대학법인 쓰쿠바대학 학장특별보좌(교수 겸임) ▲사쿠와 도루(佐桑徹) 재단법인 경제홍보센터 국내홍보부장 ▲고토 이스케(厚東偉介)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교수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일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즈키 마사토(鈴木聖人) 신일본제철 홍보과장 ▲스티븐 윌하이트 닛산자동차 수석부사장 ▲아키야마 스스무(秋山進) 인디펜던트 컨트랙터 협회 이사장 ▲나카하라 에이노스케(中原英之助) 혼다자동차 책임 연구위원 ▲이시즈나 데쓰하루(石綱哲治) 미즈호은행 국제금융법인부 아시아담당 조사역 ▲시오자키 야스히사(崎恭久) 중의원 의원(자민당) ▲고바야시 유타카(小林溫) 참의원 의원(자민당) ▲마쓰이 고지(松井孝治) 참의원 의원(민주당) ▲스즈키 다카히로(鈴木崇弘) 자민당 당개혁실행본부 싱크탱크 준비실장 ▲오타 가즈히코(太田和彦) 도호쿠 예술공과대학 교수 ▲하라다 다케오(原田武夫) 하라다 다케오 국제전략정보연구소 대표 ▲쇼지 마사히코(庄司昌彦) 고쿠사이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센터 연구원 ▲호소다 야스베(細田安兵衛) 주식회사 에타로소혼포 사장 ▲벳푸 마코토(別府允) 주식회사 지쿠요테 사장 ▲나카무라 오사오(中村治夫) 주식회사 야마모토노리텐 참여 ▲야마모토 가즈오(山本一雄) 주식회사 사루야 사장 ▲구로카와 미쓰히로(黑川光博) 주식회사 도라야 사장 ▲다케다 야스히로(武田安弘) 도쿄신문 정치부장 ▲미즈노 마사토(水野正人) 경제산업성 환경정책과 과장보좌 ▲이마제키 아쓰노리(今關重義)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소장 ▲고바야시 다카시(小林崇志) 도카쓰 테크노플라자 부소장 ▲와쿠다 하지메(和久田肇)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문화정보관련산업과 과장보좌 ▲나쓰노 후토시(奈須野太) 경제산업성 지적재산정책실 과장보좌 ▲야마다 신(山田伸) 지바현 상공노동부 산업진흥과 부과장 ▲이와타 요이치(岩田庸一)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장 ▲나미코시 노리코(浪越德子)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 기획추진본부 기획조사부 국제실 과장대리 ▲고노 히로키(河野博樹) NEC 공보과장 ▲하마모토 요시코(浜本佳子)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매니저 ▲가시마 나호(鹿島奈帆) 니혼유센주식회사(NYK) 공보과 ▲사카쿠라 다카히토(坂倉隆仁) 카오 컴퍼니 홍보부 과장 ▲이노우치 미야비(井內雅妃)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 직업가정양립과 육아 개호휴업추진실 취업원조계장 ▲다나카 아쓰히토(田中敦仁)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부실장 ▲오카모토 아유미(岡本步室) 재단법인 2005년 일본국제박람회협회 공보보도실 과장대리 ▲데시가와라 아이(勅使河原愛) 2005 아이치박람회 일본관 홍보담당 ▲나카노 히데아키(中野秀秋) 2005 아이치박람회 아이치현관 부관장 ▲야마시타 요시노리(山下義順)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관 관장대리 ▲혼다 도루(本田徹) 2005 아이치박람회 전력과 홍보부 과장 나종일 주일 한국대사 ▲신태철 KOTRA 도쿄무역관 차장 ▲윤민호(尹敏鎬) 국제금융정보센터 아시아제1부 특별연구원 ▲장병효(張炳孝) 포스코재팬 사장 ▲유성(柳誠) 포스코재팬 경영기획부장 ▲장화경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조영수 KOTRA 아이치엑스포 한국관 부관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최병하(崔秉夏) 현대차 도쿄지사장/
  • “지구를 지켜라” 우주 불꽃놀이

    “지구를 지켜라” 우주 불꽃놀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최후의 날’를 초래할 수 있는 혜성과 충돌 실험을 펼치는 ‘딥 임팩트’(Deep Impact)가 ‘카운트 다운’에 돌입했다. 우리 시간으로 오는 7월 4일 오후 2시 35분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돌 당시의 ‘우주 불꽃놀이’는 아쉽게도 감상하기 어렵지만,6∼7시간 뒤 천체망원경 등을 활용하면 충돌 이후 혜성의 변화된 모습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D-타임은 4일 오후 2시 35분 8일 NASA측에 따르면 지난 1월 12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기지에서 발사된 딥 임팩트호는 시간당 3만 7000㎞의 속도로 장장 4억 3130만㎞를 항해, 충돌 목표 혜성인 ‘템펠1’에 다다르게 된다. 딥 임팩트호는 8일 현재 템펠1로부터 약 2300만㎞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으며 템펠1과 지구와의 거리는 대략 9600만㎞이다. 딥 임팩트호는 29일 템펠1의 공전궤도에 진입한 뒤 7월 3일 구리와 알루미늄 등으로 이뤄진 360㎏의 임팩터(충돌체)를 분리시킬 계획이다. 이어 자체 항해시스템을 갖춘 임팩터는 4일 오전 1시 35분쯤 템펠1과 부딪히게 된다. NASA는 최근 우주망원경인 허블(Hubble)과 스피처(Spitzer)가 보내온 템펠1의 크기와 모양 등의 정보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템펠1은 길이 14㎞, 폭 4㎞의 긴 타원형 모양으로 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 면적의 절반 크기에 해당한다. 원기둥 모양의 임팩터는 높이와 지름이 각 1m에 불과하지만 시속 3만 7000㎞의 속도로 역시 수만㎞의 속도로 마주오는 템펠1과 충돌,TNT 4∼5t과 맞먹는 폭발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충격으로 템펠1 표면에는 축구장 넓이의 ‘크레이터’(거대한 구멍·crater)가 만들어지고, 깊이는 최대 건물 14층 높이에 이를 전망이다. 임팩터는 템펠1에 충돌할 때 방출되는 물질을 카메라와 분광기로 촬영, 지구로 전송한다. 탐사선도 임팩터와 별개로 혜성에 접근, 충돌 과정을 관측한다. 수집된 자료는 혜성 및 태양계 형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상황을 추정하는 데도 활용된다. ●우리나라, 충돌 6∼7시간후 관측가능 충돌은 지구로부터 1억 3000만㎞ 떨어진 곳에서 이뤄지지만 템펠1이 평소보다 최대 40배까지 밝아져 새벽 시간인 미국 등지에서는 맨눈으로도 관측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지구접근천체연구실 문홍규 박사는 “현재 템펠1의 밝기는 9∼10등급 정도이지만, 충돌 이후에는 밝기가 3∼4등급 가량 높아질 수 있다.”면서 “이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혜성의 밝기 한계인 6등급까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충돌 장면을 선명하게 담을 수 있도록 허블과 스피처, 찬드라(Chandra) 등 우주망원경도 동원된다. 허블은 가시광선을, 스피처는 적외선을, 찬드라는 X선을 각각 감지할 수 있어 이들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데이터를 종합할 경우 충돌 전후의 상황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다. 반면 미국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고 낮 시간대인 우리나라의 경우 충돌 장면은 사실상 관측이 불가능하다. 대신 천문연구원 소유인 미국 애리조나주 레몬산에 위치한 직경 1m급 광학망원경을 활용해 충돌 장면을 촬영한 다음 우리나라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전송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어 날이 어두워지는 6∼7시간 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체망원경을 통해 혜성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충돌로 생긴 파편들이 혜성의 꼬리를 형성, 변화하는 모습들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늘의 서쪽,‘처녀 자리’ 근처에서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천문연측은 소백산 천문대(0.6m급 광학망원경)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한편 임무를 마친 딥 임팩트호는 항해를 지속,2007년 1월 화성을 거쳐 2008년 1월말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NASA측은 복귀한 딥 임팩트호에 문제가 없을 경우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또다른 혜성을 향해 다시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LG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과 그의 형제들이 함께 일군 그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제들의 활약이 컸다. 구 회장을 중심으로 철회·정회·태회·평회·두회 6형제는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으며 회사를 키워왔지만 3대째 내려 온 현재는 각기 다른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구철회씨 자손 LG화재가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자녀(4남4녀)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갖고 독립했다. 지난해 자산 4조 6000억원에 매출 3조 444억원, 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한 LG화재는 현재 4남인 구자준(55)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구자원(70)씨는 LG화재 경영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고 방위산업체인 넥스원퓨처 회장을 맡고 있다. 진주고와 고려대 법대, 독일 쾰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구 회장은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LG정보통신 부회장 등을 거쳐 99년 계열분리와 함께 보험업계에 뛰어들었다. 경춘관광 사장을 지낸 유기홍씨의 딸 영희(63)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LG화재 본부장인 장남 본상(35)씨는 지난해 LG화재 주식 10만 7150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3.53%로 늘렸다.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TRC코리아 상무인 차남 본엽(33)씨는 지난해 말 소프트웨어 자문일을 하는 ‘LIG시스템’ 대표이사를 맡았다. 본상씨와 본엽씨는 또 넥스원퓨처 주식을 각각 31.79%씩 보유하고 있다.LG이노텍의 방산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넥스원퓨처는 자산이 3300억원,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한다. 본엽씨가 감사, 구자원 회장의 제수인 이갑희(62)씨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차남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종구 전 산업은행 이사의 딸인 이갑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장녀 본희(37)씨는 정재문(대양산업 회장) 전 국회의원의 아들인 정연준(41) 미디어플러스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본주(35)씨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고 진성규 변호사의 아들 진상범(36) 남부지법 판사와 결혼했다. 구자성씨의 외아들 본욱(29)씨는 LG화재에 다니고 있다. 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지만 곧바로 범한화재(현 LG화재)로 옮겨 30년간 ‘보험인생’을 걸어왔다. 범한화재 런던·뉴욕사무소 소장을 지낼 정도로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금융발전심의회 보험분과위원, 주한 우루과이 명예부영사도 맡고 있다. 임방인(61)씨와 사이에 세 딸을 뒀는데 3녀 문정(30)씨는 최근 타계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와 결혼했다. 장녀 현정(35)씨의 남편은 글로벌 보험회사인 AON코리아 부사장인 에릭 호프먼(42)이다. ●보험경영도 탐험처럼, 구자준 부회장 미사일 전문가에서 보험전문가로 변신한 구자준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미국 캔자스·미주리 주립대를 다니다 귀국,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구 부회장은 74년 금성사 사원으로 입사, 금성정밀(현 LG이노텍)에서 방산사업부 경영을 주로 맡았다.94년 미국산 호크미사일의 탄두 재장착 시스템과 국산화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만큼 미사일 전문가로 통한다. 99년 계열분리로 LG화재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소한 보험영역을 공부하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보험전문대학인 ‘TCI’에서 보험전문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북극점 정복 성공으로 세계 처음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 대장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졌는데 2001년 히말라야 K2등정 때는 베이스캠프까지 원정대와 동행해 전문산악인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마라톤 풀 코스를 6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철인 체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참가한 베를린마라톤부터는 1m마다 100원씩을 적립, 지금까지 900만원을 모았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보험 ‘매직카’와 장기보험 브랜드 ‘엘플라워’를 앞세워 보험업계 2위 진입을 노리고 있다. 부인 이영희(53)씨와의 사이에 동범(30), 동진(28) 형제를 뒀다. ●GS, 두산으로 이어지는 딸들의 혼맥 구철회씨의 네 딸은 하나같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다. 장녀 위숙(78)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 허창수 GS회장 등 GS그룹의 핵심 5형제(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를 낳았다. 재계에서는 허준구 회장의 생가가 있던 옥인동을 따 이들을 ‘옥인동 5형제’라고 부른다. 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고 구자애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2) 형제의원 원장에게 시집갔다. 자애씨의 장남 정규원(42)씨는 LG화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결혼했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선희씨의 장녀 박성연(35)씨는 이창수 전 주 필리핀대사의 아들인 주학(40)씨와 결혼했다. ●트랙터부터 전자태그(RFID)까지,LS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태평두’씨는 2003년 11월 LG전선그룹(현 LS그룹)을 갖고 독립했다.LG의 성장과정에서 이들 3형제의 역할을 감안하면 자산 5조원 남짓한 전선그룹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3형제는 큰 불만 없이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묵묵히 따랐다고 한다.LG는 이후 LG산전(현 LS산전)을 추가로 넘겨주는 형식으로 3형제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를 ‘본부’로 한 LS그룹은 전선·산전·LS니꼬동제련·가온전선·E1·극동도시가스를 주축으로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자산 5조 8800억원으로 CJ와 비슷하며 동국제강, 대림, 동양, 효성, 코오롱보다 규모가 크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과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아셈타워 21층에 나란히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도 같은 건물 14층 사무실을 쓰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진주중과 일본 후쿠오카고를 마쳤는데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다 광복 후 광복군으로 귀국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는 창신동 하숙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는데 플라스틱 사업 진출, 서울사무소 개소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 58년 고향인 진양에서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공화당 대변인 겸 원내총무, 무임소장관, 국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다 82년 LG그룹 고문으로 돌아왔다. 최무(83)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는데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이준범씨는 현재 합성수지업체인 화인 회장이다. ●멜빵 맨 ‘디지털 전도사’ 구자홍 회장 장남 구자홍(59) 회장은 73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홍콩·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통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영국에서 찰스 황태자를 만났을 때 영국 사람들조차 발음과 표현에 감탄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87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옮긴 뒤 2003년까지 18년을 전자에서 일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지수 평가에서 1위를 받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CEO’로 GE, 모토롤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의 CEO와도 교우가 깊다. 특히 빌 게이츠 회장, 리빈 주한 중국대사와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북미·아시아·유럽의 전직 고위관료,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TC(Triliteral Commission)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학창시절 쌓은 농구와 수영실력이 수준급인 구 회장은 골프에도 남다른 재질을 보여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요즘 핸디캡은 7정도. 또 한국기원이 인정한 ‘아마 6단’의 바둑실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주요 사업장을 순방하며 ‘분위기’를 익힌 구 회장은 ‘R&D워크숍’,‘혁신한마당’,‘테크놀로지 이벤트’ 등 그룹차원의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며 회장으로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전력망회의(CIGRE)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공식 대외활동도 재개했다.LG전자 CEO직에 유난히 애착을 보였던 구 회장이 전자에서 못다 이룬 꿈을 LS그룹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관심사다. 구 회장은 70년대 재벌 오너일가의 장남으로서는 흔치 않게 지순혜(60)씨와 연애결혼했다. 구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잠깐 다니다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인근 뉴저지주립대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순혜씨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고 한다. 순혜씨는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떠난 엘리트 여성으로 귀국 후 이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경복고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LG화재에서 주로 일했다.LG건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사장을 지낸 뒤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태향(55)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는데 장녀 은희(2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과 결혼했고 장남 본규(26)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 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아버지와 같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자 재벌가 자제로는 흔치 않은 학군단(ROTC) 출신으로 포병학교를 수석으로 마치고도 전방 부대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행정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미국 셰브론사에서 잠시 일하다 84년 호남정유 원유수급조정과 과장으로 입사, 정유사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부인 조미연(53)씨는 경희대 조영식 이사장의 차녀. 아들 본혁(28)씨는 LS전선 경영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은 LG상사에서 잠시 일하다 일찌감치 독립 경영을 했다. 외동딸 원희(25)씨는 구 회장의 경기중·고 동창인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오는 30일 낮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결혼한다. 마침 구평회 명예회장의 ‘팔순잔치’도 이날 저녁 그랜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구씨 일가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아들인 이상현(28)씨는 지난 2003년 운동권의 ‘메카’였던 한양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를 낳았다. 이씨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유학 준비 중이다. 구평회(79) E1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51년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1954년 뉴욕에서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 LG의 첫 해외주재원으로 기록됐다. 구 명예회장은 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 때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LG경영의 핵심을 담당했다. 락희화학 전무시절인 65년 정유사업 진출 보고서를 형에게 제출, 오늘날 GS칼텍스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84년에는 국내 최초의 LPG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는데 이 인연으로 사업연관성으로 따지면 GS그룹에 넘어갔어야 할 E1이 LS그룹 몫으로 남았다. 재계원로 가운데 독보적인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으로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린다.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을 지냈고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대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340억원의 유치기금을 조성하는 등 월드컵 개최에 큰 공을 세웠다. 현재도 한·미협회장을 맡아 한·미간 우호증진에 애쓰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철인 CEO’ 구자열 부회장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LG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뉴욕지사와 도쿄지사, 동남지역본부장 등 오랜 해외경험으로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구 부회장은 해외경험을 살려 폭넓은 해외인맥을 자랑하는데 2003년에는 도쿄 주재 특파원, 은행지점장, 지사장 등이 모여 만든 ‘동경회’ 회장을 맡았다. 직전 회장은 김인진 한진 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 등과는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를 쌓고 있다. LG증권을 거쳐 2001년 LS전선 재경부문 부사장으로 부임한 구 부회장은 2002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LS전선은 특수전선 업체인 GCI, 알루미늄 창호업체 알루텍, 광부품 업체인 네옵텍, 초고주파 부품업체인 코스페이스,2차전지 음극재 전문업체인 카보닉스에 이어 선박용 케이블업체인 진로산업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유명하다.2002년 독일에서 열린 ‘트랜스 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인 최초로 7박8일 동안 650㎞를 완주할 정도. 스키는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노보드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지난겨울 사내 스키동호회 모임에 유일하게 스노보드를 들고 나타나 젊은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명함에 ‘No Innovation,No Future(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을 정도로 체질 개선을 독려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사내게시판에 ‘애니 기븐 선데이’라는 영화 동영상과 메시지를 직접 올려 팀워크 정신을 강조했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과감한 도전과 팀원들간의 협력을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일궈 낸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24일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사랑하는 LS전선 임직원들과 함께 듣고 싶다.”며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내동호회 행사에서는 직원들 자녀에게 일일이 용돈을 챙겨줬다고 한다.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48)씨와 결혼,1남2녀를 뒀는데 아직 학생이다. 차남인 구자용(50) E1 사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무역학과를 마쳤는데 사촌형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ROTC 장교로 복무했다.79년 LG전자에 입사, 주로 미주법인에서 일하다 계열분리를 앞둔 2001년 LG칼텍스가스(현 E1)로 자리를 옮겼다. 구 사장은 보수적인 구씨 집안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직원들과의 자리에서도 본인이 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한다고 한다.E1이 10년 연속 무교섭 임금 타결을 이뤄낸 데는 구 사장의 이같은 면모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인 현주(46)씨와 결혼, 두 딸을 뒀는데 둘다 외국 유학 중이다. 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마치고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97년부터 고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경영인으로 전격 변신했다. ●8개사 사장을 거친 구두회 ‘막내’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고려대 상대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경영에 뛰어들었다.74년 범한화재 사장을 시작으로, 희성산전, 금성계전, 금성통신, 금성반도체, 호남정유 등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뒤 95년 구본무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났다. 위로 두 형과 마찬가지로 구 명예회장도 한·독경제협력위원회, 한·중남미협회장, 고려대 교우회장, 성북구 문화원장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벌였다. 이같은 공로로 78년 멕시코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으며 94년에는 ‘멕시코 최고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고려대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도 선정됐다. 구 명예회장은 유한선(72)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외아들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홍익고와 미국 베네딕틴대 경영학과, 시카고대 MBA를 거쳐 90년 LG정유에 입사했다.LG전자 상하이지사 근무로 중국과 인연을 맺어 LS전선에서도 중국지역 담당을 맡고 있다. 장상돈(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아들)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의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ukelvin@seoul.co.kr ■ LG·두산家, 겹사돈·사업제휴속 프로야구선 ‘서울 라이벌’ 신경전 LG가(家)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두산가문과 우애가 두터웠다. 구인회 회장이 1956년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산, 경방그룹 회장들과 골프 친목모임인 ‘단오회’를 결성할 정도였다. LG와 두산은 또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철회씨가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과 사돈을 맺으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그룹은 LG가 90년 프로야구단 ‘MBC청룡’을 인수하면서 잠시 사이가 벌어졌다.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한 두산구단의 ‘방해’가 심했던 것이다. 이후 LG임직원들은 두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구자경 당시 회장이 부산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평소 좋아하던 양주 ‘패스포트’ 대신 다른 술이 차려져 있었던 것. 두산 제품을 빼라는 기조실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 회장은 기조실 사장에게 일부러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룹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한 일로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LG와 두산은 오는 30일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 구자철 회장과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5남 박용만 부회장이 사돈을 맺으며 ‘겹사돈’으로 이어진다.LS전선과 두산엔진은 ‘합작사’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혼사나 제휴와 상관없이 프로야구 ‘서울 라이벌’의 팽팽한 긴장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LG트윈스가 최근 두산과의 잠실 홈경기에서 이길 때까지 무료입장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北 원심분리기 알루미늄관 150t 입수 2차 핵위기 촉발시켜”

    |도쿄 이춘규특파원|북한이 우라늄농축용 원심분리기 2600대분에 상당하는 고강도 알루미늄관 150t을 러시아 업자로부터 입수한 사실을 미국 당국이 파악,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고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 정부 등 복수의 6자회담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이 북·미합의(1994년)를 무너뜨리고 2002년 10월 시작된 북핵위기의 발단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업자로부터 원심분리기의 부품인 고강도 알루미늄관 150t을 입수했다. 북한이 손에 넣은 알루미늄관은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합병 우라늄농축기업인 우렌코사가 개발한 원심분리기에 사용되는 알루미늄관과 동일한 소재이며 치수도 ㎜단위까지 일치한다. 독일 업자로부터도 200t을 입수하려고 했지만 독일 당국이 2003년 4월 이 업자의 무허가 수출 기도를 적발,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주역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이른바 ‘핵의 암시장’을 통해서도 원심분리기 실물 20대와 설계도를 손에 넣었다. 미국 정보당국은 2002년 6월쯤 이같은 정보를 파악, 북한이 우라늄농축계획을 기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분리기에 의한 우라늄농축계획의 가동 여부를 예의주시해 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2002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우라늄농축계획을 지적했으며 회담 이후 북한이 “우라늄농축계획을 인정했다.”고 발표, 북핵을 둘러싼 양국 대립이 심화됐으며 결국 북·미 합의의 붕괴로 연결됐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tae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생활의 지혜] 카펫 세탁 후 가구자국을 없애려면

    젖은 카펫에 가구를 놓은면 털이 누워 자국이 남아 골치다. 알루미늄 쿠킹호일을 카펫 위에 놓고 가구를 놓으면 카펫 습기가 호일 밑으로 빠져 나가 자국이 생기지 않는다.
  • [MD의 훈수-오토 캠핑용품] ‘루프 텐트’ 하나면 잠자리 걱정 끝

    [MD의 훈수-오토 캠핑용품] ‘루프 텐트’ 하나면 잠자리 걱정 끝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시기. 자가용에 텐트와 코펠을 싣고 오토 캠핑을 떠나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떠나기 전 차량용품부터 캠핑에 꼭 필요한 텐트와 식기 등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캠핑은 호텔보다 불편하기에 준비 정도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주행 4만㎞ 넘은 타이어는 교체해야 안전 운전자가 타이어에 관심을 가질 때는 1년 중 딱 두 차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과 타이어 마모가 심한 여름철이다. 특히 오토 캠핑을 떠나는 경우 언제 비포장길을 달릴지 모르기에 반드시 타이어에 신경써야 한다. 보통 4만㎞ 이상 주행을 했다면, 타이어를 갈아주어야 한다. 타이어의 마모가 심하면 제동력이 약해지고 커브길이나 빗길에서 미끄러져 대형 사고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타이어 기압이 낮거나 지나치게 높으면 연비가 나빠지고 구멍날 위험도 다분하다. ●차량용 냉장고는 용량 너무 크지 않게 창문을 열어도 덥고 창문을 닫아도 덥다. 무더위로 자칫 휴가 길이 짜증스럽게 되기 쉽다.15ℓ짜리 차량용 냉장고 하나만 갖고 있다면,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휴게소를 찾지 않아도 된다. 아이스박스가 없어도 삼겹살, 김치 등 간단한 음식을 거뜬히 보관할 수 있다. 차량용 냉장고는 냉동이 힘들고, 냉동이 되더라도 차량에 무리를 주기에 적당한 용량을 선택해야 한다. 지난해 SOVO와 Myspatium이 적은 용량을 저렴하게 판매, 인기를 얻었다. ●루프 텐트 가격 낮아질 듯 TV 에 나오는 캠핑 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화장실이나 침대까지는 아니어도 일반 텐트보다는 고급스러운 잠자리를 원한다면, 차량에 설치하는 루프 텐트가 유용하다. 현재는 고급형만 출시돼 250만원 정도로 가격이 부담되지만, 실용적인 모델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추세. 차량의 프레임을 바꾸어야 하는 기본 공사와 더불어 여름철이 끝나면 떼내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설치가 쉽고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캠핑 마니아에게 인기다. 올해는 루프텐트가 저렴한 가격으로 나올 예정. 루프텐트와 스키캐리어 전문 브랜드 THULE에서는 올 서울 오토쇼에서 다양한 루프텐트를 선보였다. ●원터치 텐트는 견고성이 생명 가족 단위의 캠핑이라면 5∼6인용 텐트면 적당하다.2003년 첫선을 보인 원터치 텐트가 올해도 인기 상품으로 등극할 것. 유명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가격대비 우수한 제품이 많다. 원터치 텐트도 접이 부분이 약간씩 다르다. 트렁크 크기에 따라 2단, 또는 3단으로 접히는 텐트를 고르되, 상단 지주 부분이 튼튼한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텐트 구입 때는 방풍이 잘 되는지, 해충방지막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설치가 쉬워야 함은 물론, 웬만한 바람에도 견디는 튼튼한 구조를 갖추었는지 확인하자. 그늘막이 있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요소. 산이나 강가에서 야영을 할 경우 이슬이 많이 맺히기 때문이다. 산들로 그늘막 텐트는 3만 9000원이며, 바닥 매트를 포함하면 4만 5000원선이다. 여름 기획상품으로 나온 중국산은 1만원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 ●경질 코펠은 국산도 우수 오토캠핑의 또다른 재미는 바로 음식. 같은 음식이라도 야외에서 가족ㆍ연인과 함께 즐기면 두배로 맛있다. 피크닉 테이블과 파라솔을 준비하면 쭈그려 앉아서 식사하는 불편함을 없앨 수 있다.5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다. 내쇼날의 DAWNING 알루미늄 롤 테이블은 테이블을 말아서 가방에 넣을 수 있으므로 보관 및 이동이 편리하다. 6∼7인용 경질 코펠은 지난해 히트작. 국내 상품이 우수하므로 굳이 해외 브랜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토 캠핑은 물론 등산과 낚시 등 레저 활동에도 필수품이기에 마련해두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다. 버너는 가벼운 것을 골라야 한다. 안전성을 고려, 유명 브랜드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분위기를 잡고 싶다면 숯불 바비큐 그릴도 준비하자. 고기와 생선, 조개는 물론 감자와 고구마도 구워먹을 수 있다. 운반이 쉬운 이동식 그릴은 10만원 미만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지금 그곳은] 하이서울페스티벌 현장

    [지금 그곳은] 하이서울페스티벌 현장

    ‘도심에 가면 축제가 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이 지난 3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시청앞 서울광장 등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행사 첫날인 1일 행사장 주변 도로는 너무 많은 시민들이 몰려 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첫날부터 시민몰려 ‘만원사례’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5의 주무대인 서울광장 주변에는 1일 지구촌 한마당, 서울 5일장, 세계 음식전 등이 한꺼번에 열려 잔치 분위기가 달아 올랐다. 지구촌 한 마당에는 일본 어린이들의 민속 공연 등이 필쳐져 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다. 청계천 걷기대회에 참가한 시민 3만여명은 서울신문사 앞과 시청 뒷길에 늘어선 ‘세계 음식전’에서 이색 음식들을 맛보는 즐거움에 빠지기도 했다. 쌀로 만든 케이크, 화로에 구운 베이컨, 즉석에서 말아주는 쌀국수 등 43개국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날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던 행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열린 ‘애지중지 서울 5일장’. 돌담길을 따라 250여명의 시민작가들이 수공예품들을 선보인 장터에는 어린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흙으로 만든 공룡 모양의 피리, 톱밥으로 만든 인형, 부엌을 축소해놓은 밀가루 반죽 미니어처 등 신기한 물건들을 만져보며 “와아∼신기하다.”를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터에는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코너도 다양했다.‘대학로 텐바이텐’팀은 1000원만 내면 알루미늄 줄로 예쁜 미니바구니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경희(9)양은 “이런 것은 처음 만들어 보는데 너무 재미있다.”면서 “엄마랑 아빠꺼도 만들어 어버이날 선물로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물레체험’팀은 8000원을 내고 컵에 그림을 그리면 초벌구이를 거쳐 머그컵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 5일장은 ‘환경’이 주제다. 서울예대 동아리 ‘사진공작단’의 환경관련 사진을 포함, 다양한 친환경 작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5일장 행사를 기획한 유재현씨는 “대학생·공예가·미술작가 등 시민 작가들이 직접 창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 일반 벼룩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5일장은 축제가 끝나는 5일까지 덕수궁 돌담길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린다. ●차도에서 쌀 씻는 꼴불견도 하이서울 페스티벌은 첫날이어서인지 부족한 점도 있었다. 서울사랑 음식축제에서는 차도에서 쌀을 씻는 등 비위생적인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30일 전야제에선 국민가수 조용필씨가 두시간 동안 화려하고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여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5만여명의 서울시민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으며, 신곡 ‘청계천’을 발표 눈길을 끌었다. 또 이번 축제에서 첫 선을 보인 물을 주제로한 ‘PIGI 영상쇼’는 시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프로그래밍된 필름들이 9개의 조명기를 통해 시간차를 두고 대형 영상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시청 본관 벽면에 화려한 3차원의 입체 영상물을 만들어 냈다.‘PIGI 영상쇼’는 5일까지 계속된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과속에 무너진 ‘철도강국’ 자존심

    |도쿄 이춘규특파원|어처구니없는 열차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본의 ‘열차 안전신화’가 무너지고 있다.‘철도 대국’이라는 일본인들의 자존심도 구겨졌다.25일 효고현 열차 탈선 사고에 앞서 도쿄시내 전철 건널목에서는 열차가 진입하는데도 간수가 차단기를 올려 행인들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니가타현 지진 때는 신칸센도 탈선했다. ●사고순간, 승객 일제히 공중에 떠 이날 사고는 승객이 가장 많은 출근·통학 시간에 일어나 인명피해가 더욱 컸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순간 승객들은 일제히 공중에 뜬 뒤 앞으로 날아가거나 처박혔다고 한다. 승객들은 “가가강…”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객차가 흔들린 뒤 순식간에 굉음이 들리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한 승객은 “속도가 꽤 됐다. 순식간에 유리창이 깨지고 몸이 회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사고순간을 전했다. 승객들은 열차가 전 역을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늦어서 미안하다.”는 방송을 한 뒤 속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열차가 들이받은 맨션의 6층에 사는 여성(26)은 “지진인 줄 알고 일어났더니 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면서 “한신대지진 때보다 진동이 더 컸다.”고 전했다. ●“지옥 같은 참사현장” 사고 현장 부근에는 “살려달라.”는 구원요청이 빗발치고 울음과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어지럽게 들렸다. 비릿한 피 냄새도 진동했다. 사고로 처참하게 깨진 문이나 창문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승객들도 적지 않았다. 맨앞 차량에 타고 있던 여학생(18)은 “정신을 차려 보니 밖으로 튕겨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은 “주위에는 여럿이 넘어져 있었다. 부서진 펜스가 매달려 있어 그걸 잡고 밖으로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구조작업은 경찰과 소방서·자위대원과 자원봉사대 등이 속속 현장에 도착, 긴박하게 이뤄졌지만 희생자는 점점 늘고 있다. ●과속·과실로 인한 인재 가능성 정확한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초보기관사와 과속, 낡은 설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사고로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열차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남성 회사원(47)은 “사고현장 직전에 완만한 커브가 있다. 평상시에는 감속했지만 오늘은 그대로 달렸다.”며 과속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회사측은 “계산상으로는 커브길에서 시속 133㎞ 이상으로 달리면 탈선한다.”고 설명했다.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는 올해 23세로 입사한 지 11개월밖에 안된 초보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NHK는 사고 선로의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형이어서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1990년대 이후 철도 회사들이 비용절감과 절전 차원에서 차량을 철에서 가벼운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로 바꾼 게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운행 중인 일본내 열차차량의 절반 이상이 경량 차량이다. 도시 전철은 물론 신칸센도 마찬가지다. 사고 열차는 스테인리스제의 차량이었다. 제조·유지관리 비용, 전력 소비량을 줄이고 소음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효율은 높였지만 측면의 충격에는 약하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tae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MD의 훈수-압력솥] ‘어머니가 갓 지은 밥맛’ 바로 이 맛이야

    [MD의 훈수-압력솥] ‘어머니가 갓 지은 밥맛’ 바로 이 맛이야

    주방 일에 서툰 신혼 부부들도 쉽게 밥맛을 낼 수 있는 압력솥이 혼수품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압력솥으로 지은 밥은 윤기와 찰기가 있고 현미나 보리처럼 익히기 까다로운 곡류도 쉽게 조리할 수 있어 ‘갓 지은 어머니의 밥맛’을 못잊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안전장치·AS보장·정품 등 확인 고압으로 단시간에 조리해 비타민 등의 영양소 파괴가 적고 육류 등의 지방량을 줄여주기 때문에 ‘웰빙형 식탁’을 만드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고압을 사용하는 제품이니만큼 구입할 때 무엇보다도 안전장치가 잘 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애프터서비스가 보장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수입 압력솥의 경우 정식 경로가 아닌 병행 수입의 방법으로 들여온 제품을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데,AS와 안전을 위해서는 정식경로를 통해 판매하는 정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뚜껑의 고무 패킹과 같은 부품은 1∼3년에 한번 정도 교체해 줘야 하는 소모품이기 때문에 부품 구입에 어려움이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자신의 가정에 맞는 용량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가족 수가 적은 가정이 많아 작은 용량에 대한 소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업체들도 다양한 소용량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신혼살림에는 보통 1.8ℓ(2∼3인용)∼4.5ℓ(7∼8인용)가 적당하다. 압력솥을 안전하게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리법도 중요하다. 조리하는 음식의 양은 압력솥 용량의 3분의2 이하가 적당하며 콩과 같이 부피가 많이 늘어나는 음식은 3분의1 이하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름기가 많고 카레와 같이 점성이 높은 음식을 할 때는 압력솥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뚜껑부분은 압력장치와 고무 패킹이 있어 반드시 손으로 세척하며 조리 후 이물질이 묻어 있다면 분리하여 깨끗이 세척해 주도록 한다. ●실속파에겐 저렴한 국산이 어울려 풍년, 키친아트, 퀸센스 등 국내 주방용품 업체 제품들은 소재를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와 같이 가벼운 것으로 만들고 꼭 필요한 기능만을 모아놓아 초보 주부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다. 가격도 10만원대로 저렴한 데다 부품을 교체할 때도 비용이 적게 들어 부담이 없다. 풍년의 ‘하이클래드 압력솥’은 솥 전체가 3중 구조로 돼 있어 밑면만 3중인 압력솥 보다 열효율과 열전도율이 좋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의 샌드위치 구조로 돼 있어 스테인리스의 튼튼함과 알루미늄의 가벼움을 갖췄다.4.5ℓ가 7만 8000원,2.5ℓ가 6만 9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해 실속파에게 인기 만점. ‘키친아트 기 압력솥’은 ‘스테인리스 스틸+알루미늄+스테인리스 스틸’의 3중구조로 된 특수 강판을 사용, 열이 골고루 분포돼 일부만 타거나 눌어붙지 않는다. 커버 안쪽에 고급 옥을 부착한 것도 특징.4.5ℓ가 17만 4000원,2.8ℓ 가 16만 8000원. ‘세신 퀸센스 편심 압력솥’(가격 3ℓ 11만 2000원,4ℓ 12만원)은 뚜껑과 손잡이가 슬라이드 타입으로 빈틈없이 물려 있고 부드럽게 열려 사용하기 편하다. 압력 표시장치가 있어 밥하기가 쉬운 편이다. 밥 이외에 갈비찜·삼계탕 등 조리 시간이 긴 요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내구성이 강한 스테인리스 소재의 제품을 추천한다. 독일 주방업체 휘슬러의 ‘휘슬러 프로 압력 압력솥’은 고급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튼튼하고 안전하다. 음식 재료의 특성에 따라 3단계의 압력계기 밸브로 압력의 단계를 조절 할 수 있으며 바닥 내부를 특수 처리해 육류를 조리할 때 지방을 빼주어 저지방 고단백 요리를 즐기는 가정에 추천할 만하다.1.8ℓ 48만원,2.5ℓ 54만원이다. ●다양한 기능 원하면 비싸도 외국산 택해야 스위스산 ‘쿤리콘 듀로메틱 톱 압력솥’은 여성의 손 크기를 감안해 손잡이를 얇게 제작했다. 매끈하게 표면을 처리하고 손잡이 부분의 ‘잔류압 배출 수동 작동 버튼’을 없애 깔끔한 디자인으로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은 편. 가격은 2.5ℓ 47만원,3.5ℓ 48만원. 독일 주방업체 실리트의 ‘시코메틱 T압력솥’은 조리시 발생하는 스팀으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신선한 허브나 양념을 첨가하면 향이 살아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격 1.8ℓ 57만원,2.5ℓ 62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모든 기능을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고,2단계 자동 압력 조절 장치가 있어 불 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 롯데백화점 임영희
  • 혼다 콩수출로 재미

    일본 자동차회사 혼다가 미국 오하이오주 메리스빌에 있는 조립공장 주변 밭에서 콩을 경작해 모국에서 차부품을 싣고온 컨테이너에 실어 돌려보내는 수출로 올해 상당한 재미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AP통신이 17일 보도했다. 혼다의 콩 수출은 지난 1986년 이 회사의 모리모토 히토치 이사가 우연히 공항에서 일본의 콩 판매상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 판매상은 미국 콩을 더 많이 수입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모리모토 이사가 자동차 부품을 싣고온 컨테이너가 빈 채로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에 착안, 기발한 수출방식을 구상해낸 것이다. 혼다는 오하이오와 미시간주의 농부들이 재배한 콩을 수출해 재미를 보다가 아예 주행시험장 안쪽 땅에 직접 콩을 경작하기로 했고 지난 99년에는 공장 뒤편에 가공공장까지 세웠다. 이 공장에는 100만달러를 들인 집진시설까지 설치됐다. 공장 주변의 2만 2000에이커 밭에서는 현재 250∼280명가량이 콩을 경작해 혼다에 공급하고 있다. 혼다는 72년 ‘혼다트레이딩 아메리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자동차 부품, 알루미늄, 강철과 함께 콩을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콩 75만∼80만부셸(1부셸은 35.24ℓ)을 수출, 지난해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1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혼다가 자동차 관련 판매로 최근 3개월 만에 200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에 견주면 미미하지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새달 300억 증자 재무구조 개선 아파트 새 브랜드 ‘하우스토리’로”

    “새달 300억 증자 재무구조 개선 아파트 새 브랜드 ‘하우스토리’로”

    “알덱스컨소시엄은 단순히 남광토건 주식 가치를 올려 되팔고 빠지는 회사가 아닙니다. 회사 규모를 키우고 전문 건설업체를 보유하기 위해 남광토건을 인수한 회사입니다.” 송시권 남광토건 사장은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달 말 300억원 규모의 신규 주식을 발행해 재무상태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공격적인 수주 활동을 펴 내년말까지 연간 수주 목표를 1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임 사장이 갖고 있는 지분(23%)에 대해서는 “현재 실물을 확보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면서 “연말까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회사 보유분으로 되돌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덱스 자본의 성격에 대해서는 “알덱스는 국내 알루미늄 제산제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자본력도 튼튼한 회사”라며 “(남광토건의)전문 경영인 체제를 인정하고 있어 투기자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송 사장은 이날 “진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남광의 제2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새 기업 이미지(CI)와 아파트 브랜드 ‘하우스토리’도 내놓았다. 오는 6월 수원 오목천동 아파트 공급을 시작으로 올해 6800여가구의 아파트를 분양할 계획이다. 공급 물량이 지난해보다 배를 넘는 수치다. 특히 오목천 아파트부터는 새 브랜드를 사용하게 된다. 송 사장은 “남광은 오래전부터 토목공사 부문에 강하고 국내 굵직한 업체들과 비교해 기술과 경험에 있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서 “공공공사 수주에 치중하는 한편 주택을 비롯한 건축 부문의 포트폴리오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사업도 적극 추진할 뜻을 비쳤다. 송 사장은 “중국 선양에서 아파트 3000가구를 짓기 위해 현지 업체와 합작법인을 만들었다.”면서 “이르면 올해 말 사업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사장은 대림산업에서 굵직한 현장소장과 주택사업 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