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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는 주민 시각으로 행정 펴야”/박신흥(공직자의 소리)

    ◎지방공직자들 사고 대전환 통해 자치정착을 일본의 오이타현은 온천으로 유명하다.하늘로 파이프를 박아 놓지 않으면 고열의 온천수로 시설이 손상되고 사람들도 화상을 입을 정도다.이 온천수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벳부발전소를 지난해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브리핑을 담당한 소장은 70세가 넘은 나이였다.그는 브리핑 전에 우리에게 『영어로 할까요』,『일어로 할까요』라고 물은 뒤 영어로 요청했더니 지휘봉으로 안내판을 짚어가며 5분여동안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 발음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뜻은 충분히 전달될 만한 수준이었다.나이로 보아 영어를 언제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노인에게 「언제 영어교육을 받았냐」고 질문했다. 소장 답변은 『자기는 소학교만 나왔는데 그 때는 영어 과목도 없었고 배울 기회도 없었다』며 3년전부터 치매방지를 위해 틈틈이 익힌 솜씨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무려 10년을 배워도 간단한 회화가 어려운데…라는 감탄과 함께 그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보냈다. 지방자치출범 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새삼 그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자치단체의 기능이 국가 통치의 구현수단으로,또 지방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까지 져야하는 정책 결정의 역할을 담당해야할 시대적 흐름의 변화속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능의 성공적인 수행은 자치발전과 정착을 위한 제도 못지 않게 자치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에 달려있다. 자치단체의 공직자들은 주민의 입장과 시각으로 사고를 변환시키고 끊임 없는 연구와 아이디어의 창출로 새로운 환경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아직 자치단체의 많은 인적 자원이 민간이나 중앙에 비해 고령화되어 있고 정책 결정과 자치에 대한 훈련이 덜 되어있는 게 사실이다. 우수한 신규인력의 확보,기존인력의 교육훈련을 통한 자질향상,자치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지방공직자의 자기변신의 노력이다. 지방 행정가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 못지않게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볼줄 아는 평범속의 비범의 노력이 우리 스스로에게있어야 할 것이다.
  • 올드 산후안(푸에르토리코:중)

    ◎15세기초 조성된 도시… 과거와 현재 공존/주요거리엔 5백년전에 깐 구운 벽돌 그대로/골목엔 스페인풍 카페 즐비… 「코키」인형이 명물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초현대식 호텔이 즐비한 콘다도에서 다리를 건너 자동차로 10분쯤 가면 푸에르토리코의 역사가 숨쉬는 올드 산후안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동쪽의 산 크리스토발성과 서쪽의 엘 모로성으로 둘러싸인 5평방마일 정도의 올드 산후안은 15세기초부터 조성돼 5백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이곳 입구에 있는 「산후안 역사 현장」이라는 안내판에서 보듯 1523년에 지어져 초대 스페인총독이 살다 지금은 타이노 인디언 박물관이 된 카사블랑카를 비롯해 산후안 성당,59년 위싱턴의 미국 국회의사당을 본떠 지은 국회의사당,3백년이 넘은 올림픽위원회 등 유서 깊은 건물들이 콜럼부스 광장 서쪽으로 늘어 서 있다.또 상가로 변하기는 했지만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지은 8백여채의 건물이 아직도 위용을 뽐낸다. 명소는 엘 모로성과 산 크리스토발성.1525년부터 1787년에 걸쳐 축성된 이곳에는 1898년 내슈빌호를 앞세운 미국함대가 산 크리스토발항을 포격했을 때 응사했던 사정거리 약 8㎞의 6인치 대포와 1797년 영국함대의 침공을 격퇴할 때의 병영 등이 보존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포르탈레자,레신토 수르 등 올드 산후안의 주요 거리에는 5백년 전에 깔아 놓은 검은색 벽돌이 그대로 남아있고 긴 골목 양쪽으로는 스페인풍의 카페와 상점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가공솜씨가 뛰어난 금세공품과 꼬끼(푸에르토리코에만 사는 개구리로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며 섬을 떠나면 죽는다)인형은 인기 쇼핑품목. 올드 산후안까지는 호텔에서 수시로 셔틀버스를 운행하며 택시를 이용하면 요금은 8달러 정도.〈산후안(푸에르토리코)=오병남 특파원〉
  • 전국 약수터 일제점검/장티푸스균 발견땐 즉각폐쇄/환경부

    환경부는 27일 부산에서 약수물을 마신 시민이 집단장티푸스증세를 보이는 것과 관련,2·4분기에 실시토록 돼 있는 약수터 수질검사를 다음달중으로 앞당겨 실시하라고 각 시·도에 긴급지시했다. 특히 수질검사결과 장티푸스균과 여시니아균 등이 발견되면 해당약수터를 곧 바로 폐쇄하도록 했다. 수질검사결과를 안내판에 게시해 시민이 안심하고 약수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한편 현재 진행중인 빗물방지용 지붕시설설치 등 시설개보수공사도 빨리 마치도록 했다.〈노주석 기자〉
  • 장애대학생들 「권익찾기」나섰다/연대15명 동아리 「게르니카」결성

    ◎“정상인과 똑같이 공부할 환경 조성”/점자보도·휠체어 통행로 등 설치 건의 남들의 배려만 바라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힘들어도 직접 나서야 한다.권리는 스스로 찾는 자의 몫이다. 장애를 극복하고 연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정상인과 똑같이 수업받을 권리를 찾기 위해 뭉쳤다.대학가 최초의 장애학생 권익보호 동아리 「게르니카」.장애인 문제를 연구하고 봉사활동을 펴는 기존의 동아리와는 다르다. 지난 해 입학한 권순원군(21·국문 2년)과 김형수군(〃) 등 장애인 특례입학 「1기생」들이 주축이 돼 지난 2월부터 모임 결성에 나섰다. 『후배 장애학생들의 입학을 코 앞에 두자 지난 해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15명이 손을 잡았다.척추마비인 김재연군(컴퓨터공학 2년),복합장애를 앓고 있는 조용섭군(사회 2년),소아마비인 백수진양(아동 2년),뇌성마비인 심오수군(인문학부 1년) 등이 가입했다. 장애인 특례입학 제도는 이들에게 희망인 반면에 또다른 좌절의 문이었다.책과 씨름하기 전에 건너야 할 난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각장애 학생은 등·하교길에서 생명의 위협과 싸워야 한다.정문을 들어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차도와 보도가 구분돼 있지 않은데도 점자 보도블록은 없다. 휠체어를 타는 학생들은 도서관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출입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검색대가 너무 좁아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다.경사로(휠체어 통행로)도 모자라고 안내판 조차 없다. 뜻 있는 사람들이 문제점을 여러차례 지적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그래서 불편한 몸을 일으켜 뜻을 모으기로 했다. 모임의 틀이 마련되자 김형수군이 중심이 돼 개선할 점들을 정리하고 있다.계단 손잡이에 점자 안내문을 새겨줄 것,대리인을 통한 도서대출을 허용할 것,한번에 대출할 수 있는 책의 수와 기간을 늘려줄 것,학내 전산망에 장애학생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전용 서버를 구축할 것 등이다.곧 학교에 건의할 계획이다. 자유의 이념을 형상화한 피카소의 그림에서 이름을 따온 「게르니카」회원들은 학습의 자유,이동의 자유,이용의 자유를 표방한다.무엇보다 장애인으로 길들여진 「나」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박용현·조현석 기자〉
  • 약수터 여시니아균 “황색경보”/환경부,수질검사 전면실시

    환경부는 25일 약수터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각 시·도에 지시했다.일부지역에서 약수물을 마시고 여시니아증 발병사례가 생긴 데 따른 것이다. 환경부는 2·4분기에 하는 약수터의 수질검사를 즉각 실시해 그 결과를 안내판에 붙이라고 덧붙였다. 빗물방지용 지붕 등 시설 개보수공사도 빨리 마치고 수질검사후 여시니아균이 나오면 약수터를 폐쇄하도록 했다. 대도시주변의 등산로와 사찰 등의 약수터의 청결유지를 위해 각 시·도가 매달 5일을 약수터 대청소의 날로 정하는 한편 노인회원과 부녀회원 등을 명예환경감시원으로 위촉해 자율관리토록 했다. 여시니아증은 주로 봄·가을에 많이 발생하는 질병으로 들쥐·족제비·가축 등의 배설물로 옮겨진다.주로 13세이하 어린이에게 많이 생긴다.3∼10일간 잠복기를 거쳐 고열·복통·설사증세가 나타난다.〈노주석 기자〉
  • 지하철 안내판 「한자」 추가/연말까지 전면교체

    서울 지하철공사는 10일 중국·일본 등 한자 문화권의 외국인 승객들을 위해 한글과 영문으로 돼 있는 지하철 역사의 방향 유도판에 한자를 추가,3가지 문자로 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시는 이를 올해말까지 전면 교체한다. 「타는 곳」은 「승거」,「갈아타는 곳」은 「환승」,「나가는 곳」은 「출구」,「표 사는 곳」은 「매표소」로 표기된다.
  • 한국 과학상 수상자 발표/수학분야­최재경 물리분야­임지순

    ◎화학분야­김명수 생명과학­김유삼 과학기술처는 4일 제5회 한국과학상 수상자 4명의 명단을 발표,수학분야에 포항공대 수학과 최재경(42)교수,물리분야에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44)교수,화학분야에 서울대 화학과 김명수(47)교수,생명과학분야에 연세대 생화학과 김유삼(52)교수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수학분야 최재경 교수는 미분기하학 분야 곡면 등주 부등식을 증명한 세계적인 연구성과로,물리분야 임지순교수는 반도체 초격자의 전자구조를 규명한 고체물리 연구로 상을 받게 됐으며 화학분야 김명수교수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반응방향과 변화거동 측정에 대한 독창적 이론과 특수실험법을 개발한 공로로,생명과학 분야 김유삼교수는 질소고정과 관련된 새로운 효소를 발견해 농업기술 개발에 전기를 마련한 성과로 수상하게 됐다. 한국과학상은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에게 격년제로 시상되는 「한국의 노벨상」으로 수상자들에게는 대통령상장과 부상 5천만원이 각각 주어진다.시상식은 내년 1월중 열릴 예정이다. ◇한국 과학상 수상자 공적 ◎최재경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세계 수학계의 난제 「등주 부등식」 증명 『새로운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논문이 세계적인 저명학술지에 게재될때 연구자로서 조그만 기쁨을 느낍니다.연구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게 해준 학교측에 감사합니다』 수학분야 수상자 최재경교수(42·포항공대)는 77년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후 일관되게 등주 부등식을 연구해온 수학자. 등주부등식의 역사는 지금부터 2천8백만년전 고대 그리스시대로 올라간다.당시 카르타고로 망명하게 된 디도여왕에게 원주민들은 하나의 끈으로 둘러쌀수 있는 최대넓이의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때 최대넓이는 정사각형이 아니라 원이라는 경험적 사실이 알려졌다. 최교수의 이번 수상논문 「비유클리드 공간속의 극소곡면의 등주부등식」은 모든 방향으로 굽어져 있는 비 유클리드공간 속에 있을때 디도여왕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쌍곡적 비 유클리드 공간속에서 비누막이 아무리엉겨 있더라도 경계가 두개로 이뤄져 있다면 그 땅의 넓이는 쌍곡적 평면위에 있는 원의 넓이보다는 작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세계 수학계의 한 난제를 70년만에 해결한 것으로 평가된다.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반도체 초격자의 변화 「전자지도」 제시 『연구를 하느라 가족들에게 신경을 못썼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리학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임지순 교수(44·서울대)는 74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후 매사추세츠공대·벨연구소 박사후 과정,벨코아 상임연구원을 거치는 동안 한번도 선두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은 화려한 경력의 과학자. 수상논문 「반도체 초격자의 전자구조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책을 번갈아 쌓아 놓은 것처럼 서로 다른 반도체를 층층이 쌓을때 원래의 반도체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성질을 나타내게 되는 것을 양자역학에 기초해 예측한 이론이다. 반도체 초격자는 실리콘을 잇는 차세대 반도체소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임교수는 갈륨비소와 알루미늄비소로 이뤄진 초격자의 두께에 따른 전자성질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연구,가장 특징적인 성격을 두께의 함수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지도를 제시했다.이 지도는 수많은 논문에 인용돼 이 방면 연구의 안내판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물리학적 방법으로 생물의 분자구조 변화를 설명하는 생물물리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명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학계 쟁점인 이온 분해과정 이론정립 『원래 전공이 실험연구를 하는 분야라 장비확보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온분해 반응론과 동력학」이라는 연구로 화학분야 수상자로 뽑힌 김명수 교수(47·서울대).김교수는 79년에 귀국해 87년에야 핵심장비인 질량분석기를 마련할수 있었다면서 아직도 많은 동료들이 이런 문제들로 고전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하지만 그는 이같은 애로점 덕분에 화학반응에서 확율이론처리라는 새로운 분야에 접근하게 됐다고 했다. 김교수는 먼저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분자나 원자의 빠른 반응을 연구하는 실험장치를 고안해 냈다.기존의실험적 방법은 1백만의 1초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측정가능했으나 그의 방법은 종전보다 1천배 정도나 빠른 나노초 시간영역까지 측정할수 있게 한 것. 그 결과 그동안 학계의 논란이 됐던 이온분해과정의 천이상태 이동 문제를 해결,이온분해 동역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들로 인정을 받았다. 또 그가 실험에서 얻어진 결과를 이론적으로 해석해 기존의 이론이 아주 빠른 단분자반응 해석에도 적용 가능함을 최초로 입증한 확율 이론은 「킴스 시어리」라해 세계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김유삼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말론산의 생물학적 역할규명 첫 성공 『15년간 외롭게 한 연구에만 매달려 왔는데 이제 조금 목표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물 미생물 상호작용에 말론산 대사의 중요성」 연구로 생명과학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유삼 교수(52·연세대)는 아무 지원도 없이 시작한 자신의 연구경력을 더듬으며 감회에 젖었다. 김교수가 연구한 말론산은 인체의 뇌와 콩과 식물에 들어있는 독성물질로 알려져 왔으나 구체적인 역할은 전혀 안알려졌던 물질.김교수는 콩과 식물의 뿌리세포와 질소고정 세균과의 공생관계에서 말론산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연구하면서 말론산에는 적어도 세가지 다른 대사 과정이 있다는 것과 이과정에서 3종류 5개의 새로운 효소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또 식물세포가 이들 효소가 관여하는 대사과정을 이용해 공생세균이 고정한 암모니아를 이용한다는 「말론산 셔틀 시스템」 모델을 90년 최초로 발표,말론산의 생물학적 역할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세계적 저널에 12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는데 『앞으로는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이를 농업생산에 이용하는게 꿈』이라고.김교수는 연세대 화학과 출신으로 워싱턴주립대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안내문화가 부실한 사회(사설)

    우리는 안내문화가 매우 부실한 사회에 살고 있다.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있어도 아주 불친절해서 따라가보면 엉뚱한 경우가 더 많다.지도부터 공산품 사용방법까지 모든 안내문이 부실하다. 그래서 관공서에 들어서면 공무중인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한다.새 물건을 사서 조립하다가도 포기하고 전화를 걸게 된다.그러다가 심정을 상하게도 된다.안내문화 불모가 부르는 갈등이 아주 심한 사회인 것이다. 서울시가 서울 전역에 보행자를 위한 길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서울은 안내문이 부실한 대표격의 도시면서 또한 걷는 사람을 아주 홀대하는 도시기도 하다.시청앞 광장이나 광화문 네거리에서 보행자는 땅위로 길을 건널 방법이 없다.그런 도시는 아마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관광객이 지도만을 가지고 길을 찾아갈 수도 없는 도시다.표기가 통일되지 못해있고 지도에 표기된 곳도 현장에는 표지판이 없어 판별이 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표지문화가 발달한 도시라도 지도와 현지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가 심하다. 안내문화는 도시의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잘 읽어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선진도시의 특징이다.거듭거듭 예고해주고 화살표를 표시해주고 약도표시를 해주고 하는 것이 안내문화의 본령이다.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특히 보행자를 위한 배려차원의 그것은 전혀 없다시피하다. 본디 안내문화는 시민 재교육의 역할을 한다.새로운 안내문은 시민의 삶을 위한 양질의 정보가 되어준다.좋은 안내문화를 개발하는 것은 시민봉사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보행자 길안내판을 만드는 목적이 시민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으로까지 향상될 수 있기를 우리는 기대한다.그런 노력이야말로 지방화시대의 행정이 이루어야 할 중요한 대민 서비스인 것이다.
  • 탐욕은 화의 근원/이준호 대신증권 사장(굄돌)

    지리산 성삼재를 꾸불꾸불 넘어오다 보면 「브레이크 파열로 인한 사고 예방을 위해 기어를 1단으로 놓으십시오」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조금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한 욕심에 기어를 3단에 놓고 연신 브레이크를 밟아대던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문구였다. 도로가 개통되지 않았던 때에 1박2일은 땀 흘려 걸어야 넘을 수 있었을 고개를 1시간도 못되어 한가하게 넘어오고 있었건만,인간의 욕심은 기나긴 고갯길 만큼이나 끝이 없는 모양이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했을 당시에는 농서·촉·수양·노강·임치 등이 저마다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농서와 촉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됐다. 농서의 외효는 광무제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촉의 공손술과 연합하여 대항하려 했으나 촉으로부터 냉담한 반응만 듣게 됐다.다시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가 될 것을 강요하여 이 마저도 쉽지 않았다. 양다리 외교에 실패한 외효가 죽자 그의아들 외구순은 마침내 광무제에게 항복하고 말았다.이로써 천하를 호령하게 된 때에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득롱망촉.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도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탐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인간인 이상 탐욕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위하며 인정하듯이,「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성서의 진리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야겠다.
  • BAM 철도(시베리아 대탐방:33)

    ◎지도에 없던 「극비 철도」… 스탈린이 계획/타이셰트∼콤소몰스크나아무르 총 3,200㎞/일제위협 대비 41년 착공… 84년 전구간 개통 이르쿠츠크에서 북으로 우스치림스크댐까지 거대한 인공호수가 돼있다가 이후부터 실제로 강의 모습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앙가라는 북으로 주경계를 넘어 크라스노야르스크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서 에니에시강과 합쳐진 다음 북극해로 들어간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보쿠차느이시가 있는 지점의 앙가라강에는 지금 제4의 댐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시베리아여행중 제일 친절한 승무원을 만나서 비교적 유쾌한 여행을 즐겼다.모스크바교외에 산다는 이 젊은 여승무원은 한번 기차를 타면 2명이 1조가 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왕복 15일 밤낮을 쉬지 않고 교대로 일한다고 했다.그 다음 2주일을 쉬고 다시 2주일 동안 기차를 타는 것이다.보통 체력과 인내심이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왜 많은 승무원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했다. ○바이칼호 북단을 지나 이르쿠츠크주 초입에 있는 타이쉐트는 20세기 최대의 대공사로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BAM(바이칼∼아무르철도)철도의 시발점이다.이곳에서 시작된 BAM철도는 동쪽으로 거의 직선거리로 진행해서 바이칼호수 북단 위쪽을 지나 종착역인 하바로프스크주의 콤소몰스크나아무르시까지 이어진다.총길이 3천2백㎞에 달하는 구간이다.이곳에서 지선으로 남쪽의 하바로프스크를 통해 다시 대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 철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건설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30년대 중반 스탈린이었다.가장 큰 이유는 바이칼호수 남단을 우회하는 대시베리아철도가 당시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만주국경과 너무 가까워 안보면에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이후 계획을 완성해 착공한 것은 41년이었다.바이칼호 북쪽은 바위·험로가 첩첩한 난공사구간이다.당초 대시베리아철도가 호수남단을 우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번째 구간으로 아무르주의 스코보르디노∼튄다 사이의 공사가 시작됐다.일차적인 목적은 남쪽의 기존 시베리아횡단철도역인 스코보로딘을 통해 치타주로부터 공사장비·인력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 이 구간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인 41년 완성됐으나 이후 전쟁으로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모든 물자·인원을 모두 서쪽 전선으로 보냈기 때문이다.종전 직전인 45년 공사가 재개돼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태평양연안의 군항인 소베츠카야 가반항까지 구간이 착공됐다.블라디보스토크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될 경우에 대비해 태평양함대를 이곳으로 옮길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태평양함대 이동 목적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구간공사가 시작됐다.46년이전에 타이쉐트∼브라츠크구간은 완공돼있었다.브라츠크의 목재·메탈·철 등을 서쪽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따라서 BAM공사의 실제 시발점은 브라츠크인 셈이다.46년부터 이후 51년까지 브라츠크에서 동쪽으로 계속 공사가 진행됐다.브라츠크에서 강항인 우스트구트까지 구간이 완공됨으로써 BAM철도는 레나강과 연결되게 됐다.레나강을 통해 실어온 주변의 목재들은 우스트구트에서 철도로 실어 러시아 각지로 운반해 나갔다. 이후 브레즈네프시절인 77년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튄다까지 구간이 완공돼 BAM의 동쪽구간이 완성됐다.당시 중소관계가 악화돼자 중국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공사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BAM은 일명 「젊은 영웅들의 철도」라고 불린다.기차에서 만난 튜멘주의 건설노동자같이 젊은 콤소몰 청년들이 대거 건설현장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처음으로 동서 전구간이 연결돼 기차가 운행했다.그러나 토넬느이에 있는 터널 1곳은 아직 미완성인 채 우회로를 통해 기차가 다니고 있다.현재 미완성 구간은 토넬느이∼탁시모간 15㎞이다. 스탈린시절 BAM철도 건설은 1급비밀로 속해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물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수용소 죄수들이 동원됐다.이 철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55년이었다고 한다.브라츠크발전소 건설을 발표하면서 이곳에 철로가 있으며 이 철로를 이용해 발전소를 건설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복선·전철화작업 진행 현재 BAM은 전구간 복선·전철화 작업이 진행중이다.그러나 아직은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철도란 건설 뒤 10∼15년 지난 뒤부터 철도주변에 개발효과가 가시화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 지역에도 경제개발붐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덕분에 일찍이 외국인에 개방된 곳이다.바이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따라서 우리가 묵은 인투리스트호텔은 입구에서부터 서구화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새벽에 체크인하는데도 교대근무자들이 친절히 맞아주었고 엘리베이터는 금성사제품,객실 세면대에는 한국산 비누·치약·샴푸 등이 깨끗이 준비돼 있는 등 여행중 최고로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객실의 냉장고도 다른 지방의 호텔에서 같이 「탱크 굴러가는 듯한」요란한 소음을 내는 러시아제 대신 말끔한 한국산 냉장고가 갖추어져 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듯 한식당·일식당도 있고 호텔 로비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나붙어 있다. 현재 인구 60만명의 이르쿠츠크시는 1661년남쪽의 몽골·중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출발했다. 이후 1686년 군사요새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마감하고 정식도시로 재출발했으며 1698년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이르쿠츠크는 매우 중요한 교역중심지로 부상했다.도시가 커지면서 17 64년에는 당시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고 총독의 집무처가 들어섰다.그래서 이곳에는 「벨르이 돔(백악관)」으로 불리는 순백의 당시 아름다운 총독관저가 지어져 지금 빼놓을 수없는 관광명소가 돼있다.가가린프로스펙트에 있는 이 건물은 현재 이르쿠츠크 시립도서관이 입주해 있는데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크바렝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 일본에선…/달라지는 대한인식(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7)

    ◎한국인 폄하·우월감 아직도 곳곳에/경제발전·교류 확대 따라 인식 개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최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수천년 이웃나라를 침략,온갖 박해를 가하고도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악담을 해대던 일본사회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겪은 차별과 악감정의 피해 사례는 헤아릴 수 없다.재일동포 1세들은 비교적 민족의식을 꿋꿋이 지켜왔으나 2세들은 상당수 한국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북송교포로서 올해초 월남한 오수용씨의 누나 오모씨(63).그녀는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아이들이 일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기자들의 방문으로 내가 한국인임이 밝혀져)아이들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취재를 거부했는데 주위의 일본인이 혹시 알게 될까봐 주의를 기울이는 표정이었다.동행한 민단지부 관계자는 『그녀가 국적을 바꾸지 않고 민단비를 꼬박꼬박 내는 것으로 보아 한국이 좋든 싫든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것만은 분명하다』면서 『그녀의 태도는 일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신대지진때 민단과 조총련은 동포 사망자를 집계하는데 애를 먹었다.상당수가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살면서 「이지메」를 각오하고 본명을 쓰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오기를 필요로 한다.바꿔 말하면 그들이 쓰는 일본식 이름에는 눈물어린 사연과 애환,콤플렉스,사랑과 미움 그 모든 감정이 응어리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국교정상화 뒤 일본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신거주자」들도 일본사회의 거부 반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이들이 부딪힌 첫 시련은 집을 임대할 때부터 찾아온다.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진짜 거부 이유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아파트를 재임대한다」,「친구들을 불러들여 밤늦게까지 떠든다」,「방이 불결하다」,「마늘 냄새가 난다」는 따위의 말을 듣기 일쑤였다.(거품경제가 꺼진 뒤 집 빌리기가 쉬어져 최근엔 집을못빌리는 예는 거의 사라졌다) 롯데관광(주) 도쿄지사장 황종걸씨는 최근 일본검찰로부터 엽서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엽서의 내용은 황지사장이 고소한 한 일본인을 기소했다는 내용.그는 얼마전 일본인이 운전하는 택시로부터 충돌당했다.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상대가 한국인임을 알자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느닷없이 「마늘냄새 나는 조센징」 운운하면서 길 한복판에 서서 모욕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일본인 운전사를 고소하고 말았다.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생각만을 모아 놓은 「추한 한국인」 1·2편은 30만부가 넘는 빅 히트를 치고 있다.일본인에게는 한국을 폄하하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물론 우리에게도 일본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있지만 추한 한국인이 가해의 역사를 미화하고 저자를 숨기는 등 비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냉랭하고 하늘만큼 우월감이 도도했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게 바꾸었다는 것이다.일본의 발전도 이바지했다.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너그러워질 여유를 갖게 됐다.세계각국의 문물을 가감없이 즐기려는 경향이 자리잡게 됐고 한국도 한자리를 차지할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에 대한 우월감과 경멸감,증오심을 굳게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한국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마음에 한국이라는 그림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업무상 40대 이하의 샐러리맨을 많이 만나는 대우증권 도쿄지점의 박기홍 차장은 『이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잘 모른다.이들을 만나면 한일간에 감정이 없는 듯 느껴진다.또 한국을 잘 아는 일부 사람들은 「한국이 올림픽 뒤 질서를 지키려고 하고 서비스도 개선됐더라」는 말도 한다』고 전한다. 한일간에 사람들의 왕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94년 1백60만 명 돌파,올해 목표 2백만명)도 한국에 대해 상대적 편견을 불식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회사원 가와나베씨는 지난 5월 한국을 한번 여행다녀온 뒤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부인과 함께 한글책도 사서 보기 시작했다.한국을 더 알고 싶어 가을에 한국을 또 다녀올 생각이다.대한항공 김인진 일본본부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지방도시에 잇달아 취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취항 후 바로 한글 안내판이 붙고 안내서가 나온다.지방에서도 한국 관광붐이 분다.인지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덧붙인다. 지난달 사이타마현 히키군 요시미마치는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이 전시 군수공장용 굴을 뚫었던 곳에서 「도깨비대회」를 열려다가 계획을 바꿨다.현내 고등학생들이 「강제연행당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에서 열다니 무신경한 처사」라고 반발,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이번 일을 놓고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일일까.지나치지 않다고 믿고 싶다.일본인들의 얼음처럼 차가운 한국에 대한 인식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미풍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 미·일의 구난조직·활동

    ◎미국/연방 재난청서 구조 총괄지휘/소방소·의료진 등 유기적 협조 『연방청사 정문쪽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에 순간적으로 가방을 머리에 얹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한 5분동안을 꼼짝할 수 없었다.땅이 흔들려 지진인줄 알았다.얼마후 나는 얼떨결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 뒤편으로 달려갔다.구급차가 한대 막 도착했고 흰옷을 입은 닥터에게 응급구조법을 안다고 말하자 그는 나를 4인구조대에 편성시켰다. 우리는 이동침대를 하나 들고 피비린내와 신음소리가 뒤엉킨 잔해속으로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9시10분 이었다』 이는 지난 4월19일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발사건때 비스타사의 직원으로 초기에 구조대에 가담했던 브렌트 블룸씨(23)의 증언이다.폭발시간이 상오9시2분인 것으로 미루어 사고후 8분만에 구조에 투입된 셈이다. 블룸씨의 증언은 재난관리의 총체적 책임을 맡고 있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자생적 구조작업이 조직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폭발 즉시한 블록 떨어진 세인트 앤터니 병원의 당직의사가 출동했고 그의 지시로 우선 구조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곧이어 FEMA소속의 구조대가 도착,체계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함에 따라 자생적 구조대의 역할은 자연스레 끝났다.연방정부 직할기관인 FEMA는 주단위 그리고 시나 카운티(군) 단위로 조직돼 있으며 소방서·응급의료진·경찰서·항공 및 앰뷸런스구조대·자원봉사대등 5개기관이 혼합편성돼 있어 재난발생시 모든 구난활동의 총지휘를 맡는다. 사건 발생직후 클린턴 대통령이 제임스 위트 FEMA청장을 현지에 급파한 것도 일사불란한 구조및 수습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층 건물의 사고인 만큼 고가사다리차와 크레인등 중장비가 동원됐으며 특히 콘크리트더미속의 신음소리를 청취해내기 위한 청음기와 콘크리트밑에 깔린 시체를 찾아내기 위한 특수온도계등 첨단장비가 사용되기도 했다.이밖에 간단한 손전등에서 전기톱·방독 마스크·장갑등 온갖 구난장비가 갖춰진 비상구난 전용차량이 달려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각 기관 역할분담… 체계적 대응/최첨단장비 갖추고 신속 대처 사고는 어느 나라나 나게 마련이다.일본도 예외는 아니다.지진과 태풍이 언제 어디를 강타할지 모르는 「자연재해의 나라」다.일본인들은 이 점을 늘 의식하고 살아간다.그래서 안전대책 마련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도쿄등 대도시의 경우 거리 곳곳에 지진 화재등 사고발생의 경우 긴급대피 장소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주로 각급 학교등 공공장소를 긴급피난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기업체들도 위기 대응에 민첩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지난 1월17일 한신(판신)대지진 당시 기업들은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전체 종업원의 40%가 고베(신호)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쓰비시전기는 대규모 재해에 대비한 매뉴얼을 전국 각 공장에 준비해 놓고 종업원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지진당시 종업원들은 이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도쿄 본사에 피해상황등 종합적인 정보가 불과 두어 시간만에 입수됐다.대책본부가 선 것은 지진발생 3시간만인 상오 8시30분쯤이었다.상오 10시30분에는 여진발생에 대비,귀택조치가 내려갔다.일본은 재난발생시에 대비한 훈련이 잘 돼 있다. 일본은 재난이 발생하면 우선 경찰과 소방서가 합동본부를 설치,역할을 나누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도록 평소 체제를 갖추고 있다.경찰과 소방서는 또 기본장비를 늘 갖추고 있다.헬멧·장갑·통신장비등을 갖추지 않은 구조활동대를 보기 어려웠다.
  • 백두산 동쪽기슭서 솟구치는 「두만의 샘」

    ◎해발 1천3백21m에 위치… 천지물 원지로 스며 발원지로 두만강 칠백리­민족의 한을 간직한채 억겁을 유구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이 장강은 백두산 동쪽 기슭의 관목숲속에 감추어진 옹달샘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두만강의 첫 시작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위해 여장을 꾸려 나선 것은 지난 19일.5월 중순이지만 백두산의 날씨는 아직 초봄의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었고 빗방울마저 뿌려 밀림속은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중국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마을을 떠나 비포장 강둑길과 산길을 달리길 7시간여.개울 폭으로 좁아진 두만강 건너편 북한쪽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손짓하는 국경경비군인들을 만나기도 했고 「김일성 나루」「김일성 낚시터」등을 스쳐지나기도 했다.김일성이 여기서 산천어를 잡았다든가. 강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는 빗길산행 70여㎞를 강행군한 끝에 길가에서 드디어 한글과 한문으로 된 「두만강 발원지」라는 안내판을 찾아냈다.그러나 그옆 오솔길에 세워진 국경비가 발길을 막았다.비 앞에는 「중국」,뒤에는 「조선」이라고새겨져 있었다.두만강 강심이 국경이지만 최상류에 이르러서는 개울이 중국쪽(약류수)과 북한쪽(홍토수) 둘로 갈라져 그 중간지점에 국경을 그었다는 것이다. 발원지는 국경 너머 북한쪽.국내 언론에 최초로 공개될 두만강발원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국경을 넘어야 한다.그러나 무장한 북한경비병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낭패다.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겁나고 망설여졌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주변에 북한군인이 없음을 확인하고 국경을 넘었다.5백여m쯤 숲속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물이 솟는 샘터들이 나타났다. 바로 두만강 발원지였다. 백두산 천문봉에서 동쪽으로 34.4㎞ 떨어진 적봉산 기슭이며 위도로는 동경 1백28도 27분,북위 42도 01분,고도가 해발 1천3백21m이니 백두산 중턱쯤 되는 곳이다. 수림속에 자리잡은 샘터주변은 그리 넓지 않은 펀펀한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묵은 풀잎에 덮인 땅이 움푹움푹 패어 들어간 곳곳에서 보글보글 샘물이 솟아 올랐다.투명한 물빛에 끌려 손을 담그니 시리도록 차다.그 샘물들이 흘러 실개천을 이루고 이들이 다시 합쳐 홍토수가 되며 중국쪽에서 흘러드는 약류수와 만나 7백리 두만강굽이의 시발점을 이루는 것이다.중국과 북한은 19 62년 국경회담에서 두 개울의 합수지점부터 두만강으로 부르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동행한 조선족 김송춘씨(화룡시 숭선진 거주)는 이 발원지의 샘물은 이곳보다 위에 있는 원지에서 스며들며 원지의 물은 백두산 천지에서 비롯되므로 두만강은 결국 백두산천지의 물이 원수인 셈이라고 설명한다.발원지를 떠나 다시 숲속을 헤맨 끝에 4㎞쯤 떨어진 곳에서 원지를 찾아냈다.원지는 적봉산 서북쪽 원시림 숲속에 위치해 있으며 직경이 180m쯤 되는 원형의 아담한 호수였다. 백두산의 그림자가 잔잔히 드리우는 호수에는 들어오는 물길도 나가는 물길도 없어 천지의 물이 이곳으로 스며들며 다시 이물이 땅속으로 흘러 두만강발원지로 솟아난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원지에는 산천어와 기름개구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수초가 많고 호수주변에는 들쭉꽃과 진달래가 피어있다.만족어로는 용구라고 하며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이라는 전설에 따라 천녀욕궁지라고도 부른다. 조선족들 사이에서는 이 호수가 옹녀늪으로 통한다.항일전쟁때 독립운동가 부인이었던 옹녀를 일본 토벌대장이 욕심내어 몸을 뺏으려하자 피해 달아나 이 호수에 몸을 던지는 순간 호수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르면서 옹녀가 그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하늘이 내린 물,천지의 성수를 받아 흘러내리는 두만강은 우리의 영산인 백두산 숲속에서 예나 다름없이 민족의 맥박인양 끊임없이 솟구치는 샘물로 시작하고 있었다.
  • 차선위반 승용차 경고듣고 제자리로/교통관리 헬기투입 첫날 동승기

    ◎고장차량 발견 즉시 조치 지시/교통상황 한눈에… 전광판 안내 『서울4우○○○○ 쏘나타승용차는 버스전용차선에서 어서 나오세요』 경찰헬기의 경고방송을 들은 쏘나타승용차는 즉각 버스전용차선에서 빠져나왔다. 주말 고속도로와 국도 교통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경찰헬기가 투입된 첫날인 1일 하오 2시10분쯤 서울경찰청 소속 벨 206,벨 212 등 2대의 헬기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만남의 광장 헬기장을 이륙했다. 헬기에는 지상의 모든 순찰차와 무선교신을 할 수 있는 무전장비와 안내 및 경고방송을 할 수 있는 고성능 방송장비가 장착돼있다.또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도 설치돼 있어 위반차량을 촬영해 차량소유주의 집으로 벌금 통지서를 보내게 된다. 벨 206헬기의 기장 이동용(45) 경위는 서울경찰청 교통관제센터에 무전을 쳤다. 『현재 경부고속도로는 차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상태 양호함』 헬기에서 알려주는 상황은 교통방송이나 고속도로 전광안내판을 통해 즉각 고속도로 운전자들에게 전달됐다. 8분여 날아서 판교IC 상공에도착했을 즈음 먼발치로 프라이드승용차 한대가 고장으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부기장 이상천(44) 경위는 『신갈에서 양재동 방향 판교분기점 못미쳐 1.5㎞ 지점에 프라이드승용차가 고장으로 서있다.빨리 가서 조치하기 바람』이라고 무전을 쳤다. 이경위의 무전연락을 받은 순찰차는 즉시 견인차를 부르는 한편 현장으로 가보겠다고 답했다. 헬기는 서울경찰청의 관할지점 끝인 신갈분기점에서 기수를 돌려 땅·하늘 입체작전의 임시교통통제본부의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양재동 헬기장에 착륙했다.
  • 「승용차 10부제」 이렇게 생각한다

    ◎“교통 소통 원활 도움… 계속 시행하길”/“성공 여부 평가 일러… 근본대책 필요”/범칙금 교통환경 개선에/5월이후의 대책 강구를 교량보수를 위해 현재 고육지책으로 실시되고 있는 승용차 10부제의 성공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시내 승용차 통행량의 감소로 만성적인 교통체증이 어느 정도 풀리고 대중교통수단의 이용도 그만큼 활발해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그러나 10부제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처방이기 때문에 10부제 적용기간이 끝난 이후의 교통대책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또한 10부제 위반때 내는 범칙금도 교통환경 개선금의 명목 등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본다.고윤웅(57·내과의사) ◎대중교통 편리함 느끼게/버스­전철역 연계 늘려야 한정된 공간속에서 시민들은 누구나 편리한 생활을 원한다.하지만 열흘에 한번 정도는 시민생활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시민정신 또한 중요하다.승용차 10부제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한다.기간에 구애받지 말고 계속 실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버스전용차선제도 좋은 제도다.그러나 버스와 전철역간의 연결이 좀더 매끄러워져야 하겠다.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어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좋은지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시민들이 대중교통의 편리함을 피부로 느낄 수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박종림(30·주부·양천구) 하루 불편…9일 편해져/항구적 시행 검토해볼만 3년째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있다.10부제 시행 이전에는 서울시가 다리 보수를 빌미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떠넘기는 것으로만 여겼다.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소통이 한결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하루 불편으로 9일간이 편해졌다.차제에 10부제를 제도화하고 항구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검토해볼만 하다.버스전용차선제도 버스의 난폭운전 등 일부 문제가 있긴 하나 대체로 성공적이라고 본다.정홍길(33·공인회계사) ◎택시 버스차선통제 유감/동등하게 운행허용 해야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 실시로 차량 통행이 크게 원활해 졌다.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이 제도를 한시적으로 실시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승객 승하차때에만 택시의 버스전용차선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하차때는 큰 문제가 없으나 승객을 태우기 위해 갑자기 버스전용차선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택시도 대중교통인 만큼 버스전용차선 운행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신철(42·택시기사) ◎규제보다 자발참여 유도/일방강제는 부작용 불러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고 하더라도 입안 및 시행과정에서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위반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적인 강제라는 느낌을 준다.이는 잘못된 교통행정의 결과를 시민에게 이전시키려는 태도가 아닌가 여겨진다. 당국이 규제중심의 제도를 양산하기에 앞서 대중교통수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었으면 싶다.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이 안락하다면 누가 굳이 「불편한」 자가용을 이용하겠는가 묻고싶다.이정수(24·대학원생) ◎자전거차선 설치 바람직/도로혹충 다각 모색할때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는 승용차 통행을 억제하여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특히 버스전용차선제는 버스 통행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을 촉진한데 큰 의의가 있다.따라서 이 두 제도는 한시적으로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시민 생활에 완전 정착시켜 교통문화의 혁명을 가져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일부 도로에는 자전거전용차선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 하다고 본다.근본적인 교통문제 해결의 재원마련을 위해서는 자동차세를 도로확충을 위한 목적세로 운영하고 자동차 생산업체에게 이익의 일정분을 도로망 확충에 기여토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할 것이다.김신복(50·서울대교수) ◎차선취반 새 문제점 대두/「5월말시한」 약속지키길 10부제 운행과 버스전용차선제 확대는 대다수 시민들의 편익을 위한 정책인 만큼 1백50% 찬성한다.개인적으로는 10부제를 3기지하철이 완공되는 99년까지 시행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그러나 시민들에게 한강다리보수가 끝나는 5월말까지로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켜야 한다.버스전용차선 전일제운행은 지금까지 시행해 보지 못한 파격적인 정책이다.전용차선제 확대로 출·퇴근시간대는 물론,낮시간대의 교통흐름이 많이 개선됐다.택시 승·하차,버스 운전사들의 차선위반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정성용(46·사무관) 정체극심한 승강장확장/얌체운전추방 노력해야 버스전용차선제 실시로 종전 2시간 걸리던 뚝섬∼구로동 구간 운행시간이 20분쯤 짧아졌고 출·퇴근 시간에도 교통흐름이 훨씬 원활하다.일부 승용차 운전자들의 불만도 있지만 전용차선제가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승용차 10부제와 병행해 앞으로 계속 시행돼야 할 것이다.다만 교통정체구간에서는 버스정류장을 넓히고 택시승강장과 버스정류장사이의 구간을 확대해 택시의 버스전용차선 침범을 원천적으로 막는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또 끼어들기,차선걸치기 운전등을 일삼는 일부 자가 운전자들의 의식수준도 개선돼야한다.김문종(42·버스운전사) ◎불가피한 승용차 이용자/선의의 피해없게 보완을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에 최근까지 주로 승용차로 출·퇴근했으나 승용차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가 실시되면서 거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다.자동차의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시간도 절약된다는 이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영업상 승용차를 이용해야 할 사람과 버스전용차선제에 따른 제도상의 문제점을 보완해 선의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김정숙(38·음식점주인) ◎투자늘려 장기계획 시급/대중교통 안락하게 전환 한강다리 보수작업이라는 특수상황을 전제로 한 승용차 10부제 성과를 과장해서는 안된다.또 버스전용차선의 정착으로 향상된 속도가 과잉해석 된다든지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교통은 흐름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보수공사가 시작되면 언제 어디가 막힐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10부제가 성공했다고 부산을 떨기보다는 자가용 이용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기본여건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대중교통수단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임삼진(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 불교거점도시 쿠차(서역 문화기행:9)

    ◎시원1백여채는 흙담만 남아/3세기 서역정치의 중심… 7백년간 영화/쿠차강 벼랑에 석굴 여러개 산재… 베제크리크 천불동 흡사 카슈가르에서 쿠차까지 사막 7백50㎞.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장장 15시간을 덜커덩거려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천산남로가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사막이란 장관들을 좌우에 놓고 그를 줄곧 볼 수 있는 데다 서역 역사의 중심을 이제사 찾아가는 길이어서 였다. 쿠차의 옛 이름으로 구자 굴지 고차등이 있지만 모두 쿠차라는 위구르말을 다르게 표기했을 뿐이다.서한때만해도 겨우 36국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는데 동한때 반초(반초·33∼103)가 서역을 확장하던 기원 91년엔 「서역도호부」를 두어 서역정치의 중심으로 부상,당나라때 「안서도호부」로 지속되었다. 쿠차는 기원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서역에서 불교의 거점으로 가장 그 꽃을 피웠던 곳으로 스바시(소파십)에 두군데의 자오후리사원외에도 키질(극자이)석굴을 비롯하여 쿠무토라(고목토랍),키질가하등 세군데의 천불동이 있다.무엇보다 당나라의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할 때 여기서 두달을 머물면서 쿠차의 융성한 불교와 음악을 그의 「대당서역기」에 대서특필한 바 있었다. ○혜초,한달 걸려 통과 필자가 쿠차를 특별히 동경했던 연유는 따로 있었다.신라의 혜초가 인도로부터 장안으로 돌아갈 때,바로 카슈가르에서 쿠차로 뚫린 이 코스를 장장 한달이나 걸어서 당시 정치·군사의 중심지였던 쿠차를 그의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하였고,고구려 출신의 명장인 고선지(?∼755)는 당 천보(742∼755)연간에 서역방위 총사령격인 「안서도호」를 지내며 천하를 호령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서역의 악기,특히 쿠차를 대표하는 갈고는 꼭 우리나라의 장구를 닮았기에 똑같은 흥을 느꼈고,또 최근 필자는 돈황의 막고굴보다 한세기 앞서 착굴되었던 키질천불동의 벽화를 정리하여 일련번호를 엮었던(1946∼47)최초의 키질 전문가가 우리의 재중동포 한낙연(?∼1947)씨임을 발견했기에 그렇다. 쿠차의 가을은 상쾌했었다.길에는 온통 코스모스였고 호마와 노새가 끄는 마차가 한가로웠다.멀리 해발 2천m가넘을 법한 뻘건 암벽의 촐타크(확이달격)산,그리고 보다 멀리 만년설의 하얀 천산산맥이 둘렀건만 시가는 넓고 사람들도 훤칠했다. 옛날 「양서」의 「제이전」에 쿠차의 외성은 장안성에 견줄만하고 가옥은 장려하다고 기록되었다.그 외성을 찾으려 필자는 맨 처음 쿠차의 옛 성곽을 찾았다. 쿠차의 간선도로 서쪽에는 인민공원,그 건너편 7m 높이에 5m 폭의 토성,그 허무러진 폐허가 보였다.그 밑으로 작은 개울,개울옆으로 쿠차 고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그 토성은 40m 간격으로 넓은 장벽을 세운 채 옛날의 궁궐을 휘감았는데 자그마치 7∼8㎞에 달한다고 했다.그 안에서 출토된 기와나 벽돌의 무늬와 크기는 장안 대명궁에서 발굴된 그것들과 비슷했다는 르포를 본 일이 있었다. ○40m간격으로 토성 이곳이 한때 쿠차국 국왕의 궁궐임은 물론 당나라때 「안서도호부」의 주둔지였으니 1천2백50년전 우리 고선지장군이 호령하던 곳에 필자가 서 있는 셈이었다. 「산 깊숙한 곳에,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2개의 가람이 있었다.둘 모두 자오후리라 이름했지만 위치에 따라 동·서로 불렸다.…서문밖 좌우에는 높이 90여자의 불상이 서 있고,절은 백여채요 승려가 5천여명…사람들은 공덕을 다투어 쌓고,…불상의 장엄은 사람의 공력을 뛰어넘었네라.…」 위의 글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 자오후리사원에 관한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비록 자오후리의 확실한 명칭과 위치를 밝힌 바 없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오늘의 스바시(소파십)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지칭함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필자는 쿠차 고성에서 북쪽으로 23㎞ 지점에 있는 자오후리를 찾았다.쿠차 시가를 벗어나 일로 정북을 향하여 지프를 몰았다.쿠차강의 긴 다리를 건너자 촐타크산이 화염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화염산의 머리가 타원형으로 다소곳한데 비해서 촐타크산은 들쭉날쭉한 적갈색 바위.위구르말로 「촐」이 「황량」을 뜻한다는 데 실상은 더 했다.더구나 촐타크의 아래로 뿌연 산등성이와 모랫벌,그 가운데로 쿠차강,강바닥의 하상조차 뿌옇게 말라 비틀어진 채 였으나 붉은 산등성이는 몹시 환상적이었다. 현장의 기록대로 「산깊숙한 곳」이요,「하나의 강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가람이 있었 지만」,높이 90여자의 불상은 물론 백여채의 사원 건물들은 모두 풍화중인 흙담들로 침묵만 흘렀다. 필자는 서쪽 언덕에 있는 자오후리사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산기슭을 오르다가 문득 건너 동쪽 사원의 최북단에 절반쯤 무너진 탑신을 보았다.그쪽으로 건너가기까지 족히 반시간은 걸렸다. 그 탑의 중턱에 올라 동서 양쪽의 자오후리사원을 굽어보는 감격은 무너질듯한 그것이었다.자오후리 사원의 강역이 7천㎦.그러니까 투루판에서 보았던 교하 고성이나 고창 고성보다 넓었다.교하나 고창이 다목적용 성곽이었음에 비추어 자오후리의 성곽은 오직 사원용이었으며 그 범위은 서역 최대의 것이었다. 비록 그 연대를 확정할 순 없지만 1978년5월에 출토된 위진·남북조와 당대의 철·동·도기와 벽화·전폐·간찰등으로 미루어 멀리는 위진시대요,늦게는 당말연대까지 적어도 7백년의 영화를 누렸던 불교 사원도시였음이 틀림 없다. 서역의 역사가 위대한 것은 인류가 황량하고 척박한 자연과 고투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잃어버린 흙과 모래를 빚어 인류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석양이었다.그 사양속에 자오후리 사원 유적지는 자욱한 언덕들.동쪽 사원은 산의 비탈따라 전개되었고 서쪽 사원은 사원의 본당이나 강원·승방등이 밀집된 모양이다.그래도 높이 10m의 담들은 동서에 널려 있다.서쪽의 본당으로 보이는 입구쪽 토담은 봉화대에 상당할만큼 중후했고,그 둘레도 어림잡아 3백m는 넘을만했다. ○흙·모래로 문화창조 안내자가 필자를 서쪽 사원 북단으로 인도했다.거기서 놀란 것은 쿠차강을 굽어보는 벼랑에 여러개의 석굴이 뚫렸는데 그 위치나 구조가 투루판의 베제크리크천불등을 방불케한 때문이었다.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었다.석굴에서 내려오는데 길 바닥에 방사선 모양의 파란 덩굴에 수박잎모양의 큼직한 잎새들이 싱싱하게 자라서 적어도 한평쯤의 땅을 휘덮고 있었다.들수박이라했다.서역의 사막만을 방황하는 나그네에겐 또 한가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쿠차로 돌아오는 도중,필자는 「키질가하토탑」을 굳이 찾기로 했다.쿠차 북쪽 12㎞지점에 있는 이곳을 찾기위해 쿠차에서 자오후리사원 중간쯤 도로에서 서쪽으로 돌아 작은 구릉을 한참동안 달렸다.그 왼쪽엔 염수계곡으로 수만년전 지구의 조륙운동으로 말미암아 벽해가 상전된 지질 변화로 만들어 진 곳이다. 염수계곡위로 우뚝 솟은 15m의 토탑.사막에서 자라는 풀인 소소초같은 것을 배합한 판축법으로 세운 흙탑인데 적어도 2천년을 견딘 이 탑의 툭불거져나온 위치와 상단의 망루적인 구조로 보아 봉화대로 단정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키질가하토탑에서 동쪽을 조망하면 불과 2㎞ 전방에 송송 구멍이 뚫린 벌집처럼 또 하나의 천불동이 보였다.이름하여 「키질가하천불동」.거기도 46개나 되는 석굴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는데 대체로 당대에 개착된 것으로 키질천불동보다 늦은 연대라했다. 서쪽으로 40㎞ 지점엔 또 하나의 천불동이 있다.이름하여「쿠무토라천불동」으로 그 휘하에 72개의 석굴을 거느리고 있다한다.필자는 키질가하토탑아래 우두커니 서서 성큼 다가오는 황혼에 쫓겨 지프에올랐다.어디를 보아도 천불동,누가 버린 땅이라하랴! 『선생! 제가 어릴적만해도 쿠차의 왕자가 어디쯤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위구르족 기사의 말이었다.정녕 그들 나름의 왕국이 청말까지도 실재했을지 모른다.
  • 재고해야할 우리의 건물방재계획/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특별기고)

    ◎비상통로 직선화 등 대비책 시급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등의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더니,이번에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강도 7.2의 지진이 발생해서 고베라는 항구도시 하나가 거의 폐허로 변해버렸다.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1백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살기 좋아진 우리네 삶,이제 곧 다가올 눈부신 21세기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텔레비전 화면에는 끊어진 다리,무너진 건물의 모습이 쉴틈없이 비춰진다.이것들이 아프리카의 어느 미개발국가도 아닌 소위 선진국이라는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 한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사고가 인재였던데 비해 일본의 사건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던 천재이니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앙을 입었더라도 일본사람들이 그래도 좀덜 창피할 것이다.그런데 피해는 일본쪽이 몇백배 더 크게 나타났다.그래서 사람보다는 하늘이 더 무섭다던가. 건축을 전공으로하는 사람으로서 폭삭 주저앉은 건물,불타는 거리를 보는 필자의 심정은 보통 사람보다 더 착잡하다.인간이 온갖 지혜를다 동원해 땅위에 이룩해 놓은 구조물들이 자연의 힘앞에서 한줌의 재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은 한마디로 중력과 땅의 합작품이다.건물은 그 자체의 무게(중력)로 인해 계속 밑으로(지구 중심으로)내려가려 하는데 그래도 땅이 굳건하게 받쳐준다.중력과 땅이 절묘한 평형을 이루기 때문에 건물은 원래 만들어진 모양대로,원래 위치에서 아무런 동요없이 서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이 점 달동네 판잣집이건 여의도 63빌딩이건 마찬가지다. 우리는 땅이란 으레 나와 내 집을 든든히 받쳐주는 존재로 쉽게 믿어버리고,전혀 불안해 하지 않는다.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듯,땅도 발 밑으로 꺼져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면 이러한 믿음이 송두리째 뒤집혀 버린다.그토록 딱딱하던 땅이 갑자기 물렁물렁해져 버린다.그러니 건물이 주저앉고,다리나 철길이 흐느적거리며 무너진다. 사람은 땅의 굳건함과 같은 기본 전제가 깨어지고 사방의 벽들이,주위의 가구들이 저마다 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이때 평소에는 아주침착하던 사람들 조차도 제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된다.이런 현상을 「패닉」이라고 하는데,이렇게 되면 의식이나 이성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 보다는 비이성적 행동이 앞서게 된다. 실제로 땅이 흔들리는등 지진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1∼2분 정도이다.물론 이 기간동안에는 아무일도 할수가 없다.단지 최대한 빨리 가스밸브를 잠그고 식탁이나 책상밑에 들어가 떨어져 내리는 천장이나 가재도구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행해진 연구들에 의하면 일단 지진의 시작시점에서 종료시점까지의 짧은 시간동안에는 사람들이 상당히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그런데 막상 지진이 끝난 직후부터 패닉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다.건물의 구조가 취약해졌기 때문에 곧 무너져 내리거나 도시가스관이 파열되어 곧 불이 붙을 터라 빨리 건물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망연자실,그 자리에 앉아 있거나 주위의 하찮은 물건들… 떨어진 액자나 넘어진 의자등…을 줍는등의 비이성적 행동을하게된다고 한다.그러니 인명피해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런 패닉현상은 지진 뿐만 아니라 화재시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자연의 파괴력앞에 무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다.우리는 지진에 대비하여 건축이나 토목구조물의 안전성을 충분히 구현해 놓아야 하기도 하지만,이러한 비상시에 건물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패닉한 가운데도 동물적 본능만을 가지고 재빨리 대피할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해놓는 것도 중요하다.비상구로 가는 통로를 가능한한 직선으로 만들어 놓고,비상구 안내판을 눈에 잘 띄게 설치해 놓는 등의 일을 말하는데,이런 배려를 하는 것을 건물방재계획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도 지진에 안전할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성수대교 사건에서 보듯 언제 어디서 황당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건축계의 건물방재계획분야 수준을 생각해 볼때 차라리 아찔하기만 한 것은 필자만의 우려는 아닐 성싶다.
  • 타클라마칸사막 동남단 호탄(서역 문화기행:7)

    ◎실크로드 남로 중심… 명주·옥의 명산지/한때 열국우전의 수도… 토기·벽돌 파편 널려/동보고승 법현이 도닦은 찬목묘 유명… 바로 옆엔 이슬람 예배당 우루무치부근을 떠돈지 엿새째,지구의 지붕으로 불리는 천산산맥언저리이건만 또 한번 서역의 깊숙한 벽지로 날고싶었다.호탄(화전)을. 호탄은 곤륜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타클라마칸사막의 동남단.세갈래의 실크로드,그중 가장 환상의 코스인 남로의 중간지점이자 한나라때 서른여섯개의 열국중,남로의 최강국이었던 우전나라의 도읍지였고,「한서」의 「서역전」에선 「서성」으로 불렸던 곳이다. 우루무치에서 직항 2시간10분에 도착한 호탄비행장은 온통 잿빛 모랫벌이었다.과연 33만㎦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사막인 타클라마칸사막의 동남단답게 끝이 없는 모랫벌이 이어져 있으며 그 모래는 콩가루같은 미립자로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활주로조차 묻혀 이착륙이 어렵다고 했다. 호탄시내까지 11㎞의 공항로를 달리면서 필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창밖에 하늘을 뚫는 포플러나무와 자작나무가서 있는데 그 잎새는 한결같이 잿빛으로 모랫바람이 휩쓸고 지난 자국들이었다.이런 모랫바람속 그 어디쯤에 화사한 꽃들이 피어서 꽃 따는 사람을 불렀고,또 이 사막 어디쯤에 꽃다운 비단을 짜 낸 뽕밭이 숨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삭막한 모랫벌 그 어디쯤 깊숙한 골에 하얀 구슬,푸른 구슬이 묻혔을까? 그런가하면 인도에서 불경을 구하여 장안으로 돌아가던 현장법사가 기원645년에 이곳을 지났는데 그들의 발길과 그들의 말방울이 울렸던 곳은 어딜까? ○화향 5천여명 수도 수나라때의 시선집인 「전수시」에는 「우전에서 꽃 따기(우전채화)」라는 무명씨의 시가 이렇게 실려 있다. 「산천수이소,초목상동춘. 역여진유지,자유채화인.」 (산천은 비록 멀리 떨어졌지만,초목의 봄은 마찬가지. 하남땅 진이나 유지처럼,여기도 꽃 따는 사람 있어라) 그런가하면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기록된 호탄은 1백여군데의 절에 5천여 화상들이 불도를 닦던 대승불교의 중심지로 그 사방을 둘러싼 뽕밭이 화려한 명주와 주단의 생산지임을 밝혔고,반고의 「한서」「서역전」엔 우전국이 장안으로부터 9천6백70리(4천8백35㎞)떨어진 곳에 3천3백의 호구와 1만9천3백명의 인구를 지닌 나라,특히 옥의 산지로 중원에 알려졌었다.「우전옥」,또는 「곤륜옥」으로 불리는 호탄옥의 성가는 1968년 하북에서 발굴된 한나라 중산왕의 「금루옥의」로 더욱 증명되었다.기원전 154년 2천4백89장의 연녹색 옥판으로 얽어 맨 시의,그것들이 몽땅 호탄의 옥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호탄을 에워 싼 두줄기의 강,백옥강과 묵옥강이 각각 동쪽과 서쪽을 흘렀다.옛날엔 이 두줄기 중간에 또 하나의 강 녹옥강이 있었다고 하니 강 이름으로 미루어서도 백옥·청옥·흑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호탄시내에 도착한 필자는 처음으로 이방감을 느꼈다.우선 거리에서 만나는 십중팔구가 까무잡잡하면서 무성한 수염을 단 위구르사람들,그들의 오똑한 콧마루에 쌍꺼풀,달걀모양의 갸름한 얼굴에 푸르딩딩한 눈동자,거기다 다혈질의 말씨에 굴뚝처럼 뿜어대는 담배연기를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필자는 서역땅에 들어 처음으로 필자가 서 있는 곳이지금 중국의 강토이면서도 중국의 한족이 아닌 서역의 원주민속에 깊숙이 들어왔노라는 사실과 이곳 서역의 남로 도처에서 최근 민족갈등의 충돌이 가끔 일어난다는 생각때문에 얼른 여관문을 두들겼다. 이튿날 우전국의 고도를 찾기로 했다.한나라때는 36개부족국가의 하나였지만 당나라때는 「안서사진」의 하나였던 그 도읍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았다.혹자는 호탄시 남쪽 25㎞지점 카스강 서쪽언덕에 지금도 남아 있는 높이 6m,둘러 60m의 석탑근린을 두고 말하는가하면 혹자는 호탄시 서쪽 10㎞지점 요트칸(약특간)마을이라는 설이 있다. 그 두군데가 모두 우전국 도읍일 가능성은 있었다.거기에 남아 있는 폐허는 물론 거기서 지금도 출토되고 있는 기와조각·벽돌·질그릇·철제농구등이 그를 증언하고 있는데,특히 요트칸 유적지의 개울물에선 지금도 벽돌이나 질그릇 파편쯤은 쉽게 주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요트칸 유적지 찾아 필자는 그 말에 혹하여 요트칸을 찾기로 했다.호탄시에서 서쪽으로 10㎞라지만 아주 기름진 오아시스.가느니 굽이 굽이 농로요,농로를 따라 출렁이는 관개로,곤륜산에서 녹아 내리는 설수는 파랗고 차가웠다.게다가 농로는 자작나무가 목책처럼 늘어 섰거나 포도덩굴이 푸른 터널을 지어서 홀연 여기가 사막임을 잊게했다. 이윽고 「허톈셴바허치공사(화전현파합기공사)」라는 팻말이 보였다.거기서 좌로 돌아 또 한번 농로를 달렸다.마찬가지로 우거진 자작나무요 포도덩굴인데 길가엔 맨발의 개구쟁이가 흙투성이가 되어 뒹굴고,관개의 수문에는 빗장이 걸린 채 그 안으로 물살이 출렁거렸다.그 무렵 난데없이 「요트칸유적지」란 안내판이 보였다.필자는 습관처럼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산 한자락도 보이지 않는 편편한 언덕일 뿐이었다. 마치 환토하느라 새흙을 옮겨놓은 논바닥을 방불케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지면이었다.아닌게 아니라 버드나무 사이로 개울이 흘렀다.필자는 얼른 그 개울물에 손을 담았다.어렸을 적 뱀장어나 게를 잡았던 그 몸짓으로 개울을 뒤졌는데 당장 손끝에 잡히는 것은 빨간 토기의 파편이었다.풀잎무늬의 얇은 토기였다.또 한번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뒤졌더니 월척의 붕어를 잡듯 큼직한 벽돌 하나가 잡혔다. 호탄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요트칸일대 10㎦의 유적지에는 그런한 영세한 파편들이 널려 있다고 했다.더구나 그 일대는 일찍이 홍적기의 침적된 지질인만큼 겨우 3m내지 6m의 지층속에는 상당한 질량의 박물이 잠겼을지 모른다고 했다.그동안 발굴된 도기·옥기·전폐등 특히 개원통보 같은 엽전이나 인면·수면의 도기로 보아 기원 3세기로부터 8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고시대의 궁궐이나 도시의 유적으로,그리고 당시의 주민들이 황색의 한족이 아닌 긴 얼굴,긴 눈썹에 푸른 눈,황갈 피부의 회골족,곧 오늘의 위구르족임을 추정하기에 충분했다. ○인도수행길 머물러 비록 묻히고 무너졌지만 정치의 유적을 답사한지라 이젠 우전국의 종교 유적지를 찾기로 했다.그것은 「커커마르무」(극가마일목)유적,한족들은 「찬목묘」라고 부른다. 그것은 동진때의 고승 법현(337?∼422?)이 기원399년 인도에 갈때 여길 경유하면서 불법을 닦다가 그렇게 명명했다는 작은 암자였다.호탄시에서 남으로 36㎞지점,바로파랗게 굽이치는 카라카스강 동쪽,80m의 벼랑위에 있었다.그 벼랑을 오르느라 그 산의 북쪽을 우회하여 나무 한그루 없는 능선을 탔는데 거기서 굽어보는 카라카스강 유역은 정말 스펙터클한 장관이었다.파랗게 강이 굽이치고 강가로 푸른 오아시스,오아시스는 젖줄 따라 허리띠처럼 뻗는데 그 배경은 온통 황갈색의 구릉들.그림으로는 단조로운 삼원색,그러나 영원의 구도였지만 지세로는 찬목묘가 천혜의 요새였다.발밑으로 벼랑,벼랑아래로 강물,강물밖으론 사막.그렇게 무한히 펼쳐진 곳에서 상과 무상은 날마다 피부로 오득했을 지 모른다. 찬목묘는 천연의 작은 2층석굴이었다.석굴의 높이 겨우 6m남짓,그 한쪽에 사다리를 가설했는데 그 2층까지 기어올라간 필자의 눈에는 침침한 골방 하나쯤의 공간,그러나 아무런 시야도 없었다.법현이 책상다리하고 앉았을 때 그 귓전에 들렸을 법한 강물 소리,유사의 소리를 생각하면서 사다리를 내려섰다. 그 석굴밖으로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마자(마찰) 두어칸이 있었고,산 허리를 돌아 카라카스강가에도 몇군데의 마자가 보였는데,여기 호탄 실크로드에 우뚝 선 커커마르무는 지금 종교의 금석을 한눈에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곧 불교의 유적에 이슬람의 마자가 공존한 사실말이다.바로 기원 10세기를 전후해서 불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 중기 「수의계약 품목」서 72개 제외/새해

    ◎대기업 참여 가능성 적은 품목 대상/3백15개 확정 내년도 단체 수의계약 품목이 올해보다 1백81개 줄어 든 3백15개 품목으로 정해졌다.품목이 통합된 것을 제외하면 실제 수의계약 대상에서 빠지는 품목은 72개이다. 그러나 단체 수의계약 해제에 따른 중소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진 품목 중에도 대기업의 참여가 예상되는 66개 품목은 중소기업간 경쟁품목으로 별도 지정했다.결국 일반 경쟁품목으로 바뀐 것은 소화약제 등 6개 품목 뿐이다. 통상산업부는 28일 『수의계약의 혜택이 일부 중소기업에 한정되거나,시장규모로 보아 대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적은 품목을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단체 수의계약이란 중소기업 제품구매촉진법에 따라 공공 기관이 중소기업자 단체와 일반 경쟁이 아닌,수의계약으로 구매를 계약하는 제도로 지난 63년부터 도입됐다. 새로 지정된 단체 수의계약 품목은 탈수기와 유량계 등 금속·기계류가 82개,전압조정기와 변압기 및 형광등 기구·무선통신장치 등 전기·전자류가 56개,페인트와 플라스틱 상자등 화학·플라스틱류 19개,벽돌·시멘트·레미콘·아스콘 등 시멘트 비금속광물류 11개,혼방직물과 운동복 등 섬유·의류 52개이다. 판재와 사무용 가구 등 목재·가구류가 10개,연탄과 석재 등 연료·자원류 5개,가방 등 문구·잡화류 18개,휘장과 안내판 등 공예류 21개,면류와 고추장 등 음식료품류 25개,교육 및 실험용기기 등 기타 5개 품목이다. 공기청정기 철조망 양말 등 66개 품목은 중소기업끼리 경쟁하는 품목으로 바뀌었고 계장제어,계측제어반,자갈 ,연관,알미늄,소화약제 등 6개 품목은 일반 경쟁품목이 됐다.
  • 손님접대/박정호(굄돌)

    일본에서 지방출장을 갈 때마다 나의 관심은 대개 두가지로 집약된다.도쿄와 지방도시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어떠한가.지방에서 개최되는 이벤트를 어떤식으로 소화해내는가. 최근 비교적 오지에 속하는 후쿠이(복정)지방에 출장갈 기회가 있었다.결론부터 말한다면 지방의 균형발전이 예상한만큼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웬만한 문화이벤트를 소화할만큼 국제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후쿠이시는 인구 25만의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객석 2천의 훌륭한 공연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영어·러시아어·중국어·한국어 등의 통역이 준비되어 각종 행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함으로써 국제화수준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일본인들의 손님접대는 얄미울정도로 정평이 나 있지만 후쿠이출장에서도 손님들에 대한 「기쿠바리」(여러가지 마음을 씀)는 인상에 남았다.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노력은 일본지역 어디서나 흔히 발견되는 일이지만 한국과 가까운 규슈지방에서는 지역별로 한글판 관광안내 책자를 제작,한국 관광객들에게 배포함으로써 더욱 친근감을 주고 있다. 한때 우리는 가격 경쟁력에서 여러나라를 압도,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적이 있었다.80년대 중반 도쿄에서 첫 근무 당시 친숙한 사이였던 미국 언론인중 몇명은 한국 출장후면 언제나 호텔비가 싸서 출장비가 남았다면서 내게 점심을 사 주곤 했다.그런 점심대접이 88올림픽 이후에는 사라져 버렸다.호텔값이 비싸져서 출장비가 적자라는 엄살과 함께. 일본의 어느 호텔이나 골프장에서도 손님이 지하철을 타고 오든,시외버스를 타고 오든,벤츠를 타고 오든 손님대접은 언제나 똑같은 것으로 알고 있다.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호텔을 출입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차 크기에 따라 입구에서 맞이하는 대접의 감촉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편 서비스정신까지 소홀하다면 우리가 남들보다 앞서갈수 있는 메리트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한국을 찾는 3백50만의 관광객중 70%를 차지하는 한자권 관광객을 위해 길안내판에 한자를 병행하는 것도 「손님접대」의 차원에서 검토해 볼시기가 되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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