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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핵실험 파장] 남북 문화교류도 ‘빨간불’

    [北 핵실험 파장] 남북 문화교류도 ‘빨간불’

    고구려 공동연구, 윤이상 음악회 등 주요 남북한 문화교류 사업들이 북한의 핵 실험으로 줄줄이 무산되거나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통일부에서 승인한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 프로그램은 올 들어서만도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발굴 및 봉환, 북한 전통문화 기록화 사업, 개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개성 역사유적 남북공동발굴조사, 고구려 유적 남북 공동조사 등 21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가 북한의 핵 실험 이후 사실상 멈춰선 것으로 확인됐다. 개성 역사유적 남북공동 발굴조사는 첫 발도 못 뗀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 위기에 놓였다. 이 사업은 지난 7월부터 60일간 개성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대포동 미사일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6월 말 북측이 돌연 출입금지를 통보해 길이 막힌 상태였다. 정세가 나아지는 대로 재개하기로 했지만 이번 핵 실험으로 논의 자체가 내년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위원장은 “정부가 대북 정책의 재검토에 나선 상황에서 이미 승인한 문화사업을 그대로 추진할지 알 수 없다. 올해 9억 3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편성 단계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설 기반이 될 사업으로 꼽혀 온 고구려 고분군 공동 실태조사와 평양 안학궁터 공동 발굴조사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큰 차질이 예상된다. 북한의 탈춤·판소리 등 문화재를 비디오·책자로 만들어 보존하는 북한 전통문화 기록화 사업은 1차 사업 마무리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다. 고려대 부설 한국학연구소가 북한 대외전람총국과 함께 지난해부터 봉산탈춤, 고려청자, 칠기, 민속춤 돈돌라리에 대한 기록 교환을 끝냈지만 핵 실험으로 세미나가 연기됐다. 유영대 한국학연구소장은 “미사일 발사 뒤 2개월 만에 접촉에 성공해 엊그제까지 연락을 취했는데 핵 실험 이후 또 단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25차 윤이상 음악회에 참가할 예정이던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와 국내 음악가 등 61명도 현재 방북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재단 박재규 이사장과 이사들은 축전의 연기를 북한측에 요청하는 방안, 예정대로 방북해 정명훈씨 등의 협연 없이 20명 정도의 관계자만 참관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며 11일 오전 중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정명훈씨는 10일 오후 재단측에 불참을 통보했다. 양무진 재단 이사는 “이런 때일수록 민간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만큼 참가를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 있다.”고 전했다. 2009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남북한 정부가 추진한 유해 발굴 및 봉환 사업도 2차 조사를 위한 관계자간 접촉이 미뤄지고 있다.KBS와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함께 만들어 온 국내 최초의 남북합작 드라마 ‘사육신’이 북핵 실험을 계기로 연내 방영이 불투명해졌으며 영화 및 드라마 ‘황진이’도 방북 촬영이 어렵게 됐다. 황성기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2007년 예산안] 소외아동 월6만원 자립비 적립

    [2007년 예산안] 소외아동 월6만원 자립비 적립

    27일 확정된 내년 예산안 가운데 이색사업들을 간추린다. ●소외아동 자립자금 지원 시설보호아동과 가정위탁아동·소년소녀가장 등 국가 보호가 필요한 아동 3만 7000명에게 계좌를 개설, 매월 6만원씩 적립해 만 18세 이후 자립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한다.3만원은 국가에서, 나머지 3만원은 아동이 보호자나 민간후원금을 활용해 적립토록 한다. 내년 하반기 금융기관을 지정할 계획이며 33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비정규직 근로자능력개발카드 능력개발카드를 받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노동부장관이 인정한 훈련기관에서 수강하면 비용을 정부가 지불한다. 비정규직 근로자 107만명 가운데 참여의사를 밝힌 4만 3000명에게 1인당 평균 50만원,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된다. ●역모기지론 특별한 소득원 없이 주택만 소유한 고령자에게 주택을 담보로 사망할 때까지 대출금을 지급,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 대상은 부부가 모두 만 65세 이상으로 공시가격이 6억원 이하인 주택에 대해 3억원 내에서 대출이 가능하다. ●저소득층 에너지시설 효율개선 기초생활수급 가구 중 노인, 모자,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가구 등의 보일러 설비를 가스보일러로 교체하고, 단열시설을 보완해주는 사업이다.9000가구에 100억원이 지원된다. ●u-디펜스 협력사업 1개 군부대를 u-시범부대로 선정해 무인경계시스템·텔레매틱스 기반 물류시스템, 원격 의료시스템, 생체인식 기반 출입관리시스템 등 군·민간에서 미래 수요가 높은 과제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u-시범부대는 병력·장비가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가 수집·분석·전파되므로 전투수행 및 군수지원 능력이 극대화된 최첨단 IT 부대다.50억원이 지원된다. ●e부동산 큰 장터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도의 시행으로 실거래가와 거래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이를 DB로 구축하는 사업. 부동산시장의 투명화를 유도하기 위해 12억원이 투입된다. ●u-119 신고시스템 119응급출동시 환자의 병력을 미리 알고 출동하는 ‘맞춤형 119서비스’다. 신고자들이 미리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예방 병명·건강상태 등을 등록하면 보호자에게도 자동 통보된다. 차량 내비게이션과 119신고시스템을 연계, 낯선 곳에서 신고해도 신고자 위치를 신속·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30억원이 투입된다. ●소득인프라 구축 국세청은 효율적인 세원 확보와 근로장려세제(EITC)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개인별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내년 164억원을 이 부문에 투자한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사업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2009) 및 순국 100주년(2010) 기념사업으로 남북이 함께 중국 다롄시 뤼순에서 발굴 작업을 한다.1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정보교류·공동조사·발굴·봉환 등 4단계로 나눠 추진된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부고]

    ●오정희(미국 거주)의희(전 팬텀 대표)승희(포항1대학 교수)건희(미국 거주)씨 모친상 조서언(전 인천교대 교수)손수일(전 한국산업은행 부총재보)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410-6919●고흥욱(재미 언론인)흥호(재미 의사)흥련(전 서울은행 지점장)흥길(국회의원)은정(방송인)씨 모친상 윤병일(전 방송인)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10시 (02)3410-6915●김준우(NorthWestern 의과대 교수)성희(PSL 원장)씨 부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정용모(워커힐 상무이사)씨 부친상 김종현(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성연동(목포대 교수)연상(21세기병원 부원장)씨 모친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10시 (02)3410-6916●김용일(테스콤 연구개발 팀장)용식(신성상사 대표)씨 모친상 황태순(용인 신촌초등학교 교사)씨 시모상 이영식(전 서울시 경찰 간부)유선호(서울시교육청 행정관리담당관)권오차(사업)오오시바죠지(목사)씨 빙모상 26일 국립의료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2)2262-4820●김상근(한국농촌공사 기획이사)씨 모친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3●김권회(전 농협중앙회 연기군지부장)씨 모친상 2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2)3410-6909●류현주(과천중 교사)지연(바이올리니스트)선화(변호사)씨 부친상 김성강(충현고 교사)고일환(연합뉴스 정치부 기자)심익창(변호사)씨 빙부상 25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2)2650-2741 ●이승환(기무사령부 수사단장)씨 부친상 한대곤(경상종합건설 대표)황재윤(주중 세무협력관)박기수(박기수내과 원장)주재훈(차병원 의사)씨 빙부상 26일 동국대 경주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54)776-9411●정종득(한국도로공사 경인영업소 소장)씨 별세 원순(군인)요한(학생)씨 부친상 2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8●심기유(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씨 별세 황주(자영업)철주(〃)석주(〃)씨 부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 (02)3010-2235●노덕용(경기고속 팀장)씨 부친상 송창호(좋은아침 나노세라 부장)김호식(BJIF 〃)유제광(사업)씨 빙부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010-2233●유승철(자영업)지연(모두액세스 투자팀장)소연씨 부친상 이정원(효성 홍보팀 부장)김병준(자영업)씨 빙부상 26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921-2099●안중근(B&T영업)상근(자영업)씨 부친상 안재무(자영업)재은(회사원)김재열(강동경찰서)씨 형님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010-2264●임종성(KBS PD)종근(미르이앤씨 대표)씨 모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2)3010-2295●김창진(전 동아일보 화상부 차장)씨 상배 연희(남양주 충명보건병원 정신과 과장)선희(행텐 대리)씨 모친상 이경식(아티스 대리)씨 빙모상 26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11시30분 (02)392-2899●김태현(국회도서관 직원)대현(미국 거주)씨 모친상 최창훈(신창건설 이사)씨 빙모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7●정수영(고려대 명예교수)씨 별세 병우(전 기업은행 종로지점장)병주(재미 사업)병재(경기대 경영대 교수)명희 선희(우성여성병원 부원장)씨 부친상 조유근(서울대 공과대 교수)임우성(우성여성병원 이사장)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410-6906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나.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손가∼’ 100년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국채를 일본에 상환하고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고자 이심전심으로 불렀던 ‘국채보상가’ 중 일부이다. 당시 국채 1300만원은 국가의 존망을 흔들었다. 애국인사들은 2000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애국의 불길 지펴 이에 고종황제는 ‘불가흡연’을 외치며 요원지화(燎原之火)를 지폈고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는 국운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확대시켜나갔다. 임금에서 백정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불길처럼 타올랐다. 특히 두산그룹 창업주로 당시 ‘박승직 상점’을 운영했던 박승직씨는 100원이라는 거액을 쾌척(1907년 2월23일자 대한매일신보)해 불길을 드높였다. 결국 이 운동은 일제의 온갖 탄압으로 1년여만에 막을 내렸지만 망국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진 민족의 가슴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애국의 불꽃을 심어주었다. 이로부터 90년이 지난 1997년 11월,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선언했다. 말 그대로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것. 그러자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모으기운동’에 적극 나섰다. 돌반지며 장롱 속의 금비녀 등을 손에손에 들고 은행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를 본 외국 매스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90년만에 ‘국채보상운동’이 재현된 셈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저력과 5000년 역사에 최초의 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되는 ‘국채보상운동’이 100주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새삼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영호(66) 전 산업자원부 장관. 경제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97년 일본 경제학자가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경제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장’이자 100주년기념사업 공동대표를 맡아 그 정신과 취지를 알리는 데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말이었다. 김 전장관은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 경북대에 복직했다. 오랜만에 모교에 돌아온 그는 대구지역 경제·상공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하나의 큰 깨달음에 이른다. 즉, 대구에서 발상된 국채보상운동이 90년이 됐건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세계사에서 유례 없었던 민족운동이 왜 역사 속에 묻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문희갑 대구시장에게 찾아가 “이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며 90주년기념을 반드시 이슈화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설득했다. 아울러 대구지역 언론사 등을 찾아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97년 2월 드디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최초로 ‘국채보상 90주년’기념 행사가 열렸다. 그해 10월에는 ‘90주년 국제심포지엄’까지 개최되면서 고귀한 민족정신을 여러 나라에 알렸다. 이때 김 전장관은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빚이 1300억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며칠후 피셔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답장과 함께 “한국 정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1300억달러의 규모를 어떻게 아느냐.”라며 놀라워했다. 이 서신의 내용은 국내 경제·금융계에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역설적으로 당시 한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얼마만큼 안일하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99년 10월 외채탕감을 위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를 개최, 그나마 한국의 체면을 세운다. 그해 12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완공됐으며, 현재 대구 일대의 중심공원으로 자리잡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 광복 61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모호텔 커피숍에서 김 전장관을 만났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겸 IMF사태 10주년을 맞아 제2차 대구라운드 개최와 기념관 건립 추진 등을 준비하느라 바쁜 틈에 잠시 시간을 냈다. 앉자마자 국채보상운동의 중요성과 역사적인 의미에 목소리를 높인다. “강만길 교수는 최초의 시민운동이라고 했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 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했습니다. 또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최초의 NGO가 중심이 된 국민적 사건으로, 박용옥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적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이어 “당시 정부가 빌린 돈 1300만원을 못갚게 되자 국민들이 술 안 마시고 담배를 끊어가며 갚겠다는 눈물겨운 운동이 아니냐.”면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역사적 사건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대구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이준 열사의 부인이, 평양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 등도 참여할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 즉 ‘부추김과 꼬심’을 고발하고 비판한 전국민의 외자경계 운동이기도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신국채보상운동’이라는 IMF사태 때에는 그렇지 못해 우리들에게 숙제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 서민들은 숨겨놓은 돌반지까지 털어가며 외채갚는 데 앞장섰지만 정부나 금융관계자들은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가 IMF의 빚을 다 갚고 난 직후의 일입니다. 당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현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했더라면 적어도 200억∼300억달러는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을 했어요. 돈이 오고가는 데 있어서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책임도 마땅히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이같은 책임문제를 따지기 위한,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외채탕감운동을 예로 든다. 대표적으로 주빌리(Jubillee)운동과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거래 과세운동연합) 등이다. 김 전장관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거래되는 돈의 규모는 하루 1조 8000억달러인 데 반해 물동량은 200억달러도 채 안된다.”고 전제한 뒤,“물건뿐만 아니라 돈거래에 대한 세금도 매기고 규제하자는 것이 아탁운동.”이라면서 돈 거래액에 0.25%의 세금만 물어도 1년에 1500억 내지 2000억달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돈으로 빈국의 부채탕감을 도와주고 문맹퇴치와 지구온난화 방지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 자산 팔아 IMF 빚 갚은 건 잘못” “내년은 국채보상운동의 100주년이자 IMF체제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정말 반성할 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캉드시 전 IMF총재가 임기를 마치고 주빌리운동 자문관으로 간 것을 보십시오. 이는 채권자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난센스죠.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바보같이 빚을 갚았는지 알 수 있지요.” IMF 빚은 한국의 자산을 외국에 팔아서 갚았으며 이는 결국 우리 주요 기업들의 외국자본율만 높아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 에너지 등과 관련된 회사는 절대 안 내주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포철까지 일부 외국에 내다팔았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IMF는 분명 한국에 빚이 있다. 그 빚을 갚아야 진정으로 IMF 위기가 끝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금융기술이 부족해 그같은 일이 발생한 만큼 IMF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한국에 ‘국제금융기술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세계가 공감하는 일이며 우리 정부도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FT(금융기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IMF에 당당히 요구할 권리 또한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나라는 외국자본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외환은행 사태를 보십시오. 개방을 하되 적어도 안방과 기둥뿌리는 지켜야 하지요. 이젠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으로 경제적인 주권회복에 국가나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지요.” 김 전장관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일찍부터 ‘기술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85년 오사카시립대학 교수와 92∼94년 도쿄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많은 경제서적을 남겼다. 특히 ‘기술경제론’은 일본 100개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3년 전 유한대학을 국제적인 종합대학으로 만들어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0년 합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62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65년 공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 ▲71년 하버드대·일본 아세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73∼88년 경북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85년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박사 ▲85∼88년 오사카시립대교수 ▲92∼94 도쿄대 교수 ▲97년 경북대 경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일본 경제학자 설문조사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 경제학자’ 선정 ▲2000년 산업자원부장관 ▲01년∼현재 중국 옌볜대 석좌교수 ▲03년∼현재 유한대학장 ●상훈 다산경제학상(92년)●주요 저서 한국경제의 분석,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일어), 한·일간 기술경제질서론(공저) 등 다수 km@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지도자는 길 안내자일 뿐/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지난 1일 속초항을 출발해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비록 공해지만 북한 앞바다를 지나 삼국의 역사가 교차한 연해주를 밟은 심정은 미묘했다. 연해주는 한민족의 치열한 삶의 역사가 깃든 땅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서부터 구한말 안중근 의사와 이상설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국으로서도 수천㎞가 접경돼 있고, 전조(청나라)의 국토였던 땅이다. 그럼에도 베이징조약(1860년) 이후 자신들이 써온 역사를 들추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왕래마저 감시받는 억울한 땅이기도 하다. 우리 세계청년봉사단(Copion) 임원진이 연해주를 방문한 것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의 연해주 귀환과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고려인들이 3대에 걸쳐 피와 땀으로 개척하고 정착한 땅을 뒤로 하고 다시 연해주로 되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서구화에 짓눌린 우리의 원형을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고려인들의 귀환 발길은 더뎠고 정착노력도 활발하지 못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표본이라 할 전체주의 공산국가에서 살아온 고려인들이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을 통해 이미 민족사상보다는 개인, 가치보다는 돈을 중시하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치열한 선택을 하는 것을 봤다.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70년의 세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이 벌써 그렇게 변화시켰다니….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민족이라는 깃발 아래 눈물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는 식민시대의 헌신적인 민족정신을 가진 사람들로 추상하고 미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성직자인 나 자신의 내부에도 민족주의에 대한 동경이 숨쉬고 있어 개인의 안전과 행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연장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도발과 항전을 정당화하는 집단의식이 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분쟁을 장기화시켜 수많은 동족이 살상되는데도 멈추지 못하게 되는 동일한 의식구조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출가 35년을 다하도록 내 안에 아직 씻지 못한 극단과 전제의 무서운 업을 느꼈다. ‘나와 우리는 모든 국민 자신이 잘 조어(調御)되는 자기 확립과 자기 형성의 길을 갈 때 궁극의 자유와 안정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내 안에서 자유와 안정을 찾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장 불교적인 국가 형태가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평등해 계급도 없고, 통솔자도 없고, 통솔되는 자도 없고, 대통령과 지도자마저 그 속의 한 일원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할 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전체 속의 개인보다 개인을 위한 전체를 이룩해가는 조화로운 노력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민족과 개인의 행복, 전체와 개인의 행복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조정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뒤척거리다 텔레비전을 통해 들려온 대통령의 8·15 경축사 “민주주의 원리와 핵심은 상대주의와 관용입니다.”라는 언급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 상대주의의 근원은 불교의 연기관이며, 존재에 대한 연기적 사고만이 대통령이 짧은 경축 연설문에서 12번이나 언급한 ‘평화’를 담보할 근본사상이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나는 오직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정리한다. 이를 본받아 우리 지도자도 구제자(메시아)라고 말하지 말고, 모든 국민의 ‘좋은 벗(善友)’이 되고 대통령이 좋은 길 안내자가 되는 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날개를 접고, 절대주의자의 극단적 선택은 발 붙일 곳을 잃어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2) 민족·역사상징(하)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2) 민족·역사상징(하)

    수도(首都)는 나라의 상징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길지(吉地)에 자리잡았고, 그 땅의 기운이 쇠했다고 여겨지면 또 다른 길지로 옮기기도 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긴 세월 동안 수도였던 지역은 신라의 경주(慶州)였는데, 이곳이 세운 ‘천년’ 기록은 세계사에서도 그 유사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 덕이었을까. 경주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여럿 있거니와, 눈에 스치는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 아닌 것이 없다. 평양(平壤) 또한 길지를 거론하는 자리라면 결코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아직은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 입증되지 못했으나, 개국시조 단군(檀君)이 처음 나라를 연 곳으로 전해지는 성지(聖地)일 뿐 아니라,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하여(427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생기를 되살렸던 곳이기도 하다. 광복 직후, 분단된 국가의 한쪽 수도가 되어 또 다시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로 평양은 질긴 생명줄을 안고 태어난 것 같다. 정치적 논리와 이유를 떠나 단순히 땅의 기운으로만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이러한 문장이 주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헌법 조문에 나오는 듯 착각할 정도로 당연시한다. 사실 사전적으로 보거나 논리적으로 볼 때, 이는 당연한 명제이다. 서울이란 말의 어원은 높고 신령하다는 우리말 ‘솔’에 벌판·큰 마을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이 합쳐져 변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이 말은 나라의 ‘가장 높고 신령한 벌판’, 즉 수도를 일컫는 보통명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서울을 특별시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즉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변질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변질된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우리가 ‘서울’로 부르고 있는 곳의 원래 이름은 한강(漢江)의 북쪽이라는 뜻을 지닌 ‘한양’(漢陽)이었다. 이 땅의 역사 또한 평양과 마찬가지로 부침이 잦았다. 일찍이 온조가 남하하여 이 일대에 백제를 세웠다가(BC18년) 고구려에 빼앗겨(475년) ‘남(南)평양’으로 불렸고, 그로부터 900여년이 지난 1394년에 이르러 다시 조선의 수도로 정해졌던 것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가 끝난 1945년에 비로소 ‘서울’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어 오늘 날까지 그 영화를 이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 역시 보기 드문 길지임에 틀림없다. 이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영욕을 간직한 채 굳건히 맏형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서울’을 서울로 되돌리는 과감한 결단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경주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석굴암(石窟庵)의 아름다움과 정교함, 그리고 역학적 구조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석굴암 창건과 관련한 김대성(金大城)의 효행과 인연도 잊지 못할 감동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굴암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는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설이 말해주듯이 석굴암과 불국사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을 잇는 타임머신이다. 그래서 일까. 석굴암과 불국사 관람 중 하나를 놓치면 아쉬움과 허전함이 오래 남는다. 시간 여행이 끊긴 탓이겠다. 실제 불국사를 둘러 본 후 석굴암에 오르는 산행은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코스이기도 하다. 인도나 중국의 웅장한 석굴 사원을 보고 와서 석굴암의 초라함을 빗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인류 유산의 가치 판단이 꼭 규모로만 기준 되는가를 묻고 싶다. 비록 석굴암은 상대적 규모가 작으나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석굴암 안에 질서있게 배치된 38구의 석불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눈 여겨 보지 않을 수 없는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 중에 ‘단군의 자손’이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것이 기억난다. 노랫말처럼 한민족은 동질성과 혈통성을 지닌다. 물론 상징체계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곰이 여인으로 변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는 신화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단군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늘 자리를 같이하여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였다. 그런 점에서 단군이 지닌 민족적 상징성은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 세계 대부분의 민족·국가마다 개국신화가 구심체 역할을 하듯이, 우리도 단군할아버지를 그렇게 활용(?)하고 대접해 드리면 될 일이다. 근래,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像)의 목이 훼손당하는 사건으로 민족화합이 분열되면 큰 일 이라는 기우에서 덧붙이는 말이다. 단군에 비하면 광개토대왕(재위 391∼413)에 대한 시비는 없는 듯하고, 또 없을 것이다. 앞으로 10만원 권 지폐가 발행된다면 그 모델로 광개토대왕을 넣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것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과연 광개토대왕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우리 강토를 크게 넓힌 업적이 첫째 이유가 되겠다. 반만년 우리 역사상 주변국을 상대로 이런 호기(浩氣)를 부렸던 적이 어디 있었는가. 간혹 호기를 부리자면 주위를 평안(平安)치 못하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은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성군(聖君)이었다. 이에 사후, 그 업적을 기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으로 불렸던 것이다. 후대에까지 성군으로 길이 추앙되는 왕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재위:1418∼1450)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 만한 성군 중의 성군이었다.31년의 재위 기간 동안 한글 창제,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의 발명,‘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농사직설(農事直說)’ 및 지리지(地理志)의 편찬,4군 6진의 개척, 대마도 정벌, 아악(雅樂)의 부흥과 제정 등, 어느 왕이 평생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수없이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폐의 모델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아직까지는 세종대왕이 최고의 영위를 누리고 있다. 돈의 액수 차이가 모델의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아무래도 국민 정서상 세종대왕을 누르고 1위 자리에 오를 역사적 인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원효와 이황, 정약용은 각기 그 시대를 달리했지만 종교와 철학, 사상으로 민족문화를 살찌우고 꽃피운 인물들이다. 원효(617∼686년)는 불교로써, 퇴계 이황(1501∼1570년)은 성리학으로써, 그리고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실학(實學)으로써 최고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오래된 무덤에서 진리를 체득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만든 원효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평가된다. 더욱이 귀족보다 일반 백성을 위한 설법·교화에 치중한 그의 행적은 친근감마저 더 해 준다.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태두로 칭송될 만한 인물이다. 비록 그가 평생을 바쳐 궁구(窮究)한 학문은 중국에서 들여온 성리학이지만, 오히려 중국의 어느 학자보다 성리학을 발전시켰다고 이해된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살다 간 퇴계 선생!그 자세와 사상은 대대손손 흠모되고 존숭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웅지와 실기의 파란을 겪은 인물이다. 어찌 보면 그 스스로 편함에 안주하지 않은 때문이겠다.‘실용지학’(實用之學)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인 실학을 집대성한 그는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조선 사회의 각종 폐단을 개혁하는 여러 개혁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정조 임금의 사후, 그에게 닥친 17년 간(1801∼1818년)의 유배 생활은 고난의 세월이었지만, 오늘 날 그가 민족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잘못을 쉽게 고칠 수 없는 작금, 다산 선생의 시대는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이번 민족문화의 100대 상징 중에는 일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평화와 독립을 외친 인물들이 들어 있다. 이순신(1545∼1598년) 장군과 안중근(1879∼1910년) 의사, 유관순(1902∼1920년) 열사이다. 이들 선각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드라마는 아무리 보고, 들어도 지겹지 않다. 민족 정서의 코드(?)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다. 임진왜란 때 필승의 전략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장렬히 순국한 충무공. 한말, 제국주의 식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함으로써, 애국을 넘어 만국의 평화를 지키려 한 안중근.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꽃으로 승화한 ‘아우내’(병천 竝川)의 상징 유관순. 숙연한 마음으로 함축적 의미만을 적어 본다. 임학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발언대] 현충기념물 자녀와 함께 체험을/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죽으나 사나 나의 소원은 조선의 자주독립이며 그러한 독립된 나라에서 청지기가 되길 소원” 하셨습니다.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폭살하고 순국하던 순간까지도 의연한 기개와 절개를 지켜 지켜보던 일본인까지도 감동시킨 안중근 의사의 위국·헌신정신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60여년동안 우리는 6·25전쟁의 폐허속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우리들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져왔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며, 북한의 미사일과 핵 개발은 민족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과거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중국도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변방의 소수민족 역사로 왜곡해 중국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지역·계층간 이념대립과 가치관 혼재, 노·사문제,2분법 사고 등 갈등관계로 인한 혼란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원유가 폭등 등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 순국선열·애국지사들의 공헌과 희생에 감사하고, 그 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위대한 민족유산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제2의 광복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힘을 결집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 잠시 시간을 내서 자녀들과 함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묘소, 독립기념관 등 현충시설물을 찾아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양하는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갖기를 당부합니다. 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아! 안중근 “그어머니의 아들”

    |하얼빈 이지운특파원|“안중근이 태연하게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 그 모친의 가르침과 지지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중략)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안중근과 그 어머니의 고상한 정조를 찬양하였다.”4일 개막식을 가진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조선족민족예술관 1층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 전시관’. ‘장렬순국(壯烈殉國), 불후유언(不朽遺言)’이라는 제목의 전시물은 안 의사의 의거와 재판 소식을 전한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1909년 보도를 들어 이처럼 소개하고 있다. 조선족 민족예술관의 전시회는 “아들의 사형언도 소식을 접한 안 의사의 어머니가 ‘너는 정의를 위한 결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비굴하게 살려 하지 말고 마땅히 대의를 따라 죽어야 하고, 이것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이니라.’라고 했던 일을 대한매일신보가 찬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시 하얼빈 기차역 2층에 마련된 철도역사전시관의 ‘하얼빈역에서의 안중근’이란 제목의 전시에서도 역시 당시 현장을 전한 대한매일신보의 보도가 내걸려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보도 옆에는 안 의사의 거사에 대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찬양 발언이 함께 붙어 있다.“안중근 의사의 거사로부터 (한·중)양국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본격화됐다.”는 1963년 6월 ‘중국역사 관계에 대한 저우언라이의 담화’에서 따온 것이다. jj@seoul.co.kr
  • 安의사 유해 매장지 찾았다

    安의사 유해 매장지 찾았다

    |하얼빈 이지운특파원|‘안중근 의사 유해 남북한 공동 발굴단’이 지난달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 정밀 조사를 벌인 끝에 안중근 의사의 묘역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에서 개막식을 가진 ‘안중근 의사 기념 전시관’에 참석한 한 관련 인사는 “지난달 7∼12일 남북 공동 발굴단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 다롄 뤼순(旅順) 감옥 주변을 정밀 검사한 결과 이같은 성과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번 조사는 중국 정부의 협조 아래 실시된 것”이라면서 “조만간 다시 다롄시 정부의 도움을 받아 발굴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굴에 성공한다면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96년만에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다. 남북한은 그동안 유해 발굴을 위해 각각 노력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부는 유해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미국에 살고 있는 안 의사 손자와 DNA 일치 검사를 실시키로 했으며, 안 의사의 손자는 이미 검사를 위해 귀국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jj@seoul.co.kr
  • 安의사 항일정신·발자취 ‘오롯이’

    安의사 항일정신·발자취 ‘오롯이’

    |하얼빈 이지운특파원|‘하얼빈에서의 열하루’1909년 10월22일 밤 9시부터 11월1일 오전 11시25분까지. 단 열하루만의 인연일 뿐이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그 의의도, 빛도 바래지 않고 ‘안중근 의사 기념 전시관’을 비롯한 하얼빈시에 남아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하얼빈역에 도착,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붙잡혀 다시 기차를 타고 다롄(大連)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되기까지의 시간이었다. 시 관계자는 4일 “안중근 의사와 그 열하루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전시관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 전시관 앞에 놓인 안 의사의 흉상은 작지만 ‘큰 변화’를 담고 있다. 하얼빈시와 중국에서 안 의사를 기념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이맘 때까지만 해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조차 제대로 기념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기념과 상징물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이 있는 중앙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중국-일본과의 외교 문제나 소수민족 정책상의 문제도 하나의 요인이었다.“‘안중근’을 거론하면,‘중앙정부의 허가 없이는 안된다.’며 먼저 손사래부터 치더라.”는 게 ‘안중근 의사 숭모회’ 등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연 전시관은 결국 중국 정부가 마련한 나름의 ‘타협안’인 것으로 여겨진다. 별도의 옥외 동상이나 기념관을 허가하지는 않되, 이번에 새로 시 조선족 민족예술관을 짓는 참에 그 안에서 기념전을 열도록 했다. 상황에 따라 항구적인 기념관이 될 수도 있고, 일시적인 기념전이 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얼빈 기차역 2층에 마련된 ‘하얼빈역에서의 안중근’이란 제목의 전시회 역시 하얼빈의 ‘철도역사전시관’의 일부 행사로 설치된 것이다. 비록 간이시설처럼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계속 전시할 것”이라는 장구이화(張桂華) 부시장의 말대로라면, 역시 상설 시설이 될 수도 있다. 하얼빈역 구내에 있는 안 의사의 의거 현장에 저격과 피격 지점이 각각 화살표와 네모 모양의 색깔이 다른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나, 아무런 안내판이 없는 것도 결국은 일본과의 외교문제를 의식한 조치로 여겨진다. 장구이화 부시장은 안내판 설치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중국의 항일전쟁 영웅 리자오린(李兆麟·1910∼1946)의 이름을 딴 자오린 공원 안에는 안 의사의 친필을 새긴 유묵비도 세워졌다. jj@seoul.co.kr
  • 제기 몸부림 ‘늙은 공업도시’ 하얼빈

    제기 몸부림 ‘늙은 공업도시’ 하얼빈

    |하얼빈 이지운특파원|지난 3일 오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국제전람회장 앞 광장.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100여마리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쏟아져 내리는 종이 꽃가루 사이로 풍선더비가 떠오른다.‘제2회 하얼빈 한국주간’의 개막.‘늙은 공업도시’ 하얼빈이 재기의 몸부림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했다. 헤이룽장성은 한때 중국 군수공업의 핵심 거점이었다. 중국 최대인 다칭(大慶)유전과 안산(鞍山) 등 대규모 철강산지 등을 토대로 석유화학·철강·기계·발전설비·자동차·조선산업 등 중국의 근대화를 꽃피운 곳이다.1949∼1986년 중국 정부의 동북지역 공업부문 투자 가운데 중공업 투자가 92%를 차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군수공장(軍工企業)에 민수(民需)제품의 생산이 요구되면서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이 지역은 늙어갔고 ‘노(老) 공업기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2003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동북 진흥’ 천명은 하얼빈을 비롯한 노 공업기지에 의욕을 되돌려준다. 하지만 재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해 8월 국무원이 ‘동북노공업기지 진흥 촉진을 위한 대외개방 확대 실시 의견’을 내면서 동북지역에 대해서는 ‘수혈(輸血)’이 아닌 ‘조혈(造血)’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유기업 구조 개혁 박차 즉 100조원대의 대규모 자금 지원 계획으로 진행되는 서부대개발과는 달리 동북지역에는 자력갱생(自力更生)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규모 자금지원을 통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보다는 시장경제제도를 확대 도입하고, 국유기업의 소유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제도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게 중앙정부의 뜻이다. 지난해 ‘한·중 동북테크페어’ 개최 등 하얼빈시가 최근 잇따라 각종 국제 전람회 등을 개최하는 것도 이같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번 행사를 위한 하얼빈시의 노력 역시 눈물겹다. 지난 1회 행사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한 하얼빈시는 올해는 서너달 전부터 한국 기자들의 참석을 10여차례나 독려하고, 확인하는 정성을 보인 끝에 베이징의 한국 특파원단 일부와 함께 KBS 프로그램 ‘골든벨을 울려라’를 ‘유치’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이로 인해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랴오닝성 선양(遼寧)시의 한국 주간이 다소 빛이 바래게 됐다. 사실 중국내 10여개가 넘는 한국주 행사 가운데 하얼빈의 것은 규모나 실질적인 면에서 칭다오(靑島)나 선양을 따라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올해 안중근 의사 사진 전시회를 여는 등 특별히 이번에 그의 항일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도 한국의 시선을 끌기 위한 유인책이랄 수 있다. ●외국기업 투자유치 안간힘 4일 찾은 국제회의전시센터에서는 ‘한·중 상품전시회’가 한창이다. 전람회장 입구에 세워진 ‘하얼빈 경제개발구’‘동북아 과학기술단지’ 홍보 상징물은 도로·전기·보일러·인터넷·급수 등에서 완벽한 도시기초시설을 마련해놓고 있으니 주저말고 입주하라는 식의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수백여개 늘어선 부스마다에는 의류·식료·금속·생활 및 주방용품·건축자재 등 군소 업체들이 모두 들어찼다. 하지만 “실질 상담과 거래가 오가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고 중국의 한 관계자는 털어놓는다.“아직 한국기업이 이곳까지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동북 3성이 전혀 투자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시화율은 52.1%로 전국 평균 39.1%보다 크게 높아 앞으로 소비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높은 것은 장점이다. 실업률이 높아 유휴인력 활용이 쉽고, 본격적인 국유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유휴인력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임금과 비교한 노동생산성이 높고, 국유기업 중심의 중공업 발전으로 기술인력을 포함한 전문 인력이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바다와 접해 있는 랴오닝성의 다롄(大連) 지역을 제외하고는 내륙지방에 있다보니 물류 인프라의 취약 등 많은 단점 역시 분명하다. jj@seoul.co.kr
  • [문화마당] 왜 우리 지폐엔 ‘조선 얼굴’만 보이나/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조지 워싱턴, 엘리자베스 2세, 쑨원, 마하트마 간디, 마오쩌둥, 호찌민, 체 게바라, 에밀리아노 사파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베니그노 아키노, 후쿠자와 유키치, 넬리 멜바, 에드먼드 힐러리, 폴 세잔, 그리고 가우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지폐에 얼굴이 실린 인물들이 답이다. 물론 이들은 한 나라가 그 삶을 기리거나 세계에 내세워 자랑할 만큼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이끈 워싱턴을, 영국은 입헌군주 엘리자베스 2세를, 타이완은 국민혁명을 이끈 쑨원을, 인도는 영국에 맞서 싸운 간디를, 사회주의 국가 중국·베트남·쿠바는 민중 혁명가들을, 멕시코는 농민을 위해 일어선 사파타를, 칠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스트랄을, 필리핀은 민주화를 이끈 아키노를, 일본은 근대계몽사상가 후쿠자와를, 호주는 세계적 프리마돈나 멜바를, 뉴질랜드는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발밑에 둔 힐러리를, 그리고 유로화 통용 전 프랑스와 독일은 세계적 화가 세잔과 수학자 가우스를 자국의 상징 인물로 내세웠다. 이처럼 국민국가 시대를 사는 지구마을의 나라들마다 근현대의 시공간을 살다가거나 아직도 살아 있는 국민적 영웅들의 모습을 자국의 지폐에 아로새겨놓았다. 그러나 우리 지폐에 담긴 인물들은 조선시대 사람 일색이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했다 해도 세종대왕은 전제군주일 뿐이며, 이황과 이이도 양반지배질서의 사상적 기반을 닦은 유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철지난 봉건시대의 위인들을 주권재민의 공화정을 국체로 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지폐에 새겨 기리는 것은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 합치하지 않는 난센스다. 왜 우리는 근현대를 산 아니 살아 있는 인물들을 지폐에 담아놓고 기리거나 자랑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자주적으로 국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근대사와 분단·동족상잔·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 근현대 인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우리들의 눈에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입헌정치를 요구한 독립협회 운동을 탄압한 전제군주이자 일제에 나라를 앗긴 망국의 군주로 비친다. 워싱턴에 비견되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도 분단 고착화의 주범이자 독재자로 기억된다. 개화사상가 김옥균, 민족지도자 김성수, 문호 이광수, 애국가를 지은 안익태, 민족의 정서를 담은 가곡을 남긴 홍난파,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이긴 입지전적 한국화가 김기창 같은 이들도 친일파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인물들로 우리의 지폐를 장식한 이유는 고난의 근현대를 살아오며 갈가리 찢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줄 만한 당대인물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이룬 우리의 현재를 잘 대변하며, 앞서 남녀동권(男女同權)과 타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선각자들이 분명 있었다. 우리가 남북이 하나되는 국민국가 만들기와 아시아와 더불어 살기를 소망한다면, 분단을 막기 위해 애쓴 김구와 동양 삼국 사이의 진정한 평화를 꿈꾼 안중근이 다가설 것이요. 양성 평등 사회를 바란다면, 가부장권에 맞서 내 몸의 주권을 찾으려 한 신여성 나혜석이나 김일엽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요. 노동자와 기업가가 함께 사는 세상을 일구려 한다면,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유일한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꽃다운 생명을 바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눈에 가득 들어 올 것이다. 우리 지폐에서 이들의 얼굴을 볼 날이 어서 오길 바랄 뿐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 북한소설 저작권 계약 첫 출간

    북한과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첫 소설이 출간됐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북한 작가 임종상(73)의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와 최명익(1903∼?)의 ‘서산대사’등 2권을 우선 펴낸 데 이어 북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자모 역사소설’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판사측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북한의 저작물은 정식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중국을 통한 3자 계약형태였다.”면서 “출판 전에 저작권을 양도받은 첫번째 사례”라고 설명했다. 북측과 저작권 교류사업을 벌여온 남북경제협력문화재단은 지난 1월16일 “북측의 저작권 사무국 등과 실무협의를 벌여 북측 작가 및 저작권자 34명으로부터 출판물 47편에 대한 출판권을 양도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자모 역사소설’시리즈에는 강학태의 ‘최무선’, 김호성의 ‘주몽’, 이성덕의 ‘울릉도’등이 포함되며, 역사소설 외에도 ‘어린이를 위한 북한 전설시리즈’(가칭)등을 펴낼 계획이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김일성 주석이 항일 혁명 투쟁시기에 창작한 혁명 연극을 소설로 옮긴 작품.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1998년 남북문화교류차원에서 SBS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각색자 임종상은 ‘해돋이’‘불우한 렬사’등의 역작을 발표한 중견 작가로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를 모델로 한 단편 ‘쇠찌르러기’가 1998년 국내에서 출간됐었다. 최명익의 ‘서산대사’는 1958년 북한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으로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을 지켜낸 서산대사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민초들의 영웅적 기상을 그렸다.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였던 최명익이 한국 전쟁후 북한에서 어떤 문학관을 펼쳤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각권 1만 57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의도 벚꽃 봄마중

    여의도 벚꽃 봄마중

    눈처럼 하얀 벚꽃이 봄을 황홀하게 만든다. 꽃잎이 바람에 날려 ‘하얀 꽃비’의 향연이 시작될 때면, 가로등 불빛에 꽃잎이 은백색으로 빛날 때면 사람들은 봄의 매력에 신음을 토해낸다. 남녘에서 시작된 벚꽃의 화무가 조만간 서울에 입성한다. 다음달 8∼12일 기다리던 ‘여의도 벚꽃 축제’가 여의도 일대에서 펼쳐진다. 서울의 대표적인 봄축제인 벚꽃축제에는 올해도 700만명 이상의 많은 시민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벚꽃 축제속으로 미리 들어가 봤다. ●여의도를 감싼 은백색 벚꽃 축제가 시작되면 여의도를 빙돌아가며 은백색 벚꽃이 상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난해부터 선보인 벚꽃 특수조명으로 밤이면 오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서강대로∼국회 뒤∼파천교로 이어지는 윤중로(여의서로) 등 7㎞ 구간에서 벚꽃을 만끽할 수 있다. 윤중로에는 30∼40년 된 왕벚나무 1400여 그루가 아름다운 꽃길을 만든다. 올해부터 KBS 연구동 앞에 233평 규모의 벚꽃공원도 조성됐다. 특히 8일부터 15일까지 여의서로(여의2교 북단∼국회 뒤편∼서강대교 남단) 1.7㎞ 구간은 축제기간동안 차량이 전면 통제된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풍성한 문화행사 축제에는 클래식음악회와 국악공연, 록콘서트, 댄스페스티벌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무대가 준비돼 있다. 8일 특설무대에서는 군악대 연주회와 클래식음악회, 국악한마당에 이어 개막축하공연으로 오후 7시 ‘타악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어 개막식 축포와 인순이, 김종환, 이치현과 벗님들 등 가수들이 출연하는 ‘벚꽃 콘서트’가 열린다. 9일에는 오전 7시30분 구민건강달리기를 시작으로 오후 2∼3시 특설무대에서 영화 ‘왕의 남자’ 대역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안성바우덕이 풍물단’의 남사당 놀이가 열린다. 또 경찰악대공연과 내사랑 영등포 음악회, 안데스 민속공연과 함께 그룹 옥슨80 홍서범과 서울훼밀리 등이 출연하는 록 페스티벌이 준비돼 있다. 10일에는 몽골민속예술단공연과 영화상영,11일에는 안데스민속공연과 댄스페스티벌,12일에는 주민자치 프로그램 경연대회와 화려한 불꽃축제로 막을 내린다. 행사기간 중 벚꽃 길에서는 널뛰기와 윷놀이 등 전통놀이 체험마당과 영등포의 어제와 오늘을 둘러보는 사진전이 열린다. ●맞춤버스 이용하세요. 축제 기간 중에는 여의도 벚꽃길을 찾는 이용객들을 위한 맞춤버스가 운행된다. 맞춤버스는 축제기간 중 토·일요일인 8일과 9일,15일 3일간 3대가 운행되며, 당산역∼영등포구청∼영등포역∼전경련회관∼여의나루역∼국회의사당을 경유한다. 또한 8·9·14·15일에는 여의도를 지나는 29개 노선버스의 막차시간이 여의도 통과기준 다음날 새벽 1시20분까지 연장운행된다. 주차장은 여의도공원 좌우측에 임시 무료주차장이 마련되지만 교통혼잡이 예상되는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파천교 아래와 성모병원 앞 둔치, 서강대교 아래 등에는 공공주차장이 있다. 평일 오후 7시 이후와 공휴일 무료. 지하철은 2호선 당산역(4번출구)과 5호선 여의도역(1번 출구), 여의나루역(1∼3번 출구)을 이용할 수 있으며, 당산역에서 강변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먹거리 맞춤버스 운행코스인 영등포 3가 삼각지, 당산역 먹자골목, 여의도 먹자빌딩에서는 음식가격 할인과 시음회 등 먹거리 한마당이 운영돼 축제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세한 문의는 영등포구 문화체육과 (02)2670-3142∼3.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의도 벚꽃만 벚꽃이냐? 서울 곳곳에서 벚꽃의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다. 북적이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 축제를 피해 한적하게 벚꽃을 즐기고 싶다면 남산과 삼청공원, 벚꽃십리길을 찾아가 보자. 남산길 벚꽃은 화려함으로 치자면 윤중로 못지않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서울타워로 향하는 남산순환도로 7.4㎞ 구간에서 장관을 이룬다. 후암동 남산도서관에서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이르는 길도 가족나들이로 제격이다. 어린이대공원은 정문 분수대부터 벚꽃터널의 장관을 연출한다. 북악스카이웨이 도로와 구파발에서 북한산공원표소, 삼청공원, 태릉 육사 입구에서 불암산 코스도 연인들의 벚꽃 드라이브에 적합하다. 금천구 시흥역에서 가리봉역 사이의 ‘벚꽃 십리길’(4㎞)과 강북구 삼양로 지선에서 삼양소방 파출소에 1.1㎞의 왕벚꽃길, 광진구 워커힐길 1.5㎞도 벚꽃으로 화려하게 물든다. 또 관악산 입구에서 인공호수까지, 동대문구 중랑천 제방길, 도봉구 우이천길, 은평구 증산로, 송파구 송파나루공원(석촌호수) 등도 벚꽃으로 유명하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구로구, 하얼빈에 안중근의사 동상

    서울 구로구(구청장 양대웅)는 안중근 의사 순국 96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중국 하얼빈시 향방구 고려회관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을 제막했다고 27일 밝혔다. 동상은 안 의사의 실제 키와 동일한 175㎝로 제작됐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사살을 확인하는 동작을 형상화했다.
  • [데스크시각]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김종면 문화부 차장

    일본 유수의 한 신문사 사장은 언젠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양국의 독서량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연간 도서발행 실적이 일본의 3분의1에 불과하고 특히 순수과학과 예술서적은 10분의1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청 발표도 있고 보면, 이런 자존심 상하는 지적을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글 읽는 선비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우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을 가진 문화강국이요,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유구한 지적 전통을 지닌 민족 아닌가. 마침 한국독서학회가 3월 ‘이달의 독서인’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 김득신을 선정, 피폐해진 우리 독서풍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김득신은 물론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풍속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이 아니라 17세기 시단을 이끈 문인 백곡(柏谷) 김득신이다. 백곡에 관해서는 책읽기와 관련된 일화가 적잖이 전한다. 백곡은 부친이 감사를 지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시가(詩家)로서의 싹은커녕 주위로부터 글공부를 포기하라는 권고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한 글들을 골라 읽고 또 읽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백곡이 가장 즐겨 읽은 글은 사기의 ‘백이전’이다. 그는 이것을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독수기(讀數記)’에 적고 있다. 부인의 상중에 일가 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 중에도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마디로 독서광이었다. 한국독서학회는 국민 독서운동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매달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 발표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청장관 이덕무를,2월에는 퇴계 이황을 뽑았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자호를 쓸 정도로 책을 좋아한 이덕무, 끼니마저 거르면서 책을 읽었던 이황, 둔한 머리를 무릅쓰고 책읽기에 힘써 대시인이 된 김득신. 이들의 독서법은 한결같았다. 이덕무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뜻이 심오해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책장을 덮어두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읽을 것을 권했다. 일종의 ‘재충전형’ 숙독법이다. 이황 또한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의 뜻을 음미하는 숙독과 정독을 바람직한 독서법으로 여겼다. 이황은 책을 다 읽으면 그것을 암송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숙독에 관한 한 김득신은 그 이상의 예를 찾기 힘들다. 책을 한 번 펼쳤다 하면 적어도 1000번을 읽었고, 좋아하는 책은 1만번 이상 읽었다고 하니 눈물겹기까지 하다. 요컨대 이들의 책읽기 코드는 숙독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권장도서 또는 필독도서 목록이 난무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옛 선인들의 독서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이달의 독서인’ 3인이 강조하듯, 속독은 ‘독서의 적’이다. 속독을 하면 옛것을 참고해 새것을 알기 어렵고 또 무르익은 생각을 하기 힘들어 마음이 급해지고 늘 쫓기게 된다는 게 이황의 말이다. 이런 옛 선인들의 독서법을 몸에 익힌다 해도 기본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작은도서관 만들기나 북스타트운동 같은 소리없는 독서혁명이 이뤄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조선시대 독서왕’ 김득신.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 입신한 그는 이 땅의 ‘독서 둔재’들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이같은 독서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단순히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하는데 그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아쉽게 막을 내린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 선정작업의 대안이 될 만한 구체적인 독서운동사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 차장 jmkim@seoul.co.kr
  • 남북, 안중근의사 유해위치 공동조사 합의

    남북한은 20일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공동조사를 벌이는 데 합의했다. 남북은 이날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안중근의사 유해공동발굴 및 봉환을 위한 남북 제3차 실무접촉’을 갖고 유해의 위치 파악을 위해 중국 현지에서 남북 공동조사를 벌이기로 합의했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밝혔다. 양측은 이를 위해 공동조사단의 구성, 조사방법 및 시기 등에 대해 다음 달 중에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했다.우리 측은 이날 일본 현지에서 수집한 유해 위치 관련 자료를 북측에 전달했다.박정현기자jhpark@seoul.co.kr
  • ‘꼭지점 댄스’ 추다 만세! 만세! 만세!

    제87주년 3·1절을 맞아 1일 전국에서 각종 기념 행사가 열렸다.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망언’으로 시끄러웠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대한민국 광복회는 오후 2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 태각비 앞에서 3·1 만세운동에서 희생된 선열에 대한 추념식을 열었다.●사이버 의병 태극기 들고 플래시 몹 앞서 오전 10시30분 서울 인사동은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바지를 입은 남녀 고등학생 500여명이 흔드는 태극기로 넘실댔다. 북제주군 조천읍, 강원도 삼척 등에서도 만세 행사가 열렸다. 경남 함안군·군북군, 전북 익산에서는 당시 일본군의 무력 진압 현장이 그대로 재현됐다. 국학원과 다음 카페 ‘사이버 의병(cafe.daum.net/cybershinsi)’ 회원 50여명은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3·1절 태극기몹, 하나되는 대한민국’이란 행사를 열었다. 몹(플래시 몹의 줄임말)이란 불특정 다수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약속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태극기를 들고 춤추다 오전 11시11분11초가 되자 최근 영화배우 김수로씨가 유행시킨 군무 (群舞)인 ‘꼭지점 댄스’를 추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부산 부산역 광장과 대구 대구백화점 앞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렸다. 대구, 광주, 화성, 제주도 등에서는 3·1절 기념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독도 수호대 고추장 받아 들고 세계 횡단 출정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릴 목적으로 ‘독도수호 세계횡단 대장정’을 떠나는 대학생 5명은 오전 11시 대학로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고추장, 비타민 등을 전달받고 255일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HID특수임무 청년동지회 소속 30여명은 오전 11시 일본 대사관 앞에 윤봉길·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영정이 그려진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간판을 부착한 차량 10대를 몰고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통일연대는 낮 12시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3·1절 기념 2006년 자주선언대회’를 열었다. 한편 오후 6시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서울 중구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1968년에 일어난 ‘3·1 민주 구국 선언사건’ 30주년 기념회가 열렸다. 당시 3·1절 명동성당 기념 미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 인사가 유신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가 구속됐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백두산 일출을 보다

    백두산 일출을 보다

    낯선 남녀가 서로 만나 100번째 되던 날, 대부분 조촐한 기념식을 하겠지요. 더욱 사랑하자는 뜻에서 말입니다.‘주말매거진 We’가 이번호로 독자와 만난 지 꼭 100번째가 됐습니다. 하여 어떤 좋은 선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문득 눈덮인 백두산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혹 가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서 못가는 독자 여러분에게 간접 체험이나마 선사하려는 뜻에서이지요. 아울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백두’의 기(氣)를 흠뻑 느껴 보자는 취지이기도 하지요. 정말이지 하얀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 백두산은 똑바로 서서 걷기조차 힘들 정도의 바람과 영하 30∼40도의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쉽게 오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간단한 장비만 갖추면 등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백두산 북쪽 천문봉에서 만주벌판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신천지 새벽의 붉은 태양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또한 드넓은 얼음평야처럼 꽁꽁 얼어 버린 천지의 장엄함 앞에서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더군요. 자 함께 가보실까요. 백두의 계곡으로 말입니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백두산은 정말 춥데.”,“겨울에 백두산은 못간데.”라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속초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다. # 백두로 향하다 백두산에 가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이번에는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 훈춘에서 연길로 해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항구까지는 585㎞이며 1만 4000t급 동춘호로 무려 열여섯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배에서 장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동춘항운 김세광 과장은 “말이 열여섯 시간이지 금방 지나갑니다. 오후 3시에 출항해 짐 풀고 저녁 먹고 한잠 자면 러시아에 도착해요. 어쩜 아침에 씻고 짐 챙기느라 바쁩니다.”라고 안심시킨다. 정말이지 막상 타고 보니 배의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멀미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배정받았다.4인실.2층 침대 2개와 TV, 화장실까지 설치돼 있었다. 추운 동해의 바람을 맞으며 멀어지는 속초를 바라보았다. 김 과장의 말대로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 전혀 다른 세상에 갑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난생 처음 보는 러시아. 낡은 배, 녹슨 공장의 굴뚝, 눈덮인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과 가장 다른 것은 ‘기온’이다. 부는 바람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콕콕 바늘로 찌르는 듯한 동통(冬痛)이 느껴진다.‘우와 추워!’ 정말 1분 이상 갑판에 서 있지 못할 지경이다. 이윽고 배가 접안했다. 자루비노항에서 동춘항운의 셔틀버스로 중국 훈춘의 장영자 세관으로 이동했더니 버스로 약 2시간 걸렸다. 하얀 눈이 덮인 불모의 땅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오고 가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마주 오는 차도 거의 없었다. 어느덧 버스 유리창에 서리는 차가운 얼음장으로 변해 버렸다. 밖의 기온은 영하 25도란다. 러시아 군인들이 지키는 크라스키노 세관에서 러시아 출국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중국 장영자 세관에 도착했다. 장영자는 ´긴고개 들로 이어진 끝´이란 뜻의 마을 이름이다. 연변 지역은 고구려, 발해시대의 먼 조상들이 말 달리며 지배했던 땅이고 일제시대에는 많은 항일 독립투사들이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웠던 곳이어서 새삼 감회에 젖어본다. 연길 등을 거쳐 백두산의 관문인 이도백화(조그마한 시골 마을)까지 약 300㎞. 버스로 꼬박 5시간이다. # 민족의 영산을 마주하며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마치고 그 세는 물(水)을 근본으로 하고 나무(木)를 줄기로 한다고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은 말했다. 또한 백두산은 우리 국토의 시작이며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 아닌가. 또 한민족의 발상지인 단군신화를 잉태한 가장 성스럽고 고결한 산이다. 오는 길이 멀고 힘들다 할지라도 우리 민족의 시작점에 설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날씨가 구름 끼고 추운 탓인지 이도백화에서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가슴속에 느껴지는 맑고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에 짜릿한 전율로 다가온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호텔을 나섰다. 강원도청 환동해 출장소 직원들과 현지 가이드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모두 16명. 환동해 출장소 직원들은 동해바다의 어업과 해로를 관리하기 위해 강원도청에서 파견됐다. 이들과 함께 백두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지프에 나누어 타고 어둠 속을 달렸다. # 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자고로 백두산에서 일출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영하 30도, 체감온도를 측정할 수 없는 그런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된다. 한겨울에도 백두산 천문봉까지 차가 다닌다. 물론 일반 승용차는 아니고 중국에서 특수하게 불도저를 개조해서 만든 특수 버스인 ‘설령차’를 타면 천문봉 입구까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새벽 5시, 장백산(張白山)이라고 써 있는 아치형 문을 통과한다. 이제 정말 백두산의 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장백산이라니. 이 산에 숨쉬고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하나 우리 조상의 손길과 정성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어찌하여 이곳을 장백산이라 부르며 내 나라를 거치지 못하고 남의 땅을 밟아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가. 반쪽짜리 나라의 아픔이 전해진다. # 찬란하다, 백두여 설령차에 올랐다. 이미 중국인 관광객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어서 닫히지 않는 창문 틈 사이로 무서운 백두산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휘잉∼잉 휘∼잉’하며 눈보라가 칠 때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새벽 달빛 사이로 백두산의 자태가 스친다. 목도리, 마스크, 귀마개, 장갑 등으로 온몸을 칭칭 둘렀건만 손끝과 발끝에는 여전히 한기가 느껴진다. 아침 6시가 넘어서자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조금씩 올라온다. 마음이 조급해진다.‘이렇게 어렵게 올라가는데 혹시 해가 불쑥 나와버리면 어떡하나, 빨리 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앞선다. 굉음을 내며 설령차는 계속 백두산을 오른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차문이 열리면서 내렸다. 다행히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백두산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기상대가 있는 주차장에서 천문봉까지는 걸어서 10여분.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천문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중학생을 둔 주부 홍복순(46)씨, 겨울산이 난생 처음이라는 정준호(47)씨도 고개를 숙인 채 천문봉을 향해 기어오른다. 만주벌판 저쪽 흐린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든다. 대륙의 저쪽에서 시작된 차고 거친 바람은 백두의 16개 봉우리를 타 넘어 천지에 부딪치고 솟구치며 눈과 함께 얼굴을 강타한다. 그래서 눈썹에는 하얀 고드름이 생기고, 덜덜 떨린다. 어느 누구 하나 바람과 추위를 피해 내려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발 아래 천지는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눈보라가 소용돌이치며 우리의 아픈 역사를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모두 천문봉에 손을 잡고 섰다. 갑자기 누군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어느덧 차가운 백두의 머리끝에서 하얀 입김을 뿜어내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첫머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붉은 태양을 기다리며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추위 속에서 그 애틋한 기다림 끝에 먼 구름 사이로 거짓말처럼 붉은 덩어리가 솟는다. 자신의 몸을 열어 고귀한 생명을 품듯 시뻘건 태양이 나타난다. 숨이 멎고 맥이 풀린다.‘와’하는 탄성조차 지를 수 없는 신성함에 고개가 먼저 숙여진다. 이날 백두의 아침은, 아니 한반도의 신새벽은 이렇게 찬란하게 시작했다. 광활한 붉은 바다를 향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내려왔다. 뜨거워진 가슴으로 추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박욱기(33)씨, 추위의 고통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날아갔다는 김남순(39)씨, 평생에 잊지 못할 아침을 맞았다는 김용국(45)씨. 함께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백두산 천문봉을 내려왔다. # 하얗게 변한 천상의 호수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천지를 보러 나섰다. 산장 주변에는 일반인들을 위해 옷, 신발, 장갑 등을 빌려준다. 아이젠이 달린 털장화와 털점퍼는 각각 3000원,4000원에 빌려주며 마스크는 1000원, 장갑은 3000원에 판다. 그러니 장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백두산 온천지역에서 장백폭포를 거쳐 천지까지 왕복 3시간이 걸린다. 매표소 입구부터 백두산의 이름이 실감난다. 산 정상 부위가 화산활동으로 인한 부식토로 하얗게 뒤덮여 ‘머리부분이 하얗다’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순백으로 변한 백두산은 입구부터 아름답다. 10여분을 오르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매달린 거대한 얼음 사이로 굉음을 내며 물줄기가 떨어진다. 이름하여 장백폭포.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거의 물이 얼지 않고 흐른다. 장백폭포 산장을 지나자 터널이 시작된다. 터널 속 ‘가파른 천 개의 계단’을 올라야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문을 열고 터널로 들어섰다. 좀 답답하다. 하지만 차디찬 눈보라를 맞지 않고 천지까지 갈 수 있다는 데야 어디 문제인가. 천지로 가는 터널은 관광객을 위해 한국인이 5년여 걸친 공사 끝에 2003년에 완성했다고 한다.35년간을 사용하고 중국측에 기부채납을 한단다.‘참 우리나라 사람은 불가능을 모르는 민족이야. 이렇게 가파른 곳에 터널을 만들 생각을 했으니.’ 가파른 천 개의 계단은 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든다. 어느덧 터널의 끝쪽 문에서 휴식을 한다. 밖의 기온이 낮아 몸에 난 땀을 식히고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문을 열고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친다.‘역시 쉽게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구먼.’ 하지만 난간 옆으로 물이 흐른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영하 30도에도 얼지 않고 이렇게 물이 흐르다니. 바로 이 물이 천지에서 흘러 ‘승사하’를 이루고 중국 송화강의 출발점이다. 승사하를 지나자 본격적인 백두의 품이다. 양쪽으로 깎아지르는 용문봉과 천문봉이 우뚝하고 곳곳에 작은 바위들이 시베리아의 벌판을 연상케 한다. 세찬 눈보라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잊지 못할 광경에 연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정상에 이런 거대한 봉우리들과 천지라는 커다란 호수를 품고 있으니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거센 눈보라를 맞으며 20여분 걷자 공룡 동상이 나온다.“와∼천지다.”하며 모두가 하얀 얼음판으로 뛰어든다. 맞다. 바로 여기가 백두산 천지, 하늘의 연못이라는 이곳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무려 둘레가 14.4㎞, 최대 너비가 3.6㎞, 최대 깊이가 384m인 연못. 어떻게 이런 산 정상에 커다란 호수가 있다고 누가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천지에 뛰어들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예 드러누운 장희순(39)씨는 “만세 만세”를 외치며 “여기가 천지예요.”라며 북받쳐 오르는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바람에 연신 눈을 비비며 “한번이라도 더 봐야지. 내가 평생에 언제 다시 여기를 밟아 볼 수 있겠어요.”라는 유현진(53)씨의 눈에는 이슬이 맺힌다. 친구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한다는 천안 나사렛대 문성진(21)씨는 “남쪽의 산들과 달리 웅장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라며 “좀 춥지만 정말 오지 않았으면 너무 후회할 뻔했습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이렇게 다들 백두산의 정기와 천지의 성스러움은 우리를 감동에 빠지게 했다. # 색다른 백두산의 별미 백두산의 또 하나 명물은 온천이다. 온천물의 온도가 섭씨 82도로 아주 뜨거워 계란을 담가 놓으면 자동적으로 삶아진다. 이렇게 삶은 계란은 정말 특이하다. 손으로 계란의 반을 잘라보면 흰자위는 반숙, 노른자위는 완숙이다. 먹기가 부드럽고 좋다. 온천수의 효능 때문이란다.3개에 1000원이다. 아주 맛있다. 주변에는 온천장이 몇 개 있다. 입장료는 1만원. 비싸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면 정말 색다른 경험이 기다린다. 물이 좋은 것은 기본이고 노천으로 나가보라. 고드름과 흰눈이 쌓인 탕에 몸을 담그고 백두산의 이름 모를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1분도 안 돼 머리카락이 얼어버린다. 그러면 탕에 얼굴을 담가 녹이면 된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하얀 눈가루가 탕을 휘감아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 정도면 겨울 백두산의 참맛을 만끽했다고 할 것이다. # 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연변 예전에 만주로 불렸던 연변지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곳곳에 항일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 지역에는 우리 조선족을 위해 간판에 모두 한글과 중국어가 병행 표기돼 있어 외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한국 돈’이 거의 모든 식당과 상점에서 통용이 될 정도로 한국적인 곳이다. 다만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70년대를 보는 듯하다. 훈춘 주변에 안중근 의사 유적지는 안중근 의사가 한달 동안을 머무르며 거사를 준비했던 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마당에 유적비도 있다. 연길 근처인 용정에는 우리 가곡 ‘선구자’의 일송정과 해란강을 만날 수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잡은 조그만 정자가 바로 일송정.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서 있었다고 하나 일제에 의해 고사당하고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 그루와 정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가 있다. 현재 용정 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현지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관 앞에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고 건물 2층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 윤동주 시인의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시와 중국 도문을 연결하는 도문대교, 북한의 나진 선봉과 훈춘을 연결하는 권하대교 등이 있어 멀리서나마 북한땅을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은 훈춘시청으로 쓰이는 간도 일본총영사부는 ‘토지’드라마에서 길상이가 폭파하려고 했던 건물이다. 밀강 민속마을에 강운학(79) 박옥선(80)씨 노부부의 집은 60년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함북 흑룡군과 연결된 사만자대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구소련군 폭격으로 끊어진 채로 있었다. 이처럼 백두산을 가는 길에 둘러볼 만한 유적지와 역사적인 흔적이 많아 산 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백두산 관광의 선두는 동춘항운은 2000년 4월 28일 우리나라의 속초에서 러시아의 자루비노 항을 경유하여 중국의 훈춘시를 연결하는 최초의 해륙을 연계한 카페리 항로.즉 ‘백두산항로’라는 이름 아래 매년 여객 및 컨테이너 화물 등을 운송한다.또한 2003년 11월 6일부터 러시아 연해주의 수도이자 물류의 중심지인 블라디보스톡항까지 연장 운항을 하고 있다. 동춘항운 부설 준여행 에서는 이 카페리를 이용해 중국 백두산과 러시아 등을 여행하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겨울철에 중국 연변지역 관광과 백두산을 오를 수 있는 6박7일 상품이 39만9000원,백두산을 서쪽에서 북쪽을 종주하는 5박6일 상품이 68만원,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로프스크 등을 열차로 여행하는 6박7일 상품이 79만원 등이다.www.dongchunferry.co.kr ,(02)720-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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