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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반(絆)/임태순 논설위원

    전쟁이나 재해 등 대형 사고를 겪고 나면 인간은 큰 충격을 받는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겪은 장병들은 제대 이후에도 사고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거나 사고 당시를 연상시키는 물체를 보고 공포에 빠지기도 한다. 9·11테러 이후 뉴요커들 역시 한동안 비극적인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뉴욕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테러로 형체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본 시민들은 넋을 잃었다. 테러 닷새 뒤 뉴욕타임스 기자 알렉스 쿠친스키는 ‘무표정을 벗어버린 뉴욕’이란 기사를 썼다. 길에서 서로 마주쳐도 상대를 무시하고, 지하철에서 멍하니 맞은편만 바라보던 뉴욕 시민들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살아난 이후 관계를 형성하고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생존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연대감, 공동체 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 시민들은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예전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현대인들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고독해지고 있다. 전통사회는 가족,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고 모내기, 추수 등 서로 힘을 합쳐야 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말이 스며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도시인들은 칸막이가 쳐지고 원자화되면서 고독, 소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24.4%로 가장 많을 정도로 가족 해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연사(無緣死)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독신자들이 늘면서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죽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연사로 장례문화가 간소화돼 장례비용이 최근 10년 동안 3분의2가량 감소하고, 도쿄의 경우 장례식 없이 바로 화장하는 직장(直葬)의 비율이 지난해 30%에 이르렀을 정도다. 일본에서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반’(絆)자가 선정됐다고 한다. 일본어로 ‘기즈나’로 읽는 이 한자는 사람 사이의 정과 유대를 뜻한다. 올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등 대형 재해를 겪으면서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이 가족과 동료 사이의 정을 중요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고통을 나누고 위로해 주며 보듬어 주면 큰 힘이 된다. 굳이 큰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주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세밑이 더욱 훈훈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독도 바람에 풍화되고 파도에 깎여져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습관처럼 뜨거운 커피 생각이 났다. 울릉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동항을 샅샅이 뒤져도 ‘시럽 뺀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없었다. 허름한 다방 앞에 서서 그때서야 내 착각이 한참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명의 파도에 아랑곳 않고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섬 중의 섬 울릉도, 그리고 독도인 것이다. 글·사진 전은경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관광개발 섬이란 곳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정은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떠난 섬 여행에서 출발한다. 사실 그 섬에 대해선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과감무쌍하게 돌아가는 배가 뜨지 않길 바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것은 무단외박을 소망하던 어린 날의 혈기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고립된,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마저 고립되게 만드는 ‘섬’의 특성에 매료되었던 탓이다. 이번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 죽도竹島(울릉도의 44개 부속섬 중 가장 큰 섬)를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울릉도의 대표 관광지이지만 실제 주민은 단 한 명뿐이며, 물이 전혀 나지 않아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섬. 죽도는 첫 섬 여행에서 채우지 못했던 환상이 고스란히 구현된 곳이었다. 마치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난 것 같은 동지애가 든든하게 차올랐다. 사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던 날,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햇빛이 반짝 났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청명하게 갠 하늘을 보며 함박 웃었다. 파도가 제법 높긴 하지만 독도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다. 아마 이번 여행도 무사히, 섬에 갇히는 일 따위 없이 귀환할 것 같다. 섬에서의 일정은 내가 아닌, 하늘이 결정한다. 그래서 섬 여행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 포항을 출발한 배가 3시간을 달려 도동항에 도착했다. 사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오는 길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KTX와 버스, 여객선을 갈아타며 반나절 내내 멀미에 시달리는가 싶더니 배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온 갑작스런 강풍이 끈적거리는 머리를 봉두난발 헝클어트렸다. 그러나 육지에 발을 내딛어 몇 걸음 나아가자, 더 이상 바닥이 울렁이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온몸에 뭉쳐있던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훅하고 바람이 불어왔고, 순간 여행의 세포가 온전히 돌아왔다. 그것은 비릿함이나 끈적거림이 없는 청정해안 울릉도의 상쾌한 바람이었다. 울릉도의 첫인상은 산과 돌이다. 울릉도를 여행하다보면 울릉도에 많다는 다섯 가지-돌, 바람, 물, 미인, 향나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산중으로 갈수록 풍경은 울창한 숲과 화산암벽으로 압도되고, 인적을 찾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심지어 울릉도에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검은 자갈이나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사沙’자를 쓰는 사동해수욕장마저 물속으로 들어가야만 고운 모래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매끄러운 몽돌을 기념품 대신 챙겨온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울릉도는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암 지역이다. 섬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라고 부를 만한 화산분화구 ‘나리분지’ 등은 지질학적으로도 꼭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그러나 울릉도는 언제 어디서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년 중 쾌청한 날이 약 55일밖에 되지 않고 1년에 서너 차례 울릉도를 덮치고 가는 태풍이 가뜩이나 좁은 문지방을 한껏 높인다. 그러나 울릉도가 문명의 색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이유도 바로 약간 모자란 그 접근성 때문이다. ‘신비의 섬’ 울릉도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선사한다. 또한 도시와 결별하고 과거와 만나는 경험을 안겨준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5층 아파트가 최고층인 이곳에서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대신 곳곳에 소박한 밥집과 다방이 성업 중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울릉도에서 여행자들은 오징어와 호박엿, 그리고 추억을 양 손 가득 들고 돌아온다. 작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가다 울릉도는 44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고작 4개 섬에 불과하다. 마을의 개수는 25개나 되지만 인구는 고작 1만명이라 각 마을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작고 소박한 마을의 사람 사는 풍경을 보게 된다. 울릉도의 최대 항구 도동항이 있는 ‘도동마을’, 어업전진기지가 들어선 저동항이 있는 ‘저동마을’ 등 제법 북적이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평온한 바닷가 ‘태하마을’, 울릉도 최고의 오지 ‘천부마을’ 등도 있다. 이 외에도 겨울이면 3m씩 눈이 쌓이는 ‘나리분지’나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마을 ‘남양’, 수심 1,500m 앞바다에서 해양심층수를 생산하는 ‘현포’, 비좁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갯마을 ‘통구미’ 등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마을들이 한데 모여 오만가지 조화로운 색상으로 울릉도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마을들을 잇는 울릉도 일주도로는 한 바퀴 둘레가 56.5km인데, 그중 4.4km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덕에 울릉도 최대 관광지인 나리분지 바로 옆에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요한 ‘천부마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태하마을의 오징어 말리는 풍경 태하마을은 일명 ‘달팽이탑’이라 불리는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평온한 바닷가가 인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태하마을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해변을 따라 죽 늘어뜨린 오징어였다. 예전에는 ‘황토구미’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울릉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경작여건이 좋아 한때 논농사를 지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유독 세게 불어 오징어 건조에 유리하기 때문에 뭐니뭐니 해도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태하마을을 방문한 시각,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이 석양노을을 머금고 태하마을의 오징어를 한껏 무르익게 만들고 있었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그 속에서 정성스레 오징어를 돌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오징어 한 축의 가격을 물었더니 가격보다 중요한 게 오징어 ‘고르는 법’이라 한다. 건네준 오징어에는 상표와 동네 이름이 찍혀 있다. 울릉도에서 잡은 오징어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오징어는 살아있을 때 등이 검붉은 게 좋은 상태라는 것, 잡은 뒤 하루나 이틀 안에 건조시키지 않으면 맛과 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반드시 ‘당일바리’ 오징어를 사야 한다는 귀띔까지. 가격은 오징어 한 축에 5만원 정도다.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몇 년 전만해도 오징어배 조업일이 일 년에 120~130일 정도 됐었기 때문에 가격이 쌌지만 작년엔 오징어가 안 나서 고작 50일밖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탓이란다. 독도로 가는 배에서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사람들을 제법 봤다. 사실 배멀미에는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인 울릉도 더덕이 더 좋다. 그러나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다리 한 짝, 몸통 한 쪽 찢어가며 먹는 오징어는 울릉도를 추억하게 만드는 가장 인상적인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다. 1 통구미 마을의 망망대해를 지키는 것은 한결같이 우뚝 서 있는 화산암이다 2 오징어는 마르는 동안 울릉도의 바닷바람을 머금는다 3 태하마을 황토굴 입구에서 붉은 황토 암석층을 볼 수 있다 4 울릉도 더덕은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5 청정 지역인 울릉도에서 잡힌 오징어는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지 않다 6 홍합밥은 홍합을 넣어 지은 밥에 각종 울릉도 자생 나물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신비의 섬’의 비밀을 찾아서 사실 울릉도도 사람이 제법 많이 살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대략 3만명으로 최대 인구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만명 정도가 모여 살 뿐이고, 그나마도 항구마을에 밀집되어 있다. 어딜 가든 한 무리의 관광객이 빠져나간 곳에는 도통 인적을 찾기가 힘들다. 그 때문일까, 울릉도 해변은 텅 빈 공간을 거북이바위, 새바위, 코끼리바위, 악어터널 등 바다 위 오롯이 솟아오른 바위들이 채우고 있다. 바다 깊숙한 곳부터 뿌리를 박은 조면암, 안산암, 직지암. 이들은 마치 오랜 세월 울릉도를 지켜 온 수호신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받아들인다. 얼마 전, <론리 플래닛>은 울릉도를 ‘2011년 지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밀의 섬 10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수심을 헤아릴 수 없는 검푸른 바다, 깎아지른 해안절벽, 그 꼭대기에 홀로 자라난 향나무를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은 말이 필요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한 걸음, 원시림을 헤치고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울릉도의 신묘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따라 아로새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리분지를 찾게 되나 보다.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산분화구. 특이한 점이라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분화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화산재로 덮여 있어 보수력이 약하기 때문에 밭농사를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다가 농작물의 피해가 크고 겨울에는 3m 이상의 눈이 내릴 뿐만 아니라, 흘러드는 물이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어 집중적인 호우에는 일시적으로 호수로 변한다.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16가구의 주민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조건 속에서 빙설에 대비한 ‘너와지붕(기와 대신 얇은 나무 조각이나 돌조각을 얹은 지붕)’과 ‘우데기(옥수숫대 등으로 집 바깥을 둘러친 외벽)’라는 합리적인 가옥 구조를 만들어내고, 주로 더덕·취·삼나물 등의 산채나물과 약간의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며 살아 왔다. 근래에는 나리분지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 민박이나 식당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고서는, 이제 더 이상 울릉도 고유의 가옥인 우데기집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울릉도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4.4km의 도로가 이어지면 자동차로만 온전히 울릉도를 일주할 수 있게 된다.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섬에 도착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울릉도는 가본 길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자연을 뒤엎고 세워 올린 건물보다 항구의 노점상이 더 친근한 동네다. 울릉도를 떠나는 날, 멀미약 하나를 단숨에 들이켜고 배를 기다리던 중 울릉도에 이주한 이장희씨와 마주쳤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등을 부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라기엔 무척이나 소박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에 ‘울릉 천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울릉도에 흠뻑 매료된 그는 꾸미지 않은 울릉도 풍경처럼 자연스레 그 속에 녹아있었다. “나 죽으면 울릉도로 보내 주오.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 주오.” 그가 최근 발표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 노래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신선이 사는 섬, 독도 생각하면 먹먹해지는 몇 가지가 있다. 독도를 떠올리면 한번쯤은 그런 먹먹함에 빠지게 된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독도. 대한민국 최동단에 홀로 우뚝 선 이 섬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다. 그래도 우리는 독도를 찾아간다. 볼거리라곤 양 옆으로 솟아난 두 개의 섬,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밖에 없지만 독도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지켜내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돌섬. 울릉도 개척 당시 입도한 주민들이 사방이 온통 돌뿐인 이 섬을 ‘돌섬’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훗날 ‘독섬’을 거쳐 ‘독도’라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독도는 인간이 사는 섬이 아니라 신선이 사는 섬이다. 독도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드러내는 한편, 역설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못한 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신선의 섬에 갈 시간이다.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발한 배가 독도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예정시간은 1시간 30분. 배가 작아 멀미가 수반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객실에 울리자, 사람들은 재빨리 위생봉투를 챙기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사실 독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길어도 30분뿐이다. 게다가 기상의 영향으로 일 년 동안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은 채 60일이 되지 않는다. 독도에 근접해서도 차마 밟아 보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다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행의 반나절을 온전히 독도 방문에 바친다. 독도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그려보고, 독도 주민 김성도, 김신열 부부와 엄태명, 하호규 독도 등대원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척박한 땅 독도에는 ‘우리’라는 동질감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나무 조각 위에 돌조각을 올려 놓은 전통 가옥구조인 너와지붕 2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부드럽고 통통한 울릉도 오징어가 잡히는 시기 3 원없이 보게 되는 바다와 바위는 울릉도를 떠나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4 밤낮으로 독도를 지키는 독도수비대의 또 다른 의무는 끝없는 촬영 요청에 응하는 것일지도 5 독도의 동도. 서도보다는 작지만 비교적 꼭대기가 평탄하여 등대와 경비초소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울릉도와 독도를 한번에! ‘독도 지킴이 여행’ 기차, 버스, 배를 꼬박 두 번 반복해서 타야 하는 울릉도행 여정. 번거로움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면 표 예매는 물론이고 2박 3일 일정까지 알차게 잡아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울릉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한편, 향토음식인 홍합밥, 씨껍데기술, 산채전 등을 맛볼 수 있다. 둘째 날 우리 땅 독도를 방문하고, ‘명예독도주민증’을 받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여행상품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지킴이 수호대 여행’ 출발 방침상 독도 방문은 올 11월 중순까지만 진행되며 내년 2월에 재개된다. 요금 2박3일 29만9,000원(왕복 교통 및 여객선비, 숙식료, 관광비, 여행자 보험 포함) 문의 코레일 관광개발 www.korailtravel.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로움과 퇴임사/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로움과 퇴임사/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은 외롭다.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지만 대통령직이라는 게 원래 외로운 자리다. 특히 임기 말이 다가오면 권력의 구심력은 떨어지고 청와대에 보따리를 싸는 사람도 많아진다. 대통령은 갈채와 환호 속에서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과 냉소에 시달리는 일이 잦아진다. 국정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여느 정치인이나 훈수꾼에 비길 바 아니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적다. 억울하지만 이는 대통령이 묵묵히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대통령마다 현실정치의 인기보다 역사의 심판을 믿고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하여 국회를 찾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성사된 국회 방문이었기에 대통령도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다. 야당이 독소조항으로 꼽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에 대하여 ‘선 비준동의안 처리 후 재협상’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야당에 명분을 주면서 교착상태에 봉착한 FTA 국면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미 숙제를 끝낸 오바마 대통령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만나기 전에 이 대통령도 서둘러 숙제를 끝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 숙제를 끝내지 못한 이 대통령이 출국에 앞서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본인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외로움의 고백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때로는 국제사회의 리더로, 때로는 글로벌 문제의 해결사로 활약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기회도 많다. 그러나 귀국길에만 오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재·보궐 선거를 통해 뼈아픈 민심 이반을 경험했다. 특히 2040 세대로부터 받은 낙제점에 청와대와 여당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쇄신파가 연판장을 돌리며 대통령에게 국정기조 전환과 국정 실패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대권 주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권력지형도 바뀔 조짐이다. 여당 내의 갈등은 이미 파열음 수준을 넘었다. 분당 가능성이 수면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대통령의 외로운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징조다. “저는 제 인생 최대의 보람을 국민 여러분에게 봉사하고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열어가는 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믿고,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후회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중략)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2003년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의 한 대목이다. 한마디로 임기 동안 열심히 봉사한 보람만큼이나 아쉬움과 후회도 많았지만 이제는 소시민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뜻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슬비가 내리는 날 퇴임하면서 봉하마을로 직행했다. 환호하는 봉하 주민 앞에서 퇴임 소감을 한 마디로 ‘야! 기분 좋다’고 투박하게 표현했다. 임기 5년을 뒤돌아보며 가장 보람된 시간이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서 잘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귀향 보고를 하는 이 순간’이라고 고백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느끼는 보람과 아쉬움 그리고 안도감의 복합적인 감정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1년이 가장 외롭고 아쉬운 기간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퇴임 소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아직 잔여임기를 고려하면, 대통령의 퇴임사를 떠올리는 것은 발칙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퇴임사의 내용을 고민하며 국정에 임해야 한다. 국정 경험은 부족했지만 권력은 컸던 집권초기와는 달리 경험은 쌓이는데 오히려 추동력은 약해지는 권력의 역설도 직시해야만 한다. 사람이 작은 외로움을 느끼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큰 외로움이 닥치면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는다. 큰 외로움을 겪는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역사로 남는다. 이 대통령이 퇴임사를 준비하며 큰 외로움을 피하고 이길 지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 형님특공대, 레바논 잊고 카타르 깬다

    형님특공대, 레바논 잊고 카타르 깬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했다. 카타르는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졸전을 펼쳤던 A대표팀 4인방이 올림픽대표팀으로 옷을 갈아입고 ‘중동 사냥’을 이어간다. 조광래호에서 뛰었던 홍정호(제주)·홍철(성남)·윤빛가람(경남)·서정진(전북)은 호흡을 가눌 틈도 없이 홍명보호에 소집됐다. A대표팀이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 카타르 도하로 이동해 먼저 짐을 풀었다. 어깨가 무겁다. A대표팀에 대한 비난 농도가 심상치 않다. 네 명도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홍정호는 기성용(셀틱)의 공백을 메우려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허둥댔다. 레바논전에 선발출전한 서정진도 상대 수비에 막혀 밋밋한 움직임으로 일관했다. 홍철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에서 교체아웃 됐고, 윤빛가람은 레바논전에서 후반 교체투입 됐지만 인상적인 모습은 없었다. 이들이 홍명보호에서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이름값만큼이나 이들은 올림픽팀에서도 핵심이다. 홍정호는 센터백으로, 홍철은 왼쪽 풀백으로 수비라인을 탄탄하게 지켜왔다. 플레이메이커 윤빛가람은 지난 9월 오만과의 최종예선 1차전(2-0 승)에서 1골 1어시스트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과시했다. 기복 있는 플레이를 보인 서정진은 올림픽팀에서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 홍명보 감독은 이케다 세이고 코치를 현지로 미리 보내 상심한 선수들을 다독였다. 남해, 창원을 돌며 2주간 발을 맞춰 온 올림픽팀의 훈련 내용과 경기 장면을 담은 동영상 자료도 살뜰히 챙겨 보냈다. 홍 감독은 “A대표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심리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 팀에서 당연히 경기를 뛸 거라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는데 팀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 놓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24일)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큰 걱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17일 최종 엔트리(20명)를 발표한 올림픽대표팀은 이날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마지막 국내 훈련을 했다. 90분 동안 스트레칭, 패스게임, 미니게임 등으로 몸을 풀며 컨디션을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홍명보호는 24일 오전 1시 카타르 도하의 알사드스타디움에서 카타르와 올림픽 최종예선 2차전을 치른다. 이기면 올림픽 본선행의 유리한 고지에 오른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사설] 박재완 장관 ‘고용 대박’ 인식 현실감 있나

    지난달 취업자 수는 17개월 만에 50만명 이상 늘었다. 실업률은 9년 만에 2%대로 떨어진 2.9%를 기록했다. 수치로만 보면 우리나라 고용과 실업 현황은 그리 걱정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 ‘서프라이즈’니 ‘고용 대박’이니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국민들은 오히려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걱정과 우려도 모자라 화까지 날 지경이다. 한 나라 경제 정책을 이끄는 수장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진 것인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장관이라면 윗사람을 향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국민들을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적어도 틀린 정보를 갖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일부러 질끈 눈감지 않았다면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취업자 수도 늘고 실업률도 줄어들고 있으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니 더욱 좋아지도록 하겠다.”는 수준 정도로 말했어야 했다. 그래도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니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취업난·경제난에 시달리는 ‘2040세대들의 반란’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네티즌들이 “통계는 고용 대박, 현실은 고용 대란”이라는 댓글을 올리는 것만 봐도 국민들의 인식과는 얼마나 간극이 큰지 알 수 있다. 실업률이 2.9%라는 것은 사실상 완전 고용에 가까운 수치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주위에는 청년 실업자들의 아우성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잠재적 실업자를 비경제활동 인구로 제외시켜 통계가 왜곡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점을 박 장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20~30대 일자리는 제자리이거나 줄고, 50~60대는 늘어나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에 이른다는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 취업자 수도 오히려 줄고 있다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어떤 정책이든 제대로 접근하려면 정확한 통계, 나아가 보고 싶지 않은 통계까지 종합해 분석해야 한다. ‘고용 대박’이라는 인식으로는 제대로 된 고용 및 실업대책을 세울 수 없는 법이다.
  • [열린세상] 추억으로 가는 가을 기차 여행/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추억으로 가는 가을 기차 여행/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머지않아 고속열차가 서울과 부산 간을 한 시간대에 주파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나는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30분이 걸렸다. 그 거리를 두 시간으로 단축시킨 세월이 불과 30여년이니 우리의 열차는 그 급속한 변화의 급류를 헤쳐 온 이들의 다양한 기억을 담고 있는 셈이다. 열차에 얽힌 기억들은 세대마다 다르다, 경부 철도의 역사를 보자. 1905년 개통된 경부철도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그 철도를 두고 최남선은 서구 문물의 도입을 절박하게 외치는 ‘경부철도가’를 지었다. 그리고 현진건은 ‘고향’에서 식민지 수탈로 황폐화된 농촌 현실에 눈물지었고, 염상섭은 ‘만세전’에서 억압받는 식민지 백성의 비참한 모습에 절망하였다. 전쟁과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또 다른 기억의 무늬가 열차에 아로새겨진다.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나에게 있어 철도는 고향과 등가물이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이 계신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열차였다. 빨랫감이 가득 든 가방을 짊어지고 서울역으로 간다. 느리게 달리는 기차 안의 뿌연 담배 연기, 여기저기 벌어진 왁자한 술판도 고향에 간다는 생각으로 정겹게만 느껴졌다. 고향에 얽힌 기억을 곱씹고, 타향에서의 설움과 외로움을 달래다 보면 해질 무렵이 되어 부산에 겨우 도착한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가서 어머니를 뵙는 순간 ‘아, 이제야 집에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 어디 그뿐이랴. 천리 길이 멀다하고 자식의 먹을거리와 옷가지를 장만해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서울 하숙집으로 오신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 열차이다. 또한 그 열차에는 인간적인 유대감도 넘쳐 흐른다. 낯선 사람과 동석을 하게 되면 음료수를 사 옆 사람에게 건네면서 “어디까지 가십니까.”라는 인사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함께 가면서 세상사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헤어질 때면 “언제 다시 뵙죠.”라는 인사말을 나눌 정도로 친근해지기 마련이다. 때론 장터에 물건을 팔러 가는 아주머니의 시원한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고속열차가 등장하면서 이런 풍속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오랜 시간 달려가는 동안 느꼈던,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만난다는 흥분과 설렘은 가공할 속도에 짓눌려 사라졌다. 이제 열차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한 수단일 뿐, 어떤 정서적 반응도 유발하지 못한다. 며칠이나 걸려 도착한 부모님의 편지에서 느끼던 따뜻한 사랑을 즉각적이고 찰나적인 한 통의 메시지가 대신하는 격이다. 다섯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이는 데에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 가고 싶다는 기성세대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 바람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속도의 노예가 되어 우리 스스로 고속열차를 삭막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그 공간에서 젊은 세대 역시 속도의 노예가 된다. 그리움도, 설렘도, 기다림도, 여유로움도 휘발되어 버린 공간,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속도가 지배하는 공간, 그것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를 우리가 길러낸 것이다. 간이역도, 완행열차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속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 부질없는 것 속에는 단지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처박아 두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 있다. 먼 거리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가까운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하다 보면 열 시간도 한 시간보다 짧게 느껴지는 법이다. 고속열차에서 이제 그런 정서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시리도록 푸른 가을이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 추억의 기차 여행을 떠나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부모로서 삶의 기억을 딸에게 말해 본다. 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딸은 훗날 나의 손주가 될 아이에게 아빠보다 더 빨리 고향에 가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30분 만에 주파하는 열차를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다짐한다.
  • 女럭비 역사에 ‘1승’ 쓰다

    女럭비 역사에 ‘1승’ 쓰다

    “한국 여자럭비대표팀이 2일(현지시간) 인도 푸네에서 끝난 국제럭비위원회(IRB)-아시아럭비협회(ARFU) 아시아여자 7인제대회에서 사상 첫 승을 거뒀다. 12개국이 3개조로 나뉘어 치러진 대회 조별리그에서 홍콩·카자흐스탄·인도에 3연패를 당한 한국은 순위결정전에서 라오스를 17-12로 꺾고 ‘역사’를 썼다. 이어진 이란과의 9~10위 결정전에서는 선취득점을 하고도 종료 직전 트라이를 내줘 5-7로 져 최종 10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지난해 공개선발전을 통해 꾸려진 대표팀은 공식경기 9연패 뒤 1승으로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썼을 것 같다. 혹은 지면에 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럭비대표팀이 아니었다면. 남들은 한번 이긴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1승’만을 보고 달려온 여자럭비팀에게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A매치는 두근거렸다. 1일 조별리그에서 만난 홍콩, 카자흐스탄에는 예상대로 깨졌다. 하지만 우리는 끈질겼고 악착같았다. 트라이를 6~7개 내줬지만 우리는 한 달 전 중국 지역대표한테도 54-0으로 졌던 팀이었다. 만만하게 봤던 인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마저 진 건 원통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도는 탄탄한 팀이었다. 2일 순위결정전에 나서는 마음은 비장했다. 1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엄청난 부담을 갖고 라오스전에 임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섰던 김아가다가 트라이 2개, 주장 민경진이 트라이를 보태며 17-12로 역사상 첫 승리를 챙겼다. 우리는 두 팔을 뻗고 “이겼다.”를 외쳤지만 막판까지 쫓긴 탓에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그리고 이어진 이란과의 9~10위 결정전. 15인제 럭비 못지않은 육탄전이었다. 팽팽한 경기가 이어진 탓에 전·후반 7분씩이 무한하게 느껴졌다. 전반에 민경진이 트라이를 먼저 찍어 앞섰다. 후반 들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발목에 납덩이를 단 듯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경기종료를 30초 남겨두고 트라이를 찍혔다. 보너스킥까지 들어가 7점을 내줬다. 5-7 패배. 믿고 싶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그라운드를 나오자 거짓말처럼 비가 쏟아졌다. 비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됐다. 촉촉한 눈가를 감출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분한 마음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1승을 거둔 기쁨보다는 2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던 탓이다. 약 5개월간의 불꽃 투혼(!)이 결실을 봤지만 또 한없이 부족하고 찝찝한 마음이 든다. 어쨌든 올해 여자럭비팀의 일정은 끝났다. ‘끝’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참 많이 힘들었고 또 행복했다. 앞으로 무럭무럭 성장할 대표팀의 작은 디딤돌이 됐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당분간은 운동 생각 없이, 몸 걱정 없이 즐기고 마시고 싶다. 브라보, 2011 여자럭비대표팀. 푸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블레이드 러너, 비장애인 대회 첫 도전서 준결행

    블레이드 러너, 비장애인 대회 첫 도전서 준결행

    총성이 울리고 역사가 시작됐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은빛 의족이 출발선 밖으로 튀어나갔다. 탄소섬유의 의족은 탁탁 소리를 내며 한발짝씩 트랙 위를 내디뎠다. 출발은 아슬아슬했다. 단단한 근육의 힘으로 바닥을 밀쳐내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칼날 모양의 가는 의족은 연약해 보였다. 그러나 불안감은 곧 환호로 바뀌었다.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프리카공화국)는 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비장애인들과의 경주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그의 등장은 신체를 무기로 겨루는 스포츠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역사의 시작이 됐다. 28일 오전 11시 15분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 400m 예선 5조에 출전한 피스토리우스는 45초 39를 기록해 조 3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개인 기록 중 두 번째로 좋은 결과였다. 초반 질주는 불안했다. 의족을 착용한 신체 특성상 스타트 속도는 0.212초로 느렸다. 8명 중 7번째였다. 가장 바깥쪽 8번 레인에 선 그는 경기 초반 다른 선수들에게 한참 뒤졌다. 출발 당시 탄성이 있는 의족이 뒤뚱대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보는 이들은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곧 안정감을 되찾은 그는 탄력을 받은 듯 질주를 시작했다. 200m 지점 곡선주로에 접어들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피스토리우스를 포함한 5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트랙 절반을 돌아 직선주로에 들어서면서 그의 의족이 막판 스퍼트를 내기 시작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비바(VIva) 오스카! 비바 오스카!’ 관중들은 그를 연호했다. 결과는 예선 5조 3위. 45초 29로 가장 먼저 들어온 크리스 브라운(바하마)과 45초 30의 기록으로 2위를 기록한 마틴 루니(영국)의 뒤를 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조 4위까지와 뒤이어 기록이 좋은 나머지 4명까지 진출할 수 있는 준결승행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결승선을 들어온 피스토리우스의 얼굴에 안도감과 뿌듯함이 어렸다. 그는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화답했다. 경기 직후 기자들과 만난 그는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피스토리우스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면서 “출발이 늦었고 8번 레인에서 뛰게 돼 힘들었지만 190m쯤에서 안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그는 “내일 준결승에서도 오늘처럼만 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발없는 사나이’ 피스토리우스의 두 번째 도전은 29일 오후 8시에 치러질 남자 400m 준결승전에서 계속된다. 한편 하루 앞선 27일 남자 100m 본선 1회전에 나선 ‘블라인드 러너’ 제이슨 스미스(아일랜드)의 트랙 위에서도 역사의 한 획이 그어졌다. 비장애인의 10%밖에 안되는 시력을 가진 스미스의 경기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장애인 스프린터가 나선 첫 장면으로 기록됐다. 기록은 10초 57. 안타깝게도 준결승 진출은 실패했다. 그는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려고 대구에 왔는데 성적이 미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당당히 새로운 목표를 밝혔다. 곡선주로가 있는 200m 출전과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겨루겠다는 것. 새로운 목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추가 경기부양 신호”… 증시 바닥론엔 신중

    201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성명에 대해 10일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앞으로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국내 증시의 변동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바닥’에 대한 예측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주이환 유진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FOMC의 성명을 ‘용의주도’라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시중에 달러를 푸는 3차 양적완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안 했지만 ‘2013년’을 못 박음으로써 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그는 “연준이 기존의 방식과 똑같은 3차 양적완화만 언급했다면 오히려 실망감이 확산되었을 것”이라면서 “최근의 선진국 동반 재정위기는 연준이 단독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 공조까지 감안한 방안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도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FOMC가 화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가운데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물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의 정책적 변수가 중요해졌다.”면서 “이들이 국제 공조에 대한 시그널을 줘야 시장 심리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곽현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01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난달 중순 버냉키 연준 의장이 3차 양적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다음 날 금융시장이 너무 급격히 반응하니까 번복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성명서에 기한을 명시함으로써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고 분석했다. 코스피의 ‘바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주를 이뤘다. 심 팀장은 “11일 옵션만기일이라는 변수가 끝나면 단기 변곡점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금융회사들이 무너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경제 시스템 문제가 원인이라 시장을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DJ정부 빼곤 ‘작은 정부’는 없었다

    DJ정부 빼곤 ‘작은 정부’는 없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몸을 불렸고, 김대중 정부에서 살을 뺐다가 노무현 정부부터 다시 슬슬 몸집을 키웠다.’ 대한민국 공무원 100만명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 6월 말 현재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두 98만 2204명이다. 행정부 공무원, 지방공무원, 교육공무원, 기타 헌법기관 공무원 등을 모두 아우른 규모다. ●노태우 5년간 14만여명 늘려 최고 1988년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해 이명박 정부까지 역대 다섯 정부의 공무원 정원 증감 추이를 보면 시대에 따른 공무원 사회의 부침과 정부의 운영 기조 등을 엿볼 수 있다. 3저 경제 호황과 88올림픽 등을 기반으로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자랑하던 1980~1990년대 초반까지는 공무원 정원도 따라서 함께 늘었다.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 73만 7225명이던 공무원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다가 1992년 88만 6179명까지 늘었다. 5년 사이에 20%가 증가한 셈이다. 이러한 기조는 ‘작은 정부’를 공개적으로 표방한 김영삼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외형 성장에 걸맞게 5% 늘어난 93만 5759명이 됐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으며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국민의 정부’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93만 5759명이던 공무원 정원을 1998년 88만 8334명까지 줄였다. 그리고 매년 공무원을 감축해 2001년 86만 8120명까지 줄였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2만 1873명을 늘려 88만 9993명이 됐다. IMF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정보기술(IT)산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이었다. ●현 정부도 몸집 키워 총 98만2204명 노무현 정부는 ‘작은 정부’보다는 ‘일하는 정부’를 공개적으로 지향했다. 철도청을 공사화하며 자연스레 5628명을 감축한 2005년을 제외하면 매년 공무원 정원이 늘어났다. 이에 공무원 수는 2007년 말 97만 5012명이 됐다. 반면 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97만 5012명에서 96만 8684명(2008년)→97만 690명(2009년)→97만 9583명(2010년)→98만 2204명(20011년 6월 현재)으로 완만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美 디폴트 면했다] 급한 불 껐지만 불씨 여전

    1일 미국의 부채상한 증액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일제히 올랐다. 미국이 국가 부도 사태를 피하게 됨에 따라 당분간 세계 금융시장은 호재를 맞을 전망이다. 급한 불은 꺼졌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 정부가 국가 빚을 줄이기 위해 긴축 정책에 들어가면 미국의 경제 회복은 더 지연되고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국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채무 불이행(디폴트)으로 가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는 안도감에 국내 증시는 급등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39.10포인트(1.83%) 오른 2172.31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 지수는 8.34포인트(1.56%) 오른 544.39를 나타냈다.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도쿄 닛케이지수는 1.34% 올랐고 홍콩 항셍지수도 0.99% 상승한 가운데 마감됐다. 호주(1.61%), 필리핀(1.04%), 싱가포르(0.82%) 등도 급등세를 나타냈다. ●국내은행 달러자금 확보 숨통 글로벌 달러 가치도 상승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뉴욕시장 대비 0.95엔 오른 달러당 77.72엔을 기록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수출 호조와 물가 고공행진 영향으로 한때 1048.9원까지 하락했으나 미국 부채 협상 타결 등으로 하락폭이 제한돼 전날보다 4원 내린 1050.50원으로 장을 마쳤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 경제가 국가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 글로벌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도 “부채 협상 타결은 국내외 금융시장에 단기적으로 호재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국내 은행들의 달러 자금 확보에도 숨통이 틔었다. 은행들은 미국의 부채 협상이 결렬돼 디폴트 사태를 맞는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해 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미국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부도날 확률이 높을수록 오름)이 급등해 은행들의 외화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지만, 부채 협상 타결로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전했다. ●美 긴축 돌입땐 더블딥 가능성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안심할 상황이 아니어서 장기적인 불확실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김종만 국제금융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에 그쳤고, 당초 1.9%로 발표했던 1분기 GDP도 0.4%로 하향 조정하는 등 경제 회복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면서 “경제지표가 개선되지 않으면 부채 협상 타결 효과도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물 경제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실물 경제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쳤던 미국이 디폴트 직전까지 간 것은 정책적 대응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라는 해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국의 소비 수요가 점진적으로 둔화하면 1차적으로 중국의 수출이 타격을 받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도 연쇄적인 영향권에 놓일 것”이라면서 “이는 실업률 증가와 소득 감소,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대기업 LTE핵심기술 中企에 개방

    대기업 LTE핵심기술 中企에 개방

    SK텔레콤이 대기업이 보유한 4세대(4G) 이동통신망 롱텀에볼루션(LTE) 기지국 핵심 기술을 중소 장비업체에 개방하는 동반성장 방안을 마련했다. SKT는 26일 삼성전자, LG에릭슨,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 등 대기업 3곳과 중소 통신장비 제조사 4곳이 상호 기술협력을 통해 LTE 안테나기지국(RU) 장비의 50%를 공급토록 하는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소 통신장비 제조사들의 경영난을 덜기 위한 상생 지원책이다.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고 LTE 데이터망의 도입으로 소형 기지국 중심의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가 진행되면서 중소 제조사가 생산하는 중계기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장비 시장은 기술 집약도가 높은 기지국은 대기업 영역으로, 중계기는 중소기업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 SKT의 협약에 따라 대기업은 LTE 기지국 핵심 기술을 중소 장비업체에 전수한다. 중소업체는 LTE 기지국의 일부인 안테나 등 장비 물량의 50%를 생산한다. 이를 통해 중소업체들은 3년 동안 700억원 이상의 LTE 통신장비를 SKT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중소업체들은 대기업 제조사의 LTE 기지국 개발 기술을 습득해 국내 LTE 장비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홍배 씨에스 사장은 “LTE 시대가 열리면서 중계기 수요가 실종돼 중소 제조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경영난이 예상되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기존 대기업 중심의 기지국 장비 시장에 진출하게 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게 돼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권주자들과의 인터뷰/이도운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대권주자들과의 인터뷰/이도운 정치부장

    지난해 4월 정치부장을 맡은 이후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과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인터뷰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 정치인은 직접 만나 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에 대한 답변을 이번 칼럼에 담아보려 한다. 가장 최근에 인터뷰한 인물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접 뛰어들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할 것 같다.’고 답변하고 싶다. 지난달 15일 부산에서 1시간 5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문 이사장에게 확인 질문을 했다. “오늘 출마 여부와 관련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 가운데 ‘아직은 결정할 시기가 아니고, 선거 때가 다가오면 결정하겠다’고 답변한 부분을 기사로 쓰겠다. 그러면 편집에서는 ‘출마 가능성 배제 안해’라고 제목을 뽑을 것이다. 그래도 되겠느냐?” 문 이사장은 빙긋이 웃으며 “그렇게 하십쇼.”라고 말했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인터뷰는 ‘의외로’ 지난 1월 14일 가졌던 김두관 경남지사와의 대담이었다. 사흘 뒤 지면에 실린 김 지사 인터뷰 기사는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에서 그날 ‘가장 많이 본 정치기사’가 됐다. 대중이, 혹은 네티즌들이 김 지사에게 그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것은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날짜가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잃기 바로 전날인 지난 1월 26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속에 이 지사의 착잡함, 비장함, 허탈함, 마지막 희망, 이런 감정들이 묻어났다. 그런 감정 속에서도 이 지사는 2012년을 넘어 2017년까지 바라보고 답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인터뷰는 ‘터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손 대표는 질문·답변이든 사진 촬영이든 ‘인위적인’ 연출을 원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또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듯한 질문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격을 했다. “당의 실세는 손 대표가 아니라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말들도 나온다.”고 당내 사정을 꼬집어 보자 “무슨 여의도 참새들이나 지저귀는 듯한 질문을 던지느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여당 정치인들과의 인터뷰는 재미가 덜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야당 정치인들보다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반향이 가장 컸던 것은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인터뷰였다. 지난해 10월 23일, 정권 실세로 돌아온 이 장관은 당시 검찰의 기업 수사가 “구여권에 대한 수사”라고 규정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많은 언론이 사설과 논평으로 다뤘을 정도였다. 이 장관에게 “매일 지하철로 출근하고, 5000원짜리 점심을 먹는다는데, 그러러면 무엇하러 실세를 하느냐.”고 던져봤다. 이 장관은 “바로 그런 것이 구시대적인 사고”라고 반격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국회의원을 세 차례 하고 도지사를 연임했지만 말과 행동은 여전히 서민 같았다. 김 지사에게 “주변에 아직도 민중당 출신이 많다. 이들도 김 지사처럼 모두 전향했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김 지사가 아니라 배석했던 민중당 출신 최우영 대변인이 자청했다. “의(義)를 버리고 이(利)를 택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김 지사와 함께한 지가 10여년이다. 우리도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너 바뀌었느냐’고 계속 물으면 좀 그렇다.” 독자들이 가장 관심이 많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아직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다. 박 전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시작하지 않았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 정치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감정은 안도감과 아쉬움이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국회의장, 주요 시·도지사 등을 대부분 인터뷰했지만 그 가운데 ‘엉터리’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없었다. 거기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열정을 느끼게 해준 인물도 거의 없었다. 나의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서 아쉬움을 느낀다. dawn@seoul.co.kr
  •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로코코」「갈릴레오」등「스탠드 바」시대가 가고「발렌타인」「가스라이트」등 「살롱」시대가 다시 한발 물러서듯 마담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칵테일 하우스」또는「스카치 코너」가 판을 치는 서울거리, 그만큼 새 얼굴들이 서울 밤을 빛내고 있다. 새술 새부대에 새마담의 얼굴을 찾아가 보자.  한국은행 뒤 조폐공사 골목을 따라 조선호텔 앞으로 빠지느라면 중간 지점쯤에「집시」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20단이 채 못되는 지하에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온통 백색의 벽과 천장이 우선 산뜻하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 아직 때가 배지 않아 한결 더 정갈하고 호화롭다.  작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니까 이제 겨우 8개월째.「집시」의 주인은 김영희(金英姬·가명·28).  눈매가 아름답고,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좀체로 사라질 줄 모른다. 누가 보아도 90점 이상을 거뜬히 줄 수 있는 수준급 미인임에 틀림없다.  『경험도 없이 시작했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커다란 에머럴드 반지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흰 이(齒)를 살짝 가린다.  고향은 충남(忠南) 부여(扶餘). 그러나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에 고향의 추억은 남은 것보다 잊은 것이 더 많다고.  『여자란 으례(으레) 그렇지 않아요, 좀 이해해 주세요』  아름답든 아름답지 못하든 여자의 과거는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김(金) 마담은 그 상식을 어기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스메타나」의「몰다우」강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金)마담은 쟁쟁한 사업가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대학을 음악과 3학년까지 다녔던 자기의 지난 날을 차근차근히 얘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에 나가 한때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모 라디오와 TV 방송국에서 잠시나마 연예활동을 했지만 그것은 수입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자기의 취미 때문이었다는 것.  김(金) 마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망설인다. 무엇 때문일까. 말 못할 과거의 어떤 대목이 부딪친 때문인가.  그 예측은 맞았다.  『대학교 3학년 될 때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고 들어앉았어요···』  다시 말이 중단됐다. 음악도 동시에 멈추어졌다. 마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앳된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한 마담 초년병-.  『이혼을 했어요. 5년만이었어요』  역시 그랬었다.  미모-결혼-파탄-술집 마담. 그런 공식이 김(金) 마담에게도 적용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영업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는 오히려 담담하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에 아직 결혼을 안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이 기회에 툭 털어놓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한강에 있는「리버뷰」맨션에서 5살짜리 아들과 3살짜리 딸 남매를 데리고 세식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들의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家長)의 어깨는 역시 무겁다.  이혼한 뒤 1년 동안 마음의 갈피를 못잡던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유람과 낭만의 상징인「짚시」라는 간판을 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정착자의 안도감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실내장치는 모두 김(金)마담이 직접 했다. 4인용 테이블 6개, 6·7명용 별실이 3개, 카운터에는 둥근 의자가 10개, 벽에는「실비아」인가 하는 프랑스 샹송 가수의 사진과 이른바 예술사진이라는 어느 누드 모델의 멋진 폼이 도사리고 있다.  『손님들은 대개 먼 곳에서 오는 분들이 많아요』  먼 곳이란 서울 중구 소공동(小公洞) 이외의 지역을 말한다.  무역회사 증권회사 은행 등 각종 기업체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선 소공동(小公洞), 그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카치 코너「집시」에는 웬일인지 소공동(小公洞) 손님보다는 다른 곳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  아침 9시에 문을 열면 우선 찾아드는 것은 코피 손님들, 이 때는 소공동(小公洞)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운다.  11시부터 3시까지는 경양식 시간.  젊은 아베크족들이 시원한 에어컨디션 바람과 라틴 뮤직을 찾아 몰려든다.   저녁 6시부터「집시」는 본격적인 자기 기능을 나타내는 게 된다.  김(金)마담의 지휘로 움직이는 종업원은 남자 6명, 여자 5명, 여자는 모두가 웨이트리스, 일반 살롱의 호스테스와는 그 기능이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서비스만은 아주 친절해요』  역시 장사 때문인가. 김(金) 마담은 자기 집 웨이트리스들의 미모와 재치와 친절을 무척 내세우고 있다.  술값은 보통 3백원에서 5백원정도(스카치 1잔).물론 나폴레옹 꼬냑 같은 것은 1잔에 1천3백원까지 받기도 한다.  『대개는 스카치 3,4잔 마시고 가요』  1인당 1천5백원에서 2천원 정도 마시고 자리를 뜨는 손님이 대부분. 그러나 개중에는 처음부터 병으로 시켜 놓고 3,4만원의 매상을 올려 주는 손님도 있다고.  「집시」에서의 김(金) 마담의 역할은 다양하다. 주방 감독에서 술값 계산, 주문과 안내, 그리고 서비스, 그 가운데 주 업무는 역시 서비스다.  주인 마담이자 유일한 호스테스이기도 한 그는 싫고 좋은 감정을 덮어둔채 어느 손님 테이블에든 한번씩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  여러 층의 손님들에게 한결 같이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집시」의 얼굴 김(金) 마담은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소공동(小公洞) 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宰>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지금&여기] 다름의 미학/전경하 경제부 기자

    [지금&여기] 다름의 미학/전경하 경제부 기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아들은 이란성이다. 한배에 있었던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성격, 좋아하는 음식, 생각과 행동 등이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 아이는 과일 중 수박을 가장 좋아하지만 다른 아이는 거의 먹지 않고, 잘하는 과목도 다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상대방의 행동과 선호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은 별로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다. 어른인 나도 남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린이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셈이다. 우리는 집단 문화에 갇혀 산다. 상대방이 일찍 출근한 건 잘 모르겠는데 나보다 일찍 퇴근하면 왠지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다. 일찍 출근한 사람도 당당하게 일찍 가겠다고 말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니 내수 활성화 방안으로 나온 공공 분야의 ‘8시 출근 5시 퇴근’을 보고 당사자들이 “근무시간만 길어진다.”고 불평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돈 많은 사람은 그런 정책이 없어도 돈을 쓸 수 있다. 부자들처럼 돈을 쓰고는 싶은데 돈은 없고,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 우리의 ‘하향 평준화’ 심리가 돈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돈을 쓰도록 쫓아낸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 안 나오면 일단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선이 고등학생들을 대학으로 내몬다. 대학을 나온들 직장이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대졸이라는 거대 범주에 들어가니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그 안도감이 4년의 시간과 한 해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과 맞먹을 정도일까. 지금은 그렇다. 각자 능력이 다르고 그래서 거쳐야 할 경로가 다르고, 다양한 교육과정과 직업이 있고 그래서 남의 시선을 의식한 선택이 아니라 능력과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사회가 되면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가 조금은 덜할 것 같다. 우리,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고 강조하자. 그러면 조금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것 같다. lark3@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그 죽었으니 이젠 끝내야”

    “오사마 빈라덴의 가족은 보복 테러를 원하지 않는다.” AP와 AFP 등 주요 외신들은 2일(현지시간) 미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빈라덴의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빈라덴의 가족이 보복 테러의 촉발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빈라덴의 어릴 적 친구인 칼레드 바타르피는 전화 인터뷰에서 빈라덴의 직계가족과 얘기를 나눴다고 전제한 뒤 “가족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빈라덴의 죽음이 이제 닫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이며, 폭력적인 보복을 촉발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얘기다. 빈라덴의 형수였던 카르멘은 “빈라덴이 죽음보다는 미국 법정에서 정의의 심판을 받는 쪽을 선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빈라덴의 죽음이) 슬프지는 않다.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 마침내 끝났다.”며 안도감을 표시했다. 그녀는 “빈라덴은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물리적·금전적 보호를 받아 왔다.”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는 빈라덴의 가족들은 넋이 나갔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지구촌 반응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소식에 서방과 중동 진영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스라엘은 서방진영 가운데 가장 먼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명의로 성명을 내고 “빈라덴의 사망에 대한 미국 국민의 기쁨에 동참한다.”면서 “정의와 자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통의 가치를 위해 싸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함께 축하한다.”고 환영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빈라덴의 죽음은 전 세계에 크나큰 안도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기자들에게 “빈라덴의 죽음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길라드 총리는 “알카에다가 오늘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치담바람 인도 내무부 장관은 빈라덴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파키스탄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무슬림 조직인 나흐타둘 우라마의 아길 시라지 대표는 “빈라덴의 죽음이 이슬람 전체를 폭력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순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방세계와 달리 중동지역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대다수 아랍인은 빈라덴의 사망을 ‘순교’로 받아들였다. 각종 아랍 언론과 관련 사이트에는 빈라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추모글과 사진이 속속 올랐다.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 알자지라의 아랍어 사이트 메인화면은 빈라덴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로 도배됐다. 첫 보도 이후 몇 시간도 안 돼 이 기사를 60여명이 트위트해 갔고 230여명이 페이스북으로 퍼갔다. 또 500여명이 댓글을 달았다. 아무리 큰 이슈라도 평소 댓글과 트위트 규모가 10건 안팎에 머물던 것과 비교하면 빈라덴의 사망이 아랍 세계에 가져온 충격과 관심을 가늠케 한다. 댓글을 올린 20명 가운데 1명꼴로 빈라덴의 사망을 “잘된 일”로 받아들였다. ‘무함마드’라는 ID를 가진 네티즌은 “빈라덴 때문에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보답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ID ‘아미리’는 “지구상의 악인 가운데 한 명이 죽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대다수 아랍인 네티즌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바디’라는 이름의 요르단 네티즌은 “우리 형제가 무자헤딘으로 증명했다. 하나님께서 순교자와 함께 그것을 수용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단의 ‘빈라덴’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빈라덴은 살아 있다.”라는 댓글을 반복해서 남기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아이만’이라는 아랍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신이여, 이슬람교의 승리를 위해 떠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댓글을 남겼다. 박찬구·김진아기자 ckpark@seoul.co.kr
  • ‘세기의 결혼식’ 중 공중제비하는 성당 직원 화제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식과 함께 한명의 인터넷 스타가 탄생했다. 29일 성대한 결혼식을 생중계로 방송하고 있는 방송카메라에 특이한 장면이 포착됐다. 결혼식이 거행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레드카펫을 걷던 한 신부차림의 남성이 갑자기 옆으로 2번 공중제비를 하며 환하게 웃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포착된 것. 각 방송국은 이 예상에 없던 장면을 반복해서 방송하고 진행자들은 웃으며 전달했다. 이 장면은 결혼식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전 세계인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에 의하면 문제의 인물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는 성당 직원 벤 세워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변인은 “아무런 사고 없이 결혼식을 마무리 한 후의 안도감이 이런 돌출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당 직원은 연장자들로 부터 과하지 않은 꾸중과 언론 노출을 삼가할 것을 제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 중에는 “품위를 잃은 부적절한 행동”이란 비난도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며 처벌하면 안 된다.”라는 논평이 대세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한 직원은 “소식을 들은 사원 직원들은 다들 재미있어 했다.” 며 “결혼식 후 사원을 방문한 관광객들 중에 직원에게 공중제비를 부탁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與 수도권 의원들 ‘패닉’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나라당이 텃밭이었던 경기 성남시 분당을 지역에서 패배하자 수도권 의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구청장과 경기도의 시장, 군수 자리를 대거 빼앗긴 데 이어 분당에서의 고배는 내년 총선을 앞둔 수도권 의원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나마 서울 중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약간의 안도감을 주는 정도다. 수도권 의원들은 자구책으로 당장 ‘지도부 교체론’을 들고나올 태세다. 새달 2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 일정도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상찬(서울 강서구갑) 의원은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강한 개혁을 요구할 것”이라면서 “이는 곧 국민들의 요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구 의원은 그러면서 “지도부는 책임을 져야 하고 이제 겸허하게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다시 거듭나야 한다. 천막당사 시절의 마음자세로 돌아가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권영진(서울 노원구을) 의원은 “이게 바로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냉담한 민심의 주소를 뼈저리게 느끼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꿔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당 지도부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특히 당 지도부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친이 주류들이 당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한나라당은 망한다.”면서 “지도부가 계파를 초월해야 하고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세대교체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두언(서울 서대문구갑) 최고위원은 “분당이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수도권 어느 지역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면서 “곧바로 지도부 교체론이든 무엇이든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것이다. 우선 원내대표 선거부터 미루고 향후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명진(경기 부천시 소사구) 의원도 “이런 상황에서 원내대표 선거를 치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거들었다. 당내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 21’ 의원들은 28일 오전에 모임을 갖기로 했다. 간사인 김세연 의원은 “지도부 교체에 대한 요구는 물밑에서 계속 있었던 만큼 원내대표 선거일정까지 연관 지어서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패배 원인을 한두 가지로 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실망을 많이 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친이재오계인 권택기(서울 광진구갑) 의원은 “단지 사람 한두명 바꾸고 책임을 묻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소장파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국적만 없을 뿐 한국인들과 차이 없다”

    “국적만 없을 뿐 한국인들과 차이 없다”

    “저는 다른 한국인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국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김대원(44) 해외입양연대 대표는 다섯살 때 스위스에 입양됐다. 그후 대한민국 국적을 잃고 고국을 떠난 지 29년, 그에게 다시 대한민국 국적이 주어졌다. 복수국적을 허용한 개정 국적법 덕택이었다. 19일 법무부 주최로 열린 ‘해외 입양자 국적 회복 축하행사’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받은 그는 “내가 포기한 것도 아니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진 국적을 이제야 찾았다.”며 안도감이 섞인 소감을 전했다. 어린 나이에 스위스로 간 김 대표는 그곳에서 인종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의 이중고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진학도 양부모의 반대로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취리히 대학에 입학, 5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김 대표는 2002년 한국에 돌아왔고 친어머니까지 만나게 됐다. 그렇지만 거의 40년 만에 돌아온 조국에서의 생활은 불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웹사이트 하나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회계와 물류 관련 일을 한 김 대표는 귀국 후 10년 가까이 해외입양연대(사단법인) 일을 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해외 입양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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