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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 1억 한국영화계 기형적 현실을 꼬집다

    관객 1억 한국영화계 기형적 현실을 꼬집다

    중학생 시절 여배우들을 보러 극장을 드나들던 할리우드 키드였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연극만 하는 분위기에 질려 고려대 불문과로 옮겼다. 데뷔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를 비롯해 멜로영화를 주로 찍던 그는 1987년 검열의 족쇄가 풀리면서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1990), 베트남전의 참상을 고발한 ‘하얀 전쟁’(1992), 한국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로 감독상을 휩쓸었다. 정지영(66) 감독이다. 하지만 ‘블랙잭’(1997)과 ‘까’(1998) 이후 관객과 만나지 못했다.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을 영화화하는 데 8년을 투자했지만 좌초했다. 이후 두 작품이 더 엎어졌다. 그가 주춤한 새 강제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젊은 감독들이 충무로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정 감독은 관객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13년이 흘렀다. 재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웬걸. 지난 1월 ‘부러진 화살’(343만명)로 대박을 터뜨리더니 열 달 만에 ‘남영동 1985’를 내놓았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수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개봉 1주일 만에 30만을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고 있다. 또 한편이 새달 6일 개봉한다. 그가 기획·주연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판’(작은 감독 허철)이다. 정지영, 허철 감독은 2009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100여명을 인터뷰했다. 촬영 분량만 200시간에 이른다. 정 감독과 함께 배우 윤진서가 인터뷰어로 동참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영화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현미경과 메스를 들이댔다. 의외로 재밌다. 딱딱한 다큐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배우들의 밴(승합차)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린다는 감독이나 노출을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감독에 대한 여배우의 ‘뒷담화’ 등 재미가 쏠쏠하다. 두 편의 1000만 관객 영화 감독(최동훈, 추창민)이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감독(김기덕) 못지않게 2012년 한국 영화계가 기억해야 할 거장을 만나 못다 한 얘기를 들어봤다. →2009년 봄에 ‘영화판’을 기획했다던데. -미국 뉴욕대에서 한국 영화 교재로 쓴다는 다큐를 봤다. 조악했다. 허 감독과 함께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얘기했다. 미국에서 활동한 허 감독과 충무로에 몸담았고 다시 영화를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던 정지영, 내일모레면 서른이고 후배들한테 밀려 애매한 위치에 놓인 배우 윤진서가 함께 ‘도대체 한국 영화가 뭔데’란 공통분모로 뭉치면 재밌겠다 싶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등 현안에 대한 비판은 생각보단 약했다. CJ와 롯데 관계자의 인터뷰도 담긴 건 의외였는데. -정지영의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을 보려고 했다. 내 목소리를 담기보단 객관적인 인터뷰어가 되려 했다. 결정적으로 ‘영화판’ 촬영을 끝낼 무렵 ‘부러진 화살’을 시작했다. 다큐를 찍을 때는 이것저것 다 찍지만 어떤 작품이 되느냐는 편집에 달려 있다. 허 감독이 약았다. ‘부러진 화살’ 찍을 때 후다닥 편집을 끝냈다. 함께 하면 후배니까 밀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하하. →허 감독이 편집해서 (정 감독에게) 껄끄러운 인터뷰도 포함된 건가. 이창동, 임상수 감독의 말이 재밌더라. 영화에서 이 감독은 “극장에 뱀을 왜 풀어요?”라고 면박을 준다. 임 감독은 “정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은 있지만 작품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퍽 노’(Fuck No).”라고 했다. -나라도 넣었을 거다. 그래야, 재밌지. 임 감독 인터뷰는 (허 감독이) 술자리에서 진행했는데 술이 오르니까 더 심한 말도 했다고 하더라. 아예 한국 영화계를 난도질했다고 하더라. 하하하. →1988년 UIP 직배 반대 투쟁 당시 ‘위험한 정사’ 상영 때 극장에 뱀을 푼 사건은 지금도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후회는 없나. -멍에다. 비난을 달게 받아야지. 그렇다고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나 후회하는 건 아니다. 정지영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투쟁을 함께 하던 분들의 선택이었다. 당시의 상황 논리가 있었다. →영화계 밖 이슈인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에도 적극적이었다. 일부에선 ‘운동권 감독’ ‘좌파 감독’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감독이 무슨 정치적 발언을 해? 영화나 찍지.’란 생각은 극복돼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 두라는 건 기득권층의 논리다. 대중까지 권력의 논리에 길든 것 같다. 미국 대선을 봐라. 배우, 감독, 제작자까지 명확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영화계가 보혁, 신구 대결로 홍역을 앓았는데. -한 번쯤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1987년 민주항쟁 이전까지 영화계는 문화예술계의 다른 분야를 허겁지겁 뒤따르기에 바빴다.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도 묻혀 있었다. 우리 윗세대의 생존 전략이 정부와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 세대의 생존 전략은 예컨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이고 직배 반대였다. →한국 영화 관객 1억명이라고 축제 분위기다. -샴페인을 터뜨릴 일만은 아니다. 시장에 할리우드 영화만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대기업이 투자, 배급한 영화만 넘쳐나도 곤란하다. 다양한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면 그 영화의 국적이 한국이라도 옳지 않다. 대기업의 투자, 배급을 분리해 수직계열화를 해결해야 한다. 상생 공존을 해야지 CJ 혼자만 하려고 하면 큰일 난다. 업계에선 ‘이 XX,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차 지존’ 신형 에쿠스 3년만에 나와

    ‘한국차 지존’ 신형 에쿠스 3년만에 나와

    현대자동차의 ‘에쿠스’가 3년 만에 새롭게 변신했다. 현대차는 2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움’에서 에쿠스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발표회를 열고 “대형 세단인 에쿠스가 품격 있는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다시 태어났다.”면서 “경쟁 수입차보다 훨씬 좋은 품질과 성능을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신형 에쿠스는 전면부 범퍼와 후면부의 크롬 몰딩을 없애고 반광 라디에이터 그릴과 발광다이오드(LED) 안개등을 적용해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는 과도한 크롬 몰딩 탓에 “너무 번쩍거린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주행 중 차량의 각종 정보를 운전석 앞유리에 투영하는 풀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하만인터내셔널 그룹의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텔레매틱스 서비스 블루링크 시스템(서비스 2년 동안 무상 지원) 등을 적용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파스텔톤 건물들, 벽돌 깔린 좁다란 골목길, 1년 내내 보수 공사 중인 중세 성당. 유럽의 흔한 마을 풍경이다. 허나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결은 가지각색이니, 그 틈 속을 유영하며 각 도시의 매력을 탐닉하는 것이 유럽 여행의 매력일 터. 프랑스의 론알프스, 이탈리아의 파르마와 친퀘테레에서 먹고 마시고 풍경을 만끽하는 여행을 즐겼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France Lyon리옹 프랑스의 풍요로운 식탁을 엿보다 프랑스 동남부 론알프스Rhone Alpes 지역을 여행한다면 파리가 아닌 리옹Lyon을 기점으로 잡는 게 좋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산동네로 가기에 앞서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파리 못지않은 문화유산과 세련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TGV를 타고 온 2시간 기차길이 피곤치 않았던 이유도 미식의 나라에서도 으뜸간다는 미식의 도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리옹 파르디외Part Dieu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수백년의 역사를 겹겹이 머금고 있는 역사지구로 향했다. 먼저 가파른 산턱을 오르는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해발 281m 높이의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향했다. 비잔틴 양식의 탑이 견고히 버티고 있는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느 유럽의 성당이 그러하듯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성당의 오른쪽에는 론강과 손강이 사이좋게 흐르는 도심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맑은 날이면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까지 보인다고 한다. 언덕 비탈길 중턱에는 4세기 로마극장의 뼈대가 남아 있다. 과거 로마의 식민도시였으며 갈리아 지방의 수도로 명성을 떨친 리옹의 옛 흔적으로 중세시대를 거치며 파괴됐던 극장은 20세기 들어 원형을 복원해 축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평지에 이르자 수세기 동안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리옹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지구 골목길이 나타났다. 기뇰 인형극이나 리옹이 낳은 스타 생떽쥐베리와 뤼미에르 형제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것을 포기하고 리옹의 미식을 즐기기 위해 벨르꾸르 광장Place Bellecour 쪽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골목은 찬란한 햇볕을 맞으며 리옹의 가정식, 부숑Bouchon을 즐기는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기뇰 인형으로 실내를 꾸민 한 식당에서 한국에서도 친근한 재료로 만든 푸짐한 음식들을 즐겼다. 채소와 계란 반숙, 햄이 어우러진 리옹식 샐러드, 와인과 치즈로 버무린 소곱창, 매콤한 해산물 찜, 소발바닥 무침, 피스타치오가 곁들여진 소시지, 여기에 하우스와인까지. 프랑스 음식은 너무 창의적이어서 도전하기 힘들다는 이방인의 편견은 리옹에서 보기 좋게 무너졌다. 1 리옹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대표적인 미식 도시다. 가정식 레스토랑을 일컬어 부숑Bouchoun이라 한다 2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내려다본 리옹의 도심 풍경. 리옹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기뇰Guignol 끈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극으로 리옹 곳곳에서 인형을 볼 수 있고, 라 메종 드 기뇰La Maison de Guignol 등에서는 인형극을 무료로 관람할 수도 있다. 부숑Bouchon 리옹의 전통 가정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채소와 소시지, 오리, 돼지고기 등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활용하며 다소 기름진 것이 특징이다. 리옹관광청 웹사이트에서 부숑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다. www.en.lyon-france.com ●France Annecy안시 산과 호수가 껴안은정겨운 마을 안시Annecy는 2018년 동계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고배를 마신 도시다. 그러나 고작 겨울스포츠의 도시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서정적인 도시로 꼽는 안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호수와 알프스 산맥이 조화를 이룬 호젓한 풍경에 더해 중세 건축물과 고요한 운하까지 있어 느긋한 휴식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스키 브랜드 살로몬Salomon,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Millet, 주방기구 테팔Tefal 등이 안시에서 시작됐다 하니 어딘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국경 없는 자본 세계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 안시에 도착한 것은 태양이 호수 반대편 산봉우리를 붉게 색칠하고, 상점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잠들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호텔 잠자리가 아닌 ‘잠자리Libellelue’라는 뜻을 지닌 디너크루즈에 탑승하기 위해 항구로 갔다. 안시성을 뒤로하고, 호수 위를 유유히 흐르며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정찬을 즐기는 크루즈였다. 달콤한 프랑스식 와인 칵테일 키르Kir부터 애피타이저로 나온 달팽이 요리, 대구살과 튀김이 곁들여진 메인코스, 여기에 프랑스 시골동네여서 더 어울리는 흘러간 미국 팝송을 들으며 달빛이 흐르는 호수의 정취를 만끽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구시가지 산책길에 나섰다. 마침 매주 세 번씩 서는 장이 펼쳐졌고, 집에서 만든 소시지와 치즈, 신선한 야채를 가지고 나온 상인들과 장바구니를 들고 모인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아침의 선선한 공기에 싱싱한 야채, 과일 냄새, 짭쪼름한 치즈 냄새에 사람 사는 냄새까지 더해진 풍경은 정겹고 따뜻했다. 안시에는 대형 슈퍼마켓도, 유명한 체인 빵집도 없다. 그저 농부들과 상인들이 애정과 자존심을 담아 길러내고 만들어낸 사람 냄새 나는 먹거리와 생활용품들이 또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북적이는 시장통을 벗어나 안시의 상징 ‘팔레드릴Palais de l’isle’로 향했다. 호수 위에 반영된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이 건물은 12세기 성주의 집이었다가 이후 행정관청, 감옥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진 실내에 들어가 보니 약 10도 정도 기울어진 침상이 있었다. 불과 지난 세기까지 프랑스인들은 심장이 발과 같은 높이에 있으면 죽을까 봐 이렇게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자는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습속은 어디 간들 닮아 있는 것이다. 안시를 둘러본 여행자들은 구시가지 건물들과 산과 호수로 어우러진 도시의 풍경이 스위스나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닮았다고 말하곤 한다. 15세기부터 프랑스 혁명때까지 약 3세기 동안 사보이가Saboy家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으니 당연하다. 3 운하 위에 비친 팔레드릴의 모습이 신비감을 일으킨다 4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안시호수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 5, 6 안시에서는 수시로 시내 중심가에 재래시장이 펼쳐진다. 신선한 야채, 가정에서 만든 치즈, 소시지 등을 구입할 수 있다 ▶travie info 사보이Savoy 11세기를 전후해 지금의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 북부, 스위스 제네바 등을 통치했던 왕가. 알프스 이남 지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디너 크루즈 안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품위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 종류에 따라 50유로(메인 요리+디저트 혹은 애피타이저)부터 82유로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www.annecy-croisieres.com ●France Charmonix샤모니 산을 동경하는 이들의 궁극의 성지 스쳐가기엔 아까운 도시 리옹과 안시를 거쳐 유럽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이 있는 산악마을 샤모니Charmonix로 향하는 길, 기차 속에서 설렘과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 갔다. 샤모니로 가는 관문, 생제르베 레 벵Saint Gervais les Bains 역에서 널찍한 창으로 알프스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지역열차로 갈아탔다. 자전거를 타거나 혹은 몸체만한 등산배낭을 멘, 혹은 암벽등반용 로프를 어깨에 짊어진 여행자들이 하나둘 기차에 올라타자 유럽의 지붕으로 향하는 흥분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마치 메카로 몰려가는 비장한 무슬림의 틈에 끼인 이교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샤모니몽블랑역에 도착하자마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나는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꾼은 아니기에 몽블랑(4,810m)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 ‘에귀 뒤 미디Aguille du midi’에 올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겹겹의 봉우리를 볼 요량이었다. 50명을 빽빽히 채운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3,842m 정상으로 치달았다. 전망대에는 어린이부터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 다국적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알프스 봉우리와 그 위를 개미떼처럼 오르고 있는 산악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스위스 쪽의 알프스와 캐나다 로키산맥을 올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몽블랑을 비교해 보니 풍경 그 자체보다도 빙하 위를 걷는 산꾼들이 많다는 것이 달라 보였다. 정상에 오르니 이 ‘성스러운 산’을 그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휙 보고 내려가기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 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왔다는 30대로 보이는 등산객에게 물었다. “몽블랑은 어떻게 오게 됐지?”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고 몽블랑을 오랫동안 동경해 오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왔지.” “그럼 이제 돌아가는 길인가?” “아니 오늘까지 4주째인데, 일주일 더 있을 계획이야. 몽블랑은 지독한 매력을 가진 산이거든.” 부럽기 그지없는 답이 돌아온다. 나름 ‘아웃도어맨’을 자처하는 나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탓에 아쉬움을 무릅쓰고 샤모니 마을로 돌아왔다. 4주 휴가는 없었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몽블랑에서 불어오는 공기를 쬐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샤모니에서 빙하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스키와 같은 거친 아웃도어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길 만한 ‘소프트한’ 아웃도어도 많다. 샤모니 마을을 순회하는 꼬마열차를 타고 관광을 즐기거나 루지,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는 샤모니 레저파크도 있다. 물론 국내 테마파크나 디즈니랜드 수준을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게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샤모니 몽블랑은 산악 여행자들의 성지다. 다른 여느 알프스 산보다 등산가들이 많은 것은 최고봉 몽블랑이 있기 때문이다 2 한여름에도 설산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의 샤모니 마을 3 샤모니 몽블랑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가파른 능선을 타고 몽블랑 꼭대기까지 올라 볼 수도 있다 ▶travie info 아귀 뒤 미디Aguille du midi 케이블카 샤모니에서 아귀 뒤 미디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는 성인 기준 왕복 31.40유로다. 이외에도 해발 1,913m의 몽땅베르Montenvers로 가는 산악열차, 생제르베Saint Gervais에서 출발해 해발 2,372m의 에이글Nid d’Aigle로 향하는 열차, 길이 20km에 달하는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까지 가는 기차도 있다. www.chamonix.com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시크아울렛 www.chicoutletshopping.com/ko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공허한 응답… 자질 찾기 어려웠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2012 후보단일화 토론에 대해 “상식적인 이야기와 모호한 질문, 응답이 오고갔을 뿐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과 능력, 경륜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면서 “아직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안영환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정책 대신 단일화 방법을 놓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 검증이라는 토론회의 본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토론에서 나온 정책과 분석들은 상당 부분 공허한 내용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안 대변인은 “야당 지도자로서는 어떨지 모르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이끌어가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두 후보의 정치 경력부족도 꼬집었다. 안 대변인은 “두 후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지 불과 몇 개월밖에 안 되고 최근 후보사퇴 협상에 매달리다 보니 충분히 정책을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대변인은 두 사람의 단일화 방식 합의를 위한 회동을 그나마 ‘작은 소득’이라면서도 “두 사람은 하루 빨리 후보사퇴협상을 마무리 지어 이번 대선을 ‘안개 선거’의 상황으로부터 탈피시켜야 할 것이다. 두 후보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선택 2012 D-28] 朴 “안개정국 만들어 놓는 野단일화가 정치쇄신인가” 맹공

    [선택 2012 D-28] 朴 “안개정국 만들어 놓는 野단일화가 정치쇄신인가” 맹공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0일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 “안개 정국을 만들어 놓는 것, 이것이 정치 쇄신인가.”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10개 경제지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거 실패한 정권이 다시 들어오는 것, 불안정한 정권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필요한 리더십이 되겠는가.”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대선 후보 간 경제민주화 경쟁에 대해서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재벌 해체가 최종 목표”라면서 “저는 경제주체들이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속에서 조화롭게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자는 게 목적”이라고 각을 세웠다. 박 후보는 또 경제위기와 관련, “단기적으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올해 말 끝나는 취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해야 한다. 보금자리주택에 있어서 분양형을 임대형으로 많이 바꿔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이자 경제정책의 중심축으로 ‘일자리’를 꼽았다. 그는 “늘리고 지키고 높이겠다.”면서 “성장 플랜인 ‘창조경제론’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대타협기구를 통해 구조조정·대량해고로부터 일자리를 지키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질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창조경제론을 얘기하면서 해양수산부와 미래과학부는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 필요하면 쓸 수 있다.”면서도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그 카드를 쓴다고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는 확신도 없다. 아껴 두고 다른 노력을 기울인 뒤 급하면 쓰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증세 여부에 대해 “어려운 시절에 국민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고, 토빈세(외환거래세) 도입 논란에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공론화해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박 후보는 또 최근 행보와 관련, “사실 반갑다고 손을 꽉 잡으시는데 다치고 치료가 덧나기도 한다. 손을 덥석 잡아드리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잠은 4시간도 못 자고 그럴 때도 있다. 차안에서 먹다가 잘 체한다.”고 소개한 뒤 “진정성을 가지고 민생을 챙기는 정책들을 가지고 국민만 보고 뚜벅뚜벅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제민주화와 금융선진화를 염원하는 금융인 1365인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지지에 참여한 금융인은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과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 전·현직 최고경영자(CEO)가 대다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文·安 후보등록 전 단일화 약속 지켜야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민주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계기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까지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맡기겠다고까지 한 만큼 단일화 논의의 걸림돌은 대부분 사라진 듯하다. 문·안 후보 회동을 계기로 조만간 단일화 방식과 일정도 나올 전망이다. 18대 대선에 짙게 드리운 안개를 걷어 내기 위해 문·안 후보는 이제 촌각을 다퉈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에게 약속한 26일 후보 등록 전에 단일화 논의를 끝내야 한다. 여론조사 외에 TV 패널 투표 등 추가 방안을 곁들일지 말지, 또 여론조사의 설문 문항은 어떻게 만들지 등을 놓고 앞으로 양측 실무 협상팀이 충돌할 소지는 적지 않다. 후보 적합도는 문 후보가, 후보 지지도는 안 후보가 유리한 것으로 이런저런 여론조사들이 이어지고 있는 판국이니 설문 문항으로 승자가 결정될 수도 있고, 이 때문에 실무 협상팀이 설문 문항에 사활을 걸고 싸울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단일화 논의가 결국에는 후보 등록일 이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만에 하나 이런 일이 빚어진다면, 이는 이유를 불문하고 두 후보의 공멸을 의미하는 일일뿐더러 18대 대선을 통째로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국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임을 두 후보는 명심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통해 새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대의를 내세우고는 뒤로는 소탐에 급급해 설문의 자구(字句) 하나를 놓고 드잡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껏 두 후보를 지지해 온 유권자들조차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다. 오늘로 30일 남겨 놓은 18대 대선은 역대 선거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3무(無) 선거로 흘러왔다. 여야 대진표도 없고, 현대 민주 선거의 핵심 기제인 TV 토론이 실종됐고, 후보 검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제법 먹고산다는 민주국가 중 국가 지도자를 이런 식으로 선출하는 나라가 있는지 자괴감을 갖게 한다. 이런 식의 초읽기 대선은 18대를 끝으로 종식돼야 한다고 본다. 다음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선거일까지 충분한 시간을 앞두고 이뤄질 수 있도록 선거법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정치쇄신안에 담은 ‘선거일 4개월 전 대선 후보 등록’과 같은 방안을 비롯해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충북 제천 금수산

    충북 제천 금수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충북 제천 어름을 지날 때면 늘 눈을 사로잡던 산이 있었습니다. 특히 북단양 나들목 인근에 이르면 우람한 근육질의 암봉이 실루엣으로 아른거리곤 했지요.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경치’를 가졌다는 산, 금수산(錦繡山)입니다. 고운 이름과 달리 산은 여간 험하지 않습니다. 정상을 쉬 내주기 싫어하는 혈기방장한 성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지요. 사정이 이러니, 어지간한 내공의 산꾼이라도 오를 때 ‘금수만도 못한 산’이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구러 정상을 딛고 서면 산은 곧 ‘금수 같은’ 풍경을 내어줍니다. 혹, 오르는 발걸음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거든 나무등걸에 기대 10분만 쉬어 보세요. 땀이 식을 무렵, 자연이 스스럼없이 다가섭니다. 동고비와 직박구리가 먹이를 찾아 나뭇가지를 헤집는 소리, 청설모가 낙엽 뒤져 먹이 찾는 모습이 그제야 귀와 눈에 들어옵니다. 지도로만 보면 제천은 영락없는 산악도시입니다. 사방이 등고선으로 빽빽합니다. 북으로는 차령산맥, 남으로는 소백산맥이 지나고 시 경계를 따라 월악산 등 20여개 산들이 곧추서 있습니다. 높이 솟은 산은 깊은 계곡을 만들고, 계곡은 강으로 이어집니다. 물길이 막힌 자리엔 호수도 생깁니다. 물길(川)을 막아 둑(堤)을 세웠다는 뜻의 도시 이름도 필경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인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오늘날엔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충주호)가 그 지위를 이어받았지요. 금수산은 바로 이 내륙의 바다를 딛고 솟은 산입니다. 인접한 제천은 물론 멀리 단양까지 자락을 펼쳤고, 그 위로 용담폭포 등 많은 경승지들을 매달아 뒀지요. ●선 굵은 암봉 배웅받으며 가는 길 강원도 홍천 어름에서 시작된 노란 낙엽송 군락이 원주 치악산을 지나 제천까지 이어진다. 주변 산자락은 온통 샛노란 융단을 깐 듯하다. 그 빼어난 풍경을 사람이 만든 레드 카펫에 견줄까. 금수산의 원래 이름은 백암산(白岩山)이었다. 산정의 암봉들이 서리 맞은 듯 새하얀 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퇴계 이황에 의해 바뀐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가 청풍호를 돌아보다 백암산의 수려한 자태에 반해 ‘금수산’이라고 바꿔 부른 것이다. 금수산은 와부(臥婦)의 형상이라고 한다. 어여쁜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스토리텔링도 덧씌워졌다. 금수산의 한 지맥인 금성면 동산(東山·896m) 중턱에 ‘한수 이남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남근석이 서 있는데, 동산의 양기와 금수산의 음기가 어우러지며 조화로운 산세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남근석이 ‘잘생긴’ 건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금수산이 여성적이란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암봉 등, 어느 모로 봐도 혈기방장한 남성의 풍모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인근 산 가운데 ‘악(惡)산’으로 소문난 금수산을 오르다 보면, 여성성 운운하는 표현들은 싹 자취를 감추고 만다. 금수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대략 둘로 나뉜다. 적성면 상학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와 상천리 코스다. 상학 코스는 등산로가 완만한 대신 산행시간이 길다.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근석이 있는 동산까지 연계해 산행을 즐기려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상천 코스는 산행시간이 4시간 30분 정도로 짧다. 반면 등산로는 험하다. 여기에 용담폭포와 독수리바위 등 빼어난 명소가 많은 망덕봉을 연계하면 산행시간은 5시간 이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암릉 산행이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구간이 즐비하다. 상천마을 주차장이 상천 코스의 들머리다. 예서 망덕봉까지 2.8㎞, 망덕봉에서 금수산까지 1.9㎞, 금수산 정상에서 상천마을까지 3.5㎞ 등 모두 8.2㎞를 걷는다. 마을 끝자락의 보문정사를 지나면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망덕봉(926m)을 지나 금수산 정상(1016m)을 찍고 내려오는 길, 오른쪽은 그 반대로 돈다. 일반적으로는 왼쪽 코스를 따른다. 망덕봉 구간에 워낙 큰 바위들이 많아 하산 코스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10분 정도 암릉을 ‘기어오르면’ 용담폭포 전망대다. 갈수기라 폭포수는 가늘다. 폭포의 묘미는 주변의 바위들이다. 선 굵은 암릉이 폭포 좌우를 굳건하게 에워싸고 있다. 폭포 위는 선녀탕이다. 물이 오랜 세월 바위를 파 만든 상·중·하 세 개의 작은 소를 일컫는다. 물줄기는 ‘선녀의 요강’을 닮은 세 개의 소를 돌아 30m 아래 용담폭포로 떨어져 내린다. 그 기세가 장하다. 멀리 금강산 상팔담의 아우뻘 되는 풍경이다. 산이 높으니 골이 깊은 건 당연한 이치. 용담폭포 너머로 톱날 같은 모양의 산과 계곡이 금수산 정상까지 촘촘하다. ●‘내륙의 바다’와 산들을 한눈에 담다 폭포 전망대부터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전주곡 수준이란 얘기다. 오를수록 급경사의 바위능선이 이어지는데, 꼭 산이 벌떡 일어선 듯하다. 로프와 철제 난간에 의지해 올라야 하는 구간도 여러 곳.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난다. “산에 올라 뭐하겠노. 아랫마을에서 소고기나 구워 먹지.”라는 한 개그맨의 유행어가 퍼뜩 떠오르는 순간이다. 망덕봉 코스 중턱, 그러니까 폭포전망대에서 30분쯤 오르면 철제 계단 너머로 바위 능선이 멋드러지게 펼쳐진다. 산자락 하나가 죄다 바위들로 이뤄졌다. 암릉을 뚫고 솟은 노송들은 풍경의 덤. 능선의 정상 언저리엔 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솟아 있다. 금수산의 명물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다. 특히 독수리바위의 기상이 늠름하다. 날개 접어 호수를 응시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청풍호로 짓쳐 내려가 잉어 한 마리 채 올 기세다. 이 바위 너머로 ‘내륙의 바다’ 청풍호와 옥순봉, 제비봉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기막힌 풍경이 펼쳐진다는데, 짙은 안개 탓에 절경과 마주치는 행운은 없었다. 몇 번의 급경사를 지나면 망덕봉이다. 평탄한 안부로, 사면이 잡목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다. 망덕봉부터는 흙길이다. 푹신한 낙엽길 따라 40분쯤 능선을 오르면 암릉 끝자락에서 소나무 한 그루와 만난다. 정상 바로 아래 지점으로,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예서 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양쪽 암봉 사이로 제천과 단양의 명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달려 온다. 더 멀리로는 소백산이 우뚝하다. 수없이 많은 산들을 양팔 벌려 품은 듯한 모습이다. 금수산 정상은 전형적인 암봉이다. 어른 한두 명이 서기도 벅찰 만큼 비좁다. 하지만, 딛고 서면 더없이 너른 풍경과 마주한다. 360도 돌아가며 중부내륙의 산악들을 펼쳐 보인다. 산은 한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감춰 두지도 않는다. 이른 아침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던 안개는 이제 월악산과 소백산 등 명산의 사이를 휘돌아가며 여행자의 넋을 빼고 있다. ‘선경’(仙境)이란 표현이 상투성의 나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오르는 길이 험한데, 내려가는 길이 쉬우랴. 30~40분 동안은 길이 거칠고 가팔라 애를 먹는다. 나무 뿌리는 사람들의 발길에 반들반들하게 닳았고, 겹쳐 쌓인 낙엽들은 습기를 머금어 빙판처럼 미끄럽다. 하지만 곧추섰던 산은 이후 평탄하다 싶을 정도로 유순해진다. 꼭 여성의 플레어스커트 위를 걸어 내려 오는 듯하다. 하산길에 보는 금수산 정상의 자태가 기막히다. 암봉 하나하나가 백옥같이 흰 살결을 가졌다. 이쯤 되면 퇴계가 금수산이라고 개칭하기 전, 왜 백암산(白岩山)이라 불렸는지 절로 알겠다. ●쉽고 편하게 풍경과 만나는 법 주봉(主峯)인 금수산을 닮아 지맥들도 여간 험하지 않다. 남근석 품은 동산 등을 오르려면 ‘암벽 등반’ 수준의 산행을 감내해야 한다. 좀 더 쉽고 편하게 풍경을 즐길 방법은 없을까. 있다. 금수산 중턱의 정방사와 청풍호 인근의 비봉산을 찾아가면 된다. 두 곳 모두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정방사는 금수산 신선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 자락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거대한 암벽, 의상대에 안긴 절집의 자태도 좋지만 그 아래 펼쳐지는 풍광은 훨씬 빼어나다. 대웅전 앞에 서면 멀리 월악산과 푸른 바람 일렁이는 청풍호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비봉산은 패러글라이딩 등의 활공장으로 이용되는 산이다. 청풍호와 인접해 있어 굽어보는 풍광도 수려하다. 비봉산의 명물은 관광 모노레일이다. 6인승 승용대차를 타고 정상까지 오른다. 다만 16일부터 새해 3월까지 시설 보강 등을 위해 운행이 중단된다. 동산 아래 무암사도 찾을 만하다. 절집이 남근석 산행의 들머리 노릇을 하는 모양새가 영 부자연스럽지만, 절집 자체의 풍모는 퍽 고색창연하다. 소(牛)의 사리가 담긴 부도와 1200년 된 싸리나무로 만든 대웅전 기둥이 유명하다. 무암사 경내에서도 남근석의 머리 부분이 살짝 보인다. 글 사진 제천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제천의 명소들은 대부분 시내 남쪽, 그러니까 청풍호와 인접한 지역에 몰려 있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좋다. 여기서 82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금성면 소재지를 지나 청풍대교 삼거리에서 왼쪽 20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금수산 입구 삼거리까지 간 다음 왼쪽 도로로 접어들면 상천리 금수산 주차장이다. 단양 나들목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단성면 소재지→36번 국도 충주 방향→원대삼거리→옥순대교→금수산 입구 삼거리→우회전→주차장 순으로 간다. 어느 길을 택하든 늦가을의 정취 가득한 청풍호를 차창에 매달고 달릴 수 있다. 제천의 대표 아이콘인 의림지를 먼저 보겠다면 제천 나들목으로 나와 의림지와 ‘울고 넘는’ 박달재, 배론성지 등을 묶어 둘러본 뒤 남제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순서다. ▶맛집:제천 상천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맛집들이 즐비한 단양이다. 쌈밥정식을 내는 돌집식당(422-2842), 마늘정식으로 유명한 장다리식당(423-3960), 더덕주물럭과 더덕정식을 내는 자연식당(422-1806) 등이 알려져 있다. 청풍호 인근에선 예촌(647-3707)이 구수한 된장정식으로 이름났다. ▶잘 곳:박달재 인근에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가 있다. 친환경과 힐링을 표방한 리조트로 빌라형 객실과 호텔형 객실, 아쿠아힐링센터 등으로 구성됐다. 단양 쪽에선 대명 리조트가 첫손 꼽힌다. 단양 한복판에 있어 단양 8경 등 명소에 접근하기 쉽다. 리조트 내에 사우나와 물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쿠아월드도 있어 여독을 풀기 좋다. 단양읍내 리버텔(421-5600)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깔끔한 시설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편해지는 집이다. 숙박비도 저렴하다. 청풍호 인근의 청풍힐호텔 한방 사우나는 산행 뒤 피로를 풀기 좋다. 제천시에서 조성한 ‘자드락길’ 도보꾼에게는 입욕료를 정상가의 절반인 6000원만 받는다.
  • 홍천 50억 규모 ‘물의 공원’ 조성

    ‘물의 고장’ 강원 홍천군 수타사 일대에 대규모 물 관련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홍천군은 13일 홍천 수타사 지구인 동면 덕치리 일대 4만 5874㎡에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전날 열린 농촌테마파크 조성사업 기본계획수립 용역보고회에서 보고됐다. 수타사 지구 농촌테마공원 조성 사업은 광특회계 농어촌자원복합산업화지원사업의 하나로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사업비를 보조받아 국비 25억원과 지방비 25억원 등 모두 50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수타사 지구가 수도권과 1시간 30분, 춘천과 40분대에 있고 올해 공작산 생태숲 방문객들이 20만명을 넘어서는 등 홍천 지역 최대 관광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물과 흐름’이라는 주제로 한 테마형 특화시설로 차별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테마파크는 기존 경작지용 수로를 이용해 ‘배우는… 느끼는… 마시는… 신기한… 즐기는’ 5개의 물 지구로 나눠 자연정화체험장, 관개시설 체험장, 낙수원, 도섭지(얕은 연못을 이용한 놀이터), 물꽃다원, 물꽃미로원, 분수광장 및 안개언덕, 얼음의 방, 수중경기장, 다목적운동장 등 체험장과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또 주말장터 및 편익시설 지구, 수타쌈채소 오토캠핑장(유아물놀이, 바비큐장) 지구 등도 조성된다. 이를 위해 수타사 측과 토지 사용에 대해 협의 중에 있으며 일부 시설은 지역주민 참여와 민자 유치를 검토하고 있다. 군 기획감사팀 관계자는 “토지 소유자와 매입 절차를 완료한 후 농촌테마공원 조성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며 “체류형 시설 등을 갖추면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세계무대 데뷔 10년 앞두고 단독공연 갖는 팝페라테너 임형주

    [김문이 만난 사람] 세계무대 데뷔 10년 앞두고 단독공연 갖는 팝페라테너 임형주

    어느 날 그에게 정결한 여신이 다가왔다. ‘은색으로 빛나는 정결한 여신이여. 이 신성한, 이 신성한 태고의 나무들, 우리에게 향하소서,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아~ 구름에 끼지 않고 안개에 가려지지 않은 아~ 지상에 평화를 뿌리소서, 당신이 천국을 만드소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 나오는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의 일부 대목이다. 마리아 칼라스(1923~1977)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칼라스의 노르마냐 노르마의 칼라스냐’고 할 정도였다. 비록 마리아 칼라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불멸의 디바 소프라노의 전설로 남아 있다. 1998년의 일이다. 겨우 12살 나이에 공개방송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가 ‘마법의 성’과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를 불러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클래식 오버 앨범(클래식, 뮤지컬, 팝 등)을 내는 등 한국 음악계의 ‘신동’이 탄생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가 컸다. 아버지는 장차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기를, 어머니는 외교관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남자가 음악을 하면 안 된다는 부모의 고집 또한 셌다. 할 수 없이 신동은 음악을 접기로 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그렇게 3~4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리아 칼라스의 ‘정결한 여신이여’라는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됐다. 단박에 매료됐다. 이때부터 성악가로 방향을 틀었으며 ‘정결한 여신이여’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이후 신동은 예원학교, 줄리아드 예비학교(영재교육) 입학은 물론 하는 공연마다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내며 세계 무대에 우뚝 섰다. 세계적인 팝페라테너 임형주(27)씨. 벌써 세계 무대에 데뷔한 지 10년이 된다. 국내 데뷔는 15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18일 오후 6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아주 특별한 공연을 한다. 대관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조수미, 조용필, 조영남 이후 네 번째 단독 콘서트를 펼친다. 특히 1988년 개관 이후 역대 최연소인 27살의 나이로 가지는 공연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1부는 ‘클래식 스타일’로 이탈리아·독일·한국의 가곡들로 꾸며진다. 2부는 ‘팝페라 스타일’로 뮤지컬·팝·재즈·가요 등의 장르를 넘나든다. 그의 대표곡들뿐만 아니라 팝페라 히트곡, 드라마 OST 주제가 등도 함께 꾸며져 깊어 가는 가을을 아름다운 선율로 수놓을 예정이다.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인 만큼 50인조의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6인조 댄서팀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염곡동에 있는 ‘아트원문화재단’에서 임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앞두고 머리 손질과 간단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약간 긴 머리에 깨끗한 동안(童顔)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슨 얘기부터 꺼낼까 생각하다 최근 그가 일본에 다녀왔다는 것이 떠올라 먼저 일본 공연이 어땠는지 물었다. “도쿄 시나가와 큐리안 대극장 무대였습니다. 일본에서 데뷔한 것도 10년이 됩니다. 그래서 제 이름 석 자를 내걸고 독창회를 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특히 요즘 한·일 관계가 조금 경색돼 있잖아요. 120분 넘게 공연을 가졌는데 앙코르 곡으로는 우리의 가곡 ‘임진강’을 불렀습니다. 이때 두루마기 한복을 입었습니다. 일부에서 한복 입는 것을 만류했지만 당당히 한복 차림으로 다시 무대에 섰지요. 공연이 끝나고 일본 기자들이 ‘역시 임형주의 음악은 위대하다’는 찬사를 보냈고 일부 팬은 ‘한복을 입은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국내 팬들은 주로 30~40대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50~60대까지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웃는다. 특히 국내 팬클럽 회원 30여명이 자비를 들여 가며 비행기 타고 원정을 와 너무 고마웠단다. 일본에서는 ‘형주 오우지(왕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 다음에는 ‘아트원문화재단’이 궁금해졌다. 그는 달변 수준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지체 없이 답이 줄줄 나온다. “2008년에 설립된 비영리 재단입니다. 국내 데뷔 10년, 세계 데뷔 5년을 맞이하면서 어머니께서 ‘그동안 네가 번 돈을 다 모아 놨으니 어디에 쓰고 싶으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얼른 좋은 일에 쓰고 싶다고 했지요. 재능은 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음악 공부를 못 하는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비록 20대이지만 좋은 일 하는 데는 나이가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시에 100억원을 기부채납해서 이 위치에 재단을 설립하게 됐지요.” 현재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통해 4기째 17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개인 레슨비도 재단에서 대납한다. 아트원 홀, 갤러리 등을 두어 다양한 예술공간도 마련했다. 특히 재단 산하에 유치부를 두어 어린이교육사업에도 정열을 쏟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사재를 털어 운영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올해 들어 조금 나아졌다고 귀띔한다. 유치부 어린이들에게는 7세까지 재단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어린이 얘기가 나오자 얼른 그의 어린 시절로 화제를 돌렸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때에는 미술대회와 웅변대회에 자주 나갔는데 특히 미술인 경우 대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방과후 특활반이라는 것이 있었죠. 동요 부르기반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저에게 ‘너는 참 잘 부른다. 장차 성악가로 대성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 전국 동요대회에 나가 1등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셈이지요. 기분이 우쭐해지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가수 신승훈이나 조성모씨 같은 발라드 가수가 돼야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친분이 있는 삼성영상사업단 관계자를 만나게 됐다. 저녁 자리였는데 즉석에서 노래를 하게 됐다. 감탄한 그 관계자는 임씨에게 “너는 프로로 데뷔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당장 계약하자고 제의를 했다. 그래서 그의 첫 앨범이 나오게 됐고 언론과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공개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음악을 중단했다가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곧바로 성악을 두 달가량 공부하고 예원학교에 입학했으며 매번 실기 1등을 차지하면서 수석 졸업을 하게 된다. 이때 청소년 음악대회에 나가 웬만한 상은 거의 휩쓸 정도로 진가를 발휘했다. 국내에서는 경쟁자가 없다는 생각에 시야를 세상 밖으로 넓혔다. 영재들만 가르친다는 줄리아드 예비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이때에도 부모의 반대가 있어 임씨는 잠시 미국 여행을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그날 이후 미국에서 승부를 걸기 전까지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을 속인 셈이지요. 곰팡이가 나는 반지하 방에서 혼자 살면서 인터넷 등 수소문 끝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메조 소프라노인 웬디 호프먼의 집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그의 남편이자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수석 반주자를 만나게 됐고 여러 번 설득 끝에 오디션을 보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웬디 호프먼은 ‘내가 너를 기꺼이 받아줄 테니 집으로 자주 오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정통 성악보다는 팝페라 뮤지션의 대가가 되라고 했습니다. 이후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게 됐습니다.” 타고난 노래 솜씨는 미국에서도 통했다. 줄리아드 예비학교 입학 때 보기 드물게 심사위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으며 만장일치로 합격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자리에서 다음 해 열릴 오페라 주역까지 제의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과장이 곱고 맑은 높은 소리는 훌륭하지만 파바로티나 도밍고 같은 큰 성량을 내기 위해선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오페라의 본고장인 피렌체 음악원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웅장하고 육감적인 바로크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선뜻 받아들였다. 이 무렵 그는 한국에 잠시 들러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 최연소 애국가 독창자로 등장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2003년 6월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하게 되면서 세계 무대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었다면 아마 대중가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음악 외적으로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느냐고 하자 “어릴 적에는 화가나 뉴스 앵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면서 지금도 보는 신문이 10여 종류가 되며 꼭 소리 내어 읽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신문을 보면 논리정연해지고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단다. 지난해 ‘올해의 신문 읽기 스타상’(신문협회)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여자 친구에 대해 묻자 “없어요. 이상형은 강수연, 이영애, 심은하 같은 스타일”이라고 대답했다. 공연 때 단골 앙코르 곡은 무반주 ‘어메이징 그레이스’이며, “조수미 선배는 롤모델이고 나중에 마리아 칼라스 같은 불멸의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서 해맑게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27세 임형주는 누구 독집앨범만 12장… 한국인 최초·최연소 ‘유엔 평화메달’ 수상도 1986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예원학교 성악과를 수석 졸업했으며 뉴욕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성악과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합격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펠리체 음악원을 졸업(학사)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 슈베르트 음대 성악과 ‘초청학생’으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8년 국내 무대에 데뷔했고 2003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데뷔 독창회(세계 남성 성악가 중 최연소)를 시작으로 뉴욕 링컨센터,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볼과 월트디즈니콘서트홀, 파리 살 가보, 네델란드 콘서트 헤보, 잘츠부르크 미라벨궁전, 빈 콘체르트 하우스, 일본 국제포럼, 타이완 국부기념관 등에서 공연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때 역대 최연소로 애국가를 선창했다. 베를린교향악단 및 빈교향악단, 도쿄 필하모닉, 체코 심포니 등과 협연했다. 주요 음반으로는 40만장이 팔린 1집 ‘샐리 가든’을 비롯해 2집 ‘실버 레인’, 3집 ‘미스티 문’, 4집 ‘더 로터스’까지 4장의 정규 앨범을 포함해 최근까지 총 12장의 독집 앨범을 내놓았다. 2003 미국 USO협회 ‘명예 기여훈장’ (역대 최연소), 2005 일본 NHK ‘홍백가합전’ 트로피(한국 클래식 음악가 중 최초), 2010 유엔본부 ‘유엔 평화메달’을 각각 수상했다. 유엔 평화메달은 한국인 최초이며 역대 전 세계 수상자 중 최연소다.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우러나는 효도가 건강 장수의 비결이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우러나는 효도가 건강 장수의 비결이다

    일전에 이 지면을 통해 잠시 소개했던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행사가 지난 18일 안동 낙동강변 농암 종택에서 열렸다. 아침에는 안개가 짙었으나 행사가 시작될 즈음엔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게 열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인근 각처 어르신들의 무채색 한복 차림들과 한 폭의 화사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 투명한 가을 햇빛 아래서 500년 전 자신의 ‘할배’가 그랬듯이, 60에 가까운 농암 종택 17대 종손이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며 어르신들을 모셨다. 또한 농암 선생이 안동부사 시절 고을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양로연을 베풀면서도 때때옷 춤을 추었다는 일화에 맞추어 안동시장도 함께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500년 전에 뿌려진 효행 씨앗 하나가 아직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그날의 행사는 우리의 전통 효문화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옛 선현들은 왜 효를 그리 중시했을까? 단순히 유교문화에 훈습된 결과일까? 애일당(愛日堂)은 조선 중기의 문인인 농암(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딱 500년 전인 1512년 자신의 집 근처에 지은 정자이다. ‘애일’(愛日)은 말 그대로 ‘날을 아낀다’는 뜻으로, 연로한 부모님이 살아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날을 아껴 효도를 하겠다는 농암 선생 자신의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희구지정’(喜懼之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喜) 한편으로는 두렵다(懼).”고 한 ‘논어’의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버이가 오래 건강하게 살면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렵다는 것이다. 오래 사셨다는 것은 곧 그만큼 살아 계실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히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효심이 아닐 수 없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정자에 ‘애일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농암 선생의 마음이 딱 그러했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 행하는 효도, 옛 선현들의 삶에서 효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어떤 행동의 본질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고통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촉발되는 행동은 삶에 포만감을 준다. 농암 선생의 가족이 유명한 장수 집안이라는 사실은 이 점에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농암 선생의 부모는 부친이 98세, 모친이 85세를 살았고, 숙부 역시 99세를 살았다. 농암 또한 89세로 장수하였고 동생도 91세를 살았으며, 자식들 역시 많게는 86세부터 적게는 65세까지 그 옛날치고는 적지 않은 수들을 누렸다. 효는 단순히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향적인 헌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봉양을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웰빙 덕목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장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우리 시대 장수자들의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섭생과 의술의 도움에만 힘입은 장수문화의 뒷모습은 너무 황량하다. 노인 학대와 빈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노인층의 자살률 증가 등,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가 바탕이 되지 않은 요즈음의 장수시대가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들이다. 예로부터 장수는 오복(五福)의 첫째로 꼽혔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장수는 오히려 저주일 수 있다. 모두가 맞이하는 장수시대. 이 시대를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만드는 열쇠는 우리들 자신이 쥐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심으로 부모를 모시고, 자기 부모를 모시는 바로 그 마음으로 다시 이웃사람의 부모를 대하는 일, 우리 시대를 축복받는 장수시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작지만 힘 있는 실천들이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다음세대의 노인인 우리들 자신이다.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보면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바람과 함께 걸어서 한바퀴 소무의도

    바람과 함께 걸어서 한바퀴 소무의도

    바람과 함께 걸어서 한바퀴 소무의도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수도권 전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인천 앞바다에 다다를 수 있다. 반나절 만에 다녀온 ‘소무의도’ 여행. 바다와 어우러진 청정 도보여행코스였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차창 밖 개펄 위로 드넓은 칠면초 군락이 붉게 펼쳐지는 영종대교를 지나면 어느새 종착지인 인천국제공항역이다. 서울역에서 일반열차를 탄 지 53분 만이다. 3층 공항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10여 분, 개펄체험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마시안 해변을 가로지르면 어느새 잠진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비릿하고 짭짤한 갯내음이 확 달려든다. 물때를 맞춰 개펄로 뛰어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조개를 캐느라 부산하다. 여기서 철부선에 올라타기 무섭게 뱃머리만 돌리면 도착하는 거리에 무의도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남쪽에 있는 무의도는 영종도에 인천공항이 들어선 이후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섬 여행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여의도만한 크기의 이 섬은 국사봉과 호룡곡산의 등산 코스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세트장으로 유명한 하나개해수욕장, 영화 <실미도>의 실제 무대인 실미도 등을 즐길 수 있어 피서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무의도의 남동쪽에 본섬의 9분의 1 정도 크기의 작은 섬, 소무의도가 있다. 자동차를 싣고 들어갈 수 있는 북적대는 본섬과는 달리 아직 아는 이 적고 자동차 한 대 없는 소박하고 깨끗한 섬이다. 낚시꾼 들의 배만 드나들던 이 섬에 작년 4월, 무의도 광명항선착장과 소무의도 떼무리선착장을 잇는 414m의 인도교가 놓이고 올 5월, 섬을 일주할 수 있는 ‘무의바다 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섬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1 무의바다 누리길의 팻말을 따라가면 곳곳에 절경이 펼쳐진다 2 인도교와 연결된 소무의도 3 해풍에 콩 말리기가 한창인 동쪽마을 4 몽여해변과 어우러진 동쪽마을 전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언덕마다 해안마다 눈이 시리다 무의도 큰무리선착장에 도착하면 기다렸다는 듯 마을버스가 서 있다. 소무의도 입구인 광명마을까지는 이 버스를 타고 20분쯤 가야 한다. 성수기 때는 자주 운행되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는데도 운전기사는 친절하게도 핸드폰 번호까지 버스 안에 광고처럼 큼지막하게 적어 놨다. 언제라도 전화하면 달려온단다. 북적대는 하나개해수욕장을 거쳐 섬의 좁은 길을 천천히 내달리면 버스는 어느새 광명마을 삼거리에 방문객들을 부려 놓는다. 오색 천들이 환영하듯 나부끼는 인도교 너머에 소무의도가 얌전히 앉았다. 다리 양쪽으로 펼쳐지는 바다에 마음을 주는 사이 다다른 소무의도 떼무리선착장은 낚시꾼들의 차지다. 저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우럭, 광어 등을 낚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소무의도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 총 8구간으로 이루어진 ‘무의바다 누리길’을 따라가도 좋고, 섬 곳곳에 서린 이야기와 무의8경을 따라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부처깨미, 몽여해수욕장, 몽여, 명사의 해변, 장군바위, 안산, 어촌마을 등 그림 같은 무의8경과 섬 곳곳마다에 전망데크와 포토존, 이야깃거리가 적힌 안내판들이 자리하고 있다. 섬을 빙 두르고 있는 2.5km의 산책로는 해안과 낮은 산을 오르내리며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와 푸른 숲, 소박한 마을풍광을 번갈아 펼쳐 보인다. 쉬엄쉬엄 돌아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걷다가 멈추기를 몇 번을 해야 할 만큼 섬은 다채로운 경치를 뽐낸다. 섬에서 가장 높다는 안산으로 향했다. 나무 계단을 오를수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다의 절경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74m의 안산 봉우리 정상에는 하동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과거 번창했던 어촌마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소다. 맑은 날에는 북한산까지 볼 수 있다는 이곳에서는 인천국제공항과 영종지구, 안개 속에 누운 인천대교와 송도국제도시 빌딩들까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점점이 떠 가는 배들, 한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섬과 섬을 바라보고 있자니 떠나가고 떠나오는 일이 문득 새삼스럽다. 눈앞의 풍광도 머릿속 생각도, 몽환적으로 변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바람과 안개의 섬 날아갈 듯 바람이 세차다. 누가 섬 여행은 멀어야 맛이라 했을까. 소무의도의 바람은 이런 편견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서울 가까운 섬은 다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건만 이 호젓한 섬은 꼭꼭 숨겨 놓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심이 앞선다. 안산으로부터 오는 길은 해풍을 맞으며 자생하는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섬의 소나무는 키가 작다. 그래서 어깨 너머로 넉넉히 바다를 보여준다.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해녀섬 풍경이 멋지다. 소무의도 남쪽 바다 위 1km 떨어진 작은 섬으로 전복을 따던 해녀들이 쉬곤 했다는 섬이다. 해변으로 이어진 길은 명사의 해변과 맞닿는다.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명사의 해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겼던 곳이지만 우기 때는 죽은 사람들이 자주 떠밀려 오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해변으로 하얗게 밀려온 예쁜 조개껍질을 줍느라 아주머니들은 나이도 잊었다. 근처에는 1995년까지 장례 도구를 보관하던 상여집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시야가 다시 넓어진다. 몽여해변이다. 몽여는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두 개의 바윗돌로 물이 빠져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언둘그물을 매던 장소인 언두꾸미가 있는데, 조수의 흐름을 이용해 갯벌에 참나무를 세우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방식이다. 소무의도는 예부터 언둘그물을 매는 적지로 과거에는 150칸을 설치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바다에 꽂힌 참나무 기둥이 유난히 눈에 띈다. 몽여해변에 자리한 동쪽마을은 방문객들과 음식점이 있는 섬 입구 쪽 서쪽마을에 비해 한가롭다. 가을맞이가 한창인데도 마을은 고요하고 또 정겹다. 경치가 좋다고, 얼른 올라가 보라고 권하는 마을 어르신의 부추김에 힘입어 언덕 위로 오르니 부처깨미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주민들은 부처깨미에서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며 소를 잡고 풍어제를 올렸다.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비롯해 사렴도, 매랑도, 팔미도 등, 만선기가 펄럭이는 이곳에서 한숨 돌리고 내려다보는 경치가 또한 기가 막히다. 과거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소무의도는 본섬인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舞衣島라고 불렸다. 옛날 어부들이 안개를 뚫고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바라보면, 섬이 마치 말을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 같기도 하고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본섬을 ‘큰무리’, 소무의도를 ‘떼무리’라고 부른다. ‘본섬에서 떨어져 나가 생긴 섬’ 또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떼배’만하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실 본섬이 조선 말기까지 소를 키우던 목장이었던 데 반해 소무의도의 역사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동기란 이가 처음 딸 3명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한 후 기계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는데, 산 서편에는 아직까지 ‘시조묘’가 남아 있다. 지금은 40여 가구가 사는 소무의도는 60년대까지만 해도 400~500명의 주민이 살며 조기와 새우의 한 종류인 동백하를 잡던 부유한 섬이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군 병참기지로도 이용되었다. 풍족했던 섬은 이후 어족자원이 차츰 고갈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무위도는 해마다 여름이면 화려한 무의도 춤축제가 열리고 무의바다 누리길로 인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무의도 여행은 물이 빠졌을 때가 좋다. 하루 두 번 간조시에 드러난 해안 길을 따라 숨었던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풍경이 훨씬 수려해진다. 체험료 1,000원을 내면 조개류와 박하지도 잡고 낚시도 할 수 있다. 돌아가는 길, 광명마을 삼거리 입구에서 마을버스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는 지루함이 싫어서라기보다는 호기심이 반이었던 전화에 “반쯤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약속처럼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이것저것 따져 보아도 꽤 흡족한 하루 여행이다. ▶travie info 하루만에 다녀오는 소무의도 ① 공항철도 ‘주말 서해바다 열차’ 이용하기(11월25일까지 토, 일요일 상하행 각 11회 운행) 서울역-용유임시역 매시 39분 출발(오전 7시39분~오후 5시 39분), 용유임시역-서울역 매시 27분 출발(오전 9시27분~오후 7시27분) 용유임시역은 서해바다열차만 운행하는 인천국제공항역 다음의 임시역이다. 용유임시역과 잠진도 선착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1km로 도보로도 이동할 수 있다. 문의 코레일공항철도 032-745-7343 www.arex.or.kr ② 공항철도 인천국제공항역 하차→3층 7번 승강장에서 222번 버스→잠진도 선착장→무의도 인천공항에서 222번 버스 매시 20분 출발, 잠진도 선착장에서 매시 35분 출발 ③ 선박운행 잠진도 선착장→무의도행 매시 15, 45분 출발 요금 일반 3,000원(용유임시역에서 잠진도 선착장까지 도보 15~20분) 문의 무의도해운 032-751-3354 www.muuido.co.kr ④ 무의도 마을버스 큰무리선착장에서 10분 간격 수시운행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경상북도 안동에 다녀왔다. 안동 하면 즉각적으로 따라붙는 하회마을은 들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거나 비교적 새로 생긴 곳들을 주로 둘러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반 마을을 논외로 하더라도 안동에는 볼거리가 쏠쏠했다. 물론 퇴계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서원을 찾아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1 신세동 벽화 마을. 생기 없던 마을은 3년 전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한결 밝아졌다 2 벽화 마을 초입의 마싯타 카페. 원래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두 달 전 문을 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벽화로 거듭난 마을 점심 무렵, 안동에 도착했다. 허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이 출출했다. 어디를 가나 배꼽시계는 근면하고 성실했다.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구시장에 들어섰다. 서문 부근에 찜닭 전문 식당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하는 분이 ‘순한 맛, 보통 맛, 매운맛’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매운맛을 먹고 싶었으나 “정말 맵다”는 아주머니의 반응에 보통 맛을 주문했다. 조언 한 가지.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운맛을 시켜야 한다. 보통 맛은 입속의 점막을 자극하지 않는다. 토막 난 닭고기와 당면, 감자 등이 수북하게 쌓인 접시가 상에 올랐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간간한 찜닭은 익숙한 맛이었고, 익숙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구시장에서 신세동까지 걸었다. 신세동은 안동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오랫동안 세월의 적막을 경험해야 했다. 택시조차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달동네였다. 변화는 3년 전 찾아왔다. 안동대 출신의 예술팀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처음에 데면데면하던 주민들도 마음을 열고 ‘마을 꾸미기’에 동참했다. 그 결과 신세동은 화사한 얼굴로 거듭났다. 몇몇 주민은 벽화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복덩이 할머니’로 불린다는 김화순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옆집 여자아이가 옥탑방 건물 벽면의 대형 초상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철가방을 든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동네 중국집 배달원이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오르막길의 흰색 담장에서는 중년 혹은 초로의 사내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동네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께 “할머니 얼굴은 왜 없어요?‘라고 여쭈자 ”저기 아래로 내려가서 모퉁이를 돌면 내 얼굴도 볼 수 있다“며 수줍어하셨다. 벽화 마을 초입, 그러니까 동부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손바닥만한 카페가 자리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인도풍의 그림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곳은 원래 30여 년간 구멍가게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범상치 않은 외모의 카페 주인은 과자나 라면 등을 올려놓던 가게 선반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에 자신이 갖고 있던 소품들과 추억의 물건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랬더니 창업에 드는 비용이 150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월세는 겨우 10만원이다. 하지만 제일 부러웠던 것은 그의 눈썰미와 인테리어 감각, 그리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였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땀도 식히고 다리쉬임도 할 겸 맘모스제과의 문을 열어젖혔다. 맘모스는 지난해 미슐랭 가이드가 별 세 개를 부여하면서 새삼 화제를 모았지만 이미 40년 가까이 안동 시민들의 ‘궁금한 입’을 책임졌던 전통의 빵집이다.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기호에 복속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세련된 외부 모습과 내부 분위기는 좀 아쉽기도 했다. 단팥빵, 블루베리 파이, 맘모스 빵 등을 사서 한 입씩 베어 물었더니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동네 제과점의 풍경이 떠올랐다. 제과점을 나올 때 마음속에 따뜻한 물이 차올랐다. 학문의 길이 막히면 길을 걸었다 도산서원은 학창 시절 단골 시험 문제였다. 출제자들은 도산서원이 세워진 내력과 사액서원으로서의 의의, 퇴계 이황의 발자취 등을 무던히도 물어봤던 것 같다. 문화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을 길라잡이 삼아 도산사원의 안팎을 차분하게 들여다보았다. 강당인 전교당, 기숙사인 농운정사, 서고인 광명실, 한석봉이 썼다는 편액, 퇴계가 유난히 아꼈다는 매화나무 등은 시간 여행을 위한 매개물이었다. 도산서원은 익숙했지만 예던길은 낯설었다. 예던길은 퇴계가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면서 걸었다는 오솔길이다. 강변을 끼고 있는 개인 소유의 땅에 접근할 수 없어서 길은 현재 온전하지가 않다. 길의 허리가 뚝 끊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을 돌아가는 산길을 새로 놓았지만 예전 강변길의 운치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퇴계는 학문의 이치를 구하다 ‘생각의 길’이 막힐 때마다 예던길을 소요했다고 한다. 후학 양성에 진력했던 성리학의 대가는 일평생 자문자답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해가 저물었다. 밤이 찾아오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월영교로 차를 몰았다. 안동댐 아래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교각은 콘크리트로, 상판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다리가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나름 운치 있었다. 사람들은 다리 중간쯤에 놓인 팔각 정자 월영정에서 살랑바람을 맞았다. 그날 밤 영월교의 낭만을 더욱 북돋워 줄 밤안개는 끝내 피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문어숙회로 갈음했다. 문어 내장이 별도로 제공됐다. ‘먹물 맛’이 고소했다. 울진 후포항에서 올라온 쫀득쫀득한 문어를 적당하게 썰어 소주 몇 잔과 함께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튿날 아침, 안동에 산재한 다양한 박물관 가운데 산림과학박물관을 노크했다. 문패에 걸맞게 나무와 숲, 생태계에 관한 자료들이 꼼꼼하게 전시돼 있었다. 화요일 오전, 박물관은 적막했다. 거대한 박물관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야생화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연못은 물낯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연잎을 들쓰고 있었다. 성곡동의 온뜨레피움은 열대식물과 허브의 천국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객에게 적합해 보였다. 안동을 떠나기 전 운흥동의 갈비 골목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생갈비의 맛도 준수했지만 고기를 다 먹을 즈음 나오는 두 가지의 찌개가 인상적이었다. 갈비뼈에 김치와 감자를 넣고 끓여낸 갈비김치찌개와 우거지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고기 먹은 후 냉면’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전혀 생각나지 않게 해주었다. 김치찌개는 달착지근한 반면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시원했다. 밥 한 공기 반을 후딱 해치웠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배가 든든했다. 1 매표소에서 도산서원으로 이어진 길 2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는 신세동의 벽화 3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아 화제를 모았던 맘모스제과 4 간고등어, 헛제삿밥과 더불어 안동이 자랑하는 구시장의 찜닭 5 운흥동 갈비 골목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 안동찜닭을 먹은 곳은 구시장의 위생찜닭(054-852-7411)이다. 2~3인용 2만5,000원, 4~5인용 3만8,000원. 옥동의 오렌지향기(054-852-3559)는 문어숙회와 굴, 두 가지 메뉴만을 취급한다. 굴은 겨울철에만 내놓는다. 문어는 간장과 고추장, 두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다. 2만3,000원. 운흥동에 자리한 백조숯불갈비(054-859-4988)의 생갈비는 1인분에 1만9,000원. 밑반찬도 정갈하다. 숙박 안동호반자연휴양림(054-855-8687)을 추천한다. 한옥과 초가집 형태의 숙박 시설에 종갓집, 처갓집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방 세 개가 있는 처갓집은 비수기 기준으로 1박에 6만원이다.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 편리하다. 주변 환경도 고즈넉하다. * 9월28일부터 10월7일까지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일대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탈춤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곁들여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진실 규명에 시한 없다” 역사 심판 나선 벨기에

    벨기에 정부가 1950년 8월 발생한 공산당 지도자 줄리앙 라오 암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60여년 만에 벨기에판 ‘과거사조사위원회’를 구성, 역사심판 작업에 나선다고 A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진실 규명에는 만료 시한이 없다’는 제목으로 벨기에 측 움직임을 전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62년간 묻혀 있던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기금 출연을 승인했으며 이에 따라 이른바 ‘기억할 의무’를 다하고 도덕적 파급 효과를 내기 위해 조사위를 구성, 활동에 나섰다고 AP통신은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에서는 논쟁 끝에 왕자인 보두앵이 왕위를 넘겨받는 조건의 입헌군주제가 이뤄졌다. 보두앵의 왕위 승계를 승복할 수 없었던 공산당 당수 라오는 승계식 날 “공화국이여 영원하라.”고 국민들에게 외쳤다. 그 다음 주 라오는 자택 앞에서 2명의 괴한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다. 정치적 암살이 분명했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당시에 막 터진 한국전쟁이 냉전체제를 더욱 심화시킨 상황이어서 범인들은 잡히지 않았고, 배후에 대한 의혹은 ‘냉전의 안개’ 속에 파묻혔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조사위 가동이 이뤄진 배경에는 당시 라오 암살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문건이 최근 발견된 것도 한몫을 했다. 당시 한 정보원이 내무장관에게 보낸 라오 암살 관련 보고서가 드러난 것. 이 정보원은 보고서에서 “라오가 결국 소련 첩보원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을 덮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책임을 맡은 역사학자 에마뉘엘 제라드는 “조사위는 정치적 당파와 무관하며 진실 규명에 주력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일렁이는 물결 자욱한 안개 … 적막한 ‘느낌’ 화폭에 담아

    일렁이는 물결 자욱한 안개 … 적막한 ‘느낌’ 화폭에 담아

    “영업비밀이에요.” 장난스레 입을 앙다물더니 이내 설명해 준다. “사진으론 잘 안 살아나는데 실제로 보면 이 물결의 입체감이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을 본 분들은 꼭 이걸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세요. 붓으로 하는 게 아니라 스프레이를 이용하는 거예요. 캔버스를 눕혀서 양쪽으로 다른 색을 뿌리면 중간에 뭉쳐지면서 저런 느낌이 나와요.” 그림의 소재는 주로 물이다. 물인데 그냥 물 자체라기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일렁대는 물결이 부각된다. 작가 말마따나 사진보다 실물의 느낌이 더 강하다. ●“물감 스프레이 작업 입체감 살려”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잠원동 갤러리우덕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 최아영(64) 작가를 신문로 자택에서 만났다. 미리 얘기하자면 남편은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작가는 그래서 “이제 해방됐다.”고 말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남편이 공무원이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간 개인전을 못 열었단다. 그래서 서울대 미대 여자 졸업생들로 구성된 한울회 명의의 단체전에만 작품을 내놨었다. 이제 남편이 공무원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개인전도 열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사실상 첫 개인전인 셈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은은한 톤이다. 빨강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색보다는 파란색, 녹색 위주로 하되 톤에다 많은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산과 바다를 주된 소재로 삼았는데, 그것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묘사한다기보다 그때 받았던 눈부신 인상만 뽑아내 스케치한 느낌이 강하다. 물결의 느낌, 산세의 느낌, 자욱하게 낀 안개의 느낌 같은 것들을 툭툭 던져뒀다. 지난 3년간 틈틈이 그린 30점을 내놓았다. 왜 이런 자연만 그리느냐고 했더니 취미가 그렇단다. 야외활동, 그러니까 이런저런 운동에다 뛰어난 운전 솜씨까지 아주 활달한 성격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킨스쿠버. 힘든 운동인데도 어쩌다 한번 배워 보니 의외로 쉬웠단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느꼈던 그 물 속 세계의 환상적인 느낌이 좋아 자주 그린다. 오래 머물 기회가 있었던 미국 알래스카의 사계절 풍경이나 우연히 들렀던 노르웨이 북단의 피요르드 풍경도 있다. 그래서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성격도 활발한 데다, 남편의 대외활동상 이런저런 바깥 약속도 많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서 언제 그림 그릴 새가 있었느냐는 말이 나올밖에. 그림은 새벽에 그린다. “전 새벽 4시 30분쯤이면 항상 일어나요. 기분이 맑고 좋을 때, 그때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편입니다.” 뜸도 많이 들이고 공도 많이 들인다. “사실 어릴 적에는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런데 피아노는 현장에서 한 음 잘못 치면 망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림은 내가 완성됐다 싶을 때 내보일 수 있더라고요. 그게 마음에 들어서 미술을 했지요.” 지금도 그림 한 점에 3년 정도 공을 들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벽에 걸어두고 마음에 들 때까지 만진 뒤에야 내놓는다. 그런데 작품에 사람이 너무 없다. 일렁대는 물결과 자욱한 안개 외에 인기척이 없다 보니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든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살면서 고민이 많아 사주와 관상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 공부 끝에 사람마다 다 팔자가 있고, 이것 또한 내 팔자니 편안하게 받아들이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부작용은? 사람 얼굴을 안 그리게 됐다. “얼굴을 보면 관상이 보이고 관상이 보이는 가운데 사주가 함께 보여서 그릴 수가 없더라고요.” 어째 섬뜩하다 했더니 작가는 가볍게 웃어 넘기란다. ●“받아들이며 살자는 깨달음이 작품에 도움”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남편 이력은 화려하다. 엘리트 공무원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냈고 새 정부 들어서도 주미 대사에다 무역협회장으로 계속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말하자면 ‘고상한 마나님’인 셈이다. “아유, 바깥에서 남들 보기엔 그렇죠. 그런데 공무원 생활 초기에는 너무 승진이 안 됐어요. 남편도 국장 한번 되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으니까요.” 사주, 관상을 공부하게 된 계기다. 뒤로 갈수록 관운이 트이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주와 관상을 기초로 이런저런 일에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떨 때 어떤 내용으로? 그 또한 영업비밀이다. (02)3449-6071~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이 최근 젊은 층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과한 술과 담배가 주 원인이다.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으면서 생긴다. 백내장은 90% 정도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발병하고 눈속 염증 등이 원인이다.  에스안과 김종현 원장은 “최근 30~40대 젊은층에서도 백내장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한 음주와 흡연, 자외선 노출에서 온다.”면서 “평소 근시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던 분들이 간혹 잘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갑자기 눈이 좋아진 것이 아니어서 백내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내장 초기 증상은 ▲시력이 떨어져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 ▲ 밝은 곳에 가면 눈이 부시고 눈에 이물질이 끼어 있다고 느낄 때 ▲ 물건이 2~3개로 겹쳐 보일 때가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장시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의 사용이 백내장을 초래할 수 있는 주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주맹 현상이나 수정체 근시현상, 복시 증상 외에도 백내장은 방치하면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백내장은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한 술이나 담배는 삼가고 핵산이 풍부한 멸치, 당근, 양배추 등 비타민C와 비타민E가 충분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면서 “최소 1년에 한번은 안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이 최근 젊은 층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과한 술과 담배가 주 원인이다.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으면서 생긴다.백내장은 90% 정도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발병하며 눈속 염증 등이 원인이다.  에스안과 김종현 원장은 “최근 30~40대 젊은층에서도 백내장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한 음주와 흡연, 자외선 노출에서 온다.”면서 “평소 근시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던 분들이 간혹 잘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갑자기 눈이 좋아진 것이 아니어서 백내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내장 초기 증상은 ▲시력이 떨어져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 ▲ 밝은 곳에 가면 눈이 부시고 눈에 이물질이 끼어 있다고 느낄 때 ▲ 물건이 2~3개로 겹쳐 보일 때가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장시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의 사용이 백내장을 초래할 수 있는 주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주맹 현상이나 수정체 근시현상, 복시 증상 외에도 백내장은 방치하면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백내장은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한 술이나 담배는 삼가고 핵산이 풍부한 멸치, 당근, 양배추 등 비타민C와 비타민E가 충분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면서 “최소 1년에 한번은 안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이 최근 젊은 층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과한 술과 담배가 주 원인이다.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으면서 생긴다. 백내장은 90% 정도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발병하고 눈속 염증 등이 원인이다.  에스안과 김종현 원장은 “최근 30~40대 젊은층에서도 백내장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한 음주와 흡연, 자외선 노출에서 온다.”면서 “평소 근시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던 분들이 간혹 잘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갑자기 눈이 좋아진 것이 아니어서 백내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내장 초기 증상은 ▲시력이 떨어져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 ▲ 밝은 곳에 가면 눈이 부시고 눈에 이물질이 끼어 있다고 느낄 때 ▲ 물건이 2~3개로 겹쳐 보일 때가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장시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의 사용이 백내장을 초래할 수 있는 주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주맹 현상이나 수정체 근시현상, 복시 증상 외에도 백내장은 방치하면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백내장은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한 술이나 담배는 삼가고 핵산이 풍부한 멸치, 당근, 양배추 등 비타민C와 비타민E가 충분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면서 “최소 1년에 한번은 안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는 백내장 초기 증상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이 최근 젊은 층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과한 술과 담배가 주 원인이다.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한다.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서 굴절돼 망막에 상을 맺으면서 생긴다. 백내장은 90% 정도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발병하며 눈속 염증 등이 원인이다.  에스안과 김종현 원장은 “최근 30~40대 젊은층에서도 백내장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한 음주와 흡연, 자외선 노출에서 온다.”면서 “평소 근시로 가까운 사물이 잘 보이지 않던 분들이 간혹 잘 보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갑자기 눈이 좋아진 것이 아니어서 백내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내장 초기 증상은 ▲시력이 떨어져 시야가 안개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때 ▲ 밝은 곳에 가면 눈이 부시고 눈에 이물질이 끼어 있다고 느낄 때 ▲ 물건이 2~3개로 겹쳐 보일 때가 대표적이다.  김 원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장시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의 사용이 백내장을 초래할 수 있는 주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주맹 현상이나 수정체 근시현상, 복시 증상 외에도 백내장은 방치하면 다양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백내장은 젊은 층에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과한 술이나 담배는 삼가고 핵산이 풍부한 멸치, 비타민C와 비타민E가 충분한 당근, 양배추 등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면서 “최소 1년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안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창비’도 세계문학전집 발간… 年 100억대 시장 판도 바뀌나

    ‘창비’도 세계문학전집 발간… 年 100억대 시장 판도 바뀌나

    국내 대형 출판사들이 선점한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창비’가 가세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해외 판권을 다수 보유한 민음사가 국내 세계문학전집 시장의 70%가량을 과점한 가운데 창비의 도전이 과연 시장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세계문학전집은 그동안 입시를 앞둔 중·고교생 등 특정 연령대만 읽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문학전집 시장은 연간 100억원대로 성장했다. 박신규 창비 문학출판부 부장은 16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등 1차분 10종 11권을 출간했다.”면서 “이미 90종의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했고, 이 중 30%가량은 국내 초역본”이라고 밝혔다. 2010년 19~20세기 해외단편소설을 번역출간한 ‘창비세계문학’(9권)의 반응이 좋아 아예 세계문학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전집에는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인도, 아프리카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작가나 기존 유명 작가의 중·단편 소설집도 다수 포함될 예정이다. 창비의 뒤늦은 세계문학전집 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제한된 파이를 놓고 경쟁만 치열해질지 의견이 엇갈린다. 1980년대 범우사·일신서적 등의 반양장·완역본으로 전성기를 맞은 뒤 1990년대 후반부터 민음사가 쇠퇴한 시장을 되살리며 주도권을 쥐었다. 민음사는 번역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수년 전부터 연간 100만권 이상을 팔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음사와 문학동네가 다음 달 초 각각 300번, 100번째 책을 내놓는다. 더욱이 민음사가 선점한 시장에 웅진과 을유문화사(2008년), 문학동네(2009년), 시공사(2010년) 등이 뛰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또 출판사마다 신뢰할 만한 번역과 국내 초역 등을 내세워 차별화 전략을 펴고 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실제로 2009년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발간이 시장 판도 변화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시장 점유율은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창비의 경우 해외문학 전문가로 구성된 편집기획위원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문학작품 소개를 차별점으로 꼽고 있다. 한기욱(인제대 영문과 교수) 창비 기획위원은 “단기적으로 차별성을 구분하긴 어렵겠지만 후발주자인 만큼 새로운 번역과 정선된 작품으로 우리만의 전집을 만들 것”이라며 “기존 고전을 새롭게 재구성해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고, 희곡·추리소설, 대표시선 등 장르도 다양화할 방침”이라고 소개했다. 제1권으로 선정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그동안 국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소개된 괴테의 작품이다. 임홍배(서울대 독문과 교수) 기획위원은 “원어 제목은 ‘슬픔’이라기 보다 복합적 어려움을 뜻한 ‘고뇌’에 가깝고, ‘베르테르’는 일본식 표기”라며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서간체를 원어에 가깝에 되살려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1차분 가운데 오스트리아 작가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딜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국내 처음 번역 소개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판소리 한토막의 행복

    오랜만에 보건복지부를 찾았다. 명색이 출입처라면서 다른 일에 바빠 근래 얼굴 한번 내밀지 못했던 터라 낯설었다. 두루 인사를 나누자니 뜻하지 않게 저녁 자리로 이어졌다. 생일을 맞은 동료에게 ‘조공’ 삼아 출세(出世)를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일단 멍석이 펼쳐지자 회포가 몇 길이라도 되는 양 소주잔이 가쁘게 돌았다. 취기가 돌아 다들 귓볼이 달아오를 무렵 누군가가 기막힌 제안을 했다. 동석한 인사 중에 소리꾼 반열에 드는 ‘천하의 가객’이 있으니 소리 한 토막 청해 듣자는 것이었다. 그 분위기에 누가 그걸 마다할까. 박수로 소리 한 토막을 청했다. 쑥스러운 듯 목을 가다듬은 그 인사는 이윽고 물꼬를 밀어낸 봇물처럼 소리를 터뜨렸다. 수궁가의 고고천변(皐皐天邊) 대목이었다. 수궁의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하러 세상에 막 나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읊조리는, 명창 송만갑 선생이 잘 불렀다는 그 대목이다. 우렁한 소리가 활달하고 경쾌하게 술자리를 휘어잡았다. 판소리라는 게 이제는 ‘꼰대들 노래’가 되어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가지만 어쩌랴, 그 소리에는 우리의 민족 정서를 깨우는 각성의 묘약이 들었으니…. 다들 기이하다, 신통하다는 듯 소리에 빠져들었다. ‘고고천변 일륜홍(日輪紅) 부상(扶桑)에 높이 떠 양곡(凉谷)의 깊은 안개 월봉(月峯)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漁場村)에 개 짖고 회안봉(廻雁峯)에 구름이 떴구나.’ 그 후로도 한동안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배부른 세상에 구곡간장을 끊을 듯 내뱉는 그 절창이 어울리지 않는다지만 예전의 신산했던 시절에 비해 영혼의 주림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세상임을 안다면 그렇게 재단할 일도 아니다. 요즘 아이돌의 얼치기 노래, 음미할 여지조차 없는 맹탕 사랑타령에 지친 내게 그 고고천변 한 토막이 준 울림은 컸다. 나야 그 소리 한 토막에 뿅, 갔지만 사람마다 정서의 층위와 색깔이 다를 터이니 굳이 그것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겠다. 무엇인들 상관있으랴. 위태로운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가끔 그런 도락이라도 즐기며 살 일이다.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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