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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시인이 장원이오~”

    “김수영 시인이 장원이오~”

    어언 100년을 넘긴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시인들은 과연 어떤 시구를 뇌리 깊은 곳에 감추고 있을까. 숱하게 명멸해간 시작품들 중에서 독자, 그것도 시인의 뇌리에 박힐 시구를 남기는 일은 의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시인들이 간직하는 시구는 시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세계’는 겨울호에서 현역 시인 109명이 뽑은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가려 뽑은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강은교 김규동 신달자 등 원로에서 정일근 이원 등 중견 시인까지 전 연령대를 망라한 시인들이 가슴에 감춰온 ‘최고의 시구’를 조사해 꾸민 기획이다. ●서정주·정지용·이상·백석 순 조사 결과 시인들의 시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은 단연 김수영이었다.‘최고의 시구’로 언급된 횟수를 기준으로 본 평가이다. 이어 서정주와 정지용 이상 백석 윤동주 김종삼 김소월 한용운 이성복 등이 차례대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김수영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구를 들어 그가 우리 시문학에 미친 영향을 가늠케 했다. 강은교는 “그에게 참 많이 빚지고 있다.”며 ‘꽃잎2’의 이 대목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時間을 위해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구라고 밝혔다. 고영민은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는 ‘그 방을 생각하며’의 한 대목을 꺼내놓았다. 그의 ‘사랑의 변주곡’ 중 일부인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는 시구는 나희덕이 아끼는 대목. 시단에 드리운 서정주의 그늘도 드넓었다. 문정희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발레리의 시구와 함께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시구를 기억했고, 고두현은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는 ‘자화상’의 한 구절을 꺼내 놓았다. 정지용과 이상 역시 ‘빛나는 시인들’이었다. 오탁번은 정지용의 ‘홍역’ 중 ‘눈보라는 꿀벌 떼처럼 닝닝거리고 설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홍역紅疫이 척촉처럼 난만하다’를 꼽았고, 길상호는 이상의 ‘거울’ 중에서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를 명시구로 들었다. ●김소월 ‘가는 길´등 다양 김소월의 작품에 빗댄 김광규의 고백은 진솔했다. 그는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며 ‘가는 길’의 바로 이 대목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을 내보였고, 김규동은 “센티멘털·로맨티시즘의 시 풍토에서 지성을 건져올린 시작품”이라며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중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를 꼽았다. 시인의 연대기에 낙인(烙印) 같은 흔적으로 남은 시가 어찌 여기에 머물까. 정일근은 자신의 교단 경험을 회고하듯 김명인의 ‘동두천2’에서 ‘캄캄한 교실에서 끝까지 남아 바라보던 별 하나’를 들고는 이 시구가 연작시를 쓰는 동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안도현은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을 거론하며,“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덧 중견의 반열에 들어선 이원은 오규원의 ‘버스정거장’ 중에서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시라고 하면 안 되나’를 들고는 “이 시구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고 자신의 습작기를 돌이켰다. 문학평론가인 충북대 정효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런 ‘최고의 시구’가 주는 전율이 시인들의 생을 바꾸는 감전체험의 절정으로 엄습한 것은 이 땅의 근대 및 현대시의 정신이 요구한 지성과 부정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3국)] 한국,LG배 우승컵 보인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3국)] 한국,LG배 우승컵 보인다

    제13보(185∼193) 한국이 LG배 4강 중 3자리를 독점하며 대회우승의 청신호를 밝혔다.12일 일본기원에서 열린 LG배 8강전에서 이세돌 9단, 온소진 4단, 한상훈 초단은 일본의 장쉬 9단과 고노린 9단, 중국의 류징 8단을 차례로 물리치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박정상 9단은 중국의 복병 후야오위 8단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8강전 대국이 끝나고 열린 4강전 대진추첨결과, 이세돌 9단과 후야오위 8단, 온소진 4단과 한상훈 초단이 각각 결승진출을 다투게 되었다. 만일 이세돌 9단이 4강전에서 후야오위 8단을 꺾을 경우, 한국은 지난 3년간 LG배 결승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했던 부진을 씻고 우승을 확정짓는다. 흑185는 백이 △로 들여다보는 악수교환을 해둔 탓에 생겨난 뒷맛이다. 백이 186으로 늦추어 받은 것은 우세를 의식한 안전운행. 백186 대신 <참고도1> 백1로 끊는 것은 흑10까지 다소 복잡한 수순을 거쳐 패가 난다. 어쨌든 실전에서는 흑187로 끊는 맥점에 의해 백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여기서 백이 188로 위쪽의 흑 한점을 잡지 않고 <참고도2> 백1로 막는 것은 흑2,4의 수단이 성립해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백192까지 부분적으로 흑이 상당한 전과를 거둔 모습이지만 이 정도로는 흑이 뒤처진 형세를 만회하기 어렵다. 그만큼 바꿔치기의 후유증이 컸다는 증거다. (192…185의 곳)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6) 역관 김득련이 본 신세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6) 역관 김득련이 본 신세계

    고종이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1896년 2월에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러파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켰다. 마침 러시아가 5월 26일에 거행될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사절단을 초청하자, 고종은 자신의 심복인 궁내부 특진관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하여 러시아 정부와 몇 가지 요구사항을 직접 협상하도록 하였다. 중국에서는 이홍장(李鴻章)이, 일본에서는 야마가타(山縣有朋)가 파견되었다. 이홍장은 러시아 측이 만주횡단철도인 동청철도(東淸鐵道)의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해 비밀교섭 상대자로 지목한 인물이었고, 야마가타는 한반도 분할안을 포함하여, 조선의 군사와 재정에 관해 러시아와 담판하려고 일본이 내세운 인물이었다. 동아시아 4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민영환 사절단이 가게 된 것이다. ●양반과 중인, 유학생의 같고 다른 기행문 사절단은 민영환,2등참서관 김득련,3등참서관 김도일, 윤치호, 시종 손희영, 스테인(주조선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등 6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김득련은 한어 역과에 합격한 전형적인 역관이고, 윤치호는 미국 유학생이며, 김도일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민가서 살지만 통역 경험은 러시아 상선에서 잠시 해본 것이 전부였다. 김득련은 중국어 역관이기 때문에 세계일주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환이 그를 데려간 것은 한문으로 일기를 기록하게 하고, 시를 짓고 싶을 때에 함께 짓기 위해서였다. 윤치호는 영어로 일기를 써서 민영환이 읽어볼 수 없었다. 김도일은 한문을 모르기 때문에 기록을 맡길 수 없었다. 민영환은 김득련이 한문으로 기록한 ‘환구일록(環日錄)’에서 3인칭(公使)을 1인칭(余)로 바꾸고,1인칭을 3인칭(김득련)으로 바꾼 뒤에 ‘해천추범(海天秋帆)’이라는 기행문을 완성했다. 양반과 중인, 두 사람의 의식은 별 차이가 없었다. 김득련은 기행문 말고도 오언절구 4수, 오언율시 5수, 칠언절구 111수, 칠언율시 13수, 철언장시 3수, 모두 136수의 한시를 지어 ‘환구음초’라는 한시집을 간행했다. 서문을 써준 육교시사의 선배 김석준은 “지구를 한바퀴 돈 김득련의 시가 진보되어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트이게 해주고, 가보지 않아도 천하를 알게 해준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기행문을 와유록(臥遊錄)이라 한 것은 방바닥에 누워 글을 읽으면서 실제 가본 것처럼 즐긴다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김득련의 ‘환구음초’야말로 독자들이 조선 최초로 세계일주를 즐기게 해준 와유록인 셈이다. 윤치호는 1881년 신사유람단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가 영어를 배웠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1885년 1월에 상하이로 망명해 중서서원(中西書院)에서 배웠으며,18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밴더빌트대학과 에모리대학에서 배웠다.1889년부터 영어로 일기를 썼는데, 서양의 문물을 기록할 한자어가 아직 부족했으므로 영어로 일기를 쓰는 게 더 편했다. 그는 자유주의를 꿈꾸었으며, 서양의 문물을 동경하고 동양의 한계를 파악했던 근대인이었다. ●서양모습 보고 개명한 나라로 봐 김득련이 조선을 떠나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하이였다. 번화한 상하이의 모습을 보고 눈이 둥그래진 그는 ‘상하이에 배를 대고’란 시에서 개항 50년 만에 서양 수준으로 발전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상하이가 통상한 지 오십년만에/각 나라 교묘한 기예를 거두지 않은 게 없네./강가 일대의 서양 조계는/깔끔하게 정리된 길이 부두에 닿아 있네.” ‘나가사끼항에 이르러서’라는 시에서는 서양식으로 세워진 항구를 보며 경장(更張)의 효능을 인식했다. 당시 조선은 2년 전부터 갑오경장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명치유신을 갑오경장과 마찬가지로 생각한 것이다. “바다 위 산봉우리가 기이하더니/뱃사람이 가리키며 나가사끼라 하네./일본의 경장(更張)을 이로써 보니/집이며 거리 항구가 모두 서양식이군.” 며칠 뒤에 요코하마와 도쿄에 들어간 그는 이 도시들이 화려해진 이유를 ‘해천추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히 서양의 방법을 공부하여 개명한 길로 나갔기 때문인데,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근대화 혹은 문명개화가 곧 ‘서양식’이라는 등식이 인식되어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개화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는 처음 도착한 외국인 중국 상하이를 ‘동양 제일의 고장’이라고 치켜세웠지만,‘요코하마에 배를 대고’라는 시에서 “상하이를 요코하마와 어찌 비할까?”라고 첫 구절을 시작하였다. ●전깃불 속에서 발견한 극락-불야성 필자가 현재 석사논문을 지도하는 이효정은 ‘1896년 민영환 사절단의 기록 연구’라는 논문에서 “김득련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네바강의 선창과 다리 위를 수놓았던 전등 불빛”이라고 하면서,‘전기등’이라는 시를 예로 들었다. “전깃줄이 종횡으로 그물 같아/집집마다 끌어들여 고둥껍데기 같은 것을 사용하였네./유리등이 스스로 빛을 내어 두루 광채를 발하니/온 주위가 밝아져 밤이 사라졌구나.” 전통시대에는 밤에 등잔기름을 아끼기 위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지만, 전등은 반딧불이나 눈빛의 몇백배 밝은 빛을 제공하면서 밤을 낮으로 만들었다. 김득련은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서 최고조에 달한 도시의 밤을 보았다. “시가지는 4·5층으로부터 10여층에 이르기까지 고운 빛이 어지러이 비치고, 밤에는 전기와 가스 불빛이 밝아서 별과 달빛을 빼앗는다. 거리 위에는 다리를 놓고 철로를 만들어 기차가 다니게 했는데 이르는 곳마다 역시 그러하다. 사는 사람이 3백만에 가까운데 어깨를 서로 비비고 수레는 바퀴가 서로 닿아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노래소리와 놀이가 사철에 쉬지 않아 ‘늘 봄날같은 동산 속에 근심하는 곳이 없고, 불야성 안에 극락이 있다’는 말과 같다.” 당시 조선의 민간인들은 2층집을 지을 수 없었기에, 마천루를 보고 10여 층이라고만 기록했다. 이효정은 김득련의 서양 도시 체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자연의 어둠을 몰아내버린 도회의 휘황한 불빛과 분주한 도회인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동양적 ‘유토피아(극락천)’의 표상을 본다. 서양은 이미 문명의 진보를 향해 성큼 달려가고 있었다. 이런 서양의 풍물이 그에게는 별천지로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위의 구절에 잘 나타나듯, 근대 초기의 조선인들은 ‘이상적’ 타자로서 서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초월 민영환 사절단은 캐나다에서 미국과 유럽을 거쳐 다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돌아올 때까지 줄곧 기차를 탔다.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3년 전이니, 그들은 난생 처음 기차를 탄 것이다.‘캐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구천리를 가면서’라는 시를 보자. “철로를 타고 가는 기차바퀴가 나는 듯 빠르구나./가건 쉬건 마음대로 조금도 어김이 없네./이치를 꿰뚫어 이 법을 알아낸 사람이 그 누구던가./차 한 잎을 달이다가 신기한 기계를 만들어냈네.”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지향해 달리던 이 사절단은 결국 서구의 각 지역·국가 모두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민영환 사절단이 길을 나섰을 때, 조선은 처음으로 양력을 사용했다.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11월 17일(음력)을 1896년 1월 1일(양력)로 선포하고 건양(建陽)으로 연호를 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러시아력을 따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해천추범’에는 양력, 음력, 러시아력을 동시에 기록했다. 김득련은 ‘양력 7월 7일’이라는 시에서 복잡한 느낌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음력, 양력, 러시아력이 각각 다르니/한해에 세 번 칠석 때가 돌아오네./견우 직녀성이여! 오늘 밤이 짧다고 한스러워 하지 마오./오히려 앞으로 두 번 만날 기회가 있다오.” ‘전화기’라는 시에서 “벽 위에서 종소리가 사람을 대신 부르니/통속에서 전하는 말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네.”라고 표현한 것도 공간 초월의 효능을 인식한 것이다. ●서양여인 노출보고 큰 충격 김득련이 가장 충격을 느낀 것은 서양 여인이 노출한 모습이다.‘서양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시를 보자. “서양은 본래 여인을 중히 여겨/귀한 손님과 함께 앉는 것도 꺼리지 않네./입맞춤과 악수에 정은 더욱 돈독하고/술 시키고 차를 평하며 이야기 더욱 새롭네.” “팔을 걷고 가슴을 드러내도 예절은 가장 숭상하여/때로는 명을 받아 황궁에 들어가네./나비처럼 사뿐히 다투어 춤을 추다/긴 치마 땅에 끌며 꽃떨기로 수를 놓네.” 당시 조선 여인들은 장옷을 덮어쓰지 않고는 대낮에 외출하지 못했다. 남들 앞에선 부부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김득련은 서양에 가서 본 여인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의 시 136수에 낯선 신세계의 모습이 절실하게 그려졌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3국)] 흑,무리한 공격으로 위기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전(3국)] 흑,무리한 공격으로 위기

    제8보(82∼99) 현재의 형세는 조금이나마 흑이 나아 보인다. 백은 초반타개에 성공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중앙 부근에서 잠시 긴장을 끈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흑의 잽을 몇 방 허용하자 백돌의 모양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반면 흑돌은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백은 더욱이 중앙 백대마가 완생이 아니라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82로 붙인 것은 원성진 7단의 강인한 승부호흡을 보여준다. 우상귀의 흑집이 그대로 굳어져서는 더 이상 백이 추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맞서 흑83으로 젖힌 것 역시 백홍석 5단다운 강수. 흑97쪽으로 응수하면 안전하지만 그러면 백이 귀에서 사는 뒷맛이 남게 된다. 백86,88 등은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원성진 7단의 시간 연장책. 그러나 아까운 팻감을 없앤 악수교환이라 나중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는 일이다. 백90때 흑이 91로 백의 안형을 없앤 것이 너무 과했다.〈참고도1〉 흑1정도로 받아두면 가장 무난하다. 하지만 백홍석 5단은 백이 다시 2로 삭감을 해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어쨌든 실전은 백92의 반격으로 흑의 응수가 궁해졌다. 흑은 99로 일단 연결의 형태는 취했지만 백은 〈참고도2〉 백1이하로 흑을 괴롭히는 수단이 남아있다. 백홍석 5단으로서는 상당한 위기를 맞이했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대선주자들 ‘農心잡기’

    대선주자들 ‘農心잡기’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비롯한 각당 대선후보 6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6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주최 토론회서다.6명의 대선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면 시간은 짧았다. 민노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국민중심당 심대평,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오후 2시로 잡힌 행사 시작 전 나타났다. 반면 통합신당 정 후보는 오후 3시50분쯤, 한나라당 이 후보는 4시15분쯤 등장했다. 한 관계자는 “정·이 후보가 서로 뒷순서로 연설하려는 신경전이 아니겠느냐.”고 풀이하기도 했다. 정 후보와 이 후보는 무대 위에서 잠깐 마주쳤다. 짧은 악수 외에 대화는 없었다. 한나라당 이 후보 연설의 초반부는 좋지 않았다. 연설을 시작하자 곳곳에서 야유가 터졌다. 그는 “농민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겠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듣자.”는 등 직설화법을 구사했다. 그러자 분위기는 금세 달구어졌다.“잘한다.”는 연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 후보는 연설 직후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설과 관련 “아직까지 발표내용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만나뵙고 출마의 변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방송기자 출신의 통합신당 정 후보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농업관을 토해냈다. 농민들은 정 후보에게도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내려와.” 등 야유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 후보는 침착하게 반응했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의 경험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남의 논·밭 빌려 농사 지을 때마다 농산물 값이 폭락해 한숨 짓던 부모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는 한·미 FTA와 관련,“개방의 파고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이다.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비준동의에 앞서 피해보전대책과 농촌 부채 감소 대책을 확실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농민들에게 가장 환호를 받은 후보는 민노당 권 후보였다. 그는 “매년 400만섬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을 법제화해 남측 농민과 북측 동포를 함께 살리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이 후보는 ‘전원공동체 30개 조성’, 국중당 심 후보는 ‘10만 농업CEO 육성’을 공약했다. 창조한국당 문 후보는 ‘고향세 신설’을 약속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악수만 해도 상대방 연락처가 내 휴대전화에…다가오는 인체통신 시대

    악수만 해도 상대방 연락처가 내 휴대전화에…다가오는 인체통신 시대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를 하면 내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상대방의 연락처가 저장된다. 프린터에 손을 대면 내 개인휴대형단말기(PDA)에 있는 자료가 바로 출력되어 나온다. 사람의 몸에 전기가 통한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된 ‘인체통신 기술’이 실제로 보여주는 세상이다. 컴퓨터,PDA, 휴대전화 등 첨단기기의 기능이 향상되면서 데이터 전송에 인체통신을 도입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 각축 인체통신이 각광받는 이유는 휴대전화,PDA, 휴대형 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등 다양한 디지털기기의 기능이 향상되고 있는데다 옷이나 모자 등에 컴퓨터를 내장하는 ‘웨어러블(wearable) PC‘ 시대가 가까운 시일 내에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체통신은 사람의 몸을 전선과 같은 매개물질로 활용해 전기신호를 주고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통하는 전류가 체지방 측정에 사용되는 전류의 100분의1에 불과해 무해하고, 무엇보다 전력소비가 거의 없어 휴대형 기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체통신이 상용화되면 대용량 정보를 별도의 인터넷망을 통하지 않고 손가락을 갖다대거나 악수하는 것만으로 보내거나 받는 일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최근 IT관련 전시회에서는 두 사람이 악수를 하면서 1Mbps에서 10Mbps 정도의 속도로 파일을 주고받거나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시제품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현재 인체통신 시장에는 일본의 NTT, 마쓰시타, 소니를 비롯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등 대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한국은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2002년 말부터 연구에 뛰어들었다.ETRI측은 “내년 초면 인체 통신을 이용한 간단한 시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몇 년 내에 집안의 디지털 가전을 제어할 수 있거나 홈네트워크 인증, 로봇 조종 등 다양한 형태로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상용화 아이디어가 관건 6일 특허전문 분석업체인 WIPS에 따르면 인체특허와 관련된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의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8월 현재 각국에서 등록이 완료된 특허는 일본 4건, 한국 11건, 미국 5건, 유럽 3건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특허가 출원 중인 인체통신 관련특허는 일본이 무려 40건에 이르고 한국 26건, 미국 17건, 유럽 9건의 순으로 나타나 일본이 최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WIPS 권찬용 연구교육팀장은 “일본의 경우 마쓰시타와 NTT 등 기업들이 상용화를 준비하는 단계여서 특허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까지 통신속도 향상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인체통신 분야에서 한·미·일 3강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의 ETRI와 KAIST가 아직까지 국내와 미국 특허만 일부 출원하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의 마쓰시타와 NTT, 소니 등은 전세계적인 특허를 출원하며 차세대 시장 진출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ETRI 박선희 파트장은 “일본이 앞서 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신기술은 표준화가 되는 시점에서 보여지는 기술력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10Mbps 수준인 전송기술을 최종적으로 100Mbps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측은 “인체통신은 전송속도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제품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만큼 상용화에 풍부한 아이디어가 필수적”이라면서 “전자명함이나 개인인증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지만, 바이오 기술과 융합해 헬스케어 영역으로 확대되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클래식 음악시장의 이중 구조/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클래식 음악시장의 이중 구조/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 교수

    가을은 문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전시회가 열리며 매스컴에서는 독서의 계절을 강조하고 있으며 콘서트홀마다 크고 작은 연주회가 풍성하다. 그런데 음악회장을 찾을 때면 가끔씩 의아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떤 음악회는 엄청난 입장료에 놀라고, 또 어떤 음악회는 입장료는 형식적일 뿐 모두 초대권인 경우도 많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얼마전 비엔나 슈타츠오퍼 콘서트는 입장료가 무려 45만원(약 500달러)에 달해 뉴욕 메츠의 오페라 시즌 프리미어 갈라 콘서트의 가격에 버금갈 정도였다. 물론 외국에서조차 음악계는 그 특성상 슈퍼스타와 무명 연주가의 관객동원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이고 다른 직종보다 수입의 격차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클래시컬 음악계의 양극화의 구조는 상당히 심각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연주회를 개최하여 유료관객들의 입장료 수입으로 수지균형점을 넘을 수 있는 연주가가 우리나라에서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이에 관한 통계조사가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연주가들은 어떻게든지 대학에 적을 두려고 하기 때문에 전문 연주자들은 사실상 찾아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왜 학교에 소속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연주가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고정수입의 확보이다. 두 번째는 학생들의 확보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강의와 레슨이 주활동이고 연주는 부차적이 되며 학교의 적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사용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고 연주회장에 가보면 정말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음악회장을 찾은 음악수요자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연주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그의 제자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탄탄하게 실력을 쌓고 돌아온 훌륭한 연주자 층이 대단히 두껍다. 그럼에도 좋은 연주자들의 음악회장에도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점은 더욱 서글픈 현실이다.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음악공급자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수요자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객석은 일회용(?) 손님들을 빼면 대부분 학생들로서 이들은 미래의 음악공급자들이 될 집단이다. 이렇게 보면 클래식 음악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수요자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미래의 공급자들을 만나는 장이 된다. 공급자가 일반 음악수요자를 위한 시장에서 유리되어 그들만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장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으며 공급자들의 세대간 시장으로 대물림되고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장을 경제학에서는 이중시장(dual market)이라고 말한다. 이런 구조는 대개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 많이 나타난다. 경제가 개발되기 시작하면 우선 성장이 급속히 이루어지는 부문과 그러지 못하는 전통적 부문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또한 성장부문에서의 발전의 과실이 그렇지 못한 부문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경제가 이원화된 구조를 가리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시장은 그동안 공급자 부문에서의 양적인, 그리고 최근에는 질적인 성장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수요부문에서의 성장이 절실한 때이다. 그러나 고전음악 수요자가 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다. 이러한 취향의 계발은 어려서부터의 음악교육과 접근가능성을 높이는 사적 및 공적 교육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시장에 잘 교육받은 음악소비자들의 층이 두껍게 형성될 때 연주회장에도 늘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영경제학 교수
  • 全청장 “김상진 없고 전군표만 남아”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시했던 전군표 국세청장이 자신의 발언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검찰과 국세청 간 감정싸움으로 비쳐지자 진화에 나섰다. 전 청장은 26일 오후 6시40분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너무 앞서가지 말아달라. 싸움 붙이지 말아라.”고 짤막하게 말한 뒤 퇴근했다. 앞서 전 청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 수송동 국세청으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에게 “궁지에 몰려 있는 정신이 나간 사람의 진술 아닙니까.”라며 금품수수 의혹을 다시 부인했다. 이어 “복잡하고 어려운 김상진은 어디 가고 전군표만 남았느냐.”며 검찰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 청장은 다음주 검찰 소환에 현직 상태에서 응할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전 청장은 이날 정부 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정부 혁신토론회’에 불참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 청장이 토론회 불참 이유에 대해 “거취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모닝구 무스메 “원더걸스·소녀시대 좋아요!”

    ”원더걸스는 멋있고 소녀시대는 예뻐요!” 일본 최고의 여성 아이돌 그룹 ‘모닝구 무스메’가 지난 26일 결성 10년만에 처음으로 내한했다. 이날 한국에 온 멤버들은 리더 다카하시 아이(21), 니이가키 리사(19), 쿠스미 코하루(15) 등 3명. 모닝구 무스메 멤버들은 입국 당일 오후 서초동 DS홀에서 가진 내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원더걸스는 멋있고 소녀시대는 피부가 매우 고왔다.”며 국내 가수들을 치켜세우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니이가키는 “한국어로 인사할 수 있어서 가슴이 뛴다.”면서 “멤버들 모두 한국을 좋아하며 한국팬들을 보고싶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모닝구 무스메는 27일 오후 센트럴시티 신나라레코드 매장에서 열리는 ‘악수회’를 비롯해 각종 인터뷰와 방송 활동을 통해 팬들을 만난 후 28일 출국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UCC명예기자단] 반갑게 악수 나누는 각당 후보들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대선 후보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서울신문·프리챌 UCC명예기자 홍정표@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鄭,후보 첫날 평화시장으로

    鄭,후보 첫날 평화시장으로

    숨가쁜 하루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6일 대선후보로서 첫 공식일정을 바쁘게 소화했다. 속도전이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몽골 기병론이 되살아난 거 아니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첫 행선지는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이었다. 새벽 5시30분 어둑어둑한 시장 골목에 정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일정의 시작이다. 이날 방문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정 후보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읽혔다. 자신의 경선 공약이기도 하다. 정 후보가 평화시장을 방문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30년 전 평화시장에 옷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정 후보를 본 상인들은 ‘시장 계단에 앉아 고단함을 달래던 청년’을 기억했다. 어깨를 감싸며 반갑게 맞았다. 정 후보도 예전 일을 회상했다. 그는 “30년 전 가져온 바지가 안 팔려 아래쪽에 깔려 있으면 맨 위로 올려 놓곤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그래도 사장님들이 마음이 좋으셔서 봐주셨다.”고 웃음을 보였다. 정 후보와 인연이 있었던 한 상인은 “대통령이 되려면 소탈해 보여야 하는데 귀공자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정 후보도 “내가 평화시장에서 일했다면 사람들이 도대체 안 믿어 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평화시장이 없었으면 굶어죽었을 텐데 통일부 장관까지 했다.”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다른 상인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였다. 정 후보의 예전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수금 안 해 주면 달라는 말도 못 하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곤 했다.”고 옛일을 더듬었다. 정 후보는 “그때는 대통령이 될 생각은 꿈에도 못했는데 이제는 서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정 후보는 이곳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곧장 현충원으로 향했다. 그는 방명록에 ‘대한민국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영령들께 보답하겠다.’고 썼다. 이어 4·19묘지를 참배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선 탓에 피곤한 기색도 보였다. 그러나 이동 중에 만난 지지자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팔짱을 끼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많이 피곤할 텐데.”라며 줄곧 걱정을 했다. 잠시 한국노총 사무실에 들른 정 후보는 국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은 통합신당의 제8차 의원총회가 계획돼 있었다. 지난해 5·31지방선거 이후 오랫동안 의원총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 그다. 이제 대선후보가 되어 다시 의원들 앞에 서게 됐다. 정 후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강당에 들어섰다. 이날 참석한 70여명의 의원들은 박수로 대선후보를 맞았다. 정 후보는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감사하다.”는 인사도 건넸다. 특히 이해찬·손학규 진영의 의원들에게는 더 오래 말을 건넸다. 두 손을 꼭 잡으며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통합신당 의원총회는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충일 대표는 “대선후보가 선출되고 나니 의원들 얼굴도 밝아졌고, 당도 밝아졌다. 오늘 신문을 보니 정 후보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고 인사말을 했다. 또 “이명박 후보의 얼굴과 정동영 후보의 얼굴만 비교해 봐도 이미 대선은 끝난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인사말을 위해 연단에 선 정 후보는 몇 시간 전 평화시장에서 나눈 대화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전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한참 말을 못 잇고 헛기침을 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어갔다.“차별 없는 성장, 가족행복시대란 얘기는 그냥 글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저의 꿈을 가슴 밑바닥에서 직접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한번 말을 멈추고 눈물을 글썽였다. 의원총회장을 나온 정 후보는 통합신당 당사를 찾았다.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당사에 들어서는 정 후보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힘차게 악수를 나누며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했다. 당직자들은 “그동안의 갈등을 잘 덮고 한마음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다. 통합신당 지도부와 하는 오찬이 마련돼 있었다. 정 후보측은 경선기간 내내 지도부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여론조사 반영과 원샷경선 도입 등 규칙 변경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찬장은 화합 분위기 일색이었다. 정 후보는 “연초만 해도 희망이 없었고 8월5일 창당때 마음속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이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정 후보는 이날 오후 캠프 해단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의 화합과 대선승리를 위해 정 후보를 지원한 사람들은 2선으로 물러나는 심정으로 임하자.”며 백의종군 자세를 결의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후진타오 “개방 촉진·평화 발전 길 걸을 것”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위대하고 역사적인 전환을 성공적으로 실행, 사회주의 중국은 거인처럼 세계의 동방에 서게 됐습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2기의 문을 자신감으로 열었다.15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2시간20분여간 그의 목소리로 울렸다. 그는 지난 5년간 자신의 1기 집권기에 대해서도 모자람 없는 점수를 매겼다.“16차 당대회 이후 당 중앙이 내린 결정이 전적으로 정당했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선언했다. 자신감의 절정은 타이완 문제에 대한 언급에서였다.“양안(兩岸) 통일은 위대한 부흥을 향해 나아가는 중화민족에게 반드시 이뤄지게 돼 있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대목에서 2270명의 참석자들은 40여차례의 박수 가운데 가장 길고 큰 소리로 호응했다. 후 주석은 이어 타이완에 평화협정을 공식 제안했다.“적대적 상태를 정식으로 끝내는 문제를 협상해 새 지평을 열 것을 정중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타이완을 본토로부터 분할하려는 시도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이 사상 처음으로 공산당 소조 회의를 외신에 공개한 것도 자신감의 발로다. 개막식 종료 직후부터 외신 기자들에게 영문·중문으로 된 휴대전화 메시지를 연달아 20여통이나 보내며 소조 회의 일정을 안내했다.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으로 투영됐던 후 주석의 자신감은 오전 11시30분쯤 ‘보고’가 끝나고 냉엄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자리로 돌아온 뒤 주석에게 악수를 건넨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집권 2기에도 권력을 분점해야 하는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인사를 둘러싼 둘 사이의 줄다리기는 장 전 주석의 승리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했다. 후 주석에 이어 두 번째로 행사장에 들어선 장 전 수석은 주석단 맨 앞줄 후 주석의 옆자리에 앉아 내내 꼿꼿한 자세로 보고를 경청했다. 후 주석은 “개혁·개방이 정확한 항로를 따라 파도를 헤가르며 전진하도록 인도했다는 점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면서 장 전 주석의 ‘3가지 대표´ 이론을 치켜세웠다. 개막식에는 장 전 주석 이외에 리펑(李鵬)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 은퇴한 3세대 지도부를 비롯한 원로 57명이 특별대표 자격으로 대거 참석, 중국 공산당에서 원로의 위치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주석단 자리에는 이덕수(李德洙·64)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과 전철수(全哲洙)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서기가 포함돼 있었다. 이밖에 남녀 각각 3명의 조선족 남녀는 대표단석에 자리를 잡았다.5년 전보다 12명이 늘어난 소수민족 대표는 242명으로 전체인원의 10%를 차지했다. 한편 후 주석은 대내외 개방을 촉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대외투자 및 대외협력 방식의 혁신, 기업의 국제화 경영 지원, 자유무역 전략과 양자 다자간 경제무역 협력 강화 방침 등을 밝혔다. 군대의 혁명화·현대화·정규화 방침도 제시했다. 기계화·정보화의 복합발전을 가속화하는 한편 예비역 부대 수준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국제관계에 대해서는 “평화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며 호혜상생의 개방전략, 주변국과의 선린우호 관계와 실무협력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방어적인 국방정책을 통한 군비경쟁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jj@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결승전(2국)] 백,불리한 패 공방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결승전(2국)] 백,불리한 패 공방

    제4보(60∼73) 박영훈 9단이 GS칼텍스배 본선리그에서 7전 전승을 기록하며 도전권을 획득했다.11일 한국기원 본선대국실에서 열린 본선리그 마지막 대국에서 박영훈 9단은 조한승 9단을 182수만에 백 불계로 눌렀다. 이로써 박영훈 9단은 타이틀 보유자인 이세돌 9단과 11월 3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리는 1국을 시작으로 도전 5번기를 치른다. 두 기사가 타이틀전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역대 전적에서는 이세돌 9단이 박영훈 9단에 10승7패로 앞서 있다. 백60이하 패를 만든 것은 백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 하지만 이 패는 흑보다는 백 쪽에 좀 더 부담이 있다. 예를 들어 흑은 백에게 패를 양보하더라도 <참고도1>흑1,3 정도로만 연타를 하면 대가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반면 이미 흑에게 석점 빵때림을 허용한 백은 큰 손실 없이 패를 이겨야만 국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흑67은 다소 악수 팻감이지만 패를 이기기 위해서 작은 손해는 감수하겠다는 의지. 백70이 백의 마지막 팻감. 이제 백으로서는 흑의 모든 팻감을 불청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때 흑73이 원성진 7단이 예상 못한 호착. 백이 손을 빼면 가로 밀고 들어가 귀를 잡겠다는 뜻이다. 원7단이 머릿속으로 그린 것은 <참고도2> 흑1의 마늘모. 이것은 흑11까지 또 다시 패가 되는 모양이다. (69…▲,72…66)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투표율 75%… 당관계자 ‘희색’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후보는 1차에 이어 2차 모바일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11일 당사 모바일투표 발표현장에서 손 후보 지지자들은 서로 어깨를 두들겼다. 오랜만에 활짝 웃음도 보였다. 긴장된 표정으로 당사에 들어섰던 손 후보도 얼굴이 밝아졌다. 득표수가 발표되기 전까지 굳은 표정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그다. 그는 사회자가 1등임을 알리자 잠시 한숨을 쉬며 호흡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득표수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더니 안심한 듯 미소를 보였다. 당사를 빠져나갈 즈음에는 여유 있는 태도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동영·이해찬 후보는 이날 발표장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세 후보에게 발표장에 와 줄 것을 요청했었다. 소감 한마디도 부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위를 차지한 후보만 현장을 지킨 셈이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 이해찬 후보측 김형주 대변인은 “어차피 질 거 뭐하러 오시겠냐.”고 했다. 농담조에 웃는 표정이었지만 자조 섞인 말이었다. 어두운 캠프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차분히 경선판을 마무리할 것이다.”고 다짐했다.●鄭후보측, 孫후보측 관계자에 축하 악수 정동영 후보측은 애써 웃음을 보였다.1차에 이어 2차 모바일투표에서도 패배하면서 비상등이 켜진 상태지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정도면 선전했다. 내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의혹이 근거 없음으로 드러나면 곧 만회할 것”이라고 자위했다. 다른 관계자도 “표차가 근소하지 않나. 오히려 경선을 재미있게 하는 흥행 요소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손 후보측 관계자들에게 축하의 악수도 보냈다. 명의도용, 대리접수, 동원경선 논란 등으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던 당 관계자들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모바일 2차 투표에서도 74.9%의 높은 투표율로 1차 투표(70.6%)에 이어 흥행 몰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1차 휴대전화 투표 결과가 9시 뉴스에서 방송된 뒤 휴대전화 투표 신청자가 몰려 9시45분쯤부터 경선위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된 것도 국민의 참여 열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합동 토론회에서 `명의도용´ 공방 세 후보는 이날 밤에 열린 KBS 합동 토론회에서도 모바일 투표를 언급하며 명의도용 논란에 대한 공방을 이어갔다. 손 후보는 “모바일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국민이 직접 참여해 조직·동원 선거를 이겨 달라는 염원으로 받아들인다.”며 1등 소감을 밝혔다. 정 후보는 “죽었던 경선이 살아났다. 모바일 경선이 살렸다.”며 모바일 투표의 의의를 강조하며 패배를 자위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화 강국으로 국민의 정보를 보호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에 이루어진 명의도용은 참여 정신을 거부한 것이고, 압수수색 거부는 법치주의를 거부한 것”이라며 정 후보를 겨냥했다.박창규 구동회기자 nada@seoul.co.kr
  • 박근혜 “10년전 정치초심 변치 않았다”

    박근혜 “10년전 정치초심 변치 않았다”

    “이제 선거 시작하면 다 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대위 고문으로 위촉된 박근혜 전 대표의 9일 발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대구 달성군민운동장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선대위 고문으로서의 활동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선대위 고문 자리에 대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일 달성군민체육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경선 선대위 해단식 이후 한달 만에 지역구를 방문했다. 한달 동안 그는 경선을 함께 치른 캠프 소속 의원, 정책자문단 등과 회동하거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집중했다. 박 전 대표는 “더욱더 바른 정치로 여러분의 성원과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체육대회가 올해로 10회째가 되는데, 올해는 제가 달성 군민과 함께한 지도 꼭 10년이 되는 해다. 그간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만, 여러분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여러분 덕분에 제1야당 대표를 비롯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대회 인사말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정치할 것인가 여러분에게 약속하고 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마음은 변치 않고 간직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자주색 재킷과 베이지색 바지 차림으로 오전 일찍 승용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행사장을 돌며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는 지역군민과 점심을 함께한 뒤 오후 2시쯤 귀경길에 올랐다. 행사에는 곽성문·서상기·유승민·이인기·이해봉 의원 등이 동행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아리랑 공연 정교함에 놀라”

    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기업인들은 대부분 5일 평소보다 다소 늦게 출근했다. 전날 자정 무렵 귀가한 데다 2박3일의 피로감이 누적된 탓으로 풀이된다. 부지런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날은 오전 9시30분쯤 출근했다. 이들이 전하는 뒷얘기도 흥미롭다. ●윤종용 부회장,“북한 기술지원센터 필요” 윤 부회장은 이날 언론에 돌린 방북 소감 자료를 통해 “기업들의 북한 투자와 사업 협력을 위해서는 기술인력 육성이 시급한 만큼 기술지원센터 같은 것을 운영해 고급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투자 시스템과 제도가 갖춰지고,3통(통신·통행·통관)이 보장되며, 전력·용수 등의 인프라가 확충된다면 삼성은 기존 사업을 포함해 신규분야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얼핏 투자 확대로 들리지만 전제조건이 많아 기존의 소극적 태도에서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재계가 ‘방북 보따리’를 놓고 얼마나 고민 중인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을 남쪽 단장으로 한 남북 경제인 간담회와 업종별 간담회는 북한이 생각만큼 사전 준비를 해오지 않아 “회의다운 회의는 하지 못했다.”고 또 다른 수행 기업인이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음식 수다’ 여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년 전 평양 방문 길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독대했었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이)여전히 호탕하고 활달하더라.”라면서 “주량도 여전하고 음식이 상에 오를 때마다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도 똑같더라.”고 전했다. 전복죽에 들어간 상어지느러미며, 찹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을 일일이 자상하게 설명해줬다는 전언이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북측 인사들이 고(故) 정몽헌 회장의 얘기도 자주 입에 올려 현 회장은 개인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이한호 광업진흥공사 사장과 박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남한의 경제 투자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기대감이 무척 크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고 입을 모았다. ●“‘아리랑’ 정확성이면 완벽한 제품 만들듯” 북한 안변에 선박 블록공장 건설을 검토 중인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북한 인력의 숙련도를 걱정하는 기자의 질문에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남 사장은 “‘아리랑’ 공연을 보면서 그 규모와 (카드 섹션의)정확성에 놀랐다.”면서 “이 정도의 정교한 손재주라면 조금만 훈련시킬 경우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기문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는 “한 북측 인사가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판이 깨졌는데 이게 정동영 후보에게 유리한 거냐, 불리한 거냐고 물어와 크게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의 꼿꼿한 악수 자세도 처음에는 북측이 몰랐다가 남한 언론 보도를 본 뒤 투덜거렸다고 한다. 김 대표는 “북측 인사들이 남한 신문을 매일 접하면서 남한 사정을 자세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재계 총수들을 비롯해 방북 기업인들은 이날 출근하자마자 방북 성과 등에 관한 청와대 설문조사 ‘숙제’를 마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안미현 김효섭 강주리기자 hyun@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이수훈”北,국책연구기완장 교류 긍정적”

    [2007 남북정상선언 이후] 이수훈”北,국책연구기완장 교류 긍정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은 나빠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 윗부분이 조금 붉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3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측 수행원들과 악수하며 배우 문성근씨가 ‘제가 문성근입니다.’라며 인사하자 김 위원장은 발길을 멈추고 ‘반갑습니다.’라고 친근함을 표시하는 등 소탈하고 자상한 모습도 보여주더군요.” 남북 정상회담에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했던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이수훈(53) 위원장은 “전력사정이 눈에 띄게 좋아진 점 등 북한 경제형편은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고 5일 말했다.2004년에 이어 세번째 방북한 그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히 2001년 8월 민족대축전을 맞아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 견줘 이같이 강조했다. ●“늦은밤 평양 환해 전력사정 좋아진 듯” 이번에 찾은 평양 거리에는 우리의 성탄절 분위기와 비슷하게 트리 장식이 돼 있었으며 아파트 등 주택가에도 밤 11시 넘어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등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고 한다.2004년엔 사흘이라는 짧은 체류기간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못했지만 2001년에는 일찍 전등이 꺼지는 등 적막강산이었다고 회고했다. 낮에도 아파트 창문에 비닐 같은 것으로 덮어 씌워 놓는 등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받았으나 이번엔 도로나 주택가가 말끔히 단장됐다는 느낌을 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북측 인사들은 “우리는 늘 이렇게 하고 있다.”고 뽐냈다고 전했다. 전력 공급이 어떻게 좋아졌느냐는 물음에는 “수년에 걸쳐 소형 수력발전소를 많이 지은 결과”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시내 건물도 깨끗하게 도색해 6년 전과 달리 황폐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인상이 짙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2000년 1차 정상회담이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이번 회담은 화해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큰 의의”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협력과 제반 협의의 틀을 마련한 기회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황해도 해주를 정보기술(IT) 경제특구로 개방하는 문제에 대해 곧바로 수락한 점을 사례로 손꼽았다. 북 해군전력의 60%를 차지하는 이 지역을 놓고 ‘통 큰 결단’을 내렸다는 사실이 한반도의 바뀐 분위기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주 경제특구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는 사실은 개성공단에서 엿보인다.”면서 “당시 군사시설을 수㎞ 밖으로 물리면서까지 공단을 조성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또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우여곡절이 숱하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북측이 매우 협조적이었다는 점도 들었다. 방북단 규모를 당초 2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늘린 점,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계획을 통보한 것만 해도 엄청난 준비가 뒤따라야 하는 등 갖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끝까지 남측을 배려해 줬다는 이야기다. 마지막날 발표된 ‘2007 남북 정상선언’ 합의문도 남측이 80∼90%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했다. ●‘인민은 위대하다´는 외교 의전상 배려 노 대통령이 4일 서해갑문을 방문해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는 글을 쓴 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말로, 외교 의전상 상대방을 배려한 것”이라면서 “북녘에서 북한이라는 말 쓰면 안 되듯 우리 표현으로 하면 결례”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방명록 서명을 놓고 네티즌들은 “그래서 영혼을 팔아 먹었다는 말까지 듣는 것”“남측으로 치면 국민이라는 뜻으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니 문제 아니다.”라는 등 입씨름이 한창이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겐 (주민인권 등 탓에) 따끔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 위원장은 “남북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국책연구기관장들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제안해 북측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으며 다음달 방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선통일연구원장과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 고위 관계자들이 초청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상회담에 따른 미국과 일본 전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8일 출국한다.16일까지 머물며 빌 클린턴 정부부터 조지 부시 정부 초기까지 미국의 대북 특사를 맡았던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한인으로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조지타운대 빅터 차 교수, 릿쿄대 이종원 교수 등을 만난다. 이 위원장은 “이들은 한반도 전문가들이기는 하지만 비핵화 문제 등 핫이슈에 대해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직접 회담에 참석한 입장에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평양을 다녀와서] “‘北 속살’ 볼때 가슴 뭉클”

    [평양을 다녀와서] “‘北 속살’ 볼때 가슴 뭉클”

    이번 수행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대목은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었다. 수행원들도 함께 걷는 것인가 하는 기대도 가졌었지만,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적어도 구경은 할 수 있겠지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역사적인 그 시간에 먼저 출발한 우리는 이미 개성을 지나 평양∼개성간 고속도로에 들어서 있었고, 그 광경은 그날 밤 평양의 보통강 여관에서 텔레비전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개망초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감회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로로 평양을 간다는 일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대체로 북한이 드러내기를 꺼려하던 것으로 알고 있던 깊은 내륙을 보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설레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니 길가에는 남쪽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조금 헐벗은 느낌 외에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우리 땅이었다. 이내 출입국관리소가 나왔고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간단한 검색으로 그곳을 통과했다. 북쪽 안내원 셋을 새로 태우고 출입국관리소를 나오자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많은 환영객들이 길에 늘어서서 ‘우리는 하나’ ‘조국 통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개성 공단에서 일하는 북쪽 근로자들이라는 설명이었는데, 문득 이번 회담이 성공적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개성시내는 마침 출근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손을 흔들어 환영했는데,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의 처녀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얀 옷고름이 검정 치마의 아랫단까지 길게 늘어지는 아름다운 조선옷이었다. 두셋씩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가는 처녀들이 많았고, 대개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걷는 처녀도 있어 무언가 연출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평양에 와서 확인했다. 보통강 여관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다리에서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 30대의 여인을 본 것이다. 개성에서 평양까지는 채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것 같았다. 지난번 수해가 60년대 이래 가장 큰 수해라고 했지만 수해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속도로라고는 하나 노면이 고르지 못한지 차가 많이 흔들렸지만, 남쪽이나 마찬가지로 코스모스며 쑥부쟁이가 가득 핀 길은 아름다웠고 멀리 보이는 험준한 산들은 더욱 아름다웠다. 다만 산에 나무가 좀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가까운 야산에 듬성듬성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나무가 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큰 수확을 올린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이런 마음을 알았던지 옆에 앉았던 안내원이 북에서도 요즈음 나무를 많이 심고 있으며 특히 계단밭에 과일 나무를 심어 산도 푸르게 만들고 수해도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에는 18개의 굴이 있었는데, 아주 밝게는 아니지만 모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작은 개울 등을 이용한 소규모 수력발전이 많이 개발되어 전기사정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이었다. 평양 시내 다 와서 비로소 대통령 일행과 동행이 되어 시내로 들어갔다.3대 헌장탑 앞에서부터 환영인파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중심지로 가까워지면서 인파는 완전히 거리를 뒤덮었다. 모두들 성장을 했고, 손에는 진홍·분홍·자줏빛 조화들을 들었다. 그 조화들을 흔들면서 “겨레는 하나” “조국 통일” “만세” 등을 소리높이 외친다. 펄쩍펄쩍 뛰는 사람도 있다. 뒤에 들으니 이날 나온 인원이 모두 40만명이라 한다. 열렬한 환영이 고맙기는 하면서도 이들이 20리 밖,30리 밖에서 걸어왔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더러는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왔을는지도 모른다.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으니 대개들 걸어왔을 것이다. 화장실 시설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들었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환영인파 사이를 지나는 시간이 길었던 것은 대통령이 환영나온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행렬 사이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환영회장은 4·25문화회관 앞 광장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도착해서 우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열 등 공식 행사가 다 끝나갈 무렵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로 왔다. 특별 수행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는 그의 얼굴은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밝았다.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잡는 그의 손에는 힘이 있었고, 카리스마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소탈하고 활기 있는 사람이란 느낌도 든다. 2년 전 작가대회 때 왔을 때에 비해 궤도전차도 많아지고 행인도 많아져 시내는 훨씬 활기차 보였다. 아름다운 버드나무 가로수 사이를 지나 보통강 호텔로 가면서 문득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길이 생각하기에 따라 그다지 멀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 [2007 남북정상선언] 김위원장 “당뇨·심장병 없다”

    [2007 남북정상선언] 김위원장 “당뇨·심장병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2007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하며 샴페인 잔을 들었다.7년 전 6·15의 감동이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이 주최하는 답례 오찬에 앞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쯤 각각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식사를 함께한 것은 이번이 유일하다. 두 정상은 남북한 참가 인사들의 힘찬 박수 속에 합의문을 교환하며 힘주어 악수했다. 노 대통령의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에 김 위원장은 미소로 화답했다. 두 정상은 맞잡은 손을 들어 올리고는 샴페인으로 건배했다. 회담 마지막까지 합의문 작성에 애를 먹다가 밤 11시가 넘어서야 서명했던 1차 남북정상회담과 비교할 때 한결 여유있는 분위기였다. ●김 위원장,“김대중 대통령도 이 자리에 앉으셨다” 서명식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두 정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사장에 먼저 들어가라며 서로를 배려했고, 특히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오른쪽 등에 살짝 손을 올리는 스킨십으로 친근감을 표시했다. 오찬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위원장은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남측 공식 수행원들과 악수하고, 노 대통령은 북측 고위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원형 오찬 테이블 중앙에는 노 대통령이 앉고, 왼편에 김 위원장, 오른편에 권 여사가 자리했다.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도 이 자리에 앉으셨다.”며 1차 회담의 감동을 전했다. 이에 북측의 김영일 총리가 “국방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노무현 대통령께서 역사적인 선언을 채택하신 데 대해 모두의 마음을 합쳐 열렬한 축하를 드린다.”며 건배 제의에 나섰다. 남측에서는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답사에 나서 “남북은 말이 하나고 문화가 비슷하고 생김새가 같아 쉽게 통하고 그러기에 앞으로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화답했다. 건배 제의 후 김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처럼 와인을 ‘원샷’했다. 오찬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남측언론에서) 내가 마치 당뇨병에 심장병까지 있는 것처럼 보도됐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가 심장병 연구가 약해 사람들 불러다가 연구하고 있는 걸 잘못 보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크게 보도하는 걸 보니,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면서 “그래도 나에 대해 크게 보도하고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말해 오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노 대통령은 오찬 뒤 평양 중앙식물원에서 남측의 소나무를 권양숙 여사,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한라산 백록담 흙과 백두산 천지의 흙을 섞어 뿌리며 심었다. 인민문화궁전 앞길에서 열린 공식 환송식에서도 김 상임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배웅했다. 오찬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하며 ‘사실상의 환송’을 한 김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양 시민들은 진달래꽃 조화를 흔들며 ‘조국통일 만세, 환송’이라고 외쳤고 노 대통령은 손을 흔들어 답했다. ●“개성공단은 누구를 개방·개혁시키는 곳 아니다” 육로 귀환길에 오른 노 대통령은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 들렀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북측과) 대화해 보니 남측에서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못마땅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서울에 가면 적어도 정부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곳은 남북이 하나되고 함께 성공하는 자리이지 누구를 개방·개혁시키는 자리가 아니다.”면서 “개혁·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불편한 것만 해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방문을 마치고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환영행사에서 2박3일간의 정상회담 성과와 의의를 밝혔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남포시 평화자동차 조립공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심작인 서해갑문을 찾았다. 남측 평화자동차와 북측 조선민흥총회사가 합영해 2002년 지은 평화자동차 공장은 경협의 또 다른 상징이다. 노 대통령은 공장 현황과 조립공정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권 여사와 함께 쌍용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만든 중형차 ‘준마’에 시승했다. 노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아 “자, 갑시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주십시오.”라고 말한 뒤 시동을 걸었지만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나서 브레이크 잠금장치 등을 점검한 후 재시동을 걸었지만 역시 그대로였다. 노 대통령은 “거 참, 운전해본 지 오래돼서 어떻게 하는지 깜깜하네.”라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오전 9시45분쯤 서해갑문 기념탑에 도착했다. 서해갑문은 최대 27억t의 물을 저장해 평남·황남 농지 20만정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남포공업지구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노 대통령은 기념탑 전망대로 올라가 고(故) 김일성 주석이 기념 촬영한 장소에서 권양숙 여사와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김일성 주석처럼 폼을 잡아보라는 겁니까.”라고 말한 뒤 권 여사에게 “분위기 있게 팍 기대세요.”라며 포즈를 취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서명한 뒤, 남북 관계자들에게 “박수 한번 쳐달라.”고 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한상우 구동회기자 cacao@seoul.co.kr
  • 李·鄭·權 부산서 어색한 조우

    李·鄭·權 부산서 어색한 조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경선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가 4일 부산국제영화제(PIFF)에 우연히 함께했다. 하지만 대선을 의식한 듯 분위기는 냉랭했다. 민생 탐방차 부산·경남을 방문 중인 이 후보는 영화제 개막식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 후보가 안경률 부산시당위원장 등과 대기실에서 환담하던 중 정 후보가 나타났다. 정 후보가 “이명박 후보 오셨네.”라며 이 후보에게 아는체를 하자 이 후보는 “많이 듣던 음성이네.”라며 정 후보와 악수했다. 이어 나타난 권 후보와 이 후보는 10여분간 얘기하면서도 시종 ‘기싸움’을 펼쳤다. 권 후보가 “진보와 보수가 딱 만났다.”며 ‘잽’을 날리자 이 후보는 “그쪽이 보수고 내가 진보 아니냐.”고 받아친 뒤 “바로 (후보가) 될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하게 비가 내리더라.”며 권 후보가 경선에서 결선투표 끝에 ‘신승’한 것을 꼬집었다. 이에 권 후보가 “이 후보가 41년생이시더라. 나도 41년 12월22일생”이라고 말하자 이 후보는 “나는 (41년 12월) 19일생이다.(권 후보가) 확실히 내 아래다.3년 아래보다 3일 아래가 더 무서운 것”이라며 응수했다. 하지만 권 후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진짜 진보와 진짜 보수가 대결 한번 하자. 이쪽(부산·경남)은 안 오셔도 되는 것 아니냐.”며 이 후보의 심경을 자극했다. 정 후보와 권 후보가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친한 모습을 보인 반면 정 후보와 이 후보는 옆자리에 앉았으나 악수도 않은 채 전방만 응시하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산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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