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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잡지서 선정한 최악의 한국인, 안중근 의사부터 김연아까지 ‘분노’

    日 잡지서 선정한 최악의 한국인, 안중근 의사부터 김연아까지 ‘분노’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공개한 ‘최악의 유명 한국인’ 명단이 국내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달 30일 유튜브 채널 ‘이슈왕TV’에서는 ‘일본인이 뽑은 최악의 한국인 10명’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 편의 영상을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소개한 일본인들이 뽑은 최악의 한국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명단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안중근 의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이 포함돼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던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과 반기문 전 유엔총장, ‘땅콩회항’ 사건으로 전 세계적인 망신살을 샀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그리고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한국 국적의 조승희도 포함돼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도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충격을 더했다. 일본의 피겨 영웅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 때문에 현역 시절 2인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기 때문. FT아일랜드 멤버 이홍기도 최악의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 이홍기는 일본 배우 시노자키 아이와 열애설이 났다는 이유로 일본 남성들의 반감을 샀다. 또 한 일본 TV프로그램에 나와 전통 음식을 먹은 뒤 “솔직히 맛이 별로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7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母 조마리아 여사

    ‘7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母 조마리아 여사

    30일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7월의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1862~1927) 여사. 황해 해주군에서 태어난 조 여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안 의사 등 3남 1녀를 낳았다. 조 여사는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하고 위원으로서 후원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정부는 2008년 조 여사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슴 먹먹했던 조선인들의 ‘치욕의 자리’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가슴 먹먹했던 조선인들의 ‘치욕의 자리’

    집결지인 남산골 한옥마을에 도착하니 일행 30여명이 벌써 와 있었다. 해설을 맡은 노주석 원장님의 “서울 살면서 한옥마을에 처음 온 분이 있다면 반성해야 한다”는 말씀에 뜨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옥마을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경쾌했던 출발과는 달리 여정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권력의 말초신경 역할을 했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건물을 지나 일본이 식민통치를 위해 세운 통감부 터에 도착했다. 경술국치 이후 106년 만인 2016년 8월 29일에 조성된 ‘위안부 기억의 터’에는 네 개의 구조물이 전시돼 있다. 가운데엔 통감부 터였음을 알리는 푯돌과 을사늑약에 날인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기둥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고 양옆엔 위안부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증언들이 새겨진 ‘대지의 눈’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4개 국어로 새겨진 ‘세상의 배꼽’이 설치되어 있다. 가슴이 먹먹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도착했을 때 만화캐릭터의 구조물 속에서 1921년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의 의거 터라는 표석과 한국통감부 조선총독부 터라는 표석을 보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남산원 자리는 일제강점기 노기신사 자리였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서 있는 남산 중턱엔 조선신궁이 있었고 신사와 신궁을 포함한 이 일대는 일본 거류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됐던 자리라니, 110년 전 이곳은 조선인들에게는 치욕의 자리요, 일본인들에게는 능욕의 자리였던 셈이다. ‘한양공원’이라고 한자로 쓰인 비석 앞에 다다랐다. 한양공원은 1910년 일본 거류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됐다. 당시 한양도성이 1000만 평이었는데 공원 규모가 30만 평이었다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허수아비 황제였던 고종은 공원 개장을 축하하며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냈다. 고종이 한양공원이라는 글을 꾹꾹 눌러쓰는 심정을 상상해 봤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통감에게 폭탄을 던진 김익상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고종 황제가 ‘한양공원’이란 글자를 쓰던 바로 그 시간이다. 고종의 필적을 가슴에 새겨 오늘의 기억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약탈과 인권유린 공간…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기억하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약탈과 인권유린 공간…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5차 탐사가 남산 아랫마을 남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6월의 넷째주 주말인 지난 24일 오전 10시 집결지인 남산골 한옥마을을 출발할 때만 해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종착지인 안중근장군동상 아래서 파할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을 채워 주기엔 부족했지만 경건한 순례에 화답하는 듯했다. 투어단 30여명은 남산골 한옥마을~필동문화예술거리~서울소방재난본부~통감관저 터와 위안부 기억의 터~서울문학의 집~애니메이션센터~남산원~한양공원비~삼순이계단~안중근의사기념관까지 눈부신 신록과 화려한 스트리트 뮤지엄 그리고 나라 잃은 부끄러움과 인권유린의 기억이 겹겹이 버물린 남산길을 2시간 30분여간 뚜벅뚜벅 걸었다.코스 중 옛 중앙정보부 청사들, 남산원, 남산육교 고가차도, 범바위, 한양공원비가 각각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시간관계상 1961년에 만들어진 남산육교 고가차도와 남산 범바위 그리고 인권유린의 현장인 서울유스호스텔과 남산창작센터는 그냥 지나쳐야 했다. 길이 41m의 남산육교는 남대문에서 남산 가는 길을 내기 위해 한양도성을 깔아뭉개고 만든 문화재 훼손의 주범이며 범바위는 남산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남산 예장자락 숲을 파괴한 옛 중앙정보부 청사 30여동은 서울시 등 여러 기관이 사용 중이다. 이 중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던 중앙정보부 제6국과 교통방송 등 건물 두 채가 철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이 공간에 인권의 소중함을 상기하는 메모리얼 홀과 광장을 조성한 뒤 ‘국치의 길’과 ‘인권의 길’ 같은 역사교훈여행(다크투어) 코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취지는 좋지만 ‘네거티브 헤리티지’도 엄연한 문화재다. 미래에 남길 유산으로 스스로 지정한 건물을 헐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않은 점이 아쉽다.남산은 한양의 수호신 목멱대왕을 모신 상징산이며, 한양을 지키는 남쪽 울타리다. 사대문 중심의 한양에서는 남쪽 산이었지만 서울이 한강 너머 강남으로 확대된 1963년 이후에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중앙산이 됐다. 남산은 기원전 18년 한강변 한성백제의 융기와 몰락,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한강 쟁패기, 고려의 남경시대, 조선 한양의 흥망성쇠를 묵묵히 지켜봤다. 남산은 지금도 한양도성 성곽과 봉수대, 남산타워가 자리한 서울의 대표 경관이며 도심과 한강을 연결하는 생태녹지축의 중심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꽃구경(木覓賞花)과 순성 순례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을 찾는 외국인관광객 40%가 방문하는 관광명소이다. 2000년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유일한 그릇이다.남산은 서울의 영광과 안녕을 상징하는 산이지만, 강점기 일제에 약탈당하고 군부정권기 인권말살이 자행된 영욕의 공간이다. 신라 경주의 남산, 고려 개경의 남산과 함께 이 땅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잇는 수도의 ‘앞산’인 남산은 근대 100년 넘게 ‘공포의 산’으로 전락한 불행한 역사를 품고 있다. 필동, 묵동, 남산동, 회현동, 예장동, 장충동 등 남산 아랫마을에 살던 ‘딸각발이’ 선비들은 일제강점기 옛 동평관과 왜장대로 몰려온 일본인과 일제 통치기구에 의해 쫓겨났다. 경성으로 몰려온 일본인 7만명이 경성의 사유지 70%를 점유한 1930년대, 충무로를 본거지로 남대문로와 소공로, 명동, 을지로와 용산까지 남산을 둘러싼 지역 대부분은 일본인 차지였다.이토 히로부미는 수양대군이 한명회와 더불어 계유정난을 획책하던 권람의 옛집 후조당(녹천정)에 통감관저를 세웠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통한의 장소이건만 2010년 민간단체가 ‘통감관저터’라는 푯돌을 세우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치욕의 현장이다. 삼청동·인왕동·백운동·쌍계동과 더불어 한양의 5대 명소로 꼽힌 청학동(남산골한옥마을)은 일본 헌병대사령부와 정무총감의 관저로 변했다. 100만 평이 넘는 남산의 녹지 3분의1이 공원을 조성한다는 명분 아래 재경성일본거류민단에 무상대여됐다. 일제는 한양공원 안에 일본열도의 창조신과 살아 있는 천황을 모시는 거대한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의무화했다. 안중근, 김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남산공원 회현자락이 바로 그 자리이다.아직도 남산 곳곳이 흉터투성이다. 예장자락의 경우 정보기관이 일제 침탈의 자리를 이어받아 인권을 유린했다. 남산 본관(서울유스호스텔), 대공수사국(서울시 남산별관), ‘나는 새도 떨어뜨린’ 중앙정보부장 관저(문학의 집)와 경호원 부속건물(산림문학관), 고문으로 사람을 짓이겼기에 ‘육국’으로 불렸던 제6국(서울시 도시안전본부), 감청과 도청의 안테나가 높았던 감찰실(교통방송), 사무동(서울소방방재본부), 지하 유치장(서울소방종합방재센터)이 그곳이다. 남산의 수호신이자 조선의 호국신인 목멱대왕의 혼을 되찾는 일도 남겨진 과제다. 왕이 나라에 제사 지내는 국사당(國祀堂)은 본래 남산 정상 현재의 팔각정 자리에 있었지만 바로 아래에 조선신궁을 지은 일제가 “신궁 머리 위에 국사당이 존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민간에 불하해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름마저 스승(단군, 최영, 이성계, 무학대사)을 모시는 국사당(國師堂)으로 강등시켰고 지금은 개인 소유의 굿집이다. 귀를 기울여 보면 “나는 치유받고 싶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일제강점기와 근대기에 마구 파괴된 한양도성 성곽을 복원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통감부 자리에 들어선 ‘위안부 기억의 터’처럼, 돌아온 한양공원비처럼, 노기신사 터의 돌수조처럼, 조선신궁 배전 터처럼…. 부끄럽지만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 때, 남산도 빛나는 정기를 되찾지 않을까.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노주석의 서울살이] 남산 ‘조선신궁 터’에 대한 상념

    베를린에 다녀온 적 있다. “뭐 볼 게 있겠나?”라는 짐작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베를린의 낮은 고색창연했고, 밤은 눈부셨다. 나흘 동안 ‘페라가몬 뮤지엄’이 있는 박물관섬으로 이틀을 출퇴근하면서 약탈 문화재 투어를 했고, 나머지 이틀은 시내를 쏘다녔다. 의도치 않게 찾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2711개의 높낮이가 다른 돌비석 사이 미로를 걸으면서 전쟁과 인종 말살의 참극에 몸서리를 쳤다. 이 강렬함이 다음날도 ‘유대인박물관’으로 걸음을 향하게 했다. 범죄자의 후손들이 남긴 통렬한 참회의 메시지가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자각토록 이끌었다. 우리는 흔히 좋은 곳, 빛나는 것만 찾아다니는 ‘그랜드투어’를 즐긴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다크투어’도 엄연히 존재한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인간과 자연이 남긴 ‘흑(黑)역사’의 현장을 어지간히 다녔다. 하와이 진주만, 뉴욕 그라운드 제로, 히로시마 원폭돔, 사이판 반자이 절벽, 폼페이 화산 폭발 유적…. 국내의 경우 비무장지대(DMZ)와 서대문형무소, 거제 포로수용소, 제주 4·3평화공원, 용산 전쟁기념관이 나의 다크투어 목록이다. 남산의 조선신궁 터 얘기를 꺼내려고 언저리를 맴돌았다. 서울에는 일제강점기의 흉터가 부지기수다. 근대 건축물로, 터와 표석으로 곳곳에 층층이 주름져 있다. 강점기를 통틀어 두 개의 랜드마크를 꼽는다면 첫째는 조선총독부, 둘째는 조선신궁이다. 총독부가 국권을 지배했다면, 조선신궁은 정신을 지배했다. 아쉬운 점은 일제가 버리고 간 조선총독부는 우리 손으로 허물었지만, 조선신궁은 일본 스스로 철거했다는 점이다. 천황의 항복 다음날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행사를 갖고, 질서정연하게 폐쇄와 소각 절차를 거행했다. 왜 그랬을까?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허울 아래 조선 사람의 얼을 뺀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서사의 원흉을 고이 돌려보내다니…. 전국에 산재한 1141개의 신사 중 136곳이 불타고 파괴됐지만 조선신궁은 건재했다. 신궁 입구 초대형 도리이(大鳥居)는 해방 2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산은 목멱대왕을 모신 영광의 땅이기도 하지만, 일제 침탈의, 정보기관에 의한 인권유린의 소굴이기도 하다. 영과 욕이 교차하는 국치(國恥)의 현장이다. 조선신궁이 있던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중앙광장터 발굴 현장에서 땅속에 파묻혔던 배전 터가 7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사람 300만명이 일본 신과 천황에게 강제로 숭배의식을 치른 장소다. 조선혼을 말살한 배전 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서울시가 전전긍긍이다. 쉬쉬하며 파묻을 수도 없고, 드러내 놓고 전시하기도 곤란한 형편이다. 망각이 아니라 자각이다. 이젠 드러내야 한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크투어에 나설 때가 왔다. ‘국치 투어’면 어떤가. 남산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게 신호탄이다. 정부의 도움 없이 1만 9611명의 시민이 3억 4000만원의 성금을 내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치욕의 통감관저 터에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을 세웠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존물도 거꾸로 세웠다. 이름하여 ‘홀대 전시’ 기법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라는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말씀이 검은 돌에 새겨져 있다. 한·영·중·일 4개 국어로 또 이렇게 적혀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History not remembered is repeated)
  • 안중근 의사 간수에게 준 유묵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탁

    안중근 의사 간수에게 준 유묵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탁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기요타 간수과장에게 써준 글씨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인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이 지난 4월 K옥션 경매에서 2억 9000만원에 낙찰받은 유묵을 연구원 장서각에 기탁한다고 1일 밝혔다. 비단에 가로로 쓰인 ‘일통청화공’은 ‘항상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간수장과 수감자의 신분이지만 감옥에 있던 기간 대화를 나눴던 두 사람의 교감을 엿볼 수 있다. 유묵의 오른쪽에는 ‘기요타 선생에게 드린다’(贈淸田先生)는 한자가, 왼쪽에는 약지가 잘린 왼손 손도장과 함께 ‘대한국인 안중근이 정중히 올린다’(大韓國人 安重根 謹拜)는 한자가 적혀 있다. 유묵 기탁식은 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열린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기고] 노기 마레스케와 안중근/서상문 고려대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기고] 노기 마레스케와 안중근/서상문 고려대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노기 마레스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전쟁 영웅. 러일전쟁에서 육군 중위인 두 아들을 잃고도 비통함을 내색하지 않은 외강내강형. 국가 중대사에는 늘 “노기 장군을 부르라”고 한 명치 일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백작. 일왕 출상 직후 10년 연하 아내와의 동반 할복으로 63세의 생을 마감한, 일본인들에게 군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하지만 노기는 전근대형 군인의 한계를 넘지 못한 고루한 황국주의자의 표상일 뿐이다. 그가 강조한 인간의 도는 일본인에게만 국한된 편협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일본 왕족 자제들에게 “인간이 도에 벗어난 짓을 하고도 수치를 모르는 자는 금수만도 못하다”고 가르쳤지만, 그가 말한 ‘도’란 일본인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승전의 대가와 군의 사기진작을 명분으로 전쟁범죄도 당연히 여겼다. 자의적으로 날조한 ‘구미위협론’과 국수주의를 넘지 못한 근대형 군인의 한계였다. 세기 전 전쟁에서는 전쟁범죄가 횡행했다. 1860년 청나라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자 병사들에게 포상으로 3일간 무제한 약탈, 강간, 방화 등 온갖 범죄를 자행하도록 허용한 영불연합군이 비근한 예다. 청일전쟁 시 일본군도 뤼순 점령 후 4일간에 걸쳐 최소 2만여명을 학살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당시 한 일본군 병사가 가족에게 “적지에서의 노획은 이긴 자의 자유”라고 써 보낸 편지는 이를 방증한다. 일본군 병사들의 노략질에 중국이 항의하자 노기는 “그대들은 자신의 영토도 지키지 못했다. 우리는 막대한 경비를 들이고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그대들의 국토를 대신 수복시켰다. 저 하찮은 여성과 재물을 우리 군대에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야만성을 감추지 않았다. 전쟁범죄가 공공연한 시대였다고 하지만 지휘관이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 인륜, 도덕과 군인으로서의 품위, 명예와 군기를 생명처럼 중요시한 군인도 많았다. 같은 시기 우리에겐 안중근이 있었다. 그는 근대형 군인의 한계를 넘어선 시공 초월적 군인상의 남상(濫觴)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 주기도 했고, 동양 평화를 파괴한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시에도 이토만 가슴과 복부에 정확하게 3발을 조준 사격했을 뿐 수행비서 3명에게는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오른팔과 오른발만 맞히었다. 하얼빈역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은 일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지향한 것이다. 노기와 달리 안중근이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도 숭고한 사상가와 의사로 숭앙받는 이유다. 일본인들 중엔 안중근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도 있다. 그의 웅혼한 사상과 순결한 영혼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런 안중근에게 일본 극우파는 ‘테러리스트’로 ‘역사 테러’를 가해 왔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개정에 필요한 맹목적 애국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황국주의자 노기를 군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안중근 순국일(3월 26일)을 앞두고 일본은 당장 정치적 오브제로 악용하는 협량함에서 벗어나 노기를 군신 자리에서 내려놓고 세계주의와 인류보편사상을 실천한 안 의사를 평화 사상가로 받들어야 할 것이다.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오늘날 이 역동적(力動的) 한국 사회의 창출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 사회의 이 역동적-다이너미즘(dynamism)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속출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이너미즘이 안전사고 대비 속도를 늘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대비책을 세워도 사회 역동성의 속도, 역동성과의 큰 폭을 줄이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도대체 이 역동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기원은 어디일까. 미상불 3·1운동이 그 기원이고. 3·1운동 때까지 올라가서 보아야 이 역동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그 당시의 단면으로는 그 시대의 시대상 그 시대의 진정한 특징을 알 수가 없다. 그 시대가 시작되는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그 시대로 이어져 오는 생태를 알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근 한 세기 전의 한국 사회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3·1운동 때의 우리 사회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구조와 기능면에서 그 차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생활양식은 물론 사고방식이며 행위유형에서 3·1운동을 일으킨 우리 선인(先人)들과 오늘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인은 3·1운동을 일으킨 그 선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일 뿐 사회학적 후예는 아니다. 그 선인들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오로지 DNA(유전자 본체)며 혈통일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단절되고 변화되었다. 얼굴도 달라지고 키도 달라지고 몸무게도 달라졌다. 읽는 책도 달라지고 (한문 위주에서 영어 위주), 쓰는 어휘도 달라지고 (한자 위주 어휘에서 한글·영어 위주 어휘), 말하는 스타일도 달라졌다.(점잖고 느린 데서 단순하고 빠른 데로) 그렇다면 100년 전 3·1운동의 그 무엇이 꺼지지 않고 아직도 타고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헌법의 전문(前文)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전문의 시작은 내내 그대로다. 그것은 바로 3·1운동이다. # 자유는 전 국민 절규로 국가건설 지향점이 된 것 이 3·1운동, 3·1 정신은 다음 4가지 면에서 오늘날 이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기초이며 바탕이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의 지향점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로 ‘자유’의 정신이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든 자유는 근대의 개념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 근대적 개념인 자유가 온 국민에게 각성되고 실감되고 절규되는 것은 기미독립선언서의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부터다. 물론 그 이전 소소하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1운동 때처럼 전 국민적으로 절규한 때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3·1운동 때 외쳐진 이 ‘자유’를 먹고 산다.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 레닌의 러시아 혁명 여파로 고조된 평등사상도 우리에게 꼭 같이 근대사상의 한 축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근간으로 해서 오늘날 우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고, 그 자유에 대한 신념과 갈구,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측면에서의 이 자유의 생활화, 제도화가 오늘날 북한과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3·1정신. 그것은 바로 ‘자유’의 정신이고 그것은 곧 오늘날 대한민국을 존립하게 하고 번성케 한 정신이다. 그 정신의 뿌리는 3·1정신이다. 둘째로 ‘개방화의 정신’이다. 이 개방화는 오늘날의 세계화 정신에 비견할 만하지만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개념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정신과 기운과 활동에서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고 하는 점에선 오늘날의 세계화 개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류적(人類的) 양심(良心)의 발로(發露)에 기인(基因)한 세계개조(世界改造)의 대기운(大機運)에 순응병진(順應竝進)하기 위하여 차(此)를 제기(提起)함이며’에서와 같이 세계를 새롭게 고치고 만들며 변화시키는 그 큰 기회에 우리도 순응해 함께 나아가겠다는 선언이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화 선언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세계화에 앞장서 있고, 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신자유주의로 향한 세계개조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FTA는 이러한 세계 개조의 일환이다. 이미 100년 전에 이 세계화의 기대와 욕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이 같은 대 성취는 이미 3·1정신, 3·1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로 ‘창의성’의 정신이다. 개방화 세계화는 적나라한 경쟁을 불러온다. 옷을 입은 신사가 벌리는 경쟁이 아니라 발가벗고 치열하게 달려드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창의성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 뿐이다.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 세계문화(世界文化)의 대조류(大潮流)에 기여(寄與)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되찾겠다는 의지나, ‘아(我)의 자족(自足)한 독창력(獨創力)을 발휘(發揮)하여 춘만(春滿)한 대계(大界)에 민족적(民族的) 정화(精華)를 결뉴(結紐)’ 하겠다는 다짐. 이는 모두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해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자긍심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겠다는 100년 전의 비전이며 자신감이다. 이러한 비전 이러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특허출원 건수에서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4번째 지위에 올라 있을 뿐 아니라 2차 대전 후 신생한 140개 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나라가 되어 있다. 이 모두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3·1정신, 3·1운동에 가 닿는다. # 저항,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없어 넷째로 저항의 정신이다. 저항하고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도전할 의지도 없는 민족이다. 3·1정신은 저항·분노의 정신이고, 3·1 운동은 분노·저항의 결실이다. 근대 중국의 선각자 양계초(梁啓超)는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의 서문에서 ‘지금 한국인은 아무 쓸모없는 소수점 이하의 사람들’ (生爲今日韓人者宜若爲宇宙間一奇零之夫無可以自效於國家與天壤)이라 했다. 양계초가 그렇게 말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914년이었다. 그러나 양계초는 한국인을 몰랐다. 한국인은 중국인에 비해 10배, 100배로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아는 민족이다. 3·1운동 같은 활화산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민족이다. 당시 (1910년대)는 제국주의의 기세가 극에 달한 시대로, 중국인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인 이상으로 당하고도 안중근 의사 같은 혹은 윤봉길열사 같은, 의사 열사 한 명도 내지 못한 민족이다. 말할 것도 없이 3·1운동 같은 엄청난 폭발력의 대저항 운동이 일어나리란 것은 일본도 중국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 비해 당시의 조선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열악했고 너무 열패(劣敗)했고, 너무 열등했다. 더구나 일본의 군사력과 경찰력은 전 아시아를 휩쓸고도 남음이 있었다. 폭력의 차원에서 한국은 전무했다. 오직 맨주먹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고 일어날 수 있었는가. 이는 어떤 이유, 명분으로도 설명 되지 않는 오직 한국인만이 갖는 ‘저항·분노’의 정신이 설명해 준다. 우리가 우리 역사 이래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니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자유·자주의 정신 개방화·세계화의 정신 창의와 독창성의 정신 그리고 저항·분노의 정신은 모두 3·1정신에서 연원하고 그리고 3·1운동에서 그 정신의 동력을 찾았다. 그 정신 그 동력으로 오늘의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면, 3·1정신은 영원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꼭 같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영원히 꺼질 수 없는 한국인 정신이다. 인류가 3·1 정신이 품고 있는 그 정신을 거부하지 않는 한 그 의미는 계속된다. 연세대 명예교수
  • 시진핑표 ‘안중근 동상’ 의정부 온다

    시진핑표 ‘안중근 동상’ 의정부 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지시로 중국에서 만들고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 2개 가운데 1개가 다음달 초 지하철 1호선 경기 의정부역 광장의 근린공원에 세워진다. 1일 의정부시에 따르면 안중근 동상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달리면서 왼쪽 품 안에서 권총을 뽑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받침돌에는 안 의사를 상징하는 단지한 왼손 바닥 도장과 함께 ‘대한국인 안중근’(大韓國人 安重根)이라 쓰여 있다. 동상은 다음달 초 인천항에 도착한다. 이 동상은 2014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담차 방중 당시 하얼빈역에서 역사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고 이에 시 주석이 안 의사 기념관과 동상 제작을 지시했다. 이후 민간교류사업으로 추진돼 중국 유력 민간단체인 차하얼(察哈爾) 학회가 맡았고, 쌍둥이 동상을 만들어 1개를 한국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 차하얼 학회는 2009년 중국 정·재계와 학계에 영향력이 있는 한팡밍(韓方明) 박사가 주도해 만든 단체로, 외교·국제관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의정부시는 2015년부터 차하얼 학회와 ‘한·중 평화포럼’을 공동 개최한 것을 계기로 안병용 시장이 안 의사 동상 유치에 나섰다. 결국 의정부시는 지난해 12월 제2회 한중평화포럼을 열면서 차하얼 학회와 안 의사 기념사업 관련 협약(MOU)을 맺고 동상 유치를 성사시켰다. 안 시장은 3일 직원 2명을 베이징에 보내 운송 계획 등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김기춘 구속 항의하려”…손가락 자해한 50대 남성 병원 이송

    “김기춘 구속 항의하려”…손가락 자해한 50대 남성 병원 이송

    서울 도심에서 1일 오후 열린 태극기 집회에 손가락을 자해했다는 50대 남성이 발견돼 경찰이 병원으로 옮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모(51)씨는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이용해 왼손 새끼손가락을 자르고서 붕대로 다친 부위를 감고 세종로 사거리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에 나왔다. 경찰은 집회 무대 뒤에 서 있던 이씨 손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인근 파출소로 데려가 응급치료를 하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씨는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팔에 성조기가 붙은 군복 모양의 상의를 입고 있었다. 이씨는 병원으로 이동하기 전 손가락을 자른 이유를 묻자 “안중근 의사처럼 3·1절에 독립운동한 것처럼 한번 해주고 싶었다. 좌파가 너무 심해서 (그랬다)”면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된 데 항의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자해 이유를 밝혔다고 경찰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암벽 오르는 태극기 “잊지 말자 3·1절”

    암벽 오르는 태극기 “잊지 말자 3·1절”

    26일 경기 남양주시 불암산 쌩클암장에서 쌩곰등반클럽, 늘푸른수토일산악회, 차오름산악회 회원들이 3·1절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 새겨진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번 행사에 사용된 태극기는 안중근 의사가 혈서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이라고 썼던 것을 본뜬 것으로, 현재의 태극기와 차이가 있다. 연합뉴스
  • 탄핵 심판의 날 임박… 찬성 vs 반대집회 ‘일촉즉발 총력전’

    3·1절엔 광화문광장 등 행진경로 겹쳐 경찰, 충돌 사태 대비·헌재 경호 강화도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주말 탄핵 찬반 집회의 긴장감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 찬반 진영 모두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이번 주말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3·1절에도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며 총력전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5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4년 너희들은 끝났다’는 제목으로 민중총궐기 집회를 개최한다. 이어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는 슬로건으로 17차 촛불집회를 잇따라 연다. 이에 맞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은 서울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 태극기가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기치를 걸고 14차 태극기집회를 개최한다. 탄기국은 전세버스를 동원해 부산, 대구, 전주 등 전국 12개 지역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끌어모으는 등 총력전을 벌인다. 탄핵 찬반 진영의 이날 집회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 측과 국회 탄핵소추단의 헌재 최종 변론을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구호와 주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가 3월 10일 또는 13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2주가 탄핵의 향배를 결정짓는다는 판단에 따라 양측 모두 진영의 사활을 건 총력전을 벼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청년암살살수단 지원자를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탄핵안 기각을 위해 유관순·윤봉길·안중근 의사처럼 사즉생의 각오로 대한민국을 구할 애국열사를 모신다는 보수단체 회원의 글과 “탄핵안이 기각되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등의 진보진영 회원 글들이 다수 게재돼 유포됐다. 경찰은 지난 22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8명의 재판관별로 2~3명의 경호 인력을 배치해 출·퇴근 시간 근접 경호에 나선 데 이어 23일엔 헌재 주변 경비병력도 2배로 늘렸다. 퇴진행동 측은 23일 성명을 내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공범자들을 끌어내릴 수 있게 시민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기를 바란다”면서 “국민이 권력을 이긴 역사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에 맞서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박사모 회장)은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 “서울광장에서 을지로입구역, 한국은행 사거리까지 채우자. 300만의 기적을 만들면 우리가 이긴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갈등은 3·1절에 절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특히 태극기집회를 주관하는 탄기국 측이 서울광장 대신 그동안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헌재, 삼청동 총리 공관 등 세 코스를 미리 선점해 경찰에 집회를 신고했기 때문이다. 기존대로 행진을 진행하려는 촛불집회 주최 측과 신고한 경로로 행진하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뒤엉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경찰 역시 충돌 사태에 대비해 다수 경찰력을 동원해 집회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25일 212개 중대 1만 7000명의 경찰력을 서울 도심에 배치하기로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만국전도’ 등 보물문화재 5점 도난당했다

    ‘만국전도’ 등 보물문화재 5점 도난당했다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만국전도’(萬國全圖)를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5점이 도난당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문화재청은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보물 제1008호) 중 만국전도, ‘고희 초상 및 문중유물’(보물 제739호)의 초상화 2점, ‘황진가 고문서’(보물 제942호) 중 문서 2점의 도난 사실을 최근 홈페이지 내 도난 문화재 정보 코너를 통해 공개했다. 만국전도는 조선 현종 2년(1661)에 박연설이 그린 가로 133㎝·세로 71.5㎝ 크기의 지도로, 바다와 육지를 다른 색으로 칠한 것이 특징이다. 1993~1994년쯤 서울 동대문구에서 소유주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중 이 지도를 제외한 유물 7종 45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관리하고 있다. 고희 초상 및 문중유물(20종 215점) 가운데는 고희를 그린 채색 초상화 2점이 2012년 11월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고희(1560~1615)는 조선시대 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했던 인물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황진(1550~1593) 장군의 후손에게 전하는 황진가 고문서(14종 125점) 가운데 1615년 임금이 내린 사령장인 교지(敎旨)와 1856년 남원부사가 발급한 잡역 면제 문서인 완문(完文)은 1993년 도난당했다. 이들 문화재는 모두 특정 가문에 대대로 전해 오는 지류(종이류) 유물로,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다. 그간 문화재청은 모든 지정문화재의 정보를 개괄적으로 정리해 놓은 홈페이지 문화유산 정보 코너에는 이들 문화재의 도난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도난 또는 소재 불명으로 조사된 보물은 ‘안중근 의사 유묵’(제569-4호)과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제1043호)을 포함해 모두 13건이며, 국보 중에는 안평대군의 글씨인 ‘소원화개첩’(제238호)이 2001년부터 16년째 사라진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만국전도는 2009년, 황진가 고문서의 문서들은 2012년에 각각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환수 가능성을 고려해 한동안 도난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도난 사실을 공개한 문화재들은 모두 1980년대에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라며 “5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기조사를 통해 지류 문화재의 실태를 더욱 정밀하게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 플러스]

    예비 전역군인 상대 일자리카페 ●강서구(구청장 노현송)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들의 취업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지역에 있는 육군 제3765부대(17사단 101연대)로 ‘일자리카페’를 확대 운영한다고 21 밝혔다. 지난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영풍문고 김포공항점에 신설된 일자리카페가 입소문이 나면서 부대 측에서 취업 특강을 제의해 왔다. 구는 다음달부터 예비 전역군인을 상대로 찾아가는 취업특강을 월 1회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넷째 수요일 천원의 행복나눔 공연 ●광진구(구청장 김기동) 광진문화재단은 오는 9월 27일까지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천원의 행복 나눔’ 공연 시리즈를 운영한다고 21일 밝혔다. 뮤지컬 ‘별의 여인 선덕’ 등 매월 뮤지컬, 연극, 무용, 국악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관람객들에게 나눔을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관람료 1000원은 전액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독립운동가 10인 사진 전시회 ●강남구(구청장 신연희) 강남구는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다음달 1일까지 구청 본관 로비에서 ‘독립을 향한 열망,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10인’이라는 주제로 독립운동가 사진을 전시한다.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유관순 열사, 신채호 선생, 박은식 선생, 안창호 선생, 안중근 의사,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등 대표 독립운동가 10인의 인물화와 기미독립선언서 실사본 사진을 볼 수 있다. 인물화는 가로 60㎝, 세로 86㎝ 크기다.
  • 국채보상·국권 회복 이끈 독립운동史 되새긴다

    국채보상·국권 회복 이끈 독립운동史 되새긴다

    대한매일신보 국채보상운동, 대구에서 110주년 기념식‘친일 매국 비판’ 신채호 선생 청주서 순국 81주기 추모식 구한말 국권 회복을 위해 전개한 국채보상운동 110주년 기념식이 21일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국채보상운동은 1904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특히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2000만 동포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문과 함께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민족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은 3개월 만에 사실상 좌절됐지만 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1주기 추모식이 21일 충북 청주의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 및 묘정’에서 열린다고 20일 밝혔다. 1880년 충청도 회덕현(현재 대전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매일신보 등에 친일파 매국행위 비판과 국권회복운동을 주창하는 내용의 논설을 게재해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자 대만으로 가던 중 일제에 체포돼 안중근 의사가 순국했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뤼순 감옥에 수감돼 1936년 옥사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용산 “청소년과 건축 여행 떠나요”

    용산 “청소년과 건축 여행 떠나요”

    서울 용산구가 건축가를 꿈꾸는 지역 청소년을 위해 특별한 현장수업을 벌인다. 전문가와 함께 용산의 건축물을 돌아보며 건축과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동시에 높이는 내용이다.구는 다음달부터 11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아름다운 건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20일 밝혔다. 아름다운 건축여행은 지역 중고생들이 건축가, 건축기술사 등 전문가와 함께 지역의 유명 건물과 건축 공사장, 건축사사무소 등을 둘러보며 직업 탐방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내용이다. 탐방지는 ▲용산 관광호텔 공사 현장(3월 24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4월 28일) ▲D뮤지엄 (6월 28일) ▲효창제5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현장(9월 27일)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소율(10월 27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11월 17일) 등이다. 첫 방문지인 용산 관광호텔은 국내 최대 규모(1710실)의 관광 숙박시설로 오는 6월 준공 예정이며 용산역과 구름다리로 연결된다. 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제33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는 등 지역의 대표 건축물로 꼽힌다. 용산구는 지역 중·고교를 통해 참여 학생을 모집 중이며 참가 인원은 학교별로 20명 이내다. 학생들은 구청에 모여 버스를 타고 탐방지로 이동하며 약 3시간 동안 현장을 돌아본다. 구는 지난해에도 6개 학교의 학생 91명과 함께 국립한글박물관, 아모레퍼시픽 공사 현장 등을 돌아봐 호응을 얻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막연히 꿈만 꾸는 것보다 현장에서 실제 어떤 일을 하는지 보면 학생들이 느끼는 바가 클 것 같아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편 용산구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서는 지역 학생들을 상대로 진로진학 상담 및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수시로 운영 중이다. 센터 홈페이지(miraeya.or.kr)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한 뒤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라이프 톡톡] 9급 출신 ‘삼각지 터줏대감’ 국립서울현충원장 되다

    [라이프 톡톡] 9급 출신 ‘삼각지 터줏대감’ 국립서울현충원장 되다

    서울 동작구 현충로 210. 스쳐 지나가는 길이라도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으로 후세에 귀감이 되는 17만 2000여 위(位)의 호국 영령이 안장돼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호국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그곳의 운영과 관리를 책임지는 국립서울현충원장은 누구보다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 공직사명감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국방부서만 37년 근무한 ‘안중근의 후손’ “오늘 아침 원장 자격으로 현충탑을 참배하는데 참으로 뭉클했습니다. 깊은 책임의식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이 국민들 애국심의 원천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임 안수현(57) 국립서울현충원장은 부임 첫날인 지난 17일 현충탑 참배로 첫 일과를 시작했다. 눈을 감고 순국선열들에게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안 원장은 “안장된 호국영령들을 편안히 모시고 미래세대에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위업을 알리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충주상고와 대전실업대 토목과를 졸업한 뒤 1980년 9급공무원 공채시험을 통해 공직에 입문한 안 원장은 36년 10개월 동안 국방부에서만 근무한 ‘삼각지 터줏대감’이다. 국방부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는 9급에서 시작해 고위공무원단(고위공무원 나급)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노하우는 의외로 평범했다. 안 원장은 “공직 초창기부터 최선을 다하면서 긍정적으로 근무했다”면서 “열린 마음으로 목표 의식을 가졌고, 목표 달성이 안 되더라도 더 열심히 일하니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건설 및 토목분야가 전문인 그는 국방부에서 건설관리과장, 시설기획과장, 운영지원과장 등 주요 핵심 과장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주한미군기지이전 사업단에서 3년여 근무하면서 방대한 이전 사업 실무작업을 관장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일선 부대 창설 등 방위력 확충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게 가장 뿌듯하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고 말했다. # “미래세대에 호국영령 위업 알리겠다” 국립서울현충원 근무는 1983~1985년에 이어 두 번째다. 지금은 묘역이 가득 차 추가적인 안장이 이뤄지지 않지만 당시에는 안장행사가 많았다고 한다.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새로운 중책을 맡은 만큼 순국선열들을 충심을 다해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집안 먼 할아버지뻘인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를 인생의 영원한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안 원장은 “연간 300여만명이 방문하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열린 현충원’, ‘호국충무공원’으로 만드는 데 남은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정두언 “민주당 경선, 이순신 장군 나와도 文에 진다”

    정두언 “민주당 경선, 이순신 장군 나와도 文에 진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으로 영입된 정두언 전 의원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경선 필승을 예언했다.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정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대해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며 “20만으로 추정되는 소위 ‘친문’ 결사대가 있다. 구조적으로 경선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안중근 의사, 이순신 장군이 나와도 힘들다”며 “세종대왕이 나오면 혹시 이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그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0년 전 대선처럼 여야의 대결이 아닌 이명박, 박근혜 대결과 비슷한 모양으로 문재인과 안희정 대결처럼 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선택 가능성에 대해 정 전 의원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에서 역선택이 실제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며 “사실상 대선 결과가 거의 나왔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 전 대표가 엄청난 실수를 할 경우 여권의 다른 인사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행보하지만 ‘남자 박근혜’와 같은 지적도 듣고 있다. 위태위태해 보인다”고 평했다. 정 전 의원은 남 지사가 속한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쏟아냈다. 정 전 의원은 “새누리당의 독선적인 모습을 보기 싫어서 나왔는데 바른정당도 의원들 몇 명이서 자리 나눠먹기 하면서 즐기고 있다”며 “제가 이거는 잘못됐다 해서 입당을 안하고 있는데 바른정당도 사실 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23. ‘티 안나게’ 그 이에게 들이대는 방법?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23. ‘티 안나게’ 그 이에게 들이대는 방법?

    Q. 안녕하세요. 예전 남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광명을 찾은 광광우럭따(30·여)입니다. 일 하다 만난 사람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겼는데, 나중에 혹시나 잘 안됐을 경우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 티 안나게 들이대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업계가 워낙 좁아 티는 티대로 다 났는데 잘 안되면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업계가 알고...... 하... A. 발렌타인데이에 때맞춰 기막힌 사연을 올려주신 광광님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밸런타인데이고 뭐고 안중근 의사님께 사형 선고가 내려진 날이지~ 해도 그래도 발렌타인데이라고 우리는 초콜릿을 사잖아요? 때마침 화이트데이와는 달리 발렌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하는 날이라고 하니, 여자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알아봅시다.사실 저도 먼저 들이대서 성공한 적이 없는 쑥맥인지라, 각종 단톡방에 광광님의 사연을 걸고 연애 현자들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 가랑비에 옷 젖는다… 그의 일상에 내가 스며들게 하라 본인이 먼저 들이대서 연애에 성공했다고 믿는 여성들의 지론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 입니다. 계속해서 가랑비를 뿌려 그의 일상에 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라는 것. 광광님과 비슷하게 회사 동료한테 들이대 결국 사귀게 된(그리고 지금은 헤어진) 구의동패리스힐튼(30·여)은 말합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건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어이쿠, 내가 너한테 빚을 졌어. 너 시간 될 때 사례 한 번 할게~’ 이런 식이지.” 그리하야 힐튼은 지속적으로 ‘챈스’를 만들었습니다. “셔틀 버스를 타고 집에 갈랬는데 동료가 사무실에 USB를 놓고 왔다고 나보고 먼저 가라는거야. 근데 나는 걔가 담배 피고 있는 걸 봤거든. 동료랑 같이 내려서 쿨하게 셔틀을 보냈지. 그리고 아직 거기 있길래, 가는 길에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다음에 밥 사주겠다고 얘기했지.” ‘걔가 담배 피는 거 안 봤으면 안 내렸니?’ 했더니 단호하게 “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동네 연애왕인 발렌타인칼퇴(30·여)는 좀 더 고급 스킬을 언급했습니다. “내가 멍석 까는 것을 상대방이 모르게 하라”는 것. 칼퇴의 멍석 깔기는 이렇습니다. “진심으로 칭찬하고 궁금해했어. 그러면 상대방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다 -> 계속 이 사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다 -> 얘가 나를 좋아하는 거라면 좋을텐데…의 경지로 가는 거지. 하지만 계획적으로 끼를 부린다거나 좋아하는 듯한 여지를 남기는 언행은 전혀 안 했어.” 이거 한 마디로 ‘Be a good man’ 이네요. 어렵습니다.   ◆ ‘네가 나에게 고백을 한다면, 내가 차지 않는다’ 는 신호를 줘라 닿으면베일듯한칼날같은남자(31)는 소개팅에서 남자가 애프터하지 않는 경우는 2가지라고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첫째, 내가 상대방이 맘에 안 드는 경우 둘째, 맘에는 들었는데, 상대방이 날 시원찮아 한다고 느낀 경우”라고 말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여자가 먼저 애프터 했을 경우 흔쾌히 만났고, 이후에 더 만났다고 합니다. 결국 남자 입장에서도, 들이댔다가 거절 당할 관계에는 배팅하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 남자친구를, 오랜 세월 사귄 직전의 남자친구도 모두 자신이 대시했다고 믿는 대치동패딩녀(30)는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에게서 오는 연락엔 매우 신속하게 답장을 했고 (연락을) 먼저 끊지 않았어. 어쩌다 스치듯 시도하는 스킨십에도 고분고분했지.”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고백을 한다면, 내가 차지 않는다, 라는 신호를 계속해서 줬어.” ◆ 여자는 먼저 “사귀자”고 고백하지 않는 게 핵심?…그러나 광광님의 말처럼 ‘나중에 혹시나 잘 안됐을 경우 쪽팔리지 않을 정도로 티 안나게 들이대는 방법’은 저 정도가 있을 것 같네요. 결국에는 먼저 “사귀자”고 고백하지 않는 게 핵심이라고 다들(특히 여자 사람들은)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광광님처럼 회사에서 만난 사람에게 들이댄 구의동패리스힐튼에게 광광님께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라는 말을 전했는데요. 광광님과 비슷한 맥락에서 여자들의 주 관심사는 “소개팅에 나가서 남자한테 애프터가 없는데 여자가 먼저 연락해도 될까요?”, “매번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치는 그 남자, 여자인 제가 먼저 번호 따도 될까요?” 인데요. 연락 안하고, 번호 안 따면 그냥 끝인 것입니다. 그냥 끝, 하고 싶으시면 연락 하지 말고 번호 안 따시면 되구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하면 ‘렛츠 두 잇!’ 하세요. 광광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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