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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뮤지컬 ‘영웅’ 관람

    MB, 뮤지컬 ‘영웅’ 관람

    이명박(얼굴) 대통령이 주말인 지난 8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뮤지컬 ‘영웅’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정진석 정무수석, 홍상표 홍보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과 함께 8일 오후 3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찾았다. 수행 인원을 최소화해 관람객들은 이 대통령 내외가 극장을 찾은 것을 거의 몰랐을 정도였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대형 창작 뮤지컬로, 이 대통령은 관람 후 제작 및 출연진을 잠시 만나 꽃다발을 건네며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과 참모진은 공연이 끝난 뒤 인근 장충동 족발집을 들러 족발과 막국수에 막걸리를 곁들여 저녁을 함께 했다. 한편 정진석 수석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대통령 내외와 뮤지컬을 관람한 사실을 알리며 “‘안중근의 단지’로 시작해 교수형을 당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2시간 40분 동안 윤호진 감독의 탁월한 무대 연출이 돋보인 명품 공연이었다.”고 평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보도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뮤지컬 삼총사 30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 17세기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궁정의 총사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세 사람의 모험을 그린 작품. 달타냥 역에 원년 멤버인 엄기준 외에 ‘슈퍼주니어’의 규현, 그룹 ‘트랙스’의 제이, 뮤지컬 배우 김무열 등 ‘젊은피’를 대거 수혈했다. 4만~12만원. 1544-1555. ●연극 이기동 체육관 2월 26일까지 서울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각자 다른 이유로 복싱 체육관을 찾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다양하고 소소한 삶의 모습과 도전 정신, 희망을 그려낸다. 김수로가 어느 날 갑자기 권투에 빠진 엉뚱한 청년 이기동을 연기하며, 가수 솔비도 당돌한 여고생 탁지선 역을 맡아 연극 무대에 처음으로 데뷔한다. 4만 4000~5만 5000원. 1588-1555. ●뮤지컬 영웅 1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그려낸 국내 창작 뮤지컬. 2009년 초연 때 열연했던 정성화를 비롯해 TV 드라마와 무대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신성록, ‘오페라의 유령’으로 얼굴을 알린 양준모가 3인 3색의 안중근을 선보인다. 4만~11만원. (02)2250-5900.
  • [황진선 칼럼]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

    [황진선 칼럼]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당한 전쟁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독립전쟁,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왜군 섬멸이 그렇다. 11·23 연평도 포격 이후, 정당한 자위권 행사의 범주를 넘어 전면전이라도 불사해야 한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을 미친 개에 비유하며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거나 100배, 1000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물론 분하고 억울해서, 때로는 전술·전략 차원에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한반도 전쟁의 단초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민심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즉각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분노했다. 3·26 천안함 폭침에 이어 그저 당하기만 하는 안일한 군과 정부에 불신을 쏟아냈다. 그런 민심을 읽은 정치인이 한나라당의 홍사덕 의원이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확전하지 말고 상황을 잘 관리하라’고 말씀하도록 오도한 청와대와 정부 내 ×자식들을 이참에 청소해야 한다.”고 욕설을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우왕좌왕했던 정치권도 일제히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같은 정서를 의식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담화를 통해 “앞으로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심은 결기 있는 즉각 대응을 주문한 것이지 확전을 주문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붉은색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는 ‘좌빨’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는 한국전쟁의 정신적 상흔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전쟁 3년 동안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민간인 100만명을 포함해 200만명이 넘는다. 이산가족도 2000만명 이상 발생했다. 그 비참한 죽음과 폭력, 굶주림과 이별의 상흔은 아직도 뱀이 똬리를 틀듯 우리의 의식 저변에 살아 있다. 올해가 60주년이지만 우리의 집단 상처와 기억들은 앞으로도 수십년 이상 두려움으로 남을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불과 며칠 만에 한국전쟁 이상의 인명살상과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피해가 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휴전선 근처에 1만여문의 각종 포를 배치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수도권까지 포탄을 보낼 수 있는 장사정포가 400문에 이른다고 한다. 군 당국은 장사정포로 도발해 오면 즉각 상당부분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와 금융시장 붕괴, 국가신용등급 하락, 외국인 이탈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미그기까지 가세한다면 상상하기도 끔직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북한의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현재 서해 5도의 요새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병대를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하고, 해병 규모를 현재의 5000명에서 2배 이상 늘리고, 서해5도사령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으로부터 교전규칙에 상관없이 도발 원점을 전투기와 함포로 포격할 수 있는 자위권 행사도 동의 받았다고 한다. 자위권 행사는 도발 움직임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고가 나거나 무턱댄 과잉대응이 되지 않도록 상황에 따른 정교한 지침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모든 후속 조치들은 추가 도발 방지와 전쟁 억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전쟁 억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자칫 전면전을 부를 수 있다.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복구에만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북한의 도발에는 결기 있고 정당하게 맞서야 한다. 비굴하게 평화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민 불안이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전쟁이 악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전쟁은 악이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영원한 과제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전쟁은 안 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jshwang@seoul.co.kr
  • [시론]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바로세우기/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시론]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바로세우기/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지난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국제 심포지엄’에서, 안 의사의 유해가 영원히 사라진 듯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뤼순 감옥 부근에 있던 묘지가 아파트 단지 개발로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중국과 북한에서 수차 유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고, 결정적인 단서를 쥔 일본은 자료를 내놓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우리 정부도 2008년에 뒤늦은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분인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유형의 독립운동을 실행했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주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 의사는 체포되어 조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거사했으므로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로 취급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무료 자원 변호도 허가하지 않았다. 그의 순국일은 1910년 3월 26일이다. 유언 가운데 한 구절은 이렇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 ‘국권’이 회복된 지 65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시대적 비극의 주인공이 된 그 가족들도 돌보지 못했다. 그 형제와 자녀들은 이용 당하고 박해 받으며 궁핍하게 살았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경고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사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은 단순한 역사의 유물을 발굴하는 일과 그 등급이 다르다. 그것은 외세에 훼손된 민족정신을 복원하고, 그로부터 환기되는 공동체 의식과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과업에 해당한다. 미국이 무명의 미군 유해 1구를 발굴하고 인양하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를 목격한 사람이면, 국가에 목숨으로 공헌한 일개 국민을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교훈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렬한 반성이다. 독립 유공자를 기리고 유적지를 보존하는 노력이 외형적 전시(展示)의 방식이 아니라 민족혼의 계승이라는 본질에 닿도록 그 면모를 일신해야 옳다. 국민 다수가 이를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로 점검했으면 좋겠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해상지도를 모르는 선장에게 배를 맡긴 꼴이다. 다다음 세대를 위하여 국사교육을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자국의 역사를 학교 수업과 진학 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둔단 말이며, 이는 도대체 어느 누구의 발상에서 비롯되었는가. 오늘의 교육 당국은 마땅히 후세의 사필을 두려워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막는 방법도 결국은 국사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설명해도 우이독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역사의식을 망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국사수업을 안 듣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자란 세대가 안중근을, 윤봉길을, 안창호를, 그 애국정신을 알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일제와의 타협이 전제된 기미독립선언서는 가르치면서 불의한 지배자와의 전면 투쟁을 내세운 조선독립선언은 교과서에 싣지 못한 것이 우리의 과거사였다.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며 교육하는 의지는 미래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우선 과제이다. 민족의 자긍을 이끈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 과거의 교훈을 현실 속에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국가는 변화하는 세대를 넘어 올곧은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영향력이 확대되어도, 이 정신적 영역의 자기 확신과 정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선진 국가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 보훈처 “日, 안중근의사 사형집행후 파티”…알고보니 1년전 발표 ‘재탕’

    국가보훈처가 25일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새롭게 찾아냈다고 발표한 자료가 이미 언론에 공개됐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보훈처에 새로운 자료라고 확인했던 안 의사 유해 발굴 추진단의 전문위원이 1년 전 언론에 같은 자료에 대해 해설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보훈처는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하루 앞둔 이날 안 의사와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찾아냈다며 우무석 보훈처 차장까지 나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우 차장과 유해 발굴 추진단의 관계자들은 “일본 관리들이 안 의사의 사형 집행 후 축하 파티를 열고 보상금을 지급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면서 일본의 만행에 대해 비난했다. 이번 자료의 발굴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단서 찾기에 한발 더 다가갔다는 평가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이 자료는 이미 1년 전 국내 방송이 광복절 특집으로 제작한 안 의사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발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는 만주지역에서 일본인이 발간한 만주 일일신문 1910년 3월 29일자 기사로 보훈처가 발표한 자료와 같은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안중근을 변호했던 변호사까지 참석한 사형 축하 연회에 이어 이들에게는 거액의 상여금도 지급됐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안중근 같은 정치범을 사형시키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사형을 시켰다는 것이 파티를 연 배경”이라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의 설명까지 보도했다. 최 원장은 올해 보훈처가 구성한 안 의사 유해 발굴 추진단에 일본 자료 전문가로 참가하고 있다. 재탕 의혹이 일자 보훈처는 자료를 통해 “최 원장이 새로운 자료라고 감수해 줬기 때문에 그대로 발표했다.”고 해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안중근의사 새 동상 완성

    안중근의사 새 동상 완성

    서울시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새로 제작, 하얼빈 의거 101주년 기념일인 26일에 맞추어 제막식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새 동상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당당하게 태극기를 꺼내 든 모습을 형상화했고, 높이는 동상만 4.5m, 기단부를 포함하면 7.35m에 달한다. 동상 위치는 남산 분수대 광장에 다시 짓는 ‘안중근 기념관’ 옆으로, 기존 동상이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남산공원에 있던 기존의 동상이 처음 세운 지 40년 이상 지나 부식된 데다 균열이 생겨 위인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시가 6억원을 들여 동상을 재건립했다. 시는 올해 초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위원회’를 구성, 초청 작가 선정위원회를 열어 서울대 이용덕 교수에게 제작을 의뢰해 4개월간에 걸친 제작기간 끝에 이번에 완성했다. 시 관계자는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물인 조선신궁이 건립되었던 곳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재건립하는 것은 항일 운동 역사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수학능력시험 D-30 영역별 마무리 학습 전략

     2011학년도 수학능력 시험이 이제 딱 한달 남았다. 생각하기에 30일은 짧은 시간 같지만 남은 기간 마무리 학습 전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짜서 실행하느냐에 따라 실전에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기존에 배운 것들을 잘 갈무리하다 보면 수험생 자신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겨 시험 당일에 평소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 수능 D-30, 영역별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효과적인 학습 전략에 대해 살펴보자.    ■언어-지문 꼼꼼하게 읽는 연습  지문 독해능력은 언어영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절대적이다. 수능 시험의 비문학 제재를 보면 세부 내용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을 넘어, 지문의 내용을 통해 유추하고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가 제시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지문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부적인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 수능에서 EBS 교재가 70% 반영되는 만큼 EBS 교재에 수록된 작품 목록을 정리하여 학습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휘·어법 문제는 고난도인 경우가 많아 상위권 학생도 어휘·어법을 몇개 맞히느냐에 따라 점수 차이가 나는 경향이 크다. 기출 수능과 모의평가에 출제된 어휘·어법 문항을 다시 풀어 보고, 교과서에서 다루는 문법 요소에 대해 꼼꼼하게 챙겨 보자.  언어영역은 80분 동안 50문제를 풀어야 하는 만큼 시간 배분을 잘못하면 문제를 다 못 풀 수도 있다. 따라서 꼼꼼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유형을 익히는 훈련과 동시에, 실전에 대비해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요령을 익혀 두자.    ■수리-틀린문제 체크·공식암기  수능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실전 감각을 높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최소 주 1회는 실전 모의고사 문제를 접하되, 시간을 정확히 지키면서 실제로 수능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풀어야 한다. 또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을 만들어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채점 뒤에는 반드시 틀린 문제를 검사하고, 해당하는 개념이나 공식은 다시 한번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맘 때면 수험생들은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문제풀이를 통해 불안함을 극복하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만 많이 풀다 보면 수능 유형이 아닌 단순한 연산과정 문제만 다루게 돼, 수능 당일 다른 유형의 문제를 만났을 때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평소에 자주 보던 문제집이나 너무 쉬운 수리 문제도 자만심이 생길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 남은 기간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신유형 문항이나 고난도 문항에 도전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    ■외국어-고정 출제유형 집중 공략  언어영역과 마찬가지로 외국어도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실전 대비 연습이 중요하다. 문제를 풀 때에는 실제 수능시험을 치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보는 게 유리하다. 또 적은 시간일지라도 남은 기간 매일 꾸준히 영어 듣기훈련을 통해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외국어 영역은 매년 유형이 큰 변화 없이 출제되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출제되는 유형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50문항을 풀면서 유독 자주 틀리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하되, 그동안 치렀던 모의평가에서 틀렸던 문제를 따로 정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지난 두 차례 모의평가에서 예고됐지만 본 수능에서도 변별력 강화를 위한 고난도 문항이 출제될 것이다. 상위권 학생은 변별력이 중요한 만큼 외국어 고난도 문제로 자주 출제되는 어휘, 어법성 판단, 빈칸 추론, 글의 요약, 주어진 문장이 들어갈 위치 찾기, 글의 순서 정하기, 장문 독해 유형 등에 대비해야 한다.    ■사회·과학 탐구-시사상식·기본개념 이해  사회탐구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문항이 자주 출제된다. 특히, 서로 다른 단원의 내용을 연결해 구성한 문항이 자주 출제되므로 관련된 교과 개념은 함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동·서양 사상가의 주장을 비교하거나, 특정 물품에 대해 동·서양에서 전개된 역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문항을 들 수 있다.  수능에서는 시사적인 소재를 활용하거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항이 일정 비율 출제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신종 전염병의 유행,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 부동산 매매처럼 언론에서 자주 언급된 사례를 활용한 문항이 있었다. 신문을 통해 최신 시사 상식도 어느 정도 공부하는 게 좋다.  과학탐구 영역은 교과 특성상 그림, 도표, 그래프 같은 자료를 활용한 문항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각 단원에 나와 있는 그래픽 자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 두고, 여기에 포함된 핵심 내용의 개념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개념 및 그림 자료 등은 반드시 이해해야 하며, 낯설고 새로운 자료를 보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아는 교과 개념을 주어진 자료에 어떻게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것인지 살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부고] 황인성 前총리 별세

    [부고] 황인성 前총리 별세

    문민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와 아시아나항공 회장을 지낸 황인성 전 총리가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26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난 황 전 총리는 육군사관학교 4기 출신으로 1968년 예비역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중앙경리단장, 경리학교장, 국방부 재정국장을 거치는 등 군의 요직을 맡았다. 1970년 무임소장관실 보좌관(차관급)으로 기용된 이후 총리 비서실장, 교통장관, 국제관광공사 사장, 민정당 전북지부 위원장, 11·12·14대 의원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권 들어 1993년 2월 총리로 전격 기용됐지만 쌀개방 파문 등으로 열 달을 채우지 못한 채 같은 해 12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민자당 총재상임고문을 거쳐 199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으로 취임하면서 경제계로도 발을 넓혔다. 2002년부터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장, 2008년에는 숭모회 명예이사장직을 맡았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대외활동을 삼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애섭씨와 아들 규선·규용·규완씨, 딸 정숙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6시. (02)3410-6917, 6929, 6930.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부고]

    ●신태영(전 수산청장)씨 별세 성훈(ASML 코리아 대표이사)성권(인천 서부경찰서 수사과장)성국(미국 한인필라델피아교회 담임목사)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5 ●양승도(사업)승한(호주 거주)승우(엠투엠 부사장)씨 모친상 원준(동양구조이엔알 대리)씨 조모상 임갑봉(이롬수학전문학원 원장)씨 외조모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010-2265 ●채수연(전 한국교원총연합회 사무총장)씨 모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 (02)3010-2293 ●이사익(수출입은행 부지점장)사육(사업)씨 부친상 김성모(사업)씨 장인상 10일 강원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30분 (033)258-2275 ●박명희(단국대 교수)재명(사업)재석(〃)씨 부친상 신계철(인아코퍼레이션 대표)안응모(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김노식(사업)씨 장인상 9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31)219-4111 ●전병철(전 대구MBC 이사)씨 별세 승훈(대우증권 애널리스트)현웅(산업은행)씨 부친상 10일 영남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53)620-4241 ●김찬수(KT 과장)경희(중앙공인중개사 대표)씨 모친상 이해석(서진정보통신 대표)씨 장모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3010-2295 ●이승백(이레콘트롤스 대표)기백(경성고 교감)여백(주사랑선교교회 목사)상백(시인·홍익디자인고 교사)씨 모친상 1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2227-7587 ●봉기녕(디지털타임스 광고국 차장)씨 조부상 10일 전남 장성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61)395-4441 ●안충근(자영업)병근(변호사)씨 부친상 광호(전자부품연구원 책임연구원)승훈(대우건설)씨 조부상 김상우(세정목재 부사장)씨 장인상 10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53)957-4442 ●사재훈(삼성증권 삼성타운지점 총괄지점장)씨 장모상 9일 원주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33)760-4638
  • 러 ‘안중근 외교문건’ 한국에 첫 전달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1910년 3월26일부터 한 달 뒤 당시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이 자국 외무부에 보고한 안 의사와 관련한 외교문건이 처음으로 한국에 전달됐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30일 “지난 10일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보훈처를 방문해 김 양 보훈처장과 만난 자리에서 A4 용지 6장의 안 의사 관련 외교문건을 전달했다.”면서 “이 문건은 1910년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에서 본국 외무부로 발송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문서를 번역한 결과 정부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안 의사 유해 행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문서에는 안 의사가 순국 때까지 있던 뤼순 지역의 상황과 사형 직전 안 의사와 만난 조제프 빌렘 신부의 증언이 담겨 있다고 보훈처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안 의사와 관련한 외교문건을 한국에 전달한 것은 처음”이며 “이 문서 전달의 의미는 러시아 정부가 안 의사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우리나라에 전달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함흥 출신 85세 김성식씨 안중근기념관 성금 1억원

    함흥 출신 85세 김성식씨 안중근기념관 성금 1억원

    부산에 거주하는 북한 출신 80대 노인이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 성금으로 1억원을 내놓았다. 서구 부민동에 사는 김성식(85)씨는 지난 5월 부인과 함께 서울 남산공원을 찾았다가 안중근의사 기념관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성금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함경북도 함흥출신인 김씨는 중학생 때인 1938년 일본 도쿄에 유학, 메구로(目黑)무선전신학교를 다니며 무선통신사 자격증을 땄다. 1943년 태평양전쟁 땐 일본군에 징용돼 전쟁물자 수송선을 타고 무선통신사로 일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한국전 참전 필리핀 지원도 적극 검토”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한국전 참전 필리핀 지원도 적극 검토”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 한국은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전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롯데백화점 역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인 정승인 상무는 롯데백화점의 글로벌 사회공헌 배경에 대해 대해 묻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2018년까지 ‘세계 7위 백화점’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적에 걸맞은 사회공헌 역시 필요하다고 했다. 정 상무는 롯데드림센터 사업에 대해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가능했다.”면서 “롯데백화점이 에티오피아에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웠던 시절 우리를 위해 헌신했던 우애를 되돌려 주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 바로알기 사업에 대해 그는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 청년들이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길 바란다.”면서 “롯데백화점은 앞으로도 올바른 역사 인식을 세우기 위한 행사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후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지난 6월에는 사단법인 ‘열린의사회’와 함께 봉사원정대를 구성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면서 “또 다른 한국전 참전국인 필리핀에 대한 지원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베트남에 두번째 롯데스쿨 건립중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베트남에 두번째 롯데스쿨 건립중

    롯데백화점은 학교 건립뿐만 아니라 역사 바로알기, 어린이 후원 사업 등을 후원하며 다양한 글로벌 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 베트남 어린이들을 위해 지난해 9월 광아이 주(州)에 학교와 기숙사를 함께 갖춘 ‘롯데스쿨’을 열었다. 국내 유통업계가 베트남에 학교를 건립한 것은 롯데백화점이 처음이다. 베트남의 경우 학교와 가정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우기(9~10월)에는 통학이 쉽지 않아 학교에 기숙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롯데백화점 측은 전했다. 롯데백화점은 롯데스쿨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2008년 김중만 사진작가의 ‘에비뉴엘 고객 사진전’을 시작으로 여러 자선행사를 통해 모은 수익금 전액을 비영리 단체인 ‘플랜코리아’에 기증해왔다. 롯데백화점은 현재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 박장 주 탐디마을에 두 번째 롯데스쿨을 건립 중이다. 이곳의 초등학교는 20여년 전 지어진 건물이어서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고 시설이 낡아 정상적인 학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백화점은 학교 건물 옆 부지에 2층 건물을 새로 짓고, 운동장과 울타리를 정비하는 등 시설과 기자재를 지원해 내년 1월 문을 열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올해를 ‘올바른 역사인식의 해’로 지정해 역사 바로알기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기념해 전국 31개 대학교에서 선발한 대학생 31명의 항일 독립 투쟁지 탐방을 지원했다. 지난 8일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동상 앞 발대식을 시작으로 8박9일 일정으로 중국, 러시아 등 안 의사가 활동했던 항일 유적지를 방문했다. 롯데백화점은 또 안중근 숭모회와 함께 ‘안중근 의사 일대기 도록’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1000부를 제작해 전국 초·중·고·대학 도서관과 백화점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도록에는 안 의사의 생애와 업적,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 자료들도 포함할 예정이다. 이달 중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는 NGO인 굿네이버스와 협력해 해외 빈곤 어린이들과 직원 간 ‘1대1 결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저개발국가 어린이들과 1대1로 결연을 맺어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원국은 방글라데시, 케냐 같은 극빈국과 몽골, 캄보디아 등 환경재해국 등이다. 베트남, 인도에도 후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직원들이 어린이에게 매월 1만 5000원을 기부하면 회사도 동일한 금액을 기부해 총 3만원의 지원금이 어린이에게 전달된다. 현재 400여명의 직원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활동 중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영등포 타임스퀘어 서울시 건축대상에

    영등포 타임스퀘어 서울시 건축대상에

    서울시는 12일 ‘제28회 서울시 건축상’ 대상에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설계자 이필훈, 정림건축)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달 5일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린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타임스퀘어는 업무와 숙박, 상업, 문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내부 동선을 간결하게 처리한 것은 물론 친환경성과 공공가치를 건축에 담았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는 또 일반건축 부문에서 ‘탄허 기념 박물관’(설계자 이성관, 한울건축), 공공건축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김선현, 디림건축), 건축전문(야간경관)에서 ‘서울 스퀘어’(이옥경, 가나아트 갤러리)를 각각 최우수상작으로 뽑는 등 분야별로 모두 24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서울시 건축상은 서울시내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공공 기여도가 높고 예술적 가치와 기술적 수준이 뛰어난 작품을 매년 선정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구 선생 등 8개 동상 보수

    서울시는 29일 김구 선생 동상 등 남산공원에 위치한 8개 동상을 보수·정비한다고 밝혔다. 현재 남산공원에는 김구 선생과 김용환 지사, 김유신 장군, 사명대사,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이시영 선생, 이준 열사, 이황 선생, 정약용 선생 등 역사적 인물 10인의 동상이 있다. 이 중 보수·정비 대상은 새롭게 제작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상과 위치가 변경될 예정인 이시영 선생상을 제외한 8개 동상이다. 동상 대부분은 제작된 지 40∼50년이 지나 부식과 균열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상 관리 권한이 개인이나 단체별로 달라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열린세상] 아아, 안중근/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열린세상] 아아, 안중근/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100년 전 8월이었군요.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고, 1907년에는 군대마저 해산당해 주권을 잃은 상태였고, 1910년 8월29일에는 남아 있던 겉모습마저 없어졌습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뒤 사람들의 행동이 몇 갈래 나뉩니다. 당시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관리들 가운데 의분을 느낀 사람은 자결도 하며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권력자들 중 많은 사람이 나라를 팔아서라도 권력과 부를 누리려 했습니다. 그들은 일제에 더 잘보이기 위해, 나라를 더 빨리 팔아먹도록 일제에 충성경쟁을 했더군요. 대한제국 말기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떠올립니다. 교과서에서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뤼순감옥에서 사형됐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서 ‘안중근 연구’란 책을 사 읽어 봤습니다. 위인의 행동과 뜻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낯이 뜨겁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법률지식이 높았다고 합니다. 국제관계법과 일본형법을 잘 알아, 일본 형법에는 국사정치범은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임으로써 일제가 부당하게 조선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재판절차를 통해 온 세계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선진국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었는데 사건을 엉터리로 처리한다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니 어느 정도 절차는 지킬 것이라는 것을 활용한 것이지요. 안중근 의사를 체포한 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그를 일본에 넘깁니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전쟁을 수행한 것이니 국제사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요구합니다. 한국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본은 을사늑약을 빌미로 일본법에 따라 관동도독부 법원에서 재판합니다. 검사·변호인·판사 거의 일본인인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제의 범죄를 낱낱이 법정에서 진술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목적(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을 달성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므로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니 도망갈 이유가 없다. 그를 쏴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안다. 하나 둘 행동이 쌓이면 반드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라고 큰 뜻을 밝혔습니다. 이 재판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법원장과 협상하여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책을 쓸 시간을 얻습니다. 옥중에서 자서전 ‘안응칠역사’를 씁니다. 동양평화론은 5장을 계획했지만 2장까지 쓰고, 시간을 더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사형장으로 들어갑니다.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역사를 보면 독립운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재산과 가족까지 희생해야 합니다. 반면에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은 나라 팔고 받은 돈으로 잘살고,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권력까지 가졌습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지금까지 힘들게 살고 있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은 그 후손까지 잘살고 있다는 기사를 봅니다. 안중근 의사 아들 안중생은, 아버지의 일을 이토 히로부미 아들에게 사죄했다 하여 ‘호랑이 같은 아버지에 개 같은 아들’이라고 비난받았다고 합니다. 아들도 아버지처럼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보통 사람이야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안중생은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거사 때문에 핍박을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일제의 회유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사죄한 것인데, 안중생을 그렇게까지 비난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비난 정도는 자기의 행위에 대해 걸맞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 친일행각에 나선 유명인사들, 그들보다 더 안중생을 비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큰 별이어서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큰 비난이 돌아간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선열들이 ‘내가 왜 독립운동을 했을까?’하고 후회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그래 그때 잘했어!’하며 웃음 짓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한·일 100년 대기획]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한·일 100년 대기획] 한·일 새로운 100년을 위해-日 한국전문가 3인 좌담

    서울신문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신년호에 한완상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을 시작으로 연재한 한·일 대기획이 19일 23회로 막을 내린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다는 취지로 연중 시리즈를 시작했다. 시리즈 연재 중에 간 나오토 총리는 지난 10일 일본의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해 궁내청에 보관돼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 병합은 원천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1000명의 외침을 외면한 담화이기는 하나 새로운 한·일 100년 역사를 열어 나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연 한·일 양국은 새로운 우호협력의 100년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일본 내 시각과 향후 100년의 바람직한 양국관계에 대해 일본 내 한국 전문가 3명의 좌담을 마련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준교수, 마나베 유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오타 오사무 교토 도시샤대(동지사대) 글로벌 스터디스 연구과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은 지난달 30일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연구동에서 진행됐고 간 총리 담화 이후 추가 질문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평가해 달라. -기미야 다다시 교수(이하 기미야) 무라야마 담화와 동일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을 명기한 것은 일단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만 한국 정부와 사회가 요구한 것처럼 1910년 한·일 병합에 이르는 조약이 법적으로 무효이고,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점까지는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측의 강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명기하는 편이 좋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담화에서 한·일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강제가 있었다는 것도 포함됐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표현이 애매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의 비판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일본 사회의 여론 동향을 생각하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한 발 나아간 담화였다고 생각한다. -마나베 유코 교수(이하 마나베) 간 총리 담화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담화의 답습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내용을 비교해 읽어 보면 ‘자민당적이지 않다’는 점이 공통점일 뿐 결코 답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자폭탄) 피폭국이라는 점을 내세운 무라야마 담화보다는 적극적인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패러다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사할린 한국인 지원이나 문화재 반환 등까지 언급하는 등 아슬아슬한 선까지 표현한 점에 대해서는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한·일 지식인 100명이 “한·일 강제병합은 원천무효”라는 선언을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1000여명의 지식인들이 동참했다. 한·일 병합강제조약의 적법성을 놓고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뜨거운데. -오타 오사무 교수(이하 오타)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의 핵심은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점이다. 저도 이번 공동선언에 서명했지만 이것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다. 지난 2005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새롭게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에는 ‘원천무효(null and void)’라는 것을 한국 측이 1952년 제1차 교섭 때부터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법 이론상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국 측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맞섰다. 1965년 한·일 국교화 정상화 단계에서는 ‘이미(already)’라는 표현을 넣어 양국 정부가 따로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기미야 이 문제에 대해 어쩐지 일본에서는 별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에 의해 병합됐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무효인지, 왜 한국정부나 한국사회가 1910년에 체결된 조약이 무효라는 것에 연연하는지 궁금해한다. -마나베 한·일병합과 한·일조약의 무효 논란에 대해서는 비록 강제에 의한 불평등 조약이었다고 해도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에 대해 법적으로 무효라고 하는 논의는 진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나베 역사인식을 양국이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인식은 각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한국 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1982년 역사 교과서 문제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서는 한·일병합의 악인이라고 알려지고 안중근은 영웅인데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지폐에까지 등장한다. 역사적 진실은 하나일 텐데 말이다. 결국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미야 역사인식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라기보다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 어떤 역사인식을 서로 가지려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일 관계는 일본 측에 힘이 있었다. 당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일컬어지는 1950년대 구보타 발언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상당히 상식으로 통하는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일 관계가 진정한 의미에서 상당히 대등하게 됐다. 일본 내에서도 역사인식이 변화했다. →화제를 좀 돌려서 현재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타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다소 우여곡절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두터운 관계는 바뀌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민주화운동 단체들이 성명을 내거나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은 좀처럼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보도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식민지배가 기인한다. 식민지배 논리에 바탕이 되는 배제라는 논리가 일본 사회에 아직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느껴진다. -기미야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는 한·일 관계가 배후를 보면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특히 북한에 대한 배제와 차별 분위기가 남아 있다. -마나베 지난 5월 8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하네다 공항에 한류스타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인 마음속에 한국이라는 울타리가 굉장히 낮아졌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계속 발전해 나가고, 한글을 공부하는 이들도 많이 생겨 80년대 초반과 비교해 한·일 관계가 정말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온도차가 있다. 일본 언론이 광주항쟁 30주년 행사를 한 줄도 전달하지 않는 등 한국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오타 올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양국에서 집회나 심포지엄이 많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양국 시민사회의 노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은 대단히 낮은 것 같다. -마나베 도쿄대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 ‘아시아 암 포럼’이라고 하는 특별한 기구가 있다. 특별연구원인 가와하라 노리에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연세대 의대 교수가 동참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난징대학살 당시 군무원으로 근무해 대학살에 가담했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역사적 부채를 유산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화학무기 등에 의해 오염된 중앙아시아 사람들 중 암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과거를 직시해 과거의 아픔을 계속 안고 살아 오고 있는 이들의 삶을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암 포럼이 운영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의 향후 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오타 식민지배 청산의 프로세스를 서로 탐구해 나가는 게 특히 미래지향적인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국이 서로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일조사회 같은 것을 만들어 문화재가 반출된 경위 등도 제대로 조사해 식민시대에 부당하게 반출된 것들을 반환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논의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대화할 수 있고,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세계에서도 식민지배를 청산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로,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획기적인 일이다. 식민지배 관계에 있던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미야 앞으로 100년의 한·일 관계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균형이 잡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협력이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더욱 많이 인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한·일 협력이 어떠한 형태로 잘 발전해 갈 수 있을지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한·일 공통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오타 서로 각급 수준의 교재를 함께 만들고 이를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일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나베 전혀 다른 나라 사이에서 공통의 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조금 무리이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한·일병합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웃 나라의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은 교재라면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8·15 65주년] 5대 궁궐 日帝 수난사

    일제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말살하고자 대대적인 궁궐 파괴를 자행했다. 박람회장으로, 동물원으로, 유원지로 전락시켜 조선 백성을 조롱했다. 그 상흔은 광복 65주년이 되는 지금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1915년 경복궁 전각 대부분 철거 법궁인 경복궁은 박람회장이 돼 버렸다.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정전과 편전, 침전 일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을 철거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남산에 위치했던 총독부 건물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이동시키고 지금의 흥례문 영역에 조선총독부를 건설했다. 경희궁은 가장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907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했다. 지형도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등 크게 변형시켰다. 이후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등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이전되면서 궁궐의 면모를 상실했다. 정문인 흥화문은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 정문으로 팔렸다가 이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는 수난을 당했다. 1920년대가 지나면서 7만여평의 넓이에 120채가 넘는 전각이 있던 조선 왕조의 서궐 경희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됐다. 1930년대에는 전시 대비용 시설인 벙커가 건립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일제는 덕수궁도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수궁은 아관파천 후 고종이 환궁해 대한제국을 선포할 당시 경운궁이라는 이름의 정궁이었다. 덕수궁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궁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후 곳곳이 잘려 나가고 건물이 철거돼 궁궐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일제는 1931년 덕수궁 부지 2만여평 가운데 1만평을 경성의 중앙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부터 많은 전각이 철거됐고, 석조전은 1933년부터 미술관으로 바뀌어 1943년까지 일본 미술품만 전시했다. ●경희궁 전시 벙커 활용 창덕궁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가 막을 내린 장소다. 1919년 8월29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한·일강제병합 조약이 이뤄졌다. 1926년 4월25일에는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1917년 내전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일제는 이를 복구한다는 핑계로 경복궁 내전 건물들을 모두 헐어다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일제는 주인을 잃은 창덕궁의 전각을 헐고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지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전락하는 모욕을 당했다. 1907년 즉위한 순종은 창덕궁을 새로운 거처로 삼았다. 1908년 일제는 창덕궁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창경궁의 선인문 안에 동물원을 설치했다. 순종 황제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한다는 구실이었다. 뒤이어 식물원이 설치됐고, 이름조차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8명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게 됐다. 1995년 광복 50주년 포상 이후 최대 규모다. 국가보훈처는 11일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안중근 선생의 4촌 동생 안홍근 선생과 유찬희 선생 부자 등 33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포상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18명(독립장 5명, 애국장 108명, 애족장 105명)과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 등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안중근의사 가문 독립유공자 15명 배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안홍근 선생은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에 참가하고 그해 여름 독립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수청(水淸)촌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도 모았다.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홍근 선생을 포함해 안명근(1962·독립장), 안춘생(1963·독립장), 최익형(1977·독립장), 안경근(1977·독립장), 안정근(1987·독립장), 안봉생(1990·애국장), 오항선(1990·애국장), 조순옥(1990·애국장), 안원생(1990·애족장), 안공근(1995·독립장), 안낙생(1995·애족장), 조성녀(2008·애족장), 안태순(2009·애족장) 선생 등 모두 1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 유찬희 선생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그의 차남 유기문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그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대한독립기성총회, 한인상무총회, 대한국민회 간부로 활동했다. 1923년 이후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동성노농공사와 국민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또 유기문 선생은 1930년 이후 중국 상하이와 톈진 등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과 흑색공포단에 가입해 일제의 주요시설 폭파, 친일파 처단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앞서 유 선생의 장남 유기석 선생이 200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아 3부자가 모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됐다. ●‘성서조선’ 김교신·송두용 건국포장 1927년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해 오다 1942년 3월 책 머리말에 ‘조와(弔蛙)’라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을 계기로 옥고를 치른 김교신·송두용 선생에게도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조와’는 일제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돼 관계자들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되어 관계자 여럿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되며, 국외에 거주하는 유족에게는 재외공관을 통해 전수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중앙기념식장에서 안홍근 선생의 손녀 안기숙(69)씨 등 7명에게 직접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6명, 애국장 3669명, 애족장 4547명, 건국포장 866명, 대통령표창 2198명 등 모두 1만 2209명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아시아나, 안중근 유가족 지원

    아시아나, 안중근 유가족 지원

    아시아나항공은 11일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를 기려 중국 하얼빈에 거주하는 유가족 안노길(97) 할머니를 방문, 지원금을 전달했다. 안 할머니는 안 의사의 조카며느리로 남편을 잃은 뒤에도 혼자 생계를 꾸려가며 안 의사의 공적 알리기에 전념해 왔다. 6·25전쟁 이후 중국에서 태극기와 안 의사의 초상을 들고 1인시위를 하다가 반혁명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10명은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안 할머니를 찾아 벽지 도배와 청소를 도운 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운영비와 생활지원금을 전달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앞으로도 매년 두 차례씩 안 할머니를 방문해 생활비와 기념관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면서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도 2003년 3월부터 서울 안 의사 기념관과 숭모회에 3억 6000만원을 후원해 왔다.”고 밝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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