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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노씨 법정태도 비교

    ◎전씨­당위성 떳떳하게 주장… 휴정땐 웃음/노씨­“그런것 같다” 식 답변… 줄곧 고개숙여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11일 상오 법정에서 수의를 입고 살며시 손을 잡았다. 79년 12·12사건으로 군권을 찬탈한 전씨는 반란수괴 혐의로,노씨는 반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법정에 섰다. 16년전 머리를 맞대고 모의한 「거사」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는 두 피고인은 때로는 당당하고,때로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수감번호 3124를 단 전씨와 1042번의 노씨는 어깨를 펴고 비교적 여유있게 들어섰다. 검찰의 공소장 요지 낭독이 끝난 뒤 변호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자 두 피고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씨는 다리를 가끔 쭉 뻗는가 하면 팔짱을 끼고 몸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댄채 변호인들을 쳐다보기도 했다.12·12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들고 법정 정면에 있는 법원 마크를 응시하며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반면 노씨는 줄곧 약간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변호인의 주장을 들었다. 전씨의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는 「변호인단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1시간30분 동안이나 읽었으나,노씨의 변호인인 한영석변호사는 5분 정도 모두진술을 했다.두 피고인의 비중이 여실히 드러났다. 낮 12시 휴정되자 전씨는 웃음을 띠며 노씨를 비롯,옆에 있는 피고인 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조용히 안부를 묻거나 격려했다.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전씨는 답변중인 노씨에게 말을 건네다 김상희부장검사로부터 『가만히 있으십시요』라는 제재를 받는 등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노씨는 검찰의 신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관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10·26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 노씨는 『모셔와 설득,알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전씨가 검찰의 조사에서 『수사를 위해 연행했다』고 진술한 것과 비교,이 사건의 주종 관계처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노씨는 『12·12사건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한 일』이라며 다른 피고인들이 지금껏 되풀이했던 12·12의 정당성을 소리 높이 진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전씨가 입정할때 대부분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노씨 입정때는 그러지 않았다.
  • 방콕 사흘째(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한·일 정상 「독도」 중압감속 80분간 대좌/하시모토,김대통령에 일출사진 선물/“총리취임 축하”에 “선배로 지도해 달라” 아시아·유럽정상회담 3차회담을 마친 2일 하오 열린 한·일정상회담은 최근 미묘한 현안으로 떠오른 독도 영유권문제와 관련,김영삼대통령의 「수위 높은」입장 전달과 함께 하시모토 총리의 원론적 원칙천명이 이뤄졌으나 선린우호 관계를 다져나가기 위한 공동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2일 하오 아시아·유럽정상회의가 폐막된 직후 숙소인 쉐라톤호텔 2층 소회의실에서 하시모토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독도영유권문제등 한일양국현안에 관해 깊이있게 논의. 하오5시(현지시간)로 예정된 회담시작시간 3분전에 미리 와있던 김대통령은 곧이어 도착한 하시모토총리를 맞아 얼굴에 웃음을 띠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고 양국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다만 양국 모두 독도문제라는 어려운 현안을 다뤄야한다는 중압감때문인지 회담장은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 김대통령의 안내로 회담장중앙에 나란히 마련된 자리앞으로 이동한 두 나라 정상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시한번 악수를 교환. 하시모토 총리는 이때 『금년도 새해 첫날 일출장면을 직접 찍은 사진』이라며 신문지크기만한 액자를 선물로 증정하자 김대통령은 『매우 값진 선물이 되겠다』며 사의를 표했는데 액자 오른쪽맨위에는 금분으로 「김영삼 대통령각하」라고 씌어있었다. 김대통령은 자리에 앉은뒤 『지난번 전화통화를 했지만 총리에 취임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하시모토 총리는 『대통령각하께서 선배로서 잘 가르쳐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화답. 하시모토 총리는 이어 『지난해 오사카 APEC정상회의때 많이 협조해 주신데 감사드리며 특히 농업분야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셨다』고 거듭 사의를 표명. 김대통령은 이어 『이번에 처음 열린 ASEM회의도 잘 진행됐다』면서 『통역시설이 발달돼 각국 정상들이 자유스럽게 발표한 의견이 전부 통역됐는데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소감을 피력. 두 나라 정상은 이어 보도진을 전부 물리친채 양국외무·통산장관등 8명의 배석자가 참석한 가운데 하오 5시45분까지 확대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이어 6시20분까지 공로명 외무장관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 김하중 외무부 아주국장만이 배석한 단독정상회담을 계속.
  • 전씨 체중 65.5㎏… 이상 증세 없어/안양교도소 재수감 언저리

    ◎“교소도서 요양해도 무리 없을 것” 소견서/주치의 “보름치 약주고 식사 꼭 하라 권유” 경찰병원에 입원한지 73일만인 2일 상오 안양교도소에 재수감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또다시 3.5평짜리 독방에서 수형생활을 시작했다. ○…전씨는 상오 11시30분쯤 병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교도관 10여명과 함께 호송 승합차를 타고 교도소로 향했다.이 모습은 취재진에 공개되지 않았다. 전씨는 출발에 앞서 이권전 진료1부장 등 의료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호송 승합차는 가락시장∼양재대로∼인덕원 사거리를 거쳐 32분만에 교도소에 도착. ○…이에 앞서 상오 8시30분쯤 전씨의 이감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이양우 변호사는 『그 분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부인 이순자씨도 둘째 아들 재용씨와 함께 아침 일찍 전씨를 면회. 경찰병원 주치의인 이권전부장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아쉽다』며 『앞으로의 진료는 교도소에서 알아서 하겠지만 보름동안 복용할 두통약과 위장약을 주었다』고 말했다.또 『교도소에서 당분간 죽을 제공할 것으로 알고 있으며,식사를 거르지 말라고 권했다』고 덧붙였다. ○…교도소에 도착한 전씨는 첫 수감 때와 마찬가지로 보안과장으로부터 간단한 수칙을 듣고 의료진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았다.구속 전 체중이 74㎏이던 전씨는 단식으로 62㎏까지 줄었으나 지금은 65.5㎏ 정도.특별한 이상 증세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그동안 입원했던 경찰병원의 병실 7102호는 10평 크기로,흰색 옷장에 카키색 담요 2장,냉장고 안에는 마시다 남은 식수병이 들어있었다. ○…법무부는 전씨의 이감을 그가 지난 번 첫 공판에서 검찰을 곤혹스럽게 한데 대한 「괘씸죄」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이 일자 『경찰병원에 수용할 사유가 해소됐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 관계자는 『경찰병원 의료진들이 교도소에서 요양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소견서를 보내 재수감키로 결정했다』고 설명. ○…검찰 관계자들은 전씨의 재수감에 대해 『법무부에서 알아서 한 것이며 우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언급을 회피. 전씨를 수사해 온 서울지검 관계자는 『전씨가 건강을 회복했다면 재수감은 당연한 조치』라며 『솔직히 병원에서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두환씨 재수감 일지 ▲95년 12월3일=12·12사건과 관련,반란수괴 등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구속수감.설탕물과 소금 등만 먹으며 단식 시작. ▲12월20일=경찰병원으로 이송,7102호실에 입원. ▲12월21일=반란수괴 등 혐의로 기소. ▲12월29일=단식 중단. ▲96년 1월12일=비자금사건으로 특가법의 뇌물수수혐의로 추가기소. ▲1월21일=5·18사건과 관련,내란 등 혐의로 추가기소. ▲2월26일=비자금사건으로 첫 공판. ▲3월2일=안양교도소에 재수감.
  • 뉴델리 사흘째(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정상대좌 90분… 한·인 우호 돈독히/“양국 「태평양­인도양 시대」 새 동반자”­김 대통령/“김 대통령 방인 관계개선 초석 확신”­라오 총리 인도 방문 3일째인 김영삼 대통령은 26일 한·인도정상회담을 가졌고 인도경제단체 주관 오찬에 참석하는등 두 나라의 우호·협력관계를 다지는 막바지 일정을 보냈다. ▷한·인도 정상회담 주변◁ ○…김대통령과 나라시마 라오 인도총리의 정상회담은 하오 4시15분(한국시간 하오 7시45분)부터 1시간30분동안 인도 정부 영빈관인 하이드라바드 하우스에서 진행. 단독회담에 이어 확대회담으로 이어진 이날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21세기를 향한 동반자 관계」라는 회담 주제에 걸맞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계속. 하오 4시10분 영빈관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현관에서 인도 의전장의 영접을 받으며 단독 회담장인 데칸실로 들어가 라오 총리와 반갑게 악수를 교환. 이어 양국정상은 잠시 날씨 및 건강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누고 회담장 앞 마당으로 나가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한뒤 곧바로 단독회담에 들어갔다.회담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확대 회담은 하오 5시부터 컨퍼런스룸에서 양국의 배석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국의 실질 협력관계 증진을 주 의제로 진행. 회담을 끝낸 양국 정상은 무갈룸으로 이동,공로명 외무장관과 무케르지 인도 외무장관이 서명하는 「한·인도 투자보장협정」과 「한·인도 공동위원회 설립 협정」의 조인식에 참석. 이어 하오 5시45분 김대통령은 라오 총리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 로비로 이동,『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한뒤 숙소인 대통령궁으로 출발. ▷환송만찬◁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 저녁 3박4일간의 인도 국빈방문 마지막 공식일정으로 라오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 두 정상은 이곳에서 양측 참석자들을 소개받고 잠시 자리에 앉아 환담.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도 정부와 국민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한다』며 자신의 인도방문이 양국의 관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언급. 라오 총리도 김대통령의 인도방문이 한·인도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 환담에이어 두 정상은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 이날 만찬은 공식만찬사와 건배제의없이 진행되었으나 두 정상은 통역을 통해 양국 관계와 김대통령의 방문등에 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 개인적 우의를 과시. 이날 만찬에는 한국측에서 공식수행원 전원과 수행기업인 등 약 50명이 참석. ▷인도경제단체 초청 오찬◁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낮 인도 상공회의소 등 경제 3단체가 공동 주최한 오찬연설에서 『태평양과 인도 경제권을 서로 통합하고 두 나라가 양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상호 긴밀히 협조해 나가자』고 강조. 김대통령은 뉴델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이날 오찬에서 「태평양·인도양 시대의 새로운 동반자관계」란 주제의 연설을 통해 『한국과 인도는 매우 친밀한 문화적 역사적 유대를 갖고 있으며 인도의 개방정책과 한국의 세계화,개혁·개방 정책이 맞물려 무역 투자 기술등에서 양국간 경협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제의. 김대통령은 또 인도측 경제인으로부터 『오는 2000년까지 양국 교역량을 50억달러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측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중국과는 지난 3,4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2백억달러에 이르는 교역을 이루게된 경험을 바탕으로 할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수치』라고 말하고 『양국은 폭넓은 개방과 함께 관세·금융면 등에서의 개방이 필요하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또 『한국의 유수한기 기업들의 인도 투자 확대를 위해 한국정부가 취할 조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인도정부가 최근 현대와 삼성그룹에 대해 투자승인을 해준 것이 좋은 시금석』이라고 강조. 한편 디팍 방카인도상공회의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9억인구의 이름으로 오는 2002년 월드컵축구의 한국유치를 기원한다』고 말해 참석 인사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기도. 오찬에는 디팍 방커 상공회의소회장,치담바람 상공장관 등 인도의 정·재계,언론계 인사 2백여명과 우리측의 최종현 전경련회장,김상하 대한상의회장,박상희 중소기협중앙회장 등 39명이 참석.
  • 전씨 비자금 공판­법정진술 표정

    ◎돈성격 물을땐 큰소리로 “정치자금”/2천억 받은사실 작은소리로 인정/전씨 「뇌물 혐의」 부인에 안간힘/당당하게 입정… 신문하자 「환자」로 돌변 두 얼굴의 전직 대통령.26일 상오 10시 법정에 선 전두환씨는 확신에 찬 양심범과 늙고 병약한 죄인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뇌물 혐의를 벗어나려 애썼다. 43개 기업체로부터 2천2백여억원을 받은 사실은 병약하고 작은 목소리로 인정하고 돈의 성격은 고개를 들고 큰 목소리로 관행에 따른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추악한 실체를 벗기기 위해 끈길진 신문을 계속했고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을 강도높게 부인하며 공방을 폈다. 상오 9시18분 서울지법 구치감에 도착한 전두환씨는 호송버스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향하면서 다소 미소지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상오 10시 개정과 동시에 김영일 재판장이 『피고 전두환』을 호명하자 흰 죄수복 차림의 전씨가 2분여 뒤에 다소 꾸부정한 모습으로 입정했다.가벼운 목례와 함께 자리에 앉은 전씨는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소와 직업을 말했다. 재판장의 『앉으십시오』라는 말에 가벼운 목례와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한 전씨는 건강상태에 대한 재판장의 질문에도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답했다.무력으로 국권을 휘어잡았던 독재자답지 않은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순간이었다. 공소요지의 낭독이 끝나기 무섭게 변호인단은 뇌물과 전씨의 직무 관련성에 대해 명확히 적시하는 「석명권」을 행사하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며 공소기각을 주장했다. 전씨는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은 정치자금이었으며,모두 청와대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받았다고 진술하며 특혜는 전혀 없었다고 일관했다. 한시간여쯤 신문이 계속되자 전씨는 병약한 기색으로 돌변,변호인단은 신문중단을 요구했고 재판부는 일시 퇴정을 명령했다. 하오 2시30분 속개된 재판에서 전씨는 더욱 강도높게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정치자금은 한국정치의 관행이고,기업인은 「정치 및 안보의 안정=기업안정」을 위해 돈을 낸다고 주장했다.병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뇌물과 연관되는 구체적인 직무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고 발뺌했다.정치자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설교장이나 다름 없었다. 큰 소리로 자신의 대통령 재직사실과 헌법상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 대답하고도,뇌물수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실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발뺌하는 두 모습이었다. 점심을 위한 휴정시 안현태씨 등 5명이 피고인들 및 담당 검사와 악수를 나누는 전씨의 모습도 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통령으로서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어마어마한 돈이 뇌물임을 밝히려는 검찰의 끈길긴 신문이 오히려 안타까워보였다.
  • 전씨 비자금 공판­재판 열리던 날

    ◎점심 휴정때 검사들과 일일이 악수/“주소는 안양교도소…” 대답에 방청객 폭소/법정분위기 의식한듯 꼿꼿한 자세유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구속 86일만인 26일 서울지법 4백17호 대법정에서 열려 재판부의 인정신문과 검찰의 직접신문 순서로 두차례 휴정 끝에 하오 5시쯤 끝났다. ▷공판◁ ○…전피고인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주소 및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주소를 「안양교도소」라고 대답해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전피고인은 곧 『안양교도소에 있다가 경찰병원으로 옮겼으며 현주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2동 95의4 입니다』고 정정. ○…전피고인의 변호인 전상석 변호사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나자 『공소장에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희박하게 기술됐기 때문에 뇌물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공소기각을 10여분에 걸쳐 주장. 변호인단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어린애들 말처럼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반박해 방청객들이 실소.검찰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뇌물성이라고 하더라』고 다그치자 전씨는 『그 사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겠다』라고 말해 다시 폭소. ○…전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1시간15분 가량 진행된 상오 11시30분쯤 전변호사는 『신문이 길어지면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며 재판부에 전피고인이 쉬게 해달라고 요청. 이에 김부장판사는 『힘이 드느냐』고 전피고인에게 묻고 『약간 힘든다』고 대답하자 10분간 휴식을 허용. 낮 12시10분쯤 상오 공판이 끝나자 전피고인은 옆자리의 안현태씨 등 피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김부장검사 등 공판담당 검사들과도 웃는 낯으로 악수했다. ○…전피고인은 하오에 이어진 검찰신문에서 『기업인들의 성금 기부는 모두 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는 『재임 때 정치자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소신을 번복. 전피고인은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했다』며 『기업인들은 정치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또 세금을 낸다는 사명감으로 돈을 냈다』고 주장. ○…전씨 비자금 사건 2차 공판이 50일 뒤인 4월15일로 늦춰진 것과 관련,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는 『전피고인 등이 관련된 12·12 및 5·18 사건의 심도깊은 재판을 위해 기일을 늦춰잡았다』고 설명하고 『두 사건은 수사기록이 워낙 방대해 재판부와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을 검토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하오 5시쯤 공판을 마치면서 『전피고인의 건강이 매우 부실하다는 사실이 오늘 드러났다』며 전씨를 향해 『전피고인,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입니다.건강에 유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입정◁ ○…재판부가 상오 10시에 입정,『96고합 12호,병합 96고합 95호,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하자 전피고인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 전피고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편 자세를 유지.가끔 법정분위기에 위축되지 않으려는 듯 다리를 흔들거나 몸을 뒤로 젖히기도. ▷병원·법원 주변◁○…경찰은 법원과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17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물샐 틈 없는 경비.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방청권 구하기 전쟁」도 노씨의 첫 재판 때보다 치열해 노씨 재판 때 최고 30만원에서 이 날은 50만원에 거래됐다. ▷구치감 도착◁ ○…전피고인은 경찰병원을 출발한지 20분만인 상오 9시17분쯤 앰뷸런스를 서울지법 청사 구치감에 도착. 이어 엷은 하늘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결수 번호 「3124」번을 달고 차에서 내려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 구치감으로 이동. 전피고인은 지하 구치감 바로 앞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왼손을 치켜올리는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출정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과시. ▷방청석◁ ○…법정 방청석에는 재국·재용·재만씨 등 전피고인의 세 아들과 김진영 전 육참총장 등 측근 몇명이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재국씨 형제는 9시15분쯤 법원청사로 들어오다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로부터 계란세례를 받기도. 「민가협」 등 재야단체 회원들이 대거 방청석을 차지했고 지난 91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도 방청했다. ▷연희동◁ ○…전피고인의 아들 삼형제는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상오 8시30분쯤 연희동 집을 출발.그러나 부인 이순자씨는 첫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방청을 포기.연희동관계자는 『이씨가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고 귀띔.
  • 대조적인 전·노씨 법정태도

    ◎여유있고 당당한 모습/자신의견 강한 어조로 구체 진술­전씨/고개 숙인채 의기소침/간결·두리뭉실한 답변으로 일관­노씨 법정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다소 창백했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지난 해 12월18일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법정에 섰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달랐다.노씨는 비교적 자신 없고 의기소침했었다.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전씨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고 구체적으로 밝힌 반면 노씨는 간결하고 두리뭉실한 답변으로 일관했었다. 옅은 하늘색 수의 차림으로 법원에 도착,호송버스에서 내린 전씨는 주위를 둘러보다 『건강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손을 들어보이며 작은소리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등 비교적 여유있게 구치감으로 갔다. 그러나 첫 공판 때 구치감에 들어선 노씨는 흰 솜옷 소매에 양손을 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초췌한 기색이었으며 기자들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재판부가 낮12시 휴정하자 전씨는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피고인들은 물론 검사들과도 일일이 악수를나눴다. 전씨도 노씨처럼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지만 『대가성 뇌물이 아닌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노씨는 검찰의 신문에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또는 『기억이 안 납니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에비해 전씨는 처음부터 『안가에서 돈을 받은 적은 없다.접견실이나 서재에서 받았다.대통령은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힘차고 뚜렷한 목소리로 맞섰다.
  • 뉴델리 첫날(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김 대통령 “한­인 힘합쳐 새 실크로드 열자”/두 정상 “경협 늘려야” 한목소리 강조/인,“한국기업 진출지원·편의 제공” 약속 아시아 3국 순방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내외는 첫날인 24일 인도의 뉴델리에 도착하자마자 대통령궁 환영식에 참석하고 국빈만찬을 갖는 등 분주한 일정에 들어갔다. ▷만찬행사◁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8시(한국시간 하오11시30분) 인도 대통령궁에서 열린 샤르마 대통령 주최 국빈만찬에 참석,만찬답사를 통해 한국과 인도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면서 앞으로의 관계진전이 긴요함을 역설. ○“간디정신 큰 가르침” 김대통령은 『두나라 관계는 4세기경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시작되었으며 신라의 혜초스님은 8세기에 인도의 성지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써서 인도를 우리에게 널리 알렸다』면서 『근대 인도가 낳은 위대한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도 한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 김대통령은 이어 『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그리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될 때 양국의 공동이익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하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명명한 「동방의 등불」 한국과 천년전 한국인이 동경하던 「서역의 문명국」 인도가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실크로드」를 활짝 열어나가자』고 제안. 이에 앞서 샤르마 대통령은 만찬인사를 통해 『한국 대통령이 처음 인도를 방문해준데 대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문민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준 것을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환영. 샤르마 대통령은 이어 『인도의 경제인들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양국의 긴밀한 경제협력은 두 나라의 공동이익 뿐만 아니라 세계 번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 샤르마 대통령은 또 『양국민은 예부터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특히 불교의 승려들과 학자들이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왔다』고 회고. 만찬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장관 등 공식수행원 전원과 김상하 대한상의회장·최종현 전경련회장·김우중 대우그룹회장등이 참석. ▷대통령궁 환영식◁ ○…김대통령은 이에앞서 뉴델리의 라쉬트라파티바반 대통령궁으로 이동,공식환영식에 참석.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인도 기마병의 선도로 식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대통령궁 정원 입구에서 샨카르 샤르마 인도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를 교환한 후 사열대로 이동. ○기마병이 행렬 선도 양국 국가연주가 끝난 후 김대통령은 인도 의장대장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 사열 종료후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합류해 인도측 환영인사석으로 이동,무케르지 외무장관 등 인도측 환영인사들과 악수를 교환한 후 샤르마 대통령에게 우리측 공식수행원들을 소개. 이어 두 정상은 한국·인도 기자들로부터 간략한 질문을 받고 한·인도 두 나라의 경제협력 필요성을 강조. 김대통령은 인도방문의 의의를 묻는 인도 기자 질문에 『인도는 한국과는 4세기부터 불교를 통해 관계를 맺었고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제일 먼저 한 나라』라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난 위대한 나라엥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답변. 이어 한·인도 경제협력전망에 관한 질문에『한국과 인도의 경제협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두 나라 경제는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 샤르마 대통령은 한국기업의 인도진출전망에 관한 한국기자의 질문에 『인도정부는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게 적극지원 할 것』이라고 약속. 공식환영식 종료후 김대통령은 차량편으로 영빈관으로 향발. ▷인도 도착◁ ○…김대통령내외는 서울출발 8시간30분만인 하오4시 뉴델리의 팔람공군기지에 도착,3박4일간의 인도 국빈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소병용 주인도대사와 데사이 인도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트랩을 내려와 손을 흔들며 환영나온 교민에게 인사. 김대통령은 트랩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바티아 외무담당국무장관,라구나트 외무차관,샤샨크 주한인도대사내외 등 인도측 환영인사의 영접을 받고 간단한 인사를 교환.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현동화 재인도한인회장내외를 비롯한 우리측 환영인사와 악수를 교환했고 화동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증정받고이들을 격려한 뒤 공식환영식장인 대통령궁으로 향발. ○비동맹권 외교 강화 ▷서울공항 출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이수성 국무총리와 조해령 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고 옥내 환송행사장에 입장,3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저의 인도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이라며 『이번 인도방문은 우리와 서남아시아의 경제협력기반을 넓히고 비동맹권과 외교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순방중 싱가포르에서 21세기 아시아공동번영을 위해 한국과 아세안의 동반자관계의 강화를 강조하는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소개. 김대통령은 이어 신한국당 김윤환대표 및 국무위원·대통령수석비서관등 환송인사 40여명과 악수를 나누고 도열병을 통과한 뒤 기내로 들어가 출국.
  • DJ­KT 「오월동주」/강릉행 기내서 조우 “본체만체”

    23일 DJ(국민회의 김대중총재)와 KT(민주당 이기택상임고문)는 아주 불편한 순간을 두번 맞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강릉행 비행기에 함께 오른 것이다.돌아올 때도 역시 같은 비행기를 탔다.민주당 분당의 두 당사자가 4·11총선에서의 영토확장을 위해 강원도로 내달리는 길목에서 맞닥뜨린 것이다.오월동주가 아닌 「오월동비」인 셈이다. 김총재는 이날 강릉갑(위원장 김진하)·강릉을(위원장 이참수)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이고문은 장을병 당공동대표의 삼척지구당개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행을 이끌고 상오 11시45분발 강릉행 KAL 163기에 함께 올랐다.지난해 7월 분당이후는 물론 그전에도 비행기에 함께 오르기는 처음이라는 전문이다. 탑승 전 김포공항 귀빈실에서 시작된 이들의 어색한 조우는 강릉상공까지 계속됐다.첫인사는 김총재가 귀빈실에 먼저 도착해 있던 이고문을 찾아와 청했다.『오랜만입니다.얼굴 좋아지셨습니다』(김총재)『안녕하셨습니까』(이고문)『어쩌다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됐습니다』(김총재)『…』(이고문). 악수만하고 1분만에 돌아선 이들은 기내에서도 줄곧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앞에서 두번째 줄의 5개 좌석중에서 김총재는 가장 왼쪽에,이고문은 가장 오른쪽에 자리했다. 김총재는 줄곧 신문을 뒤적였고 이고문은 가끔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오늘의 적이 된 어제의 동지들은 서로에게 눈길 한번 건네지 않았다. 강릉과 삼척에서 열린 지구당행사에서 두사람은 잠시전의 불편했던 기억을 털어내려는 듯 「강력한 제1야당 건설」과 「3김시대 청산」을 그 어느때보다 강도높게 역설했다.
  • 세계화시대 여성 사회진출 “격려”/김 대통령 숙대졸업식 참석

    김영삼 대통령은 22일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숙명여대 졸업식에 참석했다.김대통령은 94년에는 서울대,95년에는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직접 축사를 했다.매년 대학을 바꿔가며 졸업식에 참석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자유스럽게 대학을 선택,졸업생들을 격려하는 것은 문민정부의 달라진 모습의 하나다. 해방후 역대 대통령들은 국립인 서울대나 육·해·공 3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었다.유신 직후인 7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식에서 치사를 하던중 졸업생들이 돌아앉는 사태가 발생한 뒤 대통령의 서울대졸업식 참석관행이 사라졌다.군출신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3군사관학교 졸업식에만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후 모교인 서울대졸업식에 참석,20년만에 대통령의 대학졸업식 참석관행을 부활시킨 뒤 이대,숙대 등 사립대 졸업식 참석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2년째 사립여대 졸업식을 찾은 것은 세계화시대를 맞아 여성인력의 전문화와 사회진출을 격려한다는뜻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당초 방송통신대 졸업식에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숙대가 개교 90주년인 점을 감안,학교를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재임중 언젠가는 방송통신대 등 다른 학교도 찾을 것 같다. 김대통령은 이날 졸업식 축사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과 세계화,정보화를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축사를 위해 등단할 때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축사를 마치고 퇴장할 때는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장내에 울려퍼지는 행진곡에 맞춰 3분여동안 힘찬 박수로 환송했다.김대통령도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졸업생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안병영 교육부장관,서정화 신한국당의원과 청와대의 김광일 비서실장,윤여전 공보·박세일 사회복지수석,그리고 랄프 마이어스 세계대학총장협의회사무총장이 참석했다.
  • 전자집표기로 당별 분류·집계/뉴햄프셔 맨체스터 제1투표소 참관기

    ◎입구선 후보운동원이 한표 호소/투표용지 공화 빨강·민주 노랑색 뉴햄프셔주 제1의 도시인 맨체스터 시청옆 엘름스트리트의 웹스터초등학교 체육관에 설치된 맨체스터 제1투표소.뉴햄프셔의 2백98개 투표소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이 투표소는 역대 이곳의 승자가 반드시 지명전에서 승리했다는 기록 때문에 미대선의 「바로미터」임을 자랑하는 지역이다.투표시작 시간인 상오8시가 되자 학교주변은 등교하는 학생들과 투표광경을 취재하려는 취재진들로 붐볐다.입구에는 치열한 3파전에 돌입한 돌,뷰캐넌,알렉산더 등 공화당후보 운동원들이 피킷을 앞세우며 마지막 한표를 호소했다. 엘름스트리트에서 조그만 공구상을 경영하는 밀리간 데이비드씨(60)는 8시30분쯤 투표소 안으로 들어섰다.학생식당겸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투표소 벽면에는 투표요령을 알리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데이비드씨는 투표종사원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당적확인을 위해 성(David)의 알파벳 순에 따라 A­F,G­M,N­Z의 세줄로 된 등록라인중 A­F 라인에 서서 투표인명부를확인하고 용지를 교부받았다.투표용지는 공화당은 빨간색,민주당은 파란색,무소속은 노란색으로 보통 복사용지보다 약간 길었으며 후보자들의 이름과 출신지역이 세로로 적혀 있고 그 오른쪽에는 타원형의 공란이 있어 수성펜으로 채우게 돼있었다. 공화당원인 데이비드씨는 빨간색 투표용지를 받아들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공화당 후보로는 22명의 이름이 인쇄돼 있었으며 그중에는 내슈아에 사는 친구 조지아나 도르슈크의 이름도 있었다.주선관위에 1천달러를 내면 후보등록을 할수 있기 때문에 4년에 한번씩 자신의 광고를 위해 1천달러씩을 쓴다는 친구였다.민주당용지에도 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한 21명의 후보가 적혀 있었고 무소속용지에도 두명이 인쇄돼 있었다.투표용지 밑에는 인쇄되지 않은 사람중에 자신이 미는 사람의 이름을 쓸수 있는 빈칸도 있었다. 그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며 돌후보 내외가 열렬한 지지자인 뉴햄프셔 스테펜 메릴 주지사 내외와 함께 투표소 안으로 들어왔다.투표종사원들과 악수를 나눈 돌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근소한차이라도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기표소는 20개가 마련돼 있었다.데이비드씨는 기표후 기표소 옆에 놓인 집표기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었다.1m정도 높이로 팩스머신 비슷하게 생긴 이 집표기는 투표용지를 올려놓으면 자동적으로 안으로 빨아들였다.당별 분류및 집계는 이 전자집표기의 몫이었다.한국에서와 같은 손으로 일일이 개표하는 절차가 없었다. 투표소 문을 나오는 데이비드씨에게 출구조사를 하는 여론조사원이 누구에게 왜 투표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돌,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같아서』라고 대답하고는 자신의 가게로 행했다.
  • 북 테러 배후조종 간접 시인/유엔안보리서 남북공방

    ◎평양지칭않고 아웅산 사건 등 거론/북,의장에 항의… “도독제발저린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남북한이 국제 테러리즘 문제를 놓고 직간접적인 대결을 펼쳐 각국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올해 안보리에 처음 진출한 우리나라와 북한간에 벌어진 「테러 공방」에서 북한측은 스스로 지난 83년의 랑군 아웅산 폭파암살사건과 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의 「배후조정국」임을 시인하는 「악수」를 둔 것으로 평가됐다. ○…우리측 박수길유엔대사는 지난달 31일 무바라크대통령 암살미수사건과 관련한 안보리 공식회의에 참석,국제테러를 강력히 규탄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면서 사례로 아웅산 폭파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을 언급.박대사는 『당시 모든 물증이 확보돼 테러의 배후 조정국가가 확인됐음에도 국제사회가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국제테러리즘의 범인을 반드시 체포·처벌해야 한다』고 강조.박대사는 발언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직접 거명하는 대신 「테러 후원국가」라고 우회적으로 표현. ○…북한 박길연대사는 2주일만인 지난 13일 갑자기 안보리 의장인 올브라이트 미국대사(여)와 면담을 갖고 한국 박대사가 국제 테러리즘 규탄발언중 두 사건을 언급한데 대해 강력히 항의.그는 『한국대사가 그것을 북한과 연계시킨 사실은 한국이 안보리 지위를 나쁜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한국대사의 발언은 현재의 한국의 정치적 위기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주장.그는 나아가 『그같은 행동은 앞으로 한반도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고 사태악화에 대해 안보리가 책임을 져야 하며 특히 미국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트집.올브라이트 대사는 『당시 모든 안보리 이사국들도 국제테러행위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 사례들을 언급하였으므로 한국대사의 발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하고 북한 박대사의 항의를 안보리에 보고하겠다고 약속. ○…14일 열린 안보리 비공식회의에서 올브라이트 대사는 북한 박대사의 면담내용을 요약보고한 뒤 안보리가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올브라이트 대사는보고 말미에서 『공직생활 중 가장 이상한 면담이었다』고 소개했으며 각국 대표들은 여러차례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것.우리측 박대사는 보고가 끝난 뒤 발언에 나서 『북한을 지칭하지 않은 채 두 사건을 언급했는데도 북한이 공식항의를 제기한 것은 기이하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는 우리 속담을 인용하자 안보리 각국 대표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 유권자손벌린만큼 선거망친다(4·11총선 선거풍토개혁내손으로:5)

    ◎「나하나쯤」 생각 버리고 공명선거 동참/소모적 지역할거주의 표로 심판해야 올해 초 대구지역의 한 언론기관이 정당지지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지지 정당이 없다』라는 응답이 무려 73.8%나 됐다.충격적인 결과라 할만하다. 물론 대구·경북은 현 정부 들어 「특수지역」으로 분류된다.전통적인 여권정서의 이반으로 다소 특이하게 나온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수도권 지역의 정당지지도를 보면 『지지 정당이 없다』가 35.4%나 됐다.부산·경남은 32.2%,충청·대전 36.6%,광주·호남 31.3% 등으로 나타났다.유권자 세사람중 한사람이 선호하는 정당이 없는 셈이다. 오는 4월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각 후보 진영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유권자들의 반응이 냉담하다는 것이다.더구나 일부 지역에서는 돈이나 선물,향응등의 대가를 지불하면 투표장에 나서겠다며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유권자마저 있어 선거후보진영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하지만 유권자가 손을 벌린 만큼 선거는 망쳐질 수밖에 없다는게 선거전문가들의 경고다. 연예인 출신으로 경기도 한 지역구에 첫 출마하는 한 후보는 새벽 3시부터 낚시회,택시기사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바닥을 누비고 있지만 『반갑게 악수에 응해주는 유권자도 많지만 등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신한국당 다른 후보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돈과 조직이라는 여권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속에서 총선을 치르는 탓인지 유권자들이 쉽사리 선거분위기에 젖어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세대 정치학과 장동진교수는 이러한 정치 무관심내지 냉소주의의 원인을 크게 세가지 측면으로 분석했다.첫째 정당의 운영이 국민의 이해관계와 별개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당,저당으로 옮기는 정치철새들이 난무하는 정치에 대해 국민은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그 사람들의 게임일 뿐』이라고 인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다원화사회로 갈수록 국민들이 국가의 먼 장래보다는 일상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셋째는 무책임한 당파성에의 환멸과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을 묻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이번 선거가 뭔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총선 참여의향을 묻는 질문에 79.6%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근거를 두고 하는 평가다.나머지 응답자 중에서도 10.4%가 『가능하면 참여하겠다』고 답변했고 『참여 않겠다』는 1.5%에 그쳤다. 이런 수치는 그 신뢰도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다소 떨어질 지언정 21세기를 대비하는 새정치에의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56.1%에 이르는 20,30대의 공략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신한국당의 각종 「청년 캠프」,국민회의의 「그린캠프21」,민주당의 「96 젊은연대」등 젊은층 공략에주력하고 있다.선거 참여율이 가장 낮은 이들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한국시민단체협의회는 20,30대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각 시민단체들과 연합해 후보자 채점표를 만들어 선거운동 기간인 다음달 26일부터 시민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채점표는 「공명선거 실천의지」「민주발전 기여도」「정책공약사항의 실현가능성」「불법·탈법 여부」등 15개 항목을 기입해 유권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이 단체 이정수사무차장은 『유권자,정당,시민단체들의 「삼위일체」만이 정치 무관심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이라고 지적하고 『유권자들은 내 한표가 설마 대세를 좌우하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한표의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교수는 『정당은 유권자들이 정당에 의해 주어진 「상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도를 탈피,후보공천과 지역이익이 직결되도록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 손봉호교수는 『과거 군사정권 때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선거가 공정한 게임이라는 인식을 유권자들이 갖고 한표를 행사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캠페인이나 정부나 정당 차원의 교육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번 총선 역시 소모적인 정쟁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바란다면 그에 따른 한표를,지역할거주의 청산을 원한다면 그 또한 준엄한 심판을 내릴 책무가 유권자에게 있다.21세기를 대비하는 새 정치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 과천 정부2청사 「어린이 집」 개원

    ◎9억원 들여 지상 2층 3백명 규모/수용인원 2백명… 민간에 위탁 운영 대통령 부인 손명순여사는 10일 상오 과천 정부 제2종합청사 단지 안에 문을 연 「청사 어린이집」 개원식에 참석했다. 손여사는 이날 김양배보건복지부·조해녕총무처·김장숙정무2장관 등과 함께 개원테이프를 끊은 뒤 시설을 둘러보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손여사는 이어 어린이집 1층의 선생님방에서 이원장으로부터 현황보고를 받은뒤 2층 영아반으로 올라가 설날 예절교육을 받고 있던 어린이 14명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손여사는 어린이들을 일일이 안아주며 『예쁘다』는 말을 연발했고 선생님들에게도 악수를 하면서 『수고해 주세요』라고 인사했다. 또 손여사는 국자로 국을 뜨는 놀이를 하고 있는 남자어린이를 보고 『요즘은 남자아이도 바느질도 배우고 요리도 배워야 한다』고 칭찬했다. 이어 손여사는 1,2층 복도 및 현관에 나와있던 어린이집 직원 및 부모 50여명과 악수를 나누고 현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청사어린이집은 맞벌이를 하거나 집에서 자녀를돌보기 힘든 공무원들이 마음놓고 일할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부가 직장보육시설 설치에 솔선수범함으로써 현재 부진한 민간기업의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활성화 하는데도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지난 94년 12월 공사를 시작,8억7천8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 1층,지상 2층의 3백평 규모로 완성됐다. 수용정원은 2백명이며 민간에 운영을 위탁하고 있다. 10일 현재까지 1백24명의 어린이가 맡겨져 있다.월보육료는 2살미만 20만4천원,2살 17만1천원,3살이상 10만3천원이다. 보건복지부는 2청사에 이어 연내로 광화문 정부제1청사,내년에는 대전의 제3청사에 보육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 “총리할아버지 오셨다”…난지도어린이 환호/이총리,상암초등학교방문

    ◎점심 같이하며 김구선생 일화 들려주고 “선생님이 가장 존경받을 분” 교사도 격려 이수성국무총리가 6일 상암초등학교를 찾아 교사·어린이들과 점심을 함께 들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할 수만 있다면 어린이가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지론에 따른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이 학교는 과거 서울시의 쓰레기매립장이던 난지도와 이웃해 있다.재학생 7백63명 가운데 4백29명이 하루벌어 하루사는 맞벌이 영세민 부부의 자녀다.63명은 홀어머니·홀아버지 슬하,60명은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닌다. 이총리가 이날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 지역출신 국회의원의 모습이 보였다.이총리는 그러나 교장과 교감·교무주임을 비롯,마중나온 선생님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야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이총리는 나중 그 이유를 묻는 한 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해야 할 분이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면목은 수업중인 5학년 학급을 방문했을 때 드러났다.자칭 「총리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총리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물었고,한 아이로부터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총리는 고개를 가로저은뒤 『정말 존경해야 할 높은 사람은 교장·교감선생님과 여러분의 담임선생님같은 학교선생님들』이라고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최상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그러고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여러분들이 대통령도 되고 장군도 되겠지만 선생님이 많이 되어 존경을 받으라』고 충고했다. 이총리는 이어 아이들에게 『자기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주문했다.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돈이 많고적음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귀하게 생각하고 다른사람을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부자』라고 설득하면서 『다음부터 누가 이렇게 묻거든 당당히 손을 높이 들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총리는 점심식사를 마친뒤 사진을 찍겠다는 어린이기자의 요청에 포즈를 취하며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간 경교장에서 김구선생으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들었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 한국의 대외홍보 현주소/박정현파리특파원(오늘의 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한국의 대외홍보능력 현주소와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신명호재경원2차관보는 지난 3일 「96년 한국경제전망」이라는 주제를 놓고 만찬을 겸해 설명 및 토론을 벌이기로 돼있었다. 세계 각국의 정부대표단과 기업인들을 초청했지만 한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참석자는 단 5명.썰렁하기 조차 했다.같은 호텔 옆방에는 줄지어 미얀마,캄보디아,유럽연합,쿠바 등의 투자유치설명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유럽연합의 설명회에는 50여명이 참석했고 다른 곳에서도 최소한 10명 이상이 참석한데 비하면 한국의 토론회의장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전날의 「21세기 한국경제」설명회장도 마찬가지였다.한승주전외무장관,강경식신한국당의원,유장희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손님은 6명에 불과했다. 하기야 북한은 한국인 2∼3명만이 문의하는데 그칠 정도로 참석신청자가 적어 아예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 투자유치설명회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신차관보는 참석자들이 적은데 대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적은 것』이라고 말했고 일부 다른 인사들은 최근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으로 한국이미지가 크게 실추된게 아니겠느냐고 나름대로 진단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국제사회가 남북한에 별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어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또 설명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반드시 투자로 이어지라는 보장도 없다.하지만 적극적으로 한국과 한국경제를 홍보하려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다른 나라의 예를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홍콩은 손님들이 내야하는 70스위스프랑의 만찬참석비를 공짜로 해주면서 손님유치에 열을 올렸다.러시아는 설명회장에 미인들을 등장시켜 각국 정부대표단과 기업인들의 눈길을 끌려고 공을 들였다.미얀마는 경제부총리가 참석해 일일이 외국대표단과 악수를 나누며 미얀마를 알리기에 분주했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대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홍보하고 손님유치하느라 모두들 바쁜 모습이었다.하지만 본회의장인 콩그레스센터에서 자료를 찾으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각국 대표단 속에서 한국대표단을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한국 홍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흔적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은 한국의 대외홍보 능력과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케해주는 자리였다.
  • 김대통령­재벌총수 청와대 만찬 이모저모

    ◎추어탕 들며 격의없는 대화 2시간/일부 기업인의 「개혁과정 시련」 위로/사업 계획·중기 지원대책 개진 활발 31일 저녁 김영삼대통령과 30대 그룹총수들과의 청와대 만찬은 본관 인왕실에서 2시간여 동안 이뤄졌다.메뉴는 추어탕과 수육,은대구구이,그리고 멸치등 이었다.전에 없이 「푸짐한」 안주에 국산포도주인 마주앙이 곁들여져 처음 딱딱했던 분위기가 곧 부드럽게 풀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만찬이 사전 시나리오 없이 진행된 「격의없는 대화자리」였음을 강조했다.김대통령도 만찬에 앞서 『웃옷을 벗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 등의 여파로 다소 긴장했던 재벌총수들도 김대통령의 유연한 분위기 유도에 호응하는 듯했다. 김대통령이 취임후 재벌총수와 개별·집단으로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듯 만찬을 함께 한 것은 처음이다.김대통령은 이날 역사바로잡기,정경유착 근절 등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기업인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따뜻한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특히 전체적인 건배가 끝난 뒤 옆자리에 앉은 정몽구현대·이건희삼성회장과 마주 앉은 김우중대우회장에게는 따로 건배를 제의하는 등 친근감을 나타냈다. ○…이날 만찬 참석자 중에는 이건희삼성·김우중대우·이준용대림·최원석동아·장진호진로·김준기동부그룹회장 등 6명의 총수가 불과 이틀전 노씨 비자금재판과 관련,1년6월에서 4년이 구형돼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다.김대통령은 이들중 이건희·김우중·최원석회장에게는 먼저 얘기를 건넸고 다른 참석자들도 자신들의 사업과 중소기업 지원들을 화제로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했다. 김대통령은 또 2시간여의 만남이 짧다고 느낀 듯 『기회 있는대로 따로 만나 충분한 얘기를 하자』는 말로 만찬을 끝냈다. 이날 만찬 분위기처럼 정부가 대기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대기업이 정부 시책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탈정경유착」시대의 새로운 정치­경제협력의 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하오 6시부터 시작된 만찬에 앞서 재벌총수들은 5시30분쯤부터 개별적으로 청와대에 도착했다. 특히 이건희삼성그룹회장 등 노씨 비자금 재판을 받고 있는 6명의 재벌총수들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으나 구본무LG그룹회장은 교통사정으로 김대통령의 인사말이 끝난 뒤 도착,김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늦으셨군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만찬장 전실에 대기하고 있던 참석 기업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이날 만찬에는 해외체류중인 최종현선경·신격호롯데·김용산극동그룹회장과 구속집행정지상태인 정태수한보그룹회장,그리고 부도가 난 최승진우성그룹회장은 불참했다. 참석자 가운데는 지난해 이래 경영권을 이양받은 30∼40대의 2·3세 경영인도 상당수 눈에 띄어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 김대통령 군교회서 첫 예배/내일 68회 생일 앞두고

    ◎대통령으론 40여년만에 처음 방문/심상찮은 북정세 관련 군 격려·위로 김영삼대통령은 일요일인 21일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국방부 구내 국군중앙교회에서 군인신도 및 가족 등 3백여명과 같이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후 예전부터 다니던 충현교회를 몇차례 찾은 적은 있지만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본 것은 처음이다.또 성탄절이 아닌때 교회에 직접 간 것도 이례적이다.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인교회를 방문한 것도 의미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오는 23일 68회 생일을 앞두고 있는데다 군을 격려한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취임한뒤 특별한 생일 행사를 갖지 않고 있다.평소대로 가족들과 단출한 식사모임을 갖는 정도다.취임뒤 첫 생일때 몇몇 인사가 축하꽃을 보냈다가 『그럴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번에도 생일과 연관된 일정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대신 이날 교회 예배를 본 것이다.또 대통령이 군인교회를 찾은 것은 이승만전대통령 이래 40여년만에 처음이다.최근 북한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것과 관련,군의 사기진작도 고려한 듯 싶다. 김대통령은 이날 국군중앙교회 장로인 권령해안기부장과 이양호국방장관 등과 함께 예배를 본뒤 마지막 순서로 신도들과 애국가를 불렀다. 김대통령은 예배가 끝난뒤 정재성담임목사,권부장·이장관 부부와 차를 마시며 교회 역사와 신도수,군내부의 사이비종교 침투대책을 화제로 환담했다. 김대통령은 『그물이 가득 차는 해라는 제목의 예배 설교대로 올해는 베드로의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듯 국민 모두의 마음 속에도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이어 『전후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군장병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환담을 끝낸 김대통령은 때마침 여군하사관 후보생 30여명이 현관에 모여있자 일일이 악수를 나눴으며 교회입구 계단에서 신도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 취임 한달 맞은 김광일실장(정가 초점)

    『청와대비서실장 자리는 말한마디가 대통령에게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앞으로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20일로 취임 한달을 맞는 김광일청와대비서실장은 18일 하오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터득한 「비서실장관」을 밝혔다. 김실장은 『취임 소감에서 「여권의 새판짜기」를 원론적으로 거론했고 신임차관 임명장 수여 때 의욕을 갖고 몇마디 당부한 것이 두고두고 구설수가 되는 것을 보고 비서실장 자리의 어려움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그는 『비서실장은 일은 열심히 하되 겉으로 드러나면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실장은 그러나 몇가지 오해도 있다고 지적했다.차관들에게 「장악」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그리고 대통령 곁에 나란히 서서 같이 악수를 했다는 것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특히 수석들과 문제가 있다거나 (비서실안에)헤게모니 다툼이 있다는 관측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실장은 『비서실장이 된뒤 평생 않던 머리염색을 한 것도 혹시 대통령보다 나이가 들어보일까 염려한 탓』이라면서 『비서실장의 직분을 잘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거듭 밝혔다.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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