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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시설물 된 ‘MB 독도 표지석’

    불법시설물 된 ‘MB 독도 표지석’

    독도 수호 의지가 담긴 이명박 대통령 명의의 ‘독도 표지석’이 설치된 지 수일 만에 강제 철거된다. 21일 경북도에 따르면 독도 표지석이 놓여 있는 바닥석이 불법 시설물<서울신문 2012년 8월 18일자 14면·21일자 12면>이라는 문화재청의 지적에 따라 바닥석과 함께 대통령의 표지석도 걷어 내기로 했다. 대통령의 친필이 담긴 독도 표지석은 지난 19일 독도경비대가 주둔한 독도의 동도 망양대에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병석 국회부의장, 김찬 문화재청장, 최수일 울릉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됐다. 대통령 이름으로 된 표지석이 독도에 설치된 것은 처음이다. 도 관계자는 “독도 표지석 밑에 불법으로 설치된 바닥석을 걷어 내야 하기 때문에 표지석의 일시 철거는 불가피한 것으로 안다.”면서 “불법 시설물을 완전히 철거한 뒤 대통령 명의의 독도 표지석을 다시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북도는 이와 함께 불법 시설물로 판정받은 경북도기와 울릉군기의 게양대, 태극 문양, 건곤감리 및 스테인리스 조형물, 성화 채화대 등 독도에 설치된 각종 불법 시설물도 모두 철거키로 하고 독도관리사무소와의 협의에 착수했다. 도는 독도 불법 시설물의 철거와 운반 비용 확보 방안 등을 마련한 뒤 빠르면 이번 주 중에 철거에 나설 계획이다. 도는 호랑이 조각상 등 일부 창작물은 울릉도로 옮겨 독도박물관이나 다음 달 준공 예정인 안용복기념관 등에 영구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는 앞서 지난해 10월 1430만원의 예산을 들여 독도 국기 게양대 앞에 김관용 지사 명의의 독도 표지석(가로 50㎝, 높이 80㎝)을 불법으로 설치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도는 이들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로부터 현상 변경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대구, 독도 홍보관 개소

    대구에 독도 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재단법인 안용복재단은 15일 대구 동부정류장 1층에 ‘독도 안용복 홍보관’을 개관했다. 독도에 대한 소중함을 심어 주고, 안용복의 나라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 부산 동래 수군 출신으로 1693년 조선 숙종 때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던 중 울릉도와 독도에 들어온 일본 어민들을 몰아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한 인물이다. 홍보관에는 안용복의 독도수호활동을 비롯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임을 밝혀주는 역사·지리적 자료가 전시됐다. 이와 함께 독도 자연과 생태 등의 자료도 비치됐다. 한국네일아트협회에서 기증한 인공 손톱으로 독도를 만든 가로세로 2.8m 크기의 작품과 함께 독도와 독도 해저 모형 등도 전시됐다. 동부정류장은 대구에서 동해안과 울릉도로 가는 관문으로 연간 10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안용복재단은 울릉도에서도 기념관을 건립하고 있다. 150억원을 들여 2만 7000여㎡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으며 현재 공정률 90%가 넘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죽을 때까지 독도 지키겠소… 日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죽을 때까지 독도 지키겠소… 日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14일 서울신문이 ‘독도 지킴이’로 불리는 김성도(73·울릉군 울릉읍 독도 안용복길3)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기도 한 김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난 3대째 뱃사람이다.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전복 등 수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하다 1991년 주소를 아예 독도로 옮기고 앞바다를 텃밭으로 삼았고 2007년엔 독도리 이장에 임명됐다. 부인과 함께 독도 서도 주민숙소에서 유일한 거주 가구로 40년 넘게 독도를 지키며 살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독도를 다녀갔다. 달라진 게 있나.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해서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한 게 하나 있다. 비록 늙은이지만 우리 땅 독도를 더욱 잘 지켜야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독도 주변 해역에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출현하지는 않나. -불과 5~6년 전만 해도 독도 인근에서 종종 목격됐으나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 경비 함정이 독도 해역에 추가 배치됐기 때문으로 안다. 하지만 독도 먼바다에는 자주 출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생활은 어떻게 하나. -고무보트를 이용해 물고기와 소라, 전복 등을 잡는다. 매월 이장 수당 20여만원을 받고 있고 경북도청에서 생활비 100만원 정도를 지원해 줘 큰 힘이 되고 있다.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상주 거주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하루빨리 이웃이 생겼으면 좋겠다. 독도 주민숙소도 증개축돼 많이 넓어졌다. 주민숙소에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독도에서 벌어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막막하다. 누구나 독도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그래서 대책이 있어야겠지. →바람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아내와 함께 독도를 지키는 것밖에 없다. 일본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독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독도 지킴이’ 안용복 기념관 울릉도 천부4리에 새달 준공

    ‘독도 지킴이’ 안용복 기념관 울릉도 천부4리에 새달 준공

    독도 지킴이 ‘안용복 기념관’이 울릉도에 세워졌다. 울릉군은 다음 달 중순쯤 북면 천부4리 90의1 일대에 건립 중인 안용복 기념관을 준공,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 기념관은 지난해부터 국비 등 총 150억원을 투입, 현재 공정률 90%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이 기념관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이 조업하자 1693·1696년 두 차례 일본에 건너가 대한민국 해역에서 조업을 금지해 줄 것을 경고하고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일본 관리로부터 확약받은 안용복 정신 계승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됐다. 기념관은 전체 부지 2만 7129㎡에 건물 전체 면적 2044㎡(지하 1층, 지상 2층) 철근 콘크리트구조로 건물 외형은 독도를 형상화했다. 특히 이곳은 울릉도에서 독도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위치다. 기념관은 안용복의 일본 행적 등 역사적 고찰 및 독도 관련 자료를 정리·전시한 전시관을 비롯해 안용복 사당, 안용복 동상, 독도전망대, 독도교육관 등으로 이뤄졌다. 최수일 울릉군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확고히 지켜낸 안용복 기념관이 건립돼 개관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기고] ‘독도는 우리땅’, 체계적으로 관리할 때/안병준 한국신문윤리위원 경북도 독도정책자문관

    [기고] ‘독도는 우리땅’, 체계적으로 관리할 때/안병준 한국신문윤리위원 경북도 독도정책자문관

    정부는 지난 16일 정부합동 독도영토관리대책단 회의를 했다. 일본의 소위 ‘다케시마의 날’(22일)의 각종 행사에 대한 동향파악 회의다. 그 행사들에 대한 일본 중앙정치권 및 언론의 관심과 참여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라는 보고가 있었다. 그리고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한 시마네현의 카운터파트인 경상북도가 지금까지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만 있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 100주년을 맞는 시점을 이용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했다. 그후 매년 영토포럼과 한·일 잠정수역대책협의회, 한·일어업문제 의견교환회 등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행사에 발맞추어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은 지난달 24일 중의원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언급하며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국에) 전달하겠으며 끈기를 가지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상북도는 이에 대해 비교적 차분하게 각종 행사를 하고 있다. 15일 ‘다행복사회네트워크’ 주최로 경북대에서 열린 학술토론회를 필두로 영남대·대구대·독도박물관·안용복재단 주최로 동대구역 등에서 전시회, 세미나 등을 이달 말까지 개최한다. 이와 함께 10월 ‘독도의 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경상북도의 향후 독도 콘셉트는 ‘문화·예술·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독도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아이디어를 가진 도지사와 환경해양산림국 소속 독도정책과 직원 그리고 민간단체인 안용복재단 등이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울릉군·국토해양부·한국해양연구원·반크·경북대·영남대·대구대·독도학회·해양경찰청 등은 그림자처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대응과 대비는 부족한 상태다. 일본은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명분으로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것처럼, 정교한 각본을 짜놓고 움직인다. 자위대의 비밀스러운 전력 증강과 평화유지군을 명분으로 한 해외 전투경험 축적, 연이은 국제사법재판소장 배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세계적 국제법 전문가와의 교류, 국제법 전문가 양성 등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환(본명 정재민·판사)씨의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는 시사하는 점이 크고 심각하다. 한국의 정치인은 “독도에 해병대를 파견하자.”라는 몰상식한 인기발언만 한다. 대부분 한국인과 언론은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와 각료 등의 망언에 대해 일시적인 감정 대응만을 한다. 정부는 ‘조용한 외교’를 내세워 독도 영유권에 대해 체계적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일본은 중장기적 전략에 따라 위에 예를 든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어느 날, 국제여론을 무릅쓰고 일본 함대가 독도를 에워싼다. 한·일 양국은 전면전으로 가지는 못한다. 한국은 유엔과 강대국들의 권유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강대국들이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결과는? 우리가 불리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소설은 논픽션처럼 생생하다. 독도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국력이다. 우리가 약하니까 일본이 수시로 집적대는 것이다. 역사적·지리적·실효적 지배 사실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체계적·장기적 준비를 더욱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 조선 과거시험에 독도문제 출제

    조선 과거시험에 독도문제 출제

    300여년 전 조선 숙종 때 있었던 과거시험에서도 독도 관련 사안이 다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특별위원회는 경북 의성지역 선비였던 신덕함(1656~1730)이 남긴 문집에 있는 ‘전책’ 형식의 글에 울릉도와 독도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4일 밝혔다. 전책은 임금이 묻고, 자대부(사대부)가 답하는 형식의 과거시험을 일컫는다. 이 전책 형식의 글은 1693년 발생한 ‘울릉도쟁계’에 대한 과거 응시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실제로 전시에 출제됐다면 1696년 치러진 문과전시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문건을 분석한 한아문화연구소 유미림 박사는 “울릉도쟁계 관련 기록이 실록 등 사서에 남아 있고, 과거시험에서도 독도가 거론된 것을 보면 당시 울릉도·독도 문제가 조선·일본 관계에 매우 중대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울릉도 쟁계는 1693년 울산과 동래 어부 40여명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일본 어부와 만나 충돌이 벌어져 일본 어부들이 안용복 등을 납치한 뒤 ‘조선 어민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하는 동시에 울릉도에 대한 어업권과 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사건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바람의 옷, 독도를 품다

    바람의 옷, 독도를 품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든 ‘우리 땅’ 독도에서 사상 첫 패션쇼가 열렸다. 한복 연구가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이영희(75)씨는 10월 ‘독도의 달’을 기념해 28일 오전 11시 30분 독도 동도(東島) 물양장에서 한복 패션쇼 ‘바람의 옷, 독도를 품다’를 열었다. 이씨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해 20차례 이상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미국 뉴욕에 한복박물관을 마련해 한국 전통 의상과 문화를 앞장서 알려온 인물이다. 안용복재단과 (사)미래문화가 주관한 이날 패션쇼에서 10여명의 전문 모델은 선덕여왕으로 대표되는 신라시대 여왕 의상과 고구려시대 무희 의상을 먼저 입고 나타났다. 천연염료로 물들인 한삼모시를 짜 만든 한복과 섬 사람들의 일상 한복 등 전통 한복 무대가 이어졌다.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1994년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뒤 이씨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전통 한복 치마 스타일의 드레스 ‘바람의 옷’이었다. 패션쇼에서는 이씨의 작품 30여점이 선보였다. 패션쇼 참가자들은 독도 경비대원들을 찾아 격려하고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각종 사업장 등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문화 관계자는 “독도 패션쇼에서 삼국시대의 의상을 처음 선보인 것은 이미 그 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독도의 주인이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며 “물론 우리 땅에서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좋은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패션쇼에 참가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우리 민족미의 결정체인 한복을 세계화하고 독도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뜻깊은 행사”라며 “‘민족의 섬’ 독도를 관할하는 자치단체장으로서 독도 수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일제 잔재 관광자원화 찬·반 논란

    일제 잔재 관광자원화 찬·반 논란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자체들이 일제 잔재인 적산가옥(敵産家屋·광복 후 일본인이 물러가면서 남긴 집이나 건물) 등에 대한 관광자원화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오는 2018년까지 포항 구룡포읍 항구에 위치한 과거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복원해 ‘근대 역사 문화거리’로 조성할 방침이라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실시설계에 이어 올해 26억원을 투입, 적산가옥 10채를 보수하고 홍보전시관을 착공한다는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 거리와 일본 관련 상품 판매장 등도 만들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구룡포는 일제 강점기 동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 꽁치와 대구, 오징어 등이 많이 잡혀 수산업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현재 읍내 장안동 골목 400m 거리에 적산가옥 200여채가 보존돼 있다. 전북도와 군산시도 월명동과 영화동 등 군산 옛 도심의 적산가옥과 일본인 은행, 창고 등을 활용해 ‘근대 문화유산 벨트화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적산가옥 100여채가 밀집한 지역에 탐방로와 경관로를 조성하고 일본식 건물의 외관을 갖춘 조선은행과 창고 등을 예술창작 벨트로 조성하기로 했다. 1899년 5월에 개항한 군산은 일제 당시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쌀 수탈 전진 기지’로 악용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앞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지난달 28일 울릉도 도동리에 있는 일본식 가옥(등록문화재 제235호)을 개조한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를 개관해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센터는 울릉도·독도와 관련한 근현대사와 문화유산, 가옥문화, 남획으로 사라진 강치(독도 바다사자) 등의 관련 자료 전시는 물론 1950~60년대 ‘문화영화’도 소개할 예정이다. 이처럼 일제 잔재가 관광자원으로 탈바꿈되는 데 대해 문화유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대구경북헤리티지 관계자는 “국내 일본식 건물의 문화유산 가치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를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한 장소가 문화적 가치를 띠려면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울릉도 관광객 이모(44·교사)씨는 “최근 일본 극우파 의원들이 울릉도 입도를 시도한 바로 그때 울릉도의 역사문화체험센터가 문을 연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반발한 뒤 “울릉도에는 기존 독도박물관 외에 앞으로 안용복기념관 등이 지어지는 만큼, 적산가옥 내 우리문화·유산 전시는 민족적 자존심을 감안할 때 대단히 신중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유산연대 관계자는 “역사에는 우리가 부인하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교훈을 주는 증거물이 많다.”며 “비록 민족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지난 문화유산이라도 우리가 살펴서 교훈으로 삼는다면 보존가치가 있고, 그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접근한다면 관광자원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독도 포럼·문예대전 잇달아 개최

    영남대 독도연구소가 교육과학기술부,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등과 공동으로 독도포럼을 연다. ●바람직한 독도 교육법 논의 22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바람직한 독도 교육의 방안-독도 연구와 교육의 상호소통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1부 ‘바람직한 독도교육을 위한 제언’, 2부 ‘독도교육의 현장 소리 듣기’, 3부 ‘바람직한 독도교육을 위한 만남의 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김화경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은 “학계와 교육현장의일선에서 독도교육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교사와 전문가들이 모여 상호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포럼의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독도 관련 문학·예술 축적 경북도와 울릉군, 안용복재단 등이 ‘제1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을 공동 개최한다. 경북도는 독도에 대한 영토적 주권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문학·예술작품 축적을 위해 올해부터 매년 문예대전을 열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경북예총이 주관하고, 교육과학기술부·문화체육관광부·경북도교육청 등이 후원한다. 접수는 오는 9월 1~5일. 시상은 안용복예술제 기간 중인 10월 25일(독도의 날)에 한다. 분야는 3개 부문(시·산문)이며, 대학생·일반부와 청소년부로 나뉜다. 대회 주제는 독도와 울릉도, 동해, 독도수호 인물(안용복 등)이다. 출품 원서 접수와 문의는 경북예총(www.gbart.co.kr ·054-856-4430) 홈페이지나 전화로 하면 된다. 대상 500만원, 최우수상 100만원 등이다. 대구 한찬규·김상화기자 cghan@seoul.co.kr
  • 독도 새주소 ‘이사부·안용복길’ 확정

    독도 새주소 ‘이사부·안용복길’ 확정

    독도의 새 주소가 ‘독도이사부길’과 ‘독도안용복길’로 확정됐다. 행정안전부는 15일 독도에서 맹형규 행안부 장관, 공원식 경북도 부지사, 김진영 울릉군 부군수가 참석한 가운데 독도 도로명판 제막식을 열고 도로명 주소 고지문 전달 행사를 가졌다. 그동안 행안부와 경북도, 울릉군은 독도에 도로명 주소를 부여하기 위한 국민 응모를 거쳐 동도는 독도이사부길, 서도는 독도안용복길로 새 주소를 확정했다. 독도경비대 막사는 독도이사부길 55번, 독도등대는 독도이사부길 63번, 주민숙소는 독도안용복길 3번의 주소가 부여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독도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 이름을 새 주소에 넣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각인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사부는 신라 때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인 우산국을 점령한 신라 장군이고,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막부가 인정토록 활약한 어부다. 독도에는 도로명판, 건물번호판 등 도로명 주소 시설물 외에 독도 도로명 유래를 기록한 한글·영문 안내판을 따로 설치해 독도를 찾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게 된다. 정부는 도로명 주소를 이달까지 모든 국민들에게 알린 뒤 7월 29일부터 법정 주소로 사용할 계획이다. 우선 주민등록 등이 도로명 주소로 전환되고 다른 공적 장부들도 올해 말까지 바뀌게 된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지번 주소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도로명 주소로 바꾸는 작업을 독도에서 마무리하게 돼 뜻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본의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이 같은 행사를 독도에서 개최한 것과 관련, 유감의 뜻을 주일한국대사관을 통해 전달했다. 이재연·이경원기자 oscal@seoul.co.kr
  •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세월은 떠난 많은 사람을 지운다. 하지만 독도가 시름에 잠기는 이맘때라도 꼭 흐려진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할 사람이 있다. 이덕영. 울릉도 사람. 독도를 제몸처럼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랑이 지나쳐 제명을 다 채우지 못한 사람. 푸른독도가꾸기 초대회장. 바위섬 독도에 푸른 나무로 옷을 입힌 사람이다. 1980년대, 뜯어말리는 경찰과 싸워가며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흙을 퍼다 나르고, 그 위에 해송과 동백과 향나무와 야생화들을 가져다 심은, 미련하고 고집 센 사람. 그는 1998년 1월 23일 나이 마흔아홉에 죽었다. 타계도, 별세도 아니고, 죽었다. 일본 열도 남쪽 도고섬 앞바다에서. 시신은 뗏목 위에 묶어 놓은 한쪽 다리뿐. 나머지는 며칠 뒤에야 찾았다. 독립운동에 뒷돈을 댔던 선친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핏속에 반일(反日), 항일(抗日)의 유전자라도 담겼던 것일까. 이덕영은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우리땅’이, 가슴 속엔 ‘반일’이 가득했다고 한다. 음악가 한돌이 ‘홀로 아리랑’을 지을 때 영감을 받았다던, 그의 울릉도 집에 켜켜이 쌓여 있던 역사책 2만권이 그 증좌의 일부다. 석포에 살면서도 일본식 지명이 싫어 홀로 정들포마을이라고 불렀다. 우리 들꽃에 빠져 전국 방방곡곡을 돌기도 했다. 1997년 겨울 어느 날. 대구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 병호를 이덕영은 불쑥 찾아가 불러냈다. 그러곤 국밥 한 그릇을 사 주며 “아버지, 멀리 다녀와야 한다. 당분간 보기 힘들 거야.”라고 했다. 멀쩡한 농협을 다니다 때려치우고는 뭘 하는지 밖으로 돌며 걸핏하면 며칠씩 집을 비우고 가산도 거의 털어먹은 아버지를, 병호는 그날 마지막으로 봤다. 이덕영은 동료 3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12월 3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 ‘발해 1300호’에 올랐다. 발해 건국 1300주년을 맞아 옛 조상의 동해 개척사를 재연하겠다며 험한 바다에 몸을 맡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흥, 강릉, 울릉도, 부산, 일본으로 바닷물길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뗏목으로 입증하고, 이를 통해 발해의 문물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간 역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거사(擧事)’였다. 동해와 독도의 주인이 정녕 누구인지, 일본은 똑똑히 지켜보라는 시위였다. 무모했다. 용기보다는 결기와 오기였다. 출항 15일째인 이듬해 1월 14일 이덕영의 동료 21세기 바다연구소 소장 장철수는 항해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왜 탐험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심신이 피곤하다. 어제 예기치 않은 해류에 밀려 자칫 울릉도와 독도마저 보지 못하는, 그래서 곧장 일본으로 빠지는 사태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했다. 그래서 행여 (일본) 경비정에 몰려 나가는 보기 싫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해서’ 닷새 뒤인 19일에는 또 이렇게 적었다. ‘폭풍우에 계속 동쪽으로 밀린다. 이 방향이면 오키섬으로 가지 않겠나 싶다. 일본으로 간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1. 우리 어선을 나포하지 말라, 2. 바다는 넓다. 바다를 통해 더불어 사는 민족이 되길 바란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나흘 뒤인 23일. ‘바다가 거칠어진다. 교신이 빨리 되길 바란다. 우리 탐험대가 맞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중략)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게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 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일지는 거기서 끝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따라 내려온 이들 4명은 부산을 거쳐 제주로 향하다 폭풍우가 집어삼킨 뗏목과 함께 일본 오키 제도의 도고섬 앞에서 스러졌다. 독도 지킴이의 소임도 그렇게 끝났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이들을 일본 당국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논란, 심지어 일본 해경에 구조됐다가 다시 뗏목으로 내몰린 뒤 죽음을 맞았다는 의혹이 따랐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세월은 흘렀고, 이들의 이름도 서서히 세상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 13년이 지났다. 이덕영의 아들 병호(30)씨를 지난 6일 울릉도에서 만났다. 아버지의 비보에 이어 6개월 뒤 벼랑에서 차가 구르는 사고로 어머니마저 잃은 고등학생 병호의 아픔을 그는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가리고 있었다. “다 잊고 싶었죠. 애써 그렇게 했습니다. 그땐 너무 어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어머니마저 떠나 버린 현실에서 그냥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은 한참 뒤까지 아버지가 누구였고, 무엇을 했는지 애써 되짚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울릉도 선착장에 있었다. ‘안용복 재단’이라고 적힌 노란 점퍼를 수십명과 함께 입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난 2월 초 경북도청의 담당 국장께서 찾아와 ‘제2, 제3의 이덕영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숙고 끝에 재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용복 재단은 17세기 말 일본에 끌려가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며 거꾸로 일본 막부의 사과를 받아내고 돌아온 어부 안용복을 기리고 독도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해 지난 2008년 경상북도 주도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민간 차원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도록, 그래서 독도가 외롭지 않도록, 그래서 일본이 더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회에 나와 무역회사를 다니고 운동처방사로도 일하던 이씨는 재단 측의 참여 제의를 접하고는 ‘아버지가 지니셨던 정신에 어쩔 수 없이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좋아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재단에 참여하게 된 걸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독도 지킴이로 나선 소감을 물었다. “학교 행사로 독도를 찾은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갈매기똥밖에 없는 돌산인데, 왜 난리야. 그냥 일본에 줘 버리지….’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안 되겠구나, 큰일 났다 싶었죠. 후세뿐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조차 국토의 소중함,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독도를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물으니 말이 빨라졌다. “관심이죠. 지속적인 관심 말입니다. 사람들이 가 봐야 합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독도의 중요성, 필요성…. 심지어 지금 교과서에다가 자기들 영토라고까지 표기하며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한데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만 갖는다고 독도 문제가 풀리겠느냐’고 물었다. 단호했다. “우리가 관심만 기울인다면 그것 말고 어떤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 땅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이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뭐가 터졌을 때에만 피켓 들고 난리를 칠 게 아닙니다. 독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후대에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그럼 냄비처럼 쉽게 끓다가 별안간 잠잠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발표를 하루 앞둔 29일 다시 그에게 전화했다. 독도 안 갑니까. “며칠 뒤에 또 갑니다. 카메라 들고….” 그새 아버지에게 한발 더 다가서 있었다. 진경호·최여경기자 jade@seoul.co.kr
  • 글로벌 ‘독도 지킴이’ 첫발 내딛다

    글로벌 ‘독도 지킴이’ 첫발 내딛다

    지난 6일 경북 포항 여객선 터미널. 어르신들과 젊은 외국인들 30여명이 한 데 모였다. 두 집단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노란색 점퍼를 입고 있다는 공통점을 뺀다면. 이들은 하나의 목표로 이 자리에 모였다. 한반도 최동단의 섬, 독도에 들어가는 것이다. 안용복 재단은 역사 교과서 검증을 앞둔 일본이 독도를 자국 땅으로 표기하는 역사 왜곡을 또다시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발빠르게 ‘독도 학교’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열었던 ‘독도 학교’의 범위를 넓혀 외국 유학생과 국가 유공자들을 초청해 독도가 한국 땅임을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이 둘을 각각 멘티와 멘토로 묶는 것이다. 이쯤에서 안용복이란 인물을 짚고 넘어가 보자.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부산에 살던 평범한 어부였다. 울릉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에 끌려가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에도 막부에 이를 인정한다는 서계(書契·조선시대 외교문서)를 받고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최초의 독도 수호자라 할 만하다. 그의 넋을 기려 ‘독도 지킴이’ 정신을 여러 부문에 확산시킬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한 단체가 안용복 재단이다. 재단과 함께 독도로 향한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터미널에서 꽤 큰 여객선에 몸을 실었지만, 높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 속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눈치 빠른 이들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지만, 화장실로 향하다울렁증을 견디지 못해 ‘실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3시간30분 뱃길을 달려 울릉도에 도착했는데 독도의 모든 것이 이곳에 있었다. 독도의 과거와 오늘, 지정학적 의미 등을 느낄 수 있는 독도 박물관이 있다. 무엇보다도 울릉도 동북쪽 석포에서는 맑은 날이면 독도의 모습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울릉도 도착 이틀째. 국가 유공자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은 울릉도를 돌아보고 박물관에서 독도에 관한 것들을 배우며 어느새 어색함을 풀어냈다. 이제 두 손 맞잡고 독도에 갈 일만 남았는데 찌푸듯하던 하늘에서 금세 눈송이가 날렸다. 과연 이들은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독도 지킴이로 첫발을 내디딘 이들의 모습은 11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이 밖에도 망신살이 뻗친 한국외교의 상하이 스캔들을 꼬집는 ‘진경호의 시사 콕’을 비롯해 봄을 맞는 우리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포착한 ‘안주영의 눈’,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게 들어보는 올해의 경제 전망 등이 소개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세번째 이지스함명 ‘서애 유성룡’

    우리 해군의 3번째 이지스함(KDXⅢ)의 이름이 ‘서애(西厓)유성룡’으로 확정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 등을 천거해 나라를 구하도록 했던 유성룡 선생이 군함으로 부활한 셈이다. 서애유성룡함은 이달 말 정부 고위관계자와 군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수식을 갖고 마지막 단계인 시험가동 등을 거쳐 내년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신의 방패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지스함은 2000여개의 목표를 동시에 탐색하고 20개 이상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이지스 시스템을 장착한 군함을 말한다. 우리 해군은 1986년부터 한국형 구축함 획득사업을 시작한 이래 20여년 만인 2008년 7600t급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처음으로 실전배치했다. 이어 2번째 함인 율곡이이함은 2007년 건조를 시작해 2008년 11월 진수했으며 2010년 9월 취역했다. 이지스함의 이름을 두고 군 안팎에서 많은 말들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군은 이지스함 3척이 전력화되기 전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 권율 장군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었지만 민간인과 무명용사의 이름을 따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조선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로 활약했던 어부 안용복, 월남전에서 전우를 구하다 전사한 지덕칠 중사 등이 그 대상이었지만 이름이 너무 튄다는 이유 등으로 세종대왕과 율곡 이이로 함명을 정했다. 이어 3번째 함에 권율 장군의 이름을 놓고 고심했으나 최근 서애 유성룡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독도사랑 티셔츠 입어요”

    ‘25일에는 독도사랑 티셔츠를 입고 출근합시다.’ 독도사랑범국민운동본부, 안용복재단 등 대구·경북지역 단체들은 독도 사랑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독도의 날인 오는 25일을 ‘독도사랑 티셔츠 입고 출근하는 날’로 정했다 행사에는 대구시·경북도, 대구은행과 농협, 대구·경북경찰청 등 지역의 주요 관공서와 기업체 직원들이 동참할 예정이다. 운동본부 측은 티셔츠를 원하는 기관·단체에는 원가로 공급, 수익금이 발생하면 독도 연구자금으로 기부하거나 공익목적에 사용키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이종락특파원 도쿄이야기] 산케이신문의 견강부회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체결이 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과거보다는 새로운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신문의 최근 사설만 봐도 ‘한·일의 미래를 위해 연계를 심화시키자’(니혼게이자이 21일자), ‘간 총리 담화, 새로운 한·일 협동의 초석으로’(아사히신문 11일자) ‘미래 지향의 한·일 관계에 탄력을’(요미우리 11일자) 등 미래를 얘기하는 제목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보수신문인 산케이신문만 유독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 연일 흠집을 내며 한·일 관계에 부정적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신문은 24일 양국 관계의 첨예한 현안인 독도문제를 느닷없이 끌고 나왔다. 인터넷판에 최근 고베시립박물관이 17~18세기 조선시대 목판인쇄 고지도인 ‘강원도도(江原道圖)’를 보관 중인 사실이 밝혀졌는데 울릉도의 남쪽에 ‘자산(子山·독도의 옛 이름)’이라는 섬이 그려져 있어 독도가 한국땅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기사다. 독도가 실제로는 울릉도의 동남쪽 92㎞ 지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안용복이 1696년 일본에 건너가 조선 땅이라고 인정받은 ‘자산’은 독도와는 다른 섬일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지도야말로 조선이 독도를 강원도에 속한 자기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고 해석한다. 당시는 방향이나 거리가 부정확했는데도 강원도도(圖)에 독도를 가리키는 자산도를 그려넣었다는 것은 당시 조선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설명이다. 산케이신문도 이런 사실을 뒤늦게 간파했는지 이 기사를 정작 본지에는 게재하지 않았다. 산케이의 견강부회가 낳은 해프닝인 셈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독도의 바다·땅·하늘 생생한 사계

    독도의 바다·땅·하늘 생생한 사계

    광복 65주년과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를 집중 조명한 자연 다큐멘터리가 방송된다. MBC는 광복절인 15일 오전 8시35분 독도의 사계절을 HD 영상으로 담은 ‘독도野’를 방송한다. 제작진은 방송 사상 처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변화무쌍한 독도의 사계절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현지 촬영에 매달렸다. 이번 다큐에서는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독도의 바다와 땅, 하늘의 신비롭고 수려한 경관이 50여분 동안 펼쳐질 예정이다. 먼저 각양각색의 해초와 산호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바닷속에서는 다양한 수중생물들의 치열한 생존 드라마가 펼쳐진다. 망상어는 알이 아니라 치어 상태로 새끼를 낳아 생존확률을 높이고자 애쓰지만, 출산을 마치고 탈진한 나머지 결국 괭이갈매기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또 몇 달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산란한 알들을 돌보다 하얗게 탈색돼 죽어가는 문어의 모성, 머리와 가시만 남기고 순식간에 먹이를 먹어치우는 돌돔의 먹성, 오징어의 물고기 사냥, 보름달이 떠오를 때만 산란하는 뱀거미불가사리의 신비가 베일을 벗는다. 물 밖으로 나오면 독도는 망망대해를 지나는 수많은 새들의 휴식처이자 산란장으로 변한다. 봄에는 괭이갈매기, 여름에는 바다제비, 가을에는 말똥가리 등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새끼를 낳고 키우고, 먹고 먹히며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를 이어간다. 땅채송화, 초종용, 해국, 닭의장풀 등 식물들은 거센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기필코 꽃을 피워 독도의 계절을 노래한다. 철따라 끊임없이 독도를 아름답게 수놓는 꽃들과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는 장면, 참매가 국제보호종 흑비둘기를 사냥하는 생생하고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공개된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울릉도와 독도, 안용복해산과 이사부해산 등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해저지형을 최초로 촬영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독도가 동해상의 조그만 섬이 아니라 광활한 영역과 생태계를 거느린 생명의 보물창고임을 일깨운다. 제작진은 “그동안 독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대부분 한·일간 영토 문제와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췄던 반면 독도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기록한 자연 다큐는 만나기 쉽지 않았다.”면서 “정통 자연 다큐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섬인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독도 지킴이’ 박어둔도 있다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의 조선 영유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던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의 주역에 안용복(安龍福·생몰연대 미상)뿐 아니라 울산 출신 어부 박어둔(朴於屯·1661~?)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용복 개인의 영웅적 활동에 국한해 설명했던 ‘울릉도쟁계’(1693·숙종 19년)의 기존 인식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 송휘영(49) 영남대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22일 울산광역시청 시민홀에서 열린 ‘울릉도·독도 수호 박어둔 재조명 연구 학술대회’에서 “교과서 등에 울릉도쟁계가 안용복 개인의 영웅담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안용복과 함께 1차 도일(渡日)에 참여, 훗날 일본 바쿠후(幕府)가 울릉도와 독도의 조선 영유권을 인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박어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박어둔의 울릉도·독도 수호활동의 관광 자원화 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1693년 40여명의 어부와 울릉도에 갔다가 일본 어부들에게 돗토리성으로 강제연행됐던 울산의 박어둔과 부산의 안용복이 일본 바쿠후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공식문서를 받아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들이 벌인 이른바 ‘울릉도 쟁계’ 사건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송 교수는 “특히 울산부 청량면 목도리(현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는 박어둔이 출생해 염전일과 어로활동 위주로 생계를 영위해 왔던 곳”이라며 “목도리 일대 처용암과 목도, 개운포성지, 외항천 갈대생태공원 등 박어둔의 일상생활 무대가 됐던 온산항 일대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박어둔 해양테마파크’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같은 연구소 김호동 교수도 ‘울릉도·독도수호 활동에 있어서 울산의 역할’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숙종조에 굶주려 죽는 사람이 수만명에 달하는 등 토지로부터 이탈한 민중들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바다로, 국경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생겨 ‘울릉도 쟁계’ 등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박어둔과 울산지역 사람들의 지속적인 울릉도·독도 출어활동은 일본이 이들 지역이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독도수호에 조선 어부 박어둔 공 컸다

    울산이 조선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의 수호활동 거점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의 상인 겸 어부였던 박어둔(1661~?)은 부산의 안용복, 울산지역 어부 등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에게 맞선 선봉적인 인물로 평가됐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8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울릉도·독도 수호 박어둔 재조명’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통해 “울산의 박어둔과 부산의 안용복은 1693년(숙종 19년) 40여명의 어부와 울릉도에 갔다가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됐으나,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문서를 받아내 영토수호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안용복이 박어둔 등 울산지역 어부들과 울릉도에서 조직적인 어로행위를 하면서 일본 어부들과 맞섰고, 그 과정에서 납치됐다.”면서 “박어둔은 어부들과 함께 생계의 터전인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내기 위해 일본에 조직적으로 맞섰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또 “박어둔이 안용복과 함께 수시로 울릉도와 독도에 수산물을 채취하러 간 점으로 볼 때 이들은 당시 궁핍한 삶을 이겨내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로 진출했고, 이곳에서 일본의 침탈을 막아내는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숙종실록’을 근거로 1693년 박어둔과 안용복이 울릉도로 향할 때 울산에서 출발했고, 당시 함께 갔던 10명 중 9명이 울산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독도연구소 김호동 교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17세기 고유영토설을 토대로 하고 있고, 최근에는 안용복의 독도 수호활동까지 허위로 왜곡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당시 안용복 개인에 의해 울릉도·독도 수호활동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박어둔 등 울산 지역 어부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지난 7월 울산시로부터 의뢰받은 ‘울릉도·독도수호 박어둔 재조명’ 연구용역을 내년 5월 완료할 예정이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지역을 살리는 지역뉴스/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지역을 살리는 지역뉴스/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화 ‘해운대’는 지진해일이 해운대를 덮치는 상황을 훈훈한 사랑 이야기에 담아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영화의 영어 제목도 ‘해운대’로 하여 해운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다. 이렇듯 각 지역이 대외적인 명성을 갖는 데는 언론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지대하다. 언론에 지명이 등장하는 경우는 세 가지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인 업무와 관련될 때, 특정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찾아가볼 만한 여행지를 소개할 때 등이다. 같은 지명이 각 기사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동일한 지역에 대한 복합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경북도의 안용복재단, 경기 성남시의 청소년육성재단, 김태환 제주지사의 주민과의 대화 행사 등을 소재로 한 ‘지자체장 벌써 선거운동’(6월19일)에서 언급되듯이, 일상적인 업무나 지역의 행사가 내년 6월의 지방선거와 관련해 선거운동으로 변질되거나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사전 선거운동 여부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일상 업무가 불필요하게 방해받지 않도록 조정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 ‘무산된 통영의 꿈’(7월29일)은 통영이 윤이상 음악당 건립에 대한 정부의 지원불가 입장에 따라 규모를 대폭 줄이고 음악당에도 지역명을 붙이게 된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지원불가를 밝힌 정부의 조치도 아쉬움이 많지만 그렇다고 음악당의 이름을 바꾸려는 지방자치단체는 더욱 안타깝다. 정권교체 때마다 매번 이름을 고쳐 달 수는 없지 않은가. 대관령국제음악제를 다룬 ‘세계적 음악가들 실험무대 즐기세요’(7월6일), 밀양·거창·목포의 축제를 다룬 ‘더위 식히고 문화예술도 즐겨 볼까’(7월15일), 하동군과 보은군의 축제를 다룬 ‘지자체 축제속으로’(7월25일) 등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축제로 재정난을 겪은 일본 지자체의 사례를 명심해야 한다. 수많은 시설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적자투성이가 되었음을 지적하고 행사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사건 기사는 ‘부산 시간당 73㎜ 물폭탄 쏟아져’(7월8일), ‘중부 이틀 만에 또 물벼락…복구중 수마’(7월15일), ‘부산 시간당 90㎜…출근길 물바다’(7월17일) 등이 있었다. 이 기사들은 대체로 사건 중심으로 보도되고 근원적인 대책이나 분석은 부족했다. 지방 정부와 지역 방송의 협력을 통해 재난방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여행 기사는 ‘도시와 산’, ‘Let’s Go’,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과 같은 기획 기사였다. 지난 7주간 ‘도시와 산’에서는 천안 광덕산, 성남 불곡·영장산, 전남 영암 월출산, 부산 금정산, 수원 광교산, 충주 남산, 울산 무룡산을 소개했다. 전국 각 지역이 골고루 반영됐다. ‘Let’s Go’는 포천·영월·상하이·정선·시안-뤄양-장저우·태안·울산 장생포를 다루고,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에서는 울릉도 나리분지-성인봉, 가평 조무락골, 문경 새재, 관악산 무너미 고개, 방태산 적가리골-주억봉, 가평군 아재비고개, 울릉도 내수전 옛길을 다루었다. 여행 관련 기획 기사의 특징은 여행 지역의 미흡한 점에 대한 지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여행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점, 개선할 점도 담아 여행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면 한다. 요즘 체험마을 관광이 유행이다. 각 농어산촌 마을마다 체험마을로 꾸며 외부 관광객을 유치한다. 체험마을은 근사해 보이지만 마을의 실상은 어려움이 많다. 관광 목적의 체험마을이 아닌 ‘현실 마을’도 행복할 수 있도록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기사를 기대한다. 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지자체장 벌써 선거운동

    지자체장 벌써 선거운동

    일부 현직 자치단체장들이 내년 6월 치러지는 제5대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벌써부터 선거전에 돌입한 듯한 행보를 보여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선거전에 직접 뛰어들 수 없는 한계 탓인지 애매한 성격의 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서 홍보전을 펼치는가 하면, 일부 자치단체장은 물밑에서 ‘속 보이는 칩거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을 비난하는 주민 집단과는 일전불사 의지를 보이는 자치단체장도 있다. 반면 일부에선 선의의 주민소환제도가 자치단체장을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호한 행보에 감춰진 선거전 경북도가 18일 조선시대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킨다는 취지에서 정식 출범시킨 ‘안용복 재단’이 지역 민심의 도마에 올랐다. 김관용 도지사는 이날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단 출범식을 가졌다. 김 도지사는 명예이사장을 맡았다. 그러나 재단에 관여한 21명 중 대다수 인사가 도정에 우호적인 자치단체 간부, 경북도 금고(庫) 관계자 등인 반면 정작 독도와 관련된 단체 관계자는 1명도 없다. 지방선거를 위한 특정인의 친위 조직이라는 의혹을 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경기 성남시가 최근 출범시킨 청소년육성재단도 선거 전위조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재단은 이대엽 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퇴직공무원이 사무국장으로 임명돼 시의회의 거센 반대를 받았으나 결국 공식출범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지난 8일 일도2동에서 주민과의 대화 행사를 가졌으나 끝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김 지사는 ‘치적 홍보는 안 되고 도민 여론수렴 행사는 가능하다.’는 선관위 유권 해석을 근거로 ‘제주특별법 제도 개선 4단계 도민의견 수렴을 위한 도민과의 대화’라는 지역순회 행사를 갖고 있으나, 선관위 눈에는 불법으로 비친 것이다. ●주민소환 무서워도 물밑선 계속 반면 취임 직후부터 광역화장장 조성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김황식 경기 하남시장은 2007년 말 주민소환 투표까지 겪은 뒤 최근에는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다. 다만 요즘 엉뚱하게도 ‘차 없는 거리행사’ 광고에 수천만원의 시 예산을 쏟아부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불법 노점상과의 전쟁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강현석 경기 고양시장은 경전철 노선에 발목이 잡혔다. 강 시장은 여러 개발사업으로 교통수요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2001년부터 대화~식사지구 11.9㎞ 구간에 경전철 조성을 추진하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자 계획을 슬며시 접고 ‘칩거’에 들어갔다. 류화선 경기 파주시장도 올해 초 발전소 건립문제로 주민소환이 거론된 이후 주민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있다. 성남의 이 시장은 지난달 초 중원구 ‘은행2구역 주민대책위원회’ 최모 위원장을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각종 유인물을 통해 ‘불법 주민 뒷조사’ ‘날치기 행정’ 등의 표현으로 이 시장을 공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격이다. 조병돈 경기 이천시장도 이천시상인연합회가 자신을 비방하는 스티커를 배포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하세현 교수는 “일부 자치단체에서 모호한 재단 설립, 예산 및 행사권 등을 이용해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주민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대화로 풀어가는 게 우선”이라며 “시민들의 입에 재갈부터 물리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윤상돈·대구 김상화·제주 황경근기자 yoons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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