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안미현 검사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수능 영어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억만장자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공원녹지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줄다리기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1
  • “DS를 뚫어라”

    ‘DS를 뚫어라.’ STX그룹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다. 채용인원은 500명. 그룹이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다. 이번에도 강덕수(DS) 그룹 회장이 직접 면접에 나선다. 월급쟁이에서 그룹 오너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출한 강 회장이 우수인재 확보에 쏟는 애정은 남다르다. 사나흘씩 계속되는 신입사원 면접 강행군에 하루도 빠지는 법이 없다. 최종 관문인 셈이다. 강 회장이 거의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왜 지원했는가.”이다. 그룹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그룹 역사가 길지 않은 까닭에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싫어하는 표현중의 하나는 ‘중견’이다.2등 기업들과 엮이면 평생 ‘2류’밖에 못 된다는 신념에서다. 사회적 유행어가 돼버린 “아직도 배고프다.”는 표현도 마뜩찮아한다. 신규투자를 통해 회사를 거의 새로 키우다시피 했는데 여전히 ‘인수 및 합병(M&A) 전문그룹’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서다. 문제는 강 회장 앞에 서기까지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룹이 자체 개발한 인성·적성 검사와 외국인이 진행하는 영어회화 면접, 집단토론으로 이뤄지는 1차 면접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희망자는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그룹 홈페이지(www.yourstx.co.kr)를 통해 지원하면 된다. 합격자는 ㈜STX,STX팬오션,STX조선 등 8개 계열사에 배치된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기업 상반기 1만여명 뽑는다

    대기업들이 올 상반기에 1만여명의 인재를 공개 채용한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창의력과 영어회화 능력이 당락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해외인재 채용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다음달 5일부터 대학교 졸업자 수준(3급)의 신입사원 지원서를 받는다. 상반기 3500명 등 올해 총 8000여명을 뽑을 계획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해와 비슷한 400명 안팎을 4월쯤 뽑을 계획이다. 해외인재 선발은 이미 시작됐다.26일부터 미국 9개 대학을 돌며 채용 설명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유럽권의 석·박사급 인재 수십명을 뽑는다.SK그룹은 지난해 상반기(500명) 수준의 채용을 검토 중이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인재 선발에 나선다.LG전자가 상·하반기에 2000여명,LG화학이 상반기 100명을 포함해 연간 400여명을 각각 채용한다.LGCNS는 상·하반기 구분없이 연간 500여명의 채용계획을 세워 놓았다.LG생활건강과 LG생명과학도 각각 100여명씩 뽑을 계획이다.LG텔레콤은 이달 말까지 영업직 인턴사원 40여명을 뽑는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상반기와 비슷한 400명가량을 5월쯤 뽑을 방침이다. 신세계도 비슷한 시기에 대졸 신입사원 150여명을 채용한다. 포스코는 5월과 6월 사이에 대졸 신입사원 200여명을 뽑는다. 하반기에는 경력직 150명을 뽑는 등 지난해와 비슷한 350여명을 채용한다. 동양그룹은 주축인 증권사 인력 80∼100명을 포함해 150여명을 상반기에 뽑을 계획이다. ‘호황’인 조선업계도 적극적으로 공채에 나선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3∼4월쯤 각각 150명,250명,300명 안팎을 뽑는다. 상반기 공채인원 900여명을 이미 뽑은 금호아시아나는 하반기에 400여명을 추가 채용한다. 르노삼성차는 250여명을 상반기에 수시 채용한다.GM대우차도 300명가량을 상반기에 뽑을 예정이다. 올해 두드러진 채용 기준은 ‘말하기 중심’의 영어 능력이다. 삼성은 “영어 면접을 통해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탈락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취업 삼수(三修)’를 막기 위해 공채 직전 학기(07년 2월) 졸업자와 다음 학기(07년 8월) 졸업 예정자에게만 응시자격을 준다. 논란이 일고 있는 대목이다. 삼성은 공학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이공계 전공자는 우대한다. 현대중공업도 기존의 토익점수 대신 영어회화 능력과 작문 시험을 도입했다. 외국인 심사위원과의 7분 대화를 통과해야 하고 40분 동안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영어로 표현해야 한다. 기업마다 가중치를 두는 항목도 조금씩 다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창의성,LG전자는 자체 적성검사(RPST), 금호아시아나는 한자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안미현 박경호기자 hyun@seoul.co.kr
  • 이것이 세계 이끌 한국 10대 신기술

    100인치 액정표시장치(LCD), 스팀 드럼세탁기, 대형 V6 람다엔진…. 우리나라를 세계시장의 ‘리더’로 이끌어줄 10대 신기술이다. 산업자원부는 ‘세계를 이끌 2006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을 선정,20일 발표했다. 전자분야에서는 ▲스팀방식 드럼세탁기(LG전자) ▲100인치 박막액정표시장치(LG필립스LCD) ▲반도체 검사장비용 ‘MEMS 프로브 카드’(파이컴)가 뽑혔다. 기계분야에서는 ▲대형 V6 람다엔진(현대·기아차) ▲극지 운항용 전후방향 쇄빙 화물선(삼성중공업) 등이 경쟁률을 뚫었다. 정보기술(IT) 부문에서는 ▲초고속 이동 인터넷 ‘와이브로’(삼성전자) ▲과학화 전투 훈련시스템(쌍용정보통신)이 선정됐다. 바이오 기술과 소재 분야에서는 ▲동종유래 배양피부 세포치료제(테고사이언스) ▲리튬이온 2차전지용 분리막 제조기술(SK)이 뽑혔다. 올해 선정된 10대 신기술은 지난해부터 실용화된 78개 신기술을 대상으로 22명의 기술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심사와 기술인 3000여명의 전자투표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한민구(서울대 교수) 선정위원장은 “기술의 독창성과 혁신성이 세계 수준이면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기술들에 점수를 많이 줬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이들 10대 신기술분야의 매출이 올해 1조 5000억원선에서 2010년에는 9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벤츠, 사고車를 새車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사고차량을 새 차로 둔갑시켜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빚고 있다. 17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부산에 사는 30대 남성 정모씨는 올 6월 6000만원을 주고 벤츠 200K를 구입했다. 차를 넘겨받은 정씨는 운전석 문짝의 색깔이 본체와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딜러점에 거세게 항의했다. 딜러점은 문짝을 다시 칠한 사실을 인정한 뒤 위로금 54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씨는 “단순히 도장(塗裝)만 다시 한 게 아니라 한번 사고가 났던 차량을 신차로 둔갑시킨 것 아니냐.”며 “불안해서 못타겠으니 새 차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분한 마음에 잠을 설친 정씨는 지난 11일 소보원에 이같은 내용을 신고했다. 소보원은 정씨의 주장이 상당부분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돼 건설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검사소에 차량 점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자동차 앞문 좌우를 조정한 흔적이 있고 차체의 기본틀인 A필라와 C필라 우측, 쿼터 패널 우측을 도장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고차량으로 추정된다.’는 판정이 나왔다. 소보원측은 “그래도 설마 했는데 자동차검사소의 회신을 받고 우리도 적잖이 놀랐다.”면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벤츠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측에 공식 해명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라고 밝혔다. 회신 기한은 18일까지다. 벤츠측은 “독일에서 차를 배로 싣고와 내리는 과정에서 긁힘 등 일부 손상이 발견돼 도장을 새로 한 것”이라며 “그러나 사고차량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운송 과정에서의 손상으로 어떻게 차문 좌우를 조정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 “운송기간이 길어 미세한 조정을 한 것”이라고만 할 뿐, 명확한 반박을 내놓지 못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수입車 연비 알고나면 못탄다

    수입車 연비 알고나면 못탄다

    수입차 업체들이 수입차 대중화를 표방하며 중소형 모델의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으나 연비는 국산차보다 대부분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비가 비교적 좋은 것으로 알려진 일부 수입차도 실제와 연비가 달라 ‘뻥튀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수입차는 홈페이지에 아예 연비를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무시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미국차 연비 10년 전보다 퇴보 에너지관리공단이 미국 환경청 보고서를 인용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2006년 신형모델의 평균 연비는 갤런(3.79ℓ)당 21마일(약 33㎞)이었다.ℓ당 약 8.7㎞인 셈이다. 기술력이 크게 떨어졌던 1987년(22.1마일) 수준에도 못 미친다.8기통 엔진의 정지 기능과 6단 변속기 등 첨단 신기술이 속속 도입된 점을 감안하면, 뒷걸음질 치는 연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특히 GM·포드·크라이슬러 이른바 미국차 ‘빅3’와 일본 닛산차의 연비는 갤런당 19.1∼20.5마일에 그쳤다. 현대·기아차나 도요타(23.5∼24.2마일)보다 크게 떨어진다. “수입차를 타는 계층은 기름값이 얼마 들든 개의치 않는다.”며 연비 비난을 애써 외면해온 수입차업체들은 최근 고유가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연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배기량 3498㏄인 벤츠 E350(4매틱)의 공인연비는 ℓ당 7.8㎞. 휘발유 1ℓ를 넣었을 때 7.8㎞를 간다는 얘기다. 배기량이 비슷한 기아차 뉴오피러스(3342㏄)의 9㎞보다 연비가 크게 떨어진다. 휘발유 가격이 ℓ당 1500원이고 1년간 2만㎞를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벤츠 E350의 연간 기름값은 약 385만원. 뉴오피러스(330만원)보다 50여만원이 더 든다. 배기량 2000㏄급의 중형차인 사브9-5Linear의 연비(8.3)도 기아 로체(10.9)나 르노삼성 SM5(10.8)보다 크게 낮았다. 연간 유류비(361만원)로 따지면 로체(275만원)보다 100만원가량 더 든다.5년을 탄다고 가정하면 기름값 격차는 570만원으로 더 벌어진다.BMW 525i(2996㏄)의 연비(8.5)도 현대 그랜저 L330(9.0)를 밑돈다.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연비는 엔진종류(4기통,6기통)나 운전자의 운전습관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배기량만 놓고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연비 ‘뻥튀기’ 논란 여전 수입차 연비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올초 자동차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이하 운동연합)이 아우디 A8 4.2와 렉서스 LS430의 연비를 국립환경연구원에 맡겨 재측정한 결과 공인연비보다 10% 이상 나쁘게 나왔다. 아우디A8은 측정연비가 7.2로 아우디 공인 연비(10.0)보다 무려 28%나 낮았다. 국산차는 주기적으로 사후연비 확인검사를 받는 반면 수입차는 시판 전에 정부가 정한 연비측정기관에서 발부한 성적서로 신고만 하면 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학교성적·인성 검사가 당락 결정

    취업을 앞둔 대학졸업(예정)자들에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신이 숨겨 놓은 대표적인 직장으로 통한다. 이러한 곳이 사무직이 부러워하는 직장이라면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대기업 생산직은 고졸이나 전문대졸 출신에게는 ‘꿈의 직장’이다. 이들의 생산직 입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대우 수준에 비례해서 경쟁이 꽤 치열하다. 또 수시 채용이어서 평소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고졸 생산직 여사원을 사업장마다 수시로 뽑는다. 연간 채용 규모는 5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채용 절차는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보통 학교장 추천과 면접으로 이뤄진다. 학교 성적과 면접에서 다뤄지는 인성검사가 당락을 결정한다. 간단한 영어 테스트도 있다. 예전엔 학교성적이 상위 5%에 들어야 합격 안정권이었다. LG전자의 생산직 초임은 연간 2200만∼2500만원 수준(상여금 및 연장근로수당 포함)이다. 지원 자격은 고졸이며,19∼23세의 여성이면 된다. 고교 생활기록에서 성적 상위 5%, 결석 5일 미만이어야 한다. 자동차업계는 업종 특성상 공업고나 자동차 관련 전문학과 졸업자로 지원 대상을 한정한다. 현대자동차는 결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 채용한다.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를 내지만 경쟁률 때문에 보통 해당 공장 인근 지역에만 공고한다. 기아차는 올해 생산직 직원을 뽑지 않아 내년 초에 대규모 신규 채용이 예상된다. 중공업계는 전문학원이나 기술원 출신이 입사에 유리하다. 두산중공업은 학교(공고) 추천을 받거나 전문학원 등과 연계해 생산직 근로자를 뽑는다.최용규 안미현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포스코, 자동차용 고장력 강판 개발

    포스코가 자동차용 고장력 용융도금강판을 세계 최초로 양산, 기아차의 프라이드에 시험 공급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최근 50㎏급 자동차용 고장력 용융도금강판을 개발, 품질인증을 획득한 데 이어 기아차의 프라이드에 도어 외판용으로 100t을 공급키로 했다. 기아차는 이 강판을 프라이드에 시험 적용해 성능 검사 등을 거친 뒤 향후 프라이드 양산차에 사용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이번에 개발한 제품은 1㎟당 최대 5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강판으로, 기존 자동차의 외판재로 주로 쓰이는 35㎏급 강판보다 가벼우면서 강도가 높고 내식성과 찍힘 저항성도 크다고 설명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일본을 다시본다] (10) 소자화를 막아라

    [일본을 다시본다] (10) 소자화를 막아라

    |도쿄 특별취재팀|올해 세 살이 된 신타로는 부모와 함께 ‘출퇴근’을 한다.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 직장에 마련된 보육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돌보는 보육교사만 2명이고, 함께 부모를 기다리는 친구도 있어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도 외롭지 않다. 선박유통회사인 ‘니혼유센(NYK)주식회사’에서는 3년 전부터 30여평 규모의 보육실을 회사 안에 만들어 직원들의 자녀를 돌보고 있다. 일본에서 자녀를 적게 낳는 ‘소자화’ 현상이 국가적인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보육서비스 지원의 제도화 등 정부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소자화 대책에 최근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서고 있다. 인구 감소가 노동력 부족을 넘어 소비자 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소자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애쓰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아이는 회사에 맡기고 마음 편하게 일하세요” 니혼유센에서 보육실을 마련한 것은 2000년 사내 인터넷 사업 비즈니스 캠페인 공모에서 몇몇 직원들이 보육사와 부모를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사업을 제안, 수상한 것에서 비롯됐다. 도쿄역이 위치한 도심 한복판에 보육시설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은 사업주 등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2년만에 실용화됐다. 보육실은 15명 정원으로 생후 57일∼초등학교 취학 전인 직원 자녀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지만, 부모가 잔업 등으로 일이 늦게 끝나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용료는 공립 보육원과 비슷한 수준이며, 정기적으로 등록하지 않고 사정에 따라 하루씩 이용하는 것도 가능해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이용실적을 냈다. 아동의 안전을 위해 방재센터, 경비실 등과 연결되는 카메라를 보육실 입구에 설치해 정해진 친권자가 왔을 때만 문을 열어준다. 향후 계약을 맺어 다른 회사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보육실 운영은 기혼여성뿐 아니라 미혼여성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직원 가시마 나호는 “니혼유센 여직원이 260명 정도 되는데, 꼭 아이가 없더라도 여성을 이만큼 소중하게 생각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회사에 더 강한 소속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니혼유센의 하마모토 요시코 공보과 매니저는 “소자화를 막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비즈니스가 아니라 복지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하게 됐다.”면서 “현재 매달 정규등록하는 아동은 2명뿐이지만, 단 한 시간이라도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을 계속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로 여성인재 빼앗기면 회사 손해” 통신·전자기기 종합회사인 ‘NEC’에서는 보육 지원 문제를 철저히 기업 이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애써 키워놓은 여성 인재들을 보육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잃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여직원들이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잇따라 퇴직하자 인재보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 NEC는 육아휴직제도가 법제화되기도 전인 1990년 이미 휴직제를 도입했으며, 현재 출산 전후는 물론 아이가 만 한살이 되는 해의 3월 말까지 육아휴가를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육아 단시간 근무제도’를 도입,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는 하루 2시간까지 단축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 2002년부터는 ‘패밀리 프렌들리 휴가제도’를 새로 만들어 1년에 5∼20일 수업참관이나 어머니회 모임, 소풍, 운동회 등 자녀의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패밀리 프렌들리 펀드’를 만들어 아이를 낳으면 1명당 55만엔을 지급하고, 부양하는 자녀 1명당 매달 5000엔씩 주고 있다. ●“주민 수가 힘!” 지자체도 앞장 시즈오카현에서는 2003년 정부에서 ‘소자녀화 사회대책 기본법’과 ‘차세대 육성지원대책 추진법’을 제정해 현·시·읍·촌과 기업주가 함께 소자녀화 대책을 추진한 뒤 2005∼2010년간 진행할 ‘시즈오카 차세대 플랜’을 책정했다. 차세대 플랜은 미혼화와 만혼화를 막기 위해 젊은층이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임신과 출산을 위한 안전한 의료환경을 확립하는 한편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지역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현은 2010년까지 부모와 자녀가 전문적인 육아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지역 자녀양육센터를 현재의 133개에서 193개까지 늘릴 예정이며, 보육원도 259개에서 35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아동기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교육까지 책임지겠다는 입장이다. 현은 사춘기 보건상담실 등을 이용, 청소년기의 성관계와 임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상담과 검사가 보다 편리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2010년 10대의 인공임신중절률을 지금의 1.06%에서 0.6%까지 낮추는 게 목표다. wisepen@seoul.co.kr ■ 후생성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 제도는 |특별취재팀| 일본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2003년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1.2905이었다. 출산율이 이같이 처음으로 1.3을 밑돌자 일본 열도는 ‘1·29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2004년도 출산율은 이보다 더 떨어진 1.28 후반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잠정집계를 내놓았다. 가속화되는 소자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정부는 출산 장려를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의 출산율은 1975년 1.91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인구 현상유지가 가능한 2.07을 밑도는 저출산 경향이 이어져왔다.2004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는 112만 4000여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2006년의 1억 2774만명 이후에는 총 인구수도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2030년 추계인구는 1억 1758만명으로 2000년보다 934만 6000명이 줄어들 전망이다. 출산율 저하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은 2005∼2010년이 인구 증가의 마지막 시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차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기에 다시 베이비붐을 일으켰듯 2차 베이비붐 시기인 1971∼74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주니어’ 세대가 30대에 접어든 지금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베이비붐 주니어’ 여성들을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소자화대책 각료회의를 열어 출산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여성의 재도전 지원책검토회의’(가칭)를 설치하기로 했다.2006년도 예산에 구체적인 방안을 반영하는 것을 비롯, 연내에 ‘응원 플랜’(가칭)을 확정해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는 복안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장화경 교수는 “일본 정부는 제도 정비는 물론이고, 육아지원에 기업과 지자체를 끌어들여 지원 주체를 다양화함으로써 예산절감과 함께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wisepen@seoul.co.kr ■ 심각한 ‘少子化’ 실태 |특별취재팀|일본 후생노동성은 매년 10월을 ‘일과 가정을 생각하는 달’로 정하고, 일과 육아 및 간병이 양립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을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으로 선정해 표창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 후생노동대신우량상, 후생노동대신노력상, 도도부현 노동국장상으로 나눠 수상하고 있으며, 처음 제도를 도입한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227개 기업이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 후생노동대신우량상은 생활용품 제조회사인 ‘카오 컴퍼니’가 수상했다. 인사부 내에 아예 보육지원을 전담하는 ‘EPS(Equal Partnership) 추진실’을 따로 만들어 상근 인력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5845명(남성 4927명, 여성 918명)의 사원 가운데 135명이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상사와 면담할 때는 은근한 압력이 행사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상 EPS 담당자가 입회한다. 카오 컴퍼니의 사카쿠라 다카히토 홍보과장은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원의 92%가 복직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내 3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영업장에서는 어느 정도 보육지원제도가 정착돼 있는 상태이다. 규모가 영세해 육아휴직 등을 활성화하기 힘든 회사에는 후생노동성이 휴직인력을 대체하는 보조인력 고용비의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후생노동성 고용균등 아동가정국의 이노우치 미야비 취업원조계장은 “눈앞의 이익보다 사회발전에 공헌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기업들에 꾸준히 패밀리 프렌들리 기업 표창제도를 홍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6) 영남대학교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6) 영남대학교

    영남대에 법대가 개설된 것은 지난 1947년. 우리나라 헌법이 공포되기도 전이다.‘법서만 6만 권이 넘는다.’는 학교 소개에서 60년 전통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최근들어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줄어들어 학교측의 고민이 늘었지만 여전히 영남권 최고의 사립대라 자부한다. 배기원 대법관을 위시한 법조인의 면면을 보면 괜한 허세도 아니다. 영남대 법대는 로스쿨 도입을 회생의 전기로 활용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탄탄한 교수진이 경쟁력 영남대 법대는 특히 교수진에서 강세를 보인다. 겸임교수를 제외하고 전임교수만 20명에 달한다. 이들 교수진의 연구실적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로스쿨 설치 실무기획단을 총괄하고 있는 신우철 교수는 “법학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대학이 교수 1인당 연구실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면서 “교수진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연구실적도 높은 편”이라고 소개한다. 교수진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들 교수진의 전공영역이 다양하게 망라돼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프랑스법·독일법·유럽연합법·중국법·일본법 등 각국의 법 영역 전공 교수가 고루 포진돼 있다. 박홍규 교수는 일본법 전문가로, 이상욱 교수는 프랑스 민법과 중국 민법의 전문가로 꼽힌다. 박인수 교수는 프랑스 헌법에, 성낙현 교수와 김혜정 교수는 독일형법에 정통하다. 학교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연말까지 7명의 교수를 충원해 27명까지 교수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법관을 배출한 만큼 법조실무분야에서 저명한 법조인 4명 정도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교육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IT와 기업법무 특화 영남대 법대는 이같은 교수진용 덕분에 특히 비교법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우철 교수는 “다른 법대들에 비해 각 국가의 법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어 비교법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학교 내부적으로 유럽법에 보다 편중돼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미법 분야 등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법 외에도 영남대 법대만의 특화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학교측은 대구·경북지역 법조인을 대상으로 시장수요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IT분야의 기업법무를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업법무 중에서도 세금 관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법전공 변호사와 전임 법관, 세무사 등 세법 교수진이 탄탄하기 때문에 로스쿨 유치 후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수요 반영해 교과과정 마련 학교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교과과정이다. 때문에 로스쿨 실무기획단 산하에 교과과정 전문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3년간의 교육과정을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 기초과목군·심화과목군·전문과목군으로 세분화한 과목풀을 마련중에 있다. 무엇보다 지역법조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위해 수요를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로스쿨을 참관하며 작은 규모지만 실속있는 로스쿨의 교과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시설 역시 최고를 지향한다. 대학 내 설립돼 있는 2000평 규모의 국제컨벤션센터를 개축,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860여평의 대형강의동을 신축, 최첨단 연구시설을 제공하는 등 교수진과 시설 등 인프라에 있어 사립대의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탄탄한 교수진이 경쟁력 영남대 법대는 특히 교수진에서 강세를 보인다. 겸임교수를 제외하고 전임교수만 20명에 달한다. 이들 교수진의 연구실적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로스쿨 설치 실무기획단을 총괄하고 있는 신우철 교수는 “법학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대학이 교수 1인당 연구실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면서 “교수진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연구실적도 높은 편”이라고 소개한다. 교수진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들 교수진의 전공영역이 다양하게 망라돼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프랑스법·독일법·유럽연합법·중국법·일본법 등 각국의 법 영역 전공 교수가 고루 포진돼 있다. 박홍규 교수는 일본법 전문가로, 이상욱 교수는 프랑스 민법과 중국 민법의 전문가로 꼽힌다. 박인수 교수는 프랑스 헌법에, 성낙현 교수와 김혜정 교수는 독일형법에 정통하다. 학교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연말까지 7명의 교수를 충원해 27명까지 교수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법관을 배출한 만큼 법조실무분야에서 저명한 법조인 4명 정도를 석좌교수로 초빙해 교육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IT와 기업법무 특화 영남대 법대는 이같은 교수진용 덕분에 특히 비교법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신우철 교수는 “다른 법대들에 비해 각 국가의 법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어 비교법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학교 내부적으로 유럽법에 보다 편중돼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미법 분야 등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법 외에도 영남대 법대만의 특화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학교측은 대구·경북지역 법조인을 대상으로 시장수요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IT분야의 기업법무를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업법무 중에서도 세금 관련 소송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법전공 변호사와 전임 법관, 세무사 등 세법 교수진이 탄탄하기 때문에 로스쿨 유치 후에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수요 반영해 교과과정 마련 학교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교과과정이다. 때문에 로스쿨 실무기획단 산하에 교과과정 전문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다. 우선은 3년간의 교육과정을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해 기초과목군·심화과목군·전문과목군으로 세분화한 과목풀을 마련중에 있다. 무엇보다 지역법조인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위해 수요를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로스쿨을 참관하며 작은 규모지만 실속있는 로스쿨의 교과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시설 역시 최고를 지향한다. 대학 내 설립돼 있는 2000평 규모의 국제컨벤션센터를 개축,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860여평의 대형강의동을 신축, 최첨단 연구시설을 제공하는 등 교수진과 시설 등 인프라에 있어 사립대의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자금력 ‘짱짱’… 장학제도 활성화” 영남대 법대는 국립대를 뛰어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호언한다. 박인수 법대학장은 “영남대 법대는 교수진이나 시설 등 교육인프라에 있어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면서 “다만 국립대에 비해 학비가 비싸다는 약점이 있지만 이 문제 또한 장학제도로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등록금이 비쌀 수밖에 없지만 장학제도로 교육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박 학장은 “국립대 등록금을 초과하는 부분은 장학금으로 학교에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의동을 첨단화해 로스쿨 교육과정에 걸맞은 시설을 제공하겠다는 것도 영남대의 방침이다. 또한 로스쿨 입학 정원 정도는 전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할 뜻을 밝혔다. 박 학장은 “지방 사립대들의 재정상태가 열악한 편이지만 영남대가 자금력에서는 탄탄하다.”면서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로스쿨이 사법개혁을 위해 도입되는 만큼 도입취지에 적합한 질 높은 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설 역시 그 같은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뒷받침돼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60년 전통 걸맞게 인맥 탄탄 영남대 법대는 60년에 이르는 전통에 걸맞게 법조계와 정·재계에서 탄탄한 인맥을 자랑한다. 매년 10여 명에 이르던 사법시험 합격자가 최근들어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남지역 법조계에서의 위상은 굳건하다. 원로 법조인으로는 이병후 전 대법관이 첫 손에 꼽힌다.52학번으로 인천지법원장, 헌법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민수(53학번) 전 부산지법원장은 고시 12회로 청주지법원장, 부산지법원장, 대구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현직에는 배기원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배 대법관은 60학번으로 사시 5회에 합격했다. 부산지법판사로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고, 지난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서울고검에 박윤환(73학번) 송무부장도 있다. 박 부장검사는 사시 21회로 대구지검, 수원지검에서 공안부장을 지냈고 대검찰청, 법무부 등에서 공안과장을 지낸 ‘공안통’이다. 지역에는 하홍식 대구고검 검사와 김찬돈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이 있다. 하 검사는 77학번, 김 판사는 79학번으로 사시 16회 연수원 동기다. 17대 국회의원도 3명이나 배출했다. 한나라당의 이명규(73학번), 임인배(75학번), 주호영(78학번) 의원이 모두 영남대 법대를 나왔다. 특히 이명규 의원과 주호영 의원은 법조인 출신이다. 사시 24회인 주 의원은 대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판사를 지냈다. 이 의원은 사시 30회로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다. 관가에도 다양하게 진출해 있다. 김광림 전재정경제부 차관은 68학번, 김종신 감사원 감사위원은 71학번, 최경수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72학번이다. 이밖에 황성길(65학번) 경북 부지사, 황중연(73학번)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장, 김주섭(70학번) 국민고충처리위 사무처장, 석호익(71학번) 정통부 기획관리실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정부기관에 두루 포진해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윤원아, 신원아, 월요일자 신문 꼭 봐라. 우리 회사가 크게 나온다.”(고 최종건 SK 창업주) “아버지,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최신원 SKC 회장) “그때 보면 알 수 있어, 이놈들아.”(고 최종건 창업주) 최신원 SKC 회장이 공개한 워커힐호텔 인수 직전 부자간에 오갔던 대화다.1973년 1월 선경(현 SK)은 정부로부터 서울 워커힐(현 쉐라톤 워커힐)호텔을 26억 3200만원에 인수하며,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선경이 국민과 재계에 던진 ‘무명의 반란’이었다. 최종건 선경(현 SK) 창업주가 맨손으로 선경직물을 일으킨 지 2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최 창업주는 같은 해 11월 폐암으로 별세,‘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원대한 꿈을 동생인 고 최종현 SK(당시 선경직물 부사장) 회장에게 맡긴 채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갔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최 창업주가 20년간 SK의 섬유를 책임졌다면 25년간 SK를 이끈 고 최종현 회장은 ‘석유’를 개척하고,‘이동통신’의 길을 터놓았다. 고 최종현 회장의 50년 지기(知己)인 언론인 홍사중씨가 본 형제는 이렇다.“형(최종건)은 좋은 의미의 ‘보스형’이었다. 의논할 상대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일에 혼자 결정을 내렸다. 동생(최종현)은 ‘리더형’이었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좋은 짝이었다.” 소리없이 일을 꾸미는 사람은 동생이요, 밖에서 뛰는 사람은 형이었다. 그래서 회사 돌아가는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형을 가리켜 ‘용장’이라 했고, 아우를 가리켜서 ‘지장’이라 했다. 형제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SK를 자산규모 재계 4위의 대그룹으로 일궈냈다. ●‘원조 불도저’ 최종건 창업주 최근 재계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강한 추진력과 남다른 승부 근성 때문에 ‘불도저’라 불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상 불도저라는 애칭은 최 창업주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의리파, 불같은 추진력, 강한 뚝심’은 최 창업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비’ 같은 성격에 ‘조조’의 꾀도 많았다. 이런 점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 하나.1966년 선경직물은 차관 도입 문제로 일본 정부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에 불과한 선경직물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며 차관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었던 최 창업주는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을 단골 술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 술집 마담에게 거짓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하라는 것. 술집 마담은 때가 되자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말을 건넸다. 최 창업주는 일본 관계자 앞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 나가겠다.”고 밝힌 뒤 2시간 가량 단잠을 자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거, 죄송합니다. 저 위에 좀 다녀 오느라 늦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일본 관계자들은 최 창업주가 정부 최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나간 것으로 모두 오해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선경직물이 정부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구나.’를 암시하며, 차관 도입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의 장비 같은 성격은 또 이렇다. 최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다혈질인 데다 성미가 급하고, 감정을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화가 나면 앞뒤 생각없이 퍼부었다.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화난 얼굴로 “누구 불러오라.”고 불호령을 내리면 서울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출장갔다고 곧잘 거짓말을 했다고 회고한다. 최 창업주는 1926년 수원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4녀(양분, 양순, 종건, 종현, 종분, 종관, 종순, 종욱)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취직,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24세 때인 1949년에는 교하노씨인 노순애(77) 여사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선경직물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상반된 스타일의 ‘안주인’ 노순애 여사가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면, 최종현 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는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풍긴다. 노 여사는 시동생과 시누이 등을 거느린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만만치 않게 했다. 차남 최신원 SKC 회장의 얘기다.“100마지기 농사 일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셨으니 고생이야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부친은 사업 때문에 공장에서 먹고 자며, 한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습니다.” 노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에 반한 최 창업주의 누나 최양분(83) 여사는 그를 맏며느리감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고 박 여사는 박경식 전 해운공사 이사장의 넷째딸로 19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베네트칼리지를 거쳐, 칼라마주대학을 졸업했다.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자기 의사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태원에 가서 1만∼1만 5000원짜리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고, 깍쟁이였다. 고 박 여사가 모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내가 ‘이태원표’ 옷을 입고 있으면 모두들 몇십만원짜리로 아는데, 그래서 더욱 그런데 가서 사 입어도 불편한 게 없어요.” 최 회장도 부인을 깍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병마와 씨름하던 그는 먼저 간 박 여사를 두고 “자기 성격 따라 깍쟁이처럼 죽었다.”고. 박 여사는 1997년 6월18일 최 회장의 폐암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두 ‘안주인’은 상반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도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특히 가정 일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박 여사가 미술관에서 일하면서도 최 회장이 일찍 퇴근하면 아무리 중요한 미술관 행사를 주재하는 중이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은 “모친은 외출도 좋아하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라며 “두 분께서 같이 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골프였다.”고 말했다.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과 혼맥 고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은 이렇다. 그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책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에서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지켜본 바에 따라 나는 남녀간의 연애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연애는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다가 다른 사람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 ‘스테디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면 ‘아이 러브 유’가 되어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너 없이는 못살아.’가 되는데 이것은 병이다.” 최 회장 본인의 경험 때문일까. 최씨가의 2세들은 정략이나 중매 결혼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특히 최종건 전 회장이 일찍 별세한 이후 최종현 전 회장이 사실상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자임했던 만큼 ‘큰집’ 조카들도 이같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신원 SKC 회장은 “숙부는 자식들 결혼과 관련해서 복잡한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면서 “예물 등도 가능한 한 안 주거나 받지 않는 주의였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최태원(45)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했다. 부친과 똑같이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노 관장을 만나 연애했다. 차남인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의 부인은 영어교사였던 채희경씨의 맏딸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다. 막내딸 최기원(41)씨는 당시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준일(46)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큰집’인 고 최종건 회장의 일가 혼맥도 학계부터 권력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지만 정략적인 냄새는 없어 보인다.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인 채헌(51)씨와 결혼했다. 장녀 정원(50)씨의 남편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고광천(54)씨며, 차녀 혜원(48)씨는 박주의 전 금융인 아들인 박장석(50) SKC 사장과 결혼했다. 막내 아들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은 변호사 집안인 최유경(38)씨와 결혼했다. 4녀 예정(43)씨의 남편인 이동욱(43)씨가 최종건가(家)에서는 눈에 띈다.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이씨의 부친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 전 중정 부장은 서로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막역했던 사이였다. 양가가 둘의 결혼을 일찍이 약속을 했고, 결혼은 최 창업주 사후에 이뤄졌다. 고 최종건 회장이 각별하게 지냈던 재계 인물로는 김용산 전 극동건설 회장이었으며, 언론계에서는 고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방계로 넘어가면 장녀 최양분 여사는 한때 종건·종현 형제의 가정교사였던 고 표현구 전 서울대 농대 학장과 결혼했다. 표문수(52) 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아들이다.3녀 최종분(73) 여사는 고 이한용 신아포장 대표와 혼인했으며, 막내 사위인 정재현(46)씨는 현재 SK C&C 전무로 일하고 있다. 차녀 최양순(82) 여사는 고 여운창 경기개발 대표와 결혼했으며,4녀 최종순(69) 여사는 해군 중령 출신인 고 조제동씨에게 시집갔다. 3남 최종관(71) 전 SKC 고문은 장명순(71) 여사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3녀 경원(42)씨가 김연준 전 한양대 이사장 아들인 김종량(55) 한양대 총장에게 시집갔다. 또 4녀 은성(40)씨는 나웅배 전 부총리 아들인 나진호(42)씨와 짝을 이뤘다. 장녀 순원(47)씨는 존 캐리 퍼크너(47)씨와 국제 결혼했다. 장남인 최철원(36) 마이트엔메인 대표이사는 한숙진(34)씨와 인연을 맺었다. 4남 최종욱(66) 전 SKM 회장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 딸인 조동옥(59)씨와 결혼했다. 조씨의 남동생이 조동성 서울대 교수다. 미혼인 장남 준원(30)씨는 현재 SK C&C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윤선(29)씨도 통신·방송장비 전문업체인 SK텔레시스에서 일하고 있다. ●섬유에서 석유…정보통신 SK그룹의 모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만주 일대를 대상으로 직물을 수출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일본의 교토(경도)직물(京都織物)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교토직물은 현물출자하고, 선만주단은 공장 부지를 비롯한 건물 공사비 등을 투자했다. 상호도 선만주단의 ‘선’자와 교토직물의 ‘경’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고 지은 것이다. 고 최종건 회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재건하기 위해 1953년 부친 몰래 빼낸 땅문서로 공장을 불하받는다. 이후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본격적인 섬유기업으로 탈바꿈한다. SK의 성장사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보면 3단계로 나눠진다.1단계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 건설.2단계는 유공(현 SK㈜) 인수,3단계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다. 소프트웨어로 볼 때 최종현 회장의 경영 참여와 이순석과 손길승, 김항덕 등 1세대 전문경영인의 합류 등이다. 1980년은 유공 인수로 선경의 숙원 사업을 달성한 해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울산을 오가며 국내 유일의 정유사였던 유공을 넘본 지 10년 만이다.‘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매진한 결과, 돌아온 보상이었지만 당시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선경은 유공을 손에 넣자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경이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상한 것은 80년대 초반까지 올라간다. 당시 국내 어느 기업도 정보통신사업에 대해 꿈도 꾸지 않을 때, 고 최종현 회장은 미국 방문길에서 통신사업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 현지에 경영기획팀을 만든다. 이것이 훗날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golders@seoul.co.kr ■ 풍수지리 거부한 최씨 형제 “집터보다 내 기가 더 세니까 염려들 말어.” 국내 재벌가(家)가 최근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동에 둥지를 트는 까닭은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은 남산을 베개삼아 한강으로 다리를 곧게 쭉 뻗어 복록과 자손복이 대대로 넘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예 재벌가 ‘집성촌’으로 불린다. 이처럼 집터의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지는 재벌가에서 유독 이에 무관심한 집안이 있다.SK그룹 최씨가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1968년 서울 삼청동에 새 집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 데이진 오야 사장의 부인이 풍수지리를 잘 안다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삼청동 자택의 지형 사진을 보내달라고 연락해왔다. 당시 최 회장과 오야 사장은 비즈니스를 떠나 개인적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오야 사장은 당시 일본 정·재계의 거물로 최 회장의 호탕한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오야 사장 부인은 매우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옷만 두 박스를 가지고 왔으며, 매일 밤 우유로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 회장은 이들이 한국에 머물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을 본 오야 사장 부인은 “지형이 사나워 좋지 않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이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삼청동 자택은 화재로 가정부가 화상을 입어 숨진 데 이어 여름 장마철에 큰 물난리를 겪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집터의 기가 세서 그런 것이니 이사가는 게 좋다고 자주 권했다. 그래도 최 회장은 “내 기가 집터보다 더 세니 염려말라.”고 했다고 한다. 고 최종현 회장도 집터와 관련된 고집은 ‘그 형에 그 동생’이었다. 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1997년 11월. 풍수지리 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최 회장이 사는 서울 워커힐 호텔 내 빌라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곳인 탓에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며 이사를 권했다. 그는 “그런 곳은 일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기간 머물며 살기에는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 전 회장이 풍수지리 연구를 위해 교수직을 내던진 최 전 교수의 소식을 듣고, 아무런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맺어졌다. 최 회장은 그러나 “집이란 어차피 일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며 “나는 이곳이 좋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집을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최 회장은 훗날 “형님처럼 기가 세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여기서 산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느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golders@seoul.co.kr ■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 ‘그룹부흥 한몫’ “손길승 실장은 단순히 내가 부려먹는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 동업자입니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일개 그룹 기획실장이 거액의 정치헌금을 다룰 수 있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손 회장을 경영 참모가 아닌 동반자로서 얼마나 믿고, 의지했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정태수 한보 회장의 ‘머슴론’과 비교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서열 4위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순석 전 ㈜선경(현 SK네트웍스) 부회장과 손길승 전 SK 회장, 김항덕 고문 등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들의 역할은 이 전 부회장이 ㈜선경, 김 고문은 유공(현 SK㈜), 손 전 회장은 경영기획실로 나눠진다. 특히 손 전 회장은 20년간 기획실에서만 근무해 직업이 ‘기조실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59학번 서울대 상대 동기 출신으로 때로는 ‘맞수’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회장이 1995년 가장 먼저 SK를 떠났으며, 한때 ‘좌(左)길승, 우(右)항덕’으로 불렸던 전문경영인 체제도 결국 손 전 회장의 단독 체제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김 고문은 손 전 회장이 당시 그룹 회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최종현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룹 회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결과, 그룹 전반을 꿰찬 사람은 손길승 전 회장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명분이나 이치에도 맞았고요. 그리고 나는 사심없이 회사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손 전 회장은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야인으로 물러났던 김 고문을 회장대우 상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회장 집무실 옆에 자신의 방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김 고문에게 제공했고, 경영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와 상의했다. 그러나 3인방 가운데 ‘SK호’에 가장 먼저 탑승한 사람은 이 전 부회장이다. 그는 1965년 4월 고 최종건 회장의 설득에 못이겨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수원 출신으로 최종욱 전 SKM 회장과는 초등학교 동기다. 김 고문은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하다가 69년 선경으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39세 때 대한석유공사의 수석 부사장에 올라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 전 부회장의 강력한 권유로 65년 12월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지난 40년간 고 최종현 회장의 평생 동지이자, 경영 전도사였으며,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그는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에 오른 최초의 전문경영인인 동시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법조인 ‘로펌 뺨친다’

    재계에 법조인 사단이 생겨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법과 국제화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그룹들이 거물급 법조인들을 앞다퉈 영입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사외이사에도 법조인 영입 경쟁이 붙어 웬만한 로펌보다 진용이 더 화려한 그룹도 없지 않다. 법조 인맥이 가장 쟁쟁한 곳은 삼성이다.‘옷로비’ 등 굵직한 사건을 진두지휘한 이종왕 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그룹 구조조정본부내 법무실을 이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검사 출신의 서우정 부사장과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의 김상균 부사장 등 법조인 출신 법무실 임원만 15명이다. 삼성전자는 특허전문 변호사 출신의 김광호 전무가, 삼성중공업은 수원지검 검사 출신의 이명규 상무보가, 삼성화재는 수원지검 검사를 지낸 이상주 상무가 각각 법무팀을 이끌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9일 검사장 출신의 김재기 변호사를 현대·기아차 총괄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영입하면서 뒤늦게 법무팀 보강에 나섰다. 이로써 그룹내 변호사는 김도식(과장) 미국변호사 등 해외변호사 3명을 포함해 총 4명으로 불어났다. 조직도 ‘팀’에서 ‘실’로 승격시켰다. 법무실 전체 인원은 27명. 김 법무실장은 검사시절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LG그룹에서는 판사 출신인 김상헌 부사장이 ㈜LG 법무팀장을 맡고 있고, 검사 출신인 이종상 상무 등 8명이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LG화학은 계열사 차원에서 신임변호사 2명을 채용해 법무팀 과장으로 발령했다. SK그룹에는 법무부 정책개혁단 출신인 김준호(SK㈜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 전 부장검사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강선희(SK㈜ 상무)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남영찬 대전지법 부장판사와 양정일 판사가 SK텔레콤 윤리경영 총괄 및 법무실장(부사장),SK건설 상무로 각각 가세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를 지낸 사시 35회의 김윤욱(SK㈜ 상무) 변호사도 있다.SK그룹의 판·검사 출신 법조인은 5명이다. 올 1월 사법연수원(34기)을 수료한 신임 변호사 3명을 채용해 SK㈜와 SK텔레콤에 각각 발령했다. 한화그룹은 ㈜한화 소속 법무팀을 법무실로 확대 개편하고 실장(부사장급)에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채정석 변호사를 영입했다. 법무실 인원은 총 8명. 두산그룹도 전략기획본부내에 법무실을 신설하고 법무실장(전무)에 임성기 전 창원지방검찰청 형사2부 부장검사를 선임했다.5명 안팎의 변호사를 더 충원할 계획이다. 법무팀 못지않게 각 그룹의 사외이사 면면도 쟁쟁하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장준철 변호사와 김광년 변호사가 삼성SDI와 현대차에, 대법관을 지낸 정귀호 변호사가 삼성전자에, 대검 중수부장 출신의 한영석 변호사가 SK㈜에 있다. 현대모비스의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LG건설의 김경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기업들이 앞다퉈 법조 인맥을 강화하고 나서는 까닭은 올 초부터 시행된 증권 집단소송제와 갈수록 늘어나는 특허·통상분쟁, 총수 2·3세들의 경영권 승계 등에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수사를 전담했던 거물급 법조인들이 자신이 수사를 맡았던 기업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안미현 류길상 김경두기자 hyun@seoul.co.kr
  • 현대차 거물급 법조인 영입

    재계에 법조인 영입바람이 거센 가운데, 현대·기아차그룹도 뒤늦게 거물급 법조인을 영입했다. 현대차그룹은 9일 검사장 출신인 김재기(56) 변호사를 상임 법률고문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공식 직함은 현대·기아차 총괄 법무실장이며, 사장급이다. 이를 계기로 그룹내 법무 기능도 대폭 강화했다. 경영지원본부 밑에 있던 법무팀을 법무실로 독립 승격시켰다. 대구 달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학과를 나온 김 신임 고문은 사시 16회로,1976년 공군 법무관을 거쳐 춘천·울산·부산·수원 등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지난달 변호사로 개업했다. 현대차측은 “최근 해외 사업장 증가와 세계적인 판매 네트워크 구축으로 글로벌 기업화가 빨라짐에 따라 각종 분쟁 등에 대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법무기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한솔그룹은 삼성가(家)의 맏딸인 이인희(76) 고문이 일궈낸 기업이다. 아울러 ‘큰 소나무’란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국내 최초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1년 삼성가로부터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받아 ‘홀로서기’에 나선지 15년. 이 ‘큰 소나무’는 한때 1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1위(자산규모 9조 3970억원)까지 올라 ‘리틀 삼성’으로 불렸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액은 3400억원에 불과했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제지의 3개 부문을 축으로 삼아 급성장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솔도 생채기는 있었다.1998년 외환위기 파고에 휩싸이며 ‘곁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은 것. 매출액은 1999년 4조 5000억원을 정점으로 2003년 2조 5000억원으로 떨어지며 한동안 자존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2002년 이후 3년 연속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한솔은 올해 불혹(창사 40돌)을 맞아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다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설 당시에 ‘어디까지나 내일의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이라는 이 고문의 약속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 “쟤가 아들이라면…” “이리 오세요.” 어두운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인희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80) 전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 이사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아내와의 첫 상견례 대목이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이 고문과 첫 만남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통 큰 여장부’와 ‘숫기 없는 남자’로 살아갈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조 전 이사장은 회고록에서 아내인 이 고문에 대해 “수완이 탁월할 뿐아니라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꼬장꼬장한 자신과 달리 아내는 남자처럼 걸걸한 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고문의 경영자적 자질을 가장 아꼈던 사람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이 회장은 이 고문에 대해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노.”라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당시 고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고 이 회장은 골프 라운딩을 할 때마다 맏딸인 이 고문을 데리고 다녔다. 이 고문에게 인사 교류의 폭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문도 부친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남모르게 골프 연습을 많이 했다. 그는 골프도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골프에 관한 노트가 수십권이나 된다. 고 이 회장의 메모하는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이 고문은 “라운딩할 때마다 아버지한테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 고문의 골프 스타일은 경영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뒤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인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정보를 중요하게 여겼던 고 이 회장의 경영관과 다르지 않다. 이 고문은 “골프는 연습한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 거두는 운동이며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된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대표이사를 할 때도 그의 직함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와 결단력은 고 이 회장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자식들의 무리한 공격 경영으로 한솔이 휘청거린 1998년, 그는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사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나서 3남인 조동길(50)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고 이 회장이 경영능력이 뛰어난 3남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의 대권을 물려준 것과 같은 대목이다. 이 고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 일화가 있다. 한솔은 1996년 종합레저산업에 진출하면서 오크밸리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이 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콘도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 신축 문제를 놓고 임원회의가 열렸다. 한 임원이 모델하우스의 시공은 실제 콘도의 객실보다 조금 크게 시공해서 고객의 호감을 얻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는 모든 건설사가 그런 관행을 따르고 있던 때였다. 이 고문은 “정직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와 하나도 다름없이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고문은 벽지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2년 후에 개관될 콘도 자재를 긴급 구입해 실제 콘도 객실과 똑같은 모델하우스를 만들었다. 이 고문은 부친인 고 이 회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다. 삼성가의 장녀로서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다.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될 무렵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에 들어왔지 전주제지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라는 직원들의 인식이었다. 이 고문은 이를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했다. 특히 삼성가로부터 받은 삼성중공업의 일부 지분을 임직원에게 그냥 나눠준 것은 ‘한솔은 사람이다.’라는 경영 이념과 ‘통 큰 여장부’로서 기질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이 고문은 또 직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을 쏟았다. 공장을 방문하면 식당에 어떤 꽃을 갖다 놓으라든지, 직원 유니폼 선정 등을 일일이 챙길 정도다. 한번은 한 사원이 사옥 로비에서 인사를 드리자 이 고문은 사원 이름을 불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경북의 명문가 조씨 가문 조운해 전 이사장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조씨 일문인 조범석가(家)의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인 조범석씨는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조씨 가문은 경북 영양에서 의사와 학자, 판·검사를 두루 배출한 경북 일대의 명문 집안으로 유명했다.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이 집안 인물이다. 조 전 이사장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집 전 체육부 장관은 어린 시절 조 전 이사장의 집안에 대해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술회하곤 했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중매로 이 고문을 아내로 맞았다. 박 전 의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박 여사는 맏딸인 이 고문의 배필을 박 전 의장에게 부탁했고, 박 전 의장은 경북중학교 1년 후배인 조 전 이사장을 추천한 것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영과 거리가 먼 서울대학교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고문은 이화여대 3학년 때 양가 집안의 합의로 결혼함으로써 이대 학칙상 학업을 끝내지 못했다. 그 후 이 고문은 이화여대를 위해 많은 공헌과 후원을 해왔으며, 특히 전문 여성 양성을 위한 두을장학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우리나라 여성인력 육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정략 결혼은 ‘NO’ 한솔가의 2세(3남2녀)들은 정략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재벌가의 결혼이 ‘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3남인 조동길 한솔 회장 아내인 안영주(48)씨의 집안이 그나마 좀 알려진 편이다. 안씨의 부친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이다. 장남인 조동혁(55) 한솔 명예 회장은 이정남(54)씨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조 명예 회장의 장녀인 연주(27)씨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차녀인 희주(25)씨와 아들 현준(16)군은 학생이다. 차남인 조동만(52)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은 대학시절 친구 소개로 부인 이미성(49)씨를 만났다. 장녀인 은정(25)씨와 차녀인 성진(19)양, 아들인 현승(15)군은 모두 학생이다. 3남인 조 회장은 부인 안씨를 만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나영(23)씨는 현재 삼성전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 성민(18)군은 학생이다. 며느리 세 명이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솔가의 막내딸인 조자형(33)씨는 타이완계 미국인 빈센트 추(36)와 국제결혼했다. 이 고문은 당시 “너희 둘이 좋다는데 국제결혼이면 어떠냐.”면서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타이완에서 열려 가족들만 조용히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센트 추는 현재 중국에서 정보기술(IT)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양(6)과 경(3) 등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녀인 조옥형(44)씨는 권대규(46) 한솔창업투자 부사장과 연애결혼했다. 권애영(17)양과 권이주(10)양 두 딸은 학생이다 ●‘3각 분권형’에서 조동길 회장 ‘단독 체제’ 한솔은 장남 조동혁 명예회장과 차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3남 조동길 한솔 회장이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3남은 제지 부문을 맡았다.3형제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그룹 사업부문을 자연스럽게 떠안은 셈이었다. 이 고문은 경영 조언자로서 2선에서 자식들을 지원했다. 3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차남 조동만 회장이었다. 발이 넓은 조 회장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며 물오른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룹이 PCS사업을 KT에 매각한 뒤 통신사업에서 손을 떼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1994년 부친의 뒤를 이어 강북삼성병원을 경영하다가 1995년 한솔에 합류했다. 그는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과 한솔창투(동서창투) 등을 인수하며 한솔의 금융업 확대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한솔의 주력사업이 제지로 재편된 뒤인 2002년 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비껴섰다. 그는 선이 굵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며 세계적인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다. 3남인 조 회장에게는 ‘실무를 아는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솔에 합류해 ‘제지통’으로 성장했다. 삼성물산의 자금업무와 JP모건을 거친 만큼 재무 감각도 남다르다. 형들이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설 때 그는 조용히 한솔제지의 내실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모친인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NHK방송은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한솔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솔은 금융·정보통신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주력사업을 제지로 전환함으로써 조 회장은 2002년 자연스럽게 한솔의 ‘대권’을 물려받게 됐다. ●한솔의 전문 경영인 선우영석(61) 한솔제지 부회장은 삼성출신 한솔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회장과는 동서지간이다. 그의 아내 안인숙씨는 조 회장의 부인인 안영주씨의 언니다. 선우 부회장은 1998년 합작사(한솔·캐나다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노르웨이 노르스케 스코그)인 팬아시아페이퍼 대표이사를 맡아 매년 매출액을 10%씩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입장과 문화가 다른 세 회사를 조율하고 설득시키며 우량 회사로 발돋움시켰다. 이에 앞서 그는 한솔 상하이공장을 건립한 뒤, 공장을 가동하던 첫 해부터 흑자를 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우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경영감각, 추진력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1993년 한솔로 옮기기 전까지 삼성의 해외 부문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신현정(56) 경영기획실장은 한솔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살림꾼이다. 신 실장은 삼성물산 총괄경영지원본부장과 제일모직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문주호(58) 한솔제지 영업·생산 부문 대표이사는 타고난 영업맨으로 매년 영업 사원들에게 직접 새 신발을 신겨주는 행사인 ‘착화식’을 갖고 ‘발로 뛰는 영업’을 강조한다. 유명근(58) 한솔홈데코 대표는 영업·생산·기획 등을 두루 거치면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최근 기후변화협약이 시행됨에 따라 탄소배출권 확보가 한층 중요해진 가운데 그는 90년대 초 이미 해외조림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인 식견있는 CEO다. 서울대 임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취임한 권교택(57) 한솔케미칼 대표는 적자에 시달렸던 한솔케미칼을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킨 능력있는 CEO다. 침착한 성격에 세심한 경영 스타일이다. 김근무(60) 한솔개발 대표는 고객서비스를 최고의 경쟁력으로 강조한다. 오크밸리는 4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서비스품질 최고기업으로 평가받았다. 유재철(54) 한솔건설 대표는 삼성건설 총괄팀장과 공사지원팀장을 거친 정통 건설맨이다. 업계에서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서강호(56) 한솔CSN 대표의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 그는 인천화물터미널과 한솔CS클럽을 매각하며 물류사업에 집중, 한솔CSN의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40분에 주파하는 마라톤 마니아다. 한솔LCD를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운 김치우(56) 대표는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CEO다. 정형근(55) 한솔EME 대표는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꼽힌다. 한솔텔레컴 유화석(53) 대표이사는 온라인게임과 인터넷 포털 등 적자사업을 정리해 경영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조동길회장 ‘테니스 경영’ 조동길 한솔 회장은 대단한 테니스 예찬론자다. 마니아 수준을 넘어 테니스를 경영에 접목시킬 정도다. 현재 한국테니스협회 회장이다. 그는 테니스와 경영의 공통점으로 ▲강인한 기초 체력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 실력주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꼽는다. 조 회장의 남다른 점은 ‘테니스 경영이론’을 실제 비즈니스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9년째를 맞는 한솔-미국 앨라배마 펄프사간 친선 교류행사가 그 예이다. 이 행사는 테니스와 골프 두 종목으로 친선 경기가 이뤄지는데, 조 회장은 직접 테니스 선수로 뛴다. 또 매년 사내 테니스 대회를 열어 선수로 뛸 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출전 선수와 격의없이 어울리곤 한다.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인 마리아 샤라포바 초청 이벤트는 조 회장의 ‘테니스 경영’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이다. 한솔은 지난해 9월 개최한 제1회 ‘한솔 코리아오픈 테니스 대회’에 세계적인 스타 샤라포바를 초청, 이른바 ‘샤라포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100억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적자가 당연시되던 테니스 대회도 흑자가 가능하다는 값진 수확을 올렸다. 당시 조 회장의 ‘레이더’에 포착된 선수가 바로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그 때까지만 해도 기량보다 외모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조 회장측의 적극적인 설득에 어렵지 않게 구두 승낙을 얻어냈다. 특히 샤라포바가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우승하면서 조 회장이 빼든 ‘샤라포바 카드’는 그야말로 대박이 예견됐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된’ 샤라포바는 ‘작은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스케줄이 밀려 있어 방한할 수 없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한 것. 이 때부터 기업인 최초로 한국협상협회에서 협상 대상을 받은 조 회장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조 회장은 “비즈니스는 신의가 최우선이다. 구두 약속도 계약서에 서명만 안했을 뿐이지 사실상 약속이다. 스타가 약속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팬들은 당연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샤라포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를 집중 공략했다. 양측은 윔블던 우승 ‘프리미엄’을 약간 얹어주는 수준에서 최종 합의에 성공했다. ■ 이인희고문의 자식교육 이인희 한솔 고문도 자식 교육 만큼은 한국의 ‘보통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최고경영자)로서 한솔을 키우느라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 때로는 어머니로서의 냉정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고문은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동혁, 동만, 동길 3형제와 한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 엄격하게 경영 수업을 시켰다. 3형제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만큼 어머니를 ‘경영 스승’으로서 깍듯하게 대한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며느리들도 한때 어머님 대신 고문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고문도 호칭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들 앞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솔의 공동 경영자로서 강한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자는 깊은 뜻에서다. 그러나 마냥 엄한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크게 다치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수주일 동안 직접 병수발을 들며 가슴 아파했을 만큼 자식 사랑이 끔찍했다. 다만 약한 어머니를 내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감췄을 뿐이었다. 이 고문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에 보내 외국어와 국제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3형제 모두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으며,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대학까지 미국에서 졸업했다. 또 이 고문 가족이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덕분에 3형제 모두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이 고문은 자식들의 영어 테스트를 위해 수시로 영어 대화 시간을 갖곤 했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 사회문제 등을 주로 다뤄 자식들이 고급 영어를 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고문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고문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 머물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그곳에서 건강을 돌보다가 3월쯤 한국에 돌아온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포스코·조선업 3社 철판갈등 해빙무드

    배 만드는 철판 공급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던 포스코와 국내 조선업계 ‘빅3’가 공동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해 주목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철강재 품질개선과 차세대 철강재 개발 등을 협의하기 위한 ‘조선용 철강재 발전 공동협의체’를 연내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포스코가 개별 수요업체와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임시 기구를 가동한 적은 있으나, 다수의 업체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기는 처음이다. 포스코와 국내 조선업체들은 그동안 후판가격 인상과 물량 부족 등을 놓고 지속적인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에 이번 협의체 구성으로 향후 양측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될지 관심사다. 협의체에는 국내 선박검사기관인 한국선급도 참여하며 각 사의 구매 담당임원 1명과 실무자 2명씩이 참가할 예정이다. 포스코가 자체 개발한 고장력 강판 ‘TMCP강’의 사용 확대 여부도 관건.TMCP강은 기존 제품에 비해 두께가 얇고 용접성이 뛰어나지만 납기 지연과 품질 불안 등으로 조선업체들이 사용을 기피해 왔다. 포스코 강창오 사장이 국내 조선업체들을 직접 방문해 사용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LG카드 또 '휘청’

    ‘미국계 은행’이 된 외환은행이 LG카드 지원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지난달 9일 채권단이 공동합의한 이후 약 한 달만이다.한미은행도 당초 약속했던 금액의 절반만 지원키로 했다.외환은행 등이 약속을 파기함에 따라 채권단 전체 결속력에 큰 균열이 생기게 됐다.이는 다른 채권기관의 동반이탈 가능성 등 향후 LG카드 정상화 추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특히 업계·정부 등과의 약속을 완전히 무시한 외환은행에 대해서는 금융권 안팎에서 맹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환은행 “남 도울 여유 없다.” 외환은행은 지난 4일 밤 이사회를 열어 1171억원 규모의 LG카드 신규지원과 출자전환 안건을 부결시켰다.김형민 상무는 “외환카드 합병에 따른 유동성 지원 등 자금 부담이 너무 커 LG카드까지 지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외환은행과 마찬가지로 지원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었던 한미은행은 5일 당초 예정액 669억원의 절반만 지원키로 했다. ●채권은행들 “다시 이사회 거쳐야” 외환은행의 이탈에 따라 하나·신한·조흥 등 상당수 채권은행들이 LG카드 지원안을 이사회에 다시 올려 승인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이들은 ▲은행 10곳 ▲생명보험사 3곳 ▲손해보험사 3곳 등 16개 채권기관의 ‘전원 참여’를 전제로 지원안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LG카드 지원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개별 기관이 이제와서 발을 빼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LG카드가 무너졌을 때의 채권손실액도 그렇지만 일단은 정부의 압박이 거세다.재정경제부 김석동 금융정책국장은 이날 “LG카드 지원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이를 어길 때에는 채권기관들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채권단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 채권은행 부행장은 “정부가 이렇게 강하게 밀고 나오는데, 따라가야지 별 도리가 있겠나.”라면서 “애초에 LG카드를 파산시켰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원칙없이 지원안을 만들어 이런 꼴이 났다.”고 못마땅해 했다.다른 은행 관계자도 “이사회를 열어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애초의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외환은행 ‘왕따’되나 외환은행에 대해서는 금융권 안팎의 비난과 함께 지난해 8월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에 인수된 이후 줄곧 제기됐던 국내 금융시장 안정과 발전에 대한 책임 논란이 다시 불거지게 됐다.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이 국내 금융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극히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다.”면서 “카드사 합병에 따른 비용부담을 지원 거부의 이유로 달았지만,이는 대부분 은행들이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이동걸 부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개별적인 이익을 앞세운 일부 채권기관들 때문에 정상화 방안이 무산되면 이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 등 모든 상황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일부에서는 금융감독원 검사나 신규상품 약관승인 등에서 외환은행이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우리은행 다이아몬드클럽 신년하례 강연에서 “외국자본이 금융시장을 장악하면 시스템 리스크(금융시장의 체제적 위험) 발생 때 국익에 관계없이 방치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외환은행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한편 LG카드는 외환·한미은행의 지원결정 지연 외에 지난해 말 지원한 2조원의 채권회수 문제를 놓고도 채권기관간 이해다툼이 계속돼 아직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구성도 못하고 있다. 안미현 김태균 김유영기자 hyun@˝
  • 美쇠고기 ‘광우병 수입금지’

    정부가 광우병 발생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사실상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미국산 쇠고기는 국내 소비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설 명절까지 다가와 공급량 부족에 따른 ‘쇠고기 파동’으로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호주·뉴질랜드 등 광우병 우려가 없는 국가의 쇠고기 수입물량과 한우 출하량을 늘리는 등 수급 및 가격 안정대책을 강구키로 했다.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미국을 ‘우해면양뇌증(BSE) 발생국 또는 발생위험국’으로 잠정적으로 추가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미국산 소,양,염소 등 반추동물에서 추출한 원료를 함유한 의약품,화장품,의약외품,의료용구 및 원료 등을 수입할 때에는 24일 현지 선적분부터 반드시 미국 정부가 발행한 ‘광우병 미감염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농림부는 이날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 의심사례가 발견된 것과 관련,미국산 쇠고기와 육가공품·기타 반추동물 등의 국내 통관을 보류시켰다고 발표했다. 통관보류는 수입물량이 국내 항구 등에 도착하더라도 검역을 중단해 통관을 유예시키는 것으로,사실상 수입금지 조치에 해당된다.구체적인 대상은 소와 기타 반추동물의 육질 부위,뼈,내장,육골분,이를 이용한 가공품이다.우유 및 유제품은 해당되지 않는다. ▶관련기사 3면 농림부는 “미국 정부의 최종 검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유입을 차단했다.”면서 “다음주중 최종 결과가 광우병으로 나오면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농림부는 또 이미 검역을 통과한 수입물량에 대해서도 출고보류 조치를 내렸다.아울러 지난 10월21일 처음으로 국내에 반입된 미국산 생우 753마리에 대해 추적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이들 생우는 6개월이 지나 도축되는 만큼 당장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다만,시중 유통물량 가운데 척추뼈나 내장 등 광우병과 관련이 있는 특정위험부위(SRM)는 판매를 중단시키기로 했다. 유통업계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 매장을 즉각 철수시키고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로 대체하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쇠고기 수요가 많은 연말연시에 악재가 터져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한우값 급등 사태를 우려했다. 안미현 김성수기자 hyun@ 美농무 “美선 첫 사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앤 베너먼 미 농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소가 워싱턴주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베너먼 장관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워싱턴주 메이플턴의 한 농장에서 사육중인 홀스타인 젖소가 일차 검사에서 광우병으로 알려진 우해면양뇌증(BSE) 양성반응을 보였다면서 광우병 감염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소에서 채취한 샘플을 영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소식이 발표된 직후 한국에 이어 일본,호주,타이완,태국,말레이시아,홍콩 등 아시아국들에 이어 멕시코,브라질, 러시아 등이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mip@
  • 에버랜드·롯데월드·금호·우방랜드 도시락 싸갈수 있다

    앞으로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 도시락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또 고장 등으로 놀이시설을 이용하지 못했을 때는 ‘대체 이용권’ 대신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삼성 에버랜드·롯데월드·금호패밀리랜드·우방랜드 등 전국 4개 대형 놀이공원의 이용약관이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며 시정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해당업체들은 공정위의 지적을 수용,대부분 시정키로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음식물 반입 전면금지 조항이다.이들 업체는 그동안 고객이 도시락이나 간식을 싸올 경우 놀이공원의 쾌적한 환경을 해친다며 반입을 금지하면서 놀이공원 안에서 음식물을 사먹도록 했다.공정위측은 “고객이 싸온 도시락은 환경을 해치고,업체가 파는 도시락은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는 논리적 모순”이라며 시정조치를 내렸다. 또 사고가 발생했을 때,고객에게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상호 협의를 통해 놀이공원측에서 손해를 배상해주도록 했다. 지금은 업체의 잘못이 훨씬 크더라도 고객의 귀책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배상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등 일부 놀이시설은 고장 등으로 인해 시설 이용이 어려워질 경우 다른 날 이용하도록 대체 이용권을 줘 왔으나 앞으로는 고객이 요구하면 이미 낸 입장료를 되돌려줘야 한다.불쾌감을 야기했던 롯데월드의 소지품 검사도 없어진다. 안미현기자 hyu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