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안창호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음성군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비행체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프란츠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부통령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18
  • [데스크 시각] 공정한 게임의 룰/박홍환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공정한 게임의 룰/박홍환 사회부장

    시합은 공정해야 한다. 권투와 같은 체급 경기에서 플라이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가 맞붙는다면 굳이 끝까지 지켜보지 않아도 시합 결과는 뻔할 것이다. 공정한 심판도 중요하다. 심판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순전히 시합만을 지켜보며 공정하게 판정해야 한다. 경쟁의 한 상대방과 인연이 있는 심판이 제척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은 그렇다. 중립적인 심판이라야 선수와 관중 모두 그 판정을 온전하게 수긍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지켜보면서 이 같은 공정한 게임의 룰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8명이 압도적으로 인용한 해산 결정. 하지만 그 저변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 과연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번 해산 결정에는 공정한 룰이 적용됐을까. 공교롭게도 심판단 일원인 박한철 헌재소장과 안창호 헌법재판관, 그리고 심판을 청구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리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모두 사법고시 23회로 법조계에 발을 내디딘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안 재판관과 황 장관은 검찰 재직 당시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린 검찰의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박 헌재소장도 공안 수요가 많은 울산지검장을 거쳐 대검 공안부장까지 지냈다. 팔방에 조예가 깊은 ‘학구파’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은 유난히 인재가 많았던 검찰 내 사시 23회(사시 사상 처음으로 300명 선발) 동기들 가운데서도 선두주자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숱한 공안 사건들이 이들의 손을 거쳐 법원으로 넘겨졌다. 뼛속까지 깊게 새겨 넣은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의기투합했다. 해산심판 대상인 통합진보당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이물질’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황 장관이 청구 대리인으로 나서고, 박 헌재소장이 재판장을 맡은 이번 해산심판 사건은 그래서 처음부터 ‘싱거운 시합’이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헌재는 10년 전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 준 바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하고, 노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수도이전 사업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보수와 진보, 당시의 야당인 한나라당과 집권 세력인 노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에 각각 치명타 한 방씩을 날린 셈이다. 그때 재판관들의 심판 자격을 문제 삼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전에 헌재가 결정을 서두른 듯한 모양새여서 국정개입 의혹 국면전환 음모론이 나오더니 헌재 무용론, 재판관 임명 방식 개편론까지 제기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재가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지만 그 역사적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심판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국민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재에 대한 불신은 국가적으로 매우 안타깝고 우려할 만한 일이다. 헌재 소장 지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이 같은 사태는 애당초 박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한 이동흡 헌재소장 내정자를 대신해 박 헌재소장을 심판장으로 ‘등판’시켰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범죄자들의 죄를 캐내 단죄하는 데 평생을 보낸 검사 출신 헌재소장이 과연 제3자적 입장에서 오롯이 객관적 증거만으로 공정한 심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게임의 룰이 생각나는 이유다. stinger@seoul.co.kr
  • 재판관 보수 성향…“예견된 결과”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1년 넘게 이번 사건을 심리해 온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한철 소장을 비롯해 9명 모두 보수 성향의 박근혜·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됐다. 2011년 1월 이 대통령 지명으로 헌재에 입성한 박 소장은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헌재 수장에 올랐다. 대검 공안부장을 역임할 만큼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꼽힌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와 미네르바 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헌재에서는 낙태죄 처벌, 야간 옥외집회 금지 등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냈다. 2012년 9월 합류한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은 양승태 현 대법원장이 지명했고,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이 추천했다. 안 재판관도 박 소장과 마찬가지로 대표적 공안통이다. 대검 공안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냈다. 2006년에는 일심회 간첩 사건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4월 헌재에 입성한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번 사건 주심으로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3월 헌재에 합류해 박 소장을 제외하면 최고 선임이다. 진보 성향인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지명했지만 진보 세력의 바람을 외면하고 다수 의견에 한 표를 보탰다. 여야 합의로 선출된 강일원 재판관은 중도 성향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정당 해산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베니스위원회 산하 헌법재판공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기각 의견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예상을 벗어났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권(유홍준 지음, 창비 펴냄) 국토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 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저자의 일본 답사기 완결편으로 교토의 명소를 소개한다. 저자가 틈날 때마다 일본 속 한국 문화의 자취를 따라 일본 각지를 답사해 온 경험과 성과를 망라한 일본 답사기는 1권 ‘규슈-빛은 한반도로부터’, 2권 ‘아스카·나라-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3권 ‘교토의 역사-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로 이어졌다. 용안사의 석정(石庭)을 표지에 담은 4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는 일본 역사와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는 교토 구석구석에 남은 한반도 도래인의 발자취와 함께 우리의 기술과 문화를 토대로 문화를 꽃피운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고려불화부터 윤동주, 정지용의 시비까지 일본에 새겨진 한·일 두 나라의 오랜 문화 왕래의 자취를 따라간다. 468쪽. 1만 8000원.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제임스 말로니 지음, 황헌 옮김, 행성B:잎새 펴냄) 1면 헤드라인은 가장 중요한 기사 내용을 짧고 명료한 단문으로 함축한 것이다. 책은 170여년간 근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을 100개의 실제 신문 헤드라인을 통해 전한다. 책은 국제적인 전쟁, 자연재해, 범죄, 과학적 발견 등과 관련한 헤드라인 외에 충격, 불안, 환희 등 대중의 감정적 파장을 이끌어 낸 헤드라인을 시간순으로 배치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의미, 언론의 평가나 대중의 반응, 이후 역사와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격’(1914년 6월 29일 뉴욕타임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 ‘이스라엘 건국’(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포스트), 미국과 소련이 벌인 우주개발 경쟁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소련이 우주로 위성을 쏘다’(1957년 10월 5일 뉴욕타임스) 등 근현대사를 아우른다. 384쪽. 1만 7000원.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서경덕과 한국사 분야별 전문가 지음, 엔트리 펴냄)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영웅의 삶을 살다 뜻깊은 유산을 남기고 간 10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안중근, 김구, 윤봉길, 안창호, 헤이그 특사, 세종대왕, 이순신, 정약용, 윤동주, 백남준이 주인공이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 한국의 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인물별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지난해 독도, 일본군 위안부, 동북공정, 야스쿠니 신사, 약탈 문화재 반환, 독립운동 인물 및 역사, 한글, 한식, 아리랑 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한국사 10개 키워드를 엮은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을 잇는 인물편.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한 운동가,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 거장이라 불리는 예술가를 물었을 때 누구를 먼저 떠올리는가, 당신의 대한민국은 누구인가 등의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376쪽. 1만 6000원. 바이 디자인(데얀 수직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 ‘사물의 언어’로 잘 알려진 데얀 수직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이 쓴 개념사전.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39가지 단어를 선정해 우리 시대의 디자인, 건축, 예술, 패션을 이해할 토대가 될 기본 개념들을 짚었다.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명쾌하고도 예리한 분석력이 돋보인다. 앤디 워홀이 진짜로 가짜인 이유, 패션과 유행의 변화를 읽는 법, 위대한 건축물부터 우리의 삶을 바꾼 건축가들의 이야기, 비완벽을 추구하는 디자인의 역설, 코닥은 사라지고 제록스는 살아남은 이유, 빨래집게처럼 작지만 혁명적인 디자인 걸작들에 얽힌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19세기 만국박람회부터 우리 시대를 만든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3D프린팅, 비디오게임, 유튜브, 비판적 디자인, 디자인 아트 등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들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640쪽. 1만 6000원.
  • (영상)서경덕 교수,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인물 이야기’ 안중근 편 제작

    (영상)서경덕 교수,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인물 이야기’ 안중근 편 제작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인물 이야기’ 제1탄 안중근 편 동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5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번 동영상은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만들어져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6분 40여초 분량의 해당 영상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 소개, 현재 안중근에 대한 추모분위기 및 재평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동양평화론’에 대한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영상을 기획한 서 교수는 “인도하면 간디, 미국하면 링컨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들이 존재한다. 그런 영웅들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바꿔 놓듯이 우리의 영웅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동영상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서 교수는 “이번 동영상은 유튜브 뿐만이 아니라 미국, 프랑스, 이집트, 중국 등 대륙별 주요 30개국을 선정하여 각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포털 사이트와 동영상 사이트에 동시에 올리는 방식으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CNN,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전 세계 194개국 주요 언론 605개 매체의 트위터 계정 등 SNS를 활용한 홍보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가수 윤종신이 재능기부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내레이션을 담당한 윤종신은 “안중근 영어 동영상을 통해 해외에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국어 영상을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영웅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녹음했다”고 전했다. 한편 서 교수는 안중근 편에 이어 이순신, 안창호, 윤봉길 등 우리나라 대표하는 영웅들의 동영상을 계속 제작해나갈 계획이며, 조만간 이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도 발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서경덕 교수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위선자 이광수의 참회

    [최동호 새벽을 열며] 위선자 이광수의 참회

    춘원 이광수를 위선자라고 지칭한다면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이광수의 막내딸 이정화 여사가 한 신문과 대담한 것을 읽고 위선자라는 지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내의 설교’라는 시 때문이다. 여기서 춘원은 아내를 화자로 설정했다. 아내의 시각에서 춘원을 바라보고 쓴 것이다. ‘당신은 악인(惡人) / 나도 악인/그렇지만 나는 스스로 악인이라고 인정하는데, 당신은 선인(善人)인 척해 남들로부터 존경받는다/나는 손이 닳도록 당신을 위해 살았는데 당신은 나를 위해 무얼 했소/그러니 나를 이해하는 남편이라도 돼주소서’라는 부분을 읽을 때 춘원은 아내의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시각에서 남편에 대해 썼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내의 현실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춘원은 선인인 척하여 남들로부터 존경받는 위선적 인물로 보였을 수도 있다. 허파와 신장을 하나씩 떼어낸 병약한 몸을 아내에 의지해 살고 있던 춘원으로서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최종고 선생이 편한 춘원 자서전 ‘나의 일생’이 최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춘원 전집에 산재한 춘원의 여러 글을 한데 모아 7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춘원 자신이 기술한 내면 풍경을 종합한 최초로 저술이다. 과연 어린 시절부터 춘원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으며 친일 행적 이후 어떠했는가를 춘원 자신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편집이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춘원의 변명을 듣고자 하지는 않는다. 춘원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도쿄에서 ‘2·8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적극적인 항일운동으로부터 1922년 ‘민족 개조론’에 이르는 소극적 친일 협력이 첫 번째 단계이며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1937년 이후의 적극적 친일의 단계가 그다음이다. 국가 총동원체제를 준비하고 있던 당국에 의해 안창호를 비롯해 100여명 넘는 동우회원들이 체포된 이 사건은 4년 후 경성고등법원 상고심에서 전원 무죄로 판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병보석으로 입원 중이던 안창호가 1938년 3월 서거했다. 안창호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후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에 적극 가담하여 학병 권유에 나선 것이 춘원이다. 춘원을 존경하고 따르던 수많은 청년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춘원의 세 번째 단계는 광복 후 반민족특별위원회에 나가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강변으로부터 1950년 납북과정에서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하기까지이다. ‘병든 아버지를 풀어 달라’고 큰아들 영근은 혈서를 썼다. 춘원은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족 앞에 사죄하지 않는 춘원에 분노한 국민감정은 그의 사후에도 망령처럼 그의 유족들을 뒤쫓아 다녔다. 춘원은 정말 사죄하지 않았던 것일까. 광복 후 돌베개를 베고 산 춘원은 1948년 ‘나는 독립국자유민이다’라는 시에서 ‘나는 죄인. 비록 대청광서(大淸光緖)에 나고 /명치(明治), 대정(大正)의 거상 입고 /천조(天照), 소화(昭和)에 절한 더러운 몸이언마는//건국 선거에 투표하는 날 /조국은 나를 용납하여 불렀다 /칠월 십칠일 헌법 공포식 중계방송 듣고 /흘린 감격의 눈물로 먹을 갈아 /사는 날까지 조국 찬양의 노래를 쓰련다/그리고 독립국 자유민으로 눈감으련다’라고 썼다.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고 독립국 자유민으로 죽고 싶다고 증언한 것이다. 법정에서의 공식적 사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뉘우침과 반성이다. 친일한 춘원을 우리는 사랑할 수는 없다. 그는 위선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전면 부정하는 것도 어렵다. 단적인 한 예로 1918년 ‘무정’을 제외하고 한국 근대소설의 첫머리를 기술하기 어렵다. 어느 한쪽이 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민족적 감정이나 애증의 감정을 넘어서야 하는 시기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무정’ 백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죄 많은 인간 그러나 근대문학의 선구자 춘원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 [오늘의 눈] 인사가 만사, 망사, 참사/백민경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인사가 만사, 망사, 참사/백민경 국제부 기자

    나렌드라 모디가 누군가. 한때 홍차를 팔아 생계를 꾸렸던 그는 수십년 뒤 12억명을 이끄는 인도의 새 총리가 됐다. 구자라트주 총리를 네 번이나 역임하며 경제 성장률을 10%대로 끌어올린 것도 그다. 중국도, 일본도 그를 모시려고 안달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개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고 방문을 요청했다. 이쯤 되면 세계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모디 정부가 시작부터 시끄럽다. 집단 성폭행 혐의로 제소된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화학부 장관으로 임명된 니할 찬드 메그왈은 2011년 북서부 라자스탄주 주도 자이푸르에서 다른 정치인들과 함께 당시 21세인 주부를 성폭행한 혐의로 제소된 인물이다. 피해자는 메그왈 측이 소송을 취소하라고 협박을 하고 있다며 최근 모디 총리에게 면담까지 요청했다. 성폭력에 무관용으로 대처하겠다던 집권당은 수사에 문제가 없었다며 맞서고 있다. 때문에 인도 현지 언론은 모디 정부가 처음으로 추문에 직면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런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사람이 없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인사가 비단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국무총리 후보자가 등장했다. 비록 당사자인 문창극씨는 “안창호와 안중근을 가장 존경한다”며 발언이 왜곡됐음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발언과 오해를 사기 좋은 문구들은 다수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일 군(軍)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한·일 간 조율이 있었다는 일본의 발표와 맞물려 이번 친일사관 논란은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국민 검사’라던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의 덫에 걸려 후보직을 불명예스럽게 떠난 것이 몇 주 전인데, 이 정부의 인사는 논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쯤 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진다. 심지어 수첩이 ‘데스노트’라는 농담까지 나온다. 이름을 올리는 인사마다 족족 사라지니 살생부가 따로 없다. 김용준·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후보자 등이 그랬다. ‘모래 속 진주’라며 극찬했던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결국 대통령 스스로 쳐냈다. 낙마 이유도 다양하다. 위장전입은 ‘필수 옵션’이다. 업무추진비 유용,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전관예우, 병역 면제, 심지어 성 접대 의혹까지 나왔다. 장관 정도 하려면 최소 서너 개 의혹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분명 망사(亡事)다. 아니 참사(慘事)다.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조직을 이끌고, 솔선수범 없는 개혁이 어떻게 힘을 얻겠는가. 모디처럼 적잖은 지지를 바탕으로 출발한 박 대통령이 기본적인 진리부터 다시 수첩에 적기를 바란다. white@seoul.co.kr
  • 문창극 독도 칼럼 도대체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시고…” 항변

    문창극 독도 칼럼 도대체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시고…” 항변

    문창극 독도 칼럼 도대체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시고…” 항변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19일 자신을 둘러싸고 불거진 ‘친일(식민)사관’ 논란과 관련,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후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로비를 통해 퇴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 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왜 저보고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문 후보자는 “다른 얘기는 다 들어도 저보고 친일이라고 그러고, 반민족적이라고 말씀을 하면 저는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자는 이어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중국의 뤼순 감옥과 재판정을 자신이 직접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소감을 바탕으로 쓴 자신의 과거 칼럼의 일부를 읽기도 했다. 또 세종대에서 ‘국가와 정체성’이라는 강의를 나간 사실을 알리며 강의안의 일부도 낭독했으며,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자신이 헌화한 사진을 준비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사실이면 사실대로 보도해 달라. 여기서 이런 얘기, 저기서 이런 얘기 소문대로 보도하면 얼마나 나의 명예가 훼손되는가”라며 “그것을 모르는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로비에 선 채로 20여분 넘게 해명과 호소를 이어갔다. 총리 후보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 후보자는 전날 오전 9시 창성동별관으로 출근하면서 자신이 작성한 칼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 칼럼은 그것 말고도 직접 독도 가서 쓴 칼럼이 있는데 분명 우리 땅이고 독도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동해가 있다는 걸 분명히 썼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어 문 후보자는 “여러분들 그런 거 읽어보시고 질문을 좀 하시라”라고 말했다. 이날 한 매체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칼럼집 ‘자유와 공화’에서 ‘독도와 서해5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현실적 위협이 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독도를 내세워 이를 과장하고, 실제 위협이 있는 북한은 무조건 감싼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태도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독도 발언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항변

    문창극 독도 발언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항변

    문창극 독도 발언 뭐길래 “다른 글도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항변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19일 자신을 둘러싸고 불거진 ‘친일(식민)사관’ 논란과 관련,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후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로비를 통해 퇴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 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왜 저보고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문 후보자는 “다른 얘기는 다 들어도 저보고 친일이라고 그러고, 반민족적이라고 말씀을 하면 저는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자는 이어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중국의 뤼순 감옥과 재판정을 자신이 직접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소감을 바탕으로 쓴 자신의 과거 칼럼의 일부를 읽기도 했다. 또 세종대에서 ‘국가와 정체성’이라는 강의를 나간 사실을 알리며 강의안의 일부도 낭독했으며,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자신이 헌화한 사진을 준비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사실이면 사실대로 보도해 달라. 여기서 이런 얘기, 저기서 이런 얘기 소문대로 보도하면 얼마나 나의 명예가 훼손되는가”라며 “그것을 모르는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로비에 선 채로 20여분 넘게 해명과 호소를 이어갔다. 총리 후보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 후보자는 전날 오전 9시 창성동별관으로 출근하면서 자신이 작성한 칼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 칼럼은 그것 말고도 직접 독도 가서 쓴 칼럼이 있는데 분명 우리 땅이고 독도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동해가 있다는 걸 분명히 썼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어 문 후보자는 “여러분들 그런 거 읽어보시고 질문을 좀 하시라”라고 말했다. 이날 한 매체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칼럼집 ‘자유와 공화’에서 ‘독도와 서해5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현실적 위협이 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독도를 내세워 이를 과장하고, 실제 위협이 있는 북한은 무조건 감싼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태도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사퇴 기로] “안중근·안창호 가슴 시리게 존경… 왜 친일인가” 文, 사퇴는커녕 적극 해명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19일 자진 사퇴는커녕 자신을 향한 친일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 애썼다. 문 후보자는 이날 저녁 6시쯤 집무실을 나서면서 취재진에게 자신이 쓴 칼럼 사본들을 보여 주며 작심한 듯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소극적으로 응했던 여느 퇴근길과는 대조적이었다. 문 후보자는 안 의사에 관해 쓴 자신의 칼럼을 소개하면서 “나는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식민지 사관이 뭔지 뚜렷이 모르지만 나라를 사랑하셨던 그분은 내가 가슴이 진짜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며 “그런데 왜 나보고 친일이다, 반민족적이다라고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안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수감됐던 중국 뤼순의 감옥을 직접 다녀온 일을 공개하면서 “아,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는 세종대에서 ‘국가와 정체성’이란 강의를 했다고 밝히면서 “여러분 내일 당장 (세종대에) 가서 일일이 잡고 물어보라. 정말로 문창극 교수가 너희한테 친일을 가르쳤느냐, 아니면 반민족을 가르쳤느냐. 나는 지금도 떳떳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자랑일 것 같아 공개 안 하려 했는데 이건 사실”이라며 자신이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헌화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실대로 보도해 달라. 소문대로 보도하면 얼마나 내 명예가 훼손되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가 출퇴근하면서 느낀 소감을 한 가지씩 말씀드리려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 앞으로도 매일 이런 식의 해명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동안 논란에 대한 해명에 소극적이던 문 후보자가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에 대한 재가를 유보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재가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최대한 해명함으로써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설령 여론이 반전되지 않아 낙마하더라도 자신에게 씌워진 ‘친일 딱지’를 최대한 털어내려면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적극성을 보이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후보자 입장에서는 인사청문회도 가 보지 못하고 사퇴할 경우 ‘친일 매국노’라는 낙인만 남는 상황을 우려해 이판사판식으로 해명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문창극 독도 발언 해명 “여러분들 내 글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문창극 독도 발언 해명 “여러분들 내 글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문창극 독도 발언 해명 “여러분들 내 글 좀 읽어보고 질문하시라”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19일 자신을 둘러싸고 불거진 ‘친일(식민)사관’ 논란과 관련,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안중근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 오후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로비를 통해 퇴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우리 현대 인물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 의사님과 안창호 선생님”이라며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 분을 가슴이 시려오도록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을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왜 저보고 반민족적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문 후보자는 “다른 얘기는 다 들어도 저보고 친일이라고 그러고, 반민족적이라고 말씀을 하면 저는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자는 이어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중국의 뤼순 감옥과 재판정을 자신이 직접 다녀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소감을 바탕으로 쓴 자신의 과거 칼럼의 일부를 읽기도 했다. 또 세종대에서 ‘국가와 정체성’이라는 강의를 나간 사실을 알리며 강의안의 일부도 낭독했으며, 남산의 안중근기념관에 자신이 헌화한 사진을 준비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취재진을 향해 “사실이면 사실대로 보도해 달라. 여기서 이런 얘기, 저기서 이런 얘기 소문대로 보도하면 얼마나 나의 명예가 훼손되는가”라며 “그것을 모르는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인”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로비에 선 채로 20여분 넘게 해명과 호소를 이어갔다. 총리 후보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 후보자는 전날 오전 9시 창성동별관으로 출근하면서 자신이 작성한 칼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 칼럼은 그것 말고도 직접 독도 가서 쓴 칼럼이 있는데 분명 우리 땅이고 독도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동해가 있다는 걸 분명히 썼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어 문 후보자는 “여러분들 그런 거 읽어보시고 질문을 좀 하시라”라고 말했다. 이날 한 매체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칼럼집 ‘자유와 공화’에서 ‘독도와 서해5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현실적 위협이 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독도를 내세워 이를 과장하고, 실제 위협이 있는 북한은 무조건 감싼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태도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국가개조는 시민사회가 주도해야 한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가개조는 시민사회가 주도해야 한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대통령이 어느 날 국무회의에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읽어 보기를 권했다고 한다. 1995년 4월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서 발생한 연방정부 청사 폭파사건을 계기로 하버드대 조셉 S 나이 교수팀이 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라는 책이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왜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지를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추적한 이 책은 경제정책의 실패와 부정부패로 인한 도덕성 상실, 개인주의적 성향과 몰가치적 현상, 정부업무의 효율성 저하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기술(IT) 기술 발달에 따른 정보접근성 확대와 국민의 기대와 욕구의 증가도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대기업, 대학, 의료계, 언론계 등 주요 기관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30년 전에 비해 반 토막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각국 정부신뢰도 조사결과 한국 국민의 23%만 정부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4개 회원국과 러시아·브라질을 포함한 36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스위스 국민의 정부 신뢰도가 77%로 가장 높았고 OECD 회원국 평균은 39%였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4.8%에서 올해는 더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는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 정부 불신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로 한국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이 낱낱이 드러나 국민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천명한 것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반영한다. 현재 거론되는 국가개조의 요지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안전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편하고,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드러난 ‘관피아’ 개혁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얼마나 성공할지 국민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과 인력을 보강해 국민 안전을 최우선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정보의 공유와 공개를 통해 유능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 ‘정부3.0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관료조직의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하고 촘촘히 얽혀 있는지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역대 대통령들도 국가개조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한국창조’를 위해 ‘한국병’을 고치겠다고 칼을 빼들었지만 임기 후반에는 측근 비리와 관료들에 포획되어 국가경제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제2건국’을 내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가개조론도 관료주도의 개혁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4대강 사업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민족개조론’에 빗대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강산개조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최근 한국사회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언제나 민초들이 일어나 국난을 극복했다. 임진왜란 때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달아났지만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과 맞섰고, 구한말 왕실과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패에 분개해 국가의 존엄을 되찾겠다고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주체도 민초들이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려고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섰고, 태안 앞바다의 기름을 닦아낸 것도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직과 시스템을 점검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국가개조 수준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을 작동하고 매뉴얼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는 위기관리시스템의 부재나 컨트롤 타워가 없어서가 아니라 과정이나 절차보다는 이익만 추구하려는 성장 지상주의와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그래서 국가개조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주도해야 한다. 시민단체, 교육계, 종교계가 나서 인간존중과 신뢰회복을 위한 국민의식 개혁운동을 벌여야 한다. 서로를 배려하고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는 시민정신과 공동체의식이 뿌리내릴 때에야 비로소 국가개조가 성공할 수 있다.
  • 2800년 전 石劍·함호용 기록… 1990여 점 수록

    2800년 전 石劍·함호용 기록… 1990여 점 수록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한인의 숫자는 102명에 불과했다. 이후 1905년 8월까지 한인 7500여명이 제물포를 떠나 하와이에 정착했다. 함호용(1868~1954)은 1905년 이곳 사탕수수농장에 안착해 40여년간 일한 한인 노동자였다. 오전 4시 30분 일어나 하루 10시간씩 주 6일 일해서 한 달에 겨우 18달러를 손에 쥐었다. 평생 마우이 섬에 거주하면서 그는 모두 11명의 자녀를 얻었다. 아내 함해나(1880~1979)는 요리와 빨래, 병원일 등을 보조하며 생계를 도왔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교육과 독립운동을 위한 특별 의연금은 빠지지 않고 냈다. 1919년 대한인국회 하와이지방총회가 연 첫 모금에선 함호용·해나 부부가 한 달치 생활비와 맞먹는 15달러와 14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이 같은 기록은 고스란히 농장일기, 영수증, 월급명세표와 함께 남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미국 미시간대학과 UCLA 리서치도서관, 그리고 네덜란드 개인 소장 한국문화재들에 대해 현지 실태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담아 ‘국외한국문화재 총서’ 3권을 발간했다. 지난해 미국·네덜란드·중국·일본 등 4개국에서 조사한 한국문화재 5400여 점 가운데 1990여 점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UCLA 리서치도서관이 소장한 ‘스페셜 컬렉션 소장 함호용 자료’(3권)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함호용이 평생에 걸쳐 작성한 일지와 1980년대까지 오간 후손들의 서간 등 1040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다. 지역 한인 목사가 보내온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 직전 선서 사진과 대한인국회 마위지방회 회의록·지출보고서, 안창호 타계 소식을 전하는 ‘신한민보’(1938년) 등이 포함됐다. 자녀들의 출생 및 졸업증, 창작시, 신문을 보고 그린 1930년대 일본군의 중국침략 노선도까지 다양하다.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원사에서 발간한 가곡집 ‘무궁화’(1931년). 애국가, 국기가 등 170곡이 수록된 가곡집에선 애국가의 작사자를 ‘윤치호’로 명기했다. 미 에머리대의 윤치호 애국가 원본과 일맥상통한다. 재미사학자인 안형주씨는 “구한말 한학을 수학했던 함호용은 반세기 동안 하와이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면서 “48개 상자에 달하는 각종 기록을 통해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기고 이주한 소수민족의 자의식과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간대학교 소장 한국문화재’(1권)에는 450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록이 담겼다. 송만영 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이 대학의 한국관련 유물은 토기 비율이 가장 높고 다음이 와전”이라고 전했다. 이 중 청동기 시대 중기 또는 초기인 기원전 9~8세기 제작의 완형(完形)에 가까운 간돌검(石劍)이 주목받는다. 전체 길이 39㎝에 칼날 29㎝, 폭 8㎝로 이단병식(二段柄式) 볼록렌즈 형태를 띠고 있다. 김달형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는 네덜란드인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500여 점에 대한 조사 결과물도 나왔다. 1970년대 서울 종로구 인사동과 용산구 이태원 등에서 구입한 나한상 등으로 당시 서양인의 한국유물 수집 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단은 일본·중국·미국·네덜란드의 주요 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에 대한 추가 보고서를 3~4권 정도 더 낼 예정이다. 일각에선 문화재 환수 지원보다 조사와 활용에 방점을 찍은 재단의 활동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좌표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1907년 윤치호 작’ 친필 美 에머리大 원고 소장 친일 논란 있더라도 원작 맞다면 대우해야

    ‘1907년 윤치호 작’ 친필 美 에머리大 원고 소장 친일 논란 있더라도 원작 맞다면 대우해야

    “(애국가 작사가가)윤치호든 안창호든 그게 뭐 중요합니까. 영원히 작자 미상으로 방치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겁니다. 광복 70주년인 내년까지 작사가 규명 문제를 매듭지을 각오입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41) 스님이 새해 벽두부터 또 일을 냈다.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주립박물관(LACMA)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를 돌려받자마자 다시 애국가 작사가 규명이란 지난한 여정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애국가제자리찾기’는 환수보다는 정체성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7일 각계 인사들로 위원회를 꾸린 스님은 이달 말 미국으로 날아가 오는 3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대 도서관에서 윤치호의 친필 애국가 원본을 열람할 계획이다. 윤치호의 유족(딸)이 1990년대에 아버지 모교인 에머리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원고다. 1~4절까지 한글 붓글씨로 쓰여 있고, ‘1907년 윤치호 작’이란 서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는 “1945년 쓰인 친필 원본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든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무실에서 마주한 스님은 표정이 밝지 못했다. “왜 친일파(윤치호)를 옹호하려 드느냐”, “스님이 찬송가에서 비롯된 애국가 원본을 찾아 무엇에 쓰려느냐”는 쓴소리들 탓이다. 독립협회장을 지낸 윤치호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변절했다가 해방 직후 자결했다. 혜문 스님은 “친일 논란이 있는 안익태의 애국가 자필 악보도 근대문화재로 지정받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며 “윤치호 작사가 맞다면 원고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와 안창호, 김윤식 등 각기 다른 5명의 작사설을 놓고 표결 끝에 11대2로 윤치호 작사설에 힘을 실어 줬다. 작사가를 확정치 않았으나 당시 최남선 국사편찬위원장은 이 원고의 사본을 접한 뒤 “‘윤치호 작’이란 서명이 붙은 것이 확실하다면 윤치호가 가사를 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행방이 묘연해진 원고는 2009년 12월 뉴욕국립도서관을 방문한 혜문 스님에게 우연히 발견됐다. ‘Korean Anthem’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의 대한제국 애국가(뉴욕국립도서관)와 윤치호의 애국가(에머리대 도서관)가 동시에 떴다. 이후 도서관을 설득해 가까스로 열람 허가를 얻었다. 윤치호의 애국가 원본에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접근 제한’이 걸려 있다. 첫 열람을 앞두고 혜문 스님의 고민은 깊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원고가 윤치호의 친필본인지부터 기증자와 기증 조건까지 모두 뒤질 계획입니다.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서 쉽게 되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유족의 기증 조건에 ‘윤치호가 국내에서 애국가 작사가로 인정받으면 내주라’는 단서가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혜문 스님은 문헌을 검토한 결과 안창호 작사설보다 윤치호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안창호가 1907년 선천예배당에서 7일간 금식기도를 마친 뒤 직접 작사했다’는 주장이 통용돼 왔다. 그는 “1907년 윤치호가 편찬한 ‘찬미가’의 14장, 19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된 ‘신한민보’, 1951년 서정주가 쓴 ‘이승만 박사’ 전기, 로스앤젤레스에서 편찬된 ‘세계명작가곡집’이 윤치호 작사설을 뒷받침한다”고 열거했다. 또 1904~1920년 사이 부른 미국 한인 찬송가 속에는 ‘윤선생 티호군 작사’로, 미국 적십자가 발간한 영문 책자 속에는 ‘Chiho Yun’으로 각각 표기됐다는 것이다. 6·25 전쟁 직후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 발간한 한국 소개 책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애국가 후렴구는 윤치호가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성학교 교장인 안창호와 명예교장인 윤치호가 가까운 사이였던 만큼 의견을 나눴거나 여러 명의 공동 창작가가 시간을 두고 작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그는 “규명 작업을 거쳐 내년까지 국가상징위원회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최종적으로 애국가 작사가를 가려 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윤치호 작사 애국가 원본 환수 나섰다

    윤치호 작사 애국가 원본 환수 나섰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애국가 가사 원본을 국내로 환수하기 위한 운동을 벌인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17일 서울 조계사 불교문화대학에서 ‘애국가 제자리 찾기 100인 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미국 애틀랜타 에머리대에 보관된 윤치호의 자필 애국가 원본 환수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위원회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을 비롯해 안민석 민주당 의원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혜문 스님은 오는 31일쯤 안 의원과 에머리대를 방문해 애국가 원본을 열람하고 진위 여부와 당시 유족의 기증 조건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윤치호가 1945년 자필로 애국가 가사를 적고 ‘1907년 윤치호 작’이라 명기한 이 친필본은 1997년 유족의 기증으로 윤치호의 모교인 에머리대에 보관 중이다. 이번 환수 운동은 학계에서 애국가 작사가를 놓고 격론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선 안창호의 애국가 작사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반면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는 증거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발견됐다. 윤치호가 1907년 번역한 ‘찬미가’란 책의 14장에 애국가가 수록돼 있다. 또 1910년 9월 미 샌프란시스코 교민회인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애국가 작사가로 윤치호가 명기됐다. 신한민보는 미국에서 대한제국의 해외 기관지 역할을 했다. 또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심의에선 애국가 작사가로 윤치호와 안창호를 놓고 표결이 벌어졌는데 윤치호 작사설이 11대2로 우위를 차지했다. 혜문 스님은 “다양한 문헌·구전 자료를 볼 때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다”면서 “애국가 원본은 국가 중요 기록물이므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위해 반드시 한국으로 찾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에머리대는 윤치호의 유가족에게서 원본을 기증받아 도서관에 보관해 왔으며 그동안 훼손을 우려해 한국인 방문객에게 사본만 열람하게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가인 선생의 ‘법 정신’ 추모

    가인 선생의 ‘법 정신’ 추모

    대법원은 13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 50주기를 맞아 추념식을 가졌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황찬현 감사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 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김병로 선생 유족 등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김병로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의열단 사건 등에서 독립운동가를 위해 무료 변론을 펼치고 해방 후에는 사법부장(현 법무부 장관)과 초대 대법원장을 맡아 사법부 기틀을 세웠다. 또 이승만 정권 시절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면서 3권 분립 원칙을 제도화하는 등 법조계에선 가장 존경받는 인사 중 한명으로 꼽힌다. 양 대법원장은 추념식에서 “사법부는 이 나라 전체를 수호하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던 가인 선생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면서 “사법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인 선생이 바라는 추모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김병로 선생의 손자인 김종인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유족 대표 발언에서 “나라가 잘되려면 3가지 직종이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한다”며 “학문하는 사람, 언론, 법관이 각자 역할을 해야 한다. 조부께서도 법관으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사셨다”고 강조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김장훈, 일본 비판 그렇게 하더니 결국…

    김장훈, 일본 비판 그렇게 하더니 결국…

    독도 지킴이 등 일본의 망언과 도발에 항의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여온 가수 김장훈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장훈은 지난 29일 트위터에 “아베는 일본의 재앙!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안창호 선생님 말씀이다. ‘일본은 자기 힘에 지나치는 큰 전쟁을 시작하였으니 필경 이 전쟁으로 인하여 패망한다. 아무런 곤란이 있더라도 인내하라’”라는 글을 올렸다. 김장훈은 이어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연 ‘독도 아트쇼’를 중국에서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장훈은 “2월 22일은 일본이 억지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이라며 “독도 아트쇼와 ‘위안부 역사전’을 함께 진행하려 하는데 중국 정부에서 허가가 나오면 반드시 할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옮기려 노력해왔는데 먼저 선포한다. ‘독도 아트쇼 인 상하이’, 일본 국민이 불쌍하다”라고도 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홍보대사인 김장훈은 ‘독도의 진실’(www.truthofdokdo.com)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하다. 김장훈은 2011년 독도 홍보대사로도 위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 국립묘지 안장 결정

    과거 조세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이 취소됐던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구익균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국내외에서 20여년간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다. 1929년 신의주 학생 의거를 일으킨 뒤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독립당의 한국유학생 지도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4월 8일 10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선생은 대전현충원에 모실 예정이었지만 국가보훈처가 발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안장을 취소했다. 선생이 1972년 사문서 위조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1973년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선생의 막내딸 구혜란(57)씨는 지난 5월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는 29일 “도산 안창호의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일제에 항거하다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형을 받는 등 고인의 생전 공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인이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며 안장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서울신문 STV]

    04:00 범죄예방솔루션 표적 05:00 미스터리 바디쇼크 06:00 신의 퀴즈 07:00 대박인생 08:00 STV 특별기획 지구촌 사람들 2 09:00 톰쏜(살아있는 인형) 11:00 비즈니스 스토리 11:30 프라이미벌 12:30 사라진 가족 13:30 미스터리 바디쇼크 14:30 창업파라다이스 15:00 STV 특별기획 도산 안창호 16:00 특수사건 전담반 TEN 17:00 블루오션을 잡아라 18:30 제 3병원 19:30 사라진 가족 20:30 사이킥 커넥션 21:00 신의 퀴즈 22:00 범죄예방 솔루션 표적 23:00 톰쏜(살아있는 인형) 24:00 대박인생 01:00 STV 특별기획 지구촌 사람들 02:00 사라진 가족 03:00 쇼킹동영상 비주얼서스펙트
  •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RO·진보당 동일시 여부가 핵심…재판관 9명 중 6명 찬성땐 해산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RO·진보당 동일시 여부가 핵심…재판관 9명 중 6명 찬성땐 해산

    정부가 5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심판을 청구하면서 진보당의 존폐와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된다. 앞으로 법정공방 과정에서는 혁명조직(RO)과 진보당을 동일시할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정부와 진보당 측의 구두변론과 제출 자료 등을 토대로 진보당의 강령과 활동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 등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리하게 된다. 법무부는 민족해방(NL) 계열 위주인 진보당의 인적구성, RO 내란음모 사건과 같은 활동 등을 근거로 진보당을 민주적 자유질서를 위반한 ‘종북정당’으로 보고, 변호인단 구성 및 입증자료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진보당은 심리과정에서 법무부가 제시한 강령 등은 이미 공개된 내용인 점, RO가 곧 진보당이라는 주장의 증거와 정황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 해산 청구 심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이석기 진보당 의원에 대한 수원지법의 1심 재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법무부가 이 의원 등 RO와 진보당이 연관돼 있다고 밝힌 만큼 RO활동이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헌재가 섣불리 해산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법은 정당 해산 여부를 180일 이내로 결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조항은 아니다. 헌재는 양측 주장에 대한 심리 이후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현행법상 정당 해산시 소속 국회의원 신분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다. 결국 헌재가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6명(비례대표 2명, 지역구 4명)에 대한 신분 박탈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학계에서도 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헌재가 2004년 발간한 ‘정당해산 심판제도에 관한 연구’ 자료집에 따르면 “정당이 해산되더라도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대표성을 상실하지 않는다”라는 견해가 중론이다. 한편 헌재 재판관 중 박한철 헌재소장과 안창호 재판관은 검찰 공안통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은 판사 출신으로 모두 2011년 이후 임명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도산 안창호 ‘옥중 공예품’ 80년 만에 공개

    도산 안창호 ‘옥중 공예품’ 80년 만에 공개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수감생활 중 직접 만든 공예품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흥사단은 4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산 선생이 1930년대 만든 지승공예품 총 11점을 공개했다. 지승공예란 좁고 길게 자른 한지를 손으로 꼬아 노끈처럼 만든 뒤 다시 엮어서 만드는 공예기법을 말한다. 이번에 공개된 공예품은 크기가 다른 발우(鉢盂) 10개가 한 세트로 묶인 바리때와 바구니 1개로, 지승공예 기법에 옻칠을 더해 견고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1932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이듬해 3월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도산 선생은 이후 이곳에서 2년여간 지내며 기술을 배워 공예품을 만드는 노역을 했다. 도산 선생은 1935년 2월 임시출옥할 때 형무소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던 조선인 간수장에게 감사의 뜻으로 자신이 만든 공예품을 전달했다. 이후 간수장의 유족들이 공예품을 소장해오다 최근 흥사단에 기증했으며, 전문가 감정을 통해 진품으로 확인됐다. 도산 선생의 작품들은 7일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도산 탄생 135주년 기념 ‘도산의 밤’ 행사에서 공개된 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내 도산기념관 전시실에서 11일부터 상설전시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