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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하(서울 6백년 만상:55)

    ◎숙정문/「대문」 칭호 못얻은 4대문 중의 북문/“열어두면 부녀자 풍기문란” 속설에 거의 닫아/사적10호로 76년 복원… 요즘은 데이트코스로 서울의 4대문중 「북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서울 종로구 삼청터널위에 자리한 숙정문이 바로 북문이다. 태조 5년(1396년)에 4대문의 하나로 세워졌던 숙정문은 지금도 그렇지만 한적한 산속에 위치한데다 큰길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에 이용하는 사람마저 드믈어 불행하게도 남대문·동대문처럼 「대문」이란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 연산군 10년(1504년)에 현 위치인 동쪽으로 조금 옮겨 다시 지었다가 세월의 풍상을 못이겨 스러졌었으나 지난 76년 서울시가 백악산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창건당시의 문루를 세우고 「숙정문」이란 현판을 내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숙정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가 들어와 성안의 부녀자들이 음란해진다는 음양설과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풍수설까지 겹쳐 항상 문을 닫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순조때 실학자 이규경은 그의저서 오주연문장잔산고에서 「양주 북한산으로 통하는 숙정문이 지금 폐하고 쓰지 않으니 언제부터 막았는지 알수 없다.이 성문을 열어두면 성안에 상중하간지풍이 불어댄다 하여 이를 폐했다 한다」고 적고 있다.여기서 「상중하간지풍」이란 부녀자의 음풍,즉 풍기문란을 뜻하는 것으로 숙정문의 폐문은 최소한 순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수 있다. 옛 서울의 세시풍속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당시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정월대보름 전에 숙정문까지 세번 다녀오면 그 해의 액운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이 풍속은 이후 정월대보름에만 국한되지 않고 연중 언제라도 세번만 숙정문을 다녀오면 효험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널리 퍼졌다.그만큼 부녀자들의 숙정문 왕래는 무척이나 빈번했다. 숙정문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꽃밭」으로 변했고 유독 벌·나비가 많이 날아들었다.부녀자들의 안식처였던 숙정문일대의 자유분방함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못난 사내 북문에서 호강 받는다』는 옛 서울의 속담에서도 알수있듯 못난 사내라도 숙정문에 가면 어여쁜 부녀자들로부터 많은 추파와 환대를 받았다.도덕과 규범이 통하지 않던 이곳 북문에서 짓궂은 사내들과 음담패설과 수작을 벌이던 성안 부녀자들의 도색풍경.「남녀칠세 부동석」이 강조되던 당시 숙정문 일대에서 벌어졌던 이같은 풍기문란이 대단한 사회문제를 일으켰으며 급기야 조정에서는 이곳에서의 풍기문란을 막기위해 숙정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요즘도 전에 뽕밭자리였던 문밖에는 삼청각 대원각등 장안 최대의 요정이나 풍류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문안쪽의 삼청공원일대 역시 젊은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소문나 있어 북정문에 전해내려 오는 속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숙정문은 지금 인적이 뚝 끊긴채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굳게 닫혀 있다.군부대가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이 문을 둘러 보려면 삼청터널 시내쪽 입구 오른쪽에 있는 군부대 경비초소에 사전에 신고를 해야한다. 숙정문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남대문·동대문과 같은 별도의 문화재가 아니다.사적10호인 서울내성곽의 일부분일 뿐이다.
  • 진귀한 그림·조각으로 장식/「예술 호텔」 미서 인기

    ◎「리츠칼턴」·「브렉커즈」 등 “만원사례”/“숙소에서 문화공간으로” 인식 대전환/일부업체선 소장 예술품 선전 열올려 호텔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여행지의 최종안식처」가 종래의 호텔개념이라면 이제는 호텔이 「예술품의 소장장소」 또는 하나의 버젓한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호텔주들은 지금까지 손님들에 대한 종업원의 태도,편안한 침대,호텔이 위치한 자연경관 등을 중요시 여기며 이에 대한 투자만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호텔을 중심으로 한 일부 호텔주들은 호텔자체를 예술공간으로 인식하거나 그렇게 꾸미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예술품 전시공간을 늘리는데 열을 올리거나 단순히 「자는 장소」에서 호텔자체를 보여주며 인상을 심어주는 공간으로 가꾸려는 것이다. 일부 호텔에서는 새삼스레 자신들의 호텔이 옛 진귀한 미술품이나 조각품으로 가득차 있다는 광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또 관광객들도 이같은 인식위에 보다 색다는 호텔을 찾아나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호텔자체가 예술품이거나 예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호텔은 예약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미국의 호텔은 4곳. 샌프란시스코의 리츠 칼턴호텔은 소장예술품이 많아 어느 것이 가장 인상적인 예술품인지 대답하지 못할 정도다.호텔의 벽마다 18∼19세기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주로 꽃과 풍경을 주제로한 유화들이다.프랑스 루이 16세때의 청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금박도자기도 소장하고 있고 19세기 초기의 수정촛대가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끈다.손님들은 이같은 진귀한 예술품들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1909년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3년뒤에 세워진 이 호텔은 그동안 메트로폴리탄보험회사의 본사건물,대학건물로 사용되다 지난 89년 리츠 칼턴사가 인수한 이후「예술호텔」로 각광을 받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팜비치에 있는 브렉커즈호텔도 손꼽히는 「예술호텔」이다.철도왕 헨리 모리슨 플라글러가 처음 지은 호텔로 불에 탄뒤 1925년 재건축되었다.발도프­아스토리아양식으로 유명한 건축가 레오나르도 슐츠가 재건축에 참여했다.입구에서 보면 이탈리아 중세 메디치가의 궁전을 연상케하는 쌍둥이 탑과 우아한 아치양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분수도 이탈리아 보볼디정원 것을 그대로 따왔다.실내장식은 고대 로마시대의 귀족생활 것을 본떴고 15세기 플랑드르양식으로 된 태피스트리(실로 수놓은 벽걸이)는 이 호텔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금박 잎사귀로 장식된 천장,곳곳의 프레스코 등 어느것 하나 옛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미국인들은 이 호텔이 옛 것과 현대조형물을 조화시킨 하나의 예술품으로 여기고 있다. 브렉커즈호텔이 이탈리아식이라면 뉴올리언스의 윈저 코트호텔은 영국식의 「예술호텔」이다.호텔입구에 들어서면 현대 최고의 조각가 존 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영국의 전설적인 조지왕이 용을 물리치고 있는 작품이다. 호텔안에는 영국의 왕족이 좋아하는 화가 게인즈보로,레이놀즈,카날레토의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다색석판법을 즐긴 빅토리아왕 작품도 있다.윈저성안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버몬트주에 있는 트윈 팜즈는 방이 9개밖에 되지않는 「여인숙」이다.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가 한때 살았던 방에는 전소유주들의 귀한 소장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데 특히 현대화가 에드 루스차,윌리엄 베그먼,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의 그림들이 손님들을 사로잡는다.이곳 예술품의 대부분은 미국 1백대 고미술소장가중의 한 사람인 서스톤 트윅스미스씨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술여인숙」 아이디어도 그가 낸 것이다.가정집 같고 프론트데스크도 없다. 조지아주의 콜로웨이 가든,델라웨어주의 호텔 듀폰,뉴욕주의 세인트 레기스호텔 등도 이같은 「예술호텔」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가정은 사회의 근원이다(사설)

    싱그러운 5월이다.『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누군가 표현했던 아름다운 계절이다.어린이날,어버이날로 이어지는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가정의 해」여서 어느해보다 뜻깊은 가정의 달이 될 듯싶다.5월15일은 「세계가정의 날」로 전세계적인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기도 하다. 『화목한 가정은 민주사회의 뿌리』라고 가정의 해 슬로건이 밝히고 있듯이 가정은 최소단위의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또한 가정은 영원한 학교이자 문화전승의 근원으로서 가정에서 습득한 민주적 의식과 태도,도덕적 신념과 가치관,건전한 소비태도등은 다른 어떤 교육기관에서 학습한것보다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내재화된다.따라서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와 나라도 건강해진다. 그러나 산업사회이후 급격한 변화의 물결속에서 가정의 중요성과 역할은 축소되어 가고 있다.일터와 분리된 현대가정의 기능이 감소되는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지만 요즘 우리 가정은 「하숙집 가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지 숙식만을 제공하는 장소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하숙집과 같은,빈 껍데기 가정에서 가족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있다. 바깥일을 핑계삼아 자녀교육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내자식만 끼고 돌아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어머니 사이에서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바람직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더욱이 입시교육에 얽매여 자녀의 인간교육이나 예절교육은 거의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뿐인가.노부모가 자식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자식이 부모의 이혼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질만큼 전통적인 우리의 가족윤리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남편과 아내 사이에,부모와 자식사이에 말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살인과 폭력도 자행되고 있다.또한 핵가족 현상에 따른 노인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해체되어가고 있는 우리가정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그런점에서 주부의 일방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유지되는 우리 가정의 안락함은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주부에게 가정은 안식처가 아니라 일터이자 끊임없는 노동과 봉사의 장소임을 다른 가족들이 이해하고 그 노고를 덜어 주어야 하는것이다.가정에서의 「아버지불재」「남편불재」「대화불재」현상도 사라져야 한다. 흔들리는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도 필요하다.전통적인 가족제도의 장점을 현대사회에 되살릴 수 있는 정책개발이라든가 소년가정,노인가정등 소외된 가정을 위한 복지정책등이 확충돼야 할것이다.
  • 주점:상/길손에 술·밥 팔던 주막이 원조(서울 6백년만상:24)

    ◎“5전내면 술과 안주한점” 선술집 인기/일제말엔 술귀해 비싼 밀조주 찾기도 막걸리집에서 룸살롱 요정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는 서울 술집의 원조는 강변나루터나 장터 또는 번화가에 자리잡았던 주막에서 찾을 수 있다.모처럼 차리고 나선 장꾼들이나 길손 그리고 하릴없는 한량들이 들려 목을 추기고 허기를 때우며 한담을 나누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런 주막말고도 서울에는 내외주박이라는 곳이 번창하기도 했다.외부에서 보면 여염집이지만 대문옆에 내외주가라고 한문으로 써 붙여 행인들의 발길을 끌었다. 내외주막보다는 격이 낮지만 일반서민들은 오늘의 스탠드바격인 목로주점이라는 선술집을 즐겨 찾았다.선술집이란 말은 앉아서 먹는 주막의 대칭어이고,원말은 「목로」집이다.목로는 널빤지를 앞에 깔고 좌우가 터졌으며,술 따르는 사람은 복판에 앉았다.술꾼이 목로판앞에 나란히 서서 술을 요구하면 옆에 묻은 술독에서 구기로 술을 사람 수에 맞춰서 양푼에 담고 그 양푼을 끓는 물에 얹어 뱅그르르 돌린다.술이 중탕되면 사기잔을끓는 물에서 건져내 목로판에 『탁』하고 한번 엎었다가 제친다.잔속의 물을 빼는 것이다. 손님이 셋이면 탁,탁,탁하고 세번 소리가 나면서 나란히 잔이 놓인다.그 위에 다시 구기로 데워진 술을 붓는다.안주는 안주장 속에 보기좋게 늘어놓여 있다.1937년까지 5천을 내면 수한잔에 안주 한 점이 거저 달렸다.구운고기·빈대떡·산적·편육·제육·묵·두부 부침등이다.찌개 종류가 나온것은 술값이 오른 한참뒤의 일이다. 일본인들도 이 선술집의 재미를 알아 서서 마신다는 뜻으로 「다치노미」(입음)라고 했다.일제말 서울에 등장한 것이 「나라비」술집이다.나라비란 일렬로 줄을선다는 일본말의 수투리. 2차대전중에는 술이 매우 귀해 얻어 먹으려면 석달에 한번 차례가 올까 말까 하는 배급 청주(속칭 정종)거나 아니면 밀조주를 찾아 먹는 방법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밀조주를 먹자면 비밀조직을 알아야 되므로 어렵고 한번 들어갔다하면 부르는게 값이다.바가지를 쓰기 때문에 문밖(변두리)으로 나가야 했다. 나라비술집은 당국의 허가를 받고 파는 막걸리집이다.술 먹기 시작하는 시각이 하오 5시로 정해져 있었다.몇집 안되는 나라비술집 앞에는 3∼4시쯤부터 술꾼들이 장사진을 친다.안주를 집어먹을 젓가락이 없어 아예 몸에 만년필처럼 젓가락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개문되자마자 들어서서 술을 급히 마시고는 부랴부랴 튀어나와 삥돌아 그 행렬의 뒤에 가 또 선다.운이 좋으면 두차례는 걸리고 대웅이 믿치면 세차례까지는 걸리는 수가 있는데…차례가 가까워 초조해 하던중 대망의 내 차례가 왔을 때 술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변영로의 「명정사십년」) 해방후 서울에는 바·카바레가 늘어났고 6·25직후부터는 명동과 무교동 일대에 맥주홀이 번창했다. 그러나 50,60년대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것은 선술집과 대폿집.이들 주점은 가난한 예술인·문인·학자·기자들에게 암당한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는 안식처였다.
  • 러 북한벌목장 국회조사단장 강신조의원(인터뷰)

    ◎“탈출 북노동자 보호책 적극 강구”/서울신문 보도 참상 이해 큰 도움 『시베리아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동포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합니다』 다음달 「시베리아벌목장 북한노동자 국회실태조사단」단장으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하는 민자당의 강신조의원은 30일 『민족적으로는 우리 문제이지만 국제법적으로 우리는 제3자이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회 외무통일위의 민자당 간사이기도 한 강의원은 서울신문이 현지취재를 통해 특집보도하고 있는 벌목장 관련기사가 매우 시의적절하며 모두가 탈출 노동자들의 참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신문에 보도된대로 탈출 동포들이 북한당국으로부터 겪은 인권유린상황과 신변보호대책등을 국회차원에서 찾아 보자는 것』이라고 조사활동의 목적을 밝혔다.이를 위해 우선 사실확인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서라는 설명. 현지방문 활동에 대해 그는 『하바로프스크주 의회는 물론 루킨하원외교위원장등 의회 고위관계자들을 많이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들과의 면담에서 탈출 노동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것. 아직 벌목장에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상황과 관련,『오는 12월말 시효가 만료되는 북·노임업협정의 연장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만큼 러시아측이 인권보호조항을 강화토록 해줄 것을 당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특히 벌목장안에서는 북한이 사법권을 행사해오던 것을 러시아가 맡도록 협정문을 개정해 달라고 촉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탈출노동자에 대한 안식처제공 문제와 관련,『우리의 외교노력은 법적,국제적,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다각도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여기에는 『북한과 러시아,러시아와 한국,한국과 북한의 3각 관계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신중론을 폈다.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측의 방해로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중론의 주된 이유. 강의원은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 14억7천만달러 가운데 원리금 3억8천만달러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러시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전제,『우리가 북한동포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측에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의원은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지닌 러시아에 대해 채권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앞으로의 양국관계는 물론 당장 벌목장 탈출동포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카드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 러 북노동자/한국인수 모색/국회 대책소위

    국회 외무통일위는 30일 「러시아내 북한노동자 인권문제 대책소위」(위원장 강신조)를 열어 서울신문이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는 시베리아 북한벌목장 탈출 북한노동자들에 대한 신변보호및 안식처 제공등의 대책을 논의했다. 소위는 백락환외무부 구주국장으로부터 정부측의 대책을 보고받은 뒤 다음달쯤 실태조사단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파견,탈출노동자들의 신변보호및 한국으로의 인도등을 위한 국회차원의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 소위는 이에 따라 외무부가 러시아측과 협의를 마치는대로 방문일정등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백구주국장은 『인도주의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탈출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희망에 따라 거취가 정해지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백국장은 『이를 위해 총리실 주관으로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어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히고 『필요하면 귀순북한동포보호법이나 망명자처리지침등 관련법규및 지침을 개정하는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국장은 이어 『이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객관성을 인정받기 위해 유엔의 난민고등판무관(HCR)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정착촌 철거거부/이인 5만명 시위

    【텔아비브 AFP 연합】 이스라엘인 5만여명은 15일 텔아비브에서 점령지내 정착촌철수 불가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경찰당국이 밝혔다. 시위대는 이날 「예루살렘과 헤브론은 이스라엘인의 영원한 안식처」「정착촌은 철거될 수 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를 땅을 평화로 바꾼 「배반자」라고 몰아세웠다.
  • 독일태생 귀화 한국인 이한우씨댁(훈훈한 우리가정:7)

    ◎동·서가 만나 일군 포근한 안식처/대화·사랑으로 관습벽 허물고 행복 쌓아/“자녀의 자율·적성 중시” 교육관 한마음/결혼 12년,입맛까지 닮아… 장모의 사위사랑 으뜸상감 『우리는 동·서가 만나 일군 「단단한 가정」이지요.각자의 이질적 문화습관을 아직 극복하는 과정중에 있긴 하지만 아내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꼭 제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생각이 비슷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주한 독일회사 고문으로 최근 다양한 방송활동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낯익은 얼굴이 된 이한우씨(본명 베른하르트 콴트·39).독일태생인 그는 16년전 한국에 와 지난 86년 아예 한국인으로 귀화한 애한파다. 이씨는 78년 초교파교회활동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좋아 눌러앉은뒤 한국인 아내 이용복씨(36)와 82년 결혼했다.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아파트에서 아들 복단(10),딸 향림(8·예명 미카)등 4식구가 함께 꾸리고 있는 그의 가정은 영어 독일어 한국어가 뒤섞이면서 사랑으로 발산되는 말 그대로 「국제적으로」 화목한 가정이다.교회에서 만나 신앙심에 끌려 결혼한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조화됐던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동서양의 차이들이 드러나더군요.집을 깨끗이 치우고 음식을 정성껏 차린뒤 손님 초대를 하는 우리네 습관과 소파에 잠옷이 걸쳐져 있어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생각이 부딪쳐 싸우기도 여러번 했습니다』 부인 이용복씨의 말이다. 언어를 통한 표현보다는 묵시적인 분위기나 감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한국정서를 이해못해 부인과 대화에서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이한우씨.서로를 인정하고 알려는 노력끝에 『모난 돌 두개가 부딪쳐 이제는 둥글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한다.서로가 「경멸한다」할 정도로 싫어하던 독일식 곰팡이 치즈와 냉면을 뒤바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게 된 것이 그 증거라고. 아직 이 부딪침을 둥글게 만들어가는 노력중에 있다는 두사람 사이에 처음부터 일치되는 부분은 바로 복단 향림 두 아이의 교육문제.「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과 뒷받침에 최대한 투자하고 단독 해외여행을 하도록해 자유로운 의식을 갖게 한다」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개방·국제화」된 교육관이다.이를 위해 이들은 두아이가 잠이 들때까지 옆에서 얘기를 들려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독일 마인츠대 불문학 석사출신으로 영어 스페인어등 7개 국어에 능통한 아빠의 영향인지 벌써 위인전을 독일어와 한국어로 교체 번역하는 수준인 조용한 성격의 복단과 또 그림,공작등 활동적인 과목에 능하고 독립적이며 강한 성격을 가진 미카 두 아이가 곱게 자라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교육방법이 성공적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나박김치와 조청을 직접 담가 사위사랑을 표현하는 장모(성남 거주)와 또 격년으로 독일에 갈때 마다 선술집의 맥주 한잔과 따뜻한 손으로 며느리 사랑을 잔잔하게 전하는 시부모가 든든하고 포근한 안식처로 느껴진다는 이들 부부.이속에서 아이들이 더 넓은 사랑을 배우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 겨울의 민속박물관/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세계의 수도가운데 6천년 문화의 젖줄인 큰 가람이 도시 한복판에 흐르고 30분내지 1시간 거리에 아름다운 산과 농촌을 가진 곳은 서울 이외에는 없다. 뚜렷한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어 생물의 성장이나 인간의 감성을 여유있게 만드는 우리나라는 축복된 나라이다. 그중에서도 박물관은 여유와 휴식의 공간이자 좋은 안식처이다.온가족이 같이 나들이하여 학교나 가정,사회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문화의 현장을 느끼는 곳이다.감독과 교사와 배울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과거와 현재,미래의 지식과 정보를 보고 느끼고 즐기고 문화를 재생산하는 창조적 공방이 박물관이다. 향원정의 연못가에서 보는 고대건축 양식의 국립민속박물관은 아름답다.역사의 저수지로서,왕조문화와 서민문화가 만나는 사회교육장으로서 민속여행의 지평을 열어주는 현장이다.아이들에게 할머니,아버지 세대를 이어주는 생활의 맥박으로서,우리민족의 삶을 재현시킨 고대문화의 샘터로서 개관10개월만에 3백50만이 찾은 서울의 명소이다. 계절별로 펼쳐지는 불우청소년 공예방,태권도·시낭송·춤 등 문화체육이 어우러진 어린이잔치,세대에서 세대를 잇는 할머니·손녀공예교실,도심속의 농촌인 사계절 텃밭과 우리민속놀이가 준비된 쉼터,봉산탈 한마당,우리가락 민요교실,토요학술잔치 등이 여가를 즐기려는 소박한 서민을 만나고 민족의 문화샘터로서 내일을 준비한다. 그래서 우리의 겨울은 약간 춥지만 박물관의 겨울은 문화의 향기로 따뜻하다.향기가 있는 박물관의 겨울은 바쁘다.3백50만 관람객에게는 전시설명도 해주고 1천만이 다녀가면 대폭교체될 신선한 전시,역사탐구의 조사연구,시급히 기록·정리해야할 5만점의 자료·유물전산화 등이 기다린다. 바깥 날씨와 국제환경이 춥다고 전문의사가 없는 병원 문을 열 수는 없다.문화교육기관인 민속박물관의 연구,사회교육,유물정리 등의 문화산업을 엄동설한에 떨게해서는 35만의 관람객이 앞사람의 뒷머리만 보고 가게 된다. 이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60명의 문화재 병원 의사의 시급한 충원은 94년 상반기에는 어떤일이 있어도 보강되어 봄박물관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 올해는 「가정의 해」/장경자 생활과학부 차장(오늘의 눈)

    94년은 UN이 정한 「세계 가정의해」이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도 UN의 취지에 맞춰 올해를 가정의 해로 선포하고 연초부터 건전가정 육성을 위한 각종 행사를 펼치게된다. 가정의해는 오늘날 세계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져 가정이 깨지고 버림받은 아이들및 소외된 노인과 굶주리는 이들이 늘어나는한 인류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는 시대적 인식에서 가정이 튼튼한 받침목이 돼야한다는 취지로 로마교황청이 요청,채택하게 됐다. 「가정의 해」 영어 표시는 International Year of the Family.따라서 처음에는 영어 그대로 「가족의 해」라 불렸다. 그러나 지금 전세계가 지구촌이라 불릴만큼 좁아져가는 추세에서 내가족만의 행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에서 「가정의 해」로 공식 명칭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일반인들의 생각으론 「가족의 해」면 어떻고 「가정의 해」면 어떻냐고 할지 모른다.그러나 「가족」은 혈연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람들만을 뜻하지만 「가정」은 반드시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한집에서 식구로 함께 생활하는 사람 모두를,더 넓은 의미로는 소외받는 이웃에 이르기까지 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은 밖에 나가 피곤에 지쳐 돌아오는 가족 모두를 하나하나 품어주고 그 피로를 말끔히 털어주는 쉼터요,따듯한 안식처가 돼야한다.가정에선 젊으나 늙으나 돈을 버는 사람이나 그렇지못한 사람이나 모두가 일체를 이룬다. 그러나 모든 가치체계가 물질화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는 가족단위까지 붕괴시킴으로써 우리 주변에는 표류하는 가정이 나날이 늘고 있다.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자식들이 있음에도 갈곳이 없어 떠도는 노인들,가족들에게서 조차 외면 당하는 장애인들….이런 상황을 시대적 문제로만 돌릴수는 없을것같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새아침,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마음으로 살며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뤄보자는 새다짐을 가져야겠다.
  • 문화가 달리는 도로/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하루의 고되고 축복된 일에 쉼표를 표시할 퇴근길 저녁의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자가용 행렬은 참으로 아름답다.진종일 열심히 일하며 생각하고 귀가하는 가장과 가족원은 따뜻한 가정의 식탁에서 하루의 피로를 녹일 것이다. 가정은 누구나 돌아가고픈 육체의 안식처요 영혼의 쉼터이다.가능하면 빨리 돌아가서 손발을 씻고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이야기도 하고 뉴스도 연속극도 볼 것을 생각하니 모두들 마음이 바쁜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바쁘다고 해서 야바위꾼들 마냥 난폭운전으로 끼어 들기를 하거나 다른차에게 심한 혐오감을 주는 운전행태 등은 아무래도 꼴 사나운 모습이다. 공적으로 바쁘지도 않은데 경광등 껌벅거리고 달리는 사이비경찰차,병원차,언론차,남의 생명을 담보하여 차선침범,음주운전을 일삼는 주당 전용차,폭주족의 최첨단을 달리는 거리의 불량배 오토바이,선팅한 차창밖으로 담배꽁초 버리는 운전자와 앞좌석에 맨발을 올려놓은 주인을 실은 얼빠진 외제차,바쁜 출퇴근 시간에 산보,물깃기,에어로빅노선을 달리는 주부들,비좁은 골목길과 한개차선을 완전차폐벽으로 만든 공사차,좁은 골목 소방도로에 점유가건물을 지은 지역 유지들 등등 참으로 대한민국의 교통문화는 아수라장이다. 도로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만 빨리 달리게 만든 공공시설물은 아니다.도로위에는 항상 건전한 시민의식과 윤리규범,도덕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문화가 혈맥처럼 순환되어야 한다.야만인이 움직이는 흉기의 자동차가 아닌 교양있는 인간이 순행하는 문명의 꽃으로서 문화의 차가 달려야 세상이 살 맛이 난다. 이제 정부와 경찰과 도로탓만 하지말고 시민스스로가 거리의 명소를 만들고 교통도덕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이다.이 모든 문제가 경찰과 행정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건전한 문화시민으로서 긍지,도덕,예의규범을 지키는 문화적 자존심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한동안 소시민의 찬사를 받다가 흐지부지된 출퇴근 버스전용차선에 얌체동물처럼 함부로 끼어드는 위반차량이 늘고있다.경찰의 명예를 걸고 서민의 공적인 부도덕 중후군을 중벌로 다스리자.그 야만적 행동이 뿌리 뽑히고수도시민으로서 문화화 될때까지.
  • 김 대통령 대국민담화 전문/쇄국보다 개국이 우리의 나아갈길

    ◎네탓 내탓 말고 이제는 힘 합쳐야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그동안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한 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데 대하여 그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계상황의 선택 그동안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하여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성원해 준 국민 여러분께 더욱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하든 쌀만은 지켜야 하겠다는 신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왔습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우리나라만이 미련하리 만큼 홀로 남으면서까지 비장한 각오로 노력 했습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그 마지막 벼랑에까지 우리는 갔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한계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쌀을 지키기 위해 GATT 체제를 탈퇴하고 국제적 고아로 혼자 살아갈 것이냐,아니면 GATT 체제를 수용하면서 세계화·국제화·미래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저는 과연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를 놓고 대통령으로서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보다 득 많을것 저는 두가지 길 가운데서 국제사회 속에서의 고립보다는 GATT 체제 속의 경쟁과 협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성장과 국부를 신장시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국제적인 고아가 되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도,발전할 수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문을 닫고 지키는 쇄국보다는 문을 열고 나가는 개국이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개방과 개혁,바로 거기에 민족의 활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고려할 때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분명히 우리가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는 진실로 『이제 이 길 밖에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타결이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시련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 시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거대한 도약과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께서 이와 같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신다면 그동안 제가 겪어야 했던 고충과 진실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UR협상의 흐름과 그에 따른 정부대책과 노력을 그때 그때 소상하게 알려 드리지 못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와 우리 정부는 그동안에도 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하여 민족의 피와 살인 쌀을 지키려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쌀 개방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정부가 먼저 쌀을 개방하려 한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주장입니다. 그런 방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협상대표로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정부는 지금 이 순간도 UR협상에서 마지막 하나라도 더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보고 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최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쌀수입 개방을 완벽하게 막지 못한데 대하여 거듭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 드립니다. 저는 쌀수입개방 반대를 외치는 농민을 비롯한 이 나라 국민의 실망과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 나아가 항복할 것이냐,아니냐를 놓고 벌인 주화파와 척화파의 논쟁을 연상케 됩니다. 주화파인 최명길선생은 이 나라가 오랑캐의 말발굽에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된다고 항복문서를 썼습니다. 척화파인 김상헌선생은 오랑캐한테 항복할 수는 없다고 그 항복문서를 찢었습니다. 최명길선생은 찢어진 항복문서를 주워서 다시 붙였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르기를 항복문서를 찢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되고,찢겨진 항서를 다시 주워 붙이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열파자 불가무,보습자 불가무). 그 모두가 애국적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찬반양론 역시 나라를 사랑하고,농민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목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방론자는 매국노요,반대론자는 애국자라는 이분법은 국론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부득이한 개방과 그에 대한 반대가 정쟁으로 번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합해 개방에 대비할 일이지,네탓 내탓을 따지면서 편 싸움을 할 일은 아닙니다. 국제사회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세계를 직시하고,나라와 겨레의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국민 여러분께서 우리가 처한 상황과 저의 충심을 이해해 주신다면,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데에 우리의 모든 힘과 지혜를 모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치열한 국제경쟁 앞에서 우리 내부의 국론분열과 정쟁은 우리 민족의 진취적 에너지를 스스로 소진하는 일일 뿐더러 변화와 개혁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낙오하게 만들 뿐입니다. UR는 우리에겐 개방과 국제화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입니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절대절명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담담하게 받아 들였으면 합니다.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높은 비용,낮은 효율을 극복하는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개방후의 농촌생존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농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개조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이요,마음의 안식처인 농촌을 새롭게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농민고통 분담을 농어촌 구조개선을 앞당기는 것,농산물 개방과 관련한 이익을 농민에게 돌리고 우루과이라운드로 생기는 이익을 농촌에 환원하는 것은 물론,농가보상,농지를 비롯한 농업 관련 제도와 구조의 개혁 등 종합적인 대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관계 부처로 하여금 결코 미봉책이 아니라 실제로 농민이 피부로 달라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우리 농업,우리 농촌,우리 농민 대책을 착실하게 집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 대비,농업구조 개선사업을 앞당겨 실시토록 하는 등 농업경쟁력 강화에 노력해 왔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쌀개방을 감내할 만큼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정부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쌀 개방만은 한사코 막아야 하겠다는 그 열정과 애국심으로 개방속의 우리농촌을 구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농촌,우리 농민을 돌보지 않으면서 외국이 우리의 농촌,우리 농민을 지켜주길 바랄 수는 없습니다. 부득이한 개방으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농민의 고통을 모두가 나누어 져야 합니다. 농촌과 농민을 향해 아픔을 함께 나누는 국민적 지원이 각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형 농업의 개발 등 자구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농산물과 농토를 사랑하고 우리 쌀을 우리가 먹는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막을 옥토로 만든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듯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농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패배주의와 내부분열,그리고 책임의 전가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그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어떻게든지 힘을 합해 이 어려운 시대를,냉엄한 국제현실을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패배주의 경계를 결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되겠습니다. 시련 앞에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되어서 이 시련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무서운 각오로 다함께 경제를 살리고,농촌을 새롭게 일구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농업의 끝이 아니라,우리 농업의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쌀 수입개방을 막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더욱 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그리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겠다는 겸허한 약속을 국민 앞에 드리는 바입니다.
  • 얼어붙은 사채시장(「실명경제」 열리다:5)

    ◎「검은돈」 불로소득 온상… 입지 치명타/부동산투기·해외도피 봉쇄가 급선무 사채시장의 요람 서울 명동.작년까지만 해도 땀흘리지 않고 앉아서 짧은 기간에 막대한 불로소득을 누린 곳이다.이때문에 연간 7조∼8조원으로 추산되는 「검은 돈」이 몰려들었다.고수익을 노리는 사채전주들과 급전을 구하려는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중개업소들이 2백여개나 문을 열고 호황을 누리던 곳이다. ○연 7∼8조원 몰려 그러나 지금은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고려상사」「오복성」「대양실업」….도무지 알쏭달쏭한 이름의 간판들이 내걸린 사채 중개업소사무실은 대부분 지난 13일부터 문이 굳게 잠겨 있다.일부 문을 열어놓은 업소들도 하루 종일 전화만 몇통 걸려올뿐 찾는 사람이 없다.공금리의 2∼3배 수준에도 돈을 구하지 못해 안달하던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렸던 예전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전주들 대부분 잠적 적게는 2억∼3억원에서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굴리던 사채전주들도 일시에 종적을 감췄다.명동에서 10억∼20억원을 굴리는 전주는 「중치」로,1백억원대가 넘어가면 「두치」로 통한다.이들은 대부분 실명제 실시가 발표되면서 장기(보통 1∼2개월)휴가체제에 들어갔다.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그동안 손쉽게 벌어들인 돈으로 오락과 휴식을 즐기면서 또다른 도피처를 찾아내기 위한 궁리에 몰두할 것이다.명동이 이들에게 더이상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사채전주들은 「검은 돈」을 은행·단자회사 등 제도금융권에 보관해두고 고금리로 사채시장에서 운용해 왔다.만약에 대비,계좌당 1억∼2억원씩 서너개에서 수십개의 가명 또는 차명계좌로 나눠두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이같은 신중함이 일거에 쓸모없게 됐다.전주들의 복잡한 자금거래 내용이 어항속의 물고기처럼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금줄이 끊어진 중개업자들도 명동을 떠나야 하기는 마찬가지다.중개업소들은 평균 5곳중 2곳 꼴로 문을 닫아 사실상 폐업상태다.문을 열어놓은 곳도 자금중개보다는 사태파악과 정보수집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명동의 사채중개업자 J씨는 『일부 중소기업에서 1억∼2억원정도의 소액 자금융통에 관한 문의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하루 거래액이 과거의 10%수준에 불과해 전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사채시장 규모는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지만 대개 7조∼8조원으로 추정된다.총통화 1백조원의 7∼8%를 차지하는 규모이다.사채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 72년의 사채동결당시에는 당국에 신고된 것만 3천4백56억원으로 당시의 총통화 1조2천3백억원의 28%에 달했었다.그이후 사채시장 규모의 절대액은 계속 늘어왔지만 전체 경제규모와 비교하면 그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왔다.특히 새정부가 출범하고부터는 사정활동이 강화되면서 작년에 비해 절대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금융실명제는 사채시장에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와 한은관계자들은 금융실명제가 정착되면 사채는 대부분 제도금융권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전망이 일치하고 있다. ○실명제 성패의 변수 실명제이후 사채자금이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는 실명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이다.사채자금이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부동산등의 실물투기와 해외도피,제도금융권으로의 흡수,개인금고나 장롱속으로 들어가는 퇴장의 네가지 경우 이외에는 없다. 실명제이후 현재까지 부동산투기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조짐은 발견되지 않는다.그러나 앞으로 은행에 묶여 있는 자금들이 풀려나오게 되면 부동산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기근절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도피의 경우 휴대 또는 송금은 쉽게 발각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기업들이 수출입 가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빼돌릴 수 있다.퇴장의 경우는 이익추구에 가장 민감한 사채자금의 속성상 금리와 인플레 차액만큼의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간 퇴장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채자금의 제도권흡수 여부는 결국 실물투기와 해외도피 수단을 얼마만큼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 다섯분 선열 편히 쉬소서(사설)

    환국하신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오늘 우리는 생전의 님들이 일구월심 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에 님들을 안장합니다.하늘도 울고 땅도 웁니다.구슬피 울려 한강의 흐름따라 굽이쳐 흘러내리는 저 진혼나팔의 호곡소리를 들으십니까.우리들도 비로소 국민된 도리를 뒤늦게나마 한것같은 자창속에서 자책로운 참회의 고개를 숙입니다.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중원땅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치신 님들의 행적을 기려봅니다. 님들은 평안한 명목이 못된 영면70년에 이제야 평안히 눈을 감을 안식처를 얻으신 것입니다.이제껏 잠들어 계시던곳은 님들이 영원히 누워계실곳은 아니었습니다.그 짧지않은 세월동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고국땅에 이제 누우시게 되었습니다.조국의 땅을 베개삼으시고 조국의 땅을 이불삼으시어 춘풍추우70년의 객지잠을 청산하시게 되었습니다. 다섯분께서 걸어오신 생애는 일일이 매거할수 없을 정도로 애국·우국으로 일관된 형극의 길이었습니다.나라잃은 분통함을 안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분골쇄신하며 동분서주하신 평생이었습니다.조국과 겨레에게 영광을 안기고자 일신을 홍모와 같이 여기신 고귀하고 숭엄한 삶이었습니다.민주사위에 영원히 빛날 족적을 남기신 님들을 안장하는 오늘 우리들은 다시한번 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기려봅니다. 님들은 이국땅에서 환국하시면서 온국토에 애국혼을 흩뿌려 놓으셨습니다.영현봉안실에 안치되어 계시는 동안 줄을 이은 참배행렬은 님들이 일깨워주신 겨레의 마음이었습니다.님들은 말없이 돌아오셔서도 그렇게 나라와 겨레위하는 마음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나라가 무엇이고 겨레가 무엇이며 이나라의 겨레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역사의 키를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함을 가르쳐주신 환국이었습니다.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핏줄의 대화로써 이어준 교훈은 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일본을 보고 있습니다.그들이 우리와의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오는가를 보면서 선열들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의 시대장황을 헤쳐나가고자 다짐하는 터입니다.님들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나라로 가꾸어나갈 결의를 새로이합니다.그러는 한편으로 환국하지 못한 순국열사들의 유해와 혼백을 모셔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도 아울러 다짐합니다.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이제는 평안히 눈을 감으시옵소서.그럴수 있는 임정의 법통을 이은 땅입니다.그후손들이 이렇게 두손모아 사죄드리면서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평안히 잠드시옵소서.부디 평안히 쉬시옵소서.
  • 인도,성우에 유배령/뉴델리시내 어슬렁…“윤화주범”(세계의 사회면)

    ◎성지 브린다반에 2백마리 압송 힌두교도들은 소를 성스러운 동물로 취급한다.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에서는 소를 잡아먹거나 학대하는 일이 대부분 법으로 금지돼있다.소가 도로 한가운데를 어슬렁거려도 심하게 다루지 못한다. 수도 뉴델리만하더라도 매일 시외에서 들어온 수백마리의 소가 활보한다.소가 대로를 거닐어 교통체증이 심화되는 일이 다반사다.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소는 아란곳하지 않는다.1일 평균 5명꼴로 사망자를 내는 뉴델리시내 교통사고의 상당수가 소때문에 발생한다.시내에서 발견된 소는 시외곽으로 돌려보내도록 돼있으나 한번 시내원정에 재미를 들인 소는 며칠안돼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소때문에 골머리르 않아온 뉴델리시당국은 마침내 묘안을 짜냈다.시내거리를 방황하는 소들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모시기로」한 것.힌두교들의 정서를 의식,고심끝에 안식처는 북부의 힌두교 성지인 브린다반마을로 정했다.부린다반은 힌두신전의 주신인 그키슈나신이 성장기에 목동생활을하던 우유와 버터의 고장이다. 시당국은 지난주 처음으로 2백마리의 소를 붙잡아 트럭에 태워 브린다반으로 보냈다.이에 앞서 시직원들이 브린다반을 사전답사해 소들의 새로운 삶으 터전을 훌륭히 장만해놓은 것은 무론이다. 거리의 무법자 성오가 점차 사라지자 뉴델리시내의 교통소통은 당연히 눈에 뜨게 나아졌사. 한 시직원은 『이같은 간단한 교통적체 해소방법을 짜내는데 수십년이 걸린 셈』이라며 진작에 시행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 꽃놀이 여행없는 북한의 봄/거주지역 벗어난「명승지관광」생각도 못해

    ◎평양주민,그나마 대동강­대성산 찾아 “상춘”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나는 봄이 되면 서울을 에워싼 모든 도로는 봄나들이를 나선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네 모습이지만 북녘동포들은 봄맞이를 어떻게 할까. 잘 알려졌듯이 북한은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론 여행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때문에 개개 주민이 거주 시·군을 벗어나 사사로운 여행을 즐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때문에 평양등 대도시의 주민들은 공휴일같은 날 가까운 공원지대등을 찾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중 평양주민들은 「혁명의 수도」에 사는 선택받은 특권층답게 그어느 지역보다 다양한 위락시설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들은 4월이면 그들의 최대명절이라는 김일성생일을 맞아 평양중심가에서 서남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김일성의 출생지,「만경대혁명사적지」를 참관하는가 하면 가족끼리 북동쪽으로 6㎞ 떨어진 대성산에 위치한 북한최대의 유원지 「대성산유원지」를 찾아 비록 허름한 도시락이나 함께 나누며 한때를 보낸다고 한다. 지난 71년 개장한 이 유원지는 총부지 2천여 정보에 관성열차등 어린이놀이시설과 그네터·씨름터·배구장·보트장·수영장등을 갖추고 있다.또 구내에는 고구려시대의 역사유물인 대성산성과 동물원및 식물원이 들어서 있는데 북한어린이들이 이곳에서 노는 사진이 북한의 선전책자에 종종 실리고 있다. 평양에는 또 「수도의 정원」으로 불리는 모란봉공원이 있어 평양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있다.야외극장과 각종 유희시설을 갖춘 청년공원 아동공원 산림전시관 인공호수(6개)및 인공폭포등과 각종 유실수가 심어져있는 이공원에서는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들이 친구들과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평양에는 이밖에도 김일성출생지인 만경대인근에 북한의 대표적인 아동유희장인 만경대유희장이 82년 김일성의 70회생일을 기해 개장돼 운영중에 있는데 입장료는 10전,개별시설물이용시 별도요금을 내야한다.또 대동강과 보통강가에는 능라도유원지와 보통강유원지가 각각 조성돼 사사로운 용무로는 평양시를 한치도 벗어날수 없는 주민들의 갑갑증을 다소나마 달래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즉흥표현 선구” 미 현대무용가 내한

    ◎사라 피얼슨·패트릭 위드리그 공동무대/「향수」 「침묵의 역사」 선보여 즉흥표현 워크숍과 공연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미국의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사라 피얼슨과 패트릭 위드리그가 20∼21일 하오7시30분 서울 포스트극장(337­5961)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지난 86년부터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들이 이번 서울무대에 선보이는 작품은 「향수」와 「친밀한 이방인」「침묵의 역사」등 모두 세편.특히 이번 공연에는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창무 인스티튜트에서 이들이 실시하고 있는 즉흥신체표현 워크숍 수강자들이 찬조 출연한다. 「향수」는 89년에 안무한 작품으로 다이내믹한 구성으로 격정과 고요함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인간의 근원적인 안식처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2인무로 공연시간은 25분.「친밀한 이방인」은 두 문화와 언어,춤과 공연예술,침묵과 말등 서로 상이한 개념들사이의 연결과 분리의 역동성에 관한 것. 92년 최신작인 「침묵의 역사」는 인간관계에 있어 여러가지 다양한 침묵의 단면들을 묘사한 작품이다.순수하고 열정적인 독무와 듀엣이 인상적이며 예기치못한 비극적인 장면들과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어우러져 있다. 10년 이상 신체작업 테크닉을 구사해온 사라 피얼슨은 89년 미국 안무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해 예술안무가를 위한 뉴욕재단의 수상자로 선정되는등 미국의 최정상급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위드리그는 스위스 출신으로 84년 미국으로 전문적인 무용공부를 하러 오기전에는 국민학교 선생님을 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
  • 고 조규영기자 회사장 엄수

    지난달 31일 순직한 스포츠서울 편집부 고 조규영기자(39)의 영결식이 2일 상오 8시 유가족과 회사임직원 조객 등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신문사장(장례위원장 윤형섭사장)으로 서울 동대문구 회기1동 경희의료원에서 치러졌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식장을 출발,고인이 근무하던 서울 태평로 본사사옥에 들러 사우들로부터 명복을 비는 마지막 묵념과 배웅을 받으며 장지인 충북 충주 공원묘지로 떠났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하오 1시께 장지에 도착,유가족과 동료들의 오열속에 영원의 안식처에 묻혔다.
  • 종교지도자들 신년 메시지

    1993년 계유년 새해를 맞아 국내 각종파의 대표들은 대국민 신년 메시지를 발표,화평과 대화합의 한해가 되어 민족통일의 기틀이 이루어질 것을 기원했다. ◎평화이룩 역사적인 해로 ■장희동 구세군사령관=19 93년 희망찬 새해가 성큼 다가왔습니다.지난 한해 한국사회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속에서 시한부종말론과 같은 불건전한 신앙에 가려 교회는 안팎에서 심각한 신앙에 휩싸여 교회는 안팍에서 심각한 비난과 도전의 표적이 되었던 해이기도 합니다.무엇보다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어다』는 우리의 간구대로 하늘에는 영광,땅에는 평화를 이룩하는 역사적인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화합으로 뭉쳐 전진할때 ■오익제 천도교교령=천도교의 화한 바람이 온누리에 불어서 인내천,사인여천의 새로운 진리가 사해에 넘쳐 화홍초록 봄언덕에 온갖 새 부르짖는 지상천국의 세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새해에는 퇴보가 아닌 전진과,분열이 아닌 화합으로 우리 모두 더욱 젊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 7천만 겨레의 소망인 통일이 이루어지고 전인류에게는 기쁨이 충만하는 한해가 되기를 심고드립니다. ◎이젠 상생의 새시대 건설 ■경석규 대순진리회종무원장=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분열과 대립,반목과 투쟁을 일삼던 인류의 과거의 모든 원한과 모순을 풀고 상생의 도로서 세계가 하나로 뭉치고 전인류가 함께 영화와 복락을 누릴수 있는 보람찬 내일을 건설하는데 매진 하여야 하겠습니다.이것이 상극적인 대립에서 상화 상친 할수있는 상생의 시대로 전환되는 즉 세계화평,인류의 화평을 이룩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민족 평화통일 향해 전진 ■권호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새해에 「우리는 한 민족 한 교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교회의 일치를 위한 운동을 교단차원 지역차원 그리고 개교회차원으로 폭넓게 넓혀가 한국교회에 일치의 뿌리를 굳건히 내려갈 것입니다.일치된 한국교회의 역량으로 남북교회의 영적일치와 그를 통한 민족의 정신적 일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 95 민족의 평화통일 희년」을 향해 전진해 갈 것입니다. ◎마음 맑혀 순수성 회복을 ■안덕암 태고종종정=눈이 흐리고 보이지 않으면 남을 이해할수 없고,이해할수 없기 때문에 화합을 이루어낼수가 없다.강물이 흐리고 부패하면 나하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고통을 겪어야 한다.우리는 마음을 맑혀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고 밝은사회를 건설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새해에는 사람마다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서 보다 밝은 세상,보다 즐거운 삶을 살도록 모두가 정진해야 할 것이다. ◎곳곳에 자비훈풍 넘치길 ■김대산 원불교종법사=이해를 초월하신 천지님과 제불제성님과 부모님들께서는 영원한 세상에 의무와 책임만 다 하시므로 늘 자비 충만하사 만중생이 보호를 받는 휴식처요,휴양처요,안식처입니다.우리 모두는 큰 집안,큰 식구,큰 살림,큰 마음의 진리와 철학과 사상을 길러 계유년 한해를 이 자비무량 법문으로 생활표준을 삼아 시비 이해를 초월하여 당하는 곳마다 자비훈풍을 불리시기를 기원합니다.
  • “「사할린의 한」 고국서 풀렵니다”

    ◎무연고 독신 노인교포 76명 어제 영주귀국/춘천군 「사랑의 집」서 여생보내/징용뒤 50년간 설움속 타국살이/“고향에 뼈 묻게돼 이젠 여한없어” 『꿈에도 잊을 수 없던 고향에 다시 돌아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29일 하오 2시10분(현지시간 하오 4시10분)사할린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천천히 미끄러져나가는 대한항공 전세기에 몸을 실은 사할린동포 1세 76명(남 69·여 7명)은 설렘과 감회가 교차되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한채 눈물을 글썽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거나 눈을 감는 모습들이었다. 『도대체 고향이 뭐길래…』 이번에 영주귀국하는 65세가 넘은 동포들중 최고령인 강시동옹(90·경남 하동출생)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연신 훔치며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강옹은 자신의 생일보다 아직도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44년2월16일 아침,아내와 4살난 아들을 고향에 남겨놓고 일제의 강제징용에 이끌려 산설고 물설은 머나먼 이국땅 사할린으로 왔다.태평양전쟁 막바지를 악으로 버티던 일제의 활주로 건설작업에 투입돼 전쟁이 끝난 45년9월까지 하루 15시간 이상 땅을 파는 중노동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해방이 됐건만 강옹에게는 주인만 일본군에서 소련군으로 달라졌을 뿐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밭에서 이삭을 주워먹고 풀을 뜯어 연명하는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탄광부로 끌려왔던 한국인 여자를 만나 40년대말 현지에서 재혼을 하고 아들·딸까지 두었으나 11년전 부인이 사망하면서 자식들마저 노쇠해진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어느날 말없이 떠나갔다.다시 혼자가 된 그는 지난 89년 모국방문단으로 45년만에 고향을 찾은 이래 『반기는 사람들은 없지만 뼈만은 고국땅에 묻겠다』고 다짐,마침내 소원을 이루게 됐다고 한많은 세월을 되뇌었다. 『이제야 기나긴 고통의 세월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원두옹(72·경북 칠곡군 지천면 백운동출생) 역시 지난 43년9월 결혼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아내를 뒤로 하고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왔다.56년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그동안 고수했던 무국적의 고집을 버리고 러시아국적을 취득했던 것이 평생 마음에 걸린다는 그는 『또다시 자식과 생이별하는 아픔보다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너무나 커 인간으로서 해선 안될 짓을 다시 하게됐다』고 풍파가 새겨놓은 깊은 주름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는 또 『막노동하며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마늘냄새가 난다며 식품가게에서 쫓겨나던 설움과 마누라에게조차 소수민족이라고 멸시를 받으며 살았던 수모는 떠나는 이날까지 잊혀지지 않는다』며 입을 굳게 다문다. 43년 가을 결혼 한달만에 징용에 끌려가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따라온 박정숙할머니(66·경남 하동출생)는 4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젖먹이 아들 하나에 의지하며 50년 가까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울먹인다.부모님의 산소에 절이라도 한번하고 그 곁에 묻힐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남몰래 간직해온 소원을 말한다.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약소민족으로서의 설움을 평생 몸으로 체험하고 돌봐줄 피붙이 하나없이 쓸쓸한 여생을 보내던 이들은 앞으로 강원도 춘천군의 서울 광림교회(담임목사 김선도)가 운영하는 양로원 「사랑의 집」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게 된다. 귀국동포들은 30일 민속촌과 삼성전자를 둘러보고 1일부터 사흘간 고향을 방문한뒤 사랑의 집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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