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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내분] 이재오 다시 전면 나서나

    지난 18일 밤 9시쯤 이른바 ‘구당파’ 의원들이 국회 한나라당 총무실에 속속 모여들 무렵,이재오 의원이 나타났다.이 의원은 총무자리인 좌장석에 ‘자연스럽게’ 앉더니,의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과거 그의 총무시절을 떠올리기도 했고,어떤 의원은 그에게 “이 대표”라고 부르기도 했다.이재오 의원이 다시 전면에 나섰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당 비대위원장과 사무총장직을 맡아 당을 좌지우지하다 ‘공천 등급분류’ 파문으로 물러난 지 2개월이 채 못돼서다. 이재오 의원은 이같은 눈총을 의식한 듯 “비대위에서든 선대위에서든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거듭 천명했다.당초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 초선의원들은 재선그룹과의 연대를 타진하면서 이 의원에게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확약받았다는 후문이다.그러나 힘은 그에게 쏠리는 분위기다.한 의원은 “운동권에서의 닦은 노하우 덕분인지 조직을 꾸리고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추동력만큼은 탁월하지 않으냐.”면서 “구당모임이 이만큼이나마 구색을 갖춘 것은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 의원은 ‘신당’을 언급했다.“이제 건전한 보수세력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 것이다.농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그가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인 이가 많았다.구당파의 일부는 이런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지운기자 jj@˝
  • 공정위장, 재계 면담 '재시동’

    ‘만납시다.’‘요즘 분위기가 영 썰렁해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 총수와의 회동에 시동을 걸었다.6일 민영화된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부터 시작해 대기업 총수들을 잇따라 면담할 계획이다.기업지배구조 개선방향 등 그동안의 시장개혁 로드맵을 개별기업 CEO와 총수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는 차원이다.하지만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조사 등으로 재계의 마음은 닫혀 있다. 강 위원장의 재계와의 면담은 지난해 말 대기업 구조조정본부장에 이어 두번째다.6일부터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비롯,이용경 KT 사장과 강창오 포스코 사장,곽주영 KT&G 사장 등을 만난 뒤 재벌그룹 총수들과도 만날 예정이다.이번 면담은 정치자금 수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더 이상 재계와의 면담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해당 그룹들은 ‘취지는 좋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는 입장이다.대기업 총수 등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다.민영화된 공기업 총수들과의 면담 이후로 했으면 하는 눈치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있어 민영화된 공기업과 민간 재벌들이 다를 수 없다.”며 “우선 형편이 되는 민영화 공기업부터 면담 일정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악수를 청하는’ 강 위원장과 ‘아직은 부담스럽다.’는 재계 총수와의 회동이 언제 이뤄질 지 주목된다. 주병철기자 bcjoo@˝
  • [오픈 코리아-소통하는 사회 만들자](4)정치자금 개혁 대담

    “국회에 ‘전문가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깨끗한 정치,생산성 높은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문가 충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개혁마인드를 가진 전문가그룹이 기성 정치인을 리드할 수 있도록 ‘세력군’을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그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꼽았다.전문가그룹의 정치권 진입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라면 비례대표 증원으로 의원정수가 다소 늘더라도 국민들이 이해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세일 범개협 위원장 이목희 정치부장 ●이목희 서울신문 정치부장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박 위원장 깨끗한 정치는 3가지 측면에서 모색해야 합니다.정치자금의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과 제도의 틀을 갖추는 것,아울러 필요한 돈이 합리적으로 조달되도록 하는 것이지요.세(勢)과시형 조직은 돈이 들게 마련이고,부패하게 돼있습니다.미디어를 통한 선거가 활성화하도록 해야 합니다.지구당·중앙당의 폐지나 축소가 정치자금의 수요를 줄일 수 있습니다.한편으로 필요한 돈은 적정량 공급해줘야 합니다.다만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부장 투명화 취지는 좋으나 정치현실에서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박 위원장 우리도 그 문제를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우리 정치문화를 볼때 후원회제도 투명화를 전제로 하면 야당이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그래서 국고보조금을 차별화해 야당에 대폭지원하는 방안까지 논의했습니다.그러나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되면 돈이 한편에 쏠리는 것 자체도 국민이 볼 수 있게 됩니다.그러면 여당에 몰리는 것도 쉽지 않게됩니다.장기적으로는 여야 균등에 기여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과도기적으로 한쪽에 쏠림 현상이 있을 수 있으나 과거 처럼은 아닐 것입니다.어렵지만 장기적인 원칙을 세우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 부장 지구당폐지가 혼탁선거 방지에 도움이 될까요. ●박 위원장 그렇습니다.지구당은 선거브로커들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지구당 자체가 거대하고 혼탁선거의 주범 역할을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법으로 반드시 법정지구당을 폐지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다만 연락사무소 정도는 허용하되 규모를 최소화하면 자금수요를 줄이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이 부장 요즘 정치권의 최대 논란은 의원정수 조정 문제입니다.어떻게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박 위원장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대표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만,앞으로는 지역대표성의 비중이 줄어들어야 할 것입니다.이미 지방자치제도가 자리잡고 있어 지역 정치는 지자체에서 일정정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또한 미디어 정치를 통해 지역의 욕구를 중앙정치에 반영하는 게 예전보다 쉬워졌습니다.앞으로는 직종·직능 대표성이나 정책전문성이 중요해질 것입니다.정치의 비중이 지역대표성에서 직종·직능 대표성,정책전문성으로 옮겨질 것입니다.요즘의 사회갈등은 직종·직능간 갈등입니다.사용자·노동자를 대변할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지금의 방식으로는 대표성이 약해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부장 비례대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박 위원장 비례대표가 지역구를 보완하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동등한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정치권의 논의를 보면 지역구 조정이 어려우니 편하게 가자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독일은 지역구대 전국구의 비율이 1대1이고,일본도 3대2입니다.우리는 지역구를 현 수준인 227석으로 유지하고 비례대표를 72석으로 하면 차선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민주주의가 병행해야 할 2가지가 대중성과 전문성인데,대중성 대표가 지역구이고,전문성의 대표가 비례대표제입니다.미국식에서는 하원이 대중성을 갖고 상원이 전문성을 대표하지요. ●이 부장 비례대표를 정당명부식으로 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권역 단위로 하느냐,전국 단위냐로 하느냐의 논쟁도 한창입니다. ●박 위원장 전국 단위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권역별로 하면 도리어 지역구도를 고착시킬 우려가 있습니다.예컨대 ‘왜 우리 군에서는 비례후보를 내지 않느냐.’는 식의 소지역주의가 발호할 공산이 큽니다. 전국 단위로 하면 정당간에 정책경쟁을 유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정당들이 아무나 비례대표 명단에 올리지 못할 겁니다.각계각층의 우수한 인재를 모셔오려 할 것이며,이 사람들이 전국을 돌면서 자기들을 찍어주면 무엇을 할 것인지,자기 당의 정책은 무엇인지 홍보를 할 겁니다.이번 총선은 정당명부제도의 도입을 통해 대통령 선거의 성격을 띠게 될 것입니다. ●이 부장 소선거구제를 주장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박 위원장 중대선거구제는 권역별로 지역감정이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현행 3∼4당 체제의 고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대통령제에서 정국이 안정되려면 양당 구조가 옳습니다.중남미 정치가 불안한 것은 대통령제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이유가 큽니다. 정치권에 내각제 논쟁이 종종 이는데,비례대표 제도를 확대·안정시킨 뒤 일정시간이 축적 돼야 내각제 얘기도 가능할 것입니다.정책전문성이 확보돼야 의원들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지역에서 악수만 하는 의원으로는 국정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죠.그 사이에 공무원의 정책중립성도 확보되고 그래야 내각책임제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부장 범개협 활동에 만족하십니까. ●박 위원장 시간이 부족해 아쉽습니다.1달 남짓 활동했을 뿐이거든요.이런 조직을 상설화하거나 1년 정도 여유를 갖고 미리 구성됐다면 현장 조사도 하고 좀 더 좋은 안이 나왔을 거라 생각합니다.국회에 상설기구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합니다. 정리 이지운기자 jj@
  • 주말매거진 We/우탄이 안아볼까 비단뱀 만져볼까-고양 테마동물원 ‘쥬쥬’

    올해는 갑신년 원숭이 해.민첩하고 재치 있는 원숭이의 코믹한 재롱을 보며 새해를 시작해보자.원숭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유쾌하다.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 자리잡은 테마동물원 ‘쥬쥬’는 어린이들이 책에서 보았던 동물들을 직접 만져보고 함께 놀 수 있는 동물원.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토끼를 안아 보고,염소를 따라다니며 뛰어 다닐 수 있다. 10살배기 오랑우탄 ‘우탄이’와 악수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미의 열대우림을 연상시키는 파충류관에선 5m가 넘는 미얀마 비단구렁이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마치 아마존 밀림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쥬쥬’는 이밖에도 철갑상어를 비롯한 국내외 각종 민물고기를 볼 수 있는 민물고기관,구관조가 재롱을 부리는 조류관,1000여 평의 숲속에 타조,토끼,염소마을을 꾸민 자연학습장 등을 갖췄다.자연학습장에선 아이들이 직접 동물을 만지고 함께 뛰어놀 수 있다. 당근,고구마,바나나,파인애플 등 동물 먹이를 준비해가면 아이들과함께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개장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6시이며 연중무휴.입장료는 대인 7500원,중고생 6000원,초등학생 5000원.홈페이지(www.themezoozoo.com)에서 할인권을 다운받아 가져가면 4인까지 10%를,국민카드로 결제하면 4인까지 15% 할인받을 수 있다.주차장 무료.(031)962-4500. 한준규기자 hihi@
  • 막오른 정동영체제/남대문시장서 아침식사 정의장 첫날부터 ‘민생행보’

    열린우리당 정동영 신임 의장이 당선되기가 무섭게 의욕적으로 ‘현장 정치’를 선보이고 있다.그는 12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았고,13일에는 택시기사들을 만나기로 했다.또 조만간 지방대학 도서관을 방문,청년실업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정 의장은 이날 새벽 신기남·이부영·김정길·이미경 상임중앙위원 및 당직자 30여명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아 호국영령에 헌화한 뒤 “개혁으로 보국하겠다.”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이어 점퍼 차림으로 남대문시장을 찾아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악수를 건넸다.길거리에서 떡과 어묵을 사먹고 바닥을 기어다니며 구걸하는 장애인의 손을 덥석 잡으며 “힘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정 의장은 시장 안의 한 해장국집에서 상인 대표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시장바닥을 다니고 끝나면 감감무소식인 것을 사과한다.”고 말했다.“설 전에 전국 재래시장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겠다.”는 약속도 했다. 상인들은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죽겠는데 TV만 켜면 100억이니 하는 소리가 나온다.억 소리만 빼면 다 도와주겠다.”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정치가 개혁되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정치개혁’ 주문을 쏟아냈다.몇몇 상인들은 정 의장에게 “TV보다 실물이 더 잘 생겼다.”며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정 의장은 당에서 첫 상임중앙위원회를 주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對테러부대 출신 경호원 이라크로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는 이라크에 한국인 민간 경호원들이 대거 진출한다. 민간 경호업체 ㈜NKTS(대표 최승갑)는 이달 말까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지사를 설립,현지에 진출한 세계 각국 기업인들에게 무장경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11일 밝혔다.파견될 경호요원은 이달 말 30명,다음달 70명 등 100명선이다. 25∼30세 사이인 경호요원들은 전원 육군 특전사 직할 대(對)테러부대 출신 무술 유단자들로 각 개인별로 무술단수 합계가 5∼20단에 달하며,회사측은 이들에게 연봉 수천만원에 부상이나 사망시 별도의 보상금 제공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경기도 가평 산악수련원에서 운동장과 산 속을 오가며 5개월째 체력단련과 테러 진압 등 강도높은 훈련을 받고 있다. 현지에서 권총과 AK소총,캘리버50 기관총 등으로 무장할 이들의 주임무는 유전 개발과 전후 재건사업 참여 등을 목적으로 이라크로 진출하는 국내외 기업인들의 신변경호.또 대테러 임무를 목표로 창설작업이 준비 중인 이라크 경찰특공대도 교육시킬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LG카드 産銀지분 이견 팽팽

    LG카드 공동관리 결정을 둘러싼 정부측과 채권기관간의 줄다리기가 6일에도 팽팽하게 이어졌다.특히 이날 열린 금융기관장들의 모임에서는 양쪽간에 감정 섞인 설전(舌戰)이 벌어지기도 했다.이런 가운데 채권단이 각 금융기관에 LG카드 공동관리안을 7일까지 수용하지 않으면 LG카드에 대해 법적인 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해 막판에 극적 타결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LG카드 공동관리 반대그룹의 맹주격인 국민은행은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 대표 경영을 하기로 한 만큼 LG카드 지분을 당초 약속한 19%보다 확대,33%(3분의 1) 이상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정부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정부와 산은은 지분을 30%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산은이 지분을 30% 이상 가질 경우 LG카드를 직접 인수하는 것이 돼 국민세금으로 충당하는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 차이는 오후 은행회관에서 열린 ‘2004년 범(汎)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김정태국민은행장은 “정부 주장대로 이번 사태가 ‘체제적 위험’(시스템 리스크)이라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관치금융시대도 아닌데 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유지창 산은 총재도 “남의 돈은 돈이 아니냐.”며 국민은행 등의 ‘비협조’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특히 김정태 행장과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행사가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야 겨우 악수를 한 뒤 짤막한 인사만 나누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러나 국민은행 등은 공동관리 체제로는 정상화에 한계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7일까지 합의서를 낼 것인가는 미지수다. 또 LG그룹의 추가 지원 협상도 진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주주의 책임이 전제되지 않고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각 채권금융기관을 어떻게 설득할지도 문제다. 각 채권금융기관이 7일 오후 5시까지 LG카드 공동관리 방안에 대한 동의서를 우리은행에 제출하지 않으면 LG카드는 또다시 유동성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든 빨리 결론이 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미현·김유영기자 carilips@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이회창씨 검찰출두/출두표정·검찰 반응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15일 오전 10시35분쯤부터 오후 7시10분쯤까지 9시간여 동안 조사받고 귀가했다.전직 야당 총재가 자진출두 형식으로 조사받은 것은 처음이다. ●한나라 “사법처리까지 염두둔것 같다” 이 전 총재는 출두 및 귀가 때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당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짐짓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표정이 상당히 굳어졌다.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이회창 전)총재께서 사법처리까지 염두에 두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귀가할 때 오랜 시간 조사를 받아서 그런지 상당히 지친 기색이었다.혐의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거나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짧게 대답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오전 조사에 앞서 대검 7층 안대희 중수부장 방에 들러 5분 동안 차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이 전 총재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관련자들은 선처해달라.”고 요청했고 안 중수부장은 “(총재님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전 총재는 곧 11층 1113호 특별조사실로 이동했다.유재만 중수2과장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이 전 총재는 오후 1시부터 30분 동안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단을 접견한 뒤 미역국으로 간단히 점심을 들었다.아직은 참고인이어서 검찰 관계자들은 ‘총재님’으로 호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 전 총재의 전격 출두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송광수 검찰총장은 이 전 총재의 기자회견을 보고 회의를 소집,대책을 숙의했다.검찰은 그러나 일단 나온 이상 조사 준비가 덜 됐더라도 조사를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安중수부장에 “관련자 선처” 요청 문효남 대검 기획관은 “이 전 총재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수사팀은 이 전 총재가 전모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이 전 총재는 검찰에 들어올 때는 항의받고 나갈 때는 환대받는 이색 경험을 했다. 출두 때는 대검청사 정문에서 민주노동당 빈민위원회 소속 당원들로부터 제지당했다.이들은 LG 150억원 수수 당시 쓰였던 탑차를 동원,100억원이라 적힌 사과상자를 전달하려 하는 등 항의시위를 벌였다.반면 나갈 때는 ‘창사랑’ 회원 수십명이 나서서 ‘대통령 이회창’ 등의 구호를 외쳤다.한 노인은 이 전 총재에게 큰절을 올리겠다고 나서기도 했다.그러나 100억원 사과상자 전달도,큰절도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제지로 성공하지 못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징역12년 선고 이모저모/박지원씨, 특검보에 악수청해

    12일 징역 12년이 선고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일찍 법정에 나와 잠자코 앞을 응시한 채 앉아있었다.가끔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박 전 장관은 예전에 비해 부쩍 흰머리가 많아지고 초췌한 모습이었다.법정은 방청객 120여명으로 가득 메워졌다.박 전 장관의 1심 구속만료를 나흘 앞두고 열린 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변호인측은 먼저 변론재개를 요청했다.박 전 장관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만나 150억원을 받았다고 추정되는 2000년 4월14일의 상황에 대해 알리바이가 나와 증인신청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변호인측은 전날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사진을 제출했다.사진은 당일 저녁 연극팀과 자리를 같이한 박 전 장관의 모습을 담고 있다.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4월중순’을 14일로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부장판사 “항소심서 다투라” 재판부는 30여분 동안 판결문 요지를 읽어 내려갔다.이익치·김영완씨 진술이 모두 신빙성이 있다며 박 전 장관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남북정상회담 비용 명목으로 150억원을 요구했지만 사실상 개인용도로 썼고 뉘우침도 없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김상균 부장판사가 “판결문에 자세히 썼으니 읽어보고,항소심에서 다투라.”고 말하자 박씨는 “알겠다.”고 짧게 답했다.재판부가 법정을 떠난 뒤 박씨는 법정에 나온 김종훈 특검보에게 악수를 청했다.지인들이 앞다퉈 위로하자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로 답했다.법정을 나서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 소동기 변호사는 선고 직후 “중요한 알리바이가 나왔는데 선고를 강행한 것이 아쉽다.”면서 “즉시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즉시 항소할 것” 박씨 구속기간이 곧 완료된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박씨 알리바이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선고를 너무 서둘렀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검찰은 “문광부 공문에 따르면 박씨가 30일에 연극을 관람하고,격려금까지 지급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변호인측은 이 부분을 중점 공략할 것이라고 밝혀 추후 항소심서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정은주기자 ejung@
  • 최대표 건강 나빠져/ 단식 6일째… 1500여명 다녀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1일 단식 엿새째 접어들어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고 있다.감기 기운과 함께 혈당이 80으로 떨어지고,혈압도 ‘최고 110·최저 75’ 정도로 낮아져 혈압강하제 복용을 중단했다.최 대표는 원래 고혈압이 있어 약을 복용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유창선 박사와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 등 전담 의료진이 잇따라 진찰,“대표실 공기가 나쁘니 병원으로 옮기라.”고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대신 이날부터 기자단 개방을 대표기자 1명씩으로 제한키로 했다. 최 대표는 얼굴도 현저히 수척해지고 시력 저하에다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으나 방문객을 맞을 때는 꼭 일어서서 악수를 청했다. 그는 “방에서 조금씩 걷고 있다.”면서 “몸무게가 쑥쑥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박상천 전 대표,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 정치권 인사뿐만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 등이 단식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이날까지 1500명 이상 외부인사가 다녀갔다. 김 추기경은 “정치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한다.”면서 “뭔가평화로운 길,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순리로 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재의 직권상정 방침과 관련,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들렀다.박 의장은 “친구 입장에서 건강도 걱정되고 국회정상화도 중요해서”라고 최 대표를 설득했다. 최 대표는 감사를 표시한 뒤 정치권의 재의결시 찬성 약속과 국회정상화 요구에 “당에서 협의하겠다.”고 답변,전날보다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그러나 대통령과의 대화 제의에는 “국정쇄신 문제는 재의와 별개 사안”이라면서 “대통령이 내각을 바꾸고 청와대를 개편하겠다면 내가 내 발로 가서 만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하프타임/ ‘득점기계’ 아이버슨 30점 폭발

    미국프로농구(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27일 ‘득점기계’ 앨런 아이버슨(30점·7리바운드)의 폭발적인 슛에 힘입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90-86으로 이겼다.팀 승리를 이끈 아이버슨은 이날 ‘적장’으로 만난 옛 은사 래리 브라운 감독과 해묵은 감정도 풀었다.NBA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6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명장인 브라운 감독은 6년간 필라델피아의 사령탑을 맡다가 지난 시즌 만류를 뿌리치고 디트로이트로 옮겨 비난을 받아 왔다.브라운 감독을 배신자라고 비난해온 아이버슨은 옛 감독과의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뒤 포옹과 악수로 화해했다.한편 샤킬 오닐이 부상으로 빠진 LA 레이커스는 코비 브라이언트(22점)가 맹활약,워싱턴 위저즈를 120-99로 꺾고 홈경기 23연승을 기록했다.
  • 김원기·정동영 ‘파워게임’ 끝은?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장이 ‘사보타주’성 휴가를 떠난지 6일만인 24일 당사에 출근,당무에 복귀했다. 그는 확대간부회의에서 ‘갈등 상대방’인 정 의원과 미소띤 얼굴로 가볍게 악수를 나눴으며,회의 중 “갈등설은 언론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회의에서 정 의원은 침묵을 지켰다. 겉으로만 보면,전북 전주고 16년차 선후배 사이인 김 의장과 정동영 의원간 당내 주도권 다툼은 일단락된 듯하다.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이번 힘 겨루기의 승자(勝者)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석이 구구하고,‘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대체적으로 이번에 큰 그림에서 정 의원이 판정승을 거뒀다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정 의원은 이번 ‘거사(擧事)’를 통해 간선제 논란을 완전히 종식시켰고,전당대회 날짜도 예정보다 20일 정도 앞으로 끌어냈다.무엇보다 김 의장과 대등하게 맞섬으로써 당내 소장파의 리더 자리를 확보했다. 반면 김 의장 입장에서는 이렇다 할 ‘노획물’은 보이지 않고,오히려 정 의원의 ‘도발’에 당내 카리스마만상처입은 셈이 됐다.정치권 관계자는 “김 의장이 정 의원을 일거에 진압하지 못하고 당무 거부 성격의 휴가를 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 의원이 장기적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위험부담을 안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중진들에게 너무 일찍 칼날을 세움으로써 쓸데없는 적을 생산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격을 당한 김 의장으로서는 차기 의장으로 유력시되는 정 의원을 견제할 방도를 찾아나설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지도위원회’ 설치론을 놓고,김 의장측의 복안이란 추측도 있다.지도위원회는 차기 의장의 권한을 제한하는 기구로 알려진다. 김상연기자 carlos@
  • [녹색공간] 더불어 살아감의 뜻

    사회가 복잡해지고 핵가족제도가 정착됨에 따라 이제는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가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결혼 전에 분가해 혼자서 살아가는 청년들도 점차 늘고 있다.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의 신체접촉은 줄어드는 대신 사이버 공간을 통한 만남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신체접촉만큼 사람들 사이를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뽀뽀를 해주거나 안아주는 행위는 친밀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식이며,성행위는 그러한 신체접촉의 가장 극단적 형태다.문화권에 따라 악수를 나누고 볼을 비비거나 코를 맞대는 등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인사를 나누는 가장 기초적 방식은 역시 신체를 접촉하는 것이다.몸을 직접 맞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다운 눈길을 주고받는다든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등의 행위를 통해 서로를 알고 느낀다. 이러한 신체접촉이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세균들은 한 세대가 불과 몇 시간밖에 되지 않지만,그 동안에도 인접한 개체끼리 접촉해 유전물질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군집을 유지한다.종이 다른 생명체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접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켜 양식으로 삼기도 하지만,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생명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의 드라마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몸속에서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우리의 입과 위장 속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미생물이 우리와 함께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그들은 우리가 먹은 음식의 소화를 도와주는 등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가끔은 심각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어떤 원인에 의해 그 균형이 깨졌을 때는 한두 종류가 지나치게 증식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이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다양한 미생물과 접촉하면서 살아간다.김치나 된장,젓갈과 같은 발효음식도 미생물의 도움 없이는 맛볼 수 없다.우리 선조들은 어떤 가정의 장맛을 보고 그 집안의 미래를 예측하기까지 했다고한다.장맛이 변했다는 것은,그 집 주인과 함께 살고 있는 미생물들의 평형상태가 변했다는 뜻이며,이는 바로 그 주인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있다는 걸 뜻한다고 생각하면,그런 예측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요컨대 우리 몸속의 미생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인 셈이며,그 관계 여하에 따라서 건강하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서로 친해져서 공생의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그 사이가 나쁘면 큰 싸움을 벌이면서 병에 걸리기도 한다.경우에 따라서는 싸움 끝에 타협을 이루어 새로운 공존 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다소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알레르기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어려서부터 미생물들과 친해지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그런데도 우리는 미생물 하면 질병을 떠올리고,물리쳐야 할 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그래서 대단치도 않은 병에 항생제를 남용해 오히려 미생물들의 균형을 깨뜨리고 내성만 키워주는 경우가 많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와 계급과 민족이 다른 사람들을 살육하고,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과의 전쟁을 선포한 ‘죽임’의 시대였다면,21세기는 사람이든 미생물이든 더불어 살아감을 모색하는 ‘살림’의 시대가 되면 좋겠다. 강 신 익 인제대 의대 교수 의철학
  • 복당 회견에 민주 발칵/ 김민석 ‘민주당의 계륵’ 되나

    마흔 살도 안 돼 전국적 화제인물로 떠올랐던 김민석(39) 전 의원이 다시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왔다.김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17일 민주당을 탈당,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을 지지하면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꺼져 가던 ’노풍(盧風)’을 재점화시켰던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이 4일 오후 민주당 내 들끓는 반대를 무릅쓰고 복당 기자회견을 강행하자 일부 의원과 당직자들은 탈당하겠다고 하는 등 엄청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실제 박상천 대표는 복당회견 강행에 역정을 냈으며,당 안팎은 온통 어수선했다. 그는 위기의 민주당에 힘을 보태기 위해 복당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1년 전과 유사하게 당직자 상당수가 탈당해버리겠다고 난리법석이다.하지만 그는 고향(경남 사천)이 아닌 정치적 고향인 서울 영등포을에서 재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당직자 탈당설등 반대기류 거세 김 전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 복당회견을 강행하려다,당개혁안을 확정키 위한 당무회의가 열린다는 핑계로 오후로 미뤘다.박 대표가 이날 새벽까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복당을 만류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오후 1시 55분쯤 대부분 무명인 복당·입당자 50여명과 함께 우르르 민주당사 기자실을 찾았다.회견장 사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의식해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보도진과 악수를 했고,민주당 참여선언문은 다른 사람이 낭독케 했다. 별도의 복당 선언문을 통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새출발의 발걸음을 넉넉하게 이해하시고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30대로서 감내하기엔 너무 외로웠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설렘과 두려움 교차” 회견 강행 하지만 일단 기자간담회장으로 옮겨서는 당당해졌다.그는 “내가 아니면 후보단일화란 악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 탈당했었다.”고 말해 반성보다는 탈당시 불가피성을 강조했다.대선승리를 위한 단일화를 주장했고,단일화에 성공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에 탈당은 최소한도의 당위성을 얻었다는 논리도 몇 차례 폈다. 복당 반대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양해는 돼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하고 “떠나는 순간부터 민주당과 함께 해야 한다고생각했고,당헌·당규상 복당절차가 간소해진 탈당 1년이 지난 10월 중순 이후 집중적으로 복당을 생각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추미애 의원 등이 복당에 부정적이라고 하자 “어떤 게 한국정치의 통합을 위한 노선인지 원칙과 사실관계를 짚어보고 본격 토론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오는 28일 전당대회 당 지도부 선거엔 나가지 않겠지만 비호남인물 영입을 추진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에 대해선 “정치하면서 늘 노 대통령과 생각이 달랐고,지금도 많이 다르다.”면서도 “그러나 대선 때 찍었기 때문에 나라 위해 잘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영등포을 지구당·네티즌 “철새” 비난 졸지에 야당 신세로 전락한 민주당으로서는 김 전 의원의 존재가 계륵과 같다.그러잖아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역할 찾기가 모호하고,야당이라고 하지만 지지자들이 우리당과 겹치는 애매한 민주당에 그의 복당은 ‘사쿠라’‘철새’ 논쟁이란 악재로 작용할 공산도 크다.반대로 그의 주장대로 보탬이 될 수도있고,총선 출마를 통해 힘을 보탤 수도 있다. 이와 관련,박 대표는 그의 복당 승인 여부에 대해 “당헌·당규에 따라서 처리하겠다.”고 밝혀 앞으로 7일 이내에 심의가 이루어져,20일 내에 복당 통지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법률적인 절차와는 별개로 복당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그의 지역구였던 영등포을 출마를 노리고 있는 박금자 당무위원은 오전 그의 복당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신랄하게 비난했다.네티즌들도 복당 반대가 훨씬 많은 편이다. 한나라당은 “철새정치인 복귀”라고 비아냥대고 있으며,우리당은 김 전 의원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반발에 어부지리를 기대했다. 동정과 연민,안타깝다는 반응도 혼재한다.한동안 잠잠했던 ‘김민새 바람’이 어느쪽에 유·불리하게 정리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춘규기자 taein@
  • “지하철공연 즐겨봐요”강서구 운영 금관 5중주단

    “계속되는 연습에 단원들의 입술이 부르트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마음껏 음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강서구(구청장 유영)가 ‘문화1번구’로 도약하기 위해 구립극단과 함께 의욕적으로 발족시킨 금관5중주단 ‘맥파이(까치) 브라스 앙상블’ 위전석(41) 사무국장은 3일 “문화적으로 소외된 강서구민들에게 수준높고 재미도 있는 공연문화를 보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9월 발족…7명 맹연습 금관5중주단은 지난 9월 이덕성 단장과 위 사무국장,호른 1명,트럼펫 2명,튜바 1명,트럼본 1명 등 7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규모도 작은데다 제대로 된 연습실도 갖추지 못한 ‘미니악단’이지만 단원들의 실력만큼은 여느 유명 오케스트라 못지 않다. 단원 대부분이 국내 유수의 음대를 졸업한 뒤 독일,네덜란드,미국 등에서 수년간 음악수업을 받았다. 호른의 김주형(33)씨는 독일 디트몰트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디트몰트시 ‘그랜드 파티타’에서 정식단원으로 활약하다 귀국,분당심포니,과천 필하모니를 거쳐 강서에 자리를 잡았다. 디트몰트에서 예술가 과정을 마치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은 튜바의 김종욱(35)씨도 브란덴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활동을 벌이다 강서구에서 금관5중주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트럼펫 이철호(37)씨는 남가주대 연주석사 출신으로 서울심포니,강릉시립교향악단을 거쳤고,트럼펫 조성관(34)씨는 네덜란드에서 음악수업을 받은 뒤 시흥시 교향악단에서 활동했다.최연장자인 트럼본의 조대선(43)씨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오페라 객원 연주,KBS 교향악단 객원 음반제작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이처럼 ‘능력’을 갖춘 단원들이 얼핏 보기에 보잘것없는 ‘구립악단’으로 모여든 것은 금관악기에 대한 각별한 애착 때문이다.교향악단이나 오케스트라에서는 금관악기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불안정한 신분과 턱없이 낮은 급여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위 사무국장은 “금관악기는 외국 유학까지 갖다와도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에 비해 수요가 적기 때문에 제자리를 잡기 어렵다.”면서 “트럼펫 대신 ‘나팔’ 이미지가 강한 국내 풍토도 금관 전공자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중 하나”라고 말했다. ●허준축제때 첫선…이달 연주회 힘든 여정을 거쳐 강서구에 자리를 잡은 단원들은 요즘 신이 났다.매일 아침 8시30분이면 구청 지하상황실에 마련된 ‘임시연습실’로 출근,오후 2∼3시까지 맹연습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10월 11∼12일 열린 ‘허준축제’에서 처음으로 주민들과 만나 열띤 호응을 얻었고 틈나는 대로 구청 현관에서 점심시간을 이용,미니공연을 펼친다. “앞으로 지역내 초·중·고등학교와 지하철역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까치5형제’는 오는 24일 오후 6시 강서구민회관에서 창단식과 첫 공식연주회를 갖고 그동안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낼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겁먹은 지갑’/ 가계소비 여력 최악수준 도·소매 7개월째 뒷걸음

    소비지출이 5년만에 최악으로 떨어졌다.실업자와 신용불량자가 늘어 가계 소비여력이 준 데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학습효과로 국민들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맨 탓이다.또 기업들도 윤리경영 등을 표방하며 접대비를 줄여 소비 위축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기사 19면 29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비지표인 도·소매 판매액은 지난해 9월보다 3.0%가 줄면서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 3월 이후 7개월 내리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1998년 12월(마이너스 3.5%)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이다.도매와 소매가 각각 2.3%와 1.7%씩 줄었고,특히 백화점 판매액은 무려 14.0%나 감소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민간소비지출이 전체 GDP(국내총생산) 성장에서 차지한 기여도는 54.9%.지난해 전체 경제성장률 6.3% 중 절반 정도가 민간소비 확대 덕에 달성됐다는 말이다.하지만 올 2분기에는 마이너스 59.8%로 기여도가 급락했다.민간소비지출이 전체 성장률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잠식해버린 것이다.도·소매 급감은 무엇보다 개인들의 소비여력 부족과 소비심리의 위축 때문이다.지난달 국내 실업자 수(73만명)가 1년 전보다 20.7%(12만 5000명)나 늘어난 데다 신용불량자가 350만명을 넘어서 개인들의 돈 쓸 여력이 크게 감소했다.주요 기업들도 연초부터 접대비를 크게 줄여 유흥가와 고급 음식점들의 불황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에는 개인들보다 기업들의 어려움이 더 컸지만 지금은 거꾸로 개인쪽이 더 힘든 상황이어서 대중들이 느끼는 불황(不況)의 정도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대한포럼] 천정배와 이광재

    천정배와 이광재.노무현 대선 후보 경선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이 털어놓는 인물평이 세간의 화제이다.사람들,그것도 권력과 지근거리에 있는 인사들에 관한 감추어진 됨됨이를 엿본다는 것은 그것이 바른 품평이건,아니면 독설이건 속물 근성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서는 흥미 이상의 재미다.그런데 유 대변인이 유독 호평한 인물이 바로 이 두 사람이다. 유 대변인은 이 실장을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니까 유학가겠다고 하더라.’며 권력 관계에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대선 과정에서 중요 정책 결정을 앞둔 노 후보가 8층 사무실에서 갑자기 7층 이광재 사무실로 달려가 상의하고 와서 최종 결정하는 것을 종종 봤다고도 했다. 열린 우리당 천정배 의원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의원’이라며 지난해 3월 경선에서 의원 중 처음으로 노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일관되게 처신해온 점을 높이 샀다.두 사람 다 쓰임새와 강도는 달라도 노 대통령의 동지이자,동업자임을 세상에 공표해준 셈이다. 그런 이 실장이 지난 정부 때와는 많이 달라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으니,이목이 집중되고 힘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아무리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도 돈과 정보 만치 권력의 역학관계를 적확하게 읽지 못한다.눈도 없는 돈이 실세를 오차없이 찾아가는 것을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 실장의 궤도 이탈을 듣지 못했으나 재신임 정국 이후 천 의원이 쏜 직격탄을 맞고 사표를 냈다.정보와 권력 독점을 시인도,부인도 않고 대통령의 곁을 떠나 칩거에 들어갔으니,겉으로는 인정한 꼴이다.‘장관들을 설설 기게 만든’ 힘있는 실세라면 한번쯤 대들어보고, 해명하고, 억울함도 호소해 볼 만한데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의 대응태도는 확실히 ‘노무현 코드’다.무언가에 연연해 하는 모습은 초라하고 대통령에 누가 될 뿐이라는 역동적인 변방의 행동 양식과 인식이 노 대통령을 빼닮은 꼴이다. 천 의원의 ‘충정’은 이제 이 실장을 넘어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특정 386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며 청와대 전면 쇄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천 의원다운 용기이다.인적 청산 요구는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로,정치에서는 치명적인 적을 만드는 악수이다.‘물러나라는 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나.’라는 정찬용 인사보좌관의 항변은 세상사의 진리다.잘못했다간 역풍에 휘말려 되레 정치 생명을 재촉할 수도 있는,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악역(惡役)’의 결기이다. 노 대통령이 이미 내각과 청와대 전면 개편을 약속했고,청와대 참모들의 미숙함과 코드가 숱하게 도마에 오른 터여서 결과는 뻔해 보인다.우리당과 천 의원이 내놓은 처방전의 승리로 굳어질 것이다.권력이란 표면 상 외부 공격으로 무너지는 것 같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내부의 적으로 인해 무력화된 경우가 흔하다.공성(攻城)을 하건,수성(守城)을 하건 내부의 적을 가장 경계하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8개월 동안 인적 청산 싸움으로 다퉈온 우리당은 정신적 여당으로서 재신임 정국 위기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참모들이라고 하나,청와대와 이 실장만이 내부의 적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과거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도 아니고,취임 초부터 평검사들과 입씨름을 해야 했던 곤궁한 처지의 정권에서,386 참모 한 사람이 정보와 권력을 전횡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이 아닐까. 인적 청산은 권력의 냉혹함을 보여줌으로써 궁중 비사(秘史)처럼 흥미진진할지 몰라도 앙시앵레짐(구질서)의 정치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개혁은 전문가적 노회함보다는 미숙하지만 순수한 열정에서 잉태된다.그래서 ‘천정배 용기’보다는 ‘이광재 결단’에 희망을 걸고 싶다. 양 승 현 논설위원 yangbak@
  • [대한포럼] 파병과 反美감정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방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웃음의 악수를 나누었다.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한·미간의 외교적 마찰이 있었다.미국은 이라크 추가 파병과 북핵문제를 연계하려는 한국에 크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 마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로 해소됐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했지만 파병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여전하다.찬·반 대립은 명분론과 국익론으로 크게 나뉘어진다.그 가운데 ‘명분도 없고 국익도 없다.’는 주장과 ‘명분과 국익이 모두 있다.’는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어떤 주장을 하든,이라크 전쟁은 명분없는 잘못된 전쟁이다.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집단 알 카에다와의 연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비판한다.미국 패권정책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한국군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그들은 대부분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다.이라크 파병 문제는 그들의 반미감정을 더 강하게 하고 있다.반미감정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역사적으로 볼 때도 패권국가에 대한 나쁜 감정은 늘 있었다. 그러나 반미감정이 지나치게 높아져 한·미동맹관계를 위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심리와 사대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한다.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국제전략도 비판받아 마땅하다.패권국가들이 늘 그렇듯이 미국도 자국 이기주의적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중국·러시아·일본 등 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가까운 이웃과 동맹관계를 맺으면 종속성이 더 커지고 다른 주변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한·미동맹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미국과의 관계보다 남북관계가 중요하다는 민족주의적 주장이 많아지고 있다.민족주의 자체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사회주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친북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지금 단계에서는 민족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우리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것은 주로 미국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미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이 한국인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주한미군의 재배치 등도 세계전략 차원이라며 미국 시나리오대로 추진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미국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한국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한국의 반미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한국에는 국민정서라는 독특한 ‘힘’이 있다.국민정서는 합리성보다는 주로 감성에 호소하는데 그 힘이 대단하다.반미감정과 친북 민족주의가 합쳐져 국민정서로 정착되면 미국정책에 반대하는 반미감정의 차원을 넘어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반미주의가 될 것이다. 미국이 반미감정을 완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한·미관계에 붉은 경고등이 들어올지도 모른다.일방적인 친미정서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는 지나갔다.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들의 반미감정이 특히 높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창 순 논설위원 cslee@
  • “盧 햇볕정책발언에 정 떨어져”유종필, 결별 배경 토로

    민주당 분당 후 청와대에 대한 공세의 전면에 선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20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 배경을 털어놓았다.유 대변인은 지난해 대선 당시 공보특보 등을 맡아 노 후보를 가까이서 보좌했으나 대선 후 소원한 관계에 놓인 뒤 결국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등을 진 인물.노 대통령과 금이 간 시점은 지난해 9월,발단은 ‘햇볕정책을 둘러싼 말다툼’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 “노 대통령과 헤어진 원인은 복잡하다.”면서 “지난해 9월 노 후보가 일본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햇볕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한 뒤로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당시 노 후보의 공보특보이던 자신이 이 발언을 문제삼자 노 후보가 “김대중씨 정책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김대중씨 말은 다 좇아야 하느냐.’라며 엄청 큰소리로 정색하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어 다음날 조간신문에 그 발언이 일제히 1면에 보도되자 노 후보는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따졌고,논란 끝에 “나와 의견과 철학이 다르니함께하지 맙시다.”라고 사실상 구두로 해고해 버렸다고 주장했다.“당선 이후 전화 한번 안해주더라.1월3일 당 행사 때 악수는 한번 했지만 형식적이었다.”고 노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을 여과없이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노 대통령과의 또 다른 결별 배경으로 안희정씨를 지목했다.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안씨가 줄곧 자신을 견제했고,노 후보가 “반 발만 물러나 있어 달라.”고 했던 것도 안씨의 ‘작품’이라고 했다. 유 대변인은 이날 자신을 비판하고 나선 통합신당 이해찬 의원에 대해서도 “지난해 경선 직전만 해도 ‘노무현이 되면 탈당하고 이민가겠다.’고 하던 사람”이라고 맹비난했다.그는 “지금 통합신당 사람들은 천정배 김근태 의원 등을 빼고는 다 비슷하다.”며 “김원기 고문도 당초 후보 경선 당시만 해도 자신이 노무현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조차 언론에 따지고 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춘규기자 ta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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