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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독 문학교류의 새장 펼친다/분야별 양국문단 대표·저명문인 참석

    ◎다양한 행사 준비… 작품·문인교류 정례화 새전기 한국문학과 독일문학이 만난다.주한독일문화원과 우경문화재단 주관으로 오는 25일부터 7일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독일문학의 주간」행사에는 현대독일을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 7명과 9명의 한국측 문인이 참가해 한·독양국의 본격적 문학교류의 장을 여는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한국과 독일은 전쟁과 분단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유사한 정치적 운명을 겪었으며 문학적으로도 리얼리즘으로부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행되는 닮은 꼴을 보이고 있다.특히 분단을 해소한 통일독일의 체험은 한국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독일측 참가자는 현재 독일문단에서 중견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를 리아교수(지겐대 독문학),문학평론가 노르베르트 밀러교수(베를린대 독문학),시인 하랄드 하르퉁교수(베를린대 독문학),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소설가 한스 요아힘 세들리히,소설가 클라우스 슐레징어,시인 두르스 그륀바인,시인이자 무용안무가인 유디트 쿠카르트를 비롯 베를린문학교류회 사무총장인 율리히 야네츠키씨등 8명이다.독일현역 최고의 원로시인인 발터 휠러러는 고령으로 참가하지 못하는 대신 작품을 보내왔다. 한국측 작가로는 지난해 7월 독일에서 열린 「한국문학의 주간」에 동행했던 문인들이 모두 참가한다.문학평론가 김병익·김주연·김치수씨,소설가 김주영·김원일·홍성원씨,시인 오규원·김광규·김혜순씨이다.각 분야별로 한국과 독일양국의 문단및 문학경향을 대표할만한 인물로 짜여졌다. 독일작가 일행은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동안 매일 저녁7시30분부터 독일문화원에서 독일문학의 현황및 자신의 작품을 낭독한다.한국측 작가들은 이를 한국어로 낭독한뒤 상호간의 의견을 교환,토론하는 방식으로 작가낭독회및 독자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또 28일 상오10시부터는 서울대(세틀리히),연세대(리아),홍익대(슐레징어),숙명여대(쿠카르트),서울여대(그륀바인),경원대(하르릉)등 6개대학별로 독일작가와 한국대학생들의 만남행사를 갖는다.독일측 작가일행은 29∼30일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경주를 둘러본뒤11월1일 한국을 떠난다.
  • 안무혁·이부영의원 두번째 동반 외유 “눈길”

    ◎도쿄 세미나 참석 오늘 출국 안무혁의원(민자)과 이부영의원(민주)이 4일 또 동반 해외여행에 나선다.행선지는 일본.5일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정치를 생각하는 모임」주최 「동아시아의 정치개혁」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이 세미나에는 한국 대만 일본의 국회의원및 학자 16명이 모여 현재 세 나라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과 그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두 사람의 동행은 이번이 두번째.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행이 최상용교수(고려대)를 포함해 3명으로 늘어났다는 사실 뿐이다.두 사람은 지난 5월30일 7박8일의 일정으로 중앙아시아의 한인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한 비행기를 탔었다.그리고 현지답사결과를 종합한 「중앙아시아의 교민실태 조사보고서」라는 책자를 공동으로 펴냈었다. 황해도출신의 안의원은 서슬퍼런 5공시절 사회정화위원장 국세청장 안기부장등 줄곧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반면 제도권내 재야출신들의 수장격인 이의원은 민통련 사무처장,전민련 공동의장출신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안의원 같은 사람들로부터 늘 박해를 받는 쪽이었다.그런 사람들이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그것도 둘이서만 해외에 나간다. 이의원은 『시각이 건전하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안의원을 칭찬한다.그리고 『한 시대의 획을 긋고 넘어서는 시기에 과거 상반된 지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공통점을 찾는 작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번 여행에서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 “온 국민 동참해야 개혁 성공”/김수환추기경 강연회 주제발표

    ◎형식적 변화보다 가치관 확립을/돈이 목적일때 총체적 부패 초래 김수환추기경은 21일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년 세월동안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속에 역대 어느 헌법으로도 하지 못했던 변화와 물갈이를 가져왔으나 요즈음에 와서는 문민정부 초기의 희망과 기대가 일종의 불안과 비판과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발전연구원(이사장 안무혁)이 연구지 「한국발전」창간 1주년을 기념,이날 밤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강연회에서 김추기경은 「오늘을 생각하며」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진단하고 『그러나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추기경은 개혁의 성공을 위한 제언에서 『대통령을 비롯,개혁을 주도하는 분들이 모든 것이 잘돼가는 것으로 오산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대통령도 「No」라는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이 열려있을 것』을 당부했다. 또 김추기경은 『개혁은 우리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우리 스스로 형식적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윤리관과 가치관의 확립을 통해 개혁에 걸맞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정부패 원인을 『돈은 수단인데 목적이 되고,정작 목적이 되어야할 인간은 수단이 된데 있다』고 말하고 낙태,외국인노동자 차별,노사분규,집단이기주의등 일련의 문제들이 생명경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김추기경은 또 『개혁은 우리가 실질적인 세계속의 한국이 되도록 하는 것이며 근면·정직·성실을 바탕으로 남과 더불어 살줄아는 인간성만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신경제 세제개편 “쉴틈 없다”/실명제 산파역 재무부 세제실

    ◎8개과 80명 “휴가 못갔지만 보람”/48년 사세국으로 출범… 90년 실 승격 올들어 중앙 부처의 단위 부서 가운데 일을 가장 많이 한 곳으로 재무부의 세제실(실장 김용진)이 단연 선두로 꼽힌다. 「개혁중의 개혁」인 김융실명제를 철저한 보안 속에 마련,전격 단행한 산파역을 해냈기 때문이다.신경제 5개년 계획의 세제개편 작업을 추진하는 핵심 센터로 말 많던 토지초과이득세제를 개선하느라 분주하기도 했다. 김실장을 정점으로 김진표·엄락용국장을 비롯한 8개과 80여명의 세제실 직원들은 그만큼 뿌듯한 보람으로 휴가와 휴일을 잊은 올 여름을 아쉬워하지 않는다.그러나 실명제의 입안 과정에서 동료들에게까지 감춘 점을 미안하게 여기고 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세금문제를 다루는 세제실은 실명제라는 혁명적 조치로 우리 세정사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기게 됐다. 세제실은 광복 후인 지난 48년 11월4일 사세국으로 출발했다.당시 징수·직세·간세·국유재산과의 4개 과로 구성된 사세국은 각종 세법을 제정,우리나라 세제와 세정의 기반을닦았다.하부조직으로 오늘날의 국세청인 사세청과 세무서를 두고 조세정책의 집행까지 맡았다. 사세국은 제3공화국 들어 시작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66년 2월28일 세제국으로 확대 개편됐다.막대한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한 조세정책을 전담했다.세제국의 개편 한달후 내국세의 집행을 전담하는 국세청이 외청으로 독립한다. 세제국이 세제실로 바뀐 것은 지난 90년 9월10일 경제의 균형발전과 복지증진을 위한 재정수요 증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세제개편과 공평과세를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였다.책임자도 국장급에서 관리관(1급)으로 격상되고 그 밑에 국장급인 2명의 세제심의관을 두게됐다. 김실장은 초대실장에 취임한 이래 만 3년을 계속 맡고 있다.지난 84년 6월부터 5년동안 17대 세제국장으로 재직하며 금융실명제 대책반을 지휘했고,이번에는 실장으로서 실명제 실시를 완벽하게 마무리해 사실상 실명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고 시행하는 영광과 고통을 함께 했다.막판에 실무진으로 참여한 진동수과장과 임동빈·최규연사무관은 지난 89년 2차 작업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다. 경북 상주출신의 김실장은 김천고와 서울대 독문학과를 나와 지난 66년 행정고시(4회)에 합격한 뒤 국세청과 재무부의 세정분야에서 26년을 일한 대표적인 조세통이다.선굵은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전문지식과 집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국세청 국장 시절에는 당시 실세였던 안무혁청장에게 유일하게 제동을 걸 만큼 총애를 받았다. 세제국장으로는 김실장에 앞서 초대국장인 인태식 전재무장관에 이어 김학렬 전 부총리(7대),나오연의원(민자·13대),서영택 전 건설장관(15대),백원구재무차관(16대),이근영 국세심판소장(18대)등이 있다. 세제실은 금융실명제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그동안 이재국에 다소 눌려온 입지를 확고히 하며 인재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 바캉스 없는 파리의 문화행사(특파원코너)

    ◎외인 관광객·피서못간 시민대상/연극­음악­영화 축제등 풍성 여름 휴가로 시민들이 빠져나간 요즈음의 파리 중심지는 한산하다.그러나 지방에서는 아비뇽축제등 이름난 연극제·음악제·영화제·무용제들이 곳곳에서 열려 예술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여름 바캉스철이라도 파리에서는 여전히 볼거리는 충분하다.주요극장 인기 레퍼토리는 계속 무대에 오르고 더욱이 휴가를 떠나지 않은 시민들이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되는 여름축제 「파리,여름터」까지 있다 「여름터」축제란 매년 7월15일부터 8월15일까지 한여름 한달동안 파리 시내와 주변 곳곳에서 음악 무용 영화등의 행사가 펼쳐지는 것으로 대부분 야외행사이며 무료다.올해도 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 행사의 하나로 요즈음 뤽상부르공원에서는 날마다 하오 6시에 「세계의 음악」이라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여러나라의 음악연주를 공원의 푸름속에서 무료로 즐기는 것이다.초청 연주단가운데는 이탈리아의 제노아,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동유럽 알바니아 등에서 온 이름있는 악단들도 있다. 파리의 두개 오페라극장가운데 오래된 가르니에 오페라(흔히 오페라라고 부르는 곳)는 한여름의 휴면기간중 층계나 로비의 공간을 「파리,여름터」축제에 제공한다.지난달 16일부터 3일간 여기서는 「아프리카 음악」연주가 있었다.남아프리카·감비아·나이지리아·케냐·말리·세네갈·짐바브웨등 검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민속악단들이 초청되어 왔다. 지난달 24일에는 파리 오페라단이 파리 관현악단과 함께 파리 교외의 라 데팡스 지역의 거대한 구름다리집 앞에서 베르디의 진혼곡을 연주했다.이 연주는 올해 「파리,여름터」축제의 주요행사였다. 라틴구에 있는 국립중세박물관의 고색창연한 홀에서는 금·토·일요일마다 윌테리아 실내악단이 연주하는 중세기 음악회가 계속되고 있다. 강 건너로 에펠탑이 손에 잡힐듯 보이는 샤이요 궁 뜰안 이곳저곳에서는 저녁마다 노천 무용공연이 있다.안무가 필리프 데쿠플레,호세 몬탈보,다니엘 라리외 앤 칼슨,더그 엘킨스의 개성있는 현대무용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파리 교외인 비예트에서는 여름밤 하늘아래서 야외영화감상을 즐길 수 있다.매일밤 시원한 서부영화를 틀어준다.비예트에서는 그밖에 야외무도회와 서커스 공연도 있다.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답게 파리시는 여름에 시민들이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무료해 할까봐 이렇게 신경을 쓴다.
  • 성공적 개막공연 총괄 안무 육완순씨(인터뷰)

    ◎“예술성과 보는 재미 접목”/“「꿈돌이」 한지영양이 한몫 다해줘 다행” 6일 상오 대공연장에서 열린 대전엑스포개막식 식후공연 「문명의 사계」는 역동적 무대,정제된 춤,의표를 찌르는 안무등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근래 보기 힘들었던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 개막공연의 총괄안무자 육완순씨(60·현대무용가)는 『지난해 입시부정사건으로 실추된 명예를 이번 무대로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화여대입시부정사건에 연루돼 은인자중해 왔던 육씨에게 맡겨진 이번 개막공연안무는 한국현대무용의 신천지를 개척한 「현대무용의 대모」로서의 진가를 보여준 손색없는 무대였다. 육씨가 이날 공연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국제적 무대공연에 걸맞은 예술성과 보는 재미를 접목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이미 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성공리에 치른 노하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14억8천원만이라는 거액을 들인 이번 공연에 대한 부담은 한결 덜한 편이었다. 공연주제에 맞는 적역의 「꿈돌이」선발이 이번 공연성공의 열쇠였다.어렵사리 뽑은 한지영양(9·서울 숭의국교2년)이 안무의도에 어긋나지 않게 한몫을 해줘 다행이었단다. 사실 육씨가 총괄안무를 맡게 된데는 우여곡절이 따랐다.당초 지난해 10월 육씨를 포함한 5명이 공동안무자로 선정됐으나 대회개막을 몇달앞둔 지난4월 갑자기 육씨 혼자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지난5월27일 정식위촉장을 받아 6월부터 안무작업에 들어갔을 만큼 시간에 쫓겼다.공연시간도 본래 예정돼 있던 밤공연에서 아침공연으로 바뀌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2일 대전현지에 내려와 서울예술단등 단원들과 함께 합숙훈련을 해온 육씨는 20년간 장기공연된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무대감독이자 올림픽때도 손을 맞췄던 연출가 유경환씨등 단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 물보라 빛보라속 꿈돌이 두둥실

    ◎환호·갈채… 대전엑스포 개회식행사 3시간/사물놀이·「문명사리」에 신명… 찬탄/“미래를 열자” 풍선메시지 띄우고/시민들 “질서지키자” 다짐 새로이 【대전=특별취재단】 축제는 시작됐다.한밭벌 전역에 태극문양 엑스포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6일 상오 거행된 화려한 개막행사와 함께 대전엑스포의 열기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앞으로 93일동안 한민족의 과학기술 발전상과 도약에의 의지를 전세계에 과시할 대전엑스포는 이제 대장정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엑스포개회 팡파르와 함께 한밭벌의 과학·문화축제가 본격화되자 개회식장을 찾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번 행사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질서의식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개막식장에 참석지 못한 수많은 대전시민들도 박람회장 주변을 둘러싼채 세계적인 큰 잔치를 우리 손으로 직접 치른다는 기쁨에 들뜬 모습이었다.이날 행사는 갑천 엑스포 다리의 식전행사에서 대공연장의 개막축전행사까지 모두 3부로 나뉘어 3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식전행사◁ 6일 상오 10시10분엑스포 교향시 「꿈돌이 탄생」이 장엄하게 울려퍼지자 갑천 엑스포다리 아래에서 치솟는 수상분수에 둘러싸여 꿈돌이가 떠오르면서 대전엑스포의 막이 올랐다.탄생한 꿈돌이는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오색연기와 불꽃·물보라를 가로질러 엑스포 다리로 올라와 태양열 자동차를 타고 주행사장인 한빛탑으로 향했다.취타대를 선두로 대전여상·한밭여상 학생 2백여명으로 구성된 엑스포 기수단과 십이지신을 상징하는 탈을 둘러 쓴 대전시립무용단과 충남전문대 무용과 학생들이 「꿈돌이」를 연호하며 뒤를 쫓았다. 꿈돌이의 길을 선도하는 육군 취타대가 한빛탑앞에 다다르자 한국여성근우회등 6백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꿈돌이 일행을 맞이했다.이어 황·흑·백·홍·청색의 깃발을 휘날리며 기수단이 꿈돌이와 함께 도착하자 10개의 큰 북이 울려펴지며 한빛탑을 진동시켰다. 이들 사이로 태양열 자동차를 탄 꿈돌이가 롤러 스케이트를 탄 무용수들의 뒤를 따라 쏜살같이 본공연장으로 지나가자 한빛탑 광장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는꽹과리와 징을 치며 기수단과 잡신을 쫓는 지신밟기를 펼쳐 식전행사는 절정을 이뤘다. ▷본행사◁ 개회식및 식후공연 「문명의 사계」가 열리는 대공연장은 개회식이 시작되기 30분전인 10시쯤부터 이미 관중입장이 완료됐다.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대공연장에는 대형스크린이 설치돼 2천6백여 참가자들에게 화면을 제공했으며 국방부 국악대,KBS관현악단,대전시립합창단등이 동원돼 개회식의 성대함을 더했다. 개회식에 이어 열린 「문명의 사계」공연은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거듭나기로 구성된 이날 공연은 무대의 화려함과 무용수들의 다양한 의상,그리고 기발한 안무로 30분동안 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거듭나기에서 천재적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과 꿈돌이소녀 한지영양이 무대 바닥에서 위로 솟아 올라 5분동안 연주와 춤을 선보인 장면등이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이뤘다. 대공연장공연이 끝난뒤 개회식의 무대는 한빛탑으로 옮겨졌다.상오 11시50분 한빛탑광장에서는 꿈돌이 메시지 1만장을 담은 높이 7m의 대형 꿈돌이 기구가 떠올라 전 세계에 꿈돌이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이어 1천명으로 구성된 사상 최대의 사물놀이패가 꿈돌이 메시지를 우리의 소리로 알리기 위해 뒤풀이 공연을 벌이면서 한빛탑 주위는 일순 소리의 광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밤 갑천변에서는 레이저 등을 동원한 영상쇼와 불꽃놀이 등의 화려한 개막축제가 열렸다.
  •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신예무용가 9명 발굴

    ◎윤미라·이명진·최귀현씨등 모두 60년이후 출생/「춤93 신세대 가을 신작무대」에 참가 오는 11월 7일부터 15일까지 문예회관소극장에서 열리는 「춤93 신세대 가을 신작무대」에 참가할 신예무용가 9명이 정해졌다. 문예진흥원과 한국무용협회 공동주관으로 19 60년이후 출생한 젊은 무용가들을 참가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오디션은 종래의 선발무대와는 달리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기준이 적용돼 관심을 끌었다.지난11일 국립극장에서 실시된 선발오디션에는 모두 39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해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등 3개 부문별로 경연을 벌였다. 심사위원은 각 분야별로 2명씩이 배정돼 엄격한 기준에 따라 평점이 매겨졌다.오디션은 특히 우수 안무자를 선발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으며 안무능력과 연기능력,예술성등을 종합하되 안무능력 60%,연기능력 40%를 배분했다. 특히 이번 오디션에서는 해당 심사위원과 연관이 있는 참가자가 대상이 될 경우 그 심사위원은 일체의 발언을 할 수 없었으며 심사장소를 잠시 나가있게 하는등 공정성에 만전을 기했다.오디션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음악과 주제도 오디션 당일 2시간전에 참가자와 심사위원에게 동시에 전달됐다.음악은 심사위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제작된 전위음악이 사용돼 안무과정에서 협의할 수 없도록 한것. 선발된 무용가는 ▲한국무용=윤미라(33·선화예고 강사),이명진(31·서원대강사),박미순(24·계명대졸) ▲발레=최귀현(26·한성대졸),한금련(27·국립발레단단원),김금선(28·수원대강사) ▲현대무용=김원(30·전북대조교수),황미수계(32·전북대강사),김남식(24·한양대강사)등이다.
  • 「아침 한때 눈이나 비」/노주석 문화부기자(객석에서)

    ◎연극·무용 본격 혼합극 “일단 합격” 장기공연중인 오태석연출,김매자안무의 연극·무용혼합극 「아침 한때 눈이나 비」(창무 포스트극장,20일까지)에 대한 객석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이번 무대에 대한 관심은 각기 다른 장르로 갈려 닫혀있던 연극과 무용의 벽이 얼마만큼 허물어졌고 또 어떻게 융합되어 나타났느냐하는데 쏠려 있는듯하다. 「아침한때…」는 지난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해 48년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채 박쥐처럼 살아온 한 여인이 겪는 부조리한 역사를 비극적인 가족사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상에 투영시킨 작품.이 무대를 통해 춤꾼 김매자씨와 창무회 수석무용수인 최지연씨가 연극배우로 데뷔하는 이색무대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무대는 성공적이다.연극팬과 무용관객 모두를 만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종래 연극공연의 안무를 무용가가 맡거나 연극연출가가 무용공연의 연출을 행하는 공동작업형식은 더러 있었으나 서로의 전문성을 조금씩 빌림으로써 「말」의 한계와 「몸짓」의 빈약함을 서로 적당하게 보충한데 그쳤다. 그러나 이번 무대처럼 중견연출자 오태석씨가 이끄는 목화레퍼터리컴퍼니와 중견무용인 김매자씨의 창작무용단 창무회단원등 연극·무용계의 주요 단체의 단원20명이 「헤쳐모여」 본격적인 합동공연을 벌인다는 것은 공연속성상 쉽지 않은 일이다.성공여부가 분명치 않을 뿐더러 연극과 무용이 만나면 무엇이 될것이며 어떻게 합쳐질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정답이 아직 구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소 연극적 요소가 강했다는 일반평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실험적 무대라는 약점을 감안하면 이번 공연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추상적,시적으로 나타나는 춤의 표현과는 달리 산문적,사실적 표현이 주가 되는 현대 공연예술의 주요 장르 「댄스 시어터」의 한 전형을 제시하는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연기자들의 열의와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무대의상,음악,조명등이 어우러져 나무랄데 없는 한편의 「무극」으로 만들어 졌다.이런 공연형식에 생소한 관객입장에서는 연극과 무용의 만남에서 황금분할은어디인가에 포인트를 맞춰 감상하면 「보는 재미」가 더 할 것이다.
  • 6·10 재조명에 퇴색하는 6·29/오늘「선언」6주년…여권의 시각

    ◎5·16­12·12­5·18 맥락서 재평가/“기념할 가치있나” 공식행사 전무 6·29 6주년을 맞는 여권의 입장은 1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6공 시절 매년 어김없이 계속됐던 공식기념행사는 어느 한 곳에서도 거행되지 않는다.오히려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6공과 문민정부의 차별화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이다. 개혁의 바람속에 6·29에 대한 재조명도 거의 마무리된 것과 다름없다.새정부는 5·16,12·12,5·18등과 유사한 맥락에서 6·29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한마디로 6·29는 6·10항쟁의 부산물이라는 시각이다.『국민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과』로 보고 있다.문민정부 탄생의 기반은 광주 민주화운동과 6·10항쟁에 있다고 이미 규정해 놓은 상태이다.6·10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될 수록 6·29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퇴색할 수 밖에 없다. 여권은 그러나 6·10과 마찬가지로 6·29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평가는 유보하겠다는 입장이다.6·10의 경우,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사회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자세를 견지했다.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6공에 대한 배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이 이런 만큼 6공 한때 논란이 됐던 6·29의 주체가 누구냐는 시비도 이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이 문제를 놓고 5공과 6공 세력간에 시비가 벌어졌을 당시 5공인사들은 「6·29는 전두환대통령의 작품」이라며 구체적 자료까지 흘리기도 했다.「노태우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데 대해 제동을 건것이다.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은 누가 그것을 구체화 시켰느냐가 중요하다고 맞섰다.당시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등을 받아들여 실천에 옮긴 당사자가 노전대통령이라는 논리였다.그러나 문민시대를 맞아 6·29선언이 지니는 무게는 급격히 감소됐다.그만큼 여론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노전대통령도 재임중 6·29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면 「국민에 대한 항복선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탄생 배경이 국민적 민주화 열망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 것도 사실이다.노전대통령은 재임중 선언의 8개항 가운데 지방자치의 미진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완수했다고 평가하고 이를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다.실제로 6공의 통치철학은 6·29선언이었다. 6·29 6주년을 맞는 노전대통령의 심정은 착잡할 수 밖에 없다.6·29선언에 의거,민주화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종전의 평가가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현실이다.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등과 관련,새정부의 개혁작업이 6공의 실정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한 측근인사는 다만 『6·29가 있었기에 6·10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노전대통령은 29일 하오 6·29 선언에 간여한 인사들을 비롯,측근인사 10여명과 함께 시내 음식점에서 조촐한 기념만찬을 가질 예정이다.참석인사는 정해창 최석립 김중권 이춘구 안무혁 현홍주 이병기 이진씨 등이다.
  • 우즈베크공(중앙아의 한인사회:중)

    ◎국회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민족화합정책으로 이민초기 고충 해소/극면성 바탕 경제발전 기여… 자긍심 높아 현재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약45만명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다.그들 가운데 3분의2에 달하는 30여만명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1937년,18만여명에 달하는 연해주 거주 동포들이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온 이후 그들은 황량한 박토 중앙아시아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역이었다.강제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형제들,아들 딸들이 죽었지만,그리고 이주된 후 창문도 없는 토굴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우리 동포들은 천부적인 근면성과 탁월한 농사 기술로 콜호스(Kolkhoz)라고 하는 수많은 협동농장을 건설했고 지역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농사를 지어냈다. 현재는 그곳의 정부나 공·사기업에 진출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포도 많이 있고 대학교수 등의 전문 인텔리들도 그곳 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그들은 지금까지의 중앙아시아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고 대체로 중류 이상의 다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카자흐공화국에서 동포지도자들을 직접 만났을때 그들의 표정에서 한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마아타에서의 일정을 끝낸 우리 조사단은 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했다.우즈베키스탄의 국기가 선명히 그려진 아에로플로트기는 기내 방송을 러시아어에 앞서 우즈베크어로 시작하고 있었다.우즈베크공화국은 TV나 라디오 방송,상점의 간판이나 공문서 작성 등을 이미 우즈베크어로 공식화했다.총인구 2천만명중 70%에 달하는 우즈베크민족의 비율과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독재가 급속한 탈러시아화 및 우즈베크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사회발전 모델은 카자흐공화국과 마찬가지로 터키식의 발전방식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세속적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종교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인접한 이란 등지의 회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는 달리 온건하고 대중적인 성격의 종교문화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민족화합 정책과도 잘 부합하고 있었다.그러나 현지의 우리나라 교회들이 십자가를 옥외에 걸지 못할 정도로 타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대통령 민족문제 담당 비서관 사이도프와 우즈베크 공화국 의회 국제외교위원장 지야모프를 차례로 면담했다.그들은 한결같이 한인들의 우수성과 근면성에 대해 칭찬하고 한인들은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으로서 다방면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잘 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강력한 민족화합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들은 올해 초 일부 국내언론에 보도된 우즈베크 민족주의자들이 금년내로 한인들에게 이 지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이에 대해 대단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또한 「재CIS 고려인연합회」가 자치주 추진과 관련하여 우즈베크 안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민족화합정책이 다민족국가에서 필수적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그들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족분규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한인인 블라디미르박이 회장으로 있는 치르치크시의 비철금속내열합금 공장과 지모페이황이 회장인 타슈켄트주의 폴리타젤 협동농장을 방문했다.그곳을 방문케된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우즈베크 정부의 배려때문이었다.우리동포들은 한결같이 몸집이 크고 건장해 보였다.지도급 인사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몸에 밴 듯했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특히 우리는 폴리타젤 농장에서 1937년 강제이주후 눈물겨운 노력으로 정착지를 개간하고 훌륭한 터전으로 변화시킨 동포 1세들을 만날 수 있었다.칠순이 넘었음에도 아주 건강한 모습이던 그들은 인심 또한 후하여 농장에서 재배한 갖은 과일과 고기를 보드카와 함께 대접해 주었다. 사실 필자는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강제이주 초기의 파란만장한 신산고초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단,술자리에서의 어우러짐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마저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이유없이 즐겁고 흥겨운 마음을 확인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일일 것이다.안무혁 의원과 필자는 합금공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 칼을,폴리타젤 농장에서는 우즈베크 전통의상을 선물로 받았다.우리 문화와 우리 풍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었으면 더 좋았으리라.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이미 우즈베크공화국 국민인 것이다.
  • 국회 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중앙아의 한인사회:상)

    ◎카자흐공의 실상/평등정책 표방속 민족주의 부흥책 도모/일부대학·협동종장서 한인 추방하기도 구소련의 붕괴이후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민족주의의 발호,종파간의 분쟁으로 언제 또다시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실제로 타지크공화국에 거주했던 1만3천여명의 한인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인접국에서 난민생활을 해야만 했다.현재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는 구소련의 전체 한인 45만명 가운데 4분의3인 32만명의 한인들이 살고있다.국회 외무통일위 소속 안무혁(민자),이부영의원(민주)은 지난 4월30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한인 10만5천여명이 살고있는 카자흐공화국등 중앙아시아지역을 방문,한인들이 겪고 있는 수난의 실태를 살펴보았다.두의원은 5공 당시 권력과 재야운동권의 핵심이라는 상반된 경력에도 불구,「동반여행길」에 올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었다.이의원이 현지조사활동을 통해 체험한 한인동포들의 실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로 가기 위해 탑승한 아에로플로트 기내는 마치 우리나라 70년대의 시외버스 속 같았다.좁은 좌석에다 때묻은 시트며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기내를 가득 메웠다.우리민족같은 인상을 지닌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1백20여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저렇게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아무 분란없이 한 공동체에서 오순도순 살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우리는 단일 민족임에도 남북이 갈린데다 남쪽에서마저 호남이다,영남이다 하며 가르는 판이지 않은가.이제 소연방이 붕괴하면서 여러 민족들을 한데 묶었던 사회주의라는 울타리도 급격히 무너져 내리면서 탈러시아화,민족주의화 흐름이 독립국가연합(CIS)내 곳곳에 팽배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바로 이 흐름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우리 한인동포들도 이제 새롭게 변화된 삶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다.특히 지난 1월에서 3월 사이에는 타지키스탄의 내전 상황과 민족 차별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의 실태가 보도된 바 있다. 「중앙아시아 한인동포 실태 조사반」이라는 명칭으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의 공식적인 파견 임무를 띤 안무혁의원(민자당)과 필자 그리고 한백연구재단의 정영국박사 등 우리 일행의 중앙아시아 행은 바로 그들의 변화된 생활과 그곳 현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서울을 떠나기 전 언론에서 안무혁의원과 필자의 동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하기도 했지만,지난 시기 냉전으로 세계가 얼어 붙고 군사 독재로 숨죽여야 했던 시절 한반도 남쪽 한켠에 갈라져 살던 우리가 위정자건 재야운동가건 어디 북방의 동포들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있었던가.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인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5시간여를 날아 알마아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31일 이른 아침이었다.가랑비가 간간이 뿌리고 있었다.우중충한 하늘이 정착지를 위협 당하는 동포들의 암담한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떠나기 전부터의 우리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변화된 사회속에서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동포들의 불안한 삶과 미래에 가 있었다. 카자흐공화국은 총인구1천7백여만명 중 44%에 이르는 카자흐인을 비롯,1백2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며 우리동포들은 10만5천여명이 살고 있다.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민족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따라서 표면상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그러나 카자흐공화국은 다른 한편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부흥을 도모하는 2중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나자르바예프대통령 경제고문인 방찬영 박사가 설립한 「카자흐스탄 과학,경영 및 전략센 터」에서 만난 사투발딘 교수는 카자흐인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몽골지역에 거주하는 15만명 정도의 카자흐인들 중 작년에 5만명을 이주시켜 왔다고 전했다. 한인들과 카자흐민족은 각기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시장충돌이 없다는 것도 카자흐민족과의 관계가 상호 조화의 관계라는 하나의 예로 제시되기도 했다.우리가 만나본 카자흐공화국 라크마디예프 문화성 장관이나 토카예프 외무차관 역시 이해관계에서 대립이 없음을강조하고 한인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교 근본주의의 흐름은 중앙아시아에 인접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지에 상존해 있어 언제 확대될지 모르는 형편이고 타지크에서 내전이 발발하듯이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미쳐 종파간의 분쟁이 정권 쟁탈의 위기상황으로 비화되거나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카자흐인들이 효율적인 적응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민족분규는 우리동포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는 1920년대 초 연해주에서 「레닌의 기치」로 출발했던 한글신문 「고려일보」를 방문했다.정영환 사장 역시 민족간의 불평등으로 우리 동포들이 당장 피해를 당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으나 몇몇 대학이나 협동농장 등에서 한인이 쫓겨나는 사례가 있음을 지적하고 장기적으로 카자흐민족주의의 변화에 따라 한인 동포들이 불이익을 받을 상황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았다. 고려일보는 매우 전통있는 신문이지만 1년전부터 카자흐정부 보조금이 폐지된 후로는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었다.얼마 못가 파산하리라는 추측들이 있었다.한달 운영비 약 8천달러만 지원받는다면 건재할 것이었다.정부나 민간차원의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 “지구당제도 폐지돼야”/이만섭의장/현소선거구제 개편도 주장

    이만섭국회의장은 18일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검토를 통한 깨끗한 정치의 실현없이는 개혁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전제,현행 지구당제도의 폐지와 선거구제의 개편을 주장했다. 이의장은 이날 상오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한국발전연구원(이사장 안무혁)이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정치개혁과 그 방향」이라는 주제강연을 통해 『과다한 자금이 드는 현행 지구당제도로는 절대로 깨끗한 정치를 할수 없기 때문에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의장은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소선거구제는 금권선거가 되기 쉽고 사생결단식 선거과열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견지에서 선거구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의장은 특히 『선거구민이 후보와 정당에 투표를 하는 독일식 1인2투표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두레」「아침한때…」「…유월」/이색 춤판 잇따라 벌인다

    ◎무용계 중견3인 배정혜 김매자 박명숙/연극과 춤 어우러진 무대 선보여 배정혜,김매자,박명숙등 무용계를 이끌어 가는 3명의 중견무용가들이 초여름 공연가를 뜨겁게 달굴 이색춤판을 잇따라 무대에 올린다.한국무용가 배정혜씨의 창작무용「두레」와 김매자씨의 「아침 한때 눈이나 비」 그리고 현대무용가 박명숙씨의 「박명숙 춤,구십삼년 유월」이 그것. 현재 서울시립무용단장을 맡고 있는 배씨의 안무·출연작 「두레」(21∼23일,세종문화회관대강당)는 우리 농경사회의 놀이문화를 춤 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대형창작무용.서울시립무용단원등 75명의 무용수들이 한국적 토속정서의 대향연을 펼친다.지난90년 단장 취임직후부터 이 무대를 기획,2년동안의 춤다듬기 과정을거쳐 1년동안의 안무작업끝에 완성한 야심작이다.특히 「떠도는 혼」「불의 여행」「비행」등 배씨가 그동안 보여줬던 현대적 취향을 벗어나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흥과 한,신명의 정서를 춤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창작활동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91년 이화여대 무용과 입시부정사건으로 무용계를 떠났던 김매자씨의 복귀무대 「아침 한때 눈이나 비」(25일∼7월20일,창무예술원포스터극장)는 국내 초유로 연극과 춤이 한데 어우러지는 합동공연이란 점에서 이목을 끈다.특히 50대의 김씨가 연극배우로 새롭게 데뷔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당시 물의를 일으켰던 육완순·홍정희씨가 각각 대전 엑스포개회식 무용감독및 호남예술제발레부문 심사위원으로 공개행사를 통해 얼굴을 내민데 반해 김씨는 이번 개인무대를 통해 춤판복귀를 조심스럽게 알리는 셈이다.김씨는 이들가운데 가장 먼저인 지난해 10월 사재를 털어 창무예술원을 설립한뒤 산하 교육기관인 창무인스티튜트로 활동을 재개했다. 현대무용가 박명숙씨가 이번에 선보이는 「춤,구십삼년 유월」(26일 문예회관대극장)은 최근 몇년동안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무용화하는 서사적인 작업에 매달려온 박씨의 또다른 변신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초혼」「혼자 눈뜨는 아침」등 2개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 몸매·창의력·끼 겸비한 춤의 요정(이세기의 인물탐구:30)

    ◎환상의 율동속 감성·지성 융해… 칠정묘파/「…슈퍼스타」로 데뷔… 문학성 짙은 작품 추구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한다.「우리의 걸음걸이는 너무 쉽고 익숙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스텝을 결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신기한 것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박명숙은 최근 그가 번역한 샐리 베인즈의 「포스트 모던댄스」서문에 이 글을 인용하고 있다.그는 모든 것은 춤,모든 움직임은 춤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보행조차도 이미 춤임을 알고있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다. ○보행도 춤으로 인식 지금부터 20년전 그가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처음 맡았을때는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는 한낱 외롭고 초라한 여인을 표현하는데 불과했다.그 무대는 청순한 처절미로 일관돼 있었다.그러나 지난해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수퍼스타」 20주년 기념공연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는 인생의 고락과 희비,번뇌와 갈등을 넉넉하게 껴안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승화되어 그날 관객들은 사랑의 힘으로 신에게다가간 절실한 기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연극이나 영화처럼 언어없는 춤이 신비한 주술임을 체험한 순간이었고 특히 하이라이트를 이룬 「어떻게 그를 사랑할지(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박명숙솔로는 평자들로 하여금 「그는 해내고야 말았다」는 평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춤은 대부분 짙은 문학성과 철학성,그리고 연극적인 요소와 장식적 요소를 작품전편에 깔고있는 점이 특징이다.흔해빠진 일상적인 것을 일순간에 초월하여 의외성과 경이로움으로 역작용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빗발치는듯한 눈부신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비둘기만 날아가다」가 그랬고,그동안 끈질기게 추구해왔던 곡선과 직선을 사선으로 붕괴한 「시간기행」「풀잎환상」등이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같지만 실은 그의 내면은 언제나 당황하고 망설이고 거부하는 습관이 배어있다.그것은 섬약한 감성과 투철한 지성감이 복합적으로 대립되어 어느 한쪽의 우성을 끊임없이 주장하려는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한 예로73년 육친같은 스승인 육완순씨가 영국의 록오페라 「…수퍼스타」를 현대무용으로 재구성·안무하여 그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맡겼을때,그래서 모든 무용계가 육완순을 잇는 제2의 스타탄생을 기대하고 있을때 그는 개막을 앞둔 몇시간전 소리없이 도망쳐버린 적이 있었다.물론 소동과 곡절끝에 어렵게 막이 올려지긴 했으나 그후 자신의 작품이 막이 오를때도 바로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두려움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다.그러나 연극계와 화단,음악 문학 사진 조각 각 분야의 사람들과 절친한 우정을 누려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얼굴의 하나이기도하다. 박명숙은 어릴때부터 춤췄다.사업을 하는 박승규씨와 김대순여사 사이의 3남매중 외동딸.어머니의 손에 끌려 국립국악원 김부남씨에게 고전무용,진명여중 2학년때 김정욱씨에게 발레,여고 2학년때 육완순씨의 현대무용발표회를 보고 그는 그가 선택해야 할 길을 「두눈을 크게 뜨듯」결정할 수 있었다.육완순씨는 박명숙의 극과극의 기질을 무엇보다 높이 샀다.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나 과묵하면서도 참을성 있고 화려하면서도 겸손하고,그리고 무엇보다 욕심이 도사린 승부근성이 대성의 지름길임을 간파한 것이다.더구나 나는 듯한,출렁이는 듯한 긴 팔의 선은 마치 하늘을 비상하는 새의 선회처럼 신선하기만 했다.그의 두 팔에 대해선 같은 경희대 교수이며 무용계 대선배인 김백봉씨도 「백만불짜리」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무용가가 아름다운 체구에다 재능,거기에다 번뜩이는 창의력까지 지녔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모두들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고 최욱경과도 절친 단지 한사람,연전에 타계한 화가 최욱경만은 예외였다.생전에 천재화가로 불리던 최욱경의 박명숙에 대한 사랑은 좀더 끈끈하고 각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외국에 나가 마사 그레이엄을 더 배우고 싶어하면 최욱경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그 사람의 것은 그의 것.외국은 여행만으로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그가 결혼할 때도 「예술가의 결혼은 난센스」라고 쏘아붙였다.『춤이 있는데 결혼하다니,너는 너무 욕심이 많은가』라고.그후 결혼해서 남매를 낳고 이제부터는 「춤」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지자 『결혼과 아이가 왜 춤에 방해가 되는가? 결혼과 아이는 네 예술을 더 살찌웠다.네가 무용가라면 죽을 때까지,그리고 죽을 때도 무대에 서라』고 충고했다. 광기와 신기없이 늘 조용한 박명숙도 최욱경의 천장까지 그림으로 들어 찬 여의도 화실에 들어서면 언제라도 즉흥무를 출수 있게 되었고 최욱경은 그런 박명숙을 모델삼아 춤추는 그림들을 얼마든지 남기고 있다. 최욱경이 타계하자 친형제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던 그는 작품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화려한 장례식춤을 만들어 사랑하던 화가 친구에게 바쳤다. 박명숙은 고지식하고 외곬인 성격으로 한곳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또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굵은 실로 뜬 숄을 두르고 앉아 연습실에서 작은 막대기 하나만으로 「다시!」이렇게 지시하고연습한다.튀는 사람이 있으면 사정없이 몰아붙이되 상대방이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 작품에다 연결시켜 나간다.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그를 따르고 아끼고,그도 제자들이 「나의 재산,그래서 나는 부자」라고 말할 정도다. 1주일에 20시간의 강의,요즘은 26일로 다가온 춤발표회를 앞두고 연습에 쫓겨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지만 부군 유대렬씨는 「춤만 제일이냐?」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오히려 일만 아는 아내가 애처로운 나머지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라고 지켜보고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딸 희주(19·이화여대무용과)는 어릴때부터 남몰래 춤추어왔고 지난해엔 혼자서 동아무용콩쿠르에 나가 금상을 타왔다.그전까지는 한동작도 춤을 지도하지 않았으나 「피는 속일 수 없어」 비로소 감싸기로 마음먹었다. ○명분·사명감에 눈떠 이제 박명숙은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게됐다고 말한다.한사람의 아내·어머니이기도 하지만 그는 무용가이고 제자를 길러내야할 교수다.단 한번도 선생이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스승과선배들의 현대무용 30년을 잇기 위한 뼈저린 흔적이 자신에게 닿고 있음을 피하려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뚜렷한 명분과 사명감에 눈뜨자 그 옛날의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움트려하고 있다.그래서 이를 씻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몸속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묘한 힘에 이끌려 담담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물론 그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언제나 박명숙,나의 방식대로」 춤추고 있을 뿐이다. 더글러스 던의 「춤추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케네스 킹의 「춤추는 존재가 되는 것」,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막달라 마리아처럼 신에게 다가가는 정신의 춤을 추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연보◁ ▲1950년 서울 효자동 출생 ▲1972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동대학원 졸업 ▲1976년 N Y 머스커닝햄 마사 그레이엄 엘빈에일리 현대무용학교 수료,뉴욕대학 대학원 무용과 박사과정이수(NYU DA코스),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1년부터 현재 경희대무용과 교수,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 예술총감독,한국 현대무용 협회이사,한국무용협회이사,경희대 무용과교수 ◇공연 ▲1973년 팀라이스 작사·앤드루 웨버 작곡 육완순안무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역으로 데뷔이래 20년간 2백여회 출연.그외 박명숙 현대무용단(78년이래 해마다)제1회 한국현대무용향연(82년이래 해마다),한국컨템포러리 무용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아시아무용제 참가,제10회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무용제,88서울올림픽 개회식(엠불렘춤)등 국내 해외공연등 수백회 ▲1993년6월26일 박명숙춤 「구십삼년6월」 문예회관대극장 예정 ◇대표작 「잿빛우울의 거리」「얇은사 하이얀 고깔은」「초혼 ⅠⅡⅢⅣ」「살풀이」「학ⅠⅡ」「소용돌이치는 영혼」「결혼식과 장례식」「그날새벽 ⅠⅡ」「비옷을 입은 천사」등 78편 안무 수 상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문공부장관상,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0년)·개인상(82년),86예술가상,코파나스상(86년),서울무용제 안무상(91년)
  • 현대발레 「레퀴엠」 「브라보…」 무대에/15일까지 국립중앙극장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로시니의 「부브라보 피가로」등 2편의 모던발레가 국립발레단 제75회 정기공연 레퍼터리로 무대에 올려졌다. 오는 15일까지 평일 하오 7시30분,토·일요일 하오4시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번 무대는 국립발레단의 기존 주역들외에 신무섭,최경은,강준하,한성희등 우리발레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주역으로 발탁돼 무대에 신선감을 더해 준다. 특히 죽음에 대한 묵상 그리고 삶의 예찬을 춤추는 비극적인 「레퀴엠」과 재치와 익살,기막힌 사랑의 반전이 펼쳐지는 「부라보 피가로」등 상반되는 작품이 한 무대에서 같은 무용수에 의해 연기된다는 사실도 관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번 공연의 안무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발레단(구 레닌그란드발레단)의 예술감독인 보리스 에이프만이 맡았다.
  • “불똥 언제 튈지…” 움츠린 여의도정가

    ◎사정정국… 의원들 외유 꺼린다/상위별 시찰단 지원자 적어 계획 차질/“주머니사정 빈약”… 지역구행차도 자제 과거 임시국회가 끝나면 국회본청과 의원회관은 텅텅비기 일쑤였다.의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유를 떠나거나 미진했던 지역구활동을 위해 현지에 서둘러 내려갔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현격히 달라졌다.외유비행기를 타는 의원들도 극히 일부분이고 나머지 의원들도 급한 일이 아니면 지역구를 잘 찾지않는다. 이렇게 달라진 풍속도는 단연 최근의 슬롯머신수사등 사정정국때문이다.나아가 급격히 빈약해진 지역구의원들의 주머니사정도 한몫 거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시국회 폐회이후 현재 외유를 떠난 의원은 모두 20명뿐이다.13대국회당시 회기를 마치자마자 의원정수의 3분의1인 1백명 정도가 외국나들이를 가던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김영삼대통령은 이와관련,최근 김종필민자당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너무 많이 나가지말고 필수적인 인원만 의원외교활동을 펼쳐 실질적인 성과를 얻도록해야 할 것」을 강조,외유활동의지침을 제시한바 있다.이같은 성층권기류에 부응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나가지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풍향계가 변하는 중앙정치의 흐름을 놓치지않겠다는게 보다 중요한 항목이라는 주변의 분석이다.지금까지 한일의원연맹회의참석차 김윤환회장을 비롯,김정수·김영광·나웅배(이상 민자),조순승(민주)의원등 14명이 지난24일 일본으로 떠났으며 한·그리스친선협회에 참석하기위해 박명근의원(민자)을 단장으로 강신조(민자)장재식(민주)김정남(무소속)의원등 6명의 대표단이 21일 출국했다.또 독일의회초청 정책세미나에 참석키위해 이세기·정필근의원(이상 민자)등 여야의원 5명이 6월12일 현지로 떠난다.이러한 외유케이스는 상대국과의 약속이행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하기가 힘들다.특히 이들 대표단은 종전처럼 쇼핑관광등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했던 불필요한 일정을 과감히 빼버린 흔적이 뚜렷하다.그만큼 일정도 매우 짧아졌다. 이밖에도 상위별로 외유계획을 잡고있는 곳이 몇군데 있다.외무통일·재무·경과·국방위등이 여기에 해당한다.하지만 소속의원들이 외유단에 포함되기를 꺼려 출발일자가 목전에 다가왔는데도 정확한 일정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위가 대부분이다.때문에 정작 외유에 나서는 의원숫자는 극소수에 그칠 전망이다.외무통일위는 안무혁(민자)이부영(민주)의원등 2명만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러시아방문을 계획하고있다.재무위는 6명이 외유에 나선다는 일정만 잡아놓았으며 국방·경과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역구활동도 뜸한 편이다.신경식의원(민자)은 『지역구에 그냥 내려갈수는 없지않느냐.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들고가야되는데…』라고 탄식조로 설명한다.지역구의 큰 행사가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아예 내려가질 않는다.여기에는 중진이나 초·재·선의 구별이 없다. 이한동의원(민자)은 국회가 끝났음에도 자신의 변호사사무실과 의원회관을 오가면서 소일하고있다.이춘구의원(민자)도 여의도 인근 한서빌딩내 개인사무실에서 독서에 열중하며 외부인사와의 접촉도 극히 자제하고있다.노태우전대통령처남인 김복동의원(국민)은 회관에도 나오지않고 눈치료관계로 병원만 다닐뿐 집에서 두문불출한다고 측근이 전했다.다른 의원들도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한 의원은 『지역에 한번 갈때마다 몇백만원씩 깨지니 자주 내려갈 엄두가 나지않는다』고 하소연했다.또다른 의원은 『정치권비리수사가 언제 누구에게 튈지 모르는 판에 한가하게 지역에나 있을 수 있느냐』며 최근의 사정정국이 발목잡기역할을 하고있음을 강조했다. 12·12관련 의원들의 행보도 관심거리다.허삼수의원(민자)은 지역구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탓인지 서울에 머무르고있다.회관에도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않는다.허의원측은 당분간 지역구에 내려갈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박준병의원(민자)은 관내인 속리산법주사 법회참석차 이번주 지역에 내려간다. 물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의원도 더러 있긴 하다.동화은행장수사와 관련,무혐의가 굳어진 금진호의원(민자)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듯 지난22일부터 3일간 지역구에 머물렀으며,다음주에 다시 내려갈 예정이다.또 정필근의원(민자)은 이번주말까지 지역내 부락을 돌며 세미나를 개최할계획이어서 무척 분주하다.
  • 미대륙 감동시킨 휠체어 무용수

    ◎플레처,“동정은 싫다”… 장애인발레단 창설/맨해턴공연 성공… 프로 선언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훌륭한 업적을 이룩해낸 장애자예술가는 많다.그러나 선천적인 장애,그것도 해당 예술활동에 치명적인 장애를 지녔으면서도 그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인간승리를 엮어낸 예술가는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발레리나 메리 베르디 플레처의 인생은 그 자체로서 위대한 인간승리의 신화이자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이라 하기에 족하다. 플레처는 선천적인 척추장애자였다.그래서 어린시절 대부분을 허리에 부목을 댄채 침대에서 보냈다. 침대생활 속에서도 비록 3류이긴 하지만 부모의 직업이 음악가·춤꾼이었던 것은 그녀의 행운이었다.술집을 주무대로 춤을 추던 어머니와 연주가인 아버지는 딸에게 자주 춤을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주었다. 4살의 플레처는 한눈에 발레의 우아함에 빠져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야 했다. 플레처는 10살이 되면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로부터 몇년이 흐른 뒤 아주 우연찮게도 그녀의 꿈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찾아왔다.플레처의 휠체어를 밀던 남자친구 토드 구드먼은 디스코춤을 추자며 장난삼아 휠체어를 빙글빙글 돌렸다.그런데 놀랍게도 돌아가는 휠체어와 그 위에서 춤을 추는 플레처의 모습이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었다.그것은 놀라운 발견이었고 플레처에게는 새로운 의욕을 살려내는 것이었다.플레처의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플레처의 집근처 주차장에서는 이때부터 라디오와 녹음기의 음악소리가 울려퍼졌고 이에 맞춘 두사람의 춤연습이 거의 매일 이어졌다. 이들의 춤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동작 하나하나가 다 독창적이었다.그래서 그 독창성을 믿고 전미「댄스피버」경연대회에 참가,2위를 차지했다.이를 계기로 두사람은 용기를 내 학교·클럽·장애인수용시설 등을 돌아다니며 대중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대중공연은 쉽지 않았다.재정문제는 차치하고 「불구」를 응시하는 많은 정상인들의 눈길을 플레처로서는 견디기가 어려웠다.관객들은 처음 예술성보다는 묘기를기대하는 눈치였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동정심에서 우러나는 불편함이 역력했다.그러나 음악과 함께 율동이 진행되면서 그들의 표정은 변했다.그들은 두 사람의 춤에 매료되고 감동했으며 공연후에는 칭찬과 격려를 잊지 않았다. 공연때마다 이같은 고통과 희열은 반복됐으며 그속에서 플레처는 인간으로서,또 예술인으로서 성장해갔다. 플레처는 마침내 82년 「댄싱 휠스(춤추는 수레바퀴)」라는 발레단을 설립했다.그리고 그로부터 8년뒤인 90년에는 클리블랜드발레단과 합작,재정문제를 해결하면서 명칭을 「클리블랜드발레단 댄싱휠스」로 고쳤다. 이 발레단은 현재 장애자 4명이 포함된 10명의 무용수와 3명의 안무가로 구성돼 있다.물론 핵심단원은 플레처와 무용수·안무가·미술조감독등 1인3역을 맡고 있는 그녀의 친구 구드먼이다. 플레처에게 있어서 올해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한해다.지금까지는 같은 장애자들에게 뭔가 희망과 교훈을 준다는 사명감과 함께 발레단을 홍보하는데 주력했지만 올해는 「프로페셔널」을 선언한 원년이기 때문이다. 플레처와 그녀의 동료들은 최근 공연예술의 심장부 뉴욕 맨해턴에서 프로로서의 첫 원정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플레처는 한 무용전문잡지에서 「댄싱휠스­깨어진 꿈으로부터의 승리」라는 비평기사를 발견했다.
  • 우크라공 아이스발레단 5일부터 내한공연

    ◎호두까기인형 등 16작품 목동링크에 올려 우크라이나공화국 국립 키예프아이스발레단 내한공연이 5일부터 23일까지 목동실내아이스링크에서 열린다. 키예프아이스발레단은 1960년 창단이래 30개국에서 9천여회의 공연을 가진바 있는 세계 정상급 아이스발레단.92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 남자싱글금메달을 딴 빅토르 페트렌코와 올해세계 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우승자인 옥산나 바올이 이 아이스발레단출신이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은 1차례(하오7시30분),토·일요일및 공휴일은 2차례(하오 3시,7시30분)씩 공연되는 이번 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지 인형」,「백조의 호수」중 아다지오와 작은 백조의 춤,비제의 오페라「카르멘」등 16개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또 국내관객을 위해 조용필의「친구여」와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 「언체인드 멜로디」를 안무한 특별무대도 마련된다.
  • 민족분단 아픔 소리꾼 통해 표현/이정일 일인극 「콜라병」 무대에

    ◎박동진옹 작창·국수호씨가 안무 인간문화재 박동진옹의 「적벽가」이수자인 이정일씨가 일인극을 무대에 올린다.공연기획 소리새가 기획하고 흥사단이 후원한 이정일 한판극 「콜라병」이 그것이다.오는 27일부터 5월5일까지 대학로 충돌1소극장(741­0300)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전쟁동이 소리꾼 조만득의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족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기원하는 작품으로 최근 동두천에서 일어났던 「윤금이양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난 72년부터 91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해온 이정일씨는 이작품에서 소리꾼 엿장수 양공주 동성연애자 미군병사등 18명의 다양한 인물들로 바꿔가며 출연해 대변신을 시도해 관심을 모은다.최송림씨가 작품을 쓰고 유중열씨가 연출을,그리고 박동진옹이 작창을,국수호씨가 안무를 각각 담당했다. 이번 작품은 특히 5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소년소녀 가장돕기 기금마련 공연으로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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