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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뤼순감옥서 첫 안중근추모제

    │다롄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상연기자│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옛 일본군 감옥에서 처음으로 남북 공동 추모행사가 열린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북한의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언)와 공동으로 26일 뤼순 감옥에서 공동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 참석자는 남측에서 함 이사장을 포함해 90여명, 북측에서 장 위원장 등 10여명이다. 남북은 지난해 안 의사 의거 100주년 때 개성에서 공동행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순국 현장에서 공동행사를 거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단체들은 현지 추모식 외에 다롄에서 안 의사의 평화정신 계승 등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기념사업회의 윤원일 사무총장은 “남북 공동 유해발굴 및 안 의사를 매개로 한 청소년교류 등에 대한 원칙적 의견접근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5일 현재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허가가 나오지 않아 현지에서의 추모행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위원장 박진 의원) 소속 여야 의원 5명과 동북아역사재단 소속 학자들로 구성된 50여명의 추모단도 26일 뤼순감옥에서 추모식을 여는 등 다롄과 뤼순, 그리고 의거 현장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현지는 안 의사 추모 물결에 휩싸였다. 특히 중국 중앙정부는 통외통위 대표단의 모든 추모 행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승인을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의거 현장인 하얼빈역을 찾은 대표단을 위해 안내문을 내걸고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했다. 광복회 회원과 안 의사 증손자인 토니안(46·한국명 안보영)씨 등은 앞서 24일 뤼순 감옥을 방문, 추모행사를 열었다. 한편 정부가 최근 외교채널을 통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에 협조해줄 것을 일본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뒤 오찬 석상에서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에게 ‘안 의사 유해발굴에 협조해달라.’고 비공식적인 요청을 했고, 이후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中감옥서 치마 풀어 만든 태극기 간직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中감옥서 치마 풀어 만든 태극기 간직

    │하얼빈 박홍환특파원│“일본은 안씨 가문의 원수, 조선의 원수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사흘 앞둔 23일 거사 장소인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서 만난 5촌 조카며느리 안노길(96) 할머니는 연신 태극기와 안 의사 관련 자료들을 어루만지며 어눌한 우리 말로 “일본, 원수, 안씨 가문….” 등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할머니는 17살에 안 의사의 사촌동생인 홍근씨의 3남 무생씨와 결혼했지만 일제에 의해 남편이 숨진 뒤 원래 차씨였던 성을 안씨로 바꾸고 ‘안 의사 알리기’에 매달린 채 여태 혼자 살아왔다. 특히 중국 건국 이후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 종교(가톨릭) 문제로 중국 당국에 의해 반혁명죄로 체포돼 1998년 석방될 때까지 감옥과 교화소에서 외부와 단절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얼마나 시달렸던지 2000년 처음으로 할머니를 만나 지금까지 현지에서 보살피고 있는 최선옥(72· 전 성모자애병원 원장) 수녀는 “차마 못볼 꼴이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세상과의 단절도 할머니의 고국사랑과 안씨 가문에 대한 열정은 식혀놓지 못했다. 감옥 안에서 치마 실오라기를 풀어 만든 태극기를 속옷 속에 수십년간 감춰 보관해올 정도로 할머니의 애국심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치매 때문에 정신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지금도 안 의사 관련 자료만큼은 손수 챙기고 있다. 안 의사 유해 문제를 꺼내자 할머니는 “일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의 유해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안 의사 후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멀리 고국 땅에서 찾아온 방문객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지난해 방문객들이 용돈으로 쓰라며 쥐여준 돈 5000위안을 최 수녀를 통해 하얼빈의 안 의사 기념사업 일꾼들에게 기탁하기도 했다. 최 수녀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안중근’은 할머니의 100년 삶 그 자체인 셈이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후 중국대륙이 열광 安의사는 벗같은 존재”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후 중국대륙이 열광 安의사는 벗같은 존재”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국 쑹청여우(宋成有) 베이징대역사학과 교수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2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동양포럼’에 참석, 특별 강연을 한다. 또 산자부장관을 지낸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안중근의 동양평화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행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운동’의 배경이 된 국채보상운동 발상지가 대구라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25일 미리 배포된 강연내용에서 쑹청여우 교수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국 전체를 감동시키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안중근 의사만한 사람은 없다.”면서 근대 중국은 다음과 같이 세 차례에 걸쳐 안중근 의사에 열광했다고 강조했다. # 첫번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소식은 중국 대륙 각계 인사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줬다. 1914년 박은식 선생이 쓴 ‘안중근전’은 대륙에 추모열기를 더했다. # 두번째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던 즈음에 삼천리강산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두 달 뒤 5·4애국운동이 폭발해 항일정신이 고조됐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중국)전국을 돌며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 ‘안중근-망국한’을 올렸다. # 세번째 항일전쟁기간이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은 동삼성을 침략, 점령했다. 그리고 1937년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해왔다. 국공합작이 체결됐고 광복군, 조선의용대 등도 항일전쟁에 동참했다. 안중근 연극을 올렸고 1944년 후난성의 명사인 쩡위안이 ‘안중근’을 썼다. 쑹청여우 교수는 이와 함께 “중국인에게 안중근 의사는 어려움을 함께 겪은 벗과 같은 존재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면서 1992년 한·중 국교체결 이후 안중근 연구는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도 비중있게 언급했다. 한편 와다 하루키 교수는 안중근 의사 입장에서 일본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보수사관을 비판했으며,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회장은 “안 의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민 주도로 일어나고 시민대표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것을 동양 전체로 확대해 새로운 시민층의 대표로 구성되는 동양평화회의를 구상했다.” 고 밝혔다. 김문부국장·박록삼기자 km@seoul.co.kr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 [이기웅 응칠교 편지]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이기웅 응칠교 편지]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오늘은 안중근이라는 한 젊은 인간 혼(魂)이 나라를 위해 몸바쳐 순국하신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여 파주의 출판도시에서는 ‘응칠교를 아시나요’라는 이름의 다리밟기 행사를 엽니다. 10년 전 이 도시의 중심에 축조되었던 응칠교(應七橋)가 파주시와 이곳 출판인들에 의해 다시 새롭게 다듬어져 오늘 여러분 앞에 선보입니다. 설계자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건축가인 승효상씨로서, 그는 “교량의 기본적인 설계원칙에 충실한 디자인을 했다. 가로등 열두 개를 추가하여 ‘잇는’ 기능의 효과를 강조하고, 이 도시로 들어오는 이들을 환영하며 불 밝히는 풍경은 이 교량의 장소적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역사 앞에 크게 외치고 순국하신 안응칠이라고 하는 안중근을 추념하는 오늘, 그 상징물로서 이 다리를 우리 앞에 우뚝 서게 하려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이날 아침 10시는 그분이 순국하신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우리 모두 이곳에 모여 묵도(默禱)한 다음 다리밟기 행사를 하게 되는데, 많은 분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에 따라 10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국민된 사람, 아니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은 오늘 이곳 응칠교에 와 답교(踏橋)하거나 다리의 난간을 어루만지면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평화주의자 안응칠 님을 추념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이 다리는 영원한 기념물로서, 명소로서 항상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어른을 모시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이끌고 이곳 응칠교를 밟고 건넌 다음, 책의 도시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책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3월26일 하루는 온 가족이 이곳 응칠교를 찾아 안응칠이라고도 부르는 안중근을 추념하고는, 이곳 책의 도시의 정신을 체험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책을 통해 우리의 문화 또는 세계의 문화를 즐기면서 호흡하는 의미 있는 ‘가족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의 뜻입니다. 이 다리의 머리판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으리라.(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안 의사의 그 유명한 유묵 글씨가 새겨져, 출판도시에 세워진 안중근 동상과 더불어 아름다운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떨어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이어져야 할 두 지점을 이어 주는 ‘다리’라는 이 필수(必須)의 사물을 두고 인류는 예로부터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안중근의 정신과 다리의 의미가 각별하게 일치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돼 고통받고 있는,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많은 계파와 집단들이 서로 분열돼 극도로 힘든 현실이 우리 스스로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웃으로 친교해야 할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서로 가까이하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이해관계와 상처 난 감정으로 하여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얼굴도 같고 글자(漢字)도 함께 씁니다. 그리고 독특한 장르인 서예는 이 세 나라만이 행하고 있는 예술입니다. 그토록 이 세 나라는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할 공동의 역사, 함께해야 할 문화공동체요, 정치 경제적으로도 공동운명의 나라인 것입니다. 안중근은 이 모든 분열과 격리와 갈라짐을 이어줄, 그만이 이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에서 응칠교의 상징성은 앞으로 크게 빛날 것입니다. 자서전 ‘안응칠의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안중근의 혼은 1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 응칠교라는 심볼로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평화와 사랑, 균형·절제·조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책마을 공동체 출판도시의 꿈은 이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퍼질 것입니다.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의사·장군’ 호칭 논란속 육군 ‘안중근 장군실’ 개관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의사·장군’ 호칭 논란속 육군 ‘안중근 장군실’ 개관

    이국땅 어딘가에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길 100년째 기다리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우리 사회가 ‘의사(義士)’와 ‘장군(將軍)’ 호칭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마지막으로 쓴 유묵 등 전시 최근 안중근 의사에 대한 호칭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순국 100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안중근 장군실’ 개관식이 열렸다. 육군은 육군본부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꾸며 한민구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김주현 독립기념관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고 ‘안중근 장군실’을 공개했다. 육군이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이름 붙인 것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안중근 의사를 군에서 ‘군인정신의 사표’, ‘군인의 표상’으로 삼아 길이 계승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장군실에는 군인의 장과 의거의 장, 충절의 장으로 구성됐다. 안 의사의 일대기와 무장투쟁활동, 하얼빈 의거 상황, 사형 집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 등이 전시됐다. ●방문객·모범장병 등 견학코스로 육군은 앞으로 안중근 장군실을 육군본부 근무 간부와 전입 장병, 방문객, 모범장병 등의 안보현장 견학일정에 넣어 개방할 예정이다. 한 총장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포살한 것이니, 육전 포로에 관한 만국공법에 의해 전쟁포로로서 대우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한 안중근 의사를 군인정신의 사표, 군인의 표상으로 길이 계승하기 위해 안중근 장군실로 명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관식 직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계룡대 대강당에서 육본 간부 700여명을 대상으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 명예교수는 “안 의사가 소속된 대한의군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주권 수호를 위한 민족적 저항의 효시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면서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은 국가적 공인성을 가지는 조직이기 때문에 안 의사가 이끈 특파대의 하얼빈 거사는 대첩이라고 부를 만한 큰 전과였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희망119(KBS1 오전 10시55분) 싱싱한 봄기운의 열정을 지닌 총각들이 모인 이곳은 다양한 농수산물을 파는, ‘총각네 야채가게’다. ‘㈜자연의 모든 것’에서 대표 브랜드 ‘총각네 야채가게’를 이끌 패기 있는 판매사원을 모집한다. 꿈을 향해서라면 험난한 과정도 무릅쓰겠다는 최후 4명의 구직자들. 행복 마케팅의 주인공이 될 멋진 총각은 누가 될까. ●다줄거야(KBS2 오전 9시20분) 말년은 남주에게 “순철을 죽인 너를 차씨 집안의 호적에서 빼겠다.”하고, 남주는 처절하게 용서를 구하지만 말년은 모질게 밀어낸다. 한편 영희는 보영과 미국에 가겠다는 결심을 용심에게 말한다. 영희의 결혼이 깨진 것에 대한 의혹을 가진 강호는 선수로부터 영희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듣게 되는데….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45분) 옥숙은 친구로부터 지원이 남자랑 극장 데이트하는 걸 봤다는 얘길 들은 이후로, 만나는 남자가 없다는 지원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지원이 만나는 남자가 성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옥숙은 스턴트맨이라 빠르고 날렵한 성수에게 지원의 미행을 부탁한다. 하룡은 15년 만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큐브(SBS 오후 8시50분) 안중근 의사 순직 100년. ‘큐브’ 제작진이 그를 열렬히 추모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다. 다섯 살 하늘이는 국내에 세 명밖에 없다는 ‘장관상피 형성이상증’ 환자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하늘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함께한다. 또 촉망받던 여자 기수, 박진희씨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힌다. ●명의(EBS 오후 9시50분) 별안간 찾아온 어지럼증. 눈앞 세상이 돌기 시작하면 몸을 가눌 수 없어지는, 벗어나고픈 이 공포의 순간을 경험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빈혈일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처방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반복된다면 귓속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원상 교수를 만나 어지럼증의 숨은 원인과 치료법을 들어 본다. ●시사토론 우리시대(OBS 밤 12시10분) 사법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의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법제도 개혁과 관련해 전문가와 함께 집중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에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헌법학 교수, 한상훈 연세대 법대 교수, 김현성 변호사(시변), 박주민 변호사(민변)가 참여한다.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다롄 박홍환특파원│100년 전 ‘그날’도 이렇게 발해만의 바닷바람은 매섭게 살을 엘 정도로 세게 불어제쳤을까?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은 3월의 막바지에도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마지막까지 안 의사는 ‘고국의 봄’을 그리워하며 찬바람이 뼈를 에는 이국 땅의 감옥에서 의연하게 최후를 맞았다. 사형집행 직전 그는 이렇게 소원했다.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의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 땅으로 옮겨다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안 의사 압송 길을 따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서 밤 기차를 타고 창춘(長春), 선양(瀋陽), 다롄을 거쳐 24일 오전 도착한 뤼순의 옛 일본군 감옥은 일본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항일 교육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4m 높이의 담장이 700여m에 걸쳐 둘러쳐져 있는 수감시설 면적은 약 2만 6000㎡. 러·일전쟁 승리로 감옥을 포함, 뤼순 전체를 획득한 일본은 패망할 때까지 이곳을 주요 반일 정치범 수용시설로 활용했다. 안 의사와 이회영 선생을 비롯해 무수하게 많은 항일 열사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의 묘지가 항일운동의 성지로 활용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일제는 유해를 유족하게 인도하길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담장 밖은 상당히 개발돼 있었다. 2008년 3~4월, 29일간 한국 단독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던 곳은 이미 수십층짜리 고층 아파트 여러 동이 들어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옆 뤼순감옥 정북 방향 야산도 개발을 위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만약 이곳에 유해가 있었다 해도 이미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담장 바로 뒤에는 항만 하역시설에 쓰이는 철골 구조물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고, 잇대어 있는 공터에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시숙소가 세워졌다. 공장 직원 등은 안 의사 유해에 대해 무신경하게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우리 측 일부 인사들이 뤼순감옥 동쪽 500여m 지점을 유해 매장 장소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이미 저층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유해를 찾기는 어려워보였다. 우리 정부가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한·중·일 3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현실적 여건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해야 그나마 발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측 사정에 밝은 한 현지 인사는 “이미 1960~70년대에 중국과 북한이 여러차례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찾지 못했다.”며 “중국 측은 오래 전에 (유해 발굴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 발굴을 둘러싸고 ‘내분’이 벌어지는 꼴사나운 광경도 펼쳐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조차 어느 쪽의 유해 관련 정보도 믿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안 의사 추모를 위해 뤼순감옥을 찾은 한 인사는 “이런 모습을 안 의사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100주기를 계기로 안 의사의 정신을 우리 가슴에 묻는 것으로 유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의사는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안중근의사 유해발굴 외교의제화

    정부가 오는 5월 초쯤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을 공식 의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민·관 합동으로 ‘합동유해발굴 추진단’도 구성키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안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이다. 정부 당국자는 24일 “그동안 일본, 중국을 상대로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과 관련한 자료제공을 요청해 왔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올해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식 의제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순조로운 논의가 이뤄질 경우 5월 말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유해를 고국에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들고 유해 발굴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합동유해발굴추진단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보훈처 당국자를 단장으로 외교통상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와 역사학자, 독립기념관 관계자 등 10여명으로 이달 말까지 구성되며 다음달부터 활동에 들어간다. 이들은 앞으로 안 의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뤼순(旅順) 감옥 일대에서 재발굴 작업을 펼치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이 소장한 안 의사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보훈처는 2006년 6월 남북이 공동 유해조사단을 중국 다롄(大連)에 파견해 뤼순 감옥 북서쪽 야산을 유해 매장 추정지로 확정하고 2008년 3~4월 남측 단독으로 29일간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안 의사 유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EBS는 안중근 순국 100년 기념일인 26일 오후 11시10분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 순국 백년-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방송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안 의사 유해 찾기에 나선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예상 매립지를 직접 찾아가 안 의사 유해의 존재 가능성을 찾아본다.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10년 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31세의 삶을 마감한다. 이후 그의 시신은 침관(시신을 눕힐 수 있는 관)에 모셔져 뤼순 감옥 죄인묘지 어느 곳엔가 매장된다. 죽기 직전 그는 동생들에게 자신을 꼭 고국 땅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한다. 하지만 안 의사 묘역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 당국에 의해 은밀하게 처리된 유해는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해 매장지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사형 당일 보고서에 적힌 ‘뤼순 매장’이라는 기록 뿐이다. 제작진은 안 의사의 유해발굴에 관심이 있는 김영광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이 안 의사 묘지 참배자 두 명의 증언에 따라 유해 매장지로 추정한 북위 38도49분27초, 동경 121도16분2초 지역을 찾아간다. 이곳은 뤼순 감옥 동쪽 500m 지점이다. 제작진은 “오카야마 소학교를 다닌 신현만(1933년생으로 추정)씨와 현재 66세인 L씨가 16년의 차를 두고 안 의사의 묘역을 참배한 목격담을 들려줬는데, 그들 기억 속 묘역의 위치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 의사의 의거를 도운 유동하 열사의 조카인 김파씨가 그린 안 의사의 묘역 약도가 있는데, 이 약도 속 묘역 위치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것. 제작진은 “이들이 지목한 지역에는 ‘죄인묘역’이라는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묘역”이라며 “모든 증언자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그 장소는 현재 아파트 공사 지역 바로 인근이다. 언제 어떻게 공사로 파헤쳐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연출을 맡은 안태근 PD는 “취재를 통해 안 의사 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서 “프로그램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기원하며, 국민적 관심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사상과 유사하지만 진일보한 것으로, 현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 가까운 구상이었다는 주장이 일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24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을 통해 “안 의사가 유교와 기독교(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교도들처럼 부정한 명령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군주제를 수립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칸트의 국가론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었으며, 이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의사 평화회의는 EU에 가까운 구상” 안 의사의 구상은 뤼순을 한·중·일 3국의 군항으로 삼고, 이곳에 ‘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것으로, ‘평화회의’가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軍團)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이는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 전쟁을 방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세계정부’를 추구하지 않은 칸트의 사상과 비교될 수 있다고 사사가와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평화회의’는 군사·재정적 권한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EU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이 구상이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기 위해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주최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 사법관할이나 심리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한·중 학자들의 주장도 발표됐다. ●“안중근 재판 불법적으로 이뤄져”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와 두원중(杜文忠) 중국 서남민족대 교수는 공동논문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 및 그에 대한 검토’에서 “안중근 저격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난 만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법정이나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했는데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며 “사법관할상 합법적이지 않은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 의사의 저격은 군인이 전투 중에 적의 수뇌를 사살한 것이지 사사로운 살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정원 국민대 교수도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 형법을 적용한 안 의사의 재판은 1905년 2차 한일협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은 일본에 단지 외교권을 넘긴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민병과 의용병 등의 교전자격을 인정한 1907년 헤이그협약에 따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 의사가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종교·학술플러스]

    ‘원불교 문화대상’ 제정 원불교는 원불교 문화예술 발전과 언론출판홍보분야에 공적이 있는 개인 및 단체에 시상을 하기 위해 ‘원불교문화대상’을 제정한다. 문화예술, 언론출판홍보 두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며 총상금 1000만원 규모다. 새달 15일까지 추천을 받으며 시상식은 같은 달 28일에 열린다. (02)813-2203. ‘안중근 재판’ 학술대회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를 24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연다.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통해 안중근 재판이 사법관할상이나 심리과정상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학·서학 만남’ 학술회 동학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907호 대회의실에서 연다. 동학 창도 15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서양의 사상과 동학을 비교해 동학적 사유의 특성을 밝히고 동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군이 안중근 의사의 호칭을 ‘장군’으로 공식화하기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안 의사 의거 이후 100년 동안 의사(義士)로 불렸던 호칭을 장군(將軍)으로 바꾸자는 사회 일각의 주장과 맞물려 논란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23일 “안 의사가 군인임을 강조한 바 있고 그분의 정신을 군 정신의 기본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키로 했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자신을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데다 ‘국가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쓴 바가 있기 때문에 군 입장에서는 장군으로 칭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앞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등 일부 관련 단체들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일계급특진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안중근 법정’에서 안 의사 스스로 밝힌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을 복원하고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으로 일계급 특진시키기 위한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18일까지 벌인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50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의사 호칭은 민족 내부의 존칭에 해당되고, 장군은 국제적인 용어”라며 “장군 호칭을 사용할 경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거의 고종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는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안중근하얼빈학회 공동회장도 “‘의사’라면 의거를 혼자 한 걸로 돼 버리며 이는 일제가 법정에서 안중근을 단독 살인범으로 몰아간 의도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역사적 용어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그에게 ‘의사’ 칭호를 처음 부여한 것은 1910년 3월 초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의사 칭호를 곧바로 부여하지 못하고 5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그를 의사로 부른 역사적 절박함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 칭호를 부여한 것 자체가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인 동시에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확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연구원은 또 “안 의사가 최후 진술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국제법에 비춰볼 때 합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게릴라는 국제법상 인정 받기 때문에 군인 신분을 내세운 것”이라며 “교육자, 사상가 등 안 의사의 여러 면 중 일부분인 군인 신분을 전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군이 안중근 의사의 호칭을 ‘장군’으로 공식화하기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안 의사 의거 이후 100년 동안 의사(義士)로 불렸던 호칭을 장군(將軍)으로 바꾸자는 사회 일각의 주장과 맞물려 논란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23일 “안 의사가 군임임을 강조한 바 있고 그분의 정신을 군 정신의 기본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키로 했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자신을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데다 ‘국가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쓴 바가 있기 때문에 군 입장에서는 장군으로 칭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앞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등 일부 관련 단체들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일계급특진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안중근 법정’에서 안 의사 스스로 밝힌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을 복원하고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으로 일계급 특진시키기 위한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18일까지 벌인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50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의사 호칭은 민족 내부의 존칭에 해당되고, 장군은 국제적인 용어”라며 “장군 호칭을 사용할 경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거의 고종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는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안중근하얼빈학회 공동회장도 “‘의사’라면 의거를 혼자 한 걸로 돼 버리며 이는 일제가 법정에서 안중근을 단독 살인범으로 몰아간 의도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역사적 용어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그에게 ‘의사’ 칭호를 처음 부여한 것은 1910년 3월 초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의사 칭호를 곧바로 부여하지 못하고 5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그를 의사로 부른 역사적 절박함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 칭호를 부여한 것 자체가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인 동시에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확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연구원은 또 “안 의사가 최후 진술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국제법에 비춰볼 때 합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게릴라는 국제법상 인정 받기 때문에 군인 신분을 내세운 것”이라며 “교육자, 사상가 등 안 의사의 여러 면 중 일부분인 군인 신분을 전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종교·학술플러스]

    ‘원불교 문화대상’ 제정 원불교는 원불교 문화예술 발전과 언론출판홍보분야에 공적이 있는 개인 및 단체에 시상을 하기 위해 ‘원불교문화대상’을 제정한다. 문화예술, 언론출판홍보 두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며 총상금 1000만원 규모다. 새달 15일까지 추천을 받으며 시상식은 같은 달 28일에 열린다. (02)813-2203. ‘안중근 재판’ 학술대회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를 24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연다.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통해 안중근 재판이 사법관할상이나 심리과정상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학·서학 만남’ 학술회 동학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907호 대회의실에서 연다. 동학 창도 15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서양의 사상과 동학을 비교해 동학적 사유의 특성을 밝히고 동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 日 “수감 안중근 특별경계”

    日 “수감 안중근 특별경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일제가 경계를 대폭 강화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기록이 발견됐다. 일제는 수감한 안 의사 관리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보훈처는 22일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것으로, 그동안 기밀문서로 분류돼 있다가 최근 일반문서로 등급이 낮아지면서 공개됐다. 자료는 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것으로 1909년 10~12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4권’과 1910년 1~3월까지 기록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5권’이다. 5권은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 2월7일부터 14일까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해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고 했다. 이어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 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를 시켰다.”고 했다. 4권은 “감옥서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안 의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안 의사에 대한 재판과 사형 집행을 신속하게 마쳐 국제적인 비판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도 발견됐다. 이 기록은 일제가 안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1910년 2월14일부터 한 달 열흘 뒤인 3월24일 내린 집행명령으로 실제 집행은 이틀 뒤 이뤄졌다. 이 명령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썼으며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안중근), 나이(33세),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보훈처는 또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자료에 안 의사 등 228명의 독립운동가가 적혀 있었으며 이 가운데 89명은 최초로 확인된 인물이라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으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으며/박홍환 베이징특파원

    일주일 뒤인 3월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지 꼭 100년째 되는 날이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일주일만에 뤼순 감옥으로 압송돼 144일 동안 수감돼 있다가 ‘동양평화’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았다. 우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 공원의 한쪽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던 그의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한 못난 후손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이국 땅에서 구천을 헤매고 있을 안 의사 혼령은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비록 사형집행으로 완성은 못 했지만 그의 구상이 오롯이 담긴 ‘동양평화론’을 남겼다.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체 구성,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이 핵심이다. 공교롭게도 100년이 지난 지금 한·중·일 3국 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3국 정상회의가 정례화됐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시작됐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회의체와 유사한 ‘동아시아 공동체’ 어젠다도 이미 제안된 상태다. 안 의사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베이징에서 업무를 본 뒤 도쿄의 저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3국 간 관계는 지난 100년 이래 최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한 현안들이 적지 않다. 한·일 및 한·중 간의 역사인식 문제, 한·일 및 중·일 간의 영토 문제, 청산되지 않은 전후 보상 문제….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에도 인색한 것이 지금의 3국 관계이다. 지난해 안 의사 거사 100주년 취재를 위해 하얼빈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한·중 공동세미나가 열렸지만 정작 주인공인 안 의사의 이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중대사는 약식으로 열린 기념식 행사에도 참석조차 못 했다. 안 의사가 ‘동아시아 공동의 적’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역 제1플랫폼에는 암호 같은 세모와 네모 표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뤼순의 여행책자에는 안 의사가 수감됐던 뤼순감옥에 대해 “1909년 10월26일, 조선의 애국지사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일본 군국주의 두목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같은 해 11월1일 뤼순감옥에 투옥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중국인들 조차 ‘아시아 제일의 의협’으로 안 의사를 칭송했다. 순국 100주년을 맞아 민간단체와 국회의원들이 하얼빈과 뤼순 현지를 찾아 추모식을 거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했으니 현지에서 추모식을 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남북 민간단체 공동 추모식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를 추모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처지도 아니다. 게다가 안 의사는 중국인들에게도 뚜렷하게 각인된 항일투쟁열사 아닌가.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은 당시 일본의 관할하에 있었던 곳이다. 중국의 수많은 항일투쟁열사가 안 의사와 마찬가지로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일본은 관동군 사령부를 뤼순에 설치한 뒤 중국 침략을 자행했다. 중국으로서도 근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이다. 그런 점에서 안 의사 순국 100주기가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 의사가 브라우닝 권총으로 날려 버리려 했던 침략과 반목의 역사를 100년 만에 끝장내고, 동북아 평화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안 의사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안 의사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나의 전쟁이 헛되지 않았구나.” 대국적인 차원에서 오는 26일 현지에서 열릴 추모식에 대한 중국 측의 배려와 참여를 기대해 본다. stinger@seoul.co.kr
  • [서울플러스]

    ●석관동 일대에 자전거 전용도로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지하철 1호선 석계역과 신이문역 사이 석관동 42-3 일대 석관지하보차도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된다. 이달 중 공사에 착수해 9월 말 준공 예정이다. 폭 2.6∼3.5m, 길이 310m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들어서면 석관동에서 지하보차도를 지나 중랑천으로 접근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교통행정과 920-3935.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음악회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오는 26일 구청 지하대강당에서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금요음악회가 개최된다. 이번 금요음악회에는 정월태 백석대 교수의 지휘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영웅’을 비롯해 로시니의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 테마와 변주’ 등 귀에 익은 친숙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다. 문화체육과 2094-1833.
  • 천주교 100년만에 도마 안중근 품다

    천주교 100년만에 도마 안중근 품다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였다. 이토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그는 성호를 그으며 감사 기도를 올렸고, 뤼순 감옥에서 형장으로 나아갈 때도 기도를 잊지 않았다. 그는 18살에 영세를 받은 이후 마지막까지 신앙을 놓지 않은 신실한 천주교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천주교는 그를 적극 품지 않았다. 십계명의 하나인 ‘살인죄’를 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조선교구장인 뮈텔(1854~1933) 주교는 사형을 앞두고 마지막 성사를 원한 안 의사의 요청을 거부했다. 심지어 명령을 어기고 안 의사에게 성사를 베푼 빌렘 신부에게 미사 집전 금지 조치를 내렸다. ●공식미사 외면한 천주교 왜? 그런 천주교가 안 의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해 그의 순국 100주기를 맞아 처음 공식 추모미사를 여는 것이다. 집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맡았다. 그동안 소규모 미사는 있었으나 교구 차원에서 대규모 추모미사를 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안 의사의 기독교 정신과 세계평화 정신을 기리는 각종 추모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순국 100주년 미사는 안 의사의 순국일인 오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봉헌된다. 이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천주교인으로서의 안 의사를 다시 알리고, 동양은 물론 세계 평화를 꿈꾼 숭고한 정신과 신앙을 기릴 예정이다. 그렇다고 천주교가 안 의사를 공식 복권한 것은 아니다. 살인했다는 이유로 공식 파문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파문이 없으니 복권도 있을 리 없다. 대신 한국 천주교는 1993년 김수환(2009년 선종) 추기경이 “일제 치하 교회가 안 의사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러 과오를 범한 데 연대 책임을 느낀다.”고 한 것을 상징적인 복권으로 여기고 이후 추모 행사를 조금씩 개최하고 있다. ●10월 평양서 남북공동 추모행사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25~27일 뤼순 일대 안 의사 관련 유적지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남북한 공동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남측 기념사업회에서 100명,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언 북한적십자 총재)에서 30명가량이 참석해 공동 미사를 보고 유적지 탐방, 안 의사 평화정신 계승·실천 방안 토론회 등을 이어간다. 윤원태 기념사업회 실장은 “안 의사는 남북 공동으로 추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립투사”라면서 “오는 10월 의거 기념 행사를 평양에서 공동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회는 홈페이지(www.greatkorean.org)를 통해 사이버 추모 전시관도 운영한다. 천주교평신도 모임인 ‘직암선교후원회’는 뤼순 감옥 인근의 중국 다롄한인성당, 일본 오타시 성당 신자들과 함께 한·중·일 신자가 참여하는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수의 생애를 묵상하며 드리는 묵상기도는 ‘주님의 기도’ 한 번, ‘성모송’ 열 번, ‘영광송’ 한 번을 1단으로 삼는다. 지난해 10월26일 시작한 봉헌운동은 이달 4일 현재 목표치를 훨씬 넘어 154만 7408단이 누적됐다. 후원회는 인터넷카페(cafe.daum.net/jigammissions)에서 댓글 형식으로 기도를 취합하고 있다. 안 의사 신앙과 사상 현대화를 주제로 한 원고와 서평도 모집 중이다. 대안공동체의 하나인 천주교 예수살이공동체(대표 박기호 신부)는 23~27일 닷새간 ‘안중근 순국 100주년 기념 순례’를 진행한다. 안 의사 유적지를 돌아보고 추모 미사에도 참석한다. ●기독교·불교 “천주교 신자인데…” 원불교도 지난 11일 전남 함평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 청사 복원터에서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특별 천도재’를 올렸다. 행사를 진행한 정광일 청년아카데미 대표는 “안 의사와 원불교는 직접적 인연이 없으나 100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범국민운동 차원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26일 복원터에서 안 의사 추도식 및 동상 제막식도 연다. 반면 기독교나 불교계는 안 의사 100주기와 관련해 이렇다 할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라는 점이 소극적 행보의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삼각산 애국지사묘역 국립성지로

    올해는 한일 강제합병이라는 치욕을 겪은 지 10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강북구가 이런 뜻깊은 해를 맞아 삼각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애국지사 묘역 성역화사업에 나서 주목받고 있다. 24일 구에 따르면 국립묘지화 사업은 단순한 묘역 단장이 아닌 순례코스 조성, 역사문화관, 산악박물관, 민속박물관, 청소년 유스호스텔 등 강북구의 삼각산문화관광 프로젝트와 연계한 다양한 사업으로 스토리텔링을 갖춘 역사문화성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삼각산 애국지사 묘역엔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어 순국한 이준 열사를 비롯해 손병희, 여운형, 이시영, 김창숙, 광복군 합동묘 등 16기의 독립유공자 묘역과 안중근 의사의 장녀인 안현생, 오상순, 이용문 등 건국 문화 예술인 묘역 5기가 모여 있는 역사적 장소다. 구는 2002년부터 묘소를 정비하는 등 성역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삼각산 애국지사묘역 성역화사업 범구민추진위원회(위원장 박영식 전 교육부 장관)에서도 국립화 서명운동과 시민탐방프로그램 운영, 사적 지정 추진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구는 지난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통일교육원~솔밭공원 3.4km의 순례길을 조성한 데 이어 올해 10억원을 들여 조병옥선생 묘역~통일교육원 4km와 솔밭공원~손병희선생 묘역 2.2km 구간의 순례길을 추가로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우이령길까지 순례코스를 연장하고 통일교육원, 여해기념관, 국립4·19민주묘지, 화계사, 봉황각 등 주변 명소와 연결해 역사 문화 탐방로를 개발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애국지사 묘역 주변에 역사 문화관을 건립하고 묘역 전체에 대한 국가 사적(史蹟) 지정을 추진, 성역화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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