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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安의사 큰딸 대학교수였다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安의사 큰딸 대학교수였다

    안중근 의사의 큰딸 안현생(1902~1960)씨의 해방 이후 행적은 풍문으로만 전해져 왔다. 그가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문학과 불문학 담당 교수로 재직한 사실을 기록한 서류가 처음 발견됐다. 국립대구박물관은 25일 “대구가톨릭대 사령원부에 따르면 안 의사의 딸이 1953년 4월1일부터 1956년 3월31일까지 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령원부에는 ‘단기 4286년 2월18일 양력 1953년 4월1일 교수에 임함. 安賢生’이라고 적혀 있다. 3년 뒤에는 ‘원에 의하여 본직을 면함’이라고 기록돼있다. 서울로 주거지를 옮기기 위해 스스로 교수직을 그만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아버지를 여읜 것은 8살 때였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러시아와 중국 상하이 등에서 불문학·미술 등을 공부했고, 해방 이후 1946년 귀국해 서울에서 지내다가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란을 왔다. 고혈압으로 숨진 뒤 서울 우이동 북한산 자락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명성황후 시해 칼 ‘히젠토’를 한국으로”

    “명성황후 시해 칼 ‘히젠토’를 한국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을 맞아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히젠토’ 칼을 한국으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히젠토 환수위원회는 26일 조계종 중앙신도회 전법회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구시다 신사에 히젠토 환수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첫 번째 이유로 ‘남의 나라 황후를 살해한 죄’를 거론했다. 이때 사용된 ‘히젠토(肥前刀)’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구시다 신사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젠토 칼집에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늙은 여우를 베었다. (一瞬電光刺狐)’라고 새겨져 있다. 신사에서는 ‘황후를 이 칼로 베었다.’라고 적힌 문서가 보관돼 있다. 환수위는 최봉태 변호사와 혜문 스님을 위원장으로 하고 기획위원은 이종우 문화재 제자리찾기 실행위원,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보향 불교여성개발원 이사가 맡았다. 혜문 스님은 “2006년 문화재 환수운동을 하면서 구시다 신사에 들러 칼, 칼집, 봉납기록을 확인했다.”면서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참회하는 차원에서 이 칼을 한국에 인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6일 열리는 출범식에는 고종과 명성황후 무덤이 있는 경기 남양주의 시의원도 행사에 참석, 시의회에 환수요구안을 발의하고 일본에서의 법적 대응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부천 ‘안중근 도시’ 선언

    경기도 부천이 ‘안중근 도시’를 선언했다. 부천시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26일 대규모 추념식을 개최하고 안중근기념관 건립, 안중근컵 평화축구대회 개최 등 다양한 추모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시의 이같은 안 의사 추모 열기는 중국 하얼빈에서 국내로 반입된 안 의사 동상을 부천에 유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는 나아가 1만 7500㎡ 규모의 중동공원 명칭을 ‘안중근공원’으로 바꿨으며, 안 의사를 추모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15억원을 투입해 공원에 안중근 어록을 담은 비문을 설치하고, 200여㎡ 규모의 ‘안중근기념관’을 건립해 안 의사 일대기와 유묵·유언 등을 전시하기로 했다. 시는 안 의사 의거 101주년인 오는 10월26일까지 안중근 학술대회, 평화마라톤, 각종 공연·백일장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 옥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품 ‘봇물’

    옥션,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품 ‘봇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추모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온라인 몰에서도 안중근 의사 기념품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옥션(www.auction.co.kr)은 26일 “현재 안중근 의사 관련 서적 및 기념품이 160개 가량 등록돼 있다.”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관련 기념품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안중근 의사의 얼굴이 담긴 ‘광복 50주년 기념화폐’는 광복 30년, 60년 기념주화 와 ‘만원 연결권 화폐’ 묶음으로 판매되고 있다.‘광복 50주년 기념화폐’를 올린 판매자는 “순국 100주년은 매우 뜻 깊은 날이다.”며 “기념주화수집가들에게 의미 있는 수집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글을 남겼다.또한 안중근 의사의 친필유묵인 ‘大韓國人(대한국인)’ 문구와 손도장이 담긴 차량용 스티커를 크기별로 다양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으며 1982년도에 발행된 안중근과 유관순 우표가 붙여진 편지봉투 및 그가 남긴 글을 카피한 ‘서예 영인본’ 중고품도 판매하고 있다.이어 안 의사의 중국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한 ‘안중근 기타 Hero 1909-AE’는 삼익악기가 한정판으로 내놓은 제품으로 하얼빈 의거 연도를 의미하는 ‘1909’숫자와 애국정신이 담긴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가 한자로 새겨져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특히 옥션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과 평전 등 다양한 서적이 관심을 끌고 있고 안 의사 관련 중고서적도 10여권 가량 올라와 있다.옥션 수집 카테고리 담당 김준우 매니저는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으로 의미가 깊은 만큼 서적이나 기념품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며 “최근 법정스님 입적 이후 ‘무소유’가 고가 경매 매물로 기록되는 등 이를 계기로 위인들의 기념품이 대거 경매 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옥션에서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이문열의 장편소설 ‘불멸’이 지난 2월에 출간된 이후 순국 100주년을 맞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사진=옥션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정의의 화신… 한·중합작 영화 만들자”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정의의 화신… 한·중합작 영화 만들자”

    │하얼빈 박홍환특파원│“중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의 숭고한 정신을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안 의사 거사 현장인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안중근 전문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안 의사를 오페라 무대에 올리고,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든 게 그들이었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안 의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의의 화신’으로 남아 있었다. 사실 안 의사 거사 소식을 맨 처음 전한 것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와 많은 중국 신문들인 만큼 의아한 일도 아닌 셈이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하얼빈시 작가협회 주석을 역임한 소설가 아청(阿成·왼쪽·75·본명 왕아청)은 “안 의사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 개인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의 이익을 추구한 인물”이라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가졌던 바로 그런 정의감”이라고 말했다. 아청은 2000년 안 의사의 거사를 소재로 한 중편소설 ‘안중근, 이등박문을 사살하다’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중국 내에서 그해에 발표한 최고의 소설 가운데 하나로 뽑혔다. 초등학생 시절 하얼빈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철도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안 의사 거사와 관련된 얘기를 처음 들었다는 그는 “안 의사는 오로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다는 목표로 도망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은 채 거사만 생각했다.”며 “후대에게 그런 그의 비장한 거사 동기 등을 제대로 전해주자는 취지에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오페라 ‘안중근’의 대본을 집필한 왕훙빈(王洪彬·오른쪽·75) 전 하얼빈시 문화국장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한국인이 아닌 모든 전세계 평화애호자들의 공통재산”이라면서 “안 의사가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과 아시아인,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사상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전세계인의 언어인 오페라로 표현했다는 왕 전 국장은 “안중근 거사는 지금까지 하얼빈 역사연구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면서 “중국 내에서도 안 의사 관련 출판은 매우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1992년 하얼빈에서 초연된 왕 전 국장의 오페라 ‘안중근’은 현지에서 20여차례 공연됐으며, 1995년에는 국내 무대에도 소개돼 40여차례 전국 각지의 무대에 올려졌다. stinger@seoul.co.kr
  • 남북, 뤼순감옥서 첫 안중근추모제

    │다롄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상연기자│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옛 일본군 감옥에서 처음으로 남북 공동 추모행사가 열린다.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북한의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언)와 공동으로 26일 뤼순 감옥에서 공동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 참석자는 남측에서 함 이사장을 포함해 90여명, 북측에서 장 위원장 등 10여명이다. 남북은 지난해 안 의사 의거 100주년 때 개성에서 공동행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순국 현장에서 공동행사를 거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단체들은 현지 추모식 외에 다롄에서 안 의사의 평화정신 계승 등을 주제로 공동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기념사업회의 윤원일 사무총장은 “남북 공동 유해발굴 및 안 의사를 매개로 한 청소년교류 등에 대한 원칙적 의견접근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5일 현재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허가가 나오지 않아 현지에서의 추모행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위원장 박진 의원) 소속 여야 의원 5명과 동북아역사재단 소속 학자들로 구성된 50여명의 추모단도 26일 뤼순감옥에서 추모식을 여는 등 다롄과 뤼순, 그리고 의거 현장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현지는 안 의사 추모 물결에 휩싸였다. 특히 중국 중앙정부는 통외통위 대표단의 모든 추모 행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승인을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의거 현장인 하얼빈역을 찾은 대표단을 위해 안내문을 내걸고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했다. 광복회 회원과 안 의사 증손자인 토니안(46·한국명 안보영)씨 등은 앞서 24일 뤼순 감옥을 방문, 추모행사를 열었다. 한편 정부가 최근 외교채널을 통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에 협조해줄 것을 일본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뒤 오찬 석상에서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에게 ‘안 의사 유해발굴에 협조해달라.’고 비공식적인 요청을 했고, 이후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공식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中감옥서 치마 풀어 만든 태극기 간직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中감옥서 치마 풀어 만든 태극기 간직

    │하얼빈 박홍환특파원│“일본은 안씨 가문의 원수, 조선의 원수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사흘 앞둔 23일 거사 장소인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서 만난 5촌 조카며느리 안노길(96) 할머니는 연신 태극기와 안 의사 관련 자료들을 어루만지며 어눌한 우리 말로 “일본, 원수, 안씨 가문….” 등을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할머니는 17살에 안 의사의 사촌동생인 홍근씨의 3남 무생씨와 결혼했지만 일제에 의해 남편이 숨진 뒤 원래 차씨였던 성을 안씨로 바꾸고 ‘안 의사 알리기’에 매달린 채 여태 혼자 살아왔다. 특히 중국 건국 이후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 종교(가톨릭) 문제로 중국 당국에 의해 반혁명죄로 체포돼 1998년 석방될 때까지 감옥과 교화소에서 외부와 단절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얼마나 시달렸던지 2000년 처음으로 할머니를 만나 지금까지 현지에서 보살피고 있는 최선옥(72· 전 성모자애병원 원장) 수녀는 “차마 못볼 꼴이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세상과의 단절도 할머니의 고국사랑과 안씨 가문에 대한 열정은 식혀놓지 못했다. 감옥 안에서 치마 실오라기를 풀어 만든 태극기를 속옷 속에 수십년간 감춰 보관해올 정도로 할머니의 애국심은 오히려 커져만 갔다. 치매 때문에 정신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지금도 안 의사 관련 자료만큼은 손수 챙기고 있다. 안 의사 유해 문제를 꺼내자 할머니는 “일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의 유해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안 의사 후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멀리 고국 땅에서 찾아온 방문객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지난해 방문객들이 용돈으로 쓰라며 쥐여준 돈 5000위안을 최 수녀를 통해 하얼빈의 안 의사 기념사업 일꾼들에게 기탁하기도 했다. 최 수녀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안중근’은 할머니의 100년 삶 그 자체인 셈이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후 중국대륙이 열광 安의사는 벗같은 존재”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후 중국대륙이 열광 安의사는 벗같은 존재”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중국 쑹청여우(宋成有) 베이징대역사학과 교수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26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동양포럼’에 참석, 특별 강연을 한다. 또 산자부장관을 지낸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안중근의 동양평화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행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운동’의 배경이 된 국채보상운동 발상지가 대구라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25일 미리 배포된 강연내용에서 쑹청여우 교수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국 전체를 감동시키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안중근 의사만한 사람은 없다.”면서 근대 중국은 다음과 같이 세 차례에 걸쳐 안중근 의사에 열광했다고 강조했다. # 첫번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소식은 중국 대륙 각계 인사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줬다. 1914년 박은식 선생이 쓴 ‘안중근전’은 대륙에 추모열기를 더했다. # 두번째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던 즈음에 삼천리강산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두 달 뒤 5·4애국운동이 폭발해 항일정신이 고조됐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중국)전국을 돌며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 ‘안중근-망국한’을 올렸다. # 세번째 항일전쟁기간이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은 동삼성을 침략, 점령했다. 그리고 1937년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해왔다. 국공합작이 체결됐고 광복군, 조선의용대 등도 항일전쟁에 동참했다. 안중근 연극을 올렸고 1944년 후난성의 명사인 쩡위안이 ‘안중근’을 썼다. 쑹청여우 교수는 이와 함께 “중국인에게 안중근 의사는 어려움을 함께 겪은 벗과 같은 존재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면서 1992년 한·중 국교체결 이후 안중근 연구는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도 비중있게 언급했다. 한편 와다 하루키 교수는 안중근 의사 입장에서 일본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보수사관을 비판했으며, 김영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회장은 “안 의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민 주도로 일어나고 시민대표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것을 동양 전체로 확대해 새로운 시민층의 대표로 구성되는 동양평화회의를 구상했다.” 고 밝혔다. 김문부국장·박록삼기자 km@seoul.co.kr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 [이기웅 응칠교 편지]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이기웅 응칠교 편지]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오늘은 안중근이라는 한 젊은 인간 혼(魂)이 나라를 위해 몸바쳐 순국하신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뜻깊은 이날을 기념하여 파주의 출판도시에서는 ‘응칠교를 아시나요’라는 이름의 다리밟기 행사를 엽니다. 10년 전 이 도시의 중심에 축조되었던 응칠교(應七橋)가 파주시와 이곳 출판인들에 의해 다시 새롭게 다듬어져 오늘 여러분 앞에 선보입니다. 설계자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건축가인 승효상씨로서, 그는 “교량의 기본적인 설계원칙에 충실한 디자인을 했다. 가로등 열두 개를 추가하여 ‘잇는’ 기능의 효과를 강조하고, 이 도시로 들어오는 이들을 환영하며 불 밝히는 풍경은 이 교량의 장소적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역사 앞에 크게 외치고 순국하신 안응칠이라고 하는 안중근을 추념하는 오늘, 그 상징물로서 이 다리를 우리 앞에 우뚝 서게 하려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이날 아침 10시는 그분이 순국하신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우리 모두 이곳에 모여 묵도(默禱)한 다음 다리밟기 행사를 하게 되는데, 많은 분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에 따라 10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국민된 사람, 아니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은 오늘 이곳 응칠교에 와 답교(踏橋)하거나 다리의 난간을 어루만지면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평화주의자 안응칠 님을 추념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이 다리는 영원한 기념물로서, 명소로서 항상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어른을 모시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이끌고 이곳 응칠교를 밟고 건넌 다음, 책의 도시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책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3월26일 하루는 온 가족이 이곳 응칠교를 찾아 안응칠이라고도 부르는 안중근을 추념하고는, 이곳 책의 도시의 정신을 체험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책을 통해 우리의 문화 또는 세계의 문화를 즐기면서 호흡하는 의미 있는 ‘가족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의 뜻입니다. 이 다리의 머리판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으리라.(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안 의사의 그 유명한 유묵 글씨가 새겨져, 출판도시에 세워진 안중근 동상과 더불어 아름다운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떨어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이어져야 할 두 지점을 이어 주는 ‘다리’라는 이 필수(必須)의 사물을 두고 인류는 예로부터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안중근의 정신과 다리의 의미가 각별하게 일치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돼 고통받고 있는,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많은 계파와 집단들이 서로 분열돼 극도로 힘든 현실이 우리 스스로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웃으로 친교해야 할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서로 가까이하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이해관계와 상처 난 감정으로 하여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얼굴도 같고 글자(漢字)도 함께 씁니다. 그리고 독특한 장르인 서예는 이 세 나라만이 행하고 있는 예술입니다. 그토록 이 세 나라는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할 공동의 역사, 함께해야 할 문화공동체요, 정치 경제적으로도 공동운명의 나라인 것입니다. 안중근은 이 모든 분열과 격리와 갈라짐을 이어줄, 그만이 이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에서 응칠교의 상징성은 앞으로 크게 빛날 것입니다. 자서전 ‘안응칠의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안중근의 혼은 1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 응칠교라는 심볼로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평화와 사랑, 균형·절제·조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책마을 공동체 출판도시의 꿈은 이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퍼질 것입니다. 오늘 응칠교에서 만납시다.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의사·장군’ 호칭 논란속 육군 ‘안중근 장군실’ 개관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의사·장군’ 호칭 논란속 육군 ‘안중근 장군실’ 개관

    이국땅 어딘가에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길 100년째 기다리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우리 사회가 ‘의사(義士)’와 ‘장군(將軍)’ 호칭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마지막으로 쓴 유묵 등 전시 최근 안중근 의사에 대한 호칭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순국 100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안중근 장군실’ 개관식이 열렸다. 육군은 육군본부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꾸며 한민구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김주현 독립기념관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고 ‘안중근 장군실’을 공개했다. 육군이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이름 붙인 것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안중근 의사를 군에서 ‘군인정신의 사표’, ‘군인의 표상’으로 삼아 길이 계승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장군실에는 군인의 장과 의거의 장, 충절의 장으로 구성됐다. 안 의사의 일대기와 무장투쟁활동, 하얼빈 의거 상황, 사형 집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 爲將義務)’ 등이 전시됐다. ●방문객·모범장병 등 견학코스로 육군은 앞으로 안중근 장군실을 육군본부 근무 간부와 전입 장병, 방문객, 모범장병 등의 안보현장 견학일정에 넣어 개방할 예정이다. 한 총장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포살한 것이니, 육전 포로에 관한 만국공법에 의해 전쟁포로로서 대우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한 안중근 의사를 군인정신의 사표, 군인의 표상으로 길이 계승하기 위해 안중근 장군실로 명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관식 직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계룡대 대강당에서 육본 간부 700여명을 대상으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 명예교수는 “안 의사가 소속된 대한의군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주권 수호를 위한 민족적 저항의 효시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면서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은 국가적 공인성을 가지는 조직이기 때문에 안 의사가 이끈 특파대의 하얼빈 거사는 대첩이라고 부를 만한 큰 전과였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희망119(KBS1 오전 10시55분) 싱싱한 봄기운의 열정을 지닌 총각들이 모인 이곳은 다양한 농수산물을 파는, ‘총각네 야채가게’다. ‘㈜자연의 모든 것’에서 대표 브랜드 ‘총각네 야채가게’를 이끌 패기 있는 판매사원을 모집한다. 꿈을 향해서라면 험난한 과정도 무릅쓰겠다는 최후 4명의 구직자들. 행복 마케팅의 주인공이 될 멋진 총각은 누가 될까. ●다줄거야(KBS2 오전 9시20분) 말년은 남주에게 “순철을 죽인 너를 차씨 집안의 호적에서 빼겠다.”하고, 남주는 처절하게 용서를 구하지만 말년은 모질게 밀어낸다. 한편 영희는 보영과 미국에 가겠다는 결심을 용심에게 말한다. 영희의 결혼이 깨진 것에 대한 의혹을 가진 강호는 선수로부터 영희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듣게 되는데…. ●볼수록 애교만점(MBC 오후 7시45분) 옥숙은 친구로부터 지원이 남자랑 극장 데이트하는 걸 봤다는 얘길 들은 이후로, 만나는 남자가 없다는 지원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지원이 만나는 남자가 성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옥숙은 스턴트맨이라 빠르고 날렵한 성수에게 지원의 미행을 부탁한다. 하룡은 15년 만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큐브(SBS 오후 8시50분) 안중근 의사 순직 100년. ‘큐브’ 제작진이 그를 열렬히 추모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다. 다섯 살 하늘이는 국내에 세 명밖에 없다는 ‘장관상피 형성이상증’ 환자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하늘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함께한다. 또 촉망받던 여자 기수, 박진희씨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힌다. ●명의(EBS 오후 9시50분) 별안간 찾아온 어지럼증. 눈앞 세상이 돌기 시작하면 몸을 가눌 수 없어지는, 벗어나고픈 이 공포의 순간을 경험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빈혈일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처방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반복된다면 귓속 건강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원상 교수를 만나 어지럼증의 숨은 원인과 치료법을 들어 본다. ●시사토론 우리시대(OBS 밤 12시10분) 사법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의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사법제도 개혁과 관련해 전문가와 함께 집중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에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헌법학 교수, 한상훈 연세대 법대 교수, 김현성 변호사(시변), 박주민 변호사(민변)가 참여한다.
  •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유해 묻힌 감옥일대 개발바람에 파헤쳐져

    │다롄 박홍환특파원│100년 전 ‘그날’도 이렇게 발해만의 바닷바람은 매섭게 살을 엘 정도로 세게 불어제쳤을까?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뤼순(旅順)은 3월의 막바지에도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마지막까지 안 의사는 ‘고국의 봄’을 그리워하며 찬바람이 뼈를 에는 이국 땅의 감옥에서 의연하게 최후를 맞았다. 사형집행 직전 그는 이렇게 소원했다. “내가 죽거든 뼈를 하얼빈의 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 땅으로 옮겨다오.” ☞ [사진] 안중근 의사, 그 분은 가셨지만… 안 의사 압송 길을 따라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서 밤 기차를 타고 창춘(長春), 선양(瀋陽), 다롄을 거쳐 24일 오전 도착한 뤼순의 옛 일본군 감옥은 일본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항일 교육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4m 높이의 담장이 700여m에 걸쳐 둘러쳐져 있는 수감시설 면적은 약 2만 6000㎡. 러·일전쟁 승리로 감옥을 포함, 뤼순 전체를 획득한 일본은 패망할 때까지 이곳을 주요 반일 정치범 수용시설로 활용했다. 안 의사와 이회영 선생을 비롯해 무수하게 많은 항일 열사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 의사의 묘지가 항일운동의 성지로 활용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일제는 유해를 유족하게 인도하길 거부했다. 그래서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담장 밖은 상당히 개발돼 있었다. 2008년 3~4월, 29일간 한국 단독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던 곳은 이미 수십층짜리 고층 아파트 여러 동이 들어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옆 뤼순감옥 정북 방향 야산도 개발을 위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만약 이곳에 유해가 있었다 해도 이미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담장 바로 뒤에는 항만 하역시설에 쓰이는 철골 구조물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고, 잇대어 있는 공터에는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시숙소가 세워졌다. 공장 직원 등은 안 의사 유해에 대해 무신경하게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우리 측 일부 인사들이 뤼순감옥 동쪽 500여m 지점을 유해 매장 장소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이미 저층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유해를 찾기는 어려워보였다. 우리 정부가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한·중·일 3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현실적 여건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해야 그나마 발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측 사정에 밝은 한 현지 인사는 “이미 1960~70년대에 중국과 북한이 여러차례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찾지 못했다.”며 “중국 측은 오래 전에 (유해 발굴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 발굴을 둘러싸고 ‘내분’이 벌어지는 꼴사나운 광경도 펼쳐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조차 어느 쪽의 유해 관련 정보도 믿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안 의사 추모를 위해 뤼순감옥을 찾은 한 인사는 “이런 모습을 안 의사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100주기를 계기로 안 의사의 정신을 우리 가슴에 묻는 것으로 유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의사는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글 사진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안중근의사 유해발굴 외교의제화

    정부가 오는 5월 초쯤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사업을 공식 의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민·관 합동으로 ‘합동유해발굴 추진단’도 구성키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안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이다. 정부 당국자는 24일 “그동안 일본, 중국을 상대로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과 관련한 자료제공을 요청해 왔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올해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공식 의제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순조로운 논의가 이뤄질 경우 5월 말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유해를 고국에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받들고 유해 발굴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합동유해발굴추진단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보훈처 당국자를 단장으로 외교통상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와 역사학자, 독립기념관 관계자 등 10여명으로 이달 말까지 구성되며 다음달부터 활동에 들어간다. 이들은 앞으로 안 의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뤼순(旅順) 감옥 일대에서 재발굴 작업을 펼치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이 소장한 안 의사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보훈처는 2006년 6월 남북이 공동 유해조사단을 중국 다롄(大連)에 파견해 뤼순 감옥 북서쪽 야산을 유해 매장 추정지로 확정하고 2008년 3~4월 남측 단독으로 29일간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안 의사 유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안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추적

    EBS는 안중근 순국 100년 기념일인 26일 오후 11시10분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 순국 백년-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방송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안 의사 유해 찾기에 나선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예상 매립지를 직접 찾아가 안 의사 유해의 존재 가능성을 찾아본다.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10년 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31세의 삶을 마감한다. 이후 그의 시신은 침관(시신을 눕힐 수 있는 관)에 모셔져 뤼순 감옥 죄인묘지 어느 곳엔가 매장된다. 죽기 직전 그는 동생들에게 자신을 꼭 고국 땅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한다. 하지만 안 의사 묘역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 당국에 의해 은밀하게 처리된 유해는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해 매장지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사형 당일 보고서에 적힌 ‘뤼순 매장’이라는 기록 뿐이다. 제작진은 안 의사의 유해발굴에 관심이 있는 김영광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이 안 의사 묘지 참배자 두 명의 증언에 따라 유해 매장지로 추정한 북위 38도49분27초, 동경 121도16분2초 지역을 찾아간다. 이곳은 뤼순 감옥 동쪽 500m 지점이다. 제작진은 “오카야마 소학교를 다닌 신현만(1933년생으로 추정)씨와 현재 66세인 L씨가 16년의 차를 두고 안 의사의 묘역을 참배한 목격담을 들려줬는데, 그들 기억 속 묘역의 위치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또한 안 의사의 의거를 도운 유동하 열사의 조카인 김파씨가 그린 안 의사의 묘역 약도가 있는데, 이 약도 속 묘역 위치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것. 제작진은 “이들이 지목한 지역에는 ‘죄인묘역’이라는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묘역”이라며 “모든 증언자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그 장소는 현재 아파트 공사 지역 바로 인근이다. 언제 어떻게 공사로 파헤쳐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연출을 맡은 안태근 PD는 “취재를 통해 안 의사 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서 “프로그램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기원하며, 국민적 관심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유엔보다 10년 앞선 구상”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사상과 유사하지만 진일보한 것으로, 현 유엔이나 유럽연합(EU)에 가까운 구상이었다는 주장이 일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明治)대 교수는 24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안중근의 재판-안중근과 칸트의 사상 비교연구’ 논문을 통해 “안 의사가 유교와 기독교(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대한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가톨릭교도들처럼 부정한 명령에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군주제를 수립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칸트의 국가론과 유사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었으며, 이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과 유사하면서도 그 구상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의사 평화회의는 EU에 가까운 구상” 안 의사의 구상은 뤼순을 한·중·일 3국의 군항으로 삼고, 이곳에 ‘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것으로, ‘평화회의’가 공동화폐를 주조하고 공동의 군단(軍團)을 구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는 게 골자다. 이는 조약으로 ‘평화연맹’을 창설, 전쟁을 방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세계정부’를 추구하지 않은 칸트의 사상과 비교될 수 있다고 사사가와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평화회의’는 군사·재정적 권한이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EU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사가와 교수는 특히 이 구상이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기 위해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주최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일본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 사법관할이나 심리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한·중 학자들의 주장도 발표됐다. ●“안중근 재판 불법적으로 이뤄져”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와 두원중(杜文忠) 중국 서남민족대 교수는 공동논문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 및 그에 대한 검토’에서 “안중근 저격 사건이 중국에서 일어난 만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법정이나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했는데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며 “사법관할상 합법적이지 않은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안 의사의 저격은 군인이 전투 중에 적의 수뇌를 사살한 것이지 사사로운 살해가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정원 국민대 교수도 ‘안중근 재판의 부당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 형법을 적용한 안 의사의 재판은 1905년 2차 한일협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더라도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은 일본에 단지 외교권을 넘긴 것이지 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민병과 의용병 등의 교전자격을 인정한 1907년 헤이그협약에 따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 의사가 국제법상 포로 대우를 받아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종교·학술플러스]

    ‘원불교 문화대상’ 제정 원불교는 원불교 문화예술 발전과 언론출판홍보분야에 공적이 있는 개인 및 단체에 시상을 하기 위해 ‘원불교문화대상’을 제정한다. 문화예술, 언론출판홍보 두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며 총상금 1000만원 규모다. 새달 15일까지 추천을 받으며 시상식은 같은 달 28일에 열린다. (02)813-2203. ‘안중근 재판’ 학술대회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를 24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연다.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통해 안중근 재판이 사법관할상이나 심리과정상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학·서학 만남’ 학술회 동학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907호 대회의실에서 연다. 동학 창도 15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서양의 사상과 동학을 비교해 동학적 사유의 특성을 밝히고 동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군이 안중근 의사의 호칭을 ‘장군’으로 공식화하기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안 의사 의거 이후 100년 동안 의사(義士)로 불렸던 호칭을 장군(將軍)으로 바꾸자는 사회 일각의 주장과 맞물려 논란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23일 “안 의사가 군인임을 강조한 바 있고 그분의 정신을 군 정신의 기본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키로 했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자신을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데다 ‘국가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쓴 바가 있기 때문에 군 입장에서는 장군으로 칭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앞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등 일부 관련 단체들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일계급특진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안중근 법정’에서 안 의사 스스로 밝힌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을 복원하고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으로 일계급 특진시키기 위한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18일까지 벌인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50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의사 호칭은 민족 내부의 존칭에 해당되고, 장군은 국제적인 용어”라며 “장군 호칭을 사용할 경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거의 고종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는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안중근하얼빈학회 공동회장도 “‘의사’라면 의거를 혼자 한 걸로 돼 버리며 이는 일제가 법정에서 안중근을 단독 살인범으로 몰아간 의도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역사적 용어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그에게 ‘의사’ 칭호를 처음 부여한 것은 1910년 3월 초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의사 칭호를 곧바로 부여하지 못하고 5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그를 의사로 부른 역사적 절박함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 칭호를 부여한 것 자체가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인 동시에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확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연구원은 또 “안 의사가 최후 진술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국제법에 비춰볼 때 합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게릴라는 국제법상 인정 받기 때문에 군인 신분을 내세운 것”이라며 “교육자, 사상가 등 안 의사의 여러 면 중 일부분인 군인 신분을 전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안중근 장군?

    군이 안중근 의사의 호칭을 ‘장군’으로 공식화하기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안 의사 의거 이후 100년 동안 의사(義士)로 불렸던 호칭을 장군(將軍)으로 바꾸자는 사회 일각의 주장과 맞물려 논란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23일 “안 의사가 군임임을 강조한 바 있고 그분의 정신을 군 정신의 기본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호칭키로 했다”고 말했다. 안 의사가 자신을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데다 ‘국가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글을 쓴 바가 있기 때문에 군 입장에서는 장군으로 칭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앞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등 일부 관련 단체들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일계급특진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청년아카데미 정광일 대표는 “‘안중근 법정’에서 안 의사 스스로 밝힌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을 복원하고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으로 일계급 특진시키기 위한 국회의원 서명운동을 18일까지 벌인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50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의사 호칭은 민족 내부의 존칭에 해당되고, 장군은 국제적인 용어”라며 “장군 호칭을 사용할 경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거의 고종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는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안중근하얼빈학회 공동회장도 “‘의사’라면 의거를 혼자 한 걸로 돼 버리며 이는 일제가 법정에서 안중근을 단독 살인범으로 몰아간 의도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역사적 용어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그에게 ‘의사’ 칭호를 처음 부여한 것은 1910년 3월 초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의사 칭호를 곧바로 부여하지 못하고 5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그를 의사로 부른 역사적 절박함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 칭호를 부여한 것 자체가 일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인 동시에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확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연구원은 또 “안 의사가 최후 진술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국제법에 비춰볼 때 합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게릴라는 국제법상 인정 받기 때문에 군인 신분을 내세운 것”이라며 “교육자, 사상가 등 안 의사의 여러 면 중 일부분인 군인 신분을 전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종교·학술플러스]

    ‘원불교 문화대상’ 제정 원불교는 원불교 문화예술 발전과 언론출판홍보분야에 공적이 있는 개인 및 단체에 시상을 하기 위해 ‘원불교문화대상’을 제정한다. 문화예술, 언론출판홍보 두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며 총상금 1000만원 규모다. 새달 15일까지 추천을 받으며 시상식은 같은 달 28일에 열린다. (02)813-2203. ‘안중근 재판’ 학술대회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법정 투쟁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를 24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연다. 린지안(林堅) 중국 인민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통해 안중근 재판이 사법관할상이나 심리과정상 합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학·서학 만남’ 학술회 동학학회는 춘계학술대회 ‘동학과 서학의 만남’을 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907호 대회의실에서 연다. 동학 창도 15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는 서양의 사상과 동학을 비교해 동학적 사유의 특성을 밝히고 동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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