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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감스런 중국의 정전위 철수(사설)

    중국이 지난달 31일 남북군사정전위에서 중국인민군대표단을 철수한 것은 한마디로 한반도 평화체제유지라는 유엔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그것은 당장 정전위기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종국에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의 끈질긴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그런 조치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적합하다는 계산도 있었으리라 본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반도 평화정착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북한주장에 쉽게 동조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번 조치는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했다.중국은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간에 협의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수한 것이다.게다가 우리와는 사전협의는커녕 연락조차 없었다.일방적인 사후통고만 있었다고 한다.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중국은 대표단을 철수하면서 「남북한의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당국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전위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고는 정전협정은 계속 유효하다니 그게 어디 이치에 맞는 말인가.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며 이중적 태도다.겉으로만 선린외교를 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남북양측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기겠다는 태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사정전위는 지난 40년여 동안 활동해오면서 휴전체제유지를 위한 안전판 노릇을 훌륭히 해왔다.그러나 지난 4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수한데 이은 중국의 철수는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해 지탱돼온 정전위기능을 완전 마비상태로 들어가게 했다고 봐야 한다.따라서 앞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사소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국면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정전위기능은 그런 이유로라도 유지돼야 한다. 북한이 왜 그토록 중국을 정전위에서 철수토록 설득했을까.정전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그래야 자신들의 의도대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로 한·미방위조약을 무력화시키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조성한다는 것이 북한의 교활한 계략인 것이다.중국은 결과적으로 북의 그런 계략을 돕고 있는 것이다. 미·북간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문가협의일정까지 잡아놓고 있다.중국의 정전위철수나 미·북회담 진행과정으로 보아 평화협정까지 체결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남북간 신뢰가 구축된 뒤 남북한당사자가 직접 협의해 해결할 문제다.남북한 신뢰구축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이 선결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 거래·가격“미동”…투기재연은 없을듯/토초세 효력정지…헌재결정 파장

    ◎부동산경기 예상/종토세과표 현실화… 「보유세」 강화해야/불안심리 추방… 국민적 감시체제 필요 토지초과이득세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결은 최근 3년 동안 하향 안정세를 보인 부동산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부 일각에서는 부동산 투기의 재연을 우려,법은 존속시키되 문제되는 부분만 손질하는 선에서 파장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그런가 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가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현재 부동산 시가의 0.04%에 불과한 토지보유 세율을 선진국과 같은 0.15%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것은 시행된 지 4년 밖에 안 된 토초세의 위력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89년 중 무려 32%나 폭등했던 전국의 땅값은 토초세가 시행되면서 90년 20.6%로,91년에는 12.8%로 수그러든 데 이어 92년 마이너스 1.3%,93년 마이너스 7.4%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따라서 투기심리를 짓누른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면투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사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투기에는 실물의 움직임보다 심리적 요인이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과거의 경험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혼란기를 틈타 투기가 되살아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토지관련 법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투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또 토초세란 땅값이 급등하는 비상시에나 필요한 극약 처방으로 지금과 같은 안정기에는 있으나 없으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안정기에는 토지거래 전산망이나 토지거래허가제·양도소득세·종합토지세 등 기타의 법제가 투기에 대한 「안전판」 구실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특히 투기우려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는 토지거래 허가제가 투기를 차단하는 데는 토초세보다 오히려 위력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법제가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더라도 토초세의 공백이 쉽사리 메워지기는 어려우리라는 의견도 만만찮다.최소한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예시한 대로 세율을 낮추더라도 작년 말 현재 공시지가의 21% 수준인 종합토지세의 과표현실화율을 96년부터 1백%로 끌어올리는 등 보유과세를 강화해야 투기나 부동산 과다보유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토초세와 함께 제정된 택지초과소유 상한제나 개발이익 환수제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이 두 법률은 실현되지 않은 이득에 대해 과세하는 토초세와 달리 종토세나 양도소득세처럼 보유과세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건설부의 홍철 1차관보는 『정부의 투기억제 의지가 확고하고 제도적인 장치 역시 완비된만큼 심리적인 불안감만 해소되면 부동산 투기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투기문제도 앞으로 전 국민의 감시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반응/“부분위헌판결 합당한 조치” 환영일색/“존립가치 상실” 여야일각 폐지론 제기 헌법재판소가 토지초과이득세의 위헌판결을 내린데 대해 정치권은 환영일색이다. 그동안 토초세의 징수에반발해온 지역구민들의 민원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완전위헌이 아니라 부분적인 위헌판결을 내린 것은 합당한 조치라고 받아들이고 있다.완전 위헌이 되면 이미 3∼4년동안 시행해온 법질서가 무너지고,그동안 거뒀던 세금도 되돌려 주어야 하는등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재판에 계류중인 토초세 징수문제는 백지로 돌릴 수 있지만 이미 거둔 세금은 반납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민자당은 정부측이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온 데 대해 불만이다.미실현 소득에 대한 과세및 양도소득세와의 이중과세의 문제에 대한 위헌판결에 따라 토초세를 폐지해야한다는 소리도 나온다.토초세의 근본 취지가 투기억제에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위헌판결이 난 이상 존립자체가 어렵다는 풀이이다.이에 대해 재무부는 일부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이세기정책위의장은 『앞으로 토지관련세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며 당정협의를 통해 신속한 사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자당은 이 법을 폐지하더라도 큰 문제가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토초세가 그동안 많은 문제점을 야기해온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데 사실상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다고 판단하고 있다.민자당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조세·재정소위의 나오연위원장은 『토초세의 과세대상이 전체 과세토지의 0·36%에 불과하다』고 효율성에 이의를 제기했다.나위원장은 『이 법이 투기꾼들의 투기심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전문투기꾼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자당은 그동안 토초세에 대한 과세대상자들의 거센 반발등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자 정부측을 설득해 토초세 시행령가운데 10여개 항을 개정,과세기준을 상당부분 완화하기도 했다.농민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는 80평이상에서 2백평이상으로 과세대상을 줄이는등의 조치로 과세대상을 24만2천여건에서 9만여건으로 축소했다. 민자당은 현행 종합토지세등 토지관련세법을 보다 현실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토초세의 위헌소지를 없애고 과세에도 효율을 기할 수 있을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종토세의 과세표준은 공시지가의 25%에 불과하므로 60%까지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89년 이 법의 제정에 찬성했던 민주당은 상황론을 들어 헌재의 판결을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89년 제정때는 위헌소지를 감안하면서도 부동산 투기의 이상과열을 눌러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상당부분 진정됐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김병오정책위의장은 『재산세,양도세,종합토지세,토지개발부담금등 8개 관련세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장기적인 입법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입과정과 공과/「투기열풍 잠재우기」 일등공신/명분에 밀려 일사천리 입법… 일부 조세저항도 헌재의 판결로 토지초과이득세법의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형식적인 법논리를 초월해 도입됐던 토초세법은 시행 4년반만에 「사유재산권 보장」에 밀려 무력한 「종이 호랑이」가 됐다.법에 대한 평가도 「경제안정과 형평을 위한 개혁의 상징」에서 「무리한 졸속입법」으로 뒤바뀌었다. 이 법은 그동안의 위헌시비에도 불구하고 땅값 안정에는 최상의 특효를 발휘했다.때문에 헌재 판결로 지난 88∼89년 전국을 휩쓸었던 투기열풍이 재발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법의 제정 과정과 집행실적 및 집행 과정에서의 조세마찰 등과 앞으로의 정부대책을 정리한다. ▷도입과정◁ 지난 89년 말 정기국회에서 「택지초과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과 함께 토지공개념 관련 3법이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했다.조순부총리 시절 경제기획원의 이형구차관,김인호차관보,한리헌기획국장 등 개혁라인과 청와대의 문희갑 경제수석이 입법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이 3법은 개혁의 대세와 부동산 투기억제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제대로 축조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법 제정에 참여한 재무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입법 자체에 대한 반대는 물론,세부 내용에 대해서조차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거의 역적행위로 여론에 매도당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한다. 당시의 위기적 상황은 합헌성 여부나 다른 법률과의 균형 등에 관한 법리논쟁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85∼86년에 7% 수준이던 전국의 평균 땅값 상승률은 88년 27.47%,89년 31.97%로 치솟았다.큰손과 복부인들은 방방곡곡을 휘저으며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한편에서는 전세값이 치솟아 거리에 나앉은 가장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집행실적·조세마찰◁ 90년분 지가상승이익에 대해 91년에 첫 과세(예정과세)가 이뤄졌다.2만3천2백81명의 유휴토지 소유주들에게 모두 4천6백30억원이 부과됐다.당해년도에 예정대로 징수한 실적은 1천9백2억원에 그쳤고 수천명이 국세청에 이의신청을 냈다.이들 중 1천2백41명은 국세청 재심에서 구제되지 않자 국세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 연도별 토초세 부과인원과 금액은 91년에 이어 92년(예정과세)4천1백3명에 3백41억원,93년(정기과세) 9만4천1백47명에 9천4백77억원으로 모두 12만1천5백31명에게 1조4천1백47억원이다. 징수 실적은 91년에 이어 92년 1천2백18억원,93년 3천2백26억원,94년 1천9백95억원(추정치) 등 모두 8천3백41억원이다.전체 부과액의 59%만 걷힘으로써 조세마찰이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지가안정◁ 땅값과 집값의 안정에는 크게 기여했다.법 시행 이전에 연 32%까지 치솟던 땅값 상승률은 91년을 고비로 급격히 떨어져 92년과 93년에는 하락세로 반전했다.집값도 90년에 21%가 올랐으나 91∼93년까지 3년 연속 하락행진이다.
  • 공부를 못하게 막을순 없다(사설)

    국민학교 일반교과목에 대한 과외교습이 빠르면 내년부터 전면허용될 것 같다.교육부가 지금까지 금지돼온 국어·산수·사회·과학등 국민학교 일반교과목에 대한 과외교습학원설립권을 일선교육감에 위임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 상정키 위해 입법예고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국교생과외를 전면허용키로 한 정부의 방침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우선 이유야 어디 있건 공부를 못하게 막는 것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미 국교생의 일반과목 과외는 탈법적인 방법으로 널리 성행되어오고 있는데다 과외금지가 지방화나 국제화라는 시대적 요청에도 전혀 부응치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이번 개정안에선 바로 그런 점을 비교적 염두에 두고 고치려 한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현행법이 갖고 있는 모순점은 그간 여러차례 지적돼온 바가 있었다.왜냐하면 중·고교생에 한해 일반과목의 과외교습을 허용하고는 국교생은 중학무시험입학을 이유로 이를 금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법체계상 형평에 어긋나기 때문이다.뿐만아니라 그것은 정부의 조기교육시책이나 학부모들의 욕구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습지진아나 영재예를 둔 학부모와 맞벌이부부들 중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녀들을 속셈 또는 웅변학원등에 보내거나 개인교습등을 통해 일반과목 과외를 시켜왔다.이런 현상은 교육부가 최근 실시한 「국교자녀 과외교습실태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현재 국교생자녀를 한곳이상 학원등에서 과외를 시키고 있는 사람은 전체응답자중 87.1%에 달했고,그중 국어·산수등 일반교과의 과외를 시키는 학부모는 46%에 이르렀다. 지진아나 영재아의 경우 학교에서는 개별지도가 부족하다거나 상급학교 진학에 대비하기 위해 일반과목의 과외가 필요했다.변칙과외가 아니고는 이를 해결할 수가 없다.맞벌이부부의 경우는 더욱 절실하다.자녀들이 학교수업을 끝낸 뒤 있을 만한 시설은 학원 말고는 별로 없는 탓이다.그런데도 소규모학원이라도 보내고 있는 맞벌이부부는 전체의 60%에 불과하다.그러니 나머지 어린이들은 항상 방과후면 미보호상태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개정안이 전혀 부작용이 예상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학원설립의 자율화로 인해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다든지,과열과외나 사교육비의 증가등도 예상할 수 있다.당국은 이런 우려들을 미리 막을 안전판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특히 학원과외가 어린이정서를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일본/고용구조 와해 대량실업 예고(현장 세계경제)

    ◎엔고로 기업 불황… 성과급제 도입/「종신고용」 주춤… 감원발표 잇따라/조직의 비대화·승진 적체·생산성 감퇴 등 문제점 부각 불황의 날카로운 이빨에 뜯겨 일본의 「자애로운」 고용구조가 와해되고 있다.종신고용,연공서열식 승진,가족주의로 압축되는 일본의 고용방식은 고성장 뿐 아니라 낮은 범죄율 그리고 사회평등을 달성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그러나 같은 선진국조차 선망하던 이 제도는 점점 퇴색의 길을 걷고 있다. 엔화강세로 수출주도형 성장이 막대한 타격을 입은데다 내수확대마저 어려워 불황에 빠진 일본 대기업들은 전통적인 종신고용제를 문제삼으면서 일본 기업문화에 생소한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일본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중의 하나가 종신고용제라는 인식에서 진행되는 중이다.선진국들이 부러워해 마지않은 저실업률(2.8%)을 달성해왔던 종신고용제는 서구의 일반적인 기업문화인 사용자의 해고의지 상존­사기저하­숙련기술상실­실업의 악순환을 막는 휼륭한 방패였다. ○화이트칼라 급증 수출주도로 경제기적을 이룩한 일본은 항상 일감이 마련돼 있어 직원들이 수십년씩 회사를 떠나지 않고 일하는 전례가 정착됐다. 하지만 이방식은 조직의 비대화와 승진적체,생산성감퇴라는 부작용을 또한 낳았다.제1차 오일쇼크이후 세계적 불황속에 성장이 둔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는 꾸준히 늘어났다.화이트칼라가 총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0년 36%(1백20만명·상장회사기준)였으나 90년에는 56%(3백50만명)에 이르렀다. 화이트칼라의 증가는 두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하나는 승진정체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 둔화이다. 77년 부장급 화이트칼라의 25%가 44∼49세의 중년이하였으나 10년뒤 이비율은 15%로 줄였다.일본최대 양조회사 「기린맥주」의 경우 84∼92년사이에 생산직 직원은 29%를 줄인 반면 화이트칼라는 배로 늘렸다.화이트칼라는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지 못하고있다. ○가족혜택 사라져 시간당 생산성에 있어 70년도 통계치를 1백으로 잡을 경우 90년 화이트칼라는 1백5로 블루칼라(생산직)의 1백10에 미치지 못했다.최근 수년동안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전체 상승률에는 못 미친다.89년이후 전체생산비는 줄었어도 판매및 관리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기현상이 생겨 사용자연합측은 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이 미국의 3분의 2에 불과하다고 불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불평은 곧 구조재조정(리엔지니어링)이라는 명목하에 대량 감원사태로 이어졌다.지난해 일본최대의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관리직 사원 5명중 1명을 본직에서 애매한 특수사업에 재배치하겠다는 경고장을 내놨다.마쓰시타전기는 화이트 칼라의 생산성을 지금보다 30%나 더 향상시킬 수 있다며 다그친다.또 한때 할일없는 직원을 위해 버섯농장,주제공원,퇴직자 주택사업 등에 투자했던 일본제철조차 97년까지 7천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혼다도 예외는 아니다.80년대 합의적 의사결정을 실험했다가 이젠 철저한 개인책임주의와 성과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전역에 걸쳐 기업의 직원에 대한 가족주의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객 뿐만 아니라 고용인 가족에 대한 접대의 전통과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일본이었지만 올해 대기업이 4대 백화점 매출액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40%에서 20%로 반감해 버렸다. ○수당·상여금 삭감 일본의 기업들은 아직까지 감원보다는 종신고용의 틀은 유지하면서 수당·보너스 삭감을 택하는 쪽이 많다.하지만 기업체마다 성공에 대한 보상과 실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라는 원칙을 적용하는 추세여서 종신고용의 안전판은 무너지고 있다.
  • 당총비서·국가주석 독점여부 관심/빠른행보 보이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1인자지위는 사실상 「국내외 공인」/원로에 「주석」 양보땐 기반취약 반증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구축되고 있다. 후계체제의 조기 정착으로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이 일단 별다른 혼란없이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발빠른 행보는 이미 김정일이 장의위원 구성시 서열 1위가 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하다.과거 구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의 관례상 장례위원회 위원장이 일단 후계자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김정일시대의 조기 개막을 보다 확실히 알리는 징후는 북한노동당이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전원을 11일까지 평양에 집결토록 긴급지시한 데서 포착된다.이는 정부당국이 해외정보망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른 것이다. 정부당국은 일단 이번 지시가 김주석 사망에 대한 집단조문을 하기 위한 조치이긴 하나 김정일의 1인자 등극을 전격적으로 공식화하기 수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즉 장례식에 앞서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전격 소집해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를 선출하는 절차를 밟을 공산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히 당총비서직은 당·정·군이라는 북한의 3대 권력중 당권을 장악하는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아버지가 갖고 있던 이들 두 핵심요직중 최소한 당총비서직만 이양받아도 곧 북한의 공식 1인자임을 대내적으로 공인받는 것과 마찬가지다.북한은 당이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 걸쳐 지휘 감독권을 갖고 있는 당우위의 권력체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직까지 차지하게 되면 지난해 국방위원장직 취임으로 군통수권을 장악한 김정일로선 그야말로 1인천하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노동당규약에 따르면 당총비서는 당중앙위에서 선출되도록 되어 있고 장례기간 중이나 장례직후 바로 소집하는 데 아무런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또 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토록 되어 있는 데 주석 유고시 잔여임기중 권한대행에 관한 조항이 없어 그 선출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체제가 기정사실화 됐다는 또 다른 근거는 북한의 공식 선전매체들에서 김일성 사망 이틀만인 10일 「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이 등장한 사실이다.김정일에 대해 김일성과 동급의 수령이란 호칭을 사용한 전례는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의 경우처럼 「미래의 수령」이나 「두분의 수령」이 아니라 「현재의 수령」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김정일시대의 개막을 북한주민들에게 공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격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는 것이 곧 김정일체제의 확고한 안전판 구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북한은 기본적으로 법치국가라기 보다는 인치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김일성과 같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나 장악력이 없는 김정일로선 어차피 혼자서 북한체제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그가 차제에 당총비서직만 갖고 국가주석직은 오진우나 박성철 등 다른 「혁명1세대」나 삼촌인 김영주에게 넘기는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의 출현을 점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같은 추론의 적중 여부는 김일성 장례식을 전후해 입증될 것이다.다만 이 경우 김정일체제의 불확실성은 보다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김일성 마침내 죽다(사설)

    북한주석 김일성이 사망했다.갑작스러운 심근경색이 사인이라고 한다.한마디로 놀랍고 충격적이다.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난것이 불과 20여일 전의 일이다.건강하고 10년은 더 살것같다던 것이 카터의 평이었다.앞으로 2주후면 우리대통령과 분단후 처음이 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도 가질 예정이었다.핵문제도 실마리가 풀릴것 같던 참이었다.그래서 더욱 충격적인지 모르겠다.그러나 충격보다 더 깊고 아프게 느껴지는 감정은 착잡한 심정 그것이다. ○착잡한 심정이다 김일성.그가 누구인가.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최근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의 화해공세로 우리인식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 와 생각하면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한 한반도분단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의 하나였다.적화통일을 위한 6·25남침의 최고 지령자요 지휘자이기도 하다.그로인해 우리민족이 겪고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 희생이 그얼마였던가.그 고통과 희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마침내 이번에는 핵포기와 남북정상회담등으로 그 죄값의 일부나마 치르려 하는것이 아닌가 하던 시기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에대한 평가와 단죄는 후세의 역사가가 할것이다.당장 중요한것은 그의 사망으로 인한 한반도 통일안보상황의 급변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지금 가장 급한일은 그의 사망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그의 죽음이 자연사냐 아니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심근경색이 북한측 발표내용이며 우리정부도 자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외국의 조문을 받지않는다든가 석연치않은 대목도있다. ○북한 변화 시작 신호 자연사일 경우라면 이미 후계자로 굳어져 있는 김정일의 승계로 혼돈의 여지는 있으나 일단은 비교적 신속한 안정을 회복할수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그러나 핵포기와 개방개혁을 반대하는 강경파의 반발로 인한 정변의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수 없다.복잡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의 전개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당장의 권력투쟁은 물론 내란사태로의 발전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우리로서는 정말 대응하기 어렵고 위험한 상황의 전개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의외로 통일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김일성의 죽음이 자연사이기를 바란다.그리고 질서있는 권력승계를 통한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그리하여 김일성이 시작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핵문제의 해결과 점진적인 대외개방을 계승해 주기를 기대한다.그러나 사태는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줄지 의문이다.자연사이건 정변이건 북한을 지탱해온 최대의 안전판이었던 김일성이 없어진 것이다.그것은 북한은 물론 한반도상황의 대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김일성시대와는 다른 불확실성시대의 시작인 것이다.그러한 대전제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대북및 한반도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것이다. ○개방개혁 계기되길 우선 김일성의 사망은 그것이 곧 북한의 체제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사회주의체제 종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수 있다.그런 의미에서우리는 북한이 질서있고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을 통해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체제로 전환해 가는 계기가 될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적극 유도및 협력하는 장기적인 시각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초미의 위급한 상황인만큼 추호의 빈틈도 없는 만반의 대응을 철저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대통령과 정부가 비상안보대책회의를 잇따라 소집하고 전군에 즉각적인 비상태세를 발령하는 등의 신속 대응을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보수·개혁파간의 권력투쟁,내란,인민봉기,갑작스런 체제붕괴,혹은 대남도발등 모든 가능성을 상정한 철저한 대응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의연하게 대응하라 김일성의 사망사태로 인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주변강대국들과의 공조 내지는 협조체제강화도 서둘러야 할것이다.한반도정세에 이해관계가 깊은 미·일·중·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특히 북한에 영향력이 가장큰 중국과의 협력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유지의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중국은 북한과의 간접적인 대화창구도 될수있을 것이다. 김일성의 사망은 한반도 분단사의 최대 전환점을 의미한다.가장 큰 변화요,변화의 예고다.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같은 것은 삼가야 하겠지만 정부는 물론 온국민도 최대한의 긴장된 자세를 유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나친 흥분은 금물이다.의연한 자세로 침착하고 냉철하게 북한의 사태전개를 예의 주시하며 자신있게 대응해 나가야할 것이다.
  • 「혁명1세대」 향배가 최대변수/북권력 어디로 갈까

    ◎일단은 「김정일체제」 유지/식량·에너지난 지속땐 「봉기」 가능성 분단 반세기 동안 한반도 북반부를 통치하던 절대 권력자 김일성 북한 주석이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한반도의 대지각변동이 예고된다. 그의 사망이 단순히 북한의 정치권력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정도를 넘어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가 북한의 권력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의 퇴장으로 인한 파장도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의 사망에 따른 북한 권력의 진공상태는 「일단」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메울 것이 확실시된다.김일성이 지난 7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사후에 대비,부자 세습체제를 위한 갖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노동당 총괄비서를 비롯해 당중앙위 정치위원 등 당요직과 원수,최고사령관,국방위원장 등 북한권력을 지탱하는 군부 요직을 독차지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김일성의 사전조치가 김정일의 정치적 장래를 확고히 보장하는 「보험」은 어차피 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더욱이 김정일이 일단 원활한 권력승계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북한체제의 안전판이 확실히 구축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왜냐하면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전세계의 줄다리기에서 보듯이 김정일의 운명이나 북한정권의 장래도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사의 큰 흐름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정권은 김일성이 생전에 실토했듯이 대내외적인 「엄혹한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북한의 곤경은 하루에 두끼먹기 운동이 벌어질 만큼 극심한 경제난과 핵문제로 인한 대외적 고립상황으로 요약된다. 이같은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일 후계체제의 성공의 열쇠는 군부와 당정의 지원과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경제의 회생여부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전자는 단기적인 요인이다.김일성부자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북한 군부내에 김정일 친위세력을 부식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 등 이른바 혁명1세대 등 김일성 직계세력 이외에 김용순·김기남·오극렬·장성택 등 이른바 혁명2세대로 불리는 김정일의 측근인사들을 당정 요직과 군부에 포진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일성이라는 후광이 사라진 마당에 아직도 북한체제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혁명1세대들이 김정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바칠지는 그야말로 미지수다.김일성과는 달리 군경력이나 그럴싸하게 내세울 만한 이력이나 카리스마가 없는 「충동적 성격」의 김정일에게 위기관리 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는 북한체제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보다 구조적 요인이다.북한은 연4년째 계속된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식량·에너지난에다 기본적인 생필품난으로 말기적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최소한 중국식 부분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나 북한이 체제동요를 감수하고라도 이를 감행할 수 있느냐는 의문인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하든,다른 「대안」이 나타나든 이같은 당면한 경제적 곤경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북한권력은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일성 이후 북한정권에 대한 도전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등 당면한 대내외적 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할 경우 당권투쟁이나 군부쿠데타 등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일부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권력하부 구조에서의 대중봉기라는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일성의 돌연사로 조성된 현재의 불안정한 한반도 상황이 통일을 대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는 사실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제조물 책임법/소비자·업계 도입싸고 논란

    ◎현행법으로 피해보상 미흡… 입법화 절실/소보원/“기업 부담 늘려 경영압박 요인” 강력 반발/업계 상품의 개발·설계·제조 차원에서의 결함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기업의 고의·과실을 입증하지 않아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조물책임법」의 도입을 둘러싸고 소비자측과 업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올 정기국회에 제조물책임법안의 상정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 김인호)은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조물책임의 입법방향」에 대한 정책세미나를 개최,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89년에 이어 제조물책임법의 도입을 추진하는 소비자보호원의 입법취지는 자체조사결과 소비자의 생명 및 신체에 대한 소비자피해가 조사대상가구의 12.6%(91∼92년)이고 그중 결함상품으로 인한 피해액이 1천5백50억원에 달하나 현행 민사법제도로는 피해구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게다가 미국,EU뿐아니라 92년 필리핀,94년 중국에 이어 지난 22일 제조물책임법안이 일본 참의원을 통과하는 등제조물책임법의 도입이 국제적인 추세로서 우리 기업도 국제적으로 일반화된 까다로운 소비자보호환경에 익숙해지도록 국내에서 적응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제조물책임의 입법방향」에 대해 발표한 소비자보호원 강창경수석연구원은 『제조물책임법은 소비자보호법체계상의 별도의 단행법(특별법)으로 제정하되 제조자의 무과실책임을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제조물책임의 입법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한 소비자보호원 송태회수석연구원은 『선진외국의 경험에 비추어 제조물책임의 입법화가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0.08∼0.103%로 매우 낮다』며 이 법이 기업의 부담을 늘려 물가만 올린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업계대표로 참석한 대한상공회의소 최경선이사는 『제조물책임법이 경영의 안전판과 저항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을 압박해 도산을 유도하고 기업의 신제품 개발을 망설이게 만들것』이라고 경고했다.전국경제인연합회 이용환이사도 『사회적 인식이 미비한 현실에서 이 법이 시행되면 물가상승,소송증가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서 『제조물책임법의 도입에 앞서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제품결함및 결함시점의 판정기술 등에 대한 확보작업이 선행돼야 할것』이라고 주장했다.
  • 어떻게 이런 사고가(사설)

    교통신호는 보행자와 차량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이다.특히 건널목에서의 교통신호는 인명과 직결되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그런데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4동의 한 건널목에서 파란불 신호를 보고 길을 건너던 국민학교 학생이 승용차에 치여 참변을 당했다.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신호기의 고장때문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을 금할수가 없다. 문제의 신호기는 사고가 발생하기 4∼5일전부터 이미 고장이 나 있었으며 주민들이 이를 고쳐달라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었다고 한다.그럼에도 수리가 안된채로 위험한 상태가 며칠씩이나 방치되었다고 하니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경찰은 고장직후 신호체계의 이상을 파악했을 것이다.당연히 즉각적인 고장수리 조치가 취해졌어야 마땅하다.신호기의 고장은 보행자와 차량통행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뿐만 아니라 대형사고의 위험성마저 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도 경찰은 요지불동,고장수습을 외면해왔다는 점이다.국민의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또한 인명의 안위에 관련되어 있는 사안을 그토록 무신경하게 방치했다면 이는 행정당국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여전한 행정당국의 느슨하고 안이한 업무처리를 확인한 것이다.공직자들의 「복지불동」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이번 사건은 「늑장행정」「신고묵살」,나아가 「국민생활 불편의 외면」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 아니할수 없다.대형사고가 발생했을때 우리는 그원인이 사소한 부주의나 예방대책의 소홀함에 있음을 자주 보아왔다.안전을 위한 약간의 예방노력만 기울였던들 방지할수 있었음에도 그 작은 일을 못해 대참사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다.고장직후 수리를 했더라면 파란불을 보고 건너던 어린 학생의 무고한 희생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경찰은 사고발생후 40여분만에 고장난 신호기를 고쳤다고 한다.40여분만에 취해질수 있는 조치가 4∼5일씩 방치됐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태만이다. 교통신호기의 잦은 고장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지난해 11월 경찰청에서 서울시내의 교통신호체계를 조사한 결과 전자교통 신호기중 40%가 정상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비만 오면 꺼지는 교통신호등도 서울시내 곳곳에서 자주 발견된다.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전자교통신호기의 사후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원활한 교통소통의 핵심이 되는 교통신호체계는 철저히 관리·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 5개 경제부처 박사 관료 81명/부처·직급별 박사학위 소유자 현황

    ◎3급이상이 16,4급 28,5급 37명/재무부는 예상외로 적어 7명뿐/기획원 28명·농림수산부에 23명 박사학위를 가진 경제관료는 얼마나 될까. 경제기획원 강응선 정책조정 4과장(45·경제학박사)이 공직을 떠나 모 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옮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과천청사에는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다.각 부처가 조직개편과 기구축소로 동요하는 가운데 일부 관료들은 『박사가 한 때 경제관료의 꽃처럼 보인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 박사관료의 시대는 간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푸념마저 나온다. 기획원을 비롯한 5개 경제부처(재무·상공자원·건설·농림수산부 포함)의 박사학위 보유자는 현재 모두 81명.이중 기획원이 28명으로 가장 많고,다음은 농림수산부(23명),상공자원부(14명),건설부(9명),재무부(7명) 등의 순이다. 직급별로는 3급(부이사관·국장급) 이상이 16명,4급(과장급)이 28명,5급(사무관)이 37명이다.밑의 직급으로 갈수록 박사가 많다.이는 국비 연수제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확충돼 유학의 문이 넓어진데다,새로 들어오는 사무관(행정고시출신)들의 학구열이 높기 때문이다. 학위 취득시기별로는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가 80∼90%를 차지한다. 60∼70년대에 박사학위를 딴 관료는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69년·미매사추세츠대 정박)과 박상우농림수산부 제1차관보(75년·미미네소타대 농업경제학박사),홍철건설부제1차관보(79년·미펜실베이니아대 경박)가 있다.그 뒤를 이석채 기획원 예산실장(82년·미보스턴대 경박)과 백승기 재무부 국세심판소 심판관(85년·프랑스 파리대 경박)이 있다. 취득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36명으로 가장 많다.한국 23명,프랑스 10명,영국 5명,일본 3명,필리핀 2명,대만과 태국이 1명씩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고참 과장급의 급료는 월 1백50만원 수준(순수령액·보너스 제외)이다.물론 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보다 적다.그런데도 경제관료들이 박사학위에 집착하는 것은 보수나 승진에 특전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민간 기업과 달리 학위보유에 따르는 혜택은 전혀 없다.오히려 휴직으로 인한 불이익 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성취욕 여부가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엘리트라는 자부심에다 우리나라가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위주 사회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기획원의 한 박사관료는 『경제부처 관료들이 박사학위를 선호하는 것은 노후 보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털어 놓았다.정년퇴직을 하거나 도중에 그만 둘 경우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근무할 수 있는 안전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부처 중 인재의 보고로 불리는 재무부의 박사학위 보유자는 의외로 기획원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한 관계자는 『재무부는 휴직 등으로 현직에서 물러나면 나중에 보직확보가 어려운 인사전통이 있다』며 『불이익을 감수하며 학위를 딸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 사찰 안받으면 3월말 대북제재 가시화/국방부「북핵문제」두갈래 전망

    ◎평양 고집땐 한반도 4월께 중대국면/“경제상황 고려,막판 사찰수용” 예상도 오는 2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정기이사회 이전까지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IAEA가 핵사찰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회부키로 결정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북핵사찰 문제의 여파로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북핵사찰을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의 긴장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북핵사찰이 한반도에 군사행동까지 초래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평가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등 정부의 안보부처는 북핵사찰 문제가 전쟁 내지는 그와 유사한 상황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크게 두가지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나는 북한이 경제상황등으로 미루어 막판에 줄타기놀음을 끝낼 것으로 보는 낙관적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으로서는 핵이 최후의 체제수호 안전판이라는 점에서 극한상황도 불사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비관론이다. 북핵문제가 위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자들은 그 이유로 우선 북한 특유의 협상방법을 들고 있다. 북한은 종전 각종 남북대화에서 보듯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가도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사소한 문제를 트집잡아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는 등 시간벌기에 능숙하며 이 과정에서 최악의 상황을 조성,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획득하는 공산주의식 협상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협상을 동등한 파트너사이의 이익조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달성의 한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북한의 현재 핵사찰 수용거부를 봐야하며 결국 북한은 최종순간에 위험한 줄다리기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북한 내부 경제사정과 동북아 정세가 북한의 전쟁지속능력을 떨어뜨려 모험심을 억제하고 있다는 풀이다. 이와 달리 비관론자들은 북한의 군사력 자체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동시에 경제제재가 북한의 숨통을 옥죄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북한이 돌파구를 찾아 마침내 폭발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북한은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형편이기는 하지만 3∼4개월 전쟁을 이끌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하고 있으며 군인의 대우가 사회전체수준을 웃도는 등 군사적으로는 전혀 궁핍하지 않다는 정보분석을 비관론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유류와 전력사정 악화에 따라 지난 4년간 회수를 줄여온 공군이나 육군의 기동훈련을 지난해부터 재강화하고 있으며 1백70㎜자주포와 2백40㎜방사포를 전방에 전진 배치하는 등 군사분계선 주변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계화부대를 지하화하고 지난해 말 대규모 화생방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3단계 전쟁준비를 완료,현재 활발히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오는 95년을 남조선 해방의 해로 선언한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경제제재가 취해질 경우 북한의 부자 정권승계가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등 내부적으로 급격한 소용돌이가 일게 되며 북한은 따라서 지휘부의 붕괴를 막기 위해 외부로 시각을 돌릴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군사행동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핵이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어야 하는데 북한으로서는 핵이 전혀 양보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북한이 느끼는 체제위협의 최대요인은 바로 공중핵등 미측의 전술핵과 한미연합 팀스피리트훈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TS를 핵전쟁연습으로 인식,이 기간중 모든 군사시설과 물자를 지하로 대피하는 바람에 사실상 경제활동이 수개월에 걸쳐 위축되는 충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TS에 대한 대응과 체제유지를 위해 핵보유를 핵심관건으로 인식,상당한 피해를 입더라도 이를 지키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화가 일본의 핵화를 야기,군사대국화될 것을 우려해 북한의 핵화를 적극 저지하려는 세계전략을 추진중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비관론자들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한반도에 중대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들은 일단 북핵사찰 문제가 오는 4월 중대 전환기에 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같은 전망은 국제사회의 첫 제재가 3월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달말 유엔이 북핵문제를 검토,제재를 결정하면 3월중 행동으로 옮겨질 것이므로 북한은 사찰을 수용하든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해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반도방위 “한국군 주도” 촉진/평시작전통제권 환수의미와 배경

    ◎이양시기 명시…「민주국방」 계획 구체화/유사시 7함대 자동개입 “안전판” 확보 3일 서울에서 열린 제15차 한미군사위원회의(MCM)에서 한·미양국이 오는 94년 12월1일까지 미군이 행사해 오던 한국군 평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넘겨주기로 합의한 것은 한반도방위에 있어서 한국군 주도권을 앞당기는 실질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평시작전통제권 문제는 지난해 워싱턴에서의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94년말까지 한국군에 이양키로 합의했었으나 그동안 구체적인 이양시기 및 이양에 따른 한국군 및 주한미군의 역할변경 등에 대한 세부실천사항이 마련되지 않아 한국군 「자력방위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던 한·미간 군사현안이었다. 미국측이 이번 회의에서 기존의 합의원칙을 존중,이양시기를 못박았다는 것은 한미간의 우호적인 군사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상징성 못지않게 냉전체제에서 만들어진 한미연합방위체제가 탈냉전시대에 맞게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한국국민의 자주적 정서에도 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담당이 필수적 이라는 인식도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군의 평시작전권 환수는 지난 1950년 6·25 발발 직후인 7월14일부터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해 온 한국군 작전통제권이 비록 평시에 한한 것이지만 44년만에 우리측에 넘어오게 됐다는 점에서 군사적인 면과 함께 정치·외교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지적이다.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될 경우 한국 합참의장이 한국군의 평시부대이동 및 배치권한을 가지며 팀스피리트훈련 등 한미연합훈련을 한국군 주도로 실시하게돼 실제적인 전술통제권을 행사하게 된다.또 전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수립에도 한국군의 의견이 크게 반영돼 장차 한반도방위는 한국군이 1차적으로 책임지고 미군은 지원군 성격으로 변모,「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촉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앞으로의 한반도 방위전략개념도 과거와 달라지고 주한미군의 역할도 단계적으로 변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전·평시작전통제권을 주둔미군에 위임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뿐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 평시는 유럽 각 국이,전시는 NATO사령관이 각각 행사하고 있으며 일본도 전·평시 구분없이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병립체제를 유지,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쟁조짐 발견시 공군 및 해군전력 위주의 신속전개 억제전력(FDO)투입 재확인조치는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로 인한 전력의 공백을 염두에 둔 사전예방조치로 받아들여진다.특히 미해군사령관에 속했던 미태평양사령부 예하 제7함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관에 귀속시키기로 한 것은 이같은 점을 의식,한반도 전쟁발발시 미군의 즉각적이고도 능률적인 군사지원약속을 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와함께 제24차 SCM에서 미국측이 제의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책임을 93년 6월까지 한국군에 완전 인수한다는 방침을 변경,미군이 계속 맡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겨냥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한국군에 평시작전통제권이 이양됨으로써 한국군은 앞으로 독자적인 전략개발은 물론 통합적인 전쟁기획,미래 지향적인 전력배치비율조정,군인력및 장비의 전문화·현대화라는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됐다.
  • 북,핵국제압력 더 버틸셈인가(사설)

    마침내 유엔총회까지 북한의 핵개발포기및 의혹해소를 촉구하고 나섰다.북한에 대한 국제압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상황전개다.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보리및 한·미·일이 제기해온 북핵포기 촉구및 경고의 집대성이다.그런데도 북한은 핵고집을 계속할것인가. 북한이 그동안 공정성 시비를 제기해온 IAEA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북한의 핵안전협정 의무 불이행에 대한 우려,그리고 북한에 대한 사찰수용 촉구가 결의안의 골자다.찬성 1백40,반대 1,기권 9표였다.48개국이 공동발의한 결의안 초안에 대한 북한의 일부 수정제의도 완전 묵살당한 채 원안대로 통과되었다.그나마 유일의 반대표도 북한표였다.IAEA사찰을 거부하는 북한에 동조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북한 그 자신 이외에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의 국제적 공식확인이다. 북한은 그것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고도 냉정하게 음미해야 한다.기권표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특히 중국·이라크·쿠바 등의 기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북한에 대해 가장 동정적인 중국은 말할것도 없고 쿠바,그리고 같은 핵개발 혐의로 유엔제재를 받았으며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후세인의 이라크까지 적극적인 반대 아닌 기권을 했다.사실상의 찬성이며 유엔총회의 만장일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유엔총회 결의전에 북한이 사찰수용의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했다.유엔총회 결의의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되었으며 북한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북한은 끝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유엔총회의 결의까지도 거부하며 미국의 정치적 음모라는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핵개발을 관철할 속셈이란 말인가.그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큰 희생을 강요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북한체제 수호의 안전판이기는커녕 자멸을 재촉하는 위험천만의 무모한 모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협상카드로서도 그것은 이제 효력을 다했다.미국이나 우리에게서 나올 것은 다 나왔으며 남은 것은 북한의 핵개발허용뿐인데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없는 일이다.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같지 못하다는 교훈을 북한도 배웠으면 한다. IAEA의 북한핵 감시장비의 작동이 중단된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미국은 2일 북한과의 외교적 접촉을 중단하고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경고했다.이제 북한의 실질적 호응이 없는 한 싫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이번 총회의 만장일치적 찬성표결로 북한에 대한 안보리제재를 반대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북한의 현명한 사찰수용 결단을 촉구한다.
  • 김정일,직계세력 전면부상 자제(오늘의 북한)

    ◎권력승계 추이 분석/체제구축위한 “우상화” 선전 강화/장성택­강성산­김용순 등 행보관심 세계사에 유례없는 북한의 김일성부자간 권력세습은 과연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이에 대한 일차적 해답은 김일성 사후 북한정권 내부의 권력투쟁 양상과 북한주민들의 반응에 달려있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김일성이 지신의 사후에 대비,김정일로의 권력이양을 단계적으로 착착 밟아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방위원장직에 추대된 것도 권력승계작업의 일환이다.이는 당·정·군 3대 권력 가운데 군을 김정일에게 완전이양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일성은 이에 그치지않고 앞으로 국가주석과 당총비서직 등도 단계적으로 김정일에게 넘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이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 북한권력 주요 포스트에 자신의 친위세력을 대거 심어두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까지는 별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폐쇄사회의 특성상 설령 그런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노출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김일성 추종세력과 김정일 친위세력이 대부분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직에 취임한 이후 김정일 직계세력이 표면에 부상한 사례로는 측근인 김용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 통일정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것과 개성직할시 인민위원장 임수만이 새로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김정일 친위세력이 전면부상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당·정·군에 걸쳐 포진하고 있는 이른바 「혁명2세대」인 김정일의 핵심친위세력들의 위상변화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장성택·김기남·김국태 등이 주목의 대상이며 군부에선 오극렬·김강환·김두남 등이 관심을 끄는 인물들이다.행정분야에선 강성산정무원총리와 외교통인 김용순·이화선·김영남 등이 마찬가지 맥락에서 동태를 지켜볼 만한 인물들이다. 북한은 김일성가계의 우상화와 체제유지를 위해 선전기능을 중시하고 있다.이같은 측면에서 지난 87년부터 당선전 선동부장을 맡아온 김기남도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꼽힌다.당내 최고문장가로 통하는 그는 김정일 이름의 각종 연설문이나 축하문을 대필해주고 공적으로는 북한의 모든 보도와 선전을 총지휘한다.「우리식대로 살자」「우리당 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북한의 최근 유명한 구호는 거의 그의 두뇌에서 나왔거나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북한 권부 곳곳에 김정일 직계세력을 대거 심는것이 곧 김부자세습체제를 굳혀주는 확고한 안전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왜냐하면 북한주민들이 세계적인 민주화 조류에 동떨어진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언제까지 용납할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 스키장비값 하락… “구입적기”/“성수기 지났다” 20%나 떨어져

    ◎일반용,세트당 60만원선 적당/질좋은 국산품 많아… 전문대장서 구입을 스키가 대중화되면서 스키장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스키시즌이 절정에 들어선 요즘 스키용품의 가격은 시즌전보다 20%가량 떨어져 구입에 적기를 맞고있다. 특히 올해들어 스키를 처음 타는 초보자들은 어느 정도 기초가 갖춰진 이때쯤 장비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스키구입에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수적이나 구입당사자의 기본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는 큰 도움을 받을수 없기 때문.가격면에서도 스키시즌이 연중 3개월남짓에 불과한 우리 실정상 10∼12월의 성수기를 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전문매장이 아닌 곳에서는 무조건 고가품만 권유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스키선수들에게나 필요한 고가품을 구입하면 초보자들은 다루기가 힘들어 오히려 스키의 묘미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주요 스키장비로는 스키화인 부츠와 플레이트(스키판),바인딩을 꼽는다.이 세가지가 가장 필수적인 장비이고 또한 가격도 비싸다. 이들 주요장비는 전량이 수입품.해마다 유럽지역에서 2월경에 열리는 「유럽스키용품전시회」에 국내의 스키수입업자들이 참가,유명 생산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 도입된다.현재 세계 스키시장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오스트리아등 유럽세가 휩쓸고 있다.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가장 큰 수요시장으로 유럽의 유명 생산업체들은 이 시장을 겨냥해 동양인에 적합한 별도의 상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국내 판매가격은 수입도매상들이 각각 자체 수입 브랜드별로 가격을 책정해 일반 산매상들에 공급한다.따라서 백화점과 전문업소등 전국 어느 매장에서나 같은 브랜드의 동일모델에 붙어있는 소비자 권장가격은 똑같다. 그러나 업소마다 할인 판매의 폭과 스키가방등의 무료제공여부에 따라 똑같은 제품의 가격이 10%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 업자별로 수입 브랜드가 거의 고정된데다 판매가격이 수입가격의 2.95배를 넘지못하도록 규제를 받고있어 책정 소비자가격의 30%이하로 판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일반인이 레저용으로 즐길만한 스키세트는 60만∼70만원 정도로 짜맞추는 것이 적당하다.백화점등에서 기획상품으로 내놓는 20만∼30만원대의 스키세트는 실용성과 내구성이 떨어져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스키용품 전문업체 「프로 하우스」의 김부기과장은 가격문제가 아니더라도 주요 스키장비는 전문업소에서 구입할것을 권한다.한번 잘 구입하면 최장 10년까지 사용할수 있는 스키장비를 고객들로 붐비는 백화점등에서 별다른 상담없이 구입하는 것은 무모한 행위라는 지적이다. 플레이트는 세계10위권내의 브랜드가 전부 국내에서 판매된다.프랑스제 「로시널」이 역사도 가장 길고 국내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품.스키 종주국 오스트리아의 「블리자드」와 「아토믹」「피셔」등도 인기가 있고 「팰클」(독일)「살로몬」(프랑스)「엘란」(유고)「K2」「헤드」(미국)등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부츠는 이탈리아제가 강세로 「노르디카」를 제일로 쳐주며 「테크니카」「살로몬」「로시널」「무나리」등이 있다. 플레이트와 부츠의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성인 초급자용이 16만∼25만원,중급자 25만∼40만원정도이고 상급자용은 제한이 없다. 부츠와 플레이트를 연결시켜주며 넘어지는등의 돌발사고때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는 바인딩은 프랑스제 「살로몬」과 독일제 「마커」가 유명하며 가격은 성인남자용 15만∼18만원,성인여자용 11만∼13만원대.이밖에 스키복과 폴,고글,장갑등의 부대용품은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국산 상품들도 많이 나와있다.
  • 불씨 다시 지피는 야권공조/민주·국민 연대가능성과 걸림돌

    ◎“필요하지만 시기상조”/민주/“재벌당 벗자” 적극 자세/국민/금명있을 양당총장회동서 가닥 잡힐듯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가 김대중 전민주당대표를 전격방문한 것을 계기로 민주·국민당간의 야권공조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두 당의 공조관계는 우선 국민당측에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민당은 「선거사범」인 이병규대표특보에 대한 사전영장,정몽준의원에 대한 소환장 발부등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이다.때문에 제1야당인 민주당의 협조를 구해 안전판을 마련하자는 계산인것 같다. 민주당은 일단 정대표가 지난24일 동교동을 방문해 제안한 대부분에 대해 「거부」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다. 정대표가 이날 제안한 선거무효소송에 대해서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물론 김전대표도 『실효성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후문이다.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마당에 그 문제를 걸어 야권공조를 이루겠다는 것이 정대표의 생각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당의기본입장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다만 선거승복과는 별개로 앞으로의 선거에서 금권·관권선거를 막기 위한 법적·정치적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아래 당공명선거대책위원회에서 관련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서도 국민당과 기본적인 공조관계를 유지해나갈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도부 개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시기적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계산이다. 정가에서는 금명간 있을 한광옥 민주·김효영 국민 두 총장의 회동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당은 일단 선거때의 불법선거운동과 관련한 각종 고소·고발사건에 대해 「공조」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대표의 「전격방문」에 의미를 부여하며 양측이 체제정비를 거친 후 야권의 장래에 대해 깊은 의견이 교환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양당 사무총장의 회동은 「폭넓은」의견교환을 전제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사실 두 당의 공조문제는 김영삼당선자의 압도적인 승리이후 민주당내부에서조차 제기돼 왔다. 급조된 재벌당으로서의 한계를 느낀 국민당도 정통야당인 민주당의 간판과 지지기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대통령직선제를 통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내각제를 매개로 한 국민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특히 당의 기둥이었던 김대중전대표의 은퇴로 겪고 있는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현실적 차원에서의 공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쌍방간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민주·국민 두당이 공조관계를 지속하는데는 「걸림돌」이 적지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두당 모두 지난 선거에서의 패배에 따른 후유증의 치유에 몰두해야 할 형편이다. 민주당의 경우 권력공백으로 중진들간의 당권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민당과의 공조관계가 본격화한다해도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계파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과도체제를 이끌고 있는 이기택대표도 정대표의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등 현재 확보된 당내의우월성을 유지하고자 공조문제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함께 평민연·민련등 재야출신 의원들은 『재벌당과의 통합이란 정통야당의 파멸을 의미한다』면서 국민당과의 협력에 쐐기를 박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민주·국민당의 공조관계는 두 당의 이해에 따라 수시로 맺고 끊길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통합논의는 한동안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 민자당의 역할과 책임(사설)

    오는 18일의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어느당 후보가 당선되든 변하지 않을 정치상황이 있다면 그건 원내 제1당으로서의 민자당의 위치일 것이다.원내 과반수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자당은 자당후보의 당락에 관계없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정국을 주도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나갈 책임이 있는 다수당이다. 바로 이 점이 민자당에 대해 공명선거와 관련하여 가장 큰 책임을 부하하는 당위이며 앞으로 남은 단 6일간의 마지막 선거운동 기간중에도 촌보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명제가 되는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선거기간중 반칙을 일삼은 정당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집권후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안정을 유지해나갈 수 있단 말인가.자기는 「바담 풍」하면서 남에게만 「바람 풍」하라고 한다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또 그런 정당이 무슨 명분으로 정부를 견제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통령후보가 11일 회견을 통해 당일선조직의 금품관련 물의를 국민앞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특히 각 당간 막판 세과시의 승부처인 서울 여의도 유세를 갖지 않기로 했다는 발표는 고무적이다.5년전 대선때처럼 여의도광장에서 백만명 단위의 대규모 유세집회를 개최할 경우 선거 분위기를 과열시킬뿐 아니라 수도 서울의 교통을 마비시켜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만일 폭력사태라도 나면 선거양상은 삽시간에 무정부적 혼란으로 빠질 것이다.국민당의 12일 여의도집회에 대해 다른 당들이 1백억원이상의 막대한 준비자금이 투입됐다고 비난하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이,대규모 집회는 청중동원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깨끗한 선거」와도 역행하는 것이다. 민자당과 마찬가지로 여의도 집회를 갖지 않기로 한 민주당의 결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 선거전이 종반에 이르면서 선거분위기가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금권·관권선거 논쟁이 가열되고 흑색선전과 상호비방도 심해지고 있다.그럴수록 민자당은 대도를 걷고 자중자애해야 한다.다른당이 탈법·불법을 한다고 맞대응을 하거나 다른 당의 흑색선전이나 인신공격에 자제력을상실한다면 원내 제1당 즉 「맏형」의 자격이 없다. 돈으로 청중을 사거나 대학생을 금권선거에 오염시키는 일도 없어야겠거니와 선거 막판에 「03시계」나 돈봉투가 다시 나돌아도 안될 것이다. 변화와 개혁의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 상호협력이 필수적이다.아무리 좋은 정책을 가진 정당이라도 국회의 협력,다시 말해 과반수의석을 가진 민자당의 협조 없이는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가 없다.또한 정치안정 없이는 경제안정은 물론 사회 어느 분야의 안정도 기약할 수 없다.그래서 민자당은 다수당인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한다.반면에 소수당인 민주당과 국민당은 선거후 타당세력 흡수와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통한 원내 과반의석 확보를 주장하는 것이다.민주당이 거국내각이란 이름의 연립정부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것도 국민의 안정중시성향을 의식한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당의 안정론이란 민자당 와해와 정계개편이라는 가상적 상황을 전제로 한것이다.그러한 가상이 현실로 적중되지 않는다면 민주당과 국민당의 안정론은 성립할 수가 없다.민자당과 다른 2당의 안정론이 설득력의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이때문이다. 민자당은 설사 집권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정계에 큰 지각변동만 없다면 오는 96년 봄까지 제1당의 자리를 견지할 수 있다.우리 사회의 두터운 중산층,즉 안정희구 세력들이 선거와 권력개편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면서도 변화와 안정에 더 큰 기대를 걸수 있는건 민자당과 같은 안전판이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민자당에 대해 개표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명선거를 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러한 안전판으로서의 신뢰와 지지기반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기 때문이다. 민자당이 반칙으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건 나라의 안정을 지켜나갈 다수당으로서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이번엔 과거와 같은 선거후유증이 없어야 한다.재집권 못지 않게 안정과 발전을 중시한다는 자세로 민자당이 공명선거에의 모범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 저질문화 추방공약은 왜 없나(정경문화포럼)

    ◎무차별 상업주의에 사회전반 오염/새 사회 건설은 상상력 가꾸기부터 대선속에 모든것이 묻히고 있다.세상사의 다양함은 지금 우리에게서 멈추어 있다.때문에 정서적으로는 일상성마저 깨지고 있는듯 느껴진다. 대선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크다.정치적·사회적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담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모든 일에 손을 놓고 대선만 바라보는 태도속에 변화에 대한 어떤 지향을 담고 있거나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은 아니라는데 있다.무엇보다 이쯤이면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공통된 전망이 국민적 분위기로 나타나야 하겠으나 그렇질 않다. 1960년 미대통령선거에서 케네디가 내세웠던 「미국을 새로 일으키자」라는 구호는 모든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었다.세계도처에서 외국인들에까지 그 모습은 체감됐고 아직도 이 문구는 쓰이고 있다.우리도 지금 새 한국을 만들자라고 말하고 있다.이 말은 적시정다.그럼에도 이 뜻에 대한 감정이입은 매우 적다.어딘엔가 우리 모두의 평균적인 느낌에 크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언어나 개념에대한 수용능력에 심각한 결핍증상이 있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이 결핍의 실체는 또 어떤것인가.아마도 늘 과거로부터 받은 전형을 초월하여 새로운 희망과 신념을 창조해 내는 상상력일것이다.더 넓게 말하면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이 된다. 그럴만하다는 추론도 여러측면에서 할수 있다.그중 하나로 우리사회는 너무 극심하게 물량적·상업주의적 가치에만 경도돼 왔었다는 항목이 있다.그 기간도 길어서 한 세대가 아니라 두 세대쯤 된다.오늘의 늙은 세대들은 그래도 「교양」이라는 단어를 한두번씩은 쓰면서 자랐다.이 근자엔 이 단어마저도 그 쓰이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대학 교양과목마저 그동안 해체되고 재편되는 극단적 사상서들의 한쪽 끝에만 매달려 있었다.그리고 일반의 교양은 좋게 말해서 감각적인 대중문화 일변도속에 있었다. 사회적교양과 상상력이란 물론 눈에 뜨이게 설명하기 어렵다.그러나 어떤 사람이 쓰는 어휘들,또는 읽는 책과 잡지들,늘상 애용하는 생활문화도구들이 품격과 취향을 표시하고 사고의 틀까지도 서로가 알아볼수 있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이점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평등을 실현했는지도 모른다.계층이나 연령이나 직종까지도 구분이 없이 똑같은 내용과 양식을 살아가는 획일적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양상의 기반인 대중문화는 그 자신이 마지막 단계예 와 있다.예컨대 이즈음엔 영화만 벗고 있는것이 아니라 연극도 벗고 있고,TV는 좀 벗으려다가 제동에 걸려 있다.온갖 인쇄매체들,문학마저도 스스로의 표현대로 「순수」를 버리고 상품을 쓰고 있다.예술의 사회적효용이 바로 미적감수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돕는 것이라면,이 저질문화현상은 지금 우리에게서 정치보다도 더 큰 장애를 이 사회에 주고 있다.이속에서 우리의 상상력 결핍은 피할수없는 결과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대중문화의 저급한 속성은 한때 기존의 지배문화를 안정시키는 안전판 같은 구실을 하는것이라고 생각되었다.그래서 장르별로 부분적으로는 내버려 두는 정치도 행해졌다.그러나 여러 연구속에서 이 해석은 이제 바뀌고 있다.가장 타락한 대중문화까지도묵시적으로 사회질서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다는것이 오늘의 견해이다.이 관점의 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대중문화적 작품이란 비록 그 기능이 현존하는 질서의 합법화에 있다고 하더라도,가장 근본적인 집단의 희망과 환상을 굴절하지 않고서는 그 임무를 수행할수 없다」라고까지 분석한다. 우리 주변 도처에 깔려 있는 저질문화의 난처함은 또 이에 대비하여 이것이 좋은 것이다를 말할수 있는 대치물마저 별로 갖고 있지 않다는데에도 있다.고귀함과 우아함을 말하는 그 어느 문화물이 혹시 있다 하더라도 이 또한 유통채널에 들어갈수가 없다.시장은 저질문화들이 점령하고 있고 그나마 시장 자체의 공간은 좁다. 하지만 세계는 변하고 있다.경제까지도 이제는 「문화전체의 자원화」라는 개념을 쓴다.어떤 상품도 미적감수성과 문화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접근을 하지 않는한 판매에 성공할 수 없다는,이미 변화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사람들이 문화적 질을 추구하고 있다.기능적 질이란 별로 따지지 않아도 될 계제에 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단계의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그 일은,좀 어이없지만 「저질문화와의 전쟁」부터 시작하는 일이다.그리고 개개인의 창조적 상상력을 키우는 일이다.이렇게 하지 않을때 우리는 더욱 답답하며 더디게 갈 것이다.
  • CIS/민족분규 등 난제에 무력/출범 1년간의 공과

    ◎결속력 약해 공동통화도입 등 잇단 실패/국가이기주의 부작용 최소화는 큰 성과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독립국가연합(CIS)이 탄생한지 8일로 꼭 1년을 맞았다. 거대한 제국의 붕괴라는 전세계적 충격속에서 급조된 이 공동운명체의 지난 1년은 실로 파란의 연속이었다. 소연방체의 15개 공화국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개의 슬라브공동체로 출발했던 CIS는 회원국이 10개국으로 늘어 외형적으로는 소련에 버금가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각 회원국이 정치불안,경제난,민족분규라는 고질적 과제에 직면해있는데다 회원국들간에 작게는 개별국가간 분리관계의 구조설정에서부터 CIS의 장래 위상정립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등 취약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 CIS가 현재 택하고있는 만장일치 의사결정구조는 공동체의 발전을 모색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족쇄로 작용하고있다.지난 10월의 공동통화제 도입협상이 회원국들간에 양분현상만 노출시킨채 흐지부지된 것이나 러시아·카자흐 주도의 공동경제도입정책이우크라이나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된 사례는 CIS 운용구조의 결함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따라서 CIS는 출범 1년을 맞도록 미래의 청사진을 가시화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본헌장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연유로 CIS는 지난 1년동안 빈발한 민족분규와 회원국들간 이기주의가 충돌하는 사태에 관해 결정적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무력감을 보여왔다.유가·흑해함대·크림반도·핵무기 등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립은 양국만의 문제로 방치되고 있다.또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타지크·몰도바 등에서 끊이지 않고있는 민족분규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으로 일관,결국 아제르바이잔이 CIS에 기대할게 없다고 중도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최대회원국인 러시아가 타국영토내의 자민족 보호를 위해 무력까지 사용할 뜻을 비침으로써 약소회원국들에 러시아공포감을 유발,가뜩이나 취약한 CIS의 결속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그렇지만 CIS의 지난 1년과 장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우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방체의 붕괴로 유발된 국가이기주의의 부작용을 완충시키고 추스리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공적이 뒤따르고 있다.키르기스의 아스카르 아카예프대통령은 이와 관련,『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CIS라는 국가간 연결고리마저 없었다면 아마 전영토에 걸쳐 전면전을 치러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하나 중요한 사실은 CIS의 존재 자체가 하루아침에 공화국국민이 된 소수민족들에게 안전판역할을 함으로써 분쟁의 와중에서도 민족 재정착작업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교차하는 속에서 CIS는 성취한 것보다는 이룩하지 못한 것이,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이 더 많은 상태로 출범 두해째를 맞고있다. CIS는 현재 러시아를 중심으로 카자흐·키르기스·우즈베크·벨로루시등이 경제협력내용에 열심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한때 탐탁치 않은 태도를 보였던 우크라이나도 요즘들어 CIS가 경제개발의 유용한 지주라는 인식을 갖게돼 이 공동체의 향후진로에 대해 희망적인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러시아의 코지레프외무장관은 CIS의장래에 대해 『수십년의 경험을 축적한 EC가 통합에 많은 장애를 안고있듯이 CIS도 위기와 갈등속에서 다양한 방법과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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