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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겉치레 사라진 정상외교/梁承賢 정치부 차장(오늘의 눈)

    세계가 얼마 만큼 달라지고 있는 지 런던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도심 어디에도 정상회담 하면 으례 연상되는 현란하고 요란한 현수막이나 안내판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영국이 최근에만 52개국 영연방 정상회의와 선진국 G­9 정상회담을 치른 탓에 무디어져서일까.아시아,유럽의 25개국 정상회의 정도는 이제 흔한 행사이기 때문인가. 李姬鎬 여사에게는 운전사가 딸린 차량 한대만이 영국정부가 제공한 전부다.경찰사이카의 호위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는 게 대사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교통이 막혀도 알아서 행사에 시간을 대야한다.ASEM 미디어 센터는 행사 하루 전인데도 이제야 준비중이고,심지어 각국 정상들의 자리배치 조차 되어있지 않다. 金大中 대통령 내외의 공항 환영행사는 단적인 사례다.영국여왕과 정부를 대표해 로드 해스켈 남작이 영접했을 뿐이다.우리 눈으로 보면 “이럴 수가”라며 불쾌했을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다.한·프랑스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한 이유도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시라크대통령이 회의 당일 비행기로 런던에 도착하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이다. 지금으로 부터 불과 10개월전,유럽 어느 나라든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었다.로마 콜롯세움 앞에서도 어떻게 알고 “이것 싸요”라고 한국말을 하며 다가서던 노점상을,스위스 알프스산맥의 그 높은 티틀리스봉 케이블카 정거장 벽에도 ‘나 왔다가요’라는 우리 글을 보고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던 게 엊그제의 일이다.그러나 지난 1일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머물고 있는 버킹검궁 주변 그많은 사람 속에서 한국인은 눈을 씻고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우리의 현주소가 이런 터에,우리도 예산이나 써대는 겉치레가 아닌 실질외교여야 한다.그런 점에서 金대통령이 더 타임스지(紙)와 회견에서 “나는 결국 세일즈를 하러왔다.우리에게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으며,정리해고제가 도입되어 모두 열심히 일할 것이니 황금의 기회다”라는 ‘세일즈 선언’은 모두의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 공공건물 장애인시설 의무화/내년 4월부터/복지부 시행령 입법예고

    ◎기존건물도 2000년까지 갖춰야 내년 4월부터 새로 짓는 공공건물에는 반드시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 또 기존 건물이라도 정부 청사나 읍·면·동사무소,종합병원 등 공공성이 큰 시설은 2000년 4월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이같은 내용의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전용면적 300㎡ 이상의 식당 목욕탕 휴게소 등 공중이용시설,500㎡ 이상의 교회 성당 사찰 등 중교시설,도로,공원,공동주택,철도차량과 버스 등 교통수단,공중전화 등 통신시설을 신축 또는 증축하거나 용도를 변경할 때 장애인용 경사로 화장실 승강기 주차장 점자블록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2000년 4월까지 행정기관과 터미널 등 공공성이 큰 시설은 주출입구의 턱을 2㎝ 이하로 낮추거나 경사로를 설치하고 장애인용 승강기 화장실,점자 또는 음성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거나 유지 관리를 소홀히 하면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3천만원 범위에서 매년 한차례씩 편의시설 설치비용의 20%가 이행강제금으로 부과된다.
  • 개천에서 난 ‘조선족 용’(흑룡강 7천리:10)

    ◎한때 중국 행정부·군 최고자리 올라/“30∼40년대 한족간부와 항일운동·해방전쟁 참가 정치적으로 한자리씩 감투…” 흑룡강이 가음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도도한 강을 이루었다.가음하와 결렬하,오운하 등 26갈래의 지류를 품에 안아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기 시작했다.강 저쪽 러시아의 바스커워가 가물가물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극동 시베리아의 대철도가 지나는 화물집산지라서 중국쪽 흑룡강 대안은 가음통상구가 되었다. 그 흑룡강에는 20만t급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다.그런데 강폭이 넓은 가음현 경내의 흑룡강은 이름 그대로 용이 살던 곳인지도 모른다.강변공원에는 ‘공룡가족’과 ‘공룡세계’ 조각품이 들어선 것을 보면 태고때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그래서 가음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화석 발굴지역이라는 것이다.1915년부터 지금까지 가음현 용골산에서는 모두 6마리몫의 완형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러시아 레닌그라드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성 행정 최고간부도 배출 강변공원 입구에 세운 안내판에는 ‘중화민족은 용의 자손’이라는 글귀를 담았다.중화민족은 물론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용의 후손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족들은 뿌리깊은 용문화를 지키고 있다.음력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아직도 용춤을 추고 단오날에는 용주를 타는 민족이다.그리고 용은 지고의 권력을 상징했다.임금의 옷을 용포,얼굴은 용안,앉는 의자를 용상이라 하지 않았던가.우리 민족도 용을 우러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족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족의 용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물이다.그 권력은 타고난 것이거니와,세습이었다.그래서 여느 사람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을 한다.한족사회에서 조선족의 출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그런 조선족으로는 전 중앙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과 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 조남기상장을 꼽을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행정부와 군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선족들인 것이다. 흑룡강성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조선족중에는 전 성민족사무위원회 이민주임이 있다.그녀의 남편 진뢰는 성장이었는데,부가 항일투사였다.지금은 항일과 해방전쟁 출신의 조선족 간부들은 다 퇴직하고 새로운 조선족 세대들이 들어섰다.그러나 옛날처럼 정치적인 출세라기보다는 기술직과 전문행정직이 대부분이다.흑하시에 사는 퇴직간부 한정순씨(64)는 조선족들이 기술이나 전문직에서만 출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조선족 간부들은 한족 간부들과 어울려 항일이나 해방전에 함께 참여한 동지이자 전우였디요.기래서리 정치적으로 길이 열려 한 자리씩을 했던거우다.요즘은 사정이 달라져 한족 틈새에서 간부를 하자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퍽 어렸습네다.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도 다 갔디요.” 그도 역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족들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족이다.평북 신의주 태생인 그는 1958년 대퇴한 이후 흑룡강성 밀산현 농업개간국에서 근무하다 1964년 흑하시 당학교로 전근했다.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던 덕분에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아내의친척들이 남과 북에 산다는 이유로 조선간첩 누명을 썼다.당시 흑하시의 조선족 간부 13명 모두 간첩이 되었다.조선족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북한도 백안시했던 때라 기쁜 소식을 말하는 ‘해보’를 통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떻든 조선족은 연변과 같은 자치구역이 아닌 한족구역 공공직장에서 제1인자가 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용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이무기만 되어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조선족 위치가 변했다.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자리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치치하얼시에서 12년간 물자국장으로 일했던 성영석씨(58)의 회고담에는 그런 어려운 사연이 역역히 들어있다.소수민족이 다수민족 사이에서 홀로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했다. “물자국 직원은 600명이나 됐드랬디요.그런데 조선족은 내 혼자였디요.내가 총경리가 되고 나서리 밑에 있는 직원들이 상급기관에 고자질하기를 밥먹듯 합데다.그때 고자질 내용이 흑룡강신문에도 났디요.시에서 전문조사단을 통해 1년동안 검사를 해봤디만 헛물만 켠꼴이 되었댔습네다.내가 청렴하게 살았는데 걸려들 것이 있을리 만무했디요.내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부에 아첨 잘한 것도 아닙네다.오로지 실력과 청렴으로 버틴 것이우다.” ○물가국장 12년간 봉직 그는 1964년에 치치하얼 물자국에 배치되어 1982년 총경리로 올라갔다.그리고 1994년까지 꼭 12년간 국장을 지냈다. 그는 당시 북한의 유일한 공과대학이었던 김책공대 출신의 기술엘리트다.흑룡강성 용강현에서 태어나 내몽골 우란하오터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1960년에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했다.그런데 3학년때 북한으로 도망을 가서 김책공대에 시험을 쳤다.북한은 조선족을 무조건 받아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때라 김책대학에 들어가 매달 20원의 생활비도 받았다.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중국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날 흑룡강유역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개천의 용’은 겨우 두 손가락을 꼽을수 밖에 없다.막하현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0)과 흑하시 우전국 서리희 국장(53)이 그들이다.그런 현실을 보면 기술전문분야를 파고들지 않고는 조선족중에서 ‘개천의 용’이 나올수 없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2백만 조선족을 대변할 정치적 ‘용’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그 숙제는 조선족의 부단한 노력과 단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 LG전자 PDP 국내 첫 개발

    ◎세계 두번째/벽걸이 40인치 TV화면 상용화 박차/2005년 연 120만대 생산… 매출 1조2,000억 예상 LG전자가 국내 최초로 40인치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PDP는 2장의 유리기판 사이에 네온과 아르곤,제논 등의 혼합가스를 채운뒤 고전압을 가하면 방전현상으로 자외선이 방출되면서 형광체에 충돌해 컬러영상을 표시하는 새로운 발광소자로 벽걸이 TV화면 등 차세대 평판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다. LG전자가 개발한 PDP는 교류형 구동방식을 채택,화질이 우수할 뿐 아니라 유리기판을 포함해 전체 세트 두께가 15㎝에 불과하다.이는 전자총을 사용하는 기존 브라운관의 10분의1 정도이며 무게도 18㎏으로 일반 TV용 브라운관의 6분의1 수준이다. 특히 40인치 크기는 가격 경쟁력 때문에 LCD로는 대형화하기 어려워 대형 화면용 PDP의 수요가 크게 늘 전망이다.PDP는 상하좌우 시야각이 160도가 넘어 측면에서도 쉽게 화면을 볼수 있기 때문에 가정용 벽걸이 TV나 화상회의 등 업무용 표지판,주식거래 상황판,백화점제품정보 안내판 등의 화면으로 쓰이게 된다. LG전자의 PDP 개발은 일본의 후지쓰 NEC 등에 이어 국제적으로 두번째로 일본도 아직 상용화하기 전이다.미국 업체들은 업체간 컨소시엄을 결성해 연구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PDP를 차세대 승부사업으로 선정,2005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구미공장에 연간 1백20만대 생산시설을 갖춰 연간 매출 1조2천억원,세계시장 점유율 12%를 차지하는 세계 5대 PDP제조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 첨단 교통시스템 구축…짜증운행 없게(교통문화 후진 벗자:4·끝)

    ◎신호체계 개선·잘못된 표지판 정비 시급/교통흐름 막는 불합리한 차선 고쳐야 잘못 설치된 교통신호와 교통표지판,잘못 설계된 도로,아무렇게 그어진 차선….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체증을 유발시키면서도 그대로 방치된 구조적인 문제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조금만 고치면 될 일을 그대로 팽개쳐두고 있는 바람에 사고의 위험이 큰 것은 물론 운전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서울 여의도에서 마포대교로 진입하는 도로는 러시아워가 아니더라도 차량들이 뒤엉켜 있다.마포 귀빈로와 강변로가 만나는 곳도 강변북로를 타려는 차량과 여의도로 가려는 차량들로 온종일 혼잡하다.러시아워때 자유로에서 성산대교로 진입하는 지점,신촌에서 성산로 방향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한 차선 때문에 교통흐름이 원활치 못한 곳도 수없이 많다.영등포 로터리에서 신길동 방향 편도 3차선이 대표적인 예.1차선은 좌회전 전용이지만 거의 비어 있고,버스 전용차선인 3차선은 2개 차선을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폭이 넓다.그 결과 좁은 2차선 하나만을 사용해야 하는 직진 차량들로 거의 매일 정체가 이어진다. 교통 안내 표지판도 마찬가지.운전자에게 미리 미리 갈 방향을 안내해 주어야 하는데도 불쑥 안내판이 나타나기가 일쑤다.안내판의 크기도 작고 잘 안보이는 곳에 설치된 경우도 흔하다.이 때문에 운전자는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위험에 처하거나 쓸데없이 먼길을 돌아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지난 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3단계로 ITS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TS는 각 도로와 교차로에 설치된 차량 검지기와 폐쇄회로 TV 등을 통해 수집된 교통관련 정보를 중앙제어기에서 처리,각 상황판과 전광판 등에 즉각 전달해주는 것은 물론 차량흐름에 따라 교차로의 신호체계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 그러나 ITS와 같은 고가의 장비를 도입하기 이전에라도 얼마든지 교통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시민들의 항변이다. 자가운전자 양재용씨(31·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주엽동)는 “주변 교통상황이나 교통량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한 교통신호등과 표지가 곳곳에 너무 많다”면서 “종합적으로 교통흐름을 분석해 신호체계와 안내 표지판 등을 고치고 차선을 보완하면 지금보다 차량 소통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시인 예찬·고반룡의 무석(중국 문학의 고향을 찾아:13)

    ◎수려한 혜산­드넓은 태호 한폭의 산수화/중국의 10대화가 왕발 등 3인도 배출한 예향/고반룡 투신한 연못엔 ‘고자지수’ 안내판만 중국 강남의 들녘을 떠돌다가 산을 만나면 고향인듯 반갑다.넓은 들에 높은 산은 풍요와 운치를 상징하는데 그것들을 두루 지닌 곳이 무석이다.거기에 두개의 산이 있다.하나는 ‘강남제1산’으로 불리는 해발 328.8m의 혜산,하나는 겨우 74.8m의 석산,한때는 주석을 산출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그들은 형제처럼 동서로 좌정했는데 지금은 혜산의 제1봉으로부터 석혜공원까지 케이블카를 가설,그 품에 많은 고적과 원림을 안고 있다. 혜산과 석산의 동남쪽엔 중국 제3의 호수인 태호가 있다.2천400여㎢의 넓이,그 품에 48개의 섬을 안고,그 겨드랑이에 72개나 되는 묏부리를 거느리고 찰랑찰랑 강강수월래를 추고 있는 형국이다.거기다가 그 언저리에는 오·월과 범여·구천·서시 등의 유적과 전설이 주렁주렁하다. ○시·서·화 3절 겸해 그러니까 무석은 유산유수의 원점이다.언제나 자욱한 안개속에 태호는 사철 그림이다.굵직한 선에 감칠맛 나는 원이다.오밀조밀한 소주와 대조적이다.그래서인지 무석에는 화가가 많다.중국 10대화가로 꼽히는 동진의 고개지(345∼406)를 비롯해 원말의 예찬(1301∼1374),명대의 왕발(1362∼1416) 등 세사람 말고도 ‘말의 천재’라는 현대화가 서비홍(서비홍,1895∼1953)마저 무석 근교 사람이다. 그중에도 예찬은 시·서·화 3절을 겸했다.언제나 갈필에 표일한 구도,물이나 대를 빼놓지 못한 산수 40여폭에 청신하고 아담한 풍격의 시집 ‘청비각집’을 남겼다. 필자는 그를 끔찍이 좋아했다.그의 시화도 시화려니와 사람됨이 그랬다.그는 무석 매리의 지타촌 사람.지금 석산시청의 뒷마을 동정이다.그는 ‘청비각’이라는 장서각을 집안에 차릴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원말과 명초,군사반란을 일으켜 대주의 나라를 세운 장사성이나 명나라의 개국황제인 주원장의 부름에도 여러 차례 거절한 채 고고하게 살다가 몽골의 오랑캐와 조정의 벼슬아치가 싫어 그 나이 겨우 쉰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그는 그 많은 재산을 친지와 친척에게 산산이 뿌려주고 일엽편주에 올라 20여년이나 쓸쓸히 태호를 떠돌았다.지독한 가난속에서도 그의 시 한편 그림 한폭을 돈과 바꾸지 않은채 ‘우후공림’이나 ‘수죽거도’·‘오죽수석’같은 작품을 친구에게 맡긴 것이 오늘의 명작으로 남을 줄이야! 그에게는 까다로운 결벽증이 있었다.손님이 다녀가면 얼른 손님이 앉았던 자리를 걸레질했고,뜨락에 가득한 화초마저 물청소를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치가·사상가로 활동 그의 청고한 인격,속기를 거부하던 인품은 스스로를 학에 비유했으니,그의 대표작 ‘실학’에 잘 드러나 있다. 탁식소송태화봉 직장천지작반롱 불문정동귀화표 응어왕교입태공 행적종횡태석상 한루의구죽림중 청재아역염성부 장탄사승만리풍 (태화봉 소나무에 깃들여 먹이를 쪼며 바로 하늘과 땅을 새장 삼았거늘, 톰방톰방 물시계처럼,죽음으로 가는 소리 듣지말고, 짐짓 신선타고 하늘로 날아야지. 이끼 낀 돌에 오락가락 발자취, 쓸쓸한 다락은 지금도 대숲속에 묻혔거늘, 맑은 집에 사노니,나 또한 비린내 싫어, 만리 바람타고 훨훨 날아보았으면.) 그러나 예찬은 학이 되지 못한채 1374년,강음에 있는 일가집에서 병사,그뒤 고향 무석땅 동북 6㎞ 부용산 남쪽으로 이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무석사람으로 이 땅에 묻힌 명말의 정치가요 사상가로서 동림학파의 리더였던 시인 고반룡(1562∼1626)이 있다.고반룡 또한 도연명을 방불케 하는 유연자적한 전원시와 북송 성리학을 계승하여 주정사상론을 남겼지만 그의 절개 높은 생애가 우릴 뭉클케 한다. ○높은 비탈에 바람만 씽씽 그는 향리의 동림서원을 부흥,실학을 강론하는 한편 당시 환관으로 내정을 장악,부패와 횡포를 자행하고 있던 위충현의 엄당과 맞서 그를 탄핵하다가 끝내 반격에 몰려 잡히기 직전 후원의 연당에 투신 자살함으로써 끝까지 정의와 진리를 수호했던 사람이다. 필자는 무석에 닿자 서둘러 동정의 예찬 무덤을 찾았다.오래오래 흠모했던 방랑시인은 지금 석산시 청사에서 멀지 않은 용양중학뒤,유항초등학교 옆인 부용산 남쪽 기슭에 ‘원고사예찬묘’란 덩그렇게 큰 묘문안에 안장되었는데 말이산이지 약간 불룩한 언덕이었다. 진관의 무덤은 혜산 제2모봉,무석텔레비전 중계탑 아래,다시 순환도로를 건너 내리막 능선에 숨어 있었다.멀리 태호가 살짝 보이고 건너편 찬산을 굽어보는 곳에.벌써 900년전에 이승을 떠난 그 체백이 남아 있을까? 높이 2m에 너비 66㎝의 청석비에 ‘진용도묘’(용도는 시호) 4글자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지만 높은 비탈에 바람만 씽씽거렸다. 그 능선이 멈추고 청산공원이 열리는 곳에 고반룡의 유택,과연 이 고장 동림서원의 스승답게 넓고 아늑한 묘역이 있다.거기선 바람도 멈추고 햇볕도 쌓여 있었다.그러나 그의 자살현장만큼 나그네를 숙연케 하질 못했다.그때 1626년3월 투신했던 고반룡 자택의 연당,비록 그 형상과 주변은 변했을지라도 위치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지금 무석시 중산남로에 있는 강남중학의 운동장 북단에서 만난 겨우 열평 넓이의 연못,나무 잎새 모양의 콘크리트 물탱크,그 한복판에 ‘고자지수’라는 안내가 보였다.
  • 출국세 징수차질/시행 첫날/사전준비 부족… 납부여부확인 안해

    해외 여행객에게 1만원씩 징수하는 출국세(관광진흥개발기금)부과제가 시행 첫날인 1일부터 관계부처의 사전준비 부족 등으로 차질을 빚었다. 이날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 입구에는 ‘13세이상,64세이하 내국인 중 관광목적 출국자는 1만원의 관광진흥개발기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나 관계자로부터 납부 여부를 확인받는 여행객은 아무도 없었다. 출국세 징수 사실조차 모르는 여행객들도 상당수였고 별다른 제재도 없자 상당수 여행객들이 출국세를 내지 않고 탑승했다. 이 때문에 자진 납부자들과 여행사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낸 사람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무원칙한 징수제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별다른 시행지침 조차 못받은 공항 출국장 직원들은 “일일이 여행목적과 신분을 확인해 면세 대상을 가리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 「서유기」 저자 오승은의 회안(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0)

    ◎타동항 생가 연당에 주인닮은 청죽 꼿꼿이…/영원불후한 명성 불구 무덤가엔 잡초만 휘휘하고/거리는 온통 “탄신 100주년” 주은래 기념 플래카드가 비록 중국의 장배항 교수가 최근 「서유기」의 저자는 오승은이 아니라고 회의를 제기했지만 중국의 4대기서 가운데 「서유기」만큼 그 저자·생졸·저작연대·출생지·무덤에 대한 논쟁이 적은 것도 없거니와 「서유기」만큼 신마소설을 비롯한 사회소설·종교소설·기행소설·공상과학소설·우언소설 등의 다양한 성격 부여도 없을 것이다. 오승은(1504∼1582)의 행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중국 도처에 널려있는 명인들의 동상이나 입상은 겨우 그사람의 인상이나 풍격을 과장적으로 풍기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지금 오승은의 고향집이나 화과산 산구에 세워진 오승은의 입상은 400여년전 생존했던 실재 용모와 매우 흡사하다는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의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제작이기 때문이다. 그 입상을 세우기까지는 상당한 곡절이 있었다.1974년 겨울.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속에 모든 문화재가 닥치는대로 파괴되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들이 까뭉개지는 난장판이었다.그런 난리판에 회안. 마전향(회안) 이보촌의 오씨 선영으로 알려진 무덤 몇개가 도굴당했다. 그중 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 오국옹의 무덤으로 판명되었지만그 옆 무덤에선 관목만 파냈을 뿐 백골 한무더기를 고스란히 그 자리에 묻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관목은 당시 어느 중학교에 팔려서 창문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그런데 그 관목을 헐어 손질하다가 「오」자를 비롯한 글자들이 발견, 계속 추심끝에 그곳 중학교 역사교사들은 당판에 쓰인 글자들을 겨우 「형부기선사양오공지구」로 판독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혁이 끝나고 서서히 질서가 회복되던 1981년 8월,강소성청 문화재관리국은 그 오씨선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 위의 당판에 쓰인 열글자가 오승은의 마지막 문서직 관명임을 확인했고그 무덤에서 수습한 1남2녀의 유골을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에 보내 검증,그중 미골이 뾰족한 장렴에 키 1m60∼70cm,생존연령칠십몇쯤으로 보이는 남성의 유골은 오승은의 것이요,나머지는 초취와 지취부인의 것임을 각각 확인했으니 「서유기」연구에는 일대 개가가 아닐수 없었다. 오승은은 저승으로 떠날때 겨우 「회안부지」에 「서유기」의 저자라는 단 한줄로 남았지만 4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를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로 연구의 열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회안땅 하하리,소상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항운하가 지나가는 중원의 요충인 회안땅에는 본시 인걸이 많았다.옛날 한고조때 천하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한신대장을 비롯해 한나라의 대표적인 부가 매승, 한나라 말엽 건안칠자의 하나로 불리는 시인 진림,그리고 청말의 대표적인 풍자소설로 꼽히는 「노잔유기」의 저자 유악등이 이곳에서 낳거나 살았던 곳.그러나 그 모두를 몽땅 모아도 문학으로는 어찌 「서유기」한권을 감당할 것이며 정치하는 사람 모두를 내놓아도 어찌 죽은 주은래(1898∼1976)한 사람을 당하랴! 그는 회안사람으로 모택동을 도와 신중국을 세우곤 줄곧총리를 지냈던 제2인자요,또한 시인이었다. 필자가 오승은을 만나러 연운항에서 2시간반이나 버스에 터덜거리며 회안에 당도했는데 회안은 주은래 일색이었다. 거리에는 그의 「탄신100주년」을기념하는 빨강 플래카드가 물결을 치고,회안시 북교에는 수만평 규모의 호상공원으로 꾸며진 「주은래기념관」,다시 시내 한복판 서문대가 연도에는 주은래 생가가 옛날 반가의 풍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30년전, 대북에서 즐겨 탔던 삼륜차를 타고 회안시 북단에 있는 초호 지나 하하로 머리를 돌렸다. 오승은이 태어나서 예순살이 넘어 장흥현의 현승을 살아먹은 1년남짓 말고 줄곧 살았던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회안호텔에서 겨우 15분거리.하하는 들판.타동항이라는 골목에 접어들자 네모난 전통 가옥.동향 대문에는 「오승은고거」라는 횡편이 걸렸고,대문으로 발을 딛자 맨앞에 손님맞이의 객실,객실옆으로 오승은의 서재로서 불후의 명작 「서유기」를 썼던 「사양이」(사양은 회안의 옛이름이요,오승은의 호.이는 다락)가 있고,서재옆으로 대청,그 안에는 중국과학원의 검증으로 제작된 오승은의 반신 동상이 있다.그 옆으로 오승은이 거처했던 안방,안방 건너편에 사랑방.마당에는 작은 연당,연당에는 가산.가산에는 청죽 몇그루 꼿꼿이 서있는데 비록 불우하게 큰 벼슬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천궁 지부를 마음대로 출입하고 작은 이끗에도 굽히지 않던 신통과 오기가 보이는 듯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오승은의 무덤은 깜깜한 안개속이었다.이제 그 무덤이 확인되고 그 유골이 틀림없다는 그곳은 찾는 이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경항운하를 따라 남행 8㎞쯤의 도로에 이윽고 「마전공업단지(마전공업원)」라는 안내판이 보였다.거기서 좌회전하여 내를 건너 다시 미루나무가 이열 횡대로 선 언덕을 따라 남으로 1.5㎞쯤 걸었을때,왼편에 작은 마을.아무 팻말도 없었다.그 마을이 이보촌.곽대장.그러니까 두번째 방축 마을의 곽씨네 집성촌이란 뜻이겠다.마을앞에 묘문이 보였다.「오승은지묘」. 온 마을에 푸릇푸릇고개를 흔드는 밀밭,그 복판에 버드나무로 방풍림을 세우고 묘문안에는 아주작은 봉분 2기.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그러나 2기 모두 잡초와 잡목이 휘휘했다. 오승은의 묘앞에는 「형부기선사양오공승은지묘」라는 묘표.여기서 형부는 명나라 인종의 서출왕자인 형헌왕의 왕부요, 기선이란 왕부의예법을 관장하는 자문직,사양은 오승은의 관향을 말한다. 곧 왕부의 8품으로 말직인데 그것마저 증여의 관작으로 보인다.오승은의 만년 관운이 얼마나 소조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 미,도로표지판 훼손에 살인죄 적용/플로리다 검찰,청년 3명에

    ◎트럭·승용차 충돌 직접원인 제공 혐의 【로스앤젤레스 연합】 장난삼아 「일단정지」 표지판을 뽑아버린 미국 플로리다주의 청년 3명이 2급살인혐의로 종신형을 살 위기에 처했다. 교통 표지판을 뽑아가 침실 장식품으로 얹어놓곤 하는 미국인들의 도로안내판 훼손 풍조에 경종을 울린 이들 주인공은 토머스 밀러(20)와 니사 베일리(21),크리스토퍼 콜(20).지난해 2월 3명이 숨진 화물트럭과 승용차의 정면 충돌사고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아 19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검찰측은 이들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다. 『다른 차들은 무사히 지나간 곳에서 피해차량들만 사고를 당한 것은 표지판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님을 말해준다』,『뽑힌 표지판을 보고 신고도 않고 지나간 시민들은 책임이 없나』는 등의 반론도 만만찮다.
  • 에버렌드·드림랜드­워터파크/제철 만난 「물의 나라」

    경기도 용인 애버랜드의 캐리비언베이는 국내 워터파크의 원조. 지난 4월5일부터 실내 풀장과 유수풀의 일부를 운영해오다 지난 1일부터 실외 인공파도풀,슬라이드,샌디풀 등 야외시설도 오픈,본격적인 고객유인 작전에 나섰다. 우선 음수대와 파라솔을 대폭 늘렸고 안내판을 각 지역에 맞게 재정비,손님들의 편의를 도모했다.비치 발리볼장옆 피크닉지역에는 다양한 오락을 즐길수 있는 카니발장을 설치했다. 특히 수영장내에 시계가 없어 시간을 알수 없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시계를 설치했다.대형시계는 카리브해 풍의 디자인으로 고풍적인 맛을 느끼게 하는데 원내에서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도록 높은 위치의 벽에 4∼5개 설치했다. 또 모험놀이풀에는 대형 해골바가지속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시점을 알려주는 카운트 다운 시계를 보안,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최고 2m높이의 인공파도풀에서 펼치는 제트스키쇼와 서핑쇼,25m높이에서 펼치는 하이 다이빙쇼와 코믹 버드맨쇼 그리고 폴리네시안 민속공연 및 통기타 DJ쇼 등 다채롭고 풍성한 볼거리들을 펼친다. 개장시간은 평일에는 상오 9시30분부터 하오 5시30분까지,토·휴일에는 상오 9시30분부터 하오 7시까지.이용요금은 7월19일까지는 대인 1만9천원,소인 1만2천원,8월25일까지는 대인 2만7천원,소인 1만6천원이다. 교통편은 서울에서는 남부터미널 맞은편에서 좌석버스 500­1번,수역역에서는 시내버스 66번,좌석버스 600번,성남·분당에서는 시내버스 67번,좌석버스 670번을 이용하면 된다.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영동고속도로,마성 톨게이트를 거치면 에버랜드 팻말이 나온다. ◎ 서울 강북구 번동 드림랜드 야외수영장이 오는 15일 문을 연다.1만여평의 이 수영장은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있어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적격이다. 수영장은 대형 맘모스풀,정규풀,유아풀 3개가 있다.맘모스풀은 가로 세로가 70m×30m이며 정규풀은 50m×25m,유아풀은 25m×9m이다.스릴만점인 3단식 6레인의 물미끄럼틀 「하이 슬라이더」도 갖춰져 있어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다. 수영장 주변에는 조금만 야산이 있어 수영을 하다 지치면 숲속에서 휴식을 즐길수 있다.울 지난해 국내 최초로 선보였던 통나무 썬텐장도 다시 문을 연다.2층으로 된 통나무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인데 지난해에는 예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200∼3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썬텐장 이용요금은 별도다. 올해는 또 캘리포니아산 천연 미네럴 머드를 이용한 진흙 마사지장을 오픈할 예정이다.나무로 만든 집에서 미용효과에 탁월한 진흙 마사지를 하는 것인데 여성 고객들이 몰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드림랜드 가는 길은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시내버스는 34,34­1,32,161번,좌석버스는 731번이 있다.지하철은 4호선 수유역과 1호선 석계역에서 내리면 마을버스와 연결되며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미아삼거리에서 월계동방면으로 3분정도 가면 된다. 수영장 입장료는 어른 3천100원,중고생 2천800원,어린이 2천420원이다.수영장에 들어가려면 공원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하는데 공원 입장료는 어른 1천100원,중고생 900원,어린이 700원이다.
  • 기행문학 거장 서하객의 강음(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8)

    ◎기인의 거룻배 드나들던 선착장엔 물이끼만/험산심곡 떠돌며 쓴 「서하객유기」 실록문학의 백미/황산자락 전쟁유물에 처절한 비명소리 들리는듯 세상에는 닮은 꼴도 많다.나라의 넓이나 지역의 대소를 막론하고 남북의 대치가 아니면 동서의 갈등이 있다.땅덩이가 클수록 그 예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는 양자강을 두고 강남과 강북의 차가 현저하다.같은 강소임에도 남북의 차별은 심했다.소남사람은 소북사람을 깔보며 소북사람은 소남사람을 매끄럽다 흉을 본다. 소남사람들은 자기들이 중국에서 제일 잘 산다고 뽐을 낸다.그도 그럴것이 최근의 소득조사에서 중국 최부의 농촌으로 강소의 강음과 무석이 올랐는데 그 모두가 강남이다.그중에도 강음의 화서촌은 그 소득이 전국 최고,「강남제일촌」으로 불리는데 세대당 1년 저축고가 인민폐로 10만원대(한화 1백만원상당)라고 한다. 무석에서 정북으로 한시간쯤 달렸을때 오랜만에 산이 보였다.강음박물관을 돌아보고 바로 뒷산을 올랐다.황산이란다.황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서산,동쪽에 마안산,동남쪽에아산….모두가 양자강 남쪽 기슭에 물막이로 선 야산들.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오나라의 강토를 지키는 요새로서 그동안 태평천국,신해혁명,국공전쟁 등 근대사에 승패를 가름하던 격전지였다.지금도 황산의 정상에는 철근 콘크리트 9층의 망강루가 우뚝 솟았고,망강루 북녘 기슭에는 일찌기 아편전쟁때 영국함대를 노리던 포대가 남아있고,남쪽 산자락에는 국공전쟁때 홍군이 전공을 올린 기념으로 「해방군도강기념비」가 오벨리스크모양의 높다란 첨탑으로 서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필자는 망강루를 올랐다.굽이치는 양자강이 망강루를 허리삼아 휘감았다.포대 서원으로 강북의 정강을 잇는 장강대교의 공사가 한창인데 휘 한바퀴 돌아보는 안막에는 누런 황금 벌.과연 옥토 낙원으로 김이 무럭무럭한 느낌이었다.불현듯 아까 강음박물관에서 보았던 대상의 하얀 이빨,그 화석이 생각났다.2만∼3만년전의 그 화석이 글쎄 여기서 멀지않은 저쪽 청양땅에서 출토되었다니 이 땅의 속살은 얼마나 까맣게 익었을까? 나그네는 서둘러 강음을 떠났다.강음에서 다시 무석으로 돌아가는 길가 마진이란 마을이 가고 싶어서였다.겨우 20분쯤 달렸을때,왼쪽 노변에 아닌게 아니라 커다란 안내판이 우람하게 서있다. 「서하객고향­마진」이라고. 또 한번 필자의 본병이 도진 것이다.그것은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그 병 말이다.그 사람,서하객(1587∼1641)은 필자보다 몇곱절 역마살을 타고난데다 여행기는 물론 암석·고산·하천·화산등의 자연관찰을 통한 지리학 연구에 세상이 놀랄만큼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굉조,호가 하객이다.바로 마진고을 침당하옆에 있는 남양지라는 작은 부락에서 태어났다. 중국문학사에서 유기의 지위는 대단했다.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선비가 여행기를 통해 정치·사회를 관찰하는가 하면 자연지리를 기록함으로써 자기의 포부를 펴거나 우주의 섭리를 터득했다.그래서 시인 묵객치고 유기 한편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는 평생을 두고 벼슬길에 기웃거리지 않았다.스물두살때부터 시작해서 쉰다섯살,그가 죽을 때까지 꼭 34년동안,그는 단 한개의 지팡이와 한장의 이불을 메고 강소·절강·안휘·산동은 물론 멀리 섬서·호남·광동·광서·귀주,운남 등 16개성,더구나 험산심곡을 헤맨 산새요,원숭이요,물고기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는 분명,기인이었다.가만 앉아있어도 먹고 살 걱정이 없을만큼 넉넉한 살림임에도 그 따뜻한 집과 어진 아내를 마다한 채 한닢 거룻배를 타고 물길 닿는대로 강남과 영남을 떠돌더니 기암과 괴석에다 화산과 지진이 불시로 천지를 폭발하고 천지를 갈라버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서남지역의 험산준령을 밟았다. 우리나라 김정호 비슷하게 탐험적 떠돌이였던 그는 40여만자의 「서하객유기」를 남겼는데 아깝게도 원저는 2백만자가 훨씬 넘는 대작이었다.일기체로 기록된 그 유기는 인간의 극한을 그린 실록문학으로서 최고봉임은 물론 암석학·지질학·지도학의 기초를 닦은 과학서로도 그 의의는 파격적이다.특히 그는 유기에서 석회암의 침식현상인 캐스트(cast)를 발견했고,양자강의 원류를 곤륜산 남쪽인 금사강으로 단정한 것은 모두 지리학적인 발견으로 학술사에 기록된다. 무엇보다 그의 유기는 생동한 묘사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들 수 있다.광서·운남등지에 산재한 동굴이나 동굴속의 종유석,그 핍진한 소묘는 문학가의 상상과 과학자의 투시를 융합 성공한 것이다. 그는 동굴속의 종유석을 이렇게 기록했다. 「정측홀도수일엽,평기반공,외여당문,주적대,상하빙허,각수십장,권서현철,박제선시,엽간분개공대,야안지결지(여유일기이에서) (천장에서 갑자기 커다란 잎새 한장 거꾸로 달랑거렸다.반공에 달린 시렁이 밖으로는 문과 기둥을 마주 본 채 위 아래로 각각 수십길을 서로 기대더니 엷은 매미의 날개처럼 그렇게 널찍히 매달려 있고,잎새 사이마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은 마치 동그란 눈동자같았다.) 남양지는 들녘 복판에 있는 작은 부락.서하객의 고택은 물론 최근에 복구한 것이지만 기품이 당당했다.입 구자 네모꼴 가택이 200평은 족히 넘을 법한 민가.그는 여기서 낳고 여기서 성장했다.그의 34년에 걸친 탐험의 베이스 캠프도 바로 여기였다.그 탐험의 떠돌이는 갔지만 그의 손때가 묻고 그의 족적이 찍힌 두가지가 필자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하나는 그집 뜨락에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는 한그루 나한송과 또 하나는 그 집 대문밖 동쪽 100여m쯤 침당하옆으로 지금도 고색 창연하게 남아있는 선착장과 진솔 단출한 공수식 돌다리였다.하객이 평생토록 타고 다녔던 거룻배,그 배가 정박하고 출항하던 곳이 지금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희한했다. 그 두가지는 그 집 대문 서쪽 100여m쯤에 대궐처럼 높은 까만 기와 담장에 에워싸인 그의 무덤,「명 고사하객서공지묘」라는 묘갈에 큼직한 봉분,계화의 향기로 전중 단아한 묘역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 민족문화 경제성 되찾자/김주영 작가(서울광장)

    정부는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하고,수십년동안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희생되었던 문화재에 대한 일반의 인식에 대전환을 가져다줄 발굴과 보존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기로 만들겠다는 의욕이다.검증없이 도입된 저질의 외래문화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흐트러진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가치관의 전도,소비풍조의 무분별성,전통적 가족개념의 파괴,공동체의식의 우려할만한 훼손까지도 우리의 가치관이 정치와 경제논리에 무게중심이 얹혀있었으므로 겪게된 방황과 좌절이었다.견고한 문화유산의 보존이 경제발전의 기틀이 되며,지고한 목표라는 의식이 우리에겐 희박하다.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은,삭풍이 산야를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안방에 놓여진 질화로의 불씨와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있다.경제발전을 위해선 문화유산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좋다는 단순논리는,경제발전을 이룩한 다음에 우리에게 남아있어야 할 민족적 자긍심과 미래에 대한 또다른 포부는 어디서 찾아내야 하는가라는치명적 의문을 낳게한다.그래서 문화재를 올바르게 보존하자는 일들이 과연 한가로운 일이며,몇몇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분별력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문화유산 보존의식 희박 문화적 바탕이 없는 국가는 결코 올바로 설 수 없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13세기 동양의 한 위대한 정복자의 행적에서 읽고 있다.그가 바로 징기스칸이다.만주벌판에서 일어선 여진의 후예였던 그는 중국대륙을 질풍노도와 같이 가로질러 동유럽 정복에 착수하였다.당시 유럽인들은 밤마다,징기스칸의 군대가 다시 나타날까 전전긍긍하였다.그가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말타기에 능숙한 용맹스런 군대와 그 군대의 보급창 역할을 하였떤 양떼들이 항상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유목민들에겐 불행하게도 문화의 바탕이 없었으므로 정복한 땅을 지킬 수 없었던 불운을 맞았다.국가를 지탱하는 힘의 중심 논리가 어느 바탕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풍남토성 안에서 건축되고 있는 아파트 공사장의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귀중한 문화유적지에 치밀한 사전조사도 거치지 않고개발허가를 해준 행정당국이나,토기들이 출토되고 있다는데도 그런 일이 없다고 버티는 현장의 목소리는 우리를 흥분시킨다.경향각지에 흩어져 있는 개발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가당찮은 소문들을 우리는 끊임없이 듣고 있다..많은 작업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둘러 그 출토의 증거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그 사실이 언론에라도 보도될라치면 그로써 격게될 기업의 재정적 손실이 두렵기 때문이다.어디 그뿐인가.경부고속철도의 경주통과를 둘러싼 정부의 부처간,그리고 민간의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끝없는 갑론을박도 그동안 우리가 문화재를 얼마나 하찮게 보아왔는가를 보여준 부끄러운 사례였다. ○사전조사없이 개발 허가 한가지 사례가 또 있다.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시켜주는 작업의 일환으로,전국의 문화재 안내판을 중학생 수준으로써도 금방 이해할 수 있도록 고쳐나가는 일이 그것이었다.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보수를 차치하고 필자도 참여했었다.그 일에서 필자는 〈사지〉라는 어려운 한자말 대신〈절터〉로,〈석불〉을 〈돌부처〉로,〈일원〉을 〈둘레〉따위로 고쳐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었다.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담당직원의 대답은,무슨 위원인가 하는 분들이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사리와 분별,하고자하는 작업의 골자를 생각하기 전에 권위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피해의식이 앞섰던 결과다.이런 무분별하고 독선적인 문화규제가 곧 우리 국민의 문화적 긍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도 문화유산의 해인 이 시점에서 눈 똑바로 뜨고 극복해야 할 과제중의 한가지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전국민적 공감대가 설정됨으로써 그 추진력을 노릴 수 있다.그것이 문화의 향유권을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당산철교 폐쇄… 셔틀버스 운행 첫날/시민질서의식 돋보였다

    ◎승객들 전철역앞 수십m 장사진 “불편감수”/지하철 이용줄고 성산·양화대교 체증 가중 서울 당산철교 철거로 지하철 2호선의 순환 운행이 중단됐으나 이용객들은 셔틀버스를 줄지어 기다리는 등 불편을 감수하는 시민의식을 보였다. 신정연휴 이틀째인 2일 지하철 당산역 및 합정·홍대입구역에 마련된 무료 셔틀버스 정거장에는 승객들이 수십여m씩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서울시에서도 버스 30대를 투입,승객들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그러나 합정역 입구에는 지하철 운행중단 안내판을 설치하지 않아 일부 시민들이 지하 역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등 서울시의 무성의도 드러났다.또 평소 휴일에 비해 지하철 2호선의 이용률이 크게 떨어졌으며,당산 철교 주변의 성산대교와 양화 대교의 교통 체증도 가중됐다. 당산역에는 상오 한때 200여명의 지하철 이용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나와 혼잡을 빚었다. 상오 11시30분쯤 합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역사까지 내려갔던 일부 시민들은 『지하철 운행중단 사실을미처 몰랐다』며 『역 입구에 큼직하게 운행중단 사실을 알렸어야 했다』며 준비 소홀을 나무랐다. 상오 11시 10분쯤 홍대입구역 정거장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김치현군(20·연세대 상경계열)은 『서울대 입구 역까지 가야한다』며 『빨리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셔틀버스 운전사인 신촌운수 소속 이권주씨(45)는 『당산역에서 손님들이 한꺼번에 많이 타려고 하는 바람에 뒷문까지 열어주었다』며 『일률적으로 되어 있는 배차 시간을 지하철 운행간격인 6분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는 3일에는 상오 7시부터 9시까지 셔틀버스를 1분 간격으로 배차한다.서울시는 앞으로도 셔틀버스 이용객이 많고 왕복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리면 배차 간격이 1분인 「혼잡시간대」를 상오7시부터 9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김원구 서울지하철공사 운수계획부장은 『당산∼합정역을 왕복하는데 26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으나 3일부터는 30분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출근 시간대에 운행시간이 지연되면 예비차량 10대를 추가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신한국 이경재 의원/매서운 질문·대안 제시 돋보여(국감인물)

    공보처차관을 지낸 국회 문화체육공보위 소속 신한국당 이경재 의원의 질문은 매섭다.또 문제점을 따지고 대안을 내놓는 등 열심이다.여당간사라 어찌보면 운신의 폭이 작은데도 「방패막이」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지난 공보처 국감때는 선진국의 실례를 들어가며 방송위원구성,정책반론권문제 등 통합방송법에 대한 야당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주요 논거였다. 그러나 이의원은 자기가 한때 몸담았던 공보처에 대고 『세계 일류국가를 향한 전문기구와 프로그램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또 WTO체제 출범에 따른 방송프로그램 수급 불균형대책,수출입 역조현상 등을 무섭게 따졌다. 그는 기자출신답게 「당론옹호와 정부비판,그리고 대안제시」라는 3박자가 조화를 이루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이다.8일 관광공사에 대한 질의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작은 것 부터 개선을」이라는 기치로 도로 안내판의 개·보수,중급호텔의 서비스 개선,식당의 질 향상 등 각종 대안을 제시할 생각이라고했다. 이의원은 『첫 무대인 이번 국감의 목표는 국정에 도움이 되는 질의와 대안제시』라고 말한다.〈양승현 기자〉
  • 「생활속의 동물사랑」 실천을/윤신근 동물보호연 회장(발언대)

    한동안 신문지상을 가득 메웠던 한국관광객들의 보신관광은 어찌보면 한국의 유아교육,어린이교육으로부터 그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어려서부터 보편화되어야 할 「생활속의 동물보호」가 철저히 외면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적힌 막연한 「동물보호」「자연보호」는 어린이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보호 교육이었다.이렇다보니 어린이들은 대수롭지않게 동물보호를 생각한다.어찌보면 당연하다.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동물보호에 대한 시험문제이다. 이들이 커서 어른이 됐다고 치자.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외야했던 「동물보호」가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겠는가. 곰을 잡아먹는 보신관광이 아무 죄의식없이 실행에 옮겨지는 이유가 바로이 때문이다.그럼 미국이나 유럽에선 동물보호에 대한 어린이 유아교육은 어떤식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필자는 여기서 미국의 한 동물보호재단의 초청으로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현지의 동물보호 모습을 소개할까 한다. 한마디로 이들의 동물사랑은 「생활속의 동물사랑」이었다.현지 동물원을 보자.이곳의 동물원은 동물과 인간을 최대한 접근시켜 놨다.안전을 이유로 가능하면 멀리 떨어뜨린 한국의 동물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국인들은 이들 동물들과 지척에서 호흡하고 느낀다.어린이들도 역시 마찬가지.노루 사슴 타조 등은 물론 퓨마 살쾡이 등 사나운 동물들과도 아주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코끼리와 코뿔소 우리 앞 풍경이었다. 코끼리 우리 앞에는 잘려나간 상아와 함께 「인간의 탐욕이 이 코끼리의 아픔을 잘라냈습니다」란 문구의 설명서가 붙어 있다.또 상아로 만든 장신구들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코뿔소 우리 앞에도 「동물보호 차원에서라도 이같은 물건들을 사용하지 말자」는 문구의 안내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이들도 부모들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상아에 고정시킨다. 동물보호를 외치는 1백권의 책보다도 더 큰 감동과 강한 인상을 줬을 것이다. 생활속의 동물보호는이렇게 이뤄진다.바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인근에서 새묘기 쇼장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다.이곳 역시 생활속의 동물보호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앵무새들은 어린이들에게 동물보호를 인식시켜 준다.앵무새들은 「새보호」「동물보호」를 연신 외친다.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인간과 동물은 따로 일수가 없다」 「동물이 고통을 당하면 인간에게도 피해가 온다」등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겐 말로하는 교육이 아닌 보고 느끼는 실질교육이 된다.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을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어린이들은 교과서에서 동물을 배우지 않는다.그저 평범하게 지척에서 동물들을 보고 느끼며 동물사랑을 배운다. 우리나라도 이들의 현명한 동물보호를 배워야 한다. 이제 시간이 없다.어느샌가 세계속의 주역으로 떠오른 한국.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그만큼 책임도 따른다.우리가 「동물학대국」으로 낙인찍힌다면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다.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해 치료해주고 잘 먹이고 애지중지하는 과잉보호가 바로 동물보호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어린이들이 진정한 동물보호를 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이쯤되면 한국사회에 이같은 보신관광은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 여의도 샛강 공원조성/내년까지/「지하수 폭포」·자연생태공간 마련

    여의도 샛강(63빌딩∼국회의사당) 15만6천7백평이 97년까지 수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소장 전찬명)는 22일 홍수때를 빼곤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으로 운동장과 주차장으로 일부 활용될 뿐 대부분 방치돼 있는 여의도 샛강을 올해부터 2단계로 정비,수변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중 모래를 파내는 등 길이 4.6㎞의 샛강 바닥을 정비하는 한편 상류쪽에 펌프장을 설치해 물이 1년내내 흐르도록 한다.또 샛강 중앙에 지하철5호선 한강 하저터널구간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루 평균 2천5백t의 지하수를 이용해 계단식 폭포를 만든다.이와 함께 수변공원을 일주하는 자전거 전용 순환도로 6.8㎞를 개설한다. 2차연도인 내년에는 여의교∼서울교사이 둔치에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한다.자생식물 80종을 심고,관찰로및 안내판등을 설치한다.또 수생식물을 심고 개구리·잠자리 연못도 만든다. 올해 23억원,내년에 10억원 등 모두 33억원이 투입된다.〈강동형 기자〉
  • 종로구/“구민을 고객으로” 행정서비스 실천(민선자치 1년)

    ◎각종 고지서에 담당자명 기재… 「실명제」 도입/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 많아 재정 어려움 지난 1년간 종로구가 내건 모토는 「주민은 우리의 제일고객」.친절을 강조하는 정흥진 종로구청장의 지론이 반영됐다.구민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일반기업처럼 철저한 고객관리를 하자는 것이다.이 결과 구가 자랑하는 민선자치 1년의 제일성과는 행정서비스향상이다. 구청을 찾는 민원인이 처음 접하는 것은 모든 사무실 앞에 놓인 담당직원의 얼굴사진과 이름을 적은 안내판.민원인은 손쉽게 담당직원을 찾아 어려운 점을 토로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또 각종 고지서 등에 반드시 담당자의 이름을 기재했다.이른바 행정실명제다. 구민을 위한 서비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처리가 불가능한 민원은 담당직원이 민원인을 직접 방문해 이유를 설명했다.행정착오는 즉시 바로잡은 뒤 구청장 명의의 사과공문을 보냈다.처리절차가 복잡한 민원에 대해서는 처리상황을 수시로 통보했다.신고만으로 끝나는 민원도 처리결과를 공문 또는 전화로 알려줬다.호적등·초본,건축물관리대장,토지대장,임야대장 등 구청에서만 처리하던 민원서류도 가까운 동사무소에서 FAX를 통해 발급받도록 했다. 이처럼 민원을 적극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주민의 소리에 적극 귀를 기울였다.「종로신문고」와 「종로구민의 소리」,구청장실에 설치된 민원전용 FAX,동사무소 등에 놓은 「종로구민의 소리함」등은 주민의견을 여과 없이 듣기 위한 것이었다. 또 도심공동화(공통화)현상을 막기 위한 캠페인도 활발하게 폈다.「떠나는 종로에서 돌아오는 종로로」라는 슬로건은 이를 위한 노력을 반영한다. 구는 그러나 20여만명에 불과한 상주인구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아 엄청난 행정수요를 떠안고 있다.하지만 상주인구는 50만명에 못미쳐 부구청장의 직급이 3급으로 묶여 있다.따라서 직원수도 다른 구청에 비해 턱없이 적다.재원 또한 넉넉하지 못하다.사업다운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상급기관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 일쑤다.구의 노력만으론 풀기 어려운 과제다.〈문호영 기자〉
  • 남산 3호터널 오늘부터 부분통제/보수공사로 새달까지

    ◎교통 체증 예상… 우회 유도키로 서울시가 남산 3호터널의 전면 보수를 위해 1일부터 2개월간 1개월씩 교대로 2개 터널 중 1개 터널의 교통을 통제한다.왕복 4차선이 2차선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또 오는 9월 실시되는 1·3호 터널의 혼잡통행료 징수를 위한 요금소 설치공사도 이 기간에 실시할 예정이어서 서울도심의 교통난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30일 『남산 3호 터널의 구조물 정밀 안전진단과 조명시설 개선을 위해 3호 터널의 2개 터널 가운데 시내 외곽 방향의 통행을 7월1일부터 한 달간 전면 금지하고 도심 방향은 8월 한 달간 통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호 터널의 통행이 24시간 전면 금지되는 것은 지난 78년 3월 터널 개통 이후 처음이다. 서울시는 터널 통제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광화문 주변과 반포로 등 3호 터널과 연결되는 주변 도로 23곳에 안내판을 설치,소월길과 한남로 등으로 유도하기로 했다.〈강동형 기자〉
  • 「건강한 고장만들기 운동」 추진/당정,시군구별 희망사업 접수

    ◎주민 개발의욕 부축… 지역건설 활성화/지역박물관 건립·이벤트 개발 정부와 신한국당은 15일 지방화시대 이후 주민들의 지역발전 의욕을 북돋우고 지역건설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역사박물관을 건립하고 각종 이벤트를 개발하는 등 「건강한 고장만들기운동」을 전국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약용 선생 등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건립과 생가복원에 나서는 한편 장보고축제와 도자기 대축제,고산 윤선도 탄생기념 시조짓기행사 등 역사와 지역특성을 살린 기념행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손학규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지방화시대가 열린이후 주민들의 지역발전 의욕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지역센터 가꾸기와 역사와 전통 가꾸기,청년정주사업 추진,지역특성상품 만들기 등 4대 사업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정부측과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무부는 오는 7월말까지 시·군·구별로 희망사업 신청서를 접수받은 뒤 10월 중순까지 최종 사업종목을 결정할 방침이다. 당정은 또 지역특산물과 전통음식 등 경쟁력 있는 유무형자산을 발굴,상품화하고 전통음식점을 지정,육성하며 특색있는 가로수 심기와 마을유래 안내판을 설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 시리즈를 마치며(출발 2002년 월드컵:11·끝)

    ◎공중도덕 준수 선진질서 도약 기회로/경기시설물보다 시민의식이 성공 열쇠/세계가 유리와 일 국민 주시… 미덕 보여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경기장 안에 있는 안내표지판 9개는 모두 심하게 훼손돼 있다.못으로 일련번호를 심하게 긁었거나 낙서를 해 안내판만 보고는 경기장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설치한 1백91개의 야외조각품들도 사진촬영을 하려고 올라타거나 기대 선 관람객들 때문에 흉물스럽게 파손됐다. 올림픽 공원 시설관리과 김진희씨(42)는 『월드컵 유치로 명실공히 스포츠 선진국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공공시설물 이용에 관한한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우리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공공도덕 의식이 부족한 것은 근대화과정에서 「금권」의 중요성에만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양보의 미덕,즉 우리라는 공동체적 개념에 인색하다는 것이다.지하철에서 노약자나 아이를 업은 부녀자에게 쉽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틈만나면새치기 하려는 이기심이 구체적인 예다. 이런 맥락에서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는 하드웨어(시설물) 보다는 소프트웨어(시민의식)에 달려 있다는데 모두가 공감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는 「공공질서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가 「법준수(Law Obedience)」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지금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반정권 의식이 반질서·반공권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과적차량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거칠게 몸으로 항의하는 운전사들을 종종 보는데 외국 같으면 바로 수갑을 채웁니다』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규제에 순응해야 하며 불편한 것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대목도 고쳐야 할 점이다.간혹 발생하는 경기장 난동도 이와 무관치 않다.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는 조급성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이용필 교수는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에 비추어 2002년 월드컵도 성공리에 끝낼 수 있다고 낙관한다.경기장 무질서 등이 하루아침에 개선되지는 않겠지만 꾸준한 캠페인과 교육,민간단체의 활동 등이 합쳐지면 좋은 결과를 맺을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우리 특유의 무뚝뚝함이 불친절로 비쳐지기가 일쑤다.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상당수 외국인들의 첫 인상은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관청을 들른 외국인이 영어가 숙달된 상담원이 없어 낭패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호주출신의 선교사 엘렌씨(30·여)는 이른 아침에 물건을 사러 택시를 잡으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다 허탕을 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엘렌씨는 「여자를 첫 손님으로 태우면 재수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택시기사들이 꺼린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황당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과 공동개최가 결정됐기 때문에 싫든 좋든 일본국민과 비교가 됩니다.전 세계가 주목할텐데 일본 국민보다 우리가 못하다는 평가가 나와서는 안되겠지요』YWCA 홍정혜 사무총장은 지난 88 올림픽 때의 질서의식을 다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월드컵도 훌륭하게 치를 것이라고 자신했다.〈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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