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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 장난감 총

    변 혜 령 등장인물 - ♂ 정만석 (30대 초반) ♀ 나채연 (20대 후반) ♂ 박 PD (30대 초반) ♂ 이실장 (40대 중반) 무대 - 스튜디오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성인 인터넷 방송국이다. 무대 중앙 (스튜디오) - 알록달록한 스테이지, 천장에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가 매달려있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모니터의 글들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그밖의 공간 (사무실) - 커튼으로 무겁게 가려진 커다란 창문. 책상 위엔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바닥, 트라이포드 위에 놓인 카메라에선 작동중임을 알리는 빨간 시그널이 켜져있고 그 옆으론 여기저기 놓여진 방송용 소품 바구니.스테이지와 사무실은 분위기, 조명등이 확연히 다르다. 결국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중 공간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알록달록한 스테이지만 현란한 조명으로 반짝인다. 선정적인 속옷 차림으로 홀로 미친 듯이 춤추는 채연. 마치 애무라도 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동작. 음악 소리 작아지면, 동작 멈추고 간드러지게 웃는 채연. 컴퓨터를 사람 대하듯, 요염하게 시선 보내며 대화한다.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 빠르게 떠오르는 자막들.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들과 이모티콘, 기호들이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보여진다. 글 올리는 접속 회원들의 아바타도 성격에 맞게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거나 입혀져 있는 옷들이 선정적이다. 불끈:졸려염 아함~ @@ 무기:열심히 춤춘 당신, 벗어라~ (입 찢어져라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야수:벗어라~ 벗어라~ (양볼이 붉게 물든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자막을 확인하고는, 거리낌 없이 상의를 벗어 던지는 채연. 채 연:아이~ 급하긴….저 나채연, 이름값 톡톡히 한다구요. 달래 PJ라 부르겠어 요? PJ가 뭐냐구요? 아잉~ 순진한 척은….포르노 쟈키의 약자! 다들 아시죠? 전요, 체질적으로 벗는 걸 즐기걸랑요. 안 벗겠다구 내숭떠는 년들, 그 년들은 프로두 아니에요. 몸매가 뭣 같으니까 그런 거지. 다시 떠오르는 자막들. 야 수:마저 벗어 줘~ 이잉~ ㅡ..ㅡ앗 싸:앗싸~ 나채연 홧팅~ *^^*채연, 마저 벗으려는데 무대 구석에서 불쑥등장하는 만석.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스테이지로 뛰어든다. 만 석:진아야. 이실장:저 미친놈 뭐야? 엉? 잡아와. 빨리! 박 PD, 끌고 들어가려는데 만석의 저항이 거세다. 엎치락뒤치락 격렬하게 버둥대는 두사람. 결국 이실장까지 합세해 스테이지 밖으로 만석을 끌어낸다. 달려가 카메라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박 PD. 카메라가 정지되면, 무대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이실장, 다짜고짜 만석에게 주먹부터 날린다. 주먹이 만석의 얼굴에 닿기 일보 직전, 버럭 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 그마안~ 만석의 고함에 스틸 사진처럼 정지하는 사람들. 만석, 가쁜 숨 몰아쉬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씨익 웃으며 뻗어 있는 이실장의 팔에 가방을 걸어 놓는 만석. 이실장을 건드리지 않고 날렵하게 빠져나온다. 만 석: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동방예의지국, 말 그대로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음 넣어 부르며 방방 뛴다.) 오~ 필승 코리아~ 에서 백주 대낮에 말만 한 처녀가 옷을 벗습니다. 저요? (채연 가리킨다.) 아, 그야진아를 보고 반 가워서 뛰어들었습니다만, (눈 가늘게 뜨고 채연의 얼굴 살핀다.) 아닌가 봅니다. 자 그럼- 이실장 앞에서는 만석, 처음의 자세를 취한다. 만석, 조심스레 가방을 빼낸다. 만족한 웃음 웃으며 자세를 바로 잡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 석:어디더라?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 맞을까 손가락으로 점쳐 보고는) 그렇지, 왼쪽. 만석이 왼쪽에 가방 메고 서면, 곧바로 주먹을 날리는 이실장. 샤샤샥 피하는 만석.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채연. 박PD:의상 안 갈아입어? 부리나케 퇴장하는 채연. 이실장:저 새끼 뭐야? 엉? 뭐 하는 새낀데 남의 방송을 통째루 망가 먹어? 박 PD:(연신 카메라 장비 살피며 잔뜩 주눅든 소리로) 그러니까…그게요…회원수 준다고 김작가 짜르구…저 친구 저래뵈두 글발이 장난 아니거든요. 이실장:작가? 저런 띨빵진 놈이 작가란 말이야? 당장 다른 놈으로 갈아치워! 박 PD:웬만한 작가는 우리 방송국 안 와요. 성인 인터넷 방송…머시기 하잖아요? 이실장:머시기? 월급을 두 배나 주는데 멋이 뭐시기해? 거 배때기들 불렀구만? 박 PD:작가 출신은….그 뭣이냐 작가 주의에 입각해서 예술을 하려는…. 이실장:닥쳐! 너 지금 국민 교육헌장 읊어대냐? 무슨 주의? 이~입각? 예술이 밥 멕여주냐? 박 PD:실장님이 주신 돈으루다가 밥사먹죠. 갑자기 모니터에 떠오르는 회원들의 항의성 자막들. 야 수:모야? 모야아~~ 방송사고?? (칼 날리는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조아조아:돈 물어내랏!!! 삐리리 사깃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무 기:당장 탈퇴할래~ 잉잉~ ㅜ ㅜ의상 갈아입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어떻게든 해봐. 항의가 빗발친다구. 이실장:재방 내보내. 빨리! 박 PD:사과 방송 자막 큐! 박PD가 장비를 만지면, 다시 스테이지로 가서 서는 채연. 재방 방송을 재연하기 시작한다. 리와인드 화면처럼 춤추고 옷벗고 간드러지게 웃음 웃고를 반복하는 채연. 스테이지밖에 있는 사람들은 채연의 재방송과는 무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실장:2부 방송 어쩔 거야? 엉? 이 십분 뒤잖아? 박 PD:(덥석 만석 끌어다 놓으며) 이, 이 친구가 쓸 겁니다. 만석, 소란을 떠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몽롱한 시선으로 채연만을 바라본다. 이실장, 신경질 부리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 벨소리다. 섹시한 여자 목소리로 “오우~ 어빠아~ 전화 받으세요~” 발신 번호 확인하고 180도로 태도 바뀌어 전화 받는 이실장 이실장:예. 예. 고의원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 고…예? 지금 즉시 사업 기획서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벤 처 투자 건에 저희를 밀어만 주신다면, 분골쇄신! 의원님의 돈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통화하며 퇴장) 박PD, 재빨리 만석을 노트북 앞에 끌어다 앉힌다. 박 PD:급하다. 급해. 글쓰란 말이다. 글! 만 석:글? (희미한 미소) 글! (여전히 채연만 바라보며) 처음…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했다. 진아만의 줄리엣…로미오와의 첫날밤을…줄리엣에게 웨딩 드 레스를 입혔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쳐 대는 만석. 장난감 총을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만석이 대본 치는것을 보고는 화가 누그러진다. 이실장:(장난감 총 건네며) 방송에 써먹을 소품이다. 박 PD:(꼼꼼히 살펴보다) 키야~ 이거 진짜 총 같은데요? 이실장:세상 참 좋아졌다. 가짜가 진짜 찜쪄먹으니 원. 자판만 눌러 대던 만석, 쓰던 걸 멈추고 물끄러미 장난감 총을 바라본다. 총을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에 넣는 박PD. 빤히 쳐다보는 만석. 박PD, 시선 느끼고 박 PD:다 썼어? 노트북으로 걸어가는 박PD와 이실장, 만석이 써 놓은 것을 읽는다. 이실장:로미오와 줄리엣? 새하얀 웨딩드레스? (몸짓 발짓 줄리엣 배역 흉내내며 새된 소리로) 벌써 가시렵니까? 겁에 질린 당신 귓전에 방금 울린 그 소리는 종달새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랍니다. 로미오님, 정말이지 그 소리는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박 PD:오~ 줄리엣. 나는 잡혀도 좋소. 사형을 당해도 좋소. 이대로 마냥 머물고 싶소. 죽음이여, 오려면 오라. 반갑게 맞아 주마. 줄리엣님의 소원이시다. 이실장:이따우를 대본이라고 쓴 거야? 이걸 엇따 써먹어? 엉? 박 PD:아후~~ 상상해 보세요. 삐리리의 글래머 줄리엣,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헤헤- 그러니까요, 웨딩 드레스란게 안감을 다 뜯어내는 겁니다. 그 러면 속살이…흐흐흐. 거기다 갑자기 비를 뿌려 주는 겁니다. 완전한 영상 미 아닙니까? 하얀 색이 화면 가득, 비에 젖어 있기까지 하니까…거기서 끝나느냐? 말밥 아니죠. 클라이맥스에는 그 하얗고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천천히, 천천히 벗는 겁니다. 마치, 마치 순결이, 순결이…헤헤헤. 이실장: 거 좋다. 빨리 방송 준비해. (퍼뜩) 그런데? 웨딩드레스가 우리 소품 중에 어딨어? 박 PD:그, 그게… 만 석:내가 가지고 있다. 웨딩드레스…진아가…줄리엣이 입었다….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꺼내는 만석. 반색하며 달려가 뺏어 드는 박PD. 희희낙락하는 이실장. 박 PD:그거 보십쇼. 저놈아, 소품두 준비 안 하구 글쓰는 놈이 아닙니다. 똑부러지 는 놈이다 이겁니다. (폼나게 사인하며) 자- 방송 오분전. 스테이지 조명, 더욱더 천박하게 반짝인다. 그제야 동작을 멈추는 채연. 박PD와 이실장, 웨딩드레스의 안감을 무자비하게 뜯어낸다. 그러고는 채연에게 던져 준다.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는 채연. 요란한 화장을 고친다. 화려하게 웨이브진 가발까지 벗으면, 긴 생머리가 가지런하다. 어느새 순결한 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해 있다.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석. 또다시 채연을 진아로 착각한다. 만 석:진아? 진아야! 달려가 채연을 스테이지에서 끌고 내려오는 만석. 갑작스러운 만석의 행동에 넋빠져 보고만 있는 박PD와 이실장. 두사람, 속수무책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테이지 조명 아래 서 있다. 스테이지 밖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 몽환적이다. 채연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진아로 변한다. 만 석:진아야. 진 아:오빠. 만 석:며칠만 있으면 결혼식이다. 우리 결혼식…이쁘다 드레스 입은 내색시…. 진아(채연):(주룩 눈물 흘린다.) 오빠…어쩌지…어쩌지? 우리… 할매목소리: 안 된다아~ 만석아~ 이놈~ 이놈시키~ 그년은 창녀여~ 만 석:하, 할매? 진아(채연):(슬피 울며 스스로 스테이지로 걸어간다.) 만 석:(멍하니 보기만 한다.) 진아야? 뭔 소리여 그거이 시방? 응? 진아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마자 일순 천박한 조명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에 올라선 순간 채연으로 변하는 진아. 현란한 음악이 나오면,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이실장. 카메라 작동시키는 박PD. 요염한 포즈로 모니터 앞에서 춤을 추는 채연. 야수:나채연 결혼 하냐? (모니터에서 조그맣게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불끈:키야아~ 의상 쥑인다! (눈알 튀어나오는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터프게이:벗는 거보다 더 야시시? 그래두 벗어라!! 귀족:유부녀 돼두 출연하죠? 추카추카~ (장미꽃 다발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힘:벗어라! 벗어라! 음악 소리 작아지며 천천히 몸을 흔드는 채연. 위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온다. 온몸으로 물을 맞는 채연, 젖은 머리 쓸어 올리며 모니터 바라본다. 천천히 옷을 벗는 채연. 반라가 되자마자 확 꺼지는 스테이지 조명. 무대에는 만석만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실장:으흐흐 하하 으흐하하.좋았어. 아주 좋았어. 오늘 접속 회원 수가 근래 들어 최고야. 최고! 돈이 아주 다발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엉? 우히히히. 박 PD:앞으로 모바일과 연계한 성인 방송도 문제없겠어요. 사람들의 소리 들으며 서 있는 만석, 울상이다. 만 석:뭔가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고향 친구 놈이 서울서 출세했답니다. 무지하게 커다란 방송국에 취직을 했다나요? 그래서…염치 불구하고 친구 놈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아주 반갑게 취직을 시켜준다지 뭡니까? 자그마치 이백.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진아를 닮은 저 여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옷만 입고 있습니다. 나처럼…가난해서일까요? 추워 보입니다. 진아…나의 진아가 말입니다…(웃옷 벗더니) 덮어 줘야겠어…덮어줘야 돼…. 홀린 듯 비척이며 스테이지로 걸어가는 만석. 만석이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조명 밝아진다. 사람들, 우르르 만석에게 다가온다. 이실장:수고했어, 정작가. 내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작가다 싶었어. 이실장,만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퇴장. 과장되게 포옹하는 박 PD. 악수를 청하는 채연.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만석. 덥석 손을 잡아 흔드는 채연. 만석을 잡아끌다시피 노트북 앞에 앉히는 박PD. 채연은 컴퓨터 앞에서 사람한테 하듯 요염하게 웃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박PD, 무대를 바쁘게 왔다갔다하며 만석만 재촉한다. 박 PD:땡기는 대로 써라. 그게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거다. 만 석:써? 뭐를, 박 PD:좋은 거 많잖아?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 그거 조오타~ 일곱 명의 난쟁이와 백설공주가 벌이는 정사씬! 키야아~ 만 석:동화? 안데르센? 개구리왕자! 만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 조명이 천박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소품 바구니에서 얼른 왕관을 찾아 쓰는 채연. 스테이지 중앙에 올라선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를 작동하는 박 PD. 큐 사인 보낸다. 또박또박 들려 오는 어린아이 해맑은 목소리. 꼬 마:(목소리만) 옛날 옛적, 어여쁜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만큼 모든 사 랑을 한 몸에 받았던 공주는, 예쁜 황금 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품 바구니에서 황금 공을 꺼내 얼른 채연에게 던져 주는 박 PD. 아이의 목소리대로 연기하는 채연. 꼬 마:(목소리만) 어느 날, 공주는 황금 공을 가지고 놀다가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공주가 엉엉 울고 있는데,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기괴한 음악 흘러나오면, 흉측한 개구리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실장. 손이며 발이며 개구리의 형상으로 분해 있다. 개구리라기보다는 기묘한 괴물 형상이다. 이상한 춤동작으로 채연에게 다가가 희롱하는 개구리. 그와 대조적으로 맑고 또렷한 꼬마의 내레이션이 계속 된다. 꼬 마:(목소리만) 공주님, 공주님, 울지 마세요. 제게 키스해주면 황금 공을 찾아 줄게요. 채연 위로 올라타는 개구리. 채연과 개구리,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엎치락뒤치락 뒤엉키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기괴한 음악.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두사람. 두사람의 몸놀림 위에 더욱더 현란하고 천박하게 요동치는 조명. 스테이지 밖에서 아랑곳없이 글만 쓰던 만석,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스테이지의 광경을 바라본다.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만석, 바라만 보다가 웩웩거리며 토악질을 해댄다. 간신히 비척이며 일어서려는 순간,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괴롭게 헐떡이는 만석, 스테이지가 어둠에 휩싸이자 풀썩 주저앉아 다시 웩웩거리기 시작한다. 만 석:이상…하다…이건 안데르센이 아니다…. 스테이지 조명 밝아진다. 그 위에서 이실장, 박PD, 채연은 흥겨운 분위기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이실장:우히히히. 좋아 좋아.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지는구만? 채 연:호호호. 실장님 기분 요즘 왔다네?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야. 그치? 나…출연료 좀 올려주라 응? 이실장:나채연이 너, 재계약 도장 찍었어? 박 PD:(바로 주머니에서 계약서 꺼내 머리 조아리며) 준비됐습니다. 계약서. 채 연:도장 없는데? 이실장:지장 찍어. 박 PD:(얼른 귓속말로) 그래도 계약선데 도장을 받으세요. 이실장:요 앞에 가서 이쁜거루다 하나 파라.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 꺼내 쥐어 준다.)힘없이 쳐다보다 돈 받아들고는 퇴장하는 채연. 둘러보다 널브러져있는 만석을 부축하는 이실장. 아무렇게나 만석의 주머니에 돈 봉투 찔러 넣어 주며, 이실장:앞으루두 잘해 보자구. 정작가. (퇴장) 박 PD:수고했다. 만석아. 만 석: 고향 사람들…니가 성공한 줄 안다. 박 PD:너, 돈벌구 싶댔지? 잘만 하면 돈버는 거 시간문제다. 만 석:돈? (절망적으로) 진아…. 박 PD:진아가 그렇게 됐다는 거, 나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 잊고 살궁리를 해야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다. 요즘 세상, 돈 있음 못할 거 없다. 만 석:다…잊어…? 박 PD:할매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며? 그래서 불러 줬음 돈벌 궁리나 해 임마. 만 석:진아가…나를 버렸다. 세상이…. 박 PD:그러니까 너도 양심을 버리란 말이다. 그러면 사는 거 편해진다. 그러면 세 상에서 대우받고 잘살 수 있다. 만석을 쳐다보다가 퇴장하는 박 PD. 고개 숙여 흐느껴 우는 만석. 아련하게 진아의 목소리가, 채연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진 아:오빠…만석 오빠…. 만 석:(벌떡 일어난다) 진아? 어딨어 진아야? 진 아:여기….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면 어두운 스테이지에 진아의 실루엣이 보인다.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그러나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앉아 있는 진아, 청순함은 바래지고 채연이의 선정적인 분위기가 묻어 난다. 요동치는 조명. 조그만 테이블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채연 앞에 놓고 앉는다. 양복 입고 촌티 나게 가르마 탄 머리를 올 백으로 넘겼다. 진아가 다녔던 단란 주점의 단골손님으로 분해 있다. 일순 스테이지가 단란 주점으로 변한다. 분주하게 등장하는 박PD, 시골 단란 주점 웨이터로 분해 있다. 쟁반에 양주와 잔을 받쳐들고 진아의 앞에 세팅하기 시작한다. 술 따르기 시작하는 진아. 허허거리며 진아를 더듬는 이실장. 진아가 몸을 빼내려 하자 돈 뭉치 꺼내 진아의 가슴팍에 넣어 주는 이실장. 만 석:(고함 지르려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간신히 쥐어짜는 소리로) 진아야. (스테이지로 올라가려는데) 진 아:(일어서서 만석을 막아선다) 지쳤어. 만 석:우, 우리 결혼…. 진 아 :모르겠어? 나…술집 다니는 거 소문 다 났어. 만 석:괘, 괜찮다…. 진 아:(슬픈 표정이나, 모질게) 돌아가. 술취한 이실장, 비틀거리며 진아에게 다가와, 안 듯이 스테이지 쪽으로 끌고 간다. 따라가려는데 눈 부라리며 막아서는 박PD. 진아를 따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만석. 박PD, 만석을 세차게 밀어 버린다. 그 힘에 바닥에 엎어지는 만석. 만석이 넘어지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퇴장하는 사람들. 넘어진 채로 흐느껴 우는 만석. 만 석:진아야…. 도장 들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엎어져서 뭐하는 거야? 4부방송 써야지?등장하는 박PD. 채 연:(도장 내민다.) 오빠가 찍어. 박 PD:(계약서 보이며) 읽어는 봐야지? 고개 젓는 채연. 채연만 바라보던 만석, 계약서를 가로채 읽는다. 계약서를 박박 찢어발기는 만석. 박PD, 경악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박 PD:너, 너? 이, 이, 이거? 기가 막혀 입까지 헤- 벌리는 박PD,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한숨 쉬며 찢어진 종이를 주워 가지고 퇴장하는 박PD.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어대는 채연. 채 연:호호호호. 진짜 귀엽네 이 오빠? 박PD랑 이실장 찜쪄먹겠어? 만 석:도장 찍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모르는 거니, 진아야? 채 연:(담배 꺼내 문다.) 오년 뒤에 대 스타가 되는 거지. 만 석:거짓말. 채 연:인터넷에, 휴대폰에, PDA에 내 모습이 팍팍 뜰 거야. 앞으로. 만 석:다 거짓말이다. 채 연:멀쩡하네? 안 미쳤어? (만석의 얼굴에 담배 연기 내뿜는다.) 맞아. 말 그대 로 노비 문서. 계약서라는 이름의 노비 문서. 만 석:(콜록거리며) 벗으라면 벗고, 춤추라면 춤추고. 꽃다운 나이 다 보내고 조 금 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위약금 물어내야 한다…. 갑자기 스테이지로 뛰어 올라가는 채연. 스테이지 조명이 다시 강렬하게 비추어진다. 과거, 채연의 모습이므로 조명이 강렬할 뿐 천박하지는 않다. 채 연:안녕하세요? 접수 번호 445번 나채연이에요. (꾸벅)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는게 제 꿈이랍니다. 36-24-38. 특기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춤, 노래, 연기…(섹시하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댄다.) 라크 버진~ 우~ (갑 자기 노래를 뚝 그친다.) 네? 신음 소리요?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은 없던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리얼하게 신음 소리 내는) 오우~ 아~ 아~ 채연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최고조를 이르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멍하니 쳐다보는 만석. 일어서려는데, 온통 붉은 빛으로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스테이지 중앙에 섹시한 포즈로 누워 있는 채연. 그 앞에서 에로 영화 감독으로 분한 이실장이 확성기 들고 앉아 있다.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박PD, 에로 영화 촬영겸 조감독으로 분해 있다. 감독(이실장):(소리질러 댄다.) 야-야- 가슴팍 드러나게 팍팍 벗어제끼라니까? 채 연:(겁먹은 목소리로) 가, 감독님. 시나리오가, 내용이 달라요. 감독(이실장):니가 메멘토냐? 한말 또하구 또하구 되풀이하게? 퀄리티를 위해서 씬을 추가했다고 몇 번을 말해? 채 연:그, 그치만, 그치만…. 감독(이실장):니 한 몸 바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겠다며? 오디션 때 니 입으루다가 읊었냐? 안 읊었냐? 채 연:그때는 시나리오가 정상적이었구요…. 감독(이실장):그래서? 채 연:(결연히 일어선다.) 못 찍겠어요. 감독(이실장):(채연의 얼굴에 계약서 던진다.)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이야. 알아? 채 연:파기할래요. 계약…. 조감독(박PD): 위약금 물어내야 될 건데? 자그마치 삼십배! 채 연:네에? 사, 사, 삼 십배?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채연의 신음 소리와 이실장의 목소리만 들린다. 감독(이실장):(소리만) 자-자- 좀더 섹쉬하게- 과감하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렇 지. 좀더, 더, 더…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만, 그만, 그만! (스테이지는 소리도 조명도 없이 조용해진다. - 스테이지 잠시 보고)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악몽! 어른이 되어 갈수록 악몽이 늘어 만 갑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나면 하나 둘 씩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젠 꿈이 무섭습니다. 꿈…나만의 꿈…(불현듯이) 진아를…찾아야 하는데…진아를….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잠시 그 앞에서 주춤 선다. 두려운 얼굴로 스테이지를 바라보다천천히 올라선다. 스테이지에 올라서면, 조명이 밝아진다. 소품을 정리하면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채연. 그 옆에 앉는 만석. 채 연:이 세상엔 뭐가 있는지 더 높이 날을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 지 않아~ 애잔하게 채연을 바라보는 만석. 채연의 짙은 화장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후다닥 채연의 시뻘건 입술을 손으로 지우는 만석. 채 연:뭐, 뭐야? 태연하게 눈의 화장까지 벅벅 지우는 만석. 만 석:이쁘다. 진아야. 채 연:아우씨이~ 변태네 이 오빠? 세차게 만석을 밀어젖히는 채연. 풀썩 엎어지는 만석. 채 연:(거울 찾아 얼굴 본다.) 아우~ 씨바. 엉망이네. 만 석:미…안하다…. 채 연:그렇게 닮았어? 끄덕이는 만석. 거울 보면서 대충 화장기 지우고 스스로 머리를 반듯하게 묶는 채연.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만석. 일순 얼굴 마주보며 웃는 채연과 만석. 채 연:진아라는 사람, 오빠 애인이야? 어딨는데? 만 석:죽…었다. 인간은…환생한다.…그게…너다.…그렇지 진아야? 채 연:순정파네 이 오빠. 그런 사람이 이 바닥엔 뭐하러 기어 들어왔대? 하긴…직업에 귀천 없다잖아? 이왕 온거 빨랑 돈 벌구 이 바닥 떠. 그래야 오빠 두 알콩달콩 여우 같은 마누라랑 살지. 만 석:진아랑 결혼할 거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채연에게 건네주는 만석. 목위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얌전하고 고상한 원피스다. 만 석:입어 봐. 채 연:나 주는 거야?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채연. 흡족한 표정으로 패션쇼하듯 무대를 워킹 한다. 만 석:결혼하자. 채 연:나? 나랑? 실수한 거야. 작가 오빠. 남자들은 말이야, 나를 만지려고는 해 도…특히 결혼이란 말 따윈…안 해. 만 석:진아야…채 연:채연이라니까? 따라 해봐. 천천히. 나, 채, 연. 만 석:나, 채, 연, 결혼…하자. 채 연:첫눈에 반한 거야? 나한테? 만 석:그래. 진아는…채 연:프로포즈라…가능성 있어. 오빠는 에로 작가, 난 에로배우. 딱이다. 딱! 바쁘게 등장하는 박 PD, 채연보고 기겁한다. 박 PD:그 옷 입고 촬영할 거 아니지? 채 연:어때서? 박 PD:이미 써먹었잖아, 그 컨셉? 식상해.채 연:그건 웨딩드레스고 이건…. 박 PD:벗어. 그 옷은 아니야. 영상이 안 된다구. 오로지 자극적인 거 볼려고 돈 내는데. 채 연:믿어 봐.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박 PD:실시간 방송이라구. 항의가 빗발칠 거야. 만 석:(시계 보더니 퍼뜩) 카메라 앞에 서. (박 PD 흉내내) 방송 오분전. 박 PD와 만석, 실랑이 벌이는 몸짓. 컴퓨터 앞에 서는 채연. 기어이 박 PD를 뿌리치고 카메라 작동시키는 만석. 손가락으로 큐 사인 보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차분히 앉아 있는 채연. 채 연:안녕하세요? 불끈 님, 무기님, 조아조아님. 그 외에도 많이들 들어오셨네요. 순간 모니터에 빠르게 항의성 자막이 떠오른다. 무 기:벗는 게 최상의 정치!! (이빨 드러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노 예:안 벗는 년 프로도 아니라며? (화난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 힘:삐리리 웬일이니 웬일이니 웬일이니? 나채연 웬 내숭? 미스터빅:오늘, 전 회원 탈퇴의 날… (검은 장미의 이모티콘이 다발로 떠오른다.)떠오르는 자막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채연. 안절부절못하는 만석에게 눈짓 보내는 박 PD. 씨근덕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이실장. 무대를 한바퀴 휘익 둘러본다. 이실장:어떤 새끼야? 누가 방송을 이따우로 하래 엉? 둘러보다 카메라 잡고 있는 만석에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다. 맞고만 있는 만석, 쓰러진다. 계속 짓밟아대는 이실장. 말릴 생각조차 하지못하는 박 PD. 이실장:개새끼. 누굴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말해 봐 새꺄. 계속되는 발길질과 주먹질. 당황한 채연, 다급해져서 원피스를 세로로 ‘부욱’ 소리나게 찢는다. 일순 무대에 스치는 적막. 모든 동작 정지하고 채연만 주목하는 사람들. 암전.조명 밝아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만석. 코며 입이며 피가 엉겨 붙어 있다.손으로 만석의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채연. 채연의 손길을 느끼며 시니컬하게 키들거리는 만석. 그런 만석을 바라보다 같이 키들거리는 채연. 영 불편하게 서 있는 박 PD. 박 PD:너…진아가 죽고나서는 정말 이상해졌다. 만 석 ; 아무 것도 모른다. 다들…. 박 PD:결혼할 여자가 술집나간거, 가슴 아프겠지. 자살한 건 더욱 충격일 테고. 하지만…. 만 석 ; 임신했었다. 진아…. 박 PD:뭐, 뭐라고. 너 사고 친 거야? 만 석:내 애…아니다. 박 PD:그러면 술집에서, 만 석:홀아버지 약값 벌겠다고 아무도 모르게 나간 거다. 박 PD:그런걸 동네 사람들한테 들켰으니…. 만 석:세상은 바뀐다는데, 휴대폰에서는, 인터넷에서는 성(性)을 판다는데…진아는…진아는 …. 채 연:원래가 순수한 건 깨지고 흠집 나는 거야. 현실이 그래. 현실이…. 박 PD: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사람도 잊혀진다. 만 석:움직이는 거라구? 사랑이? 광고가 떠들고 인스턴트가 판치고…나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채연 바라본다.) 진아는 남아 있는데,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왜 모든 게 변할까…. 좋은 건…. 채 연:멋지다. 이 오빠, 맘에 들어. (박PD 보고, 자랑하듯) 나한테 결혼하쟀어. 박PD, 어이없게 쳐다본다. 만석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하는 진아. 때마침 등장하는 이실장. 이실장:어쭈구리? 눈까지 맞았어? 저 새끼 짜르라니까 너 뭐하는 놈이야? 채 연:벗을게.화끈하게 벗는다구. 회원수 안 줄어. 봤잖아? 옷 찢어서 반응 좋았 던 거. 처음부터 컨셉이 그거였어. 그거였다구. 이실장 ; 뭐야?박 PD:그, 그게, 그러니까…. 이실장:더듬지 말고 말해. 새꺄. 박 PD:마, 맞습니다. 고전적인 원피스에 갑자기 옷을 찢을 꺼라고 누가 상상을 하겠습니까? 이실장:그랬단 말이지? 다시 방송 시작해. 지금부터 내가 방송에 관여한다. 박 PD, 카메라를 손본다. 살며시 만석의 머리를 바닥에 편히 눕히는 채연. 아니꼽지만 참는 이실장. 채연, 카메라 앞에 선다. 차분하게 묶은 머리를 풀어헤친다. 카메라가 작동되면 이실장, 채연에게 인사 멘트하라고 사인 보낸다. 무시하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추는 채연. 이실장, 말하라고 계속 손짓해 댄다. 채연, 말없이 옷 벗는다. 잠든 것 같던 만석, 벌떡 일어나 채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가 소리 없이 서랍으로 간다. 장난감 총을 꺼내 드는 만석. 각자의 일에 몰두해 만석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만 석:소, 손들어! 이실장:또 뭐야? 만 석:쏘, 쏜다.이실장:저거 미친놈 아니야? 장난감 총 들고 설치면, 어쩔 건데? 박 PD:그만해. 만석아. 만 석:모두 카메라 앞에 서. 이실장:장난 하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만. 그래, 오랜만에 우리 빙신 춤 한 번 춰 보자. 엉. 이실장이 만석에게 다가가려 하자, 급하게 이실장을 안다시피 카메라 앞에 세우는 채연. 천천히 춤추며 이실장의 온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채 연:(귀에 대고) 속삭이는 컨셉이야. 저 총, 소품으로 쓰라며? 이실장:그래? 은근슬쩍 채연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이실장, 기묘한 성적인 쾌감을 느낀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채연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이실장. 이제는 방송이라는 자각보다는 본능에 따르고 있다. 순간 모니터에 여러 개의 자막이 빠르게 떠오른다. 야 수:와- 새롭다!! 새로운 장르? 에로다큐? (두 눈 튀어나오는 이모티콘 떠 오른다.) 불 끈:앞서가는 삐리리! 오늘 방송 별 다섯 개! (별모양의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터프게이: 에로 방송 대상 줘라~~ 무교동:리얼리티 짱이다! (엄지손가락 보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귀족:전국에 알려 회원수 늘려 주자!! 갑자기 쏟아지는 반응을 보고 입이 찢어져라 웃는 이실장. 이실장:와하하하. 이것 봐라? 반응이 이렇게 좋아? 박 PD:크, 클릭 수가 급증해요. 갑자기 폭주해서 접속이 안될 지경이에요. 이실장:그래 그래. 이 한 몸 바쳐서 한 밑천 땡겨 보자. 우히히. 좋았어. 아주 좋아. 클릭수. 만 석:(총구를 박 PD에게 겨누며) 카메라 앞에 서. 박 PD:너 정말 미쳤어? 이실장:들어와 새꺄. 대장이 벗는데 쫄병이 구경만 해? 울상이 되는 박 PD. 눈을 부라리는 이실장.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박 PD. 스스로 옷을 벗는 이실장. 동물적인 본능과 자극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PD 역시 처음엔 어색하게 움직이지만, 차츰 채연의 동작에 동화된다. 점점 행위에 몰입하는 사람들. 한 몸이 되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동작을 한다. 만 석:나는 너희들을 저주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내게 행한 악은 너무 크고 내가 너희들한테 행한 악도 너무 커서 그것은 자발적인 것일 수 없다. (詩-이지도르 뒤카스) 자연스럽게 채연의 몸을 더듬는 이실장. 그 모습 바라보는 만석. 부들부들 떤다. 총까지 떨린다. 이실장을 겨냥하는 만석. 박PD, 장난감 총인지라 말리지 않고 피식 웃는다. 이실장:쏴. 쏘란 말이야 임마. 그래야 클릭수 늘어나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쳐 잡는 만석. 침착성을 되찾는다. 만석, 다시 한번 이실장과 박PD, 채연을 차례로 바라본다. 아랑곳없이 채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이실장. 순간, 분노로 경련을 일으키는 만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탕-’ 찢어지는 듯 한 파열음. 겨냥이 빗나가 풀썩 힘없이 쓰러지는 박 PD. 시뻘건 피가 흥건히 번져 나온다. 놀라 만석을 바라보는 채연과 이실장. 만석, 총을 한 번 쳐다본다. 넋이 나가 풀썩 주저앉는 채연. 이실장, 갑자기 무릎꿇고 애걸복걸 빌기 시작한다.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실장:저, 정선생, 아, 아니, 정작가님, 훌륭하신 작가 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예? 진정하세요. 예술을 하신다는 분이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예? 잘못했어 요. 사,살려줘요, 응? 내가, 내가 다 사과할게. 응? 만 석:너희는 너희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었으되 그 두 길은 모두 유사하 고 모두 삐뚤어진 길이었다. (詩- 이지도르 뒤카스) 무표정한 얼굴로 이실장을 바라보는 만석, 악마적인 미소 날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만석의 얼굴에 피 흩뿌리며 쓰러지는 이실장.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만석을 쳐다보는 채연, 벌벌 떨고 있다. 총을 떨어뜨리는 만석. 털썩 주저앉는다. 아련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채연, 놀라서 만석의 팔을 잡아끈다. 움직이지 않는 만석. 채 연:어, 어쩌지? 만 석:쉬고 싶다…. 채 연:무서워…도망치자. 응? 도망치자. 만 석:니 옆에서…잠들고 싶어 … 채 연:나, 난 아니야. 대 스타가 되는 게 꿈이야. 도망쳐야 돼! 만 석 ; 진아야…. 채 연:옆에 있어 줄게. 일어나. 만 석:(두 눈 감는다.) 채 연 ; 이대로 끝낼 수 없어! 긴박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불안감에 싸여 도망 갈 곳을 찾아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채연. 두껍게 덮여있는 창문 앞에 선다. 와락 커튼을 젖히는 채연, 힘들게 창문을 연다. 밖을 내려다보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채 연:(주저앉으며) 토할 거 같아. 노, 높다. 주, 죽으면 어쩌지? 만 석:(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같이 가 진아야. 채 연:주, 죽는 게 나을까? 아, 아니 잡히는 게? 만 석:이제는 안 놓친다. 점점 더 가깝게 들려 오는 사이렌 소리에 동요하는 채연. 채 연:여기서 끝내는 건 너무 억울해. 도망 쳐야 돼. 만 석:너만 있으면 된다. 사색이 되어 출입문을 바라보는 채연.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려 온다. 점점 울상이 되는 채연, 만석과 함께 창틀에 올라선다. 망설이던 채연, 만석을 의지하며 꼬옥 끌어 안는다. 다시 한번 절망스럽게 문을 바라보는 채연. 문 앞까지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뒤이어 들려 오는 확성기 목소리. 두 눈 질끈 감는 채연. 경관 목소리:너희들은 포위됐다. 손들고 순순히 자수해라. 셋을 세고 들어간다. 하 나, 두울, 세엣- 크게 문 부서지는 소음과 동시에 비명 지르며 뛰어 내리는 채연과 만석.“아악”하는 두사람의 비명이 찢어지듯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암전. 어두운 무대에 음악 흐른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뉴스. 소 리:다음 뉴스. 오늘 새벽 인터넷 방송국 내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당시 비디오 자키로 촬영 중이던 나모 여인과 가해자 정모씨는 1층에서 도주하려다 추락, 병원에 이송됐으나 나모 여인은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모씨는 현재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받아먹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각 정부 부처의 반응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광부와 내무부는 서로 조사권을 주장, 부서간에 큰 충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여성부에서도 관심을 표명하는 가운데…. 음악 흐르면서 막. ◆당선소감 이제 겨우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기요… 저 아직 죽지 않고 글써요….”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 속에서 꿈결처럼 당선 소식을 들었다.믿어지지 않아 텅 빈 머리로 조금 더 누워서 빈둥거렸다. 남들이 열 개를 가질 때 다섯 개를 가지면 만족한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하지만,그 다섯 개를 가지지 못하면 미쳐 버리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성이었다.글이라는 것이…,내게는 그 다섯 개였고 전부였다.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던가? 책임감처럼 전화질을 해댔다.그러고는 곧 또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앞으로 단명하지 말고 더욱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달콤한 채찍질이구나….더 많이 공부하고,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 거구나….그 사실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졸업하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오교수님,깊이깊이 고개숙여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정말 감사합니다.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아주신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고맙습니다.당선 소식에 너무나 좋아한 윤환 오빠와 새언니,성희언니와 형부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선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어 준 박수진 선배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준 성예 경희 나연 미현 현철 정석 우석 석윤 재중 남헌이…,모두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변혜령 ●약력 71년 서울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우승컵 양보없다” ◆심사평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T S 엘리어트나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극을 최고의 예술장르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쓴 희곡들은 시나 소설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한정된 시공간에서 살아있는 배우가 압축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희곡은 무엇보다 입체적인 연극적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문학지망생들에게 희곡은 그만큼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장르다.이번 희곡 응모작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분단문제나 문명비판,지하철 노숙자나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사회문제와 가족관계 등을 골고루 다뤘다.식지 않은 월드컵의 열기도 느껴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부한 시각과 관념적인 글쓰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많은 경우 서술적인 전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최종심의에 오른 작품은 ‘나난 가노란 말도 못다 고’와 ‘장난감 총’이다. ‘나난…’은 남편의 오랜 병수발을 한 아내가 남편이 잠시 숨을 멈추자 불효한 아들에 대한 분노로 먼저 세상을뜬다는 내용의 작품이다.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반전의 묘미를 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장난감 총’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의가 없었다.성인 인터넷 방송국을 무대로 성과 양심이 매매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단면을 드러낸 작가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다채로운 무대활용 기법,동시대적 언어감각,시종 극적 긴장을 이어가는 탄탄한 구성력이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희곡에 연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도록 우리 무대를 지키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 오태석 김미희
  • [씨줄날줄]아! 2002

    한 해가 저문다.숱한 감동이 어우러진 임오년을 아쉬움 속에 보내고 계미년 새해를 희망으로 맞는다.2002년은 누가 뭐래도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대∼한민국’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기억될 것이다.그만큼 예측불허의 역동성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우리중 누구도 지난 2001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월드컵 16강이 아닌 4강을 기원하거나,촛불시위를 만들어낸 ‘인터넷 파워’를 주목하지 않았다.‘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그 누구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꿰뚫지 못한다.신수풀이나 점이라는 것도,그저 영감이나 오랜 통계치일 뿐-. 정말 우리 모두는 현란한 반전의 연속에서 살아왔다.경선에서 이인제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게 무릎을 꿇으리라고 어떤 정치전문가가 예측이라도 했던가.5월의 마지막 날까지 ‘일본의 세심한 월드컵 준비’를 알리며 한국의 실패를 걱정했던 우리 아니던가.서울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의 함성소리를 예상이라도 했던가.아시안게임을 화려하게 장식한 북한 미녀들은설사북한의 의도된 계산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예측의 가시권에 들어오기나 했던 일인가.미선양과 효순양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는 또 어떤가. 아니 그보다,극심한 부침을 계속해온 노풍(盧風)이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꺾을 것으로 믿었던 이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사람 산다는 게 늘 변하게 마련이지만,‘年年歲歲 花相似이나,歲歲年年 人不同이라(해마다 피는 꽃은 늘 같으나,사람살이는 매양 달라지더라)’를 체득한 한 해였다.우리 모두는 이제 ‘매일이 다른’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있는 것이다.과거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이미 한물간 사람으로평가절하될지도 모른다. 그 임오년이 이제 하루만 지나면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진다.지난 한해동안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변화와 역동의 씨앗은 또 봄이 되면 꽃을 피울 테지만,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새 날은 어김없이 밝아온다.2002년 그 뜨거웠던 열기를 싸안고 가는 역사의 냉엄함을 보면서 숙연해진다. 그래서 김동리는 제야(除夜)를 이렇게 노래했을까.‘…/표박이여 이밤엔 쉬라/들끝에서 돌아오는 카인을 맞아/경건히 눈물짓는 촛불을 바라보며/마음은 멀리 초인을 기다린다.’ 우리에게 새해의 초인은 또 누구일까.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대한매일 선정 2002년 10대뉴스/국내

    ***노무현 16대 대통령당선 지난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57만여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노 당선자는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20∼30대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를 기반으로 승리를거뒀다. ***월드컵 4강과 붉은 악마 한국축구가 2002월드컵에서 사상 첫 승 등 신기록을 쏟아내며 거스 히딩크감독의 말처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D조 1위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꺾고 4강까지 내달려 한반도를 열광시켰고,연인원 2500만명이 주요도시 거리를 ‘붉은 물결’로 메우는 새 응원문화를 창조했다. ***여중생 사망 추모 촛불시위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국도에서 미군 장갑차가두 여중생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미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갔다.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된 촛불시위는 인터넷을 타고 전국으로퍼져 연인원 100만여명이 참여했다. ***남북한 서해교전 월드컵 폐막전날인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1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공격,장병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이사건은 국가대표팀의 4강 진출로 달아오르던 월드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특히 우리 해군은 NLL을 넘어 기동 불능상태에서 예인중인 북 경비정을격침시키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햇볕정책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비리연루 대통령아들 구속 대통령의 두 아들이 아버지를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해 거액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를 샀다.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각종 청탁을 들어주고 25억여원을 받은 혐의로,3남 홍걸씨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36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태풍 루사 피해 사상최대 8월29일부터 전국을 강타한 태풍 15호 ‘루사’로 강원·경북·충북지역 곳곳이 일순간 폐허로 변했다.기상관측 이래 최대 강우량을 보임에 따라 246명이 사망·실종됐고,재산피해도 5조원이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재민들은 여전히 컨테이너 임시숙소에서 새해를 맞게 됐다. ***신용불량자 급증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돼 우리 경제를 무겁게 짓눌렀다.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각종 범죄 등 사회문제를 일으켰는가 하면,가정파탄이 속출했다.30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불량자는 올해 11월까지 257만여명으로 증가했다. ***개구리소년 유골발견 1991년 3월26일 개구리를 잡겠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다섯 소년이 11년여만인 지난 9월26일 대구 와룡산에서 유골로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겼다.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유족들은 망연자실했고 이들의 사인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진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국제영화제 석권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올해만큼 각광 받은 해는 없었다.지난 5월 제55회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8월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장애인과 사회 부적응자의 사랑을 담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이주일 타계와 금연열풍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코미디 황제’고이주일(62·본명 정주일)씨가 지난 8월27일 폐암 투병 끝에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지난해 10월 폐암이 발견된 뒤 그는 TV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등 금연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 올 국회대상 분야별 수상자 선정

    국회 ‘대중문화&미디어연구회(회장 김덕룡)'와 ‘과학기술연구회(회장 김덕룡)'는 26일 분야별 ‘2002 국회대상' 수상자와 단체를 선정,발표했다. 대중문화&미디어대상 수상자로는 고 손기정옹(특별상),고 이주일씨(공로상),‘취화선'(영화),‘블루사이공'(연극),‘윤도현 밴드'(대중음악),‘TV동화 행복한 세상'(방송),‘붉은악마 응원단'(스포츠),‘푸리'(국악),‘마리이야기'(만화),‘즐거운 학교'(인터넷),‘한국대학생대중문화감시단'(문화지킴이)이 선정됐다. 과학기술대상엔 채연석 항공우주연구원장(과학인상),여성과학기술인회(과학기술단체상),한국과학기자협회(과학기술언론),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공로상),전무식 전국과학기술인협회장(특별상)이 결정됐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거행된다. 박정경기자 olive@
  • [대한포럼]인터넷 권력의 아침

    대통령 선거의 여운이 아직 세상의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 당선이 한편의 대하 드라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고비마다 예전의 통념을 뒤집는 반전의 연속이었다.사람들은 인터넷이 연출한 마술이라고 했다.가장 극적인 마술은 역시 피날레였다.바로 선거일이었다.오후에 접어들면서 전국이 들끓기 시작했다.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투표 캠페인이 뜨겁게 전개되기 시작했다.자신의 투표 과정을소개하며 투표 독려에 나서기를 주문했다.TV 방송사의 초반 출구 조사 동향이 신호탄이 됐다. 출구 조사 후일담이지만 오전까지만 해도 당선자는 미미한 차이로 뒤지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오후가 되면서 누군가 마술이라도 부린 듯 판세가 뒤집혔다는 것이다.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젊은이들이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듯 투표장으로,투표장으로 몰리면서 서서히 역전이 시작됐다고 했다.언제나 전국 평균치를 밑돌던 서울의 투표율이 71.4%로 전국 평균 70.8%를 웃돌았다.또 후일담이지만 20~30대는 더블 스코어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노무현정권을탄생시켰다.사람들은 그래서 인터넷이 만들어 낸 권력이라며 인터넷정권이라고 한다. 이번 선거의 막판 마법은 우연이 결코 아니다.주인공들은 정몽준 대표의 ‘지지 철회’ 소식이 전해지며 밤샘 토론을 시작했다.인터넷을 통해 리얼 타임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았다.인터넷이 전국의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 아크로폴리스가 되었다.합의점을 찾았고 나름대로 행동 지침까지 다듬었다.‘나 하나쯤 투표를 안 하면 어쩌랴.’가 아니라 ‘내가 투표를 해야겠다.’라는 의식을 다졌다.붉은악마 사이트를 통해 월드컵 거리 응원에 나섰던 경험이 교과서가 되었다.토요일이면 지금도 어둠을 밝히는 광화문 촛불 시위가 참여의 미학을 돋우었다. 인터넷은 전국민을 기자로 만들었다.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맘껏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쓰고 싶은 것을 쓰고,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언론의 특권을 보편화시켰다.언필칭 사회 원로나 저명 인사의 독무대였던 여론 창출의 수단을 누구나 갖게 된 것이다.나아가 쌍방향 의사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여론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이론을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는 기간도 대폭 단축했다.인터넷이 없었다면 그 많은 다중이 ‘지지 철회’라는 돌발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겠는가. 인터넷으로 무장한 젊은 그들이 이제 사회의 전면에 나섰다.참여하면 무엇을 이뤄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30대 학원 강사의 제의로 시작된 촛불 시위로 미국의 사과를 두 차례나 받아 냈다.그들은 앞으로 목청을 높일것이다.더 이상 전문가나 저명 인사의 의견을 기다리지 않는다.서슴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이의 얘기를 들으며 사안마다 판단하는 시스템을갖게 됐다는 얘기다.정치 민주화에 이어 사회·문화 민주화가 시작됐다.민주화가 완성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 원조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다.폴리스는 본래 언덕이라는 뜻이었다.국정 현안이 있을 때면 사람들은 나중에 아크로폴리스로 불린 언덕에 모여토론을 벌였다.폴리스는 자연히 말 잘하는 사람의 무대가 됐다.궤변론자가 태어나는 토양이었다.형식 논리가 그대로 통용되는 틈이 간과됐다.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수단에 그쳐야 할 다수결 원칙이 가치까지 판단하는 만능자(尺)가 되며 중우정치가 싹텄다.젊은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다.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그러나 한편으론 노파심이 든다.권력은 탐욕을 낳는 속성 때문이다.고대 아테네의 시행착오를 귀감으로 삼을 일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열린세상]반미의 사회구조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곧바로 이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 훈련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희생된 두 여중생의 사망을 계기로 급격히 고조된 반미 감정이 그것이다. 반미의 문제는 한국과 미국을 사이에 두고 점점 더 강해지는 태풍의 눈과도 같다.문제는 이 새로운 태풍의 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그 중심에 무엇이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현명한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한국사회에서 반미 감정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불행히도 우리는 반미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충전하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반미 현상은 한국과 미국을 연결 고리로 점점 심화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이로부터 발생하는 대다수 한국 국민들의 심각한 사회적 박탈 의식과 그 맥이 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지난 수 년 동안 진행된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급속히 증가하였고,한국 경제는 국제 자본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엘리트들이 더 이상 그들의성공을 한국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과거 한국의 중산층은 국방의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이제 그들의 2세들은 미국을 통해 사회적 성공과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너도나도 미국을 향하고 있다.세계화와더불어 진행되는 급속한 사회 변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사회의 계층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조금 더 지나면 이제 한국을 떠났던 엘리트들이 다시 한국의 지배 엘리트로 등장할 것이다.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 계층 구조가 이런 방식으로 짜여져 갔고,이에 대한 불만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사회적 에너지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을 싣고 미국을 향해 달리는 듯한 마차를바라보는 대다수 한국 젊은이들의 심정은 거대한 박탈 의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체육인,연예인,경제인,정치인들과 그들의 2세들이 한국을등지는 상황에서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가야 하는 젊은이들이 구조조정으로 인해 마땅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는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건강한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그들의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이 반미의 대열에 동참하는 모습을보았다.올림픽,월드컵,반미로 이어져 온 숨가쁜 대중적 몰입의 밑바탕에는심화되는 불평등의 사회 구조가 존재한다.이 구조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젊은이들의 박탈감은 그 폭발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반미는 그러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박탈감의 강렬하고,단순하며 분명한 목표이다.여기에 한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듯한 미국의 미숙한 태도는대중의 박탈감에 기름을 쏟고 있다.한국인들은 유사한 사건이 일본에서 발생했을 때 미국이 일본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커다란 실망감을 느낀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반미의 문제는 과거의 반미와는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될 필요성이 있다.우선 미국은 한 편으로 우리 국민들이 일구어 온 정치,경제,문화적 성취와 고양된 자존심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위대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그들을 ‘위대한 민족’으로 자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과 미국간에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반미의 소용돌이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반미의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천사 미국’은 언제라도 ‘악마 미국’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불평등한 현실에서 좌절하는 대중들이 반미와 손잡을 가능성은 얼마든지있기 때문이다.건강한 젊은 세대의 좌절이 미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미의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 사회학
  • 책꽂이/자객열전 外

    ●자객열전(유재주 지음) 지난 84년 ‘소설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가 춘추전국시대 자객들의 활약상을 소설로 엮었다.노나라 사람으로 자객의 시조로 꼽히는 조말을 비롯,진나라의 발제,오나라의 전제와 요이 등 중국사에 등장하는 자객 이야기 8편.휴먼&북스 전2권 각 8800원. ●들뢰즈와 문학-기계(고미숙 외 지음) 미셸 푸코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철학자로 지목한 질 들뢰즈의 사유체계를 다양한 분야의 젊은 전공자들이 문학연구에 응용한 성과물.보르헤스·체르니셰프스키·세르반테스·헨리 밀러·미셸 투르니에·버지니아 울프·조너선 스위프트 등의 작가 혹은 작품을분석한다.소명출판 1만 8000원. ●먼 곳의 불빛(허정 지음) 1996년 창비 신인평론상 수상자의 첫 평론집.저자는 80년대와 90년대를 단절시키려는 속류 사회학주의를 비판하며,90년대시단의 사회성 상실 논의에 대해 적극적인 반론을 펼친다.창작과비평사 1만3000원. ●뜻으로 읽는 한국어 사전(이어령 지음) 일간지에 연재된 저자의 칼럼을 엮은 책.지난 95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에 10여편의 글을 추가해 ‘이어령 라이브러리’의 2차분 첫 책으로 재출간했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토막이말,한자 말,서양 말의 문화인류학적 연원을 캐는 글들을 실었다.문학사상사1만 1000원. ●청자 깨어지는 소리(김준성 지음) 경제부총리를 지낸 저자의 일곱번째 소설집.대학 교수와 여제자의 사랑을 그린 표제작을 비롯,보험금을 노리고 발목을 절단하려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다룬 ‘돼지 족발’,월드컵 대회를 배경으로 국적을 초월한 사랑을 다룬 ‘붉은 악마’ 등 8편의 작품을 실었다.문학사상사 8500원. ●나는 누구인가 복제인간 T2(양창국 지음)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한국전력 원자력 분야에서 30여년간 근무한 저자의 과학소설.나노기술 개발업체의 오너가 생명공학 분야의 경쟁회사 기술을 빼내려다 소송에 걸린다.봄 전2권 각 8500원. ●크레인(라이너 침닉 지음,유혜자 옮김) 독일 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수하물을 옮기는 크레인 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의 책임과 의무,우정과 전쟁 등을 풍자적으로 그렸다.큰나무 7500원.
  • 붉은악마 해체로 가닥

    한국 축구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향후 진로와 관련,발전적인 해체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10월 말 홈페이지를 통해 ‘대통령선거일까지 공식 활동중단’을 선언했던 붉은악마는 21,22일 충남 대전 유성유스호스텔에서 대의원과 홈페이지 클럽운영자 등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의원대회를 갖고 향후 진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대다수 참석자들은 “중앙 사무국을 대폭 축소하고 지방 소모임 활동을 활성화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내년 1,2월중 차기 대의원대회를 열어 이같은 입장을 최종 확정·공표하기로 했다.붉은악마 관계자는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중앙 사무국이 관리하는 방식은 한계에 달했다.”면서 “변화에 앞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결정은 다음 대회로 미루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월 갑작스러운 회장직 사퇴로 ‘정치권 압력논란’이 제기됐던 전 회장 신인철(申寅澈·34)씨는 해외에 체류하다 지난 19일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석기자 surono@
  • 시를 뜯어보는 두 시선/현재 이전.이후 탐색하는 평론집 2편

    ‘현재 이후’와 ‘현재 이전’의 시공(時空)을 겨냥해 문학적 해체를 시도한 두 편의 평론집이 나란히 나왔다.전자는 류신이 평론집 ‘다성의 시학’을 통해 내세운 시인 이원에 대한 평가고,후자는 시인 오정국이 설화를 탐색한 평론집이다.지향점을 달리 하는 이 두 편의 평론집은 현재를 접점으로 해서 각각 독특한 해체의 격을 획득해 주목받고 있다. ◆오정국 '시의 탄생,설화의 재생' 한국 현대시에 ‘설화’는 어떻게 확장,투영되었는가,또 어떤 형태로 전환돼 나타났는가를 다룬 독특한 비평집이 시인 오정국의 ‘시의 탄생,설화의재생’(청동거울)이다. 그는 “한국의 주요 시인 가운데 설화를 시의 소재나 모티프로 삼지 않은경우가 거의 없을 만큼 설화는 한국 현대시의 자양분이자 핏줄이며,무한한상상력의 보고(寶庫)”라고 평가한다. 그는 설화의 확장을 ▲인과적 확장 ▲비유적 확장 등으로 구분,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서정주의 시 ‘무제’에 나타난 ‘매(鷲)의 눈물’,서정주의 ‘선덕여왕의 말씀’과 김춘수의 ‘타령조3’에서 지귀(志鬼)설화가 확장된 ‘불의 재생’이미지, 박재삼의 ‘華想譜(화상보)’등 춘향 시편에 나타난 사례를 들었다. 또 전봉건의 ‘춘향연가’에서 드러난 옥중 수난의 극대화와 송수권의 ‘춘향이 생각’에서 표출된 사회비판의 메신저같은 유목적(有目的)적 기능 부여도 설화가 인과적으로 확장된 사례라고 꼽았다. 설화의 비유적 확장은 김소월의 ‘춘향과 이도령’에서 끊어진 오작교의 형태로 나타났으며,박재삼의 ‘葡萄(포도)’에서는 환원되지 않는 한(恨),서정주의 ‘소자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기운’에서는 풍요로운 익살로 표현됐다.또 신동엽의 ‘백제계 설화’시편에서는 곰나루에 선 아사달,이승하의 ‘遇賊歌(우적가)를 읽는 밤’에서는 현실비판의 거울로 각각 형태를 달리해나타난다고 보았다. 설화의 전환에 관해서도 ▲모티프의 변용 ▲인물 패러디 ▲모형 해체 등의유형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 오씨는 모티프 변용의 경우 서정주와 강은교가각각 신화적 세계로의 통로와 되풀이되는 가락지의 굴레로 활용했는가 하면,송수권은 화냥기 같은 사랑의 생명력으로,박제천은 낙천적 생사관으로 변환시켰으며,김춘수는 신화와 세속의 세계를 융화하는 매개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또 최하림은 ‘민중적 투사’,윤석산과 황지우는 ‘햄릿적 욕망의 대변자’와 ‘향락적 물신주의의 전형’으로 전이시켰으며 정일근은 ‘공단 근로자들의 열꽃’으로 설화를 전환시켜 시화(詩化)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모형의 해체를 통한 설화의 전환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예컨대 황지우는 CM·전자오락·섹스라는 유형으로 설화를 해체, 복원해 냈으며,이하석은 ‘처용의 딸’에서 미군부대 주변의 제비꽃이라는 전혀 다른이미지를 추출해 냈다.그런가 하면 문정희는 ‘처용 아내의 노래’에서 헝겊 조각과 역신(疫神)을 대비시켜 모형해체를 설명한다. 오씨는 “설화의 재연(再演)과 확장이 언어적 전통은 물론 전통적 삶의 원형을 탐구해 당대적 삶에 새로운 가치체계를 부여했다.”면서 “설화의 전환 역시 설화 자체가 지닌 서사 모형을 위반함으로써 설화의 전승가치와 생명력을 높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류신 '다성의시학' ‘비트도시를 산책하는 전사’시인 이원(34)과,그의 시스템 프로그램을 해킹하려는 ‘다성(多聲·polyphonie)의 소리상자’평론가 류신(34)의 접속은암호처럼 은밀하고 치열하다. 시집 ‘야후의 강에는 천개의 달이 뜬다’(문학과 지성사)로 문명에 대한‘비판적 지지’입장을 명쾌하게 보여준 이원의 시세계는 우선 견고하다. 류씨는 최근 발간한 평론집 ‘다성의 시학’(창작과 비평사)에서 “이원의시스템 프로그램 해킹을 위해 밤새 그의 시성(詩城)의 뒷문과 링크를 시도했으나 패스워드의 암호체계가 복잡해 좀처럼 가닥을 잡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원 시의 허브 속으로 침투하고자 류씨가 정리한 패스워드의 목록은 ‘철로 된 도시’‘플러그 콘센트’‘전자사막’‘반인반전(半人半電)’‘디지털’‘로봇’‘싸이보그 021’등이다.과거에 집착하는 감성으로는 도무지 잡아낼 수 없는 전혀 다른 경계의 틀을 구축한 작품들이다. 이런 이원의 시를 류씨는 “인간을 가위누르는 철의 악마적 메커니즘에 대한 고발”이라고 해석한다.“철이인간의 사고까지 깔아뭉개는 가혹한 생명체로 돌연변이했다는 시인의 전언이 섬뜩하다.”는 시각이다. 그렇다고 시인의 상상력이 철에서 ‘가혹함’만을 추출해 내는 것은 아니다.“골조공사가 한창인 신축공사장 앞에서는/어김없이 발걸음이 멈춰진다”는 그다.그냥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철골이 세워진 공사장만 보면 멀리서도 가슴이/뛴다”고 할 정도로 철골의 살풍경 속에서 경이로운 시상을 뽑아올리는 그다. 류씨는 이를 “그에게 철근은 생의 의지를 북돋우는 매혹적인 사물”이라고 읽어낸다.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철근에서 제 삶을 떠받치는 강단의 시정신,곧 생의 근기(根氣)를 읽어내고 있다는 것. 시를 해체하는 류씨의 시각은 주로 미학적이고 예언적인 진술에 토대하고있다.예컨대 시인의 ‘철로 된 도시’에 대해 루카치의 시각을 차용하거나‘싸이보그’라는 시를 “마리네티가 미래예술의 종착점으로 설정한 ‘인간육체의 금속화’에 대한 내밀한 욕망의 흔적”으로 보고,이는 “딱딱한 사물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애정”이라고 이해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류씨는 “그는 생리적으로 ‘나무로 된 숲’보다는 ‘철로 된 도시’쪽으로 몸이 열리고 차가운 도시의 풍광이 자아내는 서늘함에서 시적 상상력의 날개를 펼치는 시인”이라며 서슴없이 ‘냉혈’의 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시인의 시세계는 생물학적 냉혈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자 한다.시인의 사이보그는 “육체라는 고깃덩이에서 해방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순수한 디지털 자의식”이라는 게 류씨의 진단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씨줄날줄]‘노감모’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당선자로 만든 일등 공신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다.전국적으로 회원이 7만 4000여명에 이른다.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의 결성은 2000년 4월13일 총선이 계기가 됐다.당시 노무현씨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 북·강서을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자,노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격려의 글이1000여건이나 쏟아졌다.‘바보 노무현’은 이때 노씨의 고군 분투를 안타까워했던 네티즌이 붙인 별칭이다. 노사모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백만 원군’의 역할을 했다.지난해 12월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대책위원회’를 결성,당내 기반이 취약한노 후보 쪽으로 물줄기를 잡아 주었다.노 후보는 광주광역시에서 다른 후보를 제치고 압승을 거두며 승기를 잡았다.이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본선을 치를 때까지 희망돼지 저금통 분양과 온라인 성금 모금 등에 앞장서며 한국 정치의 새 역사를 써 나갔다. 대선 기간 중 일부 신문이 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실으면,반론을 덧붙여 널리 알려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비방의 효과를 거둘 수 없도록 만들었다.선거일을 불과 두서너 시간 앞두고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가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자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노 후보의 위기’를 알리고 투표를 독려했다.노사모의 사이버 선거활동 결과인지는 단정할 수는 없으나 19일 오후가 되자 투표장을 찾는 젊은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월드컵 경기 당시 전국을 붉은 물결로 물들였던 ‘붉은 악마’가 그랬듯이,노사모도 이제 갈림길에 섰다.‘노감모’ 또는 ‘노비모’(노무현을 감시·비판하는 모임)로 거듭나야 한다거나 노사모를 해체해 ‘노짱’을 자유롭게해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노 당선자는 지난 4월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뒤 경기도 여주의 뒤풀이 모임에서 ‘노감모’ 얘기가 나오자 “그렇지 않아도 감시할 사람이 많은데….”라며 말 끝을 흐렸었다. 노사모 집행부는 1월 중에 7만 회원의 총의를 물어 진로를 정할 것이라고한다.그러나 그 진로가 ‘연청’이나 ‘민주산악회’같은 사적인 권력 조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한국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노사모에 걸맞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
  • [열린세상]빚없는 소수 정권

    한 마디로 세상이 뒤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역사적 사건이다.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믿을 수 없었던(unbelievable) 단일화의 성공,그것을 뒤집는 단일화의 파괴,또 다시 이를 뒤집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선거직전 정몽준씨의 기습적인 배반은 단일 후보의 근거를 뒤흔들었다.그가 단일화 경선에서 보여준 깨끗한 패배 인정 모습은 새로운 정치의 개시를 상징하는 듯했다.정몽준씨가 이를 부정해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세계 정치사상에 남는 가장 저질적인 배신이었다.이회창 후보는 이를역사적인 결단이라고 평가했다.노무현 후보가 패배했다면 이는 바로 새로운정치의 좌절을 뜻하였다.국민들은 노무현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정치개혁이뒷걸음칠 뻔한 흐름을 뒤돌려 놓았다. 정몽준씨는 지난 6월 붉은 악마의 거대한 함성을 철저히 농락했다.자신이대표한 한국 사회의 흐름,자신을 대통령 후보로까지 만들어 낸 힘에 정면으로 등을 돌렸다.붉은 악마가 내걸었던 ‘Again 1966’은 북에 보내는 남북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의메시지였다.정몽준씨는 지지 철회 이유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말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노무현 후보의 발언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이는 선박 나포사건이나 북한 핵 위기를 의식한 냉전적 선택이다.여중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표출된 전 국민의 분노까지 망각한 것이었다.국민들은 탈냉전을 향한 시대적 요구가 왜곡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극복하였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는 정치개혁과 이를 토대로 한 한반도 평화의 실현에 대한 전 국민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다.이미 선거 과정 자체가 낡은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대결이었다.돈 선거 대 자발적 운동원이 중심이 되는 선거,거대 언론 대 인터넷 매체,대중동원 대 TV토론,광고 등 미디어 선거 등이 그것이다.선거에서 위력을 보인 새로운 정치문화는 이제 기존 정당을 무너뜨리고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이미 선거 막바지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치개혁을 선언하고 민주당을 재창당할 뜻을 밝혔다.그에게는 당선되자마자 도전해야 할 과제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다.아직뿌리깊게 남아 있는 지역 감정도 결코 쉽지 않은 숙제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새로운 위기로 치달을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조성되었다.당선자는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할 뿐 아니라 근본적 해결책을 가지고 북·미 관계에 임해야 한다.또 전 국민이 제기한 SOFA 문제는 탈냉전시대에 적합한 한·미 관계 수립을 상징하고 있다.두 가지 모두 당선자가 당장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하지만 국민들은 외부로부터 닥치는 안보 위기에 동요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선거에서 보여준 평화에 대한 의지,국가의 자존심에 대한 요구는당선자에게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자는 박빙의 차이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었다.국회 의석은 물론 지방자치체,지방의회 등에서도 김대중 정부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에 있다.한국 정치사상 가장 약체인 소수정권으로 출발해야 한다.국민 경선부터선거 마지막 날까지 그의 승리는 기적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당선자는 국민의 지지 외에는 기댈 곳이 없었고 당내 계파나 외부의 정치 자금 지원 등에 빚을 지고 있지 않다.이는 앞으로 개혁 과정에서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귀중한 자산이다.이에 못지 않게 정몽준씨의 이탈은 당선자에게 큰짐을 덜어주었다.노무현 당선자는 자민련과 연립한 김대중 정권보다 소수정권이지만 그와 달리 단독정권이다.당선자는 과거 어떠한 정부보다도 어려운 통치과제를 안고 있지만 어떠한 정부도 갖지못한 강력한 자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 정치학
  • MBC ‘시사매거진 2580’ 지지율 변화로 본 유권자 민심

    MBC ‘시사매거진 2580’(오후 9시45분)에서는 지난 한 달간 미공개로 진행된 16대 대선 예측조사를 통해 유권자들의 민심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되짚는다. 세 차례의 TV합동토론과 유세가 이어지고,북핵 문제와 행정수도 이전 공약공방 등 이슈가 터져나오면서 대선후보 공식 등록 후 미공개로 실시된 대선예측조사는 요동쳤다.선거 직전까지 부동층이 20%로 나타나는 등 혼전을 거듭했다. TV토론,흑색선전,공약공방 등이 두 후보의 지지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지난 한 달 동안의 여론조사를 통해 분석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사라진 지역주의도 조명한다.30여년 만에 펼쳐진 양강 구도에서 영호남과 충청권 등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이번 선거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옛 3김의‘맹목적’추종자인 고향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와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소개한다. 한편 ‘올해의 인물’에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된 ‘미선이와 효순이’,21세기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일깨운 ‘붉은악마’를 되짚는다.이와함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과,금연열풍을 몰고온 뒤 아쉽게 떠난 코미디 황제 ‘이주일’,대통령의 두 아들을 영어의 몸으로 만든 ‘최규선’과 병역비리 고발자 ‘김대업’ 등도 조명한다. 주현진기자 jhj@
  • 이런 책 어때요

    ●악마의 무늬,스트라이프(미셸 파스트로 지음)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핀 줄무늬의 문화사.줄무늬는 유럽 중세사회에서는 이단자·배신자·창녀·어릿광대·난쟁이 등의 옷에만 사용된,경멸과 수치를상징하는 무늬였다.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는 세로줄무늬가 등장하면서 낭만의 무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혁명기에는 개혁과 자유를 상징하는 무늬로 사용됐다.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에는 위생,위험에 대한 경고,자유,고급스러움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중세 문장학의 대가인 저자는 중세의악마적 이미지에서 오늘날 역동성과 젊음을 상징하기까지,줄무늬의 의미변화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살핀다.9800원. ●아메리카(이그나시오 라모네 등 지음) 동서냉전이 끝나고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미국은 하나의 ‘제국’이 됐다.로마제국·신성로마제국 이후 시민혁명을 통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제국’이 역사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탄생한 것이다.이제 ‘미국’이라는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의 화두다.각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미국을 어떻게 인식할까.이 책에는 이그나시오 라모네(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장),조지프 나이(하버드대 교수),르네 지라르(스탠퍼드대 교수)등 각국 지성이 쓴 70여편의 미국 관련 글들이실렸다.1만 5000원. ●청계천은 살아 있다(이경재 지음) 서울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청계천의 주변 역사를 일화를 곁들여 엮었다.청계천은 조선시대에는 본래 이름인 ‘개천(開川)’으로 불렸다가,일제시대초 서울의 지명을 개칭하면서 ‘청계천’으로 바뀌었다.광교를 비롯한 청계천에 걸려 있던 수많은 다리에는 많은 전설과 일화가 전해내려온다.광교 밑에는 훤히 트인 마른 땅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시골 사람들이 곧잘 노숙을 했다.또 청계천 장목교 근처에는 대치 유홍기를 비롯해 정치적으로 눈을 뜬 중인들의 마을이 있었다.이곳은 김옥균과 박영효 등이 드나들어 갑신정변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9000원. ●평민열전(허경진 엮음) 조선시대,평민들은 처음엔 관청의 실무를 맡기 위해 간단한 글자를 배웠다.그러나 여유가 생기고 실력이 쌓인 평민들은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길 원했다.마침내 평민들은 양반의 전유물인 한시까지 짓게 됐다.나아가 평민시인들은 자기의 삶을 전(傳)의 형식으로 기록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평민전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이 책은 19세기 평민전기를 집중 소개한다.평민 출신 화가 조희룡이 지은 평민전기집 ‘호산외기’,아전 출신 유재건이 엮은 ‘이향견문록’,그들의 친구인 시인 이경민이 엮은 ‘희조질사’등을 기본자료로 삼았다.1만 5000원. ●핫 그룹(진 립먼-블루먼.해롤드 J레빗 지음) 마이크로소프트사,인상파 화가들,로마 가톨릭교회의 공통점? 조직을 지탱하는 기본 단위가 ‘핫 그룹(hot group)’이란 점이다.핫 그룹이란 열정적으로 일하는 소규모 자생조직,야생오리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조직을 말한다.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16세기,헨리 8세는 수도원장이라는 수장 한명을 제거해 수도원을 붕괴시켰다.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직 건재하다.그아래 수많은 핫 그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공식에 맞는 그림만을 인정하는아카데미 살롱전에 대항,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하려고 뭉친 인상파 화가들도핫 그룹이다.1만 2000원.
  • TV 리뷰/불우이웃돕기 집단동원 논란

    약속된 시간은 오후 9시.수원 매탄주공 5단지 아파트의 모든 불이 일시에꺼졌다 켜지면 몸이 불편한 장애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MC 박수홍은 9시가 다가오자 초조하게 아파트를 바라보는데….지난 15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 오후 6시10분)중 ‘박수홍의 꿈은 이루어진다’ 코너의한 장면이다. 요즘 불우이웃 돕기나 장학금 제공 등 ‘감동’을 매개로 한 오락 프로그램은 매우 흔하다.그중에서 ‘박수홍…’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대규모의 시청자 참여를 전제로 한 이벤트성 프로그램이라는 특이성 때문이다.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아파트 한 동의 모든 조명을 특정 시각에 껐다 켜야 하기 때문에,그 아파트에 입주한 모든 가구들의 집단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때문에 주민들은 외식 나간 가족을 찾아 인근 식당을 뒤지고,집을 계속 비우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해당시간에 집에 있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한다.부녀회장이 일일이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불끄러 오라.’고 독촉하는 것도 흔한 풍경 중 하나.최근 이러한 주민 동원 방식을 두고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적지않다. 시청자 김상욱씨는 “제작진이 임의로 정한 시간에 내 스케줄을 맞춰야 하느냐.”면서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다.반면 시청자 박성민씨는 “삭막한 세상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마음을 모으는 정이 느껴져 좋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영근 책임PD는 “특정 주민이 ‘왕따’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서도“시청자들에게 함께일 때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이웃 사이의돈독한 정을 느끼도록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주민들이 단결해 꿈을 이룬다.’는 본래의 취지는 좋아보인다.서로 서먹서먹했던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으로 임무를 완수해낸 뒤 환호하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하다.그러나 그 단결과 대규모의 참여가 점차 ‘위로부터의 동원’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일부 시청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도,과거 빈번했던 ‘위로부터의 동원’에서 비롯된 국가주의·집단주의 콤플렉스 때문으로 보인다. 한·일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 응원이나,최근의 대미 촛불시위 등 우리 사회는 이제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동원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해졌다.‘박수홍…’가 ‘신(新)매스게임’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동원될 주민들에게 사전에 자발적인 참여의사를 확인하고 동의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물론 불우이웃 돕기라는 좋은 목적을 위해서 개인의 사생활은 잠시 포기할 수도있을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해당 주민의 자발적인 포기여야 하지 않을까.참여를 희망하는 주민들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집단 임무를 제시하면 어떨지. 채수범기자 lokavid@
  • ‘여중생 사망’추모집회 전국에서“너희 죽음은 외롭지 않았다”

    분노의 촛불은 월드컵 때 붉은악마의 물결처럼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세대와 지역·이념의 장벽도 꺼지지 않는 촛불 앞에 녹아내렸다.시청앞 광장에서 태평로를 지나 광화문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6만여개의 촛불은 커다란 ‘희망의 은하수’를 이루었다. 신효순·심미선양을 추모하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촉구하는범국민 평화 촛불대행진이 지난 14일 열렸다.주말 대규모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는 제야행사가 예정된 오는 31일 서울 광화문 등 전국 100여곳에서 또다시 촛불집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임오년은 촛불과 함께 저물게 된다. 14일 촛불집회에는 서울 시청앞과 부산 태화백화점앞,광주 도청앞 광장 등전국 60여곳에서 10만여명의 시민·학생이 참여했다.뉴욕과 베를린,파리,모스크바 등 12개국 16개 도시에서도 현지 유학생과 교포의 촛불집회가 잇따랐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시청앞 광장에 모인 각계각층의 시민 6만여명은 태평로를 거쳐 광화문 교보빌딩 앞까지 행진,“SOFA 개정”,“평화시위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다 밤 10시쯤 자진해산했다.밤 9시쯤 세종문화회관쪽 경찰저지선이 뚫리면서 500여명이 미 대사관 앞길까지 나갔으나 심한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이날 버스 100여대를 동원,이순신 동상 앞과 세종로 양편 1차선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미 대사관 방향으로 진출하려는 시민을 막았다.곳곳에서 작은 몸싸움이 벌어져 일부 학생·시민에 의해 경찰이 대열에서 끌려나왔지만 대다수 시민은 “비폭력”을 외쳤고,“수고한다.”며 생수를 건넸다. 이날 참가자는 머리에 태극 두건을 두른 청소년,촛불을 마주 든 20대 연인,자녀와 함께 나온 30대 부부,등산복 차림의 60대 노인 등 세대를 초월해 지난 여름 월드컵 거리응원 때를 연상케 했다.아시아평화연대(APA) 회원 자격으로 집회장을 찾은 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는 “민족 자존의 뜨거운 염원을 확인했다.”면서 “지금의 열기를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평화운동으로 승화시키자.”고 호소했다. 한편 집회를 주최한 여중생 범대위측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화사과와관련,“근본 원인을 언급하지 않고 ‘유감표명’ 수준에 그친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식 사과와 SOFA 개정을 거듭 촉구했다. 유영규 이세영 황장석기자 sylee@
  • [임영숙칼럼]사이버 파워와 赤旗條例

    제16대 대통령 후보들의 TV합동토론회가 두 차례 열렸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지난 3일의 1차 토론회나 10일 2차 토론회나 시청률이 30% 수준에 불과하다.2차 토론회의 시청률은 1차 때보다 더 떨어졌다. 지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TV합동토론회가 세 차례 모두 5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높은 관심을 끌었다.당시 TV토론은 후보자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한 여론조사 결과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TV토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79.8%에 이르렀다. 물론 TV토론이 처음 도입된 지난 대선에 비해 이번에는 공중파나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된 후보자 초청 토론회가 두 배 이상 많아져서(지난 4일까지 총 82회) 합동 TV토론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을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선에서 TV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TV보다는 오히려 인터넷이 이번 선거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 듯싶다.지난 1992년에는 신문이,1997년에는 TV가 대선 판도를 움직이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면 2002년에는 인터넷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영향력은 오프라인 매체인 한 신문이 최근 온라인상의 인터넷 매체를 강도 높게 비판한 데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이 신문은 ‘인터넷 권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인터넷 매체와 네티즌들의 부정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컴퓨터와 컴퓨터로 연결된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인네티즌의 폭발력에 각 후보 진영 모두 주목하고 있다.이들이 가상 공간 한구석의 조그만 불씨를 들불로 번지게 하고 마침내 오프라인까지 태워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월드컵 때 전 국민의 4분의1을 거리응원으로 내몬‘붉은악마’ 현상도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지금 영하의 겨울 밤거리를 밝히며 한·미 동맹관계의 재정립이라는 국가적 의제까지 설정하게 만든 ‘반미촛불 시위’ 역시 이들에 의해 점화됐다. 선거전에서 인터넷은 ‘익명성 뒤에 숨은 언어폭력과 사이버 테러’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내지만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보이고 있다.정당 연설회·거리유세 등 종전의 선거운동 방식보다 인터넷이 더욱 효과적인 선거공간으로 작용함으로써 선거풍토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또 매스미디어의 경우이를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계층이 매우 한정돼 있는 반면 인터넷은 누구나 여론을 형성하고 동참할 수 있어 주류 매체에서 소외된 개인들,즉 사회비주류의 정치 참여를 쉽게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특히 주류계층과 기존 매체의 의식과 법과 제도는 아직 그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자동차가 처음 실용화된 19세기 영국의 ‘적기조례’ 같은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적기조례’는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도심에서는 시속 3.2㎞,그 이외는 6.4㎞ 이하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적기)을 든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걷거나 말을 타고 가게 하여 통행인에게 자동차가 간다고 경고를 하게 했다.자동차의속도와 운송 능력을 마차시대의 의식 수준에 얽어 맨 이 법으로 인해 당시최고 시속 40㎞였던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인터넷 사용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터넷 선진국 가운데 하나다.따라서 앞선 기술과 인프라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갖추고 사회 구성원 사이 의식의 괴리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그 한 걸음으로 인터넷 매체를 언론기관으로 볼 것인가의 여부부터 검토해 선거법과 정기간행물 법 등을 손질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연구소장 ysi@
  • 새영화/’H’-연쇄살인범 쫓는 베테랑 여형사

    이종혁 감독의 데뷔작 ‘H’(제작 봄영화사·19일 개봉)는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형사스릴러물이다.한밤의 쓰레기매립장에서는 임신한 여고생,달리는버스 안에선 만삭의 여자가 처참히 살해된 채 발견된다.강력반의 베테랑 여형사 미연(염정아)과 신출내기 강형사(지진희)가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극의 단서를 캐나간다. 안방극장을 벗어나 스크린에서는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염정아의 얼음장처럼 냉정한 연기,TV드라마 ‘줄리엣의 남자’ 등에서 참신한 외모로 급부상한 지진희의 다혈질 캐릭터가 먼저 눈에 띈다.시체의 일부가 뚝뚝 잘린 섬뜩한 장면들로 스릴러의 색깔을 여지없이 드러낸 영화는,이내 살인범을 추적하는 지능게임에 들어간다.사건이 사형수인 신현(조승우)의 1년전 범행 수법과 똑같아 두 형사는 그에게 혐의를 두지만,취조 때마다 그의 선문답 같은 이야기에 혼돈만 더할 뿐이다. 감옥 안에 앉아 살인을 전염시키는 듯한 신현의 악마적 이미지는 한국영화에서는 낯선 캐릭터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규모 있는 스릴러물이 되기엔 함량미달이다.시나리오가 관객의 지능보다 한참 뒤떨어진다는 건 무엇보다 큰 결점.성 쾌락주의나 생명경시 등에 일침을 놓으려는 주제어는 또렷한데,주제를 더듬어가는 과정은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낸다.형사였던 미연의 약혼자가 신현의 사건을 처리하던 중 자살한 이유,덮어놓고 신현을 감싸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 등은 비약이 지나치다. 황수정기자
  • 젊은이 광장/거리응원과 촛불시위

    요즘 매일 저녁 6시 서울 광화문에 촛불이 켜진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잠복한 투사 같기도 하고 소풍 나온 어린아이 같기도하다.물론 시위를 하는 것인데 그 모습이 좀 특이하다. 대개 ‘집회’나 ‘시위’라고 하면 특정 단체가 참석자들을 조직해서 대오를 정비하고,인원 수를 점검한다.회비를 걷기도 한다. 하지만 촛불이 켜진 현장에는 딱히 책임자도,회비도 없다.단지 촛불과 종이컵 하나씩만 갖고 가면 된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가면 되고,계속 있는다고 해서 말리는 사람도 없다.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기에 어떤 집회나 조직보다 감동적이다.무언(無言)의 힘도 느껴진다. 첫 모임은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그의 호소는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첫날인 지난달 30일 광화문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인터넷을 타고 의견이 흐르고,조직이 형성된 것은 지난 6월 월드컵 이후 오랜만에 경험하는 ‘감동’이다.광화문을 달궜던 붉은악마의 ‘후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처음 촛불 시위를 제안한 사람이 “월드컵 때처럼 광화문 거리를 뒤덮어 보자.”고 말했듯 네티즌들이 광화문에서 손을 맞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에도 월드컵 때처럼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당시 광화문에서 태극 전사의 승리를 목청껏 외치던 ‘W세대’를 지켜보며일부 전문가는 “놀이문화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사실 월드컵과 두 여중생 사망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에는 분노하지 않고 한국팀의 16강 진출만 기원하던 붉은악마에 실망을 느낀 적도 있다. 하지만 사고 장갑차에 타고 있던 두 미군의 무죄 평결을 전환점으로 네티즌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급기야 네티즌이 아닌 일반 시민까지 촛불 의식에 동참하게 됐다. 흔히 네티즌은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게임이나 즐긴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어느 순간 네티즌의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행동력을 갖게 된다.어제도,오늘도 미국의 오만함에 항의하는 불특정 다수의 행렬이 광화문을 뒤덮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엄연한 우리나라 땅이지만,항상 미 대사관의 눈치를 봐야 한다.시민·사회단체가 집회나 행진을신청해도 경찰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항상 종로 1가쯤에서 시위대가멈추곤 한다. 하지만 촛불을 든 시민들은 관례를 아는지 모르는지,집회 신청도 하지 않고 허가도 받지 않는다.그들은 집시법에 아랑곳하지 않고,광화문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한다. 단지 촛불을 켜고 광화문에 모이는 것뿐인데도 그들의 힘은 정말 엄청나다.한·미 정부에서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그들이 가진 ‘파괴력’ 때문이다. 미국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작아지던 지난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시민의 행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거침없어 보인다. 월드컵 거리응원단이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듯이 촛불의 행렬도 불어날 것이다.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저력과 하나됨을 전세계에 보여주자. 김주희 건국대신문사 편집장
  • “넷票를 잡아라”온라인 정치참여 ‘뜨거운 인터넷’

    “온라인 선거참여 열기가 오프라인의 공백을 메운다.” 최근 각 당의 인터넷 홈페이지 하루 평균 접속건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 건에 이르자 각 후보 진영에선 선거일을 10여일 앞두고 홈페이지를 다시 정비하고,참신한 콘텐츠를 신설하느라 부산하다. 지난 5일 밤 모 방송국에서 주요 대선후보 지지자들이 심야토론을 벌인 직후 각 후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사이버 논객들의 정치토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주요 대선 후보 인터넷 사이트에는 2∼3시간 사이에 수백건에서 수천건까지 관련 글이 올랐다.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는 서울 여의도 S증권회사 직원 김모(33)씨는 “업무를 마친 뒤 저녁 1시간 정도는 각 후보의 사이트 방문이 하루 일과”라고 소개했다.후보가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동영상으로 살펴보며 게시판에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충고하는 것이 요즘 사는 재미라고 말했다. KT측은 6일 “한 방송인의 인터넷 찬조방송을 개설 한달반만에 43만 1000여명이 보았다.”고 밝혔다. 사이버선거 전문가들은 1997년 제15대 대선과 다른 점이 우선인터넷 정치사이트 이용자가 20대에서 30∼40대 초반까지 확대된 점이라고 지적했다.요즘 ‘정치적 네티즌’은 30대의 도시생활 봉급자라는 것이다.후보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콘텐츠보다 게시판이 훨씬 인기가 높아 여론 형성을 주도한다.‘노사모’ ‘붉은악마’ 등의 예에서 보듯,‘네티즌은 투표를 하지 않고오프라인 활동을 외면한다.’는 통념도 깨질 분위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이회창(李會昌) 후보 홈페이지의 하루 최고 방문객 275여만명을 붙잡아두기 위해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홈페이지 개·보수 작업에 착수했다.네티즌의 입맛에 맞는 ‘플래시 애니메이션(동영상 코믹만화)’ 코너를 신설하고 ‘후보 24시’도 정비할 계획이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도 인터넷을 통한 모금액이 13만명 48억원에이르자 “인터넷 선거혁명이 들어맞았다.”면서 한껏 고무됐다.신해철,이정연 등 유명가수의 생방송 라디오와 게시판 우수글 모음인 ‘베스트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온라인 선거열기만큼 사이버 비방전도 심각한 문제다.중앙선관위가검찰에 고발 또는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한 글이 하루 평균 200여건.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7200여건을 처리했다.정부는 이날 김석수(金碩洙) 총리주재로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후보비방,지역감정 조장,편파 문건 게재 등 사이버 선거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열린세상]꿈의 정치를 위하여

    정치의 계절이므로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이상만을좇거나 현실만을 고려하는 정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그래도 역시 정치의 묘미는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노력과 기술에 있을 것이다.이상만을 좇는 정치는 독단과 아집,배타적 폭력을 낳는다.현실만을 바라보는 정치는권력지향적 음모와 술수,패거리 문화에 휩싸인다.이상과 현실의 균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어떤 절묘한 신산(神算) 없이 위대한 정치는성립한 적이 없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은 그만큼 그 둘이 서로배반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모든 위대한 것은 언제나 어떤 역설의 실현이다.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마치 자연스럽고 처음부터가능했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시적인 감동에 빠진다.여기서 지난 6월의 한·일 월드컵 축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그때 기대조차 하기힘들었던 일들이 기적처럼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그때 붉은악마는 우리의 벅찬 감동을 실어내기에 부족함 없는 슬로건을펼쳐들었다.‘꿈★은 이루어진다.’고. 이 구호가 요즘에 들어서는 많이 퇴색되었다는 느낌이다.이유야 많겠지만,그 ‘꿈★’을 독점하거나 사취하려는 욕심도 한몫 했음이 틀림없다.일류 브랜드를 꿈꾸는 대기업의 광고언어로,대권을 꿈꾸는 대선 후보의 정치 슬로건으로 차용되면서 원래의 꿈은 조금씩 기억의 뒤편으로 명멸해갔다.시적이고초월적인 차원을 상실한 꿈,세속적 조건 안에 갇혀 있는 꿈,별을 잃어버린꿈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현실의 중력과 울타리를 무시한 꿈은 공허할 수 있다.그런 꿈은 종종현실을 등지기 위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현실과 정면으로 맞설 능력과 용기가 없어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 도망가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과거에 독일 철학자 헤겔은 낭만주의자들을 그런 식으로 비난했다.잘못된 현실을 손가락질하면서 고고한 이상에 머무는 ‘아름다운 영혼’이지만,정작 그런현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이 아니라 현실이 도피처일 수 있다.가령 학창시절에는 어떤 이상을 위해 살고자하던 이가 사회에 나가서는 자신이 멸시하던 부류의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서 세속적 이익을 좇는 경우를 본다.특히 남다른 재능과 열정 때문에 장래가 기대되던 여학생이 평범한 주부로서 살아가는 데만족하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현실은 꿈보다 안락할 수 있다.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이 겪을 필요가 없는 고난을 감수해야 하고,그래서 꿈속에 오래 머물러 있기 어렵다.그런고난을 면제받을 뿐 아니라 여러가지 보상을 약속하는 현실로 피신하게 되는 것이다.현실에 순응한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이상을 좇을 때의어려움에 비하면 그래도 그게 편한 일이다.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 하늘에 그리던 이상을 내팽개치고 현실의 요구에 순응하고 산다. 이런 사례는 아마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공천과당선 가능성을 위해 초발심(初發心)을 잃어버리는 일이 너무 자주 눈에 띈다. 선거 때마다 당을 옮기는 철새 정치인들은 꿈에서 도망쳐 나와현실로 피신하는 대표적 행렬이다. 요즘 대선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든다.오늘날 한국정치의 최대 과제가 지역정서에 기초한 3김 정치의 청산에 있다는 것은 이제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이런 공유된 자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꿈★,별 달린 꿈을 두려워하는 눈치다.오히려 그런 꿈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배반하는 목소리,지역정서와 세대 갈등에 호소하는 목소리가 다시 살아나려는 조짐이다. 성서에 수록된 바울의 편지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이 나온다.꿈은 믿음을 먹고 자라고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정치인들이 이 시대의 꿈을 믿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면,적어도 유권자들이라도 그 꿈에 대한 확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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