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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서 환국 선열유해 4위/대전국립묘지 안장

    【대전=이천열기자 】중국 길림성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이화일,손병헌,강백규,김기선선생등 네분의 유해 안장식이 18일 하오 대전시 유성구 궁동 대전국립묘지에서 이충길 보훈처장과 유족,광복회원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한편 중국에서 함께 돌아온 윤희순여사의 유해는 20일 강원도 춘천 소재 선영에 안장된다.
  • 재키 케네디곁에 묻히다/클린턴 알링턴국립묘지서 추도사

    【워싱턴 로이터 AFP 연합】 지난 19일 타계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의 유해는 23일 하오(한국시간 24일 상오) 워싱턴소재 알링턴 국립묘지의 고 존 F 케네디대통령 묘소옆에 안장된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 뉴욕 맨해튼의 성이그나티우스 로욜라성당에서는 재클린여사의 장례미사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과 친지 몇명만 초청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진다. 뉴욕에서 장례미사를 마친후 재클린여사의 유해는 전세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운구돼 케네디가 사람들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알링턴묘지에 안장된다. 이로써 지난 53년 케네디대통령과 결혼한 재클린 여사는 63년 케네디대통령이 댈라스에서 암살된후 30년만에 죽어서야 재결합하게 됐다. 클린턴대통령은 안장식에서 추도사를 할 예정이며 힐러리여사는 23일 상오 뉴욕으로 가 장례미사에 참석한후 재클린여사의 관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며 클린턴대통령은 공항에서 이들을 마중한다. 케네디가는 군용 제트기편으로 재클린여사의 관을 워싱턴으로 운송하라는클린턴대통령의 제의를 거절했다. 알링턴국립묘지 경비를 담당하고있는 육군은 이번 장례식의 「사적」성격을 강조하면서 기자들의 케네디 묘지 접근이 금지될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간의 관례를 깨고 대통령의 백악관 외부행사를 취재하던 보도진들의 장례식 취재도 금지되었으며 추도사 내용만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어서 장례식은 일체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 “조국품에 편히 잠드소서”/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국립묘지 안장

    애국지사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 봉환안장식이 8일 하오2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앞 광장에서 이회창국무총리등 정부인사와 정치인·유족·시민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정부가 주관하고 한국신문협회가 후원한 이날 안장식은 봉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충길국가보훈처장의 약력보고,봉환위원장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헌사,이회창국무총리의 추념사,김승곤광복회장,김병관신문협회장,전봉훈 전명운의사 기념사업회장의 추모사,종교의식,각계대표의 헌화및 분향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총리는 추념사에서 『일생을 통해 조국의 광복과 겨레의 계몽을 위해 온몸을 던지신 두분 선열들을 늦게나마 이곳 민족의 성지에 유택을 마련해 모시게 돼 송구스러움과 회한속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감회를 느낀다』며 『 두분 선열께서 몸소 실천하신 자주독립의지와 살신성인의 애국정신은 불멸의 민족혼으로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날 종교의식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임옥목사와 반포천주교회 김도영신부가 각각 집전했다.
  • 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유해안장 이모저모

    ◎유족들,“이제야 원 풀었다” 눈물/서박사 93세질녀 휄체어 타고 참석/배재고생 70명 교복차림 식장도열 ○…서재필선생의 종손 희원씨(70)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유해봉환을 시도했으나 정부측의 의지가 부족해 실패했었다』며 『이번 두분의 유해봉환은 문민정부들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국내봉환에 이은 것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LA에 거주하다 이번 안장식에 참석차 귀국한 전명운의사의 둘째딸 경련씨(71)는 『아버지의 유해가 수십년동안 해외에 묻혀있다 정부의 배려로 좋은 장소에 유택을 마련하게 돼 더할 나위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서재필선생의 질녀 정석씨(93)는 노구로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채 이날 안장식에 참석해 주변의 눈길을 끌었다. 정석씨는 『선생은 약관 20세의 나이로 당시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에 중심인물로 활약했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이 일경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선생의 본부인 광산 김씨는 약을 먹고자결하는등 일가족이 모두 불행을 겪었다』며 아픈 과거를 회상. ○…배재고 학생 70여명은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안장식이 시작되기 1시간여전에 국립묘지에 도착,안장식이 거행된 현충문앞 잔디밭에 나란히 도열. 배재고 박언서교장(61)은 『서재필선생은 갑신정변후 미국에 유학한 뒤 1895년에 귀국,배재고의 전신인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아 지리·역사·정치학을 가르쳤다』며 『강의에만 만족치말고 토론회를 열어 참지식을 얻으라는 선생의 말씀이 배재고 1백년사에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 서재필·전명운 선열의 환국(사설)

    평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가 4일 미국으로부터 서울에 도착한다.지난해 8월 중국 상해로부터 임정요인 다섯분 영령의 봉환에 이어 두번째로 이루어진 애국선열 영령의 환국이다.내년이면 벌써 광복 50주년,이제야 멀고먼 이국땅에서 숨진 선열들의 유해를 고국에 모셔 안장함은 때늦은 송구함이 없지않으나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재필박사는 개화기의 독립운동가로,사상가로,언론인으로 우뚝한 자취를 남겼다.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우는등 애국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18 9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국언론사의 새장을 열었다.우리 언론이 제정한 「신문의 날」4월7일은 바로 독립신문 창간기념일이다.서박사는 일제때 미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힘쓰다 19 51년 영면하였다.구한말 개화기부터 광복을 맞기까지 그는 현대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긴 거목이다. 일반에겐 다소 생소한 전명운의사는 19 08년 미 샌프란시스코부두에서 대한제국의 미국인 외교고문이던 친일파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독립운동가.『일본의 한국통치는 한국인 모두가 바라는 바』란 망언을 거침없이 해댄 스티븐스는 당시 한국인의 공적이었다.전의사의 권총은 불행히 불발에 그쳤으나 또 한사람의 한국인 장인환의사의 저격으로 스티븐스는 목숨을 잃는다.대한남아의 통쾌한 기개가 미국땅을 뒤흔드는 순간이었다.이 사건은 일본의 침략성과 우리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전의사 역시 47년 이역에서 눈을 감았다. 서박사의 유해는 필라델피아의 한 공동묘지 납골당에서,전의사는 LA 갈보리 천주교공동묘지에서 각각 모셔오게 된다.타계한지 40여년이 훨씬 지난 시점이다. 정부는 이영덕부총리를 위원장으로 「봉환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따로 집행위원회를 조직하여 범정부적으로 유해봉안행사를 갖기로 했다.두분의 안장식은 8일 하오2시 국립묘지 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된다.이역땅에서 외롭게 숨진 순국선열들의 유해 환국은 민족정기를 선양한다는 점에서 그 뜻이 크다.또한 현대사의 복원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한 일이다.우리 민족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들 선열들의 수난과 희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새 문민정부는 해외에 묻혀있는 선열들의 유해찾기 조사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내년 광복절까지 복원되는 중경임시정부청사의 복원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두분의 환국을 맞으면서 다시한번 우리 모두 역사앞에 한점 부끄러움 없는 국민이 되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 서재필박사·전명운의사 유해 새달 8일 국립묘지 안치

    ◎정부,봉환·집행위원회 구성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박사(1866∼1951)와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의사(1880∼1947) 유해가 다음달 4일 미국에서 40여년만에 환국,8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치된다. 두분의 유해가 봉환되면 지난해 환국한 박은식선생등 선열 5위와 나창헌선생등의 유해를 합쳐 국내봉환된 해외안장 독립유공자는 모두 32위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22일 이영덕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봉환위원회」와 이충길 국가보훈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집행위원회」를 각각 구성,두분의 유해봉환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서박사의 유해는 미국 필라델피아 발라킨위드 웨스트 라우렐힐 공동묘지 납골당에 화장된 유해상태로 유골함에 봉안,관리돼 왔으며 전의사의 유해는 로스앤젤레스 갈보리 천주교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보훈처는 오는 30일과 31일 「서재필선생 유해봉환단」(단장 김시복보훈처차장)과 「전명운의사 유해봉환단」(단장 신동하보훈처기념사업국장)을각각 미국에 보내 다음달 2일 현지에서 봉송식을 갖고 로스앤젤레스에서 합류,유해를 4일 김포국제공항에 봉영한 후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안치할 예정이다. 두분의 안장식은 다음달 8일 하오 2시 국립묘지 현충문 앞 광장에서 유족및 친지를 비롯해 각계각층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뒤 애국지사묘역에 안치된다.
  • “보조날개 이상이 주원인인듯”/전문가들이 보는 헬기사고 원인

    ◎엔진과열·기체결함으로 파손 추정/주날개나 외부물체와 충돌 가능성 항공학교수나 군헬기조종사출신의 항공전문가들은 조근해 공군참모총장등 6명의 목숨을 앗아간 UH60헬기추락사고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또 사고당시의 상황이 워낙 긴박했기 때문에 관제소와의 교신내용이 자동으로 기록되는 음성기록장치(CVR)에 충분한 대화가 수록되었을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논란이 되고있는 부분인 공중폭발이냐 아니냐 하는 대목은 비전문가인 목격자들의 진술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공전문가들은 결정적인 기체상의 결함이 있지 않는 한 공중폭발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기체의 꼬리부분이 공중에서 떨어져 나간뒤 기체가 공중에서 몇바퀴 돌다가 추락했다는 목격담을 중시하고 있다. 항공전문가들은 보조날개가 떨어져나간 이유에 대해 시계가 나빠 고도를 낮춰 비행하다가 큰 나무등에 충돌했을 가능성과 정비불량으로 주 날개와 보조날개가 충돌했을 가능성을 들고 있다. 또다른 가능성은 사고 직전 기체에 불이 났을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즉 엔진 과열이 배기관을 통해 뒷 날개에까지 전달돼 파열됐을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체 전체의 공중폭발은 폭탄에 의한 것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일치된 견해다. 결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때 엔진과열을 일으켜 뒷날개를 파열시켰거나 뒷날개가 주날개 또는 외부 물체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좁혀진다.또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정비불량으로 인한 기체결함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군용헬기 운항의 경우 관제소로부터 5마일을 벗어나면 항로 선택등 조종의 책임은 조종사에게 맡겨지고 관제소의 통제를 받을 의무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용인군 외사면도 성남 비행장에서 5마일을 벗어난 지역이었으므로 관제소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사고 헬기가 정상항로로 운항했었는지도 알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항공 양화석조종사(48)는 『사고의 원인을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보조날개의 이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된다』면서 『주민들이 들었다는 폭발음은 연료의 혼합비율이 맞지 않아 생긴 자동차의 노킹현상과 같은 것이었을 수 있기 때문에 공중폭발의 가능성은 배제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하공전 박정웅교수(51·항공기계과)는 『보조날개는 운항중에 큰 압력을 받으므로 주·보조날개를 잇는 축에 균열이 있는 상태에서 축이 우선 부서지면서 보조날개가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헬기참사 빈소 주변/“어떻게 이럴수가”… 유족들 오열/김 대통령·장병 등 조문행렬 줄이어 ○…고인들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 영현실 주변은 4일 푸른 제복의 공군장병들이 삼삼오오 들어와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으며 주변에 공군을 상징하는 푸른 카펫을 깔아놓아 고인들이 「죽어서도 공군임」을 과시. ○…영현실 뒤편의 참모총장 유족실에는 이날 하오 늦게까지도 독일 유학중인 조근해총장의 딸 조은주씨(23)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장례에 참여하고 있는 공군 관계자들은애가 타는 모습. 이에앞서 상오 11시30분 빈소에 들른 김종필민자당대표가 분향을 마치고 유족실을 둘러보던중 안내를 맡은 조총장의 비서실장 구정회 소장에게 『딸이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자 그도 『오늘 하오에 도착하기를 기대합니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이날 아침내내 유지되던 영현실의 정적은 상오 11시55분쯤 강성육소령의 어머니 이태순씨가 도착하면서부터 한층 비통한 분위기로 돌변. 영정앞에 주저앉아 할말을 잃은듯 통곡과 함께 『어떡해』를 연발하던 이씨가 영현실을 나서면서 『아침에 밥 잘 먹고 나가서…』라고 부르짖었을땐 주위의 공군관계자들조차 일제히 눈시울을 적시기도. 또한 이씨보다 5분 늦게 도착한 이상훈대위의 누나 이순선씨는 영정을 부둥켜 안고 『상훈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니』라고 절규. ○…영현실에는 상오 8시57분쯤 김영삼 대통령이 다녀간데 이어 노태우전대통령,김종필민자당대표,김수환추기경,이병대국방장관이 다녀갔으며 하오엔 최규하전대통령,이회창국무총리,이만섭국회의장,이기택민주당대표,이영덕통일원장관등이 다녀갔다. ○…고 조총장내외의 분향소가 마련된 대전 계룡대 기지극장에는 4일 이른 아침부터 하오 늦게까지 계룡대내 육해공 장병들과 대전지역 기관장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9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분향소에는 이병대국방장관등 군 고위간부들이 보내온 조화와 장병들이 헌화한 조화들로 가득차 숙연한 분위기였으며 일부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인의 넋을 기리기도. ○…순직한 조공군참모총장의 유족연금과 보훈연금은 모두 3억6천여만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다. 4일 국방부에 따르면 조총장은 61년 임관,군복무기간이 33년으로 한꺼번에 연금을 지급하는 유족일시금의 경우 유족연금일시금 1억7천9백여만원,퇴직수당 6천여만원,사망조위금(장례비) 1천2백여만원등 2억5천여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국가보훈처가 지급하는 월보훈연금 31만6천원과 사망보상금 1억9백여만원(항공근무중 순직자는 보수월액의 36배)등 1억1천여만원을 합치면 총연금액은 3억6천2백여만원이 된다. ○…육군과 해군은 헬기사고로 순직한 조총장등 6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안장식이 있는 5일까지 전장병에게 검은리본을 달도록 하고 음주 가무등 소란스런 행위도 하지 않도록 했다. 또 조의금 모금에 나서 육군의 경우 2천만원을,해군은 5백6만원을 모아 유족측에 전달했다. 김홍렬해군참모총장도 이날 하오 2시부터 열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뒤 곧바로 상경,서울 수도통합병원에 마련된 조총장의 빈소를 찾아조문. ◎동승 참사 4인/83년 임관… 헬기 조종 12년/강 소령/전속부관… 부인 출산 눈앞/이 대위/27세 미혼으로 90년 임관/유 대위/정비업무 19년째 “베테랑”/전 원사 조근해공군참모충장부부와 함께 사고헬기에 탔던 조종사 강서육소령(33·공사31기)등 장교 3명은 모두 베테랑 조종사로서의 꿈을 펼쳐보기 전에 순직했고 전해술원사(35·원사는 일등상사의 개칭)는 최고의 정비사여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강소령은 83년 임관한 뒤 헬기만 12년째 조종했으며 총비행시간 1천9백95시간의 정예조종사였다. 미국 육군항공학교에 유학,UH­60블랙호크로 야간전술교육등 정규교육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박명순씨(33)와 1남1녀. 조총장의 전속부관 이상훈대위(29·공사35기)는 88년 임관한 뒤 F4E팬텀기 후방석 조종을 하다 지난 1월 총장부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부인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부조종사 유영재대위(26·공사38기)는 미혼으로 90년 임관,헬기조종사로 근무해왔다. 전원사는 공군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정비업무만 19년째 해왔다.유족으로 부인 김미숙씨(34)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 폐품이용/“집안에 화려한 변화”/서울Y,재활용품 만들기 소개

    ◎스티로폴/모양내 색칠… 멋진 트리/레코드판/조화 곁들여 벽걸이로 계유년 한해를 마무리 하고 갑술년 새해를 준비하는 12월.집안 구석구석에 놓인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기에 앞서 재활용하기 위한 주부들의 지혜가 요구되는 때이다. 서울YWCA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는 최근 이같은 주부들의 고민을 풀어 주기위해 「폐품을 이용한 재활용품 만들기」 강좌를 열었다. 폐품을 활용한 집안장식법을 알아본다. ◇색바랜 브라인드=지난 여름내내 걸어 두었던 철지난 발에 금색 스프레이를 하고 래커칠을 한후 나뭇가지나 낙엽을 꽂으면 운치있는 분위기가 연출된다.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지난해 받았던 카드나 포인세티아 꽃을 꽂아도 성탄절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 ◇스티로폴상자=메모판이나 벽장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래커칠을 하면 색상도 아름답고 표면이 굳어져 사용하기 편리하다. ◇음료수용기(PET병)=눈금을 그얼 계량용기로 사용하거나 선물용기로 활용하고 윗부분을 잘라내 깔대기나 주거기으로 한다.또 밑면에 구멍을 여러개 뚫어 숟가락·티스푼통으로 쓴다. ◇헌사자=접착시트를 붙여 정리함으로 사용한다. ◇헌레코드판=래커칠을 한후 헌조화등을 꼬자 벽걸이로 활용한다. ◇헌고무호스=두번 둥글게 꼰후 래커칠을 하고 전나무가·솔방울등 장식을 하면 멋진 레일이 된다. ◇스티로폴=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든다.스티로폴을 트리모양으로 자른뒤 푸른색으로 칠하고 리본·금색별등으로 장식한다.
  • 크리스마스 트리/자녀와 함꼐 집안장식을

    ◎플라스틱 1.5m짜리 2만5천원/반짝이전구 두르고 별등 붙이면 모두 5만원 거리에 캐럴송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요즘 시내 백화점들과 재래 시장등에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트리용품들이 선보여 성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80년대 후반까지 일반 가정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여 놓는 가정은 극히 드물었던 것이 우리네 현실.그러나 최근 연말연시를 조촐히 가족들과 보내자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 되면서 크리스마스 트리용품을 구입해 자녀들과 함께 집안을 장식하는 가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소형 크기 잘팔려 올해 시중에 나와 있는 장식용 크리스마스 트리는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지난해와 별차이가 없다.단지 아파트 거주 가정과 핵가족을 겨냥한 중소형 트리제품이 주요 품목으로 떠오른 점이 예년과 다르다. ○장식용품 화려해서 트리 장식용품은 디자인이 더욱 다양해지고 화려해진 점이 특징이다.자전거·목마·전등·벽걸이 성탄종 등 50여종의 신제품이 새로 나왔고 외국 유명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을 형상화한 인형들도 인기를 끌고있다. 가정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려면 먼저 집안 규모에 맞춰 트리를 선택해야 한다.트리는 화원 등에서 소나무를 직접 구입해 써도 괜찮지만 플라스틱 재질을 이용한 모조 트리를 사용하는 편이 경제적이고 간편하다.가격은 남대문 꽃시장의 도매가격을 기준으로 할때 방안에 두기 좋은 1m짜리가 1만2천원선이고 1.2m짜리가 1만8천원가량 한다.거실용으로는 1.5m짜리가 2만5천원, 1.8m짜리가 3만8천원선. 국산과 중국제 수입품이 거의 대부분으로 가격과 품질은 비슷한 수준이다.손쉽게 조립이 가능해 해마다 계속 사용할수 있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이밖에 간편한 벽걸이 트리는 크기에 따라 8천∼3만2천원 정도 수준이다. ○전구 50개 5천원 장식용품은 롯데백화점 트리용품 매장의 산매가격을 기준으로 가장 기본적인 반짝이 전구가 전구 수에 따라 35구가 3천5백원,50구가 5천원,1백구가 1만원이다.전구가 반짝거리면서 음악도 흘러나오는 신제품의 경우 이보다 2천∼4천원가량 더 비싸다.또 18개들이 종세트가 1만원인 것을 비롯해 별장식·악기·장화 등 2백여종의 장식용품이 개당 1천∼4천원 사이. 5인가족의 경우 1.5m트리에 50구 전구,기타 장식용품들을 구입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면 적당하고 비용은 5만원 안팎이다.
  • 가을 실내장식/가구 재배치로 아늑한 멋 연출

    ◎직물류 색상·무늬 같은 분위기로 통일/거실·현관에 작은 카펫 러그깔면 포근/벽조명 설치,마른꽃도 소품장식으로 추정 만끽 여름철 집안장식의 주제를 간결함과 시원함에 두었다면 가을은 따듯함과 풍성함을 함축할 수 있다. 실내장식을 바꾼다고 하면 도배를 하고 페인트를 하며 값비싼 가구를 새로 들여놔야하는 것으로 여기면 잘못된 생각이다.가을철 실내분위기는 거실 바닥에 깔아두는 러그 한장으로도 달라질 수가 있으며 대바구니에 가득 담아두는 사과 배 감 밤 등 가을과실 몇가지로도 충분히 가을의 풍성함을 연출 할수 있다. 실내장식 전문가 이정규씨는 가을철 실내장식의 첫단계로 가구의 재배치를 일러준다.즉 실내공간을 넓게 쓰기위해 치워 두었던 보조 테이블이나 의자등의 소품가구들을 꺼내 일열로 늘어놓았던 응접세트등과 아기자기하게 재배치 해보라는것. 그다음엔 커튼을 중심으로한 소퍼커버 식탁보 쿠션 테이블보등의 직물류 계통에 가을의 개성을 연출시켜 본다.가을엔 브라운이나 베이지·그린계열에서 채도가 낮은 중간색상들이적당하고 변화를 줄땐 커튼부터 쿠션 테이블과 식탁보에 이르기까지 색상과 문양· 옷감의 질감을 같은 분위기로 통일하는것이 실내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연출하는 요령이다. 한편 여름에 사용했던 차가운 금속성 블라인드도 직물커튼으로 바꿔주면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블라인드를 그대로 두고 싶을때는 커튼의 양옆과 커튼 레일위에 다는 밸런스만 직물로 바꿔서 붙여주는것도 아이디어이다. 커튼은 시장에서 직접 천을 구입해다 만들면 크게 경제적 부담이 없는데 바느질도 자신이 없을땐 플래그 기법이라 하여 옷감 그대로를 커튼봉에 늘어지게 말아 장식하면 된다. 거실바닥에는 카펫을 까는것도 좋지만 현관통로 복도 식탁바닥등 부분부분 포인트를 살려 러그나 작은 카펫을 깔아줘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카펫은 가격도 비싸지만 가족중에 천식이나 앨러지가 있는 경우에는 피하는것이 좋다.이럴땐 광목을 떠다 화학솜을 가운데 넣고 누벼서 약간 두툼한 깔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어떤 가구와도 튀지않고 어울리는 개성있는 실내장식이 된다. 한편 실내 소품으로 가을 과일바구니나 호박 갈대 옥수수 및 마른꽃을 마련,한 코너를 꾸며도 추수의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길 수 있다.이럴땐 꽃꽂이를 하더라도 유리병보다는 도자기나 토기를 쓰면 한결 분위기가 차분하고 안정돼 보인다. 이밖에 조명도 가을장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거실의 중앙등에 의지한 직접조명보다는 스탠드나 벽등을 이용한 보조 조명을 하면 더 따듯한 느낌을 주는것을 알아둘것. 빈벽으로 남겨 두었던 공간엔 액자를 걸되,액자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알루미늄 재질보다는 나무틀을 이용하고 그림이 마땅치 않을땐 가족사진을 한장쯤 확대해 걸어두는것도 의미있는 실내장식이 될 수 있다.
  • 윤원섭 보훈처 과장/임정선열 5위 봉환·안장 총지휘(얼굴)

    ◎“공직 31년간 가장 의미있는 국가대사 치러 보람” 『국민들의 지대한 성원속에 박은식선생등 임시정부 선열5위의 봉환과 국립묘지안장을 무사히 끝마쳐 더없이 기쁩니다』 지난 임정선열 5위의 국내봉환협상과 안장까지 모든 실무작업을 총지휘한 윤원섭 국가보훈처 선양사업과장(57)은 『공직생활 31년동안 한 일 가운데 이번 일이 가장 보람스러웠다』고 말하고 『덕분에 체중이 4㎏이나 줄어 허리띠 구멍을 새로 냈다』며 웃었다. 윤과장은 지난 5월27일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의 방한이후 임정선열 5위의 국내봉환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면서 『지난 70여일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불평없이 일해온 직원들에게 우선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임정선열 5위의 봉환및 안장 실무책임을 맡으면서 아침7시에 출근,저녁9∼10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했지만 사명감때문인지 힘든줄을 몰랐다』고 했다. 『안장식날도 새벽3시에 일어나보니 비가 와 하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는 윤과장은 『날씨만 맑았다면 더할 수 없는 「국민제전」이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윤과장은 임정선열 5위 봉환을 계기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새로 조성된 임정요인묘역 자리를 직접 고른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과장은 『당초에는 애국지사묘역 왼쪽에 임정요인 묘역을 만드려고 했으나 공사에 따른 어려움이 많아 포기했다』면서 『내가 눈여겨 봐 둔 지금의 자리로 최종 결정이되고 모두들 명당자리라 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윤과장은 이번 「국가대사」를 치르는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컸던 어려움이었다고 토로하고 『앞으로도 87위의 국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만큼 관계당국이 더 큰 배려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윤과장은 『이번 임정선열 유해봉환이 국민의 의식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면서 『선열들의 공적이 후손들을 바르게 살도록 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빗속 「선열추념가」… 유족들 오열/임정 5위 영결·안장식 이모저모

    ◎울음섞인 추모사에 참석자들 목메어/소복차림 후손 “할아버지” 절규… 숙연 ○…10일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임정선열5위의 영결식은 전날에 이어 계속내린 비로 더욱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현충문옆 국기게양대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빗속에 펄럭이는 가운데 국화로 장식된 선열 5위의 제단은 새삼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분위기 시종 엄숙 국민제전위원측은 이날 영결식행사장 주변에 천막30개를 설치했고 참석자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우의를 나누어 줘 빗속행사에 만전.또 식순및 행사내용등이 인쇄된 팸플릿이 비에 젖는 것을 막기위해 비닐봉지에 싸 배포하는등 역사적인 행사에 차질을 빚을까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 ○…이날 영결식장의 종교의식행사에서는 천주교와 불교,기독교외에 대종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눈길.특히 김선적 종무원장(67)은 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봉안 원도문」을 유독 큰소리로 낭송,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의식을 진행하던 다른 종교와 대조를 보여 주목. 김종무원장은 박은식선생등의 독립운동 행적과 대종교의 역할등을 중심으로 추모사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낭독해 유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종교의식 시간 걸려 ○…이날 영결식에서 선열추념가를 부른 합창단 1백20명이 무궁화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입어 눈길. 국립합창단과 함께 조가를 부른 이들은 대전무궁화 합창단(단장 정인자·51)으로 이들은 어제 가사를 팩시밀리로 받아 이날 상오5시 서울에 버스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버스안에서 가사와 리듬을 열심히 익혔다고. 정 단장은 『지난7월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렸던 백범 선생 추모식 때도 추도가를 불렀다』고 자랑. ○…이날 영결식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30분가까이 늦어진 상오 11시 10분쯤 국군 조포대의 조포 21발이 울리는 가운데 종료. 이는 추모사와 종교의식이 예정시간보다 배이상 길어진데 따른 것이라고 행사 관계자가 설명. ○…상오 11시30분쯤 시작된 안장식은 흰보자기에 싼 옥함을 유택에 넣은뒤 가로30㎝,세로90㎝ 정도의 세조각으로 된 「횡대」라는 나무조각으로 옥함을 덮은 다음,횟가루를 유족대표들이 횡대위에 뿌리는등 헌토작업과 봉분을 쌓는 성분작업및 잔디를 입히는 절차로 약20여분동안 진행됐으나 흙바닥이 질어 인부들과 유족들이 애를 먹기도. ○시아버지유택 큰절 ○…소복차림의 박은식 선생의 자부 최윤신 할머니(77)는 비가 와 진흙땅으로 변한 잔디밭에서 시아버지의 유택을 향해 절을 올리며 오열했는가 하면 노백린 선생의 묘역에서도 흰소복차림의 여자 유족이 『할아버지』하며 오열하는등 안장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나와 더욱 숙연한 모습. 또 이날 영결식행사에 참석한 중국교포 이소심씨(55·여·의사·중국 사천성거주)는 『오늘 영결식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부러움과 감격스러움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정부당국이 아직 환국하지못한 다른 선열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민족정기 회복」 불댕기고…/임정선열 5위 국립묘지에 영면

    ◎“그리던 조국에 고이 잠드소서”/국민제전 거쳐 어제 안장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 선생등 지난5일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 5위의 영결식이 10일 상오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앞에서 국민제전으로 거행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이날 영결식은 제전위원장인 황인성 국무총리,이만섭 국회의장,김덕주 대법원장등 3부요인을 비롯,각계인사와 김승곤 광복회장등 광복회원,유족·일반시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0여분동안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제전집행위원장인 이병대 국가보훈처장의 약력보고,제전위원장인 황총리의 추모사와 김광복회장의 추념사,종교의식,헌화및 분향,조가,조포등의 순으로 거행됐다. 황총리는 추모사에서 『박은식 선생등 선열 다섯분은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임시정부를 튼튼히 해 조국광복의 토대를 마련한 분들』이라고 말하고 『7천만 한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대업도 선열의 거룩한 유지와 보살핌으로 멀지않아 성취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열의 개인신앙등에 따라 기독교,불교,천주교,대종교순으로 종교의식을 진행한데 이어 3부요인과 유족대표및 여야정당대표순으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영결식이 끝난뒤 선열 5인의 유해는 상오11시 10분쯤 새로 조성된 임시정부요인 묘역으로 옮겨져 하관,헌토,성분,조총,묵념의 순으로 안장식을 가진뒤 영원히 조국땅에 묻혔다. 임정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유해는 4단계구조로 된 임정묘역 맨위 상단 정부수반급묘역의 중앙에,국무총리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노백린,신규식,김인전 선생은 바로 아래 국무위원급 묘역 중앙 장방형의 유택에,안태국 선생의 유해는 애국지사묘역에 각각 모셔졌다. ◎선열87위 봉환 추진/황 총리 황인성국무총리는 10일 『아직 유해가 봉환되지 않은 87위의 선렬에 대해서도 안장실태가 확인되는대로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봉환을 추진하거나 유족들이 희망할 경우 현지에서 단장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황총리는 이날 상해 임시정부 선렬 5위유해봉환 국민제전을 마친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선열의 유해 봉환행사를 성공적으로 엄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상해임정 5위 봉환을 보고/이현희 성신여대(특별기고)

    순국하신지 70여년만에야 꿈에도 못잊던 조국의 품안에 안겨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27년을 다진 다섯분,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안태국 김인전선생의 유해가 이역땅에 묻힌지 70여년만에 문민정부의 외교적 결실로 봉환의 꿈을 이루게 됐다. ○70여년만에 조국품에 5위분은 대개가 1920년부터 1926년사이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시대(1919∼32)에 그 기반을 다지거나 화합과 광복정책의 방략,전략전술등을 인출해 내던 지혜로운 분들이었다.거개가 40대에 순국하신 아픈 기억을 일제하의 우리국민들에게 안겨주신분들이다. 백암 박은식은 민족사학자요 유학자이며 언론인,교육·개화사상가로서도 당대를 누비던 개결한 선비였다.임정에 참여하기 전후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등 뛰어난 저술을 통해 일제강점하에서 좌절·방황·자포자기하던 내외 겨레에게 소생하는 민족혼을 심어주었다.이승만임정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지도체제를 국무령중심으로 고치고 물러난뒤 곧 서거하셨다.항상『나는 대통령에 연연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던 그는 돌아가실 때는 『벼슬은 때가 되면 하는 것인데 정작 국민의 심복임을 아는 사람이 적소.독립투쟁은 단결이 가장 중요하오』라면서 당시의 임정요인들간의 갈등을 우려하고 경계하셨다. 예관 신규식은 구한국군에서부터 시작해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이듬해 신해혁명때 손문을 도와 중국 혁명동지와 안면을 넓히면서 임정의 기반을 닦았다.동제사·혁명당·신한청년당등의 조직을 통해 임정을 실질적으로 수립,선포케 하는데 중심역할을 맡아 동분서주하였다.국무총리와 법무총장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광주에 있던 손문의 호법정부를 방문,최초로 임정의 국제적인 승인을 얻어내는 외교적인 개가를 올렸다. 그는 한국혼,민족정기·의식·철학을 강조한 분이다.그는 『민족혼이 빠지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외쳤다. 계원 노백린은 전통적인 무관으로서 이미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구한국군에서 무관학교교장등을 지낸뒤 임정에 참여,국군통수체계를 정립하는데 기여했다.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비행사 양성소를 열고 비행사를 길러 공군창설의 기반을 굳힌뒤 3·1운동이후 상해 임정으로 다시 합류해 군무총장(국방장관)국무총리를 역임하다가 서거하셨다. ○애국의 진솔함 엿보여 그는 1926년 운명직전 상해의 10평 남짓한 누옥에서 말달리는 시늉을 하면서 『가자 서울로,내조국은 한국이다.어서가자』라고 외쳤다.슬프기까지 한 나라사랑의 진솔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동오 안태국은 임정과는 직접 관련이 적다.도산 안창호선생의 인척으로 상해에 와서 활동하다가 1920년 5위분중에서 제일 먼저 작고하셨다.1907년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핵심역할을 했고,데라우치조선총독 사살계획에 연루돼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다.도산은 그에 대한 추도사에서 『동오선생은 선비집안 출신으로 오로지 순수한 애국심만으로 나라사랑의 큰 뜻을 평생 펴왔다』고 그의 애국충절을 기렸다. 경재 김인전은 목사출신이었다.고향은 충남 서천이나 평양신학교를 나온 총신계통의 골수신앙인이었다.교육입국의 기치아래 후진을 양성하다가 3·1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뒤 상해임정에 합류하였다.학무총장대리·학무차장과,임시의정원 부의장·의장을 역임하고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간사등 임정후원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외국인 풍모가 풍긴 도덕성이 뛰어난 분이었다.임정의 재정등 안살림을 도맡았고 요인들이 분열하지 않고 화합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분이었다.그는 『우리가 누굴 탓할 계제가 못됩니다.내자신을 돌보면서 근신하고 가치기준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합시다』고 강조해왔다.설교조의 웅변에 상해 3·1예배당안은 늘 숙연했었다. ○역사적의미 되새겨야 상해 만국공묘에는 아직도 윤현진 김가진 이영선등 알 수 있는 분들의 묘가 더있다.이번 유해봉환은 그 시작이어야한다.이를 계기로 나라사랑의 큰 뜻을 펴다가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순국하신 더많은 애국선열의 유해를 그리던 조국강산으로 모셔와야 할 것이다.오늘부터 9일까지의 참배기간동안 국립묘지를 찾으며,그리고 10일의 안장식날 조기를 달며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엄숙히 되새겨야 할 것이다.그것이 애국의 실체를 후손에게 가르치고,수많은 희생이 오늘의 한국을 탄생시켰다는 역사적사실을 후손에게 되새기게 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 임정선열 다섯분 봉환하며(사설)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바친 선열들이 광복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채 이국땅에 묻혀 계시다는 사실은 광복된 조국에 사는 국민으로서는 생각만해도 송구스럽고 죄만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한해 이태의 일도 아니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보낸 형편이고 보면 부끄러움과 아픔은 더욱더 커진다.반드시 정성이 모자랐다기 보다는 그동안 지구촌을 지배한 냉전기류에 연유했다는 것도 사실이다.비록 그렇다해도 우리의 마음이 평안할수는 없다.애국혼을 풍손로숙시키는 듯한 그런 애절함이 있다. 그분들중 우선 임시정부요인 다섯분­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의 유해가 오늘5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다.오전에 상하이(상해)만국공묘에서 천묘식을 가진다음 오후에는 김포공항에 도착,국립묘지의 영현봉안관에 안치되게 된다.이날부터 9일까지는 참배를 위해 일반인에 공개되며 10일에는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안장된다.유족들의 한만 풀리는게 아니다.모시는게 늦었다고는 해도 국민 모두의 가슴까지 후련하게 적셔주는 일이 아닐수 없다.그분들도 이제고국의 품에 안겨 비로소 편히 잠들게 된것이다. 이를 성사시킨것은 시대의 흐름이다.얼어붙어 있었던 중국이 개방의 물결을 타면서 우리와 국교를 맺은 일로부터 비롯된다.지난5월 방한한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애국선열 유해봉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전부장이 쾌히 응낙함으로써 급속한 진전을 보기에 이른것이다. 이번 유해봉환은 중국정부의 대한관을 읽을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도 뜻이 깊다.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정부로 계승되고 있음을 중국정부가 인정한 것이 유해봉환에의 협조라고 하겠기 때문이다.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는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묻혀야 할 당위성을 갖고있다.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이 다섯분의 유해와 영혼을 모셔들이면서 우리의 광복전후사가 다시 정리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더 해본다.항일과 친일을 분명히 가리지못한 상황속에서 순국선열과 그 후예가 외로워야했던 사실은 우리를 많이 부끄럽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이분들의 무언의 질타가 들리는양하다.또 이분들이 소망하는것은 허리잘린 조국이 아니다.통일에의 의지를 더 굳건히 할것을 촉구한다. 이분들의 「귀국」은 아직도 못돌아온 다른 87위의 독립유공자 유해와 영혼을 생각하게도 한다.그 봉환노력이 계속되어야겠고 행방을 모르는 66위에 대한 소재파악 노력도 뒤따라야 할것이다. 오늘 오후부터 9일까지의 참배기간동안 국립묘지를 찾아보도록 하자.10일의 안장식날은 잊지들 말고 조기를 달도록 하자.
  • 연천사고 사망자 11명 추가안장식

    【대전=이천렬기자】 경기도 연천포사격장 폭발사고 사망자 19명중 보상합의가 안돼 장례식이 지연됐던 예비군 11명의 안장식이 15일 하오 대전 국립묘지에서 거행됐다.
  • 동대문 침구·수예품상가(전문상가)

    ◎이불·커튼 등 홈패션용품 “집합”/삼베·누비요 인기… 시중보다 30%값싸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집안장식을 바꾸면 보다 시원한 여름을 맞을수 있다.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침구·수예품상가에는 최근 여름용 실내용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있다.원단상가로 유명한 서울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A,B동 및 신관1층과 지하1층에는 이불·요 등의 보료와 식탁보,방석,커튼 등 각종 홈패션용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밀집해있다. 70년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3백여개 점포들이 서울근교 산매상 및 일반소비자를 상대로 도산매한다.이곳 상가는 한번 들르면 각종 홈패션용품의 일괄구매가 가능하고 가격도 일반시중보다 30%정도 싼 편이어서 많이 찾는다. 최근 많이 나가는 상품은 여름용 이불과 침대보(커버),커튼.보통 6월부터 8월까지 사용되는 여름용 이불과 요로는 누비로 된 것과 삼베제품이 인기다.나이든 사람들은 주로 땀흡수력이 좋고 살에 잘 달라붙지 않는 고급 한식전통누비(9천∼18만원)를찾으며 젊은이들은 간편한 면누비(1만5천∼5만원)를 선호한다는게 이곳 상인들의 말이다.시원한 삼베를 소재로 한 이불은 2만∼15만원,요는 1만5천∼6만8천원선에 구입할수 있다. 침대보는 면 또는 노방 원단으로 만든 것이 많이 나가는데 최근들어 실용적인 노방원단제품의 수요가 늘고있다.가격은 2인용 면제품 6만∼10만원,노방제품이 7만∼12만원선이다. 커튼은 망사·노방·베네치아 등을 소재로 한 여러제품이 선보이고 있으며 대략 50만∼60만원선이면 30평 아파트의 거실과 안방을 꾸밀수 있다.노방이나 베네치아 원단에 자수를 놓은 고급제품과 사철용 커튼도 선보이고 있는데 색상은 아이보리색·녹색·보라색 등이 인기다.커튼을 고를때는 『가구및 실내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물세탁이 가능하되 가급적 햇볕을 받으면 잘 찢어지는 면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상인들은 조언한다. 이곳 상가의 개장시간은 상오7시부터 하오8시까지며 일요일엔 휴업한다.3백50대 수용규모의 주차장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호선과 4호선 지하철(동대문역)로도 쉽게 연결된다.
  • 독립유공자 홍종윤씨

    독립유공자 홍종윤씨(75)가 4일 상오1시30분 인천시 북구 부평동 동아아파트1동 107호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42년 중국 상해로 망명한 홍씨는 43년 3월 광복군에 입대,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안장식은 6일 상오9시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서 거행된다.연락처 472­9099
  • 유언따라 가족상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안장식이 23일 상오11시 이인수씨등 유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이박사 묘역에서 엄수됐다(사진). 이날 장례식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졌으며 이화장에서의 발인식과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영결식을 가진뒤 경찰차 1대가 선도한 장례행렬은 승용차와 버스 10대뿐이었다. 국립묘지 안장식에는 고인의 유가족과 이상배총무처장관,홍성철전청와대비서실장등 2백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노태우대통령과 최규하전대통령,전두환전대통령등도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 고당선생 국립묘지 안장/미망인이 45년 간직해온 두발 봉안

    고당 조만식선생의 유해가 5일 하오2시 동작동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제2묘역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미망인 전선애여사(88)등 유가족과 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민주당대표,박준규국회의장,정원식국무총리등 각계인사,「고당선생추모 안장위원회」(위원장 한경직목사)관계자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묘지 현충관에서 추모식을 가진뒤 조선생의 두발을 안장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조선생의 두발은 지난 46년 3월10일 신탁통치반대등의 이유로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됐을 때 자른 것으로 면회갔던 전여사가 받아 45년동안 보관해 왔었다.박의장은 추모사에서 『선생님은 한생애를 봉사로 일관해온 민중의 목자이며 충절의 지사셨다』고 추모하고 『우리 후학들은 조국통일을 위해 북한을 사수하셨던 선생님의 높은 뜻을 분단 반세기가 가기전에 반드시 이룩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총리도 추모사를 통해 『선생님의 일생은 오직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의 한길이었다』고 회고하고 『일신의 영달에는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으셨던 선생님의 고결한 일생은 오늘의 후세에게 참으로 추상같은 채찍을 내리고 있다』고 추모했다. 해방이후 북한에서 행방불명된 애국지사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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