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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에베레스트…

    국내 산악인 두 명의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정상 등정 낭보가 전해진 16일 다른 산악인 두 명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낙석으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이날 박영석(44·골드윈 코리아)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새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캠프5(8300m)로 올라가던 중 낙석이 발생, 오희준(37·노스페이스) 부대장과 이현조(35) 대원 등이 이를 피하지 못해 숨졌다. 대원들은 곧바로 시신을 수습한 뒤 전진 베이스캠프(6400m)로 옮기고 있지만 루트가 험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정대는 전진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하산해 귀국길에 오를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에베레스트 초등 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말 원정 길에 올랐던 원정대는 캠프5까지 개척한 뒤 17일 1차 정상공격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이곳 남서벽은 정상까지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암벽이 2000m나 이어져 현재까지 개척된 등반 루트가 2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숨진 오씨는 히말라야 8000m급 10좌(座) 등정 기록을 가진 제주 출신의 베테랑 산악인으로 2003년 남극점과 2005년 북극점 등 지구 3극점을 밟아 앞으로 캉첸중가, 다울라기리, 마칼루, 낭가파르밧 등만 정복하면 14좌 완등으로 세계 두 번째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오씨의 원정 자금을 마련하려 모금운동을 벌인 제주도민들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미혼인 오씨를 잃은 친형 희삼(39)씨는 “며칠 전 베이스캠프에서 전화를 걸어와 다음 등반지인 낭가파르밧 등반 준비를 부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씨는 주말 직접 현지로 떠나겠다고 밝혔다. 이씨도 2005년 7월 세계 최고의 난벽인 파키스탄 낭가파르밧의 루팔벽 등정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이번 사고는 1977년 9월15일 고(故) 고상돈(당시 29세)씨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아 세계 8번째 등정국임을 알린 30주년 원정에서 발생한 비극이란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임병선 제주 황경근기자 bsnim@seoul.co.kr
  • 베어벡호 적색경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이 결국 설기현(28·레딩)마저 수술대에 오르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06∼07시즌을 4골 4어시스트로 마친 설기현이 그동안 통증을 참아왔던 오른쪽 발목 수술을 국내에서 받게 될 것 같다. 그의 에이전트사 지쎈은 15일 “아시안컵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에 박지성과 이영표 등 부상 선수가 많아 선뜻 결정하기 어렵지만, 예멘 원정에서 18일 돌아오는 핌 베어벡 감독과 의논해 수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설기현은 지난해 10월 시리아와 아시안컵 예선 직후 영국으로 돌아가 첼시전에 출장, 오른 발목에 통증을 느껴 팀 훈련에서 빠졌다.구단 의료진은 ‘오른 발목 뼈에 멍이 들고 인대도 손상된 것 같다.’고 진단했지만 그는 다음 아스널전 출전을 강행, 한동안 주전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구단도 석달 전 설기현에게 수술을 권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는 시즌이 끝난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미뤘다.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구상했던 설기현은 이에 따라 이달 말 귀국, 수술 일정을 잡게 된다. 설기현은 오른 무릎 연골재생술을 받은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왼쪽 무릎 인대를 수술한 이영표(30·토트넘)에 이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로는 세 번째로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지난 1월 미들즈브러로 이적한 이동국(28)을 제외하고 세 명 모두 수술대 악연에 빠져 7월 아시안컵 본선에 나서는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은 이들 삼총사 없이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나 지쎈측은 박지성과 이영표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서 설기현이 다음 시즌을 앞둔 팀 훈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천수 악연에 인천 또 눈물

    2005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과 맞닥뜨린 인천은 2차전에서 라돈치치의 연속골로 2-0 완승을 거두고도 창단 첫 우승의 꿈을 접고 말았다.1차전에서 이천수(26)에게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5 참패를 당한 탓이었다. 올 시즌, 이천수가 6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경기가 인천전이었고 징계가 풀린 이천수가 8개월 만에 골맛의 기쁨을 누린 것도 인천이 1-3으로 무릎을 꿇은 지난달 4일 경기에서다. 인천은 또다시 이천수와의 질긴 악연을 되씹어야 했다. 인천은 9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우젠컵 A조 8라운드 울산전에서 후반 이천수의 프리킥에 이은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로 0-1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5승3패(승점 15)가 된 인천은 울산(4승3무1패)과 승점을 나란히 했지만 골득실에서 ‘2’ 차이로 뒤져 조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전후반 내내 빗줄기가 휘날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인천 선수들은 울산과의 악연을 끊겠다는 각오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승부를 가른 것은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였다. 후반 22분 이천수가 프리킥으로 올려준 공을 잔뜩 긴장한 골키퍼 권찬수가 넘어지면서 쳐낸다는 것이 알미르에게 흘러갔고 알미르가 이를 침착하게 텅빈 골문에 집어넣었다. 인천은 최근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3골 1도움)로 기세를 올리던 ‘세르비아 폭격기’ 데얀이 몇 차례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멈춰선 것이 화근이었다. 반면 울산은 컵대회 5경기 연속 무실점에 무패(3승2무)의 신바람을 이어갔다. 대구의 루이지뉴는 제주전 후반 30분 에닝요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꽂아넣으며 2-0으로 팀 승리를 이끈 것은 물론,16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이어갔다. 컵대회에서도 7골로 득점 선두. B조에선 수원이 크로아티아 용병 마토의 페널티킥 골과 서동현의 추가골로 광주를 2-0으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4경기 연속 2골 차 승리를 내달린 수원은 3승2무3패(승점 11)로 이날 대전에 0-1로 진 부산을 끌어내리고 조 2위로 도약하며 1위 서울과의 승점 차를 6으로 좁혔다. 수원과 극명한 희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는 FC서울은 경남과 0-0으로 비겼지만 부산이 3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남은 두 경기에 관계없이 조 1,2위가 진출하는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그러나 4경기 무승(2무2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충격파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인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문화플러스] 안산시립국악단 10주년 기념음반

    안산시립국악단(상임지휘자 김재영)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콤팩트디스크 12개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기념음반을 펴냈다. 기념음반에는 ’국악동요모음집-고운 마음 맑은 노래’와 ‘국악뮤지컬 꼭두별초’를 비롯해 정기연주회와 실내악연주회 실황이 담겼다.
  • ‘오산학교’ 100돌

    ‘오산고 개교 100주년 사업회’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가 오는 15일 건학 100년을 맞아 남산걷기대회, 미술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는다고 6일 밝혔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오산 중·고등학교는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인 이승훈 선생이 1907년 구국인재 양성을 위해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리에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일제강점기에 교직원과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펼치는 등 민족학교로 맹활약했으며,6·25전쟁때 교직원·학생·졸업생이 월남하면서 부산 동대신동에 재건됐다가 1956년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게 됐다. 춘원 이광수, 고당 조만식, 단재 신채호, 횡보 염상섭 등이 교편을 잡았고, 시인 김소월과 백석, 종교인 주기철, 사상가 함석헌, 화가 이중섭 등이 이 학교를 나왔다. 오산중·고교는 7일 강원 원주시 센츄리21CC에서 ‘100주년기념 샷건 골프대회’를 개최하고,9∼15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산미술 100년전’,11일에는 요리마당, 농구경기 등을 펼치는 ‘남강제’,12일에는 ‘100주년기념 남산걷기대회’와 여의도 KBS홀 동문 관악연주회를 연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야구] SUN 5연패… 선발진이 무너졌다

    한국시리즈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삼성이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지키는 야구’를 표명한 선동열 감독은 선발진이 붕괴되면서 10승11패1무(7위)를 기록,2005년 팀을 이끈 이후 처음 승률이 4할대(.476)로 떨어지는 쓴맛을 봤다. 팀으로서는 2004년 5월28일(21승22패) 승률 .488을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반면 한화는 3연승의 휘파람을 불며 승률을 5할(10승10패1무)로 끌어올려 선두 SK에 3.5경기차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공동 2위에는 8개 팀 가운데 KIA, 롯데,LG까지 4개 팀이 올라 치열한 순위 경쟁이 예상된다. 한화는 3일 대구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의 경기에서 이범호와 이도형의 랑데부 홈런과 세드릭 바워스의 호투로 8-3 대승을 거뒀다. 세드릭은 7이닝 동안 안타 6개, 볼넷 3개를 내주고 삼진을 2개 솎아내며 2실점, 시즌 2승(2패)째를 올렸다. 삼성은 연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이스 제이미 브라운을 하루 앞당겨 마운드에 올렸으나 소용 없었다. 브라운은 5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해 안타 7개를 맞고 5실점으로 부진,2패째를 기록했다. 한화는 6회 초 무사 만루에서 이범호가 만루 홈런을 쏘아올려 5-1로 앞섰다. 곧바로 이도형이 솔로 홈런으로 화답, 한 점을 더 달아났다.9회 초에는 김태완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포를 작렬시켰다. KIA는 사직에서 롯데를 4-1로 누르고, 손민한에게 당했던 7연패에서 벗어났다.KIA는 이날도 환상의 계투조 신용운-한기주를 내세워 확실하게 승리를 굳혔다. 문학에서는 두산이 구자운의 호투와 최준석의 투런 결승 홈런에 힘입어 SK를 2-1로 제압하고 최근 2연패에서 벗어났다.SK와의 5연패 악연 사슬도 끊었다. 구자운은 안타와 볼넷을 2개씩 내주며 5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 시즌 2승(1패)째를 올렸다. 이 경기는 2시간19분으로 올시즌 최단 시간을 기록했다. 두산은 0-1로 뒤진 4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동주의 안타 뒤 최준석의 홈런이 터져 2-1로 승부를 뒤집었다.9회 초 나온 두산 마무리 정재훈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7세이브째를 수확했다. 잠실에서는 현대가 LG를 6-5로 제치고 11승12패로 6위에 올라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첼시, 준결승서 2년전 패한 리버풀에 또 덜미

    ‘전통의 명가’ 리버풀이 승부차기 끝에 첼시를 잡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리버풀은 2일 영국 앤필드로드에서 벌어진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전반 22분 수비수 대니얼 아게르의 골로 1,2차전 합계 1-1을 만든 뒤 연장전에서 최종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피말린 승부차기 끝에 4-1 승리를 낚아내며 ‘별들의 마지막 잔치’에 직행했다. 지난 76∼77시즌 첫 패권을 포함,5차례나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우뚝 섰던 리버풀은 오는 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릴 단판 결승전에서 통산 6번째 타이틀에 도전한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골키퍼 호세 마누엘 레이나. 지난 시즌 FA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도 3차례나 킥을 막아 팀에 우승을 안긴 ‘특급 거미손’이다. 레이나는 첼시 첫번째 키커 아르연 로번의 슈팅을 막아낸 데 이어 3번 키커 제레미의 킥까지 선방, 기적 같은 4-1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반면 ‘부자 구단’ 첼시의 쿼드러플(정규리그·챔피언스리그·FA컵·칼링컵 등 4관왕)의 꿈은 ‘신의 선택’으로 불리는 승부차기에서 산산조각났다. 더욱이 고비 때마다 되풀이되는 악연에 치를 떨었다. 3년전 리버풀은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을, 첼시는 주제 무리뉴 감독을 영입했다. 이후 양팀 상대 전적은 첼시가 7승3무5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정작 우승, 준결승 등 굵직한 무대에서 웃은 건 늘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은 지난 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서 첼시와 마주쳤다.1차전을 0-0으로 비겼지만 2차전서 루이스 가르시아의 골로 결승에 올라 결국 정상까지 등극했다. 지난해 FA컵 준결승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리버풀은 첼시를 2-1로 제물삼아 결승에 오른 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승부차기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해 8월 프리미어리그 우승팀과 FA컵 챔피언이 만나는 커뮤니티실드(슈퍼컵)에서도 첼시는 셉첸코가 분전했지만 욘 아르네 리세와 피터 크라우치가 연속골을 기록한 리버풀에 승리를 넘겨 주며 악연을 또 되풀이했다. 무리뉴 감독은 “내용은 우리가 더 좋았다.”면서 “그러나 축구란 이런 것이고 승부차기는 경기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하며 쓸쓸히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우여곡절 끝에 즉위했지만 국왕 광해군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그의 친형 임해군을 처리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사관(査官) 엄일괴 등을 은으로 구워삶아 위기를 넘겼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부터 신료들은 ‘역적’ 임해군을 처단하라고 외쳤다. 즉위하자마자 혈육을 손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광해군은 거부했지만 끝까지 임해군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명과의 관계 또한 꼬여가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총명하고 능력 있다.’고 추켜세우더니 막상 책봉을 요청했을 때는 외면했던 명이었다. 즉위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광해군과 명의 관계는 분명 ‘악연’에서 출발했다. ●李成梁의 병탄 음모에 놀라다 즉위한 지 5개월 남짓 된 1608년 7월, 베이징으로 가고 있던 동지사(冬至使) 신설(申渫)로부터 비밀 장계가 날아들었다. 광녕총병(廣寧總兵) 이성량(李成梁)이 ‘조선을 정벌하고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직할령으로 삼자. ´는 내용으로 황제에게 주문(奏文)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엄일괴 등이 돌아간 뒤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명이 조선을 직할령을 삼으려고 덤비는 것이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이성량의 혼자 생각이 아니라 도어사(都御史) 조집(趙)도 같이 상주(上奏)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형제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성량이 누구인가. 그는 이여송(李如松)의 부친이자, 요동의 막강한 군벌(軍閥)이었다. 워낙 오랜 동안 현직에 있어 ‘리타야(李大爺)´로 불린 그의 영향력은 컸다. 요동이나 산동(山東)의 무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가정(家丁)이나 막객(幕客) 출신이었다.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조선의 내부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광해군은 신료들에게 대책을 물었다. 병조판서 이정구(李廷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성량이 조선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땅이 비옥하고 인삼과 은이 생산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정구는 그러면서 이성량과 연결되어 있는 누르하치가 더 문제라고 했다. 이성량의 본심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만약 조선을 공격할 경우 누르하치의 군대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정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누르하치의 땅과 잇닿아 있는 평안도 지역의 방어 태세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행히 이성량의 상주에 대한 명 조정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병과도급사중(兵科都給事中) 송일한(宋一韓)과 급사중(給事中) 사학천(史學遷)이 이성량의 주장을 일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선이 비록 흠이 있지만, 연개소문(淵蓋蘇文)처럼 임금을 시해한 죄가 없고 명나라를 섬겨 신하의 예절이 어긋나지 않았으니, 이성량의 주청이 잘못되었다. ´는 내용이었다. 송일한은 이성량을 파직시켜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송일한 등의 반박 덕분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광해군이 둘째라는 이유로 명나라 신료들에게 계속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성량과 연결된 누르하치에 대한 경각심 또한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통성 시비´ 잠재우려 책봉 서둘러 광해군은 ‘이성량 사건´을 계기로 요동에 대한 정탐을 강화하는 한편, 명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책봉(冊封)을 받아내기 위해 서둘렀다. 비록 임해군은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를 차단하고 국왕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명의 책봉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즉위한 지 1년이 더 지난 1609년 3월까지도 명은 광해군을 조선 국왕으로 책봉하지 않았다. 조선에 보낸 외교문서에서는 ‘조선국 권서국사(權署國事) 광해군´이란 호칭을 썼다. ‘권서국사´란 ‘임시로 국사를 담당하는 사람´ 정도의 뜻이다. 이윽고 1609년 6월, 명의 책봉사(冊封使)가 서울에 도착했다. 태감 유용(劉用)이 그였다. 태감이란 환관을 말한다. 내시(內侍), 초당(貂), 초시(貂侍), 엄인(人) 등 환관을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였다. 조선 전기에는 화자(火者)라는 호칭도 많이 썼다. 15세기 조선에 다녀간 명나라 환관들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워낙 뇌물을 밝히고, 요구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 출신이었다. 하지만 명나라 황제의 총애를 배경으로 더 위세를 떨었다. 세종 때의 윤봉(尹鳳)과 성종 때의 정동(鄭同)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유용은 더 ‘막강한´ 인물이었다. 수천명에 이르는 명나라 환관 가운데 서열 2위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조선에 도대체 왜 왔겠는가? 광해군은 그가 의주에 도착하여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바짝 긴장했다. 유용은 압록강을 건너기 전부터 공공연히 떠벌렸다. “조선 국경에 발을 들여 놓으면 기필코 10만냥의 은자를 얻으리라. ”라고. 그는 의주에 도착한 뒤 자신에 대한 접대는 오로지 은으로만 하라고 했다. 은만 주면 식사도 다례(茶禮)도 필요 없다고 했다. 은이 부족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거느린 수행원 중에는 한 밑천 잡으려고 조선에 들어온 상인들이 많았다. 그들 또한 이런저런 기완(嗜玩) 물품을 내놓고 강매했다. 유용은 결국 광해군을 책봉하는 황제의 칙서를 전하러 와서 6만냥의 은을 뜯어갔다. 조정의 언관들은 유용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를 우대하라고 지시했다. 어떻게 해서든 정식으로 책봉을 마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명의 貪風을 받아들이다 ‘오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고, 돌아가면 여기저기에 상납해야 한다. ´ 6만냥을 뜯어낸 유용이 했던 이야기다. 엄일괴와 만애민이 조선에서 한 밑천 잡은 뒤, 명의 환관들은 조선에 서로 나오려고 했다. 17세기 전반 명에서 불고 있던 탐풍(貪風)은 엄청났다. 그 배경에는 은의 유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산 생사(生絲)와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은을 싸들고 명나라로 몰려들었다. 그 은은 대개 신대륙 남미(南美)와 일본에서 채굴된 것이었다. 해마다 밀려드는 수십만 킬로그램의 은은 명나라 구석구석으로 유통되었다. 그것은 인삼이나 모피의 구입 대금으로 누르하치가 일어난 만주 땅에도 뿌려졌다. 은은 운반이 편리해 뇌물로는 그만이었다. 사실 15세기에 왔던 윤봉이나 정동도 엄청나게 뇌물을 챙겼지만 그것은 대개 토산물이었다. 호피(虎皮) 등 짐승가죽과 세모시 등 직물류, 말안장, 구리 제품 등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운반하자면 엄청난 수의 궤짝이 필요했다. 뇌물 궤짝을 짊어진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눈초리가 좋을 리 없었다. 그것에 비하면 은을 운반하기란 너무 쉬웠다. 1610년에는 광해군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기 위한 명사가 왔다. 염등(登)이란 인물로 역시 환관이었다. 그의 목표는 유용이 받아낸 액수보다 더 뜯어내는 것이었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 임진강의 다리가 홍수로 유실되자, 행차가 지체되었다는 것을 빌미로 은 1000냥을 받았다. 서울에 도착하여 보인 행태는 가관이었다. 은으로 된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천교(天橋)라 불리는 그것을 타고 남대문을 넘어가 책봉례(冊封禮)를 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도 결국 수만냥을 챙겼다. 우의정 심희수(沈喜壽)는 염등을 가리켜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광해군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왕세자로 있었으면서도 명의 승인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전철을 되풀이하기 싫었던 것이다. 수만냥의 은을 마련하려면 엄청난 고혈(膏血)을 짜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후 명을 상대하기란 그만큼 버거웠다. 하지만 명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그 명과 누르하치 사이에서 양단을 걸쳐야 하는 훨씬 더 버거운 과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송은일 여섯 번째 장편 ‘반야’ 펴내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 지금으로서야 당연한 말이지만 신분이 확연히 구분됐던 조선시대에 이런 강령을 내세운 조직이 있었다면…. ‘불꽃섬’ ‘한 꽃살문의 전설’의 작가 송은일(43)씨가 발표한 여섯 번째 장편 ‘반야’(문이당 펴냄)에는 여섯 살 때 공수를 할 정도로 놀랄 만한 신기(神氣)를 타고난 무녀 ‘반야’와 평등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비밀결사조직 ‘사신계(四神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조선조 숙종부터 영조 어간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소설은 아니다. 주인공 반야나 사신계, 그 밖의 인물과 배경 등은 모두 작가의 창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신통력이 뛰어난 무녀 반야의 사회에 대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반야의 어머니 유을해는 양반이면서도 무녀가 된 인물. 유을해는 아이를 얻기 위해 3일 동안 양반 이한신의 ‘씨’를 받아들여 반야를 잉태한다. 모녀 모두 양반이면서도 가장 미천한 신분인 무당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탓에 반야는 가진 자, 신분이 높은 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예지력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천민으로서 그들의 명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훤히 꿰뚫어보는 그녀의 힘은 사신계라는 조직을 만나면서 비로소 제 위치를 찾는다. 사신계는 평등사상을 모토로 수천년을 이어온 비밀결사. 사신계에 입문한 반야는 사신계 전반의 운세를 보고 장래를 점치는 칠성부의 부령이 된다. 이 역할은 사신계 초기부터 무당에게 맡겨져 있었다.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는 탓에 숱한 남자들이 반야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반야와 전생에 악연으로 엮여 있다. 반야는 어머니 유을해와 의남매인 동마로 등과 함께 현실을 타파하고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육안을 잃고, 놀랄 만한 신통력을 갖춘 ‘심안’마저도 잃게 된다. 이는 수천년 이어진 사신계 사상의 절연과도 다름 아니다. “나는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를 짓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소설가 박범신씨는 “광기로 치닫는 세상판을 상상력의 자유로 뒤엎고 싶은 ‘만신’에 대한 작가의 욕망이 깊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 2권, 각권 98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종로·청계지역 상점 빅 세일

    서울시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에 종로·청계지역 상가에 가면 귀금속, 상패, 한복 등을 싸게 살 수 있다. 27일 서울 종로구에 따르면 종로청계관광특구 상인회는 특구 지정 1주년을 맞아 28일∼다음달 6일 종로3·4·5가와 청계7가의 상점 300여곳에서 ‘그랜드세일’ 행사를 연다. 할인 행사에는 휘장업번영회, 귀금속조합, 세운상가, 광장시장, 수족관협의회 등 종로·청계지역 5대 상인회에 소속된 301개 업체가 참여한다. 종로3·4가에 밀집된 귀금속 상점 19곳은 순금과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사파이어, 루비, 큐빅 등을 10∼20% 싸게 판매한다. 종로5가 광장시장 상점 178곳에서는 각종 한복 등을 최고 20%까지 할인판매를 한다. 청계7가에서는 물고기와 수족관 등을 싸게 살 수 있다. 행사 기간에는 상점마다 덤으로 기념품을 주거나 경품추첨도 한다. 수족관협의회는 상점 방문객에게 물고기를 나눠준다.축제 행사도 열린다. 오프닝 무대는 28일 낮 12시 광화문빌딩 앞에서 열리는 도전주부가요열창. 오는 30일까지 관철동 피아노거리, 청계천 오간수교 등에서 비보이 배틀, 여성 4중주 현악연주, 여성응원단, 가수 채리걸스 등 28개 공연이 펼쳐진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6)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16)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 Ⅲ

    명 조정이 왕세자로 승인하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광해군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1604년, 명나라 제독주사(提督主事) 섭운한(雲翰)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온 조선 사신들에게 극언을 퍼부었다.‘임해군이 일본군에 포로가 된 것은 너희 국왕의 책임’이며 ‘맏아들 대신 둘째아들을 왕세자로 세우려는 너희들은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는 난신적자(亂臣賊子)’라고 매도했다. 신종(神宗) 황제는 명 조정의 신료들이 워낙 강경하게 반대하자 조선에 보낸 칙서(勅書)에서, 맏아들 임해군을 왕세자로 다시 세우고, 광해군에게는 물러남으로써 윤서(倫序)를 지키라고 촉구했다. 광해군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이후, 과거보다 훨씬 대하기가 버거워진 명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명의 황제가 조선에 보낸 칙서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것의 정치적 파괴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부왕 선조가 광해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었다.1600년(선조 33) 무렵부터 특히 그러했다. ●선조, 광해군의 아침 문안조차 냉대 당시 선조는 정릉동(貞陵洞) 행궁(行宮-오늘날의 덕수궁)에 거처했다. 광해군은 아침마다 선조의 처소로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지만 선조는 좀처럼 그를 방으로 불러들여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1600년 3월30일자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선조가 워낙 엄하게 대해 광해군은 문안할 적마다 처소의 바깥문에 머물다가 돌아가곤 했다고 적혀 있다. 선조의 냉랭한 태도에 광해군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1601년의 기록을 보면 광해군은 아침에 문안하고, 점심에도 문안하는 날이 있었다. 그것은 선조의 냉랭한 태도에서 비롯된 불안감, 그럴수록 더 인정받고 싶다는 초조함이 반영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1600년, 중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이듬해 10월, 예조(禮曹)는 중전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음을 들어 선조에게 재혼하라고 건의한다. 선조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왕세자 책봉 재건의 거부·논공행상 제외 1602년 4월, 조정 신료들은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를 보내 왕세자 책봉을 다시 요청하자고 건의한다. 선조는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중전의 책봉을 먼저 주청하여 국모(國母) 자리를 바르게 한 다음에 왕세자 책봉을 주청해야 인륜이 바로 선다.’는 것이 이유였다. 임진왜란 시기 무려 15번이나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던 그 ‘선조’가 아니었다.1603년, 왜란 당시 국난 극복에 노력했던 인물들을 공신(功臣)으로 책봉하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이 벌어졌을 때, 신료들은 광해군도 공신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건의했다. 분조(分朝) 활동의 성과를 인정하자는 주장이었다. 선조는 그것도 거부했다. 선조의 태도는 분명 광해군에 대한 견제였다. 임진왜란 시기 지존의 권위에 흠집이 생긴데다, 명군 지휘부에 의해 ‘무능한 임금’이자 ‘퇴위시켜야 할 대상’으로 매도되었던 울분이 광해군에게 향한 것인지도 몰랐다. 권력이란 분명 부자(父子) 사이에도 공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1602년 2월, 선조는 이조정랑(吏曹正郞) 김제남(金悌男)의 딸을 새로운 왕비로 맞았다. 광해군과 화동(和同)할 수 없는 악연을 맺었던 인목왕후(仁穆王后)였다. 다시 4년 뒤 인목왕후의 몸에서 아들(永昌大君)이 태어났다. 왕세자 광해군의 앞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왕세자 책봉’을 주청하는 것에 선조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부 신료들은 그의 마음이 광해군에게서 이미 떠났다고 판단했다. 적자(嫡子)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아예 영창대군 앞에 드러내 놓고 ‘줄을 서는’ 신료들이 나타났다.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1607년 3월부터 선조는 잔병치레를 하더니 10월에는 쓰러져 병석에 드러누웠다.10월11일, 선조는 병석에서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광해군에게 전위(傳位)하겠다고 했다. 여의치 않으면 섭정(攝政)이라도 맡기라고 지시했다. 유영경 등은 병석에 누운 선조에게 결사적으로 매달렸다.‘이 상태로도 충분히 정사를 담당하실 수 있으니 전위나 섭정의 명을 거두시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선조가 내린 비망기의 내용을 숨기려고 시도했다. 광해군 또한 선조가 쓰러진 뒤부터 궐내에 머물면서 시질(侍疾-병구완)에 들어갔다. 긴장 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1608년 1월, 전 참판 정인홍(鄭仁弘)은 선조에게 상소하여 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몸조리에 전념하라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유영경이 정당한 전위를 방해했으니 처단하라고 촉구했다. 또 다른 돌발상황이었다. 선조는 정인홍의 상소 내용에 발끈했다. 다시 비망기를 내려 ‘명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전위하면 나중에 명에서 문제를 삼을 수도 있다.’고 했다. 쓰러진 직후에는 바로 전위하겠다고 하더니 정인홍의 상소를 접한 뒤 마음이 다시 흔들린 것이다. ●왕세자 16년… 국내외 견제 딛고 즉위 광해군은 바짝 엎드렸다. ‘변변치 못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지위에 있는데 갑자기 전섭(傳攝)하라시니 죽으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유영경이 전섭을 만류한 것은 제 뜻과 다르지 않은데 정인홍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만들어 냈으니 그저 죽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격분한 선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광해군은 기로에 서있었다. 1608년 2월1일, 선조가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이 즉위했다. 왕세자가 된 지 16년 만의 일이었다. 이윽고 2월6일,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을 고부청시승습사(告訃請諡承襲使)로 삼아 베이징으로 보냈다. 선조의 승하 사실을 명 조정에 알려 시호(諡號)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 광해군의 즉위도 승인받아 오는 임무를 지닌 사절이었다. 명 조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호민 일행이 4월12일, 광해군의 즉위를 승인해 달라는 주본(奏本)을 올렸을 때, 명 예부는 다시 차서(次序)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여전히 둘째아들 광해군은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이호민은 “임해군은 중풍에 걸려 왕세자 자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따졌다. 그러자 명의 예부낭중(禮部郞中)은 임해군이 왕위를 사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주본을 다시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 조정은 랴오양(遼陽)에 있는 요동도사(遼東都司)를 시켜 조선에 들어가 직접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중풍’ 운운한 것이 화근이었다. 6월15일, 명 차관(差官) 엄일괴(嚴一魁)와 만애민(萬愛民)이 서울로 들어왔다. 그들은 임해군을 직접 만나겠다고 우겼다. 당시 임해군은 역모 혐의를 받아 강화도 교동(喬桐)에 유배되어 있었다. ●銀 풀어 위기 넘겨 난감한 일이었다. 임해군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여차하면 명에 또 다시 결정적인 약점을 잡힐 판이었다. 그럴 경우, 또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것인가?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이 대목에서 은(銀)을 풀었다. 엄일괴와 만애민에게 은 수만냥을 주었다.‘칙사 대접’을 받은 그들은 임해군을 면담한 뒤, 조선 신료들에게 말했다. “국왕에게 임해군을 잘 보호하여 박대하지 말라고 이르시오.” 그리고는 은 궤짝을 챙겨 귀국길에 올랐다. 어느 새 광해군은 ‘국왕’이 되어 있었다. 광해군은 정치적 곤경을 타개하려고 어쩔 수 없이 은을 뇌물로 썼지만 그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엄일괴와 만애민이 다녀간 뒤부터 요동에 있던 명나라 관리들은 입맛을 다셨다. 엄일괴 등이 조선에서 한밑천 크게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에 오는 명사(明使)들은 예외 없이 손을 벌렸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누르하치의 군사적 위협은 물론, 명사들의 ‘경제적 위협’에도 직면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5)가객 박효관의 활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5)가객 박효관의 활약

    ‘공산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짓는다. 너도 나와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한양 인왕산 필운대의 마지막 주인은 문화관광부에서 지난 2002년 8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가객(歌客) 박효관(朴孝寬·1800∼1880?)이다. 호는 운애(雲崖)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이 일대에서 몇십년 풍류를 즐기다 세상을 떠난 뒤 그가 활동하던 운애산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운애산방은 배화학당이 들어섰던 자리이다. ●대원군이 후원한 당대 가객 박효관의 인적사항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그가 과연 중인 출신인지도 확실치 않다. 유봉학 교수가 ‘공사기고(公私記攷)’를 소개한 글에 의하면, 박영원 대감의 겸인으로 일했던 서리 이윤선이 1863년에 재종매를 혼인시키면서 박효관을 동원했는데 수군(守軍)이라는 직함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그가 오군영(五軍營)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악원의 악공들은 노비 출신이지만, 오군영의 세악수(細樂手)들은 노비가 아니다. 오랫동안 연주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했고, 최소한의 한문도 쓸 수 있어야 했다. 그가 가곡(歌曲)의 정통성에 대해 자부심이 높았던 것을 보면, 최소한 중간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군영 세악수들은 18세기 이래 민간의 가곡 연행(연회연)에 점점 더 깊이 개입해, 군인 봉급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 잔치에 불려나가 연주하고 받는 돈으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장악원 악공들은 고유업무가 있기 때문에, 두가지 일을 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만기요람’을 찾아보면 오군영에 배속된 군사들의 급료미는 매삭 9두이고, 세악수는 6두로 되어 있다. 국가에서는 낮은 보수를 주는 대신, 군악 연주 외에 민간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 듯하다. 용호영의 군악대와 이패두가 거지들의 풍류잔치에 억지로 불려나갔다가 행하(출연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4회에서 소개했다. 구포동인(안민영)은 춤을 추고 운애옹(박효관)은 소리한다. 벽강은 고금(鼓琴)하고 천흥손은 피리한다. 정약대·박용근 해금 적(笛) 소리에 화기융농하더라. 박효관의 연행에 참여한 기악연주자들은 대부분 오군영 세악수였다. 신경숙 교수가 ‘고취수군안(鼓吹手軍案)’ 등을 분석해 세악수 명단을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금옥총부’ 92번 시조에 활동모습이 담긴 천흥손·정약대·박용근 등은 오군영 소속의 세악수임이 밝혀졌다. 군안(軍案)에는 세악수의 인적사항에 부(父)를 밝혔는데, 친아버지뿐만 아니라 보호자나 스승 역할을 하는 사람 이름도 썼다. 피리를 전공했던 용호영의 군악수 천흥손이 대금 이귀성·윤의성, 피리 김득완의 부(父)로 올라 있었다. 정형의 세악편성에서 세피리는 두명이 필요했으니, 천흥손은 하나의 악반을 주도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포동인은 대원군이 안민영에게 내린 호인데, 여든이 된 스승은 노래하고 환갑이 지난 제자는 춤을 추었으며, 후배들은 반주했다. 안민영이 사십년 배웠다고 했으니, 제자의 제자들까지 박효관을 찾아 모인 셈이다. 인왕산하 필운대는 운애선생 은거지라. 풍류재사와 야유 사내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날마다 풍악이요 때마다 술이로다.(‘금옥총부’ 165번) ●운애산방서 승평계와 노인계 주도 그가 필운대에 풍류방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즐기자, 대원군이 그에게 운애(雲崖)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안민영은 그를 운애선생이라 불렀으며, 풍류재사와 야유 사내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박선생’이라 불렀다. 위항시인들이 시사(詩社)를 형성한 것 같이, 풍류 예인들은 계( )를 만들어 모였다. 안민영은 ‘금옥총부’ 서문에서 그 모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때 우대(友臺)에 아무개 아무개 같은 여러 노인들이 있었는데, 모두 당시에 이름 있는 호걸지사들이라, 계를 맺어 노인계(老人 )라 하였다. 또 호화부귀자와 유일풍소인(遺逸風騷人)들이 있어 계를 맺고는 승평계(昇平 )라 했는데, 오직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게 일이었으니 선생이 바로 그 맹주(盟主)였다.” 안민영은 ‘금옥총부’ 68번에서 “우대의 노인들이 필운대와 삼청동 사이에서 계를 맺었다.”고 분명한 장소까지 밝혔다. 유일풍소인은 세상사를 잊고 시와 노래를 벗삼은 사람이다. 벼슬한 관원은 유일(遺逸)이 될 수 없고, 풍류를 모르면 풍소인(風騷人)이 될 수 없다. 경제적인 여유를 지닌 중간층이 풍류를 즐겼던 모임이 바로 승평계이고, 평생 연주를 즐겼던 원로 음악인들의 모임이 바로 노인계이다. 성무경 선생은 “박효관의 운애산방은 19세기 중후반 가곡 예술의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했다. 가곡은 운애산방을 중심으로 세련된 성악장르로 거듭나기 위해 치열한 자기연마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한 결과를 스승 박효관과 제자 안민영이 ‘가곡원류’로 편찬하였다. ●안민영과 편찬한 ‘가곡원류’ 음악에 여러 갈래가 있지만, 박효관과 안민영의 관심은 가곡에 있었다. 문학작품인 시조를 노래하는 방식은 시조창(時調唱)과 가곡창(歌曲唱)이 있다. 시조창은 대개 장고 반주 하나로 부를 수 있고, 장고마저 없으면 무릎 장단만으로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가곡창은 거문고·가야금·피리·대금·해금·장고 등으로 편성되는 관현반주를 갖춰야 하는 전문가 수준의 음악이다. 오랫동안 연습해야 하고, 연창자와 반주자가 호흡도 맞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객을 전문적인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가객을 키우려면 우선 가곡의 텍스트를 모은 가보(歌譜)가 정리되고, 스승이 있어야 하며, 가곡을 즐길 줄 아는 후원자가 있어야 했다. 박효관과 안민영은 사십년 넘게 사제지간이었으며, 대원군같이 막강한 후원자를 만나 가곡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10년 섭정을 마치고 2선으로 물러서자 이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언젠가는 천박한 후원자들에 의해 가곡이 잡스러워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전통음악 가곡 보전 박효관이 1876년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하면서 덧붙인 발문에 그 사연이 실렸다. “근래 세속의 녹록한 모리배들이 날마다 서로 어울려 더럽고 천한 습속에 동화되고, 한가로운 틈을 타 즐기는 자는 뿌리없이 잡된 노래로 농짓거리와 해괴한 장난질을 해대는데, 귀한 자고 천한 자고 다투어 행하를 던져 준다.(줄임) 내가 정음(正音)이 없어져 가는 것을 보며 저절로 탄식이 나와, 노래들을 대략 뽑아서 가보(歌譜) 한권을 만들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정음(正音) 정가(正歌)의식을 밝힌 것이 아니라, 창작으로도 실천했다. 안민영은 사설시조도 많이 지었는데, 박효관이 ‘가곡원류’에 자신의 작품으로 평시조 15수만 실은 것은 정음지향적 시가관과 관련이 있다.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사설시조는 듣기 좋아도 외우기는 힘든데, 훌륭한 평시조는 저절로 외워진다. 박효관의 시조는 당시에 널리 외워졌다. 위 시조는 고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도 널리 외워지고 있다. 님 그리다 죽으면 귀뚜라미라도 되어 기나긴 가을 밤 님의 방에 들어가 못다 한 사랑노래를 부르겠다고 구구절절이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그의 시조는 양반 사대부의 시조에 비해 직설적이다. 고종의 등극과 장수를 노래한 송축류, 효와 충의 윤리가 무너지는 세태에 대한 경계, 애정과 풍류, 인생무상, 별리의 슬픔 등으로 주제가 다양하다. 삼대 가집으로는 ‘청구영언’과 ‘해동가요’ ‘가곡원류’를 든다. 가곡원류는 다른 가집들과 달리, 구절의 고저와 장단의 점수를 매화점으로 하나하나 기록해 실제로 부르기 쉽도록 했다. 남창 665수, 여창 191수, 합계 856수를 실었는데, 곡조에 따라 30항목으로 나눠 편찬하였다. 몇 곡조는 존쟈즌한닙, 듕허리드는쟈즌한닙 등의 우리말로 곡조를 풀어써, 가객들이 찾아보기도 편했다. 그랬기에 가장 후대에 나왔으면서도 10여종의 이본이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어 신문학과 신음악이 들어오면서 이 책은 전통음악의 총결산 보고서가 되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프로야구 2007] 야호! 오늘은 야구장 가는 날

    6일 전국 4개 구장에서 일제히 막을 올리는 2007프로야구 개막전에서 갖가지 풍성한 행사가 마련돼 팬들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디펜딩챔피언 삼성은 이날 오후 6시 두산과의 대구 경기에서 관중 전원에게 2006년 우승 모자를 선물한다. 또 야구장 새 단장을 기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팀의 첫 홈런, 첫 안타, 첫 득점 선수를 맞히는 이벤트를 벌여 내년도 전지훈련 초청권 3장을 선물한다. 시구는 세계육상선수권 유치에 성공한 김범일 대구시장이 맡는다. 그라운드에서는 괌 하파데이 민속무용단, 중국 기예단 등이 열띤 공연을 펼치게 된다. LG-KIA(오후 7시)가 격돌하는 잠실에서는 LG가 대형 캔버스에 우승 기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또 선수단 출사표 동영상 및 김재박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 등을 선보이고, 비보이 공연이 펼쳐진다.LG는 타자의 홈런볼을 잡은 행운의 관중 1명에게 쏘렌토 자동차를 준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시구하고 파페라 가수 정세훈이 애국가를 열창한다. 한화는 SK와의 대전 경기(오후 6시)에 앞서 마련한 장외 특별 무대에서 1999년 우승 주역인 구대성, 정민철, 이영우, 백재호가 팬 사인회를 펼친다. 오후 5시에는 전문 패러글라이더 5명의 낙하 시범이 이어지고 혼성 6인조 타악연주팀인 ‘두드락’ 공연이 흥을 보탠다. 개그맨 김태균이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며 페이스페인팅, 치어리더 포토타임 등도 열린다. 현대-롯데전이 열리는 수원(오후 6시30분)에서는 김시진 현대 감독이 팬클럽 회장, 어린이 회원대표와 시구자로 나서고, 수원 신곡초교 야구부원과 팬들이 애국가를 합창하는 등 팬과의 하나됨을 강조한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서 비롯된 난맥상은 명의 발목을 잡았다. 환관(宦官)들의 발호가 심각했고, 당쟁은 격화되었다. 재정은 고갈되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증세(增稅) 조처가 취해졌다. 민원(民怨)이 높아지고, 반란을 꾀하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은 편성했지만 영 미덥지 못했다. 명은 결국 조선과 예허에 손을 내민다. 병력을 내어 원정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누르하치의 도전으로 촉발된 불똥이 조선으로 튀기 시작했다. ●광세( 稅)의 폐단, 명을 병들게 하다 만력제가 오랫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고, 신료들을 접견하지 않으며, 그들의 상소나 건의에도 답하지 않자 자연히 환관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황제의 생각이나 명령이 오로지 환관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만력제는 향락과 토목공사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환관들을 시켜 긁어 모았다. 환관들에게 흠차태감(欽差太監)이란 직함을 주어 전국으로 파견했다. 광감( 監), 세감(稅監), 염감(鹽監), 주감(珠監) 등 다양한 명칭의 태감들은 각지에서 백성들에게 명목도 없는 세금을 마구잡이로 강탈했다. 영세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에게 상세(商稅)를 긁어내고, 약간의 은화를 빼앗기 위해 민가를 철거했으며 무덤까지 파헤쳤다. 반항하는 백성들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 환관들이 각지에서 참혹한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베이징에 갔던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백성들은 아우성을 쳤다. 분노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호북(湖北)에 파견되었던 환관 진봉(陳奉)의 패거리가 폭력을 휘두르며 수탈을 자행하자 백성들은 궐기했다. 그들은 진봉의 부하 16명을 붙잡아 강물에 던져버렸다. 운남(雲南)에서는 성난 백성들이 환관 양영(楊榮)의 숙소를 습격하고, 폭력을 자행한 양영의 패거리 200여명을 살해했다. 환관들의 발호는 요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603년 환관 고회(高淮)는 부하 수백명을 이끌고 요양(遼陽), 진강(鎭江), 금주(金州), 복주(復州) 등 요동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은 민간에서 수십만냥의 은화를 강탈했고, 그 때문에 여염이 텅 비어버렸다. 17세기 초, 만력제가 환관들을 시켜 자행했던 수탈을 보통 ‘광세( 稅)의 화(禍)’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수탈 때문에 전국 각지의 상공업은 위축되고, 국가의 공적 세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심은 조정으로부터 떠나고, 민변(民變)이라 불리는 저항운동이 각지를 휩쓸게 되었다. ●명, 고민 끝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꾀하다 푸순의 함락과 장승음의 패전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명 조정에서는 누르하치를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 편성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광세의 폐’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여의치 않았다. 나라의 공식 금고인 태창(太倉)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병력을 징발하고 군수를 조달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만력제는, 내탕을 풀어 군자금에 보태라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1618년 4월27일 직예순안(直隸巡按) 왕상항(王象恒)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장수들 가운데 가정(家丁)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병(總兵), 부장(副將) 등의 직책을 주어 요동으로 보내자고 했다. 가정이란 국가에 소속된 정규병력이 아니라 장수 개인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군사를 말한다. 일종의 사병(私兵)인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 사령관인 이여송(李如松)도 다수의 가정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 왔었다. ‘퇴역 지휘관’들이 거느린 가정을 활용하자는 왕상항의 주장은, 정규군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던 명의 실정을 잘 보여준다.16세기 후반의 척계광(戚繼光)처럼 의지할 만한 현직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물러난 장수들이라도 불러들여야 했다. 윤 4월이 되자, 물러나 있던 지휘관들을 불러들이라는 만력제의 조칙이 내려졌다. 양호(楊鎬), 유정(劉綎), 이여백(李如栢), 왕국동(王國棟), 시국주(柴國柱) 등이 줄줄이 불려와 다시 기용되었다. 양호는 정유재란 당시 명군 사령관이었고, 유정과 이여백도 조선에 참전했던 장수들이었다.‘어제의 용사’들이 전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은 달 17일 호과급사중(戶科給事中) 관응진(官應震)이 ‘오랑캐를 제어하기 위한 세 가지 방책(禦奴三策)’을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방책의 핵심은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해 조선과 예허를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관응진은 후금이 북으로는 예허와, 남으로는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는 예허가 과거부터 누르하치와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사실,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두 나라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예허로부터 군사들을 빌려 후금의 오른쪽을 치고, 조선으로부터 조총수(鳥銃手) 3000명을 징발하여 후금의 왼쪽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이었다. ●조선과 예허는 고분고분한 오랑캐로 지칭 이이제이란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로아키(橫山宏章)에 따르면 이이제이책은 중화(中華)가 와해될 위기에 처할 적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막강한 북방민족의 공격에 시달렸던 송(宋)의 왕안석(王安石)과 사마광(司馬光), 서구와 일본의 군사적 도전에 쩔쩔맸던 청말(淸末)의 이홍장(李鴻章)은 물론 2차 대전 이후 소련을 이용하여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이이제이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위기탈출 전략이었다. 관응진은 ‘어노삼책’에서 조선과 예허를 가리켜 ‘고분고분한 오랑캐(順夷)’라고 지칭했다. 명에 ‘고분고분한 오랑캐’를 이용하여 ‘도전을 일삼는 사나운 오랑캐’를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그같은 발상은 관응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1618년 푸순 함락 이후, 명 조정에는 조야(朝野)의 지식인들로부터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한 방책들이 빗발쳤다.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 오늘날 전하는 ‘주요석획(籌遼碩)’이다.‘요동을 도모하기 위한 큰 계책’ 정도의 뜻을 지닌 이 책에서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조선을 이용하자고 강조했다. 이윽고 1618년 윤 4월27일 조선 조정에는 병부좌시랑(左侍郞) 왕가수(汪可受)가 보낸 격문이 도착했다. 왕가수는 먼저 명나라와 조선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이 사람의 몸이라면 명은 그 머리이고, 조선이 나무라면 명은 그 뿌리’라고 했다. 이어 임진왜란 시기 명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 일본군을 격퇴시킨 ‘은혜’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부터 조선의 식자들과 명의 인사들 가운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군이 원군을 보냄으로써 ‘망해 가던 조선을 다시 살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왕가수는 ‘재조지은’을 상기시킨 뒤, 본론을 이야기했다. 명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누르하치를 공격하는 데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격문을 받는 즉시 군병을 정돈시켜 대기하다가 기일에 맞춰 나아가 토벌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겉으로는 ‘요청’인 것 같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왕가수의 격문을 받은 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 광해군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왜란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명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 악연을 맺을 것인가? 거부하여 ‘재조지은’을 배신할 것인가? 푸순성을 삼켜버린 누르하치의 불길이 바야흐로 조선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세리, 나비스코 징크스

    ‘줄보기가 날린 커리어그랜드슬램.’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를 앞둔 박세리(30·CJ)의 4개 메이저 전승 꿈이 막판 산산이 깨졌다. 박세리는 2일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골프장(파72·6673야드)에서 벌어진 LPGA 투어 크래프트나비스코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는 3개에 그치고 보기만 무려 8개를 쏟아내며 5오버파 77타로 무너져 공동 10위(1오버파 289타)에 그쳤다.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서 LPGA 투어 7번째 선수로 4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커리어그랜드슬램 달성이 기대됐던 박세리는 그러나 간신히 ‘톱10’에 턱걸이, 끝내 미션힐스골프장과의 악연을 떨치지 못했다. 수잔 페테르손(노르웨이)과 챔피언조에서 동반 플레이에 나선 박세리는 9번홀까지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맞바꾸며 선두권을 지켰지만 10번홀(파4)부터가 문제였다.3퍼트 보기로 삐끗하기 시작한 박세리는 12번홀(파4)에서 버디로 타수를 만회하는 듯했지만,13번홀(파4) 보기에 이어 15번홀 이후 4개의 줄보기를 쏟아내며 주저 앉았다. 박세리는 “특히 퍼팅이 안돼 스코어를 지키지 못했다.”면서 “기량을 더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공동선두 그룹에 4타 뒤진 공동 9위로 출발한 2년차 모건 프레셀(미국)은 보기없이 3개의 버디를 잡아내는 깔끔한 경기를 펼쳐 최종합계 3언더파 285타로 정상에 올랐다.최연소 US여자오픈 본선 출전 기록을 보유한 프레셀은 18세10개월9일 만에 LPGA 투어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까지 세웠다. 이븐파를 친 안시현(23)은 합계 1언더파 287타로 공동 5위에 올라 올시즌 3개 대회 연속 ‘톱10’ 입상 행진을 이어갔다.13오버파 301타, 공동 50위에 그친 한희원(29·휠라코리아)은 오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사실상 올시즌을 마감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로축구]안효연 후반41분 역전골로 13경기 무승 끝내

    프로축구 수원이 지긋지긋한 ‘대전 징크스’의 사슬을 끊었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프로 통산 100승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수원은 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홈 개막전으로 벌어진 2007프로축구 K-리그 대전과의 경기에서 후반 41분 안효연의 천금같은 헤딩골로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뒀다. 수원은 이로써 ‘만나기만 하면’ 혼쭐이 났던 대전을 상대로 무려 4년5개월 만에 13경기 무승(8무5패)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수원이 대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건 지난 2002년 9월25일 홈에서 거둔 2-1승이 마지막. 이듬해 5월 수원은 0-2로 패한 뒤 단 한 차례도 대전을 꺾지 못했다. “올시즌엔 반드시 대전 징크스를 깨겠다.”고 별러 온 차범근 감독은 ‘100승 감독’에 이름을 올리는 겹경사도 누렸다. 고재욱(148승) 감독을 시작으로 김정남(170승) 김호(188승) 박성화(108승) 박종환(124승) 이회택(139승) 조광래(107승) 차경복(119승) 허정무(104승) 감독 등에 이어 K-리그 10번째. 에두-나드손 투톱에 안정환을 측면 공격수로 내세운 수원은 전반 내내 대전의 치밀한 수비에 막혀 만만한 골 기회를 얻지 못하고 되레 후반 6분 우승제에게 오프사이드 트랩이 뚫리면서 선제골을 허용, 악연이 되풀이되는 듯했다. 그러나 수원은 후반 22분 벌칙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수비수 마토가 강한 왼발 땅볼 슛으로 동점을 만든 뒤, 후반 41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조원희가 올린 크로스를 안효연이 헤딩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무승의 사슬’을 끊은 건 FC서울도 마찬가지. 터키의 한·일월드컵 명장 세뇰 귀네슈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은 FC서울은 홈경기에서 후반 이청용, 정조국의 연속골로 대구를 잡고 첫 승을 올렸다.2005년 10월9일 이후 1무3패에서 벗어난 것.‘프로 2년차 징크스’ 탈출을 기대했던 박주영은 선발 출전했지만 슈팅 3개가 모두 골문을 벗어났고, 청구고(대구) 감독 당시 박주영과 한솥밥을 먹었던 대구 변병주 감독은 데뷔전 승리를 다음으로 미뤘다. 전북은 광주에서 시작 50초 만에 ‘벼락골’을 터뜨린 신인 용병 스테보와 김형범의 쐐기골로 광주를 2-0으로 완파, 시즌 첫 승을 올렸다. 정해성 감독의 제주도 원정경기에서 전재운의 결승골에 힘입어 앤디 에글리 감독의 부산을 1-0으로 꺾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DJ ‘무대’로 돌아오다

    DJ ‘무대’로 돌아오다

    현 정권 들어 정치의 중심무대에서 비켜서 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 민주당이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성큼 진입하고 있다. 권노갑·박지원·김홍일씨 등 측근과 아들의 지난달 특별사면으로 더 이상 청와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DJ가 민감한 정치적 발언을 불사하고, 정치권이 이에 즉각 반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DJ는 사분오열된 호남 민심을 결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적 코드’라는 점에서, 그리고 DJ의 수족인 동교동계는 백전노장의 ‘정치적 유기체’라는 점에서 대선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지난 3일 권노갑씨를 만나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은 현재 DJ와 동교동계의 위상을 반영하기에 충분하다. 정 전 의장은 과거 DJ의 면전에서 권씨를 공격한 ‘악연’이 있다. 현재 당내에서 ‘2선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정 전 의장으로서는 ‘DJ-동교동계-호남’을 기사회생의 탈출구로 상정할 법하다. 그동안 정계개편의 들러리쯤으로 치부돼온 민주당의 몸값도 치솟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4일 “대통합의 순서는 민주당과의 통합이 선결조건”이라고 했고, 집단탈당파의 최용규 의원도 열린우리당보다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우선시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구애(求愛)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역시 DJ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정계개편의 판도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DJ가 지난달 28일 선도탈당파를 만난 자리에서 “(범여권의)단일한 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선거연합을 이뤄내 단일후보를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한지 이틀만에 천 의원 등이 즉각 ‘4·25 재보선 단일후보’를 제의하고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종적으로 DJ가 대선에 발을 깊숙이 담그기로 작심한다면 범여권 정계개편은 친노(親盧)-반노(反盧)의 메커니즘에서 친DJ-반DJ의 역학관계로 재편될 수도 있다.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연출자 노무현’과 ‘연출자 DJ’가 충돌하면서 전·현직 대통령이 중심무대에서 혼전을 벌이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상연기자 carlos@ seoul.co.kr
  • [산사람 이야기] 동중정(動中靜)의 여인

    [산사람 이야기] 동중정(動中靜)의 여인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 저자, www.sanchonmirak.com 동중정動中靜이라고 했다.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며 활동하는 한 여인, 그 여인이 묵향 가득한 방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 있는 또 다른 한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붓을 잡고 정좌(靜坐)해 있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대한산악연맹 배경미 상임이사의 모습이다. 한국의 근대적 의미의 산악운동사는 1930년대에 그 첫 장을 열었고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단체, 대한산악연맹의 역사도 40년을 넘겼다. 회갑을 넘기고 고희의 나이마저 넘긴 산악사에 불혹의 나이를 넘긴 산악단체, 이런 역사 이러한 조직 속에서 산악운동은 아직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것인 양 여성들의 참여는 미진했었다. 통상 1천만 명 산악인구라 하고 산을 오르는 여성의 숫자는 남성에 뒤지지 않지만, 배경미 이사처럼 걸출한 여성산악인은 흔치 않다. 우선 배경미 이사가 방대한 조직인 대한산악연맹에 여성으로서는 첫번째 이사라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배경미 이사는 동적인 활발한 활동에 정적인 정서를 겸비하고 있는 정통파 산악인이다. 낮 시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일하는 여성이 늘 그러하듯 가정의 대소사와 자녀들을 돌보느라 늘 바쁘다. 여기에 대한산악연맹에서 맡고 있는 학술정보위원장으로 산악연감과 오지탐사대 보고서, 각종 산악 정보수집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러나 틈이 날 때마다 묵향 가득한 방에 화선지를 펴놓고 서예작품을 그려낸다. 맹렬한 활동의 걸출한 여성산악인에 전국대학미전에서 입상한 서예가 - 그래서 그는 動中靜(동중정)의 여인이다. 산에서는 바위를 타고 해외원정대를 이끌고 장도에 오르기도 하는 배 이사의 또다른 한 면모다. 그리고 그는 오래 전부터 등산전문 월간지에 해외 산악계의 동정을 연재한 경력마저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활발한 활동이 그의 생업은 아니다. 그의 생업은 따로 있다. 남편인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김태삼 이사가 운영하는 ‘(주)푸른여행사’의 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캐나다 전문 푸른유학 대표로도 맹활약 중이다. 배 이사는 자신의 인생을 가정과 산, 사업으로 삼등분해서 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다. 남편을 만나기 전인 1988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한국 맥킨리 여성원정대 대원으로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를 등반했다. 신혼여행으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산, 북알프스를 등반했다. 남편의 외조(?)에 힘입어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부부가 함께 해외원정을 떠나기도 한다. 1990년에는 미국 서부의 레이니어 등반, 첫 아이를 낳은 후인 1993년에는 부부가 함께 맥킨리를 다시 등반하기도 했다. 남편을 최고의 친구이자, 클라이밍 파트너, 산선배,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섬기며 살고 있다. 배 이사의 여성산악인과 여성후배들을 위하는 사랑은 남다르다. 여성이 전문적인 산악활동을 하며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여성산악인들이 함께 공유하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또 함께 해결하기 위해 2002년에는 한국여성산악회를 결성했다. 한국여성산악회의 부회장이기도 한 배 이사는 후배 여성산악인들이 해외원정을 가거나 좋은 등반을 하도록 여성산악인만의 등반보고회와 정기적인 여성산악인 모임 등을 주최해 왔다, 원정등반을 떠나는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등반보고회를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2003년, 마흔의 나이 때는 직접 대학산악부 여자후배들로 구성된 맥킨리 원정대 대장을 맡아 후배들에게 등반활동의 장을 열어주기도 했다. 포터도 셀파도 없는 맥킨리 등반에서 허리디스크로 고생도 했지만 슬기롭게 극복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산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는 배 이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는 진정한 여성산악인들의 본보기 그 자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 건너편, 저 먼 곳에는 우리가 펼쳐야 할 꿈이 있다. 배 이사는 오늘 하루도 그 꿈을 펼치기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분주하게 뛰고 있다. 분주하게 뛰고 있는 그 동(動)의 내면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배 이사의 깊고 깊은 정(靜)이라는 활력소가 이 땅의 수많은 산악인들이 ‘動中靜(동중정)의 여인’ 그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게 하는 요소이리라!!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 K-리그 3일 8개월 대장정 킥오프

    첫판부터 제대로 붙었다. 3일 오후 3시 킥오프되는 지난해 정규리그 1위 성남 일화와 FA컵 우승팀 전남 드래곤즈의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공식 개막전은 물론,4일 6경기도 모두 라이벌전으로 치러져 불꽃튀는 대결이 점쳐진다.8개월여 220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의 첫발로서 손색이 없다. ● 개막 축포는 누가? 공식 개막 축포는 성남이 올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한국의 비에리’ 김동현(23)과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24)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브라질 특급 이따마르(27)의 한방과 지난해 K-리그 최우수선수(MVP) 김두현(25)의 중거리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까지 정규리그와 FA컵 우승팀이 따로 슈퍼컵 대회를 열어 챔피언을 가린 반면, 올해는 단일리그로 바뀌어 한 경기 한 경기가 더욱 중요해져 박진감이 넘치게 됐다. 지난해 상대 전적에서 1승2무로 앞선 전남은 지난해 세 차례 맞대결에서 2골을 터뜨린 송정현(31)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계 브라질 용병 산드로 히로시(28)와 함께 울산에서 임대해온 레안드롱(24)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세 차례 대결에서 3골만이 터질 정도로 두 팀의 경기는 골가뭄. 따라서 개막 축포가 4일 6경기에서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7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안정환(31)을 비롯, 이관우(29) 백지훈(22) 등 수원의 스타들이 홈으로 불러들인 천적 대전을 상대로 축포를 올릴 수도 있다. 지난해 성남 우승을 이끌며 득점왕에 오른 뒤 울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우성용(34), 전북을 아시아 정상으로 끌어올린 지난해 신인왕 염기훈(24). 지난해 8골을 터뜨려 포항을 플레이오프에 올린 고기구(27) 등도 득점포를 채비하고 있다. ● 첫판부터 ‘라이벌 열전’ 전남과 공식 개막전에서 맞붙는 성남은 지난해 68.2%(12승6무4패)의 승률을 기록했지만 유독 전남을 상대로 약한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최근 세 차례 홈 경기에서 전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보지 못할 정도로 맥을 못 추고 있다. 또 차범근 감독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제 악연을 끊어보고 싶다.”고 밝힌 것처럼 수원은 2003년 5월4일 0-2로 무릎을 꿇은 이후 대전을 상대로 무려 13경기째 무승(8무5패)을 이어가고 있어 이를 돌려놓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2005년 3월9일 0-1로 무릎을 꿇은 이후 안방에서 대구에 3경기 연속 굴욕을 당했던 FC서울이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또 다른 관심거리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1919년 英화가에 비친 한국

    일제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3·1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 여류화가가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전 ‘푸른 눈에 비친 옛 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2일 개막된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는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살다 1915년 여동생 부부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가 1919년 한국을 방문, 우리의 일상을 그렸다. 같은 동양이지만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식민지 한국의 풍경에 매료된 키스는 독립을 갈망하면서 일상을 분주히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진솔함을 주로 표현했다. 농부와 아낙네, 노인, 무인 등 평민과 왕실의 공주와 양반댁 규수, 음악연주자 등 다양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가 한국에서 그린 수채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목판화로 다시 제작됐고, 이 작품들을 일본과 미국, 유럽 등에서 순회전시해 당시 한국의 현실과 생활문화, 예의와 풍습 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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