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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양 관악수목원 개방

    1965년부터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관악산 기슭 서울대학교 관악 수목원이 이달말부터 개방된다. 안양시와 서울대측은 6일 아름다운 숲과 각종 희귀식물이 서식하는 서울대 관악수목원을 오는 28일부터 개방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개방시간은 주말·일요일·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30명 단위의 단체 관람만 허용된다. 시는 시민들로부터 단체 관람 신청(031-389-3511∼3)을 받아 하루 2∼3개 팀을 입장시킬 계획이며 관람객들에게 숲을 설명해줄 수 있는 숲 해설 자원봉사요원을 동행시킨다. 관람객들은 숲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수목원에서 사진촬영, 산책 등을 할 수 있지만 배낭이나 가방, 음식물 등은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안양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민수 교수재임용에 반발 서울대 미대교수 집단사표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들이 김민수 전 교수의 재임용에 반대하며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권영걸 미대 학장은 21일 “재임용 심사 당시 문제가 됐던 논문 표절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고 명예훼손 부분이 앙금으로 남아 있다.”면서 “김 전 교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하는 디자인학부 전체 교수 14명 가운데 10명의 사표를 정운찬 총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그러나 권 학장을 설득하면서 사표를 반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전 교수는 “교수들이 집단사표라는 최후의 악수로 정 총장을 협박하고 범죄 은폐를 종용하고 나섰다.”고 비난하면서 “정 총장은 사표를 수리하라.”고 요구했다. 김 전 교수는 1998년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부진한 연구실적’을 이유로 탈락했다. 김 전 교수는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비판한 논문이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며 소송을 냈고, 지난달 28일 서울고법은 김 전 교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편 서울대는 수강신청 정정 기간인 다음 달 8일부터 김 전 교수가 개설하는 과목의 수강신청을 받기로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작사가 반야월

    [어떻게 지내세요] 작사가 반야월

    “박장대소 해야 해. 요새 신경통이 있긴 하지만 괜찮아. 지팡이 짚고 걸어다니고, 버스·전철 이용하고, 정신력으로 사는 것이 건강비결이야. 목숨 붙어 있을 때 후배들에게 잘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보람도 느끼고 말야.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원로 작사가 반야월(88)씨.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가장 많은 작품수를 발표한 작사가’ ‘가장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노래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작사가’ 등.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우리 가요계의 ‘3대 보물’로 일컬어진다. 설 연휴 직전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반씨를 만났다. 그는 협회 회장이다. 악수를 하면서 그는 “이봐, 기자 양반. 나이가 내일 모레 아흔이지만 이렇게 건강해.”라며 활짝 웃는다. 그는 또 듣는 것이 약간 어둡지만 눈치코치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금방 알아차린다며 이것저것 막 얘기를 한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 사무실에 나와 후배들 얘기와 협회 일 등을 들으며 ‘교통정리’를 해준다고 했다. 그는 “나는 말야, 겉으로는 딱딱하게 여기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혼자 외롭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좋은 후배들과 자주 만나려고 하지. 가끔 동해안으로도 가. 거시기, 뭐야. 새파란 물과 공기가 폐에 썩 좋잖아.”하면서 비 안 오는 날은 있어도 술 안 마시는 날은 없다며 파안대소했다. 아직도 술을 마시냐고 거듭 물었더니 일제 때부터 맥주를 마신 기량이 어디가냐며 털털 웃음으로 답했다. 집에서는 신문 4,5개를 쭉 훑어본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새벽 1시가 되는 날이 많단다. 사설이라든가 사회면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이는 후배들과 대화자료란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1937년 태형레코드사가 주관했던 ‘전국가요음악 콩쿠르대회’에서 1등으로 당선돼 가수로 데뷔했다.38년에는 ‘불효자는 웁니다’를 발표했으며, 이듬해에는 가수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넋두리 20년’ ‘꽃마차’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이어 ‘유정천리’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사랑’ ‘산유화’ ‘소양강처녀’ 등 발표한 작품이 모두 5000여편에 이른다. “내가 발표한 거, 가사 다 외워. 아직 총기가 있어. 새 천년이 와도 나는 현역이야.” 본명 박창오에서 인생은 시작됐다. 그러다가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고 반야월이라는 작사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집에서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자녀 여섯을 두었으며 둘은 잠시 가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한도 많고 팔자도 어지간히 드세다.‘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처럼 모질게도 살아왔다. 풍각쟁이면 어떻고 딴따라면 어떤가. 늘 구수하고 마음씨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다들 ‘젊은 오빠’라고 부른다. 맞다. 이게 행복이요, 큰 부자가 아닌가.‘국민과 함께 딩동댕 25년’, 최고령 현역 방송 MC, 그뿐이랴. 지역갈등, 고부갈등, 남북갈등을 해결하는 전도사로 전국을 쉼없이 누비고 있다. ●현역 최고령 방송 MC ‘국민 MC’ 송해(78). 본명은 송복희(宋福熙)다. 그러나 6·25때 피란 도중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어 이름을 ‘바다 해(海)’로 바꿨다. 그는 25년째 KBS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이끌어오면서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일주일에 사흘 이상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다. 녹화 일정이 없을 땐 한국원로연예인 상록회(서울 종로3가)에서 동료들과 못다한 얘기를 나눈다. 상록회는 원로연예인의 사랑방격으로 12년 전 송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늙어가는 처지끼리 따뜻한 동료애를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지난주 상록회 인근의 한 카페에서 송씨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러니까 말예요,25년이 후딱 넘어갔어요. 아마 공개방송 사상 처음일 거요.”라는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전국노래자랑 MC 25년’의 소감을 피력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일이 아니고 유람이지. 녹화 전날 현지에 내려가 명소도 찾아보고, 주지스님도 만나 얘기도 나누고, 그게 다 보약이지 뭐.”라며 웃는다. 이어 “전국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어. 세월이 지나면서 기존의 작은 시(市)가 광역시에 편입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행정구역이 자꾸 생겨나요.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은 무진장 다녔지.”라고 하면서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에도 가장 많이 갔어요. 이래저래 전국 군단위까지 아마 열두바퀴 정도는 돌았을 거요.”라고 부연했다. 송씨는 방송녹화 하루 전에는 반드시 주변 취재를 꼼꼼히 하는 버릇이 있다. 대상은 주로 시장바닥과 대중목욕탕. 그는 “시장에 가면, 많은 재산이 있거든. 그 고장의 분위기, 유행, 또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풍물 얘기를 귀담아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또 목욕탕에 가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와. 발가벗고 뒤지는데 아무려면 재미없을라고.”라며 또한번 웃는다. ●예심에 2000여명 몰려 15명만 본선에 뿐만 아니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는 대개 1500∼2000명이 몰린다. 이중 15명 가량 본선에 오른다. 사법시험 경쟁률과 엇비슷하다. 송씨는 예심부터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또 본선에 오른 사람들과는 일대일로 만나 무대 위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지 미리 상의한다. 송씨는 요즘들어 더욱 젊어진 기분이다. 호칭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 처음에는 ‘송해 선생님’ ‘송해 아저씨’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결같이 ‘젊은 오빠’나 ‘송해 오빠’로 통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렇게 부른다. 소위 ‘만년먹기 오빠’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도 다양하다.20대 아가씨에서부터 60∼70대 할머니한테 기습 뽀뽀를 당하는 것은 예사. 얼굴에 스타킹을 씌워 뱅뱅 돌리는 사람, 행진시키는 사람 등등. 하지만 송씨는 아무리 짓궂은 상황도 부드럽고 재치있게 받아넘겨야 한다. 눈물겨운 사연도 많다.3대째 대장장이가 출연해 직업에 대한 경시풍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경우,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경상도 출신 며느리가 전라도 시어미니와 함께 출연해 많은 박수를 받은 일, 앞을 못보는 장애인이 ‘노래가 곧 눈’이라며 관객들을 울린 일 등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 하나. 김인영 악단장과의 관계였다. 송씨는 이에 대해 김 단장과는 TBC라디오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친숙한 사이로 녹화가 끝나면 소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한다.”고 귀띔했다. 이때 출연자에게 선물받은 특산물이 안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송씨는 지금도 소주 2병 정도는 거뜬히 마신다.) 송씨는 또 노래자랑에 출연했던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많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동호회를 만들어 불우이웃을 위한 공연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연자 최연소 3세·최고령 103세 “25년 전 화면을 보면 트로트풍 등 추억의 노래였지만 요새는 매우 다양해졌어요. 최연소 출연자가 세살, 최고령 출연자가 103세, 연령폭이 무려 한 세기에 달해요.” 송씨는 연백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상업에 종사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1·4후퇴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송씨는 이 대목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는 자신을 위해 만든 노래라며 잠시 회상에 빠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해주항에서 그는 해군 상륙정(LST)을 탔다. 포성을 뚫고 피란길에 나섰다. 바닷물로 밥을 지어먹으며 가까스로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때 나이 스물넷.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군에 입대한다. 전쟁을 피해 월남했지만 결국 전쟁 깊숙이 뛰어들게 된 것. 그는 야전부대가 아닌 통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통신부대에 배치됐다. 근무지는 대구 육군본부. 여기에서 3년8개월 동안 근무하게 된다. 군 얘기가 나오자 “내가 말예요, 전쟁종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사람이오. 또스똔똔 하는 모스부호로 말예요.”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휴전협정 당시 육본 암호실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휴전협정 사실을 암호화한 뒤 전 육군에 타전했고, 곧 이어 전언통신문을 통해 역사적인 ‘전쟁종식’을 알린 것. 그는 군복무 시절에 1급비밀을 취급하는 통신사(하사)여서 영외거주가 가능했다. 대구 민박집에서 출퇴근할 때 선배의 여동생을 우연히 알게 됐고, 결혼에 이른다. ●55년 창공악극단서 가수로 데뷔 55년 제대를 하자마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 4시에 부산역에 도착하면 석달 동안은 집을 비우는 등 유랑극단처럼 떠도는 생활이 계속됐다. “40대초반이었지요. 몸이 몹시 안 좋았어요. 일가친척도 없지, 기둥뿌리 하나 없지, 술이라는 힘으로 달랬던 시절이었어요.3개월 동안 병원에 버려지다시피 지냈지.” 그는 “차마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라며 잠시 창 밖을 응시한다. 이어 “젊은 마누라도 있고 내가 왜 장애인처럼 지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병원을 뛰쳐나왔지.”라고 회상했다. 당시 송씨는 장충동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팔각정까지 산책을 하며 마음을 다져먹고자 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고독, 절망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하루는 산책로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소나무 가지숲에 걸려 목숨을 구했다. 이후 그는 새삶의 길로 들어선다. 송씨는 요즘들어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형제의 얼굴을 떠올리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또 대학 2학년때 사고사를 당한 아들의 얼굴도 눈앞에 자주 아른거린단다.(원래 송씨 슬하에는 두딸과 외동아들이 있었다.) 건강비결은 음식을 안 가리고, 아무와도 격의없이 만나 웃는 것이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송씨는 지나는 행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아이고, 우리 송해 오빠.”하면서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이 세상에 송해만큼 부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사람 많이 아는 것이 최고의 부자 아니겠습니까.”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생 ▲6·25 직전까지 북한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공부 ▲51년 1월 월남 ▲55년 육군통신부대 만기제대 ▲55년 ‘창공악극단’가수 데뷔 ▲74년 KBS라디오 DJ ▲76년 MBC라디오 코미디쇼DJ ▲80년 전국노래자랑 MC ▲99년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2001년 제8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2003년 제1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보관문화훈장 ■ 작품 송해 옛노래집,KBS고전유머 극장,KBS코미디 하이웨이
  • [어떻게 지내세요] 前 세계복싱챔피언 유제두

    [어떻게 지내세요] 前 세계복싱챔피언 유제두

    “요즘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복싱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으로 복싱을 한 옛날과는 격세지감이 들지요.” 전 프로복싱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유제두(60). 지난 1975년 6월7일 일본의 와지마 고이치를 때려눕히는 광경은 40대 이상의 팬들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유제두체육관’을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유제두 관장은 후배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악수를 청했더니 손이 돌주먹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이 60에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체육관 원생들의 운동을 도와주고 있을 뿐 별도의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육관에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 20명가량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도 하고 ‘땡’하는 종소리에 맞춰 복싱 스텝을 밟아보기도 했다. 저녁에는 다이어트를 하려는 여성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체육관 벽면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찍은 사진, 세계챔피언 등극 이후의 카퍼레이드 장면, 또 청와대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장면 등이 쭉 붙어 있었다. 유 관장은 “은퇴후 마포와 연희동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다가 복싱은 아무래도 공단이 있는 곳이 낫다는 생각에 지난 83년 이곳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79년 은퇴경기후 그동안 후배양성에 묵묵히 힘써 왔다. 침체된 프로복싱을 살려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결과 84년 IBF(국제복싱연맹) 챔피언에 오른 장태일을 비롯해 곽정호 차남훈 장영순 정선용 등 동양챔피언을 길러냈다. 요즘에는 주로 신인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현역 시절 숙적이던 일본의 와지마와 가끔 만난다. 후배선수를 데리고 일본에 시합갈 때 만나는 경우도 있고, 또 4년전에는 와지마가 한국에서 일주일간 머물 때 몇차례 만났다. 현역시절 전적은 화려했다.68년 프로데뷔 이후 11년간 56전51승(29KO)2무3패. 한국미들급 챔피언-동양미들급챔피언-세계주니어미들급챔피언, 특히 동양타이틀을 21차례나 방어한 기록을 갖고 있다.75년 당시 일본 적지에서 벌어진 세계타이틀전에서 챔프 와지마를 KO로 눕혀 온 국민을 열광케 했다. 복싱을 안 했으면 지방에서 공무원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그는 “이왕 권투를 했으니 후진들을 키워 세계챔프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2남1녀의 자녀 중 딸은 결혼했고, 두 아들은 각각 직장과 대학에 다니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애니메이션] 호빵맨보고 포켓몬도 만나고…

    [애니메이션] 호빵맨보고 포켓몬도 만나고…

    아이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만화영화만큼 재미있는 친구는 없을 듯싶다. 여러 채널들에서 설 연휴기간 동안 아이들끼리, 또 가족끼리 볼 만한 애니메이션들을 마련했다. 먼저 EBS는 청소년의 성장을 그린 특선만화 3편을 8∼10일 오전 9시50분에 방영한다. 첫날 방송될 ‘야생마 빛나는 태양’은 인디언 소년과 야생마의 우정을 그린 작품. 백인들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고 다리를 잃은 뒤부터 침울한 외톨이로 지내는 소년 ‘부러진 다리’가, 카우보이로부터 달아난 야생마 ‘빛나는 태양’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우정을 키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9일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선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에 빠진 열 두살 앨리스가 거울나라로 들어가 긴 여행을 펼친다.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 등을 만나며 거대한 체스판과 같은 거울나라에서 씩씩하게 자아를 찾아나간다. 블루스의 왕을 꿈꾸는 흑인 소년의 고민과 성장을 그린 ‘캣피시 블루스’는 10일 소개된다. 힘겹게 농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음악수업을 계속하는 소년 루스벨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현실과 꿈의 관계에 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케이블ㆍ위성채널에서도 풍성한 애니메이션들을 준비했다. 투니버스는 8∼10일 오전 11시에 호빵맨과 세균맨의 대결을 담은 ‘날아라 호빵맨 TV스페셜’, 엄마를 찾는 아이와 스님의 따뜻한 일화를 그린 프랑스 안시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작 ‘오세암’, 소녀 보리와 강아지 짜구가 펼치는 모험담 ‘보리와 짜구’를 방영한다. 애니원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특집을 마련했다.8일 오전 9시에는 ‘포켓몬스터 극장판-뮤츠의 역습’을, 오후 1시에는 3D 애니메이션 ‘바비의 공주와 거지’를 내보낸다.9일 오전 9시에는 ‘포켓몬스터 극장판2-루기아의 탄생’, 오후 1시에는 ‘졸라맨’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정의의 용사 졸라맨’이 방송된다. 10일 오후 1시에는 메이지 유신을 배경으로 방랑자 사무라이의 삶이 가슴 적시는 감성으로 그려진 ‘바람의 검심 극장판-유신지사에의 진혼곡’을 방송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정운찬 서울대총장 “대학도 펀딩시스템 갖춰야”

    정운찬 서울대총장 “대학도 펀딩시스템 갖춰야”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기슭에는 지금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새해 들어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으로 한동안 들썩였는가 하면 지난달 28일에는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전 미대 교수를 사실상 복직시키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안팎의 논쟁이 뜨겁다. 그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처음 실시한 지역균형선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제도로 뽑은 신입생 586명은 대학이 다양성을 갖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긍정정이든, 부정적이든 이 모든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정운찬(57) 총장이 있다. 서울신문은 2일 정 총장을 단독으로 만나 복잡할 수밖에 없는 최근의 심경을 들었다. 정 총장은 지난달 17일 등록금 인상안을 확정하기 위한 기성회 이사회가 학생들의 실력저지로 무산된 것을 매우 섭섭해했다. 그는 “등록금 인상 저지를 넘어 학생들이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학생들이 기성회 이사들에게 욕을 하는가 하면 여교수에게 ‘아줌마는 누구세요.’라고 ‘막말’을 하는 데는 충격도 받았다. 정 총장은 학내신문인 ‘대학신문’이 제호없이 발행되는 사태가 빚어졌을 때도 ‘학생들이 지나치게 학교에 반항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러니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하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그는 학생들의 이기심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정 총장은 “나는 20% 주의자”라면서 “80%의 잘사는 학생보다 어려운 20% 학생을 위한 대학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체적인 등록금 인하보다 현재 10%를 밑도는 전액 등록금 지급 비율을 20%까지 확대하자고 설득했지만 학생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결국 학생들이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토로했다. 김민수 전 교수 문제에 대해 정 총장은 “교수들을 설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재임용 이후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 단계이지만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평소 KAIST 로버트 로플린 총장에게 큰 관심을 표시했던 정 총장은 로플린 총장이 KAIST의 사립화를 주창한 데는 “한국 사정을 모르는 것 같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정 총장은 경제전문가의 교육부총리 임명에는 “교육업무는 교육계 인사 이외의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있다.”며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진표 부총리와는 악수만 나누었을 뿐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의외의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총장도 경제가 중요해지다 보니 요즘에는 경제학과 출신을 세우려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의 예일·하버드대학은 물론 서울대, 연·고대도 모두 경제학자 출신을 총장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교육이념을 좇지 않고 시류에 따라 경제학 전공자를 선호하는 풍조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역균형선발과 관련, 정 총장은 “선발된 학생들이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고 있고, 수학·영어의 기초학력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안심이 된다.”면서 “학생들을 뽑아 보니 서울대의 교육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 지역균형선발이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정 총장은 지역균형선발로 뽑은 학생을 위한 ‘멘토링’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지역 출신 선배를 연결해 진로 등의 조언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올 봄 강원도 등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생을 배출한 고등학교도 방문하겠다는 생각이다. 정 총장은 “교수 시절 재벌 비판을 많이 한 내가 총장이 되자 사람들은 모금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막상 기업을 방문해 보니 잘 도와 주어 역대 서울대 총장 가운데 가장 큰 액수를 모금했다.”고 공개했다. 한편으로는 “서울대 동창들은 연세대나 고려대보다 기부금에서 인색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외국의 대학들은 동창회 조직 등을 기반으로 전문적인 펀드매니저를 두고 있다.”면서 “서울대에도 전문적인 ‘펀딩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당수왕’ 천규덕

    [어떻게 지내세요] ‘당수왕’ 천규덕

    “영광을 재현해야지요. 레슬링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많은 박수와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왕년의 프로레슬러 천규덕(73)씨.‘박치기 왕’ 김일,‘비호’ 장영철 등과 함께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당시 서울 장충체육관과 문화체육관에는 이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특히 검은 타이츠를 입은 천씨가 ‘얍’하는 기합과 함께 당수로 일격을 날리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잠실 올림픽경기장내에 위치한 (사)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회장 김두만) 사무실에서 천씨를 만났다. 입구에는 프로레슬링 전용경기장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또 주위 벽면에는 천씨를 비롯, 김일 장영철 등 추억의 스타들이 대형 걸개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허리에 찬 챔피언 벨트와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천씨는 트렌치코트에 헌팅캡(일명 도리우치 모자)을 쓰고 있었다.60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그는 “올해 일흔셋이여.4년 전에 술을 끊었지.”라며 웃었다. 프로레슬링 전용경기장은 지난해 11월 개관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원로와 프로레슬링 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지요.1단계 숙원사업이 이뤄진 셈입니다. 오는 3월부터는 이곳에서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많이 홍보해주세요.” 그는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본명 김신락)과의 일화를 소개했다.63년 가을 역도산이 잠시 귀국한다. 숙소는 조선호텔.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프로레슬러들이 호텔 앞으로 달려가 도열, 역도산을 환영했다. 이때 천씨는 공군 상사. 군복을 입었다. 역도산은 천씨와 악수를 나누면서 “손의 크기가 나와 비슷하군. 일본으로 올 생각 있나.”라고 했다. 후계자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천씨는 부대에 돌아가자마자 제대신청을 했고, 일본에서 연락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해 12월 역도산이 칼에 맞아 숨졌다는 비보를 접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천씨는 13세 때부터 중국에서 무예를 익히고 귀국한 이철산에게 당수를 배워 5단의 실력을 쌓았다. 이후 29세 때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으며, 김일과 함께 일본 레슬러들을 때려눕혀 국민적 영웅이 되기도 했다. 지난 85년 링을 떠난 천씨는 선수시절에 적을 둔 영진약품에서 4년 동안 더 일을 했다. 이후 군 동기생의 회사에서 6년 동안 고문을 맡았다. 그는 레슬링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지난 98년 프로레슬링동호회(서울 신설동)를 결성했다. 현재 인천시 간석동 40평 아파트에서 부인과 함께 단둘이 지낸다. 그의 장남은 탤런트 천호진. 이웃동네에 살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식을 갖고 일본 선수들과 싸웠습니다. 더 늙기 전에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야지요.” 김문기자 km@seoul.co.kr
  • [아자!아자! 시민기자]기대와 희망 가득 ‘해돋이 행사’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을유년 첫 아침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에는 학림사와 노원구 산악회가 함께 개최한 ‘불함산 해돋이 행사’가 열렸다.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학림사주지 도원 스님은 송광식씨가 대독한 축원문을 통해 “답답했던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되리라는 희망과 함께, 새해에는 어려운 일에도 물러서는 일없이 꿋꿋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필자도 “여명을 박차고 해야 솟아라/저 마들벌에 심은 꿈과 희망/싹트고 꽃피울 역동의 빛으로/해야 솟아라”는 자작시 ‘해야 솟아라’를 낭독하며 새해를 맞은 감격을 표현했다. 일출 직전 서광이 퍼지자 모두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탄성을 내며 소원을 빌었다. 강승자(45·여·중계1동)씨는 “군복무 중인 아들과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고 말했다. 허명순(53·여·상계10동)씨는 “올 한해 경기가 풀리길 기원했다.”며 “발목을 다쳤지만 감동 덕에 아프지 않다.”고 밝혔다. 붉고 탐스러운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참가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악수를 나누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덕담을 나눴다. 준비된 떡과 막걸리를 들며 차가운 몸도 함께 녹였다. 어느덧 산을 내려가는 얼굴에는 모두들 어느 해보다 밝고 알찬 시간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기대감이 가득차 있었다. 이병숙 시민기자 dulmaru@hanmail.net
  • 얼굴·소리로 주인인식 로봇 국내서 첫 개발

    얼굴·소리로 주인인식 로봇 국내서 첫 개발

    두 발로 걷는 능력과 얼굴및 음성 등을 인식하는 지능까지 갖춘 인간형 로봇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유범재 박사팀은 네트워크 방식으로 얼굴 등을 인식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Humanoid) ‘NBH-1’을 개발했다고 6일 밝혔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신체와 같은 구조로 인간을 대신하거나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로봇이다. 지난 2000년 일본 혼다사가 개발한 ‘아시모’(ASIMO)와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준호 교수팀이 공개한 ‘휴보’(Hubo)는 두 발로 걸을 수 있지만, 지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 박사는 “NBH-1은 영상과 음성 등의 데이터를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의 서버로 보내면 서버는 그 의미를 분석, 휴머노이드가 영상을 인식하거나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다시 전송하는 방식”이라면서 “로봇의 뇌 역할을 하는 서버가 외부에 있어 기존 로봇들이 갖고 있던 지능 향상과 무게 증가 등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NBH-1은 키 150㎝, 몸무게 67㎏으로 전후좌우와 대각선 방향으로 보행이 가능하다. 최대 보행속도 시속 0.9㎞이다. 게다가 얼굴과 음성, 동작, 물체 등을 인식할 수 있다. 예컨대 악수할 때 상대방의 힘을 측정, 그에 상응하는 팔 동작을 형성해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강점 중 하나인 무선 네트워크망을 활용할 경우 서버만 갖춰진다면 하나의 프로그램을 여러 로봇이 공유할 수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현철씨 징역1년6월·추징 20억

    김현철씨 징역1년6월·추징 20억

    불법 정치자금인지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인지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재판에서 재판부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규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현철씨는 지난 97년 이자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뒤 7년여 만에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실형이 선고되자 현철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으며 함께 기소된 김기섭 전 국가안전기획부 운영차장은 안타까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현철씨와 악수를 나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최완주)는 31일 조동만 한솔그룹 전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된 현철씨에게 징역 1년6월과 추징금 20억원을 선고하고 김기섭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동만 부회장에게 맡긴 70억원의 불법자금은 사회에 환원할 돈으로 피고인들에게 이자를 청구할 권리가 없다.”면서 “정당한 이자라면 수표나 계좌로 입금했을텐데 은밀하게 현금으로 나눠 주는 등 조 부회장이 김기섭씨와의 친분 때문에 건넨 돈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현철씨가 총선을 앞두고 받은 조 부회장의 자금을 지역구 관리에 사용했고 두 차례 만나 총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인사한 것을 보면 정치자금으로 인식하고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또한 현철씨가 돈을 받은 시기도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진 후이고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등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현철씨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작년 2∼12월 김기섭씨를 통해 조 부회장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현철씨는 이돈이 조 부회장에게 맡겼던 ‘대선잔금’ 70억원의 이자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盧대통령·윤영철 헌재소장 ‘1년만의 악수’

    30일 노무현 대통령의 5부요인 초청 송년오찬은 탄핵 기각결정과 신행정수도 건설 위헌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윤영철 소장을 꼭 1년 만에 만났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윤 소장은 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해외순방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으며 노 대통령은 “예.”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때 사진 취재진이 카메라 플래시를 일제히 터트리자 노 대통령과 윤 소장은 살짝 웃으면서 악수하는 모습을 약간 길게 끌었다. 윤 소장 부부는 이날 청와대 만찬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탄핵기각 결정이 내려진 두달 뒤인 7월17일 김원기 국회의장 초청 만찬에는 노 대통령과 4부요인만 참석했고, 지난달 25일 노 대통령의 해외순방 설명만찬에는 4당대표와 3부요인만 참석했다. 두번의 만찬에 헌재소장이 제외된데 대해 청와대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설명해 왔다.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김원기 의장에게 “연말에 쉬지도 못하고 답답하시겠다.”고 위로한 뒤 “경제, 경제라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국회에서 경제관련 법적 조치를 조속히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개정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으며, 유지담 선관위원장은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검토중인 게 있다.”면서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해 선관위 직원들이 10만원씩 내서 1억여원이 모였다.”고 말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휴 보/육철수 논설위원

    부모 자식간에는 외양부터 내면까지 닮은 데가 있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비슷해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해서 예전에는 몸에 ‘칼’ 대는 것을 금기로 여겼지만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부모가 만들어준 신체가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뜯어 고칠 수 있으니까. 최근 수능부정 때 사진과 실제 얼굴이 달라 경찰의 수사를 받은 수험생 중 상당수가 성형수술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형미인대회까지 열렸다니 이젠 얼굴을 예쁘게 바꾸는 것도 세계화·보편화됐다고나 할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잘 생긴 자식 못 낳을 바엔 자신을 빼닮은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될 것 같다. 과학기술과 의술의 발달은 유전자 변형이나 복제술로 인간의 겉모습은 물론 성격까지도 바꿀 수 있어 부모의 ‘고유권한’마저 이처럼 위태롭게 만들어 버렸다. 하기야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망과 첨단의술의 조우가 ‘변형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은 필연이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성형기술이 변형인간을 탄생시켰다면 5세대(인공지능) 컴퓨터기술은 또 다른 측면의 ‘기계인간’을 제조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일본에서 사람처럼 인사하고 악수도 나눌 줄 아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가 제작돼 화제였는데,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최근 이에 못지않은 ‘휴보(Hubo)’ 개발에 성공했다. 휴보는 키 120㎝, 무게 55㎏으로 사람과 블루스를 출 수 있고 ‘가위 바위 보’도 할 수 있단다. 음성인식기가 내장돼 말을 알아듣고 다섯 손가락이 작동하며, 두 눈이 따로 움직이도록 제작됐다니 그만하면 인간의 기본형태는 갖춘 셈이다. 그렇다 해도, 로봇이 사람 행세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공장 자동화에 투입돼 어려운 생산활동을 도와주고, 인간의 기억과 능력의 한계를 극복시켜주는 로봇의 혁혁한 공로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제아무리 날고뛰는 기술이라도 로봇에 인간의 감성과 이성, 특히 종족번식 기능을 아직은 접목시킬 수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랬다간 정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과 로봇의 전쟁이 현실화될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與·野 ‘기선잡기’ 가시돋친 설전

    與·野 ‘기선잡기’ 가시돋친 설전

    여야는 23일 2차 ‘4인 대표회담’을 열어 핵심 쟁점 법안인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와 합의정신 이행 등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에 앞서 회담장 앞인 국회 귀빈식당에서는 민주노동당이 기습적인 항의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4인 대표회담’이 재개된 23일 오전 10시16분 국회 본관 귀빈식당 앞에서 천영세 의원단대표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려던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를 막아서면서 양측간 설전을 벌였다. ●민노당 “국회 입법권 훼손” 민노당 천 의원단대표는 “국회 입법권 훼손이다.”라고 목청을 높였고, 열린우리당 천 대표는 “국회 무력화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민노당 심상정 의원이 “민주주의의 모욕으로 국민과 역사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고 경고하자, 열린우리당 이 의장은 “역사적 심판을 받겠다.”고 맞받아쳤다. 민노당의 기습적인 항의 시위는 15분 정도 계속됐고, 천 의원단대표는 “4인 회담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성명서를 낭독하고 퇴장했다. ‘기습’을 당한 이 의장은 “국회에 들어온 이상 ‘거리의 정치 방식’은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국회에서는 국회의 질서를 따르고, 국회법과 관례에 따라서 해야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천 원내대표도 “4인 회담은 정치협상으로 막힌 현안을 풀어보려는 것”이라며 “다른 정당서 오해하는데 상임위나 소위 차원에서 협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라고 거들었다. ●朴대표 “악수는 잘 되고나서 합시다” 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의 언질로 민노당의 기습 시위를 피해 10시32분쯤에 회담장에 도착한 박근혜 대표는 이 의장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한 차례 악수 포즈를 취했으나 취재진이 4인 모두 악수하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구하자, 박 대표는 “잘 되고나서 합시다.”라며 이 의장이 내민 손을 물리쳤다. 착석한 직후 이 의장은 민노당의 회담장 앞 시위를 언급하며 “ 민노당은 열린우리당의 (회담장) 입장을 저지하려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저지가 안 됐으니 서로 잘 된 모양이죠.”라며 가시돋친 말을 던졌다. 이어 “한나라당이 교육위에서 사립학교법을 27일 상정, 내년 1월 공청회하자고 해서 오늘 소태씹는 맘으로 왔다.”며 “4자 회담이 한치도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왔다.”고 운을 뗐다. ●李의장 “오늘 소태 씹는 맘으로 왔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예결위 등에서 (열린우리당이) 단독 심의하고, 다른 상임위에서도 그런 식으로 하니까 그렇게 얘기 나온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어 천 원내대표도 “특히 교육위 문제는 깜짝 놀랄 만한 사태다. 연내 처리와는 거리가 먼 태도다. 확실히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천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회담 한 시간여 만인 오전 11시30분께 회담을 마무리한 뒤 ▲27일까지 휴일없이 4인회담 가동 ▲상임위·소위·특위 등도 4인회담과 함께 전면 가동 ▲과거사법 8인 실무팀 운영 ▲필요한 경우 2인 이내 배석 허용 등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문소영 박지연 김준석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사랑 나누미운동’ 막올랐다

    ‘서울사랑 나누미 10만시간 채우기’ 운동이 막이 올랐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 시장은 14일 종로구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아 2시간 동안 3000여명의 노인들에게 밥과 국, 반찬 등을 담아주는 무료 배식 봉사활동을 펼쳤다. 오전 11시 30분쯤 센터에 도착한 이 시장은 곧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을 시작했다. 이 시장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직접 식판을 들고 자리를 잡아주기도 했다. 무료 점심을 먹기위해 센터에 들른 박연수(77)할아버지는 이 시장의 손을 잡고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악수를 청하는 노인들에게 “노인들이 자기계발과 행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복지재단 박미석 대표는 “공무원들의 봉사활동 상황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도록 ‘10만시간 나누미 시계’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봉사활동에는 서울복지재단 직원 20명을 비롯, 시정개발연구원 15명, 지하철공사 12명, 도시철도공사 10명 등 70여명이 참가했다. 재단은 오는 18일에는 ‘은평의 마을’,25일에는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 마을’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친다.‘서울사랑 나누미’운동은 서울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서울시 공무원과 11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직원들이 참여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공무원 후생복지사업 업무제휴

    정채융(오른쪽)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진수일 서울의료원장이 14일 공무원 후생복지사업의 활성화와 공동이익 증진을 위한 업무제휴 조인식을 가진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이명박시장, 철책선 경계근무

    이명박 서울시장이 강원도 화천 중동부전선 최전방부대를 방문해 철책근무 등 1박2일 동안의 병영 체험을 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11일 오후 늦게 부대에 도착한 이 시장은 30여명의 시 간부와 함께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약 3시간 동안 철책 근무를 나가 경계근무 중인 장병들을 만날 때마다 “수고한다. 든든하다.”며 악수를 청했다. 장병들은 “괜찮습니다.”“이상 없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이 시장은 경사가 60도에 이르는 가파른 철책선을 1㎞가량 따라 걸으며 경계근무를 서기도 했다. 이 시장은 장병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북한 주민은 우리가 보듬어야 할 대상이지만 북한군과 정권은 명확한 우리의 주적(主敵)”이라면서 “북한군이 주적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최전방 철책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또 정치권을 예로 들며 “후방에서 조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전방에서는 흔들림 없이 경계에 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대 관계자는 “경제도 어렵지만 부대가 최전방에 위치해 최근 2년 동안 위문객이 없었다.”면서 “철책을 돌며 병사들과 함께 지낸 것은 이 시장이 처음”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시장은 부대 장병들에게 전투화 살균건조기, 순간온수기 등 1억 3000만원가량의 위문품을 전달했다. 화천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왕년의 ‘목소리 마술사’ 다시 뭉쳤다

    좍 편 두 손은 ‘대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대사) 들어가라.’는 신호. 라디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12년 동안 떠나 있었다는 사람답지 않게 부조종실의 임영웅(극단 ‘산울림’ 대표) 연출가는 한시도 쉬지 않고 양 손을 현란하게 움직인다. 잠시라도 지시를 놓치면 거친 욕설이 쏟아지지만 반백의 성우들은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는 KBS 1기 성우들이 방송인생 50주년을 기념해 뭉친 제작현장이었기 때문. 성우는 물론 제작진도 대부분 원로급이다. 이들은 녹음을 마치자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서로에게 박수를 치며 악수했다.“정말 잘했어, 잘했다고.”(8일 KBS1 라디오 ‘KBS무대’ ‘목탁새’ 제작현장) ●“화려했던 60~70년대 전성기 재현” 지난 1954년 말 뽑힌 KBS 공채 성우 1기들이 50주년을 맞아 4부작 기념 라디오 드라마를 마련했다.KBS1라디오(표준 FM 97.3㎒) ‘KBS무대’(매주 일 오후 11시10분)에서 지난 5일부터 성우 1기들을 중심으로 제작·방송하는 라디오 드라마 4편이 바로 그것. 지난 5일 ‘돌아온 아이들’에 이어,12일 ‘목탁새’,19일 ‘가을과 노을’,26일 ‘만남’이 차례로 방송된다. 특히 마지막 편인 ‘만남’에서는 현재 살아 있는 1기생 전원이 출연해 의미를 더할 방침이다. 신원균 이창환 등 이미 세상을 뜬 1기 동기들도 ‘망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등장해 성우 1기생의 반세기에 걸친 삶의 애환과 즐거움 등을 그려낼 예정이다. 극본도 성우 1기인 고은정이 썼다. 또 연출도 임영웅(예술원 회원), 곽현(KBS 라디오 연출 1기생), 조원석(KBS 라디오 본부장) 등 예전의 원로 PD들이 꾸미는 등 제작진 거의가 원로급이다.8일 제작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화려했던 60∼70년대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를 다시 재현해 보이겠다.“며 의욕이 대단했다. ●고은정·김수일·박용기·오승룡씨 등 한자리 “소감요? 말도 못하게 좋죠. 부부보다 더한 우리 1기들이 오랜만에 모여 뭔가 만든다는 자체가 감개무량합니다.”(고은정) 고은정, 김수일, 박용기, 오승룡…. 이날 한자리에 모인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감회에 젖었다. 이 자리를 위해 미국 텍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동기(박용기)도 있을 정도.“이 짓(성우)은 거의 ‘아편’ 같다고나 할까요. 한번 맛을 알면 안 할 수가 없습니다.”(김수일)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 택할 겁니다. 한번도 후회한 적 없는 반세기였죠.”(오승룡) “돌이켜보면 항상 부끄럽고 항상 미완성이었네요. 모두들 좋은 작품 만들겠다는 욕심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아닐까….”(박용기) 물론 말 못할 고충들도 많다.50년 동안 군 입대와 관련한 석달을 빼놓고 단 하루도 쉬어보지 못했다는 오승룡, 녹음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긴급환자를 위장해 스튜디오까지 달려간 적도 있다는 김수일…. 박용기가 “풀어놓자면 끝이 없다. 그만해라.”며 손을 내저을 정도. 그러나 해보지않은 사람은 모를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TV드라마와는 또다른 묘미 때문”(오승룡)이다. “그림이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TV와 달리 라디오는 청취자들이 직접 그리는 ‘마음의 극장’이잖아요. 때문에 라디오 드라마는 청취자들이 각각 공감할 수 있는 개인적인 체험이 됩니다.” 애정이 많으면 할 말도 많은 법. 이들은 침체된 라디오 드라마 장르의 현황을 걱정하며 방송사들의 투자 부족 등을 성토하기도 했다. 현재 편성된 지상파 라디오 드라마는 KBS 5편,MBC 1편뿐.SBS는 한 편도 없다. 지난 57년 만들어져 현재까지 국내 유일의 문예창작 라디오 드라마 프로의 명맥을 이어온 ‘KBS무대’의 이상여 프로듀서는 “오디오에만 의존한다는 라디오 드라마의 약점은 역으로 강점이기도 하다.SF, 팬터지 등 라디오 드라마의 가능성은 아직도 무한하다고 본다.”면서 “제작진과 방송사 모두 라디오 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몫을 계속 고민하고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박용오 두산회장 ‘신입사원 챙기기’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이 올해 신입 사원들에게 합격 축하카드를 보내고, 환영만찬을 개최하는 등 ‘신입사원 챙기기’에 나서 화제다. 두산그룹은 8일 신입 사원들에게 박 회장의 자필 서명이 들어간 카드와 꽃다발을 발송해 ‘두산 가족’이 된 것을 축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서울 힐튼호텔에서 박 회장과 전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신입사원 최종합격자 400여명을 초청해 환영만찬을 개최했다. 박 회장은 임·직원들과 함께 합격자들에게 일일이 두산그룹의 배지를 달아주고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박 회장은 “108년 전통의 두산은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가 밝은 회사이며 미래를 향해 재도약하는 단계에 있다.”면서 “앞으로 두산에서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쳐 두산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두산중공업은 앞으로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회사설명회와 국내 발전소 견학, 공연 관람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두산도 스키캠프와 자원봉사활동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관계자는 “우수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 관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채용 이후 합격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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