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악마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6·3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SG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438
  • [공연리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리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초반에는 조금 불안했다. 합창에서 음향 울림 현상이 났고, 지킬 박사의 모습은 다소 유약해 보였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뮤지컬 음악 중 하나인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 들려올 때야 비로소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 지킬이 선악을 구분하는 실험 약물을 자신의 팔에 주입한 후 비열하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면서부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강한 신념을 가진 선량한 남자가 연쇄살인범으로 돌변하고, 거친 중저음과 풍부한 성량으로 절규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그 잔악하고 처절한 모습이 오히려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지킬 앤 하이드’만이 가진 매력이다. 지난해 전국 투어를 한 ‘지킬 앤 하이드’가 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최고의 극장에서 만나는 위대한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오페라극장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첫 공연이었던 탓인지 조명이나 음향 면에서 극장의 장점이 부각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관객을 일으켜 세운 건 역시 ‘지킬 앤 하이드’가 가진 막강한 힘이다. 그 중심에는 남성 뮤지컬 배우라면 꿈에 그리는 배역 지킬(하이드)이 있다.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힘든 역할이지만 해내고 난 뒤에는 더없는 찬사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윤영석과 양준모가 지킬(하이드)로 나섰다. 두 배우 모두 첫 도전이지만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 역할로 유명한 배우들이라 연기와 노래에 관한 한 빠지지 않는다. 첫날 공연을 장식한 양준모는 지킬로서는 연약했지만, 자신에게서 하이드를 끌어낸 뒤에는 낮고 거친 목소리와 몰아쉬는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하면서 소름 돋게 만들었다. 특히 선(지킬)과 악(하이드)이 충돌하는 2막 ‘대결’에서는 두 캐릭터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숨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주위의 비난과 고난을 극복하고 세상과 맞서는 신념, 내면에 숨은 악마성에게 ‘자유’를 내주고 만 불행, 인간의 이중성으로 인한 고통, 돈 많은 위선자들의 허세와 가식, 엠마와 루시가 지킬(하이드)과 이루는 로맨스까지 인생사가 뒤섞인 이야기는 괴기스러우면서 아름답고, 매력적이면서 슬프다. 엠마(이지혜)가 미성으로 장식한 ‘한때는 꿈에’(Once upon a Dream), 루시(선민)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강렬하게 불러내는 ‘당신이라면’(Someone Like You)과 ‘새 인생’(A New Life) 등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으로 작품은 완벽해진다. 2월 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만~13만원. 1588-5212.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2036년 충돌?…소행성 ‘아포피스’ 예측보다 훨씬 커

    지구를 스쳐 지나간 소행성 ‘아포피스’의 크기가 애초 예측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우주국(ESA)은 9일(현지시간) “금세기 중 지구에 충돌할 수도 있는 소행성 아포피스의 크기가 지금까지 예측했던 것보다 20% 정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유럽우주국은 지난 주말부터 허셜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지구로 근접 중인 아포피스를 관측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기존 예측한 아포피스의 평균 지름은 270m(오차 ±60m)였다. 국내에서는 이 크기를 ‘63빌딩’과 비교하기도 했다. 만약 이만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게 된다면 그 폭발력은 506메가톤 폭탄과 맞먹는다고 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폭탄은 러시아의 ‘차르 봄바’ 수소폭탄으로 그 파괴력은 57메가톤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유럽우주국이 허셜망원경을 이용한 2시간 관측 결과, 평균 지름은 325m(오차 ±15m)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추계보다 20% 정도 큰 결과이며, 아포피스의 질량 역시 기존치보다 75% 정도 크게 나타났다고 자료 분석을 이끈 독일 막스플랑크 외계물리학연구소의 토마스 뮐러 박사는 밝혔다. 애초 과학자들은 아포피스가 오는 2029년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나 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한 소행성 중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관측으로 2029년에 충돌할 확률은 기존 예측보다 줄어들었으나, 아포피스는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인공위성들보다 더 가까운 약 3만1600만km 이내로 접근할 전망이라고 유럽우주국은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JPL)에 따르면 아포피스가 지구에 더욱 접근할 것으로 예측되는 2036년 4월에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25만분의 1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아포피스가 1450만km 정도까지 접근한 최신 관측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오는 2029년과 2036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지구로 접근할 아포피스의 충돌 확률에 관한 계산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아포피스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라(La)와 적대적인 악마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지옥의 큰 뱀 아펩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따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2013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들/유인혁

    1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의 영조(靈鳥) 피닉스는 수명이 다하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태양의 신전으로 날아가 스스로 불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피닉스는, 이윽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영조는 불사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르헤스는 불 속에서 파괴되며 재생하는 이 영원한 순환을 묘사한 적이 있다. ‘원형의 폐허들’의 주인공은 ‘불의 신전’에서 한 소년을 만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소년의 폐동맥과 심장, 뼈대, 눈꺼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 등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생생하게 떠올렸다. 정교한 상상 속에서, 소년은 마침내 실체가 되어 현신했다. 그런데 이 창조자는 소년이 언젠가 자신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 걱정했다. 불의 신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결국 불이 될 것이다. 환영은 불에 탈 리가 없으므로, 언젠가 소년은 불에 닿았을 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으로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노심초사하다가 불타는 신전으로 뛰어들었다. 이 기나긴 고민을 끝내줄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불타는 폐허 안에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지 않음을, 그러니까 자신도 누군가의 환영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년 또한 먼 훗날 환영을 만들 것이다. 이 과정은 영원히 반복 되리라…. 피닉스와 보르헤스의 환영은 모두 반복을 통해 영원을 성취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영구히 되돌아오는 원환이다. 그러니까 끝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반복이다. 끝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끝과 무한(無限). 최근 소설쓰기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일련의 메타픽션 속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참으로 이렇다. 한유주는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 나는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베끼고 또 베낀다”(한유주, ‘농담’,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30쪽)고 말한다. 이때 새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된다. 대홍수가 인간의 문명을 송두리째 박살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창작의 가능성은 이 세상과 함께 종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유주는 끈질기게 자신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한유주는 자기 글쓰기의 한 조건으로 ‘이야기의 끝’을 상정하고 있다. 이미 “이야기는 오래전에 모두 매진되” (한유주, ‘죽음의 푸가’,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48쪽)어서 그 어떤 처녀작도 새로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제훈은 끝없는 이야기의 모델을 보여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제공한다.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흡혈귀 전설을, ‘셜록 홈스의 숨겨진 사건’에서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솜씨 있게 패러디했던 그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에도가와 란포, 오스카 와일드, 스티븐 킹, 로베르트 비네 등을 종횡무진 누빈다. 기성의 작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최제훈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한유주에게 제약이었던 것이 그에게는 기회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최제훈은 바로 이러한 조건 아래서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82쪽)를 상상했다. 2 플롯 없는 소설들 왜 차라리 ‘소설의 끝’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인가.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에서 진실로 끝나버린 것은 바로 플롯이다. 바꿔 말해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서사가 부재하고 있다. 한유주의 소설에서 내용이 짐작 가능한 이야기는 드물게 출현한다. 한유주의 소설은 대부분 그녀의 의식을 (불)투명하게 묘사하는 데 진력할 뿐이다.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그 진위는 참으로 모호하다. ‘흑백사진사’에서 ‘아이’는 유괴당한 지 일주일 만에 목이 졸려 살해됐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소설의 화자는 납치된 지 나흘 째 되는 날 풀려났고 중학생이 되어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이 의도적인 교란은 화자의 모든 진술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 이야기는 진술들의 나열일 뿐이지 통일되고 연속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다. 심지어 한유주의 소설에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사건(event)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유주는 어떤 행위를 묘사하거나 진술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누군가 담배를 피웠는데 “연기는 나지” 않고 “재는 떨어지지”(한유주, ‘재의 수요일’,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208쪽) 않는다는 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 허구(虛構)라는 점을 계속해서 인식시킨다. 이것은 부정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허구0’에서 한유주 본인으로 짐작되는 화자는 현재진행형 시제의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 행동, 계획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허구0’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진술들이, 그러니까 가장 투명하게 작가의 머릿속을 베껴낸 이 문장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암시한다. ‘불가능한 동화’ 역시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부정문, 혹은 명명(命名)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들이 이제 소설의 형식 자체를 통해 실천된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앞에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소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이 소녀는 반 급우들의 일기에 “나도 죽여보고 싶다”, “바늘 끝은 뾰족하다”, “불은 뜨겁다” 따위의 문장들을 몰래 적어 넣었다. 선생님은 이 테러의 진의를 알 수 없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내지만, 이것이 왜 나쁜 행동인지는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이 교실에는 “없어진 것도, 사라진 것도 없”으므로. 그저 “의미도 불분명하고 출처도 없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므로(한유주,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 사회” 2011년 겨울호, 165쪽) 이것은 타인의 문장에 가해진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인 것이다. ‘불가능한 동화’는 이렇듯 모호한 폭력을 가한 소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발아시킨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소녀의 정체는 미스터리이다. 그녀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한편 소녀는 미아라는 급우가 자신의 범행을 알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소녀는 미아를 살해하고 도망친다. 이제 우리는 미스터리의 해결(소녀는 누구인가)과 서스펜스의 지속(소녀는 잡힐 것인가)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유주는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업 도중 강의실 뒤편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다. 그 아이는 바로 ‘소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을 끔찍한 모습으로 창조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제 한유주는 앞선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음을 고백하고, 허구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유주 소설의 시그니처와 같은 부정문은 형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말한 다음, 바로 부정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제시한 다음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만다라와 같은 작업이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만들어지는 이 신성한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물에 씻겨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유주가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회의 때문에 생겨났다. 그녀는 언어가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좀처럼 갖지 못한다. 이는 사전에 대한 불신 속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K에게’에서 사전은 “모두 다섯 권이었지만, 첫 번째 사전부터 마지막 사전까지 합친 두께가 손바닥 한 뼘을 넘지 않”는 “무성의한 생일 선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야한 방식으로 선별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펼쳐 놓고,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 아무런 해답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한유주는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은 틀린 것”이라고 진술한다(한유주, ‘K에게’,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72~73쪽). 사전이 결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는 현실을 투명하게 재현할 수 없다.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문학은 세계를 열등하게 모사한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문학에서 삶과 현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유주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을 것이”(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 지성사, 2009, 19쪽)라고 선언한다. 언어는 그런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유주의 해답은 바로 메타픽션이다.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언어는 결코 현실을 적절히 재현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언어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에게 ‘이야기의 끝’이란 단순히 모든 이야기가 이미 쓰였다는 인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의심하는 행위가 된다. 이러한 한유주 소설의 특징은 좀처럼 요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오이디푸스왕’을 오이디푸스에게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이오스왕의 죽음, 이오카스테와의 결혼, 모호하면서도 분명한 신탁…. 하지만 한유주의 소설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고롭게 그러한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녀 소설의 특징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할 수 없다는 것은, 최제훈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최제훈이 한유주처럼 사건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최제훈의 소설에서 사건은 너무 많이 일어난다. 다만 그것들은 좀처럼 결말을 향해 회수되지 않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편소설’로 소개되고 있지만, 실은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소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 나오는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의 인물들은 뒤의 세 작품 안에서 조금씩 설정과 역할을 달리하여 변주된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의 연우와 ‘π’의 M은 동일인물로 보인다. 연우와 M은 모두 번역가인데, 자기가 번역을 맡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꾼 일이 있다.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을 슬그머니 죽은 것으로 오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우가 스페인어 번역가인 데 반하여 M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맞는다. 연우가 눈이 오는 산장에 고립되어 수수께끼의 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면, M은 소설을 쓰다가 탈진해 쓰러졌다.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는 탐욕스러운 셰헤라자드에게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58쪽). 한 편의 장편소설에서 인물이 복수(複數)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고 어떠한 인간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은 삶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건이다. 발터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는데,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얘기꾼과 소설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185쪽). 많은 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적과 흑”은 줄리앙 소렐의 죽음으로 끝나며, “레미제라블”은 장 발장의 죽음으로 끝나고, “보바리 부인”은 엠마 보바리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들의 죽음이 삶과 소설의 의미를 확정짓는 것이다. 하지만 최제훈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복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차라리 연극이다. 예컨대 햄릿의 죽음은 연출가의 각색에 따라 매번 달라지지 않는가. 이러한 최제훈 소설의 특징은 그가 중심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에 의해 촉발되었다. 바로 패스티시다. 한유주 소설이 부정문의 특징을 형식적 차원에까지 확장한 결과라면, 최제훈은 패스티시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활용하여 “일곱개의 고양이 눈”을 쓴다. 예를 들어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쥐덫’,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인용하고 있다. ‘여섯번째 꿈’에서 민규, 현숙, 세나, 연우, 영수, 태식 등은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탐구하는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어느 겨울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회장의 초대장을 받고 산장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회원들은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하나씩 하나씩 살해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판사, 사업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명의 사람이 외딴섬에 모인다. 그들은 어느 사업가에게 초대 받았다. 그런데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초대장의 주인은 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의 노랫말에 맞추어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한편 ‘쥐덫’에서도 사람들은 밀실에 갇혀 있다. 이들은 ‘여섯번째 꿈’과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에서 ‘붉은 방 클럽’은 ‘실버 해머’처럼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취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때 ‘여섯번째 꿈’은 애거사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인용하고, 수정하는 가운데 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섯번째 꿈’은,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재현하는 글쓰기이다. 소설의 인물이 두 개의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제훈의 소설에는 이야기만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재현하는 인간의 삶이 없다. 그런 것은 도무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야기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물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적 삶의 내용은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저 한 기능으로 퇴락한다. 그러니까 “돈키호테”에서 이 우스꽝스러운 기사는 다만 “무관한 일화와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통일을 주기 위해”(프레드릭 제임슨, 윤지관 옮김, “언어의 감옥”, 까치, 1977, 61쪽) 고안되었다는 식이 된다.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 재료들의 짜깁기가 되는 것이다. 3 전문가로서의 작가 그래서 패스티시의 소설은 반인간적이다. 소설 속의 인간에게 고유한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스티시는 소설 바깥의 인간에게서도 존엄성을 빼앗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서 창조주의 권위를 앗아간다. ‘π’에서 M은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번역가이다. 즉, 그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쓸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M이 결코 글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M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밤마다 M에게 으스스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M이 쓰고 있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M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헤라자드이자, M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 위해서, M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는 맵시벌의 다큐멘터리에서 우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맵시벌은 거미의 몸에 알을 깐다. 세월이 흘러 다 자란 “유충은 쓸모없어진 거미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숙주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M은 “맵시벌 다큐멘터리를 전에도 본 것 같았다”(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244쪽). 채널을 돌려도 화면에는 계속 맵시벌만 나타났다. 여기서 M은 사실 환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그의 배역은 다름 아닌 거미인데, 이야기가 완성되자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M의 운명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고 지칭했던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바르트가 주장한 바, 근대적 글쓰기는 “수많은 문화의 온상에서 온 인용들의 짜임”(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32쪽)이다. 이때 작가는 작품의 유일하고도 온전한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소설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만 다른 소설을 베끼는 필경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죽음은 단지 M의 운명을 통해 우의적으로 표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문학론은 실제 ‘π’의, 그리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작법(作法)을 통해 실현된다. ‘π’는 그 자체로 “인용들의 짜임”이다. 우선 우리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셰헤라자드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π’의 액자 속 주인공 하루는 어느 터널에 49일이나 갇혀 있었고, 결국 미쳐버렸다. 그는 이제 정신병원에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 간호사, 동료 환자들을 상상 속에서 변형시키며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로베르토 비네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박람회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상자를 보게 된다. 그 상자에는 체사레라는 몽유병 환자가 누워 있다. 체사레는 프란시스의 약혼녀인 제인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칼리가리 박사는 이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상의 이야기는 매우 기이하다. 비현실적이며 악몽을 닮아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프란시스가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정신병원의 원장이며, 체사레는 병원의 직원이다. 제인은 프란시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망상 속에서 이들 인물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대중문화 안에서 여러 번 변주된 바 있다.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의 ‘토탈 리콜’(1990)이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마틴 스코세이지의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 활용되었다. 요컨대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최제훈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인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작가의 역할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독창적인 트릭을 고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트릭에 의존한다. 다만 그 트릭을 끊임없이 변주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붉은 방’을…. 이때 최제훈은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창조자라 할 수는 없다. 그는 저자가 아니다. 자기 작품의 “유일하고 동일한 목소리”(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동문선, 1997, 28쪽)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언어와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자기 작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돈키호테가 서로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건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인 것처럼 그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묶음에 통일을 부여하는 기능이다. 이제 소설의 인물과 작가는 모두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제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창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조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일까? 그는 문화산업의 많은 ‘크리에이터’(creator)들이 하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불가사리’(1962)가 ‘고질라’(1956)를 참조하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를 차용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진귀한 구경거리(spectacle)를 생산하고 있는 것인가? 반쯤은 옳다. 그는 창조하기보다 생산한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만한 것이다. 아마 “안에서부터 파먹”혀 “거죽만 남”아버린 M의 모습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어느 현대 노동자의 비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지 않는가. 하지만 최제훈은 뒤샹이 예술가인 만큼은 예술가이다. 레디메이드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을 조합하는 방식은 자유에 맡겨진다. 아무리 풍부한 재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그것에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뉴욕의 어느 배관공이 ‘샘’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정말이지 없다. 뒤샹 스스로 인정했듯이, “당신의 가능성은 나의 가능성과 같지 않은 것이다”(“Your chance is not the same as my chance.” (Calvin Tomkins, The Bride and the Bachelors: Five Masters of the Avant-Garde, Penguin, 1968, p.33)).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전문가(specialist)로서의 작가이다. 무엇인가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재료를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짜깁기의 예술은 풍성해질 수 있다. 이것은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최제훈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노동자로 볼 수 없다. 자기가 조작하는 이야기의 관습을 썩 훌륭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점을 좀처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한유주는 ‘저자의 죽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조건으로 뼈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이미 “문장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당신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심지어 미리 “읽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을 적을 때도 그것은 베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유주는 “모든 사물들은, 혹은 모든 사물화 된 문장들은,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도서관의 어느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전시된 죽음들”이며, “검은 플라스틱판에, 흰 글씨로 이름을” 새겨 넣은 명패가 달린 박제이다(한유주, ‘자연사 박물관’,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87쪽). 한유주는 이러한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녀가 누구를 참조하고 있는지, 도대체 누구를 ‘베끼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컨대 ‘허구0’이라는 제목은 “픽션들”이라고 하는 보르헤스의 단편집 표제를, 그리고 “얼음의 책”이라고 하는 표제는 ‘모래의 책’이라고 하는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구의 영점(零點)과 허구의 복수형은 분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거기에 만들어지자마자 모두 녹아 사라지는 얼음의 책과, 영원히 모래처럼 변화하며 두 번 다시 같은 페이지를 펼칠 수 없는 모래의 책은 모두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지는 책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추측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는 주의 깊게도 단서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것은 한유주 스스로 어떤 작품을 베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세 편의 작품을 통해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와 달라지려 하는 한유주의 부단한 노력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연극에 대해 논문을 쓰려는 한 사내가 어느 광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광인은 자신이 22년 전에 살해한 여성의 옷과 구두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유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짤막한 이야기의 틈을 헤집고 억지로 자신의 언어를 밀어 넣는다. 한유주는 이 사내와 광인을 각각 트리스탄과 햄릿이라 명명하고, 그들의 조우에 복잡한 운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아마 한유주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의 흔적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란 시간을 물어보는 행위, 다리 위에서의 대화 등 몇몇 지점에서 눈치채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나타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독자라도 이 정도의 단서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흔적을 알아채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 주인공 하령은 대재앙이 닥쳐 대륙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버린 세계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녀는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를 베껴서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베끼려고 하는 소설은 책장에 없거나, 아니면 물에 젖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무엇인가 베끼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189쪽). 하령은 무엇인가 참조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결말과는 다른” 페이지들을 마주하게 된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3쪽). 그래서 하령의 베끼기는 계속해서 원작과 달라진다. 이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작업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관습들을 익혀야 한다. 이미 모든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잠깐의 방심은 ‘베끼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든 멜로디를 검토하는 작곡가나, 신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기존의 특허를 검토하는 기술자의 태도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한유주는 이러한 자신의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한유주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그저 베끼는 와중에 조금씩 변화할 뿐이다. 그것은 진화의 개념이 사라진 돌연변이와 같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에서 호랑이는 아가미를 발달시켰다. 물에 잠긴 세계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진화인가 퇴화인가” 말할 수 없다(한유주,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2, 201쪽). 한유주의 소설 역시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제시된다. 그녀의 ‘베끼기’가 박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문학을 ‘진보’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다만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끝’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의 세계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은 인류와 함께 절멸했다. 이 ‘끝’에서 문학은, 그리고 글쓰기는 과거의 박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창조의 엿새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으므로. 4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 ‘이야기의 끝’이거나 ‘끝없는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움’의 쇠퇴이다. 이제 작가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다만 기왕의 설계도를 다소 변형시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유주와 최제훈의 작품이 새롭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타자의 언어를 베끼고 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에 없이 독특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도 한유주의 문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정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제훈은 기성의 관습들을 짜깁기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마치 괴물처럼 낯설다. 이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창조적이라는 아이러니와 무관하지 않다. 존 케이지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4분33초’를 만들었으며, 앤디 워홀은 대중문화 속의 이미지를 조합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예술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파천황의 것이며 예술의 경계를 도전적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다. 마치 ‘4분33초’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하지만 그 다음은? ‘4분33초’는 결코 녹음되거나 재연(再演)될 수 없다.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앤디 워홀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워홀의 유명한 병뚜껑, 혹은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이것이 어째서 예술인지 질문하고,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 새로움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공허함을 다음과 같이 간파했다.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반 고흐의 신발이 가진 직접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정말이지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말도 걸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프레드릭 제임슨, 강내희 옮김, ‘포스트모더니즘 ―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문화과학사, 1989, 150쪽)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분명 새롭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쓰기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은 “아무것에도 봉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한유주, ‘허구0’,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19쪽)기 때문이다. 이때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모든 책무로부터 자유롭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한 형식이 된다. 즉, 자족적인 동시에 자기폐쇄적인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유주와 최제훈 소설의 공간들이 감옥을 닮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모든 생명들이 박제되어 진열된 공간이며,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에서 사람들은 온통 물에 잠겨버린 건물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불가능한 동화’에서 선생님은 마치 취조실의 형사처럼 아이들을 겁주고 추궁한다. 최제훈을 살펴보면, M은 맵시벌의 둥지에 갇혔고, 하루는 동굴 속에 갇혔으며, 영수는 산장 안에 갇혔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액자 속의 미미는 스토커에게 납치당해 갇혔고, 액자 바깥의 ‘나’는 망막박리에 걸려 눈이 먼 채 병실에 갇혔다. 모두가 갇혀 있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은 메타픽션이며, 이들은 모두 알레고리 속의 인물이다. 이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사실 상징적인 방식으로 글쓰기 자체를 가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언어의 감옥이다. 한유주와 최제훈의 글쓰기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타인의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마치 모든 발화가 랑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역시 글쓰기의 관습이나 전통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흉내 내며 말을 배운다. 소설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은, 소설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형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때 언어는 자기를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동어반복과 다름없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며, 작가란 발언을 하는 사람(parleur)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위해, 혹은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심지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쓴다(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27쪽).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책무가 다만 다른 소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되었을 때, 글쓰기는 베끼기가 된다. 이때 독서란 소설 안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의 흔적을 찾는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없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78쪽). 오직 언어로 이루어진 곳을 헤매는 것이 독서라면, 그것은 언어로 이루어진 테마파크를 유람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언어의 감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지나야 그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그러니까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179쪽).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평생에 걸쳐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신학까지 열성을 다하여 연구”한 끝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탄식했다. 그가 마술의 세계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던 것은, 정통한 지식들이 세계에 대해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 “부질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김수용 옮김, “파우스트” 1부, 책세상, 2006, 31~33쪽).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처녀를 희롱하고, 신화 속의 전쟁에 뛰어들고, 바다를 메우는 개간사업을 시작했던 것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세계관을 거부하고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선언한 후였다. 가장 열심히 말의 세계를 믿었던 자가,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아마 파우스트와 같은 모험이 필요할 것이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벗어나 시공을 뒤집는 모험에 나섰던 것처럼, 한유주와 최제훈도 이야기의 끝, 혹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감옥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때 소설 역시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을 되찾을 것이다. ■당선소감 책은 끝없는 미로… 내 모든 단어 빚지고 있어 아직 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은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듬더듬 잘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문득 어지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길은 앞이 명확했던 적이 없었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세상은 그만큼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권의 책을 숙제로 남겼다. 그러니까 이 길은 목적지가 분명한 대로가 아니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미로이다. 이 미로를 열심히 헤매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그들이 전해준 것을 비로소 적었을 뿐이다. 나는 모든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그래서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수사가 아니다. 우선 나는 박광현 선생님에게 글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규칙들은 전부 선생님에게 받은 것이다. 황종연 선생님은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주셨다. 한만수 선생님은 어떻게 학문이 정의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김춘식 선생님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배웠다.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공부한 ‘책읽기의 즐거움’의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허병식 선생님, 복도훈 선생님, 서희원 선생님, 조형래 선배, 김민선, 박진솔, 임세화, 전호성, 한정현, 홍덕구 등 모두들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들에게 동의하거나, 혹은 반박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아마도 가장 즐겁게 읽어준 경연에게 감사한다. 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집 센 아들의 선택을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께는 가장 큰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많이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두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다. ●약력 ▲1983년생 ▲ 2002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심사평 균형적 함의 도출 … 평론가로서의 앞날 기대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편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들 작품을 통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 논의 대상으로 4편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를 정독한 후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당선작을 확정하였다. 심사기준으로는 응모 평론이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잘 부각시키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가에 두었으며, 글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평적 견식을 담보할 수 있는 문장력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체로 올해의 평론 응모작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성향에 있어서도 여전히 세부적 탐색과 분석에 치중하고 동시대 사회 속에서 해당 작품이 가진 의미를 구명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평론이 단순하게 한 작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배태하고 산출한 환경과 문학사적 친연성 등을 두루 고찰하고 있을 때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터이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4편의 평론 가운데 이은이의 ‘희미해져가는 인간다움에 대하여’는 유연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보다 정치한 시각과 정론적 방식으로 대상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정영의 ‘비린내, 혼종의 정체성에 저항하는 존재성’은 후각적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규정하는 독창성이 참신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독창적 사유가 총괄적 해석력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고 비린내와 혼종성의 상관관계도, 좀 더 명료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만영의 ‘유령의 서사, 열림의 정치’는 시종일관 무난하고 균형성 있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분석 대상이 된 두 작품의 저변을 보다 치열하게 드러내고 그 상관성에 대해서도 입체적 조명이 있었으면 하는 후감이 있었다. 당선작이 된 ‘언어의 감옥에서 글쓰기’는 한유주와 최제훈의 소설이 가진 문학적 함의를 비교적 정확하고 균형성 있게 도출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에 있어서도 폭넓은 공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평론가로서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분들께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다음 기회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다.
  • 1000만 관객 또 가자 ‘설국열차’ 타고 ‘베를린’까지

    1000만 관객 또 가자 ‘설국열차’ 타고 ‘베를린’까지

    올해 한국영화를 본 관객은 1억 1227만명, 점유율은 59.0%에 이른다. 영화계 안팎에선 신(新) 르네상스의 도래를 말한다. 섣부른 추측일 수도 있지만, 올해 맞이한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가 일회성은 아닐 것 같다. 개봉 예정작 명단을 보면 올해보다 내년이 낫다. 1000만 관객은 콘텐츠의 질 뿐만 아니라 개봉시기, 경쟁작, 배급력 등이 두루 맞아야 하기 때문에 점칠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400만명 이상의 ‘중박’은 기본, 1000만명까지 욕심낼 만한 영화들도 눈에 띈다. 1000만 영화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뒤를 이을 후보군을 살펴봤다. 2013년 기대작으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첫손에 꼽힌다. 1986년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장 마르크 로셰트와 자크 로브의 공상과학(SF)만화 ‘설국열차’를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은 갑작스러운 기온 강하로 혹독한 추위가 닥친 지구를 배경으로 난방과 식량자급이 가능한 설국열차만이 유일한 생존처가 된 상황을 설정한다. 정치인과 부자들이 탄 객차에는 술과 마약이 난무하지만, 서민 객차는 식량을 구하려고 폭력이 끊이지 않는 등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봉 감독과 제작자로 나선 박찬욱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배우 송강호·고아성 외에는 다국적군이다. 크리스 에번스와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옥타비아 스펜서가 탑승했다. 책임투자는 CJ E&M이다. 순제작비만 4000만 달러(약 429억원)에 이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할 바 아니지만, 한국영화 사상 가장 큰 뭉칫돈이 들어갔다. 지난 7월 체코에서 촬영을 끝냈고, 내년 3월까지 후반작업을 한다. 여름 성수기 북미와 동시개봉한다. 권력기관의 부패를 질근질근 씹었던 ‘부당거래’(2010)로 물오른 연출력을 뽐낸 류승완 감독은 3년 만에 스파이 액션물로 돌아온다. 각자 한 편의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하정우와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을 캐스팅, 기대치를 끌어올린 ‘베를린’은 1월 31일 개봉한다. 국적도 지문도 없어 ‘고스트’로 불리는 비밀요원 하정우가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던 중 음모에 휘말린다는 게 영화의 얼개다. 냉전의 최전방이던 첩보원의 도시 베를린에서 서로 표적이 된 4명의 비밀요원이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순제작비만 100억원을 웃돈다. 최근 공개된 30초짜리 예고편에선 확실히 돈을 쓴 티가 난다. ‘미녀는 괴로워’(356만명) ‘국가대표’(848만명)의 김용화 감독은 4년을 공들인 3차원(3D) 영화 ‘미스터 고 3D’로 7월 중순 복귀한다. 허영만 화백의 인기만화 ‘제7구단’이 원작이다. 프로야구판에 들어온 고릴라 용병 ‘미스터 고’와 매니저로 나선 중국 지린성 롱파서커스단 소녀 웨이웨이(쉬자오)가 슈퍼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휴먼 스포츠 드라마다. 성패는 ‘아바타’나 ‘반지의 제왕’의 골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시저처럼 가상 캐릭터를 얼마나 실감 나게 묘사해내느냐에 달렸다. 김 감독은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무후무한 극사실적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명제를 갖고 시작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도둑들’ 등 투자배급사 중 가장 많은 3편의 1000만 영화를 만들어낸 쇼박스는 ‘미스터 고 3D’로 역대 1위 ‘아바타’를 뛰어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순제작비 225억원을 투입, ‘7광구’에 이어 한국 영화사상 두 번째로 풀 3D 영상에 도전한다. 기획단계에서 중국 화이브라더스가 500만 달러를 투자한 덕에 중국에서 자국영화로 분류돼 동시 개봉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설국열차’와의 ‘장외 맞대결’도 흥미롭다. 데뷔작 ‘과속스캔들’(435만명)과 후속작 ‘써니’(736만명) 모두 대박이 터지면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강형철 감독도 하반기에 복귀한다. 강 감독의 복귀작 ‘타자 2부: 신의 손’ 또한 허 화백 만화를 원작으로 뒀다. 684만명을 동원한 ‘타짜’는 허 화백의 4부작 만화 중 ‘1부 지리산 작두’를 최동훈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것. ‘2부 신의 손’은 주인공 함대길이 1부 주인공 김곤(고니)의 외조카란 점을 빼놓고는 연결고리가 없다. 강 감독은 최근 시나리오를 마무리 짓고 프리(pre) 프러덕션에 들어갔다. 캐스팅은 미정이다. 충무로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집단주연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1990~2000년대에 걸쳐 최고 흥행사로 군림했던 강우석 감독은 신작 ‘전설의 주먹’으로 명예회복을 벼른다. 지난해 ‘글러브’(188만명)로 자존심을 구겼지만, 좀처럼 두 편 연속 실패하는 법이 없는 강 감독인 만큼 기대치는 높다. 유명 싸움꾼들을 찾아내 최강을 놓고 겨루게 하는 TV 프로그램 ‘전설의 주먹’에서 25년전 자웅을 겨뤘던 세 명의 주먹이 다시 만나 못다 한 승부를 가리는 액션 드라마다.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지닌 황정민과 유준상, 윤제문이 공동주연을 맡았다. 2월 말 개봉하는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40~50대를 대표하는 최민식과 황정민, 이정재를 내세웠다. 대한민국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형사(이정재)와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친형제처럼 아끼는 조직의 2인자(황정민), 잠입 수사작전을 설계한 경찰 강 과장(최민식) 사이에서 엇갈린 음모와 배신, 의리를 다룬 느와르 액션물이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느와르 액션 장르에서 작가로 탁월한 솜씨를 보였던 박훈정이 각본·연출을 맡았다. 연출 데뷔작 ‘혈투’(2011)의 실패를 만회할지도 궁금하다. NEW가 배급한다. 이 밖에 경찰 비밀조직과 무장 강도집단의 대결을 그린 조의석·김병서 감독의 범죄액션 ‘감시’(설경구·정우성·한효주)와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의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사극 ‘관상’(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또한 집단주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영화]

    ●독립영화관-량강도 아이들(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량강도 삼지연군 보천보리. 이 마을에는 가난한 홀어머니와 함께 종수, 종성이 형제가 살고 있다. 보천보 인민학교 4학년 학생인 종수는 쾌활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다. 종수에게 꿈이 있다면 평양에 가보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량을 넘어선 파동 활동에도 불구하고, 종수를 비롯해 겉 보기 안 좋은 아이들은 평양에 출입할 수 없다는 교장의 지시에 종수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한편 평양에 가고야 말겠다며 길을 나선 종수는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서울에서 북한으로 날려보낸 산타의 애드벌룬을 주운 것이다. 종수의 산타 선물을 본 아이들은 로봇과 산타 옷에 열광하고 온 동네 어린이들이 로봇을 구경하고자 집안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종수네 집으로 몰려든다. 게다가 영양실조로 입원 중인 종수의 동생 종성이도 로봇의 등장과 함께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는 듯해 종수를 기쁘게 한다. 그렇게 산타 옷을 입은 아이들의 공연은 마을의 명물이 되고, 마을 아이들은 종수의 로봇을 부러워하며 부모들을 조르기 시작하는데…. ●레 미제라블(EBS 토요일 밤 11시) 절도죄로 19년 형을 선고받았던 전과자 장발장은 비구 시의 시장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비구 시 시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자베르가 경찰서장으로 부임하면서 장발장의 삶은 변하기 시작한다. 자베르는 법과 제도를 맹신하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장발장이 짐마차를 들어 올려 마차에 깔린 노인을 구해주는 모습을 보고, 예전에 자신이 감방 간수로 있을 때 지켜본 그 죄수임을 깨닫는다. 그 후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의 과거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장발장은 공장에서 쫓겨난 뒤 딸의 양육비를 벌고자 거리에서 몸을 파는 팡틴을 돌봐준다. 한편 가짜 장발장이 법정에 서자 세상은 시끄러워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장발장은 자신의 정체를 법정에서 폭로한다. ●천사와 악마(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세계 최대의 과학연구소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에서 우주 탄생을 재현하는 빅뱅 실험이 진행된다. 물리학자 비토리아와 동료 실바노는 빅뱅 실험을 통해 강력한 에너지원인 반물질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실바노가 살해당하고 반물질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은 교황청으로부터 의문의 사건과 관련된 암호 해독을 의뢰받는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고대의식인 콘클라베가 집행되기 전, 가장 유력한 4명의 교황 후보가 납치되고 교황청에 일루미나티의 상징인 앰비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로마 바티칸에 도착한 로버트 랭던과 비토리아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일루미나티의 단서를 파헤치며 그들의 근거지로 향하는 ‘계몽의 길’ 추적에 나선다.
  • 내년을 맛보라 오페라 갈라

    내년을 맛보라 오페라 갈라

    8개월 동안 200여 회가 넘는 공연이 열리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턴 오페라 극장은 ‘오프닝 나이트 갈라’를 시작으로 화려하게 시즌을 연다. 시즌 개막을 관객과 함께 축하하고자 특별공연 형식을 취한 것.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한 시즌으로 보는 북미·유럽과 달리 봄부터 겨울까지 한 시즌으로 꾸리는 국립오페라단은 ‘갈라’의 시점을 틀었다. 올해 무대에 올린 작품들의 하이라이트와 함께 2013년 선보일 작품의 맛보기를 중심으로 29~30일 오후 3시와 7시30분, 총 4회에 걸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지난 10월 티켓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회 공연을 추가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던 비제의 ‘카르멘’ 서곡으로 막을 올린다.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카르멘 역을 맡고, 테너 서필, 소프라노 조정순과 김민지, 바리톤 공병우,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함께 한다. 모차르트의 발랄한 연애담 ‘코지 판 투테’도 선보인다. 올해와 내년 레퍼토리와는 무관하지만, 갈라의 흥겨운 분위기를 살리려고 연출자 김홍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포함했다. 약혼녀의 정절을 두고 내기를 건 두 명의 젊은 장교가 펼치는 귀여운 사기극이다. 지난달 오페레타 ‘박쥐’로 한국 무대 데뷔를 한 바리톤 안갑성이 굴리엘모 역을 맡는다. 올해 벨베데레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신예 테너 김범진이 페란도 역으로 데뷔무대를 갖는다. 캐스팅만 놓고 보면 갈라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신선하다. 2013~2014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파르지팔·니벨룽겐의 반지)에 도전하는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무대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으로 첫 걸음을 뗀다. 악마에 영혼을 판 죄로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벌을 받게 된 노르웨이 유령선 선장의 전설을 다룬 바그너의 초기작품이다. 7년에 한 번, 그것도 단 하루 뭍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그에게 죽음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순수한 여인이 나타나면서 저주가 풀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갈라에서는 1막을 중심으로 베이스 최웅조와 전준한, 테너 전병호가 합창단과 함께 웅장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1만~10만원.(02)586-5284.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어린이 20명을 학살하듯… 세밑 ‘악마의 총질’

    어린이 20명을 학살하듯… 세밑 ‘악마의 총질’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많은 어린이가 희생된 최악의 총기 참사가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코네티컷주 뉴타운시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20살 청년 애덤 랜자가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을 숨지게 한 뒤 자신에게도 총을 쏴 자살했다. 랜자가 범행 전 자신의 집에서 사살한 그의 어머니까지 포함해 사망자는 총 28명이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33명 사망)보다 사망자 수는 적지만 희생자의 대부분이 6~7세 어린이라는 점에서 미국인들은 5년 전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희생자 중 한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전날 언쟁 벌인 교사 중 1명 생존 CNN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랜자는 3자루의 총을 들고 어머니가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샌디훅 초등학교에 오전 9시 30분쯤 도착했다. 랜자는 9시 36분쯤 교무실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옆 교실에 들어가 어린이들을 ‘처형하듯’ 총격을 가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희생자들은 각각 2발 이상의 총알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소리가 멎은 건 9시 38분이었다. 불과 2분 만에 26명이나 희생된 것이다. 숨진 어린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1학년이었으며 남학생 8명, 여학생 12명으로 밝혀졌다. 숨진 교직원 6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 학교 학생은 총 600명인데, 그나마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몸을 던져 학생들을 보호한 교사들의 희생 때문이었다. 1학년을 맡은 비키 소토(27·여) 교사는 반 학생들을 교실 벽장으로 피신시킨 뒤 랜자를 막다가 총을 맞고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돈 혹스프렁(47·여) 교장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랜자에게 달려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도서관 사서인 메리 앤 제이컵은 총소리가 들리자 함께 있던 4학년생 18명에게 “얘들아, 대피 훈련이 시작됐으니 얼른 숨으렴.”이라며 도서관 창고로 학생들을 몰아넣었다. 아이들이 놀라 우왕좌왕할까 봐 내뱉은 ‘거짓말’이었다. ●숨진 교직원 6명 여성… 한인 없어 경찰은 범인이 이날 학교 창문을 깨고 강제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그가 수년 전 이 초등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보이지만 범행을 저지른 동기에 대해선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범행 전날 랜자가 학교로 찾아가 교사 4명과 언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고 NBC 방송이 보도했다. 그와 언쟁을 벌인 교사 4명 가운데 3명은 랜자의 총격으로 숨졌으나 1명은 사고 당일 출근하지 않아 살아남았으며 이 생존자가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어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극악무도한 참사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어여쁜 어린이들…”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사건 현장을 방문한 뒤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집회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명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니얼 맬로이 코네티컷 주지사에게 서한을 보내 “아이들을 겨냥한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라고 위로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이들이 많이 희생돼 매우 충격받았고 슬프다.”고 밝혔다. 여왕이 공개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편 범인의 아버지 피터 랜자는 15일 성명을 내고 “우리 가족은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슬픔을 같이한다.”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우리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스스로 묻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깔깔깔]

    ●진짜 지옥 일평생 죄를 지으며 산 사내가 지옥에 떨어지자 그곳의 문지기가 말했다. “네가 갈 지옥을 선택하거라.” 문지기는 사내를 끌고 첫 번째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 모양으로 엎어져서 계속 맞는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방 사람은 온몸을 쇠사슬로 휘감은 채 악마들에게 불꼬챙이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를 거절하고 사내는 마지막 방으로 갔다. 그 방 안에서는 늙고 추한 사내가 멋지고 늘씬한 금발 미녀와 키스를 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환희에 찬 사내는 소리쳤다. “여기로 하겠소!” 그러자 문지기가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이봐, 여자! 너 밖으로 나와. 이제 넌 구원받았어!”
  • 장애여성 보복 살해범 구속

    장애여성 보복 살해범 구속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지체장애 1급 여성을 살해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서울신문 12월 7일자 8면> 대전서부경찰서는 이 같은 혐의로 공개수배를 받아 오던 성모(61)씨를 지난 8일 충북 옥천의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검거하고 9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성씨는 지난 3일 오후 6시 20분쯤 대전 서구 용문동 최모(38)씨 집에서 최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씨는 범행 당일 대절한 택시를 타고 최씨의 집 앞에서 1시간가량 기다리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귀가하는 최씨를 따라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 성씨는 2002년 발생한 상해치사 사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최씨가 “성씨가 이모(당시 51세)씨를 마구 때렸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해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5년6개월을 복역했다. 2010년 출소한 성씨는 지난 9월 마트에서 최씨를 우연히 만나자 가만두지 않겠다며 한 차례 협박을 한 뒤 최씨의 거주지를 답사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성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극빈자와 장애인 구호 활동을 펼치면서 최씨와 이씨를 알게 됐다. 성씨는 한때 얼마 안 되는 보조금을 쪼개 두 사람을 보호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술에 취해 손찌검을 하면서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마로 변했다. 한편 성씨에게 협박을 당한 최씨가 경찰 지구대를 찾아가 불안하다며 도움을 청한 뒤 3개월 만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당시 상담을 진행한 경찰이 신변보호 제공 여부를 물었으나 다른 곳에 머무를 예정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악마’ 엄마

    두 살 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저수지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는 최모(37·여)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2일 오후 최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계획적 범행 정황 속속 드러나 경남 창원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이날 앞선 조사에서와 달리 “지난달 25일 오후 3시쯤 아들과 함께 진해의 집을 나오면서 빈 여행용 가방을 미리 챙겨 나왔다.”고 진술했다. 아들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인근 매장에서 산 가방에 시신을 담았다는 최초 진술과는 배치되는 부분이다. 최씨는 당초 “지난달 23일 오후 창원시 진해구의 한 공원에 아들과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보채는 데 화가 나 아들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었다. 경찰은 최씨가 지난 9월부터 단둘이 살게 된 아들이 평소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아빠한테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데 화가 나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최씨가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가방에 담아 25일 오후 10시쯤 지인의 차를 타고 창원시 동읍 주남저수지에 간 정황을 확인하고 공모 여부 등도 수사하고 있다. ●경찰, 상습학대·공모 여부 수사 최씨의 지인은 “최씨가 오후 4시쯤 ‘아들을 남편에게 보내 쓸쓸하다’면서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저수지에 도착하자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며 가방을 들고 내려 20여분 뒤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씨가 평소 아들을 자주 때렸다’는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학대 여부와 살해 장소 등에 대해 보강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씨의 아들은 지난달 27일 주남저수지에서 돌덩이 2개가 든 가방 안에 웅크려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카메라의 눈’으로 그렸다

    ‘카메라의 눈’으로 그렸다

    ‘절규’의 뭉크 대신, ‘셀카의 달인’ 뭉크를 내세웠다. 2013년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탄생 150주년을 맞는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박물관은 ‘모던 아이’(The Modern Eye)전을 내세웠다. 기괴하고 우울한 뭉크보다 유쾌하고 재밌는 뭉크의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다. 뭉크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작품은 ‘절규’(Scream)다. 이 작품은 올해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약 2166억원)라는 역대 최고액으로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최고액 기록 자체는 물론, 그림의 테마가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해석되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절규’풍의 작품은 뭉크의 특징이긴 하다. ‘절망’(Despair), ‘불안’(Anxiety) 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형식이다. 또 널리 알려진 것은 자신을 악마처럼 묘사한 ‘지옥에서의 자화상’(Self-Portrait in Hell)이나 다비드의 걸작에서 모티프를 따온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 같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도 주제는 다르지만 전반적인 톤은 ‘절규’와 비슷하다. 북구의 차갑고 혹독한 겨울 날씨에다 모계 쪽은 폐질환이 많았고 부계 쪽은 정신질환이 많았다는 가족력,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고, 여자 문제 때문에 약하긴 해도 총상을 입기도 했었다는 정황들이 겹쳐지면서 뭉크 하면 대개 이런 어둡고 침울한 작품들을 많이 떠올린다. ●당대 최첨단 카메라로 사진 찍어 회화에 접목 그런데 이번 전시는 포인트를 달리했다. 내성적이고 수동적이기보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뭉크다. 실제 뭉크는 당대에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던 화가들과 달리 평생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괜찮은 집안에 태어났고, 생전에 이미 화가로서 일정한 명성을 얻어 작품활동하는 데 크게 지장을 받은 적도 없다. ‘절규’를 4가지 버전으로 그릴 수 있었고 그 외 다른 작품들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반복해서 그려놓을 수 있었던 까닭도, 그림이 잘 팔려서 그와 비슷한 작품을 다시 만들어 소장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여주는 것은 뭉크가 썼던 옛날 구식 카메라다. 돈에 크게 쪼들리지 않았던 뭉크는 당대 최첨단 미디어랄 수 있는 카메라를 직접 사서 열심히 찍어댔다. 그리고 이 카메라로 셀카도 열심히 찍었다. 전시장에는 그가 자신을 직접 찍은 영상과 셀카 사진들이 즐비하다. 그러니까 오늘날 작가들이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최첨단 기술을 작품 속에 응용하려 했듯, 뭉크도 사진이나 영상을 회화에다 적용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귀가하는 노동자들’(Workers on their Way Home)이다. 이 작품은 언뜻 특별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웅성대며 퇴근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인물 묘사는 뭉크 특유의 필체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을 관찰해서 그리는 뭉크의 눈이 ‘사람의 눈’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화가의 시점 자체가 자연스러운 사람의 시점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데다, 그림 하단으로 갈수록 인체의 왜곡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 이 작품 옆에 나란히 틀어놓은 영상은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출구’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선보인 최초의 상업영화다. 러닝타임은 1분도 채 안될뿐더러, 따로 말할 내용이랄 것도 없이 그냥 어느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퇴근하는 장면이다. 두 작품 간의 유사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셈이다. 그래서 헨리크 입센의 연극 ‘유령’ 세트작업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알려졌듯 입센은 젊은 시절 뭉크를 격려한 바 있고, 입센 역시 가출하는 여자 노라를 내세운 ‘인형의 집’에 이어 가부장제를 더 혹독하게 비판한 ‘유령’을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 뭉크는 이 ‘유령’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유령’을 위해 그린 작품들을 보면, 캔버스 앞에 사람의 눈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으로 섰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다. ●내년 탄생 150주년… 6월부터 대규모 회고전 전시 제목이 모던 아이, 그러니까 최첨단 기술에 무관심하다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무시한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프랑스풍의 모던 아이다. 이번 전시는 파리, 프랑크푸르트, 런던을 순회전시하면서 관객 100만명 이상을 동원한 기획전이다. 오슬로에서의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회고전은 내년 6월부터 시작된다. 오슬로(노르웨이)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文, 실패한 정권의 핵심…서민정권이 서민 외면”

    “文, 실패한 정권의 핵심…서민정권이 서민 외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번 선거를 ‘준비된 미래’와 ‘실패한 과거’의 대결 구도로 규정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향해 공격 수위를 더욱 높였다. 박 후보는 대전을 시작으로 세종시, 충남 공주·논산·부여·보령, 전북 군산·익산·전주 등 모두 9곳에서 유세를 펼치며 중원을 집중 공략했다. 특히 충청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온 만큼 야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며 비전을 부각시켰다. 박 후보는 대전역 광장과 공주 구터미널에서 가진 유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준비된 미래로 가느냐, 아니면 실패한 과거로 되돌아가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문 후보를 두고 “스스로 폐족이라고 불렀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권을 잡자마자 이념투쟁으로 날밤을 지새웠고, 입으로는 서민정권을 주장했지만 지난 정권에서 서민을 위했던 정책 하나라도 기억나는 게 있느냐.”며 문 후보를 몰아세웠다. 박 후보는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참여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따졌다. “대학등록금, 부동산 가격이 역대 최고로 폭등했고 양극화가 심해졌고 비정규직이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실패한 정권이 부활해선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는 동시에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국민을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지역과 세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도 가르지 않을 것이고 국민대통합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함께 모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북 유세에서는 국민대통합을 내세워 인사대탕평을 약속했다. 민주당이 박 후보와 새누리당을 공격하면서 사용한 ‘낡은 정치’, ‘과거세력’의 단어를 박 후보도 그대로 사용하며 역공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을 민주당이 백지화하려는 점을 언급하며 “말을 뒤집고 약속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낡은 정치”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전주 일정을 마친 뒤 다시 세종시로 이동해 숙박했다. “박 후보의 정치신념인 원칙과 신뢰, 약속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지역이어서 박 후보가 애착을 보인 것”이라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충청지역 연설에서도 “세종시를 정치생명을 걸고 지켰다. 약속을 지키는 새 정치의 미래를 열겠다.”며 표심을 자극했다. 28일에도 충남 일대를 방문한다. 새누리당 유세현장에서는 문 후보에 대한 공세가 멈추지 않았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문 후보를 두고 “순진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를 슬슬 구슬리다 결국 정치적으로 자살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신뢰받는 국가지도자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괴테의 작품 속 파우스트 박사가 청춘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듯 영혼을 팔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면서 안 전 후보에게 민주당 지원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인제 공동선대위원장도 “야비한 야당 후보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공주·전주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山神은 단군사상 대표… 한국 자연·문화의 상징”

    “山神은 단군사상 대표… 한국 자연·문화의 상징”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산신은 단군을 대표하는 것이고 한국의 자연과 문화의 상징입니다.” 백두대간 홍보대사로 2011년 1월부터 한국의 산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데이비드 메이슨(55) 동국대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국의 산신을 소개하는 책을 영문판과 한글판으로 2003년에 낸 메이슨 교수는 한국인들이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산신이나 산신제, 무당 등 샤머니즘을 높이 평가했다. 산신이야말로 한국인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라는 것이다. 메이슨 교수는 “사찰의 삼성각이나 삼신각에는 한국 고유의 문화인 도교, 유교, 불교, 샤머니즘, 기독교까지 5개 종교의 신이 모두 표현돼 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한국의 사찰은 종교의 종합 과자세트 같다. 산신은 악마(devil)나 귀신(ghost)이 아니라 ‘산의 신령한 신’(Mountain-spirit-spirit)으로 한국만의 아주 독보적인 존재다. 단군사상을 대표하는 존재이니 산신이야말로 한국의 대표자”라고 말했다. 그는 “산신은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로 산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자연, 즉 물과 공기, 산, 나무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면 사람이 건강해지기 때문에 산신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상징이자 과학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무당, 산신 등 샤머니즘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미신퇴치운동을 벌였다고 설명하자 그는 “산신이야말로 근대적 정신”이라며 “산신을 보호하는 것이 서양의 웰빙”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는 더 미신적이고 덜 미신적인 것은 없다. 기독교에서는 악마니 천사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점이 훨씬 미신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합리적인 학자이자 과학자인 조선의 선비들도 산신제를 지냈는데 특히 퇴계 이황이 그러했다.”면서 “산신이나 산신제는 공동체의 단합과 단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며 미신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했다. ●20년간 산신 사진 1000여장 수집 메이슨 교수는 20여년째 한국 사찰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산신을 그린 탱화를 사진에 담고 있다. 현재 그가 보유한 전국 각지의 산신 사진은 1000장이 넘는다.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이 한국인의 눈에는 평범한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에게는 어느 산신도 똑같은 것이 없다. 하나같이 다르게 생겼단다. 산신을 그린 6m 길이의 대형 작품은 물론 작은 소품조차도 정교하고 완벽한 예술이라고 말한다. 산신 탱화는 350년 된 조선 중기의 민화부터 현대의 산신 작품, 심지어 북한의 최신 산신 작품까지 확보했다. 그는 “내가 수집한 산신들은 전체 산신 탱화의 25~30%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산신은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지만 제주도에서는 용을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 또 한라산 백록담 때문인지 흰 사슴이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랑이나 용, 백록 등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주는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다. 그는 영지버섯, 인삼, 푸른 소나무, 소년 등 산신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해서도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다. 메이슨 교수는 종교는 없지만 직접 산신의 현신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1997년 6월 산신 탱화 앞에서 기도를 하고 주문을 외우면서 3일이나 기도법회에 참여한 일도 있다고 했다. 메이슨 교수는 언제부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는 고등학교 때 중국의 문화와 철학에 푹 빠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과 미국은 미수교 상태여서 타이완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중국인 친구들이 그때 한국에 가 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산신 옆 동물은 잘못한 사람 징계 역할 배낭 차림으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한국 스타일로 처음 만난 게 남대문이다. 중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그래서 좀 더 지내면서 알아보고 싶어 서울 종로에서 학원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 생활이 지난 7월로 30년이 됐다. 산을 좋아해 한국의 사찰을 찾게 됐고 사찰 내부의 칠성각이니 삼신각이니 하는 것들과 만났다. 내처 산신을 주제로 1997년 연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도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서울 경희대 교수를 거쳐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홍보대사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메이슨 교수는 지난 14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주최한 ‘미래 사회와 문화·관광’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 중 ‘신령한 산’ 카테고리에 한국의 신령한 산들을 등재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현재 중국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한 38개 경관 중 10개가 신령한 산이며 2011년에 6개의 신령한 봉우리를 추가했다. 일본도 9개의 신령한 산을 등재했고 북한도 3~4개를 등재해 놓은 상태다. 한국만 유일하게 한곳도 등재하지 않았다. 메이슨 교수는 “중국은 무신론 국가인데도 ‘신령한 산’을 등록했다.”면서 “개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훌륭한 한국의 관광 자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신령한 산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산에 얼마나 많은 절이 있는지, 그 절에서 숭배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등이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성한 산을 갖고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0개 산만 지정해도 된다. 한국 전통 민담과 신화에 나오는 신령한 산 10곳,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신령한 산 10곳, 풍수지리적으로 신령한 산 10곳 또는 현대적인 신령한 산과 전통적인 신령한 산으로 나눌 수도 있다. 한라산이 현대적 관점으로는 신령한 산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인들은 한국의 삼성, K팝, 강남스타일 노래, 한류를 좋아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한국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데 그것은 한국인 스스로 전통을 다소 부끄러워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뼈 있는 지적도 했다. 그는 “‘템플스테이’를 내가 제안해서 시작했는데 서양인들이 매우 좋아한다. 한국인은 서양인들이 불편하고 귀찮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1000년이 넘은 아름다운 절에서 발우공양하고 녹차를 마시면서 느리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산은 아름다운 데다 영적인 요소가 잘 섞여 있어 그런 점을 외국인들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중곡동 주부살해 사건 100일 악마 서진환이 바꿔놓은 제도

    중곡동 주부살해 사건 100일 악마 서진환이 바꿔놓은 제도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 사건’이 일어난 지 27일로 100일이 지났다. 서진환은 유치원생 자녀를 배웅하는 모정을 이용해 집으로 숨어들어 살인을 저질렀다. 성폭행범들의 유전자(DNA) 정보 공유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범인은 두 번째 강간을 목적으로 동네를 배회했다. 전자발찌는 상습 성폭행범의 족쇄가 되지 못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서씨를 넘어 공권력에 쏟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건 후 무엇이 달라졌고 남은 숙제는 무엇일까. 지난 22일 서진환이 무기징역을 받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검·경 DNA 정보 공유, 전자발찌 관련법 개정, 화학적 거세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서진환이 중곡동 살인 13일 전에도 면목동의 또 다른 주부를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경이 범죄자 DNA를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검찰은 수형자 DNA, 경찰은 구속 피의자와 범죄 현장의 DNA를 담당하는 이원화된 체계가 두 번째 살인을 방조했다는 비판 때문이다. 사건 이후 검·경의 DNA 공조는 과거에 비해 활발해진 편이다. 덕분에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는 바뀐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이 각각 구축하고 있는 ‘DNA 정보 자동 검색 시스템’은 자료 통합이나 실시간 검색이 아니라 현재의 등록, 검색 속도를 개선하는 수준이다. 공문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대조 작업을 거쳐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은 같다. 법 개정이 없는 한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럴 움직임은 없다. 전자발찌의 실효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자발찌는 훼손하거나 야간 외출 금지 위반, 특정인에 대한 접근 금지 등의 준수 사항을 위반하지 않으면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착자 관리는 법무부가 맡는데 경찰이 용의자 등의 행적을 추적하려면 인권보호를 이유로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법무부 보호관찰소에 제시해야 한다.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긴급상황 시 신상·위치 정보를 파악한 뒤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시행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화학적 거세 대상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었다. 결국 지난 22일 국회는 ‘16세 미만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만 제한적으로 실시한다.’는 문구를 ‘재발 가능성 여부에 따라 피해자 나이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로 수정했다. 강간, 강제 추행의 법정형도 기존 ‘5년 이상 징역형’에서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으로 대폭 강화됐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산타는 없다!” 폭탄선언(?) 男 체포, 이유는…

    “산타는 없다!” 폭탄선언(?) 男 체포, 이유는…

    크리스마스를 약 한 달 앞둔 가운데, 아이들에게 “산타는 없다!”고 폭탄선언(?)을 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ABC뉴스 등 해외언론이 보도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24세 남성은 지난 주 캐나다 킹스턴 타운의 연례행사인 산타클로스 퍼레이드 행사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 이 남성은 거대한 행렬 한가운데서 “산타는 없다!”고 소리쳤고, 행사 특성상 구름떼처럼 몰린 어린이 참가자들은 그의 고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헤어젤을 이용해 뿔을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로 산타와 대조되는 악마의 이미지가 강했고, 이는 산타클로스 행사에 반(反)하는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했다.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이 남성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곧장 체포됐으며, 이후에도 고성과 소란을 멈추지 않아 결국 형사고발을 당했다. 현지 경찰은 “20대 남성이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고 행사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등 주위에 피해를 끼쳐 체포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현지 일간지인 토론토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산타가 가짜라고 말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악마 탈 쓴 ‘천사 아버지’

    지적장애인 21명을 입양해 헌신해 왔다고 알려진 남성의 각종 학대 행위가 확인돼 국가인권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22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장모(66·실제 나이 72)씨는 1978년 6명의 장애인들을 친자녀로 신고하는 등 1986년까지 총 21명의 지적장애인을 입적시켰다. 이 같은 사실이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며 ‘천사 아버지’라는 이름도 얻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매월 장애인에게 나오는 수급비를 자기 생활비로 쓰고 목사를 사칭하며 피해자들과 설교를 다녀 후원금을 받아 냈다. 강원 원주시의 깊은 산속에 움막을 만들고 길목에는 철문을 세워 피해자들을 감금했다. 거주지를 벗어나면 몽둥이로 발바닥 등을 때렸고, 다른 피해자들도 책임을 물어 폭행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피해자 1명의 양팔과 손등에는 연락처와 함께 ‘지적장애1급 장XX’ 등의 문신을 새겼다. 글자나 숫자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노동을 강요하고 여성 피해자들을 성추행하기도 했다. 1989년 장씨가 구치소에서 9개월간 복역하는 사이에는 16명의 행방이 묘연해져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호적에 올린 21명 중 2명은 사망했지만 장씨는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시신을 시체 안치실에 방치했다. 장씨는 친자식으로 입적한 21명의 성별이나 장애유형, 심지어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지난 6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통해 장씨의 만행이 알려지기 전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원주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적절한 수급비 사용을 점검해야 하는데도 2~3차례 형식적인 방문을 하는 데 그쳤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①프랑스 리옹, 안시,샤모니

    France & Italy 알프스와 지중해의 속살을 유영하다 파스텔톤 건물들, 벽돌 깔린 좁다란 골목길, 1년 내내 보수 공사 중인 중세 성당. 유럽의 흔한 마을 풍경이다. 허나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삶의 결은 가지각색이니, 그 틈 속을 유영하며 각 도시의 매력을 탐닉하는 것이 유럽 여행의 매력일 터. 프랑스의 론알프스, 이탈리아의 파르마와 친퀘테레에서 먹고 마시고 풍경을 만끽하는 여행을 즐겼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France Lyon리옹 프랑스의 풍요로운 식탁을 엿보다 프랑스 동남부 론알프스Rhone Alpes 지역을 여행한다면 파리가 아닌 리옹Lyon을 기점으로 잡는 게 좋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산동네로 가기에 앞서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파리 못지않은 문화유산과 세련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파리에서 리옹까지 TGV를 타고 온 2시간 기차길이 피곤치 않았던 이유도 미식의 나라에서도 으뜸간다는 미식의 도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리옹 파르디외Part Dieu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수백년의 역사를 겹겹이 머금고 있는 역사지구로 향했다. 먼저 가파른 산턱을 오르는 푸니쿨라 열차를 타고 해발 281m 높이의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향했다. 비잔틴 양식의 탑이 견고히 버티고 있는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느 유럽의 성당이 그러하듯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성당의 오른쪽에는 론강과 손강이 사이좋게 흐르는 도심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맑은 날이면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까지 보인다고 한다. 언덕 비탈길 중턱에는 4세기 로마극장의 뼈대가 남아 있다. 과거 로마의 식민도시였으며 갈리아 지방의 수도로 명성을 떨친 리옹의 옛 흔적으로 중세시대를 거치며 파괴됐던 극장은 20세기 들어 원형을 복원해 축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평지에 이르자 수세기 동안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리옹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역사지구 골목길이 나타났다. 기뇰 인형극이나 리옹이 낳은 스타 생떽쥐베리와 뤼미에르 형제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것을 포기하고 리옹의 미식을 즐기기 위해 벨르꾸르 광장Place Bellecour 쪽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골목은 찬란한 햇볕을 맞으며 리옹의 가정식, 부숑Bouchon을 즐기는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기뇰 인형으로 실내를 꾸민 한 식당에서 한국에서도 친근한 재료로 만든 푸짐한 음식들을 즐겼다. 채소와 계란 반숙, 햄이 어우러진 리옹식 샐러드, 와인과 치즈로 버무린 소곱창, 매콤한 해산물 찜, 소발바닥 무침, 피스타치오가 곁들여진 소시지, 여기에 하우스와인까지. 프랑스 음식은 너무 창의적이어서 도전하기 힘들다는 이방인의 편견은 리옹에서 보기 좋게 무너졌다. 1 리옹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대표적인 미식 도시다. 가정식 레스토랑을 일컬어 부숑Bouchoun이라 한다 2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내려다본 리옹의 도심 풍경. 리옹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기뇰Guignol 끈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극으로 리옹 곳곳에서 인형을 볼 수 있고, 라 메종 드 기뇰La Maison de Guignol 등에서는 인형극을 무료로 관람할 수도 있다. 부숑Bouchon 리옹의 전통 가정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채소와 소시지, 오리, 돼지고기 등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를 활용하며 다소 기름진 것이 특징이다. 리옹관광청 웹사이트에서 부숑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다. www.en.lyon-france.com ●France Annecy안시 산과 호수가 껴안은정겨운 마을 안시Annecy는 2018년 동계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고배를 마신 도시다. 그러나 고작 겨울스포츠의 도시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서정적인 도시로 꼽는 안시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호수와 알프스 산맥이 조화를 이룬 호젓한 풍경에 더해 중세 건축물과 고요한 운하까지 있어 느긋한 휴식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스키 브랜드 살로몬Salomon,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Millet, 주방기구 테팔Tefal 등이 안시에서 시작됐다 하니 어딘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국경 없는 자본 세계에서 우리는 이런 식의 소통에 익숙해져 있다). 안시에 도착한 것은 태양이 호수 반대편 산봉우리를 붉게 색칠하고, 상점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잠들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호텔 잠자리가 아닌 ‘잠자리Libellelue’라는 뜻을 지닌 디너크루즈에 탑승하기 위해 항구로 갔다. 안시성을 뒤로하고, 호수 위를 유유히 흐르며 낭만적인 음악과 함께 정찬을 즐기는 크루즈였다. 달콤한 프랑스식 와인 칵테일 키르Kir부터 애피타이저로 나온 달팽이 요리, 대구살과 튀김이 곁들여진 메인코스, 여기에 프랑스 시골동네여서 더 어울리는 흘러간 미국 팝송을 들으며 달빛이 흐르는 호수의 정취를 만끽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구시가지 산책길에 나섰다. 마침 매주 세 번씩 서는 장이 펼쳐졌고, 집에서 만든 소시지와 치즈, 신선한 야채를 가지고 나온 상인들과 장바구니를 들고 모인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아침의 선선한 공기에 싱싱한 야채, 과일 냄새, 짭쪼름한 치즈 냄새에 사람 사는 냄새까지 더해진 풍경은 정겹고 따뜻했다. 안시에는 대형 슈퍼마켓도, 유명한 체인 빵집도 없다. 그저 농부들과 상인들이 애정과 자존심을 담아 길러내고 만들어낸 사람 냄새 나는 먹거리와 생활용품들이 또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북적이는 시장통을 벗어나 안시의 상징 ‘팔레드릴Palais de l’isle’로 향했다. 호수 위에 반영된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이 건물은 12세기 성주의 집이었다가 이후 행정관청, 감옥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진 실내에 들어가 보니 약 10도 정도 기울어진 침상이 있었다. 불과 지난 세기까지 프랑스인들은 심장이 발과 같은 높이에 있으면 죽을까 봐 이렇게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자는 순간까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습속은 어디 간들 닮아 있는 것이다. 안시를 둘러본 여행자들은 구시가지 건물들과 산과 호수로 어우러진 도시의 풍경이 스위스나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닮았다고 말하곤 한다. 15세기부터 프랑스 혁명때까지 약 3세기 동안 사보이가Saboy家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으니 당연하다. 3 운하 위에 비친 팔레드릴의 모습이 신비감을 일으킨다 4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안시호수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 5, 6 안시에서는 수시로 시내 중심가에 재래시장이 펼쳐진다. 신선한 야채, 가정에서 만든 치즈, 소시지 등을 구입할 수 있다 ▶travie info 사보이Savoy 11세기를 전후해 지금의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 북부, 스위스 제네바 등을 통치했던 왕가. 알프스 이남 지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디너 크루즈 안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품위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메뉴 종류에 따라 50유로(메인 요리+디저트 혹은 애피타이저)부터 82유로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www.annecy-croisieres.com ●France Charmonix샤모니 산을 동경하는 이들의 궁극의 성지 스쳐가기엔 아까운 도시 리옹과 안시를 거쳐 유럽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이 있는 산악마을 샤모니Charmonix로 향하는 길, 기차 속에서 설렘과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 갔다. 샤모니로 가는 관문, 생제르베 레 벵Saint Gervais les Bains 역에서 널찍한 창으로 알프스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지역열차로 갈아탔다. 자전거를 타거나 혹은 몸체만한 등산배낭을 멘, 혹은 암벽등반용 로프를 어깨에 짊어진 여행자들이 하나둘 기차에 올라타자 유럽의 지붕으로 향하는 흥분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마치 메카로 몰려가는 비장한 무슬림의 틈에 끼인 이교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샤모니몽블랑역에 도착하자마자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나는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꾼은 아니기에 몽블랑(4,810m)에서 가장 가까운 봉우리 ‘에귀 뒤 미디Aguille du midi’에 올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겹겹의 봉우리를 볼 요량이었다. 50명을 빽빽히 채운 케이블카는 순식간에 3,842m 정상으로 치달았다. 전망대에는 어린이부터 휠체어를 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 다국적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알프스 봉우리와 그 위를 개미떼처럼 오르고 있는 산악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스위스 쪽의 알프스와 캐나다 로키산맥을 올랐던 경험을 떠올리며 몽블랑을 비교해 보니 풍경 그 자체보다도 빙하 위를 걷는 산꾼들이 많다는 것이 달라 보였다. 정상에 오르니 이 ‘성스러운 산’을 그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휙 보고 내려가기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 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왔다는 30대로 보이는 등산객에게 물었다. “몽블랑은 어떻게 오게 됐지?”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고 몽블랑을 오랫동안 동경해 오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왔지.” “그럼 이제 돌아가는 길인가?” “아니 오늘까지 4주째인데, 일주일 더 있을 계획이야. 몽블랑은 지독한 매력을 가진 산이거든.” 부럽기 그지없는 답이 돌아온다. 나름 ‘아웃도어맨’을 자처하는 나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탓에 아쉬움을 무릅쓰고 샤모니 마을로 돌아왔다. 4주 휴가는 없었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몽블랑에서 불어오는 공기를 쬐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샤모니에서 빙하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스키와 같은 거친 아웃도어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길 만한 ‘소프트한’ 아웃도어도 많다. 샤모니 마을을 순회하는 꼬마열차를 타고 관광을 즐기거나 루지,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는 샤모니 레저파크도 있다. 물론 국내 테마파크나 디즈니랜드 수준을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다.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게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샤모니 몽블랑은 산악 여행자들의 성지다. 다른 여느 알프스 산보다 등산가들이 많은 것은 최고봉 몽블랑이 있기 때문이다 2 한여름에도 설산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의 샤모니 마을 3 샤모니 몽블랑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가파른 능선을 타고 몽블랑 꼭대기까지 올라 볼 수도 있다 ▶travie info 아귀 뒤 미디Aguille du midi 케이블카 샤모니에서 아귀 뒤 미디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는 성인 기준 왕복 31.40유로다. 이외에도 해발 1,913m의 몽땅베르Montenvers로 가는 산악열차, 생제르베Saint Gervais에서 출발해 해발 2,372m의 에이글Nid d’Aigle로 향하는 열차, 길이 20km에 달하는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까지 가는 기차도 있다. www.chamonix.com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co.kr, 시크아울렛 www.chicoutletshopping.com/ko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악마 같은 붉은 눈을 가진 2.4m 짜리 짐승 목격 논란

    영국 켄트주(州)에 있는 한 공원 숲 속에서 악마 같은 붉은 눈을 가진 8피트(약 2.4m) 짜리 짐승이 수차례 목격됐다고 23일 영국의 일간지 더 선이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 짐승이 목격된 곳은 주(州) 서남부에 있는 ‘텀브리지 웰스’공원이다. 따라서 지역 주민을 비롯한 영국인들은 이 짐승을 ‘켄트주의 원인’(Kentish Apeman) 혹은 ‘영국의 빅풋’(British Bigfoot)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당 지역의 커뮤니티 웹사이트인 ‘텀브리지 웰스 피플’에 따르면 ‘켄트주의 원인’은 70년 전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 목격됐었다. 이 사이트는 그런 원인이 “이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 짐승에 대한 최근 목격은 불과 3주 전, 숲을 통해 귀가하는 사람들에 의해 목격됐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그 원인은 털로 뒤덮혀 있고 긴 팔을 갖고 있었으며 서 있을 때는 키가 8피트 정도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짐승은 70년 전 목격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많은 주민들이 공원에 출입하길 꺼리고 있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 짐승은 악마 같은 붉은 두 눈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그레이엄 에스라는 지역 화가 겸 장식가의 제보를 덧붙이면 자신의 고객 중 한 중년의 귀부인이 당시 남편과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뒤쪽에서 발을 끌며 걷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두 사람이 뒤쪽을 돌아보자 이전에 묘사한 모습의 짐승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 여성은 자신의 가족들과 경찰에 얘기 했지만 그들은 고릴라가 동물원에서 탈출했을 수도 있다면서 믿질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인근 지역 동물원에서는 고릴라와 같은 동물이 탈출했다는 발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성폭행범 몰린 남친, 애인 페북 글에 석방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년 가까이 구금됐던 남성이 여자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20대 여성 A씨는 “성폭행을 당했다.”며 대학 동기인 남자친구 B씨를 고소했다. B씨가 자신을 차에 가두고 여러 차례 때렸으며 휴대전화와 현금 수십만원을 훔친 것도 모자라 집으로 데려가 감금하고 흉기를 들이대며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범행이 좁은 차 안이나 방 안 등 둘만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수사는 피해자 A씨의 진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진행됐다. 결국 B씨는 A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해 상해를 가하고 감금, 강도, 강간까지 저질러 범행의 정황이 무겁다.”면서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B씨가 실형 선고를 받은 지 보름 정도 지났을 즈음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껏 주장해 온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를 꼭 풀어 주세요. 저를 때리고 모함한 것이 너무 견딜 수 없고 속상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B씨의 혐의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었다. 이 글을 바탕으로 2심 재판부는 A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고소 전 작성한 A4 용지 8장 분량의 사건 진술서, 경찰에서의 최초 진술과 두 번째 진술 등의 내용이 수시로 바뀐 점도 의심의 근거가 됐다. A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악마가 그렇게 쓰라고 협박해서 들리는 대로 썼다. 글을 올리고 3~4주 병원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박삼봉)는 “A씨의 자책감에 의한 양심의 발로에 의해 자신의 허위 진술을 자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 원심을 파기하고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를 가둔 채 폭행하고 흉기로 협박한 사실만 유죄로 봤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서편제’ 데뷔 20년 오정해

    [김문이 만난사람] ‘서편제’ 데뷔 20년 오정해

    ‘큰 소리꾼이 되어라, 마음의 한을 품어라, 큰 소리꾼이 되어라.’ 20년 전 영화 ‘서편제’는 그렇게 심금을 울렸다. 아버지가 딸을 진정한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다. 앞이 안 보이는 딸은 ‘이제는 소리밖에 할 수 없지요.’라고 애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 영화 최초 1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영화의 한 ‘신드롬’을 일으켰다. 판소리와 소리꾼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그만큼 사회적 이슈였고 눈부신 영상에 녹아든 여주인공 송화의 목소리에 울고 감동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와 한을 토해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이 영화는 1993년 상하이영화제 최우수감독상(임권택), 최우수 여우주연상(오정해), 제31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제14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김명곤), 제4회 춘사영화예술상 대상·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오정해), 청룡영화제 최다관객상·대상·작품상·촬영상·신인여우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정해(41)씨에게는 요즘 ‘서편제’(아래 사진)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20년 전 미스 춘향 ‘진’으로 뽑히면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서편제’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얼떨결에 출연했지만 영화가 대박을 터뜨릴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울면서 연기를 했던 기억이 선하다고 말한다. 연기 생활 20년을 맞은 그를 만났다. 지난 13일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경기 안양의 한 중국집 2층에서 마주 앉았다. 중국집은 ‘퓨전 중식’ 메뉴로 남편이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남편을 도와 중식당에 가끔 나왔지만 지금은 바빠서 거의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오씨와는 구면이어서 오랜만이라고 인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이 좀 지났는데도 얼굴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자 “저는 숫자를 잘 몰라요, 나이를 세면 뭐해요.”라며 웃는다. 그는 원래 솔직 털털한 성격이다. 책 읽는 것, 조근조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주 토요일 경기 광주에서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부제,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관객들과 편하게 만났습니다. 그때 그랬지요.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데뷔 20주년이라는 말을 처음 꺼냈습니다. 전화를 주시지 않았으면 그조차도 잊고 살았을지 몰라요(웃음).” 원래부터 숫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나이든 몇 월 며칠 세는 것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얼마 전 결혼 15주년인 것도 잊었었고 생일도 가끔 ‘까먹는’ 경우가 있단다. 정말 그렇게만 지냈을까. 따지고 보면 세월의 무게, 세월의 힘이란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철학박사 학위를 땄고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라는 새로운 무대도 시작했다. 또 판소리 다섯 마당과 아리랑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자료수집 등 책자 발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씨와 만나면서 ‘서편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서편제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자기 안에서 찾는 영화의 장면이 달라요. 화면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음악이 아주 잘 어울리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잘 함축된 음악, 그리고 북을 치는 동호와 회포 푸는 장면 등 제가 불과 22살 때 겪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는 당시가 더 어른스러웠다며 웃는다. 지금은 아이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그때는 뭣도 모르고 자신만만하게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또한 주위에서 많이 이끌어 주었기에 더욱 그랬단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미스 춘향’ 시절로 돌아갔다. 타고난 노래 솜씨를 보이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판소리를 시작했다. 13살 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에서 최연소로 장원을 하면서 명창 김소희(1995년 작고)의 제자가 됐다. 이후 KBS 국악마당에 두 번 출연하면서 한복 연구가 허영(2000년 작고)과 인연을 맺었다. 결국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미스 춘향’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서편제’를 찍게 됐다. “어디 대회나 무슨 행사에 나갈 때마다 주위에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되는 엄청난 행운이었죠. 도움을 많이 받았고 따라서 책임감 또한 컸습니다. 소리꾼 오정해로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왔다고나 할까요. 또 ‘서편제’라는 명찰이 붙어 있으니 부담이 없어요. 어떤 무대든, 어떤 장소든 그 명찰로 100%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관객들의 기대치도 그런 것 같고요.” 그는 지난 2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아이 낳고 딱 한 달 집에서 쉰 것 외에는 거의 매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것 같다고 회고한다.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라이브 무대를 꾸준히 가졌다. 월요일에 한복을 입으면 이튿날에는 드레스를, 또 그다음 날에는 연극 무대복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옷을 갈아입으며 관객들과 만났다. 그럴 것이 ‘서편제’ 이후 영화,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학생, 선생으로 살아 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박사학위까지 땄다며 수줍게 웃는다. 내용을 묻자 대단한 일은 아니라면서 부각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래도 연기자 중에는 보기 드믄 철학박사가 아니냐고 거듭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저는 다도(茶道)에 취미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엄마문화가 없잖아요. 교육문제도 그렇고 아이를 학교에만 맡긴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식, 예절, 꽃, 그릇,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보니 원광대에 계신 교무님을 알게 되면서 원광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됐고 7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의 논문 제목은 ‘판소리 심청가의 예술성 연구’이다. ‘심청가’를 모성애적 차원에서 새롭게 풀어 써 관심을 끌었다. 인당수 자체가 곧 ‘모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논문을 쓰고 나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많은 자료들을 모았지만 논문에 다 풀어내지 못해 좀 더 연구하면서 책으로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내친김에 심청가에 이어 판소리 다섯 마당까지 접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있다. ‘아리랑’을 연구하겠단다. “외국 사람들이 ‘아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잘 못합니다. 지방마다 다르고 외국 교포사회에서의 아리랑도 다르고 그렇잖아요. 누군가 쉽게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새삼 더 생겼다고나 할까요.” 공부하면서 느꼈던 고충도 털어놓는다. 익산까지 오고 가느라 직접 운전(지프 형식의 SUV 차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멀미하는 것, 방송과 무대 출연하는 것, 특강 시간을 쪼개 가며 공부하는 것 등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에 충실하려는 버릇’ 때문에 무사히 공부를 마친 것 같다며 웃는다. “저는 단기 기억상실증처럼 살자는 주의입니다. 오늘에 충실하는 것이지요. 과거는 흘러간 것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불안해할 필요도 없잖아요. 또 어느 순간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냥 놔 버려요. 오늘 다 움켜쥘 필요가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놔 버렸던 것이 다시 오거든요. 20년 전에는 책임감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놔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겨울이 되면 길가의 가로수가 나뭇잎조차 내려놓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는 20년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입는다고 했다. 중간에 ‘돼지’처럼 살찌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시에 직접 만들었던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의 집에는 애지중지하는 재봉틀이 있다. 본인의 옷은 물론이고 아들 옷, 조카들 옷까지 손수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되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원단을 직접 고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머릿속으로 20년을 다시 정리했다. 소리꾼 오정해는 판소리를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일을 시작했고, 또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라는 특별한 무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으며 내년에는 본인이 작사한 노래로 음반을 낸다. 아울러 집착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편안하게 ‘오늘주의’로 홀가분하게 살아가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행복한 오정해가 되는 것이며 오늘이 행복해야 미래가 있는 것 아니냐.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대답이 모호해진다.”며 웃는다. 동갑인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영화, 독서 등 취미도 비슷하다. 17년 전 뮤지컬 ‘쇼 코미디’에 출연했을 때 동료 배우 최정원씨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슬하에 중학생인 아들이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판소리 신동 오정해 철학박사 되기까지 197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고전무용을 시작했다. 한복을 뒤집어쓰고 사극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했다. 이후 주위의 권유로 국악과 판소리, 가야금을 배웠다. 13세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로 장원, 주목을 끌었다. 이때 인간문화재 김소희 선생의 직계 제자가 됐다. 중학교 2학년 방학 때부터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판소리를 공부했다. ‘춘향가’ 이수자인 그는 학창시절부터 국악경연대회나 명창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92년 미스 춘향 ‘진’으로 선발되면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 ‘서편제’(1993년)로 데뷔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울관객 100만명 돌파 등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서편제’로 스타가 된다. 이후 영화 태백산맥(1994년), 축제(1996년), 천년학(2007년) 등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마당극 ‘학생신위부군’에 출연, 호평을 받았다. 중앙대 국악예술학 석사를 거쳐 최근 원광대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방송 진행, 특강, 연극, 뮤지컬 등에 출연하고 있다.
위로