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 “소화 힘들다”
본고사형 출제여부로 교육당국과 마찰을 빚었던 서울대의 2008학년도 논술문제가 28일 예시 형태로 얼개를 드러냈다. 일선 학교와 입시기관들은 예시문제가 본고사 형태는 아니며, 기본적인 원리나 개념 연습을 통해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자연계 일부 문항은 난이도가 높아 학교 교육으로 소화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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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이날 인문계 4개, 자연계 4개 등 8개의 정시모집 논술고사 예시 문항을 공개했다. 이종섭 입학관리본부장은 “단순한 암기지식이나 공식을 이용한 풀이과정이 아니라 이해력과 비판적 사고력 등을 묻는 것으로,7차 교육과정을 공부한 학생들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대가 추구하는 통합형 논술고사는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과 공교육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시전문가들은 서울대의 예시문항이 본고사 논란을 비켜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이사는 “정답을 정해놓고 공식을 대입해 풀라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 문제들”이라면서 “당장 객관식형 수학능력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기본적인 원리나 개념이 교과과정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기간 연습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통합형 논술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경기고 허익(국어) 교사는 “과거 논술은 제시문이 어렵거나 추상적이어서 그것조차 이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예시문항 수준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면서 “남은 2년간 다양한 읽기와 요약정리, 주제파악 등 연습을 하면 일선 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연계 일부 문제는 고도의 종합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과학고 박완규(과학) 교사는 “일부 자연계 문제는 평소 분석·추리 훈련을 쌓지 않았다면 학교교육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서 “고교과정 정상화를 말하면서 이런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곤혹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자연계 예시 1번… “한번 풀어보세요”
어느 부부가 아홉 쌍의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열 쌍의 부부는 서로 아는 사이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이도 있다. 이들 가운데 서로 알던 사람들은 악수를 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정중하게 악수를 한번씩 나누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 주인은 그 자리에 모인 19명(집 주인의 부인과 손님들)에게 오늘 모임에서 악수를 몇번 하였는지 질문하였다. 놀랍게도 이들이 악수한 횟수는 모두 달랐다. 이때 집 주인의 부인은 악수를 몇번이나 하였을지 생각해보고, 부인이 악수한 횟수를 일반화하여 설명하시오.
서울대가 자연계 예시문항으로 제시한 1번 문제는 ‘경우의 수’와 ‘수학적 귀납법’을 종합한 것이다. 문제에 제시된 19명을 먼저 염두에 두지 말고 작은 경우의 수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집주인 부부를 포함한 각 커플들에게 1과 1′,2와 2′,3과 3′ 등으로 번호를 부여한다. 초대된 부부가 한쌍이라면 1과 1′(집주인 부부)와 2와 2′(손님 부부)가 존재한다. 문제의 조건대로 1(집주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악수한 횟수가 다르게 되는 경우는 1′가 1차례,2가 2차례,2′가 0차례일 때다.(2와 2′는 바뀌어도 무방하다.)초대된 부부를 두쌍이라고 가정하면 1′,2,2′,3,3′가 각각 2차례,4차례,0차례,3차례,1차례씩 악수를 하게 될 때 조건에 부합한다.
두 가지 경우를 통해 집주인의 부인(1′)은 초대된 부부의 쌍과 같은 수만큼 악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수학적 귀납법으로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n쌍의 부부가 초대됐을 때 집주인의 부인이 n차례 악수를 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새로운 부부가 등장했다고 하고 이 부부의 남편은 n+1, 아내는 n+1′로 명명해 보자.
문제의 조건을 유지하려면 n+1은 ▲그동안 악수를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나 ▲자기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과 악수를 해야 한다. 이 경우 이미 와 있던 부부들은 악수를 한번씩 더 하게 된다. 또 새 부부가 등장하기 전에 악수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을 A씨라고 하면 n+1은 A씨와 같은 수만큼 악수를 하게 돼 조건과 맞지 않는다.
여기서 n+1′에게 A씨와 악수를 하게 하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악수를 1차례도 안한 사람부터 최대 2n번까지 악수를 한 사람까지 나오게 돼 모두 다른 횟수만큼 악수를 하게 된다.
이같은 결과를 종합해 보면 집주인 아내는 초대한 부부의 쌍과 같은 수만큼 악수를 하게 된다고 일반화할 수 있다.
문제풀이에 도움을 준 중동고 차순규(EBS 수리영역 전문위원) 교사는 “난이도 자체만 봤을 경우 기존의 서울대 논술문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