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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세안+3’ 정상회의] 金대통령 마닐라 행보

    [마닐라 양승현특파원] 김대중 (金大中)대통령은 28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정상회의와 한·일,한·중·일 정상회담 등에 잇따라 참석,활발한 ‘정상외교’를 펼쳤다. ■‘아세안+3’정상회의 김 대통령은 마닐라 필리핀국제회의장(PICC)에서 열린 회의에서 초청국 자격으로 연설을 했다.1시간30분 가량 원탁회의로 진행된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새 천년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서 역내 공동번영을 위한 구체적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며 회담의 의의를 역설했다. 역내 협력의 구체적 방안으로 업종별 민간협의회 구성,국가간 경제·사회적불균형 완화를 위한 협력사업 추진 및 동아시아 경제협력 체제 구축을 제의,참석국들의 호응을 얻었다. 정장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한 김 대통령은 회의 초반에 주룽지(朱鎔基)중국총리와 탄 쉐 미얀마 총리의 사이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으며,참석 정상들과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말을 교환했다. ■한·일 정상회의 이에 앞서 김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간의 회동은 공고해진 한·일관계를 반영하듯 30분간 ‘이견 없는 합의’만이 연속 도출됐다. 두 정상은 내년 1월1일 뉴밀레니엄 첫날을 맞아 화상 메시지를 교환하기로했고,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과 일본 천황의 방한 추진에 공동 노력키로 하는등 다가오는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우의를 다져나가기로 했다.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일간 파트너십’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한국의기술과 일본의 자본 제휴를 통한 동남아 등 제3국시장 진출과 일본 첨단산업의 한국 내 유치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제 도입을 제안하는 등 경제협력 강화방안을 제시했고 오부치 총리의 동의를 얻어냈다. ■아세안+3비공식 정상회의 및 개별회담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27일저녁 주룽지 중국 총리,오부치 일본 총리 및 아세안 10개국 정상과 함께 마닐라 말라카냥궁에서 상견례를 겸한 비공식 회의를 가졌다. 김 대통령은 또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 추진상황을 설명한 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하다”며 아세안 국가들의지지를 당부했다. ■개별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27일 마닐라 도착 직후부터 인도네시아,캄보디아 정상들과 회동을 가졌다.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동티모르사태,한·인니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오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눴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 [양승현의 취재수첩] “저는 죄인입니다”

    박주선(朴柱宣)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26일 오전 출입기자실에 들러 사퇴성명서를 돌렸다.성명서에서 스스로를 “대통령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표현했다.기자들이 잠시 자리(청와대 수석들의 브리핑을 위해 기자실 중앙에마련된 의자)에 앉기를 권했지만 거절했다. “옷로비 사건을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사람이…” 그는 기자들의 쇄도하는 질문에도 서서 짤막하게 대답했다.김태정(金泰政)전 법무장관에게 사직동팀의 최종보고서를 보낸 경위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사직동팀의 내사를 통해 진상이 규명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참고차원에서 보낸 것이다.현직총장으로서 부인이 관련됐고,음해성 루머가 돌아다닌 상황에서 본인도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어해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대통령 보고문서를 (김 전장관에게)보낸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박비서관은 “이제 특검수사를 지켜보자”는 말을 끝으로 기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돌아가며 악수를 하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을 모시고 영광스럽게 일했다”고했다.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박주선 비서관.그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일하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공직기강 확립과 사정업무를 기획하는 중책을 맡았다.그는 담백한 사람으로 공사(公私)를 구분하려고 노력한 충성심 강한 검사였다는게 주위의 평이었다.취임초 친구들이 모아준 300만원을 “청와대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되돌려준 것은 그의 신중한 처신을 엿보게 하는 일화중 하나다. 그는 상황이 어려우면 “내가 어떻게 그 얘기하느냐”고 비켜갔으면 갔지,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자신에게 ‘옷로비 사건 축소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있던 지난 25일에도 김 전 법무장관 부부의 자진출두를 자신이 요청했다고털어놨다.“진실규명을 위해서다.그 이상은 없다” 지난 79년 서울지검 검사로 출발한 그는 김 전 장관을 7차례나 직속상관으로 모셨다고 한다.그는 언젠가 사직동팀 내사단계에서 김총장이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 대한 조사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 “네가 어떻게 나에게 한마디 귀띔도 없이 그럴수가 있느냐. 일국의 검찰총장이 봐달라고 할 것 같아서 그러느냐”는 항의를 받고 인간적인 고뇌를 수없이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이따금 진실규명과 동떨어진 정치권의 공세와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그의 분노가 다시 검사의 길을 걷게 할지, 아니면 정치인으로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할지 주목된다.
  • 잇속 챙기기엔 與野 ‘한가족’

    ‘이기(利己)에는 여야가 한몸(?)’. 국회 정치개혁협상이 개악(改惡)조짐을 보이자 비난여론이 거세다.여야는‘잇속챙기기’에만 뜻이 같냐고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정쟁(政爭)으로 여러날을 허비해온 터여서 더한 듯하다.여야도 속사정은 있다.정치개혁특위는 1년동안 겉돌기만 했다.특위의 ‘마지노선’은 이달 말이다.그러나 중선거구제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문제라는 최대 난관에 막혀 있다.서로의 구미에 맞는 것부터 합의점을 찾다가 ‘현행 의원정수 유지’라는‘악수(惡手)’를 두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우리의 현행 의원수는 인구 16만명당 1명씩.외국에 비해 많은 숫자가 아니라는데 여야 3당 총무가 공감을 이뤘다고 한다.이웃 일본도 16만명에 1석이고,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3만명,6만명당 1석씩이라는 것이다.다만 미국은 52만명에 1명의 의원을 뽑고 있다.그러나 외국 사례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힘든분위기다. 의원 정수 축소문제에서 의원들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국민회의 김영환(金永煥)의원은 “국회라고 해서 구조조정의 예외가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의화(鄭義和)의원은 “의원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구조조정 차원에서 줄인다면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반면 국민회의 김인곤(金仁坤)의원은 “20∼30명 줄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의정활동을 제대로하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실련 시민입법국 김영재(金英材)간사는 “IMF 위기를 온 국민이 떠안았는데 정치권은 집단이익만 우선시하고 있다”면서 “계속 이처럼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시민과 함께 투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민주개혁국민연합 방인철(方仁徹)대변인은 “본질적인 개혁논의는 놔두고 선거구 문제로 아옹다옹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더구나 밥그릇챙기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치권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개혁특위는 또 의원들이 사퇴하지 않고도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수있도록 하려다가 스스로 보류시켰다.여론의 비난에 지레 놀란 눈치다. 박대출기자 dcpark@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하)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9일, 베를린에서는장벽붕괴 및 독일 통일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와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21세기 통일독일의 새비젼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냉전 종식의 주역들인 콜 전 총리와 부시 전 미대통령,고르바초프 전 옛소련 대통령이 행한 기념 연설.베를린 장벽 붕괴 및독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들 ‘3인방’이 차례로 연방하원에등장,‘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상황’의 회고 및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념 연설을 하자 연방하원 의원들은 물론 독일 시민들이 일제히 열렬한박수로 환영. ●장벽 붕괴 10주년 행사와 관련 최고의 인기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그가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아들론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몰려가 ‘고르비’‘고르비’를 연호.이때 고르바초프가 딸 이리나와 손녀 아나스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운더텐린번대로의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그는 또베를린의 유명 보석상 옌스 로렌츠씨로부터 독일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평화의 시계’로 명명된 최고급 시계를 선물 받았다. ●전날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합군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의 해방-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조용한 행보. ●베를린 시청에서는 부대행사로 장벽 붕괴일인 지난 89년 11월9일 출생한어린이들을 초청,‘독일 통일의 꿈나무’ 행사를 열어 이들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게메르크 폴란드 외무장관은 베를린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과 추쿠비스 츠브스키전 폴란드 외무장관에게 ‘독일·폴란드’상을 수여.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야외 특설 음악당에서는 3만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 거장들의연주에 이어,팝그룹 스콜피온스우도 라덴베르크가 각각 ‘변화의 바람’‘베를린을 환영합니다’를 열창.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수십발의 기념폭죽이 터져 하늘을 수놓자 시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 베를린 장벽 붕괴후의 동유럽 변화상 ‘동구 국가들의 새 세기 시작은 2000년 1월1일이 아니다.10년 전인 1989년11월9일 이미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철의 장막 음지에 있다 지난10년간 숨가쁜 변화를 겪어온 동구(지리적으로는 발트해에서 발칸반도)국가들에게 베를린 장벽붕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지난 91년 구 공산권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9일 연례보고서에서 중부 유럽국가들과 발트국가들이 내년에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인 1.6%의 두배에 해당하는 3.2%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동구 발전의 선두그룹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과 접경,유로리전(Euro Region)등의 실험적인 경제및 환경협력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체크 등 ‘동구 3룡(龍)’.지난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정치·경제 안정의 척도라할 유럽연합(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유럽 옛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89년 동독인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철의 장막을 처음 깨뜨린 헝가리는 이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10년전 2,000달러이던 1인당 GDP는 지난해 4,500달러가 됐다. 붕괴 이전부터 동구지역의 반공산혁명 선봉장 역할을 했던 폴란드는 지금도4,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력으로 중부유럽 최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10년전 3,200달러이던 1인당 GDP가 5,000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결별했다.체코는 옛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지도아래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그러나 슬로바키아는 90년대 내내 권위주의적 정부의 영향으로 유럽 최대 빈국으로 간주돼온 저성장국.그러나 지난해 친 EU성향 새정부 출범으로 장족의발전을 거듭하고 있다.옛 유고연방 국가들 가운데는 슬로베니아가 1인당 GDP1만달러를 넘기며성공, EU 가입 최우선 대상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90∼91년각각 독립을 선언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도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움으로 놀라운 경제변신을 이룩했다. 그러나 개혁이 오래 지체됐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그리고 계속된 분리 전쟁과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유고등은 불안정한 정치,절름발이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공산 종주국이었던러시아는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0%에 머물고 절대 빈곤층이 7,4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구동독 마지막 국가원수 에곤 크렌츠 [베를린 남정호 특파원] “지난 89년 11월9일부터 11일까지의 사흘동안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도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8일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62)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재 각종 강연과 집필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그해 10월18일 실각한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한달도 채 안된 11월9일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맞은 비운의 동독 마지막 국가원수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 위로 수천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기어올라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뚫릴 상황이었습니다.이때 우리가 가장 우려한 것은유혈 이었습니다.소련이 어떻게든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일밤 동독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동서독 국경선 개방 공표는 ‘피 대신 샴페인’을 터뜨리게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서 베를린 국경개방은 당시 양측의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것이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9년 11월1일 고르바초프와 4시간동안 회담했을 때 독일통일은 의제에도없었습니다.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을 해체하고자한 정치가는 동서진영 어디에도 없었고 고르바초프 입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뒤 12월2∼3일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통일이 결정됐다”며 “89년 당시 소련은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독의 몰락은 어찌보면 당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호네커와 슈미트 서독 총리간의 회담 이후 호네커와 소련 공산당지도부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는 크렌츠는 89년 11월9일밤 동서독 국경개방 결정도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리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후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서독 국경탈주자 사살명령 혐의에대한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동서독 장벽은 옛소련의 전략적 방위선으로 탈출자에 대한 발포 결정은 군사적 성격의 결정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고 강조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크렌츠는 97년 8월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었다. * 베를린장벽 붕괴 관련어록 [파리 AFP 연합] 유럽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는 기억할 만한 발언들을 많이 남겼다.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장벽을 부숴 버리십시오.(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89년 6월12일 브란덴부르크문에서)●장벽은 그것이 세워진 여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장벽은앞으로도 50년,아니 100년 동안도 존재할 것이다.(에리히 호네커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89년 1월19일)●소련은 동유럽 이웃들의 문제에 개입할 도덕적,정치적 권리가 없다.그들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89년 10월 핀란드 방문시)●동독인들은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이 조치는즉각 발효된다.(귄터 샤보브스키 옛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89년 11월9일기자회견에서)●우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매우 슬픈 일들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년 11월9일)●나는 방금 베를린으로부터 도착했다.엄청난 사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헬무트 콜 서독 총리,89년 11월10일)●베를린 장벽에 처음 금이 간 것은 80년 8월 폴란드 전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파업사태 당시였다.(아담 미흐닉 폴란드 반체제 인사,99년 11월)●나는 내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미하일 고르바초프,99년 11월)
  • ‘영원한 춘희’ 김자경씨 별세

    ‘한국 오페라계의 대모’로 불리던 원로성악가 김자경(金慈璟)씨가 9일 새벽 5시30분 지병인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향년 82세. 그는 한국 최초의 프리마돈나이자,말년까지 자칭 ‘방년 18세’로 맹렬히활동한 열정적 음악인이었다.특히 지난 68년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은 56차례 정기공연과 600여차례에 이르는 소극장공연,다양한 기획공연을 통해 한국오페라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1917년 경기 개성에서 목사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찬송가를부르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이화여전 음악과 졸업과 함께 이화여고에 음악교사로 부임했으나,48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음악학교에서 본격적 성악수업을 받았다.50년에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가지기도 했다.귀국하여 활동하던 62년 화가였던 남편 심형구(沈亨求)씨가 세상을 떠나자 오페라운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영원한 춘희’라는 애칭처럼 지난 8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춘희’가 마지막 무대가 됐다.유족은 장남 홍(弘·사업)과 차남 현식(賢植·사업),장녀 영혜(永惠·미국 오하이오주 애쉴랜드대 교수) 등 2남1녀.빈소는서울 삼성의료원,발인은 13일 오전 9시.(02)3410-6914서동철기자 dcsuh@
  • 美軍 노근리 양민학살…49년만의‘화해악수’

    충북 영동군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49년 만에 만나 화해했다.그러나 주장은 엇갈렸다. 이들의 만남은 미국 NBC-TV 주선으로 4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대전시유성구 도룡동 롯데대덕호텔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당시 미군 제1기갑사단 7연대 2대대 중화기중대 상병(기관총사수)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에드워드 데일리(68·테네시주 거주)씨와‘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주민대책위원장’ 정은용(鄭殷溶·76)씨를 비롯한 유가족 6명이 참석했다. 데일리씨는 “피란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 있으니 동태를 잘 감시하고 어린이와 부녀자가 있을 때는 적인지 잘 판단하라는 상부 지시가 내려와 노근리의 경우 사격 여부를 상부에 문의한 결과 주민을 모두 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데일리씨는 1950년 7월26일 저녁부터 시작된 피란민에 대한사격에 앞서 피란민쪽에서 총탄 3∼4발이 날아와 사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위원장은 “피란민들은 모두 총이 없는 양민이었다”며 “인민군은 미군의 학살 후인 29일 저녁에야 마을에 처음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화해는 이뤄졌다. 데일리씨는 “미국의 군사기록이 부실해 노근리사건의 진실 규명이 늦어진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당시 군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했다. 데일리씨는 6명의 피해자 및 유가족과 첫 대면하는 순간 일일이 두손을 붙잡고 고개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점심을 먹기 전 유가족과 포옹하며 “여러분들의 말이 맞는 것같다”고 사실을 시인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18개월 전 AP통신으로부터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생존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여러분이)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가톨릭·개신교 구원론 공동선언문 서명..교리논쟁 종식

    [아우그스부르크 AFP AP 연합]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개신교가 지난달 31일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선언에 서명함으로써 500여년만에 화해했다. 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인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의크리스티언 크라우저 감독은 독일 남부 아우그스부르크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서 면죄와 구원에 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신구교 지도자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기독교인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신의 사랑’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선언,새 천년을 앞두고 화해의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정확히 478년 전 같은 날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 관행에반발,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논제’의 반박문을 내걸고 종교개혁과30년 종교전쟁의 불을 댕겼다. 종교전쟁과 신구교를 분리시킨 이같은 교리 논쟁은 ‘어떻게 천국에 이를수 있는가’를 둘러싼 이견이었다.개신교에서는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신앙과 함께 선행을 쌓아야한다”고 주장,양측의 교리가 팽팽히 맞서면서 그동안 숱한 갈등과 저항을낳았다. 이날 영어와 독일어로 진행된 신구교 화해의 예배에는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노르웨이,인도 등의 전통복장을 입은 여성 성직자 등 세계 24개국의 성직자 대표단을 포함해 700명이 참석했다.또 부근 텐트에서는 신구교기독교인 2,000여명이 대형 비디오 화면을 통해 화해의 예배를 지켜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번 신구교간의 화해선언은 고난의역정 위에 기독교 통합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면서 “몇 세기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같은 길 위에서 걷고 있다”면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개신교도인 남편을 둔 가톨릭 신자인 한 주부는 비디오로 예배를 지켜보고“양측 교회 지도자들이 포옹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면서 감격해했다.
  • 대구동구청‘지구촌예절’책 발간

    ‘비행기 안은 기압이 낮아 취기가 빨리 돌고 배가 꺼지지 않기 때문에 많이 먹거나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악수를 할 때 손을 가볍게 잡는 것은상대방을 경멸한다는 인상을 준다’ 대구 동구청(구청장 林大潤)이 직원들의 국제화 감각과 외국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일상생활이나 국제행사 등에서 꼭 알아야 할 기본예절을 담은 ‘지구촌 예절’을 18일 발간했다. 82쪽 분량의 이 책에는 교통시설,공공장소,직장,호텔 등에서 이뤄지는 명함교환,호칭,식사,대화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사항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예를 들어 ‘첫 대면하는 두 사람을 소개할 때는 남성을 여성에게,손아랫사람을 손윗사람에게,미혼자를 기혼자에게 먼저 해야 한다’는 것.또 악수는 오른손으로 하고,왼손으로 상대의 손을 맞잡고 굽실거리며 악수하는 것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돈,가격,개인적인 질문은 피한다’(프랑스),‘담배를피우고 싶다면 모든 사람에게 담배를 권해야 한다’(영국),‘서로를 잘 알기 전에이름을 부르는 것은 금물이다’(이탈리아),‘애완용 개를 싫어한다’(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10여개국의 생활습관과 특징도 간략하게 기록돼있다. 이와함께 길,관광명소,공항,호텔 등에서 사용하는 생활영어 및 일어를 수록,외국인과 간단한 회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공무원도 국제감각을 익혀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서 “직원들에게 이 책을 교재로 매주 한차례씩 교육을 실시하고 관내 기관·단체에 배포해 책의 활용도를 적극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
  • [문명자 회고록] 비화3共의 실세들(9)陸여사와의 만남

    박정희가 5·16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은 1961년 11월 13일의 일이다.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한 박정희는 검은 색 선글라스를 낀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모습이었다.당시 박정희는 바지선도 세우지 않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마치 서울에 처음 올라온 촌사람처럼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주미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내가 말했다. “박 의장님 반갑습니다.그런데…”하니까 옆에 있던 정일권 주미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문명자 입에서 무슨독설이 나오는가 싶어서였을 것이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했다. “색안경을 끼고 다른 나라 국가원수를 만난 것은 큰 실례인데요.자신감이없어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정일권 대사가 아연실색해 도중에 내 말을 막으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박정희가 내게 되물었다. “문명자 기자님이라고 그러셨죠? 고맙습니다.제가 깜빡했습니다.그렇게 실례가 됩니까?” “미국에서는 그렇습니다.내일부터는 벗으십시오”.박정희는정일권에게 물었다.“문 기자는 경상도분입니까?” 내가 대답했다.“네,대구입니다” 65년 5월 박정희는 존슨의 초청으로 세번째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육영수여사를 처음으로 동반하고 왔다.그때 주미대사관에서 뷔페형식으로 점심식사가 있었는데 육 여사의 통역관겸 비서인 나은실이 나를 찾아왔다. “육 여사께서 문 기자님을 뵙고싶어 하십니다.잠시 같이 가실까요?” 그것이 나와 육 여사와의 첫 만남이었다.육 여사는 듣던 대로 아주 조신한인상의 여성이었다. “말씀 듣던 거와는 다르네요” “어떻게 다릅니까?” “여성이 기자직에 있는데다 더구나 정치기사를 쓰신다고 해서 저는 ‘문명자기자’ 하면 아주 험상궂고 무서운 분이라고 상상했어요” 쿠데타 직후부터 그 때까지 그의 남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나의 기사를 봤다면 그 편에서 그렇게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다 싶었다.육 여사가 또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육 여사의 방을 나왔다.그런데 나은실이 뒤쫓아와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열어보니 200달러가 들어 있었다.당시 특파원들의 체재비 포함 한달 월급이 200 달러였으니 당시로선 큰 돈이었다.나는다시 육 여사에게 갔다. “저,이 돈 못 받습니다” “이러시면 안되는데….200달러 밖에 안되는 걸요.아이들 선물이라도…” “안되는 건 바로 접니다” 나는 육 여사에게 돈 봉투를 돌려주고 방을 나왔다.이 작은 ‘사건’이 육여사에게 나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긴 듯 했다. 66년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나는 수행기자로 서울에 갔다.그 때 나는돈암동 언니집에 묵었는데 육 여사의 비서 나은실로부터 전화가 왔다.육 여사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취재일정이 바빠 못가겠다고 했더니 나은실이 물러서지 않았다.그녀가 계속 강권하기에 내가 쏘아붙였다.“내가 그 분 보좌관이요?”.안되겠다 싶었던지 나은실이 “잠시 기다리라”고했다.잠시후 육 여사가 직접 전화기에 나왔다. “문 기자님,좋아하시는 근대된장국을 끓여 놓을테니 오세요,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하는 수 없이 나는 취재일정을 마치고 청와대로 갔다.가서 보니 육 여사의접견실은 온통 핑크색이었다. “이 방이 원래 온통 핑크색입니까?” “아니예요,미세스 존슨이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번에 핑크룸으로 바꾸었어요” ‘참 세심한 여성이구나’ 싶었다.그러면서도 한 마디 찔러 보았다.“청와대에 오래 계실랍니까?” 육 여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게 어디 우리집입니까?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만 거처하는 곳이지 이곳은 영원한 우리집이 아닙니다” 그 때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육 여사는 내가 일어서려고만 하면 버튼을 눌러 “차 좀 가져오세요”,“수박 좀 가져오세요”해가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보니 이날 저녁 나는 박정희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나는 식탁에서 듬뿍장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어머,딩기장이 있네요?”하자 육 여사가 내게 물었다. “딩기장이라니요?” “햇보리로 만든 듬뿍장을 우리 고향에서는 딩기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자 박정희가 불쑥 말했다.“경상도 사람 아니면 그 맛 모르지” 육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두 분은 통하시네요” 이날식사초대에서 나는 박정희에게 ‘대통령각하’라는 말은 한번도 하지않았다.박정희를 부를 때는 주로 경상도에서 친근한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보이소’ 또는 ‘으요,으요’를 사용했다.그랬더니 박정희가 말했다. “거,수십년만에 으요!,으요! 소리듣네”.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육 여사가 의아해 하며 남편에게 물었다.“으요!,으요!가 뭐예요?” “경상도 사람이 아니면 이해 못하지”.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면서도 대중앞에 서면 박정희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했다.내성적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독종.이것이 내가 관찰한 ‘인간 박정희’의 면모였다. 74년 8·15,육 여사가 피격,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가엾은 여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박정희의 독재를 다시한번경고하는 뜻에서 박정희에게 영문으로 된 애도전보를 보냈다.“육 여사에 대한 나의 애도를 받아주십시오.생전에 육 여사가 내게 얘기한 ‘청와대는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합니다.지금이야말로 귀하는 대한민국을,국민을 위해 사임할 때입니다.문(Moon)”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8) 한수산’욕망의 거리’

    한수산 필화사건의 전말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이문재 시인의 글(레이디경향 1988년 11월)은 이렇게 시작된다.“1981년 5월28일 오후 3시,중앙일보사 편집국 문화부.문화부장을 찾는 직통전화가 걸려온다.‘보안사령부 X소령입니다.제주에 살고 있는 한수산씨의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정중했지만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였다.이 한 통의 전화로 이튿날부터 끔찍한 사건이 저질러진다.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문학평론가 정규웅 (당시)문화부장은 좋잖은 예감으로 즉각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이미 1980년 5월1일부터 시작된 이 장편은미모의 30대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도심 속의 욕망을 추적하는중이었는데,아무리 뒤져도 관계 당국의 비위를 거슬릴만한 구절이나 반정부적인 요소는 없었으나 다만 아래 구절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어쩌다 텔리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상스레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 지방의 아낙네들과 악수하는 경우,그 관리는돌아가는 차 속에서면 다 잊을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 주는 게 황공스럽기만 해서,그 관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수줍게 웃는 얼굴,바로 그 얼굴들은 언제나 그렇게 닮아 있어서 그것이 모내기 하는 논둑이든,산동네 빈민촌이든,탄광촌이든 항시 같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317회)박회장과 함께 잠자리에 들면서 세희는 박회장 집에서 보았던 죽은 부인의사진을 떠올렸는데,그 ‘부자 사모님 얼굴에서 탄광촌 여인의 모습’을 왜떠올렸는지 자신도 모른다고 소설은 서술하고 있다.그리고 다음 장면을 또보자.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걸 언제나 황금빛 훈장처럼 닦으며 사는 수위는 키가 크고 건장했다.그는 지금도 그 수위 복장에 대해서 남모를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 싶었다.내가 월남에 있을 때 말이야,그러니까 그때가 서기 일천구백 몇 년인가 하면…그렇게 그는 시간 나는대로 자서전을 썼었다.그리고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그 꼴같지않게 교통순경의 제복을 닮은 수위제복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않는 눈치였다.하옇든 세상에 남자놈 치고 시원치 않은게 몇 종류가 있지.그 첫째가 제복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324회)세희의 남동생 경태는 사장이 유일하게 애첩의 집에까지 데려갈 정도로 신임을 받는데,다른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여 사직원을 냈건만,사장은 일을 다 배운 뒤에는 도로 자기 회사로 오라고 간단히 잘라버린다.화가 난 경태가 사무실을 나오며 수위를 보고 떠오르는 잡념들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나마 문제가 된다면 이 구절이겠거니 예견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사건은터졌다.5월29일 오전 10시 경,언제나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듯이낯선 중년들에 의하여 정규웅부장은 검은 세단에 태워져 끌려갔다.중앙일보에서는 손기상(당시 편집국장대리,현 삼성문화재단 상무),권영빈(당시 문예중앙 주간,현 중앙일보 주간),허술(당시 출판국 부장)이 연행 당했고,엇비슷한 시각에 한수산은 제주에서 항공편으로 압송 당했으며,박정만 시인(당시고려원 편집부장) 역시 끌려 들어갔다.빙고동 보안사 대공분실이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시상식서 한국어로 인사말 눈길/베시킹 클래식 이모저모

    ?대니얼과 돕슨의 18번홀 퍼팅을 지켜본 김미현은 두 선수의 버디 퍼팅이홀컵에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면서 “나중에 지옥에 갈 것 같다”고솔직하게 심정을 토로. 초조하게 그린을 지켜보던 김미현은 두 선수가 모두버디에 실패하자 상기된 표정으로 캐디 매티척과 악수한 뒤 아버지 김정길씨등 가족들과 기쁨을 나눴다. 어머니 왕선행씨는 귀국전에 참가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것을 의식한 듯“우승을 위해 한국에 자주 가야겠다”고 말해 폭소가 터지기도. ?김미현은 시상식에서 통역이 적어준 영어 메모를 읽으려다 말고 아예 한국어로 인사말을 해 눈길을 끌었다.미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어로 인사말을 한 것과 관련,“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자찬하며 의기양양. 한편 김미현은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 입맛을 잃어 며칠동안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는 후문.
  • [獨逸 통일 9주년] 의미·전망

    3일은 독일통일 9주년을 맞은 날.90년 10월3일 동독의회가 “동독 5개주를독일연방에 가입시킨다”는 통일안을 가결함으로써 역사적인 독일통일이 이뤄진 것이다.아울러 오는 11월9일은 독일통일과 동구권해체의 출발점이 된베를린 장벽 붕괴 10년째 되는 날이다.이들에 앞서 9월초에는 통일과업의 정점행사인 베를린 천도(遷都)도 단행됐다.21세기를 목전에 두고 독일의 역사,나아가 세계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1989년 여름.동구권의 개혁 및 민주화 열기는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동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각 도시마다 민주화 및 개혁요구 시위로 달아있던 때다.장벽에 가로막힌 동독민들의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통한 엑소더스(대탈출)는 늘어만 갔다. 소련 위성국 헝가리는 마침내 9월10일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국경의 철조망을 철거하는 조치를 발표했다.11월9일 구 동독 공산당(SED)당수 귄터 샤보브스키는 공산당 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모든 국경을개방한다’는 역사적인 장벽개방 조치를 발표했다. 삽시간에 수만명의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모여들였고 국경수비대들은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드디어 40년만에 문이 열렸고 다시는 닫히지 않았다. 61년 동독에 의해 설치되면서 동서독 분단 및 동·서 유럽 분단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164㎞의 장벽이 없어진 것이다.이후 콜 총리의 10개 조항 통일안발표,이듬해인 90년초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이 참가한 ‘2+4회담’등을 거쳐 10월 3일 동독의회가 ‘동독지역 5개주를 독일연방에 가입키로 한다’는 통일안을 가결했다. 전후 40년만에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게된 인구 8,200만의 대국 독일이 국제사회에 다시 우뚝 일어선 순간이다.독일 통일은 단순히 독일 민족의통일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유럽통합의 기폭제이자,냉전시대 미·소를 중심으로한 양극 체제가 종식되고 다극화 질서가 새롭게 구축된다는 세계사적인의의를 지닌 사건이다.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향한 독일통일 과업의 정점은 바로 수도 이전.지난 9월부터 베를린의 제국의회(라이히스탁)에서 의회가 활동을 시작했고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베를린 집무를 시작했다.‘은둔과 반성’의 도시 ‘본’시대를 마감하고 베를린 공화국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동서독 내부 통합에 10년 노력을 기울여온 독일은 이제 유럽의 중심부인 베를린 시대를 발판으로 국력에 걸맞는 국제사회 제자리 찾기에 적극 나서고있다. ‘동유럽 안정이 독일의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동구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다.최근 슈뢰더 총리는 잇따라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찾아 2차대전의 전범자로서 화해의 악수를 청했고 이들의 유럽연합 가입에 애쓰겠다고 밝혔다.지난 봄 나토의 회원국으로 코소보 사태에 적극 개입했다.300억 달러에 이르는발칸 재건 프로젝트에도 열심이다.나토,유럽경제협력공동체(OSCE)등 모든 분야서 중심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이러한 행보를 바라보는 주변국의 눈초리는 경계 심으로 가득차 있지만 정작 독일은 “우리는 ‘크고 겸손한 베를린 시대’를 이끌어간다.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20세기 가장 극적인 드라마 가운데하나인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그 진정한 의미는 다음 세기 새로운 세계사 판짜기의 전주곡이었다는 점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세계경제硏등 보고서 “10년간 쏟아부었지만 동독과 서독의 경제통합은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독일의 유력 정책연구소인 베를린 경제문제연구소(GIER),세계 경제연구소(IWE)등이 최근 독일 통일 9주년에 맞춰 내놓은 보고서.국제무대에서 제 위상을 찾아 강대국의 역할을 해온 통일 독일,그러나 그내부 통합의 성적표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수준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내용이다. 동서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와 감정적 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답보상태.독일 정부가 그동안 동독 재건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9,000억달러.동독 지역인구는 1,700만명.1명에 5만3,000달러를 들인 셈이다.그러나 지난해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서독의 56% 수준에 머물렀다.독일 정부가 청년 실업 구제 기금의 40%나 동독지역으로 돌렸는데도 지난해 실업률은 17.4%나 됐다.서독지역의 9.3%보다 2배나되는 수치이다. 경제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히 동서독주민의 정서적 괴리도 통일 직후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여전히 서로를 ‘배은망덕한’ 오씨(Ossies·동쪽사람),‘오만한’ 베씨(Wessies·서쪽사람)로 비아냥댄다.서독인들로서는 막대한통일 비용으로 자신들의 몫이 줄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이러한 감정이 비롯됐다는 분석. 최근 실시된 브란덴부르크 및 작센주 등의 구 동독지역 주의회 선거에서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SPD)이 대패하고 공산당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이 제2당으로 약진한 것은 이같은 민심을 대변한 것이다.89년 라이프찌히 시위를주도한 롤란드 퀘스터씨(라이프찌히 시의원)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내년 정도엔 다시 공산당 돌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르너 뮐러 경제부 장관은 최근 “통일 당시 정치인들이나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동독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통한 통합작업은 훨씬 어려운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이제 ‘비상체제’에서 ‘평상체제’로 전환해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식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1인당 생산성은 서독 지역의 59.5%에 머무르면서도 임금수준은 75%에 육박한다.새로운 대안 역시 별반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김수정기자
  • 金대통령 벤처기업 방문 “개혁으로 세계 일등기업 만들어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일 마그네틱 카드 생산업체인 서울 강동구 경덕전자(대표 尹學凡)를 방문,생산현장을 둘러보고 근로자들을 격려했다.이날 방문은 제3기 노사정위 출범 의미를 되새기고 추석을 앞두고 벤처기업 근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김대통령도 “IMF상황에서 노사협력으로 회사를 살렸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로 세계 일등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점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경덕전자를 ‘DJ노믹스’의핵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병행한 모델 기업으로 삼은 것이다. 김대통령은 “우리는 앞으로 창의력을 살릴 수 있고,세계로 영업을 확장하는 데 유익한 벤처기업을 육성해 나가야 한다”면서 “지식과 두뇌사업이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고 불경기를 몰아낼 수 있다”고 직원들을 치하했다.또 “미국도 고실업시대에 벤처기업이 10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진정한개혁으로 경제체질을 바꿔 무한 세계시장 경쟁에서 이기는 기업을 만들어야한다”고 벤처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직불카드와 공중전화카드 생산공정을 둘러본뒤 근로자들의 등을 두드리며 일일이 격려했다.일에 몰두해 있는 근로자에게는 일부러 악수를 청하는등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은 이곳 방문 소식을 듣고 몰려온 인근 주민들과 한산중학생 400여명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모처럼 흡족한 표정으로 떠났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초등학교 4학년 때니까 꽤 오래된 일이다.학교 운동장 옆에 자그마한 실습농장이 있었다.그 해는 이 농장에 학생들이 호박씨를 심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아직 떡잎이 채 나오지 않은 호박밭을 온통 파헤쳐놓았다. 담임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셨고 당연히 추궁이 뒤따랐다.우리반 아이들 모두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돌며 기합을 받았으나,범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던 중 한 아이가 범인을 지목했다.지목된 아이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농아 친구였다. 그 때는 장애아 특수학교가 없어서 농아 친구도 다른 학생과 함께 일반학교에 다녔다.그 아이는 내가 한 일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한시라도 빨리기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못된 친구들이 만만한 상대를 골라 죄를 덮어씌웠던 것이다. 그 당시 반장이었던 난 그 아이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옹호해 주지 못했다.그 아이는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선생님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다. 몇년 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서로 얼싸 안았다.한참동안 악수를 하면서도 말을 할 수는 없었다.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애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오며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는 생각도 하며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그 사건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그 친구도 많은 사연이있었겠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내 손을 놓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들은 편견과 소외를 경험해 왔다.자아성장의 기회를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는 능력의 장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능력이없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장애는 오히려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사람은 무언가 부족할 때 그것을 메우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법이다.장애인으로 세계적 업적을 남긴 사마천,베토벤,헬렌 켈러,루스벨트 대통령,호킹 박사 등을 생각해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소비수준은 크게 늘어 선진국이지만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금 우리는 장애인을 건성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억울한 일을 겪도록 방치하고 있는것은아닌지,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인간적 성장을 위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자기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정의다.사회정의는 먼 곳에 있지 않다.차별과소외가 없는 사회를 향한 적극적 관심,그것이 사회정의의 첫걸음이다.
  • “창업에는 연습이 없다”企銀 ‘창업 십계명’ 발표

    기업은행은 17일 예비창업자,기창업자,창업전문가 등 420여명을 대상으로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창업십계명’을 작성해 발표했다. ■창업에는 연습이 없다 창업은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다. ■선무당이 되지 말라 창업준비는 이론적인 교육 못지 않게 실제 경험을 쌓는게 중요하다. ■워밍업은 길거나 짧게 하지 말라 너무 길면 시기를 놓치고 짧으면 준비가부족하게 된다. ■숲과 나무를 함께 보라 전체 시장규모를 파악하고 업종전망,애로점,장애요인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를 선택하라 최근 유행하는 아이템보다는 소비잠재력이 크고 시장이 어느 정도 개척돼 있는 안정적 아이템을 고른다. ■모르는 길은 피하고 아는 길로 가라 주위 사람들이 오랜 경험을 쌓은 업종을 골라야 유리하다. ■나이를 의식하라 나이에 맞는 업종과 아이템을 골라야 성공가능성이 높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독단적 결정을 피하고 제3자와 충분히 상담하고결정을 내려야 좋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창업일정,자금조달계획 등 창업에 관한기본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무리수가 악수다 사업은 욕심만으로 되지 않는데 자금조달능력을 고려하지않은 무리한 창업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전경하기자 lark3@
  • 金대통령 연천지역 위로방문

    “비가 언제 그쳤지.지금 비가 내리는 곳은 어디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 7호 태풍 ‘올가’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빠져나간 4일 아침 관저를 찾은 박준영(朴晙瑩) 공보수석에게 던진 첫 마디다.휴가에서 돌아온 이후 내내비 피해가 김대통령의 최대 고민거리로 자리한 것이다. 지난 2일 재해대책본부 방문 때와 3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TV에 나온 한 젊은 주부의 “재기할 힘조차 없다”는 ‘하소연’을 인용한 것도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단초다. 실제 김대통령은 휴가에서 돌아온 1일부터 밤늦게까지 신문,TV 등을 보고빗줄기가 조금 굵어진다 싶으면 재해대책본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받고 조치를 지시했다.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지난 2·3일이틀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 4일 오전 1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김대통령은 당초 5일쯤 수해현장에 들를 계획이었으나 이날 날씨가 개자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에 서둘러 경기 연천·문산지역을 찾았다.김대통령은 먼저 연천 어린이집을 찾아 물에 젖은 어린이 놀이기구를 닦고있는 주민,군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생많다”고 격려했다.이어 연천 읍내로 통하는 37번 국도로 이동하다가 길거리에서 가재도구를 말리고 있는 주민들과 군장병을 보고는 차에서 내려 등을 두드리고 악수를 나누는 등 위로의말을 아끼지 않았다.김대통령은 “다시는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내년 여름전까지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연천 방문에는 조성태(趙成台)국방·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장관이 수행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오전 박공보수석과 박선숙(朴仙淑)부대변인을 KBS 이재민돕기 성금모금행사장에 보내 수재 의연금을 전달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로봇 산업·레저용서 의료용까지

    로봇은 원래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탈피하기 위한 욕구가 반영돼 만들어진고도의 기계장치로 기본적이면서도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순서로 개발됐다. 최초로 상용화돼 사용된 로봇은 인간의 팔을 대신하는 형태였다.인간의 노동력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손과 팔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의 조립용 로봇과 정해진 위치에 물건을 옮겨놓는 물건운반용 로봇들이이처럼 인간의 팔동작을 대신하도록 개발된 것들이다. 그 다음으로 개발된 것이 다리를 대신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로봇이다.바퀴형 이동로봇과 다리형 이동로봇이 있다.그러나 바퀴형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없고 다리형은 무척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이것을 극복한 것이최근 화성탐사에 활용된 ‘소주르너’와 같은 이동 로봇이다. 이외에도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환상적인 로봇과는 거리가 있지만 방범용,해저탐사용,의료용,군사용,레져용 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이 개발돼 이용되고있다. 방범용 로봇은 건물의 침입 여부,화재발생 여부,출입문 관리 등에 이용되고있다. 화재현장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위험지역에 들어가 불을 끄고 폭발물을 제거하는 소방수 로봇도 영국에서 개발됐다. 해저탐사용 로봇과 우주탐사용 로봇은 인간이 접할 수 없는 가장 극한 상황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우주탐사로봇은 방사선 누출사고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체르노빌 원전의 방사성 물질 제거작업에도 투입될 예정이다. 의료용 로봇은 수술실에서 의사의 집도를 도와준다.군사용 로봇으로는 지뢰제거용으로 개발된 로봇이 산악지형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레저용으로는 최근 일본 소니사가 만들어 시판에 들어간 애완용 로봇개 ‘아이보’가 대표적이다.사람이 손을 내밀면 앞발을 들어 악수를 할 줄 알고주인이 들어오면 반갑게 짖기도 한다.한쪽 다리를 들어 ‘쉬…’ 소리를 내며 오줌 누는 시늉도 한다. 미니로봇에 대한 개발열기도 뜨겁다.지난 13일 일본에서는 길이 10㎜에 무게가 0.5g 밖에 나가지 않는 마이크로 로봇이 공개됐다.현재까지 개발된 로봇 중 가장 작은 이 로봇은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의발전계통에 이상이생겼을 때 파이프라인 틈새로 들어가 수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개발팀은밝혔다.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굳이 발전소를 정지시킬 필요가 없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바이러스정도 크기의 분자로봇 개발이 한창이다.분자로봇이 개발되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원하는 부위에 약을 전달하거나 신체내의환부를 안에서 직접 치료하는 것도 가능해 진다. 함혜리기자
  • [인터뷰] ‘여름축제‘기획 박은희 음악감독

    음악회라면 먼저 ‘정숙’이란 단어를 떠올린다.그러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도 마음놓고 소리 내 웃을 수 있는 연주회가 있다. 23∼25일 오후7시30분(24일 4시 추가공연 있음)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모두 4차례 열리는 ‘여름축제-청소년을 위한 모음잔치’가 그것. 축제를 기획한 한국 페스티벌앙상블 박은희(47)음악감독은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정통 클래식에서 벗어나 재미있게 구성했습니다.가족단위로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오기를 바라기 때문이죠”프로그램을 차례로 살펴보면 특이하다는 느낌이 든다.클래식 음악 중에 웃음을 자아내는 음악만을 모은 ‘폭소 클래식 모음’(23일),느린 악장들만을 모아 들려주는 ‘아다지오 모음’(24일),재즈 음악만 들려주는 ‘재즈 모음’(24일),잘 알려진 뮤지컬 곡만을 모은 ‘뮤지컬 모음’(25일)으로 짰다. “폭소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자는 취지에서 매년 한번씩 마련합니다.연주회장의 엄숙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깨면서 미소와 웃음을자아내는 파격적인 곡들로 준비했습니다”바흐의 ‘작은 토끼 깡총깡총’‘실업수당을 받는 농부’등 제목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아다지오 악장 만을 따로 모아 연주하는 까닭은 한국 사람들이 빠른 음악보다는 느린 것을 좋아해서라는 게 박감독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느린 악장에서는 서정적이고 애틋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이것이 한국인의 한과 정서에 잘 맞는 모양입니다.”그동안은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만 연주회를 가졌으나 올해는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도 연주회를 갖게 됐다. 13년째 같은 형식으로 여름음악축제를 진행해 온 그는 “청중들의 음악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며 “흥을 돋구는 음악이 나오면 장단도 맞추고 잔잔한클래식이 흘러나오면 귀기울여 감상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강선임기자
  • [7·12 국민회의 당직개편] 한나라당 반응

    한나라당은 12일 국민회의 당직개편에 대해 “장고(長考)끝에 악수를 뒀다”고 흠집내기를 시도했다.특히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에 대해서는 ‘얼룩진 인물이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며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 기용 등 당의 ‘실세화’부분에 대해서는 ‘우려’와‘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총재단 회의가 끝난뒤 “개혁을 1과제로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개혁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인 이권한대행을임명한 것은 자기모순의 극치”라고 깎아내렸다.안대변인은 이어 “이권한대행은 과거 신한국당을 뛰쳐나가 국민신당에 간뒤 다시 국민회의에 입당하는등 ‘표류’가 심했다”며 그의 정치 행적을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번 인선이 총선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한 당직자는 “JP와 거의 같은 급인 이권한대행의 기용으로 앞으로당과 행정부가 등거리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됐다”며 당의 입지 강화를 우려했다.이회창(李會昌)총재의 한 측근은 “친정체제 구축으로 내년 총선에서반드시 이기겠다며 야당에 선전포고한 것이다”고 걱정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그러나 “당이 실세화됨으로써 여야협상 내용이 실제화될 수 있다면 나쁠게 있겠냐”며 협상에서의 ‘재량권’ 확보가 여야관계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봤다. 한나라당은 또 김종필(金鍾泌)총리와 ‘갈등관계’를 빚을 이권한대행의 등용으로 ‘내각제는 물건너간 것 아니냐’며 ‘여여(與與)갈등’을 부추겼다. 한 당직자는 “이권한대행의 기용을 보면 내각제는 하지 않으면서 ‘이원집정부적’ 형식의 내각제적 운영으로 모습을 갖추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는것 같다”고 분석했다.이권한대행이 TK(대구·경북)출신인 점도 한나라당의지지기반인 TK 잠식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이 김영배(金令培)전대행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강력한 개혁’드라이브 시동의 신호탄으로 보고 앞으로 정국운영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
  • 박세리, 숨막힌 연장 첫홀서 대역전 드라마/제이미파대회 이모저모

    파 5(532야드)의 연장 첫홀에 올라선 박세리의 표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로서는 지난해 여자US오픈에 이어 미국 진출 이후 두번째 연장 승부였다.18홀을 다 돌고 그것도 모자라 2개홀을 더 돌아야 했던 그 때의 지루한 승부가 생각난 것일까. 상황은 물론 달랐다.무조건 연장 18홀을 돈뒤 서든데스를 펼쳤던 US오픈과는 달리 이번에는 첫홀부터 서든데스였다.다른 것은 또 있었다.US오픈 때는아마추어 추아시리폰과 단 둘만의 경쟁에서 이겼지만 이번엔 올시즌 5승을노리는 캐리 웹을 포함해 카린 코크,마디 런,켈리 퀴니,셰리 스테인하우어등 쟁쟁한 5명과의 승부.LPGA 사상 최다 인원이 나선 연장전이었다. 그러나 박세리의 승부사 기질은 승부를 가리는데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승부는 첫홀에서 싱겁게 가려졌다.6명 모두의 움직임은 신중했다.모두3온에 성공,버디 찬스를 맞은 것.하지만 박세리의 볼이 홀컵에서 가장 가까운 3m 지점에 떨어졌다.홀컵에서 가장 먼 코크가 퍼팅을 시도했고 다음으로퀴니가 버디를 노렸으나 실패했다.나머지 3명의 퍼팅도 아슬아슬하게 홀컵을 비켜가거나 못미쳐 멈춰섰다. 마지막 남은 박세리의 퍼팅.수백여 관중은 물론 함께 연장전에 오른 나머지 5명의 온 신경이 그의 퍼터 끝에 집중된 긴장된 상황.박세리의 몸짓은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1년전 US오픈 마지막홀 5.5m짜리 버디퍼팅이 그랬듯이 퍼터를 떠난 볼은 그대로 홀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비로서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는 가운데 관중들의 환호성이 하이랜드메도골프장의 하늘에 메아리쳤다. 이로써 박세리는 지난 6월21일 끝난 숍라이트클래식 이후 2주만에 다시 정상에 올라 2관왕이 됐지만 연장전까지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공동선두로 마지막라운드를 시작한 박세리는 15번홀에서의 보기로 선두인 스웨덴의 카린코크에 3타가 뒤져 우승과는 멀어진 듯 했다.그러나 박세리는 16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한 반면 2타차의 단독선두를 달리던 코크는 첫 우승 눈앞에 두었으나 18번홀서 뜻밖의 더블보기로 나머지 5명과의 연장전을 허용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제이미파대회 이모저모 ■무려 6명의 선수가 연장전을 치른 것은 LPGA투어 사상 처음으로 지금까지의 기록은 5명.지난 79년 켐퍼오픈에서 사상 처음으로 5명의 선수가 연장전에서 승부를 가렸고 81년에 플로리다 시트러스대회와 웨스트버지니아클래식도 5명이 연장전을 펼쳤다. ■박세리가 흥미만점의 연장 승부를 펼치며 우승하자 여자골프의 붐을 바라는 LPGA관계자들은 즐거운 모습.호스트인 제이미 파도 대회 이미지를 높이게되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LPGA 홍보 담당자 키리스틴 시보그씨는 “LPGA 역사상 6명이 플레이오프에나선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박세리가 또 한번 LPGA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흥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그린의 주변에 있던 박세리의 남자 친구 로렌스 첸(24)은 부친 박준철씨에게 축하 악수를 청했고 박씨는 웃는 얼굴로 첸의 어깨를 두드려 눈길.첸은 이어 박세리와 가볍게 손을 붙잡고 ‘축하한다’며 기쁨을 나눴다. ■박세리가 이번 우승을 포함,7월 무더위에 강한데에는 한식이든 양식이든가리지 않는 ‘대식’이 한 몫했다는 평.평소 박세리는 경기를 마치면 부모와 함께 골프장 근처 음식점에서 다양한 메뉴로 두배 가까운 식사를 주문한다는 것. 박준철씨는 “갈비 7∼8인분을 먹고도 갈비탕을 주문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 뿐”이라고 농담. ■시즌 2승과 대회 2연패에 성공한 박세리는 상금랭킹과 ‘올해의 선수’ 부문에서 모두 5위권에 진입.지난주 LPGA선수권까지 올 시즌 32만5,086달러를획득한 박세리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13만5,000달러를 추가,시즌 상금총액이 46만86달러(약 5억5천200만원)로 늘어났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 불참한 애니카 소렌스탐(41만2천167달러)을 제치고 5위에 올라섰다.‘올해의 선수’ 부문에서는 평점 30점을 추가,지난주 41.50점에서 71.50점으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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