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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산더 왕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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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계백화점 가을개편때 수입 브랜드 전면에

    신세계백화점의 가을 상품 개편을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실적이 저조한 국내 여성복 브랜드들을 대거 퇴출시키는 한편 그 빈자리를 수입 브랜드로 채울 방침이어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는 다음 달 6일 재개관을 목표로 서울 중구 충무로 본점 신관의 여성복 매장인 4층과 5층 재단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8년 만의 리뉴얼 공사에 대해 유통 및 의류업계에서 입방아를 찧는 이유는 수입 브랜드를 전면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십년간 매장을 운영해 왔던 국내 여성복 브랜드 대부분은 보따리를 싸게 됐다. 철수 예정인 브랜드는 최연옥, 신장경, 쉬즈미스, 요하넥스, 시슬리, 쿠아, 에고이스트 등 50개에 달한다. 수입 브랜드 가운데서는 ICB만 유일하게 포함됐다. 국내 브랜드가 떠나간 자리는 대부분 해외 브랜드로 채워진다. 프리마클라쎄, T 바이 알렉산더 왕, 바네사 브루노, A/X, 빈스, 쿤, 폴앤조 등 22개 브랜드가 새로 둥지를 튼다. 국내 브랜드로는 9개가 신규 입점한다. 당장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에 역행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상권 특성상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인근에 경쟁 백화점, 아웃렛 등이 들어서 있어 똑같은 브랜드로 더 이상 고객들을 끌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의 반응은 미묘하게 갈린다. 한 관계자는 “다수 브랜드와 자금력을 보유한 대기업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단독 브랜드로 백화점 하나만을 바라보고 영업을 해온 중소기업들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두점 등을 운영할 여력이 없는 중소 업체들 형편에서 백화점은 최대 상권이다. 또한 매장 축소는 곧 직원 실직으로 이어져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퇴출당하면 그것으로 끝인데 백화점 수수료만 낮추면 중소 협력업체를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정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이번 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얘기도 나온다. 불황으로 대다수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상황에서 ‘큰손 고객’ 유치를 위해 고가의 수입 브랜드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백화점만 탓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왕실, 동화로 포장한 잔혹동화?

    [주말 인사이드] 왕실, 동화로 포장한 잔혹동화?

    지난 7월 22일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한 아이가 태어났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아들이자 장차 영국 및 영연방 국가들을 이끌게 될 왕위계승 서열 3위의 왕자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다. 사람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이 작은 아이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2011년 평민 출신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세기의 결혼을 하면서 이미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사람들이 세계 왕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와 ‘조금’ 다른 그들의 삶을 엿본다. 영국처럼 국왕을 군주로 두고 있는 나라는 44개국이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일본, 태국 등의 왕은 대부분 상징적 존재다.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로 설명되는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정치적 책임과 권한은 총리 등 내각이 갖고 있다. 구(舊) 대영제국의 식민지 국가로 구성된 영국 연방국가에 속하는 뉴질랜드, 호주 등의 국가원수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선출직 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형태의 정치 체제를 취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13개 주 가운데 말레이 반도 9개 주의 군주들이 5년마다 지방군주 중 한 명을 새로운 국왕으로 선출한다. 이외에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통치하는 바티칸시티는 여타 왕실 가문과는 다르지만 이론상 군주제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등의 나라는 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소위 왕정이라 불리는 걸프 국가들의 경우 가문의 수장이 절대군주이자 세습군주로서 군림한다. 특히 중동 왕정 국가들은 형제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전통이 강하다. 걸프 국가 가운데 입헌군주국인 카타르의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전 국왕은 지난 6월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 왕세자에게 양위를 결정해 주목받았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걸프 왕정국가에서는 국왕이 타계하거나 쿠데타로 인해 왕권이 이양됐을 뿐 생전에 자발적으로 양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 왕실은 나라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이 다르다. 성별에 관계없이 첫째가 왕위를 계승하는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이다. ‘여왕의 나라’ 네덜란드는 지난 4월 베아트릭스 여왕의 뒤를 이어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즉위함에 따라 123년 만에 남성 국왕이 탄생했다. 네덜란드에서 남성이 왕위에 오른 것은 1890년 빌럼 3세 사망 당시 10세이었던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한 이후 처음이다. 알렉산더르 국왕이 즉위함에 따라 장녀인 카타리나 아말리아 공주가 서열 1위 왕위 계승권자가 되면서 알렉산더르 국왕 이후 네덜란드는 다시 ‘여왕의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여성이 왕위를 잇지 못하게 돼 있다. 아키히토 국왕의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가 1993년 결혼한 이후 아직 왕세손을 낳지 못하고 있다. 차남인 후미히토가 2006년 아들을 낳자 후미히토가 왕위를 계승하거나 여성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왕실 전범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 로열 패밀리들의 ‘러브 스토리’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사람들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왕족과 평민 배우자와의 신분을 뛰어넘은 결혼을 통해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왕실의 삶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킨다. 유럽의 여러 왕실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장남인 프레데리크 왕세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요트선수로 출전, 우연히 만난 평범한 직장인 메리와 친해져 결혼에 골인했다.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막시마 왕비와의 결혼 당시 막시마 아버지의 이력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막시마의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호르헤 비델라 군사독재 정권 때 장관을 지낸 이력 때문이다. 네덜란드 의회는 논쟁 끝에 막시마의 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에 동의했다.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아들이자 모나코 공국의 왕인 알베르 2세는 세계 유명 모델이나 배우들과의 염문설로 유명하다. 알베르 2세는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샤를렌 위트스톡 왕비와 결혼을 했다. 그는 이번이 초혼이지만 아프리카 토고 출신의 미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다. 정식 혼인을 통해 태어나지 않은 자식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않는 모나코 법에 따라 왕위계승 서열 1위는 알베르 2세의 누이인 카롤린 공주다. 왕실은 또 숙명처럼 늘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1975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뒤 즉위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각종 논란과 부정부패 의혹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퇴위 요구를 받았다. 1981년 군부 쿠데타를 무산시키면서 국민들의 인기를 얻은 카를로스 국왕은 2007년 칠레에서 진행된 중남미 정상회담인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 폐회식 도중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전 스페인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닥쳐”라는 폭언을 해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스페인에서 정치적인 실권이 없는 국왕이 외국 정상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스페인 왕실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은 1년 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불어닥친 재정 위기로 스페인 경제가 휘청거릴 때 카를로스 국왕이 아프리카로 호화 코끼리 사냥을 간 이후부터다. 최근 거액의 비자금이 들어 있는 카를로스 국왕 가족 명의의 스위스 비밀계좌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원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스웨덴 역시 앞서 2009년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비용으로 약 30억원이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 중 일부는 왕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경제난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반 국민들이 식민지 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왕실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英 로열베이비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지난 22일 태어난 영국 ‘로열 베이비’의 이름이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로 정해졌다고 영국 왕실이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켄싱턴궁은 성명에서 “케임브리지 공작(윌리엄 왕세손)과 공작부인(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이 아들의 이름을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로 지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전했다”고 밝혔다. 역대 영국 왕실에서 6명이 ‘조지’라는 이름을 썼고 이 가운데 4명은 연이어 사용했다. 영국 국왕의 이름으로 채택된 빈도로 볼 때 ‘조지’는 각각 8번씩 사용된 ‘헨리’와 ‘에드워드’에 이어 세 번째다. 독일 하노버가(家)에서 영입돼 1714년 영국 왕위에 오른 조지 1세가 가장 먼저 사용했고,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자 영화 ‘킹스 스피치’(2011년)의 실제 모델이던 조지 6세(1936~1952년 재위)가 가장 최근에 이 이름을 썼다. 왕실 전기작가인 로버트 레이시는 “분명 여왕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중간 이름이며 ‘루이스’는 윌리엄 왕세손의 중간 이름 가운데 하나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아버지 등의 이름을 모아 지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식 경제모델 벤치마킹하고 싶다”

    “한국식 경제모델 벤치마킹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몰락한 세르비아 카라조지 왕가의 알렉산더 카라조지(67) 왕세자 부부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알렉산더 왕세자는 옛 유고슬라비아 왕국 카라조지 왕가의 마지막 왕 페테르의 아들로 1945년 망명지인 영국에서 출생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관계자는 22일 “알렉산더 왕세자 부부가 23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방한한다.”면서 “알렉산더 왕세자 부부의 방한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알렉산더 왕세자는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이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세르비아의 경제발전과 번영을 이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모국에 적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자주 표명해 왔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왕세자는 방한 기간에 한국의 경제발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유관기관과 주요 산업 지구를 둘러보고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 경복궁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영국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한 그는 그리스와 이스라엘, 이집트, 영국 등지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하다 1991년부터 유고슬라비아를 오가며 당시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축출되고 친서방 개혁파들이 왕족의 시민권과 재산을 박탈한 법령을 철폐한 2000년 모국에 영구 귀국했다. 그는 2001년 옛 공산 정권에 의해 거부된 국적을 회복하고 몰수된 재산 일부를 돌려받아 현재 옛 유고슬라비아 왕궁에 거주하고 있으며 세르비아 왕실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백화점들 한여름에 겨울상품전

    백화점들 한여름에 겨울상품전

    주요 백화점들이 때 아니게 겨울상품전을 일제히 마련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자 단가 높은 겨울 상품을 한데 모은 대형 행사를 열고 매출 극대화에 나선 것이다. 롯데 백화점은 10일부터 23일까지 본점을 비롯해 잠실 등 전 지점에서 겨울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행사 기간 진도, 근화 등 모피 브랜드가 주요 제품을 가격 인하해 판매하고, 쉬즈미스, 아이잗바바 등 10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여성 패션 사계절 상품전’도 열린다. 여성 속옷 브랜드 비너스 균일가전, 스포츠 대전 행사 등도 진행된다. 현대백화점도 전국 13개 점포에서 총 250억원 규모의 ‘한여름 모피대전’ 행사를 연다. 26일까지는 코오롱, 아이더 등 아웃도어 브랜드의 신상품 다운재킷을 모아 소개하는 ‘한여름에 만나는 다운 페스티벌’ 행사도 개최한다. 신세계 백화점은 10일 본점을 시작으로 강남(17~19일), 센텀시티점(24~26일) 등을 돌며 해외명품대전과 모피대전을 개최한다. 특히 올해 행사에선 단가가 높은 겨울 상품 비중을 대폭 늘려 총 물량은 200억원어치에 달한다.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르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요지 야마모토 등 주요 수입 브랜드를 비롯해 폴스미스, 더 로우, 에밀리오 푸치 등의 상품을 60~70% 할인된 가격에 선보인다. 진도, 동우, 디에스 등 5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모피 대전 행사도 함께 열린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아랍이나 아시아 민주화 싹을 꼭 서구적 틀에서 찾아야 합니까

    ‘비서구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모순처럼 보인다.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가장 서구적인 제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서구’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학습된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니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아랍의 봄’ 소식을 들으면, ‘이들 나라에서도 이제야 서구 민주주의가 싹트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서양의 것’이란 상식을 뿌리부터 흔들어대는 이가 있으니 김상준(52)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19~20세기 근대화와 함께 유럽의 수출상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가 중국과 조선에 있었다는 뚱딴지 같은 주장을 한다. 막무가내는 아니고 그럴 듯한 근거를 댄다. 김 교수는 근대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17세기 스피노자에게서 찾고 있다. 그렇다. ‘지구가 내일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던 그 스피노자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17세기 유럽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급진 계몽주의자였다. 그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에는 민주주의가 없고, 혹독한 사상 탄압과 종교의 폭정뿐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는 비판을 받았고,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경험은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기독교가 유럽을 석권하고 나서 민주주의를 분명하게 옹호하는 유럽인은 없었다. 이때 스피노자가 인간과 세계의 자연성을 설파한 (교회가 볼때는 불온한) ‘에티카’를 썼고, 교회는 그에게 ‘무신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17세기 무신론자는 대한민국에서 ‘빨갱이’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스피노자는 그 후 1670년 ‘신학-정치 논고’를 출간했고, 이는 19세기 초까지 유럽 사상계를 뒤흔들었다. 김 교수는 스피노자가 친하게 지낸 14살 연상의 아이자 보시우스란 철학자가 있는데, 보시우스가 중국과 조선을 동경했다고 말한다. 17세기 해상권을 확보한 네덜란드가 극동의 일본과 교역했으니 아시아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네덜란드에 유입됐을 것은 당연한 이치. 보시우스는 중국과 조선은 철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이들 철학자가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인민들이 평가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왕이 잘못하면 대놓고 이 철학자들이 왕을 비판하는 정치 선진국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보시우스의 이런 생각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이자 동료인 스피노자에게 옮겨갔을 것이고, 스피노자의 급진 계몽주의 사상의 이론적·철학적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스피노자의 급진철학과 유럽 민주주의 탄생의 이론적 배경에 ‘비서구’인 중국과 조선이 있었으니 ‘과연 민주주의를 서구에서 빌려왔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김 교수는 BC 500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원형도 사실은 BC 2000년 시리아-메소포타미아 고대 아시아 국가의 다중 의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도 김 교수의 막연한 아시아 우월주의적 주장이 아니고, 덴마크 출신의 미국 고고학자 토르킬드 야콥센(1904~1993)이 주장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민주주의 원형을 찾아보면 서구보다 아시아 쪽이 기원이 빠를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서구의 근대화 따라잡기 식, 흉내내기 식 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아도 인도나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은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에서 민주주의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교수는 저서 ‘잃어버린 근대’(2006년)에서 ‘중국의 능력주의에 입각한 과거-관료제도야말로 또 하나의 근대였고, 이것을 유럽은 19세기에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어 포스트모던한 사고방식으로 김 교수는 “아랍의 민주화나 아시아의 민주화를 꼭 서구적 테두리에서 찾아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주장은 계간지 ‘실천문학 106호’ 여름 특집물인 ‘정치를 넘어선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라로 넘어온 헤라클레스 금강역사·사천왕으로 변신”

    “신라로 넘어온 헤라클레스 금강역사·사천왕으로 변신”

    수천 년 전 동양과 서양이 교류했는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가장 빠르게 흔적을 찾는 방법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재에는 정복이나 경제적 교류의 증거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랫동안 문화재 담당기자를 했던 서동철 서울신문 경영기획실장이 펴낸 ‘오래된 지금’(생각처럼 펴냄)은 동서 문화의 교류현장이 문화재에 어떻게 기록됐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인도문화, 신라불교에 스며들어 동양에서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그 기원은 1~2세기경에 제작된 간다라 불상 조각이다. 런던 영국박물관의 아시아미술관에는 부처님의 수행원인 금강역사로 ‘제우스의 벼락을 든 헤라클레스’가 나타난 조각이 전시돼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금강역사도 곱슬머리의 그리스 귀족의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27년에 오늘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일대를 정복했다. 독자적인 예술전통이 없었던 인도 북부의 유목민은 간다라에 도시를 이루고 살던 그리스인들의 전통을 쉽게 수용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헤라클레스를 집안의 시조로 떠받들었기 때문에 정복전쟁을 벌일 때 사자 머리 모양으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다녔는데, 그 모습 등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계곡에서 30일 밤낮으로 사자의 목을 졸라 죽인 뒤 그 사자의 가죽을 쓰고 다녔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받은 것이다. 쿠샨 왕조의 간다라 불상 조각에서 정복자와 피정복자 문화가 합쳐져 알렉산더 대왕 또는 헤라클레스가 간다라 미술에서 부처를 호위하는 금강역사가 된다. 금강역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헤라클레스는 한반도로 오면서, 금강역사가 되기도 하고 사천왕으로도 변신한다. 신라 문무왕이 682년 세운 경주 감은사 석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에 헤라클레스의 사자가 나타났다. 1203년 지어진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의 금강역사는 올리브 몽둥이를 든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미지가 강하다. 사자로 대표되는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는 통일신라 이후에 줄곧 사천왕상에 흔적을 남겼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봉은사의 목조 사천왕상의 서방광목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봉은사의 정문에 해당하는 진여문의 사천왕상은 배에 사자머리가 장식됐고, 어깨 장식에도 사자가 나온다. ●수로왕릉 ‘쌍어문’은 메소포타미아 영향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릉 묘역에 들어가는 삼문 문설주에는 물고기 한 쌍이 마주 보게 그려진 ‘쌍어문’이 있다. 이 쌍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난 신어(神魚)사상의 표현으로 신라가 인도와 교류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수로 왕비가 된 허황옥은 서기 48년 7월 27일 붉은 돛단배로 가락국 해안에 도착해 “가락 국왕 수로는 하늘이 보낸 왕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고 말하고, 가락국의 왕비가 됐다. ‘삼국유사’에 허황옥 공주의 고향은 인도 아유타국으로 나오는데, 1977년 아동문학가 이종기가 인도 아요디아의 수많은 건물에서 쌍어문이 새겨진 것을 보고, 수로왕릉과 연결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인도의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였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어는 인도-중국-한반도-일본으로 연결된다. 이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 동쪽 해변의 인류가 어떻게 한반도까지 확산됐는지 그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서 실장은 말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영웅 칭기즈칸 아닌 인간 테무친의 삶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정복왕은 누구일까.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부르주아 혁명을 파급시킨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2차 세계대전의 주역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런 인물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면 당신은 유럽중심의 사관에 크게 경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땅따먹기에서 최고의 권위자는 몽골의 칭기즈칸이라는 것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떠오른 정설이다. 의심이 든다면 땅따먹기한 땅의 크기를 지도로 그려 가며 비교해 보면 된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인 김형수가 펴낸 장편소설 ‘조드’(자음과모음 펴냄)는 12세기 초원에 버려진 ‘자연인’인 테무친이란 한 소년의 파란만장한 생존투쟁을 그려 낸 서사다. 김형수는 수많은 전쟁 영웅을 숭배하는 서사를 거부하고, 어린 시절 테무친이라 불린 칭기즈칸을, 정복전쟁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인물로 형상화해 나갔다. ‘조드’는 몽골 언어로 극심한 겨울 가뭄과 혹독한 겨울 추위를 말한다. 저자는 수백 마리의 양과 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자연 재앙을 뚫고 살아갔던 12세기 몽골인들의 삶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작가는 21세기 인류가 환멸을 느껴 근대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정착문명과 이동문명이, 유목민과 농경민의 충돌을 일으킨 12~13세기 몽골을 중심으로 한 인간형을 찾아갈 때 부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유럽 중심의 낡은 역사관을 대체한 그림으로서, 광활한 세계 창조에 맞는 인간 칭기즈칸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조드를 통해 칭기즈칸이 단련되고, 새로운 문명사를 썼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작가는 십수 년 동안 진행된 탈근대, 탈냉전, 탈이데올로기를 찾아가려는 문학 내 움직임을 소설로 표현했고, ‘더 바른 세계사상’을 제시하려는 노력에 자신도 동참한 것이라고 했다. 소설 초기에 등장하는 푸른 늑대 족의 신화를 읽을 때는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하고 때론 답답한데, 1장을 넘어서면서는 시원시원하고 남성다운 필치들로 12세기 초원을 그려 놓아 읽기가 수월하다. 다만 허영만의 장편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말무사)의 스토리 전개와 그림이 자주 머릿속에 떠올라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곤 한다. 작가가 몽골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쓴 소설로 이 소설을 인터넷에 연재하는 10개월 동안 몽골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은 테무친이 초원을 평정할 때까지의 시간을 그렸는데, 작가는 이후에 테무친이 대칸에 올라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앞으로 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인재를 아끼는 지방행정을/김경운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인재를 아끼는 지방행정을/김경운 사회2부장

    조조와 유비, 손권 등 걸출한 인물 3명이 중심인 3세기 중국 고대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를 소설로 다룬 ‘삼국지연의’는 현대사회에도 어색하지 않은 교훈을 준다. ‘간웅’(奸雄)으로 불린 위나라 조조의 성공비결 중에는 적이라도 꺼리지 않고 인재로 중용하는 그의 열린 마음이 있었다. 적장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아끼던 ‘적토마’까지 서슴없이 내준 것이나 환관 집안인 조조 자신의 5대조까지 욕했던 원소의 심복을 웃으며 제 편으로 만드는 것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모인 인재들은 조조 앞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으며 위나라를 군사 50만명의 강국으로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볼품없는 촉한의 유비도 관우와 장비, 조자룡, 황충, 마초 등 다섯 장군과 제갈량 등 인재들을 따르도록 한 덕(德)이 있었다. 또 오나라의 손권은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격파하더니, 다음에는 조조와 함께 유비군을 치는 유연함을 보였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며 속 좁게 처신하지 않은 덕분에 그 역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까지 동진하면서 자신에게 무릎 꿇은 아시아의 청년들을 그리스인들과 똑같이 품에 안았다. 이질적인 적의 하나하나까지 존중했기에 전향적인 ‘동서양의 용합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몽골의 칭기즈칸은 기마유목족에게 익숙지 않은 공성무기, 수군, 문자 등을 복속국으로부터 배워 이용만 했을 뿐, 끝내 순혈주의를 버리지 못했다. 인류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하고도, 훗날 추앙받을 수 있는 문명의 흔적을 남기지 못한 이유다. 지난 10·26 재·보선에서 서울시장과 함께 기초단체장 11명,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19명 등 총 42명이 지역 주민의 새 일꾼으로 뽑혔다. 모든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참신한 지방 행정과 의정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럴 때면 마음 편치 않은 일이 또 생길까봐 언짢아진다. 예전에 구청장이 바뀌니까 총무, 인사, 감사, 기획, 홍보 등 주요 부서의 책임자급 공무원들이 줄줄이 짐 싸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다. 구청장이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직원을 발탁해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할까. 다만 그전에 일했던 공무원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으니까 핵심 업무를 맡았을 텐데, 그를 영락없이 이른바 ‘물먹은 곳’으로 내치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물론 주민을 위해 일하는 구청 업무에 별 볼 일 없는 한직이 따로 있겠는가. 이미 그 부서의 직원들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요직에 있던 간부가 갑자기 튕겨 나와 죄인처럼 힘 빠진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있다면, 그 아래 직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가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 20년에 주민을 떠받드는 행정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정당공천을 통해 4년마다 치르는 지방선거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특히 단체장의 공천 정당이 바뀌면 전임자의 예산사업을 전면 무시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명백하게 잘못한 일이라면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도 소중한 세금이 이중으로 낭비되는 일은 유권자가 용서할 수 없다. 또 다른 치적용 사업이 진행돼서도 안 된다. 그래서 재정지수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부터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단체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계백’은 백제 패망기의 한 단면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백제는 찬란했던 500년 한성(서울) 시대를 뒤로하고 웅진(공주)으로 천도했지만, 신흥 웅진 귀족들의 등쌀에 왕이 연거푸 암살되는 등 혼란을 겪는다. 사비(부여)로 옮긴 뒤 이번엔 사비 세력이 왕비를 배출할 정도로 권세를 누렸다. 의자왕이 왕권 강화에 나서지만, 결국 때가 늦었다. 역사는 늘 교훈을 준다. kkwoon@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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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주말 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EBS 토요일 밤 11시)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 출신의 피치(마이클 케인)와 대니얼(숀 코너리)은 절도와 총기밀수 등 사기행각을 벌이다 추방당하게 된다. 피치는 과거에 키플링(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시계를 훔쳤다가 알게 된 사이다. 키플링은 기회의 땅으로 가서 통치자가 되겠다는 피치와 대니얼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정복했었고 록산느라는 아내까지 있었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프리메이슨 문양의 목걸이를 선물로 준다. 그렇게 무기와 술을 챙겨 길을 나선 두 사람은 혹독한 기후와 눈사태를 이겨낸 후 꿈에 그리던 카피리스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구루족 출신의 보병 빌리 피시를 통역자로 쓰게 된 두 사람은 군사들을 정비해나간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되고 날아오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지만 대니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에 원주민들은 그가 ‘시칸더’ 즉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이 신으로 내려왔다고 믿게 된다. ●라스트 프로포즈(OBS 일요일 밤 11시 50분)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외모의 샘(유덕화)은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모든 것을 가진 그이지만 세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사랑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샘은 사업차 방문한 마카오에서 가난하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당찬 매력의 클럽 댄서 밀란(서기)을 만나 첫 눈에 반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들의 교제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사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밀란이 상류층 여자로서의 덕목을 배우는 동안 샘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결국 샘은 주위 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 혼전 계약서를 내밀고 상처받은 밀란은 샘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샘은 사업과 사랑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데…. ●신의 손(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1930년대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미국 내슈빌의 밴더빌트 대학 연구소에서 청소 등 잡일을 하던 흑인 청년 비비언 토머스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탁월한 손재주와 의사를 꿈꾸는 열정으로 저명한 백인 외과의사인 블레이럭 박사의 조교가 된다. 그후, 박사를 따라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옮겨간 비비언은 블레이럭의 주요 의학 연구와 수술에 점점 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간다. 유색인종은 뒷문으로 출입하고 화장실도 백인과 따로 써야 했던 시대에 백인 의사와 흑인 조교는 끊임없이 언쟁하고 갈등하면서도 평생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극심한 논란 속에 치사율 백퍼센트였던 청색증 아기 환자의 심장을 세계 최초로 수술해 성공하면서 마침내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장 수술의 길을 열게 된다.
  • [씨줄날줄] 권력자의 말/주병철 논설위원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는 ‘말 속에는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사람을 죽이는 용이 숨어 있다.’ ‘세치의 혓바닥으로 다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한다.’는 속담이 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거칠고 독살스러운 말은 그 근거가 약한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고,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조지프 키플링은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인류가 사용한 가장 효력 있는 약이다.’라고 정의했다.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섭냐는 얘기다. 말의 힘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강도가 다르다. 아무래도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의 말이 가장 세다고 봐야 한다. 권력자들은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연설로 말의 위력을 과시한다. 2차 대전 당시 “나는 히틀러 말고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네. 그게 프로일세.”라며 스탈린과의 전략적 동맹의 불가피성을 밝힌 윈스턴 처칠, “예의에 어긋나고 군인답지 못한 짓 아닙니까. 군인의 양식을 믿습니다.”라는 길지 않은 연설로 군대와 의회의 충돌을 막은 조지 워싱턴의 연설이 말의 힘을 보여준다. 말의 힘은 더러 섬뜩하다. 1051년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의 연설은 ‘말의 잔혹사’쯤으로 기록될 성싶다. 그는 사촌인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자 “고귀한 피의 대가를 톡톡히 되갚아 주겠다.”고 말했다. 16세기 잉글랜드 왕 헨리 8세가 1536년 링컨셔 민중봉기 때 “철저하게 파괴하고 불 지르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 나머지 사람들에게 따끔한 본을 보여라.”고 한 것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돌프 히틀러도 살기 어린 연설이 많았다. 그런데 말의 힘은 오묘하기도 하다. 그리스제국의 황제 알렉산더 3세가 죽을 때 휘하 장수들이 통치권 이양에 대해 묻자 “가장 강한 자에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1914년 세르비아 출신 암살범에게 저격당한 뒤 쓰러지면서 “별일 아닐세, 별일 아니야.”라고 속삭였다. 그 직후 사망했고, 그것이 기폭제가 돼 1차대전이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관상동맥 혈전으로 사망하기 직전 주위 사람들에게 “불을 꺼주게.”라고 했다지 않은가. “시위대와 싸우다 순교자로 죽을 것이다. 시위대가 약 먹었다.”며 ‘피의 보복’을 외치는 리비아 카다피의 잇단 막말 연설은 어떻게 결론날까. 아무튼 피가 피를 부르는 섬뜩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붉은 드레스 입은 미셸 ‘패션 정치학’

    붉은 드레스 입은 미셸 ‘패션 정치학’

    ‘패셔니스타’ 미셸 오바마(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위해 선택한 만찬용 의상은 붉은색의 ‘알렉산더 매퀸’ 드레스였다. 실크 오간자 소재의 붉은 드레스는 미·중 정상회담 만찬의 장관을 연출해 중국에 대한 미국의 마음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이다. 미셸은 그동안 중국계 디자이너 베라 왕, 타이완 출신의 제이슨 우, 태국계 타쿤 파니치글의 옷을 즐겨 입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의 드레스를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 최종 낙점은 매퀸이었다. 미셸의 드레스는 지난해 여름 ‘2011 리조트 컬렉션’(여름 휴가용 의상을 선보이는 패션쇼) 때 선보였던 드레스다. 원래는 짧은 소매가 달려 있었다. 미셸은 이를 비대칭 민소매로 바꿔 입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다. “미셸의 근육질 팔을 드러내는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긍정적 의견과 비대칭 소매가 미끄러져 내린 것처럼 보여 “미셸은 훌륭한 재단사가 필요하다.”는 부정적 의견으로 나뉜 것. 만찬장에는 베라 왕과 더불어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패션잡지 ‘보그’의 미국판 편집장 안나 윈투어도 참석해 패션에 대한 미셸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자유로운 히피정신 무장 ‘모리걸’ 뜬다

    자유로운 히피정신 무장 ‘모리걸’ 뜬다

    유행의 진원지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4대 패션쇼다. 2011년 봄·여름을 위해 디자이너들이 지난해 가을 선보였던 수많은 패션의 경향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1970년대로의 회귀’였다. 최근 몇 년간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1980년대 스타일이 유행했다면 올해 최신 유행은 70년대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70년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1969년 열려 7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이 된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이 보여주는 자유로운 히피 정신이다. 히피들은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손대지 않은 머리, 바지통이 넓은 청바지, 화려한 무늬의 셔츠 등을 사랑했다. 최근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유행은 일본에서 시작된 ‘모리 걸’이다. 숲 속의 소녀라는 뜻의 모리 걸 스타일의 전형은 영화 ‘허니와 클로버’(2006년 개봉)에서 천재 미술대학생으로 출연한 배우 아오이 유우다. 영화에서 아오이 유우는 히피들이 입었을 법한 알록달록한 티셔츠 위에 원피스, 풍성한 블라우스, 밤색·진녹색·남색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의 배합 등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듯한 패션으로 여성들을 열광시켰다. 자연을 사랑하며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리 걸에게 어울리는 화장은 어떤 것일까. 세계 4대 컬렉션의 250개 이상 무대에서 모델들의 얼굴을 맡아 화장의 유행을 선도하는 메이크업 브랜드 맥(MAC)은 지난 6일 2011년 봄·여름 메이크업 경향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여기서 맥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 변명숙씨는 “패션이 강렬하면 얼굴은 아무것도 안 한 듯한 화장이 어울린다.”며 “뷰러로 속눈썹의 컬을 만들었다면 마스카라는 생략하거나 입술은 보습제만 발라 본인의 입술처럼 연출하는 등 하나씩 빼는 마이너스 화장법이 올해 유행”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미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의 패션쇼에서는 컨실러, 입술용 화장품, 볼 터치 단 3가지의 화장품만 있었다고 한다. 마이너스 화장법의 피부 표현은 최소한의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만을 사용해 본래의 자연스러운 피부를 그대로 살린다. 주근깨도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가리기보다는 살짝 드러내는 것이 훨씬 건강해 보인다. 70년대의 대표적인 화장법은 황갈색으로 물들인 뺨, 캐러멜 색깔의 입술, 따뜻한 햇볕에 섬세하게 그을린 듯한 피부 등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테라 코퍼’(TERRA-COPPER)색 얼굴이다. 황금색을 사용한 화장법은 신년에는 금전운을 불러오기도 한다. 맥의 부사장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고든 에스피넷은 “따뜻한 느낌의 갈색과 황금색을 눈가와 뺨에 발라 얼굴의 윤곽을 또렷이 살린 다음 입술에는 보습제인 립밤을 듬뿍 바르면 외출 준비 끝”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오…바…마와 吳韓馬/박대출 논설위원

    1987년 대선 때다. ‘1노(盧)3김(金)’의 경쟁이 뜨거웠다. 개그맨 최병서가 네 후보를 코미디 소재로 삼았다. 그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의 성대모사를 했다. 대통령 후보가 코미디 대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성대모사는 노 후보에서 노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도 소재로 삼은 것이다. 이전까지 TV 프로에서 대통령 풍자는 금기사항이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변화다. 왕조시대나 지금이나 같은 게 있다. 나라님이든, 대통령이든 늘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누구도 말문을 닫게 하진 못한다. 어디서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권위주의 시대엔 몰래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그 상징이다. 민주시대엔 공개적으로도 가능하다. 몰래 하는 건 사적(私的), 익명적 영역이다. 대부분 거침이 없다. 여기선 막을 도리가 없다. 공개적으로 하는 건 공적(公的), 실명적 영역이다. 때로는 엄하다. 제한이나 책임이 따른다.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를 그린 패러디가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빗댄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저격하는 패러디가 나온 적도 있다. 미국도 다를 게 없다. 뉴욕포스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침팬지로 묘사했다. 2005년엔 부시 당시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겨눈 가짜 우표가 등장했다. 표현의 자유냐, 국가 원수 모독이냐 논란이 벌어졌다. 우리는 법적 처벌 공방까지 이어간다. 하나를 더 짚어보자. 사적, 익명적 영역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공적, 실명적 영역으로 넘어가면 탈이 난다. 성희롱성 유머나 저급한 성적 개그·패러디 등이 이 범주에 든다. 최근 물의를 빚은 ‘오바마 건배사’가 대표적이다. 경만호 대한적십자사 부총재가 낙마하는 사태를 불렀다. 공직자는 영역을 지켜야 할 책임이 더 무겁다. 경 부총재는 이를 망각했다가 혼쭐이 났다 한·미동맹친선협회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이름을 지었다. 오한마(吳韓馬). 주한 미군사령부를 통해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협회가 미국 주요 인사에게 선사한 한국 이름은 더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한희숙(韓熙淑),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라이수(羅梨秀),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백보국(白保國),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미국 대사는 박보우(朴寶友) 등이다. G20 정상회의가 어제 개막됐다. 오바마 대통령도 방한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성희롱성 건배사에 대해 알까. ‘오…바…마’는 사라지는 게 낫겠다. 오한마만 남기를 기대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프로농구] 존슨 버저비터… KT 역전승

    [프로농구] 존슨 버저비터… KT 역전승

    39분 59초를 뒤졌다. 내내 끌려갔다. 패색이 짙었다. 그런데 경기종료 0.2초 전, 제스퍼 존슨의 손을 떠난 3점슛이 깔끔하게 림을 통과했다. 창원체육관을 찾은 LG팬들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프로농구 KT가 7일 창원 원정경기에서 LG를 94-93으로 꺾었다. 존슨이 29점(3점슛 5개, 4리바운드)으로 코트 안팎을 유린했고, 윤여권이 24점으로 득점본능을 맘껏 발휘했다. LG는 문태영(34점 9리바운드)과 크리스 알렉산더(14점 7리바운드)를 앞세워 경기 내내 앞섰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무너졌다. KT로선 힘겨운 상대였다. 높이에서 상대가 안 됐다. LG엔 외국인 선수 중 신장이 가장 큰 알렉산더(212.5㎝)가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1대1에선 직접 공격을 시도했고, 더블팀 수비가 달려들 때는 지체 없이 동료에게 연결했다. KT는 찰스 로드(203㎝)와 제스퍼 존슨(198㎝)이 번갈아 나섰지만 알렉산더의 높이에 막혔다. 득점은 그럭저럭 올렸지만 리바운드에서 맥을 못 췄다. 제공권에서 밀렸다. 리바운드는 15개로 LG(29개)의 절반 수준이었다. LG가 일찍 축포를 터뜨린 걸까. 드라마틱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4쿼터에 알렉산더가 벤치를 지켰고, 로버트 커밍스(203㎝)가 나섰다. 알렉산더가 빠진 코트에서 존슨이 ‘왕’이었다. 존슨은 4쿼터에만 17점을 퍼부었다. 경기종료 5분 24초와 5분을 남기고 3점포 두 방을 연속으로 꽂아 넣으며 신호탄을 쐈고, 바스켓 카운트를 얻으며 3점을 더 보탰다. 10점차(74-64)로 시작한 4쿼터는 어느덧 4점차(83-79)가 됐다. 다시 알렉산더가 나왔지만 흐름은 이미 KT였다. KT는 존슨의 스틸에 이은 조동현의 슛으로 2점차로 추격했다. 경기종료 38초를 남기고 윤여권의 슛으로 동점(91-91). LG는 강대협(10점)이 종료 21초를 남기고 2점을 보태며 승리를 예감했지만, 종료 직전 터진 존슨의 3점포에 무릎을 꿇었다. KT는 1점차 역전승을 거두며 2연패를 탈출했다. LG는 13개에 이르는 턴오버(KT는 4개)가 뼈아팠다.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라이벌전’에서는 SK가 삼성을 83-79로 눌렀다. 테렌스 레더(20점 9리바운드)와 김효범(16점), 김민수, 변기훈(이상 14점), 주희정(12점 9리바운드 7어시스트) 등 주전 5명이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KT와 공동 3위(7승 4패). 동부는 홈에서 인삼공사를 74-58로 눌렀다. 5일 1라운드 최종전에서 패했지만 이틀 만의 재대결에서 설욕에 성공했다. 박지현(3점슛 4개, 9어시스트)과 윤호영(12리바운드 4어시스트)이 나란히 16점을 넣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아이돌 탐구③] 섹시에서 큐트까지…걸그룹 패션 ‘각양각색’

    [아이돌 탐구③] 섹시에서 큐트까지…걸그룹 패션 ‘각양각색’

    2010년 상반기 ‘걸그룹 춘추전국시대’는 소녀시대와 투애니원(2NE1), 카라의 3파전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걸그룹의 노래와 춤은 바로 각각의 특성을 살린 패션으로 완성돼 큰 이슈를 모아왔다. 가장 먼저 컴백한 소녀시대가 사랑스러운 섹시함을 부각시킨 치어리더로 분한 데 이어, 9일 기습적으로 신곡 ‘날 따라해봐요’를 발표한 투애니원은 전과 다른 귀여운 매력을 강조했다. 또 ‘괴도 루팡’을 콘셉트로 잡은 카라는 보다 과감해진 섹시미를 드러냈다. ◆ 소녀시대: 섹시+큐트, 두마리 토끼 잡다 지난해 ‘지’(Gee)로 컬러 스키니진, 2009년 ‘소원을 말해봐’로 걸리시 밀리터리룩으로 걸그룹은 물론, 일반 여성들의 패션까지 좌지우지한 소녀시대. 최근 정규 2집 앨범 ‘오’(Oh!)를 발표한 소녀시대는 상큼 발랄하지만 한편으로 섹시한 치어걸로 변신했다. 숫자를 넣은 티셔츠와 쇼트 팬츠에 부츠, 니삭스, 야구모자 등을 매치한 소녀시대는 지난해를 사로잡은 80년대 복고 스타일에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과 디스퀘어드 등이 2010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스포티룩을 가미했다. 또 ‘쇼쇼쇼’ 무대에서는 스트라이프 패턴과 시디 모양의 헤어밴드로 빈티지와 레트로의 풍미가 가득한 소니아 리키엘의 80년대 무드를 완벽 재현했다. 소녀시대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소녀시대 치어리더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노래 분위기에 맞춰 레트로 무드(Retro mood)를 가미한 것”이라며 “무대마다 콘셉트를 달리해 각종 스포츠 룩의 변형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0년은 벤쿠버동계올림픽부터 남아공월드컵까지 스포츠의 해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소녀시대가 치어리더로 변신해 선수들을 응원하고 힘을 불어넣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말했다. ◆ 2NE1: 패션어택, 80년대+@? 예쁜 인형들의 향연을 보는 것 같던 걸그룹들 사이에 강렬한 패션 어택을 가한 투애니원은 신인임에도 가장 뜨거운 걸그룹 패셔니스타로 떠올랐다. 투애니원은 ‘파이어’, ‘아이돈케어’ 등을 통해 야자수처럼 높이 올린 상투머리와 찢어진 레깅스, 강렬한 프린트와 컬러의 복고풍 의상 등 개성 넘치는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선보인 바 있다. 투애니원은 지난 9일 올해의 신곡 ‘날따라 해봐요’와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는데, 사진 속 투애니원은 올 봄 유행을 예고한 페일(pale) 컬러의 옷에 볼드한 액세서리들로 포인트를 줬다. 투애니원의 무대 의상 콘셉트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으로 미루어볼 때 이전의 과격하고 파격적인 패션과는 다른 다소 얌전하고 여성스러워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의상 화제를 넘어 의상 논란까지 일으켰던 투애니원에 대해 전문가는 물론 팬들까지도 멤버 각자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패션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카라: 프리티 인형→큐티 힙합걸→섹시 괴도 ‘프리티걸’의 인형 같은 소녀들에서 ‘미스터’의 깜찍한 힙합걸로 변신을 시도했던 카라가 이번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섹시미를 발산하고 있다. 카라는 지난 10일 역사상 가장 섹시한 도둑 ‘루팡’을 재연한 3집 미니앨범의 음반 재킷을 공개했다. 블랙 컬러의 패브릭과 가죽을 함께 사용한 슈트와 톱햇, 글러브 등을 이용한 카라는 그들의 대표 이미지였던 귀여움과 발랄함에서 탈피해 섹시함을 부각시켰다. 카라의 이번 의상 콘셉트는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가레스 퓨의 2010 S/S 컬렉션 속 무채색 묵시록 판타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카라의 소속사 DSP미디어 측은 “‘루팡’은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자 콘셉트”라며 “카라는 변신의 귀재인 루팡처럼 변화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YG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파스타’ 서유경, 알고 보니 명품 마니아

    ‘파스타’ 서유경, 알고 보니 명품 마니아

    MBC 월화 드라마 ‘파스타’가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 패션 커뮤니티는 바빠진다. 극중 서유경(공효진 분)이 입은 옷과 착용한 가방 등의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빗발치는 것. 공효진은 3년 간 주방 보조를 마친 뒤 갓 프라이팬을 잡은 서유경을 연기하기 위해 매회 멋을 부린 듯 안 부린 듯 수수한 코디에 센스 있는 포인트를 더해 패션의 맛을 살리고 있다. 하지만 서유경의 일명 ‘촌티 패션’에는 비밀이 있다. 극중에서는 중화요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에 둔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나오나 사실은 서유경이 입는 옷과 착용한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 중 대다수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의 것이다. 패션 마니아라면 자연스럽게 공효진이 메고 나오는 가방에 눈이 쏠린다.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매는 명품 브랜드의 최신 유행백들이 줄줄이 나오기 때문. 공효진이 그동안 200만원을 호가하는 발렌시아가 모터백부터 트렌디한 매력이 돋보이는 알렉산더 왕의 버킷백, 고야드 생루이백 등을 착용해 여성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게다가 공효진은 높게는 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옷들을 입고 등장한다. 최근 큰 인기를 끄는 버버리 프로섬 재킷과 꽃 프린트가 있는 미소니 롱 재킷, 씨 바이 클로에의 니트 카디건까지 명품 의상들이 수차례 등장한 것. 실례로 공효진과 이선균과 요리 재료인 쥐치를 구하려고 동해바다를 갔을 때 어깨에 멘 오렌지색 크로스백은 프랑스 브랜드 란셀의 것으로 가격은 100만원이 넘는다. 목에 두른 머플러 역시 명품 브랜드 씨 바이 클로에의 것이다. 서유경이 파스타를 만들다가 팔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치료를 받을 때 입었던 가죽코트는 이탈리아 브랜드 필라소피의 것으로 가격이 무려 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공효진이 민트색상 발렌시아가 백으로 포인트를 준 바 있다. 공효진의 촌티 패션의 대부분이 명품 브랜드의 의상과 가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 네티즌은 “서유경이 밤 마다 봉골레 들어갈 조개와 홍합 손질하면서 바짝 벌었나 보다.”고 재치 있는 의견을 내놓아 공감을 사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발한 구글 로고, 이런 뜻이었어?

    기발한 구글 로고, 이런 뜻이었어?

    세계적인 검색사이트 구글은 때마다 특별한 의미로 첫 화면 로고를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할로윈에는 마녀와 호박이 등장하고 크리스마스엔 트리 장식이 반짝인다. 한국의 광복절과 추석 등도 로고에 이미지로 표현된 바 있다. 이처럼 의미가 담긴 로고 디자인은 ‘구글 두들’(Google Dood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2년 사이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된 구글 두들 중 의미를 알기 어려운 10가지를 뽑아 소개했다. 1) 2008년 9월 30일 - 시인이자 수피 교단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의 탄생일이다. 수도사들이 복장을 갖춰 이슬람 종교의식인 ‘세마’를 연출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렸다. 2) 2009년 9월 23일 -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국 선포일. 국기의 녹색과 네지드, 헤자즈 왕국을 통합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압둘 아지즈 왕이 국기에 추가한 칼로 의미를 표현했다. 3) 2008년 11월 1일 - 멕시코 기념일 ‘죽은 자의 날’. 해골 분장과 해골 모양 초콜릿 등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이 날, 구글 두들에도 귀여운 해골 분장이 등장했다. 4) 2009년 7월 12일 - 칠레 민중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의 탄생일. 20세기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인 파블로 네루다는 조국 칠레의 바다와 산을 시에 녹여냈다. 5) 2009년 9월 16일 - 멕시코의 독립기념일. 6) 2009년 6월 6일 -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더 푸시킨 탄생일. 구글 두들의 옆모습은 러시아 1루블 동전에 새겨진 푸시킨의 초상이다. 7) 2008년 4월 7일 - 태국의 신년축제 송끌란. 8) 2008년 4월 20일 - 중국 고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조충지의 탄생일. 원주율을 소수점 뒤 7자리 수까지 추산하고 원주율 분수형식의 근사치를 찾아낸 업적을 표현했다. 9) 2008년 9월 29일 -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탄생일. 풍차와 기사로 작품 ‘돈키호테’를 묘사했다. 10) 2008년 3월 25일 -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 탄생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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