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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이란 ‘무관중경기’ 장군멍군?

    북한과 이란이 축구경기에서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두 팀은 지난 달 30일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최종예선 3차전에서 맞붙었다. 홈에서 0-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던 경기 막판 페널티킥을 주지 않는다고 거칠게 항의하던 북한의 김영준이 퇴장당했다. 흥분한 북한 관중은 맥주병을 집어던지며 소동을 벌였고 보안요원들이 출동하고 나서야 간신히 사태가 진화됐다. 경기후 북한에 대해서 다음번 국제경기를 ‘무관중경기’로 치르도록 징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공교롭게 2년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지난 2003년 11월 13일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선수권대회 예선 북한-이란전.1-0으로 이란이 앞서가던 후반전에 흥분한 관중이 폭죽을 경기장으로 던졌다. 북한의 수비수 서혁철이 폭죽에 맞아 쓰러졌고 화가 난 북한팀은 조직위에 알리지도 않고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이 사건으로 북한대표팀은 1년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국제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이란에 대해서는 사전에 불미스러운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 1만달러를 물리고 다음번 국제경기를 ‘무관중경기’로 치르도록 했다. 결국 이란은 다음해인 2004년 2월 18일 테헤란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예선 1차전 카타르와의 홈경기를 관중 한명 없는 썰렁한 경기장에서 치러야 했다. 북한이 이번에 똑같은 징계를 받는다면 장군, 멍군을 주고받는 셈. 징계가 적용되는 경기가 오는 6월8일 평양에서 열릴 북한-일본전이라 일본만 어부지리를 챙기게 생겼다. 가뜩이나 평양원정경기가 부담이 됐던 차에 호재를 만난 것.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본스포츠지들도 연일 이 문제를 앞다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북-일전 장소가 아예 중립지로 바뀌거나,‘무관중경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며 희망섞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나경민 전격 복귀

    나경민 전격 복귀

    비운의 ‘셔틀콕 여왕’ 나경민(29·대교눈높이)이 다음달 코트로 돌아온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15일 지난주 세대 교체 첫 시험무대였던 최고 권위와 전통의 전영오픈에서 남자 복식이 동메달에 그치는 등 최악의 성적을 냄에 따라 대표팀을 부분 수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협회는 그동안 김동문-나경민이 지난 8년간 정상을 지켜온 강세 종목 혼합복식의 맥을 잇기 위해 나경민을 대표팀에 전격 복귀시키기로 했다. 협회는 현재 혼복 에이스로 활약 인 이재진(원광대)-이효정(삼성전기)조를 대신해 이재진과 나경민을 한 조로 묶는 등 다각적인 나경민 기용 방안을 모색중이다. 하지만 나경민이 노장인 점을 감안, 여복에는 투입하지 않고 혼복 한 종목에만 뛰게 한다. 나경민도 최근 이같은 협회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아닌, 내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잡고 있다. 나경민은 최강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아테네올림픽 혼복에서 노메달로 ‘올림픽 악연’을 끊지 못하자 선수생활을 접고 대표팀의 권유로 코치 변신을 꾀했었다. 고질적인 탈장 증세에 시달려온 나경민은 지난 연말 서울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도중 ‘쇼크’를 받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현재 소속 대교눈높이팀의 트레이너 겸 선수로 활약하는 나경민은 착실히 근력을 키우고 운동량을 늘려 대표팀에서 한몫 하겠다고 다짐한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Anycall 프로농구] MVP 신기성

    [Anycall 프로농구] MVP 신기성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30·TG삼보)이 프로농구 04∼05시즌의 주인공이 됐다. 신기성은 1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신기성은 기자단 투표에서 68표 가운데 44표를 얻어 강력한 경쟁자였던 현주엽(16표·KTF)을 누르고 데뷔 7시즌 만에 명실상부한 특급 스타로 우뚝 섰다. TG의 ‘고공비행’을 이끌며 정규리그 2연패를 일군 신기성은 빠른 발과 빼어난 패스, 적중률 높은 3점슛 능력으로 시즌 두 차례나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경기당 평균 11.6점,7.09어시스트를 기록한 신기성은 허재의 은퇴, 용병 가드 처드니 그레이의 교체 등으로 취약해진 ‘야전사령관’ 자리를 혼자서 책임졌다. 신기성은 손꼽히는 민완 가드이지만 98∼99시즌 신인상을 받은 것 외에는 지독히도 ‘상복’이 없었던 선수.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우승을 일구고도 ‘베스트 5’에 들지 못했다. 이날 MVP와 ‘베스트5’,3점야투상을 거머쥐며 개인상과의 악연을 끊은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니 오늘처럼 행복한 날도 맞게 됐다.”며 기뻐했다. 한편 MVP만큼이나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신인왕은 양동근(모비스)이 차지했다.53표를 받은 양동근은 시즌 내내 ‘슈퍼루키’를 다투던 이정석(SBS)을 39표차로 따돌렸다. 신인답지 않은 경기조율로 선수층이 엷은 모비스를 ‘돌풍의 팀’으로 변신시킨 양동근은 경기당 평균 11.48점,6.1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한 TG 전창진 감독은 2년 연속 감독상을 받았고, 이병석(모비스)은 우수후보선수상·기량발전상·수비5걸 등 3관왕에 올랐다. 외국선수상은 크리스 랭(SK)이, 모범선수상은 강혁(삼성)이 차지했다. ‘베스트5’는 신기성을 비롯해 김승현(오리온스) 현주엽 김주성(TG) 서장훈(삼성)이 각각 선정됐고,‘수비 5걸’로는 양동근 강혁 추승균(KCC) 이병석 랭이 뽑혔다. 올해 처음으로 제정된 ‘클린팀상’은 삼성에 돌아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조르디 사발의 ‘에스페리옹 21’ 내한공연

    조르디 사발의 ‘에스페리옹 21’ 내한공연

    ‘고(古)음악의 영웅’으로 불리는 비올라 다 감바의 명연주자 조르디 사발이 한국에 온다. 지난 2003년에 이어 두번째 내한하는 그는 19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공연을 시작으로 23일까지 경남 통영, 울산, 경기 안산 등을 돌며 공연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인 사발은 첼로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가 1965년 이래 비올라 다 감바에 매료돼 고전음악 쪽으로 활동방향을 튼 인물. 고색창연한 악기의 명연주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중세에서 바로크 시대까지 고음악 해석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사발의 이번 공연에는 그가 직접 창단한 고음악 전문 실내악단 ‘에스페리옹 21’이 함께 온다. 1974년 창단한 에스페리옹 21에는 사발의 일가족이 주요 연주자로 포진해 있다. 그의 아내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소프라노 몽세라 피구에라스를 비롯해 ‘알파 도피아’(옛 하프) 연주자인 딸 아리안나 사발,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만돌린 비슷한 악기 ‘티오르바’ 연주자인 아들 페란 사발 등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사발이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원형. 첼로와 연주방식이 거의 비슷한 여섯 혹은 일곱 현의 옛 악기로, 천재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기막히게 연주한 악기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합주에서 낮은 음역을 소화하는 부수악기였으나 차츰 독주악기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사발의 음악적 성과는 단지 무대 연주에 그치지 않는다. 고음악에 관한 각종 조사와 연구·해석을 거듭한 끝에 복원해낸 그의 음악은 진정한 클래식 애호가라면 반드시 섭렵해야 할 레퍼토리로 평가받는다. 이를 입증하듯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고음악을 연주한 2003년 첫 국내 무대에서도 그는 클래식팬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사발과 에스페리옹 21은 17일 개막하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유일한 고음악 프로그램으로 각광받을 듯하다. 통영 공연은 20일 통영시민회관 오후 7시. 이어 22일 울산 현대예술관(오후 8시),23일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오후 8시)에서 공연한다. 한편 한양대 음악연구소는 24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비올(viol) 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는 ‘비올 음악의 역사, 그 시원에서 후기 바로크까지’라는 이색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비올은 16∼18세기 유럽에서 실내악 연주에 쓰던 현악기를 총칭하는 말이다.(02)2005-011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에베레스트의 아픔’ 박무택씨 등 4명 훈장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8848m)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길에 유명을 달리한 박무택과 백준호, 장민씨를 포함한 4명의 산악인에게 훈장이 추서된다. 대한산악연맹은 14일 지난해 에베레스트에서 사고사를 당한 이들이 국위선양과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8000m급 6개 봉우리를 등정한 박무택 대원에게는 체육훈장 맹호장을, 박 대원을 구조하려다 실종된 백 대원에겐 백마장이, 함께 내려오던 중 숨을 거둔 장 대원에게는 체육포장이 수여된다. 이밖에 로체샤르(8400m) 등반 중 실종된 박주훈씨도 체육포장을 받는다.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이날 네팔로 출국한 ‘휴먼원정대’ 엄홍길(45)대장은 “눈보라 속에 잠들어 있는 고인들에게 이러한 마음이 전달될 것”이라고 서훈을 반겼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기가 엉망으로 관리되는 현실을 접하다 보니 일종의 사명감까지 생기더군요.” 강준식(57·서울 관악구 봉천7동)씨는 동생 준길(47·대구시 동구 불로동)씨와 손을 맞잡고 태극기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형제는 3·1절 기념식이 열린 1일에도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을 찾아 ‘태극기 동산’에서 열린 행사장에 태극기 50개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형 준식씨는 현재 태극기선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태극기 보급’에 앞장선 것은 형인 준식씨의 태극기 사랑이 남다른 데서 비롯됐다. 서울 서초구청에서 행정차량을 운전하는 기능직으로 일하던 준식씨는 1989∼1992년 방배2동에 근무할 때 태극기와 ‘악연?’을 맺었다. 각종 행사 때 길거리에 태극기를 내걸고, 또 태극기를 거둬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민이 생겼다. 줄지어 나부껴야 할 태극기가 지나가는 차량이 일으키는 바람에 꼬여 볼품이 없었다. 당시 내무부 등 상급기관으로부터 긴급지시가 ‘전통’으로 내려와 게양대에 말린 태극기를 풀기 위해 공휴일에도 출근하는 고역이 되풀이 됐다. 강씨의 머릿 속에는 항상 이 문제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강씨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때 태극기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귀중한 물건인가를 새삼 깨닫고 본격적으로 문제해결에 뛰어들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감기기 않는 태극기 개발이 그의 인생 목표가 됐다. 기울기가 45도 정도로 고정돼 있는 게양대의 경우 태극기가 감기면 쉽게 펴지지 않는다는 데 착안, 태극기를 묶는 깃대를 360도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알루미늄 게양대의 무게가 태극기 무게와 비슷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래야만 게양대가 회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벼우면서도 꺾이지 않는 깃대 재질을 찾아 시내 기계상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강씨는 알루미늄 제품 가운데는 요건을 갖춘 게 없어 주머니를 털어 깃대를 특별 주문했다.600여만원이나 들었다. 관청용인 무게 90g짜리 태극기 7호(90㎝×135㎝)를 기준으로 해 기존 알루미늄 깃대는 태극기 무게의 4배인 380g 정도나 된다. 깃대의 두께가 2㎜인 알루미늄 봉(棒)을 열처리해 0.5㎜짜리로 압축, 자신이 원하던 깃대를 만들었다. 이후 출근길에도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등 강씨의 열의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초구에서도 시간을 할애해 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휘감기지 않는 태극기를 특허청에 실용신안등록을 출원, 지난해 4월에는 기술평가까지 마쳐 독점 제작권을 따냈다. 올해부터는 낚싯대 재질의 깃대를 이용, 강한 바람이나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휘지 않는 업그레이드된 깃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올 1월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준식씨는 태극기 제작을 위해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안에 7평짜리 작업실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량만큼 만들어 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100여개씩 기증하거나 요식업을 하는 동생 준길씨에게 보내는 등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 안 되는 일반주문을 통해 판매하는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가격은 7호 1만원, 가정용인 8호(60㎝×90㎝) 1만 5000원이다. “다행히 관청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최근 가로변에 내건 태극기 가운데 70%가 휘감기지 않는 것으로 교체됐다.”고 두 형제는 활짝 웃었다. 형 준식씨는 “사회환원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공무원으로 있는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태극기선양회에서 7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도와주는 덕분에 힘들지 않다.”고 고마워했다. 자신은 또 회원이 12만명이나 되는 ‘사색의 향기’ 동료들로부터 인식만이라도 달리하자는 홍보를 할 수 있고, 동생도 대구시 족구연합회장으로 있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관청용은 특허 덕분에 조달청을 통해 공급할 수 있어 걱정이 덜하다. 다만 준식씨는 아직도 일반 가정의 태극기 게양률이 3%에 그치고 있어 자신에게 할 일이 많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연락처 (02)889-0465 또는 011-211-9781, 대구 (053)981-3154 또는 011-9595-0025.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는 이스트우드를 선택했다

    제77회 아카데미는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5)의 손을 들어줬다.28일(한국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유력한 경쟁작이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에비에이터’를 따돌렸다.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에비에이터’가 5개부문 수상으로 최다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긴 했지만,4개의 주요부문 수상은 ‘밀리언‘에 돌아감으로써 주연과 감독을 맡은 이스트우드가 올해 아카데미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됐다. 아카데미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상·감독상을 모두 휩쓴 데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두번째로 감독·작품상 수상 이번 수상으로 이스트우드는 1993년 ‘용서 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감독·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한 뒤 ‘앱솔루트 파워’‘미스틱 리버’등 지금까지 20여편의 영화를 만들어 온 그는, 동년배들이 현역에서 물러났을 때부터 오히려 빛을 발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서부영화의 아이콘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시상식장에 올라 96세인 어머니를 소개하며 “유전자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밀리언‘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늙은 트레이너 프랭키와 여성 복서 매기의 가족보다 진한 교감을 그린 영화. 가족주의와 휴머니즘을 넘어선 삶을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삶을 비관하지 않는 승리자의 태도가 아카데미의 손을 들어주게 만든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아카데미가 사랑한 배우들 이스트우드뿐만 아니라 ‘밀리언‘에서 여성 복서 역을 맡은 힐러리 스왱크(31) 역시 아카데미와 두번째로 인연을 맺게 됐다.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남장여자 역에 이어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해서 이렇게 상을 받게 되는지 모르겠다.”며 감격해했다. 남우주·조연상은 ‘흑인들의 잔치’였다.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이’의 제이미 폭스(38)는 수상 소감에서 “어려서 연기 지도를 해주신,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며 울먹였다.1963년 ‘들에 핀 백합’의 시드니 포이티어,2002년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 이후 흑인 배우로는 세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남우조연상은 은퇴한 복서 역을 맡은 ‘밀리언‘의 모건 프리먼(68)이 아카데미에 4번째로 도전한 끝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카데미가 ‘인종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증거다. 여우조연상은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한 케이트 블랜쳇(36)이 차지했다. ●‘몰아주기’ 없었던 시상식 올해 아카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몰아주기’가 없었다는 것.‘에비에이터’(5개),‘밀리언‘(4개)에 이어 ‘레이’와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편 아카데미 사상 한국인(호주 교민)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부문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는 ‘라이언’에게 밀려 수상의 영광을 놓쳤다. 이순녀 김소연기자 coral@seoul.co.kr ●부문별 수상자(작) ▲작품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레이)▲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왱크(밀리언 달러 베이비)▲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밀리언 달러 베이비)▲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랜쳇(에비에이터)▲각색상 사이드웨이▲각본상 이터널 선샤인▲촬영상 에비에이터▲편집상 에비에이터▲장편 애니메이션상 인크레더블▲단편 애니메이션상 라이언▲미술상 에비에이터▲음향편집상 인크레더블▲음향상 레이▲시각효과상 스파이더맨2▲의상상 에비에이터▲분장상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작곡상 네버랜드를 찾아서▲주제가상 모터사이클다이어리▲장편 다큐멘터리상 본 인투 브라델스▲단편 다큐멘터리상 마이티 타임스▲외국어영화상 시 인사이드(스페인)▲단편영화상 WASP ■ 이모저모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아카데미의 악연은 올해도 이어졌다.2년 전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개의 상도 수상하지 못한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한다면 5개 부문 수상이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스코시즈는 6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고배를 마시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5년 만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나란히 오른 아네트 베닝과 힐러리 스왱크의 남다른 인연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여우주연상을 노렸다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신인 힐러리 스왱크에게 오스카상을 뺏겼던 아네트 베닝은 ‘줄리아 되기’로 권토중래를 꾀했으나 또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두 명의 한국교포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카메라에 잡혔다.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 안타깝게 수상을 놓친 ‘버스데이 보이’의 호주 교포 박세종 감독과 ‘사이드웨이’의 여배우이자 캐나다 교포인 샌드라 오가 그 주인공. 특히 샌드라 오는 ‘사이드웨이’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아내로, 페인 감독은 각색상 수상소감에서 “내 아내 샌드라는 대단한 배우다.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 [달리작품 훼손으로 본 관람문화] 관람 매너·에티켓 이렇게

    부산문화회관 공영훈 공연과장으로부터 공연·전시 관람회장에서의 매너와 에티켓에 대해 알아본다. ●음악회 정장 또는 주위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단정한 복장을 한다. 공연시작 10분전에는 입장을 완료하고 본인 좌석인지 확인한다. 박수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3∼4악장으로 되어 있는 곡은 모든 악장이 끝난 후에 한다. 성악의 경우 한 묶음(3∼4곡씩)이 끝날 때마다, 기악연주는 소품일 경우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한다. 오페라는 ‘아리아’나 ‘이중창’ 등이 끝나면 박수를 하고 환호하는 뜻에서 ‘브라보’를 외친다. 7세 이하의 어린이는 공연장에 동반하지 않는다. 공연중 지정좌석을 찾을 때에는 뒤에서 기다리거나 빈 좌석에 앉았다 한 곡이 끝난 뒤 자리를 찾는다. 껌을 씹거나 음료수, 음식물 등의 반입을 금지한다. 휴대전화, 호출기 등 소리나는 물건은 반드시 전원을 끈다. ●전시회장 어린이(유아)를 대동하지 않는다. 작품(일부 만질 수 있는 작품제외)을 만지거나 작품 촬영을 하지 않으며 기념 촬영은 지정장소에서만 한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동선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조용히 이동한다. 침이 튀거나 콧김, 입김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과 코를 손 등으로 가리고 감상한다.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뛰어다니지 않는다. 작품보호를 위해 가방 등 큰 소지품은 안내데스크에 맡기고 음식물 등은 반입을 하지 않는다. 메모 등을 할 때 필기구는 연필을 사용한다.
  • [PGA 닛산오픈] “황제자리 비워 둬”

    [PGA 닛산오픈] “황제자리 비워 둬”

    “연속 우승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지난 1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뷰익인비테이셔널에서 시즌 첫승을 신고한 타이거 우즈가 한 달 만에 ‘포효’한다. 무대는 오는 18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리비에라골프장(파71·7250야드)에서 열리는 닛산오픈(총상금 480만달러). 우즈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6개월 동안 비제이 싱(피지)에게 내줬던 세계랭킹 1위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다. 세계랭킹 평균 포인트에서 싱(11.97점)에게 0.12점 뒤진 우즈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곧바로 제위를 탈환하게 된다. 더구나 최근 2주 연속 우승으로 시즌 상금 1위에 오른 필 미켈슨(미국)의 행보를 보면 우즈의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연속 우승은 원래 우즈의 ‘전매 특허’.1996년 프로에 데뷔한 우즈는 이제까지 모두 7차례나 연속 우승을 일궜다.1999년에는 NEC인비테이셔널을 시작으로 출전한 5개 대회를 내리 우승한 전력이 있다. 우즈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2003년 이후 끊겼던 연속 우승의 맥을 잇고 시즌 상금랭킹에서도 미켈슨을 제칠 작정이다. 나아가 다음주에 열리는 액센추어매치플레이챔피언십도 거머쥐어 2주 연속 우승까지 노린다. 가능성은 높다. 싱, 미켈슨, 어니 엘스(남아공) 등 ‘황제’를 다투는 경쟁자들이 모두 닛산오픈에 참가하지 않는다. 매치플레이챔피언십 역시 슬럼프에 빠졌던 지난해에 유일하게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대회이고, 매치플레이에 관한 한 우즈는 여전히 단연 세계최고를 자랑한다. 자동차경주 사고를 당했던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가 완쾌돼 심리적 안정감도 찾았다. 문제는 닛산오픈과의 악연. 우즈는 16세 때인 1992년 초청선수로 이 대회를 통해 처음 PGA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컷오프됐고, 이듬해에도 예선 탈락했다. 집에서 1시간 거리도 안되는 ‘홈코스’나 다름없는 리비에라골프장에서 수많은 연습라운딩을 했지만 우승컵을 안지는 못했다. 대회 3연패를 노리는 마이크 위어(캐나다)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도 우즈로서는 부담이다. ‘코리안 듀오‘ 최경주(35·나이키골프)와 나상욱(21·엘로드)도 시즌 첫승을 노린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지난 2002년 5월24∼2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삼성의 금융사 7인의 ‘수장’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직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현재 실적에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등 업종별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뒤 새벽 1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를 함께 한 이 회장은 “문제가 있는 경영방식은 즉각 고쳐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해외 선진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 핵심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벤치마킹해 상품·서비스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종 대 외국자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01년 회의때도 “사고가 난 뒤 보험료율만 올리지 말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노력하라.”고 주문해 삼성화재가 최초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전자계열에 이어 금융사 사장들과 전략회의를 가진 데서 나타나듯 금융업은 전자와 함께 삼성의 양대축이다. 삼성은 지난 세월 현대·LG 등과 늘 수위를 다퉈왔지만 금융만큼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삼성생명이 90조원을 넘어섰고 삼성화재 14조원, 삼성증권 6조원에 육박한다. 웬만한 시중은행과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 90조, 삼성의 ‘젖줄’을 일군 사람들 삼성생명은 57년 4월 강의수, 전중윤, 윤삼영, 강일성, 김용수, 강화두 등 7인의 경제인이 57년 공동으로 세운 동방생명이 전신이다.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고 강의수 회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장인이다. 당시 동방생명 마산지부장이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었다. 동방생명은 설립 2년 만에 국내 생보업계 1위로 뛰어오른 데 이어 62년에는 동남증권(현 하나증권) 설립, 동양화재 주식 매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등 사세를 넓혀 나갔다. 하지만 63년 1월 강 회장이 운명하자 곧바로 어려움에 빠졌고 그해 7월 삼성의 일환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로서 그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 및 국내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 일부 해외언론은 이 회장을 가리켜 ‘책임을 질 줄 아는 유일한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면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국의 결론이 주목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이수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도 걸려 있다.99년 회사가 손해를 봐 가면서 우리은행과 주식을 맞교환해 지배주주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주장과 삼성자동차 ‘우회지원 대출’ 등이 고발 사유였다. 이같은 경영외적인 비중을 제외하고도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업체로 올해 자산 100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등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2003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가운데 생보사 부문 19위에 랭크됐다.2010년까지 자산 200조원, 매출액 47조원을 달성하여 ‘글로벌 종합금융서비스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과거 삼성의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돈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생명빌딩과 중앙일보빌딩, 종로타워, 강남의 하이닉스빌딩 등 수많은 빌딩이 삼성생명 소유다.1116개 지점의 영업용 부동산의 장부가만 3조 5158억원에 달한다. ●생명의 산 증인, 이수빈과 배정충 삼성생명의 경영은 99년 12월부터 배정충(60)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북 전주생인 배 사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69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삼성생명의 자산은 30억원(현재 90조원)에 불과했다. 생명보험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70∼80년대를 영업 현장에서 보낸 배 사장은 삼성화재 대표를 거쳐 99년 ‘친정’의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달에 걸쳐 전국의 영업현장을 순회한 일일 정도로 현장을 우선시한다. 한번 본 숫자는 거의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수리’에 밝다.4년 만에 삼성생명에 돌아왔을때 사장실에 불려 간 간부들이 업무와 관련된 통계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일일이 수정해주며 ‘불호령’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아무리 바빠도 회사 임직원이나 거래처, 지인들의 상가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도 삼성생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25년간 제일합섬, 제일제당, 삼성항공, 삼성생명, 삼성증권의 CEO와 삼성 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직업이 사장’으로 불린다.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접목했고 생명보험 경영의 핵심인 영업소장과 설계사의 위상 강화를 통해 업계 1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생명은 그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대 사장을 지낸 이호씨는 20대,31대 내무부장관과 8대,20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63년 삼성으로 넘어 오면서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이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사위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상희씨는 71∼78년 회장을 지냈고 김만제 전 포철회장도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91∼92년 회장을 맡았다. ●사돈과 사위가 맹활약한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1951년 3월 경남 함안 출신의 구진현씨가 세운 재단법인 ‘훈세사(勳世社)’에서 출발한 안보화재와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이 초대사장을 지낸 안국화재가 전신이다. 안보화재와 안국화재는 63년 합병으로 한 회사로 태어났고 93년 말 삼성화재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화재의 사사에는 유난히 ‘인척’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맹희씨의 장인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는 삼성에 인수된 직후인 61년 안국화재 사장을 맡은 뒤 운명(76년)하기까지 사장을 지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손영기씨의 아들인 손경식 CJ 회장은 93년 7월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경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의 4녀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씨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종기씨 역시 2000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성화재를 국내 대표 손보회사로 키워놨다. 안국화재 지분이 많던 이맹희씨도 65∼67년 임원을 지냈고 부인 손복남씨도 85∼93년 상무로 일했다. 삼성화재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은 200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고 조용철 CJ홈쇼핑 사장도 99년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종익 전 손보협회 회장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경영으로 이끈 이학수와 이수창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것은 94년 12월∼96년 8월로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삼성화재의 ‘경영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현재의 고도수익을 낳는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본부장은 94년 초 제일제당 대표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삼성화재 CEO로 부임하자마자 17%였던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삼성화재 임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주저했지만 “삼성이 명색이 ‘영남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4위, 부산에선 3위, 경북은 7위라는게 말이나 되느냐? 전부 1위로 끌어 올리자.”는 이 본부장의 격려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94년 17.6%였던 삼성화재의 점유율은 96년 23.6%로 급등,2,3위와의 격차를 10%이상 벌렸고 2001년 대망의 ‘3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자동차보험의 공격적인 확대, 설계사 수당 100% 인상, 품질보증제 시행 등 ‘신경영’을 도입하며 삼성생명에 비해 뒤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위상과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구단 창설,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 본부장, 배정충 현 삼성생명 사장의 뒤를 이어 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수창(56) 사장의 경영성적도 눈부시다.99년 26.9%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 올리며 2,3위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2003년,2004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매월 마지막주에는 영업점과 보상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에 철저한 이 사장은 2002년 업계 최초로 ‘삼성애니카’라는 브랜드 경영을 도입했고 2001년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은행의 손해보험업 진출이 예정된 올해는 향후 10년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기”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이 사장은 독특한 전공(서울대 수의학과)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경영인으로 성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카드의 ‘불씨’ 삼성의 금융사업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분야는 신용카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도 1조 2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46%), 삼성생명(34.5%), 삼성전기(4.7%), 삼성물산(3.1%)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만큼 증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삼성카드의 적자로 인한 지분법 평가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02년 “신용카드가 신용사회 저변확대에 기여했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카드사태는 현실화됐다. 유석렬(55) 사장은 신용카드 부실이 불거진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아 그동안 삼성캐피털과의 합병, 유상증자, 해외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74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유 사장은 입사직후 회사의 권유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드문’ 케이스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근무를 거쳐 91년부터는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다. 미국법인 관리부장 시절 동료가 최광해 현 구조본 재무팀장이다.97년 삼성캐피털 대표이사로 CEO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으로 변신중인 삼성증권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삼성증권은 98년 수익증권 판매고 최단기간내 10조원 돌파 등 짧은기간에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일찍부터 ‘약정경쟁’을 지양하고 자산관리형 영업으로 변신을 시도, 현재 투신수탁고가 20조원에 달해 자산관리부문에서 은행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지분 매각 작업에 공동주간사로 참여하는 등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부문에서도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된 황영기 전 사장에 이어 지난해 5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한 배호원(54)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대표적인 자산운용 및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배 사장은 경남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7년 제일합섬 경리과를 시작으로 비서실 재무팀 부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 삼성생명 자산·법인부문 총괄 사장 등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금융전문가답게 깔끔한 이미지지만 직원들과 ‘해장국 미팅’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갖고 있다. ●벤처투자, 투신운용, 선물 등으로 확장되는 금융사업 삼성은 삼성물산의 벤처사업팀을 확대,99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설립했다.2003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상기(55)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생명, 삼성증권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익증권 22조 2000억원, 뮤추얼펀드 1000억원, 투자자문 38조 1000억원 등 60조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삼성투자신탁운용은 2003년부터 삼성화재 부사장을 역임한 황태선(57) 사장이 맡고 있다. 경북 상주생으로 김천 성의종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물 관련 제품의 판매·컨설팅,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삼성선물은 지난해 3월부터 정주영(57) 사장이 맡고 있다. 정 사장 역시 황 사장의 고향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리테일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의 금융비화 삼성은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거의 모든 회사를 손수 일궜지만 오늘날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업은 대부분 인수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수한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이 직접 설립한 금융관계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재계에서는 곧바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자동차의 주 채권은행인데 삼성에서 잘 나가던 황 사장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때 시중은행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1금융권 진입을 노렸던 삼성인지라 의혹의 눈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고 이병철 회장은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시중은행 주식 공매에 참가해 12억 9000만환에 흥업은행(구 한일은행) 주식 83%를 소유하게 됐다. 이어 조흥은행주 55%를 매입했다. 흥업은행 신탁부에서 상업은행주 33%를 갖고 있었으므로 삼성은 당시 4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던 것이다. 황영기 회장이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친 것이므로 삼성과 우리은행의 인연이 질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삼성이 소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은 정부 소유로 돌아갔다. 삼성으로서는 한국비료(한비)와 대구대·은행을 박정희 정권에 뺏긴 셈이다. 하지만 삼성과 금융사업의 인연은 58년 안국화재 인수로 재개된 뒤 63년 동방생명 인수로 본격화된다. 금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은 63년 봄 동방생명 임원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회고했다.5월22일 당시 동방생명 임원 대부분의 주식이 먼저 삼성으로 넘어왔고 강의수 회장의 유족들도 7월16일 지분을 넘겼다. 강 회장의 유족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부인 강지연 여사다. 삼성과 민노당의 ‘악연’도 역사가 긴 셈이다. 삼성은 92년 11월 배현규씨 등 국제증권 대주주로부터 영업권을 양도받아 삼성증권을 탄생시켰다.96년에는 국제선물(현 삼성선물)을,98년에는 동양투신(현 삼성투신운용)을 인수했다. 반면 88년 설립한 삼성카드는 현재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전락했고 95년 설립한 삼성캐피탈도 부실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삼성카드와 합병해야 했다.99년 설립한 삼성벤처투자도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ukelvin@seoul.co.kr ■ 생명·화재 역대 대표이사 ●삼성생명 강의수(57.4∼62,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인) 이 호(∼63, 전 내무부·법무부 장관) 조우동(∼69, 전 삼성중공업 회장) 이겸재(∼71) 원종훈(∼78) 고상겸(∼83) 배상욱(∼84, 전 체신부 장관) 박태원(∼85) 이수빈(∼91) 황학수(∼95, 전 삼성카드 부회장) 이수빈(∼99, 현 삼성사회봉사단장) 배정충(∼현재) ●삼성화재 손영기(∼76, 이맹희씨 장인) 손경식(∼93, 현 CJ회장) 이종기(∼2000, 이병철 회장 넷째 사위) 강경수(∼93) 홍종만(∼94, 전 삼성자동차·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이중구(∼94, 현 삼성테크윈 사장) 이학수(94∼96,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98, 현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현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대기업 주총 올해도 뜨겁다

    ‘올 정기주총의 기업별 관전포인트는 뭘까.’ 주총장 ‘논란거리’에 대비한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주총에서 최대 관심을 끄는 기업은 SK㈜.2년 연속 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과 한판 승부가 예고돼 있다. 최근 소버린측이 주주제안을 SK㈜ 이사측에 요청할 정도로 힘의 ‘균형추’가 SK㈜에 넘어갔지만, 최태원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놓고 양측의 뜨거운 표대결이 점쳐진다.SK㈜측은 지난달 28일 현재 계열사와 최 회장 등 특수 관계인을 포함해 15.62%의 지분을 확보, 소버린(14.97%)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반면 외국인 주주는 소버린 14.97%와 웰링턴 6.28%, 캐피털그룹의 캐피털리서치 앤매니지먼트(CRMC) 4.93%, 템플턴 4% 등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달 28일 열리는 삼성전자 주총도 참여연대와의 ‘악연’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지난해 ‘순이익 100억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만큼 경영성과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 28일 1조 2000억원의 증자결의를 한 삼성카드에 대한 추가 지원문제 등이 주요 현안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싱가포르, 홍콩, 영국, 미국 등에서 기업설명회를 열고 지난해 실적과 올해 경영계획 등을 설명하는 등 주총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3월초 주총을 열 예정인 LG전자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려 큰 쟁점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LG전자를 비롯해 LG카드 채권을 보유한 LG그룹 및 GS그룹 관계사의 주총에서는 LG카드 증자 참여 결정을 두고 회사측과 주주들간에 공방이 오갈 가능성이 높다. 한화도 오는 3월말로 예정된 주총에서 최근 검찰의 대한생명 인수 로비의혹 수사와 관련한 주주들의 책임추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golders@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16개월만에 앙갚음

    우리은행과 삼성생명과 질긴 악연은 2003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은행이 여름리그 챔프전에서 삼성생명을 꺾고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뒤 16개월여 동안 단 한번도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2004겨울리그에서 6전전패로 맥없이 무너진 데 이어 올시즌 첫 대결에서도 73-75로 무릎을 꿇은 것. 이렇게 삼성생명만 만나면 작아졌던 우리은행이 7전8기만에 설욕을 하고 2라운드를 공동선두로 마감했다. 우리은행은 26일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린 2005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이종애(21점 11리바운드)-김계령(16점 18리바운드) ‘트윈타워’의 활약으로 삼성생명을 76-65로 꺾었다. 이전 2경기에서 16점,19점의 대패를 당한 탓에 이기겠다는 마음이 지나쳤는지 턴오버를 거듭하면서도 간신히 앞서던 우리은행 승리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삼성생명의 용병센터 애드리언 윌리엄스가 1쿼터 2분을 남기고 발목부상으로 실려나간 것. 일방적인 리바운드의 우위와 이종애의 확률높은 골밑 공격으로 15점까지 앞섰던 우리은행은 변연하(24점·3점슛 4개)와 박정은(17점·3점슛 4개)에게 3점포를 허용해 4쿼터 3분여를 남기고 5점차까지 쫓겼지만, 김계령의 연속득점으로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춘천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금연하실 분 보건소로 오세요

    금연하실 분 보건소로 오세요

    직장인 이상욱(41·서울 방이동)씨는 ‘상습금연자’다. 십수년 전부터 새해 계획에 금연이 빠진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서너달을 못 가 ‘악마의 유혹’에 굴복하곤 했다. 금연 도구도 소용 없었다. 가족들의 따가운 눈길을 피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내뿜는 일상이 계속됐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오는 3월부터 구청 보건소에서 금연클리닉을 연다는 ‘희망의 소식’을 접했다. 이씨는 “고 1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애인’을 떠나보내는 게 조금 아쉽지만 아빠가 금연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외동딸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담당의사 배치… 보조제 제공·약물치료 금연클리닉 사업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주관하는 ‘담배와의 전쟁’. 전국 246개 모든 보건소에서 시행된다. 전체 예산만 건강증진기금과 지자체 예산 등 230억여원이 소요되는 국가적 사업이다. 정부 차원의 금연클리닉을 실시하는 것은 영국에 이어 전세계적으로 두번째다. 대상 인원은 전체 흡연 인구의 1%인 10만명. 서울시내 25개 보건소는 모두 2만 3000여명을 금연클리닉에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금연클리닉에는 금연상담사 2명과 금연 담당 의사 1명이 배치된다. 이들은 6개월 동안 흡연자들을 상담하는 것은 물론 약물 공급과 금연 체크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금연클리닉 등록자는 첫 방문 때 니코틴 의존도 평가, 복부 둘레 측정 등을 받는다. 특히 니코틴, 타르와 함께 담배에 들어 있는 유해물질인 일산화탄소가 결합된 적혈구의 비율을 측정하는 일산화탄소 농도 측정을 통해 담배로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게 된다. 이후 상담사와 함께 맞춤형 금연 프로그램을 짜게 된다. 금연일을 정한 등록자는 금연클리닉을 방문할 때마다 금연 껌과 몸에 붙이는 금연보조제(금연 패치) 등을 제공받는다. ●도심에 이동클리닉도 운영돼 심각한 ‘골초’ 들에게는 금연 담당 의사가 금단 증상을 덜어주는 부프로피온 등의 약물이 처방된다. 실제로 담배를 끊었는지 알 수 있는 일산화탄소 검사도 정기적으로 실시, 어느 정도 금연의 의무감도 부여한다. 모두 6주 동안 방문 상담과 약물 치료가 병행되고, 금연에 성공하면 기념품도 나눠주기로 했다.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광화문이나 강남 등 도심에서 이동클리닉도 운영된다. 전화, 이메일 뿐 아니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흡연자는 2월 한달동안 해당 보건소에 신청하면 된다. 치료비는 물론 금연껌이나 패치 등 모든 의약품도 무료다. 소득 및 연령에 관계 없이 등록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평균 금연율 30% 넘어 금연클리닉은 몇년 전부터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흡연율이 높은 저소득층은 의료비 부담 때문에 참여를 꺼려 사회적인 효과는 미미한 편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성북구, 부산 부산진구, 전남 해남군 등 전국 10개 보건소를 대상으로 금연클리닉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모두 780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금연율은 6개월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은 흡연자의 비율을 뜻한다. 시범사업 참여자의 평균 금연율은 3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성북구 보건소 관계자는 “당초 등록한 140명 가운데 122명이 두 달 넘게 프로그램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귀띔했다. 금연 사업은 강북구보건소 등 지금까지 대부분의 보건소에서도 운영돼 왔다. 여기에 체계적인 상담과 치료가 가능한 금연클리닉은 금연 사업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복지여성국 건강도시추진반 이조영 주임은 “지속적인 금연클리닉의 운영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인 57.6%의 성인 남성 흡연율뿐 아니라 급증하는 청소년 흡연율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잘못된 상식·나홀로 금연법 ‘금연하면 살이 찌니까 건강에 더 해로운 게 아닐까….’ 금연을 시작하면서 흔히 하게 되는 고민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오.’다. 이런 잘못된 상식 탓에 쉽사리 포기하기 일쑤다. 금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지만큼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흡연자가 담배를 끊은 뒤 체중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금연 이후 남자는 평균 2.8㎏, 여자는 3.8㎏ 정도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욕이 느는 게 주 원인. 그러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체중 증가를 줄일 수 있다. 또 흡연은 복부비만을 유발, 몸매뿐 아니라 건강에도 직격탄을 날린다.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체중이 20㎏ 증가하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 또 다른 오해는 담배를 줄이거나 순한 담배를 피우면 낫다는 것. 그러나 몸에서 흡수하는 니코틴과 타르의 양은 별 차이가 없다. 신체는 물질들을 일정하게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무의식적으로 연기를 더 깊게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말이다. 담배를 50년 이상 피워도 건강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 삼는 흡연자들도 있다. 물론 사실이다. 다만 이들은 흡연에 의한 합병증으로 조기에 사망할 확률인 3분의1에 속해 있지 않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흡연자들은 6발이 들어가는 권총에 2발의 실탄을 넣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연으로 인한 과민 증세도 길어야 1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도 금연자의 화를 일시적으로나마 받아줄 아량이 필요하다. 혼자 할 수 있는 금연법도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연 껌과 금연 패치 등을 활용하는 것. 각종 통계에 따르면 의지만 갖고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5% 미만이지만 보조제를 사용하면 35% 가까이 높아진다. 또 원래 항우울제로 쓰이는 부프로피온 등 약물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단 금연을 하려면 시작 일주일 전부터 금연 이유와 흡연 습관을 분석한 뒤, 주위에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 시작 뒤에는 금연 이유를 적은 메모를 틈틈이 들여다보자. 식후 양치질과 흡연 장소를 피하는 것은 기본. 금단증상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때는 일주일 직전. 금연 패치를 항상 붙이고 있으면 금단증상이 덜해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들의 조언이다. 금연 2주일에 들어서면 금단증상의 고비는 넘기게 된다. 그렇다고 술자리에 참석하는 등 일부러 자신을 지나치게 시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한 달을 넘기면 안정권에 들어서게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보건소 맞춤형클리닉 덕분 53년만에 담배 끊기에 성공 “몸에 암세포가 생겨도 담배를 끊을 수 없더라고요. 우연히 금연클리닉을 접해 50여년의 ‘악연’을 끊을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죠.” 함택영(74·서울 돈암동)씨는 요즘 몸이 가뿐하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밥맛도 다시 돌아왔다. 가래도 더 이상 끓지 않는다.21살부터 곁에서 떼놓지 못했던 담배를 성북구 금연클리닉을 통해 53년만에야 끊은 덕분이다. 함씨는 반세기 동안 매일 한 갑 이상씩 피웠다. 술도 적잖이 마셨다. 그러자 60줄에 들어서자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간경화에 이어 5년 전에는 간암 초기 판정까지 받았다. 그런데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의사가 ‘담배를 안 끊으면 죽는다.’고 했지요.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안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어떻게 합니까. 담배가 없으면 못 살겠는 걸.” 함씨에게 희망의 햇살이 비친 것은 지난해 10월. 성북구 보건소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갔다가 혹시나 싶어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상담사들의 권유에 따라 함씨는 11월부터 담배와의 ‘마지막 승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위기는 금연일 일주일 이후에 찾아왔다. 무의식 중에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하루에도 서너 차례 했다. 담배 피우는 꿈을 꾸다가 깬 뒤 입맛을 다신 적도 있었다. 사실 함씨는 그동안 금연을 10여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니코틴의 마수(魔手)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금연침 등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클리닉의 체계적인 상담과 금연 도구가 큰 힘이 됐다. 무료로 받은 금연 껌과 패치가 신기하게도 금단 증상을 싹 없애줬다.3주째가 되자 끽연욕과 금단현상도 함께 사라졌다. 함씨는 결국 3개월 동안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요즘은 담배 연기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함씨는 “담배는 자신에게 백해무익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건강도 해친다.”면서 “요즘은 아들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담배 끊기를 권하는 ‘금연 전도사’가 됐다.”고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故이수현 기려 한·일 공동 ‘의인재단’ 내년 설립

    故이수현 기려 한·일 공동 ‘의인재단’ 내년 설립

    2001년 1월26일 일본 도쿄 지하철 선로에 몸을 날려 일본인을 구한 고(故) 이수현(李秀賢·당시 26세)씨를 기리는‘의인(義人)재단’이 세워진다. 또 4주기를 앞두고 한·일 양국에서 ‘의인 이수현’에 대한 추모 열기 및 재조명 움직임이 분주하다. ●기금 30억 ‘의로운 희생’ 시상 내년 1월11일 한·일 양국의 각계인사 30여명으로 구성된 ‘이수현의인재단설립위원회’가 공식 발족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고려대학교 홍일식 전 총장, 연극인 손숙씨 등이 참여한다. 위원회 실무자들은 지난 10일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준비모임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확정했다. 의인재단은 기금 30억원을 모아 2006년부터 ‘우정상’,‘평화상’,‘의인상’ 등을 제정·시상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나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사건에서 희생된 소방관처럼 휴머니즘 정신을 구현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또 한·일 민간교류를 지원하고 의인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 의인 유가족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유학생 및 관광객을 위한 자료도 제공한다. 재단 설립 실무총괄 노치환(盧治煥·코리아투데이 서울지국장)씨는 “이씨의 희생은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한·일 양국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데 기여했다.”며 “의인재단 설립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이루는 데 이바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년 1월 日서 4주기 추모행사 4주기 추모행사는 내년 1월26일 일본 도쿄 신주쿠 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씨가 한국과 일본의 다리역할을 했다는 의미에서 행사의 이름을 ‘가교(架橋)’라고 붙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양가 부모의 반대로 혼인신고만 한 뒤 9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김유진(41·여·국악연주자)씨와 다케다 이사오(46·전직 경찰)의 결혼식이 치러진다. 다케다는 99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됐지만 김씨의 간호로 목발을 짚고 일어설 정도로 나아졌다. 또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와 국악가수 장사익씨 등의 공연도 곁들여진다. ●“봉사 안 하면 아들에게 죄” 이씨의 아버지 이성대(李盛大·65)씨와 어머니 신윤찬(辛潤贊·56)씨도 아들에 대한 가슴저린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있다. 어머니 신씨는 매주 수요일이면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 세워진 이수현추모비 앞에서 배고픈 노인 150여명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한다. 신씨는 “우리 수현이가 남을 살리려고 목숨을 버렸는데, 내가 남에게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 수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씨도 일본어 어학연수생을 지원하는 ‘LSH(이수현)아시아장학회’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등 올해만 7차례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인들이 낸 조의금 1억여원으로 만들어진 장학회는 그동안 3차례에 걸쳐 177명의 한국·중국·동남아시아 연수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아직도 서로를 ‘수현 아빠’,‘수현 엄마’라고 부르는 이씨 부부는 “부산 시립공원내 아들 묘지를 찾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 아직도 아들을 기억하는 게 고맙기만 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KTF, 라이벌전서 웃다

    지난 시즌 3승3패에 이어 올시즌 1승1패. 만날 때마다 한 치의 양보 없는 ‘혈투’를 벌이는 라이벌 대결에서 KTF가 웃었다. KTF는 10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04∼05시즌 프로농구 3라운드 첫 경기에서 현주엽(14점 8어시스트)-게이브 미나케(21점)-애런 맥기(24점 11리바운드) ‘삼각편대’의 고른 활약으로 SBS를 81-72로 누르고, 선두 TG삼보에 반 경기차로 다가섰다. 두팀은 지난달 26일 부산 경기서 KTF 미나케가 반칙을 한 양희승(SBS)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집단 폭력사태로 번질 뻔했던 악연이 있다. 아직 감정의 앙금이 남았던 것일까.SBS가 36-23으로 멀찍이 앞서던 2쿼터 초반. 골밑을 노리던 미나케를 김성철(14점·SBS)이 거칠게 막자, 흥분한 미나케가 팔꿈치로 받아치면서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됐다. 격분한 추일승 KTF 감독은 양복 상의를 벗어젖히면서 강력하게 항의했고, 이에 자극받은 선수들은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숨가쁜 추격전을 전개했다.KTF가 15점을 쏟아붓는 동안 SBS는 단 1점도 올리지 못했다. 3쿼터에서 역전과 재역전을 주고받은 두 팀은 57-57, 원점에서 4쿼터를 시작했다.SBS는 이정석과 은희석의 3점포로 도망가려 했지만,KTF는 미나케와 이홍수의 3점포로 응수했다. 종료 3분전 현주엽과 미나케의 3점슛이 연달아 림을 가르면서, 승부는 KTF로 기울었다. 안양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지도자 변신 고민하는 ‘셔틀 퀸’ 나경민

    [스포츠 라운지] 지도자 변신 고민하는 ‘셔틀 퀸’ 나경민

    최근 한국체대 배드민턴체육관에서 ‘셔틀 퀸’ 나경민(28·대교눈높이)을 만났다. 모처럼 환히 웃는 모습이 낯설기조차 했다. 지난 8월 아테네올림픽 혼합복식 8강 탈락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아직도 풀죽어 지낼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올림픽을 마치고 2주간 휴식을 가졌습니다.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 맛보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습니다.” 나경민은 오랜만에 여행 등으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전국체전 등 부담없이 국내 대회에 출전하며 그동안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고 말한다. 요즘 눈높이슈퍼시리즈대회를 앞두고 어린 후배들과 운동에만 열중하고 있다. 잠시 라켓을 내려놓은 그는 아테네올림픽이 생애 가장 아픈 대회로 기억될 것이라며 한많은 올림픽의 악연을 조심스럽게 떠올렸다. ●고1때 최연소 태극마크 초등학교 4학년때 라켓을 처음 쥔 나경민은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내며 ‘제2의 방수현’으로 부상했다. 고교 1학년때 최연소로 태극마크도 달았다.1996년 한체대 2학년의 어린 나이에 당시 교수였던 ‘셔틀콕 황제’ 박주봉(현 일본대표팀 감독)과 애틀랜타올림픽 혼복에 출전하는 행운을 잡았고, 무난한 우승이 점쳐졌다. 하지만 결승에서 ‘태극 형제’인 김동문-길영아조에 뜻밖의 일격을 당해 은메달에 그쳤다. 올림픽과의 그의 악연이 여기서 시작되는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나경민은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에서 쓰라린 아픔을 줬던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김동문과 짝을 이뤄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중국의 장준-가오링조에 어이없이 무너져 또한번 충격에 빠진다. ●올림픽 3회 출전 ‘노 골드’ 악연 그리고 다시 4년 뒤 아테네. 나경민은 ‘올림픽 금’ 한풀이의 마지막이자 최상의 기회를 맞았다. 김동문과 8년째 호흡을 맞춘 데다 2003년부터 아테네대회 전까지 무려 14개 대회 연속 우승과 국제대회 70연승의 신화를 일궈내 김-나조의 금은 ‘기정사실화’됐었다. 나경민은 시드니에서 ‘확실한 금’이라고 부추기는 언론과 주위의 중압감에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오로지 운동에만 몰입했다. 물론 그 어느때보다 우승에 대한 자신감은 넘쳤다. 하지만 8강에서 그동안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덴마크조에 져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올림픽 3차례에 출전해 항상 강력한 금 후보였지만 ‘노 골드’로 올림픽을 마감한 것. 그리고 3개월후 나경민은 또다른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도자로 변신할 것인지의 중대 갈림길에 섰다. 우선 소속팀인 대교눈높이는 내년부터 ‘큰 언니’인 나경민을 선수 겸 트레이너로 승격시킬 예정이다. 게다가 대표팀에서는 선수든, 코치든 무엇을 선택하든지 내년 대표팀에 복귀할 것을 요청했다. 나경민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막상 다시 시작하려니 혹독한 훈련과 주위의 기대가 겁이 난다.”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도 “여전히 세계 최강인 나경민을 대표선수로 기용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선뜻 그에게 선수 복귀를 종용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나경민은 “이제는 운동을 즐기고 싶다.”면서 “그러나 일단 선수로 대표팀에 들어가면 목표 의식을 가지고 매진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연말까지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덧붙였다. ●“자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내 없나요” 나경민의 또다른 고민은 결혼.20년가까이 선수 생활만 해오다 보니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한숨 돌리면서 내년에 30살 노처녀가 된다는 사실에 자신도 움찔했단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옆에서 더 몸달아하시는 게 안타깝단다. 평생 치마 한번 입어보지 못했다는 수줍음 많은 나경민이 뜻밖에 신랑감 자격을 공개했다.“자상하고도 카리스마 넘치는 사내, 어디 없나요.” 글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북한지역의 한국음악’ 학술대회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와 한국음악과는 6일 오전 9시30분 이화·SK텔레콤관 컨벤션홀에서 ‘연변과 북한지역 한국음악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한국음악과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북한의 민요연구 동향’‘연변과 북한의 민요 비교 연구’‘음반으로 전하는 정남희 가야금 산조 연구’‘북한 개량 악기에 대한 고찰’ 등을 발표하고 토론한다.(02)3277-2969.
  • [삶과 경영 이야기] (31) 등산용품 31년 외길 강태선 동진레저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1) 등산용품 31년 외길 강태선 동진레저 사장

    동진레저의 강태선(55)사장은 산을 오르면서 난관에 부딪힌 경영의 해법을 찾는다. 대기업과 수입 브랜드의 거센 공세에도 쉼없이 30년 외길을 걸어 국내 등산용품 전문기업의 최고봉에 올랐다. 경영자로서보다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高峯)을 5곳 정복한 산악인이라는 점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좌절과 기사회생의 반복 강 사장은 제주도 서귀포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농사도 제대로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문관광단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집에서 8㎞나 떨어진 초등학교를 가려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천지연 폭포를 지난다. 그는 “하루 2시간씩 등하굣길을 뛰고 달리며 친구들과 멱을 감는 게 하루 일과였다.”고 소개했다. 한라산도 수없이 오르내렸다.“나이가 들어서도 거뜬히 산을 오르는 것은 이때 다져진 체력 덕분”이라며 웃는다. 대학을 나와 은행에 취직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일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대신 그를 잡아끈 것은 주말마다 빼놓지 않았던 산행이었다.20대 중반이던 1973년 서울 종로에 2평짜리 배낭 공장을 차렸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만 5000원. 직원이래야 미싱사 한명과 자신뿐이었다. 당시에 등산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고, 대학산악부의 활동이 전부였다. 코펠, 텐트, 배낭 등 등산장비라는 게 중고 군용품을 수리해서 쓰는 수준이었다. 이를 파는 곳도 전국 20곳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잘 살게 되면 건강을 위해 등산을 즐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년만에 보기 좋게 망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 기술이 없고 장사에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 군용 배낭을 본떠 면 배낭을 만들었다. 면이 최악의 배낭 소재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재질이 약한데다 등에 흐르는 땀을 그대로 흡수해 버려 무겁고, 등산객의 체온을 빼앗기 때문이다. 또 ‘초짜’를 알아본 상인들이 그의 배낭을 납품받고도 물건값을 떼먹기 일쑤였다. 공장을 이웃으로 옮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그는 “등산용품을 만들려면 등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고, 마음을 읽으려면 내 자신이 직접 산을 올라야 했다.”고 말했다. 낮에는 물건을 만들어 팔고 밤이나 주말에는 산에 올랐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산에 오르다 보니 과로로 병이 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루에 두개의 산을 연이어 오른 적도 있다.‘등산객에게 가장 필요하고 편안한 물건이 무엇일까.’만 골똘히 생각했다. 시제품을 주변에 돌려 의견을 구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후반부터 대한산악연맹을 중심으로 마나슬루(해발 8164m) 등 해외원정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도 78년 ‘거봉산악회’를 결성하고 엄홍길(산악인) 등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강 사장이 질 좋은 장비를 만들자고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80년대에 들어서 야간통행금지도 해제됐다. 장거리 등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등산용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강 사장은 “전국의 산을 누비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 산에 가면 이 장비가 필요하고, 저 산에 가면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요령이 쌓였고 이는 단골 고객들에게 중요한 산악 정보가 되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등반훈련을 시작했다.83년 몽블랑(4807m)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다 1991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조치를 발표했다. 산에서 취사 및 야영을 금지한 것. 그때까지 사람들이 산에 가는 이유는 맑은 공기를 쐬며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좀 마시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업계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았다. ●산에도 패션이 있다 회사 규모를 줄인 뒤 괴로움 때문에 해외 원정에 더욱 몰두했다.93년 8월 엄홍길 등을 데리고 티베트의 초오유봉(8201m)과 네팔의 시샤팡마봉(8027m) 등정에 원정대장으로 나섰다. 강 사장은 “산을 오를 때 반드시 정복하겠다고 해서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한발한발에 힘을 주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그동안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상을 전환했다고 한다.‘상품군을 바꾸자.’‘의류로 가자.’‘산에 패션이 있다.’ 등산복에 눈을 돌렸다.96년 국내 고유 브랜드인 ‘블랙야크’는 이렇게 탄생했다. 가볍고 공기가 잘 통하는 ‘고아텍스’ 소재를 등산복에 적용, 특허도 받았다. 그때까지 등산복은 청바지나 운동복이 고작이었다. 외국 유명기업의 브랜드도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 우리나라 등산복의 역사는 10년도 채 안 된 셈이다. 시장 판도가 급격히 정리되면서 블랙야크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98년 1월 중국 베이징에 직영 1호점을 개설했다. 브랜드는 ‘풍우설(風雨雪)’. 강 사장은 94년 산악연맹 부회장을 맡고 중국 등산협회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중국 사정에 익숙해졌다. 중국에는 히말라야 등정을 위한 외국인 원정대가 모여들어 전문 장비에 대한 요구가 어느 곳보다 큰 곳이다. 순식간에 직영·대리점이 19곳으로 늘었다.98년 10월에는 돈을 빌려 경기도 곤지암에 대규모의 등산의류·용품 물류센터도 지었다. 그런데 그만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회사 전체가 휘청거렸다. 그는 “두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이력이 붙었는지 곧 안정을 유지했다.”고 회고했다. 간신히 한숨을 돌려 2000년대를 맞자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이 산을 더 찾게 만들었다. 특수 소재에 대한 관심도 일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가정주부들의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현재 등산복의 55%는 주부들을 겨냥한 제품”이라면서 “그만큼 주부들은 멋과 기능성만 갖추면 기꺼이 돈을 쓴다.”고 설명했다. ●산에서 배운다 “산이 왜 좋은가.”라고 묻자 강 사장은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훤히 트여 매력적”이라고 대답했다. 산에 대한 말이 나오면 그는 얼굴까지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웅장하고 장점이 많은 산은 역시 설악산”이라고 말했다.‘악(嶽)’산이 다 그렇지만 작은 위험도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그는 “산을 우습게 여기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고 충고했다. 귀찮아도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행에 나서라고 덧붙였다. 지난 84년 4월 북한산 등정에 나선 대학생들이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과 우박을 맞고 집단 동상을 입은 적이 있다.“초봄에 동상이 웬말이냐 하겠지만 날씨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71년엔 설악산에서 훈련중이던 등반팀은 눈사태를 당했다. 강 사장은 “서울 근교의 산에 가도 배낭에는 오리털 파커, 비옷, 보온병에 따뜻한 물 등을 꼭 갖고 다닌다.”면서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산에서 청하는 낮잠이 피로회복제”라고 권했다. 사람은 잠을 잘 때 눈 떠 있을 때보다 5배의 산소가 더 필요한데, 오전에 1∼2시간 산행을 한 뒤 가벼운 도시락을 먹고, 신문지에 싸서 들고온 차가운 캔 맥주를 마신 뒤 바위 등에서 1시간 정도 잠을 자면 일주일의 피로가 다 풀린다는 것이다. ●국산 브랜드로 대기업의 수입 브랜드에 맞선다 고유 브랜드 ‘블랙야크’의 야크는 티베트 등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작은 덩치의 검은 소다. 겉모습은 어리숙해 보이나 60㎏ 이상의 짐을 지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자유자재로 다니는 강인한 동물이다. 고산족들에게 살아서는 운송을 도맡고 죽어서는 고기, 우유를 제공한다. 긴털은 로프로 쓰인다. 히말라야 원정대에게도 믿음직스러운 짐꾼이다.93년 시샤팡마 원정때 눈병을 앓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추락한 작은 야크 한마리가 강 사장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브랜드로 삼았다. 온순하면서 주변 환경에는 강인한 야크를 본뜬 블랙야크를 강한 토종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강 사장은 대기업들의 태도에 불만이 크다.70년대 후반 해외원정 붐을 타고 국내에도 등산열기가 일자 선경, 삼성, 대우,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등산용품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등산용품에는 전문성을 키우지 못하고 2년만에 코오롱만 남고 나머지는 손을 들고 말았다. 그뒤 20년후인 90년대말에도 등산의류가 새로운 패션시장으로 등장하자 대기업들이 또 앞다퉈 수입브랜드를 도입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강태선 사장은 동진레저의 강태선(姜太善) 사장은 거의 맨몸으로 등산용품 생산에 뛰어든 지 31년만에 국내 최고의 토종기업을 키워냈다. 등산의류 브랜드 ‘블랙야크’를 비롯한 150여종의 등산용품을 생산, 연간 매출 800억원을 올리고 있다. 그의 경영철학에는 곳곳에 산이 묻어 있다. 좌절의 벽이 높을 때마다 산에 올라 기업경영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등반가 엄홍길 등과 함께 초오유, 시샤팡마, 안나푸르나, 캉첸중가,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高峯) 5곳을 등정했다.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 19곳의 직영·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으나, 앞으로 지구촌 곳곳에 한국인의 발길과 함께 국산 토종 등산용품 브랜드가 퍼지길 바라고 있다.
  •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보스턴 ‘밤비노의 저주’ 84년만에 풀리나

    84년간 보스턴을 짓눌러온 ‘밤비노의 저주’가 마침내 풀리는가. 보스턴 레드삭스가 3연패 뒤 4연승의 기적을 연출하며 앙숙 ‘양키 제국’을 무너뜨렸다. 지난 1986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4승3패로 누른 이후 18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보스턴은 이로써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은 ‘밤비노의 악령’을 완전히 떨쳐 버릴 천금의 기회를 잡았다. 포스트시즌에서 3연패 뒤 4연승한 것은 프로야구에서는 사상 처음이며, 미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프로풋볼리그(NFL) 등 미국 4대 메이저 종목을 통틀어서는 세 번째다. 21일 뉴욕에서 벌어진 미국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십시리즈(7전4선승제) 마지막 7차전. 팬들의 관심은 온통 보스턴이 과연 대역전극을 펼칠 것인가에 쏠렸다. 1회 좌전안타에 이어 2루를 훔친 선두타자 조니 데이먼이 매니 라미레스의 안타때 홈까지 파고들다 아웃돼 또다시 저주를 떠올렸지만 ‘빅 파피’ 데이비드 오티스가 상대 선발 케빈 브라운의 초구를 우월 2점포로 연결해 기선을 제압했다. 보스턴은 2회 ‘동굴맨’ 조니 데이먼이 구원 등판한 하비에르 바스케스로부터 1사 뒤 만루포를 뿜어낸 데 이어 4회 다시 2점포를 쏘아올려 8-1로 내달으며 승부를 갈랐다. 결국 10-3 낙승. 보스턴은 3승3패로 맞선 휴스턴 애스트로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내셔널리그(NL) 챔피언십시리즈 승자와 오는 24일부터 7전4선승제의 월드시리즈를 벌인다. 보스턴은 휴스턴과 세인트루이스에 강한 김병현을 전격 투입할 가능성도 있다. ●김병현 WS 전격 출전할 수도 보스턴과 양키스의 악연은 길고도 질기다. 보스턴 팬들은 ‘또 내년까지 기다려보자.’라는 말을 수십년 동안 해왔다. 지난 1918년 보스턴의 타자 겸 투수 베이브 루스(애칭 밤비노)는 홈런왕(11개)에 13승까지 올리며 시카고 컵스를 꺾고 팀에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다. 그 해가 보스턴 우승의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년 1월5일 보스턴의 구단주 해리 플레이지는 루스를 현금 12만 5000달러,30만달러 융자 조건에 솔깃해 양키스에 팔아버렸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루스는 그해 타율 .376에 54홈런,158타점의 가공할 기록을 세웠다. 이후 보스턴은 모두 네 차례(46·67·75·86년) 월드시리즈에 나섰지만 모두 7차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또 99년과 지난해 양키스와 AL 챔피언십에서 충돌했으나 모두 졌다.72~88년 시즌에서는 줄곧 지구 선두를 다투다 양키스에 밀려 세 차례밖에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보스턴 사람들은 이를 두고 ‘베이브 루스의 저주’라며 괴로워했다. 저주를 풀기 위한 ‘푸닥거리’도 처절했다.‘저주 쿠키’나 ‘저주 아이스크림’ 등은 애교 수준. 지난 2002년 2월에는 보스턴 근교 윌리스 연못에 빠진 루스의 피아노를 건져 다시 연주하면 저주가 풀릴 것이라며 ‘인양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스턴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완전히 풀려면 월드시리즈에서 86년 만의 우승을 일궈내야만 한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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