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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심슨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돌아온 심슨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못 말리는 가족의 좌충우돌 일상, 매력적인 노란 피부 ‘심슨 가족’들의 열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채널 투니버스는 25일부터 매주 월~목 오후 11시30분에 ‘심슨네 가족 시즌10’(원제·The Si mpsons)을 방송한다. ‘심슨네 가족’ 시리즈는 미국 스프링필드에 사는 심슨 가족의 일상을 재치 있는 유머로 그려내면서 미국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인기 장수프로그램이다. 엉뚱하고 낙천적인 가장 호머 심슨과 높은 파마머리의 아내 마지, 악동 바트와 똑순이 리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 이들은 ‘맷 그로닝’(Matt Groening)의 원작 만화를 미국 FOX TV가 1989년 처음 ‘크리스마스 스페셜’로 방송한 이래 2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다. 심슨 시리즈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총 20개 시즌, 440개 에피소드가 방송됐다. 2010년쯤에는 시즌21도 제작·방송될 예정. 이번 시즌은 미국 FOX TV에서 1999~2000년 제작·방송한 것으로 미국에서는 시즌11로 전파를 탔으나, 투니버스에서는 국내 소개된 순서에 따라 시즌10으로 제목을 붙였다. 국내에는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시즌이다. 투니버스 관계자에 따르면 심슨 시리즈 에피소드 중 일부는 국내 정서와 맞지 않거나 ‘15세 이상’이란 등급에 맞지 않아 방영에 제한을 두다보니 한·미 간 시즌 방송 순서가 틀어진 것이다. 25일 방송하는 1화 ‘최악의 영화’편은 할리우드에 초청된 호머 심슨의 이야기다. 호머는 멜깁슨의 새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아내 마지가 그를 칭찬하자 질투심에 영화를 혹평한다. 이를 들은 멜깁슨은 영화 개선에 도움을 달라며 할리우드 영화제작 현장으로 호머를 초청한다. 26일 2화 ‘개과천선한 바트’편은 착해지는 약을 먹은 바트 이야기. 매일 말썽만 피우는 악동 바트를 보다못한 교장은 호머와 마지를 호출해 바트에게 새로 나온 약을 먹여보라고 권한다. 제약회사까지 직접 달려가 약효를 본 부부는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긴다. 27일 3화는 ‘핼러윈 특집’편. 안개가 자욱한 밤 운전을 하던 마지가 옆집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네드 플랜더스를 친다. 심슨 가족은 이 사고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아무도 자기들을 의심하지 않자 기뻐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지금이 구조조정 적기… 긴장 늦출 시기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지금이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적기(適期)”라면서 “구조조정과 함께 공공부문의 효율성도 크게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KBS 라디오 등을 통해 방송된 라디오연설에서 “정부는 이미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머지않아 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누적돼 온 비효율과 거품을 제거하느냐 못하느냐, 미래를 위해 과감한 개혁과 투자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 저의 분명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공기업, 금융기관 개혁 탄력 받을 듯 이 대통령은 현재 진행중인 공기업 선진화, 금융기관 및 민간기업 구조조정, 불합리한 규제철폐,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등의 차질없는 이행을 강조한 것이다. 앞으로 정부의 관련 작업 및 개혁입법 처리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현 경제상황에 대해 “경기하강의 속도가 다소 완화되고 있고 각종 경제지표들도 나아지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긴장을 늦출 시점이 아니고, 전 세계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운전으로 비유하면 지금은 강풍이 다소 잦아들어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게는 됐지만 여전히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서둘러 긴장을 풀어 위기를 통해 반드시 해야 할 구조조정과 각종 개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아쉬움도 표시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토대로 각종 개혁과제의 차질없는 이행 등 미래를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던 과오를 되풀이해 현실에 안주할 경우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결국 위기 이후 재편될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일자리 문제 나아지는데 시간 필요” 이 대통령은 “서민지원 등 각종 정책도 긴급 재정 지출이라는 진통제를 놓아서 꾸리는 상황이지만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고,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선다고 해도 서민들의 삶이나 일자리 문제가 나아지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가 빨리 충족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고종·백범의 묵향이 한눈에

    고종·백범의 묵향이 한눈에

    경기가 불황에 빠지면 고서화가 뜬다고 한다. 연초 갤러리 학고재가 기획한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은 만원사례였다. 몇년 전부터 남몰래 조선시대 고서화 기획전을 준비했던 우림화랑 임명석 대표는 살짝 김이 샜다. 그래서 임 대표가 두 손을 놓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느닷없이 대규모 서화전을 연다고 연락해 왔다.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은 19일부터 6월3일까지 ‘묵향천고(墨香千古)-신록의 향연’전을 연다. 1층부터 4층까지 전관에 전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추사 김정희, 백범 김구의 서예작품 55점, 오원 장승업의 ‘화조도’, 소치 허련의 ‘산수도’, 단원 김홍도의 ‘강상한취도 등 75점이 전시된다. 모두 130여점에 이르는 물량이다. 이중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 등 일부 작품은 개인 소장자에게 빌린 것으로 판매하지 않고, 도록에도 올리지 않았다. 전시 작품 중 40% 정도가 개인소장품으로 오랜만에 외출한 것들이다. 임 대표는 “조선 말기인 1902년 이전 출생자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했다.”면서 “KBS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도 활약하는 문우서림의 김영복씨가 작품을 선정하고, 김규선 선문대 교수가 한글 해설을 붙였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도 많다.”면서 “현대미술의 뿌리가 고서화에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고, 5~6월에 수천년간 유지되는 묵향을 여유작작하게 즐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2층 전시실 정면에 고종의 ‘청학정’ 편액과 명성황후가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써보낸 ‘오언축시’, 대원군과 의친왕 강의 글씨 등 왕가의 글씨를 한 데 모아놓기도 했다. 추사의 글씨는 6족자나 나와 있다. 행서체로 써내려간 ‘오직 도서(圖書)와 고기(古器)를 사랑하고 보리(菩提)에 들게 할 뿐이다.’ 내용의 족자는 유난히 힘이 넘쳐 보인다. 출품작 중 그림으로는 임자년(1560)과 계축년(1561년)생인 10개 문중의 선비 11명이 1610년 계모임을 연 기념으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 ‘임계계회도(壬癸契會圖)’, 표암 강세황의 산수도도 4작품이나 나왔다. 오른쪽 어깨 관통상의 후유증으로 일견 어눌해 보이기까지 한 백범 김구의 글씨 ‘서산대사시’도 좋은 구경거리다. 지하 1층에는 청전 이상범의 안개낀 듯한 풍경 ‘강촌어주도’, 소정 변관식 ‘무창춘색도’ 등 수묵화가 각각 여러 폭 걸려 있다. (02)733-378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미스·모토롤라」이광자(李光子)양-5분 데이트(195)

    「미스·모토롤라」이광자(李光子)양-5분 데이트(195)

    「모토롤라」의 3천 아가씨를 설레게한 제2회「미스·모토롤라」선발대회는 지난 6월4일 58명의 사내(社內) 후보들의 경염 끝에 「진」 「선」「미」「스마일」「인기상」의 다섯 미인을 뽑았다. 그중 「모토롤라」의 최고 미인인 진(眞)으로 뽑힌 아가씨가 이광자양(19). 충남 대천이 고향이어서 여름철만 되면 해수욕장에서 살아 어릴적 별명이 깜둥이였고 수영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단다. 165㎝의 키, 35-23-36의 몸매. 전체적으로 시원스레 잘 생긴 인상이다. 대천에서 농업을 하는 이정국씨(58)의 딸만 넷인 집안의 셋째. 부모와 떨어져 면목동 일가 댁에서 출퇴근하는 것에 이제는 조금도 불편을 모를 만큼 익숙해졌다.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밤근무를 하기 때문에 온통 잠으로 낮시간을 메워야하는 변칙적인 생활에도 1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익숙해졌다. 중대부고를 나왔는데 돈을 함부로 써 본 일이라곤 없다는 실속파 아가씨다. 진으로 뽑혀 상품으로 받은 자봉틀도 잘 뒀다가 시집갈 때 가져가겠단다. 몇달만큼씩 부모님이 서울 올라오실 때라야만 좋아하는 비빔국수와 불고기를 먹을 정도로 돈을 아낀다. 평범한 가정주부 되기가 소원인데 결혼은 3~4년 뒤쯤. 일요일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구경을 곧잘하는 편인데 요즘 본 영화로 좋았던 것은 『파리는 안개에 젖어』. 혈액형은 B형. [선데이서울 72년 7월 30호 제5권 31호 통권 제 199호]
  • [길섶에서] 배호가요제Ⅱ/노주석 논설위원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배호가요제’란 제목의 글을 길섶난에 올린 것이. 가요제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에 끌려 몇 자 긁적거린 글이 의외의 호응을 얻었다. 운 좋게도 지난 한 해 동안 길섶난에 실린 글 중 독자들의 서울신문 홈페이지 검색 수를 기준으로 ‘베스트 10’에 뽑히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 등용문인 ‘제13회 배호가요제’가 28일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개최 장소가 히트곡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발상지라는 점이 공교롭다. 가요제를 주최하는 배호사랑회 최종문(70) 회장의 공이 크다. 시인이자 작사가인 그의 헌신으로 가요제가 이어졌고 140명의 신인가수가 배출됐다. 불세출의 가수 배호가 떠난 지 어느덧 38년. 세월은 가도 사랑은 식지 않는다. 전국에 팬클럽이 100여개, 회원 수가 2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절판됐는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30년 전에 나온 지구레코드사판 ‘배호힛트곡 전집’에서 그의 독보적인 음색이 흘러나온다. 여전히 가슴을 후벼 판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노원 문화의 거리서 플레이 하세요

    노원 문화의 거리서 플레이 하세요

    ‘강북의 명소’로 떠오른 서울 노원 문화의 거리가 최근 설치된 이색 조형물과 길거리 노래방으로 대중성을 한층 높여나가고 있다. 노원구는 최근 노원역 문화의 거리에 직경 2m, 높이 3m 규모의 조형물 ‘플레이’와 길거리 노래방을 설치, 주말마다 문화의 거리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플레이는 저글링 마술사, 춤추는 비보이, 아코디언 연주가, 익살스러운 표정의 피에로 등 다양한 조각품들로 구성된 조형물이다. 특히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바닥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보물상자에서는 비눗방울이, 코끼리 조형물의 코에서는 드라이아이스가 분출되도록 제작됐다. 배낭 조형물에 100여곡이 내장된 센서를 부착해 사람이 지나가면 음악이 흐르도록 하는 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조형물 앞엔 길거리 노래방을 설치,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지나는 행인이라면 누구나 플레이를 무대로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댄서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구는 문화의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데다 길거리 노래방에 대한 호응이 높아 조만간 플레이 주변에 조명 타워 2대를 설치하고, 사인몰을 매달아 길거리 나이트클럽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문화의 거리의 조형물은 조각공원의 조형물과는 달리 바쁜 현대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가 이루어지는 조형물로 만들고 싶었다.”면서 “행인들의 반응이 당초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도시와 산] 춘천 삼악산

    [도시와 산] 춘천 삼악산

    푸른 북한강을 휘감아 돌리며 강원 춘천~서울을 잇는 길목에 삼악산(654m)이 우뚝하다. 해자를 두른 성처럼 춘천 도심의 지킴이 역할을 하는 주산이다. 삼악산은 그래서 춘천의 대문으로 통한다. 수천년 춘천을 요새처럼 지켜오며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장이기도 하다. 삼악과 더불어 살아온 춘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도 푸짐하다. 규모는 작지만 설악과 금강산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 아름다운 자태도 일품이다. 빙하기 때 얼음이 녹으며 형성된 등선폭포 일대 기암괴석의 오묘함은 신기로움 그 자체다. 바위 틈을 헤집고 수백년은 족히 넘게 자랐을 소나무들은 생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바위 절벽, 흙 능선 두 얼굴의 산 삼악산은 두 얼굴을 간직한 산이다. 산세가 험한 바위로 형성된 경사면이 있는가 하면 두루뭉술한 육산으로 이뤄진 능선도 있다. 헉헉거리며 바위를 기다시피 오르다 보면 어느덧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산책로 수준의 내리막이 나타난다. 해발 600m를 넘나드는 용화봉(645m), 청운봉(546m), 등선봉(632m)의 세 봉우리가 줄곧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은 많다. 이 가운데 의암댐~등선폭포 코스를 많이 찾는다. 의암댐에서 바위를 타고 정상까지 1시간30분쯤이면 족하다. 초입의 상원사를 지나 깔딱고개쯤 오르면 한겨울에도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깔딱고개에서 8부능선까지 줄곧 암벽을 올라야 하기에 쇠밧줄과 발 디딤쇠, 철 계단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초행길이면 아찔한 등산길이다. 정상으로 오르며 의암호수와 춘천시내를 조망하는 풍광은 장관이다. 호수 위에 붕어섬과 중도, 위도 등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담한 도시와 어울러진 산과 강이 기막히다. 춘천이 호수의 도시라는 것이 실감난다. 주말마다 오는 차진석(47·자영업)씨는 “안개가 자주 끼어 구름 속으로 언뜻언뜻 내려다보이는 도시와 호수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며 “마치 기구를 타고 하늘을 여행하는 듯하다.”고 삼악 예찬론을 편다. 정상에서 등선폭포쪽 길은 대부분 완만한 흙길이다. 산책하듯 내려오는 ‘아침 못’에 이르면 솔향기 가득 코끝을 자극한다. 아늑한 곳이다 보니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있다. 중간에 333 돌계단을 지나 흥국사에 이르면 다시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나오고 등산길 끝자락에 등선폭포가 그림 같이 펼쳐진다. 등선폭포는 빙하시대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계곡이다. 연이어 만들어진 폭포와 연담은 층층마다 모양을 달리한다. 깎아지른 듯 양쪽이 패어 만들어진 절벽은 하늘벽을 이룬다. 절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손바닥보다 작다. 하산길은 1시간 남짓 걸린다. 의암댐에서 등선폭포로 내려오는 2~3시간의 산행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하다, 마치 선녀와 함께 폭포를 여행하는 듯한 환상적인 코스다. 연인, 직장인, 동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장기형 삼악산관리사무소 직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성수기 주말이면 2000~3000명, 겨울이면 1000명이 찾는다.”며 “정상에서 강촌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코스와 진달래코스,덕두원길 등 다양한 등산길이 있어 취향대로 산행을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한다. ●산성 등 수천년 역사의 흔적도 즐비 삼악에는 수천년의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쉰다. 오랜 세월 곳곳에 흔적으로만 남은 삼악산성과 기와조각들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2000여년 전 춘천 우두벌을 근거지로 번성했던 고대 맥국이 외세에 밀려 삼악산에 처음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다가온다. 1100여년 전 후삼국시대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가 다시 삼악산성을 쌓아 한때 춘천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이후 구한 말(1896년) 춘천을 중심으로 5000~6000명의 의병들이 옛 산성을 보수하며 구국의 의지를 불사르기도 했다. 1000년 세월을 징검다리처럼 삼악산은 역사의 발자취를 하나씩 새겨 온 셈이다. 지금도 춘천지역 사람들은 ‘삼악산에 구름이 끼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믿는 것처럼 삼악산은 그렇게 춘천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오고 있다. 조선시대 춘천~한양을 잇는 옛길이 있는 곳이다. 1920년대 지금의 북한강 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 한양으로 가던 길이 삼악산으로 통했다. 지금도 옛길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덕두원이란 지명도 옛 주막이 있었다는 흔적이다. 한양에서 춘천으로 부임하던 전·현직 부사가 상견례를 하던 석파령도 있다. 우리나라 대표 신소설로 알려진 이인직의 ‘귀의 성’(1907년 만세보에 연재)의 주요 무대도 삼악산이다. 서울로 시집간 춘천댁이 본처의 질투로 죽음을 당한 뒤 삼악산에 묻혀 봄만 되면 새가 되어 구슬프게 운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삼악 산행길에 새소리만 들려도 소설속의 춘천댁이 그려진다. 문학평론가 김영기(72) 씨는 “삼악산은 뛰어난 풍광과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산으로 조만간 고속도로와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곤돌라 등을 설치해 새로운 춘천의 관광자원으로 크게 기대되는 산이다.”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봄바람에 한들한들 ~ 야생화들의 향연

    봄바람에 한들한들 ~ 야생화들의 향연

    국내 최대 규모 야생화 축제가 7일부터 한달넘게 경남 함양에서 펼쳐진다. 함양군은 대표적 평야지역인 함양읍 한들에 조성된 100만㎡의 국내 최대 야생화 단지에서 7일부터 6월10일까지 35일동안 꽃의 향연 ‘2009 함양 한들 플로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한들 꽃 축제는 자연경관이 빼어난 함양을 널리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함양군이 민간투자회사인 ㈜한들나라와 손잡고 추진하는 행사. 한들나라는 한들 꽃 축제 개최를 위해 지난해 10월 설립된 농업법인 회사다. 한들 야생화 단지는 양귀비를 비롯해 금영화, 안개화, 수레국화 등 10여종의 야생화가 활짝 펴 꽃 천지를 연출하고 있다. 축제장에는 루미나리에광장, 어린이 놀이광장, 꽃동산 전망대, 세계양귀비 특별전시관, 메인 이벤트 광장, 토속어류생태관, 철갑상어 전시관 등이 설치돼 있다. 메인 이벤트 광장에는 향토음식관을 비롯해 공연무대, 농산물특판장, 서커스, 세계문화풍물체험관 등이 마련돼 날마다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서커스 공연장에서는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동춘서커스단이 날마다 화려한 묘기를 선보인다. 루미나리에 광장에서는 매일 오후 7~11시 빛과 꽃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밤이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축제가 열리는 야생화 단지는 평소 벼농사를 짓는 들판이다. 한들나라측은 땅 주인 298농가에 3.3㎡당 1000~1800원씩 모두 4억 3000여만원의 토지사용료를 주고 축제장소를 빌려 야생화를 재배했다. 해당 농민들은 꽃 축제가 끝나면 모내기를 하고 벼를 재배해 수확한 뒤 다시 내년 꽃 축제를 위해 임대해 줄 예정이다. 군은 함양 꽃 축제가 농가 소득 증대와 관광객 유치 등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군 관계자는 노지에 꽃씨를 뿌려 이듬에 봄에 자연 개화한 꽃을 감상하는 함양 야생화 축제는 비닐하우스 등에서 꽃을 재배해 전시하는 국내 대부분의 꽃 축제와는 차별된다고 밝혔다. 한들나라는 당초 지난달 25일부터 축제를 열 계획이었으나 저온현상과 극심한 가뭄으로 개화시기가 늦어져 개막을 늦췄다. 한들나라 관계자는 “함양 한들 플로리아 페스티벌을 2~3년안에 국내 최대·최고의 명품 꽃 축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함양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황제의 딸’ 타이완 여우 린신루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

    ‘황제의 딸’ 타이완 여우 린신루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

    드라마 ‘황제의 딸’, ‘안개비연가’ 등으로 국내에 알려진 타이완 여배우 린신루(林心如·33)가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된다. 서울시는 6일 시청 서소문별관 간부회의실에서 린신루에게 시 홍보대사 위촉패를 전달한다고 4일 밝혔다. 린신루는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중화권을 대표하는 여성 스타로 현재 영화배우 소지섭과 함께 한·중합작영화 ‘소피의 복수’(非常完美)를 촬영 중이다. 린신루는 앞으로 서울을 중화권에 홍보하는 각종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길섶에서]후반생/김종면 논설위원

    어느 시인은 외로움에 사무치면 안개도 사람인가 하여 안아보는 밤이 있다고 썼다. 외로워 견딜 수 없으면 안개라도 껴안아야지…. 그러나 안개를 포옹하는 밤이라니, 그건 너무 허망하고 슬프다. 어느새 유행어가 되어 버린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 무엇이든 열정을 갖고 해야 이룰 수 있다는 얘기지만 좀 달리 해석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롭지 않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미쳐야 한다고. 한의학을 공부한 친구 P. 그는 요즘 요가에 빠져 있다. 쟁기자세 낙타자세 보트자세 등 이름도 재미있는 다양한 자세를 다 배우려면 한도 끝도 없다고 흥분한다. 한방과 접목한 요가법을 연구하느라 하루가 모자란단다. 또 하나 목숨 걸 가치를 발견했으니 복도 많다. 내 나이 50, 인생 후반생(後半生). 변변한 재주도 취미도 없는 난 무엇에 미쳐야 하나. 그날이 올 때까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 난 어떻게 살아 왔나, 살고 있나, 살아야 하나. 오늘 문득 잊었던 나를 불러낸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조덕배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 병세 호전… 재활치료중

    가수 조덕배(50)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조덕배는 지난 23일 밤 10시40분쯤 자택이 있는 경기 용인시 수지에서 미사리로 가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그는 한쪽 팔이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왔으나 차츰 차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산병원 측은 “상태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재활 치료 등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조덕배는 소프라노 김인혜 서울대 교수와 함께 CCM 음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음반에는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기타리스트 함춘호 등 동료 음악인들이 참여할 예정이었고 현재 4곡이 녹음된 상태다. 1983년 ‘나의 옛날 이야기’로 데뷔한 조덕배는 ‘꿈에’, ‘안개꽃을 든 여인’,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등 히트곡을 냈고 2007년 9년 만에 9집을 발표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자반고등어/홍종의

    [엄마와 읽는 동화] 자반고등어/홍종의

    거짓말도 자꾸 해 보니까 별 것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고 말도 더듬지 않았다. 오히려 없는 말까지 보탰다. 욱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남은 돈을 셈했다. 천원 권 두 장과 동전 몇 개가 고작이었다. “좀 아껴 쓸 걸.” 욱이는 후회를 했다. 엄마에게 과외비로 받은 오만 원을 열흘 만에 거의 다 써버렸다. 당장 내일 쓸 돈이 모자랐다. “한 시간만 더 하자니까.” 민규가 고양이 발톱처럼 열 손가락을 세워 흔들며 툴툴거렸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느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이제 돈 없어. 내일부터는 네가 대.” 욱이가 다른 쪽 주머니를 훌렁 뒤집어 보였다.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민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배고파. 오늘은 네가 떡볶이 좀 사라.” 욱이가 민규의 팔을 잡았다. 민규는 얼른 욱이의 팔을 떼어냈다. “내, 내가 왜?” 민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그렇게 많이 사 줬으면 한 번 사 줄 만도 하잖아.” 욱이가 목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누가 사 달랬어? 같이 있어 달라고 사정을 해서 나도 학원을 빼 먹으면서 놀아 줬더니….” 갑자기 민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욱이는 창피해 얼른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민규를 쫓아가 한 대 갈겨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지나가자 욱이는 골목에서 머리를 삐쭉 내밀었다. 민규가 바람개비처럼 팔을 빙빙 돌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의리 없는 자식! 두고 보자.” 욱이는 주먹을 꼭 쥐었다. 열흘 전, 순대 김밥 배달을 민규에게 들키지만 않았어도 엄마를 속이지 않아도 됐다. 하필 배달을 한 곳이 민규네 보석 가게였다. “너, 철가방이었어?” 푹신푹신한 소파에 누워 발장난을 하던 민규가 욱이를 보자 처음 한 말이었다. 번쩍거리는 보석 진열대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탁자에 김밥, 순대를 꺼내 놓는데 손이 떨렸다. 욱이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우, 우리 엄마 심부름이야.” 욱이가 더듬거렸다. 덩치로 보면 반밖에 안 되는 민규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잘난 우리 반 회장이 겨우 분식집 아들이었어?” 민규가 나무젓가락으로 순대를 싼 투명 랩을 푹 찔렀다. 욱이는 가슴이 찔린 듯 움찔했다. “안 본 걸로 해 줄 테니까 걱정 마.” 민규가 문까지 따라 나오며 욱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욱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민규네 가게에 다녀오고 나서 욱이는 고민이 생겼다.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친구에게 들킬 것이 뻔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욱이는 꾀를 냈다. 보석가게를 하는 부자 민규를 팔았다. 공짜로 과외를 같이 하자면 미안할 테니 오만 원만 내라고 했다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욱이가 도와줘서 편했는데 할 수 없지 뭐. 그런 친구를 두기도 어려워.” 엄마는 당장 꼬깃꼬깃한 천원 권과 오천원 권, 만원 권으로 오만 원을 채워 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보다도 욱이는 어떻게 당장 민규의 입을 막을지 막막했다. “똑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간판에 일찍 불이 켜졌다. 욱이는 육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높은 곳에라도 올라가야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빗방울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자동차들도 속력을 높였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한 발에 두 계단을 오르던 욱이었다. 그런데도 욱이는 느릿느릿 한 계단씩 육교에 올랐다. 육교에 오르자 바람이 시원했다. 욱이는 얼굴 가득 빗방울을 받았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욱이는 육교의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이리 와 봐.” 육교 중간쯤이었다. 한 할머니가 소쿠리를 앞에 놓고 욱이를 불렀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할머니 혼자뿐이었다. “저, 저요?” 욱이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여기 좀 앉아 봐.” 할머니가 손짓으로 소쿠리 앞자리를 가리켰다. 욱이는 자석에 끌리듯 할머니 앞에 앉았다. 비린내가 확 풍겼다. 소쿠리 위에는 생선 한 마리가 달랑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였다. 한 마리가 배로 다른 한 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뒤에서 꼭 껴안은 모습이었다. “자반고등어야. 다 팔고 이것만 남았어. 비도 오고 날도 저물고 이것을 팔아야 집에 갈 수 있어.” 할머니가 생선을 욱이를 향해 밀었다. 어둠이 내려 할머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 저는 돈이 없는데요?” 욱이가 앉은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키가 큰 트럭이 달려오는지 육교 위가 환해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입이 보였다. 그 모습이 욱이의 머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내일 갚으면 돼.” 할머니가 냉큼 생선을 집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내밀었다. 욱이가 받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 욱이는 얼결에 비닐봉지를 받았다. 할머니가 소쿠리를 챙겨서 일어섰다. 욱이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육교를 내려갔다. 욱이는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그냥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이라도 털어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혼자 남은 아줌마 손님이 일어섰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손에 묻은 물을 탈탈 털었다. “아이구, 우리 왕자님 오셨네.” 엄마가 두 팔을 벌리며 반겼다. “아들이우? 어쩜 저렇게 듬직하게 생겼을까?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엄마를 업어줘도 되겠네.” 아줌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업어주기는요. 몸은 커다래도 아직 애기인 걸요.” 엄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영어 과외는 잘했어? 고맙기도 하지. 그만한 돈으로 어떻게 과외를 해. 학원을 다니려고 해도 십 몇만 원은 든다던데.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해.” 엄마는 아줌마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욱이는 비닐봉지를 슬그머니 의자위에 내려놓았다. 욱이는 슬슬 엄마의 눈치를 봤다. 탁자에 걸레질을 하는 엄마가 더 작아 보였다. 욱이는 주춤주춤 엄마에게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엄마, 한 번 업혀 봐.” 등 뒤에서 엄마의 기척이 들렸다. “어서!” 욱이가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업히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가 뒤에서 욱이를 꼭 끌어안았다. 욱이는 가슴이 저릿해졌다. “우리 욱이 많이 컸네.” 엄마가 팔에 힘을 주었다. 욱이는 몸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아주 작아져 엄마의 가슴에 푹 담기는 것 같았다. 그때 욱이는 자반고등어 생각이 났다. “어, 엄마. 이거.” 욱이는 자반고등어 봉지를 내밀었다. “육교를 건너는데 할머니가 팔고 있었어. 이걸 팔아야 집에 갈 수 있대. 그래서 돈이 없다고 하자 내일 갚아도 된 대.” 엄마가 봉지 속에서 자반고등어를 꺼냈다. 불빛을 받고 자반고등어의 등이 푸르게 빛났다. “자반고등어네? 잘했어. 야무지게도 재웠네. 자반고등어는 이렇게 두 마리를 야무지게 재워야 상하지 않아. 우리 욱이와 엄마가 이렇게 한 몸인 것처럼.” 욱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외할머니께서 자반고등어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엄마가 자반고등어를 뒤적이며 울먹였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반고등어는 머리는 두 개지만 마치 한 마리처럼 보였다. 욱이는 더 이상 엄마 옆에 있을 수 없었다. 마침 가게에 손님이 들었다. 엄마가 김밥을 써는 틈에 욱이는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밤새 퍼붓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햇살이 쨍하니 나고 안개가 뽀얗게 피어 올랐다. 욱이는 엄마가 자반고등어 값으로 준 돈을 하루 종일 쥐고 있었다. 민규가 슬슬 욱이를 피해 다녔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욱이는 육교를 향해 뛰었다. 육교 위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자반고등어를 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욱이는 육교의 끝에서 끝으로 두 번을 왔다 갔다 했다.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는 김을 파는 아줌마가 앉았다. “아줌마, 여기에서 자반고등어를 파는 할머니 안 나왔어요?” 욱이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줌마는 하품을 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반고등어요.” 욱이가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무슨 자반고등어? 여기는 그런 거 안 팔아.” 아줌마가 쌀쌀맞게 말했다. “어제 여기서 자반고등어 팔던 할머니요. 제일 나중에까지 남아 있었어요.” 욱이는 울상을 지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왜 귀찮게 굴어. 여긴 내 자리고 어제도 내가 제일 나중에 일어섰구먼.” 아줌마가 김을 뜯어 질겅질겅 씹었다. 다시 물었다가는 혼이 날 것 같았다. 욱이는 힘없이 육교를 내려왔다. 아무리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해도 가물가물했다. 욱이는 길 가는 할머니들을 요리조리 살폈다. “야, 강욱!” 욱이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민규네 보석가게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가게에서 튀어 나오며 민규가 욱이를 불러 세웠다. 그때였다. 욱이의 머릿속이 환해졌다. 갑자기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입이 퍼득 떠올랐다. “걱정 마. 오늘부터는 내가 돈을 다 댈게.” 민규가 욱이의 코앞에 돈을 들이대고 흔들었다. 그래도 욱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다 댄대도?” 민규가 욱이의 등을 퍽 때렸다. 그때서야 욱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반고등어의 머리가 눈앞에 떠오르면서 외할머니의 얼굴이 겹쳤다. “맞아. 외할머니의 입이야!” 갑자기 욱이가 소리를 질렀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입이었다. 틀림없었다. 욱이는 민규의 손을 뿌리치고 가게를 향해 뛰었다. 아무래도 가게에 엄마를 닮은 외할머니가 와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말 가정이 행복한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불안정한 가정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부 불행한 것은 아니다. 진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면 불행은 행복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자반고등어는 두 마리가 합쳐 하나(한손)가 된다. 그렇게 서로 포개져야만 제대로 발효가 되어 맛있는 자반고등어가 된다고 한다. 자반고등어처럼 서로 기대고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짠맛이 고소한 맛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약력 ▲대전일보신춘문예 동화당선 ▲계몽아동문학상, 율목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 수상 ▲‘대나무 숲에 사는 잉어’, ‘하늘음표’, ‘하늘매 붕’, ‘똥바가지’, ‘초록말 벼리’, ‘구만이는 알고 있다, 구만이는 울었다’, ‘오이도행 열차’, ‘곳니’ 등의 작품집이 있음.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근무
  • [CEO 칼럼] 금융위기의 본질적 해법/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CEO 칼럼] 금융위기의 본질적 해법/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이번 세계경제 위기의 본질은 ‘신뢰’의 상실이다. 신뢰 상실로 인해 빚어진 이러한 전대미문의 위기는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탐욕적으로 남용해 온 미국 주도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자연스러운 귀결이자 뒤늦은 응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세계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 제공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문제의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위기 상황이 만들어 내는 반사이익을 최대한 즐기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시장 참여자들을 호도하는 왜곡된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직전부터 그 이후의 전개 과정 내내 벤 버냉키 FRB 의장과 전·현직 재무장관들이 쏟아내는 발언들을 보면 시장의 신뢰 회복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 정책 당국자들은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이 쏟아져 나오자 ‘괜찮다’거나 ‘문제없다’라는 말들로 시장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그러나 참으로 민망하게도 그들이 시장 안심용 멘트들을 쏟아내고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대형 금융기관들의 파산으로 급격한 신용경색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러나 계속 악화되고 있는 본질적인 지표들은 제쳐 두고 기저 효과로 인한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통계 지표들을 내놓으며 ‘문제가 있긴 하나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거나 ‘바닥을 쳤다. 희망이 보인다.’라는 식으로 여전히 시장을 호도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의 루비니 교수는 시가평가제 완화와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발표를 두고 오바마 정부와 월가가 합동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직무유기와 월가의 탐욕이 야합하여 정상적인 예측이나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장이 불투명해졌는데 거기에 극심한 안개와 연기를 보탠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털어버리고 가야 할 엄청난 부실들과 그로 인해 증폭되는 시장의 우려를 눈속임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면 앞으로 또 어떤 검은 백조를 목격하게 될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 이후 행보를 보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취임 일성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여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윤증현 장관의 발언들은 매우 신중하고 정직한 것 같다. 현실을 호도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인정하고 그런 현실 인식에 기반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쌓여온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요컨대 정책 당국자들은 신뢰 회복이 가장 본질적인 해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뢰 회복 없이 내놓는 정책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은 단순한 헛수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캔더스 김 할씨언 써치 인터내셔널 대표
  • [서울광장] 사투리는 힘이 세다/김종면 심의위원

    [서울광장] 사투리는 힘이 세다/김종면 심의위원

    “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베라고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박목월 시인의 시 ‘사투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투리 혹은 방언이라는 이름의 고향말. 그것은 정말 그렇게 앞이 칵 막힐 만큼 좋은 것일까. 방언사전을 들춰가며 읽어야 할 평북 사투리가 어지럽게 춤추는 백석의 ‘여우난골족’ 같은 시가 왜 한국인의 애송시 목록에 늘 오를까.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에는 특별한 사투리 감성이 녹아 있나 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일상에서는 사투리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어의 80%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으남(안개), 상고지(무지개), 골레기(쌍둥이) 같은 제주말들을 앞으로 영영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그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제주 사투리 구사 기능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제주어 보존과 육성을 위한 조례도 마련돼 있다. 사라져가는 사투리 보존운동을 펼쳐온 한국시인협회에서는 우리 문학사상 처음으로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이 당찬 처녀야 노처녀야’의 제주방언)라는 팔도 방언시집을 내기도 했다. 지역 방언을 가꿔가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문화와 전통, 구체적 일상이 담긴 소중한 민족 유산이기 때문이다. 세계언어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도 한국처럼 지역 특유의 방언문화를 꽃피우진 못했다. 다양한 방언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풍성한 말글살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방언이야말로 언어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13일 국립국어원장에 임명된 권재일 서울대 교수는 “표준어 때문에 방언이 죽어선 안 되며, 방언은 방언대로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복수 표준어’ 규정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조선어학회가 1933년 제정한 표준어 규정을 보면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고 되어 있다. 1988년의 개정안 또한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 변함없이 서울말을 표준으로 삼았다. 표준어 규정을 처음 만들 당시의 서울 인구는 20만명에 불과했다. 그때의 서울말과 인구 1000만명의 지금 서울말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어문정책은 경직된 표준어 중심의 사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민족의 언어 자산을 서울 지역에 한정해 방언을 홀대했다. ‘복수 표준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곁을 떠나가는 사투리들을 어떻게 붙잡아 두느냐 하는 것이다. 표준어 규범은 물론 엄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사투리의 아름다움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일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사투리의 미학이 문학 텍스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근 경상도사투리판소리연구회가 공연해 호평받은 경상도 사투리 ‘수궁가’가 떠오른다. 판소리라고 하면 전라도 사투리로만 부르는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이들의 공연은 역발상의 신선한 감동을 줬다. 사투리는 이처럼 ‘활용’되어야 한다. 뚝배기의 전라도 말 오모가리가 유명 상호로 자리잡은 것도 바로 사투리의 힘이다. 언어는 사람처럼 나고 죽는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뛰어놀 공간만 마련해 준다면 그것은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김종면 심의위원 jmkim@seoul.co.kr
  • 당일치기 여주·이천 봄나들이

    당일치기 여주·이천 봄나들이

    봄나들이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벚꽃을 보려면 진해나 하동 쌍계사, 산수유는 구례, 만발한 매화는 광양에서 보고, 진달래는 또 어디, 어디… 이런 식이다. 물론 그곳이 진짜배기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면 그곳들은 너무도 멀다. 돈과 시간의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저 입맛만 다시며 신문 기사, TV 소개 프로그램으로 만족하기에는 화창한 봄날의 유혹이 크다. 봄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넉넉히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봄나들이의 ‘종합선물세트’인 경기 이천과 여주를 권한다. 그저 딱 하루만 투자해도 막 떠나가려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바라바리 보따리 쌀 일도 없다.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 훌쩍 떠나자. 온갖 꽃길에 예쁜 사찰, 역사 공부, 맛난 먹을거리, 뜨끈한 온천, 명품아웃렛쇼핑몰 등이 두루두루 갖춰져 있다. 게다가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여주와 이천 그리고 광주에선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린다. ●오전 7:30 이른 아침 챙겨 먹고 차 밀리기 전에 나섰다. 첫 행선지는 이천. 설봉산을 중심으로 한 설봉공원에 꽃길, 등산로, 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3번 국도를 이용해도 좋지만 막히지 않는 시간이니 중부고속도로가 수월하다. 서이천 나들목에서 빠지니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천 설봉공원은 여주, 광주와 함께 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394m의 야트막한 설봉산의 등산로(사실은 산책로에 가깝다)를 타고 설봉서원 지나 김유신 장군이 세운 성곽인 설봉산성을 거쳐 희망봉 정상에 오른 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월암을 둘러 왔는데도 1시간30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아이들이 칭얼대며 힘들어한다면 설봉서원에서 구암약수터로 내려오는 40~50분 코스의 완만한 산책로도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벚꽃과 개나리, 철쭉이 무리를 지어 호젓하게 맞이해 준다. 설봉공원 주변의 벚꽃만 5000그루. 4월 말까지 절정을 이룬다. ●오전 10:20 산수유 축제는 지난 5일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마을로 갔지만 역시나 꽃잎은 모두 떨어지고 없었다. 가지 끝에 삐죽거리며 매달려 있는 연노랑 수술들이 여운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여주로 향한다. ●오전 11:30 여주 하면 신륵사다. 도자가 공원 바로 곁에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강을 접하고 있는 사찰이다. 강월헌에서 내려다보면 흐르는 듯 멈춘 듯 남한강이 유유히 신륵사를 끼고 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쌀밥집이 읍내 곳곳에 즐비하다. 물론 ‘쌀밥’이 특별한 시대는 지났다. 라면집에 가도 말아 먹으라고 주는 것이 쌀밥이니 말이다. 그러니 쌀밥 정식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은 ‘여주쌀’로 이름을 날리던 바로 그 여주다. 친환경농법으로 지은 ‘대왕님표 여주쌀’로 돌솥에 갓 지은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또한 고사리, 미나리, 시금치, 콩나물, 조기, 꽃게장, 불고기, 삼합 등 갖은 반찬 중 어디다 젓가락을 대야할지 고민스럽다. 쌀밥 정식은 1인분에 1만 5000원이다. 제법 비싸지만 여주에 왔으면 꼭 한번은 먹어 줘야 한다. 여주군에서는 ‘여주쌀밥집’(031-884-3578) 등 8곳의 공식 쌀밥집을 지정해 놓았다. ●오후 1:20 다시 신륵사다. 배도 부르니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다. 고은은 ‘만인보’에 실은 시 ‘미륵세상’에서 ‘…이런 흉흉한 땅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미륵이 왔다/ 미륵이야말로/ 새 세상을 가져온다…칠성이야말로/ 용왕이야말로/ 다 미륵의 화신이었다’고 노래했다. 여주의 미륵은 나옹 선사다. 신륵사는 무학 대사의 스승인 나옹 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해진 절이다. 남한강변에 위치해 늘 범람의 위험에 노출된 신륵사에서 ‘용마(수마)’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나옹 선사는 여주 땅에서는 미륵과 같은 존재로 통한다. 여주 사람들이 최고의 경관으로 꼽는, 아침 일찍 만나는 남한강 물안개와 일출은 꼭두새벽길을 달려오거나 신륵사에서 템플스테이(3만원)를 해야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신륵사의 또 하나의 정취는 그 옛날 도자기를 싣고 한강을 오가는 교역의 중심 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타고 남한강 바람을 맞아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모터를 달고 있고, 수심도 낮아져 신륵사 앞쪽을 왔다갔다 하는 데 그치고 만다. 30분 남짓 타는 데 5000원이다. 신륵사 쪽만이 아니라 강 맞은편 강변유원지 쪽에서도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강변에 접한 신륵사의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람 배치 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대운하가 만들어질 경우 신륵사의 풍광이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니 앞으로 부지런히 와볼 일이다 싶다. ●오후 4:40 이제 역사수업 시간이다. 신륵사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명성황후 생가가 나온다. 명성황후가 8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광수 관리소장은 “여주는 조선 왕비를 8명이나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소개했다. 기념관에서 명성황후의 생애를 담은 각종 자료와 유품을 볼 수 있다. 여주쌀을 ‘대왕님표’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세종의 능이다. 명성황후 생가에서 20분 정도 달리면 세종대왕릉(영릉)이 있다. 들어서는 길에 개나리가 양쪽에 멋지게 도열해 있고, 효종대왕릉(영릉)으로 가는 사잇길에는 진달래꽃이 감격스러울 만큼 흐드러졌다.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혼천의 등 여러 발명품의 모형들이 전시돼 있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공부가 된다. ●오후 6:00 여기 저기 헤매다 보니 속절없이 배가 다시 고파온다. 천서리막국수촌으로 가면 그 옛날 황포돛배를 타고 가다가 막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던 뗏목지기들의 신산함을 만날 수 있다.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와 시원막국수(031-883-3824) 등 100% 순메밀을 자랑하는 막국수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후 7:20 아무리 주말의 하루지만 그냥 서울로 들어가기는 아쉽다. 이천 테르메덴(031-645-2000)이나 광주 퇴촌 스파그린랜드(031-760-5700)에 들러 노천탕에 몸을 담근 채 밤하늘의 별을 세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당일치기 봄나들이는 완성이다. 여주·이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이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무엇일까?” 그 답은 ‘보릿고개’입니다. 보릿고개가 어떤 고개일까요? 이 동화는 보릿고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 오고 꽃 피고 새 울어도 우리네 농군 박 서방은 웃을 줄 모르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저녁 연기 사라지고 찬물 켜고 문 닫아 걸고 초저녁잠만 자네 어히야, 어히야 태산보다 높은 이 보릿고개를 어히 넘어갈꺼나.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새봄이 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올해도 가뭄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한편으로는 양식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 바로 그 배고픔의 긴 고갯길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해, 은행골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그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로 그중 여러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린 농부가 되었습니다. 저마다 몸에 맞는 지게를 하나씩 맞췄습니다. 또래들은 농부가 되어 지게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쇠꼴쯤은 한 짐씩 해 나르던 일이라 스스로 멜빵을 알맞게 줄이고 등받이를 두껍게 받쳐 편안하게 손질까지 해 두었습니다. 어린 농부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겨우내 재워 둔 두엄을 져 나르고 가까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하러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여럿이 함께 갔습니다. 하지만 나무 한 짐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양식보다도 땔감이 먼저 떨어져 가까운 산에는 할 나무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어른들이 데려가 주지 않잖아.” “먼 산에 가면 좋은 솔가리가 무지하게 많다는데.” 또래들은 작은 나뭇짐을 받쳐 놓고 떠들고 있습니다. 먼 산! 그곳은 해마다 봄이 오면 어른 일꾼들이 나무를 하러 가는 산입니다. 가까운 산에는 아무리 뒤져도 솔가리 나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오리도 넘는 백마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나무꾼들은 새벽밥을 먹고 먼 산 나무를 떠납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꽁보리밥에 고추장 반찬을 싼 도시락을 지게뿔에 댕그라니 매달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길었습니다. 집집마다 솔가리 나무라도 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데려가 주지….” 마을 고갯길을 넘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저수지 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집집의 식구들은 저수지 둑까지 배웅을 나갔습니다. 나무꾼들이 가는 먼 백마산 봉우리는 그곳에서도 잘 보였습니다. 아침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백마산의 상상봉은 또래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들이 숨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나무하러 갔다 와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마산이 명산은 명산이지. 물 좋고 나무 흔하고, 오고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문제지 나무 한 짐 하는 건 순식간이지.” 나무꾼들은 매일같이 먼 산을 다녀오면서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떠난 나무꾼들은 석양 무렵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또래들은 저수지 둑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 나무꾼들 중 아버지 아니면 삼촌이나 형이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들은 떠날 때처럼 나란히 행렬을 지어 왔습니다. 닭쌈이나 씨름을 하던 또래들 중 누군가 먼저 본 동무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온다, 저기 온다!” 또래들은 마치 장에 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반기듯 뛰어갑니다. 나무꾼들은 숨이 차 씩씩거리며 둑으로 올라섭니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나무꾼들의 그을린 얼굴이 놀빛 속에서 더 붉게 보였습니다. “쉼세.” 맨 앞의 나무꾼이 소리치자 뒤따르던 나무꾼들이 한쪽 편을 향해 나뭇짐을 받쳤습니다. 노을진 둑에 나뭇짐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휙휙.” 나무꾼들은 휘파람을 불 듯 긴 숨을 토해 냈습니다. 또래들은 제각기 아버지, 삼촌, 형들의 나뭇짐을 찾기에 바쁩니다. “아부지!” 누군가 부르면, “오냐. 별일 없었지?” “야!” 하는 인사가 오고 갑니다. 또래들은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나뭇짐을 살핍니다. 멀고 먼 백마산에서 온 나뭇짐에는 선물이 한 아름 있었습니다. “옛다, 백마산에는 참꽃이 한창이다.” 참꽃으로 부르던 진달래 한아름. 커다란 꽃다발이 나뭇짐에 쿡 박혀 왔습니다. 또래들은 참꽃다발을 받는 순간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먼 산에서 따 온 참꽃은 향기도 달랐습니다. 한 잎 한 잎 따서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것이 맛이 좋았습니다. 저수지 뒤 숲에서 꿩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먼 산 나무도 마지막입니다. 농부들의 발길은 먼 산이 아닌 밭이나 논으로 가야 됩니다. 바로 마지막 먼 산 나무 길에 오르던 날, 은행골의 또래들은 큰 나무꾼들을 따라 백마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군이 되려면 백마산엘 다녀와야지.” 또래들은 새벽부터 법석을 떨었습니다. 낫과 갈퀴를 챙기고, 어머니에게 점심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날의 나무꾼 행렬은 더 길었습니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따라 나와 어린 나무꾼들의 먼 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낸 나뭇길을 앞서 걸으며 웃고 떠들고 신이 났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발걸음도 흥겹게 노랫가락을 뽑았습니다. 백마산이 어디메뇨 새벽 어둠 찬바람에 길 떠나는 나무꾼아 어히야, 어히야 이 다리 다 휜다. 어린 나무꾼들에게 백마산은 정말 벅찬 산이었습니다. 시오리 길이라고 하지만 구불구불 오르막에 가파른 길은 삼십 리도 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또래들은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갔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말로만 듣던 백마산. 어린 나무꾼들은 백마산에 다다르자 ‘아!’ 하는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몇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산 속은 대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컴컴했습니다. 듣던 대로 솔가리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운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모은 다음 단단하게 전을 쳤습니다. 한 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 새 알맞은 나뭇짐이 되었습니다. “자, 점심들 먹세.” 너른 양지쪽에 모여 앉아 점심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리밥에 고추장, 된장 반찬이지만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어른들은 여기저기 양지바위에 누웠습니다. “계절은 왜 이리 좋을꼬. 꽃 피고 새 울고….” 나무꾼들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잠을 청했습니다. 어디선가 꿈결인 듯 깊은 산울림이 울려오고, 새들은 제 세상인 듯 재잘재잘 지저귀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계곡은 온통 참꽃밭이었습니다. 마치 불을 싸지른 듯이 붉디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또래들은 어질어질 꽃향기에 취하도록 뒹굴며 놀았습니다. 이윽고 한숨씩 자고 난 나무꾼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지름길로 처음부터 가팔랐습니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눈과 입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나뭇짐 행렬은 점점 더뎌지고, 어린 나무꾼들의 나뭇짐에 찔러진 참꽃다발은 흐트러졌습니다. 쉬는 참이 몇 번이나 거듭되었습니다. 이제 지름길 중 가장 험한 고갯길을 넘으면 내리막길입니다. 좁은 길 한쪽은 깊은 낭떠러지였습니다. “힘들 내!” 중간 중간에서 어른 나무꾼들이 소리쳤습니다. “이 고개만 넘으면 힘든 길은 다 왔다.” 어린 나무꾼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먼 산 나무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눈은 쓰리고, 입안은 짜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깻죽지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읍내 장날입니다. 오늘 한 솔가리 나무는 모두들 내일 장에 나가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주 쉬면 나뭇짐이 흐트러져 모양이 나빠집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먼 산 나무를 다녀오는 것이 진짜 농사꾼이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른들은 근심 띤 얼굴에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닥쳐온 보릿고개 때문입니다. 어린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은 아버지, 어머니의 그 근심 어린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들은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모두 쉬었다 가세.” 길잡이가 쉴 곳을 정하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엇, 조심해!” 누군가 급하게 소리치는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어린 나무꾼이 벼랑 쪽에 나뭇짐을 받치다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어린 나무꾼은 나뭇짐과 함께 훌떡훌떡 재주를 넘듯 굴러 떨어졌습니다. “쟤 태수 아냐. 태수야, 태수야!” 나무꾼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치며 아래로 내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태수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무꾼 태수는 그 고갯길 양지쪽에 고이 묻혔습니다. 그 후, 봄이 되면 그곳을 지나는 나무꾼들은 어린 나무꾼의 일을 되새기며 참꽃 꽃다발을 놓아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태수의 조그만 묘지는 나무꾼들이 편히 쉬어 가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되면, 아버지는 그 시절의 어린 나무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보릿고개가 얼마나 높았는지 마음 속으로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 ‘보릿고개’는 지난날,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시골 농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4~5월)를 이르던 말이지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정말 가난하였습니다. 누구나 농가의 생산자가 되어 땀흘려 일하고 아꼈으며, 또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무엇이든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성경의 말씀처럼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라는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할아버지들의 옛 삶에서 살아가는 정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약력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화 ‘엄마 열목어’가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펴낸 책으로 ‘꽃이 꾸는 나비꿈’, ‘눈물꽃’, ‘북치는 소년’, ‘옛날에 울아부지가’, ‘아리랑’, ‘도깨비 아부지’, ‘별이 된 오쟁이’ 외 여러 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 [하드코어 맛기행①] ‘목포의 봄 맛’은 비릿하지만 깊다

    [하드코어 맛기행①] ‘목포의 봄 맛’은 비릿하지만 깊다

    이상한 일이다. 목포에만 오면 노래가 떠오른다. 가사도, 리듬도 분명치는 않은 노래다. 그저 노래 초입부 한 구절 가사만 선명하다. 그렇다고 이제 목포의 시가(市歌)가 된 ‘목포의 눈물’은 아니다. 물론 그 노래처럼 비애에 젖게 하는 노래이기는 하다. 그러나 쇠락한 목포 시가지를 더 삼삼하게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다.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기러기 우는...’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다. 영국의 소설가 써머셋 모옴이 그랬던가. 만일 어느 낯선 곳이 고향처럼 정겹게 느껴진다면, 그 곳은 선대(先代) 누군가가 머물렀던 곳이었을 거라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격세 유전으로 피를 타고 흘러내려, 그 곳을 찾았을 때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내게는 목포가 그런 곳이다. 그리고 그런 고향의 포근함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목포의 맛이다. ‘항구’라는 말보다 더 목포의 맛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도 없다. 목포는 다양한 해산물의 고장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단순히 싱싱한 해산물만을 찾는다면 그건 제주에서 용두암만 찾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짓이다. 먹을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가운데서도 그 곳에서는 항구의 냄새에 해당하는 맛을 찾아야 한다. 얼핏 경험하면 짜고 시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린 맛이다. 그러나 되새길수록 깊은 맛이다. 싱싱한 해산물에 오랜 조리법과 섬세한 손맛이 가미된 맛이다.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런 항구의 맛을 찾아야 한다. 목포 맛 기행은 1박 2일로는 조금 부족하다.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다면 모를까. 일단 목포의 대표 맛으로 홍어, 세발낙지, 민어, 갈치, 꽃게무침 등 다섯 가지를 꼽는다. 그것만 소화하기에도 하루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2박 3일로 정했다. 금요일 오후에 떠나 일요일 오전까지 총 다섯끼를 먹는 기행이다. 물론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통해 행선지를 정했다. 그러나 진짜 모험은 현지에서 벌어진다. 행선지 외에도 해당 분야의 맛집을 현지에서 알아보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에게만 유명한 맛집을 평가절하 할 때가 많다. 오랜 경험에 따르면 현지의 평가가 대부분 맞다. 목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보다는 현지인의 평가가 더 나았다. 인터넷을 통해 분야별로 서너 개의 맛집을 고른 후, 현지 평가를 확인하고 선택했다. ▶제 철은 아니지만, 낙지를 빼놓을 수야 없지… 목포에서 세발낙지를 빼놓을 수는 없다. 목포는 갯뻘이 어느 지역보다도 깊어, 이 곳 낙지는 어떤 낙지보다도 부드럽고 담백하다. 특히 이 곳에서 나는 세발낙지는 갯뻘에서 서식하는 낙지 가운데 가장 작은 부류다. 세(細)발이라는 이름도 발이 가늘고 길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세발 낙지를 젓가락 한 짝에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는 것도 이렇게 작아서 가능한 일이다. 세발낙지의 제철은 초가을 무렵이다. 가격도 이 때가 가장 싸다. 이 때만은 못해도 목포에서는 사시사철 세발낙지를 맛볼 수 있다. 세발낙지 요리로 이름난 곳은 목포에서도 대여섯 곳이 있다. 목포에 도착하고 동네를 수소문 하고 난 오후 7시경까지도 세발낙지 맛집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종 맛집 후보는 남도음식축제 대상에 빛나는 독천식당과 전통의 낙지 명가 호산회관 두 곳. 독천식당은 시내와 영암, 두 곳에 있다(두 곳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영암 쪽이 더 싸다는 평이 많다). 이 곳에는 낙지 외의 요리는 없다. 대신 호산회관은 낙지 외에 회를 맛볼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다가 시내쪽 독천식당을 선택했다. 이 곳에서 선택한 낙지 요리는 낙지 구이와 연포탕. 밥 대신 이 곳 소주인 ‘잎새주’를 시켰다. 낙지 구이는 네 마리에 3만5천원. 듣던 대로 나무 젓가락 한 짝에 한 마리씩 구어 내 왔다. 1만2천원짜리 연포탕에도 낙지를 몇 마리는 넣은 것 같다. 서울의 묽은 연포탕과는 비교도 안 된다. 두 가지 메뉴 모두 낙지는 부드럽고 구수했다. 구이는 매콤했고, 연포탕은 시원했다. 흠이 있다면 낙지 외의 메뉴가 없다는 것 정도다. 낙지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메뉴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좀 아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낙지 매니아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 먹어야 할 맛이다. 낙지 맛의 정상이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삼성 파브 LED TV 출시기념 ‘LED 디지털 갤러리’ 개최

    삼성 파브 LED TV 출시기념 ‘LED 디지털 갤러리’ 개최

     삼성전자가 서울 서초사옥에 위치한 홍보관 삼성딜라이트에서 7~10일 나흘간 ‘빛의 TV - 삼성 파브 LED TV’ 출시를 기념해 ‘LED 디지털 갤러리’를 개최한다.미디어 영상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와 함께 하는 이번 전시회는 삼성딜라이트 2층 글로벌 갤러리에서 특별 전시회 형태로 진행된다.  이번 LED 디지털 갤러리는 예술작품을 통해 두께가 29mm대로 얇은 ‘핑거슬림’ 디자인과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빛의 화질’을 구현한 삼성 파브 LED TV를 삼성딜라이트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계적인 미디어 영상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작품이 삼성 파브 LED TV에 담겨 전시되며,벽면에 액자처럼 밀착돼 걸려 있는 LED TV가 미술 작품의 캔버스와 같은 기능을 해 관람객들은 마치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이남 작가는 고전 명작 등을 재해석해 그림 속 주제인 구름 꽃,인물 등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가미해 작업하는 작가로서,이번 전시에는 모네의 ‘수련’과 ‘해돋이 인상’, 중국 리팡인의 ‘여름 안개 속의 대나무’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삼성전자는 삼성딜라이트 전시를 시작으로,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 갤러리에서 ‘LED 디지털 갤러리’를 지속적으로 개최, 삼성 파브 LED의 특장점을 알려 나갈 계획이다.  한편 이번 LED 디지털 갤러리가 열리는 삼성딜라이트는 지난해 12월 문을 연 삼성전자의 브랜드 쇼케이스로, 삼성전자의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과 첨단 기술이 고객과 만나는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역사갈등 해소에 NGO 通했습니다

    역사갈등 해소에 NGO 通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간 역사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 시민단체 상설 연대기구가 결성됐다. 1일 오후 한국관광공사 TIC상영관에서 창립식을 갖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세계NGO역사포럼’이 그것.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 서울에서 치른 ‘역사NGO세계대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외 NGO의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발족했다. 포럼의 초대 대표는 역사NGO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낸 박원철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맡았다. 창립식에 앞서 30일 박 대표를 만나 포럼의 역할과 계획 등을 들어봤다. ●시민단체 나서 정치권 설득·여론 형성 “한·중·일 3국의 역사분쟁과 갈등은 외교관계와 국민정서 등의 문제로 인해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국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자국의 정치권을 설득하고 여론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것입니다. 포럼은 이들 시민단체가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참여의 장을 제공하고자 결성됐습니다.” 흥사단 등 시민단체와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역사NGO세계대회는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세계시민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2년 연속 열린 대회에는 20여개국 60~80개 시민단체의 활동가 수백명이 참여해 역사갈등 극복 방안과 평화 공존 해법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했다. 청소년과 자원봉사자의 활동도 활발했다. 대회에 참여했던 미국의 멀티트랙연구소, 방글라데시의 연안개발파트너십, 일본의 가이주 니나 아비코시 의원 등은 포럼에 기꺼이 가세했다. ●다극체제 시대에 동아시아 공동체 역할 중요 박 대표는 “미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면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전쟁과 식민지 침략으로 인한 역사 잔재를 청산할 때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해선 자국 중심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광대역의 시야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독도 망언을 의도적으로 일삼고, 중국이 소수민족 통제차원에서 동북공정을 활용하는 등의 국가이기주의와 패권주의를 시민단체가 앞장서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인권·노동문제 시민 네트워크도 가동 박 대표도 한·중·일 3국의 역사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은 아니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8월 열리는 제3회 역사NGO세계대회에선 ‘평화를 향한 역사교육’을 핵심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포럼은 매년 역사NGO세계대회를 주관하는 것뿐 아니라 정례 세미나, 연구자 그룹 활동 등을 통해 한·중·일 역사교과서 문제 등의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또 여성과 인권, 노동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시민단체간 네트워크를 가동할 계획이다.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을 달성하기 위해선 각국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박 대표는 “새로 출범하는 포럼이 그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대표는 김&장 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로 통일연구원 고문 등을 맡고 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8분 단위 예측… 돌발성 폭우·폭설 예보

    8분 단위 예측… 돌발성 폭우·폭설 예보

    올 연말에 발사될 국내 최초의 독자 기상관측 위성인 COMS(Communication, Ocean & Meteorological Satellite)의 기능과 역할이 31일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COMS는 통신 및 해양 관측의 임무도 수행하는 통신해양기상위성이다. 발사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 정지궤도 기상위성 보유국이 돼 1970년 처음 위성영상을 수신한 뒤 40년 만에 기상관측 자료를 다른 국가에 제공하는 시혜국으로 지위가 격상된다. COMS는 8분 단위로 초단기 예측을 할 수 있어 돌발성 폭우·폭설도 예보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기후현상을 필요한 때와 장소에 맞게 집중적으로 감시할 수 있어 기상재해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연간 40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사·태풍·산불감시·해수면온도·식생지수 등을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서애숙 국가기상위성센터장은 “우리나라에만 필요한 데이터가 있을 때 관측·예보할 수 있는 것이 기상위성의 결정적인 임무”라면서 “황사·안개·수증기 자료 등 한반도에 최적화된 데이터 분석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어 예보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일본·미국의 인공위성으로부터 가공된 데이터를 제공받아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기상정보를 처리할 소프트웨어를 해당 국가로부터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며 그 비용만 30억원이 넘었다. 발사체는 세계 위성 발사시장 점유율 1위인 프랑스 아리안 스페이스의 아리안 V이며, 발사는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우주센터에서 오는 11월쯤 할 예정이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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