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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기증 미술품 효과... 양구 박수근미술관 관람객 북적

    삼성 기증 미술품 효과... 양구 박수근미술관 관람객 북적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은 삼성이 기증한 미술품으로 ‘아카이브특별전’을 열며 대박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박수근미술관은 27일 삼성이 기증한 박수근 화백의 특별 작품전을 보기 위해 하루 200~300명씩 평소 10배가 넘는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30분 단위로 10명씩만 관람실 입장을 허용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사전 예약이 조기 마감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미술관의 평일 기준 하루 관람객은 20~30명에 그쳤다. 하지만 특별전 첫날인 지난 6일에는 평일임에도 300여명이 미술관을 찾은데 이어 이후에도 평일 180여명, 주말·휴일에는 280여명이 방문했다. 특히 지난 19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하루 360여명이 찾아 특별전이 시작된 이후 하루 최다 관람 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수근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만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어린이는 무료이다. 춘천·홍천·인제·화천 등 인근 호수문화권 주민들은 50% 할인되고, 경노·장애인들은 무료다. 미술관은 이달 6일부터 오는 10월 16일까지 제1전시관에서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를 주제로 열리는 아카이브특별전을 열고 있다. 특별전에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가족이 기증한 ‘아기 업은 소녀’, ‘한가한 오후’ 등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 등 18점을 포함해 기존에 소장하고 있던 ‘나무와 두여인’(유화), ‘빈수레’(판화) 등 박 화백의 작품 61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는 박 화백의 안경과 인주, 인장 등 유품과 삽화가 실린 잡지 등 화백의 기록물들 35점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영현 미술관 큐레이터는 “제2전시실(박수근 현대미술관)과 제3전시실(박수근 파빌리온)에서는 같은날 시작한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 전시전이 오는 9월 26일까지 함께 열리고, 별도의 공간인 어린이미술관에서는 어린이 미디어아트 체험 전시공간으로 상시 박수근 동화와 원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구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군부대 찾은 민주·국민의힘, 기동민 “훈련소의 시간은 아직 쌍팔년도”

    군부대 찾은 민주·국민의힘, 기동민 “훈련소의 시간은 아직 쌍팔년도”

    국회 국방위원들이 군 부실급식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방위원들은 26일 오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찾아 급식 현황과 방역 조치 등을 보고받았다. 같은 시각 국민의힘 소속 국방위원들도 경기 화성의 육군 51사단을 방문해 신병 교육 시설과 병영 식당, 해안경계 현장을 점검했다. 이날 민홍철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기동민 국방위 여당간사, 설훈·김병주 의원 등은 육군훈련소에서 급식실태를 점검했다. 민주당 국방위원들은 육군 훈련소의 생활관을 찾아 숙소, 화장실, 샤워장, 목욕탕 등을 살펴봤고, 장병들이 먹는 그대로 점심 급식도 받았다. 이날 현장을 찾은 기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시쳇말로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고들 하는데, 육군훈련소의 시계는 35년 전에 멈춰버린 듯 했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또 “그럴듯한 말을 쓰자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현장이었고, 쉬운 말로 풀자면 훈련소의 시간은 아직 쌍팔년도였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장병들이 식.의.주 문제에 대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 전투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국방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우선할 것인가라는 관점의 전환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51사단을 방문한 국민의힘 국방위 소속 의원들도 부실 급식 논란을 집중 점검했다. 이들은 군의 급식 인원, 예산편성, 지휘관 대응 등에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날 한기호·이채익·강대식·신원식 등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육군 51시단 예하 부대를 방문해 급식 현장을 살펴봤다. 현장에서는 특히 인원 부족 문제가 지적됐다. 한기호 의원은 “현장을 보니 150명분의 취사를 하는데 단 2명이 했다. 조리병 편성 자체가 사실상 잘못돼 있는 것”이라며 “민간인 조리사를 운영한다지만 임금이 싸고 힘드니 안 오려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급식 단가 인상을 강조했으나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로나19에 따른 예산 지원도 불충분했다. 격리된 병사들의 경우 1회용 식판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별도의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각 지휘관들이 운용비를 짜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원은 “급식 부실을 막으려면 “인원과 예산 편성, 지휘관의 대응까지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라며 “향후 이런 부분들의 개선책을 국방부에 요구하고 끝까지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근로자 시급 6.1% 줄어 1만 9316원… “회복에 상당 시일 소요”

    근로자 시급 6.1% 줄어 1만 9316원… “회복에 상당 시일 소요”

    정규직 시급 2만 731원으로 6.6% 감소비정규직도 3.0% 줄어들어 1만 5015원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 72%로 2.7%P↑저임금 근로자 실직해 평균 임금 오른 셈‘300인 이상·미만’ 정규·비정규 시급 큰 격차 안 장관 “자영업자·청년 개선세 더딜 듯”코로나19 유행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해 전체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총액이 전년보다 6.1%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축소됐지만, 코로나19로 위기에 내몰린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직해 비정규직 평균 임금 수준이 올라간 영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25일 발표한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 근로자 시간당 임금총액은 1만 9316원으로 전년 같은 달(2만 573원)보다 6.1% 줄었다.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2만 731원으로 6.6% 줄었고, 비정규직은 1만 5015원으로 3.0% 감소했다. 시간당 임금 감소는 코로나19 영향 외에도 지난해 6월 근로일수가 전년 같은 달보다 3일 늘어 근로시간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월급제 근로자는 근로일수가 늘어도 월급에 변화가 없어 근로일수가 증가하면 월급을 근로시간으로 나눈 시간당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72.4%로 전년 같은 달(69.7%)보다 2.7% 포인트 상승하기는 했지만 저임금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을 이탈한 결과로 풀이된다.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을 100%로 봤을 때 300인 이상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68.9%, 300인 미만 정규직은 57.3%, 300인 미만 비정규직 44.5%로 여전히 격차가 컸다. 4대 보험 가입률은 고용보험 90.3%, 건강보험 91.1%, 국민연금 91.3%, 산재보험 97.8%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비정규직의 4대 보험 가입률은 소폭 상승했지만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가입률은 각각 64.9%, 61.7%에 그쳤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74.4%였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이날 4차 고용정책심의회에서 “3월부터 취업자 수가 증가로 전환되면서 고용 충격으로부터 점차 회복하고 있지만 회복 과정에서 업종·연령 등 부문별로 회복 속도 격차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안 장관은 특히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컸던 자영업자, 청년(30대), 대면서비스업은 개선세가 더딜 수 있다”면서 “경기가 개선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 상황이 위기 이전으로 회복하기까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31개월, 2008년 금융위기 때는 16개월이 걸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편의점에서 산 죽 뿌리고서 “왜 토하냐”...돈 뜯어낸 택시기사 구속

    편의점에서 산 죽 뿌리고서 “왜 토하냐”...돈 뜯어낸 택시기사 구속

    만취 승객이 택시에 구토하고 기사를 폭행한 것처럼 꾸며 합의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낸 택시기사가 구속됐다. 25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2019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승객이 차 안에서 구토하고 자신을 폭행한 것처럼 속여 22명으로부터 약 1290만원의 돈을 받아낸 혐의(공갈)로 60대 택시기사 A씨를 구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유흥가에서 완전히 취한 승객들만을 노려 태웠다. 승객이 잠들면 A씨는 편의점에서 죽과 고추참치 통조림 등을 사서 토사물처럼 만들어 차에 뿌린 뒤 승객을 깨워 “왜 택시 기사를 때리고 차 안에 토를 하냐”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합의금을 요구했다. 그는 계좌이체 등의 방법으로 적게는 15만원, 많게는 120만원의 돈을 받아냈다. 승객이 블랙박스 확인을 요구하면 A씨는 핑계를 대며 보여주지 않았다. 승객이 ‘때린 적이 없다’고 항의해도 “안경이 부러졌고 팔도 아프다”며 잡아뗐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A씨가 승객과 시비가 붙어 112 신고한 사건을 수사하다 택시 블랙박스에서 A씨의 수상한 행동을 포착했다. 이후 A씨의 계좌 거래 내용, 택시 운행 기록 등을 토대로 피해자들을 특정해 범행 일체를 밝혀낸 경찰은 지난 22일 A씨를 구속했다. 수사 초기 A씨는 자신의 범행을 일부 부인했지만 확보된 증거들을 보고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승객이 술에 취해 기억을 잘 못 하는 상황을 이용한 범죄”라며 “기사의 일방적 주장을 듣고 돈을 건네지 말고 블랙박스 확인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선글라스 자외선 차단률 표기 의무화

    앞으로 선글라스 제조·수입업체는 자외선 차단율을 표시해야 한다. 선글라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외선 차단인데 현재 안전기준은 제품에 ‘자외선 투과율’을 표시하도록 해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선글라스, 안경테 등 생활용품과 어린이 제품을 소비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국제표준에 맞춰 안전기준을 개정한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선글라스는 제품 정보에 ‘자외선 차단율’을 표시해야 한다. 현재는 시험 측정 수치가 ‘자외선 투과율’이기 때문에 차단율을 표시하지 않아도 됐다. 니켈 용출량, 치수도 시험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출시하게 했다. 현재 13세 이하 어린이용 선글라스와 안경테는 안전성을 확인한 후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성인용 선글라스와 안경테는 어린이용에 비해 안전기준이 한 단계 낮은 ‘안전기준준수’ 품목으로 KC 마크를 부착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부는 또 선글라스와 안경테의 중금속 시험 규제를 완화 했다. 선글라스·안경이 금속테인 경우 중금속 용출량(0.5 ㎍/㎠/week 이하)을 규정하고 있는데, 안경테 전체를 검사하는 대신 피부에 닿는 부분만 절단해서 시험하도록 해 제의 안전성 확보와 업계의 부담을 덜어줬다. 자동차용 휴대용 잭 안전기준 성능시험 방법도 개선했다. 현재는 성능시험 시 최대 사용하중의 120∼150%를 가해 무게를 견디는 성능(내하중성)을 확인하고 있다. 현재 안전기준은 무게추를 이용해 하중을 가하도록 하고 있는데(최대 30톤), 무게추를 수직으로 쌓았을 때 높이가 10m를 넘어 시험 자체가 위험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하중시험 시 무게추(질량, kg)뿐만 아니라 성능시험이 용이한 유압기계(힘, N)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재질과 치수 요건도 완화해 업체가 신소재를 개발하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안전기준은 2021년 9월 1일부터 시행하되, 자동차용 휴대용 잭은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년 6월 1일부터 시행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다시 페미니즘을 위하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다시 페미니즘을 위하여

    내가 알기로 페미니즘을 비롯해 현대 세계관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하며 그 이론은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한다. “왜 동양의 가치관과 존재를 서양이 규정하지?” 세상의 중심이 유럽,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시절이 있었다. 동양에도 사람이 있고 세계관이 있지만 세계 지배자로서의 서양이 나서서 동양의 이미지와 존재를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동양은 그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 교화 대상이 되고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억압했다. 타인의 의도에 따라 강제로 규정된 존재는 늘 슬프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돼도 그게 내 모습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 속기를 발명한 티로는 평생 키케로에게 충성했다. 그게 노예의 본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폭풍의 언덕’의 흑인 하녀 넬리도 백인이 정해 준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킨 ‘매직 니그로’(magic Negro), 즉 착한 흑인으로 유명하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관의 중심이 양반, 남자였던 탓에 ‘현모양처’, ‘순애보’의 이름으로 남성의 보조 역할로서 여성상을 강요당한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의 출간이 1978년. 동양, 흑인, 여성을 비롯해 약자,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 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구 역사에서 19세기까지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였고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것도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자의 왜곡된 논리, 강요된 세계관을 걷어내고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엉뚱한 핍박을 당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라며 거부하고, 페미니즘 교육을 한다며 교사를 청원에 올리고, 심지어 손가락 모양 때문에 광고를 공격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메신저를 공격한다고 했던가.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도 “페미니스트에게 실망했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현상에 대해 걱정한 바 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잘못했다고 페미니즘을 공격할 게 아니라 그 실수로부터라도 보호해야 한다. 여성도 군복무한 뒤에 평등을 논하자는 논리는 더 당혹스럽다. 페미니즘은 역사적 지배자로서의 남성 중심 세계관을 벗어내고 여성 스스로 자아를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군대야말로 남성이 남성을 모델로 만든 철두철미 남성 중심 세상이다. 남자들이 만든 세상은 온통 남자들의 색안경으로 덧칠이 돼 있다. 여성의 불편과 희생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김승섭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는 몸무게 70㎏의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한다.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의 기본 처방 용량 10㎎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작용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의자와 문고리는 남성 평균 키라는 170㎝에 맞춰 제작된다. 여성들이 심신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일상에서의 불평등이 이럴진대 군대는 오죽하겠는가. 그건 평등이 아니라 여성들의 예속과 굴욕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사실 현 단계에서 모병제를 통한 여성 입대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여성의 군 입대를 논하기 전에 현재의 군 시스템과 환경이 여성에게 안전하고 적합한 공간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20~30대 남성들의 상실감, 박탈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백 번 고민해도 그 한풀이 대상이 여성, 페미니즘일 수는 없다. 누군가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를 앗아갔다면 탐욕에 젖어 미래를 등한시한 우리 같은 60~70대 남자 위정자들이다. 페미니즘은 미완성이다. 우리가 바로 서도록 지켜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은 남성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ㆍ아내ㆍ애인ㆍ딸들이며, 페미니즘은 바로 그 여성의 아들ㆍ남편ㆍ애인ㆍ아들도 위로하는 학문이다.
  • ‘육대전’도 칭찬한 해병대 모범식단…예산 탓만 못하는 이유

    ‘육대전’도 칭찬한 해병대 모범식단…예산 탓만 못하는 이유

    군 부대 ‘부실급식’ 사례를 제보받아 공론화한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가 해병대 모 부대의 ‘모범 급식’ 사례를 공개했다. 지난 23일 ‘육대전’은 “연평도 부대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격리자 배식 사진. 해병대라고 한다”면서 배식 준비를 마친 식단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총 26장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밥·국·김치 외 기본 3찬을 지키고 있으며 우유나 컵라면, 김, 탄산음료 등의 부식도 꼬박꼬박 챙겼다. 밥은 물론 반찬도 부족함 없이 식판에 꽉꽉 담았다. 때로는 닭다리 치킨이나 핫도그, 햄버거도 제공됐다. 육대전은 이후 “연평도는 아니고 멀리 떨어진 우도에 있는 부대라고 한다”고 정정했고, 한 네티즌이 댓글로 “우도경비대가 해병대 연평부대 소속 부대”라고 부연했다.우도는 서해 5도의 ‘막내섬’ 격인 곳으로 해안경계 임무는 해병대가, 해상감시 임무는 해군이 수행 중이다. 지난 4월 18일부터 육대전이 공개한 제보를 통해 군 내 부실급식 실태가 폭로되면서 군 내 각종 부조리 문제가 공론화됐다. 지금까지 30건이 넘는 제보가 올라왔고, 이 중 부실급식 관련 제보가 지난 20일까지 13건에 달했다. 우도 부대의 모범급식 사례는 예산 부족만을 탓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충분한 관심과 내실 있는 관리가 뒷받침되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나 네티즌들은 모범급식 사례에서도 시사점을 여럿 지적했다. 일단 최근 부실급식 실태로 국민적 지탄이 이어지자 보여주기식으로 격리자를 위한 급식에만 신경 쓰는 바람에 일반 병사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연평부대에 근무하는 해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네티즌은 “장병들이 날마다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포장하고 있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매번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렇지만 부족함 없는 급식이 제공되기 위해 그만큼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네티즌도 “특별 부식이 나오면 취사병 외 인원들까지 하루 6시간 이상 동원해 만들곤 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급식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부대 내 취사 시스템이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한 네티즌은 “취사병 1명이 책임져야 하는 인원이 무리인 경우가 많다는 게 육군 (부실급식)의 고질적 문제”라면서 “(현행) 취사병이나 조리원의 수가 맛까지 챙기긴 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여기는 남미] “햄버거 왔습니다!” 유기견 출신 배달견 인기폭발

    [여기는 남미] “햄버거 왔습니다!” 유기견 출신 배달견 인기폭발

    멕시코에 귀여운 배달견이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가죽모자와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멕시코 중부 틀락스칼라의 거리를 누비는 배달견 '아니'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 배달견 아니는 등에 배달가방까지 짊어지고 주문한 고객을 찾아간다. 제대로 갖춰 입은 복장이 보는 사람에게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데다 특유의 미소까지 지어 배달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아니는 어떻게 배달견으로 나서게 된 것일까? 알고 보니 아니는 구조된 유기견이었다. 배달로 햄버거세트를 팔고 있는 곳, 즉 아니의 일터는 식당이 아니라 유기견과 유기묘를 돌보는 동물보호단체다. '가리타스 게레라스'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유기견과 유기묘 160여 마리를 돌보고 있다. 동물보호단체가 엉뚱하게 음식 장사에 나선 건 코로나19 확산으로 후원이 줄면서 동물들의 생계가 막막해진 때문.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160여 마리의 개와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기가 힘들어졌다"며 "경비를 대기 위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다가 음식장사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아니는 이 과정에서 배달견으로 발탁됐다. 함께 생활하는 개와 고양이 친구 160여 마리의 생계가 걸린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셈이다. 일각에선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한 유기견을 학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의 SNS에는 "구조한 동물을 노예처럼 부리며 돈벌이에 써먹고 있느냐"는 항의의 글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 '가리타스 게레라스'는 오해라며 해명에 나섰다. 배달견에게 실제로 일을 시킨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단체는 "사업을 하면서 아니에게 맡긴 건 음식 배달보다는 홍보대사의 역할"이라며 "실제로 무거운 짐을 지우거나 학대를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을 담당하는 건 동물보호센터의 직원이다. 배달견 아니는 직원을 따라다닐 뿐이다. 직접 배달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의 공헌도는 지대하다는 게 단체 측 설명이다. 관계자는 "직접 음식을 매고 가는 건 아니지만 아니가 배달에 동참하고 있는 건 맞다"며 "아니가 자신의 몫을 훌륭히 수행한 덕분에 친구 동물 160여 마리가 피난처에서 사료를 먹으며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단체는 최근 한 업체로부터 사료 2톤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단체는 "워낙 저렴한 가격으로 제안을 받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면서 "아니와 함께 분발해 반드시 필요한 자금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文 보는 앞에서… 바이든, 94세 한국전 영웅에게 명예훈장 준다

    文 보는 앞에서… 바이든, 94세 한국전 영웅에게 명예훈장 준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한미 혈맹의 상징인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헌화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워싱턴은 네 번째이지만, 한국전 전사자 다수가 안장된 알링턴 묘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미 해병대, 해군, 해안경비대 등으로 구성된 120명의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21발의 예포와 함께 도착한 문 대통령은 에이슬 로버츠 의전장 대행과 오마르 존스 워싱턴 관구사령관의 안내에 따라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면서 “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한미 동맹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립묘지 기념관 전시실로 이동해 무명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기념패를 기증했다. 기념패는 외국 정상 방문시 기념물을 기증하는 관행에 따라 국군유해발굴단이 발굴한 한국전 참전 미군의 배지와 단추 등 유품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일인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전쟁 영웅 랠프 퍼켓 주니어(94) 퇴역 대령에게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동석한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명예훈장을 한국전 참전 군인에게 주는 것은 문 대통령의 방미와 맞물려 한미 동맹의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중위로 한국전에 참전한 퍼켓은 1950년 11월 제2차 청천강 전투의 일환인 205고지 점령에 공헌한 전쟁 영웅이다. 제8레인저중대를 이끌던 그는 인해전술로 나선 중공군에 비해 열세에 놓였지만, 적 화력 분산을 위해 탱크에 올라 주의를 끌었다. 수차례 수류탄 파편에 맞았음에도 부하들에게 후퇴를 명령하고 본인은 전선에 남았다. 결국 부하들이 그를 구출했고, 그의 중대는 205고지를 점령했다.문 대통령은 이어 대공황 극복 프로젝트인 뉴딜 정책을 입안·실행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 대통령을 기념하는 루스벨트 기념관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다산 정약용과 루스벨트를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캠페인 때부터 뉴딜과 다자주의 외교의 상징 유엔을 구상한 루스벨트를 여러차례 언급했으며 취임 후 대통령 책상인 ‘결단의 책상’ 건너편 벽난로 위에 초상화를 걸었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을 극복했듯이 한국판 뉴딜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과의 교감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일정으로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공화당을 망라한 하원 지도부를 만났다. 앞서 미 하원은 문 대통령이 도착한 19일, 방미를 환영하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초당적 결의안을 발의했다. 하원은 한미 동맹을 ‘린치핀’(핵심축)으로 표현하고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이 계속 강력하고 효과적이라는 분명한 신호”라고 밝혔다. 미 상원도 지난 13일 문 대통령의 방미를 환영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 알링턴 첫 헌화… “피로 맺은 한미동맹 더 발전”

    文, 알링턴 첫 헌화… “피로 맺은 한미동맹 더 발전”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한미 혈맹의 상징인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헌화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워싱턴은 네 번째이지만, 한국전 전사자 다수가 안장된 알링턴 묘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미 해병대, 해군, 해안경비대 등으로 구성된 120명의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21발의 예포와 함께 도착한 문 대통령은 에이슬 로버츠 의전장 대행과 오마르 존스 워싱턴 관구사령관의 안내에 따라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면서 “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한미 동맹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립묘지 기념관 전시실로 이동해 무명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기념패를 기증했다. 기념패는 외국 정상 방문시 기념물을 기증하는 관행에 따라 국군유해발굴단이 발굴한 한국전 참전 미군의 배지와 단추 등 유품을 활용해 만들어졌다.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일인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전쟁 영웅 랠프 퍼켓 주니어(94) 퇴역 대령에게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동석한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명예훈장을 한국전 참전 군인에게 주는 것은 문 대통령의 방미와 맞물려 한미 동맹의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중위로 한국전에 참전한 퍼켓은 1950년 11월 제2차 청천강 전투의 일환인 205고지 점령에 공헌한 전쟁 영웅이다. 제8레인저중대를 이끌던 그는 인해전술로 나선 중공군에 비해 열세에 놓였지만, 적 화력 분산을 위해 탱크에 올라 주의를 끌었다. 수차례 수류탄 파편에 맞았음에도 부하들에게 후퇴를 명령하고 본인은 전선에 남았다. 결국 부하들이 그를 구출했고, 그의 중대는 205고지를 점령했다.문 대통령은 이어 대공황 극복 프로젝트인 뉴딜 정책을 입안·실행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 대통령을 기념하는 루스벨트 기념관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다산 정약용과 루스벨트를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캠페인 때부터 뉴딜과 다자주의 외교의 상징 유엔을 구상한 루스벨트를 여러차례 언급했으며 취임 후 대통령 책상인 ‘결단의 책상’ 건너편 벽난로 위에 초상화를 걸었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을 극복했듯이 한국판 뉴딜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바이든 대통령과의 교감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일정으로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공화당을 망라한 하원 지도부를 만났다. 앞서 미 하원은 문 대통령이 도착한 19일, 방미를 환영하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초당적 결의안을 발의했다. 하원은 한미 동맹을 ‘린치핀’(핵심축)으로 표현하고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이 계속 강력하고 효과적이라는 분명한 신호”라고 밝혔다. 미 상원도 지난 13일 문 대통령의 방미를 환영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文대통령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 더 강력하게 발전”

    文대통령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 더 강력하게 발전”

    존경하는 루스벨트 前대통령 기념관도 둘러봐 바이든의 롤모델… 정상회담 하루전 교감 의미미국을 공식 실무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한미 혈맹의 상징인 워싱턴DC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헌화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네 번째이지만, 한국전 전사자 다수가 안장된 알링턴 묘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미 해병대, 해군, 해안경비대 등으로 구성된 120명의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21발의 예포와 함께 도착한 문 대통령은 에이슬 로버츠 의전장 대행과 오마르 존스 워싱턴 관구사령관의 안내에 따라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면서 “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한미 동맹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립묘지 기념관 전시실로 이동해 무명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기념패를 기증했다. 외국 정상 방문시 기념물을 기증하는 관행에 따라 국군유해발굴단이 발굴한 한국전 참전 미군의 배지와 단추 등 유품을 활용해 금속공예가인 김동현 작가가 오벨리스크 형식으로 만들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첫 방미 때 알링턴 묘지를 찾았던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2017년 장진호 전투 기념비(버지니아주)를 찾았다. 흥남철수작전으로 문 대통령의 부모를 비롯한 피란민들이 월남할 수 있게 만든 장진호 전투야말로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상징성을 살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미 동맹을 개인사와 연결한 문 대통령의 연설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이라고 평가했다.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일인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전쟁 영웅 랠프 퍼켓 주니어(94) 퇴역 대령에게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동석한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명예훈장을 한국전 참전 군인에게 주는 것은 문 대통령의 방미와 맞물려 한미 동맹의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중위로 한국전에 참전한 퍼켓은 1950년 11월 제2차 청천강 전투의 일환인 205고지 점령에 공헌한 전쟁 영웅이다. 제8레인저중대를 이끌던 그는 인해전술로 나선 중공군에 비해 열세에 놓였지만, 적 화력 분산을 위해 탱크에 올라 주의를 끌었다. 수차례 수류탄 파편에 맞았음에도 부하들에게 후퇴를 명령하고 본인은 전선에 남았다. 결국 부하들이 그를 구출했고, 그의 중대는 205고지를 점령했다. 다만 백악관은 퍼켓이 맞섰던 ‘적’이 중공군이라는 점은 명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알링턴 묘지 참배에 이어 대공황 극복 프로젝트인 뉴딜 정책을 입안·실행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재임 1933~1945년) 대통령을 기념하는 루스벨트 기념관을 둘러봤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손자가 문 대통령을 직접 안내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다산 정약용과 루스벨트를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캠페인 때부터 뉴딜과 다자주의 외교의 상징 유엔을 구상한 루스벨트를 여러차례 언급했으며 취임 후 대통령 책상인 ‘결단의 책상’ 건너편 벽난로 위에 초상화를 걸었다. 루스벨트가 대공황을 극복했듯이 한국판 뉴딜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공감대를 쌓으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공동취재단·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현장] 5층 건물 들이받은 택배차량에 아수라장…2명 사망 6명 다쳐

    [현장] 5층 건물 들이받은 택배차량에 아수라장…2명 사망 6명 다쳐

    20일 화물차 충돌로 불이 난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5층 건물은 건물 전체가 새카맣게 그을렸다. 건물 1층에 자리한 부동산을 포함해 건물 내부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옆 건물에 있는 주점과 치킨집도 엉망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단층 건물에서 조그맣게 운영되던 과일가게는 무너져 내렸다. 건물 앞에는 과일가게에서 팔았을 법한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와 수박 등 과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의 한 도로에서 식자재를 운반하던 5t 화물차와 1t 트럭이 충돌한 뒤 5t 화물차가 건물을 들이받았다. 차량이 건물의 가스 배관을 건드리면서 가스가 누출돼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사고차량 운전자 등 6명이 다쳤다. 큰 불길은 약 40분만에 잡혔고 오후 2시 12분쯤 완전히 꺼졌다. 사망자의 정확한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이중 1명은 과일가게 관계자, 나머지 1명은 행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일가게 상인 등 2명 숨진 것으로 추정 불탄 건물과 일차선 도로 하나를 맞댄 안경점과 옷집도 전면 유리가 전부 깨지는 등 일대 상가도 아수라장이었다.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는 한 여성은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1t 트럭과 화물차가 충돌하고, 택배차량이 건물 쪽으로 꺾어 직진하면서 불이 났다”면서 “너무 무서워서 바로 골목 안쪽 미용실로 들어갔는데,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고 온몸이 벌벌 떨렸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화재가 난 건물 뒷골목에 거주하는 류모(67)씨는 “갑자기 쾅쾅거리고 폭탄이 터지는 줄 알았다. 겁이 나서 문을 다 닫고, 시간이 지나 밖으로 나와보니 건물에서 불이 나고 있더라”고 말했다.인근 상인과 주민들에 따르면 무너진 과일가게는 과일 몇 개를 약간만 가져다 두고 판매하는 조그마한 구멍가게였다. 과일 외에도 뻥튀기 등을 팔기도 했다. 과일가게 옆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조모(43)씨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과일가게 주인에 대해 “항상 가게 입구 오른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계셨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그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평소 가게 주인과 주변 상인들은 교류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 “굉음에 폭탄 터진 줄 알았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운 와중에 화재까지 덮친 상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붕괴된 과일가게 바로 옆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요새 장사도 잘 안돼서 손님을 끌려고 조명을 설치한 차양을 2주 전에 달았는데 그것마저 떨어졌다”면서 “가게 전체에 유리 파편이 다 깔렸고, 주방 후드부터 모든 집기가 부서져서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조씨도 “최소 며칠은 영업을 못 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그래도 사람이 죽은 일이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와 조씨는 가게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후 내내 바로 옆에서 까맣게 타버린 가게를 허망하게 쳐다봤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현장]상가 덮친 택배차량에 아수라장…2명 사망 6명 다쳐

    [현장]상가 덮친 택배차량에 아수라장…2명 사망 6명 다쳐

    20일 화물차 충돌로 불이 난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5층 건물은 건물 전체가 새카맣게 그을렸다. 건물 1층에 자리한 부동산을 포함해 건물 내부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옆 건물에 있는 주점과 치킨집도 엉망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단층 건물에서 조그맣게 운영되던 과일가게는 무너져 내렸다. 건물 앞에는 과일가게에서 팔았을 법한 빨간색 플라스틱 용기와 수박 등 과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의 한 도로에서 식자재를 운반하던 5t 화물차와 1t 트럭이 충돌한 뒤 5t 화물차가 건물을 들이받았다. 차량이 건물의 가스 배관을 건드리면서 가스가 누출돼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사고차량 운전자 등 6명이 다쳤다. 큰 불길은 약 40분만에 잡혔고 오후 2시 12분쯤 완전히 꺼졌다. 사망자의 정확한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이중 1명은 과일가게 관계자, 나머지 1명은 행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일가게 상인 등 2명 숨진 것으로 추정 불탄 건물과 일차선 도로 하나를 맞댄 안경점과 옷집도 전면 유리가 전부 깨지는 등 일대 상가도 아수라장이었다.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는 한 여성은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1t 트럭과 화물차가 충돌하고, 택배차량이 건물 쪽으로 꺾어 직진하면서 불이 났다”면서 “너무 무서워서 바로 골목 안쪽 미용실로 들어갔는데,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고 온몸이 벌벌 떨렸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화재가 난 건물 뒷골목에 거주하는 류모(67)씨는 “갑자기 쾅쾅거리고 폭탄이 터지는 줄 알았다. 겁이 나서 문을 다 닫고, 시간이 지나 밖으로 나와보니 건물에서 불이 나고 있더라”고 말했다.인근 상인과 주민들에 따르면 무너진 과일가게는 과일 몇 개를 약간만 가져다 두고 판매하는 조그마한 구멍가게였다. 과일 외에도 뻥튀기 등을 팔기도 했다. 과일가게 옆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조모(43)씨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과일가게 주인에 대해 “항상 가게 입구 오른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계셨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그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평소 가게 주인과 주변 상인들은 교류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 “굉음에 폭탄 터진 줄 알았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운 와중에 화재까지 덮친 상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붕괴된 과일가게 바로 옆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요새 장사도 잘 안돼서 손님을 끌려고 조명을 설치한 차양을 2주 전에 달았는데 그것마저 떨어졌다”면서 “가게 전체에 유리 파편이 다 깔렸고, 주방 후드부터 모든 집기가 부서져서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조씨도 “최소 며칠은 영업을 못 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그래도 사람이 죽은 일이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와 조씨는 가게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후 내내 바로 옆에서 까맣게 타버린 가게를 허망하게 쳐다봤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골키퍼 눈동자 분석해 실력 구분하는 AI

    골키퍼 눈동자 분석해 실력 구분하는 AI

    독일 튀빙겐대 인간·컴퓨터 상호관계연구소, 스포츠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축구 골키퍼의 눈동자 움직임을 관찰해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20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골키퍼를 맡은 독일축구협회(DFB) 소속 프로축구선수 12명, 지역리그 중급 수준의 선수 10명, 초보 축구선수 13명에게 가상현실(VR) 안경을 쓰게 한 뒤 프리킥을 막는 동안의 눈동자 운동을 녹화했다. 연구팀은 AI가 골키퍼의 눈동자 움직임을 바탕으로 선수의 수준을 분류할 수 있도록 기계학습시켰다. 학습된 AI는 학생 축구선수들의 골키퍼 능력과 수준을 78.2%의 정확도로 분류하는 데 성공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자본주의의 초상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자본주의의 초상

    인상주의의 주제인 근대 도시의 삶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이 그림은 사실 초상화로 그려졌다. 똑같은 차림을 한 남자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얼굴이 확실히 보이는 사람은 가운데 있는 에르네스트 메이뿐이다. 서른네 살에 은행장 자리에 오른 인물로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 수집에 몰두했다. 드가는 동료 화가 카유보트의 소개로 메이를 만나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 인상주의 이전의 초상화는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의 위엄이나 지위, 미모 등을 부각하는 방식이었다. 인상주의는 초상화를 풍속화 비슷하게 바꿔 놓았다. 인상주의 이론가 뒤랑티는 초상화란 그의 직업적 환경이나 그가 살아가는 터전 속에서 그 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은 그러한 이론의 실제 적용 사례다. 메이는 동업자와 함께 증권거래소에서 투자 업무를 보는 중이다. 메이의 은행은 상업은행이 아니라 이때 처음 등장한 투자은행이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예금을 맡아 주고 어음을 처리하는 전통적인 은행의 업무를 뛰어넘어 공격적으로 투자처를 물색하고 산업 자금을 조성하는 새로운 은행이 출현했다. 메이의 은행은 몇 년 뒤 에펠탑 건설 자금 조성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증권거래소의 메인 홀은 코르베유라 불린 원형 공간과 그 외부로 나뉘어 있었다. 펜스로 둘러쳐진 코르베유 안에서는 국가의 공인을 받은 중개인들이 주문을 처리했고, 투자자들은 코르베유 바깥 공간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주문을 냈다. 이 바깥 공간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를 유도하는 중개인들이 따로 있었다. 코안경을 낀 메이는 중개인이 제시하는 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같이 온 동업자도 메이의 어깨에 손을 짚고 표를 들여다보는 데 열중하고 있다. 메이를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은 뭉개진 듯 불분명하게 처리돼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증권거래소의 분주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왼쪽 기둥 뒤에도 비슷한 무리가 있다. 이들의 음험한 인상은 화가가 이 바삐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심장에 썩 좋은 감정을 품지는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미술평론가
  • [글로벌 In&Out] 재일 러시아 외교관의 심심풀이로 역사 만들기/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재일 러시아 외교관의 심심풀이로 역사 만들기/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160년 전인 1861년, 일본에서 첫 러시아어 교본이 출판되었다. 이 책을 집필한 이반 마호프(1820~1895)는 하코다테 주재 러시아영사관 부속 성당의 보제(輔祭) 겸 영사관 서기로 근무했다. 1855년, 러일화친조약에 따라 일본은 하코다테 등 지역에 러시아영사관의 설립을 허락했다. 1858년, 러시아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던 마호프에게 일본 파견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장행회에서 일기를 잘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미지의 땅인 일본으로 출발했다. 현실은 그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유럽 수도에서 근무한 그에게 하코다테는 시골이었다. 1860년, 함께 일본에 파견된 그의 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한 후 마호프도 귀국원서를 냈으나 거부당했다. 아버지 귀국 후 할 일이 전혀 없던 마호프는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길 ‘심심풀이’를 시작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나는 오랫동안 심심풀이로 의미가 있는 일을 해볼까 생각해 왔다. 약초 채취는 우리들 중에도 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조개껍데기 수집도 전문가가 많다. 동물 박제 만들기는 생각만 해도 메스껍다. 그래서 문자교본을 써 보기로 했다. 어렵고 재미없는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꽤 좋았다. 러시아 문자를 쓰고 일본어 발음을 표기한 종이를 일본인 친구들에게 보여 줬더니 그들은 발음이 너무 정확하다며 교본을 한 권씩 복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붓으로 복사하는 것이 힘들다며 일본에서 책을 인쇄하는 방법과 하코다테 인쇄소 유무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책 인쇄는 목판인쇄로 진행된다며 제대로 된 인쇄소는 에도(도쿄)나 교토밖에 없다고 했다. 하코다테에 조각가나 인쇄공이 있냐고 묻자 그들은 인쇄공은 게으른 사람이고 조각가는 사찰의 작은 석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하코다테란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 아닌가’ 생각했다. 책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심심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하기로 했다. 표지가 드디어 완성됐을 때 지인이 갑자기 조각가를 데리고 왔다. 종이를 자세히 살펴본 조각가가 목판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표지를 가져갔다. 8일이 지나서야 나타난 조각가는 엄청 어렵지만 새길 수 있었다며 목판을 나에게 건네줬다. 글자는 자세히 살펴보면 알아볼 수 있었다. 오류가 있긴 했지만 수정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날 그가 도구를 가져와서 나와 함께 목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3일 동안 노력한 끝에 목판은 완벽한 상태가 되었다. 목판 제작 기간은 8일로 정하고 가격은 1장에 4분(分)으로 했다. 러시아돈으로 환산하면 정말 싸다. 목판 2장이 완성됐을 때 조각가가 다시 찾아와 글자가 너무 작아서 새길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더 작은 글자나 새기기 어려운 표지도 잘 새기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그는 “집사람이 급여가 너무 적다고 한다”고 밝혔다. 목판 1장에 5분으로 합의한 후 나는 목판을 위한 페이지 작성을 계속했다. 8번째 목판이 나왔을 때 조각가는 다시 급여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급여를 8분까지 늘렸고 시력이 악화돼 정말 못생긴 일본식 안경을 쓰게 된 조작가에게 마지막 페이지에 주키치(重吉)라는 그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허락했다. 책을 인쇄하려 다이키치라는 인쇄공을 찾아갔지만 극히 게으르고 담배와 술밖에 모르는 일본 태만의 화신이라 이야기할 가치가 전혀 없었다. 그 작업방식은 인내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고문이었다.” 1861년, 마호프는 교본을 100권 정도 인쇄하고 3권은 하코다테 시장, 부시장, 그 지역의 장군에게 보냈고 나머지는 하코다테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일본 아동을 위해 러시아의 사무라이가 이것을 선물로 올림”이라는 글이 적힌 1권은 ‘러시아의 이로하’라는 이름으로 하코다테지정문화재로서 하코다테시중앙도서관이 보관한다.
  • 남의 아이 어떻게 키우냐고요, 이 행복 안 겪어보면 몰라요

    남의 아이 어떻게 키우냐고요, 이 행복 안 겪어보면 몰라요

    가정위탁모 이경하(47·서울)씨는 네 아이의 어머니다. 셋째, 넷째 아이는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18일 만난 이씨와의 대화는 진정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의 시선은 뿔테 안경 너머 아홉 살 아들과 두 살 딸, 두 위탁자녀와의 첫 만남으로 향했다. 셋째인 아홉 살 아들은 2014년 6월, 막내인 넷째 두 살 딸은 지난해 4월 따뜻한 선물처럼 이씨에게 찾아왔다. 두 아이는 원가정의 사정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경기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당시 경기지역에 거주하던 이씨에게 위탁됐다. 가정위탁은 부모의 질병·가출·실직·수감·사망 등으로 원가정에서 돌보기 어렵거나 학대받아 분리가 필요한 아동을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맡아 돌보는 제도다. 이씨 부부에게는 이미 20대 친자녀 둘이 있지만, 위탁아동을 가족으로 맞아 다시 육아를 하고 있다. 넷이었던 가족이 여섯으로 불어났다. 장녀는 올해 24세로 대학에 다니고 한 살 터울인 둘째는 군 복무 중이다. “처음에는 입양 전 위탁모를 했어요. 큰애 둘이 중학생이 됐을 때 위탁모를 시작했는데 위탁으로 키우던 아이들이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가게 돼 그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더라구요. 가족 모두가 그리워했어요.” 이씨는 그때 받은 상처가 워낙 커 입양 전 위탁을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아이가 행복해하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좋아 다시 아이를 맡아 기르고 싶었다”고 한다. 가정위탁을 알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문의해 가정위탁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아이를 데려올 채비를 찬찬히 갖췄다. “아이를 데리러 가정위탁지원센터에 갔는데, 글쎄 9개월 된 아이가 11㎏인 거예요. 건강하고 밥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남편과 둘이서 아이 먹는 것만 보며 ‘너무 예쁘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데려온 작은 남자아이가 어느새 아홉 살이 됐다. 어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순전히 아이가 좋아서 가정위탁을 시작했고, 아이들이 이씨 생활의 중심이자 기쁨이 됐다. 이씨는 셋째를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볼 계획이다. 위탁아동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만 18세가 되면 위탁가정을 나와 독립해야 한다. 이씨는 “친엄마가 데려갈 형편이 되지 않아 18세까지 내 자식으로, 내 손으로 키우기로 했다. 아이가 독립해도 계속 왕래하며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셋째는 18세 독립 때까지 내 자식으로 키울 것 이씨는 2년 전 셋째에게 가정위탁 사실을 조심스럽게 얘기해 줬다. “아들이 일곱 살일 때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가 질문하고 제가 대답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셋째는 엄마가 낳은 아이는 아니야. 낳아 준 엄마는 따로 있어’라고 얘기해 줬어요. 아이가 워낙 순하고 착해서 그런지 그 사실을 잘 받아들였어요.” 이씨의 친자녀인 첫째와 둘째는 엄마 아빠의 성격을 타고나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할지 예측이 가능했지만, 셋째와 넷째는 백지상태에서 만나 육아를 시작한 터라 알아가는 과정이 설레기도 하고, 때로는 어렵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셋째, 넷째 두 아이 모두 원래 가정의 부모와 연락이 닿고 있다. 셋째는 딱 한 번 친엄마를 만났다. 이씨는 “아이가 친어머니를 보고 싶어 해서 센터를 통해 엄마를 만나게 해 줬어요. 그때 아이가 어머니를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셋째에게 ‘(친)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 얘기해’라고 했지만, 아이가 ‘아니 엄마 나는 지금이 좋아’라고 하더라”고 했다. 지난해 가족이 된 넷째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원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매달 친엄마를 만나고 있다. 이씨는 “언젠가 우리 넷째가 친부모에게 돌아갈 거라고, 헤어질 시기가 올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지만, 헤어지는 것에 대해 자꾸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헤어짐을 말하는 이씨의 목소리가 아련했다. 이씨는 “아이가 원가정으로 복귀하면 그때 또 다른 아이를 맡고 싶다”면서 “나이 쉰이 넘어도 힘 닿는 데까지 아이들과 지냈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해 줘야 할 것은 느는 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지원금은 적지만, 양육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이미 첫째와 둘째가 성인이 돼 셋째, 넷째 아이들 양육비는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월 받는 지원금은 아동 1명당 총 90만원 정도다.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가 50여만원, 가정위탁아동 양육보조금이 30만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결연후원금 10만원 등이다. 훗날 아이가 독립할 때 자립금으로 주려고 이씨는 매달 적금도 들고 있다. 넷째 아이의 육아에는 온 가족이 동참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50대 후반 남편이 아이 기저귀 가는 것부터 업고 달래는 것까지 도맡아 한다. 이씨는 “남편이 마트에 갈 때도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고 항상 안아 준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으려 하고 본인 손으로 분유를 먹이고 출근한다”며 웃었다. 친자녀인 첫째와 둘째도 동생들을 반겼다. 이씨는 “큰애인 딸이 많이 도와줬다. 셋째가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직장 때문에 바쁘게 왔다갔다하니까 고등학교 다니던 딸이 동생을 돌봤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셋째가 학교에 가기가 어려워지면서부터 이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는지 물었다. 이씨는 곧바로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제 애들처럼, 할머니가 손주에게 느끼는 것처럼 마냥 이뻤다. 모든 행동이 사랑스러웠다. 워낙 그러다 보니 심지어 주변에서는 할머니가 손녀 키우듯이 하지 말라고도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셋째의 유치원 졸업식을 꼽았다. 이씨는 “우리 셋째가 유치원을 졸업하며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을 때 언제 저렇게 컸나 생각하다 눈물이 다 나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종종 주변 사람에게서 ‘내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아이까지 맡아 키우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애들과 지내는 기쁨과 애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좋은 일을 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답한다고 했다. 그는 “셋째가 너무 애교가 많은데, 이 예쁜 모습을 우리만 봐서 친엄마에게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씨의 바람은 아이들이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녔으면 하는 욕심에 학원도 보내고 공부를 가르쳤는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잠시 욕심을 내려놨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 당당하게 독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동은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자라는 게 좋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가정위탁보호율은 24%에 불과하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 10명 중 2명 정도만 위탁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가정위탁보호율을 2024년 3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가정위탁을 처음 시작하려는 가정에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냐고 물었다. 이씨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내 아이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일관성을 갖고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를 좀더 이해하고 사랑을 많이 주면서 키웠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아이도 위탁부모들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이씨는 “최근에는 가정위탁을 하려는 분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랑으로 키우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서로 사랑도 나눌 수 있다. 많이들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학대 피해 아동 돌볼 전문교육도 받고 있어 이씨는 학대피해 아동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도 돌볼 수 있도록 전문가정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2018년 일반가정 위탁아동 913명 가운데 학대·방임 피해아동은 249명, 지능지수가 낮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아동은 78명, 36개월 미만 영아는 94명이다. 이 아이들을 돌보려면 전문적인 양육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는 “학대받은 아이도 일반 가정에 머물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상처를 보듬어 주고 치유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4년부터 매년 5월 22일을 가정위탁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친부모와 위탁 두(2) 가정에서 내 아이와 위탁 아이 2명을 잘 키우자는 의미다. 지난해 기준 가정위탁 보호아동 수는 9903명이다. 조부모의 대리양육이나 친인척 위탁을 제외한 일반가정 위탁아동은 962명이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미술과 웹툰, 다른 듯 닮은… 유쾌한 ‘그림 父子’ 이야기

    미술과 웹툰, 다른 듯 닮은… 유쾌한 ‘그림 父子’ 이야기

    아버지의 눈에 자식은 여전히 어리고, 아들 눈에 아버지는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걸까. 주재환(80) 화백은 장난감 안경, 아이스크림콘 모형으로 마흔 살 아들 얼굴을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표현했다. 반면 주호민 작가는 주름이 깊이 팬 노인 캐릭터로 아버지를 묘사했다. 아버지는 “우연히 만들었는데 아들을 닮았더라”며 농담했고, 아들은 “난생처음 아버지 얼굴을 그렸는데 더 늙어 보이는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미술과 웹툰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이미지와 스토리를 결합하는 이야기꾼의 기질과 현실 비판적 시각, 유머감각을 공유한 두 작가가 18일부터 8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첫 공동 전시 ‘호민과 재환’을 펼친다. 개막에 앞서 17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자(父子)는 전시장 맨 앞에 걸린 서로의 초상화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한 주 화백은 외판원, 미술전문지 기자 등을 하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으로 데뷔했다. 주로 비닐, 캔, 못, 거울 등 버려진 일상 사물들을 재활용해 불합리한 사회 현실은 물론 미술계 내부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주 작가는 만화애니메이션학과가 폐지돼 학교를 그만두고는 2005년 군대 경험을 담은 ‘짬’을 발표하며 전업 만화가로 나섰다. 이후 취업난을 겪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무한동력’(2008), 한국의 전통 저승관을 재해석한 ‘신과 함께’(2010)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번 전시에선 회화, 설치, 영상, 웹툰 등 두 작가의 작품 130여점을 통해 공통적으로 내재된 이야기의 힘과 세계관, 표현방식의 대물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주 화백은 “내 작업은 주제 하나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전라도 음식처럼 다양하고 가짓수가 많다”면서 “관객이 각자 입맛에 따라 받아들이길 원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그림이 그저 재밌기만 했다”는 주 작가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만화 작업을 하면서 심각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니 아버지가 어떤 경지에 이르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집에 살 때는 작품에 대해 간혹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분가 후에는 서로의 작업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단다. 아버지는 “아내가 내 작품보다 아들 작품을 더 좋아한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들은 “지금까지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중대재해처벌법 명료한 시행령, 노동자 산재사망 막는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망한 ‘청년 노동자’ 이선호씨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은 데 이어 여야 의원들과 각계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사회관계망, 온라인 카페, 커뮤니티 등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글이 확산되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선호씨는 지난달 21일 평택항 컨테이너에서 내부 작업을 하던 중 300㎏이 넘는 개방형컨테이너(FRC)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도중 숨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 당시 현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적시돼 있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도 없었다. 안전교육도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이런 작업 환경은 연 2400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을 막고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 시행되지만, 여야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거의 누더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모호한 규정이 많다. 이 법에 앞서 산업안전법 개정안에서 노동자의 안전규율을 적용하지만, 이선호씨 사망 이후에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등에서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계속되니 참으로 안타깝다. 고용노동부가 이르면 이달 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는데 역시 모호한 규정들이 문제다. 마음만 먹으면 법 처벌을 피해 갈 틈새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중대재해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집중되고 있지만 3년간 유예된 상태다. 가장 중요한 책임자 처벌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할 경우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최종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확립할 책임을 실질적 대표에게 물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경영계는 인사·노무 등에서 독립성을 지닌 사업장은 별도의 책임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국회청문회를 통해 이 모호한 규정과 관련해 “최대한 구체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니, 노사 간의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노동자의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도록 구체화할 1차적 책임이 있다. 기업들은 비용 최소화와 경영 책임자의 면피가 가능한 시행령을 요청하겠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맞바꾸는 위험한 작업 환경을 계속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입법 취지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근대광고 엿보기] 1930년에 변색 안경이?

    [근대광고 엿보기] 1930년에 변색 안경이?

    “미국 최고급품 주야 변색 클억쓰 안경” 1930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 동그란 모양의 안경 광고가 실렸다. 가느다란 테가 돋보이는, 당시로서는 최신 모델이다. 미국 클락스사의 제품으로 보이는데 특히 날씨에 따라 안경색이 변하는 안경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안경알이 맑은 날씨에서는 연청색, 구름 낀 날씨에서는 회색, 밤에는 연한 앵두색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오늘날의 변색 렌즈보다 더 색 변화가 다양하다. 악(惡) 광선을 막고 눈을 보호하는 데 특효가 있으며 안경 값은 10원인데 광고와 실물이 다르면 100원을 진정(進呈·자진해서 줌)한다고 했다. 요즘의 ‘전액 환불’ 마케팅보다 더 파격적이다. 판매처는 만주 안동현 ‘국제양행 안경부’로 돼 있고 조선에서는 금을 주어도 구경하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시험해 보라고 주문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안경은 1280년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도미니크 수도원의 수사인 알렉산드로 드 스피나와 그의 친구인 물리학자 살비노 데질르 알망티가 발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580년경 중국을 통해 최초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씌어 있는 내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성일이 사용했다는 안경 실물이 남아 있다. 양반 계층에서 안경을 두루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였다. 개화기에 외국 무역상들이 안경을 들여와 팔았다. 당시 안경은 눈이 나쁘지 않은 사람도 쓰고 다녔다. 지식층임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이자 일종의 액세서리였던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한 최초의 안경점은 ‘명안당’이다. 명안당은 1920년 4월 2일 동아일보 창간호에 광고를 실었다. 주인은 장희원이다. 안경 제작 기술을 최초로 한국인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세브란스병원을 창립한 에비슨이라고 한다. 에비슨은 휴가를 얻어 미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렌즈 연마기를 들여와 안경을 제작해 팔고 있었다. 그러나 재고가 많아 고심하고 있던 터에 한국인 젊은이가 나타나 안경 사업을 인수해 확장해 나갔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 그렇게 적혀 있다. 이 젊은이가 장희원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명안당은 주로 미국제와 독일제 금테 안경을 취급했다. 가격은 5원부터 20원대까지 다양했다. 금 한 돈에 5원 50전 정도 할 때였다. 또 20년을 보장하고 만약 금테가 변색되면 100원을 주겠다고 했다. 1922년 명안당 광고를 보면 명안당은 현재의 서울 종로2가에 있었다. 지점도 그 근처에 있었고 공장은 관철동에 있다고 돼 있다. “개업한 지 십유오년…”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실제 창립 연도는 1907년경이라는 말이 된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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