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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살인’ 피해여성의 마지막 영상메시지

    ‘명예살인’ 피해여성의 마지막 영상메시지

    “아버지와 오빠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그래서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내 목숨이 위험하다.” 26일(현지시간) 인도 NDTV 등 외신은 인도의 한 여성이 이같은 영상 메시지를 온라인 상에 공개한뒤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 메시지의 주인공은 소니(26)라는 여성이다. 영상에서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가족들이 저지른 것”이라며 애인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지난 23일 소니는 그녀의 고향인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하트라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니의 아버지와 오빠 등 6명은 모두 자취를 감춘 뒤였다. 경찰은 소니의 주검에서 어떠한 외상도 발견되지 않아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봐야하지만, 소니의 영상 메시지를 근거로 그녀가 ‘명예살인’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이슬람 문화권에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이라는 악습이 행해지고 있다. 현행법상 희생자 가족이 용서하면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명예살인’이라는 핑계로 특히 여성들이 다수 희생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PFA)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여성은 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사진·영상=NDTV/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나영돈 고용부 정책관에게 들어본 ‘일·가정 양립 대책’

    [공무원이 말하는 정책이야기] 나영돈 고용부 정책관에게 들어본 ‘일·가정 양립 대책’

    지난해 국내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보다 347시간이나 많았다. 멕시코(2246시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근로는 노동생산성을 약화시키고 근로자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연근무제와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2일 나영돈 고용노동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을 만나 정부의 일·가정 양립 대책에 대해 들었다. 유연근로를 확산시켜 장시간 근로를 줄이면 일·가정 양립을 이끌고 장시간 근로로 인한 여성 경력 단절을 예방하는 한편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고용률을 높이는 1석 3조의 효과를 거두는 셈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사내 눈치법’ 때문에 국내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22.0%에 그치는 상황입니다. 근로자가 자유로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만 하더라도 도입률이 유럽은 66.0%, 미국은 81.0%에 이르지만 우리는 12.7%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는 이달부터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서 근무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는 파격적인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은 점차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남성 육아휴직자는 3353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62.5%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4만 5217명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입니다. 유연근무제의 경우 신청 승인기업에 한해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30만원을 지원하고, 남성 육아휴직은 ‘아빠의 달’ 제도를 통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달은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할 때 두 번째 사용자에게 통상임금의 100%(최대 150만원)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올해는 지원 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습니다. 일반적인 육아휴직 급여는 통상임금의 40%(최대 100만원)입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가정 양립과 모성보호 대책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 중으로 범부처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현재 고용부는 유연근무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지원금을 현재보다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 건수가 ‘0’인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사유와 개선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미흡하면 정기근로감독 사업장으로 우선 선정하는 방안도 추진합니다. 모성보호 대책은 특히 ‘임신 순번제’ 같은 악습이 남아 있는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모성보호 우수의료기관 33곳은 육아휴직 후 업무 복귀율이 80.6%였지만 부진기관 21곳은 39.5%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6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임신·출산 정보를 활용해 모성보호와 관련된 법 위반 의심 사업장 500곳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법 위반 정도가 심각하거나 사회적 계도가 필요한 30곳은 기획감독해 결과를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또 전국 47개 지방고용노동청에 꾸려진 ‘일·가정 양립 민간협의체’를 통해 모성보호 제도 홍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과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정책 실효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부는 연가 사유 묻지 않기, 근무시간 외 업무 연락 자제 등의 내용을 담은 민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질적인 근로문화를 뜯어고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폭탄주 금지작전’ 펼치는 육군

    육군이 ‘폭탄주 돌리기’, ‘음주 강요하기’, ‘2·3차 가기’ 등 과도한 음주를 유발하는 잘못된 악습을 버리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위계질서가 강한 군 조직에서 상급자의 강권이 과음의 원인이 된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육군은 21일 “육군본부가 지난달 말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 캠페인’ 시행계획을 전 부대에 내려보내 건전한 음주문화 실천방법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육군은 지난 1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부대별로 내보내는 ‘일일방송’에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자는 내용을 넣었고 대대장급 지휘관은 매주 월요일 간부들을 대상으로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 실천을 독려하고 대비태세 유지를 위한 절주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있다. 병사들도 휴가와 외박 때 과음하지 않도록 출타 하루 전 음주문화 교육을 받고 있다. 캠페인의 3대 금지사항은 ‘음주강권’, ‘음주운전’, ‘이성 동반 2차 회식’ 등이다. 캠페인은 ‘1가지 술로, 1차에 한하여, 9시(21시)까지”라는 뜻의 ‘1·1·9 운동’을 권장하는 한편 건전한 음주 회식을 위한 10가지 실천사항도 제시했다. 육군은 매주 금요일 간부들의 휴대전화로 음주를 자제하자는 내용의 짧은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술자리가 많은 금요일 저녁에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을 상기하도록 해 과음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동물단체 오늘 말복 맞아 광진구의원 보신탕집 앞 ‘침묵시위’

    ‘말복’(末伏)인 16일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10여명이 서울 광진구의 한 구의원이 영양탕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그 가게 앞에서 개 식용 반대 시위를 벌였다. ‘생태복지와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생동생사)과 동물보호소 ‘희망의 마법사’ 등 소속 활동가들은 이날 낮1시쯤 광진구의 한 영양탕집 앞에서 가게 주인인 광진구의원 A씨에게 보신탕 판매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 15명은 ‘문화가 아닌 악습! 개고기 NO!’, ‘식용이 아닌 반려동물’ 등 글귀와 개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채 한 시간 동안 침묵 시위를 벌였다. 개인활동가 이미지씨는 좁은 울타리에 갇힌 개 4마리를 시위에 동반하기도 했다. 이씨는 “전날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말복 보신탕용으로 팔릴 뻔 한 애들을 사비로 구매했다”면서 “식용견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데리고 나왔고, 빠른 시일 내에 입양을 시키거나 애견 카페에서 쉬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영양탕집에서는 ‘우리나라 고유 음식 문화를 즐기러 오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행동이 정당한지 묻고 싶다. 이 시위가 동물보호를 위한 것인지 정치인 공격인지 모르겠다’고 적은 걸개를 바깥에 내걸어 시위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해당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유기견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식용으로 파는 개만 사용하는데 현직 구의원이다보니 시위 타깃이 된 듯하다”면서 “좁은 골목에서 집사람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인데, 경제가 어려워서 업종도 바꿀 수 없는 마당에 생업에 타격을 받을까봐 걱정”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앞서 오전 11시에는 광진구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의원 A씨는 서울시의 동물보호 정책에 반하는 가게 운영을 반성하라”면서 “광진구청은 서울시처럼 동물보호과를 신설하라”고 요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휴대폰 비번 말 안 한다고? 터키 소녀, 오빠에게 맞아 숨져

    휴대폰 비번 말 안 한다고? 터키 소녀, 오빠에게 맞아 숨져

     터키의 한 소녀가 가족 모르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맞아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터키 매체들이 보도했다.  9일 일간지 하베르튀르크에 따르면 터키 남동부 바트만주 17세 소녀 아미네 데미르타시가 이달 2일 오빠 카슴에게 구타를 당한 뒤 사망했다.  카슴은 경찰 수사에서 여동생을 때려 죽게 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아미네가 가족이 모르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카슴은 아미네에게 휴대전화에 설정된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요구했으나 동생이 거부하자 계속 때렸다고 진술했다.  아미네의 아버지는 딸이 입을 열 때까지 때리라고 아들을 부추겼다.  어머니 역시 이에 동조해 사태를 방관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고 버티다가 가족에게 사실상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동생을 폭행한 카슴과 아들을 부추긴 아버지를 구속했다. 어머니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도록 했다.  지역 여성계는 아미네의 죽음을 계기로 최근 터키사회에 증가하는 여성폭력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바트만 거리에는 아미네의 사진 아래에 “나는 가족에게 고문당해 죽은 아미네 데미르타시입니다.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쓰인 포스터가 나붙었다.  바트만 여성총회의 베리반 아자르 대변인은 “친인척에 의한 여성 살해가 늘어나고 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자살로 위장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인구의 95% 이상이 무슬림인 터키는 과거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여성이 가족 구성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명예살인’이 간혹 발생했다.  터키는 유럽연합(EU) 가입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명예살인에 강력하게 대응, 악습을 거의 근절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이 집권한 이래 터키 사회가 종교적으로 보수화의 길을 걸으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In&Out] 김영란법의 파장/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학 교수

    [In&Out] 김영란법의 파장/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학 교수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입법 예고되면서 또다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김영란법은 400만여명에 이르는 적용 대상자와 식당 및 농축수산업, 유통업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김영란법은 관련 당사자들의 사회관계와 경제활동은 물론 전 국민의 문화적 행태까지도 혁신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김영란법의 당위성은 지난 수년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 국민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뿌리 깊게 만연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해소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공직을 수행하는 데 연줄을 동원한 청탁이나 각종 접대와 뇌물, 전관예우 등의 부조리 문화를 척결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이 구현되려면 법의 형평성과 실효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영란법이 원안과 달리 입법 과정에서 변형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법의 형평성이 무너진 것이다. 당초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이 포함된 반면 막상 국회의원 자신들은 빠진 것이다. 법안 제5조는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 부정청탁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은 공적 활동을 한다고 해 포함한 반면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 정치 행위야말로 공적 활동이며, 특히 선출직 공직자야말로 공무원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 또 공적 활동을 법 적용 대상으로 한다면 정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도 포함돼야 한다. 따라서 김영란법이 형평성을 가지려면 선출직을 포함한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든지, 아니면 공적 활동을 하는 모든 사회 부문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김영란법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적용 대상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법 적용이 쉽지 않다는 주장은 실효성 문제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모든 법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며 실효성 문제는 과연 범법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가에 있다. 법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제로 지켜질 수 없을 때는 효과적 제재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법의 당위성은 현실에 기초해야 한다. 소위 3-5-10 규정(식사대접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비 10만원)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식사 및 선물 규정은 요식업과 농축수산업계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한다. 제한액을 상향 조정하자는 입장도 있지만,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는 그 이상의 액수는 접대, 뇌물, 사치, 허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정도 수준에서 우리의 생활양식과 행태를 조정하는 것이 그동안의 우리 사회 거품을 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김영란법을 회피하려는 이해 당사자들의 행태다. 합법성보다는 법에 대한 도구적 관념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벌써 편법 찾기에 여념이 없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대기업은 기자들 처우 방법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고, 유통업계는 선물 가격을 5만원 한도로 맞추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적응 노력이 실질적으로 법을 지키려는 합법성에 기초해야지 법을 회피하기 위한 기만행위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김영란법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매우 크다. 우리 사회가 악습을 깨고 사회적 불신을 넘어 공정사회와 선진사회로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김영란법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형평성이며, 그것은 국회의원의 부정청탁 제외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다.
  • [금요 포커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인류사회의 꿈/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금요 포커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인류사회의 꿈/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지난해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2020년까지 15개 중점협력국을 대상으로 소녀들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건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Better Life for Girls·BLG)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유엔에서 합의한 2030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지원하는 우리 정부의 4대 구상 중 하나다. 우리 정부가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을 구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개발협력의 모범 사례 국가로 평가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성공 요소가 있을 것이다. 가장 괄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한국 특유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한 우수 인적자원 양성 경험이다. 특히 전국 부녀회 조직을 통한 성 보건 인식 증진과 가족계획, 여성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등 성공적인 여성 역량 강화의 경험을 꼽을 수 있다. 남아 선호 성향이 유난히 강했던 우리나라의 소녀들은 아무리 우수한 학습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보다는 일터로 내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1970년까지도 우리나라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비율은 고작 1.6%에 불과했다. 40년이 지난 2009년 통계를 보면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처음으로 남학생을 앞지른 후 격차도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 역시 크게 신장되어 2014년에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합격한 여성 비율이 각각 46.0%, 40.2%, 59.5%로 증가했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등 갈수록 여성의 진출 영역이 확대되고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영향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의 교육기회 증가, 보건환경 및 국민의식의 변화 등이 크게 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소녀들의 교육기회 증가와 보건환경 향상을 통한 양성평등의 진보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을 2030년까지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경우 향후 20년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6% 포인트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제 평균보다 높은 0.9% 포인트 증가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는 여성의 고용률 증가가 국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을 말해 주는 사례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개발도상국에는 교육과 보건의 권리 박탈뿐만 아니라 조혼과 여성 할례, 명예살인 등의 악습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게 현실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15세 전에 결혼하는 여자아이가 9명에 1명꼴이고 3명 중 1명이 18세 이전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할례를 받는 여성은 1억 2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경제발전을 위해 SDGs 목표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BLG 이니셔티브는 개발도상국의 많은 소녀들이 처해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발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BLG 정신은 최근 새로운 이동형 복합 개발협력모델로 닻을 올린 코리아에이드 사업에도 녹아 있다.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시 기존의 개발협력 모델에 이동성과 보건·문화·식품 등 결합성을 높여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여성 청소년은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혜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동 차량을 통해 벽지마을의 소녀들에게 의료 서비스와 함께 성생식 보건 및 위생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엔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인류사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구의 미래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이란 인류사회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KOICA의 노력은 지금도 거친 나라, 거친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
  • [사설] 與野, 특권 폐지 자문기구 놓고 시간 끌어선 안 된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국회의원 특권’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딸, 동생, 오빠를 의원실과 후원회에 데려다 놓고 국민 혈세로 월급까지 챙겨 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행태에 국민은 분노했다. 게다가 그런 특권·갑질 의원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여야 지도부가 여론의 질타에 한껏 자세를 낮춘 가운데 각 당은 경쟁적으로 ‘특권 내려놓기’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지난주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 설치 등에 합의한 것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는 최대한 신속하게 가동돼야 한다. 급한 불만 피할 요량으로 선언부터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결국 빈손에 그쳤던 과거의 숱한 ‘정치개혁특위’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만큼은 국민이 특권 내려놓기 여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왜 자문기구로 규정했느냐”며 특권 내려놓기 의지 자체에 의혹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문기구는 ‘조언’만 할 뿐 강제할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자문기구가 내놓는 특권 내려놓기 종합 방안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공동의 입장을 먼저 밝혀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각종 특권과 특혜는 사실 소신 있게 정부를 견제하면서 삼권분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대명제에서 비롯됐다. 상당한 액수의 세비를 지급하고, 보좌진 채용을 자율에 맡기는 한편 각종 특급 예우를 해 주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의정 활동을 하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주어진 신성한 특권과 특혜를 오만하게 남용하면서 그것을 반납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했다. ‘전직 대통령 은닉 비자금’을 캐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면책 특권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이제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졌던 이런 모든 특권과 특혜가 자문기구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자문기구는 정치인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일반 시민과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만 특권을 넘어선 월권, 관행이라는 이유로 남아 있는 구태, 눈감고 서로서로 묵인해 준 악습까지 확실하게 청산할 수 있다. 국회에 이미 제출돼 있는 각종 특권 내려놓기 법안 등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법안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특권이 있다면 찾아내 없애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엄청난 세비를 받아 가면서도 택시비와 밥값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국회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루에 3만원씩 호주머니에 넣는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참된 의원이라고 할 수 없다. 비리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체포동의안을 자동 폐기시키는 ‘동지의식’을 국민은 원치 않는다. 국회법과 국회의원수당법 등을 개정하고, 윤리 법규를 새로 제정해 국회의원의 품격을 강제로라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자율에 맡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자문기구 가동에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현장 블로그] 후배 돈 걷어 졸업반지… 전통 포장된 악습

    [현장 블로그] 후배 돈 걷어 졸업반지… 전통 포장된 악습

    “후배 돈을 걷어 졸업생에게 반지를 해 주는 게 ‘미개하다’고 표현한다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수혜자가 된다 해도 생각은 같습니다.” 최근 ‘졸업반지 갹출’이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익명 페이스북 페이지)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1~3학년 후배들이 돈을 걷어 졸업하는 선배들에게 각각 10만원 상당의 반지를 건네는 간호학과의 연례행사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지켜 나가야 할 전통이냐, 물려줘선 안 될 악습이냐가 화두였습니다. 엇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충남대와 아주대 학생들도 논란에 가세했습니다. ●“1인 3만~4만원 내라고 일방 통보” 서울대 간호학과 A씨는 “매월 생활비도 부족한데 1인당 3만~4만원씩 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나는 졸업반이 돼도 반지를 안 받고 싶으니 이 악습이 조속히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냥 돈을 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한 재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안 내면 몇몇 선배들이 눈치도 주지만 소위 카톡 ‘감옥방’에 불려가 협박 아닌 협박을 받습니다. 돈을 안 낸 사람들의 명단을 게시하고 전통이니 함께하자고 하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거든요.” 충남대의 경우 1학년은 10만 5000원, 2학년 2만 5000원, 3학년은 2만원을 내도록 하고 있답니다. 특히 1학년은 금전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입니다. ●졸업반 “사회에서 만나자” 공지글 졸업반 중에는 서운하다는 감정을 공개적으로 게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졸업반지는 선후배 간의 존중, 그리고 간호대학 구성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대 간호학과 학생회는 ‘4학년 일동’이라는 제목의 공지글을 게시했습니다. 이 공지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또 ‘저희에게 뜻깊은 졸업반지를 선물해 주신 후배님들께 매우 감사드리는 바이며, 4학년들을 비롯한 간호대학의 모든 선배는 늘 후배를 생각하고 아끼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졸업을 앞두고 있으나 병원에서 후배님들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끝이 납니다. 마지막 말이 다소 무섭게 읽히는 건 취재기자만의 느낌일까요. ●논란 일자 반지 비용 돌려준 대학도 아주대에서도 졸업반지 갹출을 부당하다고 느낀 한 학생이 청와대 신문고에 이 사실을 알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반지는 받지 못하고 반지 비용만 부담했던 학생 전부에게 지난해 반지 비용을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징표라는 게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의 진심이 들어가야 자부심, 선후배 간의 존중 같은 그 안의 의미들이 빛나는 것 아닐까요.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사설] 법조비리 현실과는 괴리 큰 전관예우 방지책

    대법원이 그제 내놓은 전관(前官)예우 방지 대책을 보면 더 답답해진다. 이런 수준의 대책으로 실효가 있을지 현실의 벽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발표한 ‘재판의 공정성 훼손 우려에 대한 대책’은 법원의 사건 배당 방식을 바꿔 외부의 로비 변론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 사건을 맡았다면 그와 단 하루라도 함께 일한 대법관을 주심으로 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 배당 시기도 상고 이유서 및 답변서 제출 기한이 지난 뒤로 늦추기로 했다. 이번 대책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불법 변론 파동에 대한 사법부 차원의 후속 조치다. 전관예우 폐습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니 사법부로서는 스스로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던 형편이다. 대법원은 법정 밖 변론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기로 했다. 부적절한 청탁을 받은 판사가 그 내용을 신고하도록 부당 변론 신고센터를 개설하겠다는 것이다. 판사실로 걸려온 외부 전화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겠다는 방편까지 내놓았다. 판사가 외부 접촉을 못 하도록 장벽을 치겠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이런 방안을 그것도 대법원에서 내놓았을까 싶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늬만 대책’으로 생색만 낼 공산이 크다. 막대한 수임료를 받고 전관의 입김을 발휘하겠다고 작정한 변호사가 기껏 법원의 유선전화로 재판부 관계자와 통화하겠는가. 전관예우 폐단이 사회문제로 지탄받으면서 전관 변호사들은 이미 물밑 더 깊숙이 몸을 낮춰 불법 변론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실정인데 통화 내용을 녹음해 전관 로비를 차단하겠다니 코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전관들의 입김이 통한다는 것은 현관(現官)들이 틈을 열어 주고 있다는 얘기다. 현관들이 법복을 벗고 난 미래를 위해 품앗이하겠다는 계산이 아니라면 스스로 정신이 번쩍 들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정운호 게이트만 봐도 그렇다. 수백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전관 변호사는 있는데, 정작 프리미엄을 챙겨 준 현관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다. 전관예우는 사법부를 넘어 사회 통합에 찬물을 끼얹는 악습이다. 일부 전관들의 부적절한 처신만 탓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법원 내부의 대응 수칙만 만들 게 아니라 강력한 징계 규정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재판부 스스로가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진정성이 있어야 전관예우 악습은 뿌리뽑힐 수 있다.
  • [지금, 이 영화] 소녀와 여자

    [지금, 이 영화] 소녀와 여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1964년 김수영이 발표한 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보통 이렇다. ‘시인은 서구 근대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한국 고유의 전통을 옹호했다.’ 그렇지만 김수영이 염두에 둔 전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민족의 순수한 근원을 추구하는 태도는 그가 생각하는 전통과 상관이 없다.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시도와 연결될 때, 김수영의 전통은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복종을 강요하는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시구가 뒤에 괜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중동·아프리카에서 지금도 자행되는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여성 성기 절제)은 전통이라고 할 수 없다. FGM은 사라져야 할 악습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의 상대성을 내세우며 FGM을 계속 지키려 한다. 부족 문화인 FGM에 외부인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의 희생에 바탕을 둔 채 지속되는 행태를 ‘문화’라고 규정한다면, 우리가 그 문화를 존중해야 할 까닭은 없다. FGM은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이다. 음핵을 제거하거나 대음순과 소음순을 잘라내 봉합하는 위험한 시술을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FGM을 받아야 철모르는 소녀에서 우아한 여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끔찍한 성인식이다. FGM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만든다. FGM을 받은 소녀는 독립적인 여자가 아니라 얌전한 아내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섹스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느낄 수 없고), 육아와 살림에만 충실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인생이다.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를 보고 나서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됐다. 이제 나에게 ‘2월 6일’은 유엔이 정한 ‘FGM 반대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김효정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영화를 보고 FGM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응원하고 싶어요.” 적어도 한 명의 관객에게 그녀의 의도는 정확하게 실현된 셈이다. ‘소녀와 여자’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FGM 찬성과 반대쪽 의견을 같이 보여 주기는 하지만, 명백히 FGM을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보는 사람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이끌기보다 보는 사람을 계몽시키려는 목적이 강한 영화다. 다큐멘터리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다. 그런데 FGM이라는 문제적 대상을 고려하면, 편향성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소녀는 FGM을 받아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소녀가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은 FGM받기를 거부하고, 집에서 도망치기로 결단한 순간이다. 본인이 직접 자기 삶의 방향을 선택할 때, 어린이는 어른이 된다. 16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사설] 한·일, 북핵 협력과 과거사 문제 투 트랙 접근을

    북핵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 전선에서 크고 작은 틈이 여러 군데서 벌어지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회사 화웨이를 북핵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목하자 중국 측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15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만난 한·일 국방장관은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문제에서 엇박자를 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공동보조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과거사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또 결정적 국면에서 북한에 뒷문을 열어 주는 악습을 되풀이할 조짐이 아닌가. 한·일 양국이 북핵 협력과 과거사 협상을 분리하는 투 트랙 접근으로 국제 공조의 빈틈을 메울 때다.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 내려면 협상이든 제재든 주변국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관건이다. 특히 이란 핵문제 타결 사례를 되짚어 보더라도 일사불란한 제재가 생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금의 미·중 갈등이 매우 걱정스럽다. 사드 한반도 배치나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미국의 조치에 중국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면서 제재 공조에 누수가 생기면서다. 어제 중국 인민해방군 쑨젠궈 부참모장은 아시아안보회의 주제 연설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개리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선 “능동적으로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그물망처럼 촘촘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말까인데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중국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꼴이다. 이런 중국의 행보는 우리로선 매우 실망스러운 노릇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을 삐걱거리게 만들 우려를 무릅쓰고 대중 설득에 공을 들여 왔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날 미 조야 일각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어제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방 해역에서 중국 어선 2척이 연평도 어민들에 의해 직접 나포되는 황당한 사건의 원인(遠因)도 뭐겠나. 북핵 공조를 위해 중국과는 가급적 마찰을 피하려 한 관성이 낳은 부산물이 아니겠나. 그간 우리 수역에서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식 불법 조업이 다반사였지만, 우리 해경이 무력을 동원한 제재와 나포에는 매우 신중했다면 말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효과가 가시화하는 시점에서 중국의 ‘마이웨이’는 배신감을 느낄 만한 상황 전개다. 정부는 대중 설득 노력과는 별개로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국제 공조 강화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한·일 간 북핵 협력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할 때다. GSOMIA도 2012년 체결 직전에 보류된 사안이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군사협력을 추진한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해 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중국의 모호한 태도로 중대 기로에 선 상황이다. 우리는 한·일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한·미·일 대북 정보 공유에 추호도 허점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 [자치단체장 25시] 신계용 경기 과천시장

    [자치단체장 25시] 신계용 경기 과천시장

    눈이 커 눈물이 많다는 신계용(53) 경기 과천시장은 얼핏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만나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준다. 그가 살아온 삶은 화려하지는 않다. 그의 삶은 ‘봉사와 사회복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정치는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봉사’이고 ‘사회복지의 연장’이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지만 올바르고 성실한 삶의 자세와 가치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면서 사회복지를 알게 됐고 전문가가 됐다. 2남 2녀의 장녀로 경기 안양 관악산의 품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안양여고에 수석 입학했고, 1982년 서울대에 입학한 뒤 행시를 준비했다. 1차에 합격하고 2차 시험준비를 하던 중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1987년 서울신문에 난 민주정의당(현 새누리당) 사무처 공채 공고를 보고 응시해 덜컥 합격한 것이다. 20여년간 이어진 정당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양한 정치 경험을 쌓았다. 정당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때때로 자신이 당돌하다는 신 시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4년에 쓴 자서전 ‘정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봉사’에 그 일화가 잘 나와 있다. “여러 경험 가운데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 대통령인 박근혜 의원과의 만남이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 당내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앞두고 출마 입장을 미루던 박 의원을 만나 결단을 내려 줄 것을 부탁했다. 아무도 이야기를 못 하는 상황에서 여성국 부국장이던 내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가 “평소 잘 나서지 않지만 나서야 한다고 생각되면 앞뒤 좌우 살피지 않고 나서는 당찬 성격”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직선적이고 당찬 성격은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2006년 한나라당 중앙당 여성국장을 끝으로 당 공천을 받아 경기도의원에 당선됐다. 도의원으로 있던 2009년 각서를 쓰고 비례의원직 임기 4년을 2년씩 나눠 활동하는 악습을 없애는 데 앞장섰다. 그는 “의회의 비례대표직은 각서를 통해 주고받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4년의 임기는 어떤 외부 압력에 의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신 시장의 ‘무모함’은 과천시장 출마 과정에서도 그대로 보여 줬다. “활력을 잃어가는 과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활기찬 도시를 만들겠다”며 2014년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연고가 없는 과천시에 출사표를 던졌다.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받은 그는 “과천에 제 인생을 다 걸었다”며 “과천시를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냉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천에 학연도 지연도 없고 정치적으로 빚진 게 없다”며 “취임하면 소신껏 아무 거리낌 없이 일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대처했다. 과천을 강남벨트와 연결하고 아파트 재건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등 지역민심을 꿰뚫는 공약으로 민심을 잡았다. 과천시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된 것이다. 신 시장은 취임식에서 밝혔던 것처럼 여성의 섬세함과 강직함으로 새 과천시대를 열고 있다. 핵심 정책은 과천과 서울 강남을 잇는 강남벨트조성사업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제3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 및 광역철도 기본계획에 강남권 구간 지하철 신설사업의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문화·관광 거점을 조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과천복합문화관광단지’와 주암동 일원 ‘중심업무지역 및 글로벌비즈니스 타운’ 조성 사업도 추진한다. 취임 후 줄곧 도시의 새로운 동력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신 시장은 재건축 담당부서를 신설해 노후주택 정비에 속도를 낸다. 과천에는 노후 아파트가 많다. 자족도시 실현을 위한 갈현동 ‘지식기반산업용지’의 성공적 분양을 위해 입주기업체를 대상으로 인허가와 세무상담 등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그는 또 가족 친화마을과 돌봄공동체 가족품앗이 사업에 필요한 시설비와 운영비를 지원함으로써 따뜻한 복지공동체를 조성하고 활력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공약 중 하나인 20년 동안 방치됐던 우정병원도 조만간 새로운 기능을 하는 건물로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신 시장과 지난달 17일 하루를 동행해보니,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현장 방문에서 그대로 보였다. 푸른색 상의에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그는 오전 8시 25분 과천고등학교 정문에서 청소년수련관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진행하는 ‘친구소통 캠페인’ 행사에 참석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그는 등교하는 학생에게 일일이 설문용 스티커를 나눠 주며 “스마트폰 없으면 뭘 할래?”, “친구에게 엮였네” 등 살갑게 말을 건넨다. 30여분 동안 학생들 등을 토닥이기도 하고, 손바닥을 부딪치며 친근감을 표했다. 신 시장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친구들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얘기했다. 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2016년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 ‘관악산 산불대응 토론훈련’이 예정 시간을 10여분 넘겨 끝나자 신 시장은 서둘러 작업복을 입고 나섰다. 자원봉사자들과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식물을 제거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안양천으로 향했다. 이날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 있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식물 제거에 작게나마 손을 보탰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은 민원 상담을 하는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날 2건의 민원 상담이 이뤄졌다. 한 건은 지식정보타운에 편입되는 액화석유가스 판매점이 이전할 대체부지가 없어 폐업 위기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폐업하게 되면 3가족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었다. 법대로 진행되는 상황이라 해결책이 없는 민원이었다. 신 시장은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런 민원 상담도 고집한다. 민원인의 하소연이 이어지자 신 시장도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쉬며 공감을 해준다. 그도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을 잘 알지만 365일 언제나 시장실을 개방, 민원인의 입장이 돼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그런 모습에서 서민들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의 모습에 시민 윤미자(52·여·부림동)씨는 “신 시장은 서민들을 잘 보듬어 준다”며 “서민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흘려버리지 않고 꼭 지켜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재 과천시는 엄청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올해 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자족도시로서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키를 잡은 신 시장은 주거환경 조성과 도심 재정비사업 신속 지원, 따뜻한 복지공동체 조성, 소통하고 참여하는 시정 운영으로 행정도시의 명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문화·관광 도시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데 열정을 바치고 있다. 글 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시론] 왜 근로자 경영참여인가/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시론] 왜 근로자 경영참여인가/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한국 경제가 패러다임 전환의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정의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불평등의 심화가 더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불황에서 탈출하려면 불평등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IMF의 최근 보고서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점유하면서, 조사 대상 22개국 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로 꼽혔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에서 근로자 임금을 10년 사이에 2배 인상하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2020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을 10%로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70~8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정규직을 비정규직 수준으로 떨어뜨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IMF가 한국 불평등의 핵심원인으로 지적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적 고용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셈이다. 이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국정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자가 후자를 보장해준다는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런 불평등을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근로자 경영참여이다. 투명하게 공개된 경영정보에 기초해 근로자 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 경영참여는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근로자의 반발과 갈등은 비용을 초래하는데 반해 합의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강한 추진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에 따르는 근로자의 ‘주인의식’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질적으로 높이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노사 모두에게 자유(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요구한다.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형식적인 고통전담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지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로써 한국경제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허울뿐인 한국 시장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정경일체’를 타파하는 기제로도 작동한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조선·해운산업의 대량부실의 근저에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는 감독의 부실이 자리잡고 있다. 법조계 고질병으로 지탄받는 ‘전관예우’가 이제는 정부 전반으로 확산됐다. 관료들은 퇴임 후 자리를 준비하고,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공기관과 기업은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총체적 부실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근로자 경영참여가 내부 통제장치로 필요해지는 이유이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최근 국민의 공분을 사는 악습인 ‘갑질’의 뿌리를 자르는 효과도 가져다줄 것이다. 노사 동반자 관계가 정립되는 것은 곧 노동의 가치, 인간의 존엄이 회복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실에서 근로자 경영참여가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의 이기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 정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여서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차별이 없는 생산현장에서는 차별을 굳히려는 이기주의도 설 땅이 없을 것이다. 노사갈등이 심각한 한국경제에서 근로자 경영참여는 적합하지 않다는 거부감 또한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과 배치되는 빌미이다.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던 노사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가 바로 독일의 공동결정제와 같은 근로자 경영참여였다. 노사갈등의 대안을 순종적 근로자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노사협력은 근로자 경영참여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한국경제가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포용적 성장’을 통해 재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판이 될 것이다.
  • [경제 블로그] 채권단 ‘STX조선 포기’ 왜

    [경제 블로그] 채권단 ‘STX조선 포기’ 왜

    ‘강성’ 노조, 회사 침몰에도 상여금 등 기득권 고집 아쉬워 뒷짐 진 정부·표심 의식 정치권·무능한 채권단도 책임 커 5개월 만의 ‘변심’입니다. 지난 25일 STX조선해양 법정관리를 결정한 채권단 얘기입니다. 채권단은 시장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도 STX조선을 포기하지 않았더랬죠. ‘여전히 회생 가능성이 높다’며 4500억원을 추가 지원한 것이 불과 지난해 연말 얘기입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채권단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법정관리행을 두고 채권단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STX조선 ‘포기’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노조 때문이었죠. STX조선 노조는 지난달 말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회사가 상여금 550% 지급을 보류하고 직원들 복지를 축소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반발이었죠. ‘3년 넘게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아 왔지만 회사 위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 운영자금으로 채권단 뱃속(이윤)만 채우고, 노조엔 일방적 양보와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게 성명서 요지입니다. 냉정하게 따져 보겠습니다. STX노조는 ‘강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덕분(?)에 중형 조선소임에도 1인당 임금은 업계 최고 수준(연봉 7600만원)입니다. 업계 최고 대우를 받는 노조이지만 회사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기득권은 쉽사리 내려놓지 않으려 했죠. 노조는 올해 3월 회사를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습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지급하던 자녀 학자금, 의료비 등 복지 혜택을 노조 동의 없이 중단했다는 게 이유였죠. 숙련공들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경쟁사로 이직을 반복하는 업계 악습은 선박 인도 지연으로 연결됐습니다. 채권단 관계자는 “4~5명의 기술자가 어느 날 한꺼번에 출근하지 않아 연락하면 다른 회사에 출근해 있더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물론 뒷짐만 졌던 정부와 표심만 의식한 정치권, 무능한 채권단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닙니다. 구조조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다만 노조에도 묻고 싶습니다. 과연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맸는지를요. 전 세계 조선업계를 휩쓸던 ‘통영·거제의 봄날’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노조의 뼈를 깎는 희생 없인 이 구조조정 파고를 넘을 수 없단 사실을, 그 봄날도 되찾아 올 수 없단 사실을 되새겨 주길 바랍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왜 근로자 경영참여인가!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왜 근로자 경영참여인가!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한국경제가 패러다임 전환의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정의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불평등의 심화가 더는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불황에서 탈출하려면 불평등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IMF의 최근 보고서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점유하면서, 조사 대상 22개국 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로 꼽혔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에서 근로자 임금을 10년 사이에 2배 인상하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2020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을 10%로 낮추고,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70~80%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정규직을 비정규직 수준으로 떨어뜨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IMF가 한국 불평등의 핵심원인으로 지적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적 고용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셈이다. 이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국정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자가 후자를 보장해준다는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런 불평등을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근로자 경영참여이다. 투명하게 공개된 경영정보에 기초해 근로자 대표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 경영참여는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근로자의 반발과 갈등은 비용을 초래하는데 반해 합의에 기초한 의사결정은 강한 추진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에 따르는 근로자의 ‘주인의식’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질적으로 높이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노사 모두에게 자유(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요구한다.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형식적인 고통전담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지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로써 한국경제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허울뿐인 한국 시장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정경일체’를 타파하는 기제로도 작동한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조선해운산업의 대량부실의 근저에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조하는 감독의 부실이 자리 잡고 있다. 법조계 고질병으로 지탄받는 ‘전관예우’가 이제는 정부 전반으로 확산됐다. 관료들은 퇴임 후 자리를 준비하고, 정부 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공기관과 기업은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총체적 부실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근로자 경영참여가 내부 통제장치로 필요해지는 이유이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최근 국민의 공분을 사는 악습인 ‘갑질’의 뿌리를 자르는 효과도 가져다줄 것이다. 노사 동반자 관계가 정립되는 것은 곧 노동의 가치, 인간의 존엄이 회복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실에서 근로자 경영참여가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의 이기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 정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여서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차별이 없는 생산현장에서는 차별을 굳히려는 이기주의도 설 땅이 없을 것이다. 노사갈등이 심각한 한국경제에서 근로자 경영참여는 적합하지 않다는 거부감 또한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과 배치되는 빌미이다.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던 노사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가 바로 독일의 공동결정제와 같은 근로자 경영참여였다. 노사갈등의 대안을 순종적 근로자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노사협력은 근로자 경영참여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근로자 경영참여는 한국경제가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포용적 성장’을 통해 재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판이 될 것이다.
  •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흑룡강성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

     지난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마지막 위안부 이수단 할머니의 가슴 아픈 인생사가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할머니의 슬픈 사연에는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 뿐 아니라 조선의 악습과 무능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22일 중국 내 최대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은 이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상세히 전했다.  1921년 평양 부근 농촌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되던 해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듬해 남편과 딸이 병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진 할머니는 시댁에서 나와 친정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부친은 새로 맞은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내친 상태. 슬펴할 겨를도 없이 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살때 어머니마저 큰 병에 걸려 급하게 치료비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중국 하얼빈에서 일할 공장 노동자를 모집한다’며 여종업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이 할머니는 이들의 말만 믿고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얼빈에 따라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가 간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와 함께 끌려온 여성은 7~8명 정도였으며, 가장 어린 처녀는 13살 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시집도 안 간 처녀들이어서 이들은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 알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안돼 다시 잡혀와 죽도록 매를 맞길 여러번. 이들은 “누구든 도망칠 생각을 아예 말라”고 윽박지르며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다.  이 할머니는 21살 때 중국과 러시아와 접경지역인 헤이룽장성 둥닝셴(東寧縣)에 있는 일본 관동군 위안소로 옮겨졌다. 당시 이곳에는 13만명의 관동군이 주둔하고 있어 수천명의 위안부가 필요한 상황. 할머니는 이곳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했고 함께 간 위안부들이 병과 폭행에 시달려 죽어가는 것을 보며 혼자 가슴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패망 무렵 이곳에서 사변이 일어나 혼란해진 틈을 타 이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들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할머니는 어두운 과거를 끝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군에게 버림받았고 남북한 정부도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도 둥닝셴에 남아 중국인 남성을 만나 다시 결혼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두 번째 남편은 그가 위안부 출신인 것을 불쾌해하며 수시로 모욕하고 때렸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모든 것을 참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려 했지만 강도가 더해가는 폭력에 위안부 출신이라는 비관,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80년대 초 헤이룽장성 정부는 할머니를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 양로원에 보냈다. 할머니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강변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며 회한을 달래곤 했다고. 말년에는 인형을 끔찍히 좋아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두 아기인형에 ‘량량(亮亮)’과 ‘뉴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돌봐온 양아들 고지상씨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지 못한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해 왔으며 연세가 많아질수록 인형들을 더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 돼 우리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민족에 대한 정체성만은 확고했다고 한다.  2007년 하얼빈시 조선족 예술관에서 할머니에게 한복을 선물하자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죽을 때 이 한복을 입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평양에 사는 남동생에게 연락이 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모셔가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평양에는 친척이 없고 그저 배다른 남동생만 한 명 있을 뿐이다. 조선말을 잊어버려 남한이나 북한 어딜 가더라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곳(둥닝셴)에선 모두 나에게 잘 대해주니까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사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집’ 원장 혜진(惠眞) 스님이 1998년 이곳에 들러 이 할머니를 포함해 당시 5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일 이 할머니는 생전 유언대로 한복을 입은 채 화장돼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중·한우호공원에 안치됐다.  이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주심양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열린세상] 다시 ‘행정 민주화’를 생각한다/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다시 ‘행정 민주화’를 생각한다/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는 ‘행정 민주화’라는 말을 잊어버린 듯하다.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물론 행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정치 민주화와 함께 행정 민주화는 모든 행정기관들이 수시로 사용하는 행정용어였음에도 이제는 한 세대의 유행어처럼 흔적만 남아 있다는 느낌이다. 이렇듯 기억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행정 민주화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방 후 행정 민주화는 이른바 ‘신민’(臣民)에 대한 수탈과 억압의 주체였던 일제강점기의 행정 악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대적 과제였다. 이는 공무원들에게 자기편이 돼 달라는 힘없고 굶주린 백성들의 작은 소망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48년 경찰들을 총괄하는 경무부장은 ‘고마운 경찰, 미더운 경찰, 반가운 경찰’을 표방하며 주민에 대한 친절과 봉공의 자세를 강조했고, 1960년대 초 내무장관은 새해 첫 기자회견에서 행정 민주화를 첫 번째 행정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정 민주화 노력들은 대부분 선언적 구호나 표어에 그쳤지만, 위민행정(爲民行政)의 씨앗을 뿌린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들어 행정 민주화는 국민의 행정 참여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경제발전과 산업화로 가려진 그늘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행정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는 행정은 더이상 가능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게 됐다.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성이 행정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해 지방 행정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행정절차법과 정보공개법을 제정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2000년 이후에도 행정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인해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행정은 급격하게 수평적 구조로 전환됐고,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문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권력자의 일방적인 통치가 아닌 개방과 공존의 협치 행정으로 변모한 것이다. 과거에 누리던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행정 내부의 분권과 자율을 실천한 것 또한 행정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어떤가.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은 수렴되지 못하고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전히 침묵하는 다수는 ‘대나무숲’을 찾고 있다. 지난 역사가 보여 준 행정 민주화의 궤적은 지나친 성과주의와 실용주의에 매몰돼 희미해지고 있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에 따르면 “규율사회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뇌리에서 잊혀 가는 행정 민주화를 다시 깨워야 한다. 국민 중심, 인간 중심의 행정 민주화를 시작해 보자. 첫째, 정부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권력의 종말’의 저자 모이제스 나임이 지적했듯이 현대 사회는 정부와 군대 같은 거시적 권력들이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미시적 권력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미시적 권력을 발휘할 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국민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해 충분한 토론과 논의의 기회를 갖도록 해 주어야 한다. 공무원들도 정책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둘째, 따뜻하고 인간적인 과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눈에 보이는 목표와 성과만을 강조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공성과 인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목격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만 보더라도 오랫동안 말없이 피눈물만 흘려야 했던 국민들을 보듬지 못한 행정 시스템에 분노와 함께 자괴감이 느껴진다. 행정이 왜 존재하는지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도 행정 민주화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권위적인 행정 운영이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 민주화를 통해 정부와 국민이 함께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다 함께 ‘행정 민주화’를 소리 높여 불러 보자.
  • 美법원 “지문 이용해 풀게 하라” 다시 불붙은 아이폰 잠금해제

    국가 안보와 사생활 보호 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아이폰의 비밀번호 잠금장치 해제가 이번에는 지문 제공과 관련한 위헌 논란으로 커지고 있다. 앞으로 홍채 및 목소리 인식 등 바이오 잠금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논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일(현지시간) 미국 ABC뉴스 등에 따르면 미 법원은 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한 갱단 두목의 여자친구(29)의 지문을 이용해 그녀의 아이폰 잠금을 풀도록 강제해 달라는 수사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 이를 두고 ‘지문은 머릿속 생각과 달리 수정헌법 5조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와 ‘지문 제공 역시 결과적으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 수정헌법에 어긋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증거를 수집하는 전통적 의미의 지문이 아니라 아이폰에서의 지문은 비밀번호와 마찬가지라는 게 취지다. 미국 수정헌법 5조는 형사사건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도록 ‘자기부죄(自己負罪) 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영국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시대 마녀사냥 등에서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내던 악습을 뿌리 뽑아 권력기관이 머릿속 지식들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2013년 애플이 ‘아이폰5S’에 지문 인식 기능을 도입했을 때부터 “지문 인식 기능이 수정헌법 5조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4~6자리의 ‘패스워드’는 무형의 지식으로 진술 거부권에 포함될 수 있지만 지문이나 DNA 등은 단순한 물리적인 정보일 뿐 머릿속 지식이 아니어서 수정헌법 5조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범죄 증거가 담긴 금고를 열기 위해 피의자에게 비밀번호를 말할 것을 강요한다면 이는 수정헌법 제5조 위반에 해당하지만 단순히 금고 열쇠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수정헌법 5조와 무관하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미 스탠퍼드 로스쿨 ‘인터넷과 사회센터’의 알버트 지다리 교수는 “지문 인식은 증거나 자기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비밀번호를 푸는 것과 달리 사법 당국에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하도록 강요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이폰 해제를 위한 지문 제공이 결과적으로 헌법을 위배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지문 등 생체 인식 제공도 범죄와 관련해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증거를 제공하는 자기부죄로 폭넓게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사기관이 비밀번호를 요구할 수 없다면 비밀번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지문 등 생체정보도 요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근 미 데이턴대의 수전 브레너 교수는 LA타임스에 “지문 제공도 수정헌법 5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브레너 교수는 지문 인식으로 제공한 아이폰 안의 내용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소유자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이 더해져) 그를 유죄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오늘의 눈] ‘낙하산’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온다/김경두 경제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낙하산’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온다/김경두 경제정책부 기자

    최근 사석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와 만나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비판했다. 기업별로 옥석을 가려서 금융 지원에 나서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하다가 문제가 생기니 정부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대출·보증→구조조정 지연→건전성 악화→정부 출자’와 같은 과거의 악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정책금융기관을 둘 이유가 없다고 성토했다. 이 기관들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국민 혈세로 생색내고 이들의 빈 곳간을 다시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면 그런 정책금융기관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현대상선 등에 13조원에 육박하는 대출과 보증을 해 줬다. 자본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도 9%대에 그치고 있다. 시중은행의 평균 수준(15%)보다 훨씬 낮다.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조선·해운 업종에 노출된 위험액이 8조 4000억원이나 된다. 자기자본비율이 14% 수준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부실 여신이 많아 10% 이하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런데 이 모든 책임을 단순하게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물어야만 할까. ‘낙하산 인사’를 CEO나 감사로 내려보낸 것이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정책금융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CEO에게서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것 자체가 희화적이다. 그 결과가 수조원대가 될지, 수십조원대가 될지 모르는 국민 혈세 투입이다.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대 분식회계 등을 메우기 위해 세금이 쓰인다고 생각하면 몸에서 천불이 나는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최근 공공기관 인사에 큰 장(場)이 섰다. 임기가 끝난 CEO와 감사가 꽤 있었지만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뛰쳐나간 분들이 적지 않다. 현재 CEO가 공석인 공공기관은 코레일과 대한법률구조공단, 지역난방공사 등 8곳이나 된다. 특히 연말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장을 포함하면 90곳이 넘는다. 전체 공공기관의 28% 수준이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 전·현직 인사가 아리랑TV 사장으로, 국민은행 감사로 내려간다는 ‘낙하산 하마평’이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다. 지난 25일 한국전력 임시 주주총회에서 낙하산 인사인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상임감사로 선임됐고,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비상임 감사위원으로 재선임됐다. 한전 자회사인 발전사들도 줄줄이 전문성이 없는 정치권 인사를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낙천된 여권 인사들이 이곳저곳에 줄을 댄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 눈높이나 총선 민심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야말로 공공기관 개혁을 빙자한 ‘자리 챙겨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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