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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회 “건국절이라니···안중근·윤봉길 의사 앞에서 혀 깨물고픈 심정”

    광복회 “건국절이라니···안중근·윤봉길 의사 앞에서 혀 깨물고픈 심정”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건국절’을 언급한데 이어 새누리당이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하려고 하자 광복회가 “지하에 계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운동 선열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광복회는 7000여명의 독립 유공자와 유족들로 구성된 단체다. 광복회는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최근 또다시 국론분열의 원천이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쟁은 물론 대한민국 국가 기강마저 뒤흔드는 ‘건국절 논란’이 계속되는 현실에 개탄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면서 “이는 항일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선열 모두를 모독하는 반역사적·반민족적 망론(妄論)”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즉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광복 이후인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의 정부 수립 시기가 ‘건국’의 시발점이라면서 이날을 건국절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헌법 정신을 계승해야 할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회는 “역사의식과 헌법정신의 부재에서 오는 건국절 논란은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의 승인 하에 독립한 신생독립국의 경우와 같게 인식케 함으로써 국가체면을 손상시키는 망론”이라면서 “국가구성 3요소(국민, 영토, 주권) 불비설이나 유엔 등 국제적 불인정을 들어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를 1948년 정부 수립 시기로 보는 주장은 식민지 항쟁의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는 바른 역사관이 결코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광복회는 “특히 1948년 건국절 제정은 과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친일 행적을 지우는 구실이 될 수 있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자랑스럽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순기능보다 기회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을 배우게 하는 역기능이 더 많음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다른 나라에 다 있는 생일도 없는 대한민국’을 언급하자 광복회는 “국민을 오도하지 말라”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생일로 정하면 왜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아래는 광복회의 성명 전문.   광복회는 최근 또다시 국론분열의 원천이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쟁거리는 물론 대한민국 국가 기강마저 뒤흔드는 ‘건국절 논란’이 계속되는 현실에 개탄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이는 항일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선열 모두를 모독하는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망론(妄論)이므로 광복회원들은 지하에 계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운동 선열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다. 역사의식과 헌법정신의 부재에서 오는 건국절 논란은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의 승인 하에 독립한 신생독립국의 경우와 같게 인식케 함으로써 국가체면을 손상시키는 망론이다. 특히 국가구성 3요소(국민, 영토, 주권) 불비(不備)설이나 UN등 국제적 불인정(不認定)을 들어 대한민국의 건국시기를 1948년 정부수립시기로 보는 주장은 식민지 항쟁의 위대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는 바른 역사관이 결코 아니다. 일부 학자들의 학설에 불과한 국가구성 3요소를 어떻게 건국의 요소들로 동일시 할 수 있으며, 각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건국의 동기와 원인이 다를 진대, 국가구성 요소의 잣대로만 우리의 역사를 판단할 수가 있는가? 지구상에는 이 잣대의 기준 없이 건국된 국가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의 우방국가인 미국의 경우를 보면, 1776년 7월 4일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국호로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뉴라이트 학자 이모 씨가 주장하는 미국의 건국절은 이 독립선언일(Independence Day, 독립기념일)을 말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국가, 영토, 주권이 없었다. 국제적인 인정도 미영 전쟁 때 미국을 도왔던 프랑스뿐이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1789년 미연방정부가 수립되었고,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에는 국부(國父)가 아닌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그 중의 한 명이다. 이것에 비하면, 1919년 우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보다 훨씬 나은 여건이었다. 당시 한반도에 거주한 우리 선조들은 한 번도 일본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한반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의 호법정부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레닌정부, 프랑스와 폴란드의 망명정부, 리투아니아 정부 등도 우리 임시정부를 인정했다. 특히 1948년 건국절 제정은 과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친일행적을 지우는 구실이 될 수 있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자랑스럽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순기능보다 기회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을 배우게 하는 역기능이 더 많음을 우려한다. ‘다른 나라에 다 있는 생일도 없는 대한민국’ 운운하며 국민을 오도하지 말라. 생일이 없기는 왜 없단 말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생일로 정하면 왜 안 되는가!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운동 직후 ‘대한민국 수립’을 임시정부가 선포하고, 부단한 독립운동을 통하여 광복을 되찾았으며, 1948년 정식정부가 수립되어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우리 역사의 정설이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이기도 하다. 광복회는 이번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건국절 관련 국회 내 대국민 공개토론 제안을 적극 찬성한다. 건국절 공개토론은 그동안의 국력소모를 줄이고,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간을 분명히 밝히고, 국가정체성을 영구히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 중대 사안이라 여겨지기에, 광복회는 적극 환영하며, 제안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광복회는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여야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건국절 논쟁을 정쟁의 도구나 정치적 사안으로 보지 않을 것으로 믿으며,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토론회에 임해 줄 것을 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냥 얻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독립운동 선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태극기 아래서 목숨을 내놓고, 일제에 피나는 투쟁을 했다. 일제의 군경에게 사살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광복회는 우리 사회가 오늘에 이르러 잘못된 판단으로 지난날 오직 나라와 민족만을 위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귀가 즐거운 밤 양재천 ‘夏모니’

    서울 양재천을 무대로 오는 19일 저녁 시원한 클래식 공연이 펼쳐진다. ●오페라·합창 등 한자리서 만날 수 있어 강남구가 영동 6교 아래 특설 수변 무대에서 개최하는 ‘양재천 하(夏)모니’ 공연. 올해 14회째를 맞는 이 공연이 더 각별한 이유는 양재천이 지난해 서울시가 지정하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인 까닭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성기선 예술감독 지휘로 영화음악 모음곡과 오페라 아리아, 합창, 뮤지컬 곡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연기에도 도전한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들려준다. 뮤지컬 배우 양준모는 안중근을 소재로 만든 작품 ‘영웅’의 한 장면을 선보여 광복절 의미를 되새긴다. 소프라노 손지혜와 테너 신동원은 강남합창단·메트오페라합창단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오케스트라 80명 등 대형 규모 진행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 80명, 합창단 70명, 출연진 20여명 등 170여명이 한 무대에 서는 대형 규모의 공연이다. 양재천변에 특별히 제작된 무대는 폭 18m, 깊이 15m의 플로어를 물 위에 앉혀 자연과 조명이 더해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남구 관계자는 “마치 물 위에 떠서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날 것”이라며 “약 300석 규모의 수변 객석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시 전역에는 372개의 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4대문 안과 성저십리(성 밖 4㎞ 이내)에 많이 분포해 있지만, 서울 사방에 고루 흩어져 있다.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기존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10일 김성수 가옥, 북촌 한옥 밀집 지역, 헌법재판소 백송(박규수 집터) 등 서울미래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북촌길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세 번째 시간은 명동에서 시작해 남산 옆구리를 타고 넘어 해방촌을 거쳐 숙대입구역에서 마무리했다. 이번 역사탐방의 핵심은 남산과 해방촌이다. 남산에는 한양공원비, 남산도서관 등 미래유산이 있다. 해방촌은 해방교회 근처인 용산구 신흥로 11나길 22 일대를 중심으로 집단거주 지역이 모두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108계단도 미래유산이다. 이 탐방 코스에서는 일제강점기, 미군정 등 해방전후사와 근대화의 흔적을 퇴적층처럼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날 해설은 손안나 서울미래유산 해설사가 맡았다. 손 해설사는 “저는 ‘히스토’(Histo)라는 휴먼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답사를 하면서 역사 교육을 할 때 내재한 잠재력이 개발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광규 해설사는 답사 시작부터 끝까지 안전을 책임졌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인 권기봉 작가도 3차 답사에 동행했다. 권 작가는 ‘서울을 거닐면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만나다’, ‘다시 서울을 걷다’ 등의 저서를 통해 서울의 과거에서 미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틈틈이 답사단에 합류하겠다고도 했다. 비공식 해설사 한 명이 더 생긴 것처럼 든든하다. 권 작가는 “급격히 변해 가는 서울에서 ‘지금의 우리’는 아직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다음 세대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치열했던 풍경’을 톺아보고 비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산을 발굴해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함께한 취지를 설명했다. 답사단은 명동역 인근 작은 공원에서 모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의 취지와 코스를 설명들은 뒤 출발했다. 일행은 30m 정도 걷다가 퍼시픽호텔 옆에 멈춰 섰다. 호텔 안에는 한영양복점이란 서울미래유산이 있다. 서울에는 4개의 양복점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중구에 있는 종로양복점, 해창양복점과 은평구에 있는 청기와양복점 등이다. 이곳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멋쟁이 ‘모던보이’들의 단골이었다. 한영양복점은 1932년 중구 남대문로1가 201번지에서 박정재라는 사람이 창업했다. 이 거리 500m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70년대 초 무렵까지 35개 업체가 성행했다. 한영양복점은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2011년 현 대표인 김길수씨가 지금 위치인 호텔 안에서 개업했다. 주인은 바뀌었으나 같은 상호로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한 이유로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퍼시픽호텔 왼쪽, 행정구역상 도로명인 퇴계로 20길은 ‘재미로(路)’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명동역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450m 길을 오래된 만화부터 최근 웹툰까지 주제로 꾸미면서 붙여진 것이다. 재미로를 거쳐 남산순환도로로 올라서면 그 유명한 남산케이블카가 나온다. 남산케이블카는 한국삭도공업주식회사가 1962년부터 운영하는 미래유산 시설이다. 남산케이블카를 지나면 도로변에 동그마니 커다란 비석 하나가 놓여 있다. 한자로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한양공원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서울에 사는 일본인들이 증가하면서 일본 거류민단이 1897년 현 숭의여자대 자리에 왜성대공원(倭城大公園)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란 명목을 내세웠는데 1908년에 토지를 대여받아 1910년 3월 개원했다. 일본 거류민단은 이 공원에 남산대신궁을 세웠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을 건설해 ‘경성신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양공원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경성신사는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이면 ‘남촌의 작은 일본 마을’처럼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이 풍경을 담은 엽서도 찍어 냈다. 이런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 한양공원 전면 글씨는 고종 황제의 어필인데 표석은 1912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강제 합병이 된 지 2년 뒤에 고종은 왜 하필 한양공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비석 뒷면에는 공원 조성에 기여한 사람들로 추정되는 명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훼손돼 알아볼 수 없다. 탐방에 참여한 시민 신자용(33)씨가 “누가 왜 명단 부분을 쪼아서 훼손시켰냐”고 묻자 손 해설사는 “기부자 명단일 경우 친일 행적으로 드러날까 두려워서 당대나 후손이 한 짓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대학생 왕규원(21)씨는 “한양공원비 뒷면이 깨져서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는 부분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 비석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인근 풀숲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손 해설사는 “남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민족 정기의 중심 역할을 했다”며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남산을 일본화하면서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한양공원비 건너편에는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계단은 일명 ‘삼순이 계단’이다.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탤런트 현빈과 김선아가 키스하며 해피엔딩을 맺은 곳이다.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은 1970년 육영재단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회관이다. 머릿돌에는 ‘1970. 5. 5 육영수’라고 적혀 있다. 개관 3일 만에 문을 닫았는데 이유는 하루에 3만명이란 예상치 못한 입장객이 몰렸던 탓이다. 1974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전환했다가 지금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과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손 해설사는 “이 건물 앞 일대에는 조선시대 전통 제당인 국사당이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인왕산으로 옮겼다”며 “이는 한마디로 조선 개국의 정신을 보여 주는 상징적 건물을 없애는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신궁 터 앞에는 결연한 표정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남산에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일제가 조선신궁을 비롯해 경성호국신사, 왜성대총독부청사, 총독 관저 등을 지었다. 이들을 모두 제압하듯 안 의사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이 더 의연해 보이는 것은 이 장소가 지닌 의미 탓이다. 손 해설사가 돌발 퀴즈를 냈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쉽게 듣고 쓰는 말이지만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손 해설사는 “모두 일제에 항거한 것은 같지만, 의사는 무력으로, 열사는 비무장으로 대항한 인물을 뜻하고, 순국선열은 일제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고, 애국지사는 자연사한 분들”이라고 정리했다. 남산순환도로를 걸어 내려오다 만나는 남산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다. 역시 미래유산이다. 1922년 10월 5일 명동에서 경성부립도서관으로 개관한 후 1964년 12월 31일 현재 건물이 신축돼 옮겨졌다. ‘동장 이봉천 기적비(記蹟碑)’가 해방촌으로 들어선 답사단을 가장 먼저 반겼다. 실향민이었던 그는 1955년 해방촌 초대 동장이 된 후 관가의 도움 없이 지역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주민들은 그의 공로를 기록하기 위해 기적비를 세웠다. 권 작가는 “해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가진 것 없이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과 전쟁 중 사망한 군경의 처자식을 위한 보금자리였다는 점에서 ‘소수자를 위한 인큐베이터’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에 들어서자 소설가 김치(44)씨는 “이곳이 아트마켓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좋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남산을 유린하기 위해 만든 경성호국신사는 터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다. 다만 신사에 오르내리기 위해 만들었을 108계단을 근거로 위치를 어림짐작하게 하고 있다. 108계단에는 2012년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벽화와 조형물이 설치됐지만, 지금은 관리가 안 돼 퇴색하고 있다. 서울시는 108계단을 1960~70년대 해방촌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후암동 쪽으로 들어서자 ‘성의사’란 단출한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1953년 개업한 가운 판매점이다. 주로 교회 성가대 가운을 취급한다. 좀더 내려가니 ‘T. 본 스테이크’라고 간판을 단 음식점 ‘황해’가 나왔다. 1973년 개업한 부대찌개·스테이크 전문점이다. 정순자 대표는 “이 동네 부대찌개, 스테이크 원조는 우리 집인데 돈 주고 TV 나가는 것이 싫어서 안 했더니 주변 다른 집이 원조로 둔갑했다”며 “서울미래유산 현판도 번거로워 안 했는데 이번 기회에 꼭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시 관련 부서 공무원이 동행한 덕분에 조만간 현판이 설치될 전망이다. 손 해설사는 중화요리 식당으로 미래유산에 지정된 덕순루를 마지막으로 설명을 마쳤다. 답사 내내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갰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안중근 의사에 “손가락 장애”…도 넘은 워마드 게시물 ‘논란’

    안중근 의사에 “손가락 장애”…도 넘은 워마드 게시물 ‘논란’

    남성 혐오 성향의 온라인커뮤니티 ‘워마드’에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조롱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워마드에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합성사진과 함께 “둘 다 한남충(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사이트 내에서 높은 조횟수와 추천수를 기록했다. 워마드 회원들은 이 게시물에 “손가락 장애 아저씨”, “손도장까지 찍다니 관심종자다”, “성기 크기도 장애인일 것”, “폭탄을 던지고 총 쏘는 게 무슨 독립운동이냐”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글과 댓글 내용은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퍼졌고 네티즌들은 “광복절에 독립투사를 모욕했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게 소름끼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지난 1월 개설된 워마드는 3만명의 회원으로 구성됐으며 여성만 가입과 활동이 가능하다. 하루에 5000여개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달 “직장 상사 커피에 부동액을 타서 먹였더니 병원에 실려갔다”는 글이 논란이 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강남구, “양재천에서 한여름밤 夏모니 즐기세요”

    서울 양재천을 무대로 오는 19일 저녁 시원한 클래식 공연이 펼쳐진다. 강남구가 영동 6교 아래 특설 수변 무대에서 개최하는 ‘양재천 하(夏)모니’ 공연. 올해 14회째를 맞는 이 공연이 더 각별한 이유는 양재천이 지난해 서울시가 지정하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인 덕분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성기선 예술감독 지휘로 영화음악 모음곡과 오페라 아리아, 합창, 뮤지컬 곡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연기에도 도전한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들려준다. 뮤지컬 배우 양준모는 안중근을 소재로 만든 작품 ‘영웅’의 한 장면을 선보여 광복절 의미를 되새긴다. 소프라노 손지혜와 테너 신동원은 강남합창단·메트오페라합창단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 80명, 합창단 70명, 출연진 20여명 등 170여명이 한 무대에 서는 대형 규모의 공연이다. 양재천변에 특별히 제작된 무대는 폭 18m, 깊이 15m의 플로어를 물 위에 앉혀 자연과 조명이 더해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남구 관계자는 “마치 물 위에 떠서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날 것”이라며 “약 300석 규모의 수변 객석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광복절 경축사] “미래지향적 관계로” 딱 한 문장 직접 거론

    “한·일 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 71주년 경축사에서 대일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부분은 딱 이 한 문장이었다. 이는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간략해진 것이어서 한·일 관계가 경색 국면에서 다소나마 벗어난 것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등 한·일 관계에 대해 함축적 언급에 그친 것은 양국이 지난해 ‘12·28’ 위안부 합의를 타결하고 관계 정상화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양국의 위안부 합의 이행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 등 민감한 갈등 현안이 줄어든 만큼 앞으로의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언급하는 쪽을 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박 대통령이 경축사 앞부분에 일본에서 ‘테러리스트’라고 폄훼하는 안중근·윤봉길 의사의 유언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식민통치 36년의 고통과 설움, 가혹한 수탈’이라는 표현을 불사한 것을 놓고 간접적이긴 하지만 매우 강력한 대일 메시지라는 평가도 있다. 여전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왜곡을 일삼고 있는 일본을 상대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안중근·윤봉길 의사를 언급한 것은 강력한 대일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전례를 비춰 봐도 광복절에서 두 분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도 내심 불쾌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는데, 하얼빈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고, 안 의사의 유언은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 직전에 한 것이기에 연설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이 부분을 정정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안중근 의사 순국장소 틀려

    박근혜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안중근 의사 순국장소 틀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지를 잘못 말했다가 뒤늦게 정정했다. 박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하얼빈에는 일본의 수감시설이 없었고,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 직전 남겨진 것이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소를 숨진 장소로 착각했다는 지적에 “하얼빈이 아닌 뤼순 감옥”이라고 정정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날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경축사를 한 데 이어 2년째 광복절을 ‘건국 기념일’이라고 칭했다. 뉴라이트 성향의 우익인사들은 1948년 8월15일이 건국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이승만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이다. 이에 박 대통령의 ‘건국 기념일’ 언급이 이러한 뉴라이트의 주장에 우회적으로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대 정부는 1948년 8월15일을 ‘정부 수립일’이라고 했지 ‘건국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지난 13일 92세 광복군 노병 김영관옹은 청와대 오찬에서 “건국절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다”고 이같은 문제에 대해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허위·이위종·최재형 선생 후손들 한국인 됐다

    허위·이위종·최재형 선생 후손들 한국인 됐다

    법무부는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10일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항일의병장 허위 선생의 후손 8명, 헤이그 특사 이위종 선생의 후손 2명,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8명 등 총 38명이 국적증서를 받았다. 허위 선생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대를 일으켜 경기도 일대에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결성한 뒤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했지만 일본군에 패했고, 1908년 체포돼 그해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 선생은 1907년 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번역했다. 각국 신문 기자단의 국제회의에 참석해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일본의 침략상을 규탄하는 ‘한국을 위한 호소’란 강연을 하는 등 구국운동에 생애를 바쳤다. 최재형 선생은 러·일 전쟁 이후 일제의 한국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자 1908년 이범윤·이위종·안중근 선생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해 의병부대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초대 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무장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했다. 1919년 간도에서 철혈광복단을 조직하고 일제 현금 수송차를 습격해 빼앗은 현금으로 무기를 사 북로군정서에 제공한 최이붕 선생, 1906년 안창호 선생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에 가입한 후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한 임정구 선생의 후손 등도 한국 국적을 얻었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아 특별귀화 허가를 통해 총 970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전남 장흥, 그냥 그런 깡촌에 뭐가 있겠냐고? 골목이 끝날 때쯤 짠~ 새 세상이 열린다

    전남 장흥, 그냥 그런 깡촌에 뭐가 있겠냐고? 골목이 끝날 때쯤 짠~ 새 세상이 열린다

    전남 장흥은 독특한 곳이다. 볼 때마다 새롭다. 익숙한 골목 끝에서 새 풍경이 튀어나오고, 심드렁하게 걸었던 갯마을 안길에서 켜켜이 쌓인 역사의 자취를 보게 된다. 맨부커상의 작가 한강(46)이 종종 찾았다는 회진 앞바다가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을 재건한 곳이었다는 것, 장흥에서도 ‘깡촌’으로 통하는 장동면에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를 배향하는 사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니 장흥을 돌다 보면 당최 느슨해질 틈이 없다. 지난 5월. 전남 장흥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장흥은 한강의 아버지이자 작가인 한승원(77)의 고향이다. 그가 오랜 외지 생활을 접고 귀향해 터를 잡은 곳이 안양면 사촌리의 ‘해산토굴’이었고, 남도 끝자락의 갯마을에서 마을잔치가 열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한승원 작가에 따르면 한강은 학생 시절 가끔 회진면의 삼촌 댁을 찾아 뱃일 거들며 방학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고향은 아니라 해도 감수성이 풍부한 학창 시절에 찾았던 회진은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어린 시절 너나없이 찾아갔던 시골 ‘외할머니댁’에 얼마나 많은 추억을 묻어두었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장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해산토굴 아래는 여닫이 해변이다. 키조개의 대표 산지로 꼽히는 곳. 장흥 유일의 해수욕장도 여기 있다. 해수욕객들을 위한 시설들을 여럿 조성해 뒀지만, 뜻밖에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여닫이 해변에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어등’, ‘모래알’ 등 한승원의 글이 새겨진 문학비들이 700m 정도 이어진다. 해산토굴 바로 앞에 원두막이 하나 있다. 멀리 마을 너머로 장흥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담장도, 대문도 없으니 누구라도 들러 다리쉼을 해도 좋겠다. 혹시 모를 일이다.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 작가가 우연히 나와 말동무를 해 줄지도. 오전 무렵이면 늘 ‘한승원 문학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고 하니, 모시옷 걸치고 휘적휘적 걷는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말 한 번 건네볼 일이다. 회진면은 흔히 ‘장흥 문학의 자궁’으로 표현된다. 수많은 작가에게 문학적 토대가 됐다는 뜻이다. 회진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 대표적인 인물로 이청준(1939~2008), 한승원 등이 꼽힌다. 동갑내기인 두 작가 중 이청준은 회진 근처의 진목마을, 한승원은 회진리 바로 맞은편의 덕도에서 태어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회진은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을 재건한 곳이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내려와 판옥선 12척으로 조선 수군의 명맥을 이었고, 이는 연이은 승전보의 도화선이 됐다. 앞서 성종 때엔 잦은 왜구의 출몰을 막기 위해 성을 쌓기도 했다. 그곳이 바로 회령진성이다. 회진 초입의 언덕에 있는 성벽에 오르면 너른 회진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키 낮은 집들 너머로는 장흥 바다가 부드럽게 능선을 그리고 있다. 이 일대 바닷물빛 참 곱다. 청잣빛이다. 이런 물빛 신안 안좌도나 강진만 등에서도 본 적 있다. 손대면 묻어날 것 같은, 푸른 우유를 보는 듯하다. 한승원의 생가가 있는 덕도 풍경도 곱다. 덕도는 옛 동학군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자부심도 세고 문향도 짙다. 할미꽃 공원이 있는 한재에서 마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다. 회진항에서 지방도를 타고 신상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해양낚시공원, 오른쪽은 노력도 가는 길이다. 노력도는 회진대교로 뭍과 연결돼 있다. 섬 끝자락은 노력항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제주 성산포를 오가는 ‘오렌지호’가 운항될 만큼 번듯한 곳이었지만, 여객선이 운항을 중지한 지금은 쇠락한 항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적이 드물다는 건 때로 장점이 되기도 한다. 다소 쓸쓸하긴 해도 더없이 고즈넉하게 남도의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항구 방파제에 서면 멀리 완도의 금당도, 생일도, 해남의 소록도 등이 수평선 위로 섬처럼 떠 있다. 해넘이 명소로도 꼽힌다. 섬 오른쪽으로 난 해안도로를 따라 돌다 보면 청잣빛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해양낚시 공원에서는 바다낚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좀더 짜릿한 손맛을 원한다면 회진항에서 낚싯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완도와 경계에 있는 가두리 양식장 주변까지 나가 다양한 어종을 낚을 수 있다. 장흥 북쪽의 장동면 일대를 돌다 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 나라 안에서 한 곳뿐이라는 것, 그리고 안 의사와 전혀 연고가 닿지 않는 지역에, 그것도 다른 성씨의 문중에서 이를 세우고 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장흥군의 안병진 예산계장에 따르면 안 의사의 위패를 모신 해동사(海東祠)는 1955년 안홍천이란 지역 유지가 세웠다. 안 의사는 순흥 안씨, 안홍천은 죽산 안씨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으로 묶인 관계가 전혀 아니다. 당시 장흥의 재력가였던 안홍천은 안 의사의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사재를 털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도 죽산 안씨 문중에서 매년 음력 3월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 의사 기념관과 해동사의 경도가 126도로 같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기막히다. 해동사의 규모는 소박하다. 건립 당시엔 1칸이었다가 2006년 3칸짜리 팔작지붕으로 중건됐다. 편액에 쓰인 ‘海東明月’(해동명월) 글씨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사당 내부엔 안 의사 영정 2점과 친필 유묵 복사본이 보관돼 있다. 해동사 바로 옆은 죽산 안씨 문중의 사당이다. 장흥 여정에서 메모해 둘 것 하나. ‘정남진장흥물축제’다. 오는 29일~8월 4일 읍내 탐진강, 편백숲 우드랜드 일대에서 열린다.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라고 깔보면 곤란하다. 읍내가 발디딜 틈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고, 갯마을로서는 드물게 차량 정체 현상도 빚어진다. 읍내를 흐르는 탐진강 전체가 물놀이공원으로 바뀐다고 보면 알기 쉽다. 물위에서 놀 수 있는 온갖 기구들도 등장한다. 유아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딱이다. 가장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은 ‘살수대첩 물싸움 퍼레이드’다. 군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울려 물싸움을 벌이는 이벤트인데, 읍내 중심지를 무대로 너나없이 ‘흥겨운 싸움’을 벌인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해고속도로 영암·순천 구간으로 갈아탄 뒤 장흥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안중근 의사 사당이 있는 해동사는 장흥 북쪽의 장동면에 있다. 여정의 처음이나 끝자락에 들르는 게 효율적이다. →맛집 요즘 장흥의 제철 먹거리는 된장물회다. 된장을 써서 물회를 만들면 과연 맛이 날까 싶은데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달달하고 상큼한 맛이 물 샐 틈없이 입안에 꽉 찬다. 횟감도 병어, 서대 같은 고급 어종들을 쓴다. 진호식당(867-2843)이 알려지지 않은 강자다. 원래 장흥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던 곳인데 워낙 인기가 좋아 정식 업소로 문을 열었다. 굴구이촌으로 이름난 죽청리에 있다. 바지락회무침은 수문해변의 바다하우스(862-1021)가 알려졌다. 수문해변은 키조개의 산지로 이름난 곳. 담백하고 달달한 키조개구이도 별미다. ‘낙지삼합’도 맛있다. 20일 금어기가 풀려 포실하게 살이 오른 낙지와 달보드레한 키조개, 기름진 돼지고기를 하나로 묶은 뒤 입안에 날름 털어 넣는다. 신가네 낙지삼합(863-6663)이 알려졌다. ‘전설적인’ 장흥삼합의 인기는 여전하다. 키조개와 표고버섯, 소고기가 한 묶음이다. 만나숯불갈비(864-1818~9)가 유명하다.
  • [The Best 시티] 스토리 넘치는 골목 역사가 흐르는 거리… ‘서울의 심장’ 중구

    [The Best 시티] 스토리 넘치는 골목 역사가 흐르는 거리… ‘서울의 심장’ 중구

    서울 중구는 서울특별시의 심장부이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살아 숨 쉰다. 조선시대 사대문을 품에 안고, 근현대사의 굴곡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새겨져 있다. 최첨단 한류를 추종하는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쇼핑 천국 명동뿐 아니라 남대문과 명동성당, 중림동 약현성당 등 중구 한복판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1일로 재선 임기 반환점을 도는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이 ‘1동(洞) 1명소 사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최 구청장은 7일 “중구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발굴해 세계가 주목할 중구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게 1동 1명소 사업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주민과 젊은 예술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역사와 스토리를 입힌 거리를 만들면, 구는 이를 착착 지원해 중구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골목문화의 발견’, ‘구도심에 활력 불어넣기’ 두 가지가 키워드다. 기술고등고시(13회) 출신으로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지낸 도시계획전문가인 최 구청장은 중구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산을 관광으로 연결시켜야 일자리, 미래 먹거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소신이다. 텅 비어가던 옛 도심이 되살아나는 건 덤이다. 올해 2월 첫 삽을 뜬 중구 서소문 역사공원을 비롯해 필동 서애대학문화거리, 다산동 성곽예술문화거리, 광희문 문화마을, 을지로 도심산업 특화거리, 정동길, 남산 역사문화거리 등 1동(洞) 1명소를 따라가 보자. ●국내 최대 천주교 순교지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서울 한복판인 서울역 근처에 우리나라 최대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지금의 서소문공원 근방은 조선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로 죄인들을 처형했던 장소다. 특히 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년) 때 희생된 순교자 중 44명이 성인으로 시성됐고 추가로 25명이 시성될 예정이다. 규모로 볼 때 가히 세계 최대급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재작년 방한 때 이곳을 방문했다.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지만 그동안 서울역 철길에 가로막혀 접근이 쉽지 않았다. 서울역 노숙자들이 공원을 점령하면서 분위기도 어두웠다. 한마디로 방치된 공간이었다. 중구는 이곳을 성지순례객은 물론 일반인도 즐겨 찾을 수 있는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주변 천주교 명소인 중림동 약현성당, 명동성당, 절두산성지, 새남터, 당고개 성지와 연결하면 서울 전체를 꿰뚫는 세계적인 성지순례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다. 올해 말까지 서소문 공원 일대 2만 1363㎡를 지상은 역사공원으로, 지하는 순교 성지를 표현하는 기념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게 포인트다. 최 구청장은 “현재 서소문공원은 경의선 철로 때문에 단절돼 있지만 공원과 중림동 일대를 철도 복개로 연결하고 서울역에 새로 건설되는 컨벤션센터 녹지 축과 연결하면 약 4만 1000㎡의 대형 녹지 공간이 생긴다”고 귀띔했다. ●딸깍발이 선비 문화도, 젊은 예술도… 필동 서애대학문화거리 중구 퇴계로 4가의 한 주유소 앞(퇴계로 44길 10)에는 조선시대 명재상인 서애 유성룡의 집터 표석이 서 있다.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중기 대실학자. 국보 132호인 징비록을 남겼고 청렴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주인공이다. 그의 호를 본떠 근처 서울침례교회부터 필동 방향 800m 구간이 ‘서애길’로 불린다. 집터와 서애길을 중심으로 동국대, 남산 한옥마을, 충무로를 연계하는 필동지역은 ‘서애대학문화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최 구청장은 “특히 주민과 문화기업, 젊은 예술가들이 먼저 나서 필동 일대 골목문화가 변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산 딸깍발이 선비 정신을 간직한 필동, 1970~8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구가했던 충무로를 밟아보자. 버려진 골몰 자투리땅엔 개인이 세운 거리 미술관 8개가 들어섰고,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동네 주민들이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로 바뀌었다. 한 민간업체는 남학당(조선시대 아이들을 가르쳤던 한성 4학당 중 하나)터에 독서, 세미나를 즐길 문화공간(24번가 서재 남학당)을 열었다. 길 건너편에는 소극장 ‘코쿤뮤직’이 자리한다. 중구는 보도를 걷기 좋게 바꾸고 가로등 설치, 불량 공중선 지중화, 차 없는 거리 지정, 간판 개선 등 후방지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제1회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藝術通)은 이렇게 열렸다. 주민들 스스로 축제조직위원회를 만들었고 120여명의 예술가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한 자생적인 골목축제다. 유성룡 기념공간 등 서애문화광장은 2018년까지 조성된다. ●성곽길 따라 걸으면 남산 야경 한눈에… 다산동 성곽예술거리 서울 성곽길은 도심 속 숨겨진 보물이다. 이 길은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다산팔각정까지 이르는 동호로 17길 일대 약 1050m구간. 신라호텔 옆길로 올라가면 사적 제10호인 서울 성곽이 남산을 끼고 국립중앙극장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각종 규제에 묶여 방치됐던 외딴 성곽길도 요사이 북적이고 있다. 최 구청장은 “예비 사회적기업 등에 문화시설 위탁운영을 맡겨 동네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다산아트공영주차장 지상 2~3층에 문을 연 카페·문화예술 놀이터 ‘꼬레아트’가 중심 축이다. 지난해 11월 맞은편에 오픈한 ‘The 3rd Place’에는 갤러리, 문화강좌가 열리는 북 스튜디오, 디자인 창업 상담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카페가 입주했다. 원주민도 즐기고, 삼청동처럼 공방문화도 만들자는 취지다. 특히 중구는 지난 4월부터 빈 건물을 임대해 청년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름하여 ‘문화창작소’다. 1호는 유리공예 창작·체험공간으로, 2호는 서울여대 출신 도예팀이 작업·전시장으로 쓰고 있다. 봄·가을로 성곽예술문화거리 축제가 열려 아트 마켓, 퓨전국악공연, 버스킹이 성곽길을 수놓고 있다. ●칙칙한 광희문·을지로 환하게… 도심산업 특화거리로 광희동의 광희문은 조선시대 때 ‘사대문 밖으로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으로 불렸다. 1975년 원래 위치에서 15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됐고, 2014년 일반에 개방됐다. 하지만 근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동대문패션타운과 비교하면 외지고 낡은 탓에 인적도 드물었다. 중구는 올해부터 이 동네를 리모델링 활성화구역으로 지정, 재건축 시 최고 30%까지 용적률을 높여줬다. 또 광희문 주변 벽화 조성, 점포 간판개선으로 칙칙한 거리를 환한 경관으로 바꿨다. 광희문과 흥인지문, 대장간 거리, DDP, 동대문패션타운, 중앙아시아 거리까지 코스별로 주민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광희문 달빛로드’ 탐방 프로그램은 호응이 뜨겁다. 이어지는 을지로 3~5가 일대는 공구, 조명, 미싱, 타일·도기, 조각, 가구 등 도심산업 특화거리로 조성됐다. 상품 제조와 소비자 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고객 친화형 거리로 만들겠다는 게 중구의 구상이다. 을지로는 ‘도심 공동화’의 상징처럼 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옛날 모습을 간직한 을지로를 되짚어보는 골목길투어 ‘을지유람’으로 역사 유산, 맛집, 영화촬영지를 보러오는 이들이 늘면서 ‘낭만 골목’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정동 밤길 걸어볼까 덕수궁, 대한성공회, 영국대사관, 러시아대사관…. 한국 근대문화유산이 오롯이 남아 있는 정동의 밤길을 걸으며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정동야행(夜行)’ 프로그램은 올해 3회째다.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밤축제로 올해 13만명이 다녀갔다. 고궁음악회, 성공회 수녀원·영국대사관 관람, 버스킹 등 즐길거리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정동야행은 문화재청이 선정한 ‘2016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 10선, 세계 축제의 오스카상 격인 ‘피나클 어워드’ 뉴프로그램상 수상 등 대표적인 도심축제로 자리잡았다. ●명동 만화의 거리부터 남산옛길까지 명동역 3번 출구부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는 명동 만화의 거리다. 뽀로로와 둘리, 달려라 하니, 키오카 등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을 골목 어귀에서, 아기자기한 가게에서 마주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만화애니케이션 페스티벌도 명동에서 열린다. 중구는 명동에서 회현동까지 남산 역사문화거리로 만들고 있다. 만화 캐릭터로 동심을 느껴 본 뒤 소파로·소공로 사이 숨은 옛길을 따라 시범아파트까지 남산옛길을 걷자면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조선시대 선혜청(宣惠廳) 터, ‘오성과 한음’ 일화 속 한음 이덕형 집터, 칠패시장(미곡·포목을 팔던 한양 3대 시장 중 하나) 터, 안중근 기념관 같은 역사적 흔적은 물론 남대문시장, 신세계백화점, 옛 제일은행 본점 등 상업지역이 뒤섞여 과거와 현재가 현존한다. 중구는 남산옛길 코스에 안내표지판과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치안에도 신경 썼다. 남대문시장 내 글로벌 먹거리 개발도 명소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주민들도 2012년부터 회현동 은행나무축제를 열고, 걷기 동아리에서 걷기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동네 알리기에 신바람이 났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안중근 의사 얼을 느끼려면 흑룡강성으로

    안중근 의사 얼을 느끼려면 흑룡강성으로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다녀왔던 국내 여행객들이라면 한 번 쯤은 흑룡강성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흑룡강성 하얼빈역에는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마련돼 있어 역사의식 고취를 위한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하얼빈 빙등제와 성 소피아 대성당, 태양도 공원, 경박호 등이 있다. 역사와 문화, 자연이 공존하는 흑룡강성을 보다 많은 국내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자리가 지난 10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마련됐다. ‘중국 흑룡강성 관광(여행)설명회’는 흑룡강성 여유국(관광국)발전위원회가 주최했으며, 한중지역경제협회가 주관을 맡았다. 자리에는 허우웨이 부국장을 비롯한 여유국위원회 고위 관계자와 국내 지자체 관광부처 담당자, 정동영 의원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한국과 중국의 여행사 대표, 항공사 대표, 수학여행 관련 종사자, 의료관련 종사자 등 300여명의 인원이 함께했다. 행사는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한 정동영 의원의 축사를 시작으로 내빈 인사말, 전북관광협의회 등 주요 협회와 여행사들과의 MOU 체결, 안중근 평화재단의 안중근 의사 흉상 증정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특히 허우웨이(侯伟) 부국장은 직접 나서 “2015~2016년 한중 상호 관광의 해를 맞아 양국의 관광 협력 관계가 공고해졌다”고 전하면서 흑룡강성의 매력적인 자원과 상품을 소개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과 흑룡강성과의 돈독한 우정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중지역경제협회 이상기 회장은 “태권도와 안중근 기념관 탐방연수 등 프로그램을 통해 양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자 한다”며 “유라시아 구상 관련 흑룡강성의 전략적 위치 와 러시아극동지역과의 교두보 역할을 고려시 새롭게 다가오는 지역이라는 점에 착안을 해서 흑룡강성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흑룡강성 관광설명회가 향후 양국의 발전과 교류에 있어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요 포커스] 전선에서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황인무 국방부 차관

    [금요 포커스] 전선에서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황인무 국방부 차관

    어느덧 계절은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하다. 6월의 열기는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호국영령들의 뜨거웠던 애국심과 유난히 닮아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와 같은 이름을 남겨 줬다. 그러나 어렴풋한 숫자로만 기록되어 있는, 이름도 사진도 남지 않은 셀 수 없는 젊은이들 또한 절망과 불의가 뒤덮인 세상에 몸을 던졌다. 그들은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뜨거웠던 다부동과 눈발이 휘날리는 백마고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들의 청춘을 국가를 위해 바쳤다. 고귀한 삶과 죽음이 모두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사지(死地)에 오기로 결심하였는지 오늘날의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과 죽음이 우리들 삶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국방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모를 영웅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12만 4000여 전사자가 아직도 이 땅의 산과 들 어딘가에 묻혀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작은 뼛조각이나 단추, 칫솔 같은 조그만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국방부는 그 작은 흔적들을 단서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들의 품으로 보내드리고 있다. 더디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현재 9100여명의 국군 전사자를 찾았고 그중 113명의 신원을 확인해 그리던 가족 품에 안겼다. 그러나 이들의 직계유족은 대개 70~80대의 고령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유해 소재 제보와 유전자 시료채취 등 유해발굴사업의 국민적 참여가 절실하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도 어느덧 60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대치 중이고, 북한의 국지 도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 고요했던 서부 전선에서 북한의 목함지뢰가 터졌다. 갑자기 닥친 위험에도 장병들은 놀라운 속도로 경계태세를 취하며 부상자를 옮겼다. 오른쪽 발목을 잃은 김정원 하사는 정신이 들자 동료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이후 전 군에서는 전역 연기 신청이 잇따랐다. 올해 초까지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와중에 전역 연기를 자원한 장병은 1000여명이 넘는다. 바로 이들이 우리 국방의 근간이다. 젊음을 꽃피우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지만 지금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묵묵히 전선을 지킨다. 이들의 이름 또한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오늘날의 평화로움을 기록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우리 장병들이 있다. 그들은 묵묵히 서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전선에 내어주고 있다. 이것은 존중받아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우리 장병들을 더 많은 국민들이 사랑해 주시기를 바란다. 따스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봐 주시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온기가 전선 장병의 시린 손을 녹이고 불의와 적의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게 격려해 주시기를 바란다. 터미널에서, 기차역에서 만나는 장병들에게 따뜻한 눈인사를 건네 주시기를, 아들 같고 동생 같은 이들의 듬직한 등을 한 번쯤은 두드려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국방부도 젊은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5년 병영문화 혁신 대책을 수립해 군 인권을 개선하고, 복지문화시설 확충 등 근무여건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3월부터는 전·공상 장병 민간의료 지원제도의 정비를 통해 장병들이 완치될 때까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장병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국방부의 노력은 앞으로도 다방면에서 진행될 것이다. 오늘 밤에도 이 나라의 아들딸들은 훈련으로 지친 몸을 야지에 기댈 것이다. 전선의 초병은 여전히 눈을 빛낼 것이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는 초계함이 파도를 이겨내며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꽃은 전선에서 피고 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모두는 어쩌면 빚을 지고 있을지 모른다. 늘 고마운 마음으로 그 고귀한 희생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 한국방문위원회, ‘역사 인식 논란’ 설현 사진 홈페이지서 삭제

    한국방문위원회, ‘역사 인식 논란’ 설현 사진 홈페이지서 삭제

    한국방문위원회가 최근 역사 인식 논란을 빚은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의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설현은 배우 이민호와 함께 2016~2018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해왔다. 그러나 지난 3일 방송된 온스타일의 ‘채널 AOA’에서 설현은 지민과 함께 역사 인물 맞추기 퀴즈를 푸는 과정에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도 맞히지 못했고, 지민이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되물어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설현은 스마트폰으로 한참을 검색하다 겨우 안중근 의사를 찾아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안중근과는 관계 없는 검색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역사 인식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설현은 한국방문위원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이력을 두고 더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홍보대사 자질 논란도 불거졌다.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한국방문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와 SNS 메인에 있던 설현의 사진을 삭제했다. 기존에는 이민호와 설현의 사진이 함께 나왔으나 현재는 이민호의 사진만 올라와 있다. 한국방문위 관계자는 다만 “홍보대사 교체는 아직 계획이 없다”면서 “설현은 재능기부 형식으로 위촉됐다. 사진 삭제와 홍보대사 교체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논란 속 AOA, ‘GOOD LUCK’보다 필요한 것 (종합)

    논란 속 AOA, ‘GOOD LUCK’보다 필요한 것 (종합)

    11개월 만의 컴백. 그 기쁨의 순간에도 AOA는 웃을 수 없었다. 16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진행된 AOA 미니 4집 ‘굿 럭’(GOOD LUCK) 발매 기념 쇼케이스는 그 어느때보다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AOA의 높은 인기 탓도 있겠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논란 때문이었다. 앞서 AOA 멤버 설현과 지민은 지난 3일 온스타일 ‘채널 AOA’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놓고 장난스러운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16일 자정 공개된 ‘굿 럭’(GOOD LUCK) 뮤직비디오에는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기업의 로고가 노출돼 이런 상황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때문에 AOA는 새 앨범 타이틀곡 ‘굿 럭’ 공개 직후 주요 음원 사이트 정상을 싹쓸이했으나 오롯이 그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이날 AOA는 수록곡 ‘10 seconds’와 타이틀곡 ‘굿 럭’(Good Luck) 무대를 통해 관능적이면서도 당찬 걸크러시 매력을 발산했지만, 무대가 끝나자 금세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쇼케이스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은 물론이었다. 리더 지민은 “1년 만의 컴백이어서 떨렸는데 좋지 않은 일로 많은 분께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며 “앞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말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설현도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앞으로 더 신중한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죄송하다”고 울먹거렸다. 하지만 이들의 거듭된 사과에도 돌아선 대중의 마음은 여전히 매몰차기만 하다. AOA는 이번 활동에서 타이틀곡 ‘굿 럭’(GOOD LUCK)으로 ‘행운’(GOOD LUCK)을 노래한다. 길이길이 사랑받는 방법을 행운이라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AOA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행운이 아니라 그 거듭된 사과를 어떻게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옮기느냐 일 것이다. 앞으로 AOA의 활동을 지켜볼 일이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AOA ‘Good Luck’ 전범기업 PPL 논란, 과거 일본 ‘내수 차별’ 눈길

    AOA ‘Good Luck’ 전범기업 PPL 논란, 과거 일본 ‘내수 차별’ 눈길

    AOA ‘Good Luck(굿 럭)’ 뮤직비디오가 PPL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과거 AOA의 일본 활동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설현·지민의 ‘안중근 긴또깡 발언’에 이어 16일 공개한 뮤직비디오에 일본 브랜드가 등장해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이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OA가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 화제가 됐던 ‘내수 차별’ 해프닝이 재조명 됐다.  당시 레이싱걸 컨셉으로 활동한 AOA는 마치 수영복 같이 짧고 가슴 부분이 깊게 파인 무대 의상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일본 활동곡 ‘사랑을 주세요’ 뮤직비디오에서는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흔드는 안무가 포함돼 노출이 더욱 부각됐다.   이에 팬들은 “유독 일본 활동 의상만 저렇다”, “꼭 저렇게 노출 시켜야 하나” “보컬 실력 좋은데 그걸 강조해주면 좋겠다” “너무 야하다” 등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한편 연이은 논란 속에서도 AOA의 새 미니앨범 타이틀곡 ‘굿 럭’(Good Luck)은 현재 각종 음원 사이트 차트 1위에 올랐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설현 지민 논란 비교 ‘안중근 기념관’ 후원 개념 여배우 누구?

    설현 지민 논란 비교 ‘안중근 기념관’ 후원 개념 여배우 누구?

    역사 의식 논란에 휩싸인 AOA 설현과 지민이 13일 개인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들을 향한 질타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여배우의 과거 ‘개념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여배우는 최근 종영한 KBS ‘태양의 후예’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송혜교’다. 송혜교는 지난 2013년 안중근 의사 의거일인 10월26일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 한글 안내서를 후원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송혜교는 “아무리 중국 내에 있는 우리 역사 유적지라고 하지만 아직도 한글 안내서가 없어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라며 “이런 작은 일 하나가 국내외 관람객 유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송혜교는 서경덕 교수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을 기념해 중국에 위치한 임시정부청사에 한글 안내서를 제공하는가 하면, 안중근 기념관 외에도 상해 윤봉길 기념관 등 전 세계에 위치한 독립운동 유적지와 미국 내의 뉴욕 현대 미술관 등에도 한글 안내서 및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4월 송혜교는 전범기업으로 알려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로부터 중국에 방송될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지만, 미쓰비시의 만행을 언급하며 광고 모델 제의를 거절해 또 한번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SSEN초점] 안중근에 ‘긴또깡?’ 논란... 설현 지민을 위한 변명

    [SSEN초점] 안중근에 ‘긴또깡?’ 논란... 설현 지민을 위한 변명

    걸그룹 AOA 멤버 지민과 설현이 안중근 의사를 향해 “긴도깡?”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말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며 논란에 휩싸였다. 지민 설현은 지난 3일 방송된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위인들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히는 게임에 임했다. 두 사람은 이순신, 신사임당, 김구 등의 이름을 맞힌 뒤 안중근 의사의 사진 앞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지민은 “안창호 선생님?”이라고 말했고 제작진은 “이토 히로부미”를 힌트로 제시했다. 이에 지민은 “긴또깡?”이라고 답했다. 긴또깡은 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으로 과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긴또깡’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시작한 설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말하더니 결국 안중근 의사라는 답을 찾아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며 한류스타인 설현 지민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설현과 지민은 12일 각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진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의 글을 올렸다. 설현과 지민이 민족의 영웅을 의도치 않게 희화화 한 것은 분명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으나, 그들을 이해할 만한 여지는 있다. 첫째로 해당 상황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스피드 퀴즈’였다. 리얼리티 예능이기 때문에 진지하지 않은, 편안하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방송에 임했을 것이다. 또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아는 단어도 머릿속을 맴돌 뿐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에 지민이 “안창호”라고 했을 때 안중근 의사를 떠올렸지만 실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어진 “긴또깡?”이라는 답은 대본이거나, 웃기기 위한 과욕이다. ‘긴또깡’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야인시대’는 무려 14년 전인 지난 2002년 방영된 드라마로 1991년생인 지민이 해당 단어를 기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해당 발언이 제작진의 ‘대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진의 잘못을 간과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를 알아보지 못하며 ‘긴또깡?’이라는 결례를 범하는 설현 지민의 모습을 재미있다며 공개한 제작진도 책임을 피할 순 없는 것. 이와 관련 13일 제작진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제작진이 더 신중하게 제작을 했어야 했는데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다. 앞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를 전했다. 어떠한 변명도 곱게 들릴수는 없지만, 걸그룹 등 연예인 지망생들이 10대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다는 안타까운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AOA는 오는 16일 네번째 미니앨범 ‘굿 럭(Good Luck)’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설현과 지민, 제작진의 발 빠른 사과가 논란을 종식시키고 새 앨범 활동에 대한 지장을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온스타일, 설현 지민 ‘안중근 긴또깡’ 논란 “제작진이 신중했어야..”사과

    온스타일, 설현 지민 ‘안중근 긴또깡’ 논란 “제작진이 신중했어야..”사과

    온스타일 ‘채널 AOA’ 제작진이 ‘설현 지민, 안중근 의사 논란’에 사과를 전했다. 13일 온스타일 ‘채널 AOA’ 제작진은 “당시 회차 콘셉트가 스피드 게임이었다. 설현 지민 팀은 다른 팀과의 경쟁 때문에 상당히 촉박한 상황에서 게임이 진행된 부분이 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제작진이 더 신중하게 제작을 했어야 했는데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다. 앞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설현 지민 또한 12일 각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에 나섰다. 앞서 설현 지민은 지난 3일 방송된 ‘채널 AOA’에서 위인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추는 문제를 풀던 중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긴또깡?’이라고 말하는 등의 모습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온스타일 ‘채널 AOA’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설현 지민, 안중근 논란과 비교되는 ‘역사의 神’ 김종민 과거 ‘소름’

    설현 지민, 안중근 논란과 비교되는 ‘역사의 神’ 김종민 과거 ‘소름’

    AOA 설현과 지민이 역사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과거 예능에서 ‘역사의 신’으로 등극한 가수 김종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oa 지민 설현과 비교되는 김종민”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설현과 지민은 지난 10일 온스타일 ‘채널AOA’에 출연해 역사적 위인들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추는 미션을 수행했다. 당시 제시된 사진은 이순신, 신사임당, 안중근, 김구, 링컨, 스티브 잡스 등 비교적 쉽게 맞힐 수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설현과 지민은 ‘안중근 의사’를 맞추지 못했고, 보다 못한 제작진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힌트를 제시했으나 지민은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며 되물어 시청자를 경악케 했다.   결국 설현이 스마트폰 검색으로 해당 문제를 맞췄지만,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무지한 역사 의식과 경솔한 행동에 공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2일 설현과 지민은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반성과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런데 과거 가수 김종민이 보여줬던 놀라운 역사 인식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20일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거사를 계획하고 실행하기까지의 발자취를 함께 밟아보는 여행을 기획했다.   당시 김종민은 안중근 의사의 아명(아이 때 이름) ‘안응칠’,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 ‘만 30세’를 정확하게 맞춰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는 안중근 의사의 생년월일 역시 정확하게 맞췄다. 또 김종민은 ’하얼빈 의거’ 직전 직전 안중근 의사의 심경을 정확하게 짐작해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종민은 안중근 의사 뿐만 아니라 김구 선생의 명언과 친일파 이완용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 맞히는 등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해 ‘역사의 신’에 등극했다.   한편 설현·지민과 김종민의 극명하게 대조되는 행보에 네티즌들은 “김종민 멋지다”, “기본을 넘어선 지식인데 존경스럽다”, “설현, 지민은 보고 배워라”, , “나도 역사 공부 해야겠다”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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