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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군사전략(일본 「21세기 야망」:6)

    ◎자위대 행동반경 전세계로 확대/전수방위전략 탈피… PKO명분 적극 파병/군비 계속 증강… 93년 방위비 지출 세계 2위/“미안보그늘 벗고 독자노선 걷자” 보수·우익 세력 꿈틀 1992년 9월17일.일본 히로시마 하늘에 옛일본 해군이 애창하던 「군함행진곡」이 울려퍼졌다.그 장엄한 군함행진곡을 울리며 일장기의 물결속에 3척의 자위대 함정이 히로시마현에 있는 구레기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교쿠지쓰(욱일)기를 휘날리며 떠난 자위대 함정에는 4백20여명의 자위대원들이 타고 있었다.캄보디아로 파견되는 자위대원 제1진이었다.일본군이 47년만에 아시아대륙에 다시 상륙하기 위해 발진하던 역사의 현장 구레기지.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당시 방위청장관은 출정식에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격려했다.미야시타 전방위청장관의 말대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은 일본의 군사전략이 전통적인 전수방위(전수방위) 개념에서 세계전략으로 대전환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일본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캄보디아의 재건과 평화유지를 위해 자위대를 파견했다.국내의 많은 논란과 당시 야당이었던 사회당등의 강력한 반대속에 92년6월 만들어진 PKO협력법은 일본군이 다시 해외에 파견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평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이 세계 곳곳에 파견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자위대가 파견된 캄보디아 남부 다케오 기지에도 일장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인 유엔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었다.PKO협력법은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함으로써 일본의 과거 침략자적인 이미지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침략자 이미지 제거 일본의 군비증강과 군사적 대외전략의 확대는 7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집단자위권과 교전권을 인정하지않는 평화헌법아래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과 평화주의를 유지해왔다.1969년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 총리는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일본 영토에 한정시키겠다는 「전수방위」개념을 도입했다.그러나 일본은 옛소련이 75년 통일된베트남을 후원하고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등 아시아에서 군사적 팽창주의노선을 강화하자 미·일안보조약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전략으로 전환했다. 군사전략의 전환은 군사력및 국방예산의 증가와 자위대의 행동반경 확대를 축으로 하고 있다.스즈키 젠코(영목선행)총리는 81년5월 미국을 방문,레이건 당시 대통령에게 「1천해리 해역」의 방위를 일본이 맡겠다고 약속했다.과거의 전수방위 개념이 지역방위전략으로 확대된 것이다.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총리도 83년 미국을 방문,「1천해리 방위」를 재확인하고 일본열도의 「불침 항모론」을 공언하며 군사력 증강을 역설했다.그는 그동안 유지돼온 군사비의 GNP 1% 한계론을 깼다.87년부터 89년까지 방위비 예산은 GNP의 1%를 넘어섰다.그후 방위비는 다시 GNP의 1%이하로 낮아졌지만 방위비의 증가는 멈추지않고 있다. ○세계 군축조류 역행 일본의 방위비 증가는 냉전후 미국과 러시아·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국방비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군축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93년10월에 발표한 「군사균형(1993∼94)」에 따르면 일본의 93년 방위예산은 약4백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일본은 더욱이 앞으로도 방위예산을 계속 증가시킬 예정이다. 일본은 군사력의 증강과 함께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적극화하고 있다.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이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는 일본은 자위대를 아프리카 대륙에 파견한 데 이어 골란공원등 중동과 다른 지역의 파견도 검토하고 있다.일본은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미국과 유엔과의 협조체제를 바탕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은 냉전이 끝났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위협적이며 중국의 계속되는 군비증강및 북한의 핵개발등 주변의 안보위협 때문에 미국과의 협조체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일본은 또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불안을 없애고 정치적 신뢰를 얻기위해서도 미·일안보조약및 유엔의 틀안에서 군비증강을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 방위비 4백억불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국익에도 맞는 일이다.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그 역할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증강되는 것은 원치않고 있다.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그러나 일본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경 보수·우익세력의 「미국으로 부터의 독자노선」과 21세기 어느날 심각한 마찰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지금과 같은 미·일안보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미·일안보조약의 수정속도나 그 방향은 아직 미지수다.그러나 미국이 일본이나 아시아에서 안보부담을 덜기 위해 미군을 감축한다면 이 지역의 안보균형이 깨질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일본·중국등이 군비증강을 가속화하여 동북아시아에 불안한 긴장이 조성될 위험성이 있다. 일본은 물론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는 한동안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역사는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역사는 많은 변수를 안고 영속하며 중요한 것은 시대흐름의 방향이다.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의 실험을 끝낸 일본.그 일본이 전후 50년을 계기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갖춘 대국으로의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 중국/등 사후 집단지도체제 가능성/미 국방부 「단기적 장례」보고서

    ◎2년내 분열 50%·현상유지 30%/완전붕괴 되면 북한 체제도 위험 중국은 등소평 사후 분열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의 분열은 북한의 장래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미 국방부보고서가 내다봤다. 미 국방부가 국방부·의회·학계·금융및 산업계 인사 17명에게 위촉·작성해 지난 24일 공개된 등 사후 중국의 장래에 관한 보고서 「단기적으로 본 중국」는 등 사후 중국에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고 경제개혁과 제한적 정치자유화를 강조해온 등의 기본노선도 큰 변화없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군부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과도기의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할 것이라고 내다본 보고서는 그러나 이같은 과도체제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미국의 이해와 상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등 사후 2년 사이 중국이 ▲기존노선을 유지하거나 ▲보다 적극적인 자유화 개혁을 추구하든지 ▲옛 소련과 유사하게 분열되는 3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면서 이중 분열 확률이 50%로 가장 높고 기존노선 유지는 30%,자유화 개혁 쪽은 20%의 확률 밖에없는 것으로 진단됐다. 보고서는 중국이 갈라지면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비공산 인사가 막강한 배경을 안고 전면에 나서거나 ▲지역 분권화 또는 ▲완전한 붕괴중 하나가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비공산 인사가 부상하면 군부의 입김이 더욱 강해져 중국군의 현대화가 촉진될 것으로 전망됐다.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중국군의 ▲예산 대폭 증액 ▲해군 대양 진출 본격화 ▲해·공군 기동력 강화 ▲핵무기 개발및 ▲지상병력 증강이 추구될 것으로 덧붙였다.중국은 이 경우 한반도에 대한 전략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주한미군의 철수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됐다. 보고서는 중국에서 지역 분권화가 이뤄지면 옛 소련과 비슷한 『느슨한 연방』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지역별로 새로운 통화가 나오고 토호 세력과 연계된 신흥 지배층이 형성될 것으로 분석했다.이때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은 「불개입」이란 기조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는 중국의 완전붕괴가 최악의 시나리오라면서 중국이 붕괴되면 극도의 혼란 속에 대규모 난민이발생하고 「북한도 무너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등 사후 중국의 장래와 관련해 ▲미·일 안보조약을 유지하는 등 기본 대 아시아 전진 배치 전략을 고수하고 ▲내정 간섭을 피하면서 중국과 경제·안보 협력을 활성화하는 한편 ▲대만의 독립과 이 나라에 대한 미제무기 판매 문제를 둘러싼 워싱턴의 방침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 「시대흐름 읽은 통찰력」일 부흥 일궜다(신 지도자론:4)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새진로 찾는 일본/「군사력없는 경제대국」 국가목표 설정/요시다/보수화 국제조류 타고 “정치대국”발진/나카소네/「록히드」등 정치자금 스캔들 사회자정 계기로 일본은 역사의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중의 하나이다.시대의 흐름을 국가발전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그러한 능력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의 합작품이다. 일본이 전후 반세기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지도자의 정책과 그것을 충실히 실행한 국민의 힘이었다.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시다 시게루.요시다는 참담한 패전의 절망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46년부터 54년까지 5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요시다는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목표를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경제건설에 집중 투자했다.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필요한 것은 경제부흥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그의 전략적 선택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올바른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요시다는 미·소냉전속에서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안보는 미국의 맡기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요시다는 그러나 경제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그는 열렬한 천황숭배주의자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상적·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요시다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를 냉철하게 읽고 경제지상주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찰력 있는 선택이었으며 전후 전혀 새로운 상황은 통찰력과 뚝심있는 요시다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요시다의 뒤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총리 등도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을 충실히 실행해왔다.국가주의 신본자인 기시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일본지도자들은 전후 기술과 시장을 함께 제공한 미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시다이후 70년대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다.그는 「결단과 실행」의 정치인 답게 「일본개조론」을 내세우며 전 국토의 개발이라는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했다.그의 개발론은 부동산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경제를 더욱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나카는 또 외교에도 과감했다.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 움직임을 보이자 「컴퓨터가 장착된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84일만에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다나카는 중국의 중요성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 차지하는 무거운 비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다나카는 그러나 과거사문제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지만 과감하게 정상화를 이루어 지도자의 결단력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청렴성이 부족했다.그는 개발이익을 정치자금과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더욱이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되는 불행을 맞았다.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쓸쓸히 사라진 그의 비극은 정치가에게 도덕성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정치에 보수화물결이 나타나자 일본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며 민족적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를 선도했다.나카소네는 레이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높혔다.나카소네는 전후 일본이 고수해왔던 평화주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고 군비증강을 시도했다.그의 정책은 내외에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지금의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위해 발진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정치에는 고질적인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됐다.다나카 뿐만아니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도 정치자금 스캔들로 사임했고 마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스캔들에 연루됐다.정치자금 스캔들은 그러나 일본사회를 정화하는 중요한 자정의 계기가 됐다.일본인들도 고도성장기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을 어느정도 묵인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다.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인기속에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그러나 호소카와도 정치자금의혹에 연루되며 8개월 만에 총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됐다.그러나 호소카와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 살아남기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인 것이다.일본은 지금 정치적 혼돈속에서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일본은 전후 경제제일주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경제신화를 이룩하고 지금은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적 혼돈은 그러한 실험이 아직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위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 “미일 안보조약 재검토”/방일 탈보트 부장관

    【도쿄 AFP 연합】 미국과 일본은 지난 51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을 냉전종식상황에 맞게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스트로브 탈보트 미 국무부 부장관이 25일 밝혔다. 일본을 공식 방문중인 탈보트 부장관은 이날 미일안보조약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 공약의 초석이 돼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동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상황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51년 처음으로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을 체결한 뒤 미군의일본 주둔을 계기로 60년 이 조약을 개정한 바 있다.
  • 정치판도 우경화(일본 「21세기 야망」:3)

    ◎“유리한 국제질서 창조” 신보수주의 대두/해외파병 제약 평화헌법 개정론 점차 확산/오자와 등 뉴리더들,“권력집중” 양당제 구상/무라야마 등장,사회당 해체 앞당겨 역사에 적응력 과시 『일본으로부터 미국에 좋지않은 두가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달러하락과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이라는 뉴스입니다』 일본에 사회당총리가 탄생한 다음날인 지난해 6월30일 미국의 NBC TV방송이 도쿄발로 보도한 뉴스다. NBC방송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위원장이 일본총리로 선출된 것을 이같이 미국에 나쁜 뉴스라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스도 같은날 『사회주의자가 일본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고 냉전시대 「거대한 악」이었던 사회주의자가 아시아 동맹국 일본의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미국에 나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지않은 뉴스의 더 심오한 의미는 사회당위원장이 총리가 된 오늘의 정치상황이 아닌 다른 차원에 있을지도 모른다.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사회당의 몰락을 앞당기고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강화를 촉진하며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조금씩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의 거시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무라야마 위원장도 자신의 총리선출이 사회당의 몰락을 촉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해서일까 당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사회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역류가 아니라 일본의 놀라운 역사의 적응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일이다.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국제공헌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라 전후 반세기동안 1국 평화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사회당의 퇴조를 가속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의 퇴조와 함께 일본에서는 미국의 보수화 회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그것은 일본정치의 총보수화라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보수화가 일본정치의 큰 흐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나카소네 내각의 등장 때라 할수 있다.그는 저서 「새로운 보수의 논리」에서 『지금은 국내경제본위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욱 넓은 세계를 향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한 시대다.그것은 곧 보수통치의 부활이다』하고 역설했다. 안으로는 보수화,밖으로는 대국화를 지향하는 나카소네 전총리의 이러한 보수정치와 「전후정치의 총결산」 외침은 2차대전전 일본의 전통적 가치였던 국가주의와의 연속성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그러나 전후 교육을 받은 뉴리더들의 신보수주의는 천황제나 신도사상등 복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그들은 국제적 변화에 대응 일본도 국가개조를 하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자들이다.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하타 쓰토무 전총리등 뉴리더들은 극우파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다.그들은 일본 국왕을 신으로 보지 않으며 군사력으로 현대판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극우파의 제국주의적 환상도 거부한다. 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은 오늘의 일본은 국제적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커졌다고 인식하고 있다.막강한 경제·산업·기술력을 갖고 있는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국제질서에 순응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유리한 국제질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전후세대들은 물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침략과 패전의 아픔보다는 성장과 풍요로움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적 우월감과 자신감에 도취하여 또다른 패권의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그러한 우려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보수주의 뉴리더들의 군사적 국제공헌론과 일본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국화 의식」에서 읽혀진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후 국제상황에 맞지않는 국내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이내믹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정치개혁을 단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의 선거개혁이다.소선거구제가 도입됨에 따라 일본정치는 2대 정당제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당·공산당등 혁신세력은 설땅을 잃어가고 있다.오자와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 일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집중형 양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일본의 국제화·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하나 남아 있다.헌법의 개정문제다.평화헌법은 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있다.물론 지금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해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되고 있다.그러나 훨씬 더 적극적인 해외파병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헌은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0%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평화주의 유토피아」에서 안주하려는 세력이 강하다.그러나 평화헌법은 미군점령기의 굴욕적 유산이라는 민족주의자들의 외침속에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최대의 평화헌법 수호자인 사회당은 그 존재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을 바꾸는것은 일본이 강요된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한 과정일지 모른다.일본이 언제까지나 평화헌법 틀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역사인식이다.일본은 본래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그러한 변화는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그것은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일본방위아카데미 책임자를 역임한 온건보수파 지식인 마사미치 이노키도 『평화헌법의 개헌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나머지 마귀들이 모두 튀어나와 밤공기를 어지럽히는 사태와 같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 남북대화 재개돼야 한다(사설)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3일 『미국과 북한의 3단계고위급 2차회담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전반적인 남북대화재개를 북측에 제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정부와 민자당의 당정회의에서는 정전협정을 남북한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키로 했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북자세를 환영한다.그동안 북한은 핵문제등 모든 대외정책에서 우리정부를 배제한 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만 그들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고식적인 자세를 견지해왔고 이 때문에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다.평양과 베를린에서 열린 미·북의 전문가회의에서도 북한은 대미관계개선을 위한 연락사무소설치에만 역점을 두었을뿐 핵문제타결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안전성,수출실적,성능검증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한국형경수로지원을 거부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정부가 남북관계를 화해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반도문제는 남북의 당사자끼리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기본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우리정부가 남북대화의 재개를 추진하고 정전협정의 남북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을 대북정책의 전면수정이나 변화로 보아서는 안된다.정책의 변화라기보다는 미·북접근과 관련된 현실인식의 바탕에서 나온 실용적인 자세의 융통성 발휘라 할 수 있는 것이다.미·북3단계고위급 2차회담에서 북핵문제가 해결국면으로 접어들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면 한반도의 현안을 남북의 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그로 인해 이땅에 화해와 평화의 기틀이 정착되도록 유도해나가겠다는 우리정부의 변함없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되어 있다.『남과 북은 현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 것이 그것이다.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정전협정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미국과만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이같은 북한의 논리는 주한미군철수와 한·미안보조약 폐기를 목표로 하는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에 맞춘 억지일 뿐이다. 북핵을 비롯한 모든 한반도문제해결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다.따라서 한국이 제외된 상태에서는 어떤 해결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우리정부의 새로운 대북이니셔티브는 그러한 인식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북한당국자는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한반도관련의 모든 문제는 결국 남북한당사자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 주일 9군단사령부 해체/미,전역사 대체/현 병력수 유지

    【도쿄 로이터 연합】 미군당국은 그동안 일본방위를 전담해온 미육군 제9군단사령부를 해체하고 그 대신에 전역사령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6일 발표했다. 주일미군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미·일 안보조약에 따른 일본방위주력부대인 미육군 9군단을 대신해 제9전역사령부가 신설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일미군사령부는 새로 신설되는 부대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전진 배치돼 있는 미군부대와 유사한 형태로 현재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의 수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일미군 지휘체계의 개편으로 9군단이 수행해온 일부 업무는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1군단이 비상사태 발생시 일본에 증파되는 형식으로 대신하게 된다. 주일미군당국의 이날 성명은 9군단사령부의 해체로 미군의 대일방위력 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다.
  • “주일미군 본토서 지휘”/일 자위대 비상작전에 차질 예상

    ◎방위청 소식통 밝혀 【도쿄 로이터 연합】 일본은 군사공격 등 비상사태 발생시 미국에서 증원배치될 미군병력을 지휘하게 되는 핵심부대를 잃게 될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5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방위청소식통을 인용,미국방부가 일본 가나가와(신나천)현에 주둔중인 육군 9군단을 미서부 해안지역에 주둔하는 1군단과 통합할 것이라고 전하고 9군단의 통합은 유사시 미군부대의 증원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자위대의 작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미·일안보조약에 따르면 9군단은 일본이 군사공격을 받는 등 비상사태 발생시 하와이와 본토에서 증원배치될 9만명의 미군부대를 지휘하게 돼있다.9군단은 침공행위 발생시 증원부대의 배치및 조정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보부문 인력으로 주로 구성돼있다. 일본방위청대변인과 주일미대사관은 이같은 보도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 “자위대 보유는 합헌”/당대회서 공식 추인/일 사회당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연립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당은 3일 임시당대회를 열어 군사력 보유가 위헌이라는 기존의 노선을 일대 전환,자위대의 합헌을 인정하는 등 당의 기본정책을 현실화시켰다. 일본 사회당이 자위대의 합헌을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당은 이와 함께 한때 격렬히 반대했던 미­일 군사동맹관계도 인정,미일안보조약을 강력하게 준수해 나갈 것도 승인했다. 사회당은 이날 무라야마(촌산부시)총리와 구보(구보선)당서기장 등 당 지도부가 마련한 새 활동방침 「당면의 정국에 임하는 당의 기본자세」를 토의에 붙여 격론끝에 승인했다. 이날 당내 우파는 문구 등을 다소 고친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1백52대 2백22로 부결 처리됐다. 이날 채택된 사회당의 현실노선에는 기미가요를 국가로 인정하고 일장기를 국기로 인정하며 가동중인 원자력발전소는 대체에너지가 확보될 때까지 가동을 용인,사실상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허용하는 것 등도 포함돼 있다. 사회당의 이같은 현실노선 전환은 동서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더이상 좌파의 「평화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연립정권안에서 자위대의 최고지휘관인 총리직을 맡고 있으면서 자위대를 위헌으로 인식하는 모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 오늘 임시전당대회 전망/일 사회당 「신보수정책」 채택할듯

    ◎자위대 합헌·일역할 강화 등 대폭 인정/좌파노선 포기… 일 보수 우익화에 가세 일본 사회당의 역사적인 정책적 대전환을 논의할 임시당대회가 3일 열린다.사회당은 이날 당대회에서 자위대의 합헌인정등 그동안의 기본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정책을 채택할 예정이다. 사회당의 신정책안은 ▲자위대의 합헌인정 ▲일·미안보조약의 견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의 적극적인 참가 ▲히노마루(국기),기미가요(국가)의 인정 ▲가동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인정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사회당의 이러한 신정책이 예정대로 채택되면 이는 창당 49년만의 역사적 대전환을 의미한다.신정책안은 사회당이 그동안 비군사·반군국주의 차원에서 반대해오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사회당내에는 물론 지방조직을 중심으로 정책전환에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않아 예정대로 채택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면이 남아있다.2일 열린 대표자회의에서도 신정책안의 수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많았다. 신정책안이 채택되지 못할 경우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의 연립정권기반이 크게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야당이 국회등에서 연정내의 사회당과 자민당의 정책적 차이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이때문에 사회당내에는 무라야마정권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도 신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는 소리도 적지않다.더욱이 그동안 정책전환에 강력히 반대해온 무라야마총리를 중심으로 한 좌파가 지금은 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면도 있다. 사회당 정책전환의 핵심은 안보·방위정책이다.사회당은 그동안 자위대는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일·미안보조약도 반대했었다.그러나 신정책안은 『자위대는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실력조직으로 헌법으로 인정되며 일·미안보조약도 냉전후 일·미의 역할증대와 아시아안보를 위해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정책안은 또 사회당이 그동안 군국주의·국가주의의 상징이라며 부정해왔던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인정하고 원자력발전도 인정하고 있다. 사회당의 이러한 현실노선은 연립정권유지라는 현실적 대응의 측면도있으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일본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일본은 냉전후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증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비군사정책을 강조해온 사회당의 안보·방위정책등의 대전환은 그동안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에 대한 끝없는 야망을 제어해온 중요한 정치세력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당의 변화는 또 일본 전체의 보수화를 의미한다.사회당은 전후 자민당 보수정치에 대항해왔다.그러나 사회당은 연립정권에 참여하면서 현실노선을 강화하고 있으며 신정책이 채택될 경우 사실상 자민당과의 정책차이도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사회당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그 존재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일본의 보수·우익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 일 사회당/미·일안보조약 격하 시사

    ◎“군력 커져 군사동맹 필요 줄어/일부조항 희석­무효화/구보 서기장 【미사와(삼택) 교도 연합】 구보 와타루(구보선)일본 사회당서기장은 25일 일본사회당이 일종의 군사동맹인 미·일 안보조약의 성격을 희석시킬 태세가 돼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미공군기지가 위치한 미사와에서 열린 일본 교원노조의 한 세미나에 참석,『이제 일본이 힘을 갖게 됐기 때문에 일종의 군사동맹인 미·일안보조약의 일부 성격을 희석시키거나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당이 자위대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을 시발점으로 한걸음씩 군축을 촉진함으로써 군축의 최종적인 목표인 비무장 일본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일 사회당의 보수화 변신/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냉전의 마지막 유물로 남아 있던 「김일성지배」가 역사의 무대뒤로 사라지던 20일 일본국회에서는 사회당의 냉전시대안보정책이 대전환하는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이날 중의원 답변에서 『방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위대는 헌법으로 인정된다』며 자위대의 합헌을 밝혔다.무라야마 발언은 그동안 자위대를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해온 사회당 안보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었다.그 순간 의사당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찼다. 무라야마총리의 자위대 합헌론은 단기적으로 볼 때 정권유지를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자민·사회당·신당사키가케의 연립정권에서 총리가 자위대 위헌론을 견지할 경우 자민당의 합헌론과 정면대립되기 때문에 야당의 공격으로 연립정권이 위기를 맞을 우려가 있다.무라야마총리는 더욱이 현실적으로 자위대의 최고지휘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대응하는 일본의 변화다.사회당은 미·소대립의 냉전시대에서는 미국의 대소전략의일환으로 자위대의 증강을 꾀하는 자민당측 안보정책에 결사적으로 반대해왔다.그러나 냉전구조가 무너지고 또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하게 되면서 사회당은 이데올로기정당의 색채를 탈피,현실정치노선을 추구하게 됐다. 무라야마총리는 자위대의 합헌론에 이어 21일 참의원 답변에서 『사회당의 「비무장·중립론」의 정책적 역할은 끝났다』고 말했다.그동안 반대해온 일·미안보조약도 일본의 안정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사회당의 비무장·평화주의적 이념이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이러한 정책전환은 일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냉전구조속에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냉전이 끝나자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일본의 보수세력들은 끊임없이 대국주의를 지향해왔다.그러한 움직임을 제어해온 세력이 사회당이었다.그러나 그 사회당이 국제환경변화와 정권참여 등을 통해 「보수화」하고 있는 것이다.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일본의 보수화물결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 외교­안보정책(일 사회당총리시대:중)

    ◎국제공헌­정치대국화 기조 바뀔듯/대한·미 우호협력엔 큰 변화 없어/사회­자민당 이견 조정이 최대난제 『일본의 새 내각은 전정권의 외교를 계승한다.일·한관계에도 과거사를 직시하며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일본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1일 김영삼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 이같이 일본 외교의 계속성을 강조했다. 무라야마 내각의 외상으로 임명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자민당총재도 취임기자회견에서 『일본외교의 계속성을 분명히 밝혀 각국의 불안과 의문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일본의 새 내각은 이처럼 외교의 계속성을 강조하고 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가 크게 변하지 않을까 하는 세계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총리의 등장은 그러나 역사의 역류라기보다는 권력투쟁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더욱이 외무·통상·방위청등 주요 각료는 자민당이맡고 있다.총리는 사회당이지만 실제로는 「자민당 내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야마 내각의 등장으로 일본정부 성격에는 변화가 있다.안보·외교등 국가기본정책의 계속성은 유지하더라도 그 접근 방법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노 신임외상은 하타내각이 적극 추진해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사회당 각료중에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한 자위대 파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무라야마 총리도 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강조했다.무라야마 내각은 이같이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정치대국화 지향의 하타내각 외교와 비교할때 「소극적 대외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무라야마 내각의 이러한 대외정책은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최대의 초점은 북한핵문제 대응이다.북한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해결될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다시 제재론이 등장할 경우 한·미·일 3국이 어디까지 공동보조를 취할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하타내각은 유엔의 제재가없더라도 3개국의 독자적인 제재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었다.그러나 북한 제재에 소극적인 사회당은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전제하고 있으며 중국·러시아등과의 연대도 강조하고 있다.사회당은 미국이 강력히 요구해온 대북송금금지 문제에 대해서도 「인도적 송금과 현금반출의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사회당의 이러한 태도로 미국등은 북한에 대한 3국공조체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일부에서는 또 미­일안보조약유지와 국제정치에서의 양국협조관계에 불협화음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무라야마 내각의 외교정책은 물론 사회당정책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사회당 총리의 등장으로 사회당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으며 자민당과 사회당의 구체적인 정책조정과정에서 심각한 대립이 예상된다.외교·안보정책에서 자민당과 사회당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사회당은 헌법의 준수를 전면에 내세우며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자민당내에는 개헌을 주장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세력이 적지않다.일본의 사회당총리 정권은 이같이 많은 정책의 차이와 모순을 안고 불안한 출범을 하고 있다.
  • 새정권 탄생 배경(일 사회당총리시대:상)

    일본정치의 사회당총리시대.얼핏보면 일본정치는 세계사 흐름에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준다.자민당과 사회당, 보수와 진보의 연립이라는 기묘한 정권등장의 배경과 그 면모,그리고 일본정치의 장래를 현지특파원의 시각을 통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노선 뛰어넘은 “동주”… 일 정계의 장래/긴급진단/「반오자와 정서」 업고 보수·진보 짝짓기/자민 재집권 노려 등졌던 사회선택/보수결집통한 대반전 가능성 상존 사회당 총리의 등장은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대표간사가 추구해온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좌절에 따른 반작용으로 예상밖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만년 집권당」에서 처음으로 밀려났던 자민당은 오자와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를 악다물고 「만년 야당」이었던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위원장을 새총리로 탄생시키며 정권에 복귀한 것이다.자민당이 이같이 노선상 거리가 먼 사회당과 손을 잡음으로써 일본정치는 과거와 같은 여·야, 노선의 대결이 아니라 새로운 합종연형의 시대를 맞게 됐다. 사회당은 전후 자민당 장기집권 시절 찬밥신세였다.따라서 세가 어느정도 불어난 지난해 8월 자민당 장기집권 타도를 부르짖으며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의 연립여당에 참여,비자민 연립정권을 처음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사회당과 자민당은 외교·안보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에 있어서도 입장이 크게 다르다.사회당내에는 일·미안보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자위대를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다.무라야마 총리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회당내 좌파를 대표하고 있다.그러한 사회당과 보수자민당이 구체적 정책협의도 없이 손을 잡은 것은 「야합」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강하다.따라서 벌써부터 자민­사회 연정의 단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강한 비난을 감수하며 자민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은 배경에는 하나의 공통분모,오자와의 국가관과 강권적인 정치수법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다.자민­사회 양당은 「반오자와」정서를 접착제로 하여 정치이념·철학과 정책의 차이는 묻어둔채 손을 잡은 것이다.외무장관에 지명된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총재는 오자와의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관이 「미니 초대국주의,신국가주의」라며 강하게 비판해왔다.고노 총재는 오자와의 군사분야를 포함하는 적극적인 국제공헌론에 반대하면서 비군사적 공헌을 강조하는 호헌파다.사회당의 좌파가 자민당과의 연립를 추진한 것은 고노 총재를 중심으로한 호헌파와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헌파가 결코 자민당의 다수파라고 할수 없다.자민당내에는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개헌을 주장하는 커다란 세력이 존재한다.그러한 세력를 대표하는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과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전총리등은 이번 총리지명선거에서 자민­사회당의 무라야마 후보가 아니라 오자와가 옹립한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지지했다.새 연립정부는 일단 오자와가 추구하는 「대국주의」보다는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무라야마 신임총리도 『비군사적 공헌과 국민의 생활향상을 우선하는 「비둘기파 정권」을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일본이 어디로 갈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오자와는 일본의 역사적 전환기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권력집중형으로의 국가개조를 강력하게 추구해왔다.오자와전략이 좌절함으로써 그러한 국가개조계획은 일단 잠복하겠지만 보수세력의 결집에 의한 대반격 가능성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일본은 분명 정계개편과 국가관 정립의 중대한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새총리 조각 분석/자민 각료20석중 13석… 핵심부서 차지/연정세당수 입각… 안보정책 마찰예상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위원장이 전후 일본정치사에 두번째 사회당총리로 취임했지만 내각은 자민당 중심으로 구성됐다.이에따라 자민당측이 외교·내정에서 보다 핵심적 역할를 담당케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20석의 각료자리중 13석을 차지했다.반면 사회당은 5석,신당사키가케는 2석의 각료직을 각각 맡았다.연립정부는 이에따라 자민·사회당을 주축으로 신당사키가케가 참여하는 3당연립의 형태가 됐으며정권의 안정을 위해 당대표가 모두 입각했다. 자민당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외상,법무,통산,운수,방위청장관등 주요 부서를 맡고 있다.외상에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총재,통산상에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정조회장등 자민당 실력자들이 대거 취임했다.외상,통산상,방위청장관등을 자민당이 맡은 것은 일본의 외교·통상·방위정책의 계속성을 내외에 보여주고 실제로 기본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다.고노 신임외상도 30일 취임기자회견에서 외교의 계속성을 강조했다.그는 북한핵문제와 관련,『관계국과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내각에서 매우 중요한 대장상(재무장관)에는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가 취임했다.그도 자민당 출신이다.관방장관은 총리와 호흡을 같이한다는 차원에서 사회당의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의원이 맡았다. 무라야마내각은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이 안보·외교등 주요 정책에 이견을 보이기 때문에 적지않은 마찰을 빚을것으로 예상된다.무라야마총리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소비세 인상등 세제개혁,엔고대책,오는 7월초 나폴리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및 미·일정상회담,미·일통상마찰등 많은 과제을 안고 있다.행정과 외교의 경험이 없는 무라야마총리가 미·일정상회담과 G­7회담에서 어느정도 능력을 발휘할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정권운영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자민당이 주요 각료를 맡고 있기 때문에 무라야마총리가 어려운 조정을 강요당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그러나 북핵문제와 관련,다시 제재론이 제기될 경우 내각내의 불협화음이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고노 요헤이 부총리겸 외상/개혁이미지 강한 10선 의원 신임 부총리겸 외상에 임명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57)자민당총재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다.지난해 7월 자민당총재직을 놓고 노장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와 경선을 벌인 결과 「만년 여당이 아닌 도전하는 야당」으로서의 포부를 밝혀 승리를 거두었다. 고노는 30세에 정계에 입문,중의원에만 10번 당선한 경력을 갖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많은 부심을 겪었다.자민당 창당에 기여한 고노 이치로 전농상의 차남으로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67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그는 한때 「자민당의 황태자」로까지 불릴 만큼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75년6월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시절 록히드 뇌물사건이 터지자 자민당의 금권정치와 원로정치에 염증을 느껴 동료의원 5명과 탈당,「신자유클럽」을 결성해 대표를 맡았다.신자유클럽은 76년 선거에서 18명으로 의석을 늘리는 등 한때 파란을 일으켰으나 끝내 보수의 벽에 부딪쳐 오래 가지 못했다. 고노는 86년 신자유클럽 동료들과 자민당에 복귀했으나 탈당의 경력으로 당최대파벌인 다케시타파의 견제를 받아 각광받지 못하다가 다케시타파가 분열하면서 관방장관직에 올랐다.
  • 「오자와전략」 와해… 제2정계개편 가속/일 새연정 탄생배경과 전망

    ◎“어떻게든 정권잡고 보자” 자민 집념/자민분열·외교정책 달라 단명점쳐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사회당 출신 총리의 등장은 일본정치의 흐름이 일단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호헌파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사회당 총리는 지난 47년 「가타야마 내각」 이후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두번째이며 이번 총리선출을 계기로 자민당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일본정국은 제2정계 개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선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정치의 「사회당 시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무라야마정권은 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던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다.자민당 지도부는 총리후보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 대신 무라야마 위원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자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라야마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무라야마 위원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 집행부 결정에 대항,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가이후 전총리는 그러나 연립여당과 자민당 개혁파등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회당내 중도·우파들의 지지까지는 얻지못해 패배했다.가이후 전총리의 패배는 그동안 일본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권력집중형 보수양당제로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왔던 오자와의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패배라 할수 있다. 오자와는 군사면을 포함,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할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실현을 위한 정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 전략」이 일단 패배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사회당과 자민당의 호헌파,신당사키가케등을 중심으로한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세력이 정권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은 안보·외교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권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자민당은 특히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탈당할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재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오자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야마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사회당내에는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미·일,한·일관계등 기본적인 외교정책에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일총리 올른 무라야마 누구/팔자 흰눈썹 인상적인 화합형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신임 일본총리는 일본 사회당 출신으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총리 이후 47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 지난 24년 3월 3일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오이타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향리에서 노조지도자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72년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뒤 7선을 거듭해 왔으며 연금과 복지문제등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펴왔다. 그는오이타시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주위의 간곡한 권고로 출마했으며 지난해 국회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려 했으나 좌·우파의 추대로 야마하나위원장을 이어 사회당 위원장에 올랐다.그는 경력에서 보듯이 서민적인 풍모를 풍기는 대중정치인으로 화합에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같은 성품이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당의 지도자로서 난세를 맞고 있는 일본 정국에서 총리에까지 오르도록 한 비결. 사회당내 온건좌파 그룹의 지도자인 그는 우파에 비해 다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인 요시이에여사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일 평화헌법 개정 시급”/신임외무/집단 자위권 금지 재검토 촉구

    ◎한반도 유사시 미군지원 강조 【도쿄 연합】 일본의 가키자와 고지(폐택홍치) 신임 외상은 29일 일본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에 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가키자와 외상은 이날 아사히 TV에 출연,일본 헌법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는데 대해 미일 안보조약이 적절하게 기능하고 있는지는 물론 유사시에 일본이 대응할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가키자와 외상은 또 유엔 안보이가 북한에 대해 제재결의를 했을 경우 일본은 예를들어 일본의 기지로부터 (출동하는) 미군을 후방에서 충분히 지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핵 문제와 관련해 『상황의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끝까지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그루지야공,“CIS 가입” 선언/옐친,“러군 본격 내전 개입”

    ◎반군,거점 2곳 포기… 수세에 몰려 【쿠타이시(그루지야) AFP 연합】 그루지야 정부군이 23일 즈비야드 감사후르디야 전대통령을 추종하는 반군의 거점인 서부 밍그렐리아주로 진격,반군을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고 그루지야 관리들이 밝혔다. 그루지야 국방부는 이날 발표한 전황보고를 통해 반군이 정부군의 이같은 공세에 밀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국가평의회 의장의 출생지인 란치후티와 우즈르게티 등 2개 마을에서 퇴각하는 등 수세에 몰리고 잇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국방부에 그루지야의 간선 철도망과 고속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사용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고 밝혀 그간 중립을 표방하던 러시아군의 본격적인 개입을 시사했다. 러시아측의 이같은 움직임은 셰바르드나제의장이 23일 독립국가연합(CIS) 참여를 확인하는 명령서에 서명한 직후에 이뤄진 것이다. 이타르타스 통신은 셰바르드나제의장이 22일밤 의회와 협의끝에 이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과 함께 인접국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도 철도망 보호를 이유로 그루지야에 파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루지야는 CIS 회원국이 되면 지난 92년의 집단안보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다른 회원국들의 군사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 일 사회당 산화위원장에의 충고(사설)

    야마하나(산화정부) 일본사회당위원장이 일사회당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늘 한국을 방문한다.일본연립정부의 정치개혁상이지만 오랫동안 맹목적인 친북한일변도의 일본제1야당이었으며 지금은 연립여당의 제1당인 사회당의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더 중요한 방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방한은 한마디로 일본사회당의 변화 특히 대한반도인식과 정책노선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사회당은 그동안 현실과 상식을 무시한 친사회주의 일변도의 왜곡되고 편향된 정책노선을 유지했다.미일안보조약은 물론 자위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했다. 특히 한반도정책은 일본신문들도 「비현실적이며 친북편향적」이라고 비판할만큼 비정상적인 것이었다.헌법에 위배된다며 65년의 한일기본조약을 인정치 않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최근까지 한국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을 한반도유일의 합법정부로 간주하는 노선을 견지해왔다. 한편 북한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찬양했다.북한공작원에 의한 아웅산테러사건이라든가 그후 일어난 대한항공여객기 폭파사건에대해서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억지를 쓴 북한편을 들어 세계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87년 방북한 도이 당시 사회당위원장은 독재와 폭력과 개인숭배의 북한을 「훌륭한 사회주의」로 예찬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당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만년야당」의 신세를 면치못했으며 지난 총선에선 부패로 얼룩진 집권 자민당 붕괴와 분열의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민당보다 더한 참패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이같은 상황의 지속은 곧 사회당의 종언을 의미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가 대한정책변화등 오늘의 사회당 인식및 정책노선 현실화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방한도 결국 그 연장선상의 것이다.그는 지난 1월 위원장취임후 한반도인식및 정책노선에서부터 한일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하고 그런 내용의 당강령문서를 채택하는등 사회당노선의 현실화를 시작했다. 야마하나위원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일본의 전쟁책임과 과거사를 사죄하고 반성할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우리가 충고하건대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사회당의 경우 보다더 중요한것은 그동안 왜곡해온 대한반도 인식과 정책노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반성하며 시정하는 일이다. 일사회당내에는 아직도 그릇된 한반도인식의 친북좌파세력이 만만치 않으며 대한정책도 아직은 유동적인 상태인 것으로 알고있다.그때문에 늦어지기도한 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방한은 일본사회당의 그같은 왜곡되고 비현실적인 한반도및 한국인식과 정책노선을 정확하게 바로잡는 확실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일본 사회당의 「생존전략」/위원장 방한… 면모쇄신 계기 모색

    일본 사회당위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이 다음달 4일부터 3일간 한국을 방문한다.그의 한국방문은 북한 일변도로 기울었던 사회당의 한반도정책이 한국중시라는 현실노선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사회당은 그동안 한국의 존재와 한일기본조약을 부정하는 등 비현실적인 정책을 고집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야마하나위원장은 이같은 사회당정책의 현실노선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사회당위원장 선거에서의 재선전략으로 방한을 추진해온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회당은 지난 1월 야마하나위원장의 취임후 기본정책에 대한 국내비판과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라는 국제정세의 대변혁에 발맞추어 정책전환을 추진해왔다.사회당은 지난 3월 채택한 「93년선언」이라는 당강령에서 사회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한일기본조약을 무조건 승인하는 등 현실노선으로의 전환을 분명히 했다. 야마하나위원장은 사회당의 이같은 변화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한국방문을 적극 추진해왔다.그 이유는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자위대,일·미안보조약,원자력,한반도정책 등 당기본정책을 전환하는데 있어 비교적 당내 좌파의 저항이 적은 분야가 한반도정책이기 때문이다. 야마하나위원장은 한국방문 실현을 위해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총리에게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당내에는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위해 「일한위원회」를 설치했다.그러나 한국정부는 친북한에 기운 사회당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으며 한일기본조약을 무조건 인정한다는 당강령이 정식 채택되기까지는 사회당위원장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회당이 연립정부의 제1당이 되고 야마하나위원장이 다음달 하순에 실시될 사회당위원장선거 전략으로 한국방문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등 상황이 바뀌었다.한국정부도 지금까지의 자민당 중심의 대일정책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껴 그의 방문을 허용한 것으로 관측된다.어떻든 야마하나위원장의 이번 방한은 한국과 사회당과의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그러나 야마하나위원장의 방한으로 전후보상문제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그가 전쟁책임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외무성관리들은 이 때문에 한국에서의 과거사문제 발언에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경보를 울리고 있다.
  • “북 지하핵시설 미서 파괴능력”/전백악관보좌관

    【도쿄=이창순특파원】 미국은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위협을 제거해야할 책임이 있으며 만약 일본의 안보가 북한에 의해 위협받을 경우 군사행동을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브랜트 스코크로프트 전미백악관안보보좌관이 3일 밝혔다. 스코크로프트 전보좌관은 이날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빠르면 1년후,늦어도 몇년후에는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의 핵위협을 저지하는 수단으로서 요격 미사일의 개발과 공중폭격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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