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인사이드] G조 3국 주재대사 좌담
축구는 전쟁의 속성을 모사(模寫)한다. 경기 결과에 따른 국민적 자존심의 출렁임은 전쟁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러니 올해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놓고 우리나라와 사활을 겨루게 될 프랑스, 스위스, 토고의 현지 한국대사들의 심정은 적진에 먼저 내던져진 척후병처럼 가파를 법하다. 지난 15일 개막한 ‘2006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주철기 주 프랑스·박원화 주 스위스·이상팔 주 가나 및 토고 대사로부터 현지 분위기를 들어봤다. 우리가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게 대사들의 공통적인 전망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팀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과 그 어떤 팀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현지의 월드컵 열기는 어떤가.
●주철기 대사 지난해 12월 조 추첨 직후 프랑스 언론은 한국, 스위스, 토고 대표팀의 경기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등 우리나라의 유럽 진출 선수에 관한 보도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컵 대회를 집중 보도하는 등 열기가 대단하다.
●박원화 대사 스위스도 기본적으로 축구에 대한 보도가 많은 나라다. 박지성, 이영표 선수에 대해서는 예전 에인트호벤 시절부터 호평하는 보도가 있었다.
●이상팔 대사 토고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튿날을 공휴일로 선포했을 정도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가난한 나라라 마땅한 운동거리가 없어서인지 어디서나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토고가 축구 후진국이란 선입견도 있는데, 국내 프로팀이 15개나 있고, 많은 실력있는 선수가 유럽에 진출해 있다.
▶한국팀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주 대사 프랑스는 한국에 대해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통산 다섯번이나 진출한 저력과 월드컵 4강 진출 사실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직전 한국과의 A매치 경기에서 지단이 다친 일 때문에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다. 스위스와는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두번이나 무승부를 기록한 탓에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토고를 약체팀으로 분류하는 인상이지만,2002 월드컵에서 세네갈한테 혼난 경험 때문에 아프리카 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지는 않는 편이다. 프랑스는 자신들이 조 1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도, 그렇다고 못 한다는 얘기도 안 한다.
●박 대사 스위스는 자신들이 프랑스에 이어 2위로 16강에 진출할 것이란 예상을 많이 한다. 우리와 전망이 비슷한 셈이다.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한 사실을 들어 자신들도 그런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기도 한다.
●이 대사 토고는 한국팀에 대해 월드컵 4강에 올랐던 강팀으로 간주한다. 물론 프랑스를 G조 최강팀으로 분류하긴 한다. 하지만 과거 프랑스에 식민지배를 당했던 역사 때문에 이 기회에 프랑스를 한번 이겨보자는 승부욕에 불타고 있다.2002년에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긴 전례 때문에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축구팀에 대한 국가적 지원 실태는 어떤가.
●주 대사 프랑스는 평소 지방자치단체별로 많은 지원이 있는 나라다. 또 프로구단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을 정도로 국민적 성원은 엄청나다.
●박 대사 740만 스위스 인구 가운데 28만명이 크고 작은 클럽팀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최고 인기 스포츠가 축구다.
평소 정부 차원의 후원금이 각 팀에 분배되는 등 재정적 뒷받침이 확실하다.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위스는 우수 선수에 대해 대체복무 혜택을 주고 있다.
인구가 적은 나라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정예 선수를 육성한다. 유망주를 한번 점찍으면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최대한도로 쏟아붓는다. 사람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이 대사 토고는 1인당 국민소득 380달러의 가난한 나라이다보니 정부 지원이라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유럽으로 스카우트돼 가면 몇백만달러의 연봉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선수들에게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토고에 의외로 잘 하는 선수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어떻게 비쳐지고 있나.
●주 대사 프랑스 사람들은 붉은악마의 열광적인 응원을 보고 한국의 축구 열기가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산업적으로 발달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올해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많은 한국 관련 문화행사가 계획돼 있고 언론들도 한국 관련 특집을 내놓고 있어 점차 개선되리라고 본다.
●박 대사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한국 등 해외 문제에 관해 큰 관심이 없지만, 갈수록 언론 등에서 한국 문제를 다루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 대사 토고에 한국 기업이 4개나 진출해 있는 등 한국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대사들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주 대사 프랑스와 한국이 16강에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가 선전해서 2위를 확보해야 한다. 프랑스 대표팀이 노령화됐다고는 하지만 앙리를 비롯해 출중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이기긴 쉽지 않은 팀이다.
●박 대사 우리나라가 2등 내지 3등을 할 것으로 보는데, 최선을 다하면 16강에 충분히 진입할 수 있다.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세네갈에 진 사실을 유념해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대사 G조 최강팀은 역시 프랑스다.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나라가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토고라고 해서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