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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망막병증 클리닉」 개설

    성인 실명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당뇨 망막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전문클리닉이 국내 최초로 서울대병원에 개설된다. 서울대병원은 정흠 교수(안과)팀이 오는 9월1일 최첨단기기인 SLO(주사레이저검안경)를 갖춘 「당뇨망막병증클리닉」을 개설,전문치료를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다. 당뇨망막병증은 당뇨환자의 절반정도가 경험하는 당뇨성 망막질환으로 그동안 국내에서는 환자가 망막클리닉에서 일반망막환자와 섞여 진료를 받아왔는데 최근 들어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다 이를 방치할 경우 실명가능성이 높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치료기관 설립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이번에 전문클리닉을 개설하는 정교수는 『당뇨망막병증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면 실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치료시기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내과의 당뇨병교실과 공동으로 협진체계를 갖추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진료를 통해 적절한 치료법과 예방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원폭 제1목표는 고쿠라시/나가사키 투하는 제2선택

    ◎미 국방부 문서 비화/NYT 보도/B29 3회 비행… 구름덮여 공격지점 변경/첫 플루토늄 원폭 세례… 「우라늄탄」 능가 구름이 한 도시의 운명을 갈라놓았다.2차대전 당시 일본 규슈의 고쿠라시가 구름낀 날씨 덕에 원폭투하 세례를 받지 않고 대신 나가사키가 2차 원폭투하 대상지가 됐기 때문이다.뉴욕타임즈가 나가사키 원폭투하일(9일)을 맞아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지 3일 후인 1945년 8월9일 상오 10시30분.미국의 B29 폭격기 「복스 카」(흑맥주 차)는 고쿠라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세차례나 고쿠라 상공을 선회했으나 조종사 커미트 비핸은 구름이 깔려 지상의 목표물을 눈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비핸은 고쿠라 상공에서 목표물인 거대한 군수공장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에만 원폭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고쿠라 상공을 비행할 때 포격기의 폭탄적재실은 원폭투하를 위해 열려 있었고 조종석의 계기들은 투하준비 완료 상태를 알리고 있었다.비핸은 원폭의 섬광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보안경도 쓰고 있는상태였다.그는 군수공장 옆을 흐르는 강과 고쿠라의 건물들을 구름 사이로 볼 수 있었으나 군수공장단지 자체는 구름에 가려 있었다.비핸은 할 수 없이 고쿠라를 포기하고 제2의 원폭투하 대상지인 나가사키를 향했다.나가사키 상공에도 부분적으로 구름이 깔려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결국 세계 최초의 플루토늄 원폭은 나가사키에 내려졌고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폭보다 위력이 훨씬 강했다. 고쿠라에는 일본 서부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일본의 미사일,항공기 등 일본군의 무기들이 생산되고 있었다.이 도시에서는 또 화학무기가 비밀리에 제조되고 있기도 했다.비밀해제된 미 국방부 1급 군사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고쿠라에서 화학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1945년 7월2일 이미 알고 있었다.
  • 한국에선…/판치는 일 상품(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4)

    ◎용산상가 가전품 70∼80%가 일제 구한말 5일장에서 단연 인기를 끌었던 제품은 일제 면직의류였다.고된 길쌈 노동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일제 면직의류는 꿈이자 희망이었다.청일전쟁(1884∼1885년) 후 중국세를 몰아낸 일본상품이 면방직에서 90% 이상을 휩쓸었다는 당시의 통계가 있다.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50년이 되는 1995년.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인들이 주둔했던 그곳,용산의 전자상가엔 1백년 전과 품목만 다를 뿐 일본 상품이 판치기는 마찬가지이다.소니와 산요,아이와,히타치,켄우드,파나소닉 등 온통 일본 전자상품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카세트나 워크맨의 경우 외제상품의 거의 90%,대형 TV나 오디오,비디오 등 고가품의 경우 70% 이상이 일본제이다.일제상품이 이땅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지 1백여년이 지나도,광복한지 50년이 지났어도 일본상품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매장의 10%에 해당하는 국산 대리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포들은 대부분 일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대형 TV의 경우 일제가 국산보다 1백만원 가량 비싸지만 물량이 달려 못파는 실정입니다.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일제만 찾기 때문이지요』용산 전자랜드 2층에서 외국상품 매장을 운영하는 성상호씨(삼진전자)의 얘기이다.이곳을 찾은 오모씨(주부·38)는 『마음 속에선 국산을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물건을 보면 일본 제품에 손이 가게 된다』며 『일제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선입감도 있지만 써 보면 확실히 고장이 적다』고 말한다.(주)용산 전자랜드의 최정용 주임은 『국내 직영 대리점 외엔 대부분이 외제와 국산을 함께 취급하지만 그 중 70∼80%가 일제라고 보면 정확하다.국산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에는 일제 선호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에서도 일제상품이 판치기는 마찬가지.서울시내 주요 백화점의 외제 매장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공기청정기,보온밥통,냄비 등 일제 주방용품들이 가득하다.80년 말까지 일본에 가면 구입목록 1순위였다는 「코끼리표 보온밥통」말고도 가와시마사의 조리기구와 조시루시사의 보온병,후지마루사의 프라이팬,와키바로사의법랑냄비 등이 인기 품목이다.올 상반기까지의 수입액은 세탁기가 지난 해 동기보다 5백37%,정수기는 3백60%나 늘었고 수입이 금지된 자동차의 경우도 이사물품 반입 등의 방식으로 1백24%가 증가했다. 전자공업진흥회가 조사한 가전제품구매성향에 따르면 수입가전제품 중 일제가 72.7%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일본상품의 위력은 대단하다.일본 합작회사로 국내 최고의 안경업체로 성장한 서전(안경테 제조업체)의 경우 전체 설비의 50%가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이다.85년 처음 공장을 돌릴 때는 90% 정도가 일제 설비였고 지금도 핵심 기계의 대부분은 일제라고 한다.육동창 사장(64)은 『최고급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에서 최신 기계로 치는 일본제 설비가 필수적이다.낡은 프레스와 세정기 등 핵심 설비를 국산으로 바꾸고 싶어도 아직까지 쓸만한 기계가 없어 다시 일제를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의 소프트웨어,기술 분야에서도 일본 기술이 휩쓸기는 마찬가지다..국내 기업들이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기술개발 보다는 당장 이익을빼먹을 수 있는 기술도입에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62년부터 94년까지 한국이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술이전을 받은 것은 모두 9천1백96건(91억8천3백만달러)으로 이 가운데 일본이 절반에 가까운 4천4백53건이다.특히 한국수출의 대들보격인 기계와 전기·전자,석유화학 등의 대일 기술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한국기술의 장래가 밝지 않음을 말해준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은 기계설비 등을 현물차관으로 제공,장기적으로 일본의 경제구조를 우리에게 이식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한국형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낡은 기술을 굳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사오는 데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한국에 진출한 일본 상사들의 모임인 일본무역진흥회의 무로오카 데쓰오 조사부장도 『첨단 일제부품을 수입하는 것보다는 일본기업을 유치,합작회사를 세우는 것이 기술습득의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지적 한다.『태국이나 중국 등은 아직 기술력이 모자라 일본 기업들을 수용할 태세가 안돼 있어 한국이나 대만으로 생산공장을 옮기려는 것이 최근의 일본기업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한국경제의 호황과 일본의 불황이 겹친 지금이 기술이전의 호기라는 것이다. 일제 상품의 범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일 무역적자 액수에서 쉽게 알 수 있다.지난 해 1백18억6천7백만달러의 대일무역적자를 기록,전체 무역적자(63억3천5백만달러)의 2배에 육박했다.올 상반기까지 81억9천5백만달러로 전체 69억3천9백만달러를 12억달러 이상 넘어섰다.「일본」을 싫어하면서도 「일본상품」을 좋아하는 모순은 광복 50주년을 맞은 한국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한·일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이끌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 해사 동구 순항(외언내언)

    해방되던 45년 8월 창설된 「해사대」는 우리해군의 모태로 당시 포 하나 없는 몇척의 소해정으로 해안경비에 나섰다.일제가 버리고 간 경비정들은 너무나 낡아 황천시에는 출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그러나 손원일제독을 비롯한 대원 70명은 현대적인 해군의 창설요원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가득했다. 보다 못한 해군장병과 해군부인회에서 49년 6월 함정구입 성금 6만달러를 모금,미국으로부터 6백t급의 경비함을 구입해 「백두산(PC701)」호로 명명했다.우리 해군이 군함다운 군함을 보유하게 된 최초의 함정이었으며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백두산」호는 1년뒤 6·25발발 당일 하오 8시경 울산동방 30마일 해상에서 부산에 기습 상륙할 게릴라 6백여명을 태우고 남하하던 1천t급의 적 수송선을 격침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백두산」호의 마스트는 현재 교육용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우뚝 서 있고 「대한해협 해전」이 벌어졌던 바다가 보이는 부산항 중앙근린공원에는 전승비가 세워져 있다. 해군창설 반세기만에 제 50기 해사생도들이 2일 진해항을 출항,1백40일간의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다.순항훈련분대가 국내에서 건조한 1천5백t급 호위함 2척과 9천t급 군수지원함등 3척의 국산함정으로 구성된 것이 늠름하고 자랑스럽다.훈련분대는 지구를 한바퀴 반 도는 거리인 5만4천6백여㎞를 순항,14개국 19개항을 방문하며 군사외교 활동을 벌인다.특히 91년 수교한 동구권의 불가리아·루마니아를 우리 군함으로서는 처음 방문한다. 마침 해군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해양력 심포지엄」이 3일부터 이틀동안 세종연구소에서 열려 21세기 태평양시대에 대비해 해상 교통로 확보와 해양통제력강화를 위해 우리도 이제 항공모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백두산」호의 기상이 살아 있는한 우리 해군도 대양해군으로 성장할 날이 멀지 않다고 하겠다.
  • 안경테 생산 서전(앞서가는 기업)

    ◎“품질고급화”…매출 매년 20% 증가/93 뉴욕 비전엑스포 출품… 1위 차지/디자인·마케팅 독특… 세계시장 공략 해외시장에서 대기업들이 쌓아 올린 「싸구려 한국」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중소기업.안경테 전문업체 (주)서전에게 주어지는 평가 중의 하나다. 안경테 하나로 세계를 집어 삼킬 기세인 육동창 사장(64)이 이번에는 토탈패션업체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안경테로 만들어 낸 「서전=고급」이미지로 액세서리와 의류시장에 진출,서전을 토탈패션 전문업체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예비역 육군준장인 육사장은 50대 중반인 85년에 회사를 일으켜 10년만에 국내 정상기업으로 키웠다.독특한 디자인과 고가전략이 주무기.『이제 세계 안경패션을 주도할 자신이 생겼습니다.세계의 어떤 상표 못지않은 고급품으로 이미 국제적인 품질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육사장이 제일먼저 승부를 건 것은 상품의 고급화.당시 시중에 팔리던 니켈 18∼25%의 저가 금속안경테와 차별화를 시도했다.니켈이 80% 이상 포함돼 가볍고 강한 하이켈과 비행기동체 원료인 티나늄 등 고급소재를 사용,15만∼30만원대의 고가로 당시엔 서민들이 엄두도 못내는 금액이었다.『제품이 나왔을 때 기존업체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성공했다.이브생로랑과 실루엣,카발 등 유명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음을 간파,이들 고객을 흡수한 것이다. 독특한 마케팅 전략도 한몫했다.모든 안경점에 물건을 대는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신용있는 점포만을 전문 취급업소로 선정하는 특약점 제도를 운영했다.「서전 안경테는 고급품」이란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계기가 됐다. 현재 3백여명의 근로자 가운데 1백여명이 일본(이시야마사)에서 기술연수 경험이 있을 정도로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지난해 매출은 1백억원,수출은 3백50만달러를 기록했다.80년대 중반 이후 매년 20% 이상의 매출 증가를 기록 중이다. 국제전시회가 해외시장공략을 위한 서전의 주무대다.세계의 바이어가 몰리는 점을 활용,한꺼번에 대어를 낚겠다는 전략이다.93년 뉴욕 「비전 엑스포」에 「코레이」란 제품으로 60개 모델을 출품,참가 3백60개 업체 가운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자연과 인공미,한국 기와의 고유미가 어우러진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전시회를 통해 50만달러 수출계약을 받았다.다음해 계약액은 1백50만달러. 육사장은 『안경에서 얻은 신용으로 다른 액세서리와 의류에 새로운 승부를 걸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 외산담배 증가… 맛이냐 상술이냐(박갑천 칼럼)

    이제신은 그의 「청강선생후청쇄어」에서 중국만 모방하려 하는데 대한 우리의 입성 습속을 개탄한다.그무렵 사람들은 또 사족·서민 할것없이 일본산 수달피를 사들여 피견(이엄­사모밑에 쓰는 방한구)을 만들었던 듯하다. 이 왜나간 국력낭비풍조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 남명조식이었다.임금에게 이것 못 만들도록 간언하여 금령을 내린 다음부터 그 양광은 없어져간다.다만 그에 갈음할 것은 있어야 했다.이제신은 그래서 삵괭이가죽으로 이걸 만들어썼다.그걸 본 사람들은 빈정대며 웃었다.하지만 일본수달피는 못쓰게 하는 엉세판인데 어쩌랴.차츰 일반화해 나갔다고 그는 말한다. 좋은 외국물건에 눈독 들이는 것은 예나 이제나 같은 사람마음이다.지난날 중국으로 가는 사신행렬에는 그런 실살마음들이 딸려갔다.고관대작들이 역관등에게 이런저런 물건 사오기를 부탁했던것.이를 못마땅히 여긴 권경우같은 사람은 임금에게 아뢰어 벌주게 하고있다(「패관잡기」).「지봉유설」에도 그런 낌새는 보인다.중국에 간 우리사신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까닭은 역관들이 모리행위를 하기 때문이라 적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옛날에는 남의 나라것의 질이 높고 좋아서 그랬다고 치자.오늘날에는 우리도 찾을모있게 만들면서 뒤지지 않은것이 적지 않건만 남의것 좋아하는 마음들을 버리지 못한다.얼마전 외국사람들에게 물어본바에 의하면 그들이 가장 많이 사간 우리물건은 입성(옷가지)이었다.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외국입성을 즐겨찾는 경향이다.질보다 이름(브랜드)을 따지면서 그러는 것만 같다. 어떤 신사는 자기양복을 가리키면서 야지랑떤다.『이감이 뭔줄 아나.핀텍스야.오스트레일리아산 양털에 전통적 영국직물기법으로 짠거지.물감은 독일것으로 쓰고말야』.『이 구두는 이탈리아제 말레리고 이 넥타이는 노먼 하트넬이며 이 모자는 볼사리노고 이 안경은 로덴슈토크이며…』 이러니 3천∼5천원이면 사는 국산목댕기를 두고도 몇만원씩 주고 랑뱅이다 뭐다 하는 기술제휴품을 산다. 애연가들은 우리 담배맛도 외국것에 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렇건만 외제담배의 시장점유율은 해가 갈수록 높아만진다.1%안팎이던개방초기에 비겨 올상반기에는 신장률 70%를 보이면서 12.1%로 뛰어올랐다지 않은가.맛 때문인가,호기심 때문인가,이름때문인가,상술 때문인가.「애국심에의 호소시대」지나간 것쯤 당로자가 먼저 더잘 알렷다.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 방제작업 지장없게 예산 신속지원/정부,남해안 기름오염 대책 부산

    ◎하루 2억원 소요… 해운사도 부담/「누출구멍」 막게 군 특수요원 투입 정부는 25일 국무회의와 관계장관 대책회의에서 유조선 「씨 프린스」호 좌초로 인한 전남 여천 앞바다 해양오염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정부는 이번 사고로 이 일대 해역의 심각한 오염사태가 우려된다고 판단,어민보호를 위해 신속한 방재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국무회의◁ 김용태 내무부 장관은 호유해운소속 유조선 「씨 프린스」호 좌초사고에 대한 보고에서 『짙은 안개 때문에 현장 접근이 어렵고 간간이 화재가 일어나 조치를 취하지 못해 피해가 당초보다 크다』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김장관은 『파고가 1.5m를 넘어 오일 펜스도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방재자재도 매우 부족한 형편』이라면서 『민간 전문방재회사 4곳과 인부 5백명등 가능한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할 예정이지만 하루에 소요되는 자금만도 2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김장관은 『이 유조선은 태풍경보가 발령된 뒤 뒤늦게 출항하다가 사고를 당한 만큼 호유해운측에도 과실이 있다』고 지적하고 『호유해운측에서 방재 경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앞으로 호유해운측과 협의를 해가면서 경비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이홍구 총리는 『이 사고는 시간을 다투는 사태여서 늦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예산 때문에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예산을 최대로 지원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관계장관 대책회의◁ 기름 유출량이 생각보다 적고 따라서 피해규모도 예상보다 크지않은 것으로 보고되자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강봉균 국무총리 행정조정 실장은 『연료용 벙커C유 탱크 2개 가운데 1개에서 기름이 새고 있다』면서 『8만3천t에 이르는 원유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실장은 『「씨 프린스」호는 1천4백t의 연료용 벙커C유를 싣고 있었으므로 유출된 기름의 양은 7백t 미만이라고 밝혔다. 회의는 해양경찰청을 5개 사고수습반을 총괄 지휘하는 현장반장으로 임명해 체계적인 수습에 나서도록 했다. 회의는 또 싱가포르에서 긴급 공수된 방제전문비행기를 동원하면 사고해역의 오염이 빠른 시일 안에 제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국방부◁ 25일 구조전문함 1척을 포함한 소해함 등 함정 9척과 헬기 2대 등을 사고해역에 급파해 기름제거작업에 나섰다. 해군은 이날 함정 등에서 기름제거용 유화제 1천2백ℓ를 살포하고 오일펜스를 설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해군은 또 방재대책본부가 물속에서 응고되는 특수시멘트로 「씨 프린스」호의 기름유출부위를 막은뒤 인양하는 작업을 벌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데 따라 이를 지원키 위해 해군수중특수 작전요원(SSU)19명을 투입했다. ▷환경부◁ 25일 전남 여천 앞바다의 기름유출사고와 관련,기름띠의 제거와 2차오염방지 등을 위해 비행기를 동원,기름제거약품 등을 뿌리도록 관계기관에 건의했다. 환경부의 조치는 이날 하오 해양학과 교수 등 해양환경보전 전문가회의 등의 내용을 토대로 이뤄졌다. 환경부는 또 여수등 사고해역 인근의 폐유처리업체는 물론 다른 지역의 폐유업체 장비도 미리 동원해 사고현장에서 오일흡착제 등으로 수거한 폐기물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영산강 환경관리청에 지시했다. 환경부는 이와함께 이번사고가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이날 전문 조사단을 파견했다. ◎북해­알래스카 오염방제 사례/인공위성·컴퓨터 동원 기름띠 제거/1년이상 화학약품 중화 처리­영국 북해/25억달러 소요… 「제2의 오염」 막아­알래스카 유조선에서 유출된 석유로 인한 오염을 제대로 정화하는 데는 수십년이 걸린다.따라서 대형 유조선사고를 경험한 미국,영국등에서는 해상사고를 처리하는 행정기관을 갖추고 첨단방법으로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지난 93년 영국 북해에서 8만4천5백여t의 원유를 실은 브레이어호가 좌초,사상최대의 해양오염사태가 일어났다.수만마리의 조류와 바다동물이 죽었으며 인근 목초지의 가축까지 피해를 입었다. 영국은 최악의 사고를 더이상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갖가지 첨단방법을 동원했다.사고가 난 다음날 즉각 브레이어호 상공에 유막추적용 인공위성을 띄워 사진을 찍은뒤 이를 해양오염방제청으로 보냈다.기름유출랑,풍속,파고 등의 정보들이 연구센터의 컴퓨터에 입력된후 제거방법이 제시됐다. 사고현장의 해양경찰대는 이 컴퓨터의 주문에 따라 긴급출동,우선 유출된 기름 주위에 오일펜스(기름확산방지막)를 쳐 확산을 막았다.이어 방제선박으로 기름을 떠내거나 흡작제에 흡수시키며 이 방법으로 제거되지 않는 기름은 화학적으로 처리했다.또 해안으로 밀려든 기름띠는 화학약품을 이용한 세척기로 분리·중화시켜 불도저로 모래사장에 파묻기도 했다.이 작업을 벌이는데 1년이상이 걸렸으며 비용도 7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됐다. 또 미국은 지난 89년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3만8천t급 규모의 엑슨사 유조선 발데스호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사고를 겪었다. 엑슨사는 25억달러를 들여 자사의 기술진과 미해안경비대와 함께 바지선을 이용,기름을 직접 걷어내는 작업을 벌였으나 이는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레이저로 소각하는 방법등도 논의됐으나 「제2오염 유발」이라는 여론에 밀려 이루어지지 않았다.이같은 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미 해안경비대는 컴퓨터 방제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 수입공산품 마진 평균 167%/소보원,20품목 조사

    ◎국산품보다 3.5배 높아/화장품 2백93%로 1위/커피잔·카펫·여성정장 2백% 넘어 수입공산품의 유통마진율이 평균 1백67%(수입원가가 1백원일 경우 소비자가격은 2백67원)나 되는 등 수입상 등의 판매업자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같은 종류의 국산품 평균 유통마진율(48%)보다 3.5배가량 높은 것이다. 한국소비자 보호원이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및 섬유류 등 7개 분야,20개 상품을 취급하는 45개 사업자(수입상)를 대상으로 조사,24일 발표한 「수입공산품의 유통마진 및 실태」에 따르면 20개 상품의 평균 유통마진율은 1백67%였다.유통마진율은 소비자가격에서 수입원가를 뺀 수치를 수입원가로 나눈 것이다. 화장품이 2백93%로 가장 높았으며 TV는 75%로 가장 낮았다.특히 화장품중 미국산 영양크림인 에스티로더(모델명 1012­03)는 수입원가가 2만1천2백6원인 반면 소비자가격은 5만5천원으로 마진율은 2백59%였다.또 프랑스제 영양크림인 크리스찬디올(모델명 F05536­3000)도 수입원가 1만1백66원에 소비자가격은 4만8천원으로 4백72%,역시 프랑스제 영양크림인 랑콤(모델명 NOCTOSOME)도 수입원가는 1만1천5백89원인 반면 소비자가격은 5만2천원으로 마진율은 4백38%나 됐다. 마진율이 2백%(소비자가격이 수입원가의 3배)가 넘는 품목은 화장품(2백93%)과 커피잔세트(2백23%),카페트(2백19%),칫솔(2백14%),여성정장(2백10%),손목시계(2백1%) 등 6개였다.고급 브랜드이미지를 갖는 화장품 및 여성정장과 파손의 우려가 큰 커피잔세트,계절상품인 카페트 등의 유통마진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판매업자별 마진율은 수입상이 평균 69%로 가장 높았고 산매업자(산매기능대리점,산매점,백화점) 43%,도매업자(총판,도매상,중간대리점) 25%의 순이었다.수입상이 이익을 가장 많이 챙기는 품목은 화장품(1백78%),도매업자는 카페트(65%),산매업자는 안경테(1백9%)였다. 국산품에 비해 유통마진이 가장 높은 품목은 청소기(8.9배)였고 그 다음은 세탁기(6.4배),냉장고(5.6배),여성정장(5.3배) 등의 순이었다.
  • 기관총 40정 선적 한국에 밀수기도/러해경,러어선 적발

    【블라디보스토크 이타르타스 연합】 러시아 해안경비대는 12일 훔친 기관소총 40정을 한국의 부산으로 밀수출하려던 러시아의 저인망어선 한척을 적발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해안경비대는 선원들이 하바로프스크지역의 한 군부대에서 칼라시니코프 기관소총을 훔쳤다면서 이 어선은 바니노항을 출발,한국의 부산으로 향하던중 러시아 극동 태평양연안 올가만에서 체포됐다고 말했다. 이 어선의 선장은 40정의 밀수용 총을 싣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해안경비대가 추적하는 것을 보고는 내다 버릴 것을 명령했다고 해안경비대는 밝혔다.
  • 현실감나는 컴퓨터게임 곧 등장/초대형 화면에 실제의 입체음향 첨가

    다음세대 컴퓨터게임은 어떤 모습일까.정답은 「진짜같은 게임」이다.앞으로 몇달후면 선을 보일 컴퓨터게임은 초대형 화면,입체음향은 물론 실제 영화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진감 넘치는 「사이버놀이터」가 될 것으로 미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예측했다. 새로 등장할 게임이 지금까지의 컴퓨터게임과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른바 「감」이다.게임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영화만큼 정교하다는 점이다.기존의 대표적인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만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단속적이라 별로 실감을 주지 못했었고 이 점이 바로 컴퓨터게임의 한계로 지적 됐었다. 그러나 PC에서 비디오를 재생하고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화면을 나타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달 했고 컴퓨터칩의 속도도 이를 뒷받침해줄 만큼 향상됐다.입체안경을 쓰지 않고도 3차원 영상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비디오카드는 이제 컴퓨터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피부질감까지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미 버진사가 최근 맛보기로 내놓은 디덜러스 인카운터가 이 첨단게임의 대표적인 예다.이 게임은 등장 인물들의 표정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됐으며 움직임에 따른 그림자까지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다. 물론 이런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하드웨어가 받쳐주어야 한다.「사운드블래스터」로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랩사를 비롯,각종 주변 기기제작사들은 자연스러운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MPEG보드(동영상재생보드)와 비디오가속기 개발을 이미 완료해 놓고 있다. 게임에 현실감을 더하는 요소로 음향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곧 출시될 컴퓨터게임에는 지금까지 듣던 기계음이나 간단한 전자음향대신 거리의 사람소리,자동차 시동거는 소리,카페의 음악소리 등 실제상황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첨가 된다.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와 관련,현재 「웨이브믹스」라는 소프트웨어를 벌써부터 개발해 놓고 있는 상태. 이밖에도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작은 도구들이 개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예를 들어 골프를 PC로 즐길때 쓰는 골프채 등이 컴퓨터와 연결되어 시원한 배경을 보며 실제와 똑같은 현장감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다.또 자동차게임을 할때는 실제와 똑같은 힘을 주어야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조이스틱도 이미 나와 있다. 남은 것은 음성명령부분이다.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게임도 현재 완성 직전에 있다.IBM사는 최근 「보이스타입 애플리케이션포 윈도」를 개발해 이를 컴퓨터게임에 그대로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게임과 현실이 구별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 부가세특례 제외 대상 확대/오늘부터

    ◎34종목 추가… 전국 모든 시 적용 7월부터 시지역에서 개업을 할 때 부가가치세 과세특례혜택을 받기가 어려워진다.과세특례를 원칙적으로 해주지 않는 종목이 크게 늘어나고 해당지역도 인구 10만이상 시에서 전국의 모든 시로 확대되는 등 배제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30일 「95년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배제기준」을 발표,종전에 인구 10만이상인 41개 시 지역에만 적용하던 부가세 과세특례 배제기준을 전국 73개 시 모두에 확대적용하기로 했다.다만 14개 도농통합형 시의 읍·면지역은 제외된다.그러나 해당종목이라도 실사를 해 연매출이 3천6백만원이하로 영세한 것으로 판단되면 과세특례를 허가한다. 종목은 거래규모가 큰 종목,고가품이나 전문품목을 취급하는 종목 등 34개를 추가하고 4개 종목을 통폐합해 그 수는 1백85개에서 2백15개로 늘어났다.귀금속·시계·안경·렌터카·자동차 세차·대중탕·체인음식점 등이 새로 추가됐다.부동산임대업도 지역별 개별공시지가와 사업장면적에 따라 배제기준을 신설했다. 세무서 별로 관할지역의 특성을 감안 지정하는 「세무서별 배제기준 종목」에는 인삼제품·문구·표구·소방기구·일반일본음식·이삿짐센터 등 1천7백84개 종목이 추가돼 7천2백89개 종목으로 늘어났다. 모든 종목이 과세특례에서 배제되는 지역은 88곳이 추가되어 7백30곳 으로 늘어났다.서울 을지로 1가 프레지던트호텔·삼성화재빌딩·무교동 반도조선아케이드·코오롱빌딩과 부산 부전동 롯데백화점,범천동 현대백화점,광주 신안동 성원백화점,인천 중앙동 중앙프라자 등이 새로 지정됐다.
  • “인공기 강제게양”주권침해 강경대응/「쌀 북송선 회항」배경과 파장

    ◎교신착오 아닌 “고의 촉발행위” 결론/북 당국의 사과 여부따라 「재개」 판가름 북한에 쌀을 싣고간 우리측 수송선 「씨 아펙스」호에 강압적으로 인공기가 게양된 사건으로 인해 북경 「쌀회담」합의로 반짝했던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정부는 30일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건을 북한측이 고의적으로 촉발한 사건이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한뒤 「북경합의」의 주역이었던 전금철을 지칭,『북한의 책임있는 당국자가 사과하지 않으면 쌀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8천t의 쌀을 싣고 북을 향해 목포와 군산,마산항을 떠났던 3척의 선박들은 즉각 귀항조치됐다. 이에 앞서 29일 하오 쌀회담 북측창구인 북경의 조선삼천리총회사측은 『북경과 청진간 교신상 착오』라며 재발방지를 약속,통일원측은 한때 이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였었다.그러나 인공기 강제게양에 대한 비난여론이 의외로 강한데다 당국자가 아닌 삼천리총회사측 사과만으로는 앞으로의 원활한 쌀지원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북한당국자의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요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우리측은 당초 배고픔에 고통당하는 북한주민을 돕는다는 동포애적 차원에서 쌀을 지원하기로 했다.그러나 북한당국은 우리측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북한주민들에게 비밀로 할뿐 아니라 이를 위해 어느쪽 국기도 게양치 않기로 한 구두합의사항을 어겨가며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케 하는등 주권침해행위마저 저지른 것이다.이같은 「무례」까지를 용납해가며 북에 쌀을 지원해야만 하느냐는 국민적 여론을 받아들여 사과가 있기까지는 쌀지원을 중단키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쌀공급의 속개여부는 북측의 사과여부에 따라 결정되게 됐으며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북경에서의 남북간 2차회담은 물론 전반적인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인다. ○…통일원측은 북한의 무례한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쌀회담을 통해 남북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그러나 북한에 대한 쌀지원 자체에 대해서도 일부 여론의 비판이 있었던 상황이어서 인공기게양이라는 상황이 닥쳤는데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분위기이다. ○…북측의 강제 인공기게양과 관련,29일 밤 청진항에 접근하던 쌀수송선 「돌진호」를 급히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무선연락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자칫 북측과 충돌이 빚어질뻔 한 사실이 30일 하오 확인됐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29일 밤 청와대 유종하외교안보수석비서관주재 긴급대책회의 결과 쌀 2천t을 싣고 이미 북항중이던 「돌진호」등 3척의 쌀북송선들을 긴급 귀환조치키로 결정했다.이때가 밤10시30분쯤.통일원·항만청·해경등이 「돌진호」등에 대한 무선연락을 맡았다.그러나 관계직원들이 퇴근한 후여서 1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취해지지 않았고 「돌진호」는 그 순간에도 계속 항해,청진항 남방 70마일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초조하게 무선연락여부를 챙기던 외교안보수석실은 「연락성공」보고가 올라오지 않자 추가로 해군에 무선교신을 지시,「돌진호」를 간신히 되돌려 세웠다는 것이다. 해군은 지시를 받은 직후 동해상 북방한계선(NBL) 바로 남쪽에서 작전중이던 함정에 임무를 부여,수차례 시도끝에 자정 조금전 「돌진호」와의 교신에 성공,「회항지시」를 전했다. 「돌진호」는 바로 선수를 남으로 돌렸지만 수시간후 북방한계선 북쪽 16마일쯤에 이르렀을때 북측배로 추정되는 한척의 괴선박이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긴장이 고조됐다. 해군은 레이더로 괴선박이 「돌진호」방향으로 고속항해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북방한계선 바로 남쪽에 구축함 1대와 고속정편대를 배치했다.공군 또한 인근 제18전투비행단에 긴급출동명령을 하달,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췄다.이 긴장은 이날 하오 「돌진호」가 우리해역에 무사히 들어옴으로써 완전 해소됐다. ◎인터뷰/씨 아펙스호 김예민 선장/“끝까지 버티지 못해 죄송”/“관례 어긋난다” 북 도선사와 한시간 실랑이 『태극기를 달고 북한영해에 들어갔으나 청진항 입항당시 태극기를 내리게 돼 매우 안타깝고 섭섭했습니다』 북한에 보내는 쌀 2천t을 청진항에 하역한뒤 30일 상오4시45분 부산항에 귀항한 남성해운소속 씨 아펙스호 김예민(38)선장은 『태극기를 하강할때 나라를 잃은 것같은 슬픔을 느꼈다』며 『끝까지 버티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내린 경위는. ▲26일 하오4시 청진항 외항선 도선 묘지에 도착한뒤 1시간쯤 기다리는데 청진항 도선사(파일럿)가 승선,태극기를 내리고 준비해온 인공기를 달 것을 강요했다.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그들이 인공기를 게양하기에 코사(KOSA·북한원양해운공사) 청진대리점에 연락해 달라고 했다.태극기게양문제로 한시간쯤 도선사와 말다툼을 벌이다 인공기도 내렸다.청진항 부두 0.5마일 해상에서 앵커를 내린뒤 『청진항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하오 7시25분쯤 50세가량의 청진항 항장이 세관 및 검역소직원들과 함께 승선했다.굳은 표정으로 『국기를 게양하면 선장과 전 승무원들의 신상에 해롭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태극기를 달지 못하고 인공기를 게양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도선사는 국제관례를 아는지 거듭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역작업은 순조로웠나. ▲조선삼천리총회사 강현명과장이 쌀인도서명을 한 뒤인 27일 상오8시30분부터 28일 상오10시40분까지 진행됐다.일제때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크레인으로 하역했으며 낡아서 3∼4차례 고장이 났다. ­인부들은 우리 쌀인 줄 알고 있었나. ▲한국산인줄 알고 있었지만 식량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육지로 내렸나. ▲26일 하오6시30분쯤 청진항에 상륙,25인승 버스편으로 1백m쯤 떨어진 3층 천마산호텔로 가 저녁식사를 했다.본선 당직 3명을 제외한 승무원 13명과 북측의 삼천리회사 강과장,청진항 항장 등 9명이 중국음식을 2시간동안 먹었다.객실은 27개였고 호텔수준은 낮았다.음식맛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도착예정항이 나진항에서 청진항으로 바뀐 것은 어떻게 알았나. ▲25일 하오10시40분쯤 서울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안전을 감안,해안선에서 35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북쪽으로 항해했다.나중에 북한측의 영해는 12해리가 아니라 15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청진항에서 서울본사와 연락은 어떻게 취했나. ▲코사를 통해 할 수 있었다.청진항에 입항하자 북측은 쌍안경·녹음기·카메라 등과 통신장비(SSB) 및 방향탐지기(RDF) 등을 모두 봉인한뒤 통신실을 폐쇄했다.기념촬영 등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북측이 선물은 주지 않았나.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선원 1인당 위스키로 보이는 곡주 2병을 줬다. 김선장은 쌀을 싣고 다시 북한으로 가겠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 미군정의 공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4)

    ◎자국입장 살리며 한국군정 수립에 큰 기여/기득권층 흡수… 일제잔재 청산의 걸림돌로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공식출범하는 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1945년 9월9일 미군정이 시작된지 3년여만에 군정이 종식된 것이다.미군정은 이보다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으로부터 경찰과 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포함한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는 모든 직무에 대한 이양요청을 받았다.주한미군사령관은 8월11일 이에 동의하고 이양절차를 신속히 밟기 시작했다. ○좌우익대립 평정 공헌 그러나 미군의 완전철수는 다음해인 1949년 6월29일에 이루어졌다.5백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겼으나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이렇듯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미군정 3년여는 이 땅에 많은 것을 남겨 놓았다.그렇다면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의 공과는 무엇일까.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한국현대사,이른바 해방정국사를 푸는 중요한 키 노트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평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다만 자국의 입장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에서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을 추진한 미군정은 결국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단독정부를 수립시켰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해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미군정은 이승만을 전면에 부상시킬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래서 5·10선거 직전까지도 김규식에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실제 국회의원 선거(서울 동대문 갑구)에서 이승만을 낙선시키려는 공작도 했다. 어떻든 미군정은 이승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규식이 정계은퇴 의사를 분명히 하는 바람에 싫든 좋든 간에 이승만의 등장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이승만과 경선하기 위해 밀었던 전 미군정 경무국장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이에따라 5·10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승만은 확고한 정치적 발판을 굳히고 국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이 등장한 마당에서 미국이 그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동서대립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그만한 인물을 찾기도 실상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미군정이 좌우익 대립을 어느 정도 평정한 것은 군정의 공헌쪽에다 비중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이렇듯 혼미한 해방공간에서 45년 12월 경찰이 창설된데 이어 46년 1월에는 국방경비대가 창군되었다.미군정의 병력과 경찰력의 확보는 정치세력,특히 좌익의 극단적 움직임과 연관성을 갖는다. ○한민당계 인사 큰 혜택 군에는 광복군 출신을 비롯,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들이 포진했다.이 가운데 일본군 출신들이 두각을 드러내 군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버렸다.경찰의 경우도 조선총독부 시절의 인물들이 그대로 끼어들었다.이는 미군정이 일제치하의 경찰을 좌익색출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폭동,3·1절 좌우충돌,3월 총파업,4·3사태를 진압하는데 공헌했다.또 일본군 출신을 주축으로 한 군 역시 46∼50년까지 발생한 반란사건 진압과 토벌의 주력이 되었다. 미군정은 정부수립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걷는데 일제시대 기득권층을 그대로 흡수한 측면이 없지 않다.이는 정부수립 후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해방 원년 일본인 관리들이 물러난 자리에 7만5천여명의 한국인을 앉혔다.그 과정에 미군정의 인사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일제하의 관료를 우대했는데,한민당계의 인사들이 큰 혜택을 입었다.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지원할 무렵에는 안재홍과 같은 인물이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한민당계에 밀렸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일본이 침략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악법을 19 45년 10월9일 법령11호에 따라 폐기해버렸다.여기에는 정치범처벌법,예방검속법,치안유지법,출판법,정치범보호관찰령,경찰의 사법권 등이 포함되었다.미군정은 이 악법들의 폐지 이유를 「한국인들에게 정의의 정치와 법률상의 균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미군정은 소련의 한반도 적화정책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유를 안겨주었다.초기에는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한 것은 물론 출판언론의 자유도 열어주었다. 패전국 일본이 남겨놓은 재산은 기업의 경우 전체의 90%,토지는 전 국토의 12·5%나 되었다.이 재산은 일제가 36년 동안 착취한 것이어서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이른바 적산으로 분류한 이들 재산을 법령 제33호에 따라 우선 군정청 소유로 했다.적산을 한국인들에게 매각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명문화했는데,이는 뒷날 한국에 세워질 정부에 맡긴다는 방침이었다.특히 토지의 경우는 여론조사에 붙였다.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이 정부수립 이후의 처리를 희망했다. 토지(농지)문제는 특히 북한으로부터 공격적 선전자료가 되었다.북한은 소련의 조정에 의해 1946년 초 토지개혁을 단행한 터여서 미군정을 호되게 비판했다.하지만 미군정은 적산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재정재산협정에 따라 한국에 넘겨주었다.미군정은 다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 소작인이 수확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규정하는 법령 제9호를 해방 원년에 제정했을 뿐이다.특히 미국의 입장은 재산처분에 관한 한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남조선과도정부를잠정적으로 만들었다.1946년 3월 법령 제64호를 적용하여 군정청기구의 국을 부로 바꾸고 군정체계를 확립했다.각 부처장으로 한국인을 채용하여 한미 양부처장제를 실시한 것도 이무렵이다.이해 9월 군정장관 A L 러치는 특별발표에서 행정권 이양의사를 밝혔다.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고문자격으로 부결권만 행사하는 가운데 두 나라 국어를 사용한 종래의 모든 문서가 한국어로 단일화되었다. ○적산 한국정부에 이양 남조선과도정부가 한국의 정부수립을 대처한 미군정의 조치였다면 1946년 12월에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주주의 예행이라 할 수 있다.입법의원은 김규식을 의장으로 한 관선 45명,민선 45명으로 구성되었다.민선의원의 경우 인구비례에 따라 각 도에 정원을 배정했다.이 민선의원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그래서 입법의원은 국민대표기구이자 입법기구로서 초보적이나마 현대적 의회였다. 이 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의 좌우합작운동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다시 말하면 미군정은 좌우합작운동을 초기부터 지원하는 대신 이를 과도입법의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어떻든 입법의원은 입법기구로서 남조선과도정부 및 그로부터 분리 독립한 법원과 더불어 3권분립 관계를 이루어냈다.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웨드마이어중장 연설」 벽보/트루먼의 특사 “공가주의 투쟁 자제” 역설/“권리쟁탈의 욕망 제일 큰 문제” 지적/「조선의 인권·재산권 보장」 방침 천명 1947년8월 미군정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대통령(H S 트루먼)의 특사 A C 웨드마이어 중장(1897∼1990년)의 연설요지를 실은 벽보가 발견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서울 중랑구 중화2동 김보영씨(67)로부터 제공받은 이 벽보는 한국에 대한 당시 미국 정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벽보는 서두에 「현 세계의 여러가지 문제중에 권리쟁탈의 욕망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이는 아마도 동서냉전체제 아래서의 갈등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그가 1947년 8월26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10여일 한국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이 벽보는 9월쯤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가 한국에 머물 무렵은 제2차 미소공동위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선동하는 군중대회가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없애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 욕망을 군사적이 아니고 화가나 문학가의 붓으로,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로 없애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아주 낭만적인 표현을 썼다.그리고 「욕망을 없애거나 줄이면 더 좋은 목적을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말로 공산주의 투쟁의 자제를 당부했다. 이 벽보에는 「조선이 완전 자유독립국가를 만들도록 인권과 재산권 보장,자유기업을 장려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그의 재산권보장 발언은 미군정이 토지개혁을 장차 수립될 한국정부에 넘겨주겠다는 확고한 방침으로 나타났다.패전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적산도 처분하지 않고 뒷날 한국정부에 이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웨드마이어 장군의 조선여행중의 연설」요지를 전제로 한 이 벽보의 크기는 가로 28.5㎝,세로 50.5㎝.그는 한국을 방문한뒤 냉혹한 판단으로 일관한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썼다.오하마 태생의 육군중장이었던 그의 보고서는 미국 대한정책의 골격이 되었다.
  • 격전의 현장(“열전” 6·27선거/D­2일)

    ◎서울 구로구청장/민자 「경험」 대 민주 「경력」 대결 구로 구청장을 향해 뛰는 후보들은 모두 4명이다. 민자당 김익수 후보(62)와 민주당 박원철 후보(61)는 각각 우세를,자민련 여범구 후보(57)와 무소속 안경달 후보(52)는 백중세를 주장하고 있다. 민자당의 김후보측은 『초반에는 인지도가 낮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선거공보가 각 가정에 배달된 이후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며 말단 서기보에서 출발,구로구 총무국장·부구청장·서울지하철공사 감사 등 32년의 다양한 행정경험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 ▲주거환경 개선 등 7가지의 공약이 유권자들로부터 실현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판단,「인물과 정책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민주당의 박후보는 민자·자민련·무소속 후보가 과거 민자당에 몸담았던 탓에 여권표가 분산될 것으로 예상하며 유권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호남표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외무 및 사법 고시 합격 이후 공무원·외교관·판사·변호사·야당 인권위원 등의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며 ▲고급패션타운 건설 ▲환경오염 업체 이전 등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의 구로 건설」을 외치고 있다. 자민련의 여후보는 서울시 의원과 구로신문사 사장을 지내며 어느 누구보다 지역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며 ▲수도권 서남부의 성장거점으로 개발 ▲공단과 연계한 상업도시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른 후보들보다 능란한 말솜씨로 동 단위로 돌며 10∼20분씩 반짝유세로 득표활동을 한다. 구로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며 구로구 새마을 지회장을 지낸 무소속 안후보는 새마을 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시장통과 주택가를 누비며 다른 3후보를 추격 중이다. ◎전남 여천시장/확실한 강자없이 8명 대혼전 전남 여천시장 선거에는 8명의 후보가 난립했으나 아직껏 뚜렷하게 우열이 가려지지 않은,전남 최고의 격전지다.3강·3중·2약이 일반론이지만 확실한 강자는 없다.따라서 당락도 박빙의 차이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민자당의 정성환 후보(60·전 여천 부시장),민주당의 정채호 후보(46·고려상호신용금고 대표)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당조직과 인맥을 기반으로,무소속 허영문 후보(51·시의회 의장)는 4년의 의정활동과 민주당에 대한 반발표를 기대하며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민자 정후보는 『아내가 최근 교직을 사직하고 연설원으로 나서는 등 가족과 친인척이 총동원됐다』며 토박이로서의 학연과 오랜 공직 생활로 쌓은 친분을 밑거름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민주 정후보는 『공천과정의 갈등을 조기에 수습해 전열이 빨리 정비됐다』며 전남요트협회 회장과 수산대 총동창회 부회장 등의 직함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무소속 허후보는 『원만한 의정활동과 월내동 이주대책 위원장으로서의 활약을 고려할 때 공단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승리를 자신한다. 무소속 서광식 후보(60·주삼동장),주봉선 후보(64·삼일동장)도 『동장 시절 끈끈한 인연을 맺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도와 주고 있다』며 표밭을 누빈다. 이태주(48·여천 새마을금고 대표),조길환(43·여수 수산대교수),주형근(45·민주당 연수위원)후보들도 『동문과 제자들의 후원이 만만치 않다』며『40대의 참신성과 젊음을 앞세워 부동표를 잡는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승부에 집착한다. 유권자는 모두 4만6천9백27명으로 최근 새 주거지역으로 각광받는 쌍봉동 유권자(1만4천5백53명)의 향배가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 장진홍 의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 조선은행 폭파 “미완의 거사”/일제만행 철저히 조사… 국제사회 고발시도/동경경시청 테러 모색중 붙잡혀 순국자살 『육체는 죽는다해도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겠다』 창려 장진홍 의사(1896년 6월6일∼1930년 6월5일)가 일제에 의해 사형이 확정된뒤 대구 옥중에서 일제총독에게 보낸 서한문의 한 대목이다. 의사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의사는 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교,2년동안 군사지식을 배우고는 제대해 곧바로 독립운동단체인 광복단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사는 1918년 만주 봉천(심양)을 거쳐 연해주로 건너가 광복단 동료들과 함께 한인 청년 80여명을 규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훈련이 어렵게 되자 다시 귀국,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맞았다. 의사는 일제가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등을 저지르자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국제사회에 고발코자 전재산을 정리해 한국인 피해조사작업을 펼쳤다. 서적행상으로 가장해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학살·방화·고문사실등을 기록한 「조사문」을 작성,인천함대에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의사는 국내 독립운동이 미약해지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에게 타격을 가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27년 4월 의사는 동료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약전문가 굴절무삼낭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굴절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웠으며 만주와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뇌관등을 구입했다. 의사는 이어 1927년 8월 시험적으로 제조한 2개의 폭탄을 칠곡 산중에서 터뜨리는 폭파시험을 가졌다. 폭파위력을 확인한 의사는 혼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폭탄투척장소를 경북도청·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대구 부호가등 5곳으로 선정하는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는 거사를 위해 다시 6개의 폭탄을 제조,1927년 10월18일 거사에 나섰다. 이날 상오 9시쯤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대구시내 덕흥여관으로찾아온 선생은 『길전상점 점원인데 이 여관에서 며칠간 묵게 됐다』고 신분을 위장하고 투숙했다. 선생은 이어 상오 11시30분쯤 폭탄을 4개의 벌꿀상자속에 넣어 싼뒤 여관점원에게 『이웃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이 선물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대구지점의 한 일본인 은행원에게 이 상자를 전달했으나 이 은행직원이 폭탄폭발 직전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폭탄임이 들통났다. 은행원들은 서둘러 폭탄 도화선을 자르고 다른 3개는 길옆으로 내다놓았다. 그러나 11시50분쯤 길옆의 폭탄 3개가 폭발,신고를 받고 쫓아온 일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은행창문 70여장이 부서졌다. 이 거사로 대구시내는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고 일경은 총비상이 걸렸다. 의사는 미리 여관을 나와 선산군의 한 동지집으로 피신해있었다. 일경은 범인을 찾을 수 없자 전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정기등 8명을 검거,고문으로 거짓조서를 받아 공판에 회부했다.민족저항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건국훈장 애국장)도 이 때 사건에 연루돼 무고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의사는 이어 1928년 다시 영천경찰서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예 일본땅에서 거사를 할 생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11개월동안 이곳저곳 폭탄투척장소를 물색하던 의사는 동경 일제 중의원과 경시청을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거사후 일본을 탈출할 계획까지 치밀하게 짰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에게 이미 혐의를 두고 검거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다. 일제는 거사를 며칠 남겨둔 1928년 2월13일 의사가 묵고있던 대판시내 안경점을 급습,의사를 체포했다. 체포된뒤 대구로 압송된 의사는 일경의 심문과정에서 『조선은행 폭탄사건은 혼자 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동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의사는 사형이 확정되자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육군52사단」(산하 파수꾼)

    ◎“1산 1하천 보호”… 오물 42t 수거/연 12만명 동원… 안양천살리기 온힘/휴지 2백㎏ 모아 판매… 장병 후생비로 『서울 강남지역의 산과 하천은 우리가 맡아 깨끗하게 가꾸겠다.특히 한강의 지천으로 오염이 심한 안양천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육군 제52사단(사단장 안경선 소장)은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위원 부대로 참여하면서 안양천 살리기와 광명의 구름산지키기운동을 펴겠다고 결의가 대단하다. 「국토방위에 못지않게 환경보존도 중요하다」는 이들은 매월 첫째주 토요일을 국토가꾸기의 날로 정하고 1산,1하천을 깨끗하게 지키기로 했다.이에따라 지난 3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4백여명의 장병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묘역 일대에서 대대적인 오물수거 작업과 환경캠페인을 펼쳤다. 육군 제52사단은 군부대로는 일찌감치 환경운동에 앞장서 지난 89년 5월부터 현장활동을 실시해 왔다.주민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을 특별히 지정,그동안 연인원 12만여명을 참여시켜 안양천,보라매 공원,계화산,내곡동 고덕천등에서 42t의 오물을 수거했다. 국토를 아름답게 가꿈으로써 민·군의 유대강화는 물론 대군신뢰도를 높이고 있는 이 부대는 올해 들어서만도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위원 부대로 위촉되면서 지난 2월 첫주 토요일을 시작으로 연인원 1만1천여명이 서울 강남지역에서 3.3t의 쓰레기를 치웠다. 장병 뿐만 아니라 군인가족 모두가 환경실천요원.지난 5월 6일에는 고덕천을 비롯한 부대 주변에서 군인가족과 함께「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을 실시하자 인근 샘마을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흐뭇한 화합의 장을 만들기도 했었다.산하가꾸기 외에도 생활에서 환경의식을 실천하고 있다.매월 폐휴지 2백여㎏을 모으는 등 재활용 생활쓰레기를 팔아 장병들의 복지후생비로 쓰고 있고 폐식용유로 무공해 비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 가정마다 화학제품 비누가 사라졌다. 「실적은 둘째,실천은 첫째」라는 이들 부대는 이같이 소리없는 환경운동을 펼친다는게 장병들의 굳건한 신조다.
  • 제5회 「마약퇴치 대상」 영광의 얼굴들

    ◎대상/부산지검 마약수사반 정대표 반장/“국제마약조직 한국시장에 눈독”/국내생산 봉쇄하자 밀수입 크게 늘어/작년 히로뽕 밀매 2백30명 검거실적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 마약조직의 새로운 판매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지요』 제5회 마약퇴치 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부산지검 마약 수사반의 반장 정대표 검사는 『이번 상이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마약 범법자들을 뿌리뽑아 마약 없는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산지검 마약단속반은 그 동안 국내의 최대 히로뽕 밀매조직인 최재도파·김찬기파·차영수파 등 큼지막한 밀매조직을 뿌리뽑았으며 이 밖에도 수십개의 히로뽕 밀조 및 밀매조직을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들로부터 압수한 히로뽕 완제품 3백48㎏은 서울 인구와 맞먹는 1천만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며 금액으로 따지면 무려 9천억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도 히로뽕 밀매범 등 2백30명을 검거하는 실적을 보였다.특히 대구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무대로 히로뽕을 밀매해 온 설일남씨도 끈질긴 추적 끝에 붙잡아 지난 해 11월 말 구속했다. 『단속을 강화해 국내 생산이 거의 중단되자 국제 조직과 연계한 마약류의 밀매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힌 정검사는 『이는 우리나라가 마약의 유통경로에서 마약의 소비국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부산지검 마약단속반에 검거된 정영석파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지난해초 서울과 부산의 국제공항 등을 통해 대량의 히로뽕이 밀수입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단속반은 곧 수사에 들어갔다. 3개월 뒤인 같은 해 3월말쯤 서울에서 대만산 히로뽕 1㎏을 밀매한다는 정보를 입수,현장을 덮쳐 밀수 총책 정영석씨 등 일당 6명을 모두 검거했다.압수한 히로뽕은 대만산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에는 일부 해외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히로뽕과 헤로인·대마초 등을 피우며 환락을 일삼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귀국하는 여행객들을 내사,태국에서 접대부들과 함께 대마초 등을 피우며 환락여행을 하다 귀국한 12명을 적발,전원 구속해 환락여행을 일삼는 마약사범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렸다. 마약수사반은 일부 유흥업소 종사자 및 특정 계층에서 복용하던 마약이 최근에는 가정주부·회사원·농민 등 전 계층으로 확산되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때문에 단속은 물론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마약 밀매범들은 점조직으로 연결돼 있고 수법 또한 갈수록 다양화·지능화되고 있어 수사가 더욱 어렵습니다』 이처럼 고충을 토로하는 수사반원들은 마약을 우리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신고와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상 단속부문/충남 서산경찰서 박병규 서장/청소년 대마흡연 단속… 바른길 인도 모든 직원이 민생치안의 확립을 위해 힘쓰는 가운데서도 마약류 사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단속에 나섰다. 지난해 6월1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앵속재배 18명과 대마초 흡연 1백12명등 마약사범 1백30명을 적발해 96명을 구속하고 34명을 입건,마약류사범 퇴치에 크게 이바지했다. 지난해 6월25일 하오11시쯤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의 대마밭에서 대마초 3백g을 몰래 따서 말려 흡연하던 양모군(18)등 6명을 적발,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하는 등 특히 청소년의 문란한 대마흡연을 단속,바른 길로 이끌었다. 주민의 무분별한 대마재배에 대해서도 철저한 단속을 벌여 농촌까지 파고드는 대마의 위험을 막기도 했다. ◎본상 치료부문/국립서울정신병원 이충경 원장/다양한 치료·재활 프로그램 개발 90년 1월 마약류 중독자 중앙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되어 55병동에 특별히 5개 병상을 마약류환자들에게 배정하고 이 환자들의 치료·교육·재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했다. 특히 검찰청에서 의뢰한 히로뽕이나 대마류등 약물중독 여자환자를 3개월동안 입원시킨 뒤 본원 22병동에서 「알코올및 약물중독 회복 프로그램」에 넣어 약물남용을 하지 않도록 재활의 길을 열어주었다. 지난 3월에는 서울가정법원 보호소년 수탁기관으로도 지정돼 청소년 약물중독환자를 증세와 성별로 분리해 치료를 하고 있다. 마약류 근절을 위한 국민계몽 교육과 강연뿐만 아니라 마약류 관련 국제 세미나등에 참여해 세계 여러 나라와 정보와 자료를 교환,좀더 좋은 진료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상 학술부문/김경빈씨 김경빈신경정신과의원 원장/약물중독 관련 학술논문 18편 발표 날로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는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예방과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청소년학회등에 참여해 연구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87년 「최근 5년간 국립정신병원에 입원한 알코올중독 환자에 대한 임상적 고찰」,88년 「한국형 알코올중독 선별검사 제작을 위한 예비연구」,90년 「히로뽕 남용」,93년 「한국형 약물중독 선별검사표 제작에 관한 연구」등 87년부터 93년까지 알코올및 약물중독에 관한 논문을 무려 18편이나 발표,마약류와 약물 오·남용의 예방·퇴치를 위해 힘을 기울였다. 라디오와 TV는 물론 신문·잡지등을 통해 약물 오·남용 폐해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나서는 한편 90년부터 지난 5월까지 중·고등학교등에서 1백11차례나 강연을 했다. ◎본상 계몽부문/서울약사회 한석원 회장/마약류 폐해 비디오테이프 배포 마약은 물론 약물의 오·남용 예방캠페인과 교육·계몽사업에 적극 참여,국민의 경각심을 높이고 마약퇴치운동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93년5월 서울약사회에 「마약류및 약물남용상담소」를 설치,약사 30명을 상담요원으로 임명해 마약류의 폐해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면서 남용을 막는 데 앞장섰다. 중·고등학생이 마약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학교를 방문해 약물 오·남용 폐해에 대한 홍보활동을 전개한 것을 비롯,지난해 5월에는 「흡입제 시작은 파멸」이라는 비디오테이프 1천개를 제작,배포하기도 했다. 해마다 마약류 남용을 막기 위한 포스터와 스티커들을 만들어 길가나 약국등에 붙이는가 하면 홍보교육용 만화까지 만들었다. ◎본상 보도부문/김종화 문화방송 사회부기자/중국통한 밀반입 실태 심층보도 92년8월부터 검찰청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히로뽕과 대마초·헤로인등 마약류 범죄와 실태·문제점등을 심층보도해 마약류에 대한 위험성을 국민에게 일깨웠다. 더욱이 최근 중국에서 싼값에 히로뽕 반제품인 공업용 염산에페드린이 대량으로 밀반입되는 사례와 중국을 오가는 교포와 여행객의 증가로 소량의 앵속류를 휴대품에 숨겨 들여오는 사건을 심도 있게 취재보도,마약류 밀반입에 따른 대책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법무부가 추진해 온 마약범죄를 통해 취득한 재산뿐만 아니라 증식된 재산도 몰수하고 마약거래로 형성한 불법자금의 돈세탁도 처벌하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안」을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보도함으로써 마약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특별상/안경희 대검 마약과 검찰서기/미·홍콩 등 외국과 협력체제 구축 90년 9월 대검찰청 마약과 검찰서기보로 임용된 뒤 국제부문을 담당하면서 마약류 관련 국제협력증진에 적극 기여,미국·홍콩등 외국 관련기관과의 원활한 상호협력체제를 세워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였다. 90년부터 대검찰청 주최로 19차례 열린 「국내 외국대사관 마약관계관 회의」의 준비 및 진행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한편 93년 제18차 유엔 아태지역마약법집행기관장회의를 서울에 유치,개최하는 과정에서 실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회의를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해마다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유엔 마약위원회회의」 등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정부대표의 발언문 작성이나 회의참가 자료준비 등을 빈틈 없이 해 대표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 「래리 킹 라이브」(임춘웅 칼럼)

    래리 킹 라이브 「래리 킹 라이브」는 미국 CNN TV의 간판 프로그램중 하나인 대담프로의 이름이다.래리 킹이란 이 프로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이름이고 다 아는 것처럼 라이브란 이프로의 대부분이 생방송으로 나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CNN이 이프로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 쏟아붓는 돈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대담대상자가 스튜디오에 나올 형편이 아니면 방송팀이 출장을 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매일 방송이 되기 때문에 런던에서 방송을 하고는 새벽같이 애틀랜타의 본부나 워싱턴으로 황급이 옮겨야하는 강행군의 연속이다.한국에도 CNN이 방영되고 있어 이런 얘기가 벌써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프로의 트레이드 마크는 뭐니뭐니해도 래리 킹의 멜빵일 것이다.그는 언제나 요란스런 색깔의 멜빵을 메고 TV에 나타난다.그는 이 멜빵을 살리기 위해 항상 와이셔츠 차림이다.멜빵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취재를 해보진 못했으나 필자가 지켜본 3년여동안 같은 멜빵을 메고나온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같다.그만큼 멜빵이 많다는 얘기다.그의 독특한 용모와 친근감도 이 프로를 살리는데 일조를 했을 법하다.서양사람같지 않은 골격에 시골면장처럼 구수한 데가 있다.그는 실제로 러시아계 유태인2세다.못생긴 얼굴에 검고 두툼한 안경테,쉰 목소리에 촌스럽기 이를데 없는 이사람이 좀 과장을 하자면 요즘 미국정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프로의 창설10주년이 되는 지난 5일밤 대담에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을 함께 불러내 1시간동안 대담을 했다. 이 프로가 방송된후 화제가 된것은 정·부통령의 발언내용이 아니라 래리 킹의「위세」였다.미국의 언론사상 현직 정·부통령을 함께 불러내 대담을 한 일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해들은 얘기지만 몇달전 클린턴 대통령이 특별회견 프로를 녹화하기 위해 CNN 본부가 있는 애틀랜타의 스튜디오에 들르지 않으면 안됐다고 한다.그런데 놀란 사람은 CNN견학을 갔다가 이 녹화 장면을 우연히 보게된 우리나라기자였다.PD가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며 대통령이 마치 PD의 지시대로 움직이는배우같더라는 것이다. 왜 「세계의 대통령」이란 미국의 통치자가 체통(?)없이 카메라 앞에서 PD의 지시대로 움직여야하고 정·부통령이 함께 TV프로그램에 나와 앉아있어야 하는 것일까.말할것도 없이 TV의 영향력 때문이다.한 방송프로가 10년만에 이런 영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어떤 사람은 래리 킹의 대담이 쉽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그는 언젠가 어렵고 전문적인 질문을 할 시간과 지식이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래리 킹의 성공은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계속해서 대담을 해내는 그의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대상/부산지검 마약수사반/제5회 「마약퇴치대상」 수상자 선정

    ◎본상 단속부문 서산경찰서 치료부문 서울정신병언 계몽·예방 서울시약사회 학술·연구 김경빈씨 보도부문 김종화씨 특별상 안경희씨 서울신문사와 스포츠서울,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주최하고 문화체육부·보건복지부·대검찰청·경찰청·관세청·서울시·진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5회 「마약퇴치대상」 수상자가 8일 확정됐다. 대상은 부산지검 마약수사반(정대균 검사)이 차지했으며 본상은 ▲단속부문 충남 서산경찰서(서장 박병규) ▲치료부문 국립서울정신병원(원장 이충경) ▲계몽·예방·교육부문 서울시약사회(회장 한석원) ▲학술·연구부문 김경빈(신경정신과의원원장) ▲보도·국제협력증진부문 김종화씨(문화방송 사회부기자)등으로 결정됐다. 올해 처음 제정된 특별상은 안경희씨(대검 마약과)에게 돌아갔다. 대상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5백만원,본상 및 특별상 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3백만원씩을 받는다. 시상은 오는 13일 하오 4시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95 마약퇴치 국민대회」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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