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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씨 비자금 항소심 첫 공판/검찰 “피고인 항소 기각” 요청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 공판이 10일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항소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심리로 열려 출정한 피고인 11명 가운데 8명에 대해서는 피고인 최후진술까지 마치는 등 사실심리를 끝냈다.〈관련기사 21면〉 출정한 피고인들은 노피고인 비자금 사건의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장진호 진로그룹회장,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금진호 전 국회의원,이원조 전 국회의원,이경훈 (주)대우대표등 8명과 전 피고인 비자금 사건의 안현태 전 청와대경호실장,성용욱 전국세청장,안무혁 전 안기부장 등 3명이다. 전·노피고인과 정호용 피고인은 12·12 및 5·18사건과 병합돼 이날 공판에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11명 가운데 김우중·최원석·이현우 피고인 등 3명을 제외한 8명에 대해서는 변호인 신문과 피고인 최후진술까지 마쳤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항소를 기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박은호 기자〉
  • 여야 대북 결의안 합의문

    국회는 우리의 거듭된 대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이 스스로 저지른 명백한 대남무력도발행위를 반성하기는 커녕 도리어 대남보복을 자행하겠다는 적반하장의 협박을 계속하고 있는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대남적화통일의 망상에 사로잡힌 북한정권의 이같은 파렴치하고 그릇된 행동은 민족화해와 이 땅의 평화를 희구하는 온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망동이다. 이에 국회는 북한의 대남무력도발행위에 대한 지난 9월23일자 국회결의안에 이어 북한의 계속되는 무모한 대남위협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국회는 북한정권이 하루 빨리 대남적화통일야욕을 파기하고 반이성적인 각종 도발책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2.국회는 북한정권이 저지른 명명백백한 대남 무장공비침투사실을 솔직히 사과하고 더이상 이같은 도발을 자행하지 않겠다는 것을 7천만 겨레와 온세계에 다짐할 것을 촉구한다. 3.국회는 북한정권이 되풀이하고 있는 후안무치한 보복협박으로는 도리어 자신들의 호전성만을 드러내어 국제적 고립과 지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이와 같은 유치한 책동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4.국회는 정부가 북한의 어떠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강화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5.국회는 북한의 대남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언제나 초당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며,한편 이번 사태가 국민경제생활이나 대내외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다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6.국회는 우리 국민은 물론,이 땅의 평화를 바라는 온 세계인과 함께 앞으로 북한의 태도를 예의주시해 나갈 것이며 어떠한 평화위협행위에도 흔들림없이 결연하게 대처해 나갈 것임을 명백히 천명한다.
  • 시인·무용평론가 김영태(이세기의 인물탐구:105)

    ◎춤을 찾아 떠도는 문단의 보헤미안/공연장마다 출현… 화제작 대본 직접 쓰기도/시작·평론·그림 쉼없는 행보… 작품집 40권 김영태는 언제나 공연장주변에 서 있다.10년전이나 20년전 보다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외환은행에 다닐 때는 직업상 신사복 차림을 할수 밖에 없었으나 직장을 스스로 떠난 지금 그는 복장부터가 마음껏 자유로워졌다. 「내 키는 1미터 62센티인데/모리스 라벨의 키는 1미터 52센티 단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라벨과 나」란 시의 첫구절처럼 크지 않은 체구에다 말투에는 전혀 힘이 들어있지않고 머리를 약간 외로꼰 담배피우는 모습이 그의 이미지다.「접시,호리병,기묘한 찻잔을 수집하기/화장실 한구석 붙박이/나무장안에 빽빽이 들어찬/향수진열 취미도/나와 비슷합니다/손때묻은 작은 소지품들이(누에문양 포켓수건이나 열쇠고리까지)/제자리에 있어야하고」. 실제로 그가 30여년을 살던 종로구 사직동집은 골동소품에서 인형과 이색적인 찻찬,책과 1천3백여장이 넘는 LP판들이 온통 도배를 한듯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책과커피향이 어울리는 코펠리아무대의 분위기였다. 천성적으로 치밀하고 꼼꼼한 그는 작은 낙서한장 버리지 않았고 지난 30년간의 족적을 「Ma Vie(나의 인생)」란 책으로 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정리해 보이고 있다.66년에 직접 손으로 쓴 결혼청첩장이며 김구용 박목월 김춘수 신석정 황동규 마종기 권옥연이 보내온 친필 엽서,오영수 휘호,조병화의 소묘,그가 그린 포스터 프로그램 책표지에 이르기까지 먼지도 버리지않는 섬쩍함이 섬뜩하다. 그런 그를 생전의 김현은 「초속주의자」 혹은 「좋은 의미의 딜레탕트」라고 했고 같은 문학평론가인 김인환은 「미학추구자,김종삼 이후 문단의 마지막 보헤미안」으로 부르고 있다.또 캐리커처에 능한 소묘가·무용평론가·시인으로서 모름지기 「우리시대의 삼절」로 찬사된다.그는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묘와 평론에는 그나름의 새롭고도 빛나는 색채가 들어있다.시와 춤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는 과정에서 「춤과 그림은 그의 시의 내용이며 시와 춤은 그의 그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그의 시는 대부분 아름다운 대상을 순간의 떨림속에서 태어나게 하면서 「어느 때는 목청 높은 대담한 사설조로 상황에 대한 해학적 음성」을 펼치기도 한다. ○꼼꼼한 성격의 수집광 시인 김승희는 「저 탐미의 괴물」을 향해 『현대인의 반타이타니즘을 그는 한컵 가득 독약처럼 마시지만 그러나 그는 독약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고 꼬집는다.피아노와 그의 발레그림들은 「언뜻 팔에 힘을 빼고 흐느적흐느적 술취한 듯이 비틀거리는 선의 파격적인 굴절이나 데포르마시옹으로 외계의 간섭에 맞서는 야유의 메시지」이다. 발레리나가 턴을 하는 찰나나 도약 직전을 섬광 같은 솜씨로 포착하면서 막연한 형태의 생략과 색채의 요점을 「부호와 관념만으로」 남기고 있다. 그는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강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서울토박이다.종로바닥에서 유명했던 「김인기 포목점」의 김인기씨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장사나 이재에는 취미가 없는 김종화씨로 일본 무사시노미대 출신. 화가로 활동하진 않았으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대에 진학했고 홍대재학중 박남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그동안 시집만도 15권,끊임없이 쓰고 끊임없이 발표하여 산문집·무용평론·무용자료집·시론집·소묘집·음악평론집 등 40권에 이른다. 연극 음악평에도 손댔으나 그에게 맞는 것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에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춤작가 12인전」에서 현대무용가 이정희가 그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무용화한 「풍경」에 10여분간 특별출연,커피를 갈고 스탠드를 켜며 담배 피우는 마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펼쳤다. 그외 최현의 「비상」,전홍조의 「멀리서 노래하듯」,박명숙의 「결혼식과 장례식」「잠자며 걷는사람 잠자며 걷는나무」 등 무용공연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은 거의 그가 대본을 썼거나 그의 시에서 빌린 것이고 책표지 포스터 프로그램과 수많은 캐리커처와 무용가·작가를 위한 헌시를 썼다. 그는 무용인들의 닳아빠지지 않은 순결한 심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그중에서도 특별히 최현과 절친하다.까다로운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과 통하 듯이 춤이아름다운 실력있는 이 원로와는 음악매니아로서 의기투합 한다. 자유로운 그는 틈틈이 여행을 즐긴다.해외에서 무대에 올려진 중요한 공연을 보기 위해 무용단의 해외공연에 따라나서거나 여행적금으로 가장 아름다움 춤이 있는 지구상의 모든 곳을 떠돌아다닌다.3년 전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강수진이 「로미오와 줄리엣」주역으로 데뷔하는 공연에 참관했고 올해도 세차례나 밖에 다녀왔다. 그는 『철저하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닌다.나는 보통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문득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언가 내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글에서 밝히고 있다.과연 그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는 「움직이는 극장」「사시사철 춤보러 다니는 구경꾼」으로서 그는 예술가다운,시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더구나 인형제작가인 부인 정복생과 두아들이 미국에 유학후 뉴욕에 머물러버리자 20년 가까이 혼자서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춤작가 12인전」 특별출연 그래선지 그의 최근 연작시인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읽는 이의가슴에 한줄기 흐르지 않는 눈물을 삼키게 한다.「무엇이 이제까지 나인가/질문을 하지만 답이 없습니다/시험지에 답못쓰는 답답함/눈물을 흘릴줄 몰라도/흐르는 눈물이 답입니다」.윌리엄 제임스의 「슬프니까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증명해보이는 시이다. 김인환은 『비트겐슈타인이 수학자란 수학의 언어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김영태는 시와 춤,그림과 음악을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놀이가 빨리 끝날까 두려워 그는 「아껴가며 음미하면서 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폐품이고 서향창에 어쩌다가 헹군 헝겊천사」라고 고백하면서 부드러운 검은색의 헐렁한 외투에 숄더백과 벙거지차림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공연장에 나타난다.그리고 그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에 고통과 환희,비참과 영광의 색채를 칠함으로써 「그의 시의 이미지들은 중립적인 경쾌함 대신 현실의 중압감을 버티려는 환상」으로 독자에게 읽혀진다. 그의 아호는 「지푸라기」라는 뜻의 「초개」다. 한달이면 50여차례 공연을 보러가고 낮에는 혜화동글방에서 집필,「삶은 소진하다 가는것」이라는 그의 행보는 그의 자작시 「허행초」처럼 어딘가에 구속당한데 없이 유유하고 자적하다.일찍이 김수영시인이 지적한대로 「예술적 냄새가 너무 짙은」 김영태 초상화는 그의 소원대로 주변사람들에게 독특한 탐미의 이미지를 새기고 그래서 그의 흔적은 이 검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빛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연보 ▲1936년 서울 출생 ▲57년 경복고 졸업 ▲59년 「사상계」지 시추천 ▲61년 홍대 서양화과 졸업 ▲65년 첫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 출간 ▲68년 외환은행 조사부 입사,극단 자유극장 동인,첫번째 산문집 「공기의 모든 부분속에서」 출간 ▲71∼95년 개인전 6차례 ▲75년 「12인의 인성을 위한 대사더듬기」(백병동 작곡)공연 ▲76년 단막극 대본 「이화부부」(이원경 연출공연) ▲80년 미술잡지 「선미술」 주간 ▲81년 음악펜클럽 총무간사 ▲82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원 ▲84년 판뮤직페스티벌 「대사더듬기」재공연,일본국제무용콩쿠르 심사,서양화 10인전(낙산공방) ▲85년 첫번째 무용평론집 「갈색 몸매들,아름다운 우산들」출간,「객석」·국립극장·영화진흥공사 자문위원 ▲88년 단막극 「이화부부」현대무용으로 공연(배정혜 안무,정성조 음악) ▲89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장,동아무용콩쿠르 심사 ▲90년 서울무용제 운영심사위원 ▲91년 음악평론집 「음의 풍경화들」 출간,외환은행퇴 직 ▲93년 한·일댄스페스티벌도쿄공연 참가,윤덕경무용단 중국공연 동행 ▲96년 무용자료집 「풍경을 춤출수 있을까 Ma Vie」출간,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출강 시집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15권,산문집 「핀지콘티니가의 정원」 등 9권,무용평론집 「멀리서 노래하듯」 등 6권,소묘집 「선의 나그네」 등 6권,총40권. 현대문학상(72년) 시인협회상(82년) 서울신문 문화예술평론상(89년) 예음공로상(94년) 현대무용진흥회 공로상(95년)
  • 대북정책과 잘못된 가설들(김호준 정치평론)

    북한의 김정일정권은 정말 뻔뻔하고 악랄하다.아마 도척과 같은 천하의 불한당이 살아 있더라도 그처럼 후안무치하지는 않을 것이다.남녘 동포들이 구호미를 보낸 그 바닷길로 잠수함과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다니….세상에 그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단 말인가.못된 짓이 들통 났으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 일이건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천배 만배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건 또 무슨 행악질인가.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강릉 무장공비사건은 북한 정권의 무도한 실체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의 현실성에 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그런 불한당들을 상대로 평화노력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그들과의 공존·공영을 전제로 한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3단계 통일방안은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하다는 전제와 북한 지도층을 선의의 우호적 동족이라고 보는 잠재적 가설 위에 서 있다.그리하여 화해와 협력의 제1단계,남북연합의 제2단계를 거쳐 마지막제3단계에서 남북한 양측이 각자의 정치권력을 통일국가에 귀속시켜 통일을 완결토록 돼있다.그런데 여기서 갖게되는 의문은 북한 지도층이 과연 남한과의 공존·공영을 바라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통일에 호응하겠느냐는 것이다.답변은 물론 『아니올시다』가 지배적일 것이다.그들은 남한에 대해 동족으로서의 연민의 정을 갖기 보다는 공산혁명을 위한 타도의 대상이요,북한의 정치권력을 빼앗으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멀리 6·25남침을 비롯하여 68년의 청와대 습격기도,83년의 아웅산 테러,87년의 KAL기 공중폭파사건,그리고 줄기찬 남한배제 정책및 이번 강릉사건 등은 남한에 대한 그들의 적대적 파괴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고 집요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그렇다면 남북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선의의 동반자관계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통일방안은 근본가설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남북한간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남한이 북한의 경제난해결을 도와주면서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맏형론·햇볕론의 타당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키워주면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북한이 과연 남쪽과의 화해·협력관계를 증진시키겠느냐는 것이다.그런 기대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연방제통일 운운하는데 호랑이가 된다고 해서 그 속성이 변할리가 없다.오히려 독립국가의 옹벽을 더욱 높이 치면서 남침용 무기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남쪽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적대의식이 북한 지도층의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철저하게 세뇌되고 통제받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남한의 어설픈 관용주의나 동정론이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 같다.이번에 산속으로 도주하던 무장공비 11명의 「집단자살극」은 우리의 안이한 북한관에 경종을 울려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설도 오류일 수 있다.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4,5년후에 전면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본다.그러나 지금같은 추세라면 10년이 지나도 전면 개방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전례에 비추어 사회개방은 북한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체제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에서만 제한적 소극적으로 개방을 시도하며 그밖의 분야에서는 폐쇄적 통제를 계속할 것이다.북한사회가 개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체제연합식 통일은 오랜 기간동안 실현 불가능하게 된다. 통일을 원만하게 이루려면 흡수통일방안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돕기 보다 자체붕괴토록 방치해 뒀다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후에 조건없는 통일을 수용하는 것이다.체제연합식 통일이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이상이 걸린다면 흡수통일은 금세기 내에 가능할 수도 있다.통일의 지연은 부도덕한 북한정권의 생명만을 연장시킬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조기통일은 남한에 엄청난 통일비용을 안긴다지만 일방적 지출이 아니라 언젠가 이윤을 내는 투자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훨씬 가볍게 느껴질수 있다.
  • 일 자민 「독도」 공약/여야 “규탄”

    ◎“주권침해” “도발행위” 일제 성명… 초당 대응 국정감사 기간중 돌출된 일본 자민당의 「독도영유권」 총선공약으로 정가가 들끓고 있다.여야는 1일 일제히 성명과 논평을 내고 초당적인 대처를 다짐하며 일본 자민당의 처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특히 신한국당은 지난 60년 한·일국교수교와 관련,국민회의와 자민련을 비판하려던 방침을 바꿔 초당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신한국당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초당적인 강경대응 방침을 정리했다.이날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도 일본 자민당을 집중성토하는 등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김철 대변인은 『전후 동아시아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김대변인은 또 『아시아 최고의 부국(부국)이 앞장서서 이 지역의 질서를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엄연한 우리의 영토로 우리의 주권을 일본이중의원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국민회의는 『망발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정부의 대일외교에도 그 책임을 묻는 양동의 자세를 견지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비이성적이며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고 비판하면서 『한·일 외교실패의 결정판』이라고 지적,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정대변인은 『정부는 큰소리로 엄포만 놓지말고 이번에는 치밀하고 구체적인 외교수단을 긴급히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근태 부총재도 『이번에는 정치적 고려나 당략을 초월,올바르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자민련은 『사실상의 도발행위』라고 지적하면서도 우리가 독도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묵살하는 게 유리하다는 분위기다. 안택수 대변인은 『외교관계마저 당리당략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자민당은 공당으로서 이웃나라 영토까지 선거에 이용하려는 졸렬한 발상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동복 총재비서실장도 『해마다 떠드는 얘기』라며 『정부가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할 경우 외교현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으니 아예 묵살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권오을 대변인은 『양식과 상식을 뒤엎은 것』이라고 비난하고 『섬나라 근성의 광기인 침략과 야만의 한 발로』라고 맹공을 폈다.
  • 19∼22일 동숭아트센터서 국내 첫 공연 재미 무용가 안성수씨

    ◎감정 배제한 진정한 춤 선보인다/철저한 몸짓·무용수 기량 의존한 안무/작품 「왓에버」 「달밤의 체조」 등 무대 올려 재미 무용가 안성수씨(34). 국내 팬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현대 무용의 본고장 미국 뉴욕에서는 이른바 「잘 나간다」는 안무가이다. 지난 1월 뉴욕 무용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면서도 웬만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꿈도 꾸기 힘들다」는 조이스극장 무대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섰고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의 함프리 와이드먼 상 수상(93년),도쿄 국제 안무경연대회 3위 입상(〃) 등 탁월한 기량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무용단 「성수 안 픽 업그룹」을 이끌고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19∼22일)에서 한국 관객들과 첫 만남을 갖는다.공연준비차 11일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춤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재미」입니다. 관객과 교감없이 의미나 의식만 강조하는 것은 안무가의 자기중심적인 독단이지요』 춤은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몸짓 자체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안성수씨.특이한 경력을 가진 늦깎이 무용가가 자연스레 터득한 무용철학인지도 모른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다 중퇴,군복무를 마친뒤 84년 영화 카메라 기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마이애미 대학으로 유학갔다. 무용과의 첫 만남은 그의 말대로라면 「우습게」 시작됐다.유학시절 라켓볼을 즐기면서 스트레치 운동이 필요할 것같아 무용을 선택과목으로 들었고 무용과 공연에서 여자무용수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았던 것.여기서 몸으로 무엇을 창조하는 기쁨을 발견,아예 줄리어드 무용과로 편입했다.3년만에 조기 졸업하면서 무용과 교수들이 최우수 학생에게 수여하는 「마사 힐」무용상을 수상했다. 그의 무용은 틀을 쌓고 부수는 식의 구조적이고 시각적인 것을 추구한다.무용수들의 얼굴에 감정이 나타나는 것을 배제하고 세트보다는 무용수들의 기량에 의존하는 안무를 한다.관객들의 시선을 무용수들의 몸에 고정시켜 철저한 몸짓에 의한 춤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1월 조이스극장 「올 투게더 디퍼런트」무대에 올랐을 때 「뉴욕타임스」는 「왜 얼굴에 감정이 없는가? 이해가 되지않는다」고 평했다.이에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는 「감정을 배제,진정한 춤을 보여준 공연이었다」고 되받았다.한국 무용가에게 보여준 언론의 관심으로 그 공연은 3회 공연 매진됐다. 『한국의 친구들에게 제가 만든 무용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9남매 중 막내여서일까.안성수씨는 「서른 네살 소년같다」는 느낌을 준다.귀엽게 웃고 수줍게 말한다. 그 살풋함속에 줄리어드 재학시절(91년) 「성수 안 픽업 그룹」을 창단,뉴욕 최고의 무용수들로 이뤄진 무용단을 키워낸 의외의 강단이 보인다.아메리카 발레 시어터나 라루보비치,더그 바론 무용단 등에서 활동한 뉴욕 최고기량의 무용수 9명이 그가 『연습하자』고 하면 언제라도 달려온다. 이번 무대에는 「빔」 「퀸」 「왓에버」 등 뉴욕에서 호평받은 작품들과 신작 「달밤의 체조」를 올린다.
  • 국세청 조사국:5/조사의 거인들(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6)

    ◎추경석 청장 「금융 추적기법」 도입/임채주 현 청장 음성·탈루소득 조사 업적 남겨/조사국장으로는 장병순·이근영씨 등 큰 족적 세무조사 지휘 라인은 국세청장→조사국장→지방청 조사국으로 이어진다.조세징수의 지휘탑인 국세청장의 세정방침은 조사의 방향과 강도를 결정하게 된다.조사국의 기능이 강화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새로운 조사기법이 개발되고 조사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조사의 거인」들이 탄생한다. 5공의 개혁주체로 사회정화위원장 출신인 5대 안무혁 청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배경으로 세무조사권을 강력히 운용한 인물이다.전 서울청 국장 L씨는 『조사권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라고 했다.조사권을 남용했다는 지적도 받는 그는 조사국원을 직접 선발했다.국세청 직원들은 『장관들이나 정치권의 청탁을 물리칠 만큼 강직한 일면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7대 서영택 청장은 고시 13회로 22년만에 첫 내부승진한 청장.부동산 투기와 음성·불로소득 생활자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를 벌였다.「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서청장은 탈세자는 고발을 원칙으로하는 등 엄정한 세정을 폈다.대구 출신에 경북고·서울대를 나온 TK.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다. 8,9대를 연임한 추경석 청장(현 건설교통부 장관)은 첫 조사국장 출신 청장.83년2월부터 3년4개월동안의 최장수 조사국장을 지낸 그는 83년 명성그룹 탈세사건 당시 조사국장으로서 금융추적기법을 처음 도입,조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범양상선·영동개발진흥·포철·정래혁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조사가 이루어졌다.조사관계자들은 그가 『세무조사를 통해 국세청의 위상을 확립했다』고 말한다. 임채주 현 청장 역시 조사국장을 거쳤다.국장 재임시절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조사와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조사에 업적을 남겼다.2개월동안 2백여명을 투입,7백11개 재벌 계열사의 부동산을 조사하는 집념을 보인 인물. 조사국장은 본청과 6개 지방청의 6백여명의 조사요원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다.청장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사람이 발탁된다.『조사국장은 조직안에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국세청 김정복 총무과장) 『조사국장은 자신에게 엄격해야하고 소신과 판단력이 뛰어나야 한다.절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된다』(최병윤 전서울청 조사국장) 장병순 전국장은 5공 최대의 경제사건인 이철희·장영자사건을 파헤친 사람이다.사채업자를 대대적으로 사찰,지하경제 단속에도 공이 컸다.이근영 전국장(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범양상선 사건과 5공비리 세무조사를 무리없이 처리했다.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상황판단이 빨라 안무혁청장에 의해 발탁됐다.국세심판소장·한국투자신탁사장을 역임. 허●도 전국장(작고)은 국토개발대출신으로 일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다.보스기질이 있는 마당발 스타일.박경상 전국장(현 성업공사사장)은 현대상선과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했으며 부동산 투기단속에 공이 컸다. 조사국장은 발족 30년동안 20명이 자리를 거쳐갔다.주정중 현국장은 21대.서영철 초대국장과 이철성 2대국장은 두번이나 국장을 지냈다.이밖에 60년대 후반부터 80년 초까지 국장으로 재직한 나오연·엄빈·김동빈·권태호·권영로·한용석·송순·최기연씨 등은 초창기 조사국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개발을 위한 재정조달에 이바지했다.
  • 국세청 조사국:4/침묵의 최강조직(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5)

    ◎「보안」은 최우선 근무수칙/“세무조사 결과는 비밀…” 국회의원 요구도 거부/사명감·조직력 자타공인… 수사기관도 “부럽다” 6공정부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세무사찰자료를 요구했을 때 국세청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록히드사건에 연루된 일본 다나카전총리의 재산을 공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를 물리친 일본 국세청의 의회 속기록까지 구해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전서울청 직세국장 L씨의 회고다.결국 야당의원들도 손을 들었던 일이 있다. 이런 세무조사 비공개의 원칙은 법원의 판결로도 인정을 받았다.94년4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바른 언론을 위한 시민연합」은 세무조사의 결과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고법에 냈다.이에 서울고법은 지난해 8월 『세무조사결과에는 국민의 알권리보다 우선하는 개인 또는 법인의 사생활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원고패소판결을 내렸으며 시민연합측이 상고를 포기,판례로 남게 됐다. 조사국의 사무실구조는 이중 통로로 돼 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 출입구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복도가 나타난다.그 안에 조사국장실·조사1과·조사1과장실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특정조사건을 관계직원끼리만 들어가서 검토할 수 있도록 심리실도 별도로 있다.조사국에서는 부하직원이 조사국장에게 보고를 하다 내부든 외부든 전화가 오면 부속실로 나가는 것이 관례다.전화를 엿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이 없는 사람들.조사국 사람들에게 보안은 어느 것보다 앞서는 근무수칙이다.『모른다.알아도 얘기할 수 없다.영원히 묻혀버려도 어쩔 수 없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기밀유지에서는 모든 정부기관중 국세청이 1등이다.안무혁 전 국세청장이 안기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안기부 직원이 기밀을 잘 지키지 못하면 『국세청 직원을 본받으라』고 나무랐다는 말도 있다. 『세무조사의 내용과 결과를 비밀에 부치는 것은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철칙이다』(박병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경영의 비밀을 지켜주고 공개에 따른 금융상 어려움 등을 막아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최명해 기획예산담당관) 이런 논리다.『지방에서는 세무조사사실이 알려지면 사채융통이 막혀 당장 부도가 난다』는 심준보조사3과장의 말에서 보안이 최우선적인 근무수칙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조사국 사람들의 사명감과 조직력은 최강임을 자타가 공인한다.검찰과 경찰 같은 수사기관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다.검찰 간부들은 『국세청 조사국원만큼만 하라』고 말하기도 한다.한 검찰 수사관계자의 얘기.『검찰 수사직원에게 어느 사건 관계인의 주소를 확인해오도록 지시했더니 이사가고 없었다고 그냥 돌아왔다.파견나온 국세청 직원에게 같은 일을 시켰더니 밤늦도록 친척이 사는 곳을 수소문해 이사간 곳 주소를 확인해왔다』 사소한 일이지만 조사요원의 완벽한 일처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퇴직한 뒤 민간기업에 들어간 전직 조사요원의 사례도 도움이 된다.사장이 갑자기 미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어 한 사원에게 비자를 받아오라고 했더니 못했다.조사국 출신 직원에게 시켰더니 당장 비자를 받아가지고 왔다.『어떻게 해왔느냐』고 물었더니 『급행료를 주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봉태열 기획관리관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국세행정은 다른 관청과는 달리 결과가 수치로 표시되기 때문에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반드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몸에 배 있다』
  • 전두환씨 항소키로/노태우씨도 뒤따를듯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항소하기로 했다. 전씨 변호사인 이양우 변호사는 30일 『전씨가 변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항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이날 하오 1시쯤 안양구치소에서 전씨를 만나 『항소를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을 비교해 본 결과 항소하는 쪽이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변호사는 『1심에서 전씨가 광주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만큼 항소심에서는 12·12사건보다는 5·18사건을 부각시켜 전씨의 내란목적살인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를 받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항소장은 빠르면 31일이나 항소장 제출기간 마지막 날인 2일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씨는 1심선고 하루 뒤인 지난 27일 이변호사를 통해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어왔다. 전씨가 항소 의사를 굳힘에 따라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도 곧 항소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12·12 및 5·18사건의 나머지 피고인들도 31일 중 일괄적으로 항소장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항소의사를 밝힘에 따라 검찰도 31일 중 항소 대상자를 선정,본격적인 항소준비에 돌입하기로 했다. 한편 12·12 및 5·18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희성 피고인과,비자금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김우중·안무혁 피고인 등 3명이 이날 항소장을 제출,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사람은 15명으로 늘어났다. 항소장 제출기한은 다음달 2일까지다.
  • 가을을 여는‘발레의 향연’/새달 국내외 정상급 발레단 잇단 공연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미 3대발레단… 「지젤」·「백조의 호수」 진수/국립발레단­「고전발레의 아버지」 프티파 재조명 무대/유니버설 발레단­우리나라 처음 선뵈는 「한여름밤의 꿈」 가을로 접어드는 9월,국내외 정상급 발레단의 공연이 잇따른다. 「미국발레의 대명사」라 불리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첫 내한공연(18∼21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과 한국 국립발레단의 「쁘띠빠 명작발레의 밤」(12∼15일 국립극장 대극장),그리고 유니버설발레단의 「한여름밤의 꿈」(5∼8일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등.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는 조프리발레단·뉴욕시티발레단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발레단의 하나.이탈리아­프랑스­러시아로 이어지는 전통 발레의 주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고전발레의 미국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러시아에서 건너온 미하일 모드킨을 중심으로 1939년 뉴욕에서 창단됐으며 뛰어난 솔리스트들이 많아 스타 중심의 발레단으로 이름 높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는 고전적인 작품에서 20세기 중후반의 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는데 이번 공연에는 대표적인 고전발레「지젤」과 「백조의 호수」를 선보인다. 줄리 켄트,호세 마뉴엘 카레노,아만다 메케로,기욤 그라팽,수잔 제프 등 주역 무용수들을 비롯,모두 1백20명이 내한한다.18·19일에는 「지젤」을,20·21일에는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다.공연시간 18∼20일 하오7시30분,21일 하오2시·7시30분.580­1234. 국립발레단이 제85회 정기공연으로 선보이는 「프티파 명작 발레의 밤」은 「고전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년)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무대.프티파는 1839년부터 34년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수석감독으로 있으면서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잠자는 숲속의 미녀」등 1백여편의 명작을 안무한 인물.국립발레단은 이번 공연에서 프티파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와 「레이몬다」,「파퀴타」를 원형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주역은 모두 더블캐스팅.「백조의 호수」의 오데트 역은 한성희와 남소연,지그프리트 역은 김용걸강준하가 맡는다.「레이몬다」에서는 이재신·최경은이 레이몬다 역을,신무섭 강준하가 장 드 브리앙 역을 맡는다.「파퀴타」에서는 파퀴타 역에 이재신·배주윤이,루시앵 역에 신무섭·김용걸이 각각 캐스팅됐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박은성)가 협연한다.공연시간은 12·13일 하오7시30분,14·15일 하오4시.274­1172. 유니버설발레단의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대표적인 「스토리 발레」.멘델스존의 음악을 배경으로 마리우스 프티파,미첼 포킨,조지 발란신 등이 안무한 것으로 유명하다.이번 공연에는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부르스 스타이블이 안무,지난 92년 홍콩발레단이 초연,화제를 모은 작품이 선보인다.우리나라에서는 첫 공연이다.의상과 무대장치는 조프리발레단과 홍콩발레단 등에서 활약한 크리스티나 지아니니가 맡았다. 프리마 발레리나 문훈숙을 비롯,수석무용수 박재홍 이준규 이원국 황재원 권혁구 전숙경 이유미 허경수 이미자 엔리카 강예나 등이 출연한다. 공연시간은 5·6일 하오7시30분,7일하오3시30분·7시30분,8일 하오3시30분.452­0035.
  • 국세청 조사국:2/몸던져 탈세방지(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3)

    ◎세원발굴하려 위장취업도/장항제련소 굴뚝 그을음 금캐기 “아직도 전설”/건재상 탈세혐의 잡으려 1년간 자재상 열기도 세원 발굴과 탈세의 현장을 잡기 위해 조사요원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세무조사의 자료가 되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조사국 직원들은 발로 뛰어 다니며 때로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캐낸다. 중부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장병순씨의 일화.『일선 세무서에 근무하면서 장항광업제련소에 세무조사를 나갔던 일이 있었다.그런데 제련소 굴뚝에 붙은 그을음 속에는 금이나 동이 들어 있어서 몇년에 한번씩 수입으로 잡아야 했다.제련소측은 이를 이행치 않았다.그래서 1백m가 넘는 굴뚝의 발판을 딛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그을음의 두께를 재서 금전적 가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세금을 부과한 적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세원을 찾아낸 장씨의 얘기를 후배 조사요원들은 세원 발굴의 「전설」로 여기고 있다. 조사국장의 책상에는 조사요원들이 모은 한달에도 수백건의 조사 정보가 비밀리에 전달된다.조사요원들이 관할 지역에서 발굴해 낸세원 동향과 탈세 정보다.바로 세무조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정보를 모은다. 『6하원칙에 의해 세무정보를 정리하고 예상 세액까지 담아 본청으로 보낸다』(국세청 과장) 조사요원들이 보고해야 하는 정보의 건수는 국세청 내규로 정해져 의무성이 있다.1급지 세무서는 2건,2·3급지는 1건씩 매월 보고해야한다.그들은 늘 후각과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니며 평범한 사물도 예사로이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의무감에서보다는 직업적인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부한다.『요즘은 고급차도 워낙 흔하지만 차가 귀하던 시절에는 고급스런 차가 지나가면 습관적으로 차번호를 메모했다가 차주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일이 많았다』(조사국 간부 Y씨).한 조사국 직원은 『탈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수사기관처럼 일부러 정보원을 쓰는 일은 없지만 알고 지내는 사업주에게서 예기치 않게 정보를 얻기도 한다』고 알려준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조사요원들은 탐문은 물론 위장취업을 하는 수도 있다.신분을 감추려 노력하는 것은 몸에 밴 하나의 습관이다.그들은 외부인들과 얘기할 때 국세청을 회사 또는 공장이라 부른다.따라서 국세청장은 사장이다. 지방국세청의 현직 조사국장인 P국장은 탈세 혐의를 잡기 위해 벙거지를 쓰고 청소부로 위장,현장에 잠입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그의 별명은 「콜롬보」.안무혁 전국세청장이 마치 형사와 같이 일하는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또 다른 일화.5공 시절 한 조사국 직원은 건재상의 탈세를 포착하기 위해 1년동안 자재상을 열기도 했다.부동산 투기를 단속하기 위해 복덕방을 개업한다든가 투기꾼 또는 구매자로 꾸며 잠입하기도 한다. 자체개발자료로 불리는 정보외에 제보도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전직 조사국 간부 Q씨는 『제보가 조사자료의 주』라고 했다.제보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고 건수도 많다는 뜻이다.제보는 주로 원한에 얽힌 경우가 많지만 외부에서 캐내는 정보보다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수가 많다.그러나 무고도 상당수 된다.5공초기에는 근거없는 제보가 80%이상인 때도 있었다. 통보자료는 청와대·안기부·검찰청 등에서 수집해 통보해온 세금 탈루와 관련된 자료들이다.국세청이 수집한 정보가 다른 기관에 제공되듯 이들 기관의 자료도 큰 몫을 한다.그러나 증권가의 루머는 세무조사에서 채택되는 일은 드물다.
  • 전씨 2천2백억·노씨 2천8백억/추징금액중 얼마나 집행 가능할까

    ◎전씨­대부분 은닉… 현재 3백90억 확인/노씨­2천2백억 확보… 어려움 없을듯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얼마나 집행될 수 있을까. 12·12 및 5·18사건 및 전·노피고인 비자금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는 26일 전·노 피고인에게 각각 2천2백59억5천만원과 2천8백38억9천6백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전피고인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검찰 구형액 보다 약 36억원이 늘었다.성용욱·안무혁 피고인이 기업체들로부터 받아 전피고인에게 건넨 36억원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1심 법원의 추징 판결이 당장 집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확정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따라서 전·노피고인이 항소 및 상고를 포기하지 않는 한 빨라야 97년 4월에야 집행이 가능하다. 전·노 피고인이 사면을 받더라도 추징금은 면제되지 않는다.대법원은 최근 사면이 돼 형이 실효되더라도 추징금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결했었다. 노피고인에 대한 추징금 집행은 큰 어려움이 없다.검찰은 이미 수사 과정에서 예금과기업체 등에 빌려준 돈 2천억원을 확보했다.지난 5월에는 모그룹 임원 명의로 된 2백억원 상당의 주식을 추가로 찾아냈다.여기에 그동안 증식된 이자와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대구 근처의 부동산 등을 합하면 노피고인의 드러난 재산은 추징금을 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 전피고인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상당 부분 집행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검찰이 지금까지 압수하거나 확보한 금액은 쌍용이 보관했던 「61억원 사과상자」를 포함해 3백90억원 정도다. 전피고인은 현재 1천4백억원 이상을 5년 만기의 무기명 채권 등으로 은닉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전피고인이 스스로 협조하지 않는 한 나머지 돈을 찾기는 어렵다. 검찰은 이미 무기명 채권의 만기가 돌아오면 검찰 수사망에 노출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다.하지만 무기명 채권이 만기가 된다고 해서 검찰이 모든 돈을 추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추징 판결의 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확정판결이 있은 뒤 3년 안에 추징 대상을 찾지 못하면 그 이후에 거액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집행할 수 없다.
  • 「12·12」­「5·18」 선고/재벌 중형선고 이유

    ◎뇌물엔 “단죄”… 정경유착 고리끊기/고액·구체명목·능동제공땐 실형/액수·획수 적고 초범땐 집행유예 김영일 재판장이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 판결문에서 밝힌 재벌총수와 주요 피고인의 양형이유를 간추린다. ▲이건희 피고인=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액수가 크지만 구체적 청탁과 관련돼 있지않고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체육·문화 등의 진흥에 애쓴 점,반성의 정도,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김우중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진해 해군잠수함기지 건설공사 수주와 관련한 금품공여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돼 있고,뇌물공여죄로 처벌받은 전력 등에 비추어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경제발전의 기여 및 사회봉사활동 노력과 반성의 정도 등을 참작한다. ▲최원석 피고인=뇌물 액수가 많은데다 횟수도 적지 않고 아산만 해군기지 건설공사 수주에 대한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이현우 피고인에게도 사례 명목으로 많은 뇌물을 공여한 점,1회 처벌 경력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장진호 피고인=뇌물 액수가 크고 지방공단지정과 관련된 행정절차상의 편의를 바라는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고 뇌물공여 직후 공단지정 결정이 이루어진 점,먼저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등 공여과정이 능동적이었던 점 등으로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 발전에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준용·이건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아산만 해군기지공사 수주내정 사례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됐으나 횟수와 총액이 많지 않고 경제발전 기여,반성,범행 자백 등을 참작한다. ▲김준기 피고인=뇌물액수가 적지 않으나 포괄적 선처 외에 구체적인 청탁과 무관한 점,경제발전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을 참작한다. ▲정태수 피고인=뇌물액수가 크고 수서택지개발지구 특혜분양 등 구체적인 명목과 관련된 점,실명전환 액수가 큰 점 등에서 실형을 면키 어려우나 국가경제 기여,사회봉사활동,반성 등의 정상을 참작한다. ▲이경훈 피고인=위계에 의한 실명전환 액수가 적지않으나 전문경영인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반성,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이원조 피고인=대통령과 기업인 면담을 주선해 뇌물수수를 방조한 금액이 적지 않고 공여 기업주를 선정,액수를 조정하는 등 범행 모양이 좋지 않아 실형을 면키 어렵다.경제발전 기여,개인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당뇨 등으로 고생하고 있고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한다. ◎일부 무죄선고 파장/모두 「증거부족」이 원인/박준병씨 30단모임 기여안해/정호용씨 「5·18지휘」 인정못해 재판부는 12·12사건과 관련된 박준병 피고인의 반란중요임무종사죄,5·18사건에 연루된 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의 내란목적 살인죄에 대해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주변에서 예견되던 선을 넘어 세 피고인에게 무죄 또는 일부무죄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증거부족이 무죄선고의 이유다. 박피고인의 경우 재판부는 무죄의 이유로 대략 4가지를 들었다. 당초 경복궁모임의 성격을 모르고 참석한 점,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병력출동지시를 받고도 부대에 출동지시를 내리지 않은 점,30경비단에서 뚜렷하게기여한 사실이 없는 점,결과적으로 육본측의 병력출동저지와 일치된 점을 꼽았다. 여기에는 28차례의 재판과정에서 보인 박피고인의 고분고분한 자세와 변호인의 끈길긴 무죄입증노력도 한몫 했다.자민련의 공천을 포기한 점을 정상참작의 사유로 거론하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 황피고인의 일부무죄논거는 자위권발동이나 광주 재진입작전을 결정하는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핵심이다. 즉 증언과 증거를 종합할 때 80년5월21일 자위권발동이 결정된 국방부장관실 회의와 25일 육군회관에서의 상무충정작전 개시시기결정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또한 황피고인이 광주진압작전을 지휘하는 실권자였다는 김기석 당시 전교사부사령관의 증언이 막연한 생각일 뿐,내란목적살인의 증거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일부무죄선고를 받았다.재판부는 5·18과 관련,주요쟁점인 「지휘권 이원화」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증거부족이 그 이유이며,예하부대를 파견한 모체부대장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또한 자위권발동회의와 광주 재진입작전 결정회의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거론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판과정에서 황·정피고인과 검찰이 신청한 증인 사이에 과잉진압여부를 놓고 주고받은 2건의 메모공방과 관련,피고인측의 손을 들어줬다.즉 황피고인이 「자동차는 경장갑차로…」 공격하라는 전화지시내용과,정피고인이 「소선배(소준렬 전 교사사령관),너무 기죽이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의 전두환씨 친필메모를 소사령관에게 건넸다는 사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나아가 검찰이 주요증거로 제출한 「5공전사」의 신빙성에도 의문을 나타냈다.항소과정에서 검찰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7명 법정구속 배경/차규헌씨 「미운털 구속」/실형받고 구속안된 피고인/출국땐 재판부 허락받아야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불구속상태로 출정한 유학성·황영시·이학봉·최세창·장세동 피고인 등 5명이 징역 7년∼10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불구속기소된 피고인가운데 차규헌 피고인도 징역7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전두환 피고인 비자금사건 선고공판에서는 1심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던 안현태 피고인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같은 처지가 됐다.이날 공판에서 법정구속된 피고인은 모두 7명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항소심재판때까지 불구속상태로 놓아둘지 여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재벌총수를 포함해 불구속 기소된뒤 실형선고를 받은 11명의 피고인 가운데 유독 차규헌 피고인만 법정구속돼 눈길을 끌었다.이희성·주영복·박종규·신윤희·김우중·최원석·장진호·금진호·이원조·안무혁 피고인 등 나머지 불구속 기소 피고인 10명은 법원의 관용에 따라 여전히 불구속 재판을 받게 돼 희비가 엇갈렸다. 차규헌 피고인은 검찰에 이어 재판부에도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인상이 짙다.검찰 수사단계에서 전두환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비난하고,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고려돼 불구속 기소됐지만 법정에서 진술번복이 잇따랐다.12·12사건때 예하부대에 병력동원을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고,5·18사건과 관련해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등 검찰을 난처한 입장에 빠트렸다. 비자금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재벌총수 9명가운데 대우그룹 김우중·동아 최원석·진로 장진호·한보 정태수 회장 등 4명의 피고인은 예상을 뒤엎고 각각 징역 2년∼2년6월씩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재판부는 재벌총수로서 각종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되지 않은 피고인은 출국할때 재판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판단에 따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12·12,5·18」 수사 재판 일지 ▲95년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 시중은행예치 폭로 ▲10월20일=대검 중앙수사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제정 발표 ▲11월30일=「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2일=전두환 전 대통령 「골목성명」 발표후 경남 합천행 ▲12월3일=전 전 대통령 연행,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헌병단장,노재현 전 국방부장관 등을 시작으로 관련자 본격 소환 ▲12월8일=최규하 전 대통령 출석요구서 전달 ▲12월12일=최 전 대통령 1차 방문조사 무산 ▲12월15일=헌법재판소 5·18헌법소원에 대한 사건종료결정 ▲12월16일=최 전 대통령 2차 방문조사 무산,최 전 대통령 대국민성명 발표 ▲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12월21일=단식중이던 전전대통령 안양교도소에서 경찰병원으로 후송,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공포 ▲12월27일=5·18사건 광주현장조사 및 광주지검과 공조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등 구속영장 청구 ▲1월18일=12·12사건 위헌심판제청(서울지법).장세동·최세창 구속영장 보류 ▲1월23일=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이건희 피고인 등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등 국회의원 3명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의원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및 5·18사건 수사종결 ▲3월11일(1차공판)=전·노등 피고인 16명 출정 ▲4월22일(5차공판)=전피고인 직접신문,전상석·이양우 변호사 검찰신문에 항의,퇴정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5월20일(8차공판)=변호인측의 반대신문 시작,변호인측 재판부의 야간재판에 반발해 퇴정 ▲6월13일(13차공판)=변호인단 주2회 재판에 항의,집단퇴정,재판파행 ▲6월24일(16차공판)=재판부 최 전 대통령 등 44명 증인채택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차장을 시작으로 증인신문 ▲7월1일(18차공판)=최 전 대통령 증언거부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전·노 피고인 출정거부 선언 ▲7월11일(21차공판)=전·노 피고인 다시 출석,국선변호인 선임해 공판진행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 ▲7월22일(23차공판)=권정달 의원 증인출석 ▲7월25일(24차공판)=재판부 8월5일 결심공판 발표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또 집단사퇴 ▲8월1일(26차공판)=이희성 피고인 등 증인 7명 신문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 당시 1공수 1대대장(현역소장) 증인을 끝으로 사실심리 종료,검찰 전·노 피고인 비자금사건과 병행해 구형,8월19일 선고공판 발표 ▲8월14일=재판부 선고공판 26일로 연기 발표 ▲8월26일(28차공판)=12·12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 재벌총수 4명 실형/비자금 공판

    ◎경제활동 보장위해 법정구속 안해 □선고형량 ◆징역7년­이현우 ◆징역4년­안현태 ◆징역3년­금진호 이원조 성용욱 안무혁 ◆징역2년6월­최원석 ◆징역2년­김우중 정태수 장진호 ◆집행유예­이건희 이준용 김준기 이건 김종인 이경훈 이태진 사공일 재판부는 이어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노태우 피고인 비자금 사건 선고공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피고인에게 징역 2년6월을,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피고인,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 피고인,진로그룹 회장 장진호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주)대우 대표 이경훈 피고인에게는 징역 10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뇌물수수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금진호·이원조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들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동부그룹 회장 김준기 피고인과 대림그룹 회장 이준용 피고인,대호건설 대표 이건피고인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피고에게 뇌물을모아 건넨 전 청와대 경호실장 이현우 피고인에게는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징역 7년에 추징금 6억1천만원을 선고했다.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 피고인에게는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이태진 피고인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뇌물 수수죄로 처벌하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로 기업 활동 등에 영향을 받겠지만 그런 것이 볼모가 돼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면 거시적으로 자신에게는 물론 기업 활동과 우리나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중형 이유를 밝혔다. 하오 4시에 열린 전두환씨 비자금 사건 선고공판에서는 전 청청와대 경호실장 안현태 피고인에게 뇌물수수죄 등을 적용,징역 4년에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전 국세청장 성용욱 피고인과 전 안기부장 안무혁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씩을 선고했다.그러나 안피고인과 함께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났던 성피고인은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전 재무장관 사공일 피고인은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 모두 대통령의 손에 때를 묻힌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가운데도 안현태 피고인은 모금액이 많고 모금 과정에서 대통령과 혼연일체가 됐으므로 법정 구속한다』고 밝혔다.
  • 조선총독/이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 고발

    ◎가람기획,광복51주년 맞아 「조선총독 10인」 펴내/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죄목 낱낱이 밝혀/김삼웅·정운현씨 등 친일문제연구가 7인 공동집필 지난 6월 일본 문부성은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국가간 전후 보상문제는 완전 해결됐다』고 기술토록 저자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위안부 문제 등은 그 후에 나온 개인적인 요구』라는 것이다.끝없는 침략전쟁 미화 발언·독도망언 등 일본의 이같은 역사몰각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그 후안무치함의 뿌리는 일단 그들의 극도로 이기적이고 편협한 애국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적 애국심(충성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들의 죄상을 낱낱이 들춰낸 연구서 「조선총독 10인」(가람기획)이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총독 10인」은 일제하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의 행적을 연구·조사,그 실태를 공개해온 친일문제연구회(회장 김삼웅)가 「일제잔재 19가지」「친일변절자 33인」「반민특위」「일제침략사 65장면」에 이어 펴낸 역사자료집.특히이 책은 광복 51주년을 맞은 오늘의 시점에서 광복의 의미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짚어보고,일본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총독은 일제강점기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조선의 제반 통치행정을 책임졌던 장본인이자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처단 제1호」의 대상이었다.이들은 마치 식민지 이전의 조선국왕과 같은 지위를 누리며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까지 장악한채 조선을 포괄적으로 통치했다. 친일문제연구가 김삼웅·정운현,국사학자 조명철씨 등 7명이 공동 집필한 이 연구서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서부터 마지막(9대)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에 이르기까지 일제 조선통치의 최고책임자 10인의 행적을 더듬는다. 1905년 초대 조선통감에 부임해 1909년까지 4년여동안 통치한 이토는 제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며 의병학살·토지수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그는 경운궁의 호칭을 덕수궁으로 고쳐 이곳에 고종을 유폐하고,순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창덕궁에 안치시켰다.또 고종이 귀여워한 왕자 은을 인질로 일본에 끌어가기도 했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만행 또한 이토에 못지않다.데라우치는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는 데 중추세력을 이뤘던 조슈 번(장주번) 군벌을 계승한 대표적인 무사였다.1910년 10월 초대총독이 된 데라우치는 무사출신답게 헌병경찰제도와 조선주차군을 도구삼아 무단정치를 강행,조선인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었다.그는 통감부시대의 각종 악법위에 다시 조선민사령,조선형사령,조선보안법,조선태형령,범죄즉결례 등을 제정해 조선인의 민족운동을 압살했다. 1916년 조선에 온 제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의병운동과 3·1운동을 무차별 탄압해 결국 1919년 총독직에서 물러났으며,이어 제3대 총독에 오른 사이토 마코토는 이른바 「문화정치」로 포장된 강압통치로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을 분열시켰다.이와 관련,김익한씨(배재대 강사)는 『사이토 총독이야말로 일본사회의 「혼네」(속마음)·「다테마에」(겉으로 나타내는 표현방식)구조를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현상적 「다테마에」의 측면보다는 「혼네」의 측면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이 책은 황민화정책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해 광분한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태평양전쟁 개전이후 조선을 「결전체제」로 끌어올려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한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 등의 만행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다. 일제시대사 특히 일제침략사는 조선총독에 대한 연구를 빼놓고는 첫 장을 써나갈 수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는 거의 「백지상태」인 형편이다.이같은 반성에서부터 비롯된 「조선총독 10인」은 독립운동사연구에만 매달릴 뿐,정작 침략원흉에 대한 인물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에 보내는 하나의 경종이 될 만하다.
  • 벽사류/우리춤 큰 사위 감동의 한마당

    ◎21∼24일 서울국립중앙극장서/3·4대 벽사 등 춤꾼 107명 참가/승무·학춤·태평무 등 진수 선사 한국춤의 큰 산맥,벽사 한영숙류 춤 공연이 서울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벽사춤아카데미(이사장 정재만)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를 「벽사 무용주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동안 원로무용수와 신진 무용수 1백7명이 참가한 가운데 벽사를 기리는 춤판을 마련한다. 우리나라 무대춤의 시조이자 근대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한성준(1875∼1941)과 그의 뒤를 이은 손녀 한영숙(1920∼1989),그리고 제자 정재만(1948∼)에 이어진 춤의 맥을 짚어내고 대중속에서 전승한다는 취지. 21일 「추모의 밤」 행사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무」(예전무용단)와 한성준에 의해 최초로 무대화된 「살풀이 춤」(이은주)등이 선보인다.또 한성준·한영숙에 이어지면서 난으로까지 비유된 「태평무」(정승희)와 한영숙의 춤가락과 사위를 바탕으로 송범이 안무한 「달과 여인」(전은경등 5명)이 공연된다.이날 공연에서는 원로무용가 김진걸이 자신이안무한 작품 「산조­내마음의 흐름」으로 직접 무대에 오른다.이어 제3·4대 벽사인 정재만·정용진 부자가 함께 「승무」를 공연한다. 둘째날인 22일은 한영숙과 정재만의 안무작을 감상하는 「회고의 밤」.「비천무」(한광수)「삼창」(박은하)「비」(김상덕·김미영)「먼길」(김춘한·김윤아)「연」(황재섭)「홰」(정진욱·정강우)「한량무」(이경수)「사랑가」(김윤수·홍경아)「허튼 살풀이」(정재만)「견우와 직녀」(임원·김선영)등 정재만이 안무한 작품이 후학들에 의해 선보인다.끝순서로 한영숙이 말년에 안무한 무용극 「마지막 잎」(정재만 등)이 공연된다.한영숙이 한승준으로부터 춤을 배우던 시절을 회고한 내용.벽사류춤의 매난국죽이라 불리는 승무·학춤·태평무·살풀이 춤이 모두 극속에 녹아져 소개된다. 23일 「새롬의 밤」은 창작무의 밤.박연술·조영옥 등 정재만의 제자들이 안무한 창작무용 「네트워크」(우민정 등 8명)와 「그날」(이경수 등 9명)등이 무대에 오른다. 24일 「계승·발전의 밤」은 벽사류의 전통춤을 정재만이 군무로재안무한 작품을 감상하는 무대.「태평무」「살풀이」「승무」「학춤」「훈령무」와 「북의 향연」을 공연한다.「북의 향연」은 36명의 무용수가 멜북을 메고 객석과 무대를 넘나드는 역동적인 춤.정재만 특유의 과감한 안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516­1540.
  • 무역사기 중기 피해 잦다/거래조건 확인 부실

    ◎불량품 트집·대금 떼이기 일쑤/올 상반기 172건… 은행보증 등 받아야 중소기업들이 무역사기에 시달린다. 24일 대한상사중재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발생한 무역클레임(분쟁)은 3백19건.이중 우리 무역업체가 계약물품의 품질불량과 물품대금 미지급 등 사실상 무역사기를 당해 제기한 클레임이 54%인 1백72건이나 됐다. 특히 우리업체들로부터 물품을 받아 처분하고도 지금까지 대금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16건,계약물품 대신 산업쓰레기를 보낸 경우가 6건이나 포함돼 있다. 청구금액 기준으로는 5만달러 미만이 1백48건으로 90%가 소액사건이다.중소업체와 해외업체간의 거래에서 분쟁빈도가 높다는 증거다.이중 1만달러이상 5만달러 미만의 분쟁이 32%인 1백2건,5천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가 46건이다. 인천시 북구 동와물산의 경우 터키에 릴낚싯대와 부품 5천달러어치를 수출했다가 대금과 물품을 떼였고 서울 성동구 천안무역은 중국에 수출한 원단 7만5천달러어치를 수입업자의 트집으로 날렸다.분쟁발생 2년이 다됐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상사중재원의 김광수 위원(44)은 『중소업체의 무역담당자들이 실적쌓기에 급급해 D/A(인수도결제)와 D/P(지급도결제) 등 거래조건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아 당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하고 『무역거래시 반드시 은행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중재조항에 상사중재원을 통한다는 조항을 삽입,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박희준 기자〉
  • 4차례 입북·80여회 정보 보고/남파간첩 정수일 어떤활동 했나

    ◎교수신분 이용 각계지도층인물 접촉/군사시설­한미관계 등 고급정보 수집/매주 이슬람사원 기도… “북은 본점” 등 암호 사용 국내에 입국한 간첩 정수일은 외국인 교수로 완벽하게 위장했으며 간첩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행세하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의 정기예배에 빠지지 않았다.철저한 신분위장을 위해 사용한 가명도 「앗신」「김성철」「베닐」「왕청」「조혁」등 9개나 된다. 정은 처음에 일부러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주위를 속였다.단국대 교수로 재직할 때는 재미있고 학점도 후한 외국인교수로 인기를 끌었다.6개국어에 능통하고 연구실에 밤늦게 남아 공부하는 교수로도 알려졌다. 전국 대학 아랍어과 교수 모임인 「한국이슬람학회」와 단국대 사학과 박사과정 출신자들로 구성된 「동서사학회」 등에 가입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갔다.통장에 든 1억1천3백만원은 국내에서 착실하게 모은 돈이다.이슬람문화 비평가로 인정받아 국내 일간지에 칼럼을 게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정계·학계·언론계·군사분야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학생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이들과의 접촉 및 국내 출판물 등을 통해 입수한 각종 정보를 분석,지금까지 80여차례에 걸쳐 보고했다. 지난 1월까지는 중국 북경과 심양의 사서함을 공작거점으로 삼아 보고했다.영문으로 작성한 편지 뒷면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서시약」을 사용해 암호로 보고내용을 작성했다. 휴전선 부근 군사시설의 사진 및 무기도입 정보를 비롯,「체육부장관 노태우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84·5),「신상옥은 11·30 마유미 영화 촬영차 오지리에 갈 것임」(89·10) 등의 내용도 보고했다.90년대에 들어서는 「전민련에서 진보정당 분리」「비운동권 30% 대학생회 구성」 등 재야·학생 운동권의 움직임도 전했다. 보고할 때는 사전 약속에 따라 대통령을 「회장」,국무총리는 「부회장」,안기부장은 「총사장」,북조선을 「본점」,남조선을 「대리점」으로 표현하는 등 대용어를 썼다.북경은 「방콕」,국회는 「교회」라고 했다. 지난 2월부터는 북한의 지시에 따라 팩스를 이용해 보고했다.「외무장관미·중국 방문은 각국과 북한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임」(96·3)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보고 전문에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일편단심 충성을 다짐함」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의 표현을 담았다. 87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중국 등을 통해 입북,암호표,독약앰플 등 간첩장비와 공작금 1만8천달러를 지급받아 돌아왔다. 대남공작의 공을 인정받아 「조국통일상」을 받았다.〈김경운 기자〉 ◎성장 배경·침투경로/중국 길림성 태생… 63년 북한 귀환/연대어학당서 배울 필요없는 한국어 수강 간첩 정수일은 1934년 11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 지신구 대흥촌에서 태어났다.3남2녀 중 장남.부모는 함북 명천에서 농사를 짓다 일제시절 가난 때문에 중국으로 이주했다. 연변 고급중학교를 거쳐 북경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했다.학업 성적이 뛰어나 55년 9월부터 3년 동안 이집트 카이로대에 유학,아랍어 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58년 9월부터 63년 2월까지 중국 외교부 연구관,모로코주재 중국대사관의 2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 63년 6월 북한으로 귀환했다. 10여년간 평양외국어대 아랍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일성의 주변에서 아랍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74년 9월 「대외정보 조사부」 공작원으로 발탁돼 4년5개월 동안 체력훈련과 침투·사격훈련 등을 받았다. 전문공작원 교육을 마치자 79년 1월 평양을 출발,레바논의 베이루트에 도착,북한 대사관 및 「레바논·조선 친선협회」의 도움으로 유럽으로 이주한 실존인물 「무하마드 칸수」(당시 33세)라는 이름으로 국적을 취득한다.레바논에서는 당시 내전의 혼란 때문에 국적을 취득하기가 수월했다.베이루트 아랍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9년 12월 「국적세탁」을 위해 유학생을 가장,튀니지에 입국해 국적을 취득하려 했으나 호적 관계법이 잘 정비돼 어렵다고 판단,포기했다.호주·인도네시아·파푸아뉴기니·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국적 취득을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83년 4월 필리핀에서 레바논인 선교사와 필리핀 여성의 아들인 것처럼 속여 국적을 취득했다. 이어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말레이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 김모씨에게 접근,『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 허가를 받는다. 84년 4월29일 필리핀 유학생 신분으로 국내에 잠입,장기적인 국내 거점 확보에 들어갔다. 북한에는 「모란봉 극단」 안무지도원인 처 박광숙(61세)과 평양시당 선전국 홍보원인 미란(33),중앙통신사 기자인 달미(31),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소나(30) 등 세딸이 살고 있다.맏사위는 평양자연과학원 연구원인 김유성(33)이고,둘째 사위는 「28촬영소」배우인 김철(33)이다.막내딸도 지난해 결혼했다. 하지만 신분위장을 위해 88년 종합병원 간호사 윤모씨(45세)와 결혼했다.자녀는 없다.〈김경운 기자〉
  • “「칸수」 교수는 간첩” 동료들 경악

    ◎철저한 위장에 학생·이웃도 충격/아내조차 “필리핀인으로 알았다”/소속대학 포섭당한이 없자 안도/거침없이 활보… “안일한 반공의식에 경종” 단국대 사학과의 「무하마드 칸수」 교수가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의 남파간첩 정수일로 밝혀지자 대다수 시민들은 북한의 치밀한 대남공작 수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대학의 동료교수 및 학생들과 이웃 주민들은 『정말이냐』고 되묻는 등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검찰 송치◁ ○…정은 이날 하오 1시쯤 서울지검에서 서울의 부인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북한에 있는 아내는 대남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겠지만 남한의 집사람은 내가 필리핀인으로 알고 있으며 간첩활동 사실은 모른다』라고 말했다. 또 남한에서 주로 누구와 접촉했느냐는 질문에 『동료 교수 등 학계인사였다.정치인·언론계 인사들과는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다.재야운동권과도 별로 접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령은 무전으로 받았고 84년 이후 모두 60여차례에 걸쳐 보고했다고 말했다. ▷정의 자택◁ ○…정이 부인(45)과 함께 92년부터 살아온 서울 광진구 자양3동 우성아파트 주민들은 『정말 간디교수가 간첩이냐』며 놀라워했다.주민들은 정을 「간디교수」라고 불렀다. 아파트 경비원은 『콧수염을 길러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해 약간 이상했다』며 『1년에 한번 꼴로 40대 후반에서 50대초반의 남자 2명이 찾아오곤 했다』고 전했다. ▷단국대◁ ○…「칸수」교수가 구속된 뒤 조사위원회를 열어 교수와 학생 가운데 포섭을 당한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했으나 교내에서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안기부의 발표에서도 이와 관련해 별다른 내용이 없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장◁ ○…수사결과를 발표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은 발표 30분 전부터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로 붐볐다. 발표회 도중 정을 체포할 당시의 상황과 신문과정을 담은 비디오가 10여분 동안 방영됐다.정은 여기서 자신의 신분 및 남파경로와 목적 등을 또렷하게 대답했다.특히 북한 무용수 출신의 귀순자 신영희씨가 정의 처로 북한 모란봉극단의 안무지도자인 박광숙을 안다고 진술하는 장면도 담겨 있었다. ▷각계 반응◁ ○…안동일 변호사는 『경악스러운 일로 사회일각에 북의 적화통일 기조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깨워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최병헌 교수는 『칸수교수가 어느정도의 학문적 위치를 확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사회 일각에선 교수사회에 간첩이 침투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토록 허약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김경운·박준석·이지운 기자〉
  • 「둥둥 낙랑둥」 12일부터 무대에/최인훈 연극제 마지막 공연작품

    ◎전래설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재구성 예술의 전당이 창작극 활성화를 위해 기획한 제2회 「오늘의 작가 시리즈­최인훈 연극제」의 마지막 작품인 「둥둥 낙랑둥」(손진책 연출)이 1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580­1234)무대에 오른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6월1∼16일),「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6월22일∼7월7일)에 이은 세번째 공연작이다. 「둥둥…」은 우리 민족 전래설화인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서 모티브를 빌려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 자신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다시 그 쌍둥이 언니를 사랑하게 되는 호동왕자와,적국의 왕비로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왕비의 비극을 통해 진정한 자아인식과 참된 인간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은 특히 원래 설화와는 다른 인물설정이 눈길을 끈다.낙랑공주를 쌍둥이로 설정하고 그중 한사람을 호동의 어머니로 만들었으며 설화에서의 비련의 사랑을 삼각관계로 되살려 사랑의 의미를 추구했다.이와 함께 호동이 낙랑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과 호동의 자살이라는 독립된 두 사건을 교묘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이번 공연은 또 연극의 묘미를 한껏 살릴 수 있는 토월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색다른 연극의 맛을 느끼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작품은 출연진의 화려한 면면에서도 기대를 갖게 한다. 정동환이 오랜만에 정통 연극무대에 출연,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강하면서도 한없이 여리고 섬세한 성격의 호동왕자 역을 맡았으며 김성녀가 낙랑공주와 왕비,1인2역으로 등장해 연기력을 과시한다.또 관록의 배우 윤문식이 난쟁이 역을 맡아 호흡을 맞춘다. 이밖에도 무대미술가 윤정섭이 선보이는 웅장하고 장엄한 무대,「오장군의 발톱」초연 당시 감동적인 선율을 선사했던 작곡가 이병욱의 음악,국립무용단장 국수호의 안무 등이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평일 하오 4시30분·7시30분,토·일·공휴일 하오3시·6시.〈김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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