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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노 전 대통령 안장, 이젠 편히 쉬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할 장소에 들었다.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묘역에 고인의 유골이 안장되었다. 안장식에 앞서 유가족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49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고향마을에서 평안히 영면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뒤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적 열기가 대단히 뜨거웠다. 정치를 하는 동안 공과가 있겠지만 고인이 줄곧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탈(脫)권위 정신을 기린 때문이라고 본다. 고인이 묻힌 곳은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고향마을이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너럭바위를 비석 겸 봉분으로 삼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소박한 묘역을 조성한 것 역시 많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제 고인이 남긴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살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만 너무 골몰해 권위주의 쪽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시행착오를 겪긴 했으나 민주화, 분권화 노력을 기울였고 서민을 위하려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이념 지향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들이다. 민주당과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 일부 진보단체들은 차분해지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고인의 뜻에 어긋난다. 고인을 내세워 정치결사를 만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용서와 화해를 당부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평화와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안장식을 위한 봉하 전례위측도 “슬픔, 미안함, 원망을 내려놓자.” 고 강조했다. 고인의 평화로운 안식을 거듭 빌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가치가 올바르게 계승되기를 기원한다.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잘 가오, 그대” 수만개 노란·검은 풍선물결

    [노무현 전대통령 49재] “잘 가오, 그대” 수만개 노란·검은 풍선물결

    “노무현 영가(靈駕)는 이런 좋은 의지와 업을 간직해 내생에는 부디 좋은 곳에 다시 오기를 바라며,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좋은 업적을 남기길 바랍니다.” 1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장.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설법이 이어졌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영상이 나오자 숙연했던 식장은 흐느낌과 눈물바다로 변했다. ●49재 및 추모문화제 열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서 권양숙 여사, 노건호씨와 정연씨 부부 등 유가족, 한명숙·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문재인·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참여정부 인사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9재를 올렸다. 49재는 천수경과 지장경 독송 등 의식으로 2시간10분 동안 진행됐고,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이 설법을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같은 시간 해인사도 49재를 열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법문을 했다. 또 오전 10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봉하마을 광장에 설치된 특설무대에서는 추모문화제 ‘잘 가오, 그대’가 열렸다. 정태춘·박은옥,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전경옥의 노래를 비롯해 하림(하모니카), 신지아(아코디언), 금관5중주의 연주 및 백무산 시인의 시와 배우 오지혜·권해효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며 고인을 기렸다. 안장식은 낮 12시 사자바위 아래에 조성된 묘역에서 진행됐다. 유골이 담긴 백자합이 납골묘에 안장되자 추모객들의 흐느낌이 터졌다. 안장식에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 등 시민대표 14명도 나와 고인을 추억했다.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보기 위해 식장 내부 진입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아선 행사진행 요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행사장 출입이 초청인사 등 일부에 한해 허용되자 이모(63·여)씨는 “광주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아침부터 왔다.”면서 “정토원도 막아서 못 갔는데, 대통령을 보내는 늙은이의 안타까운 심정을 봐서라도 들여보내 달라.”고 말했다. 이날 봉하마을에는 수만개의 노란색과 검은색 풍선들이 물결을 이뤘다. 추모객들도 티셔츠나 모자, 손수건, 머플러 등을 대부분 노란색으로 착용해 조의를 표했다. ●전국 사찰과 시민분향소 추모 행렬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고인의 추모사진집을 배포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 카페 회원들은 모금을 통해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제목의 추모사진집을 펴내 안장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에게 나눠 줬다. 75쪽 분량으로 CD 케이스 크기의 이 추모사진집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년 시절을 비롯해 대통령 재임 및 퇴임 이후 생활 등을 담은 사진 100여장이 담겨 있다. 조계사와 화계사 등 서울시내 주요 사찰에서도 마지막 재가 봉행됐다. 또 부산, 청주, 제주 등 전국 곳곳에 임시로 설치된 시민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수유동 화계사의 주지 수경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냈다.”면서 “이제 우리는 인욕(고통과 번뇌를 참는 불교 수행법)을 통해 번뇌를 지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의 서거 직후부터 지난달 23일까지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던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촛불시민연석회의 관계자 등 600여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오후 3시부터 49재를 열었다. 충북에서는 청주시 상당공원에 고인의 추모 표지석을 건립하려는 것을 놓고 시민단체와 청주시 간에 갈등을 빚었다. 이날 추모 분위기는 밤새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찰의 우려와 달리, 조문객들은 차분하게 고인의 넋을 기린 뒤 귀가했다. 전국종합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0일 정오 盧 전대통령 안장식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이 오는 10일 49재를 지낸 뒤 낮 12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인근 장지에서 국민장 마지막 의식인 안장식을 갖고 안장된다. 국민장의위원회는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이같은 형식과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안장식은 10일 정오쯤부터 장지인 봉하마을 봉화산 사자바위 서쪽 기슭아래에서 엄수된다. 앞서 오전 9시 봉화산 정토원에서 유족 중심으로 49재가 거행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국군 의장대의 도열·호위 아래 안장식장으로 봉송되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의식과 유족 및 각계 대표의 헌화와 분향, 안장, 허토, 조총발사, 묵념 등의 순서로 1시간30분 간 안장식이 진행된다. 장의위는 헌화 및 분향에는 유족 및 각계 대표에 이어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일반시민들도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쌍둥이 자녀의 돌반지를 희망돼지 저금통에 냈던 부부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참석했던 장애인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등 15~16명을 분향에 참가할 시민으로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장식이 끝난 뒤에는 내빈들과 일반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할 수 있다. 김경수 비서관은 “봉분 겸 ‘작은 비석’으로 쓰일 자연석만 제외한 나머지 묘역시설은 안장식 전날까지 모두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국민장으로 치른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묘지 표지석 등에 관한 제한을 받지 않는 ‘국가보존묘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신청절차를 밝고 있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봉하마을 저작권 속앓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로 분주한 봉하마을이 고민에 빠졌다. 참여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이 펴낸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과 서거 이후 재출간된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의 저작권과 인세가 고스란히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로 넘어갈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퇴임을 앞둔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실정을 거론하는 정치권의 공세를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참여정부까지 모든 지표를 분석해 이를 토대로 참여정부의 공과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를 책자로 옮긴 게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이다. 원고 전부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고 한다.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은 10년 간 출판권을 가진 출판사 ‘지식공작소’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에 노 전 대통령의 참평포럼 토론 연설내용 등을 보태 추모 형식으로 다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의 업적 재평가와 추모 분위기 속에 1만여부가 팔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계약 취지대로라면 판매액의 10%에 해당하는 인세가 봉하마을 쪽에 넘겨져야 한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와 계약할 때 저자를 ‘청와대 비서실’로 정한 게 화근이 됐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여전히 ‘청와대 비서실’에 저작권이 귀속된다는 법률 해석에 따라 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인세를 챙기게 된 것이다. ‘지식공작소’는 16일 “법적으로 저작권은 국가소유”라면서 “계약주체가 ‘청와대비서실’로 되어 있어 마음대로 인세 수급자를 변경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봉하마을 김경수 비서관은 “법률해석이 엇갈리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상중이고 49재를 챙기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한 친노 의원은 “49재와 안장식까지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 인세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러진다. 정부 분향소가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곳곳에 설치되며, 유해는 유족 뜻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4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으로부터 장의 형식을 국민장으로 하고 유가족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달받았다.”면서 “추모를 위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외국의 조문사절 등의 편의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광장에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봉하마을로 잠정 결정됐다. 국민장 거행을 위한 장의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 협의과정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외에 유가족 대표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 기간은 23~29일까지 7일간이다. 영결식은 오는 29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되며 당일 조기를 달기로 했다. 화장 절차에 대해서는 논의가 늦어져 25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장은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의식 가운데 하나로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장은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장례방식이 결정됨에 따라 정부는 본격적인 장례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행안부는 장의 부위원장을 맡을 인사로 국회부의장과 감사원장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곤 행안부 장관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강희락 경찰청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인평 행안부 의정관 등으로 장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또 행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작업단’을 구성, 의전·안내·운구·식장준비 등 실질적 장례 업무를 담당케 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가 봉하마을로 최종 확정되면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별도의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안장식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서울시와 협의해 옛 서울역사 앞 시계탑 부근과 신문로 시립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성북·서대문·구로·강동구 4개 구청 내 등 서울에 6곳의 분향소를 마련키로 했다. 지방에도 권역별로 수십곳 이상의 분향소를 설치한다. 해외 한국 대사관·총영사관 등의 재외공관에도 조문장소가 마련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재외공관마다 조문록을 비치, 주재국 인사 중 원하는 사람은 조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장례식 당일에는 전 재외공관에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거 이튿날인 24일 하루에만 봉하마을 임시 빈소에 1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리는 등 전국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도 애도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한승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25일 오전 9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합동 분향할 예정이며, 오전 10시엔 주한 외교사절이 분향소를 찾는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 군복무중 자살자 첫 현충원 안장

    군 복무 중 구타와 가혹행위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들이 ‘순직’으로 처음 인정돼 19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날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 안장식’을 거행했다. 현충원에 안장된 순직자 14명 중엔 선임대원의 구타와 욕설, 가혹행위로 우울증 등 병증이 악화돼 자살한 희생자 8명이 포함돼 있다. 자살자의 이번 현충원 첫 안장은 지난 2월28일 ‘자해 사망자’의 국립묘지 안장금지 조항을 삭제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가능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라 하더라도 부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 등 복무관련성이 확인돼 해당기관에서 순직으로 인정될 경우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경찰청과 법무부는 구타·가혹 행위 희생자들의 순직 처리에 긍정적인 데 비해 국방부는 여전히 미온적이어서 유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금까지 군의문사위가 요청한 재심의 건에 대해 경찰청(5건)과 법무부(2건)는 이미 수용했거나 심의중이지만, 국방부(14건)는 한 건도 수용하지 않았다. 군의문사위 관계자는 “자살자의 국립묘지 안장은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도 적절한 예우를 받지 못했던 수많은 장병들을 위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면서도 “국방부의 순직결정 거부는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한 처사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하늘의 토지’에서 편히 쉬소서

    지난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이 8일 오전 8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문학인장으로 엄수됐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과 정·관계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박완서, 최일남, 오탁번, 박범신, 윤흥길, 김원일, 조정래, 김초혜, 이근배,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 등 문인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외손자 세희씨가 든 위패와 최유찬 연세대 교수가 든 영정을 앞세우고 소복을 입은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뒤따르는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에 들어오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어 정현기 세종대 교수가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고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연민’”이라는 고인의 육성은 장례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씨는 조사를 읽어 내려가다가 “선생님 손의 온기가 지금도 제 찬 손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데….”라는 대목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 이근배씨는 고인의 영전에 바치는 조시를 통해 “선생님은 흙과 물, 나무, 짐승, 세상 사람들, 소설, 문학의 어머니”라면서 “부디 사랑의 손길을 한 번 더 잡아주소서.”라며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족을 대표해 김영주 관장은 “어머니께서는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습니다. 어머니 죽음을 애통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울먹이며 힘겹게 인사말을 전했다. 유족과 내빈들의 헌화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최근까지 머물던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 원주에서는 고인의 단구동 옛 집터에 마련된 토지문학공원에서 추모제를, 매지리 토지문화관과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고인의 고향인 경남 통영시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다.9일 오전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헌무·헌다례 등 추도식에 이어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서의 마지막 안장식을 끝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김규환 김승훈기자 khkim@seoul.co.kr
  •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선생

    ‘부민관 폭파의거’ 조문기 선생

    5일 지병으로 별세한 독립운동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장례식이 11일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겨레장으로 치러진다. 겨레장은 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국장(國葬)은 아니지만 민족운동에 헌신한 인물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하는 장례로,1994년 세상을 떠난 고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 이어 두번째다. ‘고(故) 조문기 선생 장례위원회’는 10일 “조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려 시민사회단체가 겨레장을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두 차례 노제를 지낸 뒤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서 안장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에서 열리며 영결식을 전후해 서울 청량리동 연구소 앞과 부민관 폭파의거 현장인 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시민들이 함께하는 노제가 진행된다. 한편 정부는 10일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별세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별세

    초대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신현준 예비역 중장이 15일 오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차남 집에서 노환으로 숨졌다.92세. 1915년 10월 경북 금릉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1936년 4월 만주 봉천군관학교를 마친 뒤 만주군 대위로 복무했다. 광복을 맞아 귀국한 뒤 1946년 6월 조선해안경비대에 들어가 해군 중위로 임관했다.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 인천기지 사령관과 1948년 진해특설기지 참모장을 역임한 뒤 1949년 해병대 초대사령관에 임명됐다. 한국전쟁 중에는 진동리지구 전투와 통영상륙작전, 도솔산지구 전투 등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해병대 제1여단장과 해병 진해기지사령관,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국방차관보를 지낸 뒤 1961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 초대 모로코 대사와 제5대 세계 반공연맹 사무총장, 초대 바티칸 대사를 지냈다. 유해는 18일 오후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국군수도병원 영안실로 옮겨진다. 영결식은 20일 오전 9시, 안장식은 20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서 열린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故 전재규 세종기지 대원 13일 대전현충원 안장

    2003년 12월7일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조난당한 월동대원 구조작업 중 불의의 사고로 숨진 고 전재규 대원의 국립묘지 안장식이 1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다. 전 대원은 국가유공자로 추서되고 의사자로 결정됐으나 관련법규가 없어 유골을 충북의 사찰인 중원사에 보관 중이었고, 지난 7월 ‘국립묘지 운영 및 설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립묘지 안장이 확정된 바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부디, 편안하게 잠드소서….’ 5일 이른 아침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영결식이 시작될 무렵인 오전 8시 쯤부터 거센 바람과 눈보라로 변했다. 장례식장에는 스물일곱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낮은 곡(哭)소리만이 울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을 거둔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 및 안장식이 이날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졌다.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부모인 윤희철·이창희씨 부부 등 유가족, 정·관계 관계자 및 군 장병 등 600여명이 참석해 조사, 종교의식, 헌화, 조총 및 묵념, 폐식사의 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엄숙함마저 감돌던 영결식은 특전사 동기인 엄선호(22) 병장의 조사가 낭독되자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엄 병장이 “6개월 뒤 복귀 환영회식은 이 엄선호가 쏘겠다던 약속을 기억하냐.”고 말한 대목에서 동료 장병들은 어깨를 들썩거렸다.“장호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넌 멋진 동기였고 훌륭한 아들이었으며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는 것을…”이라는 말로 전우들은 고인을 마음 속에 묻었다. 고인이 입대전 근무했던 HB어드바이저스 직원들은 ‘장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은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잘 있어요.’라고 위로하는 걸 알지만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놀랄 정도로 침착하던 유족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가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옛 성남화장장)로 옮겨지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유해가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못내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없다는 듯 관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버지 희철씨도 “장호야,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을 잇지 못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아들 같은 장병들이 몸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생사업소에 도착한 유해는 운구차에서 곧바로 2층에 있는 화장로로 향했다. 화장로 앞 관망실에서 유족과 군 관계자 등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윤 하사의 부모는 차마 화장로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지 자리를 피했다. 분골작업이 끝난 유해가 국방부 헌병대의 호위 속에 영생사업소를 떠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 흩날리던 눈발도 그쳤다. 고인은 오후 3시 대전 국립현충원 전사자 묘역의 차가운 땅 속으로 돌아갔다. 지난 2일(현지시간) 고인이 유학시절 다녔던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한인감리교회에서도 지인과 교민, 현지 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이 모여 추모예배를 열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인 김준엽씨는 “장호를 생각하면 웃고 싶다. 하지만 (장호를 앗아간) 이 세상에서는 웃을 수가 없다.”며 슬퍼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서는 시민 300여명이 ‘고 윤장호하사 추모와 아프간-이라크파병 한국군 즉각 철수’ 촛불문화제를 열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대전 이천열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지난 22일 별세한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26일 엄수됐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현대사의 격랑 속으로 밀어넣은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난 지 꼭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시민 등 각계인사 20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장인 경복궁 앞뜰과 운구행렬이 이어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오전부터 추도의 물결이 넘쳤다. 헌정 사상 ‘최단명 대통령’이라는 기록과 함께 역사의 비밀을 가슴 속에 묻은 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고인에게 시민들은 애도와 아쉬움을 함께 표했다. 발인제는 이날 오전 9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장의위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간 열렸다. 강릉 최씨 대종회장 최손규(82)씨가 “자애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제 세상 원망, 근심, 걱정 모두 물려주시고 조상들과 함께 하늘나라 영화를 누리며 잠드소서.”라며 조사를 읽어나가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최 전 대통령과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홍기 여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 2대 등 영구 행렬은 경찰 사이카 28대와 순찰차 등의 호위를 받으며 오전 10시쯤 영결식장으로 들어섰다.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며 영결식이 시작됐고 한명숙 국무총리가 조사를 했다. 전례에 따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치렀다. 상주와 직계가족에 이어 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등의 순으로 헌화의식이 진행됐다. 운구차는 오전 11시쯤 경복궁 영결식장을 출발해 추모객들과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까지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터리-남대문-서울역-삼각지 일대에는 시민들이 길가에서 조의를 표했다. 운구차량은 오후 2시쯤 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유해는 국방부 계룡대 근무지원단 소속 의장대 대원들에 의해 국가원수 묘역으로 봉송됐으며, 상주 등 유족과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고인의 뒤를 따랐다. 이어 고인의 유해 앞에 영정을 모셔놓고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가졌다. 안장식은 상주와 직계가족, 각계 대표들의 헌화 및 분향에 이어 하관, 허토,21발 조총,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안장식은 굵은 빗줄기로 인해 더욱 무거웠다. 안장식이 끝난 뒤 고인의 묘 앞에는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영부인 홍기의 묘’라고 적힌 임시목비가 세워졌으며, 비문과 공적비, 향로대, 상석 등은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이로써 최 전 대통령은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된 첫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연합뉴스 / 강성남·김명국·이언탁기자 snk@seoul.co.kr
  •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어떻게 치러지나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어떻게 치러지나

    정부는 26일 열리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 오전에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제,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갖는 데 이어 오후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치러진다. 행정자치부가 25일 밝힌 국민장 계획에 따르면 발인제는 최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서 유족과 장의위원회 간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어 경복궁 앞뜰에서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정당 대표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엄수된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개식을 알리는 조악에 이어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집행위원장인 이용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국무총리의 조사,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의 종교의식 순으로 진행된다. 종교의식이 끝나면 생전의 활동을 담은 영상을 3분가량 방영한 뒤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상주와 직계가족, 장의위원장의 헌화가 있다. 이어 소프라노 박정원 한양대 교수가 조가로 ‘청산에 살리라’를 부른다. 삼군 조총대원 7명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면 영결식은 모두 끝난다. 이어 영구차는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남대문∼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경부고속도로를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한다. 영결식 사회는 차인태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겸 평안북도 지사가 맡는다. 최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2인의 국회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3인의 부총리, 고인의 고향인 강원도의 지사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고문은 전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5인의 정당 대표, 친지 등으로 구성됐다. 또 장의위원으로는 행정부 장·차관급과 사회 각계 대표인사 615명이 위촉됐다. 글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고 함석헌 선생 유해 대전현충원에 안장

    일제강점기 ‘성서조선’을 발간,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광복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고 함석헌(1901∼89) 선생의 유해가 19일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치됐다. 안장식에는 함 선생의 둘째 아들 우용씨 등 유가족과 친지,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함 선생의 묘는 경기 연천군 전곡면에 있었으나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아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됨에 따라 이날 대전현충원으로 옮겨졌다. 함 선생은 평북 용천 출신으로 3·1운동 때 평양에서 시위를 벌였고 1927년 김교신과 함께 민족지 ‘성서조선’을 발간,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해방후 월남, 평생을 반독재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민중신학 개척자로 활동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시대의 양심… 이젠 편히 쉬소서”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길없는 시대에 큰 길로, 언젠가는 하나로 설 이 나라에 큰 넋으로 왔다 가는 이여…”(양성우 시인의 조시(弔詩)중에서) ‘광주의 혼’ ‘시대의 양심’으로 추앙받는 고 홍남순 변호사가 17일 각계의 애도 속에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유족과 정·관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의식, 헌화, 하관, 허토, 성분, 묵념 순서로 엄수됐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명박 전 서울시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박광태 광주시장 등 정·관계 인사와 유족, 친지 등 10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지켜봤다. 영결식은 묵념, 약력보고, 노무현 대통령·박광태 광주시장등의 조사, 불교의식, 양성우 시인의 조시 낭송, 육성녹음 근청, 헌화 및 분향, 유족대표 인사 등 순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이병완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고인께서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셨다.‘어둠의 시대에는 법보다 양심이 앞선다’는 신념으로 민주투사들의 벗이 되셨다.”며 “임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을 민주주의와 나라 발전의 큰 힘으로 삼아나가겠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유족, 친지, 지인 등은 광주 동구 궁동 고인의 생가를 방문, 노제를 지낸 뒤 5·18 민주묘지로 향했다. 유족과 5.18묘지측은 고인의 부인이자 5·18 유공자인 고 윤이정(1992년 작고)씨의 묘도 화순군 선산에서 국립묘지로 조만간 이장할 계획이다. 민주화 투쟁과 양심수 무료변론 등을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지병이 악화돼 지난 14일 새벽 타계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이종욱 WHO총장 국립묘지 안장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안장식이 29일 오전 11시 대전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엄수됐다. 안장식에는 미망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와 아들 충호씨 등 유가족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캐네스 버나드 WHO 조문단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안장식은 조사,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안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미망인 레이코 여사는 아들 손을 부여잡고 안장식 내내 오열하며 먼저 간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캐네스 버나드 조문단 대표는 조사에서 “고인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을 중시했다.”고 기렸다. 정부는 세계보건에 업적을 쌓아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높이 평가, 국민훈장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1년전 GP사건 희생자도 전사자 인정을”

    “이번 전방초소(GP) 총기사건 희생자들이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성대한 안장식을 갖는 것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 힘들고 서러웠습니다.” 경기도 연천 총기난사 사건이 나기 21년 전인 1984년 6월26일. 육군 동부전선 모 부대 GP에서 15명의 젊은이들이 비슷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과 유족들은 세간의 관심은커녕 ‘발설하지 말라.’는 국가의 압력 속에 목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삼켰다.당시 유족대표를 맡았던 고 한주현(당시 23세) 병장의 숙부 한인기(62)씨는 “물질적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전사로 인정해주고 국립묘지 안장을 바랐을 뿐인데 정부는 단 한 가지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힘들게 당시를 회상했다. “연천 사건 유족처럼 현장을 보기는커녕 군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믿어야 했죠. 날씨가 더운데 요즘처럼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했던 것이 아니라 요구를 들어달라고 장례를 미루면서 끝까지 항의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15명의 꽃같은 청년들은 사건 사흘 뒤 새벽에 전시(戰時)용 이동식 화장시설에서 재로 변했다.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처리돼 유족들이 원했던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가 아니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치됐다. “저희들의 요구를 묵살한 게 전부가 아니었죠. 저와 형님(고 한 병장의 아버지)은 보안사령부라는 곳에 ‘호출’을 받고 하루 꼬박 조사를 받은 뒤에야 풀려났습니다. 국가 보안을 이유로 내세우면서 발설하지 말라는 압력이었던 거죠.” 그렇게 마무리돼 유족들의 가슴 속에 묻힌 사고는 최근 사건으로 또다른 고통이 됐다. 전국민의 눈물 속에 열린 연천 총기사건 희생자 8명의 안장식이 있었던 지난달 25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는 21년 전 사건 유족들이 조용히 추모식을 가졌던 것이다. “더 쓸쓸하고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이제 와서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전사자로 인정해주고 유족들이 사건 현장에 가서 위로제라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보듬어 달라는 겁니다.” 아직까지 조카가 사건이 일어나기 2주 전에 보낸 편지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는 한씨는 “이곳저곳에 진정서를 보냈지만 국가인권위는 오래 전 사건이라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하고 여당에서는 보훈처로 떠넘겼다.”면서 “정부는 오래된 사건이라고 흐지부지 넘어갈 게 아니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경기도 연천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인 고 김종명(26) 대위 등 육군 장병 8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25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육군 28사단장(葬)으로 거행됐다. 고인들의 유해는 성남시립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 200여명과 군장병 500여명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은 조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정ㆍ영구 입장, 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영결식 내내 유족들의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전우들을 위해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소임을 완수해 왔던 높은 뜻과 발자취를 추모하며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피의자 김동민(22) 일병의 동기이자 사건현장에서 생존한 천원범 일병은 조사에서 “(희생자들은) 젊은 나이에 조국의 부름에 당당한 자세로 응해 온 몸으로 조국을 지켜온 이 시대의 진정한 젊은이들이었다.”며 “누구보다 용감하고 성실했던 선배 전우들의 환한 웃음과 멋진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어 희생장병의 유해는 대전 유성 갑동 대전 현충원에 도착, 합동안장식이 엄수됐다. 박흥렬 육군참모차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안장식은 종교의식, 헌화, 분향, 조총, 묵념과 하관순으로 이어졌다. 하관식이 열리자 유족들은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엄마 두고 어디 가느냐.”“하고 싶어하던 것도 다 못해 줬는데 미안해서 어쩌냐.”며 오열, 온통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종명 대위의 영현은 장교묘역에 안치됐고, 김인창(22) 병장 등 7명의 영현은 사병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유족들은 하관식이 끝난 뒤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문조 8마리와 가족과 친구를 나타내는 잉꼬, 카나리아 등 모두 20마리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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