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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 안창호 66주기 추모식

    독립 운동가로 민족교육에 헌신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순국 66주기 추모식이 10일 서울 도산공원에서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 주관으로 열린다.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10일 안창호선생 66주기 추모식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徐英勳)는 10일 오전 서울 도산공원 도산묘역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66주기 추모식’을 갖는다.(02)541-1800.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4)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1898년 10월29일 종로 네거리 운종가 광장에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외세의 국권 침탈위기에 맞서기 위해 정부 대표자와 민간인 각 계층 대표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국정개혁 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결정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하자는 큰 모임이었다.이 모임은 거리에서 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벌이는 한국 최초의 합동토론회였다. 오후 2시.광장에는 황국협회,황국중앙총상회,순성회,협성회,광무협회,진신회,친목회,교육회,국민협회,진명회,일진회,보신사 등 각 사회단체들이 모였다.순성회 부인들,각 학교 생도들,시전상인들,맹인,승려들,백정(白丁)들,정부부처 관료 및 신사들이 청첩장 받은 순서대로 참석해 있었다. ●무어에 세례받은 백정 만민공동회 연설자로 오후 3시.대회장인 윤치호가 먼저 만민공동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인사말을 했다.곧이어서 군중은 만세를 불러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질서유지에 힘썼다.그런 다음 만민공동회의 개막연설자가 단상에 올랐다.회의장은 순간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연단으로 올라서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개막 연설자로 지명된 사람은 놀랍게도 백정 신분이자 새뮤얼 무어 목사한테서 세례받은 곤담골교회 박성춘(朴成春)이었다.박성춘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이에 이국편민(利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저 차일(遮日)에 비유컨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심히 견고합니다.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적에 보답하고 국조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회중은 연설을 끝낸 박성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연단 아래 모였던 수십명의 백정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세를 불렀다.이 광경은 여러 날을 두고 장안의 화제였다.박성춘,그는 이날의 연설로서 독립협회 주요인물인 안창호,서재필 같은 큰 인물들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자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무어 목사는 한국에 온 이듬해인 1893년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담골에다 교회를 열고 곤담골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교회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예수교학당을 함께 열었다.무어 목사는 늘 길거리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예수교학당에 보내라고 권했다.그 마을에 살던 박성춘이라는 백정도 무어 목사라는 사람의 진실된 성품이 싫지 않아서 그의 아들 박서양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후 박성춘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죽게 되었다.박서양은 주일학교에 나와서 아버지 병을 낫게 해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이를 본 무어 목사가 그 까닭을 물었고 박서양은 아버지의 병환의 위급함을 말했다.무어 목사는 박서양을 돌려보낸 뒤 급히 다른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을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황제의 전문의사에게 천민보다 더 핍박받는 계급 백정을 진료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설혹 에비슨이 승낙한다 하더라도 그런사실을 정부 대신들이나 서울의 양반들이 알게 되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에비슨은 무어 목사의 간곡한 청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무어 목사의 눈에 백정들의 참담한 생존이 가장 시급한 구원의 대상으로 비쳤듯이 에비슨의 눈에 비친 무어 목사의 행동은 천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교사들이 백정 박성춘을 찾아왔다.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두사람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박성춘은 임금님의 주치의가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해주기 위해 누추한 곳까지 와준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완치된 뒤 그의 자식들 모두를 주일학교에 보낸 그도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 같이 설움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그런가 하면 큰아들 박서양이 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치료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키웠다.박서양은 결국 1899년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면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무어 목사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모삼열(牟三悅).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즐겨 쓴 이유는 백정들의 애환과 고난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895년 박성춘은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곤담골교회는 교인 20명의 제법 뜻있는 교회로 자리잡아갔다. ●“양반전도 어렵다” 선교사들 불평·비난 받아 그 무렵 첫 차별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교회에 나오던 양반 신도들이 발길을 끊는 일이 생긴 것이다.사정을 알고보니 양반 신도들은 백정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는 백정 같은 천민도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백정이 가는 천당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양반 신도도 있었다.백정이 믿는 하느님과 양반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양반을 능멸하는 짓이며,더욱이 한 교회 지붕 밑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천당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며 뉘우치는 이들이 생겼다.그들은 무어 목사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자기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백정들을 뒷자리에 앉도록 좌석을 구별해준다면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무어 목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그후 1904년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 1905년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한국 기독교사상 가장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박성춘이 교인이 된 뒤 무어 목사는 에비슨 박사와 함께 뜻을 모아서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1895년에서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이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졌다.비로소 백정도 한국의 국민 자격을 얻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인들처럼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백정들은 머리에 갓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외출할 때에는 패랭이를 쓰고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한 눈에 백정 신분임을 드러내도록 했다. 2차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들이 가슴에 노랑색 별을 달고다녀야 하듯 했고,인도의 최하층 노예신분인 수드라가 항상 황토색깔의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았다.그러다가 갓을 쓸 수있다는 법령이 공포되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을 때 기뻐했던 흑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기쁨이 한국 전역의 백정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어떤 백정은 하도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갓을 쓰고 살았던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철도공사장 노동자 인권침해' 日에 항의 이와 같은 선지자적인 무어 목사의 행동은 많은 선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교회가 백정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양반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는 불평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또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양반들을 교인으로 전도해야만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실익이 생길 수 있지만,백정 같은 천민들이 아무리 교인으로 많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고 했다.백정들의 인간해방 운동을 위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임금에게 탄원서를 낸 것은미 국무부 정책을 위반하여 다른 나라 정치와 관습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99년 12월 무어 목사는 고종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알렌 공사로 하여금 주선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의 백정들에 대한 인권탄압 정책과 제도를 혁파해달라는 요구를 고종황제에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거절당한 뒤 할 수 없이 문제의 그 편지를 직접 고종황제에게 보냈고,그로하여 알렌 공사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어 목사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쇠약해져 1902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고향에서 요양을 끝내고 1903년 9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그 무렵 무어 목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했다.알렌 공사와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천민이나 서민들보다 양반과 부자,귀족들에게 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백정선교에 집중하는 무어 목사를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지쳐갔다. 그는 살림도 할 수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여 ‘기쁜 소식(The Glad Tiding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어촌과 섬,그리고 한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마음 속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런 중에 일본 군용철도 공사장에 강제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일본영사관에 제기했다.일본영사관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자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해외선교부에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906년 전도여행길서 병얻어 46세로 사망 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인들이 일본군인들에게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민중봉기가 없는 것은 한국인들이 수탈과 억압에 너무 익숙해져 인간의 혼이 죽어버린 탓이 아닌가 하고 통곡했던 적도 있었다.그때부터 평양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나간다면 장차 인간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인을 사랑하던 무어 목사는 1906년 전도 여행길에서병을 얻어 그해 1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4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의 백정을 사랑한 인권의 은인이자 인간해방의 참뜻을 가르친 위대한 사도였다.그의 인권사상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22년 백정해방운동으로 되살아났다.
  • 정치플러스/조병옥사업회 “김희선 사퇴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유석 조병옥 박사 기념사업회는 16일 성명을 통해 “김희선 의원은 새빨간 거짓말을 날조해 애국지사의 명예를 훼손한 언행을 즉각 취소,사과하고 즉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어 “조 박사는 건국 공로자이며 이승만·안창호·서재필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일제의 강압으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러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했다.”며 조 박사가 광주학생운동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김 의원은 지난 14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부친인 조 박사에 대해 “김두한 드라마(SBS 야인시대)에 미화가 됐지만 친일인사였다.”고 주장했다.
  • ‘국적회복’나선 中동포/(상)‘강제출국’ 안타까운 사연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극한투쟁에 돌입했다.오는 17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 중국동포는 ‘고향땅에 살 권리’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에 이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중국인으로 불법체류자일 뿐’이란 법률 논리와 ‘고향에 왕래하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라는 역사성을 강조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중국동포들의 현주소와 역사적 배경,해법 등을 살펴본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중국동포들이 ‘고향에서 살 권리를 보장하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접수시키고 있는 동안 재판소 밖에선 50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은 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누군가가 시작한 노래가 커다란 울림이 돼 퍼지면서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케 했다. ●“우린 조국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 땅에 할아버지 묘지도 있고,내 호적도 있고,친척들도 있는데 왜 제가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합네까.” 새문안교회 단식농성장에서 만난김자연(가명·55·여)씨는 두 손을 꼬옥 말아 쥔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한국에 온지 6년이 됐지만 그동안 모은 3000만원은 얼마전 사기를 당해 다 날려버렸다.그는 “쫓겨날 상황에서 단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우리는 아픈 역사의 희생자일 뿐 조국이 싫어 떠난 사람들이 아닌 만큼 무조건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로 엮지 말아달라.”며 하소연했다. 5살 때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간 이형상(64)씨는 “우린 동포 아니냐.”며 말문을 열었다.그는 “중국 땅에서 수십년간 이방인이라는 눈총을 견디며 풀뿌리처럼 살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조국마저 우리를 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기 모인 사람 중 조국 땅 싫어 떠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딱한 처지는 마찬가지겠지만 중국동포들이 이 땅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법률자문을 맞고 있는 정대화 변호사는 “재중동포의 국적문제는 단순히 헌법적인 차원을 넘어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피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의 역사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중국동포들이 자진해서 중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만큼 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독일이 통일 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독일인들에게 국적회복을 해준 만큼 우리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재중동포의 국적회복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제단속에 생이별의 아픔도 불법체류자라는 족쇄 때문에 일제단속이 시작되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중국동포들도 적지 않다.이충일(32·여)씨는 요즘 아들 성민(가명·3) 때문에 외출을 할 수도 없다.세살밖에 안되는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밖에 나가면 경찰아저씨가 엄마 잡아가.”라며 엄마의 다리를 잡고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씨가 한국에 온 것은 6년 전.식당에서 일하다 한국인인 장모(38)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성민이를 갖게 됐다.하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돈도 모아 함께이씨의 고향인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살자던 부부의 약속은 이내 남편의 외도로 무참히 깨져버렸다.지난 8월 한국 여자가 생긴 남편은 이후 이씨를 폭행하고 아들 성민이마저 빼앗아갔다.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열흘 남짓만에 아들을 되찾았지만 모자(母子)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17일부터 시작되는 단속에 적발되면 이씨는 아들을 남겨둔 채 강제출국을 당하고 호적법에 따라 성민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혼한 어머니를 찾아 옌볜(延邊)을 떠나 한국에 온 현아(가명·14·여)는 국내법상 불법체류자다.미성년자인 불법체류자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강제출국은 피할 수 있다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현아는 지난 2000년 방학을 맞아 한국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 김선숙(35)씨를 만나러 왔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학교장의 배려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입학은 했지만 1학년 1년 동안은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청강생 자격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서울 외국인 노동자의 집 이선희 소장은 “학교장 재량에 따른다는 애매한 조항에 따라 현아와 같은 미성년 불법체류자 역시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유지혜기자 whoami@ ■이은규 서울조선족교회목사 “중국동포들에게도 조국에서 살 권리를 주십시오.” 중국동포의 국적회복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서울조선족교회 이은규(사진·43) 목사는 “중국동포들은 우리 나라에서 단순히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국적회복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목사는 “중국동포 대부분은 일제 시대에 독립 운동이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라면서 “해방 후 북한에 들어선 김일성 정권 때문에 귀국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머물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이어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한국 국민이 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중국과 한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국제 미아’가 된 중국동포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며 이번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법무부에 대해 ‘책임 방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중국과 수교를 맺을 당시 국내법 효력을 갖는 ‘재중동포의 지위에 대한 협정’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이는 만들어야 할 법을 안 만든 ‘입법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또 “법무부는 중국동포들의 국적회복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같은 동포의 국적선택권,평등권,행복추구권을 위배했다.”면서 “정부는 스스로 양산한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방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목사는 이와 함께 “우리 국민들도 중국동포 문제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190만 中동포 이주 역사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중 동포는 190여만명에 달한다.대부분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생활고를 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떠난 이주민의후손들이다. 주로 ‘동북 3성’으로 불리는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이징,톈진,신장,상하이,광저우 등 중국 전역 대도시로 진출하고 있다. ●첫 이주는 1860년 베이징조약 직후 재중 동포 이주사는 크게 3기로 나뉜다. 1기는 19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로 대부분 가난과 탐관오리들의 폭정을 피해 압록강을 건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2기에는 항일운동을 위한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뤘다. 3기는 45년 해방까지의 시기로 당시 일본은 일본인을 조선으로,조선인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시키는 환위이민(換位移民) 정책에 따라 대규모 강제이주를 실시했다. 1기 이민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 직후에 이뤄졌다.당시 청나라는 러시아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청조의 발상지인 만주지방에 대한 ‘봉금정책’을 풀고 주민들을 국경지대로 이주시켰다.그러자 조선의 헐벗은 농민들도 비옥한 미개척지를 향해 강을 건넜다.이들은 이주 초기 청의 관헌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었지만 1880년대 청 조정이 간도개척을 위해 조선족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간도지방 곳곳에 조선족 마을이 생겨났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부터 한·일합병 직전까지 20여만명의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일합병 직전까지 20만명 이주 일제의 한국침략이 노골화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후부터 1919년 3·1운동 전후까지는 주로 항일인사들의 정치적 망명이 많았다.국내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홍범도,유인석,이범윤 등이 을사조약을 전후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전후에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획이민’이 활발했다.이상설,이동녕,안창호,박은식,신채호 등이 이 시기 만주에 정착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만주지방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개발계획을 세운다.이에 따라 황무지였던 이곳에 조선 농민의 집단이주를 추진,38년 처음으로 간도와 랴오닝지방에 조선인들이 정착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후에는 전쟁 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개척이민단’이란 이름으로 조선인농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이세영기자 sylee@
  • 高총리, 공안검사와의 만남은

    최근 노동계가 화염병 시위를 재개한 가운데 고건 국무총리가 11일 전국의 공안검사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만찬을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만찬에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홍경식 대검 공안부장,안창호 대검 공안기획관 및 서울·인천·수원지검 공안부 부장검사 이상 간부 등 11명이 참석했다. 총리와 공안검사들과의 만남은 극히 이례적인 데다 노동계가 화염병 시위와 함께 ‘동투(冬鬪)’를 선언한 가운데 만났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특히 하루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검사와 오찬을 한 데 이어 이뤄진 것이어서 최근 현안들과 관련해 검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만찬에 앞서 고 총리가 최근 노동계의 과격 폭력시위와 관련해 발표한 ‘근로자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의 말씀’이란 담화문도 이와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한달전 강금실 장관이 ‘화물연대 파업때 공안검사들 고생이 많았다.’며 총리에게 격려 만찬을요청해 이뤄진 것”이라면서 “노 대통령이 강력부 검사를 초청해 오찬을 가진 것과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공안검사들에게 사회 법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을 뿐”이라면서 “최근 노동계 동향과 정부의 대처 방향에 대한 의견 교환은 있었지만 저녁을 함께 하며 공안검사들의 그동안의 노고에 격려하는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현석기자 hyun68@
  • 총장 ‘왕따’/오늘 盧·강력부장 오찬 배제 총리·공안부장 오찬도… 의문

    청와대와 정부가 잇따라 주재하는 검찰 고위간부들과의 간담회에 검찰총장과 일부 간부들이 배제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지검의 강력부장들을 초청,청와대에서 오찬 간담회를 갖는데 이어 11일에는 고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공안부장들과의 만찬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그러나,두 간담회 모두 검찰 수사를 총지휘하는 송광수 검찰총장은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돼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청와대 간담회의 경우 민생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해 강력부 검사들과 자리를 마련했다는 취지다.수개월전 ‘서울지검 강력부’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대통령이 ‘피의자 사망사건’ 이후 강력부 검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강 장관의 모임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총리 간담회는 최근 노동자 분신과 시위 등 공안 현안이 대두되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총리가 통상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지시를 내리는 경우는 있지만 일선 검사들을 초청,간담회를 갖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통령 간담회에는 강금실 법무부장관,서영제 서울지검장,홍석조 법무부 검찰국장,조승식 대검 강력부장과 김홍일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포함,전국 5개 지검 강력부장 등 18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총리 간담회 참석자는 강 장관,홍경식 대검 공안부장,안창호 공안기획관,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1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과거 대통령 간담회에서는 검찰총장이 인솔했다는 전례를 들어 송 총장의 불참 배경을 궁금해하고 있다.또 일부 검찰 간부는 지휘선상에 있으면서도 통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때문에 회의 참석자 선정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잡음이 새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검찰 관계자는 “대통령 간담회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검찰 인사들을 중심으로 초청된 것으로 안다.”면서 “그동안 적당한 모임 날짜를 잡지 못하다 강력부장 회의일에 간담회를 갖게 된 것이며 자연스레 강력부장 회의도 24일로 연기됐다.”고 말했다. 안동환 홍지민기자 sunstory@
  • 美서 한인이민 100년 기념공연 강남구 오케스트라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5일 구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서현석)가 지난 95년 강남구와 자매협약을 맺은 미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시에서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초청연주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리버사이드 뮤지시펄 오디토리엄 및 남가주대(USC) 보바드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이번 연주회에서는 ‘랩소디 인 블루’,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함께 ‘해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얼’ 등이 선보여 리버사이드 시민들을 매료시켰다. 리버사이드시 로널드 로버리지 시장은 “지난 100년의 한인 이민 역사와 함께한 리버사이드는 앞으로 시작될 한인역사의 새로운 100년을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지난 97년 자치구 최초로 창단된 강남 오케스트라는 정기연주회 외에 예술의전당 주최 교향악축제,서울 국제음악제,강남음악회,강남상설 목요무대 등을 통해 100여차례 이상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여왔다. 권문용 구청장은 “리버사이드시청 앞 광장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지고 남가주대와 공동으로 강남구에 ‘구립국제교육원’이 설립되는등 계속돼 온 두 도시간의 우호증진이 이번 공연을 통해 문화영역으로도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 선거사범 뿌리 뽑는다/ 전국 공안부장회의 “부패근원 적극 단속”

    내년 4월 총선이 6개월여 남아 있음에도 벌써부터 선거사범이 속속 적발되고 있다.검찰은 이에 따라 4당체제를 맞아 내년 총선분위기가 전례없이 혼탁해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20일 일선 검찰에 선거사범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을 지시했다. 대검 공안부(부장 洪景植)는 이날 전국공안부장 검사회의를 열고 ▲불법금품 수수 ▲흑색선전 ▲공무원의 선거관여 ▲선거브로커의 불법행위 등을 ‘공명선거 저해 4대 사범’으로 정하고 이를 근절키로 했다. ●들뜨고 있는 선거 분위기 이미 불법선거운동은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진단이다. 검찰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9월 지역주민들에게 자신의 명함 등이 붙어 있는 멸치 선물세트 400여상자를 돌리려 한 혐의로 경기도의원 유모씨를 구속했다. 또 의원 보좌관 이모씨는 지난 5월 지역구 경로행사장에 참석,국회마크가 그려진 수건을 배포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지난 9월에는 박모씨 등 선거운동원들이 지역구민들을 상대로 식사대접을 하려다 이를 촬영하려는 선관위 직원들을 발견하고는 폭력을 휘둘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모 지구당 부위원장 윤모씨는 지난 1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지구당과 후보자 이름이 포대에 찍힌 쌀을 노인들에게 나눠줬다가 기소됐다.총선에 출마할 예정이었던 홍모씨 역시 지난 1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담은 새해인사장을 지역구에 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같은 불법선거사범 35명을 입건,1명은 구속 수사하고 10명은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또 21명은 불구속수사 중이며,3명은 불기소처분했다.검찰은 이외에 별도로 5명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지난 16대 총선 당시와 비교하면 입건만 해도 30%가량 증가한 수치다. 검찰은 내년 총선 때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불법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투표일 전이라도 수사한다.” 검찰은 그동안 선거에 개입한다는 오해 등을 피하기 위해 투표일 뒤에 수사에 착수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먼저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안창호 대검 공안기획관은 “증거가 있으면 투표일 전이라도 수사한다는 것이검찰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배경에 대해 “금전선거는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이어지고,이것이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금전선거를 뿌리뽑기 위해 불법자금이 포착될 경우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 가능한 모든 수사기법을 동원할 방침이다.또 돈을 받은 유권자나 자원봉사자들도 자수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원 기소할 계획이다. 그러나 상대후보의 역정보 등으로 인해 수사가 펼쳐질 경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수사기법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키로 했다.안 기획관은 “형평성 시비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홍지민기자 cho1904@
  • 책 / 버드나무 그늘 아래

    존 차 지음 / 문형렬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의 큰딸 안수산(89·미국 거주)씨의 전기 ‘버드나무 그늘 아래’(존 차 지음,문형렬 옮김)가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됐다.이 전기는 도산의 가족사와 독립운동 등 역사의 숨겨진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은이 존 차는 한국계 미국인 전기작가.안수산씨의 회상을 토대로 그녀의 일생은 물론이고 아버지 도산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생활을 마치 소설처럼 존존하고 흥미롭게 복원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당시 이승만 진영에서 미 연방정부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도산에 대한 모함 투서.‘찰리 리’‘왕공’이란 익명으로 이민국에 접수된 투서에는 “안창호는 볼셰비키 지도자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있어 치열한 권력암투의 단면을 드러낸다.미국에서 함께 활동하던 독립투사들과 사냥터에서 찍은 사진도 새로 공개됐다. 어린 시절을 술회하면서 안씨는 아버지를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라고 했다.11세 되던 해에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를 떠나보낸 그의 회고에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의 시간들이 역력하다.도산의 뜨거운 가족애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아이들을 위해 버드나무를 심고 뒤뜰에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던 아버지였다. 책에 따르면,도산은 북한에서도 민족지도자로 추앙받았다.북측이 수차례에 걸쳐 그의 가족에게 방북요청을 해왔다. 안씨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책은 그가 2차대전 후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비밀정보 분석가로 활약했던 시절,퇴역 후 캘리포니아에서 가족들과 ‘문게이트’라는 식당을 운영한 이야기 등도 두루 실었다.그는 현재 한인역사박물관 이사,로스앤젤레스 3·1여성동지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9200원. 황수정기자 sjh@
  • 中企 불법파업 처벌 완화할 듯

    검찰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서로 다른 처벌기준을 적용하고 내년 총선에 앞서 선거사범 처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공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2일 강금실 장관을 비롯,안창호 대검 공안기획관 등 공안검사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안검사 간담회를 갖고 노조 불법파업에 대해 획일적으로 대처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3일 밝혔다.법무부 관계자는 “대기업 노조와는 달리 중소기업 노조는 결속력도 약하고 경험과 법적 지식이 없어 과격행위로 치닫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감안해 대기업 노조와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는 중소기업의 경우 파업을 하더라도 처벌 수위를 완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검찰은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상 규정이 다소 추상적인 점을 고려,선거법 위반행위를 구체적으로 유형화해 구속 및 기소 기준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KBS 2R, 도산선생 구전가요 복원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준 열사가 부르던 구전가요가 복원됐다. KBS 2라디오는 14·15일 오전 11시5분 ‘저항의 노래,희망의 노래’에서 1907년 도산 선생이 작사한 ‘한반도’와 ‘병식행보(兵式行步)’,이준 열사가 작사·작곡한 ‘님 주신 글’을 방송한다.KBS 관계자는 “이 악보들을 찾아내어 원형을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한 뒤 “1920년대 만주,연해주 등지에서 불렸던 ‘님의 동동’‘심청가’등의 구전 가요들도 함께 복원했다.”고 덧붙였다.
  • ‘신시의 효시’ 김여제 詩2편 발굴

    한국 최초의 자유시인 ‘불노리’ 등과 함께 초기 신시의 효시로 알려진 김여제의 ‘만만파파식적’(1916년)과 ‘세계의 처음’ 전문이 발굴돼 문학사상 7월호에 공개된다. 두편의 시가 발굴된 것은 일본 와세다 대학의 오무라 마스오 교수와 호테이 도시히로 교수,심원섭 와세다대학 강사 등 와세다대 어학교육연구팀이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찾아낸 ‘학지광’8,11호를 통해서였다. 김여제는 1910년대 초 근대시 개척단계에서 최남선의 뒤를 이어 1916∼1917년 동경유학생 동인지인 ‘학지광’에 이번에 발굴된 2편의 시를 발표했다.김여제는 상해임정 망명생활 때 흥사단에 가입,도산 안창호의 측근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가 10여년 머물며 교육학을 전공했다.귀국 후에는 오산학교 교장(1931)을 지내며 미국식 교육을 펼쳤다.동인지 ‘창조’의 후신인 ‘영대’에서 김소월 등과 함께 활동했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서울대) 교수는 “김여제의 시편은 한국 근대시의 여명기라 할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최남선과 ‘불노리’의 주요한 사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정도로 시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당시 시편을 읽어본 주요한 등 문인들은 “획기적인 자유시의 대담한 실험적 작품”으로 평했으나 반일(反日)적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학지광’이 판매금지 되면서 묻혀버렸다.이번 발굴로 한국 근대시문학사에서 신시의 효시 등을 놓고 있어온 논란을 보완하는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수기자 vielee@
  • NGO / 흥사단, 인터넷 신문·방송 추진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원조격인 흥사단이 창립 90주년을 맞아 ‘대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21세기에 걸맞은 시민운동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다. 1913년 5월13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흥사단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 줄곧 인재양성과 민주화 사상을 전파하는데 주력해 오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흥사단은 10년 뒤인 100주년을 앞두고 ‘사이버시대’에 걸맞은 시민운동 단체로 다시 태어나려는 활발한 개혁작업을 준비하고 있다.실천적 참여와 봉사를 위한 시민 실천운동 등 구체적인 청사진은 최근 발표한 ‘비전 2013’에 담겨져 있다. 사이버 흥사단활동을 강화하고 사이버신문 등의 미디어사업에도 눈을 돌리는 등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발맞춰 나가겠다는 게 골자다.우선 젊은이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고,21세기에 걸맞은 흥사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각종 용어,의식과 상징,절차 등의 현대화 작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또 10년 동안 지방 지부 및 해외 지부,학생아카데미 조직도 획기적으로 늘려 나간다는 복안이다.사이버 흥사단 운동을 활성화하고,사이버 공간에서의 흥사단 운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사이버 신문,잡지, 방송 등의 미디어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세계화 시대의 흥사단 운동을 위한 국제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부설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등의 사회교육 기능을 확대 발전시키는 한편 ‘도산대학’의 설립도 추진할 방침이다. 부설 ‘도산청소년재단’을 기초로 장학기금 등 관련 재원을 통합하고 기금을 확충해 청소년 육성과 지도자 양성 및 우수학생 장학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단도 만들기로 했다. 이와 함께 흥사단 100주년 기념회관도 새로 짓는다.현재의 서울 동숭동 ‘도산회관’을 매각하고 새로 짓는 방안과 현 부지를 활용해 새 건물을 신축하는 방안 중에 하나를 선택할 방침이다. 기업의 윤리경영을 촉구하는 등 부설 ‘투명사회운동본부’에서 지금까지 주창해온 대로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 건설을 위한 투명 사회운동도 계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흥사단은 지금까지 외연의 확대를 목표로하는 일반 시민단체와 달리 인재양성 등 내실에만 주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비전 2013에 담긴 10대 과제에서 드러나듯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가장 오래된 순수 시민운동단체로서의 역할을 보다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소선 이사장은 “조직강화를 위한 단우(團友)수 배가운동 등에도 박차를 가해 100주년을 준비하겠다.”면서 “우리 사회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편법과 눈가림,분단의 장기화로 인한 남북한 경제적 격차와 문화적 이질성 심화,세대·이념·지역·계층간 갈등 격화 등의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고 흥사단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러시아판 ‘로미오와 줄리엣’ / 연극 ‘못말리는 귀족아가씨’

    흥미있는 러시아 연극 한 편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 국립 모스크바 예르몰로바 드라마극장이 30일부터 새달 8일까지 한전아츠풀 무대에 올리는 푸슈킨 원작 ‘못말리는 귀족 아가씨’.5편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산문 ‘벨킨 이야기’ 중 ‘귀족아가씨,시골처녀’를 극화한 작품이다. 줄거리만 얼핏보면 원수지간인 두 지주 집안의 아들과 딸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았다.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집안이 화해하고,연인이 행복하게 맺어지는 결말은 푸슈킨의 위트와 낙관적인 품성을 엿보게 한다. 러시아식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베레스토프와,영국식으로 생활방식을 바꾼 무롬스키는 오랜 앙숙.어느 날 베레스토프의 아들 알렉세이가 고향에 돌아오고,호기심을 못 이긴 무롬스키의 딸 리자가 평범한 시골처녀로 변장해 알렉세이에게 접근한다. 연극 도입부에 연출가가 등장해 대본을 나눠주면서 극을 시작하는데 이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연출법을 활용한 것이다.연극과 관객 사이에 거리를 둬 관객이 객관적 관찰자로서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연극 방법론이다. 예르몰로바 극장은 옛 소련에서 최초로 ‘인민예술가’칭호를 받은 여배우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예르몰로바의 이름을 딴 기관으로 78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이번 공연은 한·러 수교 13주년을 기념해 극단 동임과 예르몰로바 극장 공동주최로 마련됐다.공연 기간동안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김구,안창호,안중근 등 ‘항일 독립운동가 50인 초상화전’이 로비에서 열린다.평일 오후 7시30분,토·일 오후 4시·7시 3만∼10만원.(02)595-2144 이순녀기자
  • 도산 안창호선생 동상 재건립 오늘 제막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재건립돼 1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에서 제막된다. 선생의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가 주관하는 제막식에는 김종성 국가보훈처 차장,박관용 국회의장,독립운동단체 회원,도산의 장녀 안수산 여사 등 유족이 참석한다.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모양인 새 동상은 이승택 미술연구소에서 제작했고 가로 1.3m,높이 4m의 본상과 가로 2.2m,높이 1.8m의 좌대로 이뤄졌다. 한편 1973년 건립됐던 기존 동상은 부식이 심한데다 건립자와 조각가의 친일문제가 불거져 지난해 철거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검찰 공안기능 어떻게 바뀌나

    검찰의 공안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대공이나 학원·노사라는 축에서 남북관계나 테러방지 쪽으로 무게중심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검거 위주의 정책도 바뀌고 있다.그러나 한총련 합법화나 수배자 해제 등의 현안에서는 정책결정자와 검찰 등 실무부서 사이에 미묘한 견해 차이가 노출되고 있다. ●공안라인 변화 시도 검찰의 공안정책 변화는 공안라인 구성에서 드러난다.과거의 공안통을 배제하고 공안부 근무가 거의 없는 검사를 공안라인내 요직에 배치한 것이다. 공안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기배 대검 공안부장부터가 공안보다는 특수수사 경험이 많다.이재순 대검 공안3과장도 강력통으로 분류된다.이재원 서울지검 공안2부장과 법무부에서 공안정책을 입안하는 김경수 검찰3과장도 특수수사통이다.반면 전국 지검·지청의 공안부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대검 공안기획관은 남북관계에 정통한 안창호 기획관을 임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종전 공안팀이 세웠던 각종 정책과 기준을 새로운 시각에서 정립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 공안기능 일부 정비 검찰은 노사문제 가운데 체불임금과 관련한 고소·고발사건 등 비교적 경미한 사건은 최근 도입한 전문부장검사제를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이다.경우에 따라서는 이같은 체불임금과 관련한 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임금체불 사건의 경우 고용주를 과거의 기준에 따라 처벌하기보다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신속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적극 활용해 왔다.밀린 임금이 청산된 경우 고용주를 기소유예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용한 것이다.이같은 청산중재제가 바로 새 정부가 지향하는 공안정책의 한 단면이라고 보고 있다. 공안정책의 변화는 공안사범의 감소세에서도 드러난다.이는 공안사범 자체가 준 탓도 있지만 검찰과 법원이 국가보안법 등 관련 법률을 엄격히 적용한 것도 한 요인이다.YS정권 말기 609명에 이르렀던 국보법 관련 기소자수가 98년 394명,99년 277명,2000년 146명,2001년 116명으로 현격히 줄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보법 개정이나 대체입법 논의에대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국보법을 보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정책에는 이견 노출 노무현 대통령이나 강금실 법무장관 등은 한총련 합법화나 수배자 해제문제 등에 대한 대안 마련을 주문하고 있지만 검찰 등 일선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수배된 한총련 간부들이 자수하거나 주체사상 등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공안당국의 입장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공안부 개편에도 부정적이다.명칭이 바뀌더라도 공안부의 원래 기능은 바뀔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새 정부도 공안부의 고유 기능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전면적인 개편보다는 공안정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충식 조태성기자 chungsik@
  • 이런 책 어때요 /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관변 사학자,국정 국사교과서 등을 통해 개화기 선각자로 숭앙돼 온 김옥균,안창호,서재필 등은 여전히 성역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박노자(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 저자는 이 개화기 선각자들의 자취를 신랄히 비판한다.그들은 동학운동을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소란으로 매도했고,계몽 엘리트에 의한 권위적인 정국운영을 구상했으며,지역감정의 소유자였다는 것.상대적인 진보성과 함께 그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근대화의 왜곡된 성격이 어떻게 광복 이후 박정희 ‘근대화담론’으로 이어졌는가를 밝힌다.1만원.
  • 검찰인사 ‘파격’ 없었다

    서열파괴는 더 이상 없었다. 법무부는 28일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에 김회선 서울지검 1차장을 전보발령하는 등 다음달 1일자로 재경지청장급 이하 부장·부부장급 검찰 중간간부 304명을 전보시키고 검사 39명을 새로 임용했다. 고검장·검사장급과 같은 파격인사는 이번에는 이뤄지지 않았고 거의 서열대로 자리를 움직였다.사시 20회는 서울과 부산의 지청장을 차지했고,서울지검 차장에는 21회가 전보됐다.중견 검사의 요직인 서울지검 부장에는 사시 24회가 주류를 이루었다.이는 서열을 중시한 과거의 인사관행을 따른 것이다.고위 간부와 같은 파격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조직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사시 21∼25회 15명을 서울지검 등 수도권 검찰청의 ‘전문부장’으로 처음 임명한 것이다.사시 21회인 정진섭 검사와 23회인 고천척 검사가 서울지검 전문부장에 임명됐다.역시 23회인 김종영 검사와 윤형모 검사가 서울 동부지청과 인천지검의 전문부장으로 옮겼다.전문부장은 아래에 검사를 두지 않고 독자적으로사건을 수사하고 영장을 청구하며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사시 23회 가운데 선두였던 일부 서울지검 부장과 지청장중 고검 또는 지방근무 경력이 없는 인사들은 지방고검으로 전보시켰다.앞으로는 승진을 앞둔 부장검사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조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에서 연속 3회 이상 또는 3년 이상 근무한 검사 대부분을 서울·수도권으로 전보하는 등 수도권과 지방간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또 과거처럼 검찰3과장→2과장→1과장으로 이어지던 인사관행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살려 인사를 운용하기로 했다. 이번 인사에서 서울 남부지청장에 권재진 서울 북부지청 차장,북부지청장에 명동성 인천지검 1차장,서부지청장에 김태현 수원지검 1차장,의정부지청장에 부봉훈 서울 남부지청 차장,부산 동부지청장에 박영수 서울지검 2차장이 각각 전보됐다. 서울지검 1차장에는 박만 대검수사기획관,2차장에 문성우 수원지검 2차장이 전보됐으며,대검 수사기획관에 문효남 부산지검 2차장,공안기획관에 안창호 서울지검 외사부장,범죄정보기획관에 박태규 대구지검 경주지청장이 각각 자리를 옮겼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도산 안창호선생 65주기 추모식

    독립 운동가로 민족교육에 헌신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순국 65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10시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 주관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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